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산행일시: 2021년 02월 13일
☞ 산행날씨: 맑은 날씨에 봄날씨같은 따뜻하나 미세먼지 심함
☞ 산행거리: 10.7km+날머리 1.4km / 6시간 10분 소요
☞ 참석인원: 나홀로 산행
☞ 산행코스: 민재-NO222 송전탑-471.0m봉-487.3m봉-안부-서대산갈림봉-안부-502.8m봉
창원황공 가족묘-임도-429.5m봉-안부-산불감시초소-방화봉-갈림길-비들목재
안부-무명봉-안부-무명봉-국사봉-안부-615.3m봉-안부-조망바위-무명봉-655.4m봉
무명묘지-안부-460m봉-526.2m봉-무명봉-신안고개
☞ 소 재 지: 충남 금산군 추부면, 군북면. 제원면
지난주(2월 7일)에 날씨도 엄청 추웠고 사무실에 밀린 업무가 좀 많아서 산에 가질 못했더니만
신체 리듬이 깨졌는지 한주동안 엄청나게 힘이 들었다...이젠 내 몸뚱아리는 산행에 셋팅된 느낌이다
명절이라 설날 아침에 절에서 조상님 차례를 지내고 집에와서 조금 쉬려고하니 딸 내외가
새배오는 바람에 쉬지도 못했는데 손아래 동서들이 찾아오겠다는 걸, 코로나 핑계대고 오지말라고
하고는 약간의 휴식을 취한 다음에 이른 시간에 잠자리에서 들었다가 새벽에 일어나서
베낭을 간단하게 챙긴 다음에 도둑고양이처럼 집을 나와서 고속터미널로 향한다
오늘 산행구간의 지도
서울 경부 → 금산행 버스표
지난 1월 첫주에 서화(장령)지맥 1구간을 끝내고 한달반만에 2구간을 가기위해 터미널에 도착하니
명절임에도 불구하고 코로나의 영향인지는 몰라도 고속터미널은 적막강산같은 느낌이 들 정도이다
조금 이른 시간이라 버스표를 예매하고 김밥한줄로 아침을 해결한 다음 금산가는 버스에 오른다.
오늘 금산가는 버스는 45인승 버스에 승객이라고는 달랑 2명이다.
젊은 학생과 나뿐...기사분에게 마전(추부)에서 하차할 거라고 얘기하고는 깊은 잠에 빠진다
금산행 버스는 마전에서 하차하는 승객이 없으면 마전을 들리지 않고 그냥 금산으로 가버리기에
미리 얘기를 해야한다...금산행 버스는 경부고속도로 옥산 휴게소에 들려서 15분을 쉬었다 가는데
오늘 기사분은 휴게소를 들리지 않고 논스톱으로 간다고 하는데 나야 조금이라도 일찍가면 고맙제
마전 정류장(08:20)
서울에서 금산으로 가는 버스는 버스매표소가 아닌 500여m 아래 지점에서 내려주고
금산으로 가기에 이곳에서 내려 귀경버스표를 미리 예매하기 위해서 정류장으로 향한다
이곳을 몇번이나 와봤지만 서울로 올라가는 버스표는 항상 매진이라 미리 17시 버스표를
미리 예매한 다음에 조금전에 내렸던 군내버스 정류장과 택시 승강장 있는 곳으로 향한다.
그곳에서 택시를 타려고 하는데 바로옆 군내버스 한대가 시동을 걸고 출발하려고 하는게 아닌가.
혹 서대리쪽으로 가는 버스인가요 하고 물었더니 맞다고 하기에 얼른 버스에 오른다
08시 30분에서 출발하는 버스는 손님이 나혼자라 그런지 무조건 달리기만 한다
이 버스는 마전(추부)을 출발하여 서대리를 지나 금산군 군북면 두두리쪽으로 가는 버스다.
손님이라고는 나혼자 뿐이다...버스는 서대리에서 서고 민재를 넘어가는데 서대리에서
내리면 민재까지 한참을 걸어올라 가야하기에 사정을 얘기하니 원래는 안세워 주는데
하면서 민재에서 나를 내려주고는 두두리 방향으로 가버린다
생각보다 훨씬 빠른 시간에 민재에 도착한다
민재(08:50)
금산군 추부면 서대리와 군북면 조정리의 경계에 있는 고개로 601번 지방도로가 통과하며
대전이라는 대도시 주변에 있어서 그런지 주위에는 공장들이 많이 보인다
세진(世塵)을 씻는 고개로 유명하며 조선시대 포악한 포리들도 이 부근에서는
발길을 돌렸다는 신성지가 바로 서대리 부근이다.
산행을 시작하다(08:55)
원 지맥길은 종이 포장재와 쌀포대를 제조하는 ‘금풍’이라는 회사 마당으로 이어지나
공장안으로 들어갈 수가 없어서 민재 정상에서 서대리쪽으로 좀 내려간다
보령석재 표시석이 보이는 곳에서 도로 우측으로 향한다
금풍공장 옹벽이 나오고 선답자들의 흔적이 보인다
옹벽을 따라서 가다가...
좌측 능선으로 올라간다
스텐레스 팻말이 있는 묘지위로 올라간다
초반부터 빡센 오르막이 시작된다...오늘은 봄날씨 못지않고 따뜻하여 땀깨나 흘린다.
근데 뭔가 허전하다...그러고보니 모자와 수건, 헤어밴드를 안가지고 왔다.
이젠 자꾸만 한가지씩을 빼먹고 다니는구나...나이를 먹었다는 증거인가?
빡센 오르막 이후 잠깐동안 편안한 능선을 이어간다
안부를 지나서...
다시 빡센 오르막이 시작된다
NO222 송전탑(09:10)
빛바랜 레전더 선답자의 흔적들이 존경스럽게 보인다
계속되는 오르막길...초반부터 고행길이 시작된다
등로 우측에는 조망바위가 보인다
471.0m봉(09:20)
471.0m봉에서 완만한 내리막길로 내려간다
초반의 개고생을 보상이라도 받는듯 편안하게 등로를 걷는다
나뭇가지 사이로 충남에서 가장높은 서대산이 보이기 시작한다
능선을 지나고...
완만한 오르막이 시작된다.
암릉구간이 시작되고...
암봉을 지나...
다시 오르막이 시작된다
암릉구간을 올라서니...
좌측의 서대리 오상저수지에서 올라오는 등로와 합류한다
487.3m봉(09:40)
좌측으로는 금산군 추부면 서대리 수통골로 내려가는 희미한 등로가 보인다
금산군 추부면 서대리에 있는 수통골은 서대산 아래에 있는 마을이 있으며 동석리 북쪽에 있는
마을로 마을 앞에서 서대산쪽을 바라보면 닭의 벼슬 모양을 닮았다는 닭벼슬바위가 있으며
탑제를 지내는 탑 앞 개울 위로 둥글게 자리잡은 마을로 뒷산의 모양이 수통과 같다 해서
수통골(水通谷) 또는 수통곡이라고 부른다. 수통골 남쪽에 수통제가 부르는 못이 있다.
김해김씨(金海金氏)와 경주이씨(慶州李氏)가 많이 세거하는 마을이다.
다시 내리막길
안부(09:41)
다시 오르막이 시작된다
좌측으로 보이는 서대산을 바라보면서...
빡센 오르막으로 올라간다
능선에 올라선 다음에 맥길은 살짝 좌측으로 꺽어진다
김양호 부시장님은 언제 지나가셨나?
서대산 갈림봉(560m:09:53)
평평한 능선이 나오고 좌측(북쪽)은 서대산으로 이어지는 능선이고 맥길은 우측(남쪽)으로 이어진다
이곳 서대산분기점에서 정상까지는 1km정도 걸리기에 나에게는 언감생심이다.
여기부터는 행정구역이 금산군 추부면을 벗어나 좌.우가 온전히 금산군 군북면으로 접어든다
서대산쪽을 바라보며 입맛만 다시고 남쪽으로 맥길을 이어간다
능선 끄트머리에서...
좌측으로 내려서는데 등로에 쌓인 낙엽이 상당히 미끄럽다
오늘도 미세먼지가 상당히 심하다...언제쯤 확트인 시야를 볼 수 있으려나?
급경사의 내리막길로 내려서서 편안한 등로를 따라서 걷는다
무명봉에서...
맥길은 살짝 좌측으로 꺽어진다
등로는 생각보다 뚜렸하다
안부(10:05)
맥길에서 바라본 서대산의 모습
충청남도 금산군의 추부면 서대리와 군북면 보광리 경계에 있는 산으로『신증동국여지승람』(금산)에
"서대산은 군 북쪽 35리에 있다."고 하고, 동일 문헌에 "서대산은 북방을 진수하고 진악산(進樂山)은
남방을 가리었다."고 하여 관련 기록을 확인할 수 있다.
이것은 서대산이 금산군의 북쪽 경계이자 방어벽으로 인식되었음을 짐작케 한다.
서대라는 명칭은 먼저 산의 서쪽 기슭에 신라 문성왕 때 무양국사가 창건했다고 하는 서대사(西臺寺)가
있었던 것에서 유래했다고 하며 『신증동국여지승람』(진산)에 "서대사는 서대산에 있다.
옛날에는 상 · 중 · 하 세 개의 서대가 있었는데 중서대사(中西臺寺)는 지금 없어졌다."고 하여 관련
기록을 확인할 수 있으며, 일설에는 서쪽으로 커다란 누대처럼 산이 우뚝 솟아 있어 붙여진 이름이라고도
하고, 또 산의 형상이 세 개의 큰 덩어리로 이루어져 있어 불리게 되었다고도 한다.
산의 서쪽 사면 중턱에는 원흥사(元興寺)와 개덕사(開德寺) 등이 있으며,
용바위 · 신선바위 · 장군바위 · 마당바위 · 노적봉 · 탄금대 · 서대폭포 등 기암 절경이 수없이 많다.
서대산(西臺山:905.3m)은 충청남도의 최고봉으로 옥천에서 서남쪽으로 직선거리 10km 지점에 있으며,
남서쪽의 대둔산(大屯山:878m), 남쪽의 국사봉(國師峰:668m)과 함께 동쪽은 충청북도, 남쪽은 전라북도와의
경계를 이루며 또한 동북∼남서 방향으로 뻗어 있어 면의 경계를 이룬다. 주위에 방화봉·장룡산 등이 있다.
산마루는 비교적 급경사이며 남쪽으로 갈수록 점차 완만하며 서쪽 사면은 넓고 경사가 완만하며 이곳에서
흐르는 계류들이 서대천(西臺川)을 만든다. 동쪽도 완만한 사면이 발달해 있는데 이들 100∼400m 사이의
완만한 사면은 한반도 중부 이남에 발달한 사면 지형의 하나로, 금산인삼 재배에 이용된다.
서쪽 기슭의 추부면 요광리에는 행정은행나무(천연기념물 84)가 있다.
정상 바로 아래에 있는 옥녀탄금대에는 샘이 있는데, 이 영수(靈水)를 7번 이상 마시면 아름다운 미녀가 되어
혼인길이 열리고 첫아들을 낳는다는 전설이 있으며, 정상에서 북쪽 546봉으로 이어지는 능선 주변에는
장면대·북두칠성바위·사자굴·쌀바위 등이 산재해 있다. 협곡을 가로질러 높게 설치된 약 50m의 구름다리 주변은
기암절벽들이 어울려 장관을 이룬다. 구름다리에서는 다리 밑 계곡으로 내려가는 길과 능선으로 내려가는
길이 있는데, 다리 밑으로 내려가서 유원지 쪽으로 가는 길이 경관이 좋다. 서쪽 사면 중턱에는 원흥사(元興寺)·
개덕사(開德寺) 등이 있으며, 서쪽산 기슭에는 신라 문성왕(제46대) 때 무양국사가 창건하였다는 서대사(西臺寺)가
있었다고 한다.
옛날 서대사에서 출판하였던 《화엄경》이 국내의 여러 절에 있는 것으로 보아 서대사는 규모가 크고 불사도
활발하였던 사찰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이 산의 이름은 서대사에서 유래한다. 전체적으로 산세가
온후하면서도 웅장하고 경치가 좋으며 용바위·신선바위·장군바위·마당바위·노적봉·서대폭포 등의 관광자원이
산재해 있고, 화강암으로 이루어진 산꼭대기에서는 대전 시가와 옥천·금산 일대가 시원하게 내려다보여
주요관광지로 꼽힌다. 또한 산세가 원뿔형이며 암산(巖山)으로 이루어져 있어 암벽등반을 즐기는 산악인들이
많이 찾으며 산림청이 선정한 100대 명산중의 한곳이다
502.8m봉(10:08)
살짝 좌측으로 꺽어져 급경사로 내려간다
능선 아래로 내려서니 평평한 등로가 나오고 다시 오르막길로 올라간다
좌북쪽으로 서대산이 계속 보인다
능선 끄트머리에서 다시 내리막길로 내려간다
오늘 걸어야 할 국사봉이 흐릿하게 다가오는데 내리막길로 내려서니...
잘 관리된 묘지가 보인다
창원황공 가족묘(10:18)
묘지 좌측으로 내려서니 안부가 나오고...
안부에서 완만한 오르막으로 올라간다
능선에 올라서니 벌목지가 나오고 시야가 확 열린다
등로에서 바라본 금산군 군북면 보광리(普光里)의 모습
금산군 군북면에 있는 보광리는 서대산 끝자락에 위치하고 있는 전형적인 산촌 마을로
비교적 낮고 평평한 지대로 이루어져 있으며, 서쪽에서 동쪽으로 갈수록 고도가 낮아지는 지형이다.
마을 동쪽으로 하천이 흘러가고 있으며, 그 주위에서 농사가 이루어지고 있는데 자연마을로는
보광마을 등이 있으며 보광 마을은 보광사가 있다 해서 붙여진 지명이다.
우측의 벌목지 능선으로 올라가는데 무명묘지가 있다
벌목한 봉우리에 올라서니 보광리로 이어지는 2번군도 너머로 채석장이 보인다
벌목지에는 간벌을 하고 소나무들을 식재해 놓았다.
이곳도 예전에 채석장이었던 모양이다.
원상 복구를 한 모습이 보인다
가시나무 잡목지대를 헤치면서 내리막길로 내려간다
지저분한 등로 좌측으로는 비들목재에서 보광리로 이어지는 2번군도가 보인다
임도(10:38)
임도를 가로질러 묘지쪽으로 올라간다
묘지로 올라가니...
반가운 선답자의 흔적이 보인다
조금전에 걸었던 능선과 서대산이 뚜렸하게 보인다
험준한 산세인 서대산은 삼국시대 때는 신라와 백제가 맞섰던 경계였다.
때문에 산자락 곳곳에 옛날 성터와 봉화대 흔적들이 남아 있고 게다가 동학란 때에는 동학군들이
숨어들었고, 6·25 전쟁 전후해서는 금산, 옥천, 무주 일원에서 활동하던 공산군들이 경찰서와
군청 등을 습격하는 활동 무대의 아지트로 삼기도 했다.
1950년 9월 인천상륙작전 이후에는 북으로의 퇴로가 막혀 퇴주하지 못한 공산군들이 서대산으로 집결했다.
이때 서대산으로 숨어 든 공산군을 소탕하는 과정에서 충남과 충북 의용경찰과 전투경찰들의 희생도 뒤따랐다.
서대산에서는 무덤(대부분 묵묘)들을 많이 보게 되는데 무덤들은 대부분 바위 꼭대기나 절벽 상단부에
자리하고 있는데 이 지역 토박이 촌로들의 말에 의하면 이 무덤들은 6·25 이후 전투 중 희생된 경찰들의
무덤이라고 전한다. 어떤 토박이 주민은 당시 전투경찰들을 돕기 위해 특수부대인 ‘켈로부대’가 투입된
적도 있었다고 전한다. 특히 정상과 가까운 거리인 견우장연대 바위 꼭대기에 음각된 태극기는 6·25 때
어느 전투경찰이 새겼고, 태극기 남쪽 바위 꼭대기 무덤은 이곳에서 희생된 전투경찰이 묻힌 곳으로 보고 있다
등로가 보이지 않고 힘들게 잡목을 헤치며 능선으로 올라간다
다시 뚜렸한 등로로 올라서니...
4등 삼각점이 있는 429.5m봉 정상이 나온다
429.5m봉 정상 삼각점(△이원405)...실제로는 깨져있어 판독이 불가능하다
429.5m봉(10:38)
뚜렸한 직진길로 조금 가다가 직진길을 버리고 급하게 좌측으로 꺽어져 내려가야
하는데 무심코 걷다가는 대형알바를 할 구간으로 독도에 상당히 조심해야 할 곳이다
등로가 보이지 않는 곳으로 내려서니 선답자들의 시그널이 맥길을 안내한다
봉분이 거의 보이지 않는 무명묘지가 나온다
안부(10:40)
안부에서 능선으로 올라서니...
능선 좌측으로 묘지가 보이고...
묘지 우측으로 맥길은 이어진다
또다른 묘지가 능선 우측 아래로 보이고 잠시후에 오를 방화봉이 보인다
맥길은 묘지 위에서 좌측으로 이어진다
가느다란 소나무 사이의 맥길을 따라간다
완만한 오르막길
???
봉분이 땅바닥에 붙어버린 묘지를 지나 완만한 오르막으로 올라간다
능선으로 올라서서 길을 가는데...
아카시아나무를 비롯한 잡목들의 저항이 상당히 심하다
다시 뚜렸한 등로로 맥길은 이어진다
산불감시초소(11:04)
빛바른 선답자들의 흔적들이 많이 보인다
완만한 오르막을 오르는데 오늘도 비실이부부님이 산길을 안내한다
잠시 후 또다른 산불감시초소가 있는 방화봉 정상이 보인다
주위가 나무로 들러쌓여 있는곳에 산불감시초소는 무용지물이 아닌가요
방화봉(放火峰:555.1m:11:06)
금산군 군북면 동편리, 두두리, 산안리에 걸쳐있는 산으로 조선시대에
봉화를 올렸던 산이라 해서 '봉화재'로도 불린다.
안면이 있는 띠지들이 많이 보인다
방화봉에서 내려서니...
희미한 군교통호가 보인다
벙커를 지나...
계속되는 내리막길
갈림길(11:13)
이곳에서 좌측으로 꺽어져 내리막길로 향한다
급경사를 내려서니 넓은 능선이 나오고...
내리막길 넘어진 소나무 너머로 잠시후에 가야할 국사봉이 보인다
이끼가 낀 수로가 보이고...
급경사의 내리막길로 내려간다
옹벽 가림막이 길을 막는데 다행히 개구멍이 보인다
개구멍을 통과하여 비들목재로 내려선다
비둘목재(11:28)
충남 금산군 군북면에 있는 고개로 군북면소재지가 있는 두두리에서 산안리로
넘어가는 고개인데 2차선의 2번 군도가 지나가며 북쪽으로는 서대산이 시원스레 보인다
비둘기의 목을 닮았다고 해서 비둘목재라는 지명이 유래 되었다고 한다
도로에서 북쪽으로 올라간 다음에...
보광로 팻말을 보면서 우측의 산판임도로 꺽어진다
임도를 따라가다 헛개나무를 심어논 우측으로 올라간다
북쪽으로는 산안리 사기점마을에는 태양광 시설이 보이고 그 너머로는 서대산이 시원스레 보인다
사기점 마을은 웃사기점과 아랫사기점 두 마을로 나누는데 아랫사기점은 조선시대에 사기를
구었으므로 사기점골이라고 부른다.
국사봉을 바라보며 임도를 따라서 올라간다...좌측 능선이 실제 마루금이다
조금전에 헤어진 임도를 다시만나 우측으로 꺽어진 다음에...
곧바로 임도를 버리고 좌측 능선으로 오르는데 선답자들의 시그널이 많이 걸려있다.
반가운 산으로님의 흔적
안부(11:50)
벌목을 한 후에 소나무를 식재한 등로로 빡센 오르막이 시작된다
좌측으로는 조금전에 지나온 방화봉 능선이 시원스레 보인다
능선에 올라 편안한 등로를 따라서 가다가 다시 오르막으로 올라간다
무명봉(12:02)
내리막으로 내려간 다음에 안부를 지나 다시 오르막으로 올라간다
오름막길이 상당히 빡세다
무명봉에서 다시 내리막 능선으로 내려간다
잠시후에 가야할 국사봉이 나무가지 사이로 보인다
안부(12:10)
안부를 지나 조그만 무명봉에서...
내리막을 내려선 다음에...
빡센 오르막을 올라선다
편안한 능선을 따라서 맥길을 이어간다
다시 오르막길...계속되는 빨래판 구간...은근히 산꾼을 지치게 한다
무명봉(12:28)
완만한 내리막길로 내려간다
편안한 등로를 따라서 가다가...
국사봉 정상을 보면서 오르막이 시작된다
국사봉(國師峰:667.5m:12:32)
금산군 군북면 두두리와 제원면 길곡리 경계에 있는 산으로 정상에는 4등 삼각점이 있으며
이 국사봉 사면에서 서화천(西華川)이 발원하며 금산군 군북면 국사봉에서 발원하여 북쪽으로
흘러 옥천군 군서면과 군북면을 관류하여 군북면 이평리에서 금강 본류(대청호)로 흘러간다.
지명은 『대동여지도』에 서화천이 표기되어 현재까지 표기자의 변화 없이 현재까지 사용되고 있다.
이후 『한국지명총람』에는 서화천과 함께 서화천의 이 명칭으로 '큰내'가 기록되어 있다.
산에서 많이 만나는 지명중의 하나가 국사봉인데 충청도에만 8개의 국사봉이 있는데 충청도에
소재한 국사봉중에 가장 높은곳이 이곳이다...몸집이 우람하고 높은 서대산이 부러운 듯 서대사의
턱밑에서 서대산을 우러러 보고 있으며, 갈곡리 새방이골에 한줄기, 산안리 사기점골에 두줄기의
좋은 개울을 거느리고 있는 산이기도 하다.
국사봉 정상 삼각점(△이원 407/1980재설)
국사봉 정상을 한번 뒤돌아 보고...
좌측 능선으로 내려간다
급경사의 내리막길로 내려가는데 낙엽이 상당히 미끄럽다
급경사의 내리막을 내려가는데 벌목을 하여 등로에 버려진
간벌목으로 인해 걷기가 상당히 힘이든다...엎어진 김에 쉬어가라 했던가.
배도 고프고 하여 바람을 피해 양지바른 곳에서 점심 대용으로 가져온 잡채로 허기를 면한다
독립군의 점심밥상
다시 길을 나서는데 내리막 능선길이 상당히 미끄럽다
안부(13:00)
다시 빡센 오르막이 시작된다
조금전에 내려온 국사봉을 뒤돌아 본다
힘들게 능선에 올라서니 마구 방치된 간벌목이 산꾼을 괴롭힌다
등로에서 바라본 금산군 군북면 산안2리 자전뱅이 마을의 모습
군북면에서 가장 오지마을에 속하는 자진뱅이는 예로부터 ‘오목지간의 피란지지’로 이름이 높다.
여기에서 오목이란 산안리와 두두리를 잇는 비둘목, 자빈뱅이 남쪽에 위치한 명지목, 자진뱅이에서
상곡리 죽말로 넘어가는 느지목, 상곡리 도랜말에서 안말로 넘어가는 노루목, 보광리에서 상곡리로
넘어가는 황새목이 그것이다. 그만큼 이 마을은 사방이 험준한 산으로 에워싸여 있어 최고의
피란처로 주목을 받아왔던 것이다.
615.3m봉(13:15)
좌측의 내리막길로 내려간다
간벌을 했으면 뒷정리도 잘해야지...성질머리 하고는 놀부 심보를 닮아가나...
잠시후에 오를 655.4m봉의 모습
오늘 후반의 산행은 빨래판 구간의 산행이 아니라 W자의 행태로 빡세게 올라섰다가
급경사의 내리막... 다시 빡센 오르막이라 산꾼을 엄청 지치게 만든다
낙엽으로 인해 등로는 보기보다 상당히 미끄럽다
안부(13:20)
다시 급경사의 빡센 오르막이 시작된다
지나온 국사봉(뒷쪽 봉우리)과 조금전에 내려온 615.3m봉의 모습
암릉구간의 오르막으로 올라간다
북서쪽으로는 계속해서 서대산이 보이고...
조금전에 지나온 능선의 모습
놀부심보...간벌목을 피하면서 걷느라 생각보다 시간이 많이 걸린다
등로 우측으로는 조망바위가 보인다
조망바위(13:36)
금산군 제원면 길곡리(吉谷里)의 마을은 희미하게 보이고 그 너머의 금산읍은 아예 보이지도 않는다
길곡 또는 질곡, 질골, 길골리라 부르며 마을 뒤에는 돌배나무밭이 있는 골짜기인 길나무밭이 있는
골짜기인 길나무밭이라고 부르는 골짜기가 있으며, 북쪽에는 또한 횟목골이라고 부르는 골짝기가
있는 마을 뒷쪽에는 마을 뒤로 국사봉이 있다. 마을 앞으로는 길곡리의 유일한 도로가 신안사까지
이어져 있으며 북쪽에서 흘러오는 냇물이 마을 부근을 적시고 남쪽으로 흘러간다.
암릉구간을 통과한다
무명봉(13:41)
안부로 내려선다
힘든 삶을 살았던 고사목
작가이자 철학자였던 "괴테"는 노년에 관한 유명한 말을 남긴다.
1,건강
몸이 건강하지 못하면 세상 온갖 것이 의미 없다.
건강이란 건강할 때 즉 젊었을 때 다져 놓았어야 한다.
이 말은 다 아는 상식이지만 지난 후에야 가슴에 와 닿는 말이다.
이제 남은 건강이라도 알뜰히 챙겨야 한다.
2,돈
스스로 노인이라고 생각 한다면 이제는 돈을 벌때가 아니라 돈을 쓸 때이다.
돈이 있어야지? 돈 없는 노년은 서럽다. 그러나 돈 앞에 당당 하라.
3, 일
당신은 몇살부터 노인이 되었는가? 노년의 기간은 결코 짧지 않다.
정말 하고 싶은 일을 찾아 나서자. 일은 스스로뿐만 아니라,
주위 사람들에게도 기쁨을 준다.
죽을 때까지 삶을 지탱해 주는 것은 사랑과 일이다.
4, 친구
노년의 가장 큰 적은 고독과 소외. 노년을 같이 보낼 좋은 친구를 많이 만들어 두자.
친구 사귀는 데도, 시간, 정성, 관심, 때론 돈이 들어간다.
5, 꿈
노인의 꿈은 내세에 대한 소망이다.
꿈을 잃지 않기 위해선 신앙 생활,명상의 시간을 가져야 한다.
안부에서 올라서니 655.4m봉이 나온다
655.4m봉(13:50)
맥길은 우측 내리막으로 이어진다
바위지대를 지나니...
좌측으로 이어지는 맥길이 갑자기 좋아진다
무명묘지(13:56)
이곳이 지형도상의 635m봉이다
무명묘지를 지나서 능선에 올라서니 다음구간에 걸어야 할 대성산이 보이기 시작한다
철쭉군락지인 급경사의 내리막이 시작된다
음지라 땅이 살짝 얼어있어 꽤나 미끄럽다
등로는 생각보다 좋다
우측으로는 다음구간에 걸어야 할 천태산이 보인다
계속되는 내리막길
안부(14:12)
등로는 뚜렸하고 마구 방치된 벌목지대를 지나니 걸을만하다
안부에서 다시 오르막길...체력은 자꾸만 소진되어 가는 느낌이다
자꾸만 발걸음이 늦어지고...
무명봉(14:28)
등로는 또다시 좋아지고...
조그만 봉우리를 지난다
안부로 내려간다
안부(14:32)
희미한 등로로 올라간다
460m봉(14:35)
460m봉에서 바라본 금산군 군북면 산안리(山安里)의 산그리메
산안리는 대부분의 지형이 산지로 이루어져 있는 산간 마을로 남쪽에서 북쪽으로 갈수록 고도가
낮아지며, 비교적 낮은 지대에 자리한다. 자연 마을로는 산내, 사기점, 웃사기점 마을 등이 있다.
산내 마을은 묵방산, 국사봉, 방화봉의 세 산 안쪽에 위치한다 하여 붙여진 지명이다.
사기점 마을은 조선시대 때 사기점이 있었다 하여 이름 붙여지게 되었으며, 웃사기점 마을은 사
기점 위에 자리한다는 뜻에서 명명되었다.
460m봉 정상에서 만난 선답자들의 흔적
오늘 자주 봅니다
안부에서 526.2m봉으로 올라간다
526.2m봉(14:55)
권작가님...요즘 우째 지내시나이까?
무명봉(15:00)
갑자기 등로가 사라진다
길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무작정 내려서니 신안고개가 나온다
신안고개(新安峴:15:05)
금산군 군북면 산안리와 제원면 신안리의 경계에 있는 고개로 고개 우측 아래에는
꽤나 큰 규모의 신안사라는 절집이 있고 지명의 유래는 신안리 마을에서 따온듯 하다
신안리(新安里)는 전형적인 농촌 마을로 마을 동쪽에 천태산이 자리하고 있으며, 서쪽으로
하천이 흐르는데 자연마을로는 신안 마을 등이 있다.
신안 마을은 옛날에 임금님이 편안히 쉬어간 신인사라는 절이 있다 해서 이름 붙여지게 되었다.
문화재로 시도유형문화재 3호인 신안사대광전 (身安寺大光殿), 시도유형문화재 117호인
신안사극락전 (身安寺極樂殿)이 있다.
오늘은 이곳에서 산행을 종료한다
거리는 얼마되지 않으나 생각보다 업다운이 심해서 산행도 힘이 들었고
귀경하는 버스표는 예매해놨지만 명절 연휴라 고속도로 사정이 어찌될지
몰라서 이곳에서 산행을 종료한다
도로를 따라서 신안사 방향으로 내려간다
봄이오는 소리도 들리고...
계속되는 내리막길
도로 좌측 아래는 고로쇠 나무 군락지가 보이는데 수액을 채취하려고 준비중이다
조금을 더 내려가니 신안사 입구가 나온다
신안사(身安寺:15:30)
금산군 제원면신안리 신음산(神陰山) 국사봉(國師峰) 아래에 있는 절집으로 대한불교조계종
제6교구 본사인 마곡사의 말사로 651년(진덕여왕 5) 자장율사(慈藏律師)이 창건했으며 신라의
마지막 왕인 경순왕이 충청북도 영동군 있는 영국사(寧國寺)에서 수학할 때 이 절에도 가끔 들러 머
물렀는데 주변 경관과 어울려 몸과 마음이 편안해진다고 하여 신안사라고 했다.
그 뒤의 연혁은 전하지 않는다.
전성기에는 대웅전과 극락전·진향각(眞香閣)·요묵당(寥默堂) 등 호화롭고 장엄한 건물이 즐비했고,
불상 또한 10여 위가 있었으며 3,000여 명의 승려들이 수행하는 거찰(巨札)이었다.
그러나 오랜 세월을 거치면서 퇴락했으며 6·25전쟁 때 전각이 다수 불타고, 불경·불기 등의 여러 비
품들이 소실되어 행방을 알 수 없으며 이때 불상은 금산군 진산면의 태고사(太古寺) 등으로 옮겨
지금은 5위만 남아 있다.
현존하는 건물로는 대광전(충남유형문화재 3)과 극락전(충남유형문화재 117), 요사채가 있다.
유물로는 조선시대 불상의 걸작품으로 꼽히는 불상 5위와 칠층석탑, 그리고 《금강반야바라밀경》
《대승기신론소》 《조계시집》 《주심무》 《위산경책》 《사십이장경》 등의 목판이 있다.
극락전 옆에 수조(水槽)로 사용되는 맷돌과 장대석·절구석재 등이 남아 있고 신안사로 들어서는
마을 어귀에는 종형(鍾形)의 부도 2기가 있다
시간적 여유가 있어서 신안사 절집 안으로 들어간다
신안사 극락전(身安寺極樂殿:충청남도 시도유형문화재 제117호)
조선 후기에 중수된 극락전은 정면 3칸, 측면 3칸의 2고주 5량구조의 겹처마 맞배지붕건물로
신안사는 신라 때 창건된 절로 구릉에 자리잡고 있는데, 경내에는 2개의 축을 두고 대광전과
극락전이 약간 떨어져 배치되고, 8개의 석단 앞쪽에 극락전과 요사채가 ‘ㄱ’자 모양으로 배치되어 있다.
극락전의 건립 연대는 알 수 없으나 1765년(영조 41)과 1845년(헌종 11)에 각각 중수하였다는
상량문이 발견되었다. 약 80년 만에 중수한 것으로 보아 이 건물은 17세기 후반에 지어진 것으로
추측되며 극락전 측면에는 풍판(風板)을 달아 두었으며, 기단은 사괴석(四塊石) 모쌓기를 약 4자
높이로 만들었는데, 1935년 보수하면서 이렇게 만든 것으로 보인다.
초석은 덤벙주초를 쓰고 기둥은 약한 배흘림이 있는 두리기둥이다. 기둥 머리에는 창방(昌枋)과
평방(平枋)을 걸치고, 공포를 얹은 전형적인 다포식 공포를 짜올렸다. 공포는 내사출목, 외삼출목으로
전후면을 같은 모양으로 만들고 각 칸의 공간포는 2조씩 설치했다. 외부로 뻗은 살미 끝 3개의
제공은 쇠서모양으로 하고 위에는 운공(雲工)을 조각하였다. 내부의 살미 끝부분도 모두 운공으로
처리하였으며, 측면 어간의 평방은 생략하였다.
내부의 바닥은 우물마루로 깔고 천장은 가운데 열을 조금 높게 만든 층급천장으로, 우물반자로 짜올렸다.
정면 창호는 3칸 모두 4분합문으로 짰는데, 그 중 어간은 교살(交箭 : 45°각도로 경사지게 댄 창문살)
문양이고 협간은 井자살 문양이다. 양 측면 전면 쪽으로 띠살문 분합을 달아 두었다. 뒤에도 창호를
달았던 흔적이 있으나 지금은 벽으로 막았다. 조선 중기의 다포집 구조와 양식을 잘 보여 주고 있는
작품이다.
주차장에서 절집 마당에 올라서니 명절 연휴라 그런지 간간히 참배객이 보이는데 오늘 처음으로 사람을 만난다
맨 처음 만나는게 칠층석탑이고 그 뒤로 극락전이 보이는데 이 절집의 주전(主殿)은 극락전인 모양이다
극락전을 향해 선 채로 저두삼배의 예를 올리고 좌측에 있는 대광전(大光殿)을 가니 중창불사를 하는지
막아놓아 참배를 하지 못하고 다시 극락전으로 되돌아 나온다.
대부분의 가람(伽藍)에서는 대웅보전(大雄寶殿)이나 대적광전(大寂光殿)인데 신안사는 대광전이라
한 것이 좀 특이하다...절집의 큰 법당에는 부처상이나 보살상이 모셔져 있는데 큰 법당의 이름은
그 안에 모셔진 주불에 따라 결정되는데 주불(主佛)이 바로 그 절집의 정신적 지주이기 때문이다
신안사 대광전은 석가모니께서 설법한 진리를 형상화한 비로자나불(毘盧遮那佛)을 본존(本尊)으로
좌.우에 노사나불(盧舍那佛)과 석가여래(釋迦如來)를 모시고 있으며 이 건물은 조선 후기 건물로
정면 5칸, 측면 3칸으로 다포식 맞배지붕으로 바닥에는 마루를 깔았으며 그 중 3칸에는 후불 벽화를 조성했다.
대웅전 또는 격을 높혀 대웅보전으로 부르는 법당은 사바세계의 교주인 석가모니불을 중심에 두고
문수보살(文殊菩薩)과 보현보살(普賢菩薩)을 협시(脇侍)로 봉안하는 것을 기본으로 하고 있다.
반면 대적광전에는 원래 비로자나불을 중심으로 한 삼신불(三身佛)을 봉안하여 연화장세계를 상징하게 된다.
원래 법신(法身)·보신(報身)·화신(化身)의 삼신불로는 비로자나불·아미타불·석가모니불을 봉안하는 것이 상례로
되어 있다.
대적광전은 화엄종의 맥을 계승하는 사찰에서는 주로 이 전각을 본전(本殿)으로 건립하여 ≪화엄경≫에 근거한다는
뜻에서 화엄전(華嚴殿), ≪화엄경≫의 주불(主佛)인 비로자나불을 봉안한다는 뜻에서 비로전(毘盧殿), 그
리고 ≪화엄경≫의 연화장세계가 대정적의 세계라는 뜻에서 대적광전이라고도 하는데 대표적인 사찰이
합천 해인사이다
신안사 극락전(身安寺極樂殿:충청남도 시도유형문화재 제117호)
조선 후기에 중수된 극락전은 정면 3칸, 측면 3칸의 2고주 5량구조의 겹처마 맞배지붕건물로
신안사는 신라 때 창건된 절로 구릉에 자리잡고 있는데, 경내에는 2개의 축을 두고 대광전과 극
락전이 약간 떨어져 배치되고, 8개의 석단 앞쪽에 극락전과 요사채가 ‘ㄱ’자 모양으로 배치되어 있다.
극락전의 건립 연대는 알 수 없으나 1765년(영조 41)과 1845년(헌종 11)에 각각 중수하였다는
상량문이 발견되었다. 약 80년 만에 중수한 것으로 보아 이 건물은 17세기 후반에 지어진 것으로
추측되며 극락전 측면에는 풍판(風板)을 달아 두었으며, 기단은 사괴석(四塊石) 모쌓기를 약 4자
높이로 만들었는데, 1935년 보수하면서 이렇게 만든 것으로 보인다.
초석은 덤벙주초를 쓰고 기둥은 약한 배흘림이 있는 두리기둥이다. 기둥 머리에는 창방(昌枋)과
평방(平枋)을 걸치고, 공포를 얹은 전형적인 다포식 공포를 짜올렸다. 공포는 내사출목, 외삼출목으로
전후면을 같은 모양으로 만들고 각 칸의 공간포는 2조씩 설치했다. 외부로 뻗은 살미 끝 3개의
제공은 쇠서모양으로 하고 위에는 운공(雲工)을 조각하였다. 내부의 살미 끝부분도 모두 운공으로
처리하였으며, 측면 어간의 평방은 생략하였다.
내부의 바닥은 우물마루로 깔고 천장은 가운데 열을 조금 높게 만든 층급천장으로, 우물반자로 짜올렸다.
정면 창호는 3칸 모두 4분합문으로 짰는데, 그 중 어간은 교살(交箭 : 45°각도로 경사지게 댄 창문살)
문양이고 협간은 井자살 문양이다. 양 측면 전면 쪽으로 띠살문 분합을 달아 두었다. 뒤에도 창호를
달았던 흔적이 있으나 지금은 벽으로 막았다. 조선 중기의 다포집 구조와 양식을 잘 보여 주고 있는
작품이다.
극락전 우측에는 삼성각이 있다.
신안사 아미타삼존불좌상(身安寺 阿彌陀三尊佛坐像:충청남도 유형문화재제187호)
본존불 좌우에 합장한 관음보살과 지장보살을 협시로 배치한 아미타삼존불좌상으로,
신안사 극락전에 봉안되어 있다.
고려 후기의 단아 양식을 계승하여 크기가 장대하고 위엄이 있으며, 좌우 협시보살은 세세한
장식을 배제하고 불의 등을 풍성하면서도 사실적으로 표현하였다. 재질은 목심소조불로서
나무로 틀을 짜고 그 위에 흙을 발라 성형하였다. 현존하는 고려 말기의 불상들은 대부분
독존으로 전해지나, 이 불상은 좌우의 관음보살과 지장보살이 모두 합장한 입상 형식이어서
매우 희귀한 사례로 조선 초기 삼존불상으로서 예술적 가치가 뛰어나고 현존하는 수가 매우
적어 2007년 10월 30일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187호로 지정되었다.
신안사 극락전의 벽화
극락전 내부는 우물 마루로 후면 중앙에 고주(高柱:대청의 한가운데에 다른 기둥보다 높이 세운 기둥)를
세우고 후불벽을 만들어 불단을 조성했으며 내부 운궁(雲宮)에는 연봉과 연화를 화려하게 장식했다.
극락전에 안에 봉안되어 있는 아미타삼존불 좌상은 아미타여래(阿彌陀如來)를 본존으로 하고 좌.우에는
관음보살(觀音菩薩)과 대세지보살(大勢至菩薩)을 협시불로 두었다.
삼존좌상은 번쩍거리면 빛을 발하는 듯 보이는데 이것은 려말선초의 불상 기법으로 근엄하고 엄숙한
눈빛으로 마루 아랫쪽을 주시하기보다는 친숙한 상호를 가지고 문 밖을 바라보는 느낌이다
좌.우에 있는 협시보살의 번잡한 장식은 업이 간결하면서도 사실적인 면이 강하다.
고려말기의 불상들은 대체적으로 독존 형태로 전해지는 것과는 달리 삼존 형태로 갖춰져 있어
불상 연구에 중요한 가치를 가지고 있다.
삼성각
삼성각에는 보통 치성광여래(熾星光如來)을 중심으로 산신과 독성((獨聖)이 좌.우에 위치하는데
이곳 신안사 삼성각은 산신이 중앙에 자리잡고 있고, 좌측에는 독성, 우측에는 치성광여래가
봉안되어 있는 독특한 구조이다
신안사 경내를 구경하면서 추부택시를 호출한다
신안사 칠층석탑
신안사 극락전앞 마당에 있는 7층석탑은 고려시대에 조성된 석탑으로 높이가 389cm이다
석탑은 7층으로 1층에서 7층까지 체감을 거의 주지 않은 매우 고준한 조형을 지니고 있다
맨 아래의 기단석 네 면에는 선각(線刻)의 경향을 조각수법을 간직하고 있다
탑신 받침은 중판의 복련(覆蓮:연꽃을 엎어 놓은 모양의 무늬 )으로 그리 화려한 것은 아니면서
고졸미(古拙美:기교는 없으나 예스럽고 소박한 데서 나오는 아름다움)는 있다.
위에 놓인 탑신부는 체감률이 작으면서 층수가 높아 가늘게 솟은 느낌으로 안정감은 그리 크지않다.
옥개석도 양감이 덜한데 그것에 비해 전각 반전이 커 약간 들뜬 느낌이다.
신안사 경내를 처삼촌 벌초하듯 주마간산격으로 구경하고 있는데 택시가 도착하여 추부로 향한다
추부(마전) 버스 정류장(16:20)
아침에 버스표를 예매하여 걱정이 없다
버스 정류장에 도착하여 건너편에 있는 파출소로 가서 지난번 2번이나 신세를 졌던 경험으로 양해를 구하고
화장실에서 따뜻한 물로 깔끔하게 씻고 옷을 갈아입은 후에 고맙다는 인사를 건네고 다시 정류장으로 간다
17시 10분에 금산에서 출발한 버스가 도착하고 버스에 올라 서울로 출발하는데 명절 연휴임에도 불구하고
코로나의 영향인지 평소 주말보다 고속도로는 더 널널한 느낌이다...예상보다 20분 일찍 서울에 도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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