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일시:2020년 11월 21일
☞산행날씨:맑음
☞산행거리:13.7km + 알바 3.2km / 7시간 30분 소요
☞참석인원:나홀로 산행
☞산행코스:대촌(광대정)고개-480m봉-515.8m봉-무명봉-안부-625m봉-630m봉-성치산 분기봉
성치산-다시 성치산 분기봉-안부-628m봉-무명봉-안부-557.6m봉-삼면경계봉-580m봉
안부-무명봉-구석리갈림길-안부-653.5m봉-성봉-안부-무명봉-안부-522.1m봉-안부
무명봉-신동봉-다시 성봉(대형알바)-안부-625.7m봉-무명봉-622m봉-봉화산갈림길
폐헬기장-봉화산-648.6m봉-무명봉-안부-송전탑봉-631.1m봉-NO17송전탑
620m봉-안부-530m봉-NO19송전탑-463.1m봉-440m봉-안부-433.2m봉-무명봉-솔재
☞소 재 지:충남 금산군 남이면, 남일면 / 전북 진안군 주천면, 용담면
지난주에 불알친구와 7개월전에 약속한 광천(등곡)지맥 마지막 구간을 약속하는 바람에
백두사랑산악회 일요 지맥팀들과 일정에 겹쳐 가지고 부득히 혼자 2구간을 나서게 된다
지난 한주동안 정신없이 바빠서 이번구간의 산행에 대한 선답자들의 산행기를 보지 못했다.
거기다가 일요일에 비가 온다고 하기도 하고, 출가한 딸이 아파트를 하나 분양받아 1월에
입주를 하는데 일요일날 사전 점검을 해야하니 인테리어 전문가인 아빠가 좀 도와 달라고
하기에 부득히 토요일날 길을 나선다
오늘 산행구간의 지도
수서 → 대전간 SRT 열차표
한 주동안 정신없이 바빴던 탓에 육신이 피곤했던 탓인지 조금 일찍 잠자리에 들었건만
좀처럼 잠을 이루지 못하다가 새벽 4시반에 일어나 사워를 하고 간단하게 베낭을 챙겨
집에서 그리 멀지 않은 수서역으로 향한다
열차에 오르자마자 열차는 출발하고 56분만에 정확하게 대전역에 도착한다
대전역을 빠져나와 택시를 타고 터미널로 향하는데 생각보다 날씨는 꽤나 춥다
택시를 탔는데 젋은 택기시사가 어찌나 난폭하게 차를 모는지 상당히 불안하다
대전역을 출발한 지 10분도 채 안되어 대전복합터미널에 도착한다
대전복합터미널(06:40)
대전 → 금산가는 버스표
06시 50분에 대전을 출발한 버스는 대전시내 주요 버스정류장과 마전, 추부를 거쳐
55분만에 금산시외 버스 터미널에 도착하는데 대전에서 금산까지 거리를 그리 멀지
않으나 생각보다 시간이 많이 걸리는 느낌이다
금산시외 버스 정류장(07:45)
난생 처음 버스를 타고 시외버스를 타고 금산 터미널로 와 본다
저녁에 서울로 가는 고속버스 시간표를 확인하고 터미널 건너편에 있는 김밥 한줄에
라면으로 든든하게 아침을 해결하고 터미널 앞 택시를 타고 대촌고개(광대정)로 향한다
대촌(광대정:光大亭) 고개(348m:08:35)
전라북도 진안군 주천면 용덕리 대촌마을과 충청남도 금산군 남이면 흑암리 광대정마을을
연결하는 고개로 맥산꾼들은 대촌고개 또는 도촌고개, 용덕고개라고 부르고 있으나, 지명유래집에는
광대정고개로 부르고 있어 약간은 헷갈리는데 광대정(光大亭) 이란 지명은 옛날 광대정이란
정자가 있어서 붙혀진 지명이다
국가 지원 지방도 55호선이 지나가며 정상에서 대촌마을쪽은 돌탑이 있고, 광대정쪽은 쉼터와
성치산 등산안내도 있으며 선답자들의 산행기에는 수준점이 있다고 되어 있으나 찾지 못했다
충남과 전북의 경계인 이 고개는 주천면 용덕리 사람들이 진안장 보다는 가까운 금산장을
갈때 광대정이 고개를 이용했으며 현재도 용덕리를 포함한 주천면 사람들은 금산지역이
생활권이라고 할 수 있다.
6·25 전쟁 이후에는 억새를 엮어 만든 인삼발과 나무껍질, 장작 등을 지고 광대정이 고개를 넘어
금산장에 팔고 돌아올 때는 생필품을 사왔다. 이들을 위해 고개 근처에 주막도 있었다고 한다.
정상에는 큰 너도밤나무가 있어서 단오 때면 그네를 타고, 서낭당의 역할도 했다고 하나,
1990년대 초 국가 지원 지방도 55호선을 확장하면서 베어버렸다고 한다.
이후 마을에 좋지 않은 일이 자주 생겨 마을 사람들은 탑을 세우고 매년 음력 7월 7일 탑제를 지내고 있다.
택시기사와 작별을 하고 차에서 내리니 주변에 서리가 내렸고 생각보다 춥다.
서둘러 산행 채비를 하고 길을 나선다(08:40)
서리가 내려 미끄러운 등로에 올라서니 솔갈비 수북하고 우측으로 도촌마을이 시원스레 보인다
등로에서 바라본 진안군 주천면 용덕리 도촌(道村)마을의 모습
도촌마을은 지금으로 부터 약 100여년 전에 신현수라는 사람이 살았는데 그 당시 농업용수를
공급하는 저수지가 없어 메마른 곳이라 해서 마을 명칭을「건무리」라 불러 오다가 후에 도촌이라
개칭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도촌마을 북쪽에는 지난 구간에 걸었던 용덕리 도촌 도요지는 계단식으로 농경지를 개간하는 과정에
1차 훼손되었고, 오랫동안의 경작 활동으로 인해 유구가 심하게 유실이나 훼손된 것으로 추정된다.
도촌 도요지는 주천면 용덕리와 신양리 일대에 밀집 분포된 도요지 중 중앙부에 있어 조선 후기
백자의 특징과 성격을 연구하는 데 중요한 유적으로 판단된다
능선에서 좌측으로 휘어져 오르는데 우측으로는 벌목지이다
오르막길에는 며칠전 내린비로 낙엽이 젖어서 얼어있는지 상당히 미끄럽다
처음 만나는 봉우리...산으로님의 흔적이 범여를 반기는 듯...
봉우리에서 사면길로 향한다
구조이정표 성치산 3-1를 만나서 오르막으로 올라간다
480m봉(08:47)
다시 완만한 등로를 걸어가는데...
완만한 능선을 따라서 맥길을 이어가는데 날씨는 꽤 추우나 바람이 불지않아 다행이다
무병봉을 지나...
우측은 계속해서 벌목지가 이어진다
우측으로 벌목지가 보이고 건너편에는 명덕봉(845.5m)이 보이고 우측으로 운일암과 반일암으로
이어지는 능선이 보이고 벌목지 아래로는 진안군 주천면 용덕리가 미세먼지에 살짝 가려져 있다
운장산으로 가는 길에서 만나는 운일암(雲日岩)은 주변을 오가는 것은 ‘구름’과 ‘해’뿐이라는 뜻이고,
반일암(半日岩)은 햇빛이 반나절밖에 비치는 않는다는 뜻이다
벌목지 윗쪽 능선을 따라서 걸어간다
뒤돌아보니 지나온 1구간의 분기점부터의 산줄기가 보인다
육백고지와 그 너머의 대둔산은 약간의 미세먼지로 인해 흐릿하기만 하다
초반이기는 해도 등로는 좋은 편이다
515.8m봉(09:05)
515.8m봉 정상에 있는 표지판
다시 완만한 내리막길로 향한다
앙증맞은 바위를 만나고...
안부를 지나 다시 오르막으로 올라간다
갈림길에서 우측 사면길을 버리고 좌측 능선으로 올라간다
무명봉(09:12)
무명봉에서 조금전에 헤어졌던 등로로 내려간다
안부(09:15)
다시 오르막으로 오르는데 이곳 역시 서리가 내려있는 낙엽이 상당히 미끄럽다
급경사의 오르막길
625m봉(09:25)
내리막길로 내려서니 소나무숲이 나온다
안부로 내려섰다가 다시 암릉구간으로 올라간다
호남 알프스라 부르는 운장산, 연석산 구봉산으로 이어지는 능선이 보인다
호남알프스 개념도
호남알프스란 전북 완주군과 진안군에 걸친 산줄기로 주로 전북 완주군 소양면 송광사를
들머리로 하여 종남산~서방산~위봉산~원등산~연석산~운장산~구봉산 등 7산의 마루금을
차례로 이어서 진안군 725번 지방도인 절연재나 양명주차장, 양명마을, 또는 8km 정도 더
연장하여 795번 지방도인 고남재를 날머리로 하는 산행코스이다.
호남알프스의 특징은 종남산~서방산 서편으로 만경평야의 광활한 모습이 펼쳐지고,
연석산~운장산~구봉산 구간은 호남알프스의 백미라 할 수 는데, 구름이 항시 길게 드리워져
자신의 모습을 쉽게 드러내지 않는다는 雲長山, 그 운장산에서 바라본 조망은 상봉이라 일컫는
중봉을 중심으로 서쪽으로 맑은 물과 울창한 숲으로 둘러싸인 연석산, 동쪽으로 9개의 암봉을
거리리고 있는구봉산을 이으면서 육산의 장쾌함과 바위산의 힘찬 분위기를 동시에 느끼게 한다고 한다.
게다가 무진장으로 불리는 무주 진안 장수 일대의 수많은 봉우리뿐만 아니라 남으로 지리산
주능선과 동으로 덕유산 주능선, 그리고 전주를 지나 서해의 산야까지 조망할 수 있다고 한다
다시 완만한 오르막 능선으로 올라간다
630m봉(09:33)
외롭겠다
암봉에서 내려서니 뚜렸한 등로가 나온다
가야할 성치산이 보이는데 성치산은 맥길에서 우측으로 약100m정도 떨어져 있다
이곳부터 암릉구간이 시작된다
계속되는 암릉구간
가야할 성치산이 조금씩 가까워지고 있다
좌측으로는 금산군 남이면 구석리에서 진안군에 있는 용담댐으로 넘어가는 구절양장의 도로가 보인다
오늘 가야할 성봉의 모습도 시작한다
암봉사이로 곡예하듯 성치산으로 향한다
제도권 등로라 그런지 구조이정표가 참 많이 보인다
오늘 처음 만나는 이정표...성치산 분기봉에 도착한다
성치산 분기봉(660m:09:48)
정상에는 금산소방서에서 설치한 119구급함과 구조 이정표가 서 있다
성치산은 이곳에서 우측으로 100m정도 떨어져 있다
이곳에서 베낭을 벗어놓고 물 한모금을 마시고 성치산으로 향한다
안부로 내려선 다음에...
넓은 공터에 헬기장이 있는 정상에 올라선다
성치산 정상 헬기장 가운데에 있는 삼각점(판독불가)
성치산(城峙山:671.2m:09:50)
성치산은 전북 진안군 주천면 용덕리와 충남 금산군 남이면 구석리의 경계에 있는
산으로 정상은 넓은 공터에 헬기장이 있고 판독이 불가능한 삼각점이 보인다
서쪽의 주천쪽에는 진안공원이라 부르는 능선으로 이어지는 명덕봉이 있고, 동쪽의
금산쪽에는 신동봉과 성봉이 보인다
깍아지른 암릉구간에 푸른 노송이 어우러져 경관이 뛰어나며 좌측에는 십이폭포를
품고있는 무자치골이 있는데 지명의 유래는 과거에 성(城)이 있었던데서 유래됐다고
하는데 지금은 그 어디에서 성터의 흔적이라곤 찾아볼 수가 없다
남쪽에는 용담호가 있고 가파른 능선 서쪽에는 용덕천이 흐르며, 국가지원 55번
지방도가 지나가고 있다
인증샷을 남기고 다시 분기점으로 향한다
다시 성치산 분기점(660m:10:00)
성치산 분기봉에 벗어둔 베낭을 메고 길을 나선다
갈림봉에서 남쪽으로 내려서니 갑자기 절개지가 나온다
가야할 성봉이 보이고 좌측 아랫쪽은 12폭포로 유명한 무자치골이 보인다
성치산과 성봉 사이에 있는 무자치골은 길이가 2km정도로 무성한 숲과 층암 암벽 사이로
쏟아지는 12개의 크고 작은 폭포가 있으며, 지명의 유래는 무자치뱀이 많아서 붙혀진
지명으로 넓은 암반에 길고 길게 무자치뱀처럼 꼬불꼬불 흘러내리는 와폭(臥瀑)이 있는가하면
패어있는 홈통으로 물이 모아져 내리는 폭포가 있고, 넓은 암곡의 높다란 바위 낭떠러지 위에서
웅장하게 떨어지는 수직폭포도 있다
내리막길에는 로프가 있다
잠시후에 가야할 암릉구간이 보인다
암릉길은 난해하다
급경사의 내리막으로 내려간다
안부(10:08)
며칠전에 비가온 탓인지 암릉사이의 낙엽이 상당히 미끄럽다
조심스럽게 암릉구간으로 올라간다
조금전에 지나온 길을 뒤돌아 본다
628m봉(10:12)
들풀
들풀처럼 살라
마음 가득 바람이 부는
무한 허공의 세상
맨 몸으로 눕고
맨 몸으로 일어서라
함께 있되 홀로 존재하라
과거를 기억하지 말고
미래를 갈망하지 말고
오직 현재에 머물라
언제나 빈 마음으로 남으라
슬픔은 슬픔대로 오게 하고
기쁨은 기쁨대로 가게 하라
그리고는 침묵하라
다만 무언의 언어로
노래 부르라
언제나 들풀처럼
무소유한 영혼으로 남으라
(류시화·시인, 1958-)
오금이 저려올 정도로 급경사의 암릉구간이다
힘들게 암릉구간 아래로 내려간다
안부를 지나고...
무명봉을 지난다
다시 완만한 내리막길
무명봉(10:22)
다시 내리막길로 내려간다
안부(10:25)
오르막...
내리막이 계속되는 완전히 빨래판 구간이다
555.7m봉(10:32)
금산군 남이면 구석리와 진안군 주천면 신양리의 경계에 있는 봉우리인데
누군가가 고무골산이라 적어놨지만 지도에는 555.7m봉으로만 되어있다.
이 봉우리 좌측 아래에 있는 구석리에 고무골이란 골짜기가 있는데 고무골
윗쪽에 있는 산이라해서 고무골산이라고 하는데, 옛날에 곰이 살았다 하여
곰골에서 변하여 고무골이 되었다고 한다
편안한 능선을 따라서 맥길을 걸어간다
고무골산이라 부르는 555.7m봉을 지나서니 묘지를 이장(移葬)듯한 넓은 공터가 나온다
삼면경계봉(540m:10:38)
전북 진안군 주천면 신양리와 용담면 와룡리, 충남 금산군 남이면 구석리와 맞닿는
삼면 경계봉으로 등로 우측은 분기점부터 같이해 온 주천면과 작별하고 용담면으로
面界가 바뀌나 좌측은 금산군 남이면이 계속해서 맥길에 걸쳐있다
정상에는 묘지를 옮긴듯한 넓은 공터가 있고 우측으로는 진안군 용담면 와룡리로
이어지는 뚜렸한 등로가 보이나 지맥길은 좌측으로 이어진다
구조표지판을 지나니...
이곳 역시 묘터같은 넓은 공터가 나온다
580m봉(10:40)
사면의 내리막길로 내려간다
내리막길에서 만난 이정표
대촌고개를 이정표에는 용덕재(광대정) ←11.0km라고 표시해놨다
지맥길로는 용덕재에서 이곳까지 4.5km밖에 안된다
맥 산꾼에게는 전혀 도움이 안되는 이정표이다
안부로 가는 길에서 바라본 성봉의 모습
안부(10:44)
다시 오르막은 시작되고...
암릉구간을 지나서 무명봉으로 올라간다
무명봉을 만나 다시 내리막길
암릉구간을 지나고...
편안한 등로를 따라서 맥길을 이어간다
무명봉(11:02)
지나온 성치산이 보인다
잠시후에 오를 성봉의 모습
갈참나무 군락지를 만나고 우측 사면길이 아닌 직진으로 올라간다
구석리(九石里) 갈림길(11:12)
좌측으로는 구석리와 십이폭포로 가는 무자치골로 내려가는 길이다
십이폭포(十二瀑布)는 충청남도 금산군 남이면 구석리에 있는 폭포로 대둔산·적벽강·신촌송림·
서대산·진악산·국사봉·광석강 등과 함께 금산8경 중의 하나로 가장 큰 폭포는 높이가 약 20m나 되며,
물이 많아 계곡 사이로 퍼지는 웅장한 폭포소리가 장관을 이룬다. 여름철에도 공기가 차고 서늘하여
피서지로 인기가 있을 뿐만 아니라 봄의 진달래숲, 가을의 단풍과 어울려 뛰어난 경치를 이룬다.
금산읍에서 구석리까지 비포장도로로 연결된다
구석리 갈림길에서 안부로 내려간다
안부(11:13)
성봉가는 길 안부에서 좌측을 바라보니 구석리 마을이 보인다
금산군 남이면에 있는 구석리는 풍수지리설에 따른 특별한 명당자리는 없으나 고려 때부터의
구전에 따른 일화로는 국난이 있을 때나 외침이 있을 때 피난처로는 으뜸인 고장으로 전국에
널리 알려졌으나 6.25동란 때에는 그 범위 에서 조금 벗어났었다. 또한 공산군들의 준동지역이었기
때문에 공산군을 토벌할 때 많은 희생도 따랐었다.
조선시대 중종 이후에는 많은 선비와 그 후손들이 정착하기 위해서 몇 번이고 탐색했던 지역으로도 유명하다.
그러나 들이 좁고 산이 깊어서 그 많은 명문들이 소문과는 달리 발길을 돌리지 않았다 한다.
백제때는 진내군 영역, 신라때는 진례군에 속하고, 고려 제 25대 충렬왕 31년(1305)에 승격된 금주에
속하고, 조선 태종 13년(1413)에는 금산군에 속함, 1914년 행정구역 개혁시 전라도 금산군 남이면에 편입,
1963년 1월 1일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충남으로 편입 충청남도 금산군 남이면 구석리가 되었다
조선시대 말기에는 금산군 남이면의 지역으로서 거북 모양의 바위가 있어서 거북바위 또는 구석이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개혁 때에 모티리, 고답리를 병합하여 구석리라 불렀다
원래는 거북바위 마을이라 하여 구석리(龜石里)라고 쓰였으나, 일제시대 일인들이 구(龜)자가 어렵다하여
구(九)자로 배명 되었다고 하며 면적은 15.697㎢이며, 은진송씨(恩津宋氏)의 집성부락이 있으며
김해김씨(金海金氏), 밀양박씨(密陽朴氏)가 많이 세거하며, 자연마을로는 높은논이, 구석, 모티,
원구석, 광대정 마을이 있다
653.5m봉(11:17)
다들 반갑습니다
653.5m봉에서 안부로 내려섰다가 올라서니 성봉에 도착한다
성봉 정상에 있는 이정표
성봉(城峰:648m:11:20)
충남 금산군 남이면 구석리와 남일면 신동리, 전북 진안군 용담면 와룡리의 경계에
있는 산으로 정상에서 정상석과 이정표가 있는 넓은 공간이 있다.
충남과 전북의 도계를 이루며 북쪽으로는 금산군 남이면과 남일면, 남쪽으로는
전북 진안군 용담면과 맞닿아 있는 삼면 경계봉이기도 하며, 좌우로 깍아지른 낭떠러지를
가진 암릉이 이어지며, 기암괴송과 푸른 노송이 어우러진 멋진 산이다
‘성(城)’자가 있어 산성이 있었는지 자료를 찾아보지만 그런 자료는 보이지 않는다
북쪽의 남이면쪽은 무자치골의 수원의 발원을 이루면 12폭포가 있는데 12폭포는 옛부터
시인 문객들이 그 아름다움을 노래했고, 하얀 비단폭은 마치 폭포의 전시장처럼 보이는데
금산팔경중의 하나이다
남쪽인 용담쪽은 석재공장이 많고, 멀리 용담댐이 아련하게 보인다
인증샷
정상에서 약간의 휴식을 취하는데 대전에서 왔다는 산객 7~8명이 정상으로 온다
이 분들에게 부탁하여 인증샷을 남기고 물 한모금을 마시는데 차가운 바람이 불어와
서둘러 길을 떠난다
성봉 정상의 안내판
自慢心이 부른 대형참사
지난 한주동안 무척 바쁘기도 했지만 이제 지맥길을 90개정도를 끝냈고,
나홀로 산행을 오래하다가 보니, 어느 정도 자신감이 생긴것도 사실이다.
예전 같으면 지맥길을 홀로 갈때는 2~3주 전부터 선답자들의 산행기를 수도없이
읽어보고, 지도를 확인하고, 그 지역의 지명과 역사, 지리까지 공부했는데, 지금은
그냥 感으로 가며, 돌아와서 복습을 하면서 산행기를 쓰는 버릇이 생겼다.
‘속된말로 씨건방지다’고나 할까...그 바람에 오늘 대형 사고를 친다
지맥길은 정상석 우측 아래로 내려가야 하는데 난 좌측의 신동봉을 갔다.
그도 그럴것이 이곳 등로는 12폭포로 이어지는 등로인데 대다수의 시그널이
이쪽으로 걸려있고, 맥산꾼들의 시그널도 꽤나많이 걸려있어 아무런 의심을 안했다
공부를 안하고 나선 산행 결과랄까...
내리막길로 내려서니 대전에서 오신분들의 후미조가 올라온다
우측으로는 금산군 남일면 신동저수지가 보인다
안부(11:25)
좌측으로 내려가면 12폭포로 내려가는 길이다
무명봉을 올라 섰다가...
내리막으로 내려서는데 시그널이 주렁주렁 달려있다
등로 서북쪽으로 시야가 열리면서 저 멀리 백암산과 육백고지와 대둔산이 희미하게 보인다
522,1m봉(11:34)
신동봉이 보이고... 띠지들이 많이 걸려있어 아무런 의심도 없이간다
내가 지금 알바하는 줄도 모르고 있다
급경사의 내리막길...비에젖은 낙엽으로 인해 된통한번 꼬꾸라지면서 쳐박히고...
안부(11:37)
구조이정표도 잘 되어 있다.
등산객들의 띠지는 계속 보이고 확인없이 계속간다
제도권 등로라서 그런지 길은 참 좋다
신동봉은 점점 가까워지고...
등로 우측 아래로는 신동저수지와 심천치유자연휴양림이 보인다
똑닥이로 당겨본 대둔산의 모습
무명봉(12:00)
등로는 우측으로 꺽어지고...
안부를 지나서 암릉구간으로 올라간다
암릉구간을 지나서 정상에 올라서니 수많은 시그널이 나부끼는 신동봉 정상에 도착한다
신동봉(伸銅峰:615.9m:12:05)
충남 금산군 남이면 구석리와 남일면 신동리의 경계에 있는 산으로 북동쪽 사면에서
발원하는 신동천이 있으며 지명의 유래는 신동리에서 마을에서 따온 듯 하다
남일면에 있는 신동리는 봉화산 골짜기 안에 위치하고 있는 전형적인 농촌 마을로 북쪽을 제외한
삼면이 산으로 둘러싸여 있으며, 북쪽으로 신동천이 흐르고 있고 자연마을로는 사구시, 새말, 수천 마을 등이 있다.
사구시 마을은 조선시대에 사기를 굽던 사기소가 있었다 해서 붙여진 지명이며, 새말 마을은 마을이
새로 생겼다 해서 이름 붙여지게 되었다. 수천 마을은 마을 한가운데에 약수로 통하는 샘이 있어
사람들이 장수한다 하여 수천 마을이라 불린다.
이곳에서 쥬스 하나를 마시면서 트랙을 확인하는데 ‘테스형! 이게 뭐여’...무심코 시그널만
보면서 베낭속에서 흘러 나오는 노랫소리에 취해 걸어 왔는데 알바라니...
알바라도 그냥 알바가 아닌 소득도 없이 1.6km짜리 대형 알바를 해버렸다
참으로 황당하다.
성봉으로 우측으로 이어지는 저 능선이 지맥길인데...갑자기 다리가 풀리는 느낌이다.
그래도 가야지...누가 대신 걸어줄 것도 아닌데...
愚公移山의 심정으로 부지런히 성봉으로 향한다
다시 성봉으로 되돌아 온다
다시 성봉(12:55)
1시간 35분 걸려 3.2km의 거리를 헛걸음질 한 다음에 성봉으로 되돌아왔다
오늘 날머리를 목사리재로 잡았는데 아무래도 좀 무리일 것 같다
오늘도 산이란 스승에게서 自慢心을 버리고 겸손하라는 가르침을 배운다
다시 성봉에서 제대로 된 지맥길을 나선다
가야할 능선의 모습
성봉에서 급경사로 내려오니 얄미운(?) 고수... 산으로님의 흔적이 보인다
진작에 좀 가르쳐 주시지...ㅋㅋㅋ
능선 좌측으로는 약초재배지가 보인다
바라보이는 신동봉이 무심하게만 느껴진다
안부(13:08)
다시 오르막을 오르는데 돌담같은게 보인다...묘터인지, 성터인지 感이 안온다
무명봉을 지나는데 이제 목사리재까지 가는 걸 포기하니 맘이 편하다
그러다보니 긴장이 풀리는지 졸음과 허기가 몰려온다
바람이 불지않는 곳을 잡아서 점심상을 펼친다
점심시간(13:10~25)
다시 길을 나선다
625.7m봉으로 올라간다
625.7m봉(13:34)
좌측의 급경사로 내려간다
맞은편에는 지맥길에서 살짝 떨어져 있는 봉화산이 보인다
한참을 내려왔다가...
안부를 지나 오르막으로 올라간다
체력이 조금씩 떨어지기 시작한다
무명봉(13:44)
다시 내리막길로 내려갔다가...
무명봉을 지나서 내리막길로 내려간다
가야할 봉화산이 보인다
등로는 참으로 좋다
좌측으로 휘어져 봉화산으로 향한다
조그만 봉우리이지만 계속되는 봉우리를 오르락 내리락 W자형의 빨래판 구간이다
또다시 오르막으로 올라간다
622m봉(14:05)
북쪽으로는 인삼의 고장이라는 금산 읍내와 갑천(식장)지맥 능선이 보인다
금산(錦山)은 인삼으로 유명한 고장이다
금산 인삼은 풍기인삼, 부여인삼과 더불어 전국적으로 유명한 인삼이다.
전국 인삼 생산량의 80%가 거래되는 인삼국제시장과 수삼센터가 있으며, 이 곳의 약초시장은
대구의 약령시장, 서울의 경동한약시장과 더불어 대한민국의 3대 약초시장이다.
금산 북쪽에는 대둔산(878m)이 있는데 산림과 수석이 아름답고, 특히 낙조대에서 보는
일출과 일몰 광경은 장관이다... 금성면 의총리에는 임진왜란 때 순절한 칠백의총이 민족의
얼을 과시한 격전지를 알려주고 있으며, 십이폭포, 적벽강, 보석사 등의 명승 고적이 있다.
648.6m봉으로 오르는 길... 우측 등로를 따라서 봉화산으로 향한다
봉화산 갈림길(14:12)
지맥길에서 0.5km정도 떨어져 있는 봉화산으로 향한다
진안군 용담면 송풍리와 송풍저수지가 보이고 그 너머로 내년쯤에 걸어볼
예정인 무주(덕유)지맥은 미세먼지로 인해 흐릿하기만 하다
폐헬기장(14:13)
예전에 헬기장인듯한 공터에는 키작은 소나무들이 빽빽하게 들어서 있다
이곳에다가 베낭을 벗어놓고 봉화산으로 향한다
봉화산 가는길
백두대간의 덕유산 구간의 능선도 아련하게 보인다
당겨본 용담댐의 모습
용담댐은 전라북도 진안군 용담면 월계리의 금강 상류에 있는 다목적댐으로 하천의 흐름을 막아
생활·공업·농업용수의 공급과 함께 홍수 조절 및 발전 등 다양한 목적으로 활용하는 댐을 말한다.
우리나라의 경우 연도별·지역별 강수량의 편차가 심한데다가 하천은 최대 유량과 최소 유량의
비율 편차가 심해 홍수 때는 물이 너무 많아 피해가 발생하고 갈수 때는 너무 적어 취수에 어려움이
발생하였다.
따라서 홍수 피해를 막음과 동시에 필요한 용수 화보를 위하여 다목적댐을 건설하기 시작하였다.
1960년대 이전에는 농업용수나 수력 발전을 위한 단일 목적댐을 건설했으나 1960년대 소양강댐을
시작으로 1970년대 이후 다목적댐이 본격적으로 건설되었다.
용담댐은 건설 교통부·한국 수자원 공사가 1992년 11월에 착공하여 2001년 11월에 준공하였다.
저수량으로 볼 때 소양강댐·충주댐·대청댐·안동댐에 이어 국내 다섯 번째 규모이다
봉화산가는 길에 용담댐 윗쪽에 지장산이 보인다
지장산(智藏山:773m)은 진안군 안천면 삼락리 및 용담면 송풍리, 무주군 부남면 고창리에 걸쳐 있다.
“1872년지방지도”(용담)에는 지장 마을의 이름만 나오고 지장산은 보이지 않는다. 마을의
뒤에 그려진 산봉우리들을 통해서 지장산을 추정할 수 있다. 향토지에 의하면, 지장산은
활짝 핀 연화가 장막을 친 듯이 은은한 모양의 형상은 마치 보살의 모습과 같고, 줄줄이
연이어진 산봉우리들은 마치 나한들이 나란히 서 있는 듯해서 지명이 유래되었다고 전한다.
지장보살(地藏菩薩)은 부처가 없는 시대 즉, 석가모니불은 이미 입멸하고 미래불인 미륵불은
아직 출현하지 않은 시대에 천상·인간·아수라·아귀·축생·지옥의 중생을 교화하는 보살이다.
우리나라에는 3군데의 지장산이 있는데 저기 보이는 진안군 용담면에 있는 지장산과
포천에 있는 지장산(地藏山:877.2m), 그리고 상주에 지장산(芝庄山:772m)이 있는데
세 군데의 지장산의 모두가 금강과 한탄강, 낙동강을 낀 수려한 경관을 품고있다
봉화산(烽火山:670.6m:14:20)
전라북도 진안군 용담면 옥거리와 충청남도 금산군 남일면 신동리에 걸쳐 있는 산으로
봉수대가 있었던 곳이라는 데서 지명이 유래되었다고 전하나 지금은 봉수 흔적이 남아 있지 않다
선야봉~성치산을 잇는 능선에 있는 산으로 이 능선은 봉화산을 지나 동서 방향으로 뻗어나가는데,
동쪽의 갈마봉~덕기봉으로 이어지며 봉화산 남쪽에는 금강 수계의 하천이 모이는 용담호가 있으며,
봉화산 서쪽 사면에는 송풍 저수지가 있다.
봉화산 동쪽으로는 국도 13호선이 남북 방향으로 지나는데, 국도 13호선을 사이에 두고
갈마봉과 마주보는 모습이며 봉화산 남쪽의 용담호 주변으로 지방도 795호선이 지나고 있다.
용담호와 능선의 발달로로 인해 북·동·남쪽으로는 마을의 형성이 두드러지지 않는 반면 산
서쪽으로는 좁은 평탄 지형이 발달하여 용담면 소재지가 있다
봉화산 정상에 있는 국방부대삼각점
봉화산에서 갈림길로 되돌아와서 648.6m봉으로 올라간다
648.6m봉(14:30)
648.6m봉 정상에 있는 선답자들의 흔적
우측으로 내려간다
작금의 사바세계 중생들은 모든게 비상식적인 삶으로 인해 고통받고 있는데
산만큼만 정상적인 것 같다...힘든 삶을 치유하기 위해선 산만큼 훌륭한 의사도 없다
급경사의 내리막길을 내려가면서 바라본 631.1m봉
대형알바를 했던 신동봉 너머로 마이산과 진악산과 지난해 1구간을 걸었던 갑천(식장)지맥 능선이 보인다
안부로 내려왔다가...
다시 완만한 오르막으로 올라간다
갑천(식장)지맥의 능선...올 겨울에 저곳을 끝낼 수 있을라나?
무명봉(14:45)
우측의 사면길로 내려간다
안부(14:50)
오르막 우측 절개지 능선에 송전탑이 서 있다
송전탑봉(14:52)
가야할 631.1m봉이 보이고 내리막 등로는 아주 좋다
631.1m봉(14:58)
다시 내리막길...길가에 커다란 바위를 만난다
NO17 송전탑(15:00)
620m봉(15:02)
우측으로 내려간다
엄청난 급경사의 내리막길...상당히 미끄럽다
안부(15:10)
잠시후에 오를 530m봉이 보인다
송전탑을 설치하고 복원한 등로에는 소나무들이 식재되어 있다
530m봉(15:18)
우측으로 맥길을 이어간다
송전탑 설치후에 복원공사를 하면서 식재한 소나무숲 사이를 걷는다
우측으로 오늘의 날머리인 솔재에 있는 금산정수장이 보인다
NO19 송전탑(15:25)
소나무 숲사이를 걸어간다
갈림길이 나오고 좌측으로 뚜렸한 임도가 있으나 맥길은 우측으로 이어진다
463.1m봉(15:29)
정상에는 지저분하고 죽어서도 도도함을 잃지않은 고사목 한그루가 정상을 지키고 있다
463.1m봉에서 좌측으로 내려간다
안부로 내려선 다음에...
오늘 등로는 수도없이 오르락 내리락하는 빨래판 구간이다
440m봉(15:36)
능선에는 암릉구간이 있고 산 아래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차갑다
나뭇가지 사이로 솔재 건너편에 있는 갈미봉이 보인다
무명봉 2개를 지나고...
다시 내리막길
잠시후에 오를 433.2m봉이 나뭇가지 사이로 보인다
안부(15:48)
다시 오르막을 오르는데 자꾸만 발걸음이 느려진다
힘들게 433.2m봉으로 올라서니 선답자들의 시그널이 바람에 나부낀다
433.2m봉(15:55)
좌측으로 내려간다
계속되는 내리막길
편안한 등로를 따라서 간다
고도를 계속해서 낮춘다
무명봉(16:00)
맥길은 우측으로 내려가는데 암릉구간이라 상당히 미끄럽다
등로에서 바라본 진안군 용담면쪽의 모습
전북 진안군 용담면(龍潭面)은 삼국시대에 물거현(勿居縣)이라 불리었으며 그 후인 757년
통일신라시대 경덕왕 때 맑을 청(淸), 개천 거(渠) 자를 써 청거현(淸渠縣)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그러나 지금의 금산인 진례현(進禮縣)에 속현(屬縣·지방관이 파견된 군이나 현에 속한 낮은 급의
지방행정 단위)이었다.
지금의 용담(龍潭)이란 명칭은 고려시대 1313년, 충선왕 5년에 비로소 붙여진 것이다.
이때부터 고을의 이름이 붙여지고 현령(縣令·신라 때부터 조선 시대까지 둔, 큰 현(縣)의 으뜸 벼슬.
품계는 종육품이며 신라 때에는 대소의 구별이 없이 각 현에 두었다가, 고려·조선 시대에는 큰 현에만
두었으며, 작은 현에는 감무 또는 현감을 두었다.)을 두게 되었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 따르면 ‘용담의 백성은 소박하고 꾸밈이 적다.’라고 기록되어
있으며, 주기(州記) 또한 ‘땅은 궁벽하고 하늘이 깊으며, 바위는 기이하고 나무는 노후하다.
구름다리가 산에 걸리고 돌길은 시내에 연해 있다. 백성은 드문드문하며, 푸른 절벽이 만 겹으로
겹쳐있다.’라고 되어있다.
또한 용강산(龍岡山)과 마산담(馬山潭)을 소개하고 ‘현(縣)의 동남쪽 두 물이 서로 모이는 사이에
용담이 있어 현명(縣名)으로 취한 것이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그리하여 용강산과 황산 말뫼산
아래에 있는 마산담에서 용 자와 담 자를 따 용담이 된 것이다.
조선 태종 13년(1413년)에는 남원 도호부의 용담현이 되어 현감을 두었으며, 1646년 인조 24년
현감으로 강등되었다. 하지만, 1656년 효종 7년에 현령을 두고 별호를 옥천(玉川)이라 하였다.
용담은 애초에 군내면, 동면, 서면, 남면, 북면 등 5개 면이었는데 1895년 고종 32년에 용담군이 되어
9개면 143리를 관할하였다.
솔재 너머로 보이는 성덕봉과 갈미봉의 모습
벌목을 해서 어지러운 능선이 나오고 좌측으로 내려간다
솔재가 가까워진 모양이다...차량소리가 들리기다
등로에서 바라본 금산정수장의 모습
넓은 공터로 내려선 다음에...
금산정수장 휀스옆을 따라서 솔재로 내려선다
등로에서 바라본 금산군 남일면 신정리(新亭里)의 모습
남일면의 동남쪽에 위치해서 동쪽으로는 전라북도 무주군 부남면과 접하고, 남쪽으로는
진안군 용담면과, 그리고 서쪽으로는 신동리, 음대리와 접하고, 북쪽으로는 덕천리와
경계를 하는 지역에 신정리는 자리한다.
옛날부터 남북으로 통하는 길이 있어서 사람들의 왕래가 많았으며 조선시대에는 길을 안내하는
금남원(錦南院)도 있어서 비록 험준한 지형이지만 부득이 사람의 왕래가 꼭 필요하였던 지역이었다.
지형상 남쪽으로 통하는 고개로는, 전라북도 진안군 용담면 송풍리를 넘어가는 솔티고개가 있으며
이 고개에는 지방도가 반듯하게 놓여있고, 원동에서 전라북도 무주군 부남면 대소리의 목사리로
넘어가는 목사리재가 있는데 이 고개는 조선시대 500년간 큰 길로서 이 지역을 지나는 사람들의
애환과 희비가 숨어있던 고개로 그 일화도 많은 고개다.
솔티부근에서 발원하여 북쪽으로 흐르는 신정천이 흐르면서 작은 들을 조성하고 북쪽에 이르러서는
그 경계지점에서 서남쪽으로 흘러오는 신동천과 합류하여 그 기점에서 차츰 넓은 들을 조성한다.
솔재(松峴:276.1m:16:10)
전북 진안군 용담면 송풍리와 충남 금산군 남일면 신정리를 연결하는 고개로 13번국도가 통과한다
송현 또는 솔치재라고 부르기도 하는 솔재는 과거부터 용담 지역에서 금산 지역을 거쳐 서울 지역으로
가기 위해 이용되었던 고개로 기본적으로 소나무[松]가 있는 고개라는 뜻에서 유래되었다.
좁은 고개라는 솔(摔)도 추정해 볼 수 있는 이름이다.
솔재는 동서 방향인 산 능선을 가로질러 남북으로 이어지는데 남쪽은 진안군 용담면 송풍리
면소재지로 비교적 넓은 들이 펼쳐지며 멀리 용담댐이 보이며 국도 13호선을 따라 방화 마을·문화
마을·중앙 마을·회룡 2마을·옥수 마을이 이어지고, 조금 안쪽에 새마을 마을·노온 마을·회룡 1마을이 자리한다.
솔재 아래에서 시작된 방화천은 송풍리 들의 작은 개울물을 모아 용담댐 바로 아래에서 금강에 합수된다
솔재 도로옆에 있는 수준점
이곳에서 산행을 종료하고 베낭을 정리한다.
오늘 산행은 등로는 지맥길답지 않게 길은 좋으나 생각보다 힘이 들었다.
이름없는 봉우리들이 너무많아 W자형의 오르락 내리락하는 빨래판 구간이
많았고, 자만심으로 인해 대형알바를 하는 바람에 김이 새기도 했다.
알바만 안 했으면 처음 목표로 했던 목사리재까지 갔어야 3구간을 마칠수 있을 터인데
다음구간이 이곳에서 합수점까지 28km정도 남았으니 아무래도 2구간을
더 해야하는 부담을 안게 됐다...다음 구간은 공부 잘하고 와야제
이곳의 교통량은 생각보다 많은 편이라 지나가는 차량들을 상대로 앵벌이(히치)를
시도하는데 10분이상을 시도했지만 사람들이 인정머리가 없는지 아무도 안 태워 준다
금산에서 서울가는 막차가 17시에 있어서 하는 수 없이 금산택시를 호출하여
금산터미널로 향한다
금산발 → 서울행 버스표
솔재에서 택시를 타고 금산터미널에 도착하니 16시 40분
버스표를 예매하고 화장실에서 간단하게 씻은 다음에 버스에 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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