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산행일시: 2021년 05월 30일
☞ 산행날씨: 맑은 날씨
☞ 산행거리: 도상거리 15.1km +어프로치 0.8km) / 8시간 05분 소요
☞ 참석인원: 나홀로 산행
☞ 산행코스: 창랑골 임도삼거리-1,077.4m봉-무명봉-안부-다시 창랑골 임도삼거리-
벗밭 임도삼거리-1,023.9m봉-안부-무명봉-1,010.5m봉-안부-암봉
1,141.3m봉-안부-무명봉-무명봉-암봉-1,200m봉-지도상 백석봉
암봉-백석봉 갈림길-폐헬기장-안부-무명봉-안부-백석봉-다시 백석봉 갈림길-
무명봉-안부-무명봉-1,182m봉-안부-1,124.4m봉-무명봉-안부-1,045m봉-무명봉
안부-894.4m봉-백천조공 묘-Y자 갈림길-석두임도-843.4m봉-ㅏ자 갈림길-500m봉-
갈림길-정선전공 묘-42번 국도-남평대교-나전교-골지천/오대천 합수점-다시 나전교
☞ 소 재 지: 강원도 정선군 북평면
장마철도 아닌데 주중내내 비가 내린다...비가오면 늘 주말의 날씨가 걱정이다
다행히 구라청의 일기예보로는 토.일욜은 비가 안 온다고 하니 일단 믿어보기로 한다
그런데 수요일에 현장에서 일하는 인부들을 거들어주다가 허리가 삐꺽하여 통증이
엄청 심하다...한의원에서 침을 맞아도 소용이 없고, 정형외과에 가서 X-Ray를 찍어보니
뼈가 약간 틀어진 듯 하다면서 며칠간 꼼짝말고 누워 지내라는 황당한 소견을 낸다.
의사 말 다 믿으면 할게 아무것도 없제...사흘간 물리치료를 열심히 받고 침을 맞았다.
집에서는 산에 가지말라고 난리 부르스인데 정작 본인은 토요일에 친구들과
1박2일간의 여행을 가버렸고, 같이사는 아들은 1주일에 한두번 얼굴볼까말까하니
이렇게 편할수가 없다...아무도 없는 집에서 구속을 안받고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가
이른 새벽에 간단하게 베낭을 챙겨서 청량리 역으로 향한다

오늘 산행구간의 지도

청량리역(06:10)
집앞에서 출발하는 버스를 타고 45분만에 청량리역에 도착한다

청량리발 → 진부행 열차표
이른 새벽에 집을 나온 탓인지 열차에 오르자마자 잠이 쏟아진다
1시간쯤 깊이 잠에 빠졌다가 일어나니 열차는 평창역에 도착한다.
정신을 차린 다음에 다음역인 진부역에서 하차를 한다

진부역(07:48)

진부역에 내려서 지난주에 이용했던 택시를 어제 예약했는데 미리 나와서 나를 기다리고 있다.
지난주의 아픈 경험 때문에 나를 무척 염려하는 목소리로 위험하게 혼자 다니지 마시고
다른 사람들과 같이 다니라는 말을 하지만 그런 얘기는 수도 없이 들어서 귀에 들어오지도 않는다
이런 저런 얘기를 하면서 지난주에 내려왔던 들머리로 향한다

진부에서 벗맡마을(友田村)으로 가는 길은 참으로 멀다.
진부를 출발하여 59번 국도를 따라서 정선쪽으로 향하다가 국도에서 좌측으로 벗어나
숙암교를 지나서 숙암계곡으로 향하는 초입에는 “잘바위(宿巖)”표시판을 지나서 지난주에
스마트폰이 터지지 않아서 애를 먹었던 숙암계곡으로 올라간다
숙암(宿岩)이라고 부르게 된 이유는 삼한시대 맥국(貊國:고대 지금의 춘천근처에 있었던 부족국가)의
갈왕(葛王 또는 加里王)이 전란을 피하여 가리왕산(加里王山)의 이 바위 아래에서 하룻밤을 유숙(留宿)하였다
하여 숙암(잘바위)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우천교를 지나 구절양장 (九折羊腸)의 시멘트 도로를 따라서 올라가니 이 깊은 산속에 제법 큰 규모의
깨끗한 집들이 보이는데 택시기사의 얘기로는 예전에 단군을 모시는 대종교(大宗敎) 신도들이 집단적으로
살고있는 곳이라고 하는데, 대종교는 지리산 청학동을 비롯하여 전국 여러곳에 집단마을이 있고, 청옥산
육백마지기 오름길에 있는 ‘삼신신앙대본사’도 그런 곳이다.
*나철(羅喆)이 일으킨 대종교는 우리 겨레의 *시조인 단군을 받드는 종교로 단군교를 연 뒤에
종교이름을 대종교로 바꾸었으며, 대종교는 한국의 민족기원 신화에서 비롯되었으며, 교리에 민족의
정통사상과 철학을 담고 있다. 단군의 강림을 개천일로 하여 개교한 날로 삼았으며, 1909년 나철이
근대적인 종교로 중광했다. 총전교가 교단을 대표하며, 중앙기구인 총보사는 대일각, 원로원, 삼일원,
종무원으로 구성되고, 산하에 도본사, 시교당, 수도원을 두고 있다
벗말마을을 지나면서 비포장도로가 나오고 조금을 더가니 창랑골 임도삼거리가 나오는데 더이상 갈 수가 없다.
택시요금이 46.000원이나 나왔다...지난주에 고생을 많이한 기사에게 50,000원을 주면서 고맙다고
하니까...괜찮다고 하면서 한사코 사양을 하면서 산행을 하면서 먹으라고 파프리카 한봉지를 준다.
택시기사와 유쾌한 이별을 하고 산행을 준비한다

창랑골 임도 삼거리(08:30)
택시기사와 작별을 하고 산행을 준비한다

임도 삼거리에서 지난주에 알바를 했던 봉우리를 쳐다본다.
이곳에서 산행을 시작할까 하다가 마음이 찝찝하여 저 봉우리까지 갔다 오기로 한다

임도삼거리에 있는 표시석과 안내판의 표석
안내판 뒷쪽으로 오르면서 산행을 시작한다(08:35)

능선에 오르면서 바라본 가리왕산 스키장의 모습

베낭을 내려놓고 스틱만 들고 1,077.4m봉으로 향한다

능선을 올라 빡센 오르막을 치고 오르며 1,077.4m봉으로 향한다

1,077.4m봉(09:05)
0.8km를 30분에 걸쳐서 빡센 오르막을 오른 다음에 정상에 도착한다

왔던길을 되돌아서 간다

이제 산행을 시작하는데 초반부터 고사목이 태클을 걸어댄다

좌측으로 등로가 열리면서 상원단맥(신산경표상의 황병지맥)능선이 보인다

지난주에 대형알바를 했던 정체불명의 빨간 리본

무명봉(09:13)

급경사의 내리막길

최근에 계속내린 비로 인하여 등로는 상당히 미끄럽다.

안부(09:18)

원망스럽기만한 띠지

다시 베낭을 메고 길을 나선다

흉물처럼 보이는 가리왕산 활강스키장의 모습
올림픽 한번하자고 천혜의 자연을 망가뜨린 인간의 탐욕 과연 저 방법이 옳은 것일까...
2018년 평창 동계 올림픽을 유치하여 천혜의 자연보고인 가리왕산에 3일을 쓰려고
1,000억을 들여서 활강스키장을 조성하였다는데 참으로 이해가 안되는 짓거리였다.
올림픽 이후에 원상복구하는 조건으로 허가를 받았다는데 아직도 흉물스런 모습이
그대로 남아 있구나...

임도 삼거리로 내려선다

다시 창랑골 삼거리(09:25)


창랑골 임도에 있는 안내판

임도를 따라서 맥길을 이어간다

임도옆에 두릅...먹을만하여 따서 비닐봉다리에 담는다

벗밭 임도삼거리(09:32)
일제시대(1915) 지도를 보면 현재 지형도의 벗밭마을 위치에 “友田(ボッバッ)”이라 표기되어 있다.
그런데 괄호안에 표기된 카다카나를 읽으면 ‘벗밭’이 되는데 이는 원래 벗밭이라 불리던 이름을
한자화 하는 과정에서 ‘벗’으로 소리나는 한자가 없어, 뜻을 가져와(훈차) ‘벗 우(友)자에 밭 전(田)자’를
보태 우전(友田)이 된 것이다. ...故조은산님 블로그 인용

벗밭 임도삼거리 안내판 뒷쪽의 능선으로 올라간다

등로가 보이지 않는 곳으로 올라간다

묘지가 보이고 좌측으로 올라간다

최근에 누가 지나가셨나보다...꺽어진 나무가지가 보인다

상원단맥 능선이 시원스레 보인다

완만한 능선을 따라서 올라간다

능선으로 올라서니 삼각점이 있는 1,023.9m봉에 도착한다

1,023.9m봉(09:47)

1,023.9m봉 삼각점(△도암460/2003재설)

등로가 보이지 않는 철쭉군락지쪽으로 향한다

등로는 희미하다

넘어진 넘들이 왜이리 많아...

암릉구간을 지난다

넓은 공터가 나오고...

맥길은 우측으로 꺽어진다

안부(09:57)

무명봉(10:00)

내리막길로 내려간다

下心을 하라네요...고사목 사이로 내려간다

등로는 희미하지만...

그런대로 걸을만하다

1,010.5m봉(10:04)

우측으로 내려간다

다시 등로는 조금씩 뚜렸해지기 시작한다

조그만 봉우리에서 우측으로 내려간다

넘어진 고사목이 길을 막아서 우측으로 우회하면서 내려간다

안부(10:13)

오르막 능선이 시작된다

무명봉으로 올라선 다음에 살짝 우측으로 꺽어진다

계속되는 고사목의 태클

암봉(10:24)

희미한 능선으로 올라선다

능선 좌측으로는 백석봉에서 상원산 능선으로 이어지는 항골 능선이 보인다
항골 능선 아랫쪽으로 이어지는 항골계곡은 계곡에서 흐르는 한곡 계곡에
찬물이 흐른다고 하여 항골로 부르게 되었는데 깊숙한 내항골도 있다.

오랫만에 미세먼지도 맑은 공기 마시면서 호젓하게 홀로 걷는 이 맛...독립군만 알제

다시 오르막으로 올라간다

오늘은 시비거는 넘이 왜이리 많은지?

나뭇가지 사이로 상원산이 어렴풋이 보인다

암릉구간으로 올라간다

1,141.3m봉(10:47)

1,141.3m봉 정상에 있는 이정표
항골계곡에서 백석봉으로 이어지는 등로...제도권 등로인지 이정표가 보이고 등로는 좋다.
1990년대까지만 해도 항골계곡엔 대한석탄공사 나전광업소가 있었던 계곡으로 당시만 해도
북평면 거리는 광부들로 왁자했던 곳으로 정육점이 최대의 호황을 누리던 그 시절 북평면엔
지나가는 개도 만원권 지폐를 물고 다녔다는 우스갯소리가 날 정도였다.

우측의 뚜렸한 등로를 따라서 맥길을 이어간다

안부(10:52)

너덜길같은 곳을 통과한다

무명봉(10:56)

완만한 능선으로 올라간다

무명봉(11:00)

암릉구간이 시작된다

좌측으로 등로가 열리면서 상원단맥 능선의 옥갑산봉이 보인다

암봉을 지나간다

간간히 보이는 곤드레나물도 수확한다

안부에서 너덜길로 올라간다

암봉(11:05)

암릉으로 이어지는 능선을 따라서 맥길을 이어간다

기이하게 생긴 나무

1,200m봉(11:08)

완만한 오르막길은 계속되고...

시골에 보리수확철이 오는가보다.
올래 처음으로 듣는 홀딱벗고새의 울음소리가 처량하게만 들린다
홀딱벗고 새의 원래 이름은 검은등 뻐꾸기로 희귀종 여름새이다.
이 홀딱벗고 새에 얽힌 전설도 있다....아래는 원성스님의 글이다.
홀딱 벗고
마음을 가다듬어라.
홀딱 벗고
아상도 던져 버리고.
홀딱 벗고
망상도 지워 버리고
홀딱 벗고
욕심도, 성냄도, 어리석음도...
홀딱 벗고
정신차려라.
홀딱 벗고
열심히 공부하거라.
홀딱 벗고
반드시 성불해야 해
홀딱 벗고
나처럼 되지 말고
홀딱 벗고
홀딱 벗고
공부는 하지않고 게으름만 피우다가
세상을 떠난 스님들이 환생하였다는 전설의 새
공부하는 스님들에게 더 열심히 공부해서
이번 생에는 반드시 해탈하라고 목이 터져라 노래한다.

지도상의 백석봉을 향한 완만한 오르막이 시작되고 잠시후에 백석봉 정상에 오른다

고달픈 월세살이

백석봉(白石峰:1,237.5m:11:18)
정선군 북평면 북평리에 있는 산으로 지도상에는 백석봉이지만
정선군에서는 이곳에서 1.2km 떨어진 곳에 백석봉이 있다고하여
처음온 산꾼들에겐 조금 헷갈린다

인증샷

반갑습니다

우측 내리막길로 맥길을 이어간다

마귀할멈의 거시기(?)

암봉(11:24)

암릉의 좌측으로 우회하면서 내려가는데 철쭉이 흐드러지게 피어있다

편안한 내리막으로 내려간다

내리막길을 내려가니 직진의 희미한 능선으로 선답자들의 시그널이 보이고
백석봉으로 이어지는 뚜렸한 등로는 우측의 아래로 이어진다

백석봉 갈림길(11:25)
지맥길에서 0.8km떨어진 백석봉을 같다오기로 한다

점심시간(11:25~40)
아침을 먹지 않았던 탓인지 약간의 허기가 지기에 이곳에서 베낭을 내려놓고 점심을 해결한다

간단하게 점심을 먹고 등로밑 나무에다 베낭을 숨겨놓고 스틱만 가지고 백석봉으로 향한다

폐헬기장(11:43)

폐헬기장에 있는 이정표

철쭉 군락지 사이로 이어지는 완만한 내리막 등로

지난주에 계속 내린 비로 인하여 공기가 정말 상큼하다

안부(11:48)
넓은 공터에 사각평상과 장의자 3개가 있고 이정표(←백석봉 0.4km, ↖졸드루 4.4km, →항골5.2km)가 있다

좌측 아랫쪽으로 졸드루로 내려가는 뚜렸한 등로가 보인다

백석봉가는 길

무명봉(11:55)

안부(11:56)

안부에서 올라서니 낡은 이정표가 서 있는 백석봉 정상에 올라선다

백석봉(白石峰:1,171.2m:11:58)
강원도 정선군 북평면 숙암리와 북평리의 경계에 있는 산으로 정상에는 정상표지판과
4등 삼각점이 있으며 맞은편에는 가리왕산이 시원스레 보이는 멋진 산이다
지명의 유래는 백색의 웅봉(雄峰)으로 정상에 영천(靈泉:신비한 약효가 있는 샘)이 있었는데
부정(不正)한 사람이 먹으면 갈수(渴水)가 되고 암색(巖色)이 검게 변하면서 수일내에
비가 내린다는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한편 자장율사가 중국 당나라에서 유학을 마치고 신라로 귀국할 때(서기 643년), 이곳에서
백일기도를 하였다는 설이 있으며 스님이 기도를 했다는 백석암(白石庵)터가 남아있다.
또한 6.25동란 당시 피난처로 폭 1m, 길이 6m의 굴이 중봉 부근에 있어
20여명 가량 수용 가능하며 그 시절의 고난 극복 장소로 이용되기도 했다

백석봉 정상 4등 삼각점(△413재설/77.6건설부)

백석봉 정상에서 바라본 가리왕산 활강 스키장의 모습
평창군 진부면과 정선군 정선읍, 북평면에 걸쳐있는 가리왕산(加里王山:1,561.8m)은
전형적인 육산(陸山)으로 산 능선에는 고산식물인 주목, 잣나무, 단풍나무등 각종 수목이 울창하다.
벨패재(일명 벽파령), 성마령, 마전령등 수많은 고개로 이루어져 있고, 갈왕산이라고도 불리우며
유명한 정선아리랑의 고장이기도 한 곳으로 가리왕산에는 8개의 명승이 있다.
상봉 망운대에 서면 오대산, 두타산, 태백산, 소백산, 치악산 등의 명산들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며
능선이 끝없이 펼쳐진 초원지대로 육중하고 당당하며 자작나무와 주목이 군락을 이루고 있다.
5월 하순께에는 산기슭 곳곳에 취나물, 두릅 등 수십 종의 산나물이 돋아나 산행의 즐거움을 더해준다.
동강(東江)에 흘러 드는 오대천과 조양강의 발원지이며 석회암 절리동굴인 얼음동굴이 유명하며
지명의 유래는 옛날 맥국(貊國)의 갈왕(葛王)이 피신해 숨어든 산이라 해서 갈왕산이라 불렀으며,
갈왕산이 지금 가리왕산이 됐다고 전하는데 여기저기 떠도는 가리왕산 지명유래다.
그러나 산림청에서 주장하는 유래는 이와 다르다.
크고 넓은 산의 모습이 마치 큰 가리(벼나 나무를 쌓은 더미) 같다고 해서 유래했다고 설명한다

백석봉 정상에서 바라본 졸드루와 장평마을의 모습
정선군 북평면 나전리에 위치한 졸드루의 지명은 평지라는 뜻의 “작다는 뜻의 졸(卒)괴 평지라 뜻의 ‘드루’를
합해 작은뜰”이라는 의미로 붙혀진 지명인데 졸평(卒坪)이라고 부르며, 장평(長坪)은 일명「진드루」라고도 한다.
마을 형국이 긴 뜰이라는 뜻에서 장평(長坪)이라고 부른 지명이다.

잠시후에 내가 백석봉 갈림봉으로 가서 걸어야 할 능선의 모습

백석봉 정상에서 바라본 구절양장의 숙암계곡의 모습
진부에서 정선으로 이어지는 59번 국도와 나란히 하는 오대천이 흐르는 숙암계곡은
계곡이 깊기로 유명하며, 5월이면 계곡을 따라서 피는 수달래가 유명하며 드라이버
코스로 멋진 곳이기도 하다.

동남쪽 저 멀리 백두대간 능선의 함백산과 민족의 영산이라는 태백산이 아련히 보인다
지난주 계속내린 비로 인하여 오랫만에 꽤나 맑은 시야가 확보되지만 워낙 멀고
똑닥이 카메라의 한계 때문인지 멋진 작품 하나를 건질수 있었는데 아쉽기만 하다
이런곳에 올 때 대포(DSLR)카메라를 메고와야 하는데 언제쯤 체력이 회복될까?

지난주에 걸었던 북서쪽의 갈미봉 뒷쪽으론 2106년 8월 21일 진권아우와 같이
걸었던 평창(주왕)지맥 능선의 잠두산과 백석산이 보인다
진권아우!...젊은것이 부산으로 가더니만 행님을 기억속에 지워버렸나 소식조차 없네
니는 맨날 젊을줄만 아느냐...야속하기만 하다

인증샷...역광이라 사진이 흐리다

마가목꽃이 흐드러지게 피어있는 백석봉에 한동안 머물다가 다시왔던 길을 되돌아 간다

능선에 올라선 다음에...

폐헬기장을 지나서...

나무사이에 숨겨둔 베낭을 다시메고 백석봉 갈림길로 되돌아 왔다

다시 돌아온 백석봉 갈림길(12:35)

마루금에 복귀하여 우측으로 맥길을 이어간다

제도권 등로를 벗어나 합수점으로 향하는길은 서서히 지맥스러움을 나타내기 시작한다

철쭉 군락지를 통과하는데 등로는 보이지 않으나 그런대로 걸을만하다

완만한 오르막으로 오른다

무명봉(12:39)

노거수를 만나고...

암릉구간은 우측의 사면길로 맥길을 이어간다

안부(12:43)

다시 오르막으로 오르는데 등로가 자꾸만 거칠어지기 시작한다

무명봉(12:47)

계속되는 잡목과의 전쟁...맥길이란 온전히 끝나는데가 한군데도 없구나

암릉과 철쭉 군락지를 힘들게 통과한다

1,182m봉(12:50)
백석(白石:흰돌)을 끼고 우측으로 내려서보지만 맥길은 보이지가 않고...

내리막길에 못생긴(?) 黃腸木 한그루가 산꾼을 반긴다

암릉구간을 우측으로 우회하면서 내려선다

암릉구간을 통과하면서 만난 선답자의 시그널

맥길을 가로막고 있는 암릉구간을 뒤돌아 본다

안부(12:55)

너럭바위 윗쪽으로 올라간다

계속되는 오르막길

넓은 공터에 희미한 등로가 보인다

지형도상의 1,124.4m봉에 도착한다

1,124.4m봉

법광님은 1,121.9m봉이라고 표기를 해놨다

살짝 좌측으로 꺽어져 맥길을 이어간다

좌측으로 내려서면서 만나는 선답자들의 흔적이 반갑기만 하다

무명봉(13:10)

내리막길에서 만난 양호님의 흔적

등로는 보이지 않고...

고비나물 군락지도 지난다

안부(13:17)

넘어진 고사목이 태클을 걸어댄다

오르막으로 올라간다

1,045m봉(13:22)

1,045m봉에서 우측으로 맥길을 이어간다

멋진 황장목들이 많이 보이는 능선을 걷는다

안부에서 다시 오르막으로 올라간다

이대장...반갑구먼

무명봉(13:34)

정신나간 넘

암릉구간이 나오고...

우회하여 내리막길로 내려간다

좌측으로 꺽어져 내려간다

등로 좌측으로 시야가 확보되면서 상원단맥(신산경표상:황병지맥)에 있는 옥갑산봉이 뚜렸하다
정선군 여량면과 북평면의 경계에 있는 옥갑산봉(玉甲山峰:1,285m)은 산의 형세가 옥(玉)으로
만든 갑옷을 두른것처럼 보인다고해서 유래된 지명이라고 한다

내리막으로 내려간다

안부(13:53)

빡센 오르막이 시작된다

커다란 암릉이 맥길을 가로막아 좌측으로 우회하면서 오르막으로 올라간다

빡센 암릉구간을 올라서서 좌측으로 이어지는 암릉구간을 따라서 맥길을 이어간다

금강송 사이로 보이는 가리왕산 능선의 모습

맥길 우측으로 펼쳐지는 금강송 군락지의 모습

암릉구간의 끝이 보이고...

암릉구간을 지나 넓은 공터가 나오는데 지도상 894.4m봉이다

894.4m봉(14:08)

우측으로 꺽어져 내려가니 누군가가 캔커피통을 나무에 걸어 영역 표시를 해놨다

간간히 만나는 선답자의 흔적

소나무에는 아직도 일제의 아픈 추억이 보이는구나.
국가가 힘이 없으면 나무들도 수난을 당하는데 이 나라의 정치 지도자들은
그런 것에는 관심이 없고 오직 자기 편의 이익에만 몰두하니 나무나 민초들의
고통은 안중에도 없는 전형적인 내로남불의 짓거리...너무 역겹다

894.4m봉에서 내려오니 허리에 통증이 심해 이곳에서 베낭을 내려놓고 10분정도 휴식을 취한다
홀로걷는 오지산행에 유일한 동반자인 라디오에 흘러나오는 노래...니가 왜 거기서 나와...

다시 길을 나서는데 키가 큰 소나무 사이로 맥길을 이어간다

갑자기 등로가 사라진다.

조그만 능선을 지나서...

내리막길로 내려선다

갑자기 나타나는 임도...

임도를 따라서 내려간다

백천조공 묘(14:30)
처음보는 묘비의 형태이다...묘비에 부부를 같이 기록할 때는 반드시 남자가
오른쪽에 기록되고 여자가 왼쪽에 기록하는데 이 묘비는 반대로 기록되어
있고, 옥개석도 벼슬을 한 사람의 묘비에만 올리는데 이 묘비는 벼슬의
기록도 없이 옥개석을 씌워놨다... 석재회사의 실수인지 후손들의 무지인지 모르겠다

임도를 따라서 계속 내리막길

Y자 갈림 임도(14:35)

우측에서 내려오는 넓은 임도를 만나서 좌측으로 내려간다
이 길은 석두임도에서 백석봉으로 향하는 제도권 등로인 모양이다

반갑습니다.

편안한 임도를 따라서 내려오니 석두임도 삼거리가 나오고 낡은 백석봉 등산 안내도가 서 있다

석두 임도에 서 있는 백석봉 등산 안내도

석두(石頭) 임도(14:38)
정선군 북평면 나전리 졸드루마을에서 북평리 이장골로 넘어가는 임도인데 졸드루쪽은
인적의 흔적이 보이지 않은 폐임도처럼 보이고 이장골쪽은 자동차가 다닐만큼 길이좋다
백석봉 등산 안내도와 예전에 농장인듯한 폐건물이 있고, 좌측으로는 강우량측정소가 보인다
석두라는 지명유래는 백석봉(白石峰) 밑에 석두에 절이 있었는데 그 절터만 있고 경내에 있는 5층탑은 도난을
당했고 현재는 그 자리에 묘가 있을 뿐 탑신과 기초석이 이리저리 뒹굴고 있고 석가여래상도 파괴되어
흩어져 있는 이곳에 큰 바위가 사람머리 같이 생겼다하여「석두」라 하였다.

북평리쪽에 서 있는 강우량측정소

창고 좌측으로 향한다

맥꾼이 가지말라고 안 가는거 봤어...

함박꽃이 소담스럽게 피기 시작한다

홀로 존재하는 법
홀로 존재한다는 것은
그냥 그 자체만으로도 한없이 충만한 것이다
쉽게 생각해 보면 헛헛하고 외로워 보일지 모르지만
텅빈 가운데 성성하게 깨어있는 속 뜰은
마구잡이로 채워넣는 소유의 정신에 비할바가 아니다
홀로 있을 때
우리는 참으로 함께 할 수 있고
작은 나의 허울을 벗고 전체와 함께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 몸뚱이만 그저
덩그러니 혼자 있다고 해서
다 홀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참으로 혼자 있으려면
번거로운 우리의 소유로부터도 자유로울 수 있어야 한다
- 법정스님 -

희미한 농로를 따라서 올라간다

농로 우측의 농장에는 조림지가 보이는데 쥔장을 잃었는지 관리가 안되어 있다

조금전에 내려온 등로를 뒤돌아 보는데 좌측의 뾰족한 봉우리가 백석봉이다

농로 끄트머리에서 숲 속으로 들어선다

등로는 전혀 안 보인다

먹을만한 참취들도 조금씩 보이기에 수확을 한다

등로가 없는곳을 무조건 치고 능선에 올라선다

능선에서 좌측으로 맥길을 이어간다

등로가 보이지 않는 곳을 치고 올라선 다음에...

3등삼각점이 있는 843.5m정상에 도착한다

843.5m봉(15:05)

반가운 선답자들의 시그널


843.5m봉 정상 삼각점(△정선303/2004복구)

843.5m봉에서 직진으로 내려간다

ㅏ 갈림길(15:09)
북평리로 이어지는 뚜렸한 등로를 버리고 급하게 우측으로 꺽어진다

곧추선 엄청난 급경사의 능선이라 조심스럽게 내려가는데 허리가 엄청나게 아프다

급경사의 내리막길로 내려가는데 우측에서 내려오는 오대천이 보인다

급경사의 내리막길...최근에 계속내린 비로인해 등로는 엄청나게 미끄럽다

누군가가 지나갔는지 나뭇가지가 많이 꺽여있다

금강송 군락지로 맥길을 이어가는데 등로는 전혀 안보인다

죽을 힘을 다해서 급경사로 내려서니 희미한 임도가 나온다

500m봉(15:30)
좌측의 희미한 임도로 내려간다

등로가 조금씩 뚜렸해지기 시작한다

등로옆에는 잡초에 몯혀버린 묘지도 보인다

잡풀이 무성한 희미한 임도에 넘어진 고사목...마치 허들경기하듯 맥길을 이어간다

갑자기 등로는 사라지고...금강송을 바라보며 잡목의 강력한 저항을 뚫고 나전교로 향한다

합수점이 가까워오건만 잡목의 저항은 계속된다

갈림길(15:45)
직진길이 맥길이나 도저히 갈 수가 없다
약간 우측의 희미한 임도로 내려가는데 이곳으로 누군가가
지나간 모양이다...꺽어진 나뭇가지가 보인다

오늘도 산이란 스승에게서 “내려갈 때 조심하라”는 명언을 배우는데 우매한 衆生들은
늘 망각하고 살고 있으니...특히 요즘 이 나라를 집권하고 있는 세력들은 더 모르는 것 같다.
저 사람들이 야당시절에는 그렇게 도덕적인척 하더니만 집권하고나니 以前의 정권보다도
훨씬 더 부패하고 무능한 모습...국가를 운영하는게 아니라 마치 자기 조직이 이익을 대변하는듯한
형태, 참으로 역겹다... 일례로 법을 집행해야 하는 법무장관, 차관, 검찰총장이 피의자인 나라...
아둔한 범여의 머리로는 이해가 안되는구나...국가 경영은 지도자의 균형잡힌 리더쉽이 절실한데
그것은 눈꼽만큼도 찾아볼 수가 없구나...4년전 취임식때 “지지한 41%지지자보다 지지하지 않은
59%의 뜻을 헤아리겠다 ”는 그 말씀은 아직도 귀에 생생한데 잊어버리셨는지...
그런데 지금의 VIP께서는 민초의 바램과는 동떨어진 벌거벗은 임금님의 형태이니 이해가 안되는구나
결국 그 피해는 힘없는 민초들의 몫이 되어 버렸으니...산이나 권력이나 내려갈 때 조심해라 했는데...

희미한 임도로 내려와서 살짝 좌측으로 꺽어진다

잡목사이의 내리막길로 내려간다

희미한 등로로 내려서니...

잘 관리된 묘지가 나온다

정선전공&배강릉유씨 묘(15:55)
정선전공께서 생전에 “鄕校 典校”란 직책을 지내신 모양이다
전교(典校)란 향교에서 제사와 교육을 담당하며 향교를 지키고 보존하는 총 관리자로
유림총회에서 선출되며 임기는 3년이며, 유교를 부흥·발전시켜온 공자와 제자, 우리나라
현인들에 대한 제사를 주도해 지역사회의 윤리문화의 창달을 위하여 활동하는 향교의 책임자이다
원래 향교는 지방의 학교로서 국가에서 관리하였으며, 재관(齋官) 또는 재장(齋長)을 두어서 향교의
관리와 유생의 교육업무를 담당하게 하였으나, 교육제도의 변경으로 교육기관으로서의 업무가 없어지고
다만 문묘를 수호하기 위하여 직원을 두고 그 관리에만 국한하여 왔었다.
그러나 광복과 더불어 전국유림대회(全國儒林大會)의 결의로 새로 성균관의 직제가 변경됨에 따라
지방향교의 직원의 명칭을 전교(典校)로 개칭하였으며, 향교의 재산관리까지도 지방관청에서 인수하게 하였다.

묘지 좌측 능선이 맥길이나 등로가 보이지 않는다

맥길을 벗어나 묘지 아랫쪽으로 내려간다

묘지 아래로 내려가니 42번국도가 보인다

철조망 안에 갇혀 버렸다

그렇다고 산꾼이 안가는거 봤어...베낭을 걸어놓고 철문을 지형지물로 이용하여 휀스를 넘는다

42번국도(16:05)
42번 국도를 가로질러 숲으로 들어가니 정선에서 아우라지로 연결되는 철길이 길을 막는다

우측으로 향한다

오대천을 가로지르는 향동교가 나오고 다리 직전에 좌측으로 꺽어진다

향동교와 오대천의 모습

나전철교와 나전교로 가는길이 막혀버렸다

다시 향동교 방향으로 되돌아 나간다

조금전에 내려왔던 길을 지난다.

처음부터 좌측의 나전1교차로로 갔으면 편했을텐데
지도만 보고 나전교로 향하다가 되레 시간이 많이 소요됐다

나전역에서 아우라지로 향하는 철길 아래를 지나 우측으로 향한다

남평대교(16:17)
북평면소재지에서 정선으로 가는 42번 국도에서 남평리로 가는 다리가 보인다
다리 건너가 정선군 북평면에 있는 남평리(南平里)인데 이 곳의 지명(里名)은 1779년(정조 9년)에
임계천 하류로 군내에서 가장 넓은 평야지대이므로, 강의 남쪽에 있는 평원지라 남평이라 칭하였으며
자연부락으로는 본동, 다슬, 봉화치, 한 대곡, 새을동 등 5개 부락으로 형성되어 있다.

나전교 방향으로 향한다

뒤돌아 본 남평대교의 좌측으로 정선아리랑의 가사에도 나오는 꽃벼루(꽃베루)재가 아른히 보인다
정선에서 나전, 여량으로 이어지는 42번 국도변에 있는 꽃베루의 '꽃'은 '곧'이 변한 말로 꽃베루는
'곧은 절벽'이라는 뜻을 내포해 '깎아지른 절벽이 있는 지형'이나 시간적으로 미래를 뜻하는 부사형으로
'가도가도 끝없는 곧은 언덕길'이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
지명에 종종 접두어로 등장하는 '꽃'은 '곧은'이라는 뜻의 '곧'과 '불뚝 튀어나간'이라는 '곶'이 변한 것이며,
'베루'는 '강이나 물을 낀 벼랑'의 사투리로 지형적인 특징을 나타내는 '꽃베루'를 '꽃이 핀 산길'로 보는
것은 옛말을 간과한 해석이 된다. (출처: 정선 북평면 지명유래. 2007. 정선군 북평면사무소)
정선아리랑에는
'아질아질 꽃베루 야속하다 관음베루
지옥같은 정선읍내 십년간들 어이가리
아질아질 꽃베루 지루하다 성마령
지옥같은 이 정선을 누굴따라 여기왔나'
라는 기사가 있는데 가도가도 끝이 없는 정선 여정의
지루함을 달래기 위해 부른 노래라 할 수 있다.

나전교(羅田橋:16:18)
오대(황병)지맥꾼들은 거의 대부분이 이곳에서 산행을 종료하는 스틱을 접는다.
나전교 옆에는 나전철교가 있고 그 아래로 오대천이 흐르고 있는데 기왕에 왔으니
시간적인 여유도 있고하여 오대천과 골지천이 만나 한강(조양강)으로 가는 합수점까지 가고 싶다.

나전교에서 합수점을 바라보면서 내려선다

골지천/오대천 합수점 가는길

여름철에는 합수점을 가기가 힘들겠다.

합수점가는 길에 뒤돌아서 보니 조금전 843.5m봉에서
개고생하면서 내려온 능선이 까칠하게 보인다

합수점 가는 길에서 만난 골지천(骨只川)의 모습
골지천(骨只川)은 강원도 정선군 여량면 임계면을 흐르는 강으로 지명유래는 임계면 골지리(骨只里)에서
유래하였으며 구한말까지는 문래리 또는 고계리(高溪里)로 칭하였는데, 일제강점기에 번역이 잘못되어
골지리가 되었다...골지는 골짜기의 방언으로 골짜기 물이 골지리 앞을 지난다고 해서 골지내(骨只川)라 했다.
1553년(명종 8)에 경복궁에 화재가 났을 때나 1865년(고종 2)에 경복궁을 중건할 때에도 이곳의 소나무가
동량재(棟粱材)로 쓰였는데 뗏목을 만들어 서울까지 운반할 때 이 골지천을 이용하였다.
골지천이 흐르는 정선에서도 관련 기록이 있다.
골지천을 이루는 원류부는 셋이다. 하나는 두타산 남쪽 댓재(竹峙)에서 발원한 번천이고, 다른
하나는 태백시 금대봉에서 발원한 물로 이 두 하천은 하장면 숙암리의 광동호에서 만난다.
광동호에서 출발한 물은 다시 고적대에서 발원한 하천을 토산리에서 받아들여 정선군 임계면
골지리로 들어가게 되는 남한강의 발원천으로서, 한강 최상류를 형성한다.
발원지는 태백시 금대봉(金臺峰)에 있는 검룡소(儉龍沼) 또는 삼척시의 대덕산(大德山:1,307m)이나
중봉산이라는 설이 있으며 정선군 북동쪽 임계면에서 서쪽으로 흘러내린 임계천(臨溪川)이 북부
여량(餘糧)에서 골지천에 합류하고, 이 물줄기는 정선읍 남쪽에서 조양강(朝陽江)과 합류한다.

골지천/오대천 합수점(16:40)
드디어 오대(황병)지맥의 합수점에 도착하여 맥이 입수하면서 범여의 발길도 멈춘다
맘껏 걸을 수 있다는게 얼마나 큰 행복인가...쥔장 잘못만난 내 두다리(足)에 감사하며....

인증샷

다시한번 합수점을 뒤돌아보고 왔던길을 뒤돌아 간다
이곳부터는 좌측의 오대천과 우측의 골지천이 합류하여 한강으로 흐르는데
지도상에는 한강이라 부르지만 조양강이라 부른다
조양강(朝陽江)은 한강의 본류로 백두대간에서 발원한 골지천과 송천이 정선 아우라지에서 합쳐져
조양강을 이루는데 조양강은 정선군 정선읍 가수리에서 동대천과 만나 합쳐지면서 '동강'(東江)으로
이름이 바뀌는데, 동강은 영월을 기준으로 동쪽에 있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동강은 영월에서 서강을 만나 남한강이 시작된다

나전교와 나전철교 사이를 지나 나전교 윗쪽으로 올라간다

다시 나전교(17:15)

나전교에서 바라본 오대천의 모습
오대천(五台川)은 평창군 진부면 오대산 두로봉(1,422m) 남쪽 계곡에서 발원하여
월정사 앞을 지나고 진부면 상진부리 부근에서 척천을 합친 뒤 계속 남류하며 유로(流路)의
길이는 55.7km이며, 유역면적 451.50km2이며,정선군 북면 나전리에서 골지천과 합류하여 남한강을 이룬다.
〈세종실록〉 지리지를 비롯한 대부분의 옛 문헌에는 '한강의 시원은 오대천의 상류인 서대사 우통수이며,
한강의 명칭도 우통수에서 비롯되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1918년 조선총독부 임시토지조사국에서
실측 조사한 결과, 한강의 수원은 강원도 삼척시 하장면으로 밝혀졌다. 이 강의 명칭은 〈동국여지승람〉에는
금강연, 대동여지도에는 세천이라고 했다.
이 하천유역은 해발고도가 높고 기온이 한랭하여 고랭지농업지대를 이루며, 옥수수·감자를 비롯하여
고랭지채소와 홉이 재배된다. 유역 내에는 오대산국립공원과 월정사·상원사·오대산사고지 등 주요문화유적이 있다.
그밖에 척천의 상류에는 방아다리약수가 있고, 월정사 앞에는 넓이 9,900㎡의 금강연이라 불리는 소(沼)가 있다.
이곳의 물은 차고 깨끗해 천연기념물인 열목이가 서식하고 있으며, 어류보호지역으로 지정되어 있다.

나전교에서 바라본 고양산의 모습

버스 정류장(17:18)
버스정류장 뒷쪽 철길 아래에는 간이역인 나전역이 보인다
정선군 북평면에 있는 나전리(羅田里)는 고려 초 정선군이 도원군(挑源郡)으로 되었을 때
어라전(於羅田)으로 칭하다가 구한말 행정구역 개편시 나전리로 개칭하였으며 자연부락은 본동,
야미동(夜味洞), 어도원(於挑源), 장평 등 4개 부락이 있다.
버스정류장에 도착하여 버스 시간을 알아보려 했으나 간이정류장이라 아무것도 없고
물어보려해도 지나가는 사람이 있어야 물어보제...멍하니 서 있는데 아우라지에서
정선으로 나가는 차량들을 상대로 밑져봐야 본전이지하고 손을 드는데 이게 뭐여...
애들과 함께 놀러 나왔다가 가는지 30대중반쯤 되는 부부가 차을 세우면서 어디
가시냐고 묻는게 아닌가...서울을 가야하는데 정선까지만 좀 태워 달라고 하니
차가 좀 지저분하다고 하면서 타라고 하는게 아닌가...갑자기 양넘 지갑줏은 느낌이다

자기들은 평창에서 애들 데리고 캠핑을 왔다가는 길이라면서 정선터미널에 내려주고 간다
젊은이 고마웠어요...복받을깁니다...버스에 내려 정선공영터미널로 들어가는데 원주를 거쳐
서울로 가는 버스가 터미널을 빠져나가는 바람에 한참을 기다려야 했다

정선버스정류장(17:46)

하는 수 없이 19시에 출발하는 막차를 기다려야 했다

정선공영 터미널에 있는 정선아리랑 표시석
아리랑은 한국 민요 중에서 그 종류와 가사가 가장 많은 민요의 하나로 구비 문학이며 적층적
성격을 띠고 있어 당시의 세태와 다수 민중의 공동 체험을 그 안에 담아 내고 있고, 민요 중에서
가장 널리 분포하고 있는 '아리랑'은 시대와 지역에 따라 그 특성과 명칭이 다른 모습을 보인다.
한국의 3대 전통민요 아리랑은 정선아리랑 · 진도아리랑 · 밀양아리랑을 말한다.
정선아리랑은 태백산맥 동서를 따라 설정된 메나리토리권의 민요로 민요적 전통성과 지역성이 강하며
진도아리랑은 호남지역의 육자배기토리권에 속하지만 다른 육자배기토리 민요와 약간 차이가 있다.
전라남도 진도와 호남지역, 충청남도 일대, 경상남도 서부지역, 제주도 등에 분포되어 있다.
밀양아리랑은 영남지역에서 전하지만 영남지역의 정자토리 민요와는 약간의 차이가 있다.
한편 1926년 나운규의 영화 〈아리랑〉의 주제가 〈신아리랑〉을 계기로 대중들에게 널리 알려졌고
통속민요로 자리잡기 시작했고 이후 〈아리랑〉은 대중가요·영화·무용·문학 등의 전 예술분야에
파급되는 현상을 가져왔다

시간적인 여유도 많고 배가 고파서 터미널옆에 있는 해장국집에서
국밥에 맥주한병으로 혼자서 쫑파티를 하고 다시 터미널로 향한다

19시 정선발 → 동서울행 버스
19시에 정선을 출발한 버스는 평창군의 미탄, 평창, 방림, 운교, 안흥을 거쳐서 횡성군 새말에
도착했어야 영동고속도로에 들어선다...이 버스가 지나가는 조금 큰 동네마다 다 들리는 바람에
고속버스가 아닌 마을버스같은 느낌인데다 버스기사가 얼마나 차를 험하게 운전을 하는지
도데체 잠을 잘 수가 없다... 영동고속도로 문막휴게소를 지나면서 비는 엄청나게
쏟아지기 시작하는데 마치 장마철을 연상케 한다...집에 도착하니 밤 11시가 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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