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산행일시: 2020년 11월 29일
☞ 산행날씨: 잔뜩 흐린 날씨에 상당히 추움...간간히 진눈깨비
☞ 산행거리: 15.2km / 7시간 20분 소요
☞ 참석인원: 나홀로 산행
☞ 산행코스: 솔재-475.7m봉-성덕봉-안부-갈미봉-구봉갈림길-구봉-투구봉갈림길
파평윤공 묘-나주임공 묘-목사리재-무명봉-안부-434.2m봉-갈림길
안부-무명봉-무명봉-479.1m봉-NO31송전탑-457.9m봉-460.4m봉
고개-467.9m봉-NO34송전탑-무명봉-두어기재-423m봉-498.2m봉
묘지-안부-490.3m봉-476.9m봉-안부-마하산-덕천리 갈림길-안부
무명봉-527m봉-덕기봉-533m봉(가짜 덕기봉?)-518m봉-활공장
452.7m봉-갈림길-422.9m봉-무명봉-446.1m봉-NO36송전탑
430.6m봉-갓바래고개-임도안부-303.9m봉-관천리 농로-안부
밀양박공 묘-무명봉-안부-서낭고개
☞ 소 재 지: 충남 금산군 남일면, 부리면 / 전북 진안군 용담면 / 무주군 부남면
갑자기 추워진 날씨로 인해 몸뚱아리가 상당히 움추려 든다
거기다가 요즘 코로나 19의 대유행으로 인해 어디 나서기가 겁이난다
그래도 걸어야 하기에 산을 가야하지만 집에서의 감시가 엄청 심하고 눈치도 보여
한참을 망설이다가 이른 새벽에 간단하게 베낭을 챙겨 경부고속터미널로 향하는데
새벽공기가 상당히 차갑다
오늘 산행구간의 지도
서울발 → 금산행 버스표
06시 30분에 40인승 버스에 승객 5명을 태우고 서울을 벗어난 고속버스는 예상보다
조금 빠른 시간에 대전~통영간 고속도로 추부I.C를 빠져나와 추부에서 3명을 내려주고
나와 다른 1명만 금산 터미널로 향한다
금산버스 터미널(08:50)
터미널에서 진안 용담으로 가는 버스는 첫 차가 11시에 있고, 솔재 아래에 있는
신정리가는 버스 시간도 애매하고, 신정리 정류장에 도착한다해도 20분 이상을
도로를 따라서 올라가야 솔재에 도착하기에 참으로 시간 맞추기가 애매하여
지난주에 이용했던 택시를 호출하여 솔재로 행한다
금산터미널에서 택시를 타고 출발하여 25분만에 들머리인 솔재에 도착하니
오늘의 날씨가 맑겠다던 일기예보와는 달리 날씨는 상당히 춥고, 금방이라도
눈, 비가 내릴것만 같은 불안한 느낌이다
금산지방은 여름에는 덥고, 겨울에는 아주 추워 이 지역 사람들은 제2의 시베리아라고 한다.
그 이유는 자세히 모르겠으나 금산읍이 자리잡고 있는 지역이 해발 250m라고 해서
추운 모양이다
흔히들 금산하면 인삼을 연상케 할 정도로 전국 제일의 인삼 산지이다.
금산읍에 전국 최대 규모의 인삼 시장이 형성되어 있어 한창 잘 나갈 때는 전국에서 유통되는
인삼의 70~80%가 금산에서 거래되었고, 2005년 통계에 따르면 금산의 인삼 재배 면적은 전국
인삼 재배 면적의 15%에 달하였다고 한다
금산은 고려시대부터 1963년까지 천 년동안 전라도에 속해있었기 때문에 이 지역은 호남 사투리의 영향이 짙다.
사실 충청남도 남부와 전라북도 북부의 사투리가 방언연속체라서 거의 차이가 없는 편인데, 금산의 경우
오랜 기간 전주의 영향권 아래 있었던지라 전주시 및 무진장 일대와 거의 구분하기 어려운 정도의 억양을
구사하는데 말의 강세가 전북 사투리와 거의 차이가 없고, 일부 억양이 전북과 같다
다만 광주·전남 지역과는 사투리가 매우 달라서, 외지인이 듣기엔 전라도 사투리처럼 들리기는 하지만
광주와는 확연히 구분되는 말을 구사하는데 이는 전라북도 지역도 마찬가지로, 같은 호남 사투리라도
북도와 남도의 차이가 나기 때문에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솔재(松峴:276.1m:09:20)
전북 진안군 용담면 송풍리와 충남 금산군 남일면 신정리를 연결하는 고개로 13번국도가 통과한다
송현 또는 솔치재라고 부르기도 하는 솔재는 과거부터 용담 지역에서 금산 지역을 거쳐 서울 지역으로
가기 위해 이용되었던 고개로 기본적으로 소나무[松]가 있는 고개라는 뜻에서 유래되었다.
좁은 고개라는 솔(摔)도 추정해 볼 수 있는 이름이다.
1주일만 다시온 솔재...이곳 기온은 얼마나 추운지 손가락이 빠지는 느낌이다
기상청의 예보로는 이곳의 오늘 날씨는 맑음이라 했는데 하늘은 잔뜩 찌푸려
마치 보기싫고 미운 시어머니의 얼굴같다...저 구라청의 예보는 언제쯤 제대로
맞출까...저러고도 민초들이 피땀흘려 번돈으로 낸 세금으로 祿俸을 받으면서
미안하지도 않은 모양이다...민간 기업이었으면 진작에 모가지감이다
산행을 시작하다(09:25)
수준점을 지나 올라서니 초반부터 아카시아나무가 태클을 걸어댄다
등로가 보이지 않은 잡목의 숲길을 헤치면서 올라간다
빛바랜 준.희 선생의 흔적도 보인다
갈수록 태산이다
잡풀이 무성한 밭가운데를 가로 질러 올라간다
묵밭에서 뒤돌아 본 금산정수장이 있는 솔재의 모습
묵밭을 지나고 능선으로 올라서는데 초반부터 급경의 오르막이다
몸이 예열도 되기전에 만난 급경사의 오르막길...난 이런곳에선 쥐약이다.
숨이 멈춰버릴것만 같은 통증에 그냥 주저않고 싶은 느낌이다
뚜렸한 등로이나 급경사의 오르막은 계속된다
안티팬이 생겼나?
바닥에 나딩구는 산으로님의 흔적을 보수하고 맥길을 이어간다
등로에서 바라본 금산군 남일면 신정리(新亭里)의 모습
옛날부터 남북으로 통하는 길이 있어서 사람들의 왕래가 많았으며 조선시대에는 길을 안내하는
금남원(錦南院)도 있어서 비록 험준한 지형이지만 부득이 사람의 왕래가 꼭 필요하였던 지역이었다.
계속되는 빡센 오르막
생존경쟁?
초반부터 시작된 빡센 오르막을 지나 능선에 올라선다
1주일전에 지나온 봉화산을 뒤돌아 보고...
완만한 능선을 향한다
475.7m봉(09:50)
솔재에서 이곳까지 700여m를 올라오는데 어찌나 힘이 들었는지 25분이나 걸렸다
지형도상에는 그냥 457.7m봉인데 ‘서울 청산수산악회’란 곳에서는 깃대봉이라 표기를
해놨고, 바닥에는 4등 삼각점이 산꾼 범여를 반긴다.
전국에 수많은 곳에서 참으로 많이 만나는 봉우리가 아마도 깃대봉일 것이다.
얼마전 국립지리원의 산의 지명에 대한 자료를 보니 전국에서 가장 많은 지명은 남산이
101개로 가장많고, 그 다음이 국사봉이 80개로 2번째인데 아마도 깃대봉도, 백운산, 옥녀봉과
함께 모르긴 몰라도 랭킹 5위 안에는 들어갈 듯 싶다
깃대봉은 두 가지 의미를 가지고 있다.
첫 번째는 국가 발전에 공로가 있는 백성에게 나라에서 사패지(賜牌地)를 하사하면
그곳에 깃대를 세워 공적을 기렸다 하여 붙은 이름이고, 두 번째는 일제 강점기에 가장
전망이 좋은 산에 삼각점을 설치하고, 그곳에 빨간 깃대를 꽂아 측량을 하였던 곳이라 하여
붙은 이름인데 일제 강점기를 거치면서 깃대봉이라는 이름이 전국에 우후죽순처럼 생겨났다
475.7m봉 정상 삼각점(△무주 404 / 1983재설)
등로에서 살짝 벗어나 있는 475.7m봉 정상을 찍고 우측 아래로 내려간다
안부를 지나 오르막을 오르니 암릉위에 서 있는 팔각정과 그 너머로 구봉이 보인다
성덕봉 오르면서 바라본 용담댐의 모습
그 뒷쪽으로 금.호남정맥 능선이 보이고 말의 귀처럼 보인다는 마이산 봉우리는
미세먼지로 가려졌다...육안으로는 희미하게 보이나, 똑닥이카메라로는 잘 안보인다
우측 아래로는 천길 낭떠러지이다...어지러울 정도로 아찔함을 느끼며 성덕봉에 오른다.
용담댐은 전라북도 진안군과 무주군 사이에 위치해 있는데, 금강 상류를 막아 건설한 다목적댐이다.
댐의 규모로는 우리나라에서 5번째로 크며, 1992년 11월에 착공되어 장장 10년에 걸친 공사 끝에
2001년 10월에 준공되었으며, 용담이란 용 용(龍)자에 못 담(潭)자의 지명으로 ‘용이 자리를 틀고 있는
깊은 연못’이란 의미를 지닌다
성덕봉(聖德峰:502.5m:09:55)
충남 금산군 남일면 신정리와 전북 진안군 용담면 송풍리의 경계에 있는 산으로
정상에는 멋진 팔각정이 있으나 관리 부실로 인한 것인지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만
느낌이 들 정도로 망가져 있다
지형도상에는 지나온 475.7m봉을 성덕봉이라는 자료도 보이며 지명의 유래는 알 길이 없다.
성덕(聖德)이란 단어를 글자대로 풀이하면 임금의 덕을 높여 부르는 말인데...
성덕봉 정상의 팔각정...겉으로는 멀쩡하다
지붕 상랑보에는 2004년 10월 30일에 상랑했다고 했다고 적혀있다.
금방이라도 무너질 것 같은 느낌이다
성덕봉에 대한 아쉬움을 뒤로하고 갈미봉으로 향한다
용담댐으로 이어지는 능선에 있는 지소산의 모습
지소산(智小山/ 441.6m)은 전라북도 무주군의 부남면 대소리에 있는 산으로 지장산(智藏山)의
지류라는 의미로 보이며, 북쪽에는 금강이 서쪽에서 동쪽으로 흐르며, 진안군 용담면 송풍리와
무주군 부남면 대소리를 연결하는 대송로가 동서를 연결하고 있고, 북쪽에는 무주군 부남면 대소리
도소마을, 동쪽에는 유평마을이 위치해 있다. 지소산은 유평마을과 도소마을에서 접근이 가능하며,
도소마을에는 수령 400년을 넘긴 느티나무와 극락사가 자리하고 있다
성덕봉으로 내려선 다음에 안부로로 떨어진다
안부(09:58)
안부를 지나 능선을 따라서 가니 갈미봉 정상이 나온다
갈미봉(渴味峰:565.5m:10:05)
충남 금산군 남일면 신정리와 전북 진안군 용담면 송풍리, 무주군 부남면 대소리의
경계에 있는 산으로 산의 모양이 마치 갈구리같다하여 붙혀진 지명이라고 하며,
또 다른 뜻은 예전에 남자들이 머리에 쓰는 갓처럼 생겼다고해서 붙혀진 지명이다
이곳부터는 남쪽으로는 분기점부터 같이해 온 진안군과 작별하고 무주군으로 접어든다
완만한 능선으로 따라서 우측으로 향한다
안부를 지나 빡센 오르막으로 향한다
구봉(鉤峰) 갈림길(10:10)
이곳에서 우측으로 50여m정도 떨어져 있는 오늘 산행중에 가장 높은 구봉으로 향한다
구봉(鉤峰:598.9m:10:12)
충남 금산군 남일면 신정리와 전북 진안군 용담면 송풍리, 무주군 부남면 대소리의
경계에 있는 산으로 삼군(三郡) 경계봉인 셈이다...정상에는 준.희 선생의 산패가 걸려있다
영진지도에는 조봉(釣峰)으로 기록이 되어 있는데 아마도 ‘갈고랑이 구(鉤)자’를 ‘낚시 조(釣)자’로
잘못 표기를 한 듯 싶다...정상은 아무 볼품도 없는 산이고, 특징도 없고 지명유래도 알 길이 없다
아쉬운 마음만 가지고 왔던 길로 되돌아 간다
베낭을 벗어놨던 자리로 되돌아와서 베낭을 메고 급경사의 내리막길로 내려간다
내리막길의 낙엽은 상당히 미끄럽다
힘들게 안부 능선으로 내려선다
엉터리 이정표
솔재에서 이곳까지 1.5km조금 넘는데 2.5km라니...
투구봉 갈림길(10:20)
이곳에서 직진하여 좌측으로 가면, 투구봉과 남일면 신정리 원동마을로 이어지는 능선이다
등산화 발목까지 낙엽이 묻힐정도이다
등로 가운데는 관리가 안되어 있는 묘지가 있다
파평윤공평옥지묘(10:22)
계속되는 내리막길
잡풀이 무성한 묘지가 등로 가운데에 있다
등로가 희미하다
우측으로 살짝 꺽어져 내려간다
나주임공&평산신씨 묘(10:35)
묘지로 이어지는 편안한 등로를 따라서 내려서니...
목사리재가 나온다
목사리재(290m:10:40)
충남 금산군 남일면 신정리와 전북 무주군 부남면 대유리의 경계에 있는 고개로
635번 지방도가 지나가며 무주쪽에는 앙증맞은 돌탑 2개와 인삼밭이 보이고
도로가 휘어지며, 남일면쪽은 절개지이다... 신정리와 대유리쪽에도 목사리골이라는
지명이 나오나 지명의 유래는 알 길이 없는데 아마도 공수말 서남쪽에 있는 마을인
목소골(木沙·木所谷)에서 유래된 듯 하며 큰나무가 많아서 붙혀진 지명이라고 하는데
나무와 관련되어 있는 것으로 보이며, 이 지역 사람들은 부남고개라고 부른다.
목사리재...무주군 부남면 대유리쪽의 모습
부남면 북쪽에 위치한 대유리(大柳里)는 같은 행정 구역으로 구획된 대티[大峙] 마을의 ‘대(大)’ 자와
유동 마을의 ‘유(柳)’ 자를 따서 만든 이름이다.
본래 금산군에 속한 곳으로, 1914년 행정 구역 개편 때 무주군 부남면 대유리로 개설하였다.
그 후 행정리를 나눌 때 대티 마을을 대유 1리로 하고 유동 마을과 봉길 마을을 대유 2리로 하였다가
1972년 군 조례 개정 때 옛이름인 대티리와 유동리로 각각 개칭하였으며 대티 마을, 유동 마을, 봉길 마을 등
3개의 자연 마을이 있다.
서쪽에는 구봉(鉤峰)이 있고, 대소리를 거쳐 흘러 내려온 금강이 유동 마을 앞에서 크게 곡류하며
동남쪽으로 흐르다 다시 북쪽으로 돌아가면서 섬처럼 마을을 이루는데, 지형이 마치 봉의 부리와
같이 생겼다고 하여 ‘봉황혈(鳳凰穴)’이라고 한다. 이러한 풍수 지리설에 사람들은 길한 땅으로
여기고 정착하면서 ‘봉길(鳳吉)[봉소]’이라는 지명이 붙었다고 한다. 공수말 동북쪽에 있는 마을로
골짜기가 많은 돼기[두억(斗億)], 공수말 서남쪽에 있는 마을로 큰 나무가 많은 목소골[木沙·木所谷]이 있다
남일면 이정표쪽으로 올라간다
이곳 역시 엄청난 절개지에 급경사인데 칡넝쿨이 산꾼을 괴롭힌다
힘들게 절개지를 올라서니 넓은 임도가 나온다
임도를 버리고 좌측으로 올라서니 키작은 소나무가 또 산꾼을 괴롭힌다
무명봉(10:48)
맥길은 좌측으로 꺽어져 올라가는데 우측으로 자작나무 조림지가 보인다
등로는 상당히 거칠다
먼저 지나가면서 개고생했겠소
안부(10:52)
길은 보이지 않고 고사리가 많이 나오는 곳인 모양이다
그런데 맥길을 이어가는데는 상당히 힘들다
등로에서 바라본 투구봉(兜鍪峰:475.5m) 의 모습
금산군 남일면 신정리와 원동리 경계에 있는 투구봉은 산의 모양이 투구처럼 생긴
바위가 있으므로 투구봉 또는 장군봉이라 한다
이 지역은 예전에 산불이 난 지역인가보다...소나무는 사라지고 잡풀만 무성하다
다시 오르막으로 올라간다
434.2m봉(11:02)
투구봉 너머 저 멀리 보이는 대둔산과 육백고지는 멀게만 느껴진다
잡목을 헤치고 내려가니 희미한 등로가 보인다
동쪽으로는 백하지맥 능선이 보이고 그 너머로는 초강(각호)지맥 능선이 아련하다
갈림길(11:08)
우측으로 이어지는 희미한 등로를 버리고, 좌측 아래로 내려간다
좌측 내리막길로 선답자들의 흔적들이 반갑기만 하다.
낮인데도 불구하고 날씨는 바람이 드세고 점점 추워진다
안부(11:10)
가느다란 소나무가 많은 능선으로 올라간다
계속되는 오르막길
무명봉(11:26)
완만한 내리막의 안부로 내려섰다가...
다시 사면길이 보이는 능선으로 올라서는데 사면길을 버리고 직진한다
무명봉(11:30)
무명봉에서 좌측으로 내려서니 조금전 헤어진 사면길을 따라서 479.1m봉으로 향한다
어차피 합수점까지 가기는 불가능하여 베낭을 벗어놓고 족보가 있는 479.1m봉으로 간다
479.1m봉(11:36)
479.1m봉을 갔다오는데 왕복 300여m의 거리이다
기온은 점점 더 내려가는 느낌이고 힘이든다
베낭을 내려놓고 잠깐동안 휴식을 취한다
다시 길을 나선다
NO31 송전탑(11:38)
NO31 송전탑 아래를 지나 맥길을 이어간다
다시 오르막으로 올라간다
457.9m봉(11:45)
편안한 내리막길로 내려간다
안부를 지나서 다시 오르막길로 올라간다
460.4m봉(11:54)
460.4m봉에서 우측으로 꺽어져 내려가는데 좌측 아래는 벌목지이다
가야할 마하산이 멀게만 느껴진다
가야할 능선의 모습
능선으로 내려가면서 북서쪽을 바라보니 진악산이 보인다
마하산 가는 길은 ⊃형으로 지맥길이 이어진다
묘지를 지나 다시 내리막길
생각보다 낙엽이 상당히 미끄럽다
고개(12:00)
무주군 부남면 대유리에서 금산군 남일면 홍도리로 이어지는 고개인데
예전에 민초들이 넘었던 고개인지 좌.우 모두가 등로가 뚜렸하다
신정리 동북쪽에 있는 마을을 홍도리(紅桃里)라고 부르는데, 마을 앞에는 1914년에
쌓은 홍도제란 뚝이 있고, 마을에는 홍도낙반형(紅桃落盤形)의 명당이 있다는 마을이다.
그래서 옛날에는 마을에 복숭아나무가 많았으며 꽃이 피면 절경이었다 한다.
반남박씨(潘南朴氏)와 남원양씨(南原梁氏)가 많이 세거한다.
다시 능선으로 올라가는데 송전탑을 설치한 후 심은 조그만 소나무들이 보인다
그네 소나무(?)
봉황(성치)지맥은 은근하게 산꾼을 힘들게 한다.
오르막 내리막이 계속되고, 포커페이스처럼 자기 속내를
잘 드러내지 않는 충청도 사람들의 心性처럼 산도 사람을 닮아가는 모양이다
힘들게 능선으로 올라선다
467.9m봉(12:14)
좌측으로 내려간다
송전탑이 보이기 시작한다
NO34 송전탑(12:18)
우측 능선으로 향하는데 묘지가 보인다
무명봉(12:22)
잣나무 군락지가 보인다
내리막 등로 가운데는 관리가 안된 묘지 여러기가 보인다
두어기재로 내려선다
두어기재(斗億峙:12:27)
충남 금산군 남일면 신정리와 전북 무주군 부남면 대유리를 잇는 고개로
양쪽을 잇는 등로는 잘 보이지 않고, 준.희선생의 산패만 보인다
이곳에는 부남면 제7경인 복호폭포(伏虎瀑布)가 있다
다시 능선으로 올라선다
등로는 희미하다
423m봉(12:32)
맥길은 좌측 아래로 내려간다
등로는 잘 보이지 않는다
또다시 좌측으로 내려가는데 아까시아 나무들이 산꾼을 괴롭힌다
우측 아래에는 인삼밭이 보이는데 이곳은 바람을 좀 피할 수 있을 것
같아서 점심밥상을 펼친다
점심식사(12:40~55)
다시 길을 나서는데 인삼밭 너머로 가야할 498.2m봉이 보인다
인삼을 수확하고 방치된 인삼밭을 지나는데 정말 고역이다
아카시아 군락지를 힘들게 지난다
가야할 등로의 궤적
수확을 하셨으면 뒷정리를 좀 해주시지...
도저히 갈 수가 없어서 밭 가장자리로 나간다
이곳의 통과도 그리 만만하지는 않다
힘들게 이곳을 통과하는데 몸뚱아리는 상처투성이다
아! 힘들다
천신만고 끝에 인삼밭을 빠져 나온다
대단하십니다
인삼밭을 빠져 나오니 언제 그랬냐는 듯이 고속도로같은 넓은 임도가 나온다
충청도의 산길은 종 잡을수가 없다
다시 사면으로 이어지는 넓은 임도를 버리고 급경사의 능선으로 올라간다
입에 단내가 날 정도로 빡센 오르막길...낙엽이 엄청 미끄럽다
감사해요!
능선에 올라 가뿐 숨을 내쉰다...눈이 올라나?...날씨가 잔뜩 지뿌렸다
안부를 지나서 정말 힘들게 498.2m봉 정상으로 향한다
498.2m봉(13:35)
좌측으로 내려간다
안부를 지나서 능선으로 올라서니 좌측 아래에 묘지가 보인다
완만한 능선으로 올라가니...
넓은 임도가 나오고 철재 구조물이 보인다
임도를 벗어나 무명봉으로 올라가니 아무것도 없어 우측으로 내려간다
내리막길에 묘지가 나오고 묘지 양 옆으로 망두석(望頭石)이 보이고
우측에 있는 망두석 아래로 내려간다
묘지(13:40)
글씨가 마모되어 판독이 불가능한 상석
다시 등로는 조금씩 거칠어 진다
이내 등로는 좋아지고...종잡을수가 없다
다시 지저분한 잡목지대가 나온다
안부(13:47)
능선으로 올라간다
이런 곳에는 송이가 나올법한데...
좌측으로 이어지는 사면길을 버리고 490.3m봉으로 향한다
490.3m봉(13:57)
조금전에 헤어진 사면길을 다시 만난다
우측의 가당리로 이어지는 넓은 임도를 버리고 좌측 능선으로 올라간다
전라북도 무주군 부남면에 속하는 가당리(柯堂里)는 가정자(柯亭子)의 ‘가’ 자와 평당(平堂)의
‘당’ 자에서 따와 만든 지명이라고 하며, 조선 시대까지 금산군에 속하였으며 1914년 행정 구역
개편 때 가정자와 평당을 묶고 무주군 부남면 가당리로 개설하였다.
그 후 가당 1리와 가당 2리, 가당 3리 등 3개 행정리로 나뉘었다가 1972년 군 조례 개정 때 가정리,
하평당리, 상평당리로 부르게 되었다. 가정 마을, 상평당 마을, 하평당 마을 등 3개의 자연 마을로
이루어져 있다.
부남면의 서북쪽에 위치한 가당리는 북서쪽은 덕기봉(德基峰)을 기점으로 충청남도 금산군과 경계를
이루는 산악 지형이고, 동쪽은 갈선산[582.2m]의 남록이 차지하고 있으며, 가정 마을 동북쪽 갈선봉과
북쪽의 수로봉 사이 지삼치는 금산군의 외각 성이던 지삼치성(芝三峙城) 터로 후백제와 고려가 패권을
다투던 격전장이자 동학 농민군(東學農民軍)의 이동 경로가 된 역사의 현장이기도 하다.
지삼치 아래 가정자에는 조선 시대 제원 찰방에 속하였던 기평원(岐平院)이 있어서 무주와 금산을
왕래하던 관원들의 휴식 공간으로 기능하였고 조선 단종(端宗) 때의 사육신 사건으로 연루되어 아들
현석(玄錫)과 함께 처형당한 백촌(白村). 김문기(金文起)를 모시기 위해 건립한 백촌사(白村祠)가 있다
* 사육신(死六臣)이란 조선전기 단종의 복위를 도모하다가 발각되어 죽은 6명의 관리로 박팽년(朴彭年)·
성삼문(成三問)·이개(李塏)·하위지(河緯地)·유성원(柳誠源)·유응부(兪應孚) 등 여섯 사람을 말한다
완만한 오르막길이지만 낙엽이 상당히 미끄럽다
476.9m봉(14:00)
맥길은 좌측으로 이어진다
가야할 마하산이 나무가지 사이로 보인다
좌측으로 내려간다
안부(14:03)
마하산으로 향하는 오르막길
한구비 꺽어진 다음에...
다시 오르막길을 올라서니 마하산에 도착한다
마하산(馬耳山:558.6m:14:20)
충남 금산군 남일면 덕천리와 상동리, 부리면 불이리와 관천리, 전북 무주군 부남면
가당리에 걸쳐있는 산으로 정상에는 2등 삼각점만 덩그러니 있을 뿐, 전망도 없고
별 특징도 없는 산이다.
지도에는 지명이 없고 그냥 558,6m봉이라고만 표기가 되어 있는데, 마하산 또는 마산(馬山)
이라고 부르면, 이 지역 사람들은 두로봉 또는 삼태봉이라 부르니 이름이 여러가지 산이다.
마하산이란 지명은 산의 형세가 말의 귀처럼 생겼다고 해서 마이산(馬耳山)이라 부르다가
변음이 되어 마하산이 된 듯 하며, 삼태봉이라 함은 산의 형국이 세 개의 줄기로 포근하게
감싸고 있어 붙혀진 지명이고 두로봉은 바로옆에 있는 덕기봉과 관련이 있어 보인다
마하산 정상 2등 삼각점(△이원 26/ 1983 복구)
마하산 정상의 모습
마하산 서북쪽 아래에서 마하산을 바라보면 풍수지리상 와우형(臥牛形:편안히 누워 있는 소의
형상을 하고 있는 혈)에 해당된다고 하는데 그로 인해 마을에서는 그 상봉격인 산제봉을
소의 머리로 보고 예전에는 그 언저리에 있는 산제봉을 대상으로 매년 상달(음력 10월을
1년 중에서 가장 신성한 달로 여겨 속칭 ‘시월 상달’이라 한다)과 정월에 산신제를 지냈다고 한다
정상에 잠깐 서있는데 어찌나 바람이 쎄게 부는지 추워서 손가락이 빠지는 느낌이다.
그런데 갑자기 하늘이 컴컴해지더니 진눈깨비가 내리기에서 서둘러 길을 나선다
맥길은 정상에서 우측으로 90도 꺽어져 내려가야 하는데 너무 급경사라 그냥 직진한다
덕천리(德川里) 갈림길(14:22)
마하산에서 100m정도 직진을 하니 덕천리로 내려가는 뚜렸한 길이 보이고
우측으로 ↗내려가는 사면길이 보이는데 선답자들도 이쪽으로 갔는지
시그널도 보인다...진눈깨비로 인해 낙엽에 미끄러지면 내만 손해지...
금산군 남일면에 속해있는 덕천리는 평지가 대부분의 지대를 이루고 있는 전형적인 농촌 마을이다.
마을 동쪽에는 황기봉이 솟아 있으며, 서쪽으로 하천이 흐르고 있으며 자연마을로는 평대, 덕천,
월평 마을 등이 있는데 평대 마을은 벌대부들의 한쪽을 차지한 곳에 마을이 있어 붙여진 지명이며,
덕천 마을은 산과 냇물이 조화를 이루어 덕망 있는 사람이 많이 배출된다 해서 덕천 마을이라 불린다.
월평 마을은 옥토망월형(玉兎望月形)의 명당이 있다 해서 이름 붙여지게 되었다.
사면길에서 만난 선답자의 흔적
사면길을 내려와 좌측으로 꺽어지면서 편안한 등로를 따라서 간다
안부(14:26)
오르막으로 올라간다
무명봉(14:32)
무명봉을 내려서서 안부에서 다시 오르막으로 향한다
527m봉(14:35)
지나온 마하산을 뒤돌아 본다...멀리서 보니 봉우리가 말의 귀처럼 보인다
산 아래서 바라보면 덕기봉과 마하산이 말의 귀처럼 보인다고 하는데
다른 자료를 보면 마하산을 덕기봉 또는 두로봉이라는 기록도 있다
무명봉을 내려서서...
안부에서...
오르막으로 올라간다
능선을 따라서 가니...덕기봉이 나온다
덕기봉(德基峰:542m:14:43)
충남 금산군 남일면 덕천리와 부리면 관천리, 전북 무주군 부남면 가당리 경계에
있는 산으로 지명의 유래는 옛날부터 신령스러운 산으로 알려져 공(功)을 들이면
덕(德)을 본다고 해서 덕기봉이라 부른다고 한다
1751년 발간된 이중환이 저술한 인문지리지 택리지(擇里志)에는 조계산(釣溪山)으로 부르는데
이렇게 비정되는 이유는 덕기봉 정상에서 봉황천으로 길게 내려 있어 마치 낚시대처럼 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덕기봉을 이루는 골짜기에 어옹수조(漁翁垂釣)라는 혈처(穴處)가 있어 마을에서 '어옹실' 또는
소징이라 부르며, 마을에 전하는 산 이름을 보면 덕기봉 정상을 투리봉이란 부르는데
투리봉(投餌峰)은 먹이를 던지는 산으로 역시 낚시대를 강가로 드리우는 산으로 해석할 수 있고
또한 어당산이라고 부르고 있어 고기를 잡는 산으로 해석할 수 있어 시냇가에 낚시를 한다는
조계산으로 비정할 수 있다.
덕기봉에서 좌측으로 꺽어진다
봉분이 잘보이지 않는 묘지위로 올라간다
묘지 우측으로는 노고재-수로봉-지삼치-갈선봉-베틀봉으로 이어지는 능선이다
533m봉(14:46)
지도상에는 이곳을 덕기봉이라고 한다
나무에 걸려있는 산패를 누군가가 깨트려버렸다
이곳부터 우측은 무주군 부남면에서 금산군 부리면으로 면계가 바뀌고
좌측은 금산군 남일면이니 좌.우가 온전히 금산군으로 접어든 셈이다
맥길은 우측으로 이어진다
518m봉(14:48)
내리막길은 낙엽으로 인해 상당히 미끄럽다
안부에 내려서니 바로앞에 활공장이 보인다
활공장(14:55)
동쪽으로 펼처져 있는 백하지맥 능선...내년쯤에 걸어볼 계획이다
뒤돌아 본 덕기봉의 모습
봉황천이 흐르는 남일면 들녘너머로 마이산, 성수산, 구봉산,
운장산,명도봉, 명덕봉은 미세먼지로 인해 흐릿하기만 하다
바로앞에는 봉황천이 보이고 그 뒷쪽으로는 금산읍을 외호하고 있는
금산의 진산인 진악산과 좌측에 있는 마이산도 뚜렸하다
진악산(進樂山:732m)은 금산읍 시내에서 남서쪽을 가로 막고 솟아 있으며 서대산, 계룡산,
오서산에 이어 충청남도에서 네 번째로 높은 산으로 주능선에 기암괴봉이 많고 숲이 무성하다.
산자락에는 고찰 영천암과 영천약수·보석사·선공암·원효암·봉화대·관음암·관음굴·원효폭포 등
명소가 많고, 보석사 입구에는 전나무 숲과 수령 약 1000년의 은행나무(천연기념물 365)가 있다.
남이면에는 인삼시장이 서고, 금성면에는 칠백의총(사적 105)이 있다
일설에는 "진악이란 명칭이 즐거움이 크게 일어나는 산이라 하여 붙여진 지명이라고 하는데,
옛날 홍수가 났을 때 이 산만 지네만큼 남았다 하여 진악산이 되었다."는 전설도 전해진다.
산에는 관음봉 · 문필봉 · 노적봉 · 물금봉 등 여러 봉우리가 있는데, 그중에서 관음봉은 강처사가
관음굴에서 어머니 병환을 낫게 해달라고 간절히 기도하여 산신령의 계시로 인삼을 얻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신증동국여지승람』(금산)에 "서대산은 북방을 진수하고 진악산은 남방을 가리었다."고 하고,
동일 문헌에 "진악산은 군의 남쪽 7리에 있다. 동쪽 봉우리 아래에 석혈(石穴)이 있는데 서너 걸음
들어가면 물소리가 요란하여 깊이를 알 수가 없다. 전하는 말로는 용이 사는 곳이라고 하는데
날이 가물 때 호랑이 머리를 집어넣으면 감응이 있다고 한다."고 하여 관련 기록을 확인할 수 있다
서북쪽으로는 진안의 마이산과 성수산은 희미하기만 하다
바로 아래에는 남일면 들녘을 적시면서 흐르고 있는 봉황천이 여유롭기만 하다
수계(水界)를 기준으로 하는 대한산경표에서는 내가 걷고있는 이 길을 봉황천의 좌측
산줄기라 하여 봉황지맥이라 부르고 있다.
봉황천(鳳凰川)은 금산군 남이면 역평리 가오리골에서 발원하여 남일면, 부리면을 지나
제원면 대산리에서 금강으로 합류하는 지방하천으로 금강 수계의 지방하천으로 금강의 제 1지류이다.
하천의 수계는 본류인 봉황천과 지류인 조정천, 기사천, 금산천, 관천, 보석천, 신정천, 궁동천, 역평천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하천연장은 23.15㎞, 유로연장 31.21㎞, 유역면적 247.32㎢이다.
하천의 지형은 서고동저 형상을 보이고 있으며, 하천변으로 농경지가 형성되어 있다.
하천은 나뭇가지 모양으로 여러 개의 지류가 뻗어 광대한 침식분지를 형성하여 금산의 3대
곡창지대인 제원분지와 금성분지를 이루고 있다.
조선 시대 지리지나 지도에서는 신천(新川)으로 기록되어 왔는데, 『여지도서』(금산)에 "신천은
군 동쪽 8리에 있다."고 하여 관련 기록이 처음 등장한다. 첨부된 지도에는 신천 상류를
금천(金川, 쇠내)으로 표시하고 있는데, 현재 남이면 상금리와 하금리 지역을 흐르는 봉황천
상류 하천의 다른 이름으로 보인다. 봉황천이라는 이름은 봉황새가 많이 날아드는 하천이라 하여
후에 붙여진 이름이라고 하는데, 봉황교에서 관련 지명이 엿보인다.
가야할 능선을 바라본다
활공장에서 바라본 금산(錦山)의 산그리메
금산군은 백제시대에는 진내군 또는 진내을군이라 했는데,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후 경덕왕 때
진예군이라 고쳤으며 고려초에 진예현으로 하였다가1305년(고려 충렬왕 31년)에 금주군으로
승격시키고, 부리현, 청거, 무풍현, 진동현의 5현을 소속시켜 지금주사를 두어 다스리게 하였다.
1413년(조선 태종 13년) 금주군(錦州郡)을 금산군으로 개칭하였다.
현재의 진산면 일대는 백제시대 진동현이었고,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후 황산군의 속현이었다.
고려 초 옥계부로 고쳤다가 1305년(고려 충열왕 31년) 금주군에 소속시켰으며 1390년에 다시
고산현의 속현으로 한 것 조선에 와서1393년(태조2년) 만인산에 태조의 태(胎)를 모신 후 진주군으로
승격시키고 지진주사(知珍州事)를 두어 다스리게 하였다. 1413년(조선 태종 13년) 진산군(珍山郡)으로
개칭하였고 1914년 일제에 의해 진산군이 금산군에 병합됐으며, 1962년까지 전라북도 지역이었으나
1963년 충청남도로 이관되었다.
한마리 새가 되어...
활공장에 좀 머물다가 다시 길을 나선다
춥지 않을까?
시멘트 도로를 따라서 간다
활공장으로 이어지는 도로를 따라서 가는데 충남에서 가장 높다는
서대산(904.1m)가 보이고 대전~통영간 고속도로도 보인다
452.7m봉(15:03)
도로위에 있는 452.7m봉은 눈팅이하고 그냥 도로를 따라서 간다
불이리(不二里) 갈림길(15:07)
금산군 부리면에 있는 불이리는 구릉성 지대와 평지로 이루어져 있는 전형적인 농촌 마을이다.
마을 북쪽으로 신원천이 흐르고 있으며, 이 하천이 끊어졌다가 다시 불이천을 이루며 흘러가고 있다.
신원천 주변에는 부아지들이, 불이천 주변에는 배정가울들이 넓게 펼쳐져 있으며 마을 남쪽에는
가지골, 승지골, 큰가지골 등이 분포해 있다.
고려시대에는 부리현에서 가장 벼가 잘 익어서 부를 누린다는 의미의 '부화'라고 불리었으나,
조선시대 야은 길재 선생의 불사이군(不事二君)의 업적을 기리며 '불이동'으로 지명을 바꾸었다.
1914년 이정리와 병합되며 불이리로 이름 붙여졌다.
능선으로 올라간다
능선에 올라 살짝 좌측으로 꺽어진다
422.9m봉(15:20)
내리막길로 내려선 다음 안부에서...
좌측의 사면길을 버리고 직진의 능선으로 올라간다
무명봉(15:24)
우측으로 내려가니 넓은 임도가 나온다
맥길은 고속도로이다
446.1m봉으로 올라간다
446.1m봉(15:33)
우측으로 내려간다
억새밭을 지나니 송전탑이 나온다
NO36 송전탑(15:35)
송전탑을 지나니 넓은 임도가 나온다
430.6m봉(15:37)
430.6m봉 정상 삼각점(△이원452/1980재설)
430.6m봉 정상에서 우측으로 내려간다
희미한 등로를 따라서 내리막길로 내려간다
안부를 내려선 다음에...
또다시 내리막길
등로 좌측으로는 다음구간에 걸어야 할 봉황(성치)지맥 능선이 보이고 대전~통영간
고속도로 그 너머로는 백하지맥과 천태산 줄기가 보인다
벌목지가 시원하게 보이고 내려서야 할 갓바래고개가 시야에 들어온다
예전에 불이난 지역인지 잡목의 저항이 엄청나게 심하다
갓바래고개(15:52)
충남 금산군 부리면 관천리 갓바래 마을과 불이리 배정이 마을을 잇는 고개이다
우측의 불이리쪽은 목장인듯한 큰 농장이 있고 넓은 공터가 있다
지명의 유래는 좌측의 갓바래 마을에서 따온 듯 하며 조선시대 초기부터 갓바래 또는 비파리라고
불러오다가 1914년 경에 관천 마을이라 개칭되었다. 마을 뒷산에 갓처럼 생긴 바위가 있으며
마을 중앙으로 작은 냇물이 흐른다 해서 붙여진 지명이다.
갓바래고개 공터를 지나서 올라간다
벌목을 하고 소나무 13.500본을 심어놨다
갓바래 마을로 이어지는 도로의 모습
벌목지 가운데 임도로 올라간다
해질녘 그리움의 시 / 안경애
가을비라도 내리면
한 잎 낙엽이 될지라도
그마저 황홀한 듯
사랑한다는 말
외롭다는 말
붉게만 타오르다
세월 흘러도
내 가슴으로 쏟아지는
그리고 그립다는 말
슬픈 눈물비
붉은 사연 뜨겁게 타들면
훠이 그대 곁으로 날아가
형용할 수 없는
그래서
더 아름다워 심장이 두근거린다
벌목지 능선으로 올라간다
조금전에 지나온 봉우리를 한번 뒤돌아 한다
임도 안부(15:58)
북쪽으로는 지나온 덕기봉이 보인다
303.9m봉(16:00)
303.9m봉에 올라가서 잡풀이 무성한 임도에서 좌측으로 꺽어져 내려간다
백하지맥 능선을 한번 당겨본다
내리막길로 내려서니 등로는 소나무숲 가운데로 이어진다
안부(16:05)
다시 내리막길로 향한다
이 쉬끼들 엄청 열심히 운동하는구먼...
차양막이 처져있는 능선 우측으로 내려간다
차양막을 월담하여 맥길을 이어간다
잡목을 헤치며 밭으로 내려간다
조금전에 내가 걸어온 길을 뒤돌아 본다
가야할 등로의 궤적
지나온 내 발자국
밭 언덕의 잡풀을 헤치고...
시멘트 농로로 내려간다
관천리 농로(16:21)
금산군 부리면에 있는 관천리(冠川里)는 마을 뒷산인 당산 모양이 마치 남자들이 머리에 쓰던
갓(관)처럼 생겼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 하는데, 이와 관련해 흥미로운 일화가 전해진다.
이야기인즉 "예전에 누군가 당산 날망을 개간하여 밭을 일구었는데 이후 마을에서는 까닭 없이
남정네들이 죽어 나갔는데 하루는 스님 한 분이 마을을 지나다가 이르기를 '당산 날망을 파헤쳤기
때문에 수절하는 여인네가 많은 것이니 밭을 경작하지 말라'고 일러주었다.
갓은 남자에 해당하기 때문에 그곳을 일구어 농사를 짓는 것은 곧 남자의 머리를 건드리는 것이
되므로 남자들이 일찍 죽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 후로는 절대 당산 자락에서 밭을 경작하지 못하게 했다."는 것이다.
밭두둑을 지나고...
다시 숲속으로 향한다
무명 묘지를 지나고...
잡목을 헤치며 능선으로 올라간다
안부(16:28)
희미한 임도를 따라서 좌측으로 맥길을 이어간다
산딸기나무 군락지...빠져나갈 틈이 안보인다
도저히 갈 자신이 없어서 좌측으로 돌아간다
밀양박공 묘(16:30)
무명봉(16:31)
이곳에서 아침에 타고왔던 금산택시를 호출한다
등로는 뚜렸하다
안부(16:37)
능선으로 올라서니...
무명묘지가 보이고...
서낭고개로 내려서는데...
등로 좌측에 이동통신탑이 보인다
서낭고개(16:40)
금산군 부리면 관천리와 불이리 경계에 있는 고개로 37번 국도가 지나간다
예전에 서낭당이 있어서 서낭고개라 불리워졌는지는 모르겠으나 지금은
서낭당의 흔적은 보이지 않고 서낭당에 있었던 나무인가 도로옆에 커다란
느티나무 한 그루만 고개를 지키고 있다
금산읍내에서 10분도 채 안 걸리는 거리인데도 호출한 택시는 보이지도 않는다
택시기사에게 전화를 하니 엉뚱한 곳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다
잠시후에 택시기사가 도착하여 금산으로 향하는데 터미널 입구에 도착하니
금산에서 서울로 가는 막차(17:00)가 터미널을 빠져 나가고 있는게 아닌가
1분 차이로 서울가는 버스를 놓쳐 버리니 갑자기 다리에 힘이 쭉 빠진다.
금산에서 서울가는 버스는 예전에는 하루에 8차례 있었는데 코로나19의 영향으로
지금은 하루에 4번밖에 다니지 않는다
17시 20분 금산발 → 대전행 버스표
하는 수 없이 대전가는 버스표를 예매하고 화장실가서 간단하게 씻고 옷을 갈아입은
다음에 대전가는 버스에 오른다...버스는 추부, 마전을 거쳐 대전복합터미널에 도착하니
18시 10분이다
대전발 →서울행 버스표
대전터미널에 도착하자마자 18시 20분에 서울가는 버스가 있어서
곧바로 버스에 올라 집으로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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