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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범여(梵如)의 世上사는 이야기
서화(장령)지맥(終)

서화(장령)지맥 제3구간 - 신안고개에서 지풍마을 안부까지

by 범여(梵如) 2021. 3. 24.

☞ 산행일시: 2021년 03월 23일

☞ 산행날씨: 맑은 날씨에 강한바람에 살짝춥고 미세먼지 심함

☞ 산행거리: 14.5km+날머리 1.2km / 7시간 25분 소요

☞ 참석인원: 나홀로 산행

☞ 산행코스: 신안고개-481m봉-안부-안부-무명봉-감투봉-안부-도가실 갈림길-무명봉-조망바위

                   안부-투구봉-무명봉-안부-마니분맥 분기점-715.5m봉-무명봉-무명봉-안부-무명봉

                  601.6m봉-송전탑-대성산기도원 갈림길-안부-645.8m봉-꼬부랑재-대성산갈림길

                  대성산-다시 대성산갈림길-안부-641.5m봉-폐헬기장-안부-586.1m봉-581m봉

                  매봉-지내재-622.4m봉-금산고개-안부-안부-566.4m봉-암봉-암봉-안부-574m봉

                  휴양림 관리사무소 갈림길-무명봉-헬기장-571.4m봉-장령산-갈림길-갈림길

                  633.7m봉-갈림길-가재고개-안부-무명봉-안부-가풍고개

☞ 소 재 지: 충남 금산군 군북면. 제원면, 군서면 / 충북 영동군 양산면 / 옥천군 이원면, 옥천읍

지난주에 맥길을 가지 못하니 신체 리듬이 완전히 무너지는 느낌이다

일욜에 개인사로 인해 산행을 할 수가 없기에 토요일에 산행을 하려 했건만 전국적으로 비가 오는 바람에

포기했더니만 주초부터 몸뚱아리가 천근만근이다...10년동안을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매주말 맥산행을

했는데 범여의 몸뚱아리는 지맥 산행에 셋팅이 되어있는 모양이다

인간이란 존재는 習이 참으로 무섭다는 걸 느낀다... 안되겠다싶어 화요일인 23일에 맥길의 난이도도

상당히 높고, 봄철이 지나 숲이 우거지면 다니기가 고약하고 서울에서 그리 멀지않은 서화(장령)지맥

3구간을 하기로 하고 이른 아침에 경부고속터미널로 향한다

 

오늘 산행구간의 지도

서울발 → 금산행 버스표

서울에서 금산가는 버스의 첫 차는 06시 30분인데 06시 50분인줄 착각하고 느긋하게 터미널에

도착하니 06시 28분이다...매표소에 가서 금산가는 버스표를 한장 달라고 하니 표를 파시는 분이

2분밖에 안 남았다고 하면서 빨리 가시라고 한다...시간표가 바뀌었냐고 하니까...아니라고 한다

내가 착각을 한 것이다...봉황(성치), 갑천(식장), 서화(장령)지맥을 하면서 혼자서 금산과 추부를

9번정도 이 버스를 이용했는데 착각을 하다니...이제 범여의 머리도 굳어가는 느낌이다

금산으로 가는 다음 버스는 11:30이니 하마트면 오늘 산행을 망칠뻔 했다.

이른 새벽에 집을 나온 탓인지 졸음이 쏟아진다...늘 하던 습관대로 깊은 잠에 빠졌다가

고속버스가 휴식을 취하기 위해 경부고속도로 옥산 휴게소에 들어서는 바람에 잠에서

깼다가 다시 깊은 잠에 빠진다...버스는 추부I.C를 빠져나와 마전으로 향할 때 완전히 잠에서 깨어난다

금산터미널(09:00)

터미널에 도착하여 건너편에 있는 떡집에서 점심 대용으로 먹을 송편 한 팩을 사서 베낭에

넣고 택시를 타고 신안고개로 향하려는데 뭔가 허전한 느낌이다...스마트폰이 주머니에서

빠졌는지 보이질 않는다. 택시기사에게 잠시 기다려 달라고 해놓고는 떡집을 갔더니만 없다.

갑자기 머리속이 하해지는 느낌...부리나게 터미널로 가니 서울에서 나를 태우고 온 버스는

플렛홈에 그대로 서 있다...기사에게 사정 얘기를 하니 버스 문을 열어준다.

다행히 버스 의자옆에 끼어있어 전화기를 찾아서 택시를 타고 신안고개로 향한다

지난 2월 23일에 2구간을 했으니 정확하게 한달만에 신안고개에 도착하니 강한 바람이

엄청나게 불어대고 손이 시릴정도는 날씨는 춥다.

기사양반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건내고 작별을 한다(택시요금 25,000원)

신안고개(新安峴:09:35)

금산군 군북면 산안리와 제원면 신안리의 경계에 있는 고개로 고개 우측 아래에는

꽤나 큰 규모의 신안사라는 절집이 있고 지명의 유래는 신안리 마을에서 따온듯 하다

 

신안리(新安里)는 전형적인 농촌 마을로 마을 동쪽에 천태산이 자리하고 있으며, 서쪽으로

하천이 흐르는데 자연마을로는 신안 마을 등이 있다.

신안 마을은 옛날에 임금님이 편안히 쉬어간 신인사라는 절이 있다 해서 이름 붙여지게 되었다.

문화재로 시도유형문화재 3호인 신안사대광전 (身安寺大光殿), 시도유형문화재 117호인

신안사극락전 (身安寺極樂殿)이 있다.

산행을 시작하다(09:40)

들머리에는 맥산행에서 자주 만나는 산꾼들의 흔적이 많이 보인다

능선에 올라서니 우측으로 잘 관리된 묘지가 보이고...

맥길은 좌측으로 이어진다

다정하게 걸려있는 권작가님과 산으로님의 흔적

우측 신안사 절집에서 올라오는 뚜렸한 등로를 만나서 좌측으로 향한다

좌측으로 이어지는 편안한 사면길이 보이나 직진 능선으로 올라가 본다

481m봉(09:47)

어김없이 봄은 찾아오고...

조금전에 헤어진 사면길 등로를 다시 만난다.

넓은 공터를 지나...

조그만 봉우리를 넘어 안부로 내려간다

안부(09:53)

감투봉을 향한 빡센 오르막이 시작된다

이곳은 생각보다 춥다...음지는 아직도 등로가 얼어있다

낙엽이 수북한 오르막 등로...땅바닥이 얼어있고 낙엽으로 인해 힘든 오르막이다

등로 우측의 나뭇가지 사이로는 신안사가 보인다

신음산(神陰山:678m) 동쪽 아래에 있는 신안사(身安寺)는 신라 진평왕 때 무염선사가 창건했다고 하며,

신라의 마지막 경순왕이 천태산 영국사에서 수학할 때, 이 절에 들려서 가끔 유숙을 하였는데 주위의

환경이 맑고 아름다워 몸과 마음이 편한하다고 하여 신안사라고 불렀다고 한다

암릉구간의 능선으로 올라선다

苦行

무명봉(10:07)

올라가야 할 감투봉(701m)이 까칠하게 보인다

또다른 봉우리에서 ...

내리막으로 내려간다

안부(10:09)

노랑 제비꽃...강풍이 불어대니 춥겠구나

또다시 빡센 오르막이 시작된다

좌측의 약초재배지 휀스를 따라서 올라가니 무명봉이 나온다

무명봉(10:22)

안부를 지나 능선으로 올라간다

감투봉(敢鬪峰:701m10:25)

정상에는 이정표와 산패 2개가 붙어있고, 누군가가 이정표 기둥에 메직으로

감투봉이라 써놓았지만 지도상에는 아무런 표식도 안되어 있다.

그런데 트랭글 앱에서는 감투봉이라고 알려주니 처음걷는 산꾼으로선 헷갈린다

 

이곳에서 지맥길은 대성산쪽으로 이어지고, 우측은 영국사를 품고있는 천태산 방향이다

감투봉 정상에 있는 이정표

천태산 갈림길인 감투봉 정상에 있는 산패

천태산 아래에 있는 영국사(寧國寺)는 대한불교조계종 제5교구 본사인 법주사의 말사로

고려 문종 때 원각국사가 창건한 절로 당시에는 국청사(國淸寺)라고 했다.

그뒤 공민왕이 홍건적의 난을 피해 이원 마니산성에 머물 때 이 절에 와서 기도를 드린 뒤

‘국난을 극복하고 나라가 평온하게 되었다’ 해서 영국사(寧國寺)로 고쳐 불렀다고 한다.


중요문화재로는 부도(보물 제532호)·3층석탑(보물 제533호)·원각국사비(보물 제534호)·

망탑봉3층석탑(보물 제535호) 등이 있다. 부도는 높이 176cm의 고려시대 승탑이다.

고려시대 3층석탑인 망탑봉3층석탑은 높이 300cm로 거대한 자연암석을 편평하게 다듬어 기단으로

사용하고, 윗면에 2단의 높은 각형 받침을 두고 3층의 탑신을 올려놓았다. 대웅전 앞에 있는 3층석탑은

높이 315cm이며 전형적인 신라시대의 3층석탑이다.

신안고개에서 힘들게 올라온 탓인지 힘이든다.

그러나 강풍이 불어대는 바람에 너무 추워서 서둘러 길을 떠난다

대성산 방향으로 걸려있는 선답자들의 시그널

산으로님의 흔적도 보인다

급경사의 내리막길

내리막길은 상당히 미끄럽다

가야할 능선의 모습

감투봉에서 한참을 내려오니 평평한 안부 능선이 나오는데 바람의 더 쎄게 불어댄다.

좌측으로 골짜기가 보이는데 금산군 군북면 산안리쪽 너머로 충남의 최고봉 서대산은 희미하다

안부(11:34)

龍爭虎鬪?

도가실 갈림길(10:42)

우측 아랫쪽으로는 희미한 등로가 보이는데 이 등로는 영동군 양산면 누교리 도가실 마을로

내려가는 등로인 듯 하다

 

누교리(里)는 천태산 끝자락에 걸쳐 있으며, 마을 앞으로 천이 흐르는 산촌마을로 자연마을로는

누다리(누교), 명덕, 산직촌, 아래도가실(하도가실,하도덕), 안내골(안내곡), 영국동(영국사), 지력골(지력동)

등이 있는데 누교는 마을에 누다리가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명덕은 처음에 명씨들이 들어와 살았다고 하며,

산직촌은 옛날에 산지기들이 살았다고 한다. 영국동은 영국사(만월사)가 있는 마을이다. 지력골은 천태산

어귀에 있는 마을로 옜날에는 천태산을 지륵산이라고 하였다 한다. 영국사()에는 공민왕()에

얽힌 전설이 전해온다. 문화유적으로 영국사 망탑봉 3층석탑, 영국사 대웅전 등 영국사 내에 문화재들이 많다.

다시 오르막으로 올라간다

노랑제비꽃들이 많이 보인다

무명봉(10:47)

다시 내리막으로 내려간다

누교리로 이어지는 멋진 암릉 능선은 미세먼지로 망쳐 버렸다 

名刹 영국사를 품고있는 영동군 양산면 누교리의 모습

 

영국사는 다음과 같은 전설이 전해져 내려온다

서기 1361년(공민왕 10년) 11월 원(元)나라의 한산동(漢山童)을 두목으로 하여 일어났던

홍건적(紅巾賊)의 난을 피하기 위해 공민왕은 노국(魯國)의 공주와 대신들을 데리고

피난길을 떠나던 중 남으로 길을 재촉하던 공민왕은 영동 양산면 지금의 누교리(縷矯里)에

머물게 되었다.

 

영국사의 그 당시 이름은 국청사(國淸寺)이기 때문에 왕이 부처님 앞에 나가 나라가 태평하고

백성들의 평안을 빌려고 했는데, 며칠 전부터 내린 폭우로 도무지 내를 건너 갈수가 없었다.
개경(開京)에서 들려오는 소식은 모두 가슴 아픈 일들 뿐이였다.
성안의 부녀자와 노인과 어린이들은 다투어 성을 빠져나갔다지만 그나마 피난을 떠나지 못한

사람들이 홍건적의 무리에 짓밟혀 울부짖는 소리가 천지를 진동시킨다는 소식이었다

 

공민왕이 이곳 양산이 아니라 이천(利川)을 지날 때 이미 홍건적은 개경(開京)을 함락 했고

그 뒤 수개월 동안 사람과 가축을 살해하고 왕궁을 불사르는 등 잔악한 행동이 그칠 사이가

없이 일어 났다고 한다.

때마침 개울 건너 천태산(天台山) 쪽에서 종소리가 울려서 공민왕은 깜짝놀라 좌우를 돌아 보았다.

 

이 부근에 절이 있는 줄은 알았지만 저렇게 종소리가 아름다운 절인줄은 몰랐구나.
왕비와 왕자 그리고 대신들은 하나같이 공민왕의 눈치만을 살폈다.
대신 한 사람이 설명 하기를 「저 절은 일찍이 신라 때 원각국사(圓覺國師)께서
세운 절로써 처음에는 만월사(滿月寺)라 하였다가 문종대왕(文宗大王)당시
대각국사(大覺國師)가 주지로 온 뒤로 국청사(國淸寺)라 이름을 고쳐
오늘에 이르고 있다고 하옵니다.

 

공민왕은 눈이 번쩍 띄었다.

대각국사 의천(義天)은 문종(文宗)의 아들로 천태종(天台宗)을 일으킨 분이 아닌가
의천(義天)의 발자취가 남아 있는 저 국청사에 올라 국태민안(나라와 백성이 평안함)을

빌어보고 싶었다.


공민왕의 뜻을 알아 채린 대신들은 산에 올라 칡넝쿨을 걷어 오라 일렀다.
그들은 수행원과 인근 마을 주민들이 걷어 온 칡넝쿨을 새끼줄처럼 꼬아서
이를 테면 구름 다리를 만들었던 것이다.
공민왕은 완성된 다리를 밟고 국청사 부처님 앞에 나아갔다.
왕비 왕자 그리고 대신을 데리고 공민왕은 국청사에 올라 국태민안(國泰民安)을 빌었다.


그래서 국청사는 공민왕이 다녀간 뒤 왕이 나라안 백성들의 편안함을 빌었다하여
편안할 영(寧)자 나라 국(國)자를 써서 (寧國寺)로 고쳐 부르기 시작 하였으며
공민왕이 칡넝쿨로 다리를 만들어 건너간 마을을 누교리(樓橋里)라 지어 부르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바람이 차갑다...이곳은 충남과 충북의 도 경계능선으로 주위에 보이는 건 온통 산 뿐인

오지중에 오지로 흔히들 금산을 충남의 시베리아로 불리는 이유를 알 것만 같다.

그만큼 춥다는 뜻이다

조망바위(10:53)

조망바위에서 바라본 천태산의 모습

'천태산(山:715m)는

충청북도 영동군 양산면 누교리와 충남 금산군 제원면 화원리 경계에 있는 산으로

조선 시대에는 '지륵산'으로 불렸으며 『신증동국여지승람』(옥천)에 "지륵산()은

고을 남쪽 53리에 있다."라고 기록되어 관련 지명이 처음 등장한다.

『여지도서』(옥천)에도 "지륵산()은 군 남쪽 양내면 53리에 있다.

주맥(主脈)은 전라도 금산군 서대산으로부터 온다."라는 기록이 있다.

『해동지도』(옥천)와 『대동여지도』에도 그대로 '지륵산()'이 표기되어 있다.

그러나 『조선지지자료』(영동)에는 지륵산 대신 '천태산()'으로 기록되어 있다.

지금은 지륵산이란 명칭은 거의 사용되지 않고 천태산으로 불리고 있으며 『한국지명총람』에는

'천태산'의 다른 이름인 천대산 · 천주산 · 대성산 · 지륵산 · 국사봉 · 국수봉()이 소개되어 있다.

조망바위에서 완만하게 안부로 내려간다

안부(10:55)

완만한 능선으로 올라간다

등로 우측 아래는 천길 낭떠러지이다

암릉구간을 통과하여...

오르막으로 올라서니...

돌무더기가 있는 투구봉(687.1m) 정상에 도착한다

투구봉(鬪具峰:687.1m:11:03)

정상에는 몸을 가누기가 힘이들 정도로 바람이 불어댄다

조그만 돌멩이에다가 누군가가 투구봉이라 적어놨지만 지도에는 투구봉이란 지명이 없다.

봉우리 모양이 투구처럼 생겼다고해서 붙혀진 지명이다

조금전에 지나온 천태산 갈림봉(701m봉)이름도 지도상 지명이 없었는데 감투봉이라 했고

이곳 역시 지명이 없는 무명봉인데 투구봉이라?...필시 예전에 전쟁과 관련된 인연이 있나보다.

 

감투(敢鬪)란 전쟁에서 용감하게 싸운다는 뜻이고 투구(鬪具)는 적의 무기로부터 머리를 보호하기

위하여 머리에 쓰던 쇠모자가 아니던가 

투구봉 정상에 있는 산패

다시 길을 나선다

최근엔 아무도 걷지 않았는지 산꾼들의 흔적이 보이질 않는다

휴일에 내린 비 때문에 평일에 산에와서 홀로 걷는 이 맛도 감칠난다.

 

휴일이면 어떻고, 평일이면 어때...마음을 비우면 이렇게 편한데...

하루 점빵 안 연다고 해서 굶어 죽는것도 아니고, 그래 하루 늦게난 셈 치자

누군가가 그랬지 60넘어 번 돈은 내 돈이 아니라고...

그래도 난 어쩌면 행운아인지도 모르지, 내 친구들중에는 한때 나는 새도

떨어 뜨린다 할 정도로 잘 나가는 친구들도 정년 퇴직하여 오갈데 없는

삼식이들이 수두룩한데 난 아직 출근할 놀이터(점빵)가 있고, 출근만 하면

용돈을 벌어 친구들 찾아오면 국밥에 막걸리 한병 대접할 수 있으니 말이다

등로 우측 나뭇가지 사이로 개심저수지가 보이고 그 너머로는 어류산이 흐릿하게 보인다

오늘도 생각보다 미세먼지가 심하다...미세먼지가 없었던 산행을 한 지가 언제인지 모르겠다.

 

어류산(御留山:482.4m)은

충청북도 영동군의 심천면 기호리, 금정리, 마곡리에 걸쳐 있는 산으로 조선 시대 지리지와 고지도에

어리산, 어니산, 어유산, 어류산 등으로 다양하게 표기되어 변천해 왔다.

『한국지명총람』에는 어류산(御留山)으로 기록되어 있고, 지명 유래에 대해 고려 공민왕이 홍건적을

피하여 이곳에 머물러 붙여진 이름이라고 소개되어 있다. 원래는 어리산이었다가, 어유산 혹은

어류산 등으로 바뀌어 표기되었던 것으로 여겨지며, 현재는 고려 시대 공민왕과 관련된 역사적 전설이

강하게 작용하여 어류산(御留山)으로 고정된 것으로 보인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어리산(於里山)은 고을 서쪽 14리에 있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또 『여지도서』에는 "어리산(於里山)은 현 서쪽 14리에 있다. 전라도 덕유산으로부터 와서

어리산 주맥이 된다."라는 기사가 있다. 『해동지도』와 『대동여지도』에도 '어리산(於里山)'으로 표기되어 있다.

그러나 『1872년지방지도』에는 '어니산(於尼山)'으로, 『조선지지자료』에는 '어유산(御遊山)' 또는

'어류산(御留山)'으로 표시되어 있다.

조그만 봉우리를 지나...

안부를 지나 능선으로 올라서니...

노랑 제비꽃이 독립군을 반긴다

좌측으로 이어지는 사면길이 있으나...

사면길을 버리고 직진 능선으로 올라서니 양지바른 곳인지 노랑제비꽃이 지천으로 피어있다

무명봉(11:12)

좌측으로 내려와서 조금전에 헤어진 사면길을 만난다

권작가님도 지나가셨구나

안부를 지나...

능선에서 우측으로 꺽어져 맥길을 이어간다

나뭇가지 사이로 가야할 대성산이 보이기 시작한다

앙증맞은 바위도 보이고...

등로 좌측으로는 잣나무 조림지가 보인다

안부(11:20)

입맞춤?

등로는 지맥길치고는 생각보다 뚜렸하다

암릉을 지나...

다시 완만한 능선으로 올라간다

마니분맥 분기점(11:28)

능선으로 오르는데 우측으로 등로가 보이는데 마니분맥으로 가는 길이란다

나야 마니분맥이란 곳을 갈일이 없겠다

마니분맥 개념도

 

마니분맥이란?

충청 남,북 도계에서 충북의 영동군과 옥천군계를 따라 마니산(639,8m)과 월이산(551.4m)을 거쳐

군계를 버리고 옥천군 이원면으로 들어간 산줄기를 따라 작은동산(126.0m)과 뒷동산(126.0m)을

거쳐 평촌 두물머리(금강X이원천)에서 끝맺음을 하는 약 25km정도의 아주 짧은 산줄기로 산세가

수려하지만 주변의 명산들에 가려(장룡산(654,5m), 천태산(714,7m), 서대산(903,7m)꼭꼭 숨어있던 산들이다.

등로 우측으로는 분맥꾼들의 시그널들이 보인다

낙엽이 수북한 완만한 등로를 따라서 간다

715.5m봉(11:33)

오늘 산행중에 가장 높은 봉우리이다

바람에 심하게 흔들리는 선답자들의 흔적

편안한 등로를 따라서 완만하게 내려간다

무명봉(11:35)

우측으로 등로는 계속 이어지고...

가야할 대성산이 점점 가까워진다

좌측 나뭇가지 사이로 미세먼지에 갇혀버린 서대산이 보이고 산안리 마을이 보인다

금산군 군북면 서대산 아래에 있는 산안리는 국내 최대의 산벚꽃 자생군락지로

이웃한 군북면 보광리, 상곡리와 더불어 ‘보곡산꽃단지’라 불리는 곳으로 산벚꽃을

비롯해 생강나무, 산딸나무, 병꽃나무, 조팝나무, 국수나무 등이 자생하는

무공해 청정지역이다  

낙타나무?

무명봉(11:42)

내리막길을 내려 간 다음에...

끄트머리에서...

급경사의 내리막길로 내려간다

아찔할 정도의 급경사 내리막길이다

안부(11:46)

등로 우측에 암릉이 보인다

완만한 내리막길로 내려간 다음 우측 사면길을 버리고 능선으로 올라간다

무명봉(11:55)

우측 능선으로 내려와 조금전에 헤어진 등로를 다시 만난다

안부(11:56)

안부에서 올라서니 대성산으로 이어지는 편안한 사면길이 보이고 많은 선답자들이 그리로 갔는지

사면길로 시그널이 많이 걸려 있으나 직진으로 올라가면 족보가 있는 601.6m봉이 있다

무심코 편안한 길을 택하면 돌탑이 있는 601.6m봉을 놓치는 憂를 범할수가 있다

사면길을 버리고 직진으로 올라가니...

멋진 돌탑이 있는 601.6m봉에 도착한다

601.6m봉(11:58)

좌측으로 내려서서 조금전에 헤어진 사면길을 만나 맥길을 이어간다

간간히 철지난 겨우사리도 보인다

완만한 능선을 따라서 가니 송전탑이 보인다

NO를 알 수 없는 송전탑(12:06)

NO가 걸려있는 번호판이 우측 절개지로 있어 확인을 안하고 그냥 지나간다

국가지점번호 라바 0895 0097라고 적혀있다

송전탑에서 바라본 충북 옥천군 이원면 개심리의 모습

개심저수지 너머로 월이산으로 이어지는 마니분맥 능선이 보인다

개심리(開心里)는 마을 뒤로 천태산이 있으며, 앞으로는 이원천이 흘러나가는 전형적인 농촌마을이다.

자연마을로는 개심골(개심곡), 노루목(장항), 북개리, 살구정이(행정), 새말(신촌), 새터(신기), 장왜(남개리, 장화)

등이 있는데 개심골은 마을에 개심사가 있어서 붙여진 이름이고 노루목은 지형이 노루의 목처럼 생겼다 하여

생긴 지명이다

살구정이는 마을에 살구나무 정자가 있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장왜는 새김리의 중심 마을로, 새말은 장왜 서북쪽에,

새터는 서남쪽에 새로 된 마을이라는 뜻이다. 마을 명소로는 개심저수지가 있다.

대성산을 바라보면서 송전탑을 통과한다

대성산 기도원 갈림길(12:08)

안부(12:12)

안부를 지나 빡세게 오르막으로 올라간다

645.8m봉(12:18)

잠시후에 가야할 대성산이 보인다

주변에 철쭉나무들이 많이 보인다

능선에서 살짝 좌측으로 꺽어서 내려간다

송전탑을 건설하면서 만든듯한 넓은 임도가 나온다

임도를 따라서 안부로 내려간다

꼬부랑재(570m:12:23)

충남 금산군 군북면 상곡리와 충북 옥천군 이원면 개심리 큰화장골 경계에 있는 고개로

이원로터리클럽에서 이정표를 세워놓았다...아마 고개길이 꼬불꼬불해서 붙은 지명인 듯 하다

대성산 가는 길

등로에서 바라본 옥천군 이원면 의평리의 모습

의평리(義坪里)는 대성산이 마을을 병풍같이 감싸고 있으며 앞으로 이원천이 흐르는 전형적인 농촌 마을이다. 자

연마을로는 건넛들(의평), 구억담, 아래말 등이 있으며, 건넛들은 장항리 앞 들 건너편이 되므로 붙여진 이름으로

의평이라고도 하며 마을이름은 건넛들(의평)에서 유래했다는 설과, 이 마을에 김일려 부자의 효자문이 있으므로

효자와 의로운 사람이 많아지라는 뜻에서 의 자와 평 자를 넣어 의평리라 하였다는 설이 있다

노랑제비꽃 자매(꽃말:수줍은 사랑)

랑제비꽃의 전설

옛날 아름다운 이아라는 소녀가 양치기 소년인 아티스를 사랑했다

그런데 아티스를 귀여워하던 미의 여신 비너스는 그녀의 아들인 큐피드를 시켜 이

아에게는 영원히 사랑이 불붙는 황금 화살을 아티스에게는 사랑을 잊게 하는 납 화살을

쏘게 하여 둘을 갈라놓았다

이아는 애타게 아티스를 원했지만 아티스는 거들떠 보지도 않자

이아는 결국 비통한 나머지 울다 지쳐 죽고 말았다고 한다

이것을 본 비너스는 안쓰러운 마음이 들었는지 이아를 작고 가련한

꽃으로 만들어 주었는데 이 꽃이 바로 제비꽃이라고 한다

대성산으로 향하는 오르막이 시작된다

도마뱀도 보이기 시작한다

대성산 가는 길에서 바라본 옥천군 이원면의 모습

이원면(伊院面)은 신라 때는 소리산현(所利山縣)·이산현(利山縣)·관성군(管城郡)에 속하였고, 고려시대에는

성산부·옥주에 속하였으며, 1413년(조선 태종 13) 이남면(利南面)·이내면(利內面)으로 분할되었다가,

1739년(영조 15)에 8개리를 관할하였다. 1929년 지금의 명칭으로 바뀌었다.

북쪽은 옥천읍, 동쪽과 남쪽은 영동군 심천면(深川面)· 양산면(陽山面), 서쪽은 충남 금산군 군북면 (郡北面)과 접한다.

대체로 면의 경계지역은 산지로 이루어져 있으며, 옥천군에서 서대산(西臺山:905m)에 이어 두번째로 높은 대성산

(大聖山:705m)이 남북으로 길게 뻗어 있다. 서쪽으로 장룡산(壯龍山)과 매봉이 솟아 있고, 동쪽으로 마니산

(摩尼山:639m)·월이산(月伊山:551m)이 V자형을 이루며 솟아 있으며, 북쪽에는 도덕봉(道德峰:407m)·

철봉산(鐵峰山:450m)이 면과의 경계를 이루고 있다.

문화재로는 옥천 두암리 삼층석탑(충북유형문화재 120), 옥천 경현당(景賢堂:충북유형문화재 158), 충의공

김문기 유허비(忠毅公金文起遺墟碑:충북기념물 44), 옥천 송우암 유허비(宋尤庵遺墟碑:충북기념물 45), 창

주서원 묘정비(滄州書院廟庭碑:충북기념물 105), 옥천 이원리 봉수지(伊院里烽燧址), 이원리 성지(城址),

관사지(關寺址), 용문영당(龍門影堂) 등이 있고, 그밖에 금강(錦江) 상류에 서식하는 금강의 어름치(천연기념물 238)가

있다.

대성산 갈림길(12:35)

이원로타리클럽에서 ‘대성산 정상 705m’라는 이정표와 대성산 등산로, 메모장 박스가 있다.

실제 대성산 정상은 이곳에서 직진으로 20여m정도 더 가야 있고 맥길은 다시 이곳으로

되돌아서 와야 한다

대성산 갈림길의 모습

대성산에 왔다가 되돌아와서 내려가야 할 맥길의 모습

갈림길에 있는 대성산 등산 안내도...망가져서 알아볼 수가 없다.

스텐레스 박스안에 있는 방명록

대성산(大聖山:705.9m:12:36)

충남 금산군 군북면 상곡리와 충북 옥천군 이원면 의평리의 경계에 있는 산으로

정상에는 정상석과 3등 삼각점이 있다.

대성산에는 옛날부터 큰 성현이 나온다는 전설이 전해지는데 대성산이란 이름도 여기서 유래했다고 한다. 실

제로 이 산자락에 위치한 마을에서는 학자와 효자가 많이 나와 마을이름을 ‘의평리’라 하고 대성산 최고봉을

‘문필봉(文筆峰)’이라 부른다고 하며 충남.북의 경계 능선에 있는 산으로 옥천군에서는 서대산 다음으로

2번째 높은 산이다

대성산은 이원면 분지의 젖줄을 대는 모산으로 북으로는 장령산, 남으로 천태산과 이어지고 주능선 북쪽과

동쪽은 충북 옥천군 이원면에 서쪽은 충남 금산군 군북면과 접하고 있으며 대성산 동쪽으로 패여 내려간

계곡으로는 큰폭포와 작은폭포가 기암괴봉과 어우러져 여름이면 시원스런 경치를 자랑한다.

작은폭포 앞에는 주변의 풍광을 시로 지어 새겨놓은 비석이 세워져 있고 정상의 오른쪽으로 오롯이 솟아있는 것이

국사봉인데 옛날에는 이 봉우리에 쇠말(철마)이 있었고 마을 사람들이 산제를 지냈다고 한다.

대성산 정상은 사방이 숲에 가려 있어 조망이 어렵다. 북서쪽으로는 서대산과 장령산, 고리산(환산)이 옥천읍과

함께 펼쳐지고 북동쪽으로는 경부선 철길이 지나는 이원면 소재지가 멀리 속리산, 구병산 등과 함께 조망된다.

대성산 정상의 정상석과 삼각점(△이원301/1980재설)

대성산 기슭에는 경관이 아주 뛰어난 계곡이 4개가 있는데 그중에 3번째 폭포에는

50cm의 높이로 오언절구의 漢詩가 새겨져 있는데 폭포를 예찬하기 위해 어느 선비가

비를 세웠다고 하며 비석에 새겨진 글귀의 영향으로 산이름을 데구름, 데구리 또는

덕운봉이라도 부른다

인증샷

잠깐 사이에 강풍이 불어대는 바람에 추워서 서둘러 왔던 길을 되돌아서 간다

다시 대성산 갈림길(12:42)

우측 아래쪽의 급경사로 내려간다

음지라 낙엽속에 땅이 살짝 얼어있어 꽤나 미끄럽다

안부 능선으로 내려선다

몸매는 S-Lain

안부(12:50)

천태산과 장령산의 안내판이 설치되어 있다

641.5m봉(12:53)

641.5m봉 정상에는 산벚나무 노거수 한그루와 커다란 웅덩이가 보인다

내리막길로 내려서니 키작은 소나무가 무성한 폐헬기장이 나온다

폐헬기장(12:56)

안부(12:58)

산수국...넌 아직도 넌 뭔 미련이 남아 있느냐?

꽃은 바람을 거역해서 향기를 낼 수 없지만,

선하고 어진 사람이 풍기는 향기는

바람을 거역하여 사방으로 번진다.

- 법구경 中에서-

다시 오르막으로 오른다

등로에서 바라본 옥천군 이원면의 모습...경부고속철도가 빠르게 지나가는데 미세먼지로 모든게 흐릿하다

독립군의 점심밥상(13:05~13:20)

바람을 피해 능선 아래 양지바른 곳에서 간단하게 식사를 마친다

다시 길을 나선다

586.1m봉(13:25)

좌측으로 내려간다

안부에서 다시 능선으로 올라간다

581m봉(13:30)

나뭇가지 사이로 가야할 매봉이 보인다

안부를 지나고...

능선으로 올라간다

이곳은 이제사 생강나무들이 기지개를 켜고 있다

지나온 대성산을 뒤돌아 본다

안부를 지나 매봉을 향한 빡센 오르막이 시작된다

매봉(鷹峰:599.5m:13:45)

충남 금산면 군북면 상곡리와 충북 옥천군 이원면 강청리의 경계에 있는 산이다.

매봉이란 지명은 다른곳과 비슷하게 봉우리가 ‘봉우리가 매의 부리처럼 생겼다’고

해서 붙혀진 지명이 아닐까?(범여의 생각 中에서)

산패가 2개나 걸려있는 매봉 능선을 내려간다

가야할 장령산은 멀게만 느껴진다

내리막으로 내려간다

잠시후에 가야할 622.4m봉도 까칠하게 보인다

사면길로 내려가니...

넓은 고개가 나오는데 지내재란다

지내재(480m:13:48)

충남 금산군 군북면 상곡리 진의골과 충북 옥천군 이원면 강청리 동림골 경계에 있는 고개로

진니말, 진의(眞義)말, 지네말이라 부르는데 유래는 마을 동쪽에는 지난날 상곡리 사람들이 충북

이원으로 장을 보러다니던  예전에 지네가 많이 살았다고 한다. 때문에 그 밑에 동네가 입지하므로

지니말, 변하여 지네말, 진의말이 되었다는 것이다. 또 다른 설은 풍수에서 마을 뒷산의 형국이

지네혈에 비정되기 때문에 지네말, 변하여 지니말, 진의말이 되었다는 것이다.

 

일제강점기 당시 러시아령이었던 연해주와 북만주에서 조직된 독립운동단체인 창의단 소속

독립운동가 전좌한·김응선 의사 등이 1926년 1월31일에 조선총독부와 조선은행, 종로경찰서 등을

폭파하기 위해 폭탄을 만들어 시험했던 곳이라고 한다.

다정한 다둥이 가족

완만하게 사면길로 올라간다

암릉구간을 지나 622.4m봉으로 올라간다

622.4m봉(14:05)

622.4m봉을 내려간다

뚜렸한 직진 능선을 버리고 좌측으로 내려간다

등로가 갑자기 희미하다

까칠한 암릉구간을 지나고...

철쭉 군락지를 지나 내리막길로 내려선다

금산고개(480m:14"17)

충남 금산군 군북면 상곡리 인내골이 마을에서 충북 옥천군 이원면 장찬리 장찬저수리로 이어지는 고개이다

반갑습니다

금산고개로 올라서니 암릉구간이 길을 막아서는 바람에 좌측으로 우회를 한다

등로에서 바라본 장찬저수지의 모습

능선길을 걷는데 강한 바람은 그칠줄을 모른다

능선 아랫쪽은 암릉구간이나 등로는 육산(陸山)으로 되어있어 큰 불편은 없다

칼바위 능선이라 좌측으로 우회하면서 걷는다

안부(14:24)

등로는 잘 보이지 않고...

까칠한 암릉구간으로 올라간다

장찬 저수지 뒷쪽으로는 도덕봉이 보인다

조그만 봉우리를 넘어서...

완만한 내리막길로 내려간다

안부를 지나서 다시 내리막길

잠시후에 가야할 566.4m봉이 나뭇가지 사이로 보인다

안부로 내려섰다가 올라서니 아찔한 암릉구간이 시작된다

안부(14:33)

암릉구간으로 올라간다

계속되는 까칠한 암릉구간

566.4m봉(14:43)

앙증맞은 돌탑 2개가 있는 566.4m봉에서 좌측으로 맥길을 이어간다

등로는 생각보다 뚜렸하다

암봉(14:45)

암봉에서 바라본 서대산은 아예 미세먼지에 갇혀 버렸다

암봉에서 서대산까지는 손에 잡힐듯이 가까우나 맥길은 옴(Ω)자 형태로 2구간을 거쳐서 한참을 돌았다.

등로에서 바라본 금산군 군북면 상곡리의 모습

상곡리(上谷里)는 동서남북이 완전히 산악지대로 조성되어 그 안쪽으로 분지처럼 아늑한 곳에 부락이

형성된 상곡리는 보광리를 통해서 들어오는 군도와 남쪽에서 산안리를 통해서 들어오는 군도가 큰 길이다.

산악지대에 자리한 지역으로서는 교통이 편리한 편에 속하며, 옛날에는 동쪽으로 충청북도 옥천군

이원면으로 넘어다니는 고개가 유일한 길이다. 이 고개는 지네가 많아서 지네재로 불린다. 남쪽으로는

죽말에서 산안리 자진배미로 넘어다니는 느지목재와 북쪽으로는 옥천군 옥천읍으로 넘어다니는

사목이재가 큰 고을로 드나드는 유일한 통로였었다.

조선시대 말기에는 금산군 북일면의 지역으로서 긴 골짜기 위가 되므로 웃골 또는 상곡이라 부르던 지역인데

1914년 행정구역 개혁 때에 하곡리를 병합하여 상곡리라 하였다.

잠시후에 가야할 장령산이 보인다

암봉(14:45)

상곡리 너머로 아침에 출발한 신안고개가 희미하게 보이고 한달전에 걸었던 지난구간의

국사봉-비들목재-방화봉-서대산으로 이어지는 마루금 능선이 보인다...한참을 돌아서 온 셈이다

미세먼지에 갇혀버린 서대산을 바라보는 범여의 맘은 착잡하다

언제쯤 시야가 확트인 산길을 걸어볼까?...청정지역인 이곳도 이러니

서울에 사는 중생들의 고통은 얼마나 힘들까.

장령산으로 이어지는 맥길을 바라본다

안부(14:54)

다시 능선으로 올라간다

등로에서 바라본 옥천군 이원면 장찬리(里)의 모습

장찬리는 장령산 기슭에 아담하게 자리잡아 산수가 뛰어나며 마을 앞으로는 군내 최대의 장찬저수지가 있다.

장찬 저수지 건설로 인해 기존의 마을이 수몰되어 현재 거주하고 있는 주민은 적다.

자연마을로는 장찬골(장찬곡) 등이 있는데 마을 골짜기가 장차게 길므로 장찬골 또는 장찬곡이라

이름 붙었는데 장찬리 지명의 유래가 되었고 문화유적으로는 800여년 대를 이어 백자를 구워냈다고

전해지는 옹기터가 있다.

안부를 지나고...

잠시후에 오를 574m봉의 모습

암릉구간을 우회하면서 걷는다

오늘 내가 걸었던 대성산, 매봉 등의 능선을 뒤돌아 본다

장찬저수지 뒷쪽으로 보이는 도덕봉(峰)의 능선

도덕봉(峰:407m)은 충청북도 옥천군 옥천읍, 동이면, 이원면 경계에 있는 산으로 도덕봉이나

도덕산이란 지명은 전국적으로 다수 분포하는 산 지명으로 조선 시대 다수 생성된 유교적인 지명이다.

이곳 도덕봉은 조선 시대 고문헌이나 고지도에는 등장하지 않다가 『조선지지자료』에 "도덕봉 ·

도덕곡()은 이남이 소면 남상리에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 자료에는 도덕봉과 함께 산 지명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이는 도덕곡도 함께 실려 있다. 최근 자료인 『한국지명총람』에도 도덕봉이 소개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가야할 장령산의 모습

574m봉(15:15)

힘들게 574m봉 정상에 올라선다

정상에는 선답자들의 시그널들이 바람에 심하게 흔들리고, 산패와 깨진 삼각점,

“돌메기산”이란 코팅지가 보인다...이곳부터는 분기점부터 같이해온 금산군과

작별을 하고 좌.우가 온전히 충청북도 옥천군으로 들어선다

돌메기산이라...

돌메기란 단어를 어학사전에서 찾아보니 ‘도루묵’의 방언이라는데 그건 아닌듯 하다.

또 다른 자료를 찾아보니 돌메기, 돌매기, 도래기라는 지명은 주로 물이 도는 곳이나

반도처럼 툭 튀어나온 지명을 말하는데 내가 지금 산 위에 있어 지형을 확인할 수가 없다

574m봉의 깨진 삼각점(△이원 409/1980재설)

우측으로 꺽어져 장령산 방향으로 내려간다

내리막으로 내려간다

휴양림 관리사무소 갈림길(15:22)

장령산 휴양림을 말하는데 장령산 자연휴양림은 옥천군청에서 관리하며 1994년 6월에 개장하여

수용인원은 최대 2,500명이며, 금천계곡이 휴양림을 가로지르고 어름치(천연기념물 238호)가 서식한다

완만한 능선으로 올라가니...

능선이 나오고...

암릉구간을 지난다

장찬저수지 방향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드세다.

오후가 되었는데도 바람이 잦아들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무명봉(15:29)

완만한 능선을 따라서 걸어가니 헬기장이 나온다

헬기장(15:34~40)

헬기장에서 바라본 충남의 최고봉인 서대산의 모습

바로 코 앞에 있는듯한 서대산이 미세먼지에 완전히 갇혀버린 느낌이다

오지중에 오지로 꼽히는 이곳도 이렇게 미세먼지가 심한데 도시는 얼마나 심할까?

언제쯤 산에서 미세먼지 걱정 안하고 깨끗한 산을 보면서 걸어볼 수 있을라나

헬기장에 있는 벤취에 앉아 초코파이 하나로 원기를 보충하며 약간의 휴식을 취한다

내가 오늘 걸어왔던 길을 뒤돌아 본다.

맨 뒷쪽에 있는 천태산 갈림봉(감투봉)에서 투구봉~대성산~매봉~돌메기산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다시 길을 나선다

바람의 강도는 더 심해지고...얼마나 심한지 몸을 가누가가 힘이 들 정도이다

장령산으로 향하는 본격적인 오르막이 시작된다

멋진 암릉구간을 지난다

通天門인가?

장령산 가는 길

좌측으로 편안한 사면길이 나 있으나 직진 능선으로 올라가 본다

571.4m봉(15:50)

능선을 지나...

조금전에 헤어진 사면길을 다시 만난다

등로 좌측으로 장령산자연휴양림 내려가는 뚜렸한 등로가 보인다

장령산 정상이 보이기 시작한다

장령산(場靈山:654.5m:15:57)

충남 옥천군 군서면과 이원면, 옥천읍의 경계에 있는 산으로 정상에는 정상석이 2개나 서있고

구조이정목과 이정표, 장령산 등산안내도, 넓은 공터에 쉼터 시설이 있다.

남서쪽으로 서대산(903.7m)과 이웃하며 사목재를 경계로 북쪽의 마성산과 마주하고, 산 정상에서

북쪽을 향해 능선이 완만하게 마성산과 용봉·삼성산으로 이어져 동쪽의 옥천분지를 감싸고 있으며

서쪽 금산리 방면은 1991년부터 각종 편의시설과 주차장 등이 개발되어 휴양림으로 조성되었다

서쪽 기슭에는 일출과 운해로 유명한 용암사가 있는데 CNN이 선정한 한국의 아름다운 곳 50에 선정된 곳이기도 하다.

국립지리원에서 발행하는 대한민국 공식 지도에 이 산의 지명이 장용산(壯龍山)이라고 표현되어 있었는데

1995년 5월 열렸던 군 지명위원회(당시 위원장 박남규 전 군수)가 장룡산(壯龍山)을 장령산으로 고치는

‘지명개정안’을 심의·의결해 국립지리원 중앙지명위원회에 제출했고 이 개정안이 1999년 5일 1일 받아 들여져

중앙지명위원회가 `장령산'(長靈山)으로 지명을 개정 고시했다

장령산 정상에 있는 안내도

장령산 (長靈山)은 불가(佛家)에서는 ‘신령스러운 산’이란 뜻이며, 옥천이 소개되고 있는 ‘동국여지승람’이나

‘신증동국여지승람’ 등 조선시대까지 발 간된 각종 지리지 등에 뚜렷이 지명이 나타나고 있지는 않으나

1935년에 발간된 ‘조선환려승람(朝鮮?輿勝覽)' 옥천의 산천(山川) 편에는 ‘壯靈山’(군의 서남쪽 15리, 삼청리 뒤)

이라고 표기하고 있어 장령산이 본래의 명칭임을 밝히고 있어 이 산은 장용산이 아닌 장령산이 확실한 듯 하다

인증샷

바람이 드세고 날씨가 너무 추워서 서둘러 길을 나선다

완만한 내리막길로 내려간다

갈림길(16:03)

갈림길에 있는 장령산 자연휴양림 등산안내도

갈림길이 있는 무명봉에서 우측으로 내려간다

급경사의 내리막길로 내려간다

사모바위(?)

제도권 등로라 그런지 구조이정표가 자주 보인다

갈림길(16:10)

갈림길에 있는 장령산 휴양림 등산안내도

직진으로 올라간다

633.7m봉(16:13)

직진으로는 장령산 기슭에 있는 용암사로 가는 길이고 맥길은 우측으로 꺽어진다

용암사 전경(옥천군청 홈페이지 인용)

대한불교조계종 제5교구 본사인 법주사의 말사로 신라 진흥왕 13년(552)에 창건되었다는 고찰이다. 

창건주는 천축에 갔다가 귀국한 의신이다. 절 이름은 경내에 있는 용처럼 생긴 바위에서 유래했다. 

신라의 마지막 왕자인 마의태자가 금강산으로 가던 도중 용바위에서 서라벌이 있는 남쪽 하늘을 보며 

통곡했다는 설도 있다.

 

그러나 지금의 모습에서 세월의 흔적을 찾을 수는 없으며 사찰은 근래에 새로 지어졌다. 

임진왜란 때 병화로 폐허가 되었다는 설이 있어 오랫동안 복구되지 못한 채 흔적만 남아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며, 일제강점기에 일본인이 파괴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창건 이후 중수·중건에 관한 기록이

남아 있지 않아 절의 역사를 논하는 것도 어렵다. 다만 고려시대 양식의 석탑과 마애불상이 남아 있어

고려시대에는 법통이 이어져왔을 것으로 짐작할 따름이다.

붉은 물감으로 칠해진 마애불

마의태자가 신라 멸망을 통탄하며 유랑하던 중에 이곳에 머물다가 떠나자 그를 추모하는 사람들이 

조성했다 하여 마의태자상이라고도 하는 마애불은 기도하면 소원을 들어주는 영험이 있다고 해서

기도하러 찾아오는 사람이 많다. 

 

그밖에도 용암사 쌍삼층석탑(보물 제1338호)이 있는데 나란히 마주하고 서 있어 쌍삼층석탑이라 부른다.

두 탑은 상륜부의 모습만 다를 뿐 같은 형태를 하고 있다. 기단 위에 놓인 3층 탑신이 체감률이 적어

안정감이 떨어지나 각 부의 양식과 석재의 결구 수법도 매우 간략화한 양식을 보인다.

용암사 가는 길

희미한 등로를 따라서 우측으로 급경사의 내리막길로 내려간다

다시 좌측으로 꺽어져 급경사로 내려간다

너의 꽃말

양광모

진달래는 불타는 사람

벚꽃은 흩날리는 이별

목련은 순결한 그리움

작은 꽃 한 송이

너는 나의 운명

진달래처럼 사랑하다

벚꽃처럼 이별해도

목련처럼 그리워할

너의 꽃말은

나의 운명

맞은편은 지나온 대성산(뒷쪽)과 매봉이 미세먼지로 인해 흐릿하게 보인다

갈림길(16:28)

독도에 상당히 주의해야 할 구간이다

뚜렸한 직진 등로를 버리고 좌측의 등로가 전혀 없는 곳으로 내려간다

희미한 등로를 따라서 내려가니...

반가운 선답자의 흔적이 보인다

곱구나

반갑습니다

급경사의 내리막길로 내려간다

등로는 보이지 않고...

조금을 더 내려가니 우측에서 내려오는 뚜렸한 등로를 만나서 좌측으로 맥길을 이어간다

뚜렸한 등로를 따라서 내려간다

등로는 보이지 않고 내가 길을 만들어서 내려간다

돌탑공원이 있는 곳을 지난다

가재고개(16:42)

돌탑공원 초입의 옴팍한 곳이 지형도상의 가재고개이다.

돌탑공원으로 올라오는 도래 아랫쪽이 옥천읍 가풍리 가재마을인데

아마도 가재마을 윗쪽에 있는 고개라 가재고개라 불렀던 모양이다

옥천군 옥천읍 가풍리에 있는 가재마을은 가척이라고도 부르는데

가척마을은 근처의 산형이 가재처럼 생겼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등로는 고속도로 수준이다

내리막길로 내려간다

안부(16:45)

우측 아래로는 장천저수지가 보인다

완만한 능선으로 올라간다

무명봉을 지나고...

등로 좌측 아랫쪽으로는 조그만한 가풍저수지가 보인다

무명봉(16:50)

뚜렸한 등로를 따라서 맥길을 이어간다

완만한 등로를 따라서 내려간다

현오색(꽃말:희소식)이 군락을 이루고 있다

안부(16:52)

선답자들의 흔적이 반갑기만 하다

지풍마을 안부(17:05)

가풍리 지풍마을 윗쪽에 옴팍한 안부이다

옥천군 옥천읍에 있는 가풍리(加豊里)는 장령산, 도덕봉 등으로 둘러싸여 있어 골짜기가 많다.

근처에 삼청저수지, 장찬저수지가 있는 농촌마을인데 자연마을로는 가척(가재골,가재동),

뒹이(두왕리), 양지동, 원각 등이 있으며, 가풍리에서 발원하여 금강으로 흘러드는 금구천(金龜川)

발원지가 있고 수령 200년이 넘어 옥천군 보호수로 지정된 가풍리 느티나무가 있는 마을이다

지풍마을 안부 옆에는 청주한공과 배부인 달성서씨 묘지가 있다.

이곳에서 산행을 종료하다

다음구간을 편하게 걷기 위해서는 솔치재까지 가야하는데 남은 거리가 2km이상이

남았기에 현재의 내 컨디션으로는 불가능할 것 같아 이곳에서 산행을 종료한다

마을로 내려간다

과수원이 나오고 가풍리 지퐁마을이 보이기 시작한다

지풍마을로 내려간다

솔밭버스 정류장(17:12)

공장 우측 뒷쪽 옴팍한 곳이 솔치고개이다... 저곳까지 왔으면 다음구간이 편했을텐데...

버스정류장에서 옷을 갈아입고 베낭을 정리하는데 마을에서 트럭한대가 나오기에

손을 들었더니만 차을 세워주는데 갑자기 양넘 지갑 주운 느낌이다

탑차를 타고 편하게 옥천역까지 왔다.

옥천역(16:25)

지풍마을에서 주택공사를 하고 나오는 트럭을 타고 편하게 옥천역 도착한다

그러고보면 난 참 앵벌이(히치)에 관한한 운이 참 좋은편이다

옥천역에 도착하여 서울가는 열차표를 예매하려니 가장 빠른 시간대가 18시 48분이란다

1시간 반 가까이를 어떻게 기다려...

참고로 옥천에서 서울로 직행하는 버스도 없고 KTX같은 빠른 열차도 없다.

대전이란 대도시 근교도시라 모든게 대전 생활권으로 모드가 맞춰 있어 그런 모양이다

역을 나와 도로건너 우체국앞 버스 정류장으로 향한다

옥천역 광장에는가수 이동원과 박인수가 불러서 유명한 노래 ‘향수’와 ‘고향’이란 詩를 쓴

옥천출신의 시인 정지용님의 詩碑가 있다

우체국 건너편 버스정류장에서 25분정도를 기다려 대전복합터미널로 향하는 607번 버스를 탄다

옥천역 역무원의 이야기로는 옥천에서 대전까지 가는 버스는 30분이면 된다고 했는데

이 버스는 대전 시내에 접어들어 구석구석 빙빙 돌아서 대전복합터미널에

도착하는데 거의 1시간 가량이 소요됐다.

대전복합터미널(18:47)

터미널에 도착하자마자 서울로 출발하려고 하는 버스가 있어서 표를 예매하고 플렛홈으로 뛰어 간다

0알에 요령소리가 나도록 뛰어 버스에 올라타니 버스는 출발하고

난 습관처럼 깊은 잠에 빠졌다가 일어나니 서울에 도착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