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범여(梵如)의 世上사는 이야기
석항(죽렴)지맥(終)

석항(죽렴)지맥 제2-1구간 - 마차재에서 고성고개까지

by 범여(梵如) 2021. 8. 23.

☞ 산행일자: 2021년 8월 22일

☞ 산행날씨: 잔뜩 흐린 날씨에 높은 습도

 산행거리: 도상거리 약11.4km / 5시간 15분 소요

☞ 참석인원: 나홀로 산행

☞ 산행코스: 마차재-연안김씨 가족묘-문곡강수량 측정소-853.3m봉-당목이재-782m봉-마차치

                 771m봉-871.1m봉-곰봉-929.1m봉-무명봉-폐헬기장-임도삼거리-갈림길-948.8m봉

                 926m봉-임도-임도-825.7m봉-임도삼거리-고개-임도갈림길-안부-730.1m봉-안부

                 698.3m봉-고성터널 위-묘지-고성고개

 소 재 지: 강원도 정선군 남면, 신동읍 

 

이번주 일요일(22일)은 불교의 5대명절중에 하나인 우란분재(盂蘭盆齋)이라 부모님의

제사를 모셔야하기에 토요일에 수헌 아우님과 함께 양양 남(신산경표:만월)지맥을

가기로 했는데 토요일 하루종일 비가 온다고하여 마음이 심란하다.

아우님과 나는 무박 산행과 우중산행을 지독히 싫어하는 공통점을 갖고 있기에

양양남 지맥길을 나중으로 연기하고 사무실에 앉아 멍하니 앉아 있다

 

그런데 최근에 코로난가 지랄인가하는 역병에 델타 변이바이러스라는게 생겨서 절집 행사도

사람들을 많이 모이지 못하게 하는 모양이다... 마음도 싱숭생숭하여 토요일에 절에

들려 미리 부모님의 위패에 예를 올리고 쌀 한포대와 부모님이 낼 반야용선을 타고 가실 때

입으실 옷을 장만해놓고 집에 오니 한결 맘이 편하다...내일은 비가 오지 않는다고 하니

산에나 가야겠다

 

불교에서는  불교의 5대 명절이 있는데 부처님오신날, 출가절, 성도절, 열반절은 부처님과 관련된

것이지만 우란분절은 조상에 대한 행사인데 일반적으로는 칠월 백중이라고 알려져 있다

우란분재(盂蘭盆齋)는 음력 7월 15일에 지옥이나 아귀(餓鬼)의 세계에서 고통 받고 있는 영혼을

구제하기 위해 3보(寶)에 공양하는 의식이다.

 

음력 7월 15일(양력 8월 22일) 24절기의 중심인 우리 민족 고유 명절 백중(百中)인데 과일과 음식 등

백가지를 준비하여 스님에게 공양하는 백종에서 유래되었으며 불교에서 우란분절(盂蘭盆節)이라고도

대자대비의 효심을 밝히는 날로 1년에 한 번 지옥문이 열리는 날이라 하여 많은 사찰에서

우란분재(盂蘭盆齋)를 지낸다.  
 
돌아가신 부모님과 조상님들이 지은 업을 소멸시키고, 편안한 내세를 위해 후손들이 할 수 있는

효도가 조상님의 극락왕생을 발원함과 동시에 자신의 업장을 소멸하고, 못다한 효행을 행하여

그 공덕으로 후손들의 무병장수와 복을 기원하며 백등(白燈)을 달아 돌아가신 조상님을 추모한다. 

 

사람이 많이오면 기저환자인 내가 좀 불편할 것 같아 미리 절에 갔다왔다고는 하나 그건

어디까지나 핑계일 뿐이고 산엘 가야겠다는 욕심일 뿐...그래서 부모님께는 미안할 따름이다

 

어디를 가야하나 여기저기를 검색해 보지만 많은 곳이 비가 오는데 강원도 정선쪽이

오전 7시부터 비가 그친다는 예보가 있기에 한달전 1구간을 끝내고 남겨둔 석항(죽렴)지맥

2구간을 가야겠다고 생각하고 이른 새벽에 집을 나왔는데 시계를 잘못 봤는지 동서울

터미널에 도착하니 새벽 5시밖에 안되어 1시간 가량을 대합실에 멍하니 앉아 있었다. 
 

오늘 산행구간의 지도

동서울발 → 고한.사북행 버스표

석항(죽렴)지맥 2구간 들머리인 마차재로 가기 위해서는 예미역으로 가야만 하나 예미역으로 가는

청량리발 첫 열차가 07시 35분이고 예미역에 도착하면 10시 22분이라 그러면 아무리 빨라도

산행 시작이 11시나 되어야 하기에 안 그래도 느림보인 범여로서는 어쩔 수 없이 고한으로 가서

택시를 타고 마차재로 가는 행선지를 잡았다. 

올해에만 3번째로 고한으로 가는 버스에 오른다.

최근에 이유없이 밤에 잠을 설친 탓이련가...차에 오르자마자 오늘도 예외없이 깊은 잠에

빠졌다가 버스가 영월군 쌍룡 근처의 국도변 휴게소에 잠깐 정차하는 바람에 잠에서 깨어 났다가

버스가 출발하면서 다시 잠에 빠졌다가 고한 터미널에 도착한다

고한.사북 공영터미널(08:25)

터미널을 빠져나와 한달전에 들렸던 이마트24시 편의점에서 라면과 김밥으로 아침을

해결하려 했는데 바로 옆에 곰탕집이 영업을 하길래 그래 아침을 든든하게 먹자하고

곰탕집에 들려서 아침을 먹는데 곰탕인지 맹탕인지는 모르겠으나 이렇게 맛없는

곰탕은 난생 처음 먹어보는 느낌이다...아침을 먹으면서 이곳에 오면 단골로 이용하는

택시기사에게 전화를 했더니만 식당 바로 앞에 있다고 한다.

그 바람에 밥을 급하게 먹는둥 마는둥 하고 식당을 빠져나와 택시를 타고 마차재로 향한다

마차재(磨磋峙:708m:09:15)

정선군 남면 문곡리와 신동읍 가사리의 경계를 이루고 있는 고개로 영월에서 태백으로

이어지는 38번 국도가 지나가고 있는 고개로 예전에는 구릉지 갈대밭이 있었으나 개간으로

인해 없어지고 고랭지 채소단지가 되었다.

1992년 도로포장 공사가 완공되기까지는 굽이굽이 험한 고개로 마차재 도로포장 공사는

20여년 전부터 국회의원 출마자들의 단골 공약 메뉴여서 선거 때만 되면 '마차재는

동네북'이라는 말이 나돌곤 할 정도였다.

 

옛날부터 이 재에는 광물 석회석의 매장이 많아 그 개발을 뜻하여 갈 마(磨)자와 갈 차(磋)자를 붙인

지명이라고도 하며 옥녀가 앉아 머리 빗는 형국이라고도 하여 명당자리가 있다고 전해온다.

옛날 이곳에 연안 김씨가 살고 있었다 한다.

 

고도가 높아 봄에도 눈발이 흩날리는 날을 많이 볼 수 있으며, 옛날에는 고개 서쪽으로 운치리

설론(雪論)으로 통하는 길이 나있어 탄맥을 찾기 위해 자동차들이 오가기도 했다.

지금은 10여가 호의 주민들이 상업과 밭농사를 지으며 살아가고 있다.

산행을 시작하다(09:20)

계단을 오르면서 뒤돌아 본 마차재의 모습

시멘트 계단을 올라서니 묘지가 나온다

연안김씨 가족 묘(09:23)

연안김공 묘지 뒷쪽으로 올라서는데 등로가 잘 보이지 않는다.

초반부터 잡목의 저항이 상당히 심하다...도저히 갈 수가 없어 되돌아 나온다

우측으로 살짝 돌아서니 희미한 등로가 나와 능선으로 올라간다

힘들게 능선으로 선 다음으로 잡목을 헤치며 좌측으로 향한다

문곡 강수량 측정소(09:35)

문곡강수량 측정소를 지나 853.3m봉으로 오르는 급경사의 등로가 시작된다

폐TV 안테나도 보인다

비에젖은 등로는 상당히 미끄럽다

길을 보이지 않고 초반부터 개고생이 시작되는데 오늘 산행이 쉽지 않음을 예고한다

급경사의 빡센 오르막길

죽을 힘(?)을 다해서 853.3m봉 정상에 올라서니 선답자의 흔적이 보인다

우측으로 벽암산(霹巖山.925.0m)으로 가는 뚜렸한 등로가 보이나 맥길은 좌측으로 이어진다

 

벽암산(霹巖山)은 정선군 신동읍소재지인 예미리 동북쪽에 위치하고 있으며 본래는 평창군

동면에 속해 있었으나 현재는 정선군 신동읍에 속해있다

산의 특징은 오지대의 석벽(石壁)지대이나 만가지 신비의 약초가 분포되어 있고, 우리나라

태고의 신비를 잘 간직한 오래된 활, 잡류의 수목들이 서식하고 있는 산림자원의 보고(寶庫)이다

853.3m봉(09:50)

좌측의 내리막길로 내려간다

끄트머리로 내려가니 ...

잠시후에 오를 곰봉(熊峰)이 여인의 乳頭처럼 오뚝하게 서 있다

곰봉에서 이어지는 맥길의 모습...잠시후에 내가 걸어야 할 능선이다

이곳도 등로는 보이지 않고 잡풀의 저항이 엄청나게 심하다

아침에 출발한 마차재와 그 뒷쪽으로는 한달전에 비를 맞으면서 개고생하며 내려온 

1구간의 976.8m봉이 보인다

능선 우측으로 보이는 닭이봉(鷄峰:1,028m)의 모습...저긴 갈 일이 없다

 

정선군 정선읍 가수리와 남면 낙동리의 경계를 이루는 닭이봉은 그 생김이 마치 닭의 벼슬을

닯았다해서 유래된 지명으로 이곳 주민들은 조상대대로 닭이봉이라 불렀는데 일제시대 때에

‘닭 계(鷄)’자를 써서 계봉(鷄峰)이라 부르기 시작했다고 한다

 

멀리서 보면 육산(陸山)인 듯 보이지만 정작 가까이서 보면 천인단애(千仞斷崖: 길이나 되는 

높은 낭떠러지)의 절벽을 이루고 있는 아찔한 험산(險山)이다

절벽을 이루고 있는 예리한 산봉우리는 닭벼슬을 방불케하는 날카로운 굴곡을 이루고 있으며

병풍처럼 둘러처진 동강의 조망이 일품인 산이며, 짜릿한 스릴은 덤이다

잡풀속에서 도도함을 잃지않은 금마타리

잡풀의 거센 저항을 받으면서 내려서니 움푹파인 밭이 나오는데 지도상의 돌리네 밭이다.

 

기반암이 석회암으로 이루어진 지역에서는 석회암의 주성분인 탄산칼슘이 빗물에 녹으면서

와지(窪地:우묵하게 패어 웅덩이가 된 땅)를 형성하기도 하는데 이를 돌리네라고 한다.

석회암 지대 중에서도 절리가 형성된 곳은 빗물이 잘 스며들어 용식 작용이 활발하게 일어나

돌리네가 잘 발달하며, 크기는 수~수백 m에 이르기까지 다양하지만 보통은 20m 내외이다.

돌리네가 지속적으로 용식되면 주변의 돌리네와 합쳐져 복합 돌리네를 이루는데, 마을이 들어설

정도로 대규모인 것은 우발레(Uvale)라고 하고, 우발레보다 훨씬 큰 분지는 ‘평야’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 폴리에(Polije)라고 한다. 폴리에의 내부에는 하천이 흐르고 있어 우발레와 차이를 보이며,

하천 주변으로 충적지가 형성되어 마을 또는 농경지로 활용된다.

돌리네의 중앙에는 빗물이 빠져나가는 싱크 홀(sink hole)이라는 배수구가 발달한다.

그러나 토양으로 덮여 있는 경우가 많아 관찰하기는 쉽지 않다. 따라서 돌리네 지표수가

부족하여 논농사로는 이용되지 못하고 밭농사로 이용된다.

돌리네밭 너머로 바라본 닭이봉의 모습

돌리네밭 가운데 아기노루 한마리가 나를보고 깜짝 놀라 정신없이 도망을 간다

당목이재(10:00)

돌리네밭 옆에 임도가 보이는데 지도상에는 당목이재라고 표기를 해놨지만 유래는 알 길이 없다

돌리네밭 옆의 희미한 임도를 따르는데 질경이와 물봉선의 군락을 이루고 있다

임도 끄트머리에서 좌측의 숲 속으로 들어선다

숲속에 들어서면서 뒤돌아 본 돌리네밭의 모습

숲으로 들어선 다음에...

안부를 지나서 능선으로 올라간다

782m봉(10:07)

782m봉에서 급하게 좌측으로 꺽어져 내려가는데 비에젖은 등로가 상당히 미끄럽다.

희미한 등로를 따라서 내려가니 시멘트 도로가 보인다

마차치(磨磋峙:732m:10:13)

정선군 남면 광덕리에서 신동읍 가사리로 이어지는 고개로 좌측으로는 마차마을이 보이고

커다란 노거수 2그루와 서낭당의 흔적인지 돌무더기 같은게 보이는데 재마차재라고도 불린다

옛날부터 이 고개는 석회석의 매장량이 많아 그 개발을 뜻하여 ‘갈 마(磨)자와 갈 차(磋)’를

붙혀 나온 지명이라고 하며 옥녀가 앉아 머리를 빗는 형국인 옥녀산발형(玉女散髮形)이어서

'마차(磨磋)'라고 한다

마차치에서 바라본 마차마을

마차마을은 마차재 꼭대기 바로 아래에 있는 마을로 마을 북쪽 벽암산(霹巖山)에서 뻗어 온 산세가

옥녀가 앉아 머리를 빗는 형국인 옥녀산발형(玉女散髮形)이어서 '마차(磨嵯)'라고 한다.

풍수지리에서 옥녀산발형국은 명당자리라고 하는데, 마차재에는 지금의 주유소 아래 어딘가

'구늪지지 팔판대지'라는 명당이 있다는 얘기가 전해 내려온다.

 

오랜 옛날 이곳에는 연안 김(金)씨들이 처음 정착해 살았다.

이들 가운데 가장 촌수가 높은 어른이 죽자 정암사(淨巖寺)주지스님이 와 묘자리를 잡아 주었다.

그 주지스님은 묘자리를 잡아 주고 돌아가면서 연안 김씨 네명의 아들에게 땅을 파되 넓은 돌이 나오면

들지 말라고 당부했다. 그러나 셋째 아들과 넷째 아들은 묘자리를 파내려 가다가 돌을 들어 버리자

학(鶴) 한 마리가 날아올라 갔다고 한다. 묘자리에서 학이 나온 것을 학국산수형 이라고 하는데,

장례를 치르고 나서 묘자리를 잡아 주었던 정암사의 주지스님이 그 얘기를 듣게 되었다.

 

그리고선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연안 김씨들은 기운이 쇠해 이곳을 모두 떠날 것이고, 아마도 수백 년이 지나 밤나무가 산을

이루게 되면 돌아올 것이요……"

 

그 스님의 말처럼 그때부터 김씨들이 하나둘씩 이곳을 떠나게 되었다.

그로부터 수백 년이 지난 후 지금의 마차재 휴게소 맞은편 산에는 산밤나무가 숲을 이루기 시작했다.

산밤나무가 숲을 이루면 학이 찾아 드는 것은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아직 연안 김씨는 다시 돌아오지는

않았으나 몇 해전부터 이곳을 지나는 사람들 가운데 '구늪지지 팔판대지'가 어디쯤이냐고 묻는

사람들이 있다고 하는데, 밤나무가 숲을 이룰 때 연안 김씨들이 돌아온다는 그 스님의 예언이 과연

사실로 나타날지 자못 궁금한 일이다

맥길은 시멘트 임도로 올라와 광덕리가는 길쪽에서 좌측의 오르막으로 올라간다

등로 좌측으로는 묵밭이다

도라지를 심어놨는지 도라지가 보이나 도라지보다는 잡초가 훨씬 많다

오르막길에 개인땅이라고 들어가지 말란다...밭이나 관리 잘하셔요

묵밭을 지나 숲속으로 올라간다

곰봉으로 향하는 빡센 오르막이 시작되는데 갑자기 온 몸에 식은땀이 흐르면서

기운이 쭉 빠지고 창자가 끊어질 듯 배가 아파오는데 미칠 지경이다.

아침을 급하게 먹은 탓인가...베낭을 내려놓고 숲으로 들어가서 억지로 볼일을 봤지만 효과가 없다

소화제 2알을 먹고 통증이 멈추길 기다렸는데 느낌상 조금 나은것 같아서 다시 길을 나선다

771m봉(10:30)

우측으로 꺽어져 안부로 내려섰다가 다시 오르막으로 오르는데 통증이 멈추질 않는다.

여기서 산행을 멈추자니 새벽에 나온게 너무 억울하고 가자니 통증은 계속되고 고민이다

일단 가는데 까지 가보기로 하고 소걸음으로 천천히 맥길을 이어간다

삶의 무게

천천히 아주 천천히 곰봉으로 향한다

잡목의 저항을 헤치고 올라서니 871.0m봉이 나온다

871.0m봉(10:55)

또 잡목과의 전쟁이다

안부를 지난 다음에...

등로 좌측으로 철조망이 보인다

우측으로 휘어지는 희미한 임도를 버리고 직진의 오르막으로 오른다

곰봉으로 오르는 빡센 오르막길이 시작된다...물기를 머금은 등로는 상당히 미끄럽다

급경사의 직진 등로를 버리고 좌측으로 살짝 우회면서 올라간다

나뭇가지 사이로 석항(죽렴) 지맥 분기점 위에 있는 두위봉이 흐릿하게 보인다

능선에 오른 다음에 숨한번 크게 쉬고 우측으로 살짝 꺽어진다

잠시후에 오를 곰봉(熊峰)의 모습

좌측 아랫쪽에는 엄청나게 큰 태양광 시설이 보인다

이 오지에 자연을 홰손하면서 설치한 저 시설이 과연 친환경적일까?

곰봉 오르는 길에는 여뀌 군락지가 태클을 걸어댄다

태양광 너머로 바라본 두위봉의 모습

두위봉에서 질운산~예미산으로 이어지는 옥동(두위)지맥 능선의 모습

여뀌가 군락을 이루고 있는 안부에서 오르막으로 올라간다

빡센 오르막...통증 때문에 초반부터 자꾸만 걸음은 느려지고...

오르막길도 그리 만만하지는 않다

???

참으로 대단하십니다

등로가 보이지 않는 곳을 헤치고 올라서니...

산불감시초소가 정상을 지키고 있는 곰봉에 도착한다

얼마나 컨디션이 않좋았는지 871.0m봉에서 곰봉까지 35분이나 걸렸다

곰봉(熊峰:1.016.0m:11:30)

정선군 남면 광덕리와 신동읍 가사리.운치리에 걸쳐있는 산으로 마대산(馬垈山)과

마주보고 있으며, 정선읍지에 따르면 두위봉의 연맥이다...정상에 곰처럼 생긴

바위가 있어 곰봉이라 부르며, 소나무가 우거진 암릉이 발달되어 있는 산이다

 

건너편에 있는 닭이봉과는 형제처럼 보이는 산으로 산세가 곰이 엎드린 듯 육중하다거나

산꼭대기 바위들이 닭벼슬을 닮아서 산이름이 그렇다는 설도 있다. 그러나 이 산 주변 토박이

주민들 얘기로는 아주 먼 옛날 곰봉과 닭이봉 일원이 대홍수로 물이 가득 찼을 때 물 위로 솟은

산꼭대기에 겨우 곰 한 마리가 앉을 수 있었던 곳이 곰봉이고, 닭 한 마리가 겨우 앉을 수 있었던 곳이

닭이봉이어서 그렇게 불렀다고 한다. 

인증샷

곰봉 정상 1등 삼각점(△정선12 / 1993재설)

우측으로는 닭이봉으로 향하는 뚜렸한 등로가 보이나 좌측으로 90도로

꺽어져 가야하는 맥길은 보이질 않는다.

닭이봉쪽으로 살짝 내려갔다가 좌측으로 꺽어지니 곰봉 아래의 암릉이 보인다

나뭇가지에 묻혀버린 저 바위가 곰바위처럼 보인다고 해서 곰봉이라 부르는 

모양인데 원시림에 가까운 잡목에 가려있어 확인할 길이 없다.

칡넝쿨을 헤치면서 내려가니...

반가운 선답자의 흔적이 보인다

물기를 잔뜩 머금은 급경사의 미끄러운 내리막길...

잡풀에 막혀버린 등로를 내려간다

희미한 등로가 보이기 시작하고 곰봉 아래에서 만난 철조망을 다시 만난다

일반적으로 보기가 쉽지않은 큰제비고깔꽃이 보이기 시작한다

맥길은 계속해서 철조망과 같이한다

무박 산행시에는 조심해야 할 듯 싶다

아픈 배의 통증은 약간 덜하나 컨디션 저하로 인해 발걸음은 자꾸만 느려진다

완만한 능선길을 걸어가니 그나마 다행이다

큰제비고깔(꽃말:영웅, 위엄)

큰제비고깔은 미나리아재비과 제비고깔속 여러해살이풀로  경기 이북 고산지역에 드물게

분포하는 희귀식물로 산록부의 반 그늘지고 부식질이 풍부한 습윤지에서 자란다.

높이 1m가량 곧게 서는 줄기 윗부분에서 많은 가지가 갈라지며 어긋나기로 달리는 잎은

잎자루가 길고 단풍잎같이 3~7개로 갈라지며 낱조각 가장자리에 불규칙한 톱니가 있다.


   7~9월 원줄기 끝에 총상꽃차례가 형성되고 짙은 자주색 꽃이 아래에서부터 위로 올라가며

여러 개씩 피며,  꽃받침 낱조각 5개가 꽃잎처럼 되며 위쪽 것은 꽃뿔이 있고 꽃잎이 그 속에 들어 있다.

꽃자루와 꽃대축 윗부분에는 갈색 융털이 있다. 열매는 세 갈래의 긴 타원 모양 골돌과(蓇葖果)로

끝이 길게 뾰족해지며 10월경 익으며 북한에 자생한다는 제비고깔에 비해 키가 큰 데다 꽃봉오리가

제비를 닮았고, 고깔과 흡사하다 하여 이름 붙은 것으로 전해진다.

자생지가 백두대간 주변 10곳 미만에 불과하며 개체수도 많지 않다고 한다

929.1m봉 정상으로 올라간다

929.1m봉(11:55)

선답자의 산행기에는 정상에 준.희선생님의 산패가 있었는데 집에와서 사진을 보니 없다

없어진 건지, 못 본건지...모르겠다.

완만한 내리막길로 내려간다

무심코 걷다보니 철조망 안쪽에 갇혀 버렸다...개구멍을 통해서 바깥으로 빠져 나간다

등로는 보이지 않고...

좌측으로 철조망은 내려가고...맥길은 직진으로 이어진다

양호씨!...반가워요

지나가신지 얼마되지 않으신 모양이다...시그널이 따끈따끈하다

무명봉(12:05)

갑자기 등로가 사라지고...

산딸기 군락지를 이리저리 헤치면서 보이지 않는 맥길을 이어간다

안부를 지나고...

다시 완만한 이름없는 봉우리로 올라간다

지맥길이 다 그렇지만 이곳은 특히 여름철에 올 곳은 절대 아니다

희미한 등로를 감각적으로 걷는다...그나마 다행인게 고도차가 별로 없다

오랫만입니다...한번도 뵌 적은 없지만 꽤나 원칙대로 맥길을 이어가는 까칠한(?) 산꾼인 듯 싶다. 

구릉지같은 곳에서 올라서니 잡목이 빽빽한 폐헬기장(?)같은 곳이 나온다

폐헬기장?(12:15)

정글같은 폐헬기장같은 곳은 빠져 나가느라 개고생을 한다

내리막길로 내려가는 등로 좌측 아래로 넓은 임도가 보인다

맥길이고 지랄이고 사람이 살고 봐야제...맥길을 버리고 임도로 내려간다(12:18)

임도 우측 능선이 맥길이나 편안한 임도를 따라서 걸어간다

임도 주위에는 금마타리들이 많이 보인다

도로는 휘어지고...

임도 좌측으로 시야가 열리는데 사유지란 팻말이 보인다... 우짜라꼬...들어오지 말란 얘기인다?

임도 너머로 지난 8월 1일에 걸었던 옥동(두위)지맥 능선이 한 눈에 들어온다.

질운산 아래 고랭지 채소밭과 타임캡슐공원, 그 너머로 예미산이 보이지만

비가 온 뒤의 개스로 인해 모든게 희미하게만 보이는게 아쉽기만 하다

우측에 보이는 저 능선이 맥길이다.

오룩스맵에서는 등로를 이탈했다고 계속해서 경고음이 나온다

나도 알고, 나 역시 맥길에서 벗어나기 싫어하는 원칙주의자인데

지금 컨디션이 최악인데 우짜란 말이냐...일단 살고 봐야제...

석항(죽렴)지맥의 끝자락이 희미하게 보인다

임도도 너거끼냐?

취꽃도 만나고...

물봉선(꽃말:나를 건드리지 마셔요)도 많이 보인다

길 / 이영춘

 

문득문득 오던 길을

되돌아본다

왠지 꼭 잘못 들어선 것만 같은

이 길

 

가는 곳은 저기 저 계곡의 끝

그 계곡의 흙인데

나는 왜 매일매일

이 무거운 다리를 끌며

가고 있는 것일까.

 

아, 돌아갈 수도

주저앉을 수도 없는

이 길

임도를 따라서 한참을 편하게 오다가 임도삼거리를 만나 마루금에 접속한다

뒤돌아 본 저 능선이 마루금이다

임도삼거리(12:40)

아! 곱다

임도가 맥길이다...임도를 따라서 간다

지금 산에는 기름나물꽃과 물봉선이 많이 보이는구나.

식물에 정유(기름) 성분이 들어있어 꺾거나 비볐을 때 기름과 같은

고소한 향기가 난다고 해서 ‘기름나물’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갈림길(12:42)

마음같아서는 우측의 맥길을 따라서 가고 싶지만 좌측 능선에 삼각점이 있는

948.8m봉이 있어서 좌측 능선으로 오른다...아무리 힘들어도 족보있는 봉우리는 올라야제

갈림길 입구로 들어서자 초반에 좀 빡센 오르막이라 힘이 드는구나

이곳이 추운 곳인가?...이제서야 뚝갈이 꽃을 틔우기 시작한다

오르막길에 간간히 모싯대꽃도 보인다

옛부터, 모싯대, 영아자, 병품쌈은 3대 우리나라 대표 산나물로 많이 알려져 있다고 한다.

모싯대는 날로 쌈 싸 먹거나 양념장에 무쳐 먹는 것이 제일 맛이 좋다고 한다.

짧은 빡센구간을 치고 오르니 완만한 능선이 나온다

백두사랑 이 대장의 흔적을 만나고...

등로 주위에는 식용이 가능한 흰털깔대기 버섯이 많이 보인다

잠깐이면 한봉지는 느긋하게 딸 수 있을 것 같은데 지금은 컨디션 저하로

몸뚱아리도 가누기 힘들정도인데 ...과감하게 포기를 한다

철쭉이 군락을 이루고 있는 지저분한 등로를 따라서 간다

미끄러운 곳을 지나니...

산불감시초소가 있는 948.8m봉이 보인다

948.8m봉(13:15~25)

주위에 삼각점이 있는데 아무리 찾아봐도 보이지 않는다.

보물찾기 하듯 풀섶을 뒤지다가 나무에 가려있는 삼각점을 찾는다

948.8m봉 정상 삼각점(△예미304 / 2004재설)

다시 통증은 시작되고 하여 베낭을 내려놓고 10분정도 휴식을 취한다

저 너머로 오늘의 날머리로 잡은 미구치가 보이는데 현재의 컨디션으로는 가기 힘들것 같다

직진의 희미한 등로로 내려간다

이곳에도 사람들이 오는 모양인지 로프가 처져 있다.

좌측의 나뭇가지 사이로 신동읍 소재지인 예미리가 보일듯 말듯하다

926m봉(13:28)

비교적 뚜렸한 등로를 따라서 내려간다

직진 등로를 버리고 로프가 처져있는 우측의 등로로 내려간다

여기도 흰털깔때기 버섯이 많이 보인다

가야할 지맥길의 능선은 벌목이 되어있다

벌목지 너머 우측으로는 신동읍 운치리가 보이고  그 뒷쪽으로는 동강을 끼고있는 백운산은 희미하다

벌목지로 내려서는데 등로가 없다.

능선을 바라보면서 걷는데 죽을 맛이다...뭔 지랄인지 모르겠다.

벌개미취가 피기 시작하니 가을이 오는 모양이다

 

벌개미취(꽃말:너를 잊지 않으리)

국화과꽃중에서 가장 먼저 피는 꽃이 벌개미취인데 쑥부쟁이와 약간 헷갈린다

구분법은 벌개미취의 잎은 가장자리가 밋밋하고 작은 톱니가 있는 반면에

쑥부쟁이의 잎은 톱니 모양이 크고 뚜렸하다...벌개미취의 異名은 고려쑥부쟁이이다

 

개화시기는 6~10월이며 햇빛이 잘드는 곳이나 반그늘에서 잘 자라며, 뿌리가

튼튼하여 경사진 곳에 심으면 토사 유출에 상당한 효과가 있다고 한다.

 

지명의 유래는 “벌”은 벌판에서 자라는 꽃이라는 뜻이고, “개미”는 꽃대에 많은

개미가 붙어있는 것처럼, 작은털이 있어서 개미라고 하고 “취”는 나물로 먹을 수

있는 식물의 이름에는 “취”가 붙는다고 하여 벌개미취라 불렀다고 한다  

천신만고 끝에 조금전에 헤어진 임도로 내려선다 

임도(13:40)

임도 우측 아래로 내려서는데...

이곳 역시 그리만만한 곳은 아니다

저 멀리 맥길 능선에 있는 고고산이 흐릿하게 보인다

개고생을 하면서 벌목지대를 벗어나서 숲으로 들어선다

무명봉이 나오고...

좌측으로 꺽어져 맥길을 이어간다

숲길을 빠져나오니...

또 다시 잡풀의 정글(?)지대가 나온다

참당귀도 만나고...

풀섶에 갇혀서 한참을 버벅거리다가 임도로 올라선다.

임도(13:48)

마음같아서는 그냥 우측 임도로 가고 싶지만 좌측 능선에 족보가 있는

825.7m봉이 있어서 좌측 능선으로 올라간다...그 넘의 족보가 뭔지...

직진으로 치고 올라야 하는 맥길...엄두가 나질 않아 살짝 우회하면서 올라간다

뻐꾹나리(꽃말:영원히 당신의 것)

백합목 백합과 뻐꾹나리속에 속하는 여러해살이풀로 학명은 ‘Tricyrtis macropoda Miq.’이다.

‘뻐꾹나리’라는 이름은 꽃덮이에 있는 분홍색의 얼룩이 뻐꾹새의 목에 있는 무늬와 닮았으며,

나리 종류와 비슷하다는 뜻에서 유래되었다.

 

일제강점기인 1937년 간행된 <조선식물향명집>에 ‘뻑국나리’로, 해방후 1949년 간행된

<조선식물명집>에는 ‘뻐꾹나리’로 표기가 변해서 기록되었다. 한반도 중부지역 이남의 산지 숲속에서

자라며, 7월 무렵 꽃을 피운다. 꽃 하나에 암술과 수술을 동시에 갖고 있는 암수한꽃이고, 꽃받침과

꽃잎이 분화되지 않고 꽃덮이로 합쳐져 있다.

 

키는 50cm 정도이며, 잎은 넓은 난형으로 어긋나며 잎가장자리는 밋밋하고 줄기는 곧추서고 비스듬하게

아래쪽을 향한 털들이 있다. 땅속 줄기는 수직으로 들어가고 마디마다 잔뿌리를 내며, 가끔 포복성 줄기가 뻗는다.

7월에 연한 자색의 꽃이 줄기 끝에 몇 송이씩 무리져 피고 자색 점들이 있는 6장의 꽃덮이조각으로 되어 있다.

나리꽃과 비슷하나 암술머리가 3갈래로 나누어진 다음 각각의 암술머리가 다시 2갈래로 나누어지는

독특한 특징을 지닌다. 열매는 피침형의 삭과로 익는다.

조금전에 내려온 벌목지를 뒤돌아서 본다

벌목지 북서쪽으로 민둥산(맨 좌측)과 백두대간상의 함백산(중)이 보인다

벌목지대의 잡풀로 인해 등로는 아예없고 갈 수도 없다

거기다가 벌목을 한 나무 밑둥치가 바닥에 있어 2번이나 꼬꾸라지면서 능선으로 올라간다

만항재에서 정암산~백운대~두위봉으로 이어지는 옥동(두위)지맥 능선의 모습

825.7m봉(13:57)

벌목한 후 아무런 흔적도 없는 825.7m봉...스틱으로 흔적을 남긴다

잡풀에 숨어있는 한많은 며느리밥풀

가야할 능선 너머로 고고산이 얼굴을 내밀고 있다.

내려가는 길도 그리만만치는 않다

정말 힘들게 임도삼거리로 내려선다

임도삼거리(14:05)

암릉구간 윗쪽으로 올라서서 맥길을 이어가야하나 자신이 없다.

포기를 하고 우측의 임도를 따라서 맥길을 이어간다

825.7m봉에서 내려온 길을 뒤돌아 본다

고도가 높아서 그런가 이제서야 애기똥풀도 보인다

임도 나뭇가지 사이로 바라본 정선군 신동읍 운치리(雲峙里)의 모습

조양강의 마지막 물길이 굽이치는 백운산과 곰봉 사이에 있는 마을로, 본래 평창군에 속해 있다가

고종 32년에 정선군에 편입되었고, 1914년 일제가 조선의 토지를 빼앗기 위한 목적으로 실시한 지방

행정구역 통폐합 때 납운돌과 돈니치를 병합하면서 '운(雲)'자와 '치(峙)'자를 따서 생겨난 지명이다.


운치리는 날씨가 흐리거나 비가 온 후에는 항상 안개가 자욱한 고개로 이곳을 지나던 사람들이 마치

구름을 뚫고 산을 넘어 다녔다 하여 '구름재'라 부르기도 하는데, 한창 때는 200호가 넘게 살았던

큰 마을이었지만 지금은 운치분교 아이들이 6명밖에 안될 정도로 작은 마을로 변했다.

수동, 납운돌, 돈니치, 설론, 터골, 번들 등지의 자연부락에서 고추, 콩, 옥수수 재배를 주업으로

살아가는 운치리는 영월댐 건설이 되면 마을 대부분이 수몰돼 비교적 지대가 높은 돈니치

일부만 남게 된다고 한다.

 

몇년전 봄에 동강할미꽃과 돌단풍을 찍으러 백운산 아래 점제나루르 갔었는데 거기가 운치리다

암벽 좌측위가 맥길이나 그냥 임도를 따라서 간다

임도길가에는 짚신나물꽃들이 많이 보인다

짚신나물이라는 이름은 식물에 달린 털들이 짚신에 달라붙어 신과 함께 여기저기를 여행했다는 데에서 유래했다. 

참으로 보기힘든 희귀종인 노랑물봉선도 눈에 많이 띤다.

임도앞에 보이는 능선이 가야할 맥길이다

운치리 계곡 뒷쪽으로 동강너머의 백운산이 보인다

임도 삼거리가 나오고 좌측으로 꺽어진다

고개(14:22)

좌측의 칡넝쿨숲이 능선에서 내려오는 맥길이다

고개 우측으로 올라서니 선답자들의 흔적이 보인다

능선을 오르는데 빈 틈이라고는 한치도 안 보인다.

도저히 뚫고나갈 자신이 없어 고개로 되돌아 나온다

고개에서 내려서니 임도삼거리가 나오고 우측의 임도를 따라서 간다

임도 우측의 능선이 맥길이다

이곳은 인적이 드문지 임도에도 잡풀이 무성하다

임도 갈림길(14:31)

이곳에서 임도를 버리고 좌측의 숲속으로 내려간다

임도에서 내려서니...

반가운 선답자들의 흔적들이 보인다

안부(14:33)

안부에는 산딸기들이 군락을 이루고 있다.

능선으로 올라선다

조그만 봉우리를 지나고...

희미한 등로지만 지나온 길에 비해서는 양반이다

뫳돼지의 횡포

이끼가 낀 바위를 지난다

730.1m봉(14:43)

살짝 우측으로 꺽어져서 내려간다

등로는 희미하고 잘 안보이나 간간히 만나는 선답자의 시그널이 길을 안내한다

살짝 좌측으로 꺽어져서 내려가니...

칡넝쿨이 길을 막는다...살짝 우회하여 안부로 내려간다

안부(14:47)

칡넝쿨의 강력한 저항을 받으면서 능선으로 올라간다

칡넝쿨 너머로 벌목지가 보이나 맥길은 아니다

다시 내리막으로 내려가는데 소나무들이 많이 보인다

칡넝쿨이 점령(?)하고 있는 안부를 지나서...

능선으로 올라간다

이 분도 지나가신지가 얼마되지 않은 모양이다.

희미한 등로를 따라서 698.3m봉으로 향한다

먼지 버섯

다른 이름로는 방귀버섯이라고도 버섯을 만지면 가운데 구멍에서 먼지 처럼 포자가 

뿜어져 나온다고 해서 방귀 뀌는것 같기도 하고 먼지같이 날린다고 먼지버섯이라 한다.

 

담자균류 먼지버섯과에 속한 버섯으로 갓의 지름은 2~3센티미터로, 처음에는  모양이나 

성숙하면 6~8조각으로 갈라지면서 바깥쪽으로 뒤집혀 갈색의 포자가 흩어져 나온다. 

여름에서 가을에 걸쳐 산이나 길가에 나며, 세계적으로 분포하며 못먹는 버섯으로 알고

있지만 한방에서는 약으로 쓰이기도 한다고 한다

698.3m봉(14:54)

우측으로 꺽어져 내려간다

내리막길로 내려가니...

묘지가 나오고 묘지 앞에는 뫳돼지 쉬키가 목욕탕을 만들어 놨다

후손들이 묘지를 잘 돌보지 않는 모양이다...조상한테 잘해야 복을 받는데...

묘지 아래로 내려간다

비가 오려나 갑자기 하늘이 컴컴해지는데 왠지 불안하다

빠른 걸음으로 내려간다

고성터널 위(14:58)

이 고개 아래로 고성터널이 지나간다

정선군 신동읍 고성리에서 예미리로 지나가는 터널인데 길이는 600m정도이고 1991년도

개통되었다고 하며, 원래는 차도로 만든 터널이 아니고 1990년 덕천리에서 신동읍민이

마시는 식수를 끌어 들이는 송수관을 묻을 때 만든 터널로 폭이 좁아서 대형 차량들은 

다니지 못한다고 한다 

계속되는 내리막길

묘지(15:01)

묘지 우측으로 내려가는데 등로가 안 보인다

외롭게 피어있는 산비장이

잠시후에 좌측에서 오는 넓은 임도를 만난다

넓은 임도를 따라서 고성고개로 향한다

닭장같은 가건물을 지나니 고성고개가 나온다

고성고개(古城峙:625m:15:05)

강원도 정선군 신동읍 고성리에서 신동읍내가 있는 예미리로 내려가는 고개로 정상에는

망해버린 동강쉼터라는 곳이 흉물스럽게 보인다...구러기재라고 불리기도 하는 고성고개의

지명은 우측의 고성리에서 따온 것으로 보이며, 일설에는 골이 아홉개가 있어 구래기 고개라

했다고 하지만, 굴이 많은 어귀에 있는 고개라고 해서 굴어귀재라는 지명으로 불리다가

세월이 지나면서 구러기재 또는 구래기재로 변했다고 한다.

 

옛날부터 운치, 고성, 덕천리 주민들이 읍내가 있는 예미리로 통하는 유일한 길목이었으나

1991년 이 고개 밑으로 터널이 뚫리면서 인적이 드문 고개가 되었다고 한다

고성고개 예미리쪽의 모습

마차재에서 이곳까지 오는데 급체로 인한 컨디션 저하와 지독한 잡목의 저항으로 인해

예상했던 시간보다 1시간 30분정도가 더 걸려 버렸다...아직도 미구교까지 가려면

날머리 접속구간을 포함하여 8km 이상이 남은 듯 하여 이곳에서 산행을

접어야 할 듯 싶다...아무래도 다음구간이 문제가 되긴해도 사람이 살고 봐야지

우짜겠노...올 여름에는 강원도 정선과 평창, 영월지역에 걸쳐있는 지맥을 마무리

하려 했었는데 지독한 잡목으로 인해 잡목의 저항이 덜한 내년 봄으로 계획을

바꿔야 할 듯 싶다

다음구간의 들머리를 확인한다...쇠파이프 좌측으로 올라가야 하는데

가까이가서 보니 아예 등로가 보이지 않아 기가 질려 버린다

이곳에서 산행을 접은게 탁월한 선택이라 위안을 삼는다.

후답자분들도 이곳의 여름 산행은 아무리 고수라더라 개고생을 할 것 같으니

잡목의 저항이 덜한 늦가을이나 이른 봄에 하기를 권한다

고성고개 고성리(古城里) 방향쪽의 모습

신동읍에 속한 고성리는 성(城)에 비유되어 불려진 지명으로 평창으로 통하는 교통요충 지역으로

곡창지대가 있으며, 지형은 곰봉산 능선이 남에서 북으로 뻗어 있으며. 동강 건너 칠족령 연봉의

층암 절벽을 이루어 평야가 없고, 고방과 내창 사이에 비옥한 농경지가 형성되어 있으며,

주산물은 고추, 담배, 마늘이며 신라와 고구려가 한수지역을 확보하기 위해 치열한 전투를

벌였던 고성산성이 있는데 통일신라시대 축성된 것으로 보이나 확실한 연대는 알 수 없다.

 

이곳에서 수통에 남은 물로 간단하게 몸을 닦고 옷을 갈아 입는데 고성리 방향에서 

트럭 한대가 넘어 오기에 서둘러 손을 들었더니 차를 세워주는 바람에 편하게

예미역에 도착한다

 

감사합니다...세세생생 복받을깁니다

예미역(15:35)

예미역발 → 청량리행 열차표

열차표를 예매하고 난 후 화장실에 들어가서 다시 깔끔하게 씻고 나온다

열차가 도착하려면 2여시간이나 남았다

역을 빠져 나오니 도로 건너에 서울약국이란 곳에 문이 열려있어 소화제와

까스명수 한병을 사서 마시고, 그 옆에 있는 한일수퍼란 곳에서 시원한

아이스아메리카노 커피한잔을 사서 가게 밖에 설치되어 있는 의자에

앉아 커피를 마신 후 한참을 졸면서 열차가 올 때까지 멍때리기를 한다

예미역 열차 운임및 시간표

신동읍 소재지인 예미리는 본래 평창군 동면 지역에 속해 있다가 고종 32년(1895년) 정선군에 편입되었다.

평창군에 속해 있을 당시 고성리(古城里)에 내창(內倉)이 있었고 지금의 예미초등학교 뒤에 외창(外倉)이

있어 주민들로부터 거둬들인 세곡을 저장해 두었으며 노일(魯日)에는 5일장이 열리기도 했다.

 

예미리(禮美里)라는 이름은 1914년 일제가 행정구역 통폐합 작업을 하면서 노일, 납돌, 유문동을

합하여 여미산(女美山)을 예미산(禮美山)으로 바꿔 부르면서 불렀다고 전해져 내려온다.

 

예미리는 오랜 옛날부터 제천에서 영월을 거쳐 정선 삼척 등지로 이어지는 교통의 요지인 까닭에

신석기시대부터 많은 사람들이 몰려와 거주했음을 지금의 읍사무소 아래 고인돌 등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또한 중국 당나라때 파락사(派樂使)로 우리나라에 왔던 사신 임의(林義)로 인해 생겨났다는 의림길 등의

지명을 통해 보더라도 오래 전부터 정선 등지의 산간 지방에서 내륙으로 통하는 관문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일제시대에는 가사리(佳士里)일대의 광산 개발로 인해 많은 일본인들이 몰려들어 일본 이름을

단 술집 등이 들어섰고, 병원 등이 들어서기도 했다. 그후 해방이 되고 태백산맥 일대에서 엄청나게

많은 무연탄이 매장되어 있다는 사실이 세상에 알려지면서 사람들이 몰려들기 시작했고,박정희 대통령

집권 당시인 1960년 초반 국토건설단이 들어와 철도 도로 등을 건설하면서 두메산골인 예미리는

새로운 눈을 뜨게 되었다. 최근 들어서는 함백광업소가 폐광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상가가 깨끗하게

정비되는 등 폐광과 이농 등에 따라 침체를 보이는 다른 지역과는 달리 새롭게 발전해 가고 있다. 

열차가 오기 20분전에 열차를 타러 역 플렛홈으로 향한다

예미역 플렛홈에서의 忙中閑

동해에서 출발하여 태백을 거쳐 고한, 사북을 지나오는 열차는 예상했던 시간보다

5분이나 늦게 도착한다...참으로 힘들게 한 산행이지만 후회는 없다

내가 미쳐서 다니는 산이니까...담주에는 어느 산으로 가지?

청량리역에서 내려 집에 도착하니 9시가 조금 넘은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