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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범여(梵如)의 世上사는 이야기
서화(장령)지맥(終)

서화(장령)지맥 제5구간 - 나분티고개에서 대청호/금강합수점까지

by 범여(梵如) 2021. 4. 19.

☞ 산행일시: 2021년 04월 18일

☞ 산행날씨: 맑은 날씨에 강한 바람

☞ 산행거리: 10.8km / 5시간 35분 소요

☞ 참석인원: 나홀로 산행

☞ 산행코스: 나분티재-갈림길-NO7송전탑-안부-도로삼거리-밀양손공 묘-마성산-안부

                 330m봉-안부-289.0m봉-갈림길-고개-갈림길-318.3m봉-수변전망대 갈림길

                 며느리재Ⅱ-며느리재Ⅰ-쉼터봉-300m봉-안부-공터봉-290m봉-쉼터-무명봉

                 조망바위-쉼터-333.8m봉-안부-310.6m봉-무명봉-안부-조망바위-420m봉

                 이슬봉-쉼터-무명봉-참나무골산-400m봉-NO36송전탑-쉼터 해주오공 묘

                 고령신공 묘-장계리 버스정류장-벙커봉-무명봉-영일정공 묘-카페프란스

                 대청호/금강합수점

☞ 소 재 지: 충북 옥천군 옥천읍, 동이면, 안내면, 군북면

 

4월은 운동하기 참 좋은 계절이지만 자꾸만 떨어지는 체력이 예전같지만 않다

옛날 어르신들이 하신 말 ‘작년 다르고 올해 다르다’는 그 뜻을 뼈저리게 느낀다.

이번달에는 여러군데 모임과 친구들이 골프 라운딩을 하자는 제안이 많이 들어온다.

여태껏 수술이후 한 2년 가까이 골프를 안 했더니만 불러주는 사람이 거의 없더라.

 

수술 이후에 2여년 동안 골프를 않한 이후는

1, 맥산행을 하면서 산에 미쳤던 탓에 골프에 대한 흥이 많이 떨어졌고

2, 수술이후에 체력 저하도 있었지만 수술 부위가 좌측 겨드랑이 아래라서

    샷을 할 때 수술부위의 통증이 아직도 심하다보니 거기에 신경을 쓰다가

    샷감을 놓치고 비거리도 확 떨어져 거리가 안나니 재미가 없었다.

예전에 늘 80대 초.중반을 유지하던 핸디가 통증으로 인해 거리가 안나니 요즘은 나가면 백돌이다

지인들과 친구들의 라인딩 하자는 제안이 잘 들어오지 않다보니 라운딩할 기회가 많지 않았다.

그러다보니 왕따를 당하는 느낌이라 기분이 썩 않좋았는데 이젠 불러주면 무조건 나간다 

 

보기 플레이면 어떻고, 백돌이면 어떠랴...맑은 공기 마시고 푸른 잔디 밟으면서 지인들과

만나는 자체를 즐기다보니 주위에서 라운딩 제안이 들어오면 무조건 OK하니 4월에는

여기저기서 불러주는 사람들이 꽤나 많아서 일주일에 한.두번씩 꼬박꼬박 나가는 편이다.

 

저승 문턱까지 갔다온 범여가 이렇게 걸어면서 지인들과 라운딩을 즐긴다는 자체가 즐거운데...

이번주에도 월요일날에도 대학원 AMP 동문들과 골프 모임이 있어 산행거리가 짧은 곳을

고르다가 보니 지난 겨울부터 시작하여 마지막 구간만 남겨놓은 서화(장령)지맥을 택하게 된다   

 

 

오늘 산행구간의 지도

영등포발 → 옥천행 열차표

새벽 4시에 일어나 오늘의 산행 거리가 짧으니 간단하게 베낭을 챙겨서 식구들이

잠에서 깰까봐 도둑고양이처럼 집을 나와서 대중교통을 3번이나 갈아타고 영등포역에

도착하니 05시 45분...열차를 탑승하려고 며칠전 인터넷으로 예약한 열차표를 보니

이게 뭐여...옥천가는 열차표가 아닌 논산가는 열차표를 예약했네.

잘못 예매한 열차표

할 수 없이 논산가는 열차표를 취소하고 옥천가는 열차표를 예매하니 출발 10분전이라

10%의 페널티를 물고 옥천가는 열차표를 다시 구매한다

부산으로 가는 무궁화 열차에 올라서니 집에서 일찍 나온 탓인지 늘 습관처럼 잠이 쏟아진다

깊은잠에 빠졌다가 눈을 뜨니 열차는 신탄진을 지나서 대전으로 향하고 있었다

옥천역(8:17)

예전된 시간에 한치의 오차도 없이 옥천역에 도착하여 아침 식사를 해결하려고

역전앞에 있는 식당으로 향한다

오늘은 산행 거리가 짧아서 도시락을 싸오지 않아서 식당에서 선지 해장국으로

아침식사를 해결하고 2주전 지풍마을까지 타고갔던 택시를 호출하여 나분티 고개로 향한다

나분티재(09:00)

옥천군 옥천읍 교동리와 수북리의 경계에 있는 고개로 정상에 우측에는 애플 모텔과 이동통신탑이

보이고 좌측에는 교동식품이라는 꽤나 큰 규모의 공장이 있고 교통량도 많은편이며 지명의 유래는

옛날 교동사람들이 나무를 많이해다 땠다하여 나무가 많은 재, 즉 나무티(나무티재라 불리우다

전해오는 과정에서 나분티로 변음(變音)이 되었다고 하며, 부근에 나분 . 티물이라는 찬샘이 있다.

이 샘은 물이 하도 차가워 예전에 옥천 사람들이 여름철에 이곳에 와서 등목을 하던 곳이라고 한다

2주만에 다시 나분티재로 왔다

옥천역에서 나분티까지 타고온 택시에서 내려서 산행을 준비한다(택시요금 6,000원)

산행을 시작하다(09:05)

애플 무인호텔 앞에있는 이동통신탑 사이로 올라간다

잡목에 풀이 돋아나기 시작하나 아쉬운대로 걸을만하다

갈림길(09:10)

들머리에서 희미한 능선을 따라서 올라오니 좌측에서 올라오는 능선을 만나서 우측으로 향한다

낙엽이 쌓인 등로에는 맥산행에서 자주 만나는 선답자들의 시그널이 보인다

등로 끄트머리에서 살짝 우측으로 내려선다

묘지 뒷쪽으로 맥길을 이어가는데 송전탑이 보인다

NO7 송전탑(09:12)

송전탑을 지나서 맥길은 좌측으로 이어지고...

마성산으로 향하는 맥길은 희미하다

묘지를 지나서...

내리막으로 내려선다

안부(09:15)

안부에서 올라 묘지 뒷쪽으로 올라간다

묘지를 지나니 탑차 적재함이 있는 묘지와 밭이 나온다

묘지에서 바라본 가야할 마성산의 모습

묘지 뒷쪽으로 맥길을 이어간다

조그만 봉우리를 지나서 맥길은 살짝 좌측으로 꺽어진다

계속해서 묘지를 만나고...

등로 좌측 아래로는 육영수여사 생가 근처에 있는 교동저수지가 보이고 그 너머로는 장령산 능선이다

농막 쉼터를 지나 내리막으로 내려간다

비닐하우스 옆을 통과하는데 개쉬키 2마리가 지랄발광을 한다

도로 삼거리(09:23)

우측의 시멘트 도로를 따라서 가면서 마성산을 바라본다

좌측에 있는 민가를...

지나자마자 도로를 버리고 전봇대가 있는 우측 능선으로 올라간다

능선에 오르니 선답자들의 시그널이 많이 보인다

등로가 조금 거칠기는 하나 아직은 그런대로 걸을만하다

묘지가 나오고 오르막이 시작된다

밀양손공 묘(09:32)

마성산으로 올라간다

묘비명의 판독이 잘 안되는 묘를 지난다

빡센오르막이 시작된다

유인창녕조씨 묘를 지나면서 급경사의 오르막이 시작된다

숨이 멈춰버릴것 같은 급경사의 오르막이다

감사합니다

산이 곧추선 느낌이다...급경사의 빡센 오르막이지만 牛步걸음으로 마성산을 향한다

예전같으면 이런 구간에는 몇번을 쉬었다 올랐지만 그래도 많이 좋아진

느낌인지 오늘은 한번도 쉬지않고 묵묵히 급경사의 능선으로 올라간다

등로는 보이지 않고 빡센 오르막길...험한 길이지만 걸을수 있다는게 얼마나 감사한 지...

급경사의 오르막길에는 쇠물푸레나무꽃이 흐드러지게 피어있다

철쭉도 요염한 자태를 뽐내고 있다

코가 땅에 닿을만큼 급경사의 능선에 올라 마성산 정상에 도착한다

마성산 정상에 걸린 산으로님의 흔적

마성산(馬城山:409.3m:10:05)

충북 옥천군의 옥천읍 교동리와 수북리 경계에 있는 산으로 정상에는 산불감시초소와

앙증맞은 돌탑, 이정표, 3등 삼각점, 이 지역 출신인 시인 정지용의 詩 “홍춘”이 기록된

정상석이 있고 옥천읍내가 한 눈에 보이는 옥천읍의 진산이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마성산(馬城山)은 고을 북쪽 2리에 있다. 진산이다. 세상에 전하기를,

지방 사람들이 말의 조상에 제사 지냈으므로 이 이름이 생겼다고 한다."라는 기록이 있다.

마성산이 옥천군의 진산이며, 그 지명 유래가 말[馬]과 관련되어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여지도서』에 "마성산은 군 북쪽 2리에 있는 진산이다. (중략) 본래 지륵산으로부터 맥이 온다."라는

기록이 있어 마성산의 맥을 밝히고 있다. 이 밖에 『해동지도』와 『1872년지방지도』에도 당시 옥천군의

읍내면에 마성산이 표기되어 있다. 『한국지명총람』에는 마성산의 다른 명칭으로 '일자봉(一字峯)'이

기록되어 있는데, 산 모양(一)을 표현한 지명으로 보인다.

실제 옥천 구읍(舊邑) 뒤의 산 능선은 북동-남서 방향의 '일(一)'자 형태를 보이고 있다

마성산 정상에 있는 3등삼각점(△보은 324/2003재설)

옥천군내에는 3개의 마성산(馬城山)이 있는데 옥천읍 소정리와 군서면 금산리 경계에 용암사를

품고 있는 서마성산, 지형도에는 표기되어 있지 않지만 죽향리에 위치한 동마성산, 그리고 옥천읍의

진산이라는 이곳 교동리에 위치한 마성산이다.

산 남쪽 아래의 교동저수지 근처에는 시인 정지용 생가와 문학관, 육영수 여사의 생가, 그리고 아름다운

3개 봉우리가 연이어진 등산로, 사양길에 접어들었다지만 그 명성이 남아 있는 장계국민관광지를 차례대로

연결해서 돌아볼 수 있고, 이곳에서 서면 서대산과 장령산, 식장산, 환산이 한 눈에 보이는 곳이다

마성산 아래 교동저수지가 보이고 좌측의 나분티로 이어지는 도로 우측의 까만 기와집이

故 박정희 대통령의 영부인이셨던 육영수 여사님의 생가이고 그 근처에 정지용시인의 생가도 있다

故육영수 여사 生家...자료 펌

충북 옥천군 옥천읍에는 육영수 생가는 故육영수 여사가 나고 자란 집이 허물어진 채 터만 남아 있던 것을 복원해

2011년 5월부터 일반에 공개한 이 집은 1600년대 정승을 지낸 김씨가 처음 지어 살았고, 이후 송 정승, 민 정승 등

3명의 정승이 살았던 집이라 하여 ‘삼정승집’이라 불렸다. 육영수 여사가 태어나기 전인 1918년 육종관이 민 정승의

자손에게서 사들여 수리하면서 조선 후기 전형적인 충청도 양반가의 모습으로 변모했다. 99칸 집이었다는 이야기처럼

대문을 들어서면 사랑채, 건넌채, 안채, 뒤채, 행랑, 별당, 후원, 정자, 연못 등이 모습을 드러낸다.

흔히 이 집은 교동집(校洞宅)이라 불리우는 옥천지역의 명가로서 조선시대의 상류 계급의

건축구조를 대표할 수 있는 가옥이었다고 한다

옥천의 신라시대 지명은 고시산군이었으나 그 이후 통일신라시대에는 상주의 관성군으로 바뀌었다가

고려시대에 옥주(沃州)를 거쳐 조선시대에 옥천으로 변했다고 하는데 옥천(沃川) 이라는 이름은 강물이

풍부하고 토양이 기름지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한다.

 

옥주가 옥천으로 변한것은 조선 태종때의 일인데, 계수관 제도로 인하여 각 지역의 주요 거점 도시만 주(州)를

사용하도록 하고 기타 주(州)자가 들어가는 다른 도시는 모두 산(山) 이나 (川) 으로 변경 하도록 했다고 한다.

당시 경상도에 속하던 옥주는 태종의 명으로 보은, 황간, 영동, 청산과 함께 충청도로 소속 변경을 하게 되었는데

이미 충청도에는 주요 거점도시로 충주, 청주, 홍주, 공주가 있어 그 이름을 유지했고, 옥주는 옥천이 되었다고

한다.

우측으로 눈을 돌리니 지난 겨울에 걸었던 대전의 진산인 식장산이 흐릿하게 보인다

식장산 아래쪽으로는 백제 26대의 성왕이 관산성전투에서 신라군에게 패배하여 최후를 맞이한 곳이다

관산성은 고리산성 또는 환산성이라고도 하는데 백제 성왕은 538년에 서울을 웅진(熊津:충남 공주)에서

사비(泗沘:충남 부여)로 옮겨 안팎의 제도를 정비하고, 왕권강화에 힘써 중흥을 이루었다.

성왕은 신라 진흥왕과 함께 한강 유역을 되찾기 위해 고구려를 공격했다. 그 결과 백제는 한강 하류지역 6군을,

신라는 한강 상류지역 10군을 점령했다. 그러나 신라의 진흥왕은 553년 백제가 차지한 한강 하류지역을 빼앗았다.

이에 554년 백제 왕자 여창이 관산성을 공격하여 관산성 전투가 벌어졌다. 당시 관산성은 신라와 한강 하류지역을

연결하는 군사적 요충지였다. 처음에는 대가야군과 연합한 백제가 우세했으나, 신라군의 급습으로 성왕이 죽고 관산성

전투는 신라의 승리로 끝났다. 관산성 전투로 신라는 한강 유역에 대한 안정적인 지배권을 확보했고, 가야의 나머지

세력을 병합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다. 또한 중국을 통해 직접 선진 문물을 받아들이게 되어 비약적인 발전이 가능하게 되었다

정상석 뒷면에 기록된 정지용 시인의 詩 홍춘(紅椿)

춘椿나무 꽃 내 뱉은 듯 붉게 타고

더딘 봄날 반은 기울어

물방아 시름없이 돌아간다

어린 아이들 제 춤에 뜻 없는 노래 부르고

솜병아리 양지쪽에 모이를 가리고 있다.

아지랑이 졸음 조는 마을길에 고달퍼

아름아름 알어질 일도 몰라서

여윈 볼만 만지고 돌아 오느니

인증샷

마성산 동남쪽으로는 금강 너머로 초강(각호) 지맥능선이 보인다

2016년 2월에 백두대간 삼도봉에서 도마령까지 1구간을 끝내고 아직도 마무리 못한

초강(각호)지맥이 멋진 모습으로 산꾼을 설레게 한다

마성산 정상에서 바라본 옥천읍내 구읍(舊邑)의 모습

맨 뒷쪽의 높은 산이 충남의 최고봉인 서대산이 보이고 교동 저수지가 보이는 곳이 옥천읍내 구읍이다

옥천읍은 크게 두 군데로 권역이 나뉘어져 있는데 옥천역과 옥천 나들목을 중심으로 형성된

‘신신가지’와 아주 오랜 옛날부터 옥천을 다스리던 중심지였던 ‘구읍’이다.


구읍은 전통적으로 옥천의 중심지였으며 따라서 구읍엔 유서 깊은 문화재가 많이 남아 있다.

옥천향교와 옥주사마소라는 문화유산과 일제강점기 초등교육 시설의 면모를 확인할 수 있는

죽향초등학교 구교사가 보존되어 있다.

다시 길을 나선다

뒤돌아 본 마성산의 모습

마성산으로 내려서니 반가운 선답자들의 흔적이 보인다

마성산에서 내려서니 등로는 아주 좋으나 산악오토바이가 다니는지 등로가 파여 있다

좌측으로 살짝 꺽어져 내려간다

보기가 쉽지 않은 순백색 산벚꽃을 만나는 행운도 누린다

안부(10:20)

안부에서 오르막 능선으로 올라간다

330m봉(10:22)

오늘은 꽃길만 걷는 기분이다...지난주에 왕피남(금장)지맥 걸으면서 개고생한 것을 보상받는 느낌이다

능선에서 살짝 좌측으로 꺽어져 내려간다

무명봉을 지나 내리막 능선으로 내려간다

능선 좌측으로 벌목지가 나오고 시야가 열리면서 환산(環山)이 보인다

환산(環山:579m)은 충청북도 옥천군의 군북면 항곡리 추소리 증약리 환평리에 걸쳐 있는 산으로 예전에

봉수대가 있어서 조선 시대 초기부터 문헌에 기록된 산으로 『세종실록지리지』에 "봉화(烽火)가 2곳이니,

월이산(月伊山)은 이산현 동쪽에 있고, 남쪽으로 영동 박달산에, 북쪽으로 본군 환산(環山)에 응한다.

환산은 군의 북쪽에 있다. 서쪽으로 회덕 계족산에 응한다."라는 기록이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를 비롯하여

『여지도서』, 『대동여지도』, 『1872년지방지도』 등에도 환산 혹은 환산봉수가 표시되어 있다.

『조선지지자료』에는 "환평산(環坪山)[언문:골이산]은 군북일소면 감로리에 있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골이산 혹은 고리산의 뜻을 한자로 표기하면 '환산(環山)'이 된다. 『한국지명총람』에는 환산의 다른 명칭

'고니산(古尼山)'이 기록되어 있다. 이와 함께 환산 중턱 바위에 '고리' 자국이 있는데 옛날에 이곳이 바다가

되어서 배를 매었다는 전설을 소개하고 있다. 환산 남동사면에는 군북면 환평리 고무실이란 마을 지명도

이와 관련이 있다.

벌목지를 지나서 조그만 무명봉으로 올라 좌측으로 살짝 휘어진 다음 내리막으로 내려간다

안부(10:28)

능선에 올라 맥길은 우측으로 이어지는데 이 길이 대청호 오백리길이란다

이곳은 벌써 녹음이 우거져 한여름을 방불케 한다

289.0m봉(10:30)

내리막으로 내려가는데 산악오토바이로 인해 등로가 많이 파여있다

안부에서 오르막으로 올라간다

갈림길(10:32)

우측으로 올라가는 뚜렸한 등로가 보이나 맥길은 좌측으로 확 꺽어져 내리막으로 향한다

좌측으로는 선답자들의 흔적이 보인다

산악오토바이의 폐해가 상당히 심하다

고개(10:35)

옥천군 군북면 국원리 늘치재와 금강으로 이어지는 고개로 국원리쪽으로는

서낭당의 흔적같은 돌무더기가 보인다

고개의 국원리쪽 방향의 모습

넓은 공터가 보이는데 아마도 산악오토바이들 때문에 생긴듯 하다

갈림길(10:37)

이곳에서 마성산부터 같이 걸어온 대청호 오백리길은 우측의 내리막으로 향하고

맥길은 직진으로 이어지는데 갑자기 굉음소리가 울리면서 오토바이 한대가 올라온다

대청호 오백리길

지맥길

40대 중반쯤 된 친구가 오토바이를 타고 올라온다

오늘 산행을 하면서 처음으로 사람을 만나 이러저런 얘기를 나누다가 헤어진다

젊은 친구와 서로 인사를 하면서 헤어져 능선으로 올라가는데 으릉덩굴이 군락을 이루고 있다

으름덩굴

갓 열렸을 때는 초록이지만, 가을로 들어서면서 차츰 갈색으로 변하며 손가락 길이에 소시지처럼

생긴 열매는 익으면 세로로 활짝 갈라지며 솜사탕처럼 부드러운 하얀 육질을 그대로 드러내는데,

입에 넣으면 살살 녹는다. 굳이 비교하면 바나나 맛에 가깝다.

 

으름을 두고 사람들은 성적인 상상을 한다. 벌어지지 않은 열매는 발기한 남근을 상징하고, 벌어진

다음에는 여성의 치부를 연상케 한다. ‘임하부인(林下婦人)’이란 으름의 또 다른 이름은 옛사람들의

보는 눈도 지금의 우리와 별반 다르지 않았음을 말해준다.

으름덩굴은 다른 나무를 감고 올라가면서 자라며 무엇을 만나든지 감고 보는 특성을 가진 식물이다

한자 이름은 목통(木通), 혹은 통초(通草)라고 하는데, 거기엔 이유가 있다.

《본초도감》에는 “줄기에 가는 구멍이 있어서 양쪽 끝이 다 통하는데 한쪽 끝을 입에 물고 불었을 때

공기가 저쪽으로 나가는 것이 좋다”라고 했다. 이처럼 덩굴나무의 오래된 줄기는 가운데 있는 골속이

없어져 구멍이 생기는 수가 있기 때문이다.


으름덩굴은 다섯 개의 달걀모양 잎이 모여 손바닥을 펼친 것 같은 겹잎을 만든다.

흔히 볼 수 없는 특별한 모양새로 으름덩굴은 암수 한 그루지만 암꽃과 수꽃이 따로 핀다.

보랏빛 꽃잎은 세 장인데, 수꽃은 가운데에 여섯 개의 수술이 잘라 논 밀감 모양으로, 암꽃은

가운데가 바나나처럼 6~9개의 암술이 방사상으로 붙어 있는데 암꽃 꼭지에는 달콤한 점착성의

액체가 붙어 있어서 꽃가루가 여기에 놓이면 수정이 된다. 그러나 암꽃과 수꽃이 따로 피면서도

꿀을 가지고 있지 않아서 어떻게 수정이 되는지는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으름 중에 열매가 없는 석녀를 의외로 자주 만나게 되는데 아마 수정과정이 복잡한 탓으로 짐작된다

 

으름덩굴은 약재로도 널리 쓰였는데 《동의보감》에는 으름 줄기를 통초(通草, 으흐름너출)라 하여

 “다섯 가지 임질을 낫게 하고 오줌을 잘 나오게 하며 급체로 인사불성된 것을 풀어준다. 

몸이 붓는 것을 낫게 하며 몸살을 멎게 하고 구규(九竅)를 잘 통하게 한다. 말소리를 잘 나오게 하고 

과로나 과음으로 늘 자려고만 하는 것을 낫게 한다”고 했다. 또한 열매는 “위열(胃熱)과 음식을 먹고 

토하는 것을 낫게 한다. 대소변을 잘 나가게 하며, 속을 시원하게 하고 갈증을 멎게 한다”라고 했다. 

또 뿌리는 “목 아래의 혹을 치료하는 데 쓴다”라고 했다.

으름덩굴 군락지를 지나서 능선으로 올라간다

능선으로 올라서니...

각시붓꽃이 요염한 자태로 산꾼을 유혹한다

갈림길(10:45)

이곳이 지맥길에서는 아주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곳이다

직진의 뚜렸한 등로는 신산경표산의 장령지맥으로 이슬봉, 참나무골산을 지나서 장계유원지에서

맥을 다하지만, 대한산경표상의 서화지맥은 갑천(식장)지맥 금성산에서 북동쪽으로 분기하여

서대산, 국사봉, 대성산, 장령산, 도덕봉, 마성산을 지나 며느리재에 이르기 500m 전방의 318.3봉(늘치산성)

100m 전에서 좌측으로 늘치재, 교동육교, 285.2봉(우측 50m), △224.7봉, 235.9봉, 197.8봉, 199.5봉을 거쳐

대청호 상의 서화천과 금강의 합수점에서 끝나는 51.2km의 산줄기를 말한다.

이 산줄기로 인해 갈라진 좌측 물은 모두 서화천(소옥천)으로,우측 물은 금강으로 흘러들어

이 서화지맥이 소멸하는곳에서 갈라진 서화천의 물과 금강의 물은 비로서 하나가 된다.

 

신 산경표 장령지맥은 서화지맥과 시점은 동일하나 마성산에서 며느리재, 이슬봉, 참나무골산을 거쳐

대청호 앞 장계유원지에서 끝나는 차이가 있다.

 

...이상 대한산경표 산으로 박흥섭님 글...(수헌님의 자료인용)

 

나 역시 대한산경표의 신봉자로 이곳으로 가려고 했는데 갑자기 짧은 구간으로 산행을 변경하면서

공부를 하지않아 등로에 대한 자신이 없었고, 이곳은 개척산행이라 자료가 없어서 조만간 다시 오기로

하고 오늘은 신산경표상의 트랙을 따라서 장계 유원지로 향한다

완만한 능선으로 올라간다

지나온 마성산을 한번 뒤돌아 본다

318.3m봉(10:48)

정상에는 옥천군 향토사 연구회에서 세운 늘티산성 표시석이 있다.

선답자들의 산행기에는 이곳을 할애비산이라고 기록한 자료들이 보이나 실제 할애비산은

옥천군 군북면 국원리 섶밭댕이 윗쪽에 있는 봉우리를 말하며 지명의 유래는 알 길이 없다

318.3m봉 정상에 있는 늘티산성 표시석

늘티산성 표시석 뒷쪽에는 이렇게 적혀있다.

옥천군 군북면 국원리 며느리재 남쪽 해발 300m 봉우리에 위치한 삼국시대 산성이다

늘티산성은 퇴뫼형(삼태기형) 석축산성으로 둘레는 150m이다.

옥천군 동북부 지역인 안남 및 안내면 방향에서 금강으로 건너오는 적군을 경계하고

며느리재를 방어하기 위한 산성이다

이 산성은 지오리 산성과 축성법이 흡사하며 이웃한 국원리산성(할미성)과 함께 축성시기 및

사용국가 규명에 중요한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늘티산성 산줄기인 마성산에서 이슬봉 사이

또 다른 성터가 없어 늘티산성의 중요성을 알려준다

318,3m봉에서 우측 아래로 내려간다

급경사의 능선을 따라서 계속 내려간다

나뭇가지 사이로 금강이 보이기 시작한다

내리막 등로에서 만난 매화말도리

장미목 범의귀과에 속하는 넓은잎 작은키나무. 학명은 ‘Deutzia parviflora Bunge’이다.

꽃이 진 뒤 달리는 열매가 말발굽에 끼는 편자처럼 생겨서 붙혀진 이름으로 키가 2m 정도이며

밑에서부터 많은 가지가 나와 모여 자란다. 골짜기의 바위틈에 자라며, 땔나무로 쓰인다.

잎은 마주 나고 앞뒷면에 별 모양의 털이 나 있으며, 잎가장자리에는 조그만 톱니들이 있다.

흰색의 꽃이 5~6월에 줄기끝에 산방꽃차례로 피는데 연한 노란색을 띠기도 한다.

꽃잎은 5장, 수술은 10개이며, 암술대는 3갈래로 나누어지며 열매는 삭과각주1) 로 9~10월에 익는다.

나무껍질은 흑회색이고, 1년생가지는 녹갈색 또는 녹색이다.

산지의 계곡부 바위틈에서 자란다. 햇볕이 잘 들고 배수가 잘되는 사질양토에서 잘 자란다.

건조함, 추위, 공해에 대한 적응력이 좋고, 맹아력도 좋은 편며, 매화말발도리는 한국에서 자라는

말발도리속(―屬 Deutzia) 식물로 4월에 흰 꽃을 피우므로 '매화'라고도 부르며, 잎겨드랑이에서

1~3송이씩 모여 피며 잎에는 별 모양의 털이 나 있으며, 수술대 양쪽으로 화살날개처럼 생긴

돌기들이 달려 있고 열매를 가을에 채취하여 말려서 약용한다. 아토피, 피부염, 심한 가려움증에 효능이 있다.

급경사의 내리막을 다 내려온 모양이다

수변전망대 갈림길(10:52)

직진의 국원리. 이슬봉 방향으로 맥길을 이어간다

나무계단을 따라서 며느리재로 내려간다

며느리재Ⅱ(10:56)

우측으로는 옥천군 동이면 석탄리 안터마을로 내려가는 길이다

 

석탄리(石灘里)는 원래 군동면 지석리와 직탄리가 합하여진 마을로 후에 동이면에 속하여 오늘에 이른다.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 때 군동면의 직탄동, 지속리, 지장리, 양이리의 각 일부를 병합하여 지석리의 석(石)자와

직탄리의 탄(灘)자를 취하여 석탄리라 하고 동이면에 속하였다. 지석리라 부르게 된 것은 안터마을에 고인돌

즉 지석묘가 있었기 때문에 지석리라 부르게 되었으며, 직탄리는 "피실나무"가 있었기 때문에 피직+여울탄=직탄이

되었다.

이 석탄리는 한때 동이면에서 가장 규모가 큰 마을이었으나 1978년 대청댐 수몰로 인하여 거의가 다른 지역으로

이주하고 현재는 아주 작은 마을로 변하였다. 자연마을로는 안터, 산얼기, 피실, 덩기미가 있었으나, 피실과

덩기미는 수몰되어 마을이 완전히 없어졌고 안터 일부와 산얼기만 있다

좌측의 사면길로 내려간다

등로 우측 아래에 문암광산이 있어서 그런지 석탄의 원석같은 검은돌이 많이 보인다

금강이 보이고 가야할 이슬봉(뒷쪽 봉우리)도 보인다

송전탑을 철거한 자리에 쉼터용 벤취가 있다.

이곳부터는 쉼터용 벤취가 많이 보인다

이슬봉 방향으로 맥길을 이어간다

며느리재Ⅰ(10:58)

옥천군 군북면 국원리 늘치(티) 윗쪽에 있는 고개로 지도상에는 이곳이 며느리재이다

며느리재에는 옛부터 슬픈 전설이 전해져 내려오는 고개이다.

옛날에 시아버지와 흰 소복을 입은 며느리가 이 고개를 넘는데 갑자기 비가 내렸다.

비를 맞자 하얀 소복은 며느리 몸에 착 달라 붙었고, 이를 본 시아버지가 딴 마음을 먹자

며느리가 이를 피해 계곡으로 몸을 던져 生을 마감했다고 한다.

그래서 이곳 며느리재에는 흰색 진달래가 많이 핀다고 한다

대청호 오백리길이라는 둘레길이라 그런지 등로는 아주 좋다

암릉구간으로 맥길을 이어진다

대청호로 이어지는 금강 너머로는 속리산 능선이 희미하게 보인다

쉼터봉(11:04)

급경사의 내리막으로 내려간다

안부를 지나서 다시 오르막으로 올라간다

오르막으로 올라서니 대청호 오백리길은 우측의 사면길로 이어지고 직진 능선으로 올라간다

밋밋한 능선으로 올라간다

300m봉(11:10)

300m봉에서 우측으로 내려간다

조금전에 헤어진 사면길을 다시 만나서 맥길을 이어간다

안부(11:12)

대청호오백리길이란 팻말을 자주 만난다

 

대청호 오백리길은 대청호를 끼고 총 249.5km로 21개의 주 코스와 다섯갈래 코스 등 26개 구간으로

1980년 대청호에 물이 담기기 이전에 물줄기 따라, 산줄기 따라 들판을 가로지르며 농사를 지어러

다녔고, 성황당 고개를 넘어 민초들이 장보러 다녔던 이 지역에 살았던 우리 부모님들, 자녀들이 걸었던

애환이 서린 길로 이처럼 마을과 마을을 이어주던 길을 찾아서 다시 연결하고, 한번쯤 들려 이곳에

살고있는 주민들의 흔적들을 보고 가면 좋겠다고 해서 만들어진 길이다

안부에서 빡센 오르막으로 올라간다

공터봉(11:16)

공터봉에서 내려서면서 이슬봉에서 오는 대청호오백리길을 걷는 등산객을 만난다.

서로 인사를 나누고는 헤어진다

다시 오르막으로 올라가는데 우측으로 로프가 처진 사면길이 있으나 직진으로 올라간다

290m봉(11:20)

이곳에서 베낭을 내려놓고 2분정도 휴식을 취하면서 물 한모금을 마신다

우측의 능선으로 내려간다

조금전에 헤어진 사면길과 다시 만나서 맥길을 이어간다

우측 아래로는 금강이 흐르는 천길 낭떠러지이다

쉼터(11:25)

완만한 능선으로 올라간다

무명봉(11:26)

무명봉에서 만난 선답자들의 흔적

암릉구간을 지나며 금강 건너편을 바라본다

등로에서 바라본 금강 건너의 오대리(五垈里)의 모습

옥천군 동이면에 있는 오대리는 금강이 마을을 휘감아 흘러가며, 옥천읍에서 유일하게 배를 타고 들어가는 섬마을이다.

자연마을로는 버들개(유포), 보내(포내), 양로골(양로곡), 텃골(대곡) 등이 있는데 버들개는 버들이 많아서 붙여진

이름이다.

보내는 마을 앞으로 금강이 흐르고 있어 포내라고도 불렀다. 양로골에는 옛날 조씨가 부모에게 극진히 효도하며

살았다는 전설이 내려오고 텃골은 예전에 새로 터를 잡아 이룬 마을이라는 뜻에서 붙여진 이름이다.

대청댐이 만들어지면서 대부분 수몰되고 일부가 남았으며 육로로 통하는 길은 없고 배를 타고 금강을

건너야만 접근이 가능한 곳으로 오대리에서는 겨울철 빙어낚시가 성행한다

로프가 처진 등로로 올라간다

조망바위(11:33)

조망바위에서 바라본 금강변에 있는 수변전망대가 강가에 있고 우측에는 지나온 마성산이 보인다

이곳도 우측의 사면길을 버리고 직진의 오르막으로 올라간다

쉼터(11:36)

쉼터에서 베낭을 벗어놓고 지맥길에서 살짝 벗어나 있는 333.8m봉으로 향한다

333.8m봉(11:38)

다시 쉼터로 되돌아와서 베낭을 메고 길을 나선다

금강 너머로 흐릿하게 보이는 능선은 1구간을 끝내고 가지못한 보청(팔음)지맥 능선이다

다시 맥길로 되돌아 온다

오늘의 맥길은 그야말로 꽃길이다

조그만 능선을 지난다

안부(11:48)

오르막길 경사면에도 쉼터 의자가 보인다

310.6m봉(11:50)

지형도상에는 족보가 있는 봉우리이건만 아무런 흔적도 없고 예전 헬기장이었는지

보도블럭같은 것이 보인다

안부로 내려서니 등로는 흐릿하고 직진으로 맥길을 이어간다

오랫만에 맑은 하늘을 바라보면서 맥길을 이어간다

쉼터 의자를 지나서 능선으로 올라간다

쇠물푸레나무(꽃말:겸손)

쇠물푸레나무는 물푸레나무과에 속하는 낙엽활목 소교목으로 봄에 야산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나무로 물푸레나무보다 잎이 좁아서 ‘쇠’자를 붙여 쇠물푸레나무라고 부른다

 

꽃은 4~5월에 새 가지 맨 윗쪽 또는 겨드랑이에 흰색꽃이 원추꽃 차례로 촘촘히 달라붙어 핀다

꽃잎은 커다란 피침형으로 꽃이 뾰족하며 꽃은 암.수 딴 그루라고 하는데 아직 구분을 못하며

열매는 길이 2cm정도의 피침(표피가 변하여 만들어진 가시)형의 시과(翅果)로 가을에

홍갈색으로 익는다

무명봉(11:59)

맥길은 살짝 좌측으로 꺽어진다

안부(12:00)

암릉구간을 지난다

조망바위(12:03)

조망바위에서 바라본 둔주봉(屯駐峰:384m)의 모습

옥천군 안남면 연주리에 있는 둔주봉은 등주봉(登舟峰)이라고도 부르지만 인터넷에서는 검색되지 않는다

정상에는 전망대가 있는산 주위로 금강 본류가 휘돌아 감싸며 흐르고 산 아래로 초계 주씨(周氏)의 정자인

독락정(獨樂亭)이 있고 둔주봉의 지명 유래는 정확하지 않다. 다만 『한국지명총람』에 둔주봉이 소개되어 있으며,

옛날 산봉우리에 봉수대가 있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한편, 이곳 안남면 연주리 일대는 장군대좌형(將軍大座形)의

풍수형국이 나타나고 둔주봉을 이와 관련시켜 이해하기도 한다

백두대간 능선의 상주의 백화산인듯한 산줄기가 희미하게 보인다

 

저 능선 아래 어디쯤에 중봉(重峯) 조헌(趙憲 : 1544 -1592) 묘지(옥천군 안남면 도농리)가 있으리라

조헌 선생은 금산 전투에서 영규대사가 이끄는 승병과 함께 왜병과 맞서 싸우다가 장렬히 돌아가시어

금산 7백의총에 모셔져 있으며 조헌 선생은 바로 임진왜란 때 영남의 곽재우·정인홍, 호남의 고경명·

김천일 등과 함께 충청도에서 최초로 의병을 일으킨 분으로 조선 선조 때의 문신·학자·의병장이었던 

조헌 선생은 보은현감에 재직할 때엔 당시 충청도에서 치민제일의 목민관의 모범으로 평가되기도 하였다.

능선으로 올라간다

대청호 오백리길이라서 그런지 쉼터의자가 많이 보이나 관리가 잘 안되어 망가진 곳이 많다

가야할 이슬봉이 보이기 시작한다

안부(12:12)

능선으로 올라간다

420m봉(12:16)

좌측으로 내려간다

안부를 지나 오르막으로 오른다

이슬봉 가는 길

등로는 생각보다 상당히 까칠하다

이슬봉(453.3m:12:23~30)

옥천군 군북면 소정리와 안내면 장계리의 경계에 있는 산으로 정상석과 이정표, 3등 삼각점이 있다

먼 옛날 홍수로 인해 온 세상이 물에 잠겨을 때, 이슬만큼 봉우리가 남아 있었다고 해서 유래된 지명이다

이슬봉 정상에 있는 이정표

좌측으로 내려가면 옥천군 군북면 소정리가 나온다

소정리(疎亭里)는 마을 뒤로 산이 둘러 싸고 있으며, 앞으로는 대청댐이 있어 경치가 빼어난 농촌마을이다.

자연마을로는 소정(송정), 문바우골(문암곡, 문암동, 문밖골, 문회곡), 바깥마을(외동), 소태골(소태곡), 안마을(내동)

등이 있는데 소정은 마을에 소나무 정자가 많아서 붙여진 이름으로 송정이라고도 부른다. 문바우골은 문바우가 있는

골짜기에 마을이 있어 이름 붙여졌다. 바깥마을은 소정 바깥쪽에, 안마을은 소정 안쪽에 있는 마을이라 하여

생긴 지명이다.

소태골은 옛날에 소태나무가 많아서 붙여진 지명이다. 문화유적으로는 소정리 안마을 고인돌이 있다.

인증샷

이슬봉 정상 삼각점(△보은316/1980재설)

이슬봉 정상의 모습

이슬봉에서 물 한모금 마시면서 약간의 휴식을 취한 다음에 다시 길을 떠난다

이슬봉에서 급경사의 내리막길로 내려간다

등로는 고도차가 거의 없고 아주 편안하다

등로는 살짝 좌측으로 꺽어진다

등로 아래로는 뱀처럼 꼬불꼬불한 등로가 보이는데 대청호 오백리길 구간인 지용 향수길이란다

아마도 이 지역 출신인 정지용 시인의 이름과 대표작인 향수라는 시의 이름에서 따온 듯 하다

사람들이 전혀없는 호젓한 길...나홀로 걸으면서 사색하기엔 너무나 좋다

쉼터(12:41)

등로가 흐릿하다

쉼터용 벤취가 나오고 맥길은 좌측으로 꺽어진다

무명봉(12:45)

고도차가 거의없는 맥길...이슬봉부터는 양넘 지갑줏듯 편하게 맥길을 이어간다

완만한 등로에서 맥길은 좌측으로 꺽어진다

S-Line

참나무골산(419.2m:12:53)

옥천군 군북면 소정리와 안내면 장계리의 경계에 있는 산으로 그저 밋밋한 등로에 있다.

준.희선생의 산패가 없다면 그냥 지나치기 딱 좋은 산으로 지명의 유래는 알 길이 없으나

주위에는 참나무들이 많이 보인다

​넓은 안부를 지나서 완만한 능선으로 올라간다

400m봉(12:57)

쉼터에는 벤취 4개가 있고, 트랭글 앱에서는 이곳을 참나무골산이라고 한다

맥길은 장계리쪽으로 내려간다

내리막길에 나무 계단을 설치해놨는데 간격이 넓어 상당히 불편하다

급하게 고도를 낮추어 내려서니 편안한 등로가 나온다

한참을 내려선 다음에 조그만 봉우리에 도착한다

다시 급경사의 내리막길에서 불편한 나무 계단을 만난다.

장계리쪽에 다리 2개가 보이니 합수점이 다 되어 가는 느낌이다

계속되는 나무 계단...계단 사이의 간격이 넓어 상당히 불편하다

NO36 송전탑(13:07)

편안하게 고도를 낮추면서 장계리쪽으로 내려간다

쉼터(13:10)

우측으로 내려서니 완만한 나무계단이 나온다

지루하다

장계리로 내려가는 이정표와 쉼터 의자가 있고 좌측 사면길이 있으나 직진으로 향한다

쉼터에서 올라서니 묘비가 있는 대머리(?) 묘지가 나온다

해주오공 묘(13:14)

묘지에 올라서니 전망이 참으로 좋다

코앞에는 잠시후에 가야할 장계교가 보이고 우측으로는 하마산, 장계교 지나 37번 국도 너머로는

2018년 6월에 걸었던 보청 북(금적)지맥 능선에 있는 금적산이 아련하게 보인다

하마산((下馬山:350m)은 충청북도 옥천군 안남면에 있는 산으로 북쪽으로 금적산, 남쪽으로 둔주봉과 이어진다.

산의 서쪽으로 대청호가 있으며, 여기에 조성된 장계관광지가 멀지 않다. 산의 남쪽에는 안남면 소재지가 위치하고

있으며, 안남천이 발원한다. 『신증동국여지승람』(회인)에 "고을 서쪽 2리에 있는 진산이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하마비가 있다 하여 하마산(下馬山)이라 불린다. 조선 시대에는 '하마산(何磨山)'이라 표기하였다.

묘지 좌측으로 내려선 후 조금전에 헤어진 등로에 들어선다

나무 계단을 내려 가다가...

뚜렸한 등로를 버리고 우측의 숲으로 들어선다

상당히 급경사 내리막길이다

사면길을 따라서 미끄러운 경사 내리막길로 내려간다

급경사에서 만난 각시붓꽃

뚜렸한 등로가 보이고 내리막길에는 묘지들이 보인다

대부분의 맥꾼들이 편안한 제도권 등로로 갔는지 표식이 없었는데 서울우정산악회 시그널만 만난다

묘지로 내려간다

고령신공 묘(13:25)

묘지에서 내려온 길을 뒤돌아 본다

묘지를 지나고...

수목장을 한 묘지를 만난다

반갑습니다...원칙을 고집하다가 개고생하셨습니다

조금전에 헤어진 제도권 등로로 복귀한다

등로 우측에는 잣나무들이 보인다

편안한 등로를 따라서 가다가...

갑자기 접근금지 표시판이 나오고 맥길이 끊어져 버렸다

이정표가 있는 곳으로 올라가보니 신37번 국도가 생기면서 맥길이 짤려 버렸다.

신 37번 국도의 모습

우회 계단으로 내려간다

도로 건너가 맥길인데

걷지 못하는 맥길을 바라보면서 나무 계단을 내려간다

맥길이 짤려버린 현장의 모습

저렇게 깊이 팔거면 터널 공법으로 했으면 경비도 절감되고 환경도 덜 파괴되었을텐데

참으로 개념이 없다...공무원도 맥산꾼으로 뽑던지 해야겠다

아쉬운 마음을 뒤로하고 우회길로 내려간다

37번 신국도가 지나가는 장계대교 아래에서 좌측으로 간다

우측의 금강변이 향수바람길인 모양이다

시멘트 도로를 따라서 구37번 국도방향으로 간다

한참을 돌아서 마루금으로 복귀한다

들머리 입구의 뿌리깊은 나무 간판아래는 선답자들의 흔적들이 많이 보인다

장계리 버스 정류장이 보인다

장계리 버스 정류장(13:40)

옥천군 안내면에 있는 장계리(里)는 참나무골산 아래에 있으며, 앞으로는 금강이 휘돌아

나가는 농촌마을로 자연마을로는 개경주, 높은욱계(욱계), 주막마을(주막촌), 진모래(장사) 등이 있다.

높은욱계는 비탈에 위치하였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고, 마을 앞으로 금강이 흐른다.

주막마을은 옛날에 주막이 있었다 하여 생긴 지명이며, 진모래는 앞의 금강가에 모래밭이 길게

뻗어 있어 붙여진 이름으로 장사라고도 한다. 장사와 욱계의 이름을 따서 장계리라 하였다.

버스정류장옆에 방치된 수준점

수준점의 번호:05-05-04-09

높이(해발고도):100m, 지리적 위치:경도127도 39분57초. 위도:36도22분18초

버스 정류장에서 바라본 구 37번 국도와 장계교의 모습

장계교쪽으로 내려가다가 좌측으로 가니 전망좋은 카페가 보인다

아침을 든든하게 먹었던 탓인지 배가 고프지 않았으나 늦은 시간에

이곳에서 수제샌드위치에 커피한잔으로 점심을 해결하며 휴식을 취한다

점심을 해결하고 다시 길을 떠난다

인포가든을 지나서 도로를 따라서 가다가 화물차 뒷쪽 능선으로 올라간다

등로가 보이지 않고 선답자들의 시그널도 전혀 없다

벙커봉(14:00)

등로가 없는 곳으로 내려서니 검은 차양막이 길을 막고 개짖는 소리가 요란하다

우측으로 내려서는데 개사육장이 맥길을 막는다

개사육장에서 바라본 금강너머 보은으로 이어지는 37번 국도의 모습

뒷쪽으로 보이는 곳이 하마산으로 이어지는 능선이다

차양막 안쪽에 있는 犬公들의 격렬한 저항을 받으면서 맥길을 이어간다

개사육장을 지나니 고사리밭이 보인다

고사리밭을 지나서 능선으로 올라간다

뚜렸한 등로가 보이고...

선답자들의 흔적을 보면서 좌측 능선으로 올라간다

무명봉(14:08)

오늘의 마지막 봉우리이다

잡목의 격렬한 저항을 받으면서 장계 관광지쪽으로 내려간다

내리막으로 내려가니...

묘지가 나오고 묘지 좌측 아래로 내려간다

또다시 묘지를 만나는데 영일정공 묘이다

영일정공 묘(14:12)

묘지에서 만난 할미꽃

양지꽃도 보인다

카페 프란스란 카페가 보이는데 휴업중이다

카페 프란스란 정지용이 일본 교토의 도시샤(同志社)대학 유학시절에 1926년 유학생 회지

 『학조』 창간호에 실린 詩의 제목이다

커피 프란스 마당(14:15)

영일정공 묘에서 내려서니 장계관광지가 나오고 관광지 마당으로 내려서니

카페 프란스가 보이는데 휴업중인지 사람은 보이지 않고 공사차량만 있다.

문제는 이곳에서 발생한다

사진을 한장 찍고 강가로 내려서려는데 어디서 나타났는지 공사장 책임자인듯한

사람이 이곳은 지금 출입금지구역이라 아무도 들어올 수가 없으니 무조건 나가라고 한다

나 역시 엄동설한인 1월부터 금성산에서 시작하여 얼마나 힘들게 이곳까지 왔는데

순수히 물러설 수는 없는 노릇이다...자초지종을 이야기하고 합수점이 100m앞인데

안 갈수 없으니 가겠끔 해달라고 하니 무조건 안된다고 한다

그러면서 이제는 그 이가 나에게 사정을 하면서 어르신이야 혼자라서 보내 준다고 칩시다

그게 선례가 되면 문제가 될 수 있다고 하면서 자기들은 옥천군청에서 하청을 받아서

일을 하는데 잘못하면 징계를 당해 공사를 못할수도 있다고 사정을 하는데 할 말이 없다.

그렇다고 이 사람의 밥줄을 책임질 수도 없고...나 역시 아직까지 현직에 있는 노가다 출신이라

저 사람의 사정을 모르는 바가 아니다...나중에 안 얘기지만 최근에 이 현장에서 사고가 난 모양이다

그래서 강력하게 출입을 통제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내년에 새 단장을 하여 오픈하면 놀러 오시라고 하기에 ‘이보소 옥천쪽으로 쳐다보고

오줌도 안눌라요’하니까...연신 죄송하다고 하면서 하청업체라 어쩔수가 없다고 한다

저 아래가 합수점인데...참으로 미치겠다

하는 수 없어 현장 책임자인듯 한 사람에게 인증샷 하나 부탁하여 사진을 찍고는 장계리로 되돌아 간다

도로 옆에는 정지용 시인이 쓴 “엽서에 쓴 글”이라는 와석 詩碑도 보인다

허탈한 마음을 안고 도로를 따라서 가는데 출입금지 줄이 처져있고 옥천향토전시장과 주차장이 보인다

출입금지 줄을 넘는데 경비원인듯 한 사람이 쫒아오더니 어디서 오느냐고 문초하듯 다그친다.

경비원: 선생님 지금 어디서 오는중이십니까

범여曰: 보면 모르요... 길에서 오는 중입니다

경비원: 어떻게 그곳으로 가셨나요?

범여曰: 산으로 갔는데 그것도 당신네들한테 허가를 받아요 하니까

경비원이 왜 갔느냐고 하기에 자초지종을 이야기하니 그러면 사진한장만 찍으면

되냐고 묻기에 그렇다고 하니 그러면 내 전화번호를 찍어줄테니 가셔서 통제하면 자기에게

전화를 하라고 한다...고맙소 진작에 그럴것이제

주차장에서 왔던 길을 되돌아서 간다

도로를 따라서 가는데 이번엔 산에서 언 넘이 튀어 나오더니 이곳을 통제구역이라

갈 수 없으니 나가라고 한다...그래서 조금전에 찍어온 전화로 통화해보라고 하니

조금전의 경비원과 통화를 하더니 통과를 시켜준다

다시 돌아온 대청호/금강합수점(14:40)

전북 장수군 장수읍 수분리 신무산 아래 뜬봉샘에서 발원한 금강은 충북 영동의 양산팔경을 지나 옥천을

관통하며 굽이돌아 대청호에서 잠시 숨을 고른 다음에 옥천의 9개 읍면 가운데 2/3인 이원·동이·청성·

안남·안내·군북의 6개면을 적시고 흐르는 금강은 옥천 자연의 상징으로 이곳에서 서화천(대청호)를 만나

입수를 하면서 나 역시 산행을 종료하는 스틱을 접는다

합수점을 쳐다보니 가슴에 응어리진 체증이 내려가는 기분이다

금강을 바라보고 있는데 남.녀 2명이 합수점으로 내려오고 있다

이 분들도 지맥꾼인 모양이다...이 분들에게 부탁하여 인증샷을 남긴다

이 분들은 내 이야기를 듣고 도로가 아닌 걸어왔던 산으로 되돌아 간다

인증샷

만났던 맥산꾼 2분과 헤어져 도로를 따라서 주차장으로 향한다

다시 주차장으로 향한다

주차장에 도착하니 우측에 옥천향토전시장이 있고 경비원이 내가 나오는 것을 확인한다

이곳은 출입구역인지 차량과 사람들이 조금씩 보인다...우측에 있는 향토전시장이 있어서

들어 가볼까 생각했으나 귀경하는 차량이 어떻게 되지 몰라 포기를 한다

이 경비원에게 옥천가는 교통편을 물으니 자기가 잘 아는 택시기사를 불러주겠다고 했으나

시간적 여유가 많아서 사양을 하고 도로를 따라서 장계리 버스 정류장으로 향한다

옥천향토자료전시장(14:55)

옥천 향토자료 전시관은 충청북도 옥천군에 있는 박물관으로 옥천군 인근의 향토 관련 자료를 주로 전시한다.

1996년 옥천군이 주도해 장계국민관광단지 안에 전시관을 세웠다. 전시공간은 크게 1층과 2층, 두 곳으로 나뉘어 있다.

1층 역사유물 전시실에는 선사시대 유물을 비롯해 그릇과 기와, 동전, 옛 문서, 목판 등이 전시돼 있다.

2층 생활과 민속 전시실에는 지역 농업에 관한 자료를 비롯해 민속과 신앙에 관한 자료가 진열돼 있다.

또 우암(尤菴) 송시열과 중봉(重峰) 조헌, 시인 정지용과 육영수 여사 등 옥천군이 낳은 주요 인물에

대한 자료와 유품을 전시하는 인물관이 별도로 마련돼 있다

옥천 향토자료 전시장에서 도로를 따라서 걸어 나오는데 담벼락에는 전부 정시용 시인의 대표작

“향수”를 적어놨다.

향수 /정지용

 

넓은 벌 동쪽 끝으로/옛이야기 지줄대는 실개천이 휘돌아 나가고,

얼룩백이 황소가/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

─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질화로에 재가 식어지면/비인 밭에 밤바람 소리 말을 달리고,

엷은 졸음에 겨운 늙으신 아버지가/짚베개를 돋아 고이시는 곳,

─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흙에서 자란 내 마음/파아란 하늘빛이 그리워

함부로 쏜 화살을 찾으려/풀섶 이슬에 함추름 휘적시던 곳,

─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전설 바다에 춤추는 밤물결 같은/검은 귀밑머리 날리는 어린 누이와

아무렇지도 않고 예쁠 것도 없는/사철 발 벗은 아내가

따가운 햇살을 등에 지고 이삭 줍던 곳,

─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하늘에는 성근 별/알 수도 없는 모래성으로 발을 옮기고,

서리 까마귀 우지짖고 지나가는 초라한 지붕,

흐릿한 불빛에 돌아앉아 도란도란거리는 곳,

─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조금전에 샌드위치를 사먹었던 카페에 도착하여 노천에서 옷을 갈아입고 있으니

장계교에서 버스가 오기에 재빨리 버스 정류장으로 향한다

장계리 버스정류장에서 옥천으로 가는 버스가 떠나려고 하는 걸 겨우 붙잡아서 버스에

올라서서 옥천읍내로 향한다

옥천역(15:40)

버스 종점에서 내려 옥천역에 도착하니 오늘도 서울로 막바로 가는 무궁화 열차는 가장 빠른게 19시 30분차다

하는 수 없이 대전까지 버스를 타고가서 서울로 가려니 그 시간도 1시간 가까이 걸린다.

이곳에서 대전까지 열차를 타고가서 대전에서 서울가는 열차를 타면 되겠다싶어 역무원에게 물으니

대전까지 가는 열차는 있고, 그 열차를 타고 대전가서 15분만 기다리면 수서역으로 가는 SRT열차가 있다고 한다

몇번이나 이곳을 오면서도 왜 그 생각을 못했을까...정말 신의 한 수 였는데...

옥천발 → 대전행 무궁화 열차표

옥천에서 버스로 대전까지 1시간 가까이 걸렸는데 열차로 가면 11분밖에 안 걸린다

20분 가까이 시간적 여유가 있어서 화장실에 들어가서 깔끔하게 씻고 열차타는 곳으로 향한다

옥천에서 16시 02분에 열차를 타고 10분이 약간 지나 대전역에 도착한다

대전역에서 내려 수서역으로 가는 환승센터로 향한다

대전발 → 수서행 열차표

대전에서 출발한 열차는 45분만에 수서역에 도착한다

집에오니 17시 40분...해가 중천에 있을때 맥산행을 하면서 이렇게 일찍 귀가해본 적은 없다

집에오니 아무도 없다...내일 골프 모임이 있고해서 옷을 갈아입고 골프 연습장으로 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