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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범여(梵如)의 世上사는 이야기
금호(황학)지맥(終)

금호(황학)지맥 제3구간 - 요술고개에서 4번국도까지

by 범여(梵如) 2021. 9. 26.

☞ 산행일자: 2021년 09월 25일

☞ 산행날씨: 초반부터 비...오후 늦게 비는 그치고 높은 습도

 산행거리: 도상거리 15.2km(탈출거리 포함)  / 6시간 43분(휴식시간 45분포함) 소요

☞ 참석인원: 수헌 아우님과 둘이서

☞ 산행코스: 요술의 고개-445m봉 갈림길-묘지-한골재-442.1m봉-묘지-갈림길-안부-안부

                 y자 갈림길-안부-NO24송전탑-무명봉-406.2m봉-조양공원묘지-406.8m봉-364.9m봉

                 장원봉-372.3m봉-갈림길-임도삼거리-전망데크-한티재 갈림길-245.8m봉-안부

                 광주이공 묘-피난고개?-송전탑-188m봉-NO28 송전탑-송정제2터널 위-201.1m봉

                 안부-무명봉-안부-153.2m봉 갈림길-ㅅ자 합류길-쉼터-경부고속철도 지천 무선중계국

                 신리공단 입구-송정 제4암거-낙화담-신동초등학교 정문-지천면사무소-경부선 신동지하도

                 성일중학교(폐교)-NO33 송전탑-NO23 송전탑-130.5m봉-152.0m봉-4번국도-이언마을 입구

 소 재 지: 경북 칠곡군 지천면, 석적읍, 왜관읍

 

요즘은 그리 덥지도 춥지도 않아서 산행하기가 참 좋은 날씨이건만 주말마다 비가온다.

예전과는 달리 이제는 비를 맞으면서까지 산행을 하고 싶지는 않다

추석도 지나고 오랫만에 오대산이 보고 싶어서 수헌아우와 함께 차를 가지고 양양남(만월)지맥을

하기로 약속을 했는데 주중에 후배한테서 전화가 온다...선배님 이번주는 강원도에 비가

온다는 예보가 있다고 하는데 어떡하시겠어요 하는데 비가 온다면 당연히 N0지 하니까

여기저기 검색을 하니 경상도쪽으로는 비가 안 온다고 하여 2019년 12월 7일에 2구간을

끝내고 남겨 두었던 금호(황학)지맥 3구간을 나서기로 한다

 

오늘 산행구간의 지도

이른 새벽에 집을 나서서 버스를 타고 서울역에 도착하니 새벽이라 그런지 생각보다 버스가 빨랐는지

05시 15분 서울역 도착... 아직 수헌 아우는 도착하지 않은듯 하여 커피한잔을 마시면서 대합실에서 아우를 기다린다.

서울발 → 왜관행 열차표

열차를 타러 플렛홈으로 향하는데 수헌아우가 도착하여 같이 열차에 오른다.

왜관이란 곳은 ktx같은 특급열차는 정차하지 않고 무궁화 열차만 정차하기에 선택의 여지가 없다.

서울역에서 4시간여 걸리는 열차는 참으로 지루한 느낌이 든다

수헌아우는 열차에 타자마자 잠에 빠져드는데 난 오늘따라 열차에서 잠을 이룰수가 없다.

 

수헌아우의 말만 믿고 맥길에 나섰건만 열차가 추풍령을 지날 즈음에 하늘은 새카맣게

먹구름으로 덮혀 버렸고, 김천을 지날때쯤엔 가는 빗줄기가 차창밖을 때리기 시작한다

오늘도 구라청에 사기를 당한 느낌인데 아우님이 나에게 미안했던지 12시까지만 비가

온다고 하면서 강우량은 1~5mm 미만이라고 애써 안심을 시킨다

왜관역(倭館驛:09:43)

왜관(倭館)이라는 지명은 고려말기 이후 조선초까지 왜구의 노략질이 심해지자 태종(太宗) 때

일본인 사신(使臣)이나 교역자(交易者)들이 머물게 하고 물자를 교역하게 하던 장소로 왜관(倭館)을

부산포(富山浦-東萊, 현 초량동 부근), 제포(薺浦-熊川, 현제 경남 창원), 염포(鹽浦-현제 울산) 및

서울 동평관(東平館-현제 중구 인사동) 등에 지어 관리하였다.

임진왜란 후에 수로(水路)를 이용하는 일본인을 위하여 설치한 왜관지(倭館址)로는 두모포(豆毛浦),

절영도(絶影島), 가배량(加背梁) 및 초량(草梁) 등과 낙동강의 중간숙소인 소규모 왜관(小倭館)으로

약목면 관호리 구왜관(舊倭館), 왜관읍 금산리 강창(江倉), 김해(金海), 창원(昌原), 화원창(花園倉) 등

5개소 도합 10여 개소를 설치하였으나 그 지명이 그대로 내려오는 곳은 칠곡군 왜관뿐이다.

1904년(광무 8) 초여름 일본인이 경부선 철도공사의 시찰을 마치고 실견조사보고(實見調査報告)한

경상도(慶尙道)에 의하면, 당시 인동군(仁同郡·府) 관하(管下)인 약목의 관호동은 경상도내의 중요한

상품집산지로서 대구·청도·김천 등과 함께 일익(日益)을 했다.

 

여기서 말하는 왜관의 위치는 원인동군(元仁同群·府) 관하인 낙동강 연안으로 동쪽은 직수(直水)에

임해 있고, 남쪽 일대는 충적지(沖積地)로 넓은 들이 펼쳐졌고, 호수가 약 100호, 인구 500여명으로

낙동강을 이용하여 짐을 운반하는 일을 자세하게 설명하였으니 이는 지금의 칠곡군 약목면 관호리

구왜관(舊倭館)을 말하는 것이다.

왜관역에 내리니 내리던 비는 약간의 소강 상태이다

아우님의 말대로 1~5mm 미만으로 내리다가 12시 이전에 그칠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

택시를 타고 오늘 산행의 들머리인 요술의 고개로 향하는데 또다시 빗줄기는 굵어진다.

구절양장의 도로를 지나서 요술고개에 도착한다...빗줄기는 조금씩 굵어지기 시작하고...

요술의 고개(10:10)

경북 칠곡군 석적읍 망정리와 지천면 백운리를 잇는 군도 5호선 도로가 지나가는 고개로

제주도의 도깨비 도로처럼 칠곡 요술의 고개는 실제로는 오르막길이지만 내리막처럼 보이는

착시현상이 나타나는 구간을 말하는데, 요술의 고개는 1999년에 개설되었으며 착시현상을

일으키는 길이는 약 180m 정도라고 한다

요술의 고개에서 착시현상이 시작되는 곳이란다

빗줄기는 조금씩 강해지나 산행에 지장을 줄 정도는 아닌듯 싶고 이곳까지 와서

산행을 포기하기에는 너무 멀리 와버린듯 하여 베낭에서 레인코트를 꺼내입고

산행을 준비한다

요술의 고개 팻말 뒷쪽으로 들어서면서 산행을 시작한다(10:15)

오르막이 시작되고 내가 요술의 고개에서 약간 미적거리는 사이에 수헌아우는 숲속으로 사라졌다

초반에 빡센 오르막이 시작된다...자꾸만 수헌아우와의 간격이 벌어지는 느낌이다

445m봉 갈림길(10:30)

직진으로 조금 올라가면 맥길에서 살짝 떨어져 있는 족보가 있는 445m봉이 있고

계속해서 기반산(468.1m)으로 이어지는 직진의 뚜렸한 등로가 보이고 맥길은

이곳에서 좌측으로 90도 꺽어져 내리막길로 내려가는데 이곳은 경북 칠곡군

석적읍과 왜관읍, 지천면의 경계를 이루는 3면 경계봉인 셈이다.

이곳부터 우측으로는 요술고개에서 시작된 석적읍과 작별을 하고 행정구역이 왜관읍으로

바뀌지만, 좌측은 계속해서 지천면이 함께가는 형국이다

요술의 고개에서 먼저 출발한 아우는 445m봉을 갔다오는 모양이다

내리막길은 빗길이라 상당히 미끄러운데다가 산악 자전거인지 오토바이가 다녔는지

골이 깊게 파여있어 걷기가 상당히 불편하다

묘지(10:33)

봉분이 사라진 묘지를 지나니...

또다른 묘지가 나오고...

안부를 지나는데 빗줄기는 조금씩 더 굵어지는 느낌이다

뫳돼지의 체력단련장이 나오는데 이곳이 한골재란다

한골재(350m:10:37)

칠곡군 지천면 백운리에서 왜관읍 봉계리로 넘어가는 고개인데  백운리쪽에서 올라오는

등로는 뚜렸하나 왜관읍 봉계리쪽의 등로는 보이지 않고 뫳돼지의 체력단련장(?)으로

괴롭힘을 당하는 소나무 한그루가 안쓰럽게만 보인다.

 

칠곡군 지천면에 있는 백운리는 백운산의 이름을 따서 백운리(白雲里)이라 불렀으며
동쪽에 백운산(白雲山:713.4m)이 솟았고, 그 줄기는 남으로 건령산(建靈山:516m)에 이르면서 동명면

송산리와 접하며 서쪽으로는 소학산(巢鶴山:622m)의 줄기가 한골재와 자봉산(406.2m)에 이르면서

왜관읍 봉계리와 접한다. 이언천(伊彦川)의 상류를 이루며, 높은 산으로 둘러싸인 산간 오지에 길부,

행화촌, 예계 등의 마을이 있다

백운리의 면적은 6.0㎢이고, 칠곡군에서 인구가 가장 적은 동리로 길부, 행화촌, 예계 등의 마을이 있다.

모두 백운산의 서쪽 자락에 자리하고 있으며 길부(吉夫)는 백운리의 중심 마을로 예전에 질그릇 굽던 마을이었다.

길부에서 비리재를 넘으면 동명면 송산리 옻밭에 이르며, 길부에서 동명면 송산리로 넘어가는 길목에

1973년에 개설된 청구공원묘지가 있다. 사무실 뒤편으로는 백운사가 있다. 행화촌(杏花村)은 바깥 길부에

해당되며 살구나무가 많았던 마을이다. 도공이 모여 이곳에 살았다. 예계(禮溪)는 옛날 상주(尙州)로 가는

길목으로서 역이 있었고, 서울로 가던 영남의 선비가 마을 뒤 골짜기에서 몸을 씻고 정성을 다하면 과거에

합격한다고 하여 예계라고 불렀다. 예계에서 질마재를 통해 백운산을 넘으면 가산면의 다부원에 이른다.

남양주 금곡님께서 한골재라고 쓰인 띠지를 걸어놨다

한골재에서 오르막으로 올라간다

이곳도 자전거인지 오토바이가 다녔는지 등로가 많이 파여 있다

능선에 올라서니...돌탑이 있는 442.1m봉에 도착한다

442.1m봉(10:49)

442.1m봉에 걸려있는 선답자의 흔적들

직진의 내리막길로 내려간다

내리막 등로는 상당히 미끄럽다

묘지(10:52)

갈림길(10:53)

갈림길에서 우측의 뚜렸한 등로를 버리고 좌측의 등로가 보이지 않는 곳으로 맥길을 이어간다

등로가 보이지 않은 곳을 헤쳐 나가니...

희미한 등로가 나온다

잠시후에 가야할 능선들이 보인다

나뭇가지 뒷쪽에 가려진 봉우리가 좌봉산이고 맨살을 드러낸 곳이 조양공원묘지, 

좌측으로 보이는 능선이 장원봉으로 이어지는 산줄기인데 맥길은 ⊃형태로 간다

묘지가 나오고 묘지 앞에는 뫳돼지 쉬키가 사우나(?)를 만드는 중인지 분탕질을 해놨다

안부(10:54)

등로는 좌측으로 꺽어지고...

송전탑들이 지나가는지 한전에서 걸어둔 띠지들이 많이 보인다

안부(10:56)

내리막길로 내려가는데 대머리(?) 묘지를 만난다.

y자 갈림길(11:02)

좌측이 아닌 직진의 등로로 맥길을 이어간다

희미한 등로가 나오고 좌봉산으로 향하는 오르막길이 시작된다

좌봉산 오름길에 우측으로 등로가 열리면서 피미힐스 골프장이 보이고 그 뒷쪽으로는

기반산(岐般山:468.1)... 파미힐스 골프장 앞에는 세븐밸리 골프장도 보인다

 

기반산(岐般山:468.1)은 경북 칠곡군 왜관읍 봉계리와 석적읍 반계리·망정리의 경계에 있는 산으로 

조선 말기 천주교 신자들이 박해를 피해 숨어 살던 움집과 옹기를 구웠던  옹기굴이 곳곳에 남아 있고 

남서쪽 기슭에 송정 자연 휴양림이 조성되어있다

안부(11:03)

참! 곱다

산꾼에게는 엄청 피곤한 존재인 청미래(망개)나무

송전탑을 설치하면서 만든 임도를 따라서 올라간다

잠깐 소강상태였던 비가 또 시작된다

똑닥이 카메라 렌즈에 물기가 젖어 사진이 흐릿하다

능선에 올라서니 송전탑이 나온다

NO24 송전탑(11:13)

완만한 능선으로 올라간다

무명봉(11:18)

트랭글앱에서는 이곳을 좌봉산이라고 알려준다

빗줄기는 갈수록 굵어지나 입었던 우의를 벗어 버린다

땀에 젖으나 비에 젖으나 똑같고 어차피 비를 피할 수 없으니 그냥 맞고 간다

감기가 겁이 나기는 하지만 코로나 예방주사를 2번이나 맞았으니 괜찮겠제

안부를 지나니 삼각점봉이 나오는데 준희선생의 산패가 이곳에 붙어있다

406.2m봉(11:20)

국립지리원의 지도에 표기된 좌봉산은 조금 더 가야한다

406.2m봉 정상 삼각점(△422 재설 / 73.7 건설부)

삼각점에서 직진으로 맥길을 이어간다

주위는 五里霧中

오늘 수헌아우는 뭣이 그리도 급한지 산에서 얼굴을 볼 수가 없다.

능선으로 올라간다

좌봉산(紫峰山: 427.3m:11:29)

경북 칠곡군 왜관읍 봉계리와 지천면 백운리, 달서리 경계에 있는 산으로 봉황(鳳凰:중국의 전설에

나오는 상상의 새)이 앉아있는 형상이라고 좌봉산이라고 한다는데 지도에는 자봉산이라고 기록되어

있어 유래가 명확하지는 않다.

대전홀산아님들의 흔적

좌봉산은 상당히 헷갈린다...트랭글 앱에서는 NO24 송전탑 윗쪽의 무명봉을 자봉산이라 했고,

1/50,000 영진지도와 준,희 선생께서는 삼각점이 있는 406.2m봉을 자봉산이라 했는데 국립지리원의

지도에는 이곳을 좌봉산이 표기를 해놨다

수헌 아우님을 따라서 부지런히 간다

짙은 안개로 인해 아무것도 볼 수가 없어 부지런히 걷기만 한다

능선에서 조양공원묘지 쪽으로 내려간다

구미의 진산인 금오산과 영암산이 보일 수 있는 곳이나 모든게 백짓장이다

내리막길로 내려간다

등로에서 내려서니 조양공원묘지가 나오고...

조양공원묘지(11:34)

비는 계속 내리고 점심시간이 다 되었는데 밥상을 펼칠때가 마땅찮다

공원묘지 관리동인 듯한 컨테이너 하우스 문을 당겨보니 문이 잠겨있지 않아

그곳으로 들어가서 점심밥상을 펼친다 

점심만찬(11:35~12:13)

이 관리동이 아니였으면 빗길에 점심도 못먹을뻔 했다

아우님과 나는 이른 아침에 나온 탓인지 배가 고팠고 평소보다 이른 시간에

점심밥상을 펼친다...나야 점심이라봐야 삶은 고구마 3개와 김치, 커피가 전부이다

점심을 끝내고 다시 길을 나서는데 예보와는 달리 12시가 지났건만 빗줄기는 더 굵어진다

수헌아우님이 인터넷을 검색해보더니만 오후 5시까지 비가 온다고 한다...이런 제기럴

점심을 먹으면서 쉬었더니만 약간의 추위가 느껴져서 다시 우의를 입고 길을 나선다

조양공원묘지 맨 상단부의 도로를 따라서 맥길을 이어간다

스마트폰에 물이 안들어 가게 하기 위해서 비닐로 묶어 놨더니만 좀 불편하다

지난 구간에 걸었던 소학산 능선들은 코빼기도 볼 수가 없다

백운산쪽의 능선도 마찬가지...

공원묘지 도로 우측으로 올라간다

406.8m봉(12:17)

다시 공원묘지 도로를 따라서 내려간다

공원묘지 맨 상단부 도로 아래에는 묘지들이 보이고...

능선으로 올라가지 않고 묘지의 축대 사이를 걷는다

추석이 지난지 며칠이 지났는데도 간간히 성묘객들이 보인다

공원묘지 끝이 보이기 시작한다

처사 안정나공 묘지를 지나면서 공원묘지를 빠져 나와...

숲속으로 들어간다(12:24)

숲길에 들어서 우측으로 맥길을 이어간다

너럭바위도 지난다

안부를 지나서...

능선으로 올라간다

능선으로 올라서니 선답자들의 시그널이 잔뜩 걸려있는 364.9m봉이 나온다

364.9m봉(12:34)

이곳에서 90도로 꺽어져 좌측으로 내려간다

등로는 보이지 않고 잡목의 저항이 상당히 심하다

조금을 더 내려가니 뚜렸한 등로가 나온다

좌측으로 내려가니 조양공원묘지로 이어지는 넓은 비포장 도로가 나온다

도로를 따라서 편하게 간다

계속내리는 비를 맞으면서 걷다보니 등산화 속으로 물이 들어가서 신발의 엄청 무거운 느낌이다

도로 북쪽으로 멋진 능선이 보이는데 오늘 처음으로 산세를 보는 느낌이다

지천면 백운리 뒷쪽 능선에서 가지를 친 건령산(建靈山(521.2m)인 듯 하다

능선 우측이 맥길이나 계속해서 편안한 임도를 가는데 그러다보니 족보가 있는

330.6m봉을 놓치는 憂를 범한다

휘어지는 임도에서 임도를 버리고 우측의 능선으로 올라간다

선답자들도 이곳에서 올라간 모양이다

마루금에 복귀하여 좌측 능선으로 올라간다

뫳돼지 목욕탕을 지나서...

좌측 능선으로 올라서니...

장원봉 정상이 나온다

장원봉(壯元峰:371.8m:13:00)

경북 칠곡군 지천면 달서리 서부와 왜관읍 매원리 동부, 봉계리 남부에 걸쳐있는 산으로

예로부터 인물을 배출하는 명당으로 알려졌으며 그래서인지 산아래 서원골이라 마을도있다.

6·25전쟁 때 낙동강 방어선을 둘러싸고 치열한 접전이 벌어졌던 곳이기도하다.

 

이곳에서 발원되는 하빈천(河濱川)은 대구광역시 달성군 하빈면을 지나 낙동강으로 유입되는

하천으로 골짜기 곳곳마다 사시사철 물이 마르지 않는 샘이 있고, 남쪽으로는 경부고속철도가

지나며 산 아래는 죽곡지, 달서지, 송정지 등의 저수지가 형성되어 있다

장원봉 정상 삼각점(△왜관 305 / 건설부 79.8)

좌측으로 내려간다

372.3m봉(13:03)

갈림길(13:04)

좌.우 모두가 등로는 보이지 않는다...우측으로 내려간다

짙은 안개속에 선답자의 띠지 하나가 보인다...제대로 가고 있다는 얘기다.

등로는 서서히 野性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카메라는 완전히 물에 잠겨버린 느낌이다 

조금씩 희미한 등로가 보이기 시작한다

조금을 더 내려가니...

좌측으로 넓은 임도가 보이고...

임도로 내려선다

임도 삼거리(13:23)

조양공원묘지에서 내려오는 도로를 따라서 가니 임도 삼거리가 나오고 간이화장실과 

칠곡군 산악자전거 안내도가 있고 우측으로 내려가는 길은 칠곡군 왜관읍 매원리로

향하는 길인데 죽곡지와 매원저수지가 나오며 맥길은 직진의 한티재 방향으로 향한다

 

왜관읍 매원리는 산 위에서 보면 ‘매화꽃 모양처럼 생긴 형상’ 이라 하여 붙혀진 지명으로

매원마을은 유림(儒林)들 사이에서 ‘영남 3대 반촌(泮村:조선시대 양반이 주민의 다수를 차지한 마을)’으로

불렸던 곳으로 광주(廣州) 이씨 집성촌이다. 조선 선조 때 낙향한 석담 이윤우(1569~1634) 선생이 입향조로,

이조판서·대사헌 등을 배출했다.

 

장원급제한 사람이 많아 이 마을을 ‘장원방’으로 부르기도 했다고 전해오며, 안동 하회마을의

풍산 류씨와 퇴계 선생 집안인 진성 이씨, 경주 양동마을의 여강 이씨 가문과의 혼인이 많았다.

마을의 최대 번성기였던 1905년 무렵에는 가옥이 400여채에 이르렀던 것으로 전해온다.

이수목(1890~1948), 이두석(1902~1938) 선생 등 독립유공자 포상을 받은 애국지사도 6명에 이른다.

 

그러나 한국전쟁 때 인민군이 이 마을 박곡종택에 지휘부를 설치, 미군이 집중 폭격하면서 고택 300여채가

소실되어 마을이 폐허가 되다시피 했다. 주민들은 “한국전쟁 때 폭격만 당하지 않았어도 하회마을이나

양동마을 처럼 세계문화유산이 됐을 것”이라며 안타까워 하고 있다

맥길은 한티재, 신나무골 성지 방향으로 향한다

한티재 방향이 맥길이다

능선으로 오르지 않고 좌측으로 우회한다

자작나무 조림지가 나온다

등로에서 바라본 칠곡군 지천면 송정리의 모습

송정리는 원래 칠곡군 상지면의 지역인데 1914년 행정구역 개폐합 때 도당리와 도촌면의 중리와

금정리의 일부를 병합하여 ‘송정동’이라해서 지천면으로 편입되었으며, 옛날 원곡마을 앞 하마천(下馬川)

제방에 노송이 수십그루가 우거져 숲을 이루어 좋은 정자로서 장관을 이루고 있었다해서 송정(松亭)이라 했다.

칠곡군 둘레길인 모양이다

인증 스탬프가 있으나 나하고는 상관이 없다

전망테크(13:26)

백운산 능선은 이름값 하느라 흰구름에 갇혀 버렸다

송정리 너머로 오늘 우리가 가기로 한 경부고속도로 니비재가 아련히 보인다

소나무조림지 아래로 내려간다

한티재 갈림길(13:30)

팔공산 순환도로를 따라 군위군 쪽으로 오르다 보면 나오는 한티재는 여기서 꽤 먼데...

 한티재 아래에 있는 ‘천주교 성지’를 말하는듯 하다. 그곳은 동명면 득명리에 있는 ‘한티순교성지’인데

과거 천주교 신도들이 박해를 피해 모여 살았던 곳으로 신도들은 해발 600m의 깊은 산중에서 화전을

일구고 옹기와 숯을 구우며 살았다. 그러나 수 차례 포졸들의 습격을 받고 많은 신도들이 순교했던 곳이다

좌측으로는 한티재로 가는 길이고, 우측으로는 천주교 성지가 있는 신나무골로

가는 길이고 맥길은 직진의 오르막으로 이어지는데 신나무골쪽으로 가도 된다

직진의 능선으로 올라간다

245.8m봉(13:32)

우측으로 내려간다

철없는 진달래

등로가 없는곳을 무대포로 치고 내려서니...

조금전에 헤어졌던 신나무골 방향의 등로를 다시 만난다

안부(13:35)

무명봉에 올랐다가...

다시 내리막으로 내려서는데 소강상태였던 비가 다시 시작된다

내리막길 등로 우측으로 묘지가 보인다

광주이공 묘(13:46)

광주이공 묘에서 내려서니 안부가 나오는데...

피난고개(?)...(13:47)

서낭당의 흔적같은 돌무더기가 나오고 바로 옆에는 신동천주교회에서 피난고개라

하는데 공식 지명은 아니고 천주교에서 순례길을 만들면서 지어낸 고개 이름인 듯 하다 

우측 사면길은 천주교 순례길인 듯 하다...임도삼거리에서 만난 신나무골 성지를 말하는 듯 하다

신나무골에는 1815년 을해박해 때 성 김대건 신부님의 증조부인 순교자 김종한 안드레아 가정이

옥바라지를 하기 위해 살기 시작하였고, 1827년 정해박해 이후 서울과 경기도, 충청도에서 피난 온

신자들이 이곳에 교우촌을 이루며 살았던 곳이란다

오르막길에서 산으로님의 흔적을 만난다.

자꾸만 野性을 잃어가는 산으로님...송충이는 솔잎을 먹어야 하는데...

송전탑(13:50)

송전탑을 통과하니 완만한 등로를 따라서 맥길을 이어간다

좌측으로 이어지는 사면길이 있으나 직진으로 올라간다

188m봉(13:54)

우측으로 내려간다

송전탑이 보이고...

NO28 송전탑(13:57)

잠시후에 오를 201.1m봉이 보인다

송정제2 터널 위(14:00)

이 등로 아래로 경부고속철도 송정 제2 터널이 지나는 곳이다

사면길을 버리고 직진으로 올라간다

201.1m봉(14:04)

좌측으로 90도 꺽어져서 내려간다

희미한 등로를 따라서 내려가는데 가는 소나무들이 많이 보이나 등로는 상당히 미끄럽다

뚜렸한 등로가 보이고...

등로 우측으로는 묘지가 보인다

안부(14:13)

완만한 능선으로 올라간다

우측으로는 오래된 무덤이 보인다

묘지에 올라서 맥길은 우측으로 꺽어진다

무명봉(14:21)

등로 좌측으로는 경부고속전철 지천 터널이 지나가는 곳인데 기차소리가 요란하다

안부(14:22)

153.2m봉 갈림길(14:24)

직진으로 이어지는 등로가 실하여 맥길처럼 보이나 맥길은 좌측 사면길로 이어진다

직진으로 향하면 족보가 있는 153.2m봉 가는 길인데 앞서가던 수헌아우가 내가

그리로 갈까봐 갈림길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다

오늘 산행중에 아우님과 처음으로 같이 걸어본다

ㅅ자 합류길(14:26)

153.2m봉에서 내려오는 등로와 합류를 한다

쉼터(14:27)

쉼터를 지나니 지천저수지가 나오고 그 너머로는 황학산~백운산~건령산으로 이어지는 능선이 보인다

내리막길 내려간다

등로에서 바라본 지천저수지(枝川池)

경북 칠곡군 지천면 달서리,창평리,신리에 걸쳐있는 지천저수지는 대구 도심에서 30분 정도밖에

걸리지 않은곳에 있는 저수지로 지역 내 대표적인 휴양지로 지역민은 물론 대구 등 외부인에게

잘 알려져 있으며, 특히 수상 레포츠를 즐기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빼어난 경관과 명소로 잘 알려져 있다.

 

여름이면 수상보트,모터보트,바나나보트,땅콩보트,플라이피시를 즐기는 사람들로 붐비는 곳으로

임진왜란 당시 마을 여인들은 왜군을 피해 이곳으로 피신하였다 발각되자 마을 여인들은 자신의

정절을 지키고자 꽃잎처럼 몸을 못에 던져 죽음을 선택한 지천지(낙화담)에 얽힌 슬픈 사연이 있다.

이 곳 지천지를 몸을 던진 절벽이 있는 못이라 해 ‘낙화담’이라고도 한다. 

 

이 곳에 지천지 일대에 '지천지 둘레길'을 조성하고 편의시설을 정비하여 슬픈 아픔의 역사를 뒤로하고

수상 스포츠의 메카로 거듭나고 있으며, 지천지(낙화담) 주변에 대한 산재해  있는 자원개발및 거점 센터,

다목적 주차장 등 생활 기반 시설및 둘레길 및 생태공원 경관 개선을 통한 쾌적한 환경 조성으로 지역

주민들의 삶의 질 향상과 정주 여건의 충족을 위해 만들어 졌다.

등로 좌측 아래로는 경부고속철도가 지나가고 고속철도 너머에 보이는 

135m봉은 고속철도로 인해서 두 동강이 나버렸다

낙화담이라 부르는 낙화정이 있는 저 곳은 신리마을의 진산인 발암산 뒷쪽에는 바래덤이라고 하는

높은 직벽의 벼랑이 있으며 그 절벽 밑에는 깊은 소(沼)가 있었는데 있었는데 그 곳을 낙화담(落花潭)라 불렀다

 

임진왜란 당시 마을 여인들이 왜적을 피하여 이곳 발암산에 피신해 있었는데 왜군들에게 발각되자

정절을 지키기 위하여 바위 아래로 몸을 던졌다하여  바래덤 절벽을 낙화암(落花岩) 이라고 하고

그 아래의 소(沼)를 낙화담(落花潭:지천저수지)이라 부른다

경부고속철도 지천 무선중계국(14:31)

경부고속철도 지천 무선중계국 옆에는 칠곡 지천면 등산 안내도가 있다

신리공단 입구(14:32)

경부고속철도 지천 무선중계국 정문을 지나 좌측으로 내려선다

좌측에 있는 135m봉(발암산?)을 가기 위해서는 고속철도 암거를 통과해야 하는데

수헌아우는 가기가 싫은지 미적거린다...산꾼이 그라먼 안되지...내가 먼저 간다

경부고속철도 송정4 암거(14:33)

경부고속철도 송정4 암거를 통과하여 낙화담 방향으로 맥길을 이어간다

데크목 계단으로 올라간다

정상 아래에는 안양사라는 간판을 붙혀놓은 가건물의 무당집이 보인다

절집 이름 붙혀놓고 부처님 팔아서 코너에 몰린 민초들을 惑世誣民 시켜

생계를 이어가는 저 자들을 어떻게 제도할꼬...자기 앞가림도 못하는 자들이

어떻게 남의 앞길을 예언한단 말인가... 저 업보를 死後에 어떻게 할려고 하나

능선으로 올라서니 낙화정(落花亭)이라 팔각정이 보인다

낙화담(落花潭:135m:14:44~57)

칠곡군 지천면 신리와 창평리의 경계에 있는 봉우리에 낙화정이라는 팔각정과 이정표가

있는 곳을 낙화담이라 하고 낙화담의 유래 팻말도 서 있다...지천저수지를 이 지역 사람들은 

낙화담 저수지라고 부르면 옛 자료에는 이곳을 발암산이라고 하는 문구가 보인다

 

낙화담(落花潭)은 임진왜란 당시 왜군의 침공을 피해 부녀자들이 몸을 던져 자결한 곳이다

특히 곽씨부인(광주이씨 이심옥의 부인)과 만삭의 따님이 정절을 지켜 자결한 곳으로

나라에서 정려(旌閭:예전에, 충신, 효자, 열녀 등을 기리기 위해 그 동네에 정문을 세워 표창하는

일을 이르던 말)를 내려 유적으로 쌍열각이 지천면 심천리에 있다.

 

그리고 조선 중기의 대학자인 석담 이윤우(石潭 李潤雨, 1569~1634) 선생(광주이씨)께서

“淸明遊石潭(청명유석담)”이라는 시를 남기고 호를 낙화담의 바위를 뜻하는 石潭(석담)으로

정하셨고 칠곡의 충열과 절개를 상징하는 아름답고 애절한 장소로 후세들이 사랑받는 곳이다

낙화담 유래 표지판의 내용

이곳 낙화담은 한강(寒岡) 정구(鄭逑·1543~1620)선생과 관련이 많은 곳으로 낙화담 북쪽

아래에는 한강 정구선생을 모신 사양사원이 나온다

 

한강(寒岡) 정구(鄭逑·1543~1620)선생은 21세 때 퇴계(退溪) 이황(李滉) 문하에, 24세에 남명(南冥)

조식(曺植) 문하에 나아가면서 유학자로 성장했으며 과거를 치르지 않고 포의(布衣·벼슬이 없는 선비)로

지내던 한강은 여러 차례 조정의 부름을 받았지만 출사하지 않았다.

37세 때 처음으로 벼슬길에 나아가 창녕현감을 지냈고, 임진왜란 때는 강원도 관찰사로 나라를

구하기 위해 분골쇄신했던 정구선생은 조선 중기의 문신, 성리학자, 철학자, 역사학자, 작가, 서예가

의학자이자 의병장을 지낸 인물이다

 

전란 후 향리인 성주에서 후학을 가르치던 그는 78세로 생을 마감했으며,인조는 문목(文穆)이란 시호를 내렸다.

한강은 퇴계와 남명을 태산북두처럼 우러러 보았으며, 서애 류성룡과 학봉 김성일과 함께 '퇴계문화삼걸'로

일컬어졌다.

이곳 낙화담 팔각정에서 아우님과 여유로운 휴식을 취하면서 과일과 고구마로

원기를 보충하는데 비에 젖은 몸뚱아리의 땀냄새 때문인지 산모기가 어찌나

물어대던지 서둘러 길을 떠난다...이곳에서의 맥길은 상당히 고민해야 할 부분이다

 

왜냐하면 맥길이 경부고속전철로 인해서 완전히 끊어졌기 때문이다

1안은 왔던길을 되돌아서 내려가 고속전철 암거를 통과하여 고속전철 옆 신리공단

철조망을 끼고 이어가는 방법이 있고, 2안은 낙화담에서 직진하여 내려가는 방법,

3안은 낙화담이 있는 135m봉을 무시하고 곧바로 신리공단 도로로 가는 방법이다.

1안과 2안 어느것을 하더라도 고속전철로 인해 많이 우회를 해야하고, 3안은 아예

맥길을 무시하고 신동초등학교 까지 가는 방법인데, 가장 비슷하게 맥길을 이어가는 건

1안이나 나와 수헌아우는 왔던 길을 되돌아 가는 걸 싫어하는 스타일이라 그냥 2안을 택한다 

가을에는맑은인연이 그립다 / 이외수

 

서늘한 기운에 옷깃을 여미며
고독한 첫집에 앉아
화려하지 안은 코스모그 처럼
풋풋한 가을 향기가 어룰이는 그런 사람이 그림다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차한잔을 마주하며
말없이 눈빛만 바라보아도
행복의 미소가 절로 샘솟는 사람
가을날 맑은 하늘 빛처럼

그윽한 향기가 전해지는 사람이 그립다

 

찻잔속에 향기가 녹아 들어
그윽한향기를
오래도록 느끼고 싶은 사람
가을엔 그런 사람이 그리워진다

 

산등성이의 은빛억새 처럼
초라하지 않으면서 기품이 있는
겉보다는 속이 아름다운 사람
가을엔 억새 처럼 출렁이는

은빚 향기를 가슴에 품어보련다.

지천저수지 너머의 좌측 능선은 내가 조금전에 걸어온 길이다

나무 계단으로 내려간다...맥길은 우측의 숲길이나 그냥 편안한 등로로 내려간다

로프로 쳐진 등로로 내려가니...

데크목 계단 아랫쪽으로는 한강 정구선생을 모신 사양서원 강당(講堂)이 보이나 맥길에서

너무 멀어서 데크목을 내려 가다가 그냥 우측의 절개지로 향한다

사양서원(泗陽書院:경상북도 문화재 제117호)...사진 펌

조선조 효종 2년(1651)에 한강(寒岡) 정구(鄭逑)선생이 일생동안 학업을 닦았던 칠곡면 사수동

(현 대구광역시 편입)에 향인들이 걸립하여 한강 선생을 주벽으로 석담 이윤우 선생을 배향하였던

것을 숙종 20년(1694)에 이곳으로 이건(移建)하면서 송암 이원경 선생도 함께 배향(配享:종묘에 공적이

있는 신하의 신주를 모심)하였다

  

그 당시 묘우(廟宇)와 강당(講堂), 폄우재(貶遇齋), 정완재(町頑齋), 봉하문(鳳下門), 양현청주고(養賢廳廚庫) 등이

있었으나, 고종 고종 5년(1868)에 대원군의 서원철폐령(書院撤廢令)에 의하여 모두 없어지고 지금은 강당(講堂)인

경회당(景晦堂)만 남아 있다

사양서원 반대쪽인 절개지 아래로 간다

칠곡군에서 헛지랄 많이 했구먼...사람도 다니지 않는곳에 뭔 돈을 쳐발라 놨는지 이해가 안되는구먼

고속철도가 맥길을 짤라 먹은 현장

인적이 드문 데크목 계단을 내려간다

농장을 지나고...

감자탕 물류 창고인듯한 (주)영일유통 앞을 지난다

솔배식품이란 곳도 지난다

솔배식품을 지나면서 뒤돌아 본 지맥길

우측 봉우리가 낙화담이 있는 135m봉이고 고속철도가 짤라먹은 맞은편 능선이 맥길이다

영일유통 입구가 있는 923번 지방도로에서 우측으로 간다

도로옆으로는 도로와 나란히 이언천이 흐르고 있다

 

이언천(伊彦川)은 칠곡군 지천면 황학리 황학산에서 발원하여 남쪽으로 흐르다가

대구광역시 달성군 다사읍 박곡리에서 금호강에 합쳐지는 하천이다

풀그린공장 앞을 지난 다음에 공장 담벼락을 끼고 우측으로 향한다 

공장앞 논 너머로는 칠곡 경수당이 보인다

경수당이 있는 이곳 웃갓 마을은 조선중기 석담 이윤우(石潭 李潤雨) 선생을 배출한 마을로

안동의 하회마을, 경주의 양동마을과 더불어 영남의 삼촌(三村)이라 불리는 곳이다.

 

예로부터 조선 인재의 반은 영남에서 나오고, 영남 인재의 반은 선산에서 나왔다고 하는데

이곳 웃갓마을도 조선 인재의 반을 배출시킨 영남의 명고을 중에 하나라고 한다

칠곡 경수당(漆谷敬守堂:경상북도 문화재 자료 제583호)

경상북도 칠곡군 지천면 신리 웃갓마을 북쪽 끝편에 있는 조선 후기 양반 주택으로 조선 중기의

유학자 석담(石潭) 이윤우(李潤雨)가 거처했다고 전해오며, 근대에는 대한제국의 법부 형사국장을

지낸 김낙헌이 소유하다가 유학자 후석 이주후(李周厚)[1873~1957]에게 팔아 그때부터 벽진이씨

후석파(后石派)의 종택(宗家)이 되었다

 

800평 규모의 넓은 대지에 一자형의 대문간채, 사랑채, 안채 그리고 광채가 동향으로 나란하게 병렬

배치되어 있고 안중사랑채가 사랑채와 안채사이에 남향으로 직교 배치된 형식이다. 따라서 전체적으로

남쪽이 터진 튼 ㄷ자형 배치를 이루고 있으나 안마당의 남쪽 끝부분에 방앗간채(정면 3칸, 측면 1칸, 초가)가

배치되어 있었으므로 원래는 튼 口자형 배치였음을 알 수 있다.

사랑채는 2칸 크기의 사랑방과 1칸 사랑마루로 이루어진 간략한 평면이다.

방과 마루 전면에는 반칸 폭의 툇마루를 꾸몄으며 마루 우측면에도 폭이 좁은 쪽마루를 시설하였다.

사랑방 정면 매칸에는 머름 위에 두짝의 여닫이 띠살창과 고졸한 用자살 짜임의 미닫이창을 이중으로

설치하였고 마루와의 사이에는 불발기 형식의 4짝 미서기문을 시설하였다.

안채는 2칸 크기의 정지, 안방, 대청과 1칸 크기의 건너방이 순서대로 일렬 배열되었으며 방과 마루

전면으로는 폭이 좁은 쪽마루가 시설된 一자형 평면이며 정지에는 가마솥이 걸린 부뚜막이 잘 남아있고

그 상부에는 안방에서 사용할 수 있는 다락이 설치되어 있다. 안방과 건너방의 전면 매칸에는 두짝의 亞字 미서기문이 달려있는 반면 마루 앞 뒤로는 4짝과 두짝으로 된 유리창문이 각 각 설치되어 있다. 마루의 유리창문은

역시 후설된 것이다. 안채 상부가구는 보 위에 제형판대공을 올려 마루도리를 받게 한 간략한 3량가

구조인데 휘어진 건실한 대량의 형태에서 자연의 멋스러움이 묻어난다.

골목안으로 들어서니 친환경대박이라는 물류창고가 보이고...

낡아 빠진 민가를 지나서 좌측으로 향한다

경작을 하지않아 잡풀이 무성한 밭을 지난다

고속철도가 짤라먹은 마루금이 내려온다

마루금에 복귀하여 도로를 따라서 지천면 신동초등학교 쪽으로 향한다 

도로를 따라서 맥길을 이어간다

지천면보건지소가 보이는 삼거리에서 우측으로 꺽어지니...

국수한그릇 가게 골목으로 향한다

혼자놀기

신동초교 정문(15:24)

맥길은 선우 방앗간 사이로 가야하나 이번에는 경부선 철길이 길을 막는다

좌측의 지천면 면소재지로 우회를 해야한다

지천면 사무소(15:28)

도로명 주소 신동로를 따라서 면사무소를 지나고 홈마트도 지난다

어릴때의 추억이 새록새록...저 때가 좋았는데...

대경공인중개사 지나면서 신동로를 버리고 우측으로 내려간다

경부선 철길 아래로 내려간다

경부선 신동지하도(15:30)

철길 아래를 지나서 우측으로 향한다

저 멀리 신동역을 바라보면서 걸어간다

철길 너머의 노란 건물인 신동초등학교를 바라보면서 한참을 돌아서 마루금에 복귀한다

신동역을 바라보면서 좌측으로 꺽어져 시멘트 도로를 따라서 간다

y자 갈림길에서 좌측으로 향한다

승마장을 지나니 페교가 돼버린 성일중학교 운동장에 들어선다

성일중학교(15:38)

폐교가 되어 을씨년스럽게만 보이는 학교 건물 뒷쪽으로 맥길이 이어지나 우측의 편한 길로 향한다

텃밭 사이로 올라가니...

묘지가 나오고 오르막으로 올라간다

선답자들도 이쪽으로 올라간 모양이다

폐묘를 지난다...좌,우의 석물은 뽑혀서 넘어져 있고 상석은 흙속에 묻혀 버렸다

능선으로 올라서니 등로는 뚜렸하다

NO33 송전탑(15:47)

송전탑을 지나서 오르막으로 올라간다

NO23 송전탑(15:53)

완만한 능선으로 오르는데 산모기가 떼를 지어서 몸뚱아리를 물어댄다

비에젖은 층층잔대

130.5m봉(15:58)

내리막길로 내려간다

안부를 지나서 완만한 오르막길로 오른다

152.0m봉(16:04)

우측 능선으로 내려간다

4번국도(16:08)

4번 국도는 전라북도 군산시 옥도면에서 충청남도 서천군 장항읍 금강 하구를 거쳐 충청도 남부 지역

(부여, 논산, 계룡, 대전, 옥천, 영동)을 지나 경상북도 내륙과 대구광역시를 동서 방향으로 관통한 다음,

경산, 영천을 거쳐 경상북도 경주시의 동해안(감포읍)까지 이어지는 도로이다.

 

대한민국 국토의 허리에 해당하는 지역을 동서로 횡단하는 기간 교통축으로 한반도 중부 지역에서

동서 방향 물동량 수송과 지역개발에 이바지하고 있으며, 도로 주변에 역사유적지가 많아 관광

진흥에도 중요한 도로로 총 연장은 417.9 km이다

도로를 무단횡단하여 저 능선으로 올라가야 하는데 차량들이 너무 세게 달린다

이제는 목숨을 담보로 맥길을 걷고 싶은 생각이 없다

도로를 건널수 있는 암거를 찾아서 우측으로 내려간다

농로 우측으로는 풀섶에 묻혀버린 저수지도 보인다

조금전에 지나온 신동초등학교 쪽이 보이는데 자꾸만 맥길과 멀어진다

다시 4번 국도로 되돌아와서 반대편 방향으로 내려간다

내려온 길을 뒤돌아 본 4번 국도의 모습

원래는 경부고속도로 니비재까지 가기로 했으나 아우님과의 합의하에 과감에게 포기한다

칠곡군 지천면 덕산리의 모습

경북 칠곡군은 대구와 구미 사이에 있는 도·농 복합지역으로 낙동강과 팔공산, 유학산, 금오산 등 명산이

어우러진 고장이며 한국전쟁 때 폭격으로 고가옥들이 대거 소실되면서 쇠락해졌지만 이 고장의 매원마을은

안동 하회마을, 경주 앙동마을과 함께 조선시대 영남 3대 양반촌으로 꼽혔던 곳이다

 

또한 칠곡은 왕건과 견훤의 혈투에서부터 임진왜란·병자호란, 가까이는 한국전쟁 때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던

곳이다. 그래서 흔히들 칠곡을 ‘호국의 고장’이라고 부른다. ‘호국의 고장’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유적이

가산산성(사적 제216호)이다. 팔공산도립공원 안에 있다. 바깥은 깎아지른 절벽으로 경사가 급하고 안으로

들어가면 박 모양의 좁다란 분지가 나온다. 이러한 산세를 이용하여 쌓은 성이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겪은 후 1640년부터 99년에 걸쳐 축성했다. 내성·외성·중성으로 되어 있고, 칠곡도호부가 산성 안에 있었다

비닐하우스 너머로 오늘 산행의 날머리로 삼았던 경부고속도로 니비재 어렴풋이 보인다

923번 도로와 만나는 덕산리로 빠지는 도로가 보인다

지천면 덕산리는 지천면소재지에서 동남으로 약 3㎞지점에 위치하고 있으며 북으로는 오지봉(五枝奉)이

솟았고 동으로는 법전산이 남으로 길게 뻗었있다. 그 서쪽을 따라 동배서향의 취학형태로 마을이 형성되어 있다.

마을 앞 서면으로 이언천이 국도와 병행 남류하면서 서쪽으로 이언평야가 전개되어 자연경관이 아름다울뿐만

아니라 교통도 편리하고 농사짓기에도 좋은 농촌이라 하겠다

4번국도에서 923번 도로로 내려선다

이언마을 앞(16:58)

칠곡군 지천면 덕산리에 있는 이언마을은 언제부터 마을이 형성되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조선조중엽 때는

안동 권씨들이 이주해 와 살았다고 하며 그 후 약 250년전 영조 때 순천박씨(順天朴氏)가 150년 전에

이곳 이언을 택거지로 정하고 옮겨와 집성촌을 형성하고 오늘에 이른다. 마을앞에 이언천이 있어

동명을 이언(伊彦)이라 했는데 골음조현상에 따라 『이런』으로 불리고 있다.

 

923번 도로가 지나가는 이언마을 식당에서 산행을 종료하는 스틱을 접고 아침에 요술고개까지 타고 갔던

택시를 호출하는데 20분이 넘어서야 택시는 도착하고 택시를 타고 왜관역 가기전의 국밥집에 들린다 

이곳 국밥집에서 국밥에다 소+맥으로 각1병씩 마시고 왜관역으로 향한다

왜관역(17:55)

왜관에서 18시 12분에 출발하는 서울행 무궁화 열차를 타고 서울로 향한다

저녁 10시가 거의 다되어 가는 싯점에 서울역에 도착하여 아우님과 헤어져 집으로 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