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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범여(梵如)의 世上사는 이야기
지장(노목)지맥(終)

지장(노목)지맥 제3구간 -유천고개에서 쇄재까지

by 범여(梵如) 2023. 6. 19.

☞ 산행일시: 2203년 06월 18일

☞ 산행날씨: 흐림..컨디션 저하로 개고생한 날

 산행거리: 도상거리 9.1km + 날머리 1.8km/ 7시간 소요

☞ 참석인원: 나홀로 산행

☞ 산행코스: 유천고개(미사리 고개)-안부-약초 재배지 철조망-944.1m봉

                     무명봉-안부-922m봉-안부-917.9m봉-안부-908m봉-886.2m봉

                    안부-894.9m봉-암봉-안부-889.3m봉-895m봉-안부-890.7m봉

                    안부-903.6m봉-858.1m봉-안부-무명봉-842.5m봉-안부

                    792.6m봉-775.4m봉-782.6m봉-안부-794.6m봉-안부-암봉

                    858.7m봉-안부-무명봉-보리산-다시 무명봉-956.4m봉

                    쉼터-거칠현-서운산-안부-730.2m봉-무명봉-안부-727.8m봉

                    720.6m봉-암봉-무명봉-722.0m봉-662.5m봉-쇄재터널 위

                    안부-무명봉-쇄재-(주)정선산업-쇄재 터널 입구

☞ 소 재 지: 강원도 정선군 화암면, 남면, 정선읍

 

산행 당일날 아침부터 일정이 꼬이면서 산행이 엉망이 되어 버렸다.

지난주에 이곳을 오기로 했는데 했는데 오후에 비가 온다는 예보로

일정을 바꿔서 이곳과 이웃을 하고 있는 태백의 백두대간길을 갔다가

그곳에서도 막판에 양동이로 붓는듯한 비를 맞아 새앙쥐꼴로 산행을

마쳤는데, 오늘은 전국적으로 맑은 날씨이긴 하나 폭염주의보가 내려

진다고는 하지만 그렇다고 산에 가지 않을수야 없잖은가...

 

더군더나 백두대간상에 있는 강원도의 지맥들은 일단 산의 높이도 높이지만

워낙 오지인데다가 접근하는 교통도 불편하고, 일단 산행에 들어서면 골짜기가

깊어서 탈출로도 어렵고, 지독한 잡목의 저항과 암릉 구간이 많아서 난이도가

아주 높은 곳이지만 7월안에 끝내려고 생각을 했는데 주말마다 비가 온다는

예보로 인해 자꾸만 미뤄지는구나.

 

오늘 산행구간의 지도

동서울발 → 고한행 버스표

집을 나와서 동서울 터미널에 도착하니 06시 20분경...06시 30분에 출발하는

버스에 올라 곧바로 버스는 출발하는데 뒷좌석에 앉은 젋은 친구 2명이

큰소리로 떠들고 웃으면서 얘기를 하는 바람에 차만 타는 자는 버릇이 있는

나에게는 엄청난 스트레스다...첨에는 좀 조용히 해달라고 했는데 잠시

조용한가 싶더니 이내 큰소리로 떠들어 댄다...참다참다 못했는지 옆좌석에

앉은 다른 분이 소리를 지르면서 야단을 치니 그때서야 조용해진다

 

그 이후로 깊은 잠에 빠졌다가 얼마나 잤는지도 모르겠고 버스가 정차하는

바람에 잠에서 깨어나보니 버스는 고한 터미널에 도착한다

고한터미널 버스시간표

고한.사북버스 공영터미널(09:15)

터미널을 빠져나와서 이곳에 오면 이용하는 택시기사에게 전화를 하니

지금 장거리 손님을 모시고 경북 예천으로 가는 중이란다.

오늘 들머리인 유천고개(미사리고개)는 대중교통이 다니지 않는 곳이라

죽어나사나 택시를 타야하는 곳이다.

 

오늘 산행코스는 오르막 내리막도 심하고, 암릉 구간도 심하지만

산행 거리는 10km정도밖에 되지 않아 일단 아침이나 해결해야겠다고

생각하고, 터미널 건너편에 있는 편의점에서 끓여주는 라면에다

계란 하나를 넣고, 의자가 없어서 선 채로 라면으로 아침을 해결하고

냉커피까지 한잔을 한 다음에 터미널 밖에있는 택시를 타고 기사에게

남면 유평리 유천마을을 가야하는데 잘 아느냐고 물으니 잘 안다고 하여

택시를 타고 한참을 가는데 아무래도 느낌이 이상하다

 

처음에는 이곳으로도 가는 길이 있는줄 알고 가만히 있는데 택시가

쇄재터널을 지나가고 있는게 아닌가...기사 양반!...이곳은 내가

내려올 곳인데 잘못온 게 아니냐고 따지니 그때서야 자기가 착각을

했단다...쇄재고개에서 다시 유천마을로 향하는데 이 기사는 유천고개를

정확하게 인지를 못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하는 수 없이 내가 스마트폰의 오룩스맵을 켜고 가는데 들머리에 도착하니

택시요금도 67,000원이나 나왔고, 시간도 30분이상 늦어 버렸다.

자기의 과실이라면서 택시 요금을 30,000원만 달라고 하는데 기분 같아서는

한푼도 주고싶지 않지만, 그래도 어쩌라...30,000원을 주고 택시에서 내린다

유천고개(柳川峴:10:35)

정선군 남면 유평리 유천마을 위에 있는 고개로 정상에는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을

기념하여 만든 올림픽 소공원이 있고, 정선군 남면소재지에서 화암면으로 넘어가는

2차선 도로가 지나는 고개로 산꾼들은 이곳을 유천고개라 부르는데 고개 좌측 아래에

있는 유천마을에서 지명을 따온듯 하며 지도상에는 유천고개가 아닌 미사리재로

표기가 되어있다.

 

유천(柳川)마을은  정선군 남면 유평리의 자연마을 중 한곳으로 원래 이름은 버드내(柳川)이며 

한치 북동쪽에 있는 마을로  마을 가운데로 흐르는 작은 냇물이 남쪽에서 북쪽으로 길게 뻗어있어

‘벋은 내’라고 했는데 이 말이 변해 ‘버드내’가 되었고 이를 다시 한자로 쓰는 과정에서 ‘버드’를

유천(柳川)이라 하였다고 한다

유천고개 화암면쪽의 모습

지난 5월21일에 2구간을 끝내고 왔으니 꼭 한달만에 유천고개를 다시 왔다.

그 사이에 유천고개도 많이 변해가는 중이다...지억산에서 내려왔던 길은

지금 방화선 임도를 개설한다는 핑계(?)로 중장비로 산을 깔아 뭉개고 있다.

택시에서 내려 산행을 준비하는 잠깐 사이에도 햇빛은 상당히 따갑고

얼굴은 익어가는 느낌이다...서둘러 길을 떠난다

산행을 시작하다(10:40)

능선으로 올라서니 숲속이라 그런지 그리 덥지는 않은 느낌이다

등로 주위에는 산딸기들이 많이 익어 있다

참새가 방앗간 그냥 지나치는 거 봤어...산딸기를 따서

입에 넣으면서 걷는다...비타민 C보충이라는 핑계로...

능선 아래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더위를 잊게 해주는 느낌이다

계속해서 만나는 산딸기...산꾼의 발걸음을 늦추게 한다

안부(10:48)

안부 좌측 아래에는 끝이 안보일정도 큰 동굴이 있다

안부에 올라서면서부터 등로는 서서히 지맥길의 本色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기린초들이 꽃을 피우기 시작한다

점점 등로는 거칠어지면서 보이지도 않으나 언제 내가 그런 호사를

누리면서 지맥길을 걸은게 몇번이나 됐던가...길이 있으면 있는대로

없으면 없는대로 내가 길을 만들면서 간게 80% 이상이었는데

뭘 세삼스럽게 이런걸 가지고 투정을 부리면 맥꾼이 아니제...

이 분은 지나가신지가 얼마되지 않은 모양이다...시그널이 따끈따끈하다

활양나물꽃이 시비를 걸어온다...더운데 뭔 개고생이냐고...

남이사!~...그건 내 맘이야...니야 한량(閑良)이라 부르다가 그 語感이

좋지 않아서 활양(活樣)으로 改名을 한 지는 모르겠다마는, 난 지금

너무 힘이 들지만 지맥길을 마무리하려면 미치지 않고는 못 한다고 했잖아...

시비걸지 마라...

 

활양나물은  전국적으로 분포하며 산지나 들에서 자란다. 원줄기는 높이 80~120cm

정도로 약간 비스듬히 자라고 전체에 털이 없으며 윗부분에 둔한 능선이 있다.

어긋나는 잎은 우수 우상복엽으로 끝에 2~3개로 갈라진 덩굴손이 있으며, 4~8개의

소엽은 길이 3~8cm, 너비 2~4cm 정도의 타원형으로 표면은 녹색이고 뒷면은 분백색이다.

6~8월에 개화하며 1~2개씩 나오는 총상꽃차례에 밑을 향해 달리는 꽃은 황색에서

황갈색으로 변하며, 열매는 길이 6~8cm 정도의 편평한 선형이고 10개 정도의 종자가

들어 있으며 종자는 ‘팥’과 비슷한 모양이나 ‘갯완두’와 달리 꽃차례에 꽃이 많다.

관상용, 사료용, 밀원용, 퇴비용으로 이용하며, 어린순을 데쳐서 돌돌 말아 초고추장에

찍어 먹거나 다른 나물과 같이 데쳐서 된장이나 고추장에 무쳐 먹는다

잡목의 강력한 저항을 받으면서 올라가니 옛날 화전민이 살았던 

흔적인듯한 집터의 돌담같은 곳이 보이고...

초반부터 개고생을 하면서 올라서니 선답자의 산행기에서는

등장하지 않는 약초재배지 철조망이 맥길을 완전히 접수해 버렸다

약초 재배지 철조망(10:55)

철조망 안쪽으로 편안한 마루금 능선이 보이나 마치 군부대

철조망처럼 보이는게 도저히 들어갈 틈이 보이질 않는다.

장대냉이(꽃말: 당신에게 모든걸 맡깁니다)

쌍자엽식물의 2년생 초본으로 전국적으로 분포하며 산 가장자리나 들에서 자란다.

원줄기는 높이 30~60cm 정도로 곧추 자라며 가지가 많이 갈라지고 전체에 털이 있고,

어긋나는 잎은 잎자루가 없고 길이 2~3cm 정도의 긴 타원형이나 위로 갈수록 작아져서

좁아지고 털이 없어지며 가장자리가 밋밋하다.

6~7월에 개화하며 총상꽃차례에 피는 꽃은 연한 자주색이고, 열매는 길이 1~2cm

정도로서 부리처럼 길며, ‘가는장대속’와 달리 과실은 끝이 점점 가늘어 진다.

어린순을 데쳐서 나물이나 국을 끓여 먹는다

이 분은 어케 지나갔을까?

기린초야!...어디로 가야하나?

참나리가 힘들어하는 범여를 격려한다.

세상살이가 쉬운게 어디 있던가요...

철조망 안쪽으로 편안한 지맥 마루금이 보이나 비집고 들어갈 틈도 없고

실제로 CCTV도 많이 달려있어 괜스레 오해를 받으며 봉변 당할 소지를

만들면서 길을 걸어갈 필요는 없다싶어 철조망을 부여잡고 조심스레 걷는다

날씨는 덥고 가야할 길은 보이지 않고, 초반부터 난관에 봉착한다

철조망 바깥으로 가는데 실제 CCTV가 촘촘히 너무 많이 달려있다

생각했던 것보다 시간이 엄청나게 많이 걸리고 바람한 점 없는 날씨에

땀은 물 흐르듯이 줄줄 흘러내리며 옷은 땀으로 범벅이 되고, 그 와중에

어디서 왔는지 날파리와 산모기가 몸뚱아리를 물어대기 시작한다

왔던길을 뒤돌아보니 한달전에 걸었던 1,049.9m봉이 물끄러미 나를 쳐다본다

이곳에서 발을 헛디디면서 넘어졌는데 카메라가

주머니에서 빠져 저 아래로 굴러가는 바람에

카메라를 줏으러 갔다오는데 은근히 부아가 치밀어 오른다

뭔 지랄인지...

철책 안쪽의 오리지널 지맥길

가도가도 철책은 끝날 기미가 안보이고, 다리에 힘을 주면서 걸었더니만

경련이 일어나면서 다리에 쥐가나기 시작한다...하는 수 없이 다리를

주무르면서 철조망 바깥에 주저앉아 한참을 쉰다

엄청난 시간이 소요되면서 걷다보니 철조망 끝이 보이고 오르막으로 올라간다

그래...세월이 약이야!

철조망 끄트머리를 지나서 마루금으로 복귀하면서 능선으로 올라간다

944.1m봉(12:00)

직선으로 500m도 안되는 거리를 1시간이 훨씬 더 걸려 버렸다

마루금으로 복귀한 944.1m봉에 올라서니 긴장이 풀리는지 다리가

쥐가 또다시 나기 시작한다...베낭에서 아스피린과 근육이완제,

체했을 때 따는 침이 든 깡통곽이 안 보이네... 주중에 베낭이

지저분하여 세탁을 하면서 빼놓고는 챙기지 않은 모양이다

이걸 어쩌나...

944.1m봉에서 마루금은 북동쪽의 완만한 내리막으로 내려간다

그나마 다행인게 능선에서 불어오는 바람으로 인해 몸은 좀 개운하다

무명봉(12:07)

안부(12:10)

922m봉(12:12)

마루금은 동북쪽으로 기수를 돌려서 서운산 방향으로 향한다

안부(12:14~20)

안부를 내려서면서 917.9m봉으로 오르는 등로는 방화선 임도인지

잡풀이 무성하긴 하지만 등로는 고속도로(?) 수준인데, 갑자기 식은

땀이 나면서 아침에 급하게 먹은 라면 탓인지 배가 바늘로 쑤시듯이

아프기 시작하는데 미칠것만 같다...구급약통도 없고 침도 없으니

뾰족한 수가 없다...하는 수 없이 베낭에 있는 시원한 콜라 한잔을

마시고 약간의 휴식을 취한 다음에 917.9m봉으로 향한다

917.9m봉 오르는 길에 간간히 으아리꽃도 보이고...

내년을 기약하는 조팝나무꽃도 이별을 준비중이다

917.9m봉으로 올라서니 가장 먼저 반기는게 커다란 송전탑이다

917.9m봉(12:25)

917.9m봉 정상 삼각점(△임계449 / 2005재설)

917.9m봉 정상의 동북쪽으로는 군의산과 7월중에 끝내려고 계획하고 있는

어천(신산경표상:금대)지맥상에 있는 각희산과 고양산이 흐릿하게 보인다

917.9m봉 정상에서 백두사랑 산악회의 산패를 보면서 북동쪽으로 내려간다

등로는 다시 북쪽으로 꺽어져 1시 방향으로 향하는데 그런대로 걸을만하다

‘그런대로 걸을 만하다’는 뜻은 길이 괜찮다는 뜻인데, 山戰水戰 다 겪은

맥꾼 범여가 언제 길타령하면서 걸었던 적이 있었던가...

길이 있으면 있는대로 없으면 없는대로 여태껏 걸었는돼 뭘 새삼스럽게...

조금씩 거칠어지는 지맥길...그러나 1구간 때의 개고생하면서 걸었던

맥길에 비해서는 양반이 아닌가...지난 5월에 정말 힘들게 걸었던 1구간을

기억에 떠올리면서 위안을 삼는다.

안부(12:32)

몸뚱아리의 컨디션은 초반부터 최악이지만 그래도 걸어야겠다는 믿음 하나로

뚜버기 걸음으로 걸어서 완만한 봉우리로 올라서는데 그나마 다행인게

능선 아래에서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이 컨디션 조절에 많은 도움이 된다.

908m봉(12:34)

908m봉에서 우측으로 내려간다

여름철이라 짙은 綠陰으로 인해 주변을 둘러볼 틈이 보이지 않고,

숲이 너무 우거져 야생화도 없으니 헛짓거리 안해도 되는 이런 곳에서는

부지런히 걸으면 산행 속도를 좀 낼수 있는 곳인데 몸뚱아리가 쥔장의

뜻을 이해 못하는지 따라주지 않는데 우짜겠노...

완만한 능선을 따라서 조그만 봉우리에 올라선다 

886.2m봉(12:43)

다시한번 우측으로 꺽어져 내려서니 바람에 흩날리는 선답자의 흔적이 보인다

활엽수들에 포위되어 옴싹 달싹도 못하는 처지이면서도

도도함을 잃지않은 금강송 2그루가 오늘따라 왜이리도

멋지게 보이는지...

안부(12:47)

고도차는 그리 크지 않지만 짧은 구간에 오르내림을 하면서 걷는

이런곳을 산꾼들은 빨래판 구간이라 하제...생각없이 걷다보니

894.9m봉 정상에 도착한다

894.9m봉(12:52)

먼 곳에서 오시느라 고생하셨습니다

894.9m봉을 내려서니 암릉위로 시작되는 칼날 능선이다

조심스럽게 걷다보니 집채만한 암릉이 산꾼을 가로막는다

자세히보니 올라갈 수 있는 등로는 보이고, 암릉을 부여잡고 암릉위로 오른다

암봉(12:57)

다시 내리막길이 이어지고...

안부(12:57)

 짧은 암릉구간을 지나면서 위험지대는 지났지만 등로는 여전히 칼날 능선이다

889.3m봉(13:05)

무명봉인 889.3m봉을 지나자 마자...무명봉인 895m봉이 나오고...

895m봉(13:07)

895m봉에서 마루금은 좌측으로 꺽어져서 합수점으로 향한다

안부(13:09)

완만한 능선이지만 적당하게 암릉도 있어 긴장하면서 걸어간다.

꽤나 시원한 바람이 불어대건만 체기 탓인지 식은 땀이 흐르면서

바늘로 콕콕 찌르듯이 또 배가 아파오기 시작하는데 미칠것만 같다

890.7m봉(13:17)

마루금 등로는 북동쪽으로 이어진다

안부(13:19)

오름길에는 우산나물과 싸리꽃이 응원한다...천천히 걷다보면 끝이 보일거라고...

903.6m봉(13:22)

903.6m봉 정상 삼각점(△418재설 / 77.6 건설부)

아무런 전망도 없고, 눈맞춤을 할 야생화도 없고, 눈요기 할만한

거라고는 전혀없는 이 길이지만 호젓하게 홀로걷는 이 길이 너무좋다.

더군더나 오늘 산행은 날머리인 쇄재까지 가는길에 중간에 탈출로가

전혀없기 때문에 죽으나사나 걸어야만 하는 곳이라 딴 생각을 할 수 없는

코스이다...오늘같이 컨디션이 최악인 날에는 중간에 탈출로가 있었다면

진작에 딴 마음을 먹었을터인데 뾰족한 수가 없어서 무조건 걷기만 한다

858.1m봉(13:26)

안부(13:28)

계속되는 오르내림...예상했던 시간보다 너무 많이 지체되었고,

컨디션은 최악이지만 쇄재까지 갈수 있다는 믿음 하나로 걷는다

힘든 전세살이...그래도 인간사와는 달리 전세금 때일 염려는 없을것 같네요.

무명봉(13:31)

홀로걷는 이 길...단체로 다니는 산행과는 비교할 수 없는

즐거움과 喜悅이라는 妙味를 만끽할 수 있어서 너무 좋다

내가 홀로 산행을 하면서 가장 많이받는 질문이 왜 위험하게

혼자 다니냐고 하는데, 어차피 이 세상올 때도 혼자왔고, 갈때도

혼자가는게 운명인데...지극히 정상적인걸 왜 묻는지 모르겠다.

842.5m봉(13:37)

무명봉인 842.5m봉에서 내려서는데 滯氣로 인한 고통이 너무 심하다

휴식(13:40~14:10)

더 이상 고통을 감내하기가 힘이 들어서 베낭을 내려놓고 등로에서 약간

벗어난 곳에서 버리는 일을 하고는 콜라 한모금을 먹고나니 트림이 나온다.

베낭을 베개삼아 누워서 나홀로 산행을 하면서 상상도 할 수 없는(?)

30분간의 휴식을 취하고 나니 통증은 조금 사라지는 것 같아서 다시 길을 나선다

안부(14:12)

안부에서 천천히 봉우리로 올라서니 족보있는 792.6m봉이 나온다

792.6m봉(14:15)

다시 내리막길로 내려가고...

나뭇가지 사이로 보리산이 살짝 얼굴을 내밀고 있다

완만하게 이어지는 능선...등로는 생각보다 괜찮다

775.4m봉(14:20)

이곳은 중간 탈출로가 없다보니 알바를 할 일이 없고 

간간히 걸려있는 선답자들의 시그널이 길잡이가 되어준다

숲속에서 울어대는 뻐꾸기

그 울음소리가 왜 그리도 애잔하게 들리는지 모르겠다.

뭔 힘든일이 있어서 그러나 왜 저리도 슬피울까...

배아픈 통증은 조금씩 가라앉은 느낌이나 아침에 철조망을 통과하면서

개고생을 한 탓인지 이제는 다리가 경련을 일으키면서 쥐가 나기

시작하는데, 미칠것만 같다...비상 구급약통을 빼놓고 왔으니

아스피린, 근육이완제도 없으니 별 뾰족한 방법이 없다

782.6m봉(14:30)

베낭을 벗어놓고 다리 근육을 한참동안 주무르니 좀 나은 느낌이다

안부(14:35)

암릉구간이 길을 막는다

천천히 암릉구간을 올라서니 794.6m봉이 나온다

794.6m봉(14:38)

안부(14:42)

보리산으로 향하는 암릉구간의 오르막이 시작된다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암릉구간...오늘 산행중에 가장 조심해야 할 위험구간이다

조심스럽게 올라가는데 생각보다 그리 힘들지는 않는구나

암봉(14:57)

암봉에 올라서니 오늘 처음으로 조망다운 조망을 바라다본다.

이런것을 두고 一望無際라고 하지...

조금전의 지나온 능선의 계곡 아래에는 지도상에 나타나는 성신 미네필드 채석장이

보이는데 난 처음에 지명만 보고는 골프장인줄 알았다...그 뒷쪽으로는 백이산과

배거른산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지고, 그 뒷쪽은 2년전 7월에 걸었던 죽렴산이

흐릿하게 보인다

영국의 산악인 조지 허버트 멜로리(George Herbert Leigh Mallory)는 

산에 대한 유명한 명언을 남겼지...1924년도 최초로 에베레스트 정상을

정복했다고 알려진 멜로리는 기자들이 “산에 왜 오르는가” 하는 질문에

그는 “산이 거기 있으니까(Because it  is there)” 라는 名言을 남겼다

높은 산에 오르면 / 안희환

 

 

이기려는 싸움에 질리면

가파른 산에 오른다

 

까마득하게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면 저 잘난 듯

 

키를 자랑하던 고층 빌딩도

납작한 판잣집도 모두

고만고만하게 서 있다.

 

비교 속에서 느끼는

우월감 혹은 열등감에

쉼 없이 돌아가는 분침이

 

빠르게 돌아가는 초침이

너무 아깝기만 한 날.

산에 허영을 두고 온다

조금전에 지나온 능선을 뒤돌아 보니 최악의 컨디션에 개고생하면서

걸어온 능선이 한 눈에 들어오고 힘들게 걸어온 것을 보상받는 느낌이다

능선 좌측의 볼록하게 솟은산이 1달전에 걸었던 지억산이고, 우측으로는

가을에 억새로 유명한 민둥산, 좌측으로는 지맥길에서 벗어나 있는

남전산이 보인다

좌측으로는 7월에 끝내려고 계획을 잡고있는 어천(신산경표상:금대) 지맥상에

있는 고양산과 지맥길에서 벗어나 있는 문래산도 아련하게 보인다

고양산과 문래산을 카메라로 살짝 당겨본다

보리산으로 향하는 칼날 능선으로 올라간다

남서쪽으로는 석항(신산경표상:죽렴)지맥 능선상에 있는 닭이봉(鷄峰)과 

백이산, 곰봉이 보이는데, 2년전 여름에 저 길을 걸으면서도 개고생을 했제...

그러고보니 정선, 영월땅으로 뻗어있는 지맥길을 걸으면서 한번도 편하게

걸어본 기억은 없다

대단하십니다

기린초(꽃말:영원한 사랑)

기린초는 이름만 들어서는 아주 큰 식물이 아닐까 생각되지만 키는

고작 20~30㎝ 정도이고, 돌나물과에 딸린 여러해살이풀이다.

 

영특하고 뛰어난 아이를 ‘기린아’라고 부르는데, 약초로 이용되는 식물 중

그 기능이 가장 우수하다고 하여 ‘기린초’라고 하는데, 키는 작지만 줄기는

기린의 목처럼 곧게 위로 뻗어 있다

 

우리나라 중부 이남의 산에서 자라는 여러해살이풀로, 산의 바위틈이나 너무 습하지

않은 곳에서 자생하며, 남쪽 지방에서는 겨울에도 죽지 않고 잘 자랄만큼 생명력이

강한데, 메마른 바위 위에도 뿌리를 내릴 정도이다.

 

세계적으로는 중국 동북부, 일본, 러시아 동북부 등지에 분포하며 줄기는 보통 6대 이상

모여나고, 아래쪽이 구부러지며, 붉은색을 띠거나 녹색이며, 높이는 7-25cm다.

잎은 어긋나며, 도란형, 타원형, 주걱형, 끝이 둔하고, 잎 가장자리에 둔하거나 조금 뾰족한

톱니가 있으나 잎자루는 없고, 꽃은 6-9월에 원줄기 끝의 산방상 취산꽃차례에 많이 달리며,

노란색, 4-7수성이거나 2수성이고, 꽃받침은 녹색, 다육질, 피침상 선형이다.

꽃잎은 피침형, 끝이 뾰족하며,수술은 2줄로 배열되며, 꽃잎과 마주난 것은 꽃잎 밑부분에 붙는다.

꽃밥은 노란색, 세로로 터지며, 열매는 골돌이며, 씨는 갈색이고 변이가 매우 심한 식물로 약으로

쓰이는데 가뭄에 강하고, 바위 등에 붙어 자라는 특성을 이용하여 건물의 지붕이나 옥상에

식물을 자라게 하는 녹색 지붕을 만드는데 유용하게 쓰일 수 있다.

돌양지꽃(꽃말:깨끗한 사랑, 순결)

양지를 좋아한다고 해서 양지꽃이라고 하는데, 꽃이 오래 피어 있기로 유명해 길게는

4개월가량이나 피며, 또 생명력이 유난히 강해 줄기가 중간에 끊어져도 다시 그곳에

뿌리를 내려 새순이 돋아나는 품종으로 돌양지꽃은 양지꽃과 거의 같지만 키가 20㎝로

30~50㎝인 양지꽃보다 작다... 또 양지꽃은 이른 봄인 4월에 꽃이 피지만 돌양지꽃은

늦봄인 6~7월이 되어야 꽃이 핀다.

 

돌양지꽃은 여러해살이풀로, 높은 산의 바위틈에서 자라며, 안개가 많고 습기가 많은

곳에서 잘 자라는 특징이 있으며, 비록 크기는 작지만 옆으로 둥글게 퍼져 마치 방석처럼

포기를 키우기도 한다... 잎은 깃 모양으로 길이는 2㎝ 정도이다. 밑부분의 잎은 작고

가장자리에 톱니가 나 있으며, 앞면은 녹색이나 뒷면은 흰색이다.

 

꽃은 황색으로 줄기 끝이나 잎겨드랑이 사이에서 가는 꽃줄기에 달리며, 꽃잎은 5개이고

달걀 모양이며 수술은 많고, 열매는 9월경에 달린다.

858.7m봉(15:02)

위험한 암릉구간을 지나 무명봉인 858.7m봉에서 우측 능선으로 향한다

쬐끄만 곤충들의 샘 역할을 하는 나무를 만난다.

그래!...세상사는 건 상부상조하는거야...

본격적인 오르막이 시작되고 코가 땅에 닿을만큼 급경사의 오르막이다

안부(15:07)

또다시 급경사의 오르막은 시작되고...우측으로 비스듬이 사면길이

나있지만 직진 능선으로 올라가는데 숨이 끊어질것만 같은 통증이

시작된다...그래도 우짜겠노...내가 살려면 이 통증을 극복해야 하는데...

힘들게 오르는데 나무 뿌리에 둥지를 틀고있는 노루발꽃이 말한다.

세상에 쉬운게 어디 있드냐고...

두발이 아닌 네발로 기다시피 힘들게 올라서니 맥길에서 살짝 벗어나 있지만

보리산으로 이어지는 능선에 올라서서 물 한모금 마시면서 가쁜 숨을 몰아쉰다

무명봉(15:32)

이곳에서 베낭을 벗어놓고 잠깐 쉰 다음에 스틱만 가지고 맥길에서 

벗어나있는 보리산으로 향한다

보리산(954.4m:15:38)

정선군 남면 낙동리와 화암면 석곡리의 경계에 있는 산으로 정상에는 “보리산”이라

적혀있는 2개의 산패와 백두사랑 산악회와 준.희 쌤의 “그곳에 오르고 싶은산”이라는

산패와 글씨가 잘 보이지 않는 거칠현산이라는 산패, 판독이 불가능할 정도로 망가진

삼각점 표식판이 서 있고 주변의 조망은 전혀없는 오지중에 오지에 자리잡은 강원도의

산이다.

 

다음 지도에는 보리산이라고 표기가 되어 있지만, 국토정보지리원의 지도에는

숫자로만 954.4m로 표기한 무명봉으로 되어있고, 정선군의 어느 자료에도 

보리산의 지명은 확인할 길이 없어서 아쉬움과 함께, 정선군의 산에 대한 무성의에

그저 놀랍기만 하다

보리산 정상의 망가진 삼각점(△)은 판독불가이다

방치된 산패

행여...보리달마(菩提達磨)라고 부르는 달마대사와 관련이 있나하여

자료를 찾아보지만 그런 자료도 전혀 보이지 않는구나.

우리나라의 산중에서 보리산으로 불리는 산은 대체적으로 달마대사나

불교와 관련된게 대부분인데...개 눈에는 똥만 보인다고...날나리 불자의

헛된 꿈이련가...ㅋㅋㅋ

 

* 보리달마(菩提達磨) 대사는 중국 육조시대(六祖時代)의 인도에서 건너온 스님으로 ,

  불교 선종(禪宗)의 창시자인데 범어(梵語)로는 보디다르마(Bodhidharma)이며

  한자로는 보리달마(菩提達磨)라 옮기는데, 보통 칭하는 달마는 그 약칭이다.

 

  그는 인도에서 바닷길로 광동성 광주(廣州)에 이르고, 남경(南京)에 가서 양(梁)의 무제(武帝)를

  뵙고 문답한 후, 양자강을 건너 북위(北魏)의 숭산(崇山) 소림사(少林寺)에 가서 9년 동안

  벽관(壁觀)했다고 하며, 이 벽관은 번뇌가 들어오지 못하도록 마음을 집중시켜 벽과 같이

  한다는 뜻이다.

보리산에 대한 실망과 아쉬움만 안고 왔던 길을 되돌아서 간다

다시 무명봉(15:45)

마루금으로 복귀하여 베낭을 메고 다시 길을 떠난다

956.4m봉(15:48)

오늘 산행중에 가장 높은 봉우리이다...백두사랑산악회에서는

이곳을 서운산으로 표기를 해놨는데 지도상의 서운산은 더 가야한다

인증샷

956.4m봉에서 남서쪽의  급경사로 내려서는데 등로가 보이지 않는구나

등로는 보이지 않고 내가 길을 만들어서 내려가는데 그리 어렵지는 않다

선답자의 흔적을 만나고...

살짝 우측으로 꺽어진 다음에 계속되는 내리막길

등로는 보이지 않고 싸리나무로 뒤덮인 등로를 보물찾기하듯 내려간다

가뭄에 콩나듯이 만나는 나리꽃이 그저 반갑기만 하다

쉼터(15:57)

쉼터같은 넓은 공터 아래로 내려서니...

 옴팍한 안부가 나오는데 지도상의 거칠현 고개라는데

무심코 지나치기 딱 좋은 곳이다

거칠현(居七賢峙:805m:16:00)

정선군 남면과 정선읍 경계인 서운산(瑞雲山) 자락에 위치한 고개로 예전에

환곡(還穀)보관하던 남창(南倉)이 있던 남창마을 근처에 거칠현동이 있는데

조선의 개창에 반대해 경기도 개풍군 광덕면(光德面) 광덕산 서쪽 기슭 두문동(杜門洞)

에서 끝까지 고려에 충성을 바치며 지조를 지킨 72인을 두문동 칠십이현(七十二賢)

이라고 하는데, 그중 7현이 서운산으로 내려와 산나물 등을 뜯어 먹고 살면서 절개를

지킨 곳이다.

 

7현은 전오륜(全五倫) · 변귀수(邊貴遂) · 김충한(金沖漢) · 고천우(高天佑) · 김위(金瑋) ·

이수생(李遂生) · 신안(申晏) 등으로 당시 이들은 개경에 두고 온 가족과 고향에 대한 그리움,

외롭고 고달픈 심정 등을 한시(漢詩)로 지어 율창(律唱)으로 읊었는데, 지방 선비들이

이를 듣고 사람들에게 풀이하여 알려주면서 구전되던 것이 정선아리랑의 기원이라고

전해졌으며, 정선아리랑의 보존 · 발전과 칠현의 충절을 기리는 거칠현공원에는

고려유신의 칠현비가 세워져 있으며, 정선군 남면을 정선아리랑의 본고장으로 부른다.

 

* 환곡(還穀)이란 고대부터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정부가 비축한 곡물의 일정부분을 창고에

  보관했다가, 흉년이 들면 백성에게 나누어주되 추수를 해도 갚을 능력이 없는 사람에게는

  무상으로 주고, 반환 능력이 있는 사람에게는 가을에 갚을 것을 조건으로 빌려주었다.

 

  창고에 보관된 곡물이 썩거나 쥐가 먹는 등 자연 감소되는 부분을 보충하기 위해 빌려간

  곡물의 10% 정도를 이자로 더 받아 곡물의 자연감소된 부분을 보충하고, 일부는 환곡

  운영의 비용으로 충당했으며, 환곡제도는 농업경영의 안정을 보장하는 중요한 수단이었다.

 

  그러나 나중에는 정부의 중요한 세수원으로 기능하면서 이자가 늘어나 농민들을 수탈하는

   도구로 전락하고 말았다... 갑오개혁 당시 환곡의 부세적 기능을 제거해 결세 속에 포함시키고,

   진휼기능은 사환미 형태로 남겨졌다.

희미한 거칠현치를 완만하게 올라서니 서운산 정상이 나온다.

서운산(瑞雲山:824.4m:16:04)

강원도 정선군 정선읍 신월리와 남면 낙동리에 걸쳐 있는 산으로 『정선읍지』에는

"군 남쪽으로 15리에 있다."고 하였으며, 『조선지도』에도 서운산이 나온다.

정선읍 신월리 신치(新峙) 마을에서 남면 낙동리 남창마을로 넘어가는 고개를

쇄치(鎖峙) ·서운치(瑞雲峙) · 쇄운치(鎖雲峙)라고도 하며, 지금은 쇄재터널이 뚫려 있다.

 

서운치라는 지명은 1740년(영조 16) 정선군수 남한기(南漢紀:1675~1748) 창건한

서운창(瑞雲倉)과도 연관되는 것으로 보이며, 신치는 서운치와 문두치가 있는 마을을

부르는 지명으로 다음지도에는 서운산이란 지명이 보이나, 국토정보 지리원의 지도에는

824.3m봉으로만 기록되어 있다

서운산 정상의 모습

서운산 정상에서 우측으로 확 꺽어져 내리막길로 내려간다

안부(16:07)

안부를 지나자마자 암릉구간이 시작되고...

본격적인 암릉구간이 시작되고 오르막으로 오르는데...

원불교 세종교당의 시그널이 걸려있는데 “無我奉公”이란 글귀가 적혀있다.

佛家에서는 無我를 “나라는 존재는 없다는 것, 내가 아닌 것과 나를 소유하지 

않는 것의  가지를 말하는데 즉 사사로운 마음이 없는 것”을 말하고,

 “奉公”이란 단어를 사전에서 찾아보면 ‘나라나 사회를 위하여 힘써 일함’이란

뜻인데, 정리해 보면 “사심없이 봉사하란 뜻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730.2m봉(16:12)

보기와는 달리 생각보다 상당히 까칠하게 등로는 이어진다

무명봉(16:15)

안부(16:17)

칼날능선의 암릉구간으로 이어지는 마루금...이제 체기는 사라졌는지 

배아픔은 멈췄지만 산행 시작부터 이곳까지 오면서 물과 콜라 한병 이외는

아무것도 먹지 않아서 그런지 엄청나게 허기가 지긴하나 먹는걸 포기하고

계속해서 걸었더니만 자꾸만 다리가 후덜거린다

이럴때는 최소한 천천히 걷는게 정답이다.

완만한 능선으로 올라서니 727.8m봉이 나온다

727.8m봉(16:28)

고도차가 그리크지 않으나 오르막 내리막 능선이 반복되는 빨래판 구간을 걷는다.

허기로 인해 다리는 계속해서 후들거리고 돌멩이들이 등로에 

많으니 조심스레 걸어간다

이 나무들도 바위 사이로 뿌리를 내리며 고단한 삶을 살아가고 있다.

하기사 고단 삶을 영위하는 것들이 어디 너 뿐이랴...희망을 가지며 살자구나

720.6m봉(16:33)

잠시 편한 길을 걷나했더니 또다시 암릉구간이 시작된다

암봉(16:40)

칼날 능선으로 이어지는 계속되는 암릉구간

조심스레 느린걸음으로 한발짝, 한발짝을 이어간다

무명봉(16:48)

좁은 능선을 곡예하면서 걷다가 능선으로 올라서니...

작명가로 유명하신(?) 서레야 박선생께서 설치한 쇄재봉 코팅지가 나온다

이곳이 국토정보지리원의 지도에 722.0m봉으로 표기된 곳이다

722.0m봉(16:52)

내리막길에 희한하게 생긴 나무를 만나는데 마치 여성의 거시기처럼

생긴게 민망하게 보이는데...생각하는 내가 變態인가?

안부로 내려섰다가 또다시 오르막길...자꾸만 체력이 부치니

주저않고 싶지만, 오늘 산행은 예상했는 시간보다 훨씬 시간이 많이 걸렸고,

귀경 시간의 버스 시간을 맞추기 위해서 힘이 들어도 부지런히 걷는다.

662.5m봉(16:57)

662.5m봉에서 쇄재으로 내려가는 길은 마치 천당에서 지옥으로 떨어지는 듯한

급경사의 내리막 등로에 바닥이 미끄러워서 아주 조심해야 할 구간이다

급경사의 내리막길에서 바라본 정선군 남면 낙동리(樂同里)의 모습

낙동리(樂同里)는 남면 소재지에서 서쪽으로 약 8km 떨어진 곳에 있으며, 옛날 관곡

창고인 남창(南倉)이 있었기 때문에 일명 남창이라 부르며, 고려조 칠현의 위패를

모시고 있는 거칠현동(居七賢洞)이라 부르고 있는 칠현사(七賢祠)란 사당이 있으며,

정선선의 별어곡역과 정선역 사이에 있는 선평역(仙坪驛)이 있는 마을이다

 

1940년경 남창, 음촌, 거칠현, 의평, 맷둔, 둔내 등 자연부락을 합쳐 낙동리라 고쳐 부르게

되었으며, 낙동이란 지명은 여민동락(與民同樂)의 뜻으로 주민이 온순하여 서로 협동하였음을

나타낸 말로, 동북으로 초당봉, 서운산이 둘러져 있고 북서쪽에 쇄운치, 문두치로 정선읍과

이어져 있고, 남쪽으로는 백이산, 천마산이 둘러 싸고 있어 신동읍과 경계를 이루고, 마을

중심부로 동남천이 동에서 서로 흐르고 있다.

계속되는 급경사의 내리길

급경사의 나뭇가지 숲사이로 쇄재터널로 이어지는 59번 도로가 보이는 걸로봐서

쇄재이 얼마 남지 않은 모양이다...저 아래서 간간히 차량소리가 들린다

뒷쪽으로는 다음 구간에 걸어야 할 국수봉이 보이고, 그 뒷쪽으로는 7월에 걸을

예정인 고양산이 흐릿하게 보인다

쇄재터널 위(17:02)

이곳 아래로 59번 국도 쇄재터널이 통과하는 구간이다

안부(17:04)

쓰러진 전봇대 2개가 ‘큰 대(大)자’로 드러누워 있다.

莎草가 좌.우 양 옆으로 펼쳐지는 등로를 따라서 마지막 봉우리로 올라간다

조그만 봉우리로 오르는 길도 이렇게 힘이 들 줄이야....

무명봉(17:07)

무명봉을 내려서자마자 숲속에 방치된 채로 있는 수준점을 만난다.

쇄재 정상옆 숲속에 방치된 채로 있는 수준점

폐건물을 내려서니 오늘 산행의 날머리로 잡은 쇄재에 도착한다

쇄재(鎖嶺:650m:17:10)

강원도 정선군 정선읍과 남면의 경계에 있는 고개로 예전에는 사북에서

정선으로 이어지는 59번 국도가 지나는 곳이었으나, 지금은 이 고개 아래로

쇄재터널이 뚫리면서 59번 도로가 폐쇄되는 바람에 지맥꾼이나 지나는

잊혀진 고개로 변해버렸다...지명의 유래는 고개 좌측 아래에 있는 정선군 남면

낙동리에 있는 선평역에서 판유리에 들어가는 原石을 싣고, 인천에 있는 한국유리에

실어가기 위해서 이곳에서 일정한 크기로 쇄정하였던 곳이라하여 쇄재 또는 쇄령이라

부른데서 유래된 고개라고 한다.

千辛萬苦 끝에 오늘 산행의 날머리인 쇄재에 도착하여 도로에 주저 앉아 버렸다.

최악의 컨디션이었지만 목표점까지 완주했다는 안도감에 긴장이 풀린 모양이다.

나하고는 정선과 영월에 걸쳐있는 지맥과는 좋은 인연을 한번도 맺지 못한 느낌이다

2년전에 걸었던 옥동(두위), 석항(죽렴)지맥도 죽을 고비를 넘기면서 개고생을 

했는데, 올해 걸었던 지장(노목)지맥도 참으로 좋은 인연을 쌓지는 못하고 있다

이곳에서 잠깐 도로에 드러 누웠다가 정신을 차려서 차량이 다니는 도로까지

가야하는데 많은 고민을 한다...우측의 정선읍 방향으로 내려가면 읍내까지는

거리가 많이 짧지만, 정선읍내에서 서울로 가는 차는 그리많치 않고 내가 정선읍의

대중교통에 정보가 거의 없다.

 

그러나 고한으로 가면 거리는 많이 멀지만 강원랜드라는 카지노가 있어서 서울로

가는 버스가 자주 있기에 좀 늦게 가더라도 서울로 가는데는 별 문제가

없을듯 하여, 좌측의 폐도로를 따라서 내려간다 

(주)정선산업(17:15)

정선산업이라는 업체를 지나니 도로는 바리게이트로 막혀있고...

바리게이트로도 모자라서 콘크리트 덩어리로 막아놨다.

내리막 포장도로라서 아무런 생각없이 계속 내려간다

굽어지는 도로로 내려가면서 조금전에 내가 걸었던 능선을 바라보며 걷는다

쇄재고개에서 출발한 지 1.7km 지나는 지점 아랫쪽에 쇄재터널이 보인다

도로 우측으로 내려선 다음에...

도로명 주소가 칠현로로 불리는 59번 신국도로 내려서는데 

너덜길이 어찌나 미끄럽던지 2번이나 쳐박히면서 도로로 내려선다

쇄재 터널 입구(17:45)

아침에 택시기사의 어리버리한 행동으로 오늘 2번이나 쇄재 터널로 온다.

이곳은 차량통행이 꽤 있으나 내리막길이라 앵벌이(히치)하기에는 위험이

뒤따르지만 차량이 세워줄 것 같지도 않을 것 같아서 망설이면서 도로를

건너려고 하는데 정선쪽에서 터널을 빠져나온 버스 한대가 내려온다

스틱으로 손을 흔들면서 버스를 세우려고 했지만 야속하게도 그냥 지나간다

버스기사의 행동이 좀 섭섭하긴 하지만 정류장이 아닌곳에서

안 세워 주는건 당연한 걸 어쪄랴...그걸 바라는 내가 잘못 된것이지

하는 수 없이 내가 이용했던 고한 택시를 호출하니 20여분만에

택시는 도착하고, 나의 배고픔을 알아 차렸는지 바나나 우유 하나와

구론산 한병을 나에게 건내준다...배가 엄청 고팠는데 기사가 준

우유가 너무 고마웠고 잘 먹었다...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보니

택시는 고한 터미널에 도착한다

고한 터미널(18:30)

터미널에 도착한 다음에 19시 15분에 출발하는 버스표를 예매하고는 화장실로

가서 간단하게 씻고 옷을 갈아입고 베낭을 정리하고 나니 태백에서 동서울로

향하는 버스가 들어와서 서울로 가는 버스에 오르면서 힘든 하루 일정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