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일자: 2024년 01월 28일
☞산행날씨: 이른 아침에 비...맑은 날씨, 강풍...생각보다 상당히 추움
☞산행거리: 도상거리 12.6km / 7시간 05분 소요
☞참석인원: 나홀로 산행
☞산행코스: 왕무덤재- 무명봉- 너럭바위- 남산 갈림길- 안부- 무명봉- 안부- 암봉
조망바위- 282.2m봉- 안부- 224.6m봉- 안부- 228.5m봉- 무인항공안테나
갈림길- 안부- 창녕조공&유인밀양박씨 묘- 유인경주최씨 묘- 천방재
170.2m봉(영매산)-무명봉- 안부- 114.9m봉 갈림길- 안부- 삼거리
농장 입구- 붉은재(칠전고개)- 안부- 조망바위- 암봉- 안부- 200.4m봉
안부- 188.6m봉- 가단재- 219.7m봉(대덕산)- 안부- 돌박재- 176.9m봉
안부- 대학봉- 안부- 무명봉- 안부- 용수봉- 안부- 죽청고개- 125m봉
고개- 무명봉- 봉호산- 갈림길- 무지개재
☞소 재 지: 전라남도 진도군 진도읍 / 의신면 / 임회면
진도로 가는 길은 참으로 멀기만 하다...7~8시간(내 기준으로) 산행을 하기 위해
10여 시간동안 차를 타야하니 여간 고역이 아니다...올해 들어서 3번째 진도의
산길을 나서는데 지난주 새벽에 목포터미널 도착하여 개고생 한 트라우마 때문에
토요일 오후에 진도읍으로 가서 하룻밤을 유숙하고 산행을 할 생각으로 토욜에
오전만 근무하고 집에 들어와서 간단하게 베낭을 챙긴 다음에 터미널로 향한다
오늘 산행구간의 지도
서울발 → 진도행 버스표
서울 강남(센트럴시티 터미널)에서 진도로 가는 버스는 하루에 3번 있는데
첫 차는 07시 55분 차이고, 16:00(임시버스), 17:00버스이고, 소요시간은 4시간
40분정도 걸리니 멀기는 멀다.
첫 차와 막차는 프리미엄 버스라서 53,000원...돈이 없어서 걸어 다니는
산꾼의 호주머니 사정을 감안하면 좀 고민해 볼일이다...하는 수 없이
16시에 출발하는 우등버스( 40.900)를 끊어서 버스에 올라탄다.
서울을 출발하면서 탑승한 승객은 8명이다...무안과 남악이라는 곳을
경유하는 버스로 무안에서 4명이 하차하고, 남악에서 1명이 내린 다음에
3명만을 태우고 진도로 향한다
진도터미널(20:50)
4시간 50분이 걸린 다음에 버스는 진도터미널에 도착한다
진도 군내 버스 시간표
진도터미널 건너편에 있는 식당에서 해장국으로 저녁을 해결하고
진도읍내에 있는 여관으로 향하는데 가는곳마다 방이 없다고 한다.
1시간 넘게 이곳 저곳의 여관 7군데를 돌아 다녔지만 다들 방이
없다고 하니 참으로 난감하다.
꿩 대신 닭이라고 했던가...기저환자인 나로선 좀 찜찜하긴 하지만
지금으로서는 다른 방법이 없어서 찜질방으로 발길을 돌린다
물어 물어서 찜질방으로 향하는데 진도의 모텔에 방이 없는 이유를 알았다
이곳 진도는 남쪽지방이라 날씨가 따뜻한 관계로 전국에 있는 축구, 럭비,
육상선수들이 전지 훈련이 많이 오는 관계로 숙박시설이 턱없이 모자란다고 한다
찜질방(22:30~05:35)
모텔과 찜질방, 사우나를 겸하고 있어서 행여 객실이 있나 싶어서
물어봤다가 일언지아에 거절 당하고, 찜질방 표를 끊어서 들어간
다음에 샤워를 마치고 찜질방에 들어가니 우려했던 바와는 달리
사람들은 별로없다...잠을 청하려니 모포가 없어서 1,000을 주고
모포를 렌털한 다음에 잠자리에 들었는데 자정쯤 됐을까, 20대쯤된
어린 친구 대여섯명이 들어와서 족발에다 술파티를 벌이면서 떠들어
대는데 어느 누구하나 나서서 제지하는 사람이 없다...예전같으면
호통을 치면서 훈계를 하겠지만, 요즘 세상이 하도 무서워 나역시
아무말도 못하고 뜬 눈으로 밤을 지세다가 사우나에 들어가서
따뜻한 물에 몸을 녹인 다음에 찜질방을 빠져 나온다
찜질방을 나오니 일기예보와는 달리 가랑비가 내리고 있다.
참 난감하다...일단 아침을 해결한 다음에 산행을 할까말까
생각하기로 하고, 주변에 식당을 찾아 헤맸지만 찾을 길이
없어서 포기하고 편의점에서 컵라면 하나로 아침을 해결한
다음에 편의점을 나오니 비는 그치는 듯 하다.
아직도 주위는 컴컴하다...읍내에서 왕무덤재까지 걸어가면 날이
밝아올 것 같은 생각이 들지만, 오늘은 새벽부터 바람이 불어와서
차가운 날씨라 그냥 택시를 타고 왕무덤재로 향하는데 5분이
지났을까 택시는 왕무덤재에 도착한다(택시비 5,000원)
왕무덤재(90m:06:15)
진도군 의신면 침계리와 진도읍 남동리 경계에 있는 고개로 진도읍에서 약4km정도
떨어져 있으며, 정상에는 주유소와 요양병원, 모텔 등이 시설이 있으며, 고개를
넘으면 진도군 의신면 사천리 운림산방으로 통하고, 금갑만호진이나 의신면
소재지인 돈지(敦地)로 갈 수 있으며, 회동 신비의 바닷길로 연결된다
『조선지지자료』에 왕치(王峙)로 기재된다. 부기에 "고려 원종 11년(1270)에 왕온(王溫)의
분묘가 영산리에 있다."고 기록되어 있으며, 『호남지도』에 '용장왕온구기(龍藏王溫舊基)'
라는 표기에서 그 왕무덤재를 확인할 수 있다.
전설에 의하면 고려 후기 삼별초의 난 때 영영공이 아들들에게 자신의 친형인 왕온을
구해오도록 했는데 영영공은 자신의 친형이 삼별초의 인질로 잡혀가 타의에 의해 왕이
되었다고 보았다... 그러나 왕온은 삼별초가 몽골 및 고려 연합군과 항전하면서 이 고갯길을
넘어 퇴각하는 과정에서 홍다구(洪茶丘:1244 ~1291:몽골명 찰구이(察球爾)의 칼에 맞아 죽었다.
이 고갯길 동쪽 기슭에 그의 묘가 있었다는 전설을 바탕으로 왕무덤재라는 이름이 유래하였다.
산행을 시작하다(06:20)
택시를 타고 왕무덤재 주유소 앞에 내리니 바람도 많이불고
날씨도 생각보다 춥다...아직도 컴컴하여 베낭속에 헤드렌턴을
꺼내서 확인하니, 오랫동안 사용을 하지 않은 탓이라 켜지기는
하지만 불빛이 흐릿하다...날이 밝을때까지 기다렸다가 산행을
시작할 까 생각을 해봤지만, 마땅히 바람을 피할만한 장소가
없어 흐릿한 헤드렌턴 불빛에 의지한 체 길을 건너 하종선
백호화실 표시석이 있는 시멘트 도로로 올라간다
하종선 백호화실 우측으로 올라서니 밭이 나오는데 이리저리 쑤셔봐도
올라가는 길이 안 보인다...어둠속에 한참을 버벅거린 다음에 올라서니
반가운 선답자의 흔적이 보이지만 초반부터 잡목의 강력한 저항에 부딪히는데
잡목뿐만 아니라 강한 바람에다 엄습해오는 추위에 손가락이 빠져 나가는
느낌이다
무명봉(06:30)
흐릿한 헤드렌턴 불빛에 의한 채 길이 보이지 않은 곳을 올라오는데
이곳에도 며칠전에 눈이 왔는지 보이지 않은 등로에 殘雪들이 남아
있어 미끄럽기는 하지만 아이젠을 착용할 정도는 아니라 조심스레
올라가니 남양주 금곡님이 걸어논 시그널 하나가 보이는 무명봉에
도착한다
어둠속 암릉구간에 등로가 분간이 안되는 곳을
올라서는데 올빼미과가 아니라서 그런지 어둠속에
걷는 산길은 범여로선 영 어색하기만 하다.
어렵사리 능선에 올라서니 반가운 선답자의 시그널 하나가 바람에 심하게 흔들리고
나뭇가지 사이로 보이는 진도읍내는 아직도 잠에서 깨어날 생각이 없는지 불빛이
불야성을 이루고 있다....능선에 올라서도 잡목의 저항이 거센데, 일출이 시작되지
않은 탓인지 오늘 따라서 유난히 손이 시렵다
너럭바위(06:50)
남산 갈림길(06:52)
너럭바위에서 2분정도 지나니 좌측으로 꺽어져 내려가는 등로에
선답자들의 시그널이 주렁주렁 달려있는데 이곳이 남산 갈림길이다.
진도읍 남쪽에 있다고 해서 남산이라 불리는데 이곳에서 맥길에
살짝 벗어나 있어 맥꾼들은 이곳에다 베낭을 걸어놓고 갔다 온다고
하는데 어둠속에 남산을 가본들 뭐하겠노 싶어서 과감히 포기하고
급경사의 내리막길로 내려간다
안부(07:00)
급경사의 내리막길에 흐릿한 렌턴 불빛으로는 길을 찾기가 아주 難解하다.
등로가 보이지 않는 곳을 이리저리 헤매고 다니는데 편백나무 숲속이라
더 어두운 느낌이고, 간간히 예전에 집터의 흔적처럼 보이는 돌담도 만나고
초반부터 어둠속에 산꾼을 괴롭히는 망개나무(청미래)가 원망스럽기만 하다.
어둠속에 봉사 문고리잡는 기분으로 잡목을 헤치면서 내려가니 비실이부부님의
시그널이 걸려있는 안부에 도착한다
어둠속에 안부를 지나서 느릿느릿 오르막을 향해서 올라가는데
잠깐 사이에 어둠이 걷히지만 등로는 보이지 않고, 쌓여있는
눈밭 사이로 이어지는 오르막을 향하는 길에 트랙을 보니 이곳까지
오는데 걸리는 거리가 시간당 1km밖에 걷지 못했다.
어둠속에 초반부터 잡목의 저항이 엄청나게 심했다는 증거이다
무명봉(07:15)
왕무덤재부터 이어지는 지독한 잡목의 태클은 갈길 바쁜
산꾼의 발길을 잡는데 아무래도 오늘 산행이 쉽지 않을듯한
불길한 예감이 엄습해온다
훅하고 갑자기 사라진 잡목지대...산길이란 참으로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지독한 잡목이 내 말을 들었는지 갑자기 등로가 좋아진다
잠시후에 오를 282.2m봉이 시야에 들어오는 안부로 내려서는데
무덤덤한 일상에서 벗어나 이렇게 걷는다는 자체만으로도
기분이 UP되는데, 진도땅의 산길이 힘들다 힘들다 하면서도
또다시 그리워서 또 찾은 나...내가 내 자신을 알다가도 모르겠다.
안부(07:26)
오르막길...눈쌓인 능선을 올라서니 암릉구간이 시작된다
암봉(07:32)
칼날 능선의 암릉구간을 곡예하듯이 걸어간다
능선을 오르다가 뒤돌아보니...
새벽의 어둠속에 오르지 못한 진도 남산의 능선이 보인다
암릉으로 되어있는 남산(南山:243.3m)은 전라남도 진도군의 진도읍에
위치한 산으로 북산과 함께 진도읍을 남북으로 감싸고 있으며, 진도읍
앞으로 진도천이 서쪽으로 흘러 배산임수형의 형국을 이루고 있어서
진도읍의 안산(案山)이라 할 수 있으며 남산제 옆에 왕온(王溫)의 묘로
알려진 왕무덤과 말무덤이라 불리는 2기의 고분이 있다.
옛날 삼별초 항쟁 때 왕이 몽고군에게 쫓겨서 왕무덤재까지 왔을 때
논실골에서 패배하여 왕온과 아들 왕환(王桓)도 함께 잡혀 죽어서 진도
사람들이 묻어주었다는 전설이 있다.
호남지도(진도)에 진도군 치소의 남쪽에 자리하고 있고 해동지도에
내남산(內南山)의 표기가 보이고 외남산(外南山)이 내남산보다 먼 곳에
있는 것으로 묘사되어 있으며 조선지지자료에 부내면(府內面)
두정리(斗井里) 앞에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오늘은 초반부터 자주 만나네요...반갑습니다
조망바위(07:37)
점찰산 남쪽 품안에 포근히 감싸있는 진도군 의신면 사천리(斜川里)의 모습
내(川)가 비껴 흐르므로 비끼내, 빗내, 사천이라 부르는 사천마을은 진도읍의
수원지(水源池) 역할을 하는 사천저수지와 남종화의 대가인 소치(小痴)
허련(許鍊)선생의 운림산방(雲林山房)과 신라시대에 도선국사가 창건했다는
고찰 쌍계사, 진도 다시래기가 전해져 내려오는 마을이다.
진도는 과거 유배문화에 의해 시, 서화와 더불어, 정선아리랑, 밀양아리랑과 함께
3대 아리랑이라 불리는 진도아리랑이 전해져 내려오며, 남도들놀이, 육자배기, 진도북춤
등이 있으며, 사천마을은 다시래기(국가 중요무형문화재 제81호:부모상을 당한 상주와
유족들의 슬픔을 덜어주고 위로하기 위해 벌이는 상여놀이)의 발상지이다
'다시래기( 국가 중요무형문화재 제81호)’란 출상하기 전날 밤 상주들을
위로하기 위해 상가 마당에서 상두꾼들이 벌이는 놀이로서, 타고난
수명을 다 누리며 행복하게 살다 죽은 사람의 초상일 경우 동네
상여꾼들이 상제를 위로하고 죽은 자의 극락왕생을 축원하기 위해
상주들과 함께 밤을 지새우며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르면서 노는 놀이...
즉 춤·음악·놀이로 죽은 사람을 보내는 것으로 죽음을 슬픔으로만
받아들이지 않고 새로운 세계로 승화시키는 민속놀이라고 한다.
진도 다시래기는 다섯 마당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첫째 마당은 가상제놀이로 가짜 상제가 나와 상여꾼들과 농담을 주고 받으며,
둘째 마당은 봉사인 거사와 사당 그리고 중이 나와 노는데, 진도 다시래기의 중심이 되는 굿이다.
셋째 마당은 상여꾼들이 빈 상여를 메고 만가를 부른다.
넷째 마당은 묘를 쓰며 부르는 가래소리를 하면서 흙을 파는 시늉을 하며,
다섯째 마당은 뒤풀이로 놀이패들은 후한 대접을 받는다.
특히 다시래기에는 여러 가지 연극적인 놀이가 등장하는데,
그 중 대표적인 놀이가 둘째 마당에 등장하는 ‘봉사놀이’이다.
다시래기 놀이에 등장하는 노래 가운데 <염장>은 상두꾼들이 상여메는 도구를 만들면서,
개타령과 사당패노래는 ‘봉사놀이’를 하면서 부르는 노래다.
이 가운데 개타령은 원래 남녀 두명이 문답식으로 한 소절씩 나눠 번갈아 부른다.
언제가 될런지는 몰라도 진도로 여행할 기회가 있으면 꼭한번 사천마을을 오리라 생각하면서
무거운 발걸음으로 다시 길을 나서는데 강한 바람 탓인지 손가락이 빠지는듯한 통증을 느낀다
동쪽 바다에서 떠오르는 日出
얼마만에 보는 일출인가?...이미 떠오른 해를
바라보면서 잔설이 깔린 산길을 걸어간다
등로에 살짝 깔린 殘雪을 밟으면서 걷는데 푸르름을 발산하는
황칠나무 이파리와 눈(雪)이 묘한 대조를 이루고 있다
282.2m봉(07:40)
282.2m봉에서 우측으로 확 꺽어지면서 급경사의 내리막길로
향하는데 봉우리 우측 아래는 조망바위처럼 보이는 멋진 암릉이다
잠깐 사이에 해가 한참이나 올라와 버렸다
또다시 시작되는 고난의 행군...
보이지 않은 등로를 헤매다 내려오니...반갑습니다
그래 피할수 없으면 즐기라고 했잖아...
독립군이 이 정도 험한길에 쫄면 안되제.
안부(07:48)
좌측은 사천저수지, 우측으로는 칠전리로 이어지는 고개이건만
고개의 역할을 잊어 버린지가 오래된 모양인지 길이라곤
흔적조차 보이지 않는구나...하기사 좋은 길두고 이런 길을
걸어가는 산꾼이 이상하제...그것도 머나먼 한양땅에서 이곳까지
와서 뭔 지랄인지...
迷路처럼 이어지는 완만한 오르막길...
오늘 산길에선 유난히 황칠나무를 자주 만난다
224.6m봉(07:52)
완만한 무명봉에서 사정없이 우측으로 꺽어져 맥길을 이어간다
등로는 잘 안보이지만 이른 새벽에 어둠속에 걷는 길과는
비교도 안될만큼 좋다...아쉽다면 오늘은 날씨가 너무
춥다는게 흠이라면 흠이다
안부(07:55)
안부에서 올라서니 우측 사면으로 이어지는 뚜렸한 등로 윗쪽에
무인항공안테나가 보이고 맥길은 길이 전혀 안보이는 직진 능선을
치고 올라간다
228.5m봉(08:00)
228.5m 봉에서 우측으로 내려서는데 엄청나게 많은
두릅나무들과, 아카시아, 산딸기를 비롯한 각종
가시 종류의 잡목들이 많아 이곳을 빠져 나가는데
애를 먹는다...곧바로 무인항공안테나를 만나는데
조금전 사면길로 올라올 걸...사서 개고생을 한다
무인항공안테나(08:02)
무인항공안테나가 있는 곳에서 좌측으로 내려가는데...
어디로 가야하나...
완만한 능선에서 갈림길이 나오고...
갈림길(08:08)
길은 안 보이고 잡목들이 꼬라지를 부리는데 갈수록 가관이다
잡목들은 내 인내심을 시험하는 모양이다...돌아버릴것만 같다
안부(08:13)
두꺼운 겨울옷을 입었건만 초반부터 가시로 인해 몸뚱아리가
만신창이가 된 느낌이다...편백나무 숲을 헤치면서 맥길을
이어 나간다
반가운 선답자의 흔적을 만나고...묵은 임도를 만난다
죽으란 법은 없는 모양이다...잠시동안 편안한 길을 걷는다
창녕조공&유인밀양박씨 묘(08:20)
창녕조공&유인밀양박씨 묘 앞에서 잠시나마 편하게
걸었던 임도는 우측으로 휘돌아서 내려가고 맥길은
다시 직진의 숲속으로 향한다
지맥과 헤어져 야속하게도 우측으로 내려가 버리는 임도...원망스럽다
그림과는 달리 참으로 힘이드는 구간이다
등로는 아예없고 다시 우측으로 확 꺽어져 내려간다
백두사랑의 이대장의 흔적
산에 관한한 참으로 대단한 친구였었는데... 잘살고 있겠지...
유인경주최씨 묘(08:25)
없는 길을 만들어서 내려가는데 맞은편에는
잠시후에 오를 170.2m봉이 얼굴을 내밀고 있다.
산행을 시작한 지 그리 오래되지 않았는데 몸뚱아리는
상처투성이다...힘들게 시작한 진도의 산길...잡목에
물이 오르기전에 끝내야 할터인데 내 의지대로 될런지
모르겠다
잡목을 이리저리 헤치면서 내려서니 최근에 조성한 듯한
임도가 나오는데 반바지님께서 천방재라는 팻말을 붙혀놨다
천방재(105m:08:31)
진도군 의신면 칠전리와 침계리의 경계에 있는 고개로, 최근에 개설된 듯한
임도가 지나가는데, 고개옆 나무에다 반바지님께서 천방재라는 코팅지를
붙혀놨는데, 지명의 유래는 알 길이 없다...그런데 반바지님은 귀신처럼
지명을 발굴(?)하여 고개마다 이름을 붙혀논 그 재주는 신통방통하다.
기왕이면 유래의 설명도 있으면 좋으련만...많이 아쉽다
고개를 가로질러 숲속으로 들어간다
동백나무 군락지를 빠져 나오니...
좌측에서 올라오는 임도가 나온다
임도에 들어서자마자 곧바로 임도를 버리고 좌측의 숲으로 올라간다
또다시 苦行길은 시작되고...신경수 쌤의 응원을 받는다
묘지로 이어지는 등로를 버리고 우측으로 올라서는데...
흐미!...미치겠네.
천방재에서 이곳까지 고도차가 60m정도 밖에 안되는데 와이리 힘이드노...
빡센 오르막을 치고 올라서니 족보있는 170.2m봉에 도착한다
영매산(170.2m:08:50)
진도군 의신면 칠전리,창포리,침계리에 걸쳐있는 봉우리로 지도상에는
영매산이라고 표기가 되어 있으나, 국토정보지리원의 지도에는 그냥
170.2m봉이라 표기가 되어있다...반바지님께서 영매산이라는 코팅지를
붙혀 놨으나 누군가가 홰손시켜 놓아서 조금은 안타깝다.
이곳 역시 진도의 어느 자료에도 영매산에 대한 유래를 알 길이 없어서
조금은, 아니 많이 아쉽다...진도 사람들의 산에 대한 무관심...알만하다
170.2m봉에서 살짝 back하여 좌측으로 향한다
독립군이 길을 잃어버릴까봐 선답자들이 시그널을 많이 달아놨다.
아침에 강하게 불어대던 바람은 많이 잠잠해졌으나 지난주에
비해서 기온이 크게 오르지 않아서 아직까지는 많이 춥다
갑자기 등로는 사라지고, 이곳 역시 잡목의 저항이 엄청나게 심하다
조금전에 지나온 무인항공안테나가 있는 봉우리를 바라보면서 내려간다
길이 전혀 보이지 않은곳에서 만나는 선답자의
흔적은 마치 캄캄한 밤바다에서 만나는 등대같은
존재이다...이런 곳에서 깜빡하면 알바하기 딱 좋은
곳이라 바짝 긴장을 하면서 맥길을 이어간다
동백과 편백나무가 혼재되어 있는 조림지 사이를 호젓하게 걷는다
바닥에는 어제 내린 비 때문인지 촉촉히 젖은 등로가
無言의 沈默으로 홀로걷는 산꾼에게 힘내라고 응원한다
그러다가 갑자기 튀어나오는 묵은 임도...니가 왜 거기서 나와...
잠깐 편안한 임도의 맛배기를 보여주고는...
그리고는 곧바로 험하디 험한 死地로 몰아 넣는다.
이런걸 世俗에서는 ‘병주고 약준다’고 표현을 하제...
어디로 가야하나...진도지맥길이 이렇게도 힘이 드는지...?
무명봉(09:13)
편백나무 숲사이로 빼꼼히 얼굴을 내밀고 있는 등로.
한줄기 빛이라 생각하고 부지런히 등로를 따라간다
안부(09:17)
안부에서 우측으로 살짝 꺽어져 맥길을 이어가지만
행여 알바를 할까봐 바짝 긴장을 하면서 트랙에서
눈을 떼지 못한다
산길을 걸을때는 낭만이라도 느끼면서 걸어야 하는데
죽기 살기로 힘든 길을 걷다보니 입에서는 나도 모르게
肉頭文字가 튀어 나온다...꼭 힘들게 산길을 걸어야 하는지
懷疑感도 들고...
114.9m봉 갈림길(09:22)
y자 갈림길이 나오고 약간의 뚜렸한 등로를 따라서 직진으로 가면
마루금에서 꽤나 벗어나 있는 114.9m봉으로 가는 길이고, 마루금은
좌측의 내리막으로 향하는데 나뭇가지에 걸려있는 선답자의
시그널들이 고맙기만 하다
잠깐 편안한 길을 걷나 싶더니...
또 다시 고행길이 시작된다.
그래!... 娑婆世界에서 살아간다는 자체가 苦인데
누구를 탓하라...주어진 운명에서 묵묵히 살자...
안부(09:25)
잡목의 저항을 물리치고 내려서니 꽤 큰 규모의 태양광 시설이 보인다
삼거리(09:27)
마루금은 태양광 시설이 설치되어 가운데로 이어지지만 갈 수가 없다
지맥길을 짤라먹고 있는 태양광 시설 우측으로는 조금전 능선에서
헤어진 114.9m봉이 보이고 도로를 따라서 가다가 태양광 시설
가운데로 어지는 도로를 따라서 꽤나 큰 규모의 농장 방향으로 향한다
태양광 시설에서 바라본 진도군 의신면 침계리(枕溪里) 마을의 모습
진도군 의신면에 속해있는 침계리(枕溪里)는 마을이 언제 생겼는지는 확실히 알 수 없으나,
1357년 경에 제주양씨 금성군파 6세손이 제일 먼저 들어와 살았다고 전해지나 자세한
기록은 없으며, 마을 앞을 흐르고 있는 시내를 베개 삼아 터를 잡았다 하여 ‘침계(枕溪)’라
이름 지어졌다고 한다
태양광 시설물 가운데로 이어지는 곳에서 바라본 114.9m봉의 모습
농장 입구(09:30)
농장입구에서 좌측으로 꺽어져 붉은재로 향하는데
잠시후에 오를 마루금이 얼굴을 내밀기 시작한다
붉은재 도로 주위에는 종려나무를 식재해논 밭이 보인다
종려나무는 높이가 크게는 20m 까지 높이 자라고 중간에는 가지가 없이 둥치가 뻗어
올라가 맨 윗부분에서 우산처럼 잎이 사방으로 퍼져있는 모양을 취하고 있으며,
히브리어로는‘타마르’(tamar)라고 호칭하는데 우리나라의 대추와 비숫한 열매가
달리기 때문에 대추야자 나무라고도 한다.
덜 익었을 때의 열매는 녹색을 띄고 단단하지만, 늦여름이 되면 잘 익게 되고, 색깔도
황갈색 혹은 적색으로 변하며, 열매의 살은 달고 연하며 그 맛이 마치 꿀과 같기 때문에
성경에 나오는 꿀은 때때로 종려나무 열매로 표현되기도 하는데, 당시에 열매는 귀중한
식량이 되었고, 나무의 즙은 원기를 돋우는 음료로 사용되었다.
목재가 귀했던 고대 이스라엘에서는 나무줄기는 지붕을 받치는 기둥으로 사용하였고,
나뭇잎은 지붕을 만들거나 울타리를 만드는 재료로 활용되었으며, 간단한 기구인 깔개,
바구니, 그릇 등을 만들기도 하였다고 하며, 꽃말은 승리이다
붉은재(칠전고개:35m:09:33)
진도군 의신면 창포리(좌)와 칠전리(우)를 이어주는 고개로 도로명 주소가
'죽엽돈지로'인 2차선이 지나가는 고개로 주변의 농장에서는 일반 사람들이
야자수로 많이 알고있는 종려나무를 심어논 밭과, 진도의 특산품인 봄동,
겨울 배추밭이 보인다.
지명은 칠전리의 지명이름을 따 칠전고개(붉은재)라 부르는 곳으로
진도군 의신면에 있는 칠전리(七田里)는 당초 옻나무가 무성해서
옻밭이라 하였으며, 이 옻밭을 의역해서 마을이름을 칠전(漆田)이라
하다가 알기 쉬운 칠전(七田)으로 고쳐 쓰고 있다
마을 서편으로는 사분산, 동북으로는 광중산(光中山), 동남으로는 노적봉 그리고
남쪽으로는 삼막봉(三幕峯)을 각각 바라보고 있으며, 포전들(간척지), 연둥들,
꿀태들 등의 평야가 있어 농토가 넓으며, 1954년에 준공된 칠전저수지(천망제)를
비롯한 웃골저수지, 넘엔들저수지(월치제, 뱀골저수지)가 있어 수원도 풍부하다.
하천은 속칭 벼락박골(진도읍 남산 뒷편)에서 발원한 큰보천(길이 5㎞)과 남쪽의
뱀골천이 각각 칠전저수지로 흘러들고 있으며, 상부에는 높이 10m의 폭포(천방폭포)가 있다.
도로를 가로질러서 시멘트 도로로 올라간다
의신면의 중서부에 있는 칠전리는 전형적인 농촌마을로 동쪽은 침계리, 서쪽은 진도읍
염장리와 임회면 삼막리, 남쪽은 창포리, 북쪽은 진도읍 포산리와 각각 접하고 있다.
진도읍에서 면 소재지(돈지)로 통하는 지방도 803호선 도로와 중굴로 가는 길이 있어
버스가 하루 12회 왕복하는데 마을 동편을 돌아 진도읍으로 나가는 비포장도로는
일제강점기 때(1920년) 만들어 졌는데, 길을 낼 때 용의 목부분을 자르고 지나간다고
하여 주민들이 피해를 입을까 하여 반대가 심하였다... 1960년대 말 마을 앞 803번 지방도가
뚫리고 포장 될 때에도 사두형국(巳頭形局)의 목부분을 자른다고 해 역시 반대가 있었다고 한다.
민가에 올라서니 동남아나 제주도의 가로수로 많이 봤던 종려나무.
난 여태껏 야자수로만 알고 있었는데 이 나무가 종려나무라는 걸
오늘 처음 알았다...오늘 산행을 하면서 힘은 들었지만 또 하나를 배운다
봄동
떡배추라고 부르기도 하는 봄동은 진도, 완도, 해남쪽에서 주로 재배되며
이곳 진도가 전국 최대의 봄동 주산지라고 하는데, 냉이, 달래 등과 함께 대표적
봄채소로 분류되는 봄동은 겨울에 노지에서 재배된 배추를 일컫는다.
겨울의 추운 날씨 때문에 결구(속이 꽉 참)되지 못하고 잎이 옆으로 퍼져있으며,
김장김치 보다 수분이 많아 단맛이 강하고, 아미노산이 풍부하여 씹을수록 고소한
맛이 나며, 또한 일반 배추보다 두껍지만 조직이 연하며, 씹는 식감이 좋다.
외식업소에서는 주로 겉절이, 샐러드 등 양념이나 소스에 무쳐 계절성을 반영한
메뉴에 활용한다.
시멘트 농로를 따라서 올라가니 봄동을 수확하는 밭이 나오고 밭에는
연로하신 노인분 20여명과 트럭 3대에 쥔장인듯한 건장한 남자와
젊은 청년 서너명이 밭에다가 엄청나게 많은 봄동 박스를 쌓아놓고
봄동 수확이 한창이다...마루금이 우측 박스 뒷쪽의 밭 가운데로
이어지기에 밭으로 올라서니 길이 없다고 하면서 밭으로 들어오지
말라고 하는데, 가야하나 말아야하나 고민을 하다가 괜히 서로 얼굴을
붉힐 필요가 없겠다 싶어서 밭 좌측으로 갔다가 산속으로 들어선다
봄동을 수확하는 밭 옆으로 치고 올라서니 희미한 묵은 임도가
나오지만 아카시아와 가시나무들이 길을 막고 있어서 참으로
난감하다
아이쿠!...돌아 버릴것만 같다.
무대포로 잡목지대를 치고 나가려니 몸뚱아리는 상처투성이다
꽤나 많이 돌아서 마루금에 복귀한다
안부(10:02)
암릉구간으로 올라서는데 선답자의 흔적이 산꾼을 격려한다.
조망바위(10:03)
조망바에서 바라본 진도군 의신면(義新面) 들녘
의신면은 전라남도 진도군의 동남부에 위치한 면으로 동쪽 해안을 제외하고는 모두
산으로 고군면 ·진도읍 ·임회면과 접하고 있느며, 면의 북쪽에 기상대가 있는
점찰산(485m)과 덕신산의 산줄기가 고군면과 경계를 이루며, 의신천이 산지 사이로
면의 중앙부를 흐르면서 의신평(義新平)과 명금평(明今平)을 만들고, 이곳에 인구가
밀집해 있으며, 18번 국도와는 직접 연결되지 않고 돈지리를 중심으로 지방도와 군도를
통해 각 지역으로 연결된다... 돈지(敦地) · 칠전(七田) · 사천(斜川) · 모도(茅島) · 금갑(金甲) 등
15개 법정리를 관할하며 소재지는 돈지리에 있다.
940년(고려 태조 23) 의신향(義新鄕)이 설치되고, 1419년(세종 13)에 금갑진이 축성되었다.
1889년(고종 26)에 의신면(義新面)과 명금면(明今面)으로 분리되었다가, 1914년에 다시
의신면으로 통합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는데, 『광여도』에 의신면이 현재의 위치에 기록되어 있다.
왕온의 묘와 궁녀들이 몸을 던져 죽었다는 금창둥범이 있다.
암릉 동북쪽으로 눈을 돌리니 지난주에 걸었던 진도의 최고봉인 점찰산이
한 눈에 보이고, 우측에는 가지 못했던 진도기상대가 비교적 뚜렸하게 보인다
암봉 아래로 내려간다...따스한 햇살이 비치건만 바닷가의
바람 탓인지 추위가 멈출줄 모르는데, 그래도 기온이 올랐는지
비가 온 후의 습도로 인해 주위는 박무가 시야를 흐리게 하는구나
암봉10:08)
등로 우측으로의 나뭇가지 사이로는 칠전리에 있는
꽤나 큰 규모의 사곡제와 넓은 들녘이 보인다
안부(10:11)
잠시 편안한 등로가 나오는데 왠지 불안하다.
진도의 산길이란 언제 또 지독한 잡목지대가
나와서 산꾼을 괴롭힐 지 모르니...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한다
200.4m봉(10:16)
족보있는 200.4m봉에서 좌측으로 내려가는데...
안부(10:19)
말이 씨가 된다고 했던가...갑자기 등로가 거칠어지기 시작한다
완만한 암릉으로 올라서니 족보에도 없는 무명봉이 산꾼을 기다린다
188.6m봉(10:27)
2주전의 1구간때보다도 오늘이 훨씬 힘이드는 느낌이다.
거기다가 어제밤에 찜질방에서 제대로 숙면을 취하지 못했고
아침을 부실하게 해결한 탓인지 서서히 체력 저하가 오기 시작한다
등로 좌측으로는 지맥길에서 많이 벗어나 있는 219.5m봉이
시원스레 보이고, 산줄기는 창포리로 이어진다
오늘은 아무래도 산행을 끝낼때까지 단단히 각오를
하고, 운명이라 생각하면서 길을 걷는게 편할듯하다
가단재(175m:10:32)
등로 좌측으로 고개의 역할을 잃어버린듯한 희미한 등로가
진도군 의신면 창포리 가단마을로 내려가는 고개라 해서
지도상에는 가단재로 표기가 되어 있어나 그냥 지나치기
딱 좋은 고개인데 가단마을에서 이름을 차용한 모양이다
의신면 창포리(昌浦里)에 있는 가단리마을은 창포 서쪽에
있는 마을인데 이 마을에서 매년 음력 1월 14일 밤
10시경에 지내는 마을 동제(洞祭)가 유명한 곳이라는데
산신을 모시는 산신제와 특별한 신체 없이 ‘가리대신’, ‘열성대신’,
‘본향대신’을 모시는 거리제를 함께 묶어서 지내는 동제이다.
등로 바닥에는 남도지방 산에서는 자주 만나는
마삭줄의 격려를 받으면서 능선으로 올라선다
가단재에서 올라서니 219.7m봉에 도착하는데 대덕산이라
쓰여있는 반바지님의 코팅지가 땅바닥에 나뒹굴고 있다
219.7m봉(대덕산:10:41)
진도군 의신면 칠전리와 창포리, 명슬리에 걸쳐 있는 봉우리로 국토지리정보원의
지도에는 그냥 219.7m봉이라 표기가 되어 있으나, 트랭글 앱에서는 대덕산이라
일러준다...대덕산에 대한 자료는 없으나 이 산 좌측 아래에 있는 창포리에 대한
자료에는 서남쪽으로 대덕산(大德山)의 끝자락에 입지하고 있으며 북쪽으로는
도목방조제 간척으로 조성된 농경지가 펼쳐져 있다고 기록되어 있으나 대덕산에
대한 갈증이 해소되지 않아서 많이 아쉽다.
대덕산이라 부르는 219.7m봉에서 동남쪽으로 내려가는데
다시 진도의 산길은 범여의 인내심 테스트를 하듯이 지독한
잡목지대가 갈길 바쁜 산꾼의 발길을 붙잡는다
낙엽속에 묻혀버린 급경사의 내리막길
肉身은 괴롭지만 지맥 한 구간을 끝낸다는 喜悅과
사명감 하나로 천천히 내려가는데, 내리막길이지만
그리만만하게 보았다가는 큰코 다치기 딱좋다
보이지 않는 길에 트랙을 쳐다보면서 내려가는데 나뭇가지에
말라 비틀어진 선답자의 시그널 하나가 왜 이리도 반가운지...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했던가...
무대포로 치고 내려서니 안부가 나온다
안부(10:58)
안부를 지나니 그물망을 쳐놓은 묘지가
나오기에 그물망을 넘어 묘지안으로 들어간다
묘지(11:00~20)
이른 새벽에 컵라면 하나로 해결한 아침 탓인지 배가 고파온다.
이곳 묘지에는 다행히 바람이 불지 않아서 베낭을 내려놓고
초코파이 2개와, 두유하나, 애기들이 먹는 소세지에다, 사과
한조각으로 점심을 해결하고, 베낭을 베개삼아 하늘을 보고
누워서 20분정도 점심(?)을 겸한 휴식을 취한다
亡者의 주택을 잠시 빌려서 누어 있으니 졸음이 밀려온
이곳에서 잠이들면 낭패일 것 같아서 졸지 않으려고 애를 쓴다
인생이라는 긴 여행
인생은
긴 여행과도 같습니다.
생명이 탄생하여
죽음으로 끝이 나는
약 7~80년의
유한한 여행,
그것이
우리의 인생입니다.
내가 살고 있는 집은
나의 영원한 집이 아닙니다.
얼마동안 머무르다가
언젠가는 떠나야 하는
한 때의 여인숙 입니다.
내가 쓰고 있는
이 육체의 장막은
나의 영원한
몸이 아닙니다.
얼마 후에는...
벗어 놓아야 할
일시의 육(肉)의 옷이요,
죽으면 썩어 버리는
물질의 그릇에 불과 합니다.
우리는
지상의 나그네 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죽음 앞에는 그 누구도
예외가 없습니다.
죽음에서 도피한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순례의 길에 어떤 이는
고독한 여행을 하고,
어떤 이는
행복한 여행을 하고,
어떤 이는
즐거운 여행을 하기도 합니다.
산다는 것은
길을 가는 것입니다.
사람은
사람이 가는 길이 있습니다.
짐승은
사람의 길을 갈 수 없고,
사람은
짐승의 길을 가서는 안 됩니다.
인간이 인간의 양심과
체면과 도리를 저버리고
짐승처럼
추잡하고 잔악한 행동을 할 때,
그는 짐승의
차원으로 전락하고 맙니다.
춘하추동(春夏秋冬)의
네 계절의 순서는
절대로
착오가 없고 거짓이 없습니다.
봄 다음에
갑자기 겨울이 오고,
겨울 다음에 갑자기
여름이 오는 일이 없습니다.
우주의 대 법칙,
대 자연의 질서에는
추호도 거짓이 없고
부조리가 없습니다.
옷이 나의 몸에 맞듯이
인(仁)이 나의 몸에서
떠나지 말아야 합니다.
인(仁)은
덕(德)중에 덕(德)이요,
남을 사랑하는 것이며,
참되고 거짓이 없는 것이요.
진실무망한 것이며
사리사욕을 버리고
인간의 도리를
다하는 것이며
꾸밈이 없이
소박하며 굳센 것입니다.
나 자신을 안다는 것은
무엇보다도
나의 설자리를 알고,
나의 나아갈 길을 알고,
나의 분수를 알며,
나의 실력을 알고,
나의 형편과 처지를 알고,
나의 책임과 본분을
제대로 아는 것 입니다.
안병욱 교수님의 “명상록” 중에서
묘지에서 꿀맛같은 긴 휴식을 취하고 묘지 아래로 내려서니 신경수 쌤의
시그널이 반겨주고, 그 아래로 803번 지방도가 지나는 돌박재가 보인다
돌박재(11:22)
진도군 임회면 명슬리외 의신면 거룡리의 경계에 있는 고개로 803번 지방도
(도로명 주소: 용호거룡로)가 지나는데 지도에는 돌박재로 표기되어 있으나
국토지리정보원의 지도에는 아무런 표기가 없는 무명고개에 불과하다.
이 지역 사람들은 상미제(上彌堤)라고 부르는데, 상미란 지명은 우측의 명슬리
마을에 있는 지명을 음차해 온 듯한데 명슬리(鳴瑟里)는 본래 진도군 임일면 속해
있던 지역으로, 1914년 행정 구역 개편에 따라 상미리와 중미리를 병합하여
명슬리라고 해서 임회면에 편입되었다.
예전에는 ‘매시리’, ‘매스레’로 부르다가 매가 미로 변하였으며, 마을 위치에 따라 상미·
중미·하미로 구분하였으며, 또 다른 유래로는 큰 산에서 내려다보면 마을 형체가
‘매화꽃 형국을 이루어 매시리’라 하였다는 설도 있다.
돌박재 시멘트 옹벽위로 올라서니...
벌목을 한 뒤에 방치되어 있는 간벌목들이 태클을 걸어된다
등로는 생각보다 그리 험하지 않으나 길 자체는 아예없다.
내가 길을 만들면서 올라가는데 간간히 만나는 선답자의
흔적이 그리 고마울 수가 없다...복받을깁니다
마삭줄이 군락을 이루고 있는 희미한 등로로 올라간다.
* 마삭줄은 협죽도과에 속하는 상록덩굴식물. ‘낙석’이라고도 하며, 한국과 일본이
원산지이며, 한국에서는 남부지방의 산과 들, 숲속에서 흔히 볼 수 있으며
주로 그늘진 곳에서 잘 자라고 공해에도 잘 견디지만 극심한 추위에는 약하다.
꽃은 5~6월에 피고, 열매는 8~9월에 익는데 크기는 약 5m이고 꽃말은 ‘하얀 웃음’이며,
기후변화에 민감하여 ‘국가 기후변화 생물지표종’으로 지정되어 있다.
빡센 오르막으로 올라서니 키가 큰 황칠나무들이 바람에
심하게 흔들리는데, 아마 바닷가가 가까워서 그런 모양이다.
176.9m봉(11:30)
등로는 남서쪽으로 살짝 꺽어져서 맥길을 이어간다
안부(11:33)
완만한 능선에 그리 힘들지 않은 곳에 있는
준.희 쌤의 격려문구...늘 고맙고 감사합니다
완만한 능선으로 올라서니 대학봉 정상이 나온다
대학봉(大鶴峰:190.4m:11:40)
진도군 임회면 명슬리와 의신면 송정리, 거룡리의 경계에 있는 산으로
명슬리의 마을 유래에는 태학봉(太鶴峰)이라고 기록되어 있으며, 한글
표기로 대학봉이라 해놓아 흔히 우리가 알고있는 대학교의 대학이 아니라
‘큰 대(大), 학 학(鶴)’이라는 기록을 보면 커다란 학(鶴)’ 과 관련된 지명인 듯
하나 지도에는 표기가 되어 있으나 진도군의 어느 자료에도 대학봉에 대한
기록이 없어서 아쉽기만 하다...커다란 학(鶴)이 살았던 산인가?...
대학봉 정상에서 살짝 동남쪽으로 꺽어져 맥길을 이어간다
안부(11:42)
오늘 산길에서는 이 정도면 거의 양반에 해당될 정도로 좋은 길이다
능선 좌측에 있는 묵은 임도를 따라서 잠깐이지만 편하게 길을 걷는다
잠깐 조우했던 묵은 임도는 우측 아래로 내려가고 맥길은 좌측 능선으로 이어진다
처음가는 길 / 도종환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은 없다
다만 내가 처음 가는 길일 뿐이다
누구도 앞서가지 않은 길은 없다
오랫동안 가지 않은 길이 있을 뿐이다
무명봉(11:51)
또다시 등로는 살짝 거칠어지기 시작하나...
오전에 지독한 잡목에 대한 학습효과 탓인지 이런곳은 식은죽 먹기다.
안부(11:56)
안부에서 올라서니 우측으로는 철조망이 보이고...
묘터의 흔적처럼 넓은 공터가 나오는데 족보있는 170.7m봉이다
용수봉(170.7m:12:02)
진도군 의신면 거룡리와 송정리, 임회면 명슬리에 걸쳐있는 산으로
정상에는 예전에 묘지가 있었던 장소처럼 보이는 펑퍼짐한 공터에
있는 커다란 참나무 높은곳에 준희쌤이 용수봉이란 산패를 걸어 놨는데
워낙 높은곳에 있어 무심코 가다보면 지나치기 딱 좋은 곳이다
용수봉이란 지명은 다음 지도에는 표기가 되어 있으나, 국토정보지리원의
지도에는 용수봉이란 지명 표기없이 그냥 170.7m봉이란 표시되어 있다.
이곳 용수봉에 대한 자료는 찾을길이 없다...진도군 당국에 산에 대한
무관심...너무 심한 아녀...
용수봉 정상에서 살짝 우측으로 꺽어져 10시 방향으로 내려간다
안부(12:05)
내리막길의 등로는 거칠어지고 우측 능선으로 내려가는 길
또 다시 닥쳐오는 苦行의 시간이지만, 이제는 체념한 체
내려간다...이것도 운명이라 생각하면서...
우측에 보이는 철조망을 따라서 내려간다
거친 아카시아숲을 헤치면서 내려서니...
갑자기 눈 앞에 나타난 대파밭
사람은 산이 그리워서 산으로 향하고
산도 사람이 그리워서 민가로 내려오는
모양인데, 양지가 있으면 음지가 있고
음지가 있으면 양지가 있는 陰陽의 조화인가?...
대파밭으로 내려서서 시멘트 농로로 내려가는데 동남쪽에 죽청마을이 보인다
진도군 의신면 송정리에 있는 죽청(竹靑) 마을은 송정리 서쪽에
위치한 마을로 대나무가 많아 푸르렀다고 하여 죽청이라 불리는 마을이다.
대학봉(大鶴峰)과 봉호산(峰虎山)으로 이어진 산릉 완경사면에 입지하고
있으며, 죽청리의 오른쪽에는 성주봉이 솟아 있고, 왼쪽에는 용수봉(龍首峯)이
뻗어내려 자연경관이 아름다운 마을로 북동쪽으로 송정리와 접하고 있고,
서쪽으로는 봉호산을 경계로 임회면과 접하고 있으며, 18번 국도에서 갈라진
2차선 도로가 죽청리까지 연결되어 있는데 자연지명으로는 나팔재, 사장등(射場嶝),
민등(敏嶝), 송지등(松池嶝), 큰덜, 안골, 느진골, 깊은골 등이 있다.
겨울 배추밭은 난생 처음본다
잠시후에 오를 봉호산을 바라보면서 농로를 따라서 죽청고개로 내려간다
죽청고개(12:17)
진도군 의신면 송정리 죽청마을에서 임해면 명슬리 싹바위골로 이어지는
고개인데, 주변에는 겨울임에도 푸르름을 뽐내는 배추와 봄동, 대파밭이
많이 보이고, 사통팔달로 이어지는 농로같은 시멘트 도로의 도로명 주소는
매실로이다
죽청고개에서 바라본 명슬리 싹바위골쪽의 모습
혼자놀기...오늘 산행중 유일한 인증샷
죽청고개에서 좌측으로 50m정도 내려오니 삼거리가 나오는데
이곳이 서해랑길이 지나는 곳이란다...우측으로 꺽어져 시멘트
도로를 따라서 매듭재가 있는 매실골 방향으로 향한다
잠시후에 오를 봉호산의 모습
허언시(虛言詩) / 김삿갓
靑山影裡鹿抱卵(청산영리녹포란)
푸른 산 그림자 안에서는 사슴이 알을 품었고
白雲江邊蟹打尾(백운강변해타미)
흰 구름 지나가는 강변에서 게가 꼬리를 치는구나.
夕陽歸僧계三尺(석양귀승계삼척)
석양에 돌아가는 중의 상투가 석 자나 되고
樓上織女囊一斗(누상직녀낭일두)
베틀에서 베를 짜는 계집의 불알이 한 말이네
매듭재로 향하는 길에는 떡배추로 불리는 봄동이 수확을 앞두고 있다
봄동밭 너머로 보이는 의신면 송정리(松亭里)와 송정저수지의 모습
송정리는 주로 낮은 산지로 이루어져 있어 용수봉, 제봉 등이 분포하며
송정저수지가 위치해 있으며, 자연마을로는 송정, 오촌, 죽청, 탑곡, 활곡 등이 있다.
송정은 송정리의 본 마을로 지명은 소나무 정자가 있던 것에서 유래되었으며,
오촌은 죽청 앞에 있는 마을이고, 죽청은 송정 서쪽에 위치한 마을로 대나무가 많아
푸르렀다고 하여 죽청이라 불리는 마을이고, 탑곡은 송정 북쪽에 있는 마을이며
탑이 있었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활곡은 송정 남쪽에 있는 마을로 지형이
활처럼 되어 있다고 하여 활곡이라 하며, 활곡 동쪽에 진일 염전에 있어 제염(製鹽)
등이 행해진다.
매듭재로 올라가는 도로를 버리고 다시
고행길이 시작되는 숲 속으로 향한다
아카시아 나무들의 거센 저항을 뚫고 올라가니 봄동밭에
이용되는 커다란 물 웅덩이가 보이고 능선으로 올라간다
능선으로 올라서니 동백나무에서 간벌한 나뭇가지가
어지럽게 널려있고 서서히 고도를 높이면서 봉호산으로 향한다
맥꾼들의 흔적이라고는 전혀 보이지 않는 등로를
치고 오르면서 수시로 트랙을 확인하는데 정상이다.
125m봉(12:48)
125m인 무명봉에서꺽어지는 우측 아래에는 樹齡이
꽤 돼는 편백나무에서 내뿜는 피톤치드향이 머리를
맑게 해주는지 머리가 개운하다
고개(12:52)
예전에 민초들이 넘은듯한 좌.우로 뚜렸이 등로가 보이나
지금은 맥꾼 이외는 아무도 다니지 않은듯한 잊혀진 고개이다
등로는 잘 보이지 않지만 잡목의 저항이 없으니 걸을만하다
무명봉(13:05)
무명봉을 지나 보이지 않은 등로를 5분정도 헤매면서 올라 봉호산에 도착한다
봉호산(峰虎山:193.2m:13:10)
진도군 임회면 용호리와 죽림리, 의신면 송정리의 경계에
있는 산으로 이곳 역시 지명유래에 대한 자료를 알 길이 없어
아쉬운 맘만 가지고 서둘러 길을 떠난다
봉호산 정상 삼각점(△진도480 / 1980재설)
봉호산 정상에 있는 독도님의 흔적
봉호산 정상에서 남쪽으로 향하는 능선으로 걸어가는데,
주변에는 간간히 동백과 황칠나무들을 만난다
오후가 되었는데도 바닷가라 그런지 海霧가 밀려오고
잠시후에 남쪽으로 향하는 맥길은 우측으로 꺽어지는
갈림길이 나온다
갈림길(13:13)
우측으로 급하게 꺽어져서 내리막길로 향한다
나뭇가지 사이로 가야할 옹골산과 여귀산이 해무로 인해 흐릿하게
보이는데 조망도 없고, 잡목만 무성한 그저 밋밋한 내리막으로 향한다
급경사의 내리막길.
봉호산 오름길에 잔잔하던 바람이 다시 거세게 불기 시작한다
좌측의 나뭇가지 사이로 진도 앞바다가 보이고 바다 가운데
떠있는 접도(接島)에 우뚝솟은 남망산(165.9m)은 흐릿하게만
보이는구나.
전라남도 진도군 의신면에 있는 접도는 조선시대에 유배지였던 이 섬에
사람들이 모여들어 살기 시작한 것은 불과 100여 년밖에 되지 않는다고
하며, 진도의 남서쪽 끝과 접도의 북서쪽 끝을 잇고 있는 곳인데, 접도를
'섬 속의 섬'이라 일컫는데, 예전에는 그만큼 접근하기 어려웠던 섬이다
수품항같은 인근에 풍부한 어장을 보유한 도서지역임에도 불구하고 예로부터
조선시대 사대부들의 영향으로 어업을 경시해온 탓에 어업의 비중이 낮다고
하며, 진도는 조선시대 대표적인 문인들의 유배지였기 때문에 어업을 천시하던
양반들의 유배생활로 인해 그 영향을 많이 받았을 것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진도 본섬에 연한 접도는 멸치잡이, 김과 미역, 톳 양식을 비롯해 어업에
오랫동안 종사해왔으며, 수품리 포구에는 고깃배들이 제법 정박해 있어 진도와는
다르게 어촌의 면모를 갖추고 있는 섬이다.
봉호산에서 내려가는 길도 장난이 아니네...
잡목의 강력한 태클에 숨을 돌리면서 남쪽으로 바라보니
바닷가에 있는 죽림리는 대파밭인지 온통 들판이 푸르구나
진도군 임회면에 속해있는 죽림리(竹林里)는 여귀산 앞의 평지에 자리한
마을로, 동쪽으로 바다를 끼고 있는 해안지역이며, 작은 하천이 흘러
논농사가 주로 행해지는 마을로 예전에는 죽림리 지역이 속에 깊숙이 있다하여
‘속동’이라 칭하였는데 ‘죽림’으로 변하였다고 하는데, 이는 비봉귀소(飛鳳歸巢)라는
명당에서 연유하였다고 하는데, 예부터로 봉은 죽실(竹實)을 먹는다는 이유로
붙여진 것이며, 봉치라는 재의 이름도 있다.
1350년경 나주임씨가 정착한 것이 시초라 전해지며, 이후 김해김씨와 전주이씨
등이 입주하면서 마을이 형성되었으며, 북쪽의 봉호산[191m]과 남서쪽에 있는
여귀산[459m]의 줄기가 마을 뒤로 뻗어 분기한 산릉에 둘러싸여 있으며, 동쪽으로는
멀리 의신면에 속한 접도가 한눈에 들어오며, 여귀산에서 흘러온 물을 모아 죽림제를
만들어 농경지에 농업용수를 제공하여 농사를 경작하고 있다
개고생을 하면서 내려서니...
임도 삼거리가 나오고...
반바지님께서 도로옆 나뭇가지에 무지개재라는 코팅지를 붙혀놨다
무지개재(105m:13:25)
진도군 임회면 죽림리 무지개골에서 명슬리 매실골로
넘어가는 고개로 직진 오르막 도로로는 지맥길 능선인
옹골산과 여귀산으로 이어지는 시멘트 길이다.
다음 지도에는 무지개재로 표기되어 있으나, 국토지리정보원의
지도에는 아무런 표식조차 없는 무명고개이다...지명은 고개
좌측 아래에 있는 무지개골에서 음차해온 듯 하다
지금 시간이 13시 25분...오늘의 등로는 정말 최악이다
거리는 얼마 안되지만 잡목의 극심한 저항에다 길이 너무 험해서
산행 속도가 너무 나지 않았고, 어젯밤에 찜질방에서 수면을 전혀
취하지 못하고, 아침 식사마저 부실하고...날씨조차 협조(?)가
전혀없어 최악의 컨디션으로 여기까지 온 것만으로 기적이다
여기서 많은 고민을 하다가 과감하게 산행을 접는다.
이곳에서 옹골산, 여귀산을 오르면 중간에 탈출로가 전혀없고
그러면 상만리고개까지 가야 하는데 거리상으로 5km가 더
남아있어 내 체력으로는 거의 불가능한 상태다.
지금 산행을 종료하고 죽청마을까지 가서 택시를 부르면
진도에서 강남으로 다이렉트로 가는 버스(15:00)를 탈 것 같다
그래!...일찍 집에가서 좀 쉬자
라디오에서 흘러 나오는 음악에 취해 무지개재에서 매듭재로
향하는 도로를 걸어가는데 10분 정도 되었을까, 갑자기 뒤에서
트럭한대가 크락슨을 울리는게 아닌가...내가 누구여!...앵벌이(히치)
전문가 아닌가...길을 막고 죽청마을 태워 달라고 하니 타라고 한다
무조건 트럭의 적재함에 올라서 가는데 조금전에 지났던 죽청고개
우측 아래의 민가로 들어서더니 차에서 내리라고 한다...여기서
18번 국도가 지나가는 죽청마을까지 가려면 10분 정도 걸린다
죽청마을 가는 길의 민가(13:45~14:55)
기왕 태워 주시는 거 도로까지 태워주시지 하는 생각을 하면서 적재함에서
내려서서 고맙다는 인사를 건네면서 가려고 하는데 지독한 전라도 사투리로
뭐라고 하는데 처음에는 뭔 소리인 줄 몰랐다...기왕 왔으니 술한잔 하고
가라고 붙잡는다...울며 겨자먹기로 방으로 들어간다
아!...이렇게 고마울 수가...
이 분들이 죽림리 바닷가에서 자연산 굴무침을 사가지고 오는
길이었는데 소주 한잔만 하고 가라고 붙잡는 바람에 들어가서
맛있는 굴무침에다 소주 2잔을 얻어 마시고 나오려하는데
또 붙잡는다...서울가는 버스를 타기위기 택시를 불러야 한다고 하니
아는 진도택시 기사가 있으니 걱정 말라고 하면서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내가 먹은 소주가 한병이 넘었다...오랫만에 술을 마신 탓인지
알딸딸하다.
1시간쯤 지나서 그 분들이 불러준 택시가 도착하고
미안하여 술값으로 만원짜리 지폐한장을 주니까
진도 인심은 그런거 아니랑게 하면서 기어이 받지않아
고맙다는 인사를 건네고 택시를 타고 진도 터미널로 향한다
진도터미널(15:10)
택시에서 내려 터미널로 들어선다...10분 차이로 서울 강남으로 가는
버스를 놓치고, 예전에 동서울터미널로 다녔던 16시 20분 버스의
노선은 폐지되었다...하는 수 없이 목포로 가는 버스표를 예매한다
진도발 → 목포행 버스표
15시 20분에 진도를 출발하는 버스에 오르자마자 술 기운 탓인지
非夢似夢간의 잠에 빠졌다가 버스가 덜컹거리는 바람에 깨어나니
버스는 목포터미널에 도착했다
목포터미널(16:30)
터미널에 도착하여 17시에 출발하는 서울행 버스표를 예매한 다음에
화장실에 가서 간단하게 씻고, 옷을 갈아입은 다음에 따끈한 커피
한잔으로 정말 힘들었던 오늘 산행의 피로를 털어내려 한다
목포발 → 서울행 버스표
17시에 목포를 출발한 버스에 올랐는데 貴人들 덕분에 얻어마신
술 기운 탓인지 또다시 깊은 잠에 빠졌다...버스는 정안 휴게소에
들렸다가 다시 출발하는데 생각보다 고속도로에 차량들이 많지
않아 예정된 시간보다 조금 일찍 서울에 도착하여 집으로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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