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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범여(梵如)의 世上사는 이야기
석문동(신선)지맥(終)

석문동(신선)지맥 제1구간 - 마패봉에서 소조령까지

by 범여(梵如) 2020. 9. 5.

☞ 산행일시: 2020년 09월 05일

☞ 산행날씨: 잔뜩 흐린 날씨에 간간히 내리는 가랑비

산행거리: 도상거리 6.4km+접속구간 들. 날머리 4.4km / 5시간 50분 소요

☞ 참석인원: 나홀로 산행

☞ 산행코스: 고사리 주차장-조령산 휴양림-쉼터-임산물 판매장-마패봉 갈림길-문경새재 공원

                 영남3관문-군막터-묘자-암봉-마패봉(분기점)-안부-무명봉-안부-924m봉-무명봉-안부

                 신선봉-암봉-안부-무명봉-안부-방아다리봉--갈림길-안부-연어봉-연어바위-돌탑

                 이정표-갈림길-안부-633.7m봉-620m봉-안부-무명봉-소조령터널 위-454.0m봉

                 묘지-소조령

소 재 지: 경북 문경시 문경읍 / 충북 충주시 수안보면 / 괴산군 연풍면

 

6개월만에 받는 정기검진의 결과가 이번주에 나왔다

워낙 빨빨거리며 돌아다닌 탓인지 주치의인 교수의 말로는 결과가 아주 좋다고 한다.

다만 수술할 때 성대를 약간 건드렸는데 그것이 조금 피곤하고 날씨가 습하거나

컨디션이 안 좋으면 마비증세가 나타나 목소리가 잘 안나오는게 엄청 불편하고

스트레스를 받는데 다음주에 이비인후과 주치의 교수님과 상담하여 약물 치료를

할 것인지, 수술을 할 것인지 결정 하자고 한다

 

그러면서 ‘선생님의 가장 빠른 회복은 걷기운동’ 밖에 없다고 한다

많이 걸으시니까...작년에 비해 폐활량이 2배 이상 늘어놨고, 고혈압이나 당뇨는

지극히 정상이란다... ‘그라믄 내 주치의는 교수님이 아니라 산이네요’ 하니까

교수님이 배꼽을 잡고 웃으신다...그러면서 요즘처럼 코로나가 극성일때는

선생님은 기저환자라 아주 조심해야 하고 독감주사를 빨리 맞으란다

큰 수술을 한번하고 나면 5년동안은 병원에 코가 꿰인 느낌이다

 

지난주에 4군데의 과에서 각종 검사를 받고 이번주에 결과를 확인했다

근데 기분은 무쟈게 좋다...저승 문턱까지 같다온 내가 뭐가 두려우랴...

人命은 在天이라 했거늘...

 

올해는 늦여름에 많은 비를 동반한 태풍이 많이 올라온다.

지난주에 10호 태풍 마이삭이 한반도를 초토화를 시키고 간 상처의 휴유증이 아물기도 전에

이번주 일요일부터 11호 태풍이 상륙하여 일요일부터 화요일까지 비가 온다고 하여

토요일날 서울에서 그리멀지 않는 수안보 근처에 있는 석문동(신선)지맥 1구간을 하기위해

새벽 4시에 일어나 차를 몰고 문경새재 아래에 있는 고사리 주차장으로 향한다  

석문동(신선)지맥 개념도

석문동(신선)지맥은 백두 대간 마폐봉(마역봉)에서 서쪽으로 분기하여 신선봉(996m),

소조령, 송치재,박달산(825m),맹이재,성불산(530m)을 지나 안민천이 달천에 합류하는

충북 괴산군 감물면 오창리에서 끝나는 31.9km되는 산줄기다.

수계를 기준으로 하는 대한 산경표에서는 석문동천이 달천에 입수하기에 석문동 지맥이라 부른다

 

필요한지도 ; 1/25000. 안보. 송덕, 괴산. 온맵지도 ; 충주. 덕산.

오늘 산행구간의 지도

고사리주차장(06:00)

새벽 4시에 집을나서 고속도로 휴게소에 아침을 해결하려 했는데 식당은 문을 열지않아

그냥 괴산I.C를 빠져 나오다보니 나도 모르게 고사리주차장(괴산군 연풍면 소재)에 도착한다

고사리 주차장에서 바라본 신선봉의 모습

이곳에다 愛馬를 세워놓고 산행을 시작하다(06:05)

조령산 휴양림(06:15)

이른 아침이라 아무도 없는 호젓한 이 길 너무좋다

속세의 중생들은 코로나라는 희안한 놈 때문에 아비규환이지만 이곳은 천상세계이다

중생들은 마스크라는 입마개를 쓰지 않고는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못하지만

나홀로 걷는 이 산길은 코로나가 뭔지도 모르고, 마스크도 모르고, 맑은 공기를

맘껏 마시면서 걷는 이 맛...이곳이 천상세계가 아니면 뭐란 말인가!

 

작금에 2017년 5월 10일 황상폐하(皇上陛下:대통령)께서 취임사에서 한 말이 생각난다.

‘지금까지 한번도 경험하지 못한 나라를 만들겠다’ 는 약속 충분히 느끼고 있다.

힘없는 민초들은 죽을 맛인데 폐하의 측근들의 자녀분들은 ‘아빠찬스’ , ‘엄마찬스’를

맘껏 누리고 있는게  황상폐하께서 취임사에서 말씀하신 "공정한 대통령이 되겠다"

"특권과 반칙이 없는 세상을 만들고, 상식대로 해야 이득을 보는 세상을 만들겠다"는

약속이 이런건가요

 

또 뭐라 하셨습니까

기회는 평등할 것이고 과정은 공정할 것이며 결과는 정의로울 것이라 했는데

작금의 세상에 과연 황상폐하의 공언대로 되어가는지는 아둔한 범여의

머리로는 도저히 이해가 안되니 어쩌면 조은가요

이 길은 예전에 이 길은 영남선비들이 한양에 과거보러 가면서 걷던 길이지 않았던가

그 당시 유생들과 관리들은 임금이 잘못하면 자기 목숨을 내놓고 상소문을 올렸는데

요즘은 황상(대통령) 옆에는 그런 기개(氣槪)있는 자들은 눈을 씻고봐도 보이지 않는구나

자기편에게는 한없이 자애롭고, 반대편 진영에는 너무나 잔인하니...미우나 고우나 다 같은

주상의 백성일진데 어찌 이렇게 대한단 말이요.

 

오죽했으면 청와대 청원계시판에 塵人 조은산님의 ‘시무7조’와 ‘영남만인소’라는 청원이

올라왔건만 답을 해야할 그쪽에선 아직 아무런 답이없다

대통령이 취임하면서 집무실에 걸었다는 ‘春風秋霜’이란 액자가 걸려있는지 모르겠다.

요즘 대통령이 하는 얘기는 민초들의 생각과는 너무 동떨어진 느낌이다

 

● 춘풍추상(春風秋霜)은 중국의 채근담에 실린 글로‘대인 춘풍 지기추상’을 줄여 이르는 말로

다른 사람에게는 봄바람같이 대하고, 자신에게는 가을의 찬 서리처럼 대하라는 뜻으로,

다른 사람을 대할 때에는 관대하게 해야 하며 자신을 대할 때에는 엄격하게 해야 함을 이른다.

쉼터(06:25)

조령계곡의 맑은 물소리는 기분을 너무 상쾌하게 해주는 느낌이다

임산물 판매장(06:30)

이곳의 행정구역이 충북 괴산군 연풍면 지역이라 그런지 ‘문경새재’가 아닌 ‘연풍새재 옛길’이라

적어놨다...나도 이 길이 연풍새재란 걸 처음 알았다...문경새재라고 알고있는 이 길

과연 연풍새재라는 이름을 아는자가 이 지역 사람이외는 몇이나 될까.

똑같은 길이건만...지자체의 지역 이기주의를 보는 것 같아 씁쓰럼한 건, 이 범여만의 생각일까

마폐봉 갈림길(06:37)

이 길로 가면 내가 가야할 마폐봉 지름길이다

오랫만에 조령3관문을 통과하기 위해 계속 선비길을 따라서 간다

과거(科擧)의 길 동상

옛부터 영남에서는 많은 선비들이 청운의 뜻을 품고 과거보러 한양으로 갔다

영남에서 한양으로 가는 길은 남쪽의 추풍령(秋風嶺)과 북쪽의 죽령(竹嶺), 그리고

가운데 새재(鳥嶺)가 있었는데 영남선비들은 이 문경새재를 넘었다고 한다

 

추풍령을 넘으면 추풍낙엽(秋風落葉)과 같이 떨어지고, 죽령을 넘으면 미끄러진다는

선비들의 금기(禁忌)가 있어 영남선비들이 과거급제를 위하여 넘던 과거길이다

괴산군에서 조성한 연풍새재 공원

공원 내부의 모습

조령(鳥嶺:06:40)

경북 문경시 문경읍 상초리와 충북 괴산군 연풍면 원풍리 경계에 있는 백두대간 조령산과 마패봉 사이를

넘는 이 고개는 옛 문헌에는 초점(草岾)으로,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조령(鳥嶺)이라고 기록되어

있는데, 그 어원은 풀(억새)이 우거진 고개, 새도 날아서 넘기 힘들다고 해서 붙혀진 이름이다

 

또한 하늘재(麻骨嶺)와 이우리재((伊火峴: 이화령의 옛 지명) 사이에 있다고 해서 ‘새(사이)’ 혹은

‘새(新)’재라고 했다...조령은 조선시대에는 영남과 한양을 잇는 중요한 길목으로 영남대로(嶺南大路)라

불렀으며 군사적 요충지로서의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기도 했다

문경새재 길은 한국의 아름다운 길에 선정된 곳이다

이곳부터는 문경 땅이련가?...조령3관문으로 향한다

조령3관문의 연풍쪽 현판에는 ‘鳥嶺關’이라 적혀있다

경북 문경에 소재한 문경새재는 영주 죽령, 영동 추풍령과 함께 조선시대 3대 고갯길로 꼽힌다.

5백여 년간 문경새재를 넘은 사람이 어디 한둘이겠는가?

그중에는 입신양면을 꿈꾸는 청춘도 있고, 거상을 꿈꾸며 봇짐을 메고 다녔던 보부상들도 있었다

 

부산 동래에서 한양까지 추풍령을 넘으면 보름, 죽령을 넘으면 열엿새가 걸렸다고 한다.

문경새재는 열나흘 정도면 너끈히 한양에 도착할 수 있었으니 지름길인 셈이다.

그런데 과거 보러 가는 선비들에게 문경새재는 지름길 이상의 의미가 있었다.

추풍령은 추풍낙엽처럼 낙방하고, 죽령은 대나무 미끄러지듯 낙방한다는 징크스가 그것이다.

 

문경새재는 거리가 짧은 만큼 길이 험하고 높아 '새도 날아서 넘기 힘든 고개'라는

뜻으로 조령(鳥嶺)이라 불리기도 했다.

다른 뜻으로 백두대간 조령산 마루를 넘는 고개란 의미도 포함된다.

새로 생긴 고개라는 뜻에서 '새재'라는 설도 있다.

"문경새재는 백두대간의 조령산 마루를 넘는 재이다.

관문을 통과하여 문경쪽으로 넘어온다...문경쪽의 현판에는 내가 알고있는 조령 제3문이 아닌

‘嶺南第三門’이라 적혀있다...문경시에서 세운 안내판에는 이런 내용이 쓰여 있다

 

연풍에서 문경으로 이어지는 문경새재는 전 구간이 흙길이다.

우리나라의 부흥시킨 故 박정희 대통령하면 수식어로 따라 붙는데

박 대통령께서 이곳만은 시멘트 포장을 하지 못하게 했다고 한다

문경새재 옆으로는 계곡과 수로가 있어 언제든지 손발을 닦을 수 있다.

뙤약볕을 피할 수 있을 만큼 우거진 숲도 걷는 재미에 한몫을 한다.

 

이처럼 수려한 자연경관 덕에 '한국인이 꼭 가봐야 할 국내 관광지 100선'에서 1위를 차지했다.

그뿐 아니라 '한국의 아름다운 길 100選'과 명승32호로도 지정됐다.

낮은 물론이고 늦은 밤에도 길을 걷는 사람들이 많다.

보름달이 휘영청 밝은 밤에 황톳길을 맨발로 걷는다.

상상만으로도 운치 있는 풍경이다. 문경새재는 제1관문인 주흘관을 시작으로

제2관문 조곡관, 제3관문 조령관으로 이어진다.

 

전체 길이는 6.5km. 일정이 빠듯하다면 1관문이나 2관문까지만 걸어도 좋다.

문경새재도립공원에 들어서면 자연생태전시관, 사계절썰매장, 새재스머프마을,

옛길박물관 등 볼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이들 중에서 옛길박물관은 과거길,

여행길 등 조선시대 길과 얽힌 문화를 재조명해놓았다.

문경새재(642m:06:42)

영남제3관이라 적힌 문경관문(聞慶關門:사적제147호)

이 관문은 고려 태조가 경주를 수행차 고사갈이성(高思葛伊城 : 지금의 경상북도 문경)을 지날 때

성주 흥달(興達)이 세 아들을 차례로 보내 귀순하였다는 전설이 서려있는 곳이다

 

이 관문은 영남지방과 서울간의 관문이며 또한 군사적 요새지이다

삼국시대에는 이보다 동쪽의 계립령(鷄立嶺 :하늘재)이 중요한 곳이었는데 고려초부터는

이곳 초참(草站)을 혹은 새재라고 하므로 조령(鳥嶺)이라 이름하고 중요한 교통로로 이용했다

 

조선 선조 25년(1592년) 임진왜란 때 왜장 고니시유끼나가(小西行長)가 경주에서 북상해 오는

카토 키요마사(加藤清正)의 군사와 이곳 조령에서 합류했을 정도로 군사적으로 중요한 지점이었다

이때 조정에서는 이곳을 지킬것이라 생각했지만 신립(申砬) 장군은 때가 늦었으므로 충주로 후퇴했다

 

그 후 충주에서 일어난 의병장 신충원(辛忠元)이 오늘날의 제2관문에 성을 쌓고 교통을 차단하며

왜병을 습격하였다...이곳의 군사적 중요성이 재확인 되자 군사시설을 서둘러 숙종34년(1708년)에

이르러서야 3중의 관문을 완성하였다.

문경에서 충주로 통하는 제1관문을 주흘관(主屹關), 제2관문을 조동문(鳥東門) 혹은 조곡관(鳥谷關)

제3관문을 조령관(鳥嶺關)이라 이름한다

조령 산신각(山神閣:06:43)

산신각에 들려 들려 오늘의 무사산행을 기원하며 예를 올린다

조령3관문을 통과하자마자 좌측으로 꺽어져 백두대간 능선으로 올라간다

군막터(軍莫址:06:45)

예전에 조령관을 지키던 지키던 군사들이 대기하는 장소란다.

오미자 터널을 지난다

문경시 전시행정...오미자가 자라지도 못하는 곳에 뭔 짓거리인지?

성곽을 따라서 고도를 높이면서 빡센 오르막이 시작된다

얼마전에 백두대간을 종주한 쉬크석 영감탱이의 흔적인가 보다?

이 영감탱이 잘 사는지 모르겠다...무쟈게 보고싶다

묘지(06:53)

벌써 이곳은 가을이 오고 있다

선바위(07:00)

마패봉으로 향하는 빡센 오르막이 시작되고...

조망바위(07:00)

조망바위에 올라서니 주흘산 능선이 한 눈에 들어온다

그러나 미세먼지로 인해 모든게 흐릿하기만 하다

등로에서 바라본 主屹山群의 모습

능선에 올라 우측으로 향하니 마패봉이 나온다

마패봉(馬牌峰:925.1m:07:22)

문경시 문경읍과 충주시 수안보면 괴산군 연풍면의 경계에 있는 봉우리로 암행어사

박 문수가 조령 제3관문 위에 쉬면서 마패를 관문 위의 봉우리에 걸어 놓았다하여

붙혀진 지명으로 지도상에는 마역봉(馬驛峰)으로 표기가 되어있다.

경북 문경지역에서는 마패봉으로 부르고 충북 괴산지역에서는 마역봉으로 부른다

 

이 산은 임진왜란 때 신립장군의 한이 서린 조령 삼관문을 안고 있는 산이며

마패봉이란 산 이름은 암행어사 박문수가 이산을 넘으면서 마패를 걸어놓고

쉬어 갔다는데서 유래한다

 

국토지리원의 자료에 따르면 문경 새재의 정문 격인 제일 관문인 주흘문에서

북쪽으로 향하여 문경 새재로 들어서면 정면에 보이는 산이 마폐산이다

처음에 마폐산을 馬역(門안에 力)山이라 했는데 역(力)은 男根을 말한다

마폐산의 정상이 마역과 같은 웅장한 모습을 하고 있으며 또 풍수지리설로서도

말에게 힘을 불어 일으킨다는 뜻으로 해석되었다

그러나 마역산은 외설적으로 받아들여지기 쉬움으로 1925년경의 지형도부터는

역자와 글자 모양이 가장 가까운 한자인 폐(閉)자를 대신 쓰게 되었다

마패봉 정상의 이정표

지난 5월 23일 달천(계명)지맥 첫 구간을 할 때 왔으니 3개여월만 다시 마폐봉에 왔다

이곳에서 물 한모금 마시면서 약간의 휴식을 취한다

잠시후에 가야할 신선봉도 바라보고...

마패봉에서 바라본 주훌산군의 모습

주흘산 이라는 뜻은 우뚝선 우두머리산 이라는 말로 주변에 대미산과 조령산등

1,000m가 넘는 고봉들이 즐비하지만 그중에서도 산세가 힘차게 뻗어있어

주변 산들을 호령하는 산으로 예로부터 나라의 기둥이 되는 큰 산인 중악(中嶽)으로

우러러 매년 조정에서 향과 축문을 내려 제사를 올리던 신령스런 영산(靈山)으로

받들어 왔던 곳으로 문경읍을 감싸고 있는 문경의 진산으로 주흘산 최고봉은

1106m의 영봉 이다.

 

하지만 주봉은 영봉보다 낮은 1,076m인데 이곳이 주봉(主峰)이 된것은 산세가

막 비상하려는 학의 모양인데 이곳 주봉이 학의 머리에 해당하는 곳 이라고 한다.

또한 주흘산에서 이곳의 조망이 가장 좋은데 그래서 높이에 상관없이 이곳을

주봉으로 삼았다고 한다

석문동(신선)지맥의 첫 걸음을 내딛는다

등로는 생각보다 뚜렸하다

이곳부터 암릉구간이 시작된다

오르기 힘든 암릉은 우회하고...

암릉을 가로질러...

내리막으로 내려간다

안부(07:34)

이곳 역시 직등구간은 갈 수가 없어 우측으로 우회한다

안부를 통과한 다음에...

대슬랩 구간이 나오고 두발이 아닌 네발로 기어서 올라간다

70년대의 지적말뚝이 보인다

백운대 오리바위와 많이 닮았네...

다시 오르막을 기어가다싶이 능선으로 올라간다

계속되는 암릉구간

신선봉 가는길에 뒤돌아 본 백두대간 능선

 

무명봉(07:48)

다시 내리막길로 향한다

가야할 신선봉이 시야에 뚜렸이 들어온다

암릉구간은 계속되고, 최근에 계속된 장마비로 인해 상당히 미끄럽다

뒤돌아 보니 지나온 마폐봉이 나를 물끄러미 바라본다

마폐산을 馬역(門안에 力)山이라 했는데 역은 男根을 말한 것으로 마폐산의 정상이 마역과 같은

웅장한 모습을 하고 있으며 또 풍수지리설로서도 말에게 힘을 불어 일으킨다는 뜻으로 해석되었다

그러나 마역산은 외설적으로 받아들여지기 쉬움으로 1925년 경의 지형도부터는 역자와 글자 모양이

가장 가까운 한자인 폐(閉)자를 대신 쓰게 되었는데, 그런 의미도 모르고 비슷한 글짜를 끌어와서

‘마패(말 마(馬) 닫을 폐(閉)’라고 표기했다는데 문경시나 괴산군의 홈피에 기록된 내용은 너무나

자의적인 느낌이고 무지스럽다...그래서 공무원들의 역사와 지리공부가 필요할 듯 싶다

부드러운 등로를 내련선다

안부(07:57)

좌측으로 조령산 휴양림 매표소로 내려가는 등로가 뚜렸하다

안부를 오르니 암릉구간의 로프가 나온다

휴식(08:00~08:20)

새벽 4시에 집을 나왔더니만 갑자기 잠이 쏟아지기 시작한다

이곳에서 베낭을 베개삼아 잠깐동안 누워서 쪽잠을 잔다

잠깐이지만 꿀잠이다...바람이 솔솔불고 날씨는 약간 추운 정도이다

저 아래의 중생들은 역병으로 인해 아비규환이지만 마치 범여는 신선이 된 느낌이다

신선 선(仙)자를 풀이해 보면 사람 인(人)변+뫼 산(山)을 합치면 선(仙)이 아니던가

마치 내가 오늘 신선이 된 느낌이다...20분정도 꿀맛같은 휴식을 취하고 다시 길을 나선다

능선에서 만난 반가운 인연들

내리막으로 갔다가...

다시 오르막 암릉구간으로 올라간다

924m봉(08:25)

암봉을 조심스럽게 내려간다

칼날같은 암릉구간으로 올라간다

무명봉(08:29)

가야할 신선봉을 바라보니 갑자기 기가 질린다

과연 신선이 살만한 봉우리인듯 보인다

북동쪽으로는 지난 5월에 걸었던 북바위산이 보이고 그 너머로는 월악산 영봉이다

안부(09:34)

신선봉 오르는길은 아무나 허락을 하지 않는 모양이다

좌측으로 우회를 한 다음에 로프에 매달려 힘들게 신선봉으로 향한다

급경사 암릉 직각등로는 오금이 저릴 정도이다

어제는 날씨가 참으로 좋았는데 오늘은 모든게 흐릿하다

갑자기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하는데 참으로 난감하다

그래 구라청을 원망한 듯 뭘 하겠느냐...모든건 운명에 맡기자꾸나

黃昏(황혼) /이백

 

對酒不覺瞑(대주불각명) 술잔 기울이니 해 지는 줄 몰라
落花盈我衣(낙화영아의) 어쩌자고 꽃은 떨어져 옷깃을 덮는가
醉起步溪月(취기보계월) 거나히 취한 채 달을 밟고 가노니
鳥還人跡稀(조환인적희) 새는 둥지를 찾고 인적은 끊어져

조령산을 바라보며 조심스럽게 걷다보니 신선봉 정상에 오른다

신선봉(神仙峰:965.9m:08:47)

충북 괴산군 연풍면 원풍리와 충주시 수안보면 사문리에 걸쳐있는 산으로

기암절벽에 우뚝 솟아있는데 주위의 전망은 일망무제이나 오늘은 안개로 인해 영 아니다

정상에는 정상석과 이정표, 3등삼각점(△덕산312 / 2003재설)이 있는데 멀리서 보면

뾰족하게 생긴 봉우리가 과연 신선이 살만한 곳인듯 보인다

 

신선봉 아래쪽으로 마패봉과 조령등이 이어져 있으며 월악산국립공원과 문경새재

도립공원 사이에 위치하며 신선봉의 북쪽 길은 신라가 한강 유역으로의 진출을 위해

백두대간 줄기를 뚫은 고개인 지릅재와 하늘재이고 남쪽 길은 조선 시대에 영남지역의

선비들이 과거 보러 서울로 올라가던 문경새재로 괴산의 명산 35곳 중의 하나이다

 

『구한말지형도』에는 이 산의 지명이 표기되어 있지 않다. 『조선지지자료』에는 신선봉이

괴산군 상모면과 연풍면의 경계에 위치하는 산이라고 나온다. 이는 상모면(현재의 수안보면)이

충주시에 편입되기 전의 상태를 보여준다. 『조선지형도』에도 같은 지명으로 표기되어 있다.

신선봉 정상에 오르니 부부인듯한 등산객 대여섯명이 있는데 어찌나

떠들어 대는지 정신이 없다...요즘 사회적 거리두기 분위기 땜에 사람들을

부딪히면 조금은 겁이 나기에서 서둘러 신선봉을 빠져 나가다보니 삼각점을 놓쳤다

인증샷

요즘 자영업자들의 속처럼 다 타버렸다...코로나라는 이 역병은 언제쯤 끝나려나...

사람들과 부딪히기 싫어서 서둘러 신선봉 아래로 내려간다

내려가는 길도 그리만만하지는 않다

하산길에서 바라본 온천으로 유명한 수안보(堡)의 모습

충주시 수안보은 온양온천, 유성온천, 부곡온천과 함께 우리나라 4대 온천중 하나로

수안보()라는 지명은 ‘보() 안쪽의 물탕거리’라는 순수한 우리말이 한자로 변천된 것으로

18세기 초 이규경의 『오주연문장전산고(稿)』에 최초로 지명이 거론되었다고 한다.

우리나라 온천 지역은 모두 행정 지명을 붙여 온천명으로 전해지고 있으나 수안보 지역의

온천은 2005년 이전 행정 명칭인 상모보다는 수안보로 불렸다.

『세종실록()』, 『동국여지승람(輿)』 등에 안부(), 안보온정(),

연풍온천() 등으로 기록되어 있다. 이는 역사적으로 교통의 중심지였던 안부역의 규모가

더 컸기 때문에 또는 연풍현에 속하였기 때문에 영향을 받았다고 판단된다.

그러나 온천 이용객이 증가하면서 온천리의 규모가 커지자 온천리를 물안보[], 안부역 지역을

큰안보[]라 구분하였던 것이고, 동학농민운동을 계기로 계립령의 경비 명목으로 석문동에

다수의 일본군 헌병대가 주둔하면서 군사적 보루의 의미로 변화되어 수안보가 된 것으로 보인다

암봉(08:54)

안부(08:56)

계속되는 암릉길

힘들게 능선으로 올라간다

오늘 내가 걸었던 능선을 뒤돌아 본다

무명봉(09:00)

다 바람인거야

                          묵연스님

뭘 그렇게 고민하는 거니?
만남의 기쁨이건
이별의 슬픔이건 다 한순간이야

사랑이 아무리 깊어도
산들 바람이고
오해가 아무리 커도
비바람이야
외로움이 아무리 지독해도
눈보라일 뿐이야

폭풍이 아무리 세도
지난 뒤엔 고요하듯
아무리 지독한 사연도
지난 뒤엔 쓸쓸한 바람만 맴돌지
다 바람이야

이 세상에 온 것도
바람처럼 온다고
이 육신을 버리는 것도
바람처럼 사라지는 거야

가을바람 불어 곱게 물든
잎들을 떨어뜨리듯
덧없는 바람 불면
모든 사연을 공허하게 하지

어차피 바람일 뿐인걸
굳이 무얼 아파하며 번민하리

결국 잡히지 않는 게 삶인걸
애써 무얼 집착하리
다 바람인거야

그러나 바람 그 자체는 늘 신선하지
상큼하고 새큼한 새벽바람 맞으며

바람처럼 가벼운 걸음으로
바람처럼 살다 가는 게 좋아

주흘산 우측으로는 백두대간 이화령으로 이어지는 깃대봉과 신선암봉이 보인다

이곳 암릉구간은 조금 완만하다

아침에 愛馬를 세워둔 고사리 주차장도 보인다

고사리(姑寺里)는 괴산군 연풍면 원풍리의 작은 자연마을에 불과하지만 조선시대에는

수안보 지역을 중심으로 연풍군 고사리면이었는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수안보 지역은 중원군 상모면(수안보면)으로, 고사리 마을은 연풍면 원풍리에 편입되었다

 

조령 3관문으로 가는 도로변에 있어 옛날 주막 마방집 등이 있던 곳이라고 한다.

우리말 중에서 '고사'와 음이 유사한 것을 찾아보면 '고샅'이라는 말이 있다.

'고샅'을 국어사전에서 찾아보면 '촌락의 좁은 골목길' 또는 '좁은 골짜기의 사이'라

설명하고 있으며 '고샅길', '고샅마을', '고샅으로 접어들다'와 같이 흔히 쓰이던 말이었다.

 

'고샅마을'을 행정구역 단위를 붙여 '고샅리'라 하고 한자로 표기하다보니 '고사리(姑寺里,古寺里)가

되어 식물 '고사리'와 같은 음이 만들어져 의미의 혼란이 생긴 것이라고 추정할 수 있으며

'고사리'란 '좁은 골짜기의 사이에 있는 마을'을 의미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충북일보 인용)

암봉을 우회한

오늘 저 탁사등봉을 넘어갈 수 있으려나...

안부(09:20)

안부의 이정표는 레포츠공원으로 향한다

멋진 와송(臥松)도 만난다

암릉구간을 지나 오르막 능선에 올라선다

산에는 바람이 상당히 차갑다

방아다리봉이 보이기 시작한다

암릉구간이라 산행거리가 좀처럼 줄어들지 않는다

다시 조심스럽게 암릉구간을 통과한다

신선봉을 다시한번 뒤돌아본다

또다시 안부로 내려선다

안부를 지나...

방아다리봉을 향한 오르막이 시작된다

아직도 시어머니에 대한 원망이 남아 있나요?

급한 오르막으로 올라가니...

방아다리봉의 이정표를 만난다

방아다리봉(791.9m:09:38)

생김새가 마침 디딜방아처럼 생겼다... 그래서 붙혀진 지명인 모양이다

방아다리봉 주변의 전망은 참으로 좋다

방아다리봉에서 바라본 대간길에서 살짝 벗어난 깃대봉의 모습

갈림길(09:40)

방아다리봉에서 조금 내려오니 좌측으로 고사리마을로 내려가는 희미한 등로가 보인다

안부에서 올라서니...

암릉구간이 오를수 없어 좌측으로 우회하며 맥길을 이어간다

암릉사이를 힘겹게 빠져 나간다

능선으로 빠져 나오니...

암릉구간이 나오고 잠시후에 가야할 연어봉이 보인다

편안한 능선을 잠시 걷다가...

암릉구간으로 올라선다

암릉구간 사이를 빠져 나간다

안부(09:57)

연어봉을 향한 오르막이 시작된다

苦行

연어봉 가는길

힘들게 연어봉 정상으로 올라선다

연어봉(鰱漁峰:611m:10:12)

괴산군 연풍면 원풍리와 충주시 수안보면 화천리의 경계에 있는 봉우리로 넓은 바위위에

정상석과 바로앞에 데크목 평상이 설치되어 있어 산꾼들의 쉼터 역할을 하고 있다.

이곳을 왜 연어봉이라 부른 연유를 모르겠으나 정상석 바로옆에 물고기처럼 생긴 바위가

있어 그렇게 부르는 모양이다

 

연어는 민물에서 태어나 바다로 가서 3~4년을 살다가 자기가 태어난 母川으로 와서

생을 마감하는 회귀본능의 물고기로 연어가 회귀하는 대표적 하천이 양양 남대천이다

 

우리 나라 동해안을 비롯하여 일본·연해주·캄차카반도·북미 등지에 분포한다.

하천에서 부화된 연어가 6㎝ 정도로 자라면 바다로 내려가고, 3∼5년 뒤 성숙한다.

바다에서 성숙하여 강으로 되돌아와 산란한다.

산란기는 9∼11월이며, 산란·방정(放精) 후에는 암수가 모두 죽는다.

모천회귀성(母川回歸性)이 있으므로 반드시 부화되어 자라던 하천으로 돌아온다.

이러한 습성을 이용하여 인공부화를 통한 자원증식책이 오래 전부터 강구되고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鰱魚’라고 쓰여 있고 그 산지가 ≪세종실록≫ 지리지보다 많게 되어 있다.

그리고 고원군덕지탄(德之灘)은 어량(魚梁)의 수익이 전도에서 최고라고 하였다.

어량, 즉 어전(魚箭)을 설치하여 연어를 잡고 있었던 것이다. 허균(許筠)의

≪성소부부고 惺所覆瓿藁≫에서는 “연어(鰱魚)는 동해에 있는데 알젓[卵餮

좋은 안주이다.”라고 하였다.

인증샷

연어봉 데크목 평상에서 6~7분정도 쉬었다가 다시 길을 떠난다

연어바위(10:20)

내리막길에서 바라본 괴산군의 산그리메

암릉을 따라서 내리막길로 내려간다

돌탑(10:21)

계속되는 내리막길

등로에서 바라본 백두대간 백화산의 모습

잠시후에 오를 633.7m봉을 바라보면서 내리막길로 내려간다

암릉구간의 마지막이다

이정표(10:30)

맥길은 직진이나 절개지라 내려설 수 없어 수안보쪽으로 우회한다

우측으로 간 다음에 좌측으로 꺽어져 내려간다

갈림길(10:37)

독도에 아주 주의해야 할 구간이다...연풍레포츠 공원으로 이어지는 뚜렸한 직진

등로를 버리고 우측으로 등로가 잘 보이지 않는 곳으로 맥길을 이어간다

이곳부터는 제도권 등로를 벗어나 지맥길의 本色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얼마나 아팠을까

안부(10:39)

얼마나 좋았으면 죽고 못사는 사이인가?

등로가 보이지 않는 빡센 오르막이 시작된다

능선에 올랐다가...

또다시 빡센 오르막을 올라서니 633.7m봉이 나온다

633.7m봉(11:00)

633.7m봉에서 좌측으로 내려가는데 또다시 가느다란 빗방울이 떨어진다

620m봉(11:05)

이곳에서 맥길은 또한번 좌측으로 꺽어져 내려간다

급경사 내리막 등로는 자꾸만 거칠어지고 비에젖어 상당히 미끄럽다

등로는 험하나 뚜렸하다

흐미 이쁜 넘...수확의 즐거움을 맛본다

잔나비 걸상은 아닌듯 싶고...아리까리하다

이곳은 화천리층(석회규산염암)이라 불리는 옥천계 변성퇴적암 지대로 산지는 다소

가파르지만 식생이 빽빽하게 덮여 있다. 반면 좀 더 동쪽에 있는 신선봉과 조령 일대는

중생대 백악기에 암석을 뚫고 들어간 흑운모화강암이 산지를 형성하여 기암절벽이

발달한 수려한 경치를 보여준다

오늘 수확이 짭짤하다

우측으로 내려가다가...

급경사의 내리막 사면길로 내려간다

등로는 안 보이고...

갑자기 등로가 사라진다

묵밭이 나오는데...곤드레 나물인가?...아리까리하다

칡넝쿨이 길을 막아 한참을 우회한다

안부(11:28)

우측의 뚜렸한 등로를 버리고 직진으로 올라간다

다시 힘든 오르막이 시작된다

능선에 올라서서 좌측으로 살짝 꺽어진다

등로는 조금 거칠어지나 맥길은 뚜렸하다

춤추는 소나무?

무명봉(11:35)

등로 우측 아래로는 소조령 터널로 이어지는 3번국도가 보인다

소조령 터널위(11:38)

이곳 아래에는 소조령 터널이 있다

소조령터널이 개통되기 이전의 구 국도 3호선은 수안보면 화천리 사시마을

부근에서 새재 북쪽의 구불구불한 도로를 거쳐 소조령 북쪽을 통과하였다.

이 도로는 괴산군 연풍면 수옥리 안터마을에 도달하며, 다시 남쪽으로 수옥정을 지나

연풍면 원풍리의 원풍지구 관광농원과 새재골휴게소를 통과하게 되어 있어 많은 불편이 있었다.

화천리 사지마을에서 서~남 방향을 직진하여 괴산군 연풍면 원풍리로 연결시킨 도로를

직선화하기 위하여 2003년에 소조령터널이 준공되었다.

빡센 오르막이 시작된다

군 교통호같은 곳을 만나고...가로질러 454m봉으로 올라간다

등로가 잘 안보인다

웅덩이같은 것이 있는 454.0m봉 정상에 오른다

454.0m봉(11:43)

이 분은 이곳을 신혜봉이라 적어놨다

다시 좌측으로 꺽어지는데 맥산꾼의 전설인 죽천선생의 낡은 흔적이 보인다

내리막으로 내려가니 묘지가 나온다

묘지(11:45)

내리막길로 내려가는데 차량소리가 요란하게 들린다

군 교통호를 내려서니 소조령이 나온다

소조령(小鳥嶺:370m:11:55)

충주시 수안보면 화천리와 괴산군 연풍면 원풍리 경계에 있는 고개로 인근에 신선봉, 마폐봉

조령()이 있는데 이곳을 넘으면 문경으로 이어진다

조령에서 소조령에 이르는 지대는 북쪽의 하늘재와 함께 백두대간을 동서로 잇는 구조선에 의해

형성되었으며, 지명의 의미는 '작은 새재'이다. 새재의 한자 표기인 조령()은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수록되어 있는데, 새도 날아서 넘기 힘든 험한 고개여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전한다.

소조령 정상에 있는 이정표

원래 계획은 솔치재까지 가볼 계획이었는데 앞으로 6시간이상 더 걸어야 하고

구라청의 예보와는 달리 가랑비가 계속 내리는 바람에 이곳에서 산행을 종료하는 스틱을 접는다

소조령 정상에 있는 안내판

다음구간의 들머리를 확인하고...

이곳에서 1km 거리에 있는 고사리주차장으로 향한다

연풍레포츠 공원 버스정류장의 시간표

이화여대 고사리 수련관(12:08)

서낭나무를 지나....애마가 기다리고 있는 고사리 주창에 도착한다

고사리 주차장(12:15)

주차장에 도착하여 주차비 2,000원 지불하고 서울로 향한다

조금 아쉽지만 짧게 1구간을 끝내고 오는길에 월악휴게소에 들려서 황태구이로

늦은 아.점을 먹고 서울로 향하는데 빗방울이 더 굵어지는데 산행을 종료한게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오후 3시경에 집에와서 깊은 잠에 빠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