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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범여(梵如)의 世上사는 이야기
♣ 백두 대간및 9정맥 후기♣/白頭大幹 4次(진행중)

제48구간 - 삽당령에서 오목골 삼거리까지

by 범여(梵如) 2023. 11. 13.

아직도 아날로그 시대를 벗어나지 못하고

자꾸만 文明에서 疏外되는 느낌...나만의 생각일까

 

☞산행일자:  2023년 10월29일

☞ 산행날씨:  맑고 산행하기 참 좋은 날씨

 산행거리: 도상거리 약 21.6km + 날머리 4.2km / 10시간15분 소요

☞ 참석인원: 나홀로 산행

☞ 산행코스: 삽당령- 725.3m봉- 왕산리 갈림길- 857.7m봉- 쉼터- 안부- 무명봉

                    안부- 무명봉- 안부- 무명봉- 석두봉 매봉 분맥 갈림봉-채종원- 연리지

                    914.8m봉- 무명봉- 들미재- 암봉- 안부- 무명봉- 무명봉- 안부(들미재?)

                   무명봉- 독바위봉- 제4쉼터- 976.9m봉- 안부- 안부- 무명봉- 안부- 무명봉

                   안부- 제4쉼터- 석두봉- 안부- 무명봉- 965.5m봉- 안부- 무명봉- 고개

                  제5쉼터- 도미재- 제6쉼터- 987.1m봉- 다시 제6쉼터- 무명봉- 안부- 무명봉

                  960m봉- 안부- 939.3m봉 갈림길- 안부- 제8쉼터- 1,001.3m봉 갈림봉

                  무명봉- 큰용수골 갈림길- 안부- 1,006m봉- 화란봉 갈림길- 화란봉

                 다시 화란봉 갈림길- 1,056.5m봉- 무명봉- 강릉김공 가족묘- 736.5m봉

                닭목령- 안부- 무명봉- 무명봉- 안부- 맹덕목장 입구- 안부- 954.2m봉

                피덕령 갈림길- 무명봉- 안부- 쉼터- 왕산 제1쉼터- 1,021m봉- 안부

                쉼터- 암봉- 쉼터- 왕산제2쉼터- NO35 송전탑- 1,221.5m봉- 쉼터

                안부 임도-암봉- NO38 송전탑- 고루포기산- NO39 송전탑

                화약골 갈림길- 오목골 갈림길- 무명봉- 횡계리 갈림길- 계곡- 계곡

                무명묘지- 능경봉 갈림길- 고루포기산 입구- 평창 라마다호텔 입구

 소 재 지:  강원도 평창군 대관령면(舊:도암면) / 강릉시 왕산면, 성산면

 

지난 7월부터 지독한 잡목의 저항에 진절머리가 났던 지맥길을 잠시 중단하고

편안한 백두대간의 4번째 여정을 이어가는데, 이제 그 끝이 조금씩 보인다.

남녘의 무주쪽 2구간과, 속리산쪽 한 구간을 빼고나면 전부 강원도쪽이다.

 

이곳은 대중교통이 그리 좋지 않아서 자동차를 가져오면 편하긴 한데,

문제는 체력과 경비가 문제이다...집에서 새벽에 출발해야 하는 불편함과

들머리에 차량을 세워놓고, 산행을 끝낸후 다시 차량을 회수하러 가는데

대부분이 산악지대라 빙 돌아서 가는 탓에 교통비가 장난이 아니지만

그 이외의 다른 방법이 없어서 울면서 겨자먹기식으로 진행을 한다.

 

토요일 저녁 9시에 잠자리에 들었다가 새벽 2시쯤에 일어나서 간단하게

베낭을 챙긴 후, 아들 차를 빌려서 출발하여 쉬지않고 부지런히 달렸더니

새벽 4시 반쯤에 들머리인 삽당령에 도착한다 

 

오늘 산행구간의 지도

삽당령에 도착하니 야심한 새벽 04:30...날씨도 그리 춥지않고, 바람도 그리 심하게

불지는 않으나 어제 내린 비의 영향인지 짙은 박무와 습기로 인해서 삽당령 정상을

짙은 안개가 뒤덮고 있어서 바로앞에 있는 삽당령 욕쟁이 할머니집 주막도 잘 안보인다.

 

아직까지 날이 훤히 밝으려면 2시간 가까이 있어야 하기에 히터를 켜놓고 차 안에서

잠을 청한다...그런데 생각처럼 잠이 오질 않아서 이리저리 뒤척이다가 보니...05시40분

더 있어봐야 별 뾰족한 수가 없을 것 같고하여, 40분정도만 헤드렌턴을 켜고 가면

날이 밝겠지 하면서 산행을 준비하려고 차량내에 실내등을 켜는데 갑자기 뭔 소리가

들리더니만 이게 뭐여?... 잠시후에 차에서 들리는 소리...“정선군 임계면 치안센터인데

선생님, 뭘 도와드릴까요” 하는 멘트가 나오는데, 참으로 황당하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요즘에 출고되는 차량에는 실내에 비상시에 SOS를 호출할 수

있는 장치가 있다는 걸 이번에야 알았다...갈수록 나이든 사람들은 불편한 세상이다

삽당령(682.3m:05:40)

차량에서 산행 준비를 마치고 산행을 준비하면서 정상석 사진을 찍는데

평소에 가지고 다니던 똑닥이 카메라의 베터리를 충전시키지 않아서

후레쉬가 장착되지 않은 구형 똑닥이를 가져왔더니만 사물을 인식하지

못해서 그림이 퍼지면서 이상하게 되어 버렸다

산행을 시작하다(05:45)

오랫만에 헤드렌턴을 켜고 산행을 시작하는데, 임도에 들어서니 짙은 안개로 인해 10m도 안 보인다

임도에 들어서면서 우측의 종합 안내판 뒷쪽 능선으로 올라가야 하는데 빗물을 잔뜩

머금은 풀섶에 초반부터 등산화 물이 들어오면 찝찝할 것 같아서 약간 돌아서 가지만

좌측의 임도로 올라서니 바리게이트가 길을 막고 있고, 바리게이트를 통과하여

그냥 임도를 따라서 간다...임도를 계속 따르는데 짙은 안개는 점점 심해지고 우측

능선 윗쪽이 대간길이지만 그냥 임도를 따라서 간다

725.3m봉(05:50)

부지런히 임도를 따라서 올라오니 임도녹화사업 표지판이

나오는데 저 뒷쪽이 지도상의 725.3m봉이지만, 임도를 걸으면서

이곳을 725.3m봉으로 한다

한치 앞도 안 보이는 임도옆의 팻말을 보면서 조금씩 고도를 높히는데

임도 좌측으로는 넓은 밭이 보이고, 헤드렌턴 빛에 놀란 노루인지,

고라니인지 모를 짐승 2마리가 나의 인기척에 놀라서 魂飛魄散하고 달아난다

 

 임도 절토사면의 안정을 위하여 최적의 녹화공법을 선정, 임도 절개지를

10m거리로 8구간을 설정하여 2008년 10월에 조성해 놓았다는 임도...

어둠속이라 아무것도 모른 채, 봉사 문고리 잡는 식으로 걸어가는데

자꾸만 짙은 안개는 속절없이 밀려온다...

한치 앞도 안보이는 짙은 안개 사이로 계유년 음력 9월 보름달이 

서산으로 기울기 시작하는데, 저 달이 넘어가면 날이 밝아지겠지...

임도 우측 능선에 있는 이동통신탑이 달빛으로 인해 흐릿하게 보인다

임도 안내판이 보이고...

바리게이트를 만나면서 삽당령에 우회한 대간 마루금에 복귀한다

왕산리 갈림길(06:08)

삽당령에서 이곳까지 같이온 임도는 우측 아래의 왕산리로

내려가고 임도를 가로질러 백두대간 마루금은 이어진다.

 

강릉시 왕산면소재지가 있는 왕산리는 대관령 산정 동남쪽으로 우뚝 솟은

제왕산이 있어서 왕성한 산줄기가 뻗어있다는 뜻에서 왕산리라 했고,

대관령 밑에 있는데 이종(理宗)을 추봉(雛鳳)해서 단(壇)을 세우고 여기에

제사를 지냈다... 그리고 그 산을 이름해서 대제(大帝:왕산)라 했다고 한다.

어둠이 걷히고 날이 밝아지기 시작하는데 밤이 많이 길어졌구나

857.7m봉(06:22)

옛 지도에는 862m봉으로 표기가 되었고, 들미골 입구로 표기가 되어있는

지도도 있었고, 승기봉이라고도 표기가 된 곳도 있으나, 국토정보지리원의

지도에는 그냥 857.7m봉으로 표기가 되어있다...승기봉은 어떤 연유에서

나온 지명인지 모르겠고, 들미골은 이곳에서 한참을 가야 나오는 곳이니

완벽한 오류인듯 싶다...삽당령에서 화란봉까지 가는 길에는 9개의

쉼터가 있는데 이곳이 그중에서 제2쉼터에 해당되는 곳이며, 닭목령까지는

강릉시에서 조성한 대간 마루금과 대관령 숲길, 강릉울트라 바우길과 함께 같이간다  

857.7m봉에서 대간길은 좌측으로 확 꺽어져서 서쪽으로 향한다

새벽에 지독히도 극성을 부렸던 짙은 안개는 날이 밝으면서 

어디론가 사라져 버리고, 빗물에 촉촉히 젖은 낙엽길을 호젓히

홀로 걷는 이 길...독립군의 特權을 톡톡히 누리면서 걷는다

쉼터(06:25)

어제 하루종일 비를 맞은듯한 쉼터 의자가 

범여를 보면서 반가움을 표시한다

그래...고맙구나...너도 많이 외로운가 보다

쉼터의자를 지나니 내리막길에 데크목 계단이 보이고...

데크목 계단에서 나무가지 사이로 가야할 능선으로 바라보는데, 맨 좌측에는

대간 마루금에서 꽤 벗어나 있는 대화실산(大花實山:1,010m)이 얼굴을 내민다.

 

강릉시 왕산면에 있는대화실산은 전형적인 육산(陸山)인데 전체적인 산의 형세가

큰 꽃의 열매, 화심형(花心形)처럼 생겼다 하여 ‘대화실’이란 이름을 얻었으며,

산 아래에 화실동(花實洞)마을이 있다

오늘 걷는 등로에서 이 팻말을 자주 만난다.

안부(06:31)

안부에서 올라서니 우측으로는 천길 낭떠지라서 안전 로프가 처져

있는데, 야간이나 무박의 새벽 산행길에는 아주 조심해야 할 구간이다

낭떠러지 계곡 아랫쪽에는 새벽에 지나온 왕산리가 보이고, 

그 뒷쪽으로는 2021년 7월에 홀로 걸었던 백두대간 두리봉에

가지를 쳐서 만덕산을 지나 강릉 남대천으로 入水하는 강릉 남

(신산경표상:만덕)지맥 능선이 흐릿하게 보인다

등로 좌측으로는 삽당령에서 국립산림품종관리센터

강릉지소 채종원으로 연결되는 시멘트 도로가 보인다

무명봉(06:39)

초반부터 만나는 산죽길...젖은 낙엽조차도 산꾼의 맘을 편하게 해준다

이른 새벽에 집을 나온 탓인지 피곤하긴 해도 그래도 걸을 수 있다는

것에 늘 감사하며, 내가 살아 있다는 걸 확인하면서 산길을 걸어간다

안부(06:43)

조금씩 고도를  높히긴해도 아직까지 그리 힘든줄 모르고 

걷고, 또 걸으면서 뚜버기 걸음으로 목적지를 향해서 간다

무명봉(06:46)

안부(06:47)

무명봉(06:49)

직진의 오르막길이 아닌 살짝 비스듬하게 봉우리로 올라간다

동해안에서 올라오는 해는 만덕산 윗쪽으로 솟아 올라 버렸고,

왕산골 계곡에 형성된 雲海는 夢幻的 분위기를 자아낸다

능선으로 올라서는데 이곳이 백두대간 석두봉 매봉 분맥길 분기점이다

무명봉 정상에 올라서니 대간꾼들의 시그널이 얌전하게 산꾼을 반긴다.

날이 밝으면서 오늘은 춥지도 덥지도 않고, 악명(?)높기로 소문이 자자한

이곳의 바람마저도 암전하게 구는 그야말로 산행하기에는 더 없이 좋은 날씨이다

석두봉 매봉 분맥 갈림봉(930m:06:59)

이곳에서 좌측으로 뚜렸한 등로가 보이는데 대화실산으로 이어지는

백두대간 석두봉 매봉 분맥길이고, 직진의 내리막길로 내려가면 잣나무

채종원이 있는 곳이다...나야 아직 지맥길도 끝내지 못했는데 분맥, 단맥을

논하기에는 焉敢生心이라 그냥 패스한다

 

석두봉 매봉분맥(1016,7m:鷹峰)은 백두대간 석두봉 남으로 2.5km지점 백두대간 930m봉에서

남서방향으로 매봉분맥(鷹峰分脈)을 일구는 분기봉으로 석두봉~930m봉~대화실(1,010m)

매봉산(1,016.7m)~사달산언저리~960m봉~화채봉(935.5m)~850m봉~고비덕(1,019m)~

왕재산(998.4m)~정선 아우라지 골지천에서 脈을 다하는 약30km의 분맥능선이다.

무명봉에서 내려서니 잣나무 조림지가 나오는데 이곳이 강릉시 왕산면 대기리 산 1-12에 

잣나무 면적 18.0ha. 4226본. 조성년도 1972년’. 2~3년생 묘목을 심었다고 하는,

국립산림품종관리센터 강릉지소 채종원인데,  이곳은 산림청에서 지정한 잣나무 채종원으로서

우량종자를 얻기 위하여 지속적인 관리가 이루어지는 곳이라는데 이곳부터 방화선

임도가 시작되는 완만한 능선으로 따라서 대간길을 이어간다

 

* 채종원(採種園)이란 처음부터 종자의 생산만을 목적으로 조성하는 수목원을 말한다 

국립산림품종관리센터 강릉지소 채종원(07:01)

국립 산림 품종 관리 센터는 고품질 개량종자 생산 및 보급을 위하여 1968년부터 우수한

유전인자를 지닌 수형목 선발을 통해 소나무 등 62수종 7.621㎢의 채종원을 충주, 춘천,

강릉, 안면도 등에 조성하고 개량종자 234톤을 생산·공급하였다.

 

또한 종자 공급원 및 클론 보존원 조성, 보속 생산 체계 구축, 종자 품질 및 유전 형질 향상

기술 개발, 채종원 기계화 및 기반 시설 확충, 채종림·채종 임분 판정 및 관리 기술 개발에

주력하고 있으며, 산림 종자 공급원에 대한 GIS 기반 정밀 조사 및 수형목과 산림 품종의

이용 형질 특성 평가, 고유 DNA 지문 작성, 형질 관련 분자 마커 확인, 유전자 은행 구축 등

산림 유전자원 보존에도 주력하고 있다.

잣나무 조림지가 있는 능선 윗쪽의 편안한 길을 걷는데

뾰족하게 생긴 가야할 석두봉이 얼굴을 내밀기 시작한다

채종원 아랫쪽에 있는 왕산면 대기리 계곡에는 운해가 춤을 추고,

그 뒷쪽으로 보이는 화란봉과 맨 끄트머리쪽에 있는 고루포기산

능선은 참으로 멀게만 느껴진다

삽당령에서 이곳까지 오면서 아직까지 힘들다는 생각을 못한채로 걸어간다

그리 춥지도 않은데 서리가 보인다... 밤에는 추웠던 모양이다

연리지(連理枝:07:03)

예전에 사랑나무라고 표기해 놓은 연리지(連理枝)  소나무 한그루가 

있는데 지금 뭔 연유인지는 몰라도 그 표시 안내판은 보이지가 않는구나

부지런히 왔다고 생각했는데 삽당령에서 겨우 3.3km

겨우라니... 산길이란 스틱을 접어야만이 끝이 날 모양이다 

이정표 옆에는 이런 안내판이 보인다

잣나무 조림지인 채종원을 통과하는데 참으로 편하게 걸어간다

914.8m봉(07:05)

그저 밋밋한 봉우리에 그 흔한 대간꾼들의 시그널 하나 걸려있지

않은 봉우리이지만 국토정보지리원에 등록된 엄연한 족보있는 봉우리다.

들미재를 향하는 내리막으로 내려가는데 해는 어느듯

中天에 떠올라 있다...날씨가 좋은 탓인지 컨디션은 굿이다

무명봉(07:07)

무명봉에서 내려서니 넓은 공터에 망가진 통나무 의자가 있는

제3 쉼터가 나오는데 예전에 없었던 분당 해밀산악회 애송님이

걸어논 ‘들미재’란 산패가 보이는데 지도상에 표기된 들미재와는

거리 차이가 많이 나 있어서 어느걸 믿어야 할 지 상당히 헷갈린다

 

구릉지로 된 고개라서 국토정보지리원에 표기된 들미재와는 다르지만

대처적인 산꾼들의 산행기에는 이곳을 들미재로 보고 있다

들미재(810m:07:10)

강릉시 왕산면 목계리와 왕산리의 경계에 있는 고개로 조선시대에는 삽당령을

넘는 역이 있던 왕산면 목계 마을, 그리고 대관령 지구와 함께 고랭지 채소의

본고장으로 꼽히는 용수동 마을을 넘나들던 작은 옛 고개이다

 

지명의 유래는 등로 아래에 위치한 ‘들미골’ 마을에서 유래된  들미는 ‘들(野 )의 꼬리(尾)’,

즉 ‘개활지에서 산모퉁이를 돌아 들어가는 외진 곳’이라는 의미로 불리우며,농기구나 그릇

또는 가구의 무늬로 쓰이는 들미나무 잎이 검푸르다 해서 붙여진 들미나무(표준어 들매나무)가

많이 자생하여 유래 되었다 한다

산꾼들 사이에 불리는 들미재를 지나서  방화선 임도를 따라서 편하게 걷는다

잡풀이 많아서 방화선 임도가 아닌 불쏘시게 임도같은 느낌이다

백두대간 등산로(삽당령~닭목령) 구간 안내판이 있는데

세월의 무게를 이기지 못한체 판독이 불가능 정도로

낡아 버렸다...안내판도 세월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는가 보다

암봉(07:16)

정통 陸山에 간간히 만나는 암봉이 앙증스럽다

안부(07:18)

무명봉(07:24)

방화선 임도의 끝이 보이기 시작하는데 잠시후에 강릉 채종원에서 2km

가까이 시작된 방화선 임도가 끝나는 무명봉에 올라선다

무명봉(07:32)

무명봉을 내려서니 안부가 나오는데 국토정보지리원의

지도에는 이곳을 들미재로 표기 해놓아 상당히 헷갈리는 곳이다

안부(들미재?:07:34)

국토정보지리원의 지도에는 이곳을 들미재라 표기를 해놨는데

아무리 들러봐도 대용수동이나 왕산골로 이어지는 등로가

보이지 않는구나

아무런 생각없이 무심코 걷다보니 무명봉을 향하는 능선으로 올라간다

무명봉(07:36)

또다시 완만한 내리막길은 시작되고...밋밋한 돌덩어리

하나가 나오는데 엄연한 지명을 가진 독바위봉이란다

독바위봉(995m:07:38)

지도상에 기록된 공식적인 지명은 아니고, 예전에 새마포산악회란 곳에서

독바위봉이라 표기된 코팅지 산패에 등장한 곳인데 지명으로 굳어버린 모양이다

예전의 코팅지에는 이곳이 아닌 잠시후에 도착할 삼각점이 있는 봉우리를

독바위봉이라 불렀다...‘독’이란 ‘항아리’를 말하는데 이 바위를 요리조리 아무리

쳐다봐도 항아리처럼 보이는 구석이 하나도 없다

제4쉼터(07:39)

동남아 휴양지에서나 만날법한 멋진 벤취 2개가 

산꾼들의 외면을 받는지 낙엽속에 묻혀있다

976.9m봉(07:41)

이곳을 독바위봉이라고 하는 자료들이 많다

낙엽속에 묻혀버린 976.9m봉 정상 삼각점(△409재설 / 79.9 건설부)

무영객님...이 분은 지맥파이신 모양이다

안부(07:43)

나무가지 사이로 석두봉이 보이기 시작하는 곳에서 내리막길로 내려간다

안부(07:46)

무명봉(07:49)

석두봉 정상인줄 알고 올랐는데 아직까지 석두봉 정상은 멀기만 하는구나

안부(07:52)

안전로프를 따라서 다시 오르막으로 올라간다

무명봉(07:56)

안부(07:57)

쉼터(07:59)

석두봉 오르는길

나무계단으로 오르는 길...편하긴 해도 급경사의 계단 오름길은 숨이 목까지 차오른다.

이름있는 산치고 정상을 쉽게 허락한 산이 있드냐마는 석두봉도 마찬가지인 듯 하다

나무 계단을 따라서 가다서다를 반복하는데 계단옆의 생강나무는

뭔 생각을 하는지 초겨울에 접어든 이맘때, 싹을 티울 준비를 한다

조심하셔...그러다가 얼어 죽는다...

빡세게 한달음을 치고 올라서니 석두봉 정상이 보인다

석두봉은 대간길 남녘땅 맨 위쪽인 진부령에서 내려와서 설악산~오대산~대관령~

고루포기산~닭목령을 경유 화란봉(華蘭峰)과 이웃하고 있는 산으로 남으로는

삽당령~두리봉~석병산~자병산~백복령으로 이어지는 대한민국 국토의 골격을 이루는

봉우리로 강원도 강릉시 왕산면 대기리에 있는 일망무제의 동서남북 시야가 트이는

멋진 조망권의 암봉으로 전형적인 육산지역에 석두봉 정상에만 바위로 이루어져 있는

산이다.

석두봉 정상 이정표

석두봉(石頭峰:995.0m:08:05)

강릉시 왕산면왕산리와 대기리 경계에 있는 석두봉 정상은 이름 그대로

바위로 되었고 쌍으로,큰 용수골 안 가리젱이에 있는 봉우리로 동쪽

봉우리 보다 조금 낮은 서쪽 봉우리는 얼룩무늬 바위들이 서로 마주 보고

있으며, 마루금을 축(築)으로 동쪽과 북쪽은 급경사를 이뤘고 남과 서쪽은

해발 800미터의 평평한  분지로 작은터, 가르쟁이, 솜솥밭, 대용수동을

거느리고 있는데, 이곳에 거주하는 주민들은 씨감자와 당근을 해갈이 하고 있다

 

정상 부근이 바윗돌로 이루어져 있는 이 산은 강릉에서 삽당령으로 오르는

35번 국도가 선명하게 내려다보일 만큼 전망이 좋은 산으로 산봉우리에

큰 돌이 높이 솟아 있다고 하여 석두봉이라 한다.

인증샷

석두봉 정상에서 바라본 강릉 시내의 모습

遠景에다가 약간의 옅은 안개 탓인지, 아니면 똑닥이 카메라의

限界인지는 몰라도 흐릿하게 보이니 참으로 아쉽기만 하다

석두봉 정상에 잠깐 머물다가...

갈 길이 많이 남아있어 다시 베낭을 둘러메고, 길을 떠난다

좌측으로 펼쳐지는 대기리 계곡의 雲海는 마치 神仙들의 놀이터처럼 보인다.

산길을 걸으면서 저런 멋진 仙景에 魂이 빠질만큼 환상적이다.

안부(08:07)

오르막길로 향하는데 비에젖은 낙엽이 상당히 미끄럽다.

그렇다고 가지 않을수는 없고하여 안전로프에 몸뚱아리를

의지한 채로 오르막길을 올라간다

미끄러운 능선을 올라서니 대기리쪽은 가지 말라는 표시인 듯 팻말이 있다

무명봉(08:21)

올라온 만큼 미끄러운 내리막길로 내려가야 한다 

갑자기 사라진 등로...대간꾼들의 띠지를 따라서

迷路처럼 이어지는 마루금을 이어간다

내 멋진 친구에게

 

친구야!

인생 별거 없드라

이래 생각하면 이렇고

저래 생각하면 저렇고

내 생각이 맞는지

니 생각이 맞는지

정답은 없드라.

 

그냥 그러려니 하고 살자

내가 잘나 뭐하고

니가 잘나 뭐하나

 

어차피 한 세상 살다

한줌의 흙으로 돌아갈건데

이 세상

누구도 영원한 삶은 없다네.

화낸들 뭐하고

싸운들 무엇하나

져주는 것이 이기는 것이고

뼈에 박히고 가시가 있는 말들도

우린 씹어 삼킬 나이와 가슴이 있잖아.

 

때로는 져주고

때로는 넘어가 주고

때로는 모른척 해주자

 

그게 우리 아닌가

어차피 우린 친군데

그게무슨 소용있겠나.

 

이왕 살다 가는 세상

그 무엇이라고 안되는거 없고

못할 것도 없다.

여보게 친구

어느덧 우리 인생도

이제 가을이 되었네그려.

 

꽃피는 봄

꽃다운 청춘

그 좋았던 젊은 날들

이젠 석양에 기울었지만

고운 단풍이 봄꽃보다 낫다네.

 

돌아보면 험난했던 세월

자네는 어떻게 걸어 왔던가

모진 세파에 밀려

 

육신은 여기 저기 고장이 나고

주변의 벗들도 하나 둘씩 단풍이 들어

낙엽처럼 떨어져 갈

가을 인생의 문턱이지만

 

그래도 우리는

힘든 세월 잘 견디고

무거운 발길음 이끌며

여기까지 잘 살아 왔으니

이제는 얽매인 삶 다 풀어놓고

잃어버렸던 내 인생 다시 찾아

숙제같은 인생 축제처럼 살자.

 

남은 세월

이제 후회없이 살아가세나

인생 나이 60~70이 넘으면

남과 여, 이성의 벽은

무너지고 가는시간

가는순서 다 없어지니

 

부담없는 좋은 친구를 만나

말동무하며 산에도 가고

바다도 가고

마음껏 즐기다

언젠가 나를 부르면

자연으로 흔쾌히 돌아가세나.

965.5m봉(08:27)

안부(08:29)

무명봉(08:31)

고개(08:33)

고개 우측으로는 왕산면 목계리 선인당골 쪽으로 내려가는 흐릿한 등로가 보인다

선인당은 왕산면 목계리에 있는 서낭당으로 선인당골 마을 가운데 있는데,

당집은 벽돌건물로 함석지붕을 올렸고,  당집 주위에는 돌담을 쌓았다.

 

성황지신(城隍之神)·토지지신(土地之神)의 위패를 모시고 있으며, 매년 음력 정월에

성황제(城隍祭)를 지내고 있는데 제(祭)는 유사(有司)가 준비하고, 주민들이 모두

참여하여 유교식으로 지내며, 제물은 합위(合位)하여 진설(陳設)하고, 제의가 끝나면

소지(燒紙)한다.

고개에 올라서자마자 대간 마루금은 우측으로 이어진다

양탄자처럼 깔려있는 山竹길...마치 배우가 red carpet을 밟고 시상대에

오르듯 범여는 푸르런 산죽길을 걸으면서 호젓하게 대간길을 이어간다 

제5쉼터(08:43)

벌거벗은 裸木 아래로 떨어진 낙엽을 밟는 기분 또한 쿨하다.

이곳에는 성질 급한 나무들이 겨울 준비를 끝내고, 다시 봄을 기다린다

대간길은 다시 좌측으로 꺽어지고...

완만한 내리막길을 내려가는데...

???

잠시후에 이정표(닭목령 6.3km,화란봉 4.2km,화란봉 하늘 전망대 4.5km

삽당령 7.7km)가 있는 도미재에 도착한다.

도미재(08:47)

강릉시 왕산면 목계리에서 대기리 가르쟁이로 넘어가는 고개로

펑퍼짐한 고개 가운데 이정표만 덩그러니 있는데 지도상에는

표기가 안 되어 있는 고개로 목계리쪽에 들미재가 있는데 조금전에

지나온 들미재와 구분하기 위해서 도미재로 부르는 모양이다

도미재에서 올라서서 직진으로 향하면 대간길에서 살짝 벗어나 있는

987.1m봉으로 가는 길인데 대간길은 사면으로 완만하게 올라간다

제6쉼터(08:55)

썩어 문드러진 통나무 의자가 있는 제6 쉼터에 도착하여 베낭을

내려놓고 스틱만 가지고 대간길에서 벗어나 있는 987.1m봉으로 향한다 

987.1m봉 가는 길

산꾼이 다니지 않은 봉우리인지 등로는 전혀 보이지 않는다

987.1m봉(08:58)

낙엽에 묻혀있는 987.1m봉 정상 삼각점

 987.1m봉 정상 삼각점(△구정 311)

987.1m봉 정상에서 강릉시 왕산면소재지가 있는 도마리로 내려가는

등로는 뚜렸하다... 987.1m봉 정상을 한번 더 보고는 다시 왔던길로

되돌아서 간다

 

강릉시 왕산면에 있는 도마리(都麻里)는 복숭아와 매화가 많다고 하여

도매리(桃梅里)라 하였으나 고려 말 우왕이 이곳 큰골에서 은거할 때

나무[林]가 삼[麻]처럼 우거진 곳에 도읍하였다 하여 ‘도마(都麻)’라 하였다는 설과,

마을 형국이 부엌에서 쓰는 ‘도마’와 같아 도마로 차음(借音)했다는 설이 있다.

자연마을로 돌모지, 입고지, 탑동 등이 있는데, 돌모지는 마을에 있는 돌무더기에서

유래한 이름으로, 돌모텡이라고도 불리며,  과거에는 비가 많이 오면 이곳까지 연어가

거슬러 올라왔다 하여 연어골이라고도 한다.

 

입고지(入高地)는 깊고 험한 골짜기로, 제주 고씨들이 이곳을 개척하며 자리잡았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며, 탑동은 탑골이라고도 불리는데, 배의 형상을 하고 있는 마을이 홍수가 와도

떠내려가지 않도록 탑을 쌓았다고 하며 자연경관이 뛰어나 봄, 여름, 가을 그 자연을 즐기기

위해 찾는 관광객이 많은 마을이다 

다시 되돌아 온 제6쉼터(09:03)

987.1m봉 정상에서 베낭을 벗어둔 쉼터로 되돌아서 오니

새벽에서 대관령에서 출발한 대간 산꾼들을 만난다.

선두에서 온 분들로 무전기를 착용한 걸로 보아서 선두 대장인 듯 하다

세 분이 휴식을 취하고 있는데 987.1m봉 정상에서 되돌아서 나를 

보고는 사과 한쪽을 건네주면서 먹으라고 한다...잘 먹었습니다

무명봉(09:05)

무명봉에서 내려서니 멋진 소나무들이 도열해 있고,

소나무 사이로 가야할 화란봉이 시야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이 멋진 소나무를 보니 임제선사(臨濟禪師)의  《임제록》의 "행록

(行錄:임제 선사의 언행을 기록한 장)"에 나오는 암곡재송(巖谷栽松)이 생각난다

 

임제(臨濟) 선사가 소나무를 심고 있을 때 황벽(黃檗)선사가 "이 깊은 산에 많은

나무들이 자라고 있는데 다시 나무를 심어서 무엇합니까?"하고 물어본 적이 있었다.
이 《임제록》의 서문에는 마방(馬防)이라는 사람이 "바위 골짜기에 소나무를 심는다"고

쓰고 있는데, 선(禪)이란 단지 좌선(坐禪)하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다.

 

하루하루 부처님의 뜻대로 살지 않으면 참된 선(禪)의 생활이라고 할 수 없다.

백장(百丈) 선사가 "하루 일하지 않으면 하루 먹지 않는다(一日不作 一日不食)"고

한 말도 이것과 맥락을 함께 하는데, 부처님의 뜻대로 사는 것을 선(禪)에서는

"작무(作務)"라고 하는데 임제 선사의 작무는 巖谷栽松(암곡재송)으로 유명하다

* 임제(臨濟: 미상~867년)선사는 속성은 형(邢)씨, 이름은 의현(義玄), 임제는 법호,

  시호는 혜조(慧照)선사. 중국 당나라 때의 선승으로 임제종의 개조. 어려서부터

  불교를 좋아했고, 출가한 후 경율론을 배우고 황벽(黃檗)의 제자가 되었으나,

  황벽의 방편을 모르고 대우(大愚)를 찾아갔다.

 그러나 대우로부터 임제의 스승은 황벽이라는 말을 듣고 다시 황벽을 찾아가 법맥을

 이었다...그가 창시한 임제종은 중국 선종 오가(五家)의 하나로 종풍을 크게 떨쳤다.

  그는 제자들을 엄격하게 가르쳤고, 그가 사용한 할(喝)은 덕산(德山)의 방(棒)과 함께 쌍벽을

  이루어 ‘덕산의 방, 임제의 할’이라는 말이 유행시키며 중국 불교의 큰 특색으로 평가받고 있다.

  그는 진리를 크게 깨친 사람을 무위진인(無位眞人)ㆍ무의도인(無依道人)ㆍ청법저인(聽法底人)

  이라고 표현했는데, 제자 혜연(慧然)이 엮은 《임제록(臨濟錄)》은 그의 언행들을 담고 있다.

 

 《임제록》에서는 ‘수처작주 입처개진(隨處作主立處皆眞: 어디든지 주인이 되면, 그곳이 바로 불국토)’

 라는 사상과 불법을 공부하는 사람이 득도하는 방법으로서, 사갈(四喝)ㆍ사료간(四料揀)ㆍ삼구(三句)ㆍ

 삼현(三玄)ㆍ삼요(三要)ㆍ사조용(四照用)ㆍ사빈주(四賓主) 등을 밝히고 있다.

계속되는 내리막길

안부(09:08)

참!...곱다

무명봉(09:13)

무명봉을 내려서니 등로가 전혀 안보이는 산죽길 능선에

대기리로 내려가는 방향으 비상대피로라는 팻말이 보인다

계속되는 내리막길로 내려가는데 남진하는 대간꾼을 만나고

서로 인사를 나누면서 각자의 정해진 날머리를 향해서 걸어간다

960m봉(09:18)

이정표와 통나무 장의자 2개가 있는데 이곳이 제7쉼터이다

960m봉에 정상  있는 이정표

안부(09:27)

삽당령을 출발하여 아직까지는 큰 어려움 없이

이곳까지 편하게 오다보니 슬슬 졸음이 밀려오기 시작한다

다시 완만한 오르막으로 향하는데 직진으로 오르면 

대간길에서 살짝 벗어나 있는 939.3m봉으로 오르는

길이지만 등로는 전혀 안 보이고, 대간 마루금은 

산죽길을 따라서 사면으로 편하게 이어진다

939.3m봉 갈림길(09:32)

편안한 산죽길을 따라서 향하는 등로의 나무가지 사이로

대간길에서 살짝 벗어나 있는 1,001.3m봉이 얼굴을 내민다

이곳은 벌써 겨울이 시작되는지 나무에 겨우사리가 보이기 시작한다

안부(09:35)

화란봉을 가기 위해서 완만한 오르막이 시작된다

제8쉼터(09:45)

쉼터 좌측의 나뭇가지 사이로 1,001.3m봉이 살짝 보인다

황철봉 너덜길에서 뵙는데 이곳에서 또 만나네요

어쩌면 나하고 똑같은 목적을 가지고 걷는듯 하네요

1,001.3m봉 갈림봉(09:50)

이곳에서 좌측으로 살짝 벗어난 곳에 1,001.3m봉이

있으나 그냥 패스하고 화란봉으로 향한다

급경사의 내리막길로 내려간다

나뭇가지 사이로 화란봉이 시야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전통적인 육산길에서 만나는 암릉...갑자기 등로가 사라진다

그러나 큰 걱정을 하지는 않는다...이내 등로가 보인다

무명봉(10:00)

큰용수골 갈림길(10:09)

좌측의 희미한 등로로 이어지는 큰용수골과 작은 용수골이 있는데

행정구역상으로는 강릉시 왕산면 대기리에 속하는 곳이다

 

대기리는 본래 강릉군 구정면 지역으로 큰 터가 있어 한터, 큰터, 대기라 했고, 또 본 리의

점구터를 대장터라고 한데서 마을 이름의 유래을 찾을 수 있는데, 1759년 《여지도서》에도

대기리(大基里 라 기록되어 있고, 효종 때 밀양 박씨가 창설 이후 각 성씨들이 이주해 왔다.

 

1916년 늪골(樓洞), 늘막골(板幕洞), 도화목이(桃花洞), 마지목이(牛項), 용수골, 작은터(小基洞),

갈밭골, 벌마을(坪村), 곰자리, 닭목이(鷄項), 바람불이, 석동거리(三里洞), 배나드리(船渡里),

다릿골(橋洞), 다리재(橋峙), 제도리(濟渡里), 새물터(間水基), 놀거리, 피늪, 자웃골, 소란,

가락동(佳樂洞), 동초밭, 황철떼기 등을 병합하여 대기리라 하여 상구정면에 편입되었다.

 

마을이 원체 넓어서 처음엔 3개리로 되어 있었으나, 근간에 고루포기산 중턱을 개간하여

고냉지 채소를 심는 경작인들이 있어서 마을이 새로 생겨 4리까지 되고 현재 대기리는

고랭지채소 경작인 중심으로 거주해있다.

안부(10:15)

우측으로 있는 화란봉을 보면서 본격적인 오르막이 시작된다

여태껏 편하게 걸었던 길...지금부터 땀을 좀 흘려야 할 듯 싶다

숨이 끊어질듯 힘이 들지만 매주 산행을 하면서 

숙명처럼 겪은터라 그러려니 하고 올라서니 

지도상의 1,006m봉이다

1,006m봉(10:30)

1,006m봉에서 우측으로 살짝 꺽어져 화란봉으로 향한다

화란봉 갈림길(10:39)

낡은 산행 지도와 이정표(← 닭목령 2.1km →닭목령 2.1km, 삽당령 11.9km ↓삽당령 11.9km)

검은 오석에 화란봉이란 정상이 있는 갈림길에다 베낭을 벗어놓고 화란봉으로 향한다

갈림길에서 서있는 화란봉 정상석

화란봉 갈림길에서 130여m정도 걸어서 올라오니 암릉이 나오고

암릉 뒷쪽에 삼각점과 정상석이 2개나 있는 화란봉 정상이 나온다

화란봉(花蘭峰:1070.0m:10:44~46)

강릉시 왕산면 대기리와 왕산리, 도마리 사이에 있는 산으로 정상에는

2개의 정상석과 삼각점, 대간꾼들의 시그널이 많이 걸려있고, 직진의

도마리쪽으로 250여m만 내려가면 화란봉 하늘전망대가 있다는데

거기까지는 들릴 만큼 시간적 여유가 없어서 포기를 한다.

 

지명의 유래는 이름 그대로 꽃모양을 하고 있는 산으로 부채살처럼

펼쳐진 화관(花冠)이 화란봉을 중심으로 겹겹이 에워싼 형국이 마치

꽃잎 같다고 해서 얻은 지명이라고 하며, 이곳은 옛날에 이무기가

하늘로 오르다 힘이 부쳐 떨어진 곳이라 하는데, 지금도 그 때의 자국이

용수골 너럭바위에 남아 있다고 한다

인증샷

화란봉 정상 삼각점(△ 405 재설 / 74. 3 건설부)

반갑습니다

다시 화란봉 갈림길(10:49)

베낭을 벗어둔 화란봉 갈림길에 도착하여 물한모금 마시고 길을 떠난다

옛날 애인 / 유안진

 

봤을까?

날 알아 봤을까?

1,056.5m봉(10:52)

삽당령을 걸어오면서 시작된 9개의 쉼터중에 마지막 쉼터로

국토정보 지리원의 지도에는 1,056.5m봉으로 표기가 되어있고,

예전에는 이 곳을 화란봉이라고 표기한 지도와 자료들도 보인다 

이곳부터 닭목령까지는 계속되는 내리막길로 내려간다

마지막 쉼터를 내려가자마자 만난 멋진 소나무 2그루가

빠르게 흘러가는 세월속에서도 묵묵히 대간길을 지키고 있다.

오랫만에 너를 보니 참으로 반갑구나...세상이 금방 무너질 것만

같은 이 難世에도 굴하지 않고 말이다...世俗의 삶에서도 마찬가지다.

힘든 삶에서도 묵묵히 자기 일에 충실하는 민초들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

 

이 나무를 보니 몇년전에 歌皇 나훈아가 “소크라테스형”이라는 노래를 부르면서

일갈했던 말...나라가 위험에 처했을때 목숨을 내놓고 지켰던 임금이나 대통령이

한 명이라도 있었던가 "없었다." 결국 민초들이 나서서 “목숨을 걸고 지키지

않았는가”라고 했던 말을 멋진 너를 보니 다시한번 생각나는구나. 

멋진 소나무에 대한 想念에 젖어 걷다보니... 

암릉이 길을 막는데, 우측에 있는 데크목 계단으로 내려간다

이 계단으로 인해서 肉身은 조금 편안할지 몰라도 우리나라

최고의 청정지역인 이곳이 자꾸 더 망가질까하는 두려움이 앞선다.

하기사, 나야 현재의 체력으로 봐서는 5번째 대간길에 나설 수 있다는 

보장이 없으니...그리 걱정할 필요는 없긴한데...

나뭇가지 사이로 맞은편에 있는 안반데기가 보인다

강릉시 왕산면 대기리에 있는 안반데기는 정선 미탄의 청옥산 육백마지기와

태백 매봉산 창죽동과 귀네미마을(태백시 하사미동)과 더불어 우리나라 3대

고랭지 배추밭인데 이곳에서 전국 배추 15%가 이 고냉지에서 생산된다고 한다.

 

안반데기마을의 “안반”이라 떡메를 칠 때 쓰는 넓고 가운데가 오목한 떡판을

말하며 “덕” 또는 “데기”는 고원(高原: 해발고도가 상당히 높고 주변지역과는

급경사면으로 구분되나 표면의 기복은 작고 넓은 땅)을 말한다

 

안반덕은 박정희 정부 시절인 1970년대에 개간됐는데 그 당시 화전민들에게

더 이상 산에 불을 지르지 말고 정착해 살라고 화전민들을 황무지인

안반덕으로 불러 모았다...그러나 자갈과 잡목이 무성한 척박한 땅을 門前沃畓으로

일구는 일은 쉽지 않았고, 특히 겨울에는 폭설로 외부와 단절돼 화전민들은

헬리콥터가 던져주는 식량과 가을에 채취한 도토리로 연명해야 했다.

 

일부는 개간하던 땅을 버려두고 다시 피덕령을 넘어 하산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때의 눈물과 땀방울이 모여 안반덕은 고소득을 올리는 부촌으로 변했다고 한다.

화란봉에서 닭목령까지 고도를 370여m를 낮추면서 내려가는데 

낙엽이 수북한 등로가 상당히 미끄럽다...그나마 다행인게 예전엔

없었던 안전로프가 처져있어 로프를 잡고 내려가니 훨씬 편하다

합죽이처럼 우스꽝스럽게 생긴 소나무...웃음을 짓게하는구나 

계속되는 내리막길...정신없이 내려간다

강릉 울트라바우길은 6개 구간으로 구성된 동해 금진항에서

출발하여 백두대간 능선을 따라 닭목령, 선자령을 지나 안목해변까지

100km의 거리를 6박 6일간 걷는 백두대간의 축소판이라 불리는 길이란다

무명봉(11:10)

꽃이나 인간들이나 헛짓거리하는 꼭 한 놈은 있드라... 

어지간히 내려왔나보다...등로가 조금씩 柔順해지기 시작한다

滿山紅葉으로 물든 나뭇가지 사이로 대기리 마을의

밭에는 뭔 농산물인지는 모르겠으나 밭이 파랗게 보인다

급경사의 내리막은 완전히 내려왔고, 산죽길을 지나니...

강릉김공 가족묘가 나온다

강릉김공 가족묘(11:23~12:05)

강릉김공 가족묘지는 옴팍하여 바람도 전혀없고, 날씨도 더 없이

따뜻하고 좋은 명당이다...이른 새벽에 산행을 시작한터라서

허기도 지고 졸립기도 하여 보온병에 넣어온 단팥죽으로 점심을

해결하고 나니, 졸음이 쏟아진다...베낭을 베개삼아 잠깐을 잔다는

것이 정신없이 자다보니 30분을 넘게 자버렸다...몸은 개운한데

가야할 길이 어찌될 지 모르겠다...맑은 하늘을 쳐다보니 참 좋다...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 류시화
 
 
채우려고만 하는 생각을
일단 놓아 버리고 텅 비울때 
 
새로운 눈이 뜨이고
밝은 귀가 열릴 수 있다. 
 
눈이 보이고 귀에 들리고

손으로 만질 수 있는 영역은
전체에서 볼 때

한 부분에 지나지 않는다. 
 
존재의 실상을 인식하려면
눈에 보이는 부분과

눈에 보이지 않는 부분을
두루 살필 수 있어야 한다. 
 
육지를 바로 보려면
바다도 함께 보아야 하고 
 
밝은 것을 보려면
어두운 것도 동시에 볼 줄 알아야 한다.

亡者의 보금자리를 빌려서 맛있는 점심(?)에다가

꿀맛같은 쪽잠을 자고나니 몸이 참으로 개운하다

망자에게 고맙다는 예을 올리고 다시 길을 떠난다

736.5m봉(12:07)

묘지에서 올라서니 지도상에 표기된 736.5m봉이다

736.5m봉을 내려오니...

닭목이 마을로 이어지는 시멘트 도로가 나오는데, 닭목재란 이름을 낳은

그 고개밑의 닭목마을은 아주 깊은 산골로, 좁디좁은 긴 골짜기 안에 푹

파묻힌 마을이다.

시멘트 도로를 가로 질러서 내려서니...

닭목령을 통과하는 강릉에서 정선군으로 연결되는

415번 지방도가 보이고, 지나가는 차량소리가 들린다

닭목령 도로가에 있는 이정표 

닭목령(鷄項嶺:706m:12:10)

강원도 강릉시 왕산면 대기리의 닭목(계향동:鷄項洞)에서 왕산리로 넘어가는

고개로 강릉과 정선군 임계를 잇는 415번 2차선 지방도로가 이 고개를 지난다

 

고갯마루 북쪽의 왕산리엔 닭목골, 남쪽의 대기리엔 ‘닭목이’라는 지명이

있는 것으로 보아 닭과 연관이 있음을 알 수 있는 마을이다...고갯마루엔

산신각이 세워져 있으며, 고랭지 채소와, 감자 채종포 재배단지 표식이 보인다

 

닭목령을 한자 표기로는 계항령(鷄項嶺)인데, 풍수지리상으로 천상(天上)에 산다는

금계(金鷄)가 알을 품고 있는 금계포란형(金鷄抱卵形)의 지세로 이곳 고갯마루가

천하명당의 길지(吉地)라고 하는 닭의 목덜미에 해당한다고 하여 “닭목재”라

 이름 지었다고 하지만 아마도 산골짜기의 목(길목)이란 뜻으로 나왔을 가능성이 높다.

감자 채종포가 들어선 왕산면 대기리 지역은 전국 최고의 씨감자 생산지이기도 하며

국내 감자연구를 총괄하고 있는 농촌진흥청 고령지농업연구소의 감자 시험지 두곳

가운데 한곳이 강릉시 송정동에 위치해 있을 정도로 강릉과 감자는 인연이 각별한

곳으로 감자하면 강릉을 빼놓고는 이야기가 안 된다고 한다 

 

닭목령에 있는 대기리는 고랭지 채소만 유명한 게 아니라 씨감자를

생산하는 밭인 채종포(採種圃)가 전국에서 제일 크다고 한다.

조금전 꿀맛같은 쪽잠을 잔 탓에 무거웠던 肉身은 훨씬 편한데 가야길 길이

아직도 많이 남아있어 마음이 급하다...지난 겨울인 1월 23일에 선자령가는

안내 산악회를 따라와서 대관령에서 이곳 닭목령까지 오는 산길을 홀로

걷다가 허리까지 차오르는 눈길에 고루포기산 직전에서 포기하고 오목골로

탈출했으니 엄격하게 말하면 닭목령에서 고루포기산까지는 땜방구간이다.

마음 급해서 근처에 있는 산신각도 둘러보지 못하고 서둘러 길을 떠난다

닭목령을 지나는 길에 새로 생긴듯한 고랭지채소밭들이 보인다

우리나라 3대 고랭지 채소밭중의 하나인 강릉시 왕산면 대기리 지도

대기리는 교통이 편리하고 경지 상태가 좋아 전국적으로 유명한 고랭지 농업이 이루어지고 있으며,

폐교된 대기초등학교를 활용하여 '푸른고원 산촌체험장'을 관광 상품으로 운영하고 있으며,

문화재로는 노추산에 있는 이성대가 있는데, 이곳에서는 설총과 율곡 이이의 위패를 모시고 있으며,

유림(儒林)은 매년 음력 4월 제례를 올린다

고랭지 채소밭으로 이어지는 농로를 따라서 대간길을 이어간다.

오랫동안 맥길을 걸으면서 젖은 習性 탓인지 이런곳은 왠지

어색하고 불편하다

수확이 끝난 고랭지 채소밭을 가로질러 가야하는데 잠시후에

오를 마루금 능선이 범여를 빨리 오라고 손짓을 한다

나도 빨리 가고 싶은데 몸뚱아리가 말을 안 들으니 어떡하오...

밭 가운데를 가로 지른 다음에...

밭 가장지리의 小路를 따라서 대간길을 이어간다

가던길을 뒤돌아보니 조고봉(鳥高峰:1,191.2m:앞)과 노추산(우)과 사달산(1.181.8m:좌)이 보인다

강원도 강릉시 왕산면 대기리와 정선군 북면 구절리의 경계에 위치한 노추산(魯鄒山:1,322.0m)은

북쪽에 조고봉(1,191.2m), 서쪽에 상원산(1,421m), 남동쪽에 덕구산(1,007m), 동쪽에 사달산

(四達山:1,181.8m) 등이 있으며, 주변의 산봉들과는 달리 높이 솟아 있는 독립적인 고봉이다.

 

대관령 부근에서 발원한 대부분의 하천은 남쪽으로 흐른 후, 노추산의 서쪽을 감입곡류(嵌入曲流)

하는 송천(松川)으로 흘러들며, 신라 때의 설총(薛聰:665~미상)과 조선 시대의 율곡 이이

(栗谷 李珥:1536~1584)가 이 산에서 학문을 닦아 중국 노(魯)나라와 추(鄒)나라의 기풍을 이곳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는 뜻으로 이름지었다고 하며, 산의 능선부에 설총과 율곡의 위패를 모신 이성대(二聖臺)는

원래는 움막집이었으나 40여년 전에 목조 2층으로 건조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으며, 가을에는 여기서

마을 사람들이 제사를 지낸다고 한다.

 

노추산의 남서쪽에 위치한 구절리는 과거 정선탄전에 속하는 탄광취락으로 석탄 개발을 위해 부설된

산업철도인 정선선의 종점으로 삭탄산업합리화정책의 시행으로 인해 탄광이 폐광된 후, 정선선의

일부 구간에는 레일바이크가 설치되었으며, 현재 정선선은 민둥산역에서 아우라지까지만 운행되고 있다.

노추산 주변의 고위평탄면(高位平坦面)에서는 고랭지 농업이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고랭지 채소밭을 지나서 다시 능선으로 들어선다

안부(12:24)

무명봉(12:27)

참으로 부럽다...호젓한 산죽길을 음악에 취해서 걷고 있는데

갑자기 뒷쪽에서 부스럭하는 소리에 뒤돌아 보니 대간 산꾼

한명이 길을 비켜준 때문일까...가볍게 목례를 하고 순식간에

사라진다...나처럼 독립군인가 보다...늘 安山하셔요

무명봉(12:40)

멋진 소나무 한그루가 지키고 있는 무명봉을 지나는데

오늘 하루종일 잠잠했던 바람이 조금씩 불어대기 시작한다 

안부(12:42)

고랭지 채소밭을 지나면서부터 무명봉과 안부로

이어지는 능선 생각보다 지루한 산길이다.

나뭇가지 사이로는 맹덕목장 뒷쪽에 있는 서득봉이 얼굴을 내민다

산죽길을 걷다보니 닭목령에서 맹덕목장으로 이어지는 시멘트 도로가 나온다

맹덕목장으로 이어지는 시멘트 도로를 따라서...

맹덕목장으로 향한다

어디에 쓰는 물건인고?

맹덕목장 입구(12:53)

맹덕목장 입구에서 목장길을 버리고 좌측의 등로로 올라선다

안부(12:58)

954.2m봉으로 향하는 나무 계단이 시작된다

954.2m봉(13:07)

낙엽속에 숨어버린 954.2m봉 정상 삼각점(△구정445)

잡목의 저항을 받으면서 고루포기산으로 향한다

등로에서 바라본 맹덕목장의 모습

예전에 이곳을 지날때는 목장의 축분(畜糞) 냄새가 코를 자극했는데

지금은 소들이 어설렁거리던 草地는 사라지고, 고랭지 채소밭으로 바뀌었다 

등로에서 바라본 서득봉(西得峰:1,052.6m)의 모습

강릉시 왕산면 대기리 대곡동 뒷쪽이자 명덕목장을  품고있는 서득봉은

대간길에서 많이 벗어나 있는 산으로, 1952년 6.25동란 당시 북한군 유격대원

토벌전투가 벌어진 가슴아픈 동족상쟁의 아픔을 가지고 있는 산이다

 

1952년 2월 21일 4시경 강원도 강릉시 왕산면 대기3리 대곡동 지역에 북한

제526군 소속 941부대 공비 5명이 출현하였다는 신고를 접수하였다.

관동경찰유격대 16명이 공비들이 출현했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 수색 도중 공비들을

발견하고 교전하여, 그 결과 1952년 2월 22일 16시경 적 제526군 941부대장 김철과

호위대원 김창세 등 2명을 사살하였다... 공비들은 교전 후 칼빈 소총 1정을 버리고

서득봉 일대로 도주하였다... 이어 고단지서원 8명이 1952년 2월 26일 10시경 서득봉

남방 4㎞ 지점에서 공비 1명을 생포하였고, 3월 2일 2시경에는 강원도 강릉시 왕산면

대기3리 계항동에서 숙영 중이던 공비 1명을 추가 사살하였다고 한다.

피덕령 갈림길(966m:13:10)

우측 아래로는 맹덕목장 끝문으로 내려가는 길인데 길은 잘 보이지 않고,

좌측으로는 안반데기 고랭지 채소밭으로 가는 피덕령쪽의 등로는 보인다

산죽이 보이는 등로는 살짝 거칠어지긴 하나 그래도 지맥길에

비해서는 고속도로(?) 같은 느낌이라 걷는데는 아무런 불편함이 없다

고루포기산을 치고 올라가야 하는 빡센 오르막길의 워밍업이랄까.

몸을 푸는 단계의 등로에서 심호흡을 가다듬으면서 잠깐 편안함을

맛보면서 마루금을 이어간다

피덕령 갈림길에서 북진으로 이어지던 대간길은 이곳에서 살짝

機首를 돌려 서진을 하며서 조금씩 고루포기산을 향한 길을 재촉한다

고루포기산으로 이어지는 능선들이 드디어 얼굴을 내밀기 시작한다

등로에서 바라본 안반데기(해발1,100m)는 국내에서 주민이 거주하는 가장 높은

지역으로, 피득령을 중심으로 옥녀봉과 고루포기산을 좌,우측에 두고 198만㎡의 

농경지가 독수리 날개처럼 펼처져 있는 우리나라 3대 고랭지 배추밭으로 유명한 곳이다

 

안반데기는 1965년 국유지 개간을 허가하여 화전민에게 임대해 오다가 1986년

경작자에게 매각하였으며 현재 20여 농가가 거주하는 전국 최대 규모의 고랭지

채소 재배단지이다...이곳은 또한 배추밭의 풍경이 너무 멋져 찍사들의 출사

지역으로도 유명한 곳으로 나도 이곳에 카메라를 메고 두어번 出寫를 왔던 곳이다.

무명봉(13:22)

안부(13:25)

안반데기가 살짝 보이는 등로를 따라서 북진하는 등로에 금강송 군락지가

나오는데 내 개인적인 생각일 지는 몰라도 예전에 비해서 금강송의

개체수가 많이 적어진 듯 하고, 점점 잡목들에게 밀려 설 자리를 잃어

가는듯 하여, 아타까운 모습이다

당나라 시인이자 승려였던 한산(寒山)은

 

微風吹幽松(미풍취유송)

미풍이 그윽한 소나무에 불면

 

近聽聲愈好(근청성유호)

가까이 듣는 소리는 더욱 좋지.

 

라고 설파했는데, 인간이 미풍과 소나무의 氣를 받아 이들과 하나로 된다는 뜻이다.

 

 또 미국판 법정스님이라고 불리는 데이비드 소로 “내 가슴은 나무들 속에서 수런거리는

바람소리에 전율한다...어제까지만 해도 지리멸렬한 삶에 지쳐있던 내가 돌연 그 소리를

통해 나의 힘과 정신성을 발견한다”고 했다.

 

말인즉 두 사람 모두 숲은 인간에게 氣를 불어넣어 주는 존재라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인간의 존재를 가능케 하는 자연(숲)을 인간은 함부로 대해서는 안된다는 의미이다.

쉼터(13:28)

시기를 알 수 없지만 산불 피해를 입었던 금강송

몇년전 산불로 검게탄 木質부가 아직도 남아 있지만 여전히 원기 왕성한

푸르름을 유지 고난을 이겨낸 고목의 강인한 생명력을 보여주고 있다

이런 길을 걷다 보면 내속을 돌고 있는 깨끗하지 못한 피가

수액처럼 맑아지는 듯한 기분이 드는 그런 숲이다.

 

걸어가다 발걸음을 멈추고 아무 생각없이 숲을 바라보고 있으면

료하지 않으면서도 넉넉한 느낌이 드는 그런 숲이다.

특히 군데군데 형성된 금강송 숲은 단연 압권이다.

묵묵히 금강송을 바라보고 있으면  내 자신도 한 그루 정정한 금강송이 되는 기분이다.

이 구간의 숲은 나를 정화시키고 나에게 氣를 불어주는 숲이라는 것이다

금강송의 아픔을 안고 있는 쉼터를 다시 한번 뒤돌아 본다

호젓한 산죽길을 아무런 생각없이 홀로 걷다보니 왕산 제1쉼터가 나온다

왕산 제1쉼터(13:33)

산죽길 사이로 이어지는 본격적인 오르막길이 시작된다

1,021m봉(13:42)

시인 윤동주는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며

가을의 스산함을 노래했고, 모윤숙님은 ‘시몬아! 너는 좋으냐?
낙엽 밟는 소리’가...하면서 感性을 노래했지만, 부지런히 걸어서

목적지까지 가야하는 대간꾼들이야 그런 감성을 느낄 여유야

없다마는 낙엽을 밟으면서 호젓하게 홀로 걷는 이 길이 너무도 좋다

안부(13:50)

보이는 저 봉우리로 올라가야 하는데 내가 가야할 고루포기산은

이곳에서 보이지 않구나... 저 능선은 고루포기산((1238.3m)에서

남쪽으로 분기하여 안반데기(피덕령)-옥녀봉으로 이어지는 능선이다

고루포기산을 향한 본격적인 오르막이 시작된다.

그래도 오늘은 예전에 비해서 날씨 탓인지 컨디션은

괜찮은 편이나 오르막 능선이라 그런지 조금씩 발걸음이

느려진다

나무가지 흐릿하게 능경봉이 뾰족한 모습으로 시야에 들어오고,

그 아랫쪽으로는 아침에 지나왔던 영동고속도로 대관령 2터널이 보인다

 

강원도 강릉시 왕산면 왕산리와 성산면 오봉리, 평창군 대관령면 횡계리

사이에 있는 능경봉(陵京峰:1,123.2m)은 백두대간이 동해를 끼고  설악산(1,708m)과

오대산(1,563m),병산(1,407m) 일으키고, 선자령을 지나 대관령에서  몸을 낮췄다가  

다시 솟구친 으로  대관령 남쪽에서 제일 높은 봉우리이며,제왕산의 모산(母山)이다.  

 

에 천(靈泉)이 있어 기우제를 지냈고 맑은 날엔 이 봉에서 울릉도가

조망된다 하며 대관령이나 강릉에서 바라보면 산세가 큰 왕릉이나 활모양을

닮았다고 하여 능정봉(陵頂峰) 또는 소궁음산(所弓音山)이라고도 한다. 

 

여지도서(與地圖書)강릉부 산천조에는 소우음산(所于音山)부의 서쪽 팔십리에

있는데 산중에 샘이 있어 가물면 비를 빌어 영험이 있다고 기록이 되어있다

능정(凌頂)이 능경(凌頃)으로 변음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쉼터(14:02)

쉼터를 지나고 암봉으로 올라간다...오늘 산행 구간은

전통적인 陸山 구간에 간간히 만나는 암봉이 약방의

甘草처럼 산행의 묘미를 느끼게 하는구나

암봉(14:08)

점심으로 먹은 단팥죽 이외는 먹은 것이 없었던 탓인지

오르막길을 만나자, 서서히 체력이 방전되면서 과부하가

걸리는데 천천히 아주 천천히 뚜버기 걸음을 오르막을 향한다

쉼터(14:17)

나의 유일한 동반자(?)인 라디오의 음악소리에 맞춰서 오르막을

향하다 보니...

자연으로 돌아가는 중...

 이정표가 서 있는 왕산제2쉼터에 도착한다

왕산제2쉼터(14:30)

아무도 앉아주지 않건만, 그래도 묵묵히 자기 본분을 다하고 있는 쉼터의자

뭔 생각을 하면서 저런 자세를 취하고 있을까?

낙엽속에 묻혀버린 돌계단을 따라서 걷는 재미도 솔솔하다

오늘처럼 차를 가지고 온 날은 歸京길 걱정이 없으니 겁날것도 없다

약간 너덜겅을 지나 오르막으로 올라가니 송전탑이 나온다

NO35 송전탑(14:43)

완만한 등로가 나오는 걸 보니 힘든 구간은 거의 다 올라온 모양이다

송전탑 사이로 보이는 안반데기(피덕령)~옥녀봉으로 이어지는 능선이 흐릿하다

완만한 능선으로 올라서니 송전탑을 건설하면서 만든듯한

고속도로(?)같은 넓은 임도가 독립군 범여를 반겨주면서 하는 말...

여기서 오늘 산행은 고생 끝...행복 시작입니다

임도에 있는 전봇대를 따라서 고루포기산으로 향한다

1,221.5m봉(14:50)

이곳이 백두안반데기(옥녀)단맥의 분기봉인 듯 하다  

백두대간 고루포기산((△1238.3m)에서 남쪽으로 분기하여 안반데기(피덕령)-

옥녀봉-풍차가 끝나는 지점을 지나 대기천이 송천을 만나는 곳에 있는

배나드리교(590, 0m)에서 끝나는 약10.6km의 산줄기를 말한다.

 

우리나라 맥길에는 대간, 정간, 정맥, 기맥, 지맥, 분맥, 단맥으로 구분하는데

많은 맥꾼들이 지맥까지는 하시는 분이 꽤나 많으나(범여도 이 부류에 속함)

분맥, 단맥을 하시분들은 가뭄에 콩나듯 하는 극소수 산꾼들만 있다.

 

박성태 선생이 저술한 신산경표상에 분류되는 지맥은 대략 162개 지맥이며,

박흥섭(산으로)님이 水界를 기준으로 한 대한산경표에서는 기.지맥을 별도로

구분하지 않고, 175지맥으로만 정의하고 있다.

 

분맥(分脈)이나 단맥(短脈)은 도상 거리가 10km이상, 30km이하를 분맥, 단맥으로

정의하고 있는데 이 분야에서는 독보적이고 전설적인 산꾼인 신경수 선생으로

정말 대단하신 분인데, 아마 전생에 신신령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현오, 공작산 아우와 함께 신경수 선생을 만나 소주잔을 기울인지가 어언

7~8년이란 세월이 흘렀는데 健安하게 잘 계시는지 안부가 궁금하다

안부가 나오고 이곳에서 안부를 버리고 우측으로 꺽어져 숲속으로 향한다

등로가 보이지 않는 곳을 감각적으로 걷다보니 쉼터가 나온다

쉼터(14:57)

잠시후에 오를 고루포기산이 夕陽의 역광을 받으면서 보이기 시작한다

안부 임도(15:00)

이 부근의 송전탑을 건설하면서 만든듯한 임도를 만나 고루포기산으로 향한다

암봉(15:01)

고루포기산으로 향하는 길...참으로 반갑기만 하다

체력이 완전히 방전되다시피한 싯점에 어찌 범여의

맘을 이렇게도 잘 알아주는지...편안한 길을 따라서

정상으로 향한다

NO38 송전탑(15:05)

직진으로 이어지는 묵은 임도를 버리고 정상으로 향한다

고루포기산 정상에 올라서니 가장 먼저 반겨주는게

쉼터 의자지만, 점심때 30분간 꿀맛같은 오침(午寢)을

즐기느라 시간을 지체되어 하신길이 바빠서 너의 好意를

거절해야 할 듯 하니 미안하구나...

고루포기산(1,238.3m:15:08)

강원도 평창군 대관령면 횡계리와 강릉시 왕산면 대기4리 고루포기(안반데기)를

잇는 이 길이 왕산면 대기리 주민들이 횡계로 넘나들 때 이용했던 길이라고 하며,

다복솔이 많아 고루포기산이라 이름 지어졌다고 설명하고 있다.

 

고로쇠 나무가 많이 서식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도 하며 고로쇠나무와

고루포기는 같은 의미라고도 하는데, 동국여지승람 대동여지도에서는

‘소은백이산 (所隱栢伊山)’이라 하여 65자로 설명해 놓았는데 단국대 동양학

연구소 김윤우님의 말에 의하면 “산 아래 소은백이(所隱栢伊)라는 골에서

유래 된 듯 보이는데 소(所)의 훈은 ”곳“으로 보고 곶은백이산에서 고른포기산-

골포기산-고루포기산으로 변음 된 것으로 추측한다고 했다.

 

이 산 기슭에는 아직도 만인(萬人)의 피난지지라는 5덕(五德)의 지명이 남아

있는데, 괴비데기(고비고사리가 많은 언덕), 안반데기(떡을 칠 때 쓰는 나무판처럼

넓고 평평한 지형), 장두데기(길고 긴 언덕), 황정데기(황장 소나무가 서식하는 언덕),

 황철데기(황철나무가 많이 서식하는 곳)가 그곳이다.


이정표 옆 안내판에는 산 이름에 대해 '다복솔'이 많아 그로 인해 고루포기라는 이름을

얻었다고 되어 있으나, '다복솔'이란 가지가 탐스럽고 소복하게 많이 퍼진 어린 소나무를

이름인데 이는 잘못인듯 하다.

이곳 고루포기산 이름은 산 아래 남쪽 기슭의 지금은 사람이 살지 않는 '고루포기 마을'

이름이 어원임이 정확할 것 같다...고루포기란 '골짜기'의 사투리인 '골패기' 혹은 '골팍'에서

그 어원이 비롯되었다는 것으로, '골짜기'라는 말에서 '골패기 마을', '골패기산'이 '고루포기산'이

되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고루포기는 ‘큰 고개’, ‘높은 고개’라는 의미의 방언에서 유래됐다는 이야기와 이 지역에

고로쇠나무(고루포기와 고로쇠나무는 동일 의미)가 많이 분포되어 붙여졌다는 설도 있고,

'고루포기'란 순수한 우리말로 '머릿골'의 속어인 '골패기'의 표준음이라는 말도 있다.

고루포기산인가? 골폭산인가?

 

1961년4월 22일 평창군에서는 이 산 넘어 명주군 왕산면에 고루포기라는 

마을이 있어 산이름을 고루포기산이라고 하는데 강릉시에서는 예전에

골폭이라는 마을이 있었는데 그 뒤에 위치한 산이라 골폭산이라 불렸다 한다.

 

국립지리원의 영문 지명에는 같은 경도와 위도에 똑같이 고루포기산과 골폭산이

기재되어 있어 국립지리원의 잘못이 분명 한데 유래를 보면 산 이름은 마을에서

따왔고 그 마을은 강릉시 왕산면에 속해 있으며, 일제 강점기때 만들어진 1:5만

지형도에는 남.북한 합쳐 약 5,000개의 산이름이 한자로 기재 되어 있고

일본어(카타카나:カタカナ)로 그 음을 나란히 기재했는데, 여기서 음(音)은 한자

발음이 아니고 그 산을 부르는 말이다.

 

그런데 단 3개의 산이름은 한자 표기 없이 일본어로만 되어 있는데,그중 하나가

고루포기산이다...마을 이름을 딴 산이름이 분명 하고 마을이 속한 강릉시는

현지 조사를 통해서 골폭산으로 이름을 정하고 마을과 관련이 없는 평창군은

현지조사도 하지 않고 지도에 표기된 일본 글자의 발음대로 고루포기산으로 정한

것으로 보이는데 우리는 지형도 대부분에 고루포기산으로 표기되어 있다.

고루포기산 정상 2삼각점(도암24 / 1991복구)

고루포기산 정상 이정표

고루포기산에서 잠시 머물다가 완만한 내리막길로 내려간다

NO39 송전탑(15:11)

고루포기산 정상을 지나면서 오늘 산행은 고생끝,

행복 시작이지만, 그래도 산길을 걸을때는 늘 긴장한다.

편안 길이라 방심을 하면 꼭 사고가 나는 법이라서...

화약골 갈림길(15:13)

넓은 내리막 임도에는 2개의 이정표(→화약골9.0km, ←고루포기산 정상 0.2km

↗백두대간 등산로(능경봉) 5.1km)와 또 다른 이정표(→ 지르메 3.5km ← 고루포기산

정상 0.2km)가 석양의 영향으로 역광으로 사진이 찍히는 바람에 흐릿하게 보인다

 

'지르메' 마을은 평창군 횡계리 일대 주변 마을과 언덕을 가리키는 옛지명을 뜻하며

황태덕장으로 유명한 마을로 지명은 산의 모양이 '소의 등에 얻는 질메'와 같이

우뚝 솟아 있어서 붙여진 지명이며, 대관령면 횡계5리에 속한 지르메 마을은 우리나라

황태덕장의 원조이며, 1960년대 대관령 제1스키장이 생기면서 국내 스키의 발상지로

알려진 마을이다.

화약골 갈림길에서 우측으로 올라선 다음에...

밋밋한 봉우리 아래로 내려서니 오목길 갈림길이 나온다

오목골 갈림길(15:17)

오늘 대간 산행 마루금의 끝 지점인 오목길 갈림길에 도착한다

지난 1월에 겨울 산행의 특성을 무시하고, 선자령으로 가는

안내 산악회를 따라와서 대관령~닭목령 구간을 계획하다가

허리까지 차오르는 적설량에 막혀서 이곳에서 중탈을 한

아픔을 가진 구간을 오늘에서야 마무리한다

늘 가슴 한구석에 응어리져 있던 이 구간...숙제를 오늘에서야 마친다

10개월에 찾아온 이 길...오목골로 내려가는 길에는

지난 겨울에 없었던 팻말이 서 있지만, 맥꾼이

저런것 다 지키면서 산행을 하면 언제 끝내겠나...

걍~~~무시하고 그냥 내려간다

계속되는 내리막길

무명봉(15:25)

무명봉을 지나고 돌탑을 지나 내리막길로 내려서니

지난 겨울에 보지 못했던 이정표가 보이면서 조금은

낯선 느낌이 드는 등로이다

횡계리 갈림길(15:31)

우측의 사면길로는 화약골로 가는 뚜렸한 등로가 보이나

직진의 급경사 내리막으로 이어지는 오목골 방향으로 향한다

등산로 폐쇄 안내를 무시하고 내려가니...

급경사의 내리막길...낙엽 아래에 깔려있는

자갈들로 인해서 등로는 상당히 미끄럽다

이곳을 내려서면서 지난 겨울에 걸었던 길과는

다르게 내려간다는 걸 깨달았다.

지난 겨울에는 화약골 방향으로 내려갔는데 오늘은 한참

좌측으로 향해서 내려 왔으니 거리가 훨씬 길어진 셈이다 

계곡(15:40)

계곡을 건너서 낙엽이 푹신한 사면길로 향한다

어느 세월에 고쳐 질라나?...

이제서야 지난 겨울에 내려왔던 등로를 만난다.

단축길을 놓쳐 버리고, 20분 이상을 빙돌아서 

내려온 셈이다

계곡(15:48)

무명묘지(15:55)

저 앞에 능경봉으로 올라가는 시멘트 도로가 보이니

오늘 산행의 끝 지점이 보이는 듯 하다

능경봉 갈림길(15:57)

오목골로 향한다

고루포기산 입구(15:58)

평창 라마다호텔 입구(16:00)

평창 라마다 호텔 앞에 도착하여 산행을 종료하는 스틱을 접고,

이곳에 오면 간간히 이용하는 택시기사를 호출하니 외국에

여행을 갔는지 국제전화 발신번호가 뜨기에 얼른 전화를 끊고,

횡계택시를 호출하고 걸어가는데 20여분이 지난 다음에 택시가

도착하고, 택시를 타고 삽당령으로 향하면서 돈이 별로 없으니

최단 거리로 삽당령으로 가자고 하니 거리가 먼 고속도로가 아닌

구절양장의 대관령 옛길로 내려와서 강릉시 성산면, 왕산면을

거쳐서 50여분의 시간이 걸리고, 택시 요금이 67,000원이나 나온다

그리고는 택시기사가 요금을 대폭 깍아 주는 바람에 기분이 참 좋다.

택시요금을 대폭 깍아준 기사님 때문에 기분이 좋은 상태로

택시에서 내리니 아들의 愛馬가 아빠를 애타게 기다리고 있다.

그래!...아빠가 미안하다...그리고 베낭에서 자동차 열쇠를 찾는데

아무리 베낭을 뒤져봐도 열쇠가 보이지 않으니 눈 앞이 노래진다.

 

아예 베낭을 뒤집어서 베낭속에 있는 물건들의 다 꺼집어 내보지만

여전히 보이지 않는구나...산에서는 자동차 열쇠를 꺼낼 일도 없잖은가...

호랑이한테 물려가도 정신만 차리면 산다고 하지 않았던가...

 

차분히 베낭을 정리하면서 베낭 맨 아래에 있는 옷가방을 정리하는데

옷가방 안의 바람막이 자켓 윗주머니에다가 열쇠를 넣어놓고, 지퍼까지

꼭 닫아 놓은게 아닌가...그래놓고 10분 이상을 열쇠를 찾아서 난리

부르스를 친 셈이다...ㅋㅋㅋ

삽당령(揷唐嶺:682.3m:17:30)

강원도 강릉시 왕산면과 정선군 임계면을 잇는 35번 국도가

지나는 해발 680m의 고갯마루로 이 고개를  넘을 때 길이 험하여

지팡이를 짚고 넘었으며 정상에 오르면 짚고 왔던 지팡이를 버리고

(꽂아 놓고) 갔다 하여 '꽂을 삽(揷)'자를 써 삽답령이 되었다고 전하며,

이곳의 지형이 당나라에 있는 삽당산의 아름다운 풍경과 같아 삽당령이라

부르게 되었다도 한다.

또 다른 유래는 정상에서 북으로는 대기(大基)로 가는 길과 서쪽으로는

고단(高丹)가는 길로 세 갈래로 갈라지는  삼지창과 같다고 하여 붙여진 

지명이라도 하는데, 이 고개는 강희 54년(숙종41년)인 1715년에 개설된

것으로 추정되며,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부(府) 서쪽 60리 정선으로

가는 길’이라 기록되어 있다.

 

삽당령은 강릉을 적시고 동해로 흘러드는 강릉 남대천, 그리고 남한강 상류인

골지천으로 몸을 섞는 송현천의 발원지기도 하며, 갯마루에 당집이 있어

당집 사이에 있는 고개란 뜻의 샅당령이 변해서 삽당령이 되었다고도 하는데, 이 곳의

옛이름은  삽운령(揷雲嶺)인 것을 보면 백두대간의 마루금에서 수시로 변하는 기후 

때문이 아닌가 싶으며, 현지 주민들은 삽당령이라 부르지 않고 “삽달령”이라 부르고

있다 하는데, 또 다른 유래는 고개에 사당이 있는데 사당령이라 부르던 것을

변음(變音)이 되어 삽답령으로 부른다고 한다 

 신증동국여지승람과 [증수임영지]에 "강릉부 서남쪽 60리에 있으며,

정선으로 가는 길이다."라고 적혀 있다. 이 고개의 양쪽 골짜기는

강릉시의 도마천과 정선군의 임계천 하곡을 잇고 있다. 그래서 예부터

강릉과 정선을 오가는 길로 이용 되었다. 지금은 35번 국도가 이 길을

지나고 있으며, 강릉~정선~ 태백으로 통하고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 여지도서(輿地圖書), 대동여지도

(大東輿地圖), 증수임영지(增修臨瀛誌), 관동읍지(關東邑誌)에는 삽현(鈒峴),

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에는 삽당령(揷堂嶺), 강릉시사(江陵市史)

고갯마루의 표석에는 삽당령(揷唐嶺)으로 표기되어 있다.

 

조선지도(朝鮮地圖), 청구도(靑邱圖), 대동여지도(大東輿地圖),에는

삽운령(揷雲嶺)이라 표기되어 있고, 대동여지도에는 삽현(揷峴)

삽운령(揷雲嶺)이 따로 적혀 있다.

정상에는 오래된 대형 표석물이 2개가 있으며 하나는 근자에 설치한 것이며 옛날 보부상들이

넘나들며 제를 모시었던 산신각이 있으며 동물이동통로인 가설교가 되어있다. 

 

삽당령(揷唐嶺)은 삽은 꽂을 삽. 옛날 정선군 임계 사람들이 강릉에서 장을 봐가지고 오다가

짚고 오던 지팡이를 꽂아놓고 가서 이름 지어졌다는 설이 있고 또 다른 설은 정상에 모습이

세 가닥 삽지창의 형상을 닮아다 하여 오른쪽에 있는 가지는 화심형(花心形)으로 생긴

대화실산 밑을 돌아 대기리 벌말로 이어지고, 가운데 있는 가지는 송현을 지나 정선으로

이어지고, 왼쪽에 있는 가지는 동쪽으로 뻗어 이어지면서 두리봉, 석병산으로 가는 줄기이기에

삽지창의 삽당령이라 유래되었다 한다.

삽당령 정상 수준점

(강원도 강릉시 왕산면 목계리 산 460-83)

07-19-34-05, 2001.6.1매설

자동차 열쇠 때문에 한바탕 홍역을 치르고 났더니만 삽당령 고개는 어둠이

밀려오기 시작하고, 허기가 지기에 맞은편 삽당령 포장마차에서 요기나

할 것이 있나하고 바라보니 욕쟁이 할머니는 퇴근을 했는지 적막강산이다.

 

영동고속도로 평창 휴게소에 들려서 맛있는 장칼국수나 먹고 가야겠다

생각을 하고, 시동을 걸어 출발을 하려고 악세레다를 밟는데 자동차가

나가지를 않는구나...운전 경력이 40년인데 미치겠네... 하는 수 없어서

아들한테 전화를 해서 물어보니, D모드에 놓고 악세레다를 밟으면

된다고 하여 해봐도, RPM만 올라가지 자동차는 스타트를 할 생각이 없다

 

하는 수 없이 이 차를 판 현대자동차 후배에게 전화를 했더니만 나보고

‘선배님! 경사진 곳에 자동차를 세워 놓으셨군요’ 하면서 팔걸이 맨 뒷쪽에

D 모드 버턴이 하나 더 있으니 그걸 눌러보라고 하여 그걸 눌렀더니만

자동차가 출발하는 것이 아닌가...갈수록 발전하는 文明의 利器에 적응하지

못하고 있는 나 자신이 점점 퇴보하는 느낌이라 씁쓰름하다.

 

삽당령을 출발하여 대관령, 진부, 속사를 지나 평창휴게소에 들려서

장칼국수로 저녁을 해결하고, 졸음을 쫒기위해 시원한 아이스 커피를

사서 그걸 마시면서 집에 도착하니 중간에 차가 밀린 탓인지 밤 11시가

다되어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