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일자: 2024년 02월 04일
☞산행날씨: 잔뜩 흐린 날씨...오후에 비
☞산행거리: 도상거리 9.4km / 8시간 05분 소요
☞참석인원: 나홀로 산행
☞산행코스: 무지개재-갈림길-173.5m봉-김해김공 묘-옹골산-서해랑길 갈림길
안부-309.6m봉- 317.2m봉-조망바위-안부-무명봉-안부-갈림길-조망봉
안부-조망바위-무명봉- 409.9m봉-갈림길-국립국악원 갈림길
여귀산-안부-너럭바위-안부-무명봉-갈림길-무명봉-386m봉
폐헬기장-안부-갈림길-묘지-귀성삼거리-갈림길-안부-160.1m봉
갈림길-갈림길-130.1m봉-임도-148.6m봉-묘지-안부-168.1m봉
진주강씨 묘-안부-182.7m봉-굴포재-갈림길-양봉농가-연대산
전주이공 묘-농로 끝-신동삼거리
☞소 재 지: 전라남도 진도군 의신면 / 임회면
진도로 가는 길은 참으로 멀고도 험한가보다.
서울에서 버스로 5시간이나 걸리니 산행을 하기전에 지치는 느낌이다.
그렇다고 162개 지맥을 마무리 하기 위해서는 안 갈수도 없는 노릇이다.
4번째 진도 지맥길을 걷기 위해 토요일 오전에 사무실 업무를 마감하고
집에서 대충 베낭을 챙겨 집에서 그리 멀지않은 강남 터미널로 향한다
오늘 산행구간의 지도
강남발 → 진도행 버스표
강남터미널에 도착하니 15시 45분...표를 예매하고 잠시후에
진도가는 버스에 오른다(참고로 진도가는 손님이 별로 없는지
28인승 우등 버스에 많아봐야 10명이내인데, 대부분의 손님은
중간 기착지인 무안터미널에서 내리고, 진도로 가는 손님은
많아봐야 서너명 수준이다)
오후 4시에 출발한 버스는 무안을 거친 다음에 밤 9시경에 진도
터미널에 도착한다
진도터미널 버스 시간표
승객이 별로 없는지 버스 노선이 많이 줄어든 듯 하다
진도 군내버스 시간표
진도터미널(21:00)
서울울 출발한 지 5시간만에 진도 터미널에 도착하여 대합실을
빠져 나오니 서울에서는 내리지 않은 비가 꽤나 많이 내린다.
일기예보에는 내일은 하루종일 흐렸다가 저녁 6시 이후로 비가
온다고 하니 일단 믿어봐야제...오늘은 지난주처럼 여관방을
찾으러 안 다니고, 곧바로 찜질방으로 향한다
찜질방(21:25~08:35)
모텔을 겸하고 있는 찜질방에 들려서 행여 편하게 쉬고 싶어서
방이 있냐고 물어보니, 방은 있는데 70.000원을 달라고 한다.
왜 그리 비싸냐고 하니까, 50,000원짜리 방이 있긴한데 샤워
시설이 없는 방이라고 하는데 말문이 꽉 막힌다.
말이야, 막걸리야...하도 기가차서 아무말도 않하고 찜질방 티켓을
끊은 다음에 사우나에 들어가서 오랫동안 욕조에 있다가 수면을
취하러 찜질방을 향한다...찜질방에는 지난주와는 달리 대목밑이라
그런지 손님이라곤 나 이외는 한명밖에 없어서 아침까지 편하게
수면을 취했다.
진도지방의 숙박업소들...잠깐 손님이 많다고 이렇게 바가지 씌었다간
코딱지만한 섬에서 제주도처럼 한방에 훅 갈수도 있다는 걸 명심하소.
제주도의 장사치들이 육지 사람을 호구로 알았다가 그 돈이면, 일본이나
동남아에 가서 멋지게 잘 놀다오니...발걸음을 돌리는 바람에 지금은
장사가 안돼서 개고생한다는 뉴스를 아직도 못본 모양이네...
나 역시 3년전에 제주도 갔다가 바가지 왕창 쓰고는 지금은 그쪽을
바라보며, 오줌도 안 누고 있소...있을 때 잘하소
아침에 일어나서 샤워를 마치고 찜질방을 나오니 도로 건너에
김밥집이 있어서 이곳에서 해장국으로 아침을 해결하고 택시를
불러서 오늘 산행 들머리인 무지개재로 향한다
무지개재(105m:06:20)
진도군 임회면 죽림리 무지개골에서 명슬리 매실골로
넘어가는 고개로 직진 오르막 도로로는 지맥길 능선인
옹골산과 여귀산으로 이어지는 시멘트 길이다.
다음 지도에는 무지개재로 표기되어 있으나, 국토지리정보원의
지도에는 아무런 표식조차 없는 무명고개이다...지명은 고개
좌측 아래에 있는 무지개골에서 음차해온 듯 하다.
오늘이 봄이 시작된다는 立春인데 06시 30분이 다되어 가건만
아직도 黎明이 시작될 기미조차 안 보인다
산행을 시작하다(06:25)
택시기사와 작별을 하고, 베낭에서 헤더렌턴을 꺼내서
장바를 점검한 다음, 산행전에 버리는 즐거움을
만끽하고 산행을 시작한다
헤드렌턴 건전지가 오래되서 그런지 불빛이 흐릿하다.
그나마 다행인 건 초반에는 농장으로 이어지는 시멘트 임도와
마루금이 같이가고 있기에 한동안 시멘트 도로를 따라서 걷는다
갈림길(06:35)
편안한 도로를 따라서 10분정도 걸어가니 우측으로 농장으로
내려가는 길이 나오고 직진으로 이어지는 임도에는 바리게이트가
쳐져 있는데, 이곳에서 임도를 버리고 ‘국가지점번호 나 라 8553
0138’ 팻말 뒷쪽의 숲속으로 향한다
‘국가지점번호 나 라 8553 0138’ 팻말 뒷쪽의 숲속으로 올라서니
등로는 전혀 보이지 않고, 바닥에는 칡넝쿨이 태클을 심하게 걸어대고,
윗쪽으로는 망개나무, 노간주, 등 가시종류의 잡목들이 베낭을 물어 뜯어댄다.
한참을 버벅대는데 길은 보이지 않고, 잡목의 태클은 심해도 너무 심하다.
3번이나 진도지맥을 걸으면서 겪었던 경험으로 각오는 하고 시작한 산행이지만
초반부터 미칠것 같다...거기다가 어제내린 비 때문인지 베낭과 옷이 금새 다 젖어 버린다
짙은 어둠속에 어디로 가야할 지 모르겠다
옆으로 가다가 뒤로 빽했다가 위로 올라가는데
생각보다 시간은 많이 지체된다
173.5m봉(06:50)
얼마되지 않은 거리를 어둠속에 헤매다가 보니
생각보다 많은 시간이 걸렸다...그나마 다행인게
천천히 아니 빨리 걸을수도 없는 산길에 올라서니
조그만 봉우리 하나를 어둠속에 만난다
서서히 黎明이 시작되고 사물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한다.
벌목을 한 능선으로 올라서니 석등과 문인석이 서 있는
김해김공 묘지가 나온다
김해김공 묘(06:55)
김해김공 묘의 석등
김해김공 묘의 문인석
묘지를 지나자마자 옹골산 정상이 나오는데 아직까지
날이 완전히 밝아오지 않은 상태라서 그런지 똑닥이
카메라는 깨끗한 그림을 읽어 내지 못하는데 지도상의
옹골산(211.5m) 정상에 올라서니 나뭇가지에 걸린
선답자의 시그널 하나가 바람에 심하게 흔들린다
옹골산(211.5m:06:57)
진도군 임해면 용호리와 죽림리의 경계에 있는 산으로 국토정보지리원의
지도에는 211.5m라고 표기되어 있으나 다음 지도에는 옹골산이라 표기되어
있는 산으로 밋밋한 봉우리에 키가 큰 갈참나무 한 그루가 정상을 지키고 있다.
지명은 이 산의 남쪽 아래에 죽림리 “옹골”이란 지명에서 따온 것으로 보이며
전라도 지방사투리로 옹기를 옹골이라 부르니 ‘옹기’의 방언인 셈이다.
선답자들의 산행기에는 갈참나무 저 윗쪽에 준.희 쌤의 옹골산 산패가
있었는데 아무리 찾아봐도 옹골산 산패가 보이지 않는구나...그림상으로
위가 짤리긴 했으나 분명히 보이지가 않는다
옹골산에 대한 아쉬움을 뒤로하고 내려가는데 길은 좋다
서해랑길 가는길(07:05)
옹골산에서 편안한 길을 따라서 내려오니 좌측으로
뚜렸한 내리막길이 보이는데 서해랑길로 이어지는 길이다
서해랑길도 이런 험한 곳이 있는가보다
안부(07:06)
펑퍼짐한 안부 벌목지가 나오고 우측으로는 옹골산 오름길 임도에서
헤어진 비포장 임도가 보이고 벌목지대를 지나서 오르막으로 향한다
오르막이 시작되고...반가운 선답자분이 길을 안내한다
갑자기 등로는 사라지고, 힘이 들지만 조금전에 어둠속에
개고생한 것에 비하면 훨 낫다...편안한 마음으로 오르는데
비에젖은 너덜길이 미끄러워서 조심스레 올라간다
등로는 보이지 않지만 선답자들의 흔적이 있으니 똑바로 간다는거겠지
어차피 오늘 산행도 힘들기는 마찬가지이다
한발자국, 한발자국 발길을 옮기는데, 비에젖은 낙엽이 미끄러워
올라서면 미끄러지고, 또다시 올라서기를 반복하면서 뚜버기처럼
걷는다...어차피 진도의 산길에서 호사를 바라는 것 일찌감치 포기했다.
오르고 미끄러지고를 반복하면서 오르다가보니 암릉 구간이
보이기 시작하는데 힘든 오르막길을 다올라 왔다는 느낌이다
309.6m인 암봉에 올라서니 진도 앞바다가 한 눈에 보인다
309.6m봉 정상에 올라서서 조금전 어둠속 지나온 옹골산을 내려다 본다.
옹골산 뒷쪽 바다에는 와불상(臥佛像)처럼 보이는 접도가 환상적이다
접도 뒷쪽으로는 해가 떴는지 구름 사이로 붉은 빛이 보이나 잔뜩 흐린
날씨 탓인지 별 감흥이 오질 않는구나
* 와불상(臥佛像)은 불교의 불상들 중 누워있는 형태의 불상을 와불(臥佛) 또는
와상(臥像)이라고 하는데, 석가모니 부처님이 열반하는 모습을 본따 만든 것이라
열반상이라고도 하며 보통 옆으로 누운 상태에서 한 쪽 팔로 머리 옆을 괴는
자세로 많이 만든다. ..동남아권에 가면 굉장히 자주 볼 수 있지만, 동아시아권인
한국, 중국, 일본에는 드물게 존재하는 형태의 불상이다.
309.6m봉(07:45)
2주에 걸었던 북쪽을 바라보니 진도의 최고봉인 점찰산은 어제내린
비 때문인지 구름을 잔뜩 이고서 자기의 속살을 보여주길 거부한다.
그래!...니 맘인데 난들 어쩌겠나...니 기분 대로 살아라
309.6m봉에서 잠시 머물다가 다시 길을 나선다
여름철에는 참으로 힘이 들겠구나...길이 보이지 않는다
세상살이에 언제나 꽃길만 있을수는 없잖은가...이제는
이런곳이 野性을 잃지 않은 듯 하여 더 情感이 가는구나
317.2m봉(07:48)
지독한 잡목에 317.2m봉 정상은 갇혀 버렸다.
바닥에 뭔 용도로 사용됐는지 망가진 FRP 쪼가리가
깔려있고, 족보있는 정상에서 당히 만나는 준.희쌤의
산패는 보이지 않고, 선답자의 시그널에 317.2m 표식만
보이고, 트랙에서도 이곳을 317.2m봉이라 표기가 되어있다
317.2m봉 서남쪽 바닷가쪽에는 꼬깔처럼 오뚝솟은
오봉산(200.5m)가 멋진 모습으로 보이는데, 갈수록
밀려오는 안개 때문에 더 자세히 볼 수 없어 안타깝다
진도군 임회면 죽림리와 상만리에 걸쳐있는 오봉산(五峰山:200.5m)을 멀리서보면
마치 꼬깔처럼 보이는데 봉우리가 다섯 개여서 오봉산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오봉산에는 돌로 쌓은 도리장이 있는데, 일제강점기 때 일본 사람들이 마을 사람들을
강제로 동원하여 쌓았다고 하며, 도리장(둥글게 빙 돌려서 베거나 파다) 에 포를 장치해
배가 지나가면 쏘기 위한 것이다
가야할 여귀산도 안개에 휩싸이기 시작하면서 夢幻的인 분위기가
산꾼의 눈을 호강시켜주는구나... 그래 이 맛에 산에 오는거 아이가...
조망바위(07:50)
안부(07:53)
안부를 지나자마자 너럭바위가 나오고 계속되는 암릉의 연속이다
무명봉(07:55)
진도지맥을 걸으면서 잡목과 거친 등로의
耐性 때문인지 이런 길은 이제 식은 죽먹기다
등로에서 바라본 죽림저수지와 임해면 죽림리 웃골의 모습
예전의 죽림리(竹林里)는 마을이 속에 깊숙이 있다하여 ‘속동’이라 칭하였는데 ‘죽림’으로 변하였다고
하며, 이는 비봉귀소(飛鳳歸巢:봉황이 둥지로 날아 들어오느 형국)라는 명당에서 연유하였다고 하는데,
예부터로 봉은 죽실(竹實)을 먹는다는 이유로 붙여진 것이며, 봉치(峰峙)라는 재의 이름도 있으며
1350년경 나주임씨가 入鄕 하여 정착한 것이 시초라 전해지며, 이후 김해김씨와 전주이씨
등이 입주하면서 마을이 형성되었다고 한다.
남녘땅 진도에는 벌써 봄이 시작되려는 모양이다.
어제내린 비 때문인가...물을 잔뜩 머금은 裸木의
나뭇가지에는 새싹을 틔우기 위한 준비작업중이다
안부(08:00)
안부를 지나니 좌측 아래의 죽림리 탑립마을에 올라오는 제도권 등로가 보이는데,
아마도 여귀산으로 오르는 일반 등산로인 모양이다... 죽림리에 속해있는 탑립마을은
‘탑이 서 있던 곳’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갈림길(08:04)
빛바랜 이정표(여귀산정상←1230m , 국립국악원←2660m,
→임도 1,560m →강계해변 5410m)가 나오고 여기서부터
여귀산으로 가는 길은 아주좋다
조금씩 고도를 높이면서 암봉으로 향한다
조망봉(08:08)
동북쪽으로 눈을 돌리니 지난주에 걸었던 진도지맥 마루금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너무나 힘들게 걸었던 산행이기에
더 기억에 생생한 듯 하다
조망봉 아래로 보이는 진도섬을 휘감고 있는 18번 국도가 뱀처럼 보이고,
꼬깔처럼 보이는 오봉산(200.5m) 전에는 보덕산(150m)이 나도 산이여
하면서 오봉산에게 대드는 형태이다(범여의 생각中에서)
그 주변으로 펼쳐지는 죽림리의 조그만 마을들이 이 산꾼에게는
풍요롭게만 보이고, 황금기미 포구 뒷쪽으로 바다에 떠있는 코닥지만한
섬이 굴포항 앞에 떠있는 죽도인 듯 싶다
가야할 여귀산은 점점 가까워진다.
안부(08:10)
완만한 오르막으로 오르는데 또 다시 암릉구간이 시작되고...
암릉을 우회하면서 걸어가는데 마치 백두대간상의
석병산에 있는 일월문처럼 멋진 바위를 지난다
암릉을 휘돌아서 일월문처럼 생긴 바위위로 올라가는데 비온 후에
범여의 肺腑에 다가오는 상큼한 공기가 숨쉬기를 훨씬 편하게 해준다
암봉위로 올라간다
조망바위에서 바라본 409.9m봉(앞)과 여귀산(뒤)이
멋진 모습으로 다가와서 산꾼의 가슴을 설레게 한다
409.9m봉은 점점 가까워지고...간간히 보이는 옅은 안개가 조금은 아쉽다
서남쪽으로 보이는 길다란 접도 우측에 코딱지만한 섬들이 보이는데
상구자도와 하구자도가 안개 탓인지 흐릿하게만 보인다
진도군 의신면에 속해있는 구자도리(九子島里)는 본래 진도군 명금면의 지역으로서
모양이 개처럼 생겼으므로 개섬, 또는 구자도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소구자도, 갈명도, 밀매도를 병합한 후 구자도리라 하여 의신면에 편입하였고, 1982년
1월 1일에는 구자도리(拘子島里)를 구자도리(九子島里)로 명칭을 변경하였다
의신면의 남부 바다에 있으며, 상구자도와 하구자도의 2개의 작은 섬으로 되어 있으며
회동과는 11.6㎞에 있는 섬으로 교통망은 옛날에는 정기 여객선이 왕래하였으나 인구 감소로
현재는 수품항(1종항)에서 사선으로 가거나 굴포에서 갈 수 있다고 한다.
조망바위(08:24)
겨울산 / 황지우
너도 견디고 있구나
어차피 우리도
이 세상에 세 들어
살고 있으므로
고통은 말하자면
월세 같은 것인데
사실은 이 세상에
기회주의자들이
더 많이 괴로워하지
사색이 많으니까
빨리 집으로 가야겠다.
서쪽으로 눈을 돌리니 점찰산과 더불어 진도의 명산으로 소문난 동석산
(銅石山 :217.7m)이 안개에 휩싸인 채 몸환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진도군 지산면에 있는 산으로 급치산(223.5m) 낙조대의 동북쪽에 있는 화산암 계열의
암릉으로 된 산으로 능선이 남동쪽~북동쪽으로 뻗어 있으며, 거대한 성곽과 같은 암릉과
칼날같은 나이프리지 암릉이 1.5km정도 남북으로 뻗어 있으며, 조망이 뛰어나서 진도평야와
남해바다, 다도해를 한 눈에 볼 수 있는 산이다
산의 서쪽으로는 우리나라에서 해가 가장 늦게진다는 세방낙조(細方落照)가 있고, 동쪽 6부
능선쯤에 동굴이 있어 마파람이 불면 은은한 종소리를 낸다는 ‘종성골(鐘聲窟)’이 있고 산자락엔
천 개의 종을 매달았던 천종사라(千鐘寺)는 절이 있는데, 동석산에 대한 지명유래에 대하여 알려진
것은 없다고 하는데 지방도 801번으로 연결되어 있으며 진도읍에서 30분 거리이다
등산로는 하심동에서 출발하여 미륵좌상암굴을 지나 동석바위전망대, 칼바위전망대,
동석산 정상, 삼각점, 석적막산, 가학재,작은애기봉, 세방낙조휴게소로 이어지는
코스이며 워낙 가파른 절벽이기 때문에 위험한 구간 군데군데 철제로 안전난간과
계단이 설치되어 있다.
* 세방낙조(細方落照)는 세방리 앞바다에 점점이 떠 있는 섬들의 모습이 특이하여 더욱
유명하며, 특히 세방낙조는 다섯 가지 색깔이 펼쳐져 오색낙조라고도 하며 세방리
앞바다에 점점이 떠 있는 섬들의 모습이 다양하고 특이하여 낙조 전망대에서 바라다
보이는 섬으로는 양덕도(발가락섬), 주지도(손가락섬), 장도, 소장도, 당구도, 사자섬, 혈도,
가사도, 불도, 가덕도, 상갈도, 하갈도 등 20여 개 정도이다.
여귀산으로 가는 길은 암릉의 연속이다
너럭바위를 지나면서 이름없는 봉우리를 만난다
무명봉(08:28)
무명봉을 내려서니 쫙 갈라진 바위틈이 멋있다
오늘 진도의 기온이 영상 16도라고 하는데 그래서 그런지는 몰라도
산 곳곳에는 봄기운이 스멀스멀 땅 속에는 올라오는 느낌이지만, 이곳이
바닷가에다, 잔뜩 흐린 날씨라 그런지 덥다는 생각은 들지가 않는구나
틈이 벌어진 암릉 사이로 올라서니 멀리서 멋지게 보였던 409.9m봉으로 올라간다
409.9m봉 오름길에 만난 이대용 대장의 흔적
409.9m봉(08:30)
밑에서 보면 아주 멋진 봉우리인데 위에서니 정말 볼 품없는 봉우리다
얼마나 멋있길래 이곳을 작은 여귀산이라 부르는 이유를 알 것만 하다
가야할 여귀산은 점점 가까워지고 좌측 아래쪽은 18번 도로가
지나가는 밭 너머로 보덕산과 오봉산이 바다로 향하고 있다
409.9m봉에서 여귀산으로 향하는 급경사의
데크목 계단으로 내려가는데 계단이 많이
망가져서 조심스레 내려가야 할 듯 싶다
까칠한 암봉으로 된 죽림리 탑림마을은 참으로 여유롭고, 풍요롭다.
비온 뒤의 흐린 날씨만 아니라면 멋진 사진 하나를 건질만한 곳이다
좌측으로 바다에 누워있는 접도(接島)는 본도인 진도와 접해 있어 접도로
불리며, 접섬·금갑도·갑도·접배도라고도 불리며, 섬가운데 남망산(165.9m)이
우뚝 솟아있다
급경사의 암봉을 망가진 계단을 따라서 내려오니 동백나무
숲이 나오고 잠시후에 탑립마을에서 올라오는 갈림길을 만난다
갈림길(375m:08:33)
여귀산이 360m 남았고, 지나온 140m지점에 밀매실재라는 이정표가
있으나, 밀매실재는 어딘지도 지나왔으니 아쉽기만 하다...그런데
반바지님의 코팅지에는 이곳이 밀매실재라고 해놨는데 어느곳이
밀매실재인 줄 알지도 못하고 여귀산으로 향한다
갈림길에 있는 이정표
여귀산 오르는 길에서 오늘 왔던 길을 뒤돌아 본다.
그런데 조금전에 지나왔던 작은 여귀산이라 불리우는 409.9m봉이 마치
스리랑카에 성지 순례갔을때 봤던 시기리야(Sigiriya)에 있던 바위궁전
(Rook Palace)과 흡사한 느낌이라서 깜짝 놀랬다...그곳에서는 몰랐는데
지나와서 뒤돌아보니 정말 멋있구나.
그래서일까... 산과 女人은 멀리서 봐야 예쁘다고 했던가...
국립국악원 갈림길(08:44)
망가진 이정표가 나뒹구는 좌측 내리막길로는 국립국악원으로 향하는
길이고, 맞은편에 보이는 철계단으로는 여귀산 오르는 길이다
진도군의 산에 대한 무관심은 상상을 초월하는 느낌이다
여귀산 가는길
여귀산으로 오르는 철난간은 많이 부식되어 있어 조심해야 할 곳이다
높은 산치고 정상을 쉽게 허락하는 산이 없듯이 이곳 여귀산도
그럴 모양인가보다...암릉으로 된 까칠한 정상으로 오르기 위한
검문검색(?)인가...빗물을 잔뜩 머금은 바윗덩어리가 산꾼을 겁박을
하고 오늘 산행을 하면서 불지않던 바람도 불어대니 몸도 움추려든다.
여귀산의 고도가 458.4m라고 가벼이 볼 산은 아니다.
이곳이 바닷가라 海水面에서 시작되는 고도가 내륙지방의
1,000m이상되는 高峰에 鄙見된 정도로 멋진 산이다
두발이 아닌 네발로 암릉구간을 기어서 올라서니 옛날에 봉수대가 있었던
자리에 봉수대 대신에 무인산불감시초소가 홀로 외로이 걷는 산꾼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는 느낌이라 기분은 좀 거시기하다...너무 기분
나쁠것 없다...요즘의 세태가 그러니 우짜겠노...
암릉으로 구성된 여귀산 정상에 올라서니 다도해가 한 눈에 들어오는
황금기미 포구가 그야말로 일망무제이다... 아쉽다면 흐린 날씨에다 안개로
인해 뚜렸하게 사물을 볼 수 없다는 점이고, 춥지도 덥지도 않은 날씨이긴
하지만 잔뜩 흐린 날씨에 햇빛이 없고, 조금씩 강하게 불어오는 바람이 춥게만 느껴진다
예전에 여귀산봉수대가 있었던 자리에는 무인산불감시초소가 있고,
관리가 안된 철조망에는 안면있는 선답자들의 시그널이 어지럽게
널려있다
여귀산봉수지(女貴山烽燧址)가 있는 여귀산 정상은 자연암벽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봉수대는 약 450㎝ 높이의 암벽이 잘라진 틈에만 특별히 보완 축석(築石)하고 석벽의
가장자리에 몇 단의 석축을 원형으로 쌓았으며, 50×30㎝ 정도의 막돌을 이용하여
‘막돌 허튼 쌓기’에 의해 구축한 연대의 직경은 대략 6m 정도로, 현재는 완전히
도괴(倒壞:건물 따위가 무너져 붕괴함) 되었는데, 봉화대 불을 피우기 위하여 봉화수들이
기거했던 건물의 기왓장이 산죽숲 사이에 널려 있다고 한다.
봉수(烽燧)는 횃불과 연기로 변방의 정세를 중앙에 알리던 제도로 조선시대 봉수는
전라도에 43개가 있었는데 진도에만 여귀산, 굴포, 삼당산, 첨찰산 등 다섯 곳이 있었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 등에 따르면
진도는 다섯 곳의 봉수대뿐 아니라 주변 해안지역에 벽파진을 비롯한 수군진까지
설치될 만큼 지리적으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었으며, 삼당산봉수와
굴포봉수는 여귀산의 보조봉수로서 여귀산봉수에 연락했고, 여귀산봉수는 첨찰산봉수에
연락했으며, 첨찰산봉수에서는 이를 받아 해남 화원봉수와 현산면 관두산봉수에 연락했다.
왜적이 나타나면 여귀산봉수의 봉화가 올라 진도 첨찰산과 해남 일성산, 목포의 유달산을
연결해 한양에 알렸다고 한다.
여귀산(女貴山:458.4m:08:48~55)
진도군 임회면 상만리와 용호리에 걸쳐있는 산으로 진도에서는 점찰산(482.0m)
다음으로 높은데, 남동부에서 가장 높은 산이며 규모가 커서 임회면 동북부를
거의 차지으며, 단단한 암릉으로 이루어진 정상에는 2개의 정상석과 돌탑, 망가져서
방치되어 있는 안내판, 산불감시 카메라가 있으며 온 사방이 다 보이는 一望無際의
산이다
산 사면에서 임회천이 발원하고 18번 국도가 남쪽 산록을 지나며 산의 모습이 남쪽에서 보면
‘단정하게 차려입은 선녀가 가야금을 타는 형상’이라 하여 옥녀탄금형(玉女彈琴形)이라 하며,
정상부는 바위산으로 오르기 힘들며 옛날 봉화대가 있어 북쪽의 첨찰산과 남쪽의 관매도의
봉수와 통했으며, 조선팔도지도(전라도)에 봉수가 묘사되어 있고 주변에 사구곶봉(沙仇串烽),
굴포봉(屈浦烽) 등이 남해안에 잘 보이고 광여도 등에 명칭 변경 없이 모두 표기되어 있고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에 여귀산의 봉화가 나온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 남 30리에 있다 라고 기재되고 있고
대동지지(大東地志)에 여귀산은 남(南) 30리에 있다고 기록하였으며 진도군읍지에
여귀산이 부(府)의 남쪽 30리에 있고, 첨찰산에서 내려온 산이라고 기록하고 있으며
조선지지자료에도 지명 그대로 표기되어 있다.
옛날 진도에 명당이 있다는 말을 듣고 배로 굴포를 지나던 지관(地官)이 여귀산을 바라보니
서남쪽에 명당혈이 뭉쳐 있으므로 배에서 내려 장군바위를 찾아왔는데 이미 묘가 있어
탄식하며 돌아갔다는 전설이 있는데, 아직도 임회면 여귀산 자락에는 복토망월(伏兎望月:
엎드린 토끼가 달을 바라본다)과 비봉포란( 飛鳳抱卵:나는 봉황이 알을 품다), 보검장갑(寶劍藏甲),
호승예불(胡僧禮佛形:부처앞에서 목탁을 예불한 형상), 비룡상천(飛龍上天:용이 하늘로 오르다),
천녀등공(天女登空:예쁜 선녀가 하늘을 오르는듯한 형국) 등 명당이 많다고 한다.
인증샷
귀한 여자 산이라는 여귀산(女貴山)의 정기 때문인지 산 아래에 있는 귀성마을에서 태어난 여자들은
모두 똑똑하다고 하며, 또한 여자가 앉아 있는 것처럼 보이는 형상 때문에 소변을 보는
앞쪽 지형은 물이 많고, 그 반대쪽은 물이 부족하다고 한다.
여귀산 정상에 잠시 머무는데, 잔뜩 흐린 날씨에다 정상 아래에서 불어오는
바람 탓인지 생각보다 날씨가 차가워서 아쉬운 맘은 뒤로하고 다시
길을 나선다
잠시후에 걸어야 할 능선들이 몽환적인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는데
늘 홀로걷는 산이지만, 산에만 오면 이렇게 좋으니 참! 좋다
새벽에 택시기사를 빼고는 사람 구경을 하지 못했다...멋진 여귀산을
전세내어 신선처럼 놀다가 가는 이 기분...독립군이 아니면 모르제...
잠시후에 가야할 능선 끄트머리 너머에 병풍처럼 보이는 오늘
가야할 월출산은 마치 병풍으로 둘러 처진 암산이 환상적이다.
그림으로보면 직선 거리로 얼마되지 않은 산이지만, 마루금이라는
특성상 山自分水嶺의 원칙을 따라다보니 가야할 길이 멀다
정상석이 있는 곳에서 내려와 산불감시초소에서 우측으로 내려간다
미끄러운 여귀산 정상의 암릉에서 내려오니 산죽터널이 나오고
지맥길 산행에서 어김없이 만나는 선답자들의 시그널이 반갑다.
산죽터널을 빠져나오니 시야가 확 트이면서
진도군 임회면 상만리가 한 눈에 들어온다
여귀산 내려서는 길에서 바라본 임회면 상만리(上萬里)의 모습
옛날에 마방역이 있던 마을로 상마(上馬)라 하였으며, 상만리(上萬里)는 상마에서
유래된 마을로, 1440년 경 경주김씨가 처음으로 들어왔으며, 1550년 경 밀양박씨·
전주이씨 등이 옮겨와 살면서 마을이 형성되었으며, 여귀산과 연대산 산릉 사이에
발달한 곡저평야를 끼고 여귀산 남쪽 산록 완경사면에 입지하며, 남서쪽으로는
정금제(井金堤), 서쪽으로는 개용제가 각각 위치한다
자연마을로는 상만흥, 기차바웃골, 탑동, 불당골, 서당골, 비자나뭇골마을 등이 있으며,
상만흥마을은 본 리가 시작된 마을로, 지명유래 또한 상만리의 그것과 같으며
기차바웃골마을은 기차처럼 생긴 바위가 있는 곳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고, 탑동마을은
만흥사탑이 있는 마을이라 하여 불리게 된 마을이고, 불당골마을은 불당이 있던 곳이라
하여 칭해진 이름이다... 서당골마을은 서당이 있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며, 비자나뭇골
마을은 비자나무가 무성하다 하여 불리게 된 이름이라 하며 상만리의 비자나무는
천연기념물 제111호로 지정되어 있다
잠시후에 걸어가야할 능선들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이른 새벽에 개고생을 하면서 걸었던 능선을 보상받는 기분이다.
세상사는데 이런 맛도 있어야제...늘 힘든 苦만 있으면 무슨 맛으로
세상을 살겠는가...
언제쯤 갈지는 모르지만 진도지맥의 마지막 종착지인 서망항이 아련히 보인다
갑자기 밀려오는 雲海가 환상적이다...앞에 보이는 윤고산둑과
굴포항이 뚜렸하게 보이고 바닷가 가운데에 신선의 똥처럼 보이는
코닥지만한 섬이 시누대가 나고 자라 죽도(竹島)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하며, 남동해안에 해식애가 발달하였으며, 섬 중앙에 해발 66m의
봉우리가 있으며, 과거 일본인들이 민족정기를 말살시키고자 이 섬에
쇠말뚝을 박았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여귀산의 급경사 사면길을 조심스럽게 내려간다
안부(08:59)
너럭바위(09:02)
꽤나 큰 규모의 너럭바위로 올라서니 조그만 이름없는 저수지앞에
국립남도국악원이 보이고 그 앞으로 펼쳐지는 야트막한 능선이
내가 잠시후에 걸어야 할 진도지맥길이다.
큰 규모의 너럭바위를 지나는데...
바위위에는 짐승의 똥들이 많이 보인다
등로에서 바라본 국립남도국악원과 아리랑 마을의 모습
진도군 임회면 상만리에 있는 국립남도국악원은 2004년 7월 개원하였으며 국악
연주공연과 국악연수 및 전통문화체험 그리고 국악연구 등을 담당하는 곳으로
수려한 산세의 여귀산을 등지고 드넓은 남해바다를 마주보고 있는 천혜의 자연경관 속에
위치한 국립남도국악원은 국악전문연수와 공연을 통한 국악 보급 활동과 국악을 통한
건전한 여가문화 선도와 이를 통한 국민정서 함양 및 문화 소외지역 주민에게 국악문화를
체계적으로 보급함으로써 전통문화 향수권 제공 및 자연환경과 국악 활성화를 통한
지역문화예술 관광자원화의 토대 마련을 목표로 하고 있다.
잠시후면 도착할 386m봉을 바라보면서 너럭바위 아래로 내려간다
암릉구간을 살짝 우회하면서 내려서는데...
비에젖은 등로는 상당히 미끄럽다
안부(09:07)
무명봉(09:09)
남녘지방에는 어느덧 봄기운이 서서히 느껴지기 시작하고,
세월은 流水같이 흘러가는구나...세월앞에 장사 없다고 하더니만
나는 하루가 다르게 저질 체력으로 변해가는 내 자신이 원망스럽다.
아직도 가야할 산이 너무도 많은데 조금만 천천히 가면 안될까...
가는 세월이 야속하기만 하다
동백나무 군락지를 지나니 좌측으로 내려가는 갈림길이 나온다
갈림길(09:12)
좌측 아래로 국립남도국악원과 아리랑마을로 내려가는 길이 보이고,
마루금은 직진으로 이어지는데 비에젖은 등로의 암릉들이 상당히 미끄럽다
동백나무가 군락을 이루고 있는 너덜길의 상큼한 공기가 산꾼의 코끝을 지극한다
누굴기다리시나?...요염한 동백꽃 한송이가 홀로
수줍은 새색시마냥 나무속에 숨어서 피어있다
동백꽃 숲에 숨어있는 권작가의 흔적...
8년전에 걸어논 시그널인데도 선배가 오는줄 알고
이렇게 산길을 지키주면서 반겨주니 고맙구먼...
서로 비쁘다는 핑계로 안 본지가 8개월이나
지났는데 잘 사는지 궁금하다.
꼿꼿하게 서 있는 立石 위로 조심스럽게 올라간다
여귀산에서 내려가는 등로에서 만나는 계속되는 암릉길
땅바닥에는 남도지방 산길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비에젖은
마삭줄 이파리가 푸르름을 뽐내면서 산꾼을 반겨주는구나
그리 험하지도 않으면서 계속해서 만나는 암릉길이지만
등로가 상당히 미끄러워서 홀로걷는 산꾼으로서는 다치면
안되니까...조심 또 조심하면서 걷는다
무명봉(09:17)
다도해가 보이고, 남도국악원 우측의 능선사이로 난 임도가
잠시후에 가야할 지맥길이고, 바다에 떠있는 코딱지만한
죽도 너머가 진도지맥의 종착지인 서망항구가 있는 곳이며,
∪자 형태의 황금기미 포구는 참으로 한가롭게 보이며,
황금기미 포구(앞)와 무명저수지 사이에 있는 마을의
임회면 상만리 월평마을이다
날씨가 좋으면 충분히 보이는 곳이지만 흐린 날씨가 태클을
걸어대니 볼 수 있는 방법이 없어서 아쉽기만 하다
지나온 여귀산을 뒤돌아 본다...왜 산이 멀리서봐야 멋지게 보인다는 걸
이 그림 하나로 충분히 설명하는 느낌이고, 산 능선 뒷쪽으로 얼굴을
빼꼼히 내밀고 있는 접도(接島)의 모습이 익살스럽다
안부에서 올라서니 ‘진도지맥 386m 여영’의 산패가 있는 정상에 오른다
386m봉(09:27)
여귀산에 바라본 멋진 봉우리였는데 가까이서 보니 볼품이 없다.
맥산꾼의 레전드중의 한 분인 여영님의 산패가 걸려있는 곳이긴
하지만 국토정보지리원의 지도에는아무런 표식이 없는 무명봉이다
386m봉을 찍고 살짝 좌측으로 내려가는 내리막길이 계속된다
서울에서 맛볼수 없는 이 상큼한 공기...
폐질환을 앓고있는 범여로서는 더 없이 좋다.
이 맛을 보려고 5시간이나 걸리는 버스를 타고와서
진도땅을 걷는 내 마음의 本心일지도 모를 일이다
폐헬기장(09:29)
안부(09:30)
안부를 지나자마자 갈림길이 나온다
갈림길(09:31)
독도에 아주 주의해야 할 구간이다
지맥길은 직진으로 이어지는 제도권 등로를 버리고 좌측의 숲속으로
가야한다...직진으로 가면 천연기념물 제111호로 지정된 상만리 비자나무와
고려시대에 번창한 사찰로만 기록되어 있을뿐, 자세한 기록이 없는
구암사(鳩巖寺)로 향하는 등로이다
제도권 등로를 버리고 숲으로 들어서니 빛바랜
선답자의 시그널 2개가 산꾼에게 등로를 안내한다
똥벼락님의 흔적을 마지막에 만나고는
좌측으로 이어지는 급경사 내리막을 내려간다
이런 곳에서 산길을 운운하면서 論한다는 것은 사치에 불과하다.
등로가 아예 보이지 않는 곳에서 내가 등로를 개척하면서 내려가야
하는데 윗쪽으로는 나뭇가지와 가시들이 베낭을 물어 뜯고(?)
발밑에는 낙엽속에 숨어있는 잔돌들이 엄청나게 태클을 걸어대는
바람에 산행 시간이 엄청나게 지체되는 느낌이다
아!...미치겠다.
진도지맥길은 거리가 멀어도 너무 멀거니와, 길이 험하기로
워낙 명성(?)을 날리다보니 맥꾼들이 잘 오지 않는 모양이다.
하기사 이런 곳에 오는 산꾼들이 산에 약간 맛이간 사람들이제...
잡목의 거센 저항을 물리치고 내려서니 묘지가 보이고
그 아래로 18번 국도가 보이니 휴~~~하는 안도감이 든다
묘지(09:57)
묘지 아래에 있는 18번 국도를 보면서 내려간다
시멘트 도로가 나오고...
귀성 삼거리로 내려선다
귀성삼거리(10:00)
진도군 임회면 상만리 귀성마을에 있는 Y자 삼거리로 좌측으로 가면
국립남도국악원과 아리랑 마을이 조성되어 있고, 귀성마을은 우측의
바닷가로 향한다
귀성마을의 유래에 관해서는 두 가지 이야기가 전해지는데, 그 중 하나는 귀성마을이
옛날부터 항상 고기가 많이 잡혀서 황금리로 불렸으나, 어느 해부턴가 마을 위로
남극노인성이 비추면서 장수마을로 알려져 귀성(貴星)마을로 바뀌었다고 한다.
또 다른 하나는 지명유래라기보다 산 이동담에 가까운 이야기로, 귀성마을 앞으로 섬이
떠내려 오는데, 한 여자가 이 모습을 보고 “섬이 떠내려 오네!” 하고 외치자 섬이 그 자리에
멈춰 버렸다고 한다...섬이 멈추지 않고 떠내려가서 대천리에 붙었으면 왕후(王侯가 나올
만한 지세로 변했을 텐데, 멈춰 버려 그렇지 못했다고 한다.
18번 국도가 지나는 귀성삼거리를 가로질러 조금전에 내려온 길을
뒤돌아 보는데, 겉에서 보면 한없이 유순해 보이건만, 나한테는
왜그리 모질게도 대했는지...산이란 참으로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등로에 올라서니 지도상에도 없었던 시멘트 임도가 나오고 진도군에서
조성한 모양인데, 자연을 파괴하는 이런 길을 만들지 말고, 산길이나
정비해 주면 안될까...
시멘트 임도에서 바라본 여귀산과 귀성 삼거리
트랙의 지도에도 없는 시멘트길로 올라간다
등로에서 바라본 오봉산과 상만리 움터골의 모습
임도를 가로막고 있는 휀스
임도를 따라서 올라가는데 잠시후에 160.1m봉이 시야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무심코 걷는 이 길...
임도로 이어지는 산길을 따라서 아무런 생각없이
텅 빈 생각으로 산길을 걸어갈 때가 가장 행복하다
갈림길(10:10)
임도를 버리고 산길로 들어선다.
임도를 따라서 가도 되는 길이다...그렇게 가면 肉身이야
편하겠지만, 족보있는 160.1m봉을 띵가 먹어야 하니
마음이 불편할 것 같아서 육신이 고달퍼도 마음이 편해질터이니
난 후자를 택할 것이다...그게 정통 산꾼의 길이니까...
진도군에서 조성한 임도길을 버리고 산속으로 올라서니
내 예상은 적중한다...간벌을 하고 쌓아놓은 나무들이
마루금에 방치되어 있어 이리저리 피하느라 시간이 지체된다
160.1m봉으로 가는 길...나즈막한 봉우리라 우습게 볼 일이 아니다.
하기사 지맥길을 걸으면서 호사를 누리겠다는 생각 자체가 사치인지도 모르지...
겨울나무 / 장석주
잠시 들렀다
가는 길입니다
외롭고 지친 발걸음
멈추고 바라보는
빈 벌판
빨리 지는 겨울
저녁 해거름속에
말없이 서있는
흠 없는 혼 하나
당분간 페업합니다
이 들끊는 영혼을
잎사귀를 떼어 버릴 때
마음도 떼어 버리고
문패도 내렸습니다
그림자
하나
길게 끄을고
깡마른 체구로 서 있습니다.
능선에 올라서면 160.1m봉인줄 알았는데 더 가야한다
힘든 땀방울과 발품을 팔아야만 정상에 도착할 모양이다
그래서 산행을 하면서 미리 예단하지 말라는 얘기다.
안부(10:20)
안부를 지나는 길에는 멋지게 잘생긴(?) 동백나무와 황칠나무가
마치 무도장에서 멋진 남.녀가 껴안고 부르스에 맞춰 춤을
추는 형상을 하고있다...그래 나무들도 참으로 멋지게 사는구나
안부를 지나면서 희미한 등로가 보이고 능선을 올라서니 160.1m봉이다
160.1m봉(10:27)
희미한 등로에서 간간히 만나는 선답자의 흔적
갈림길(10:30)
갈림길을 지나니 조금전에 헤어졌던 임도가 우측에 보인다
임도로 바뀌어 버린 마루금으로 내려서는데 비에젖은 황토 절개지로
내려서다가 미끄러지는 바람에 보기좋게 고랑창으로 쳐박힌다
그 바람에 옷은 황토팩을 한 것처럼 범벅이 되고, 바지마저 찢어지는
수난을 당했지만 다치지 않은 것 만으로도 천만다행이다
자동차가 다닐만큼의 넓은 임도...진도군이 관광객을 유치하기 위해
만든 임도인데, 서해랑길과 겹쳐지는 구간인지는 모르겠으나 굳이
이렇게 자연을 홰손하면서 만들 필요가 있었는지는 아둔한 범여의
머리로는 이해가 안되는구나...맥꾼으로서 힘든 길을 걷는것 보다야
훨씬 편하게 걷지마는 왠지 이런곳만 들어서면 어색한 느낌이다
갈림길(10:38)
잠시 지나온 임도를 버리고 다시 산속으로 접어들어 130.1m봉으로 향한다
130.1m봉을 내려서는데 나뭇가지 사이로 황금기미
포구와 오봉산이 아쉬운 듯 얼굴을 내밀고 있다
희미한 등로로 올라서니 준.희쌤이 걸어둔 산패가 있는 130.1m봉에 도착한다
130.1m봉(10:42)
130.1m봉에서 우측으로 내려간다
거친 잡목의 태클이 시작되나 이미 예상한터라
숙명이라 생각하고 완만한 내리막길로 내려간다
어디에 쓰는 물건인고?
조금전에 헤어진 임도와 술래잡기 하는 기분이다
또 다시 임도와 작별을 하고 산속으로 들어선다
또 다시 고난의 행군은 시작되고...
백두사랑 이 대장의 흔적이 보이니 지맥길은 맞다.
난 저 친구의 흔적을 상당히 신뢰하는 편이다
그래 피할수 없으면 즐기라고 했제...
운명이라 생각하고 뚜벅뿌벅 정상으로 향하는 길에...
준.희쌤의 격려를 받으면서 올라서니 148.6m봉이 나온다
148.6m봉(11:04)
148.6m봉에서 우측으로 내려선다
묘지(11:05)
좌측의 나뭇가지 사이로 굴포항 앞의 죽도가 살짝 얼굴을 내밀기 시작한다
안부(11:06)
우측에 있는 대밭 사이로 올라가는데...
족보에도 없는 168.1m봉이 나온다
168.1m봉(11:08)
무명봉인 168.1m봉 정상에는 가시나무들이 기지개를
켜고 있는데 저 넘들이 지랄발광하기 전에 이곳을
통과했으니 천만다행이다
마루금은 간벌목 안쪽으로 들어가야 하지만
엄두가 나지 않아서 직진의 벌목지 아래로 내려간다
벌목을 하고 새로운 樹種을 식재한 벌목지에서 잠시후에 오를
182.7m봉은 까칠하게 보이는데 고생을 좀 할것같은 기분이다
벌목지에서 바라본 굴포항의 모습
벌목지에서 굴포항을 바라보면서 우측의 숲속으로 향한다
게걸음으로 잡목을 헤치고 내려서니...
호화로운 진주강씨 묘지가 눈 앞에 나타난다
진주강씨 묘지에서 바라본 182.7m봉의 모습
진주강씨 묘(11:18~23)
이른 새벽에 아침을 해결하고는 아무것도 먹지않고 이곳까지 왔더니만
배가 고파오기 시작한다...이곳에서 베낭을 내려놓고 망자의 밥상을
빌려서 간단하게 요기를 하고 잠깐의 휴식을 취한다
무명봉인 168.1m봉에서 이곳으로 내려와야 했었는데...
안부(11:24)
안부 우측에는 태양광 시설이 보이고, 그 뒷쪽에 있는 여귀산이
산꾼을 물끄러미 내라보고 있다...여귀산에서 이어지는 진도지맥
길은 ∪자 형태로 마루금을 이어가고 있다.
마루금에서 숲으로 향하는데...
여름에는 개고생할 듯 싶다
조금전에 내려온 능선을 뒤돌아 본 다음에...
절개지 능선으로 올라서 다시 숲속으로 들어가는데
이곳에서도 된통 한번 쳐박히고나니 정신이 하나없다
갑자기 사라진 등로...이게 진도지맥길의 기준인 듯 하다
진도 지맥길에서 처음 본 뫳돼지의 식흔...
섬이라서 뫳돼지가 없는 줄 알았는데
처음으로 뫳선생의 체력 단련장을 만난다
낮은 포복을 하면서 까칠한 182.7m봉으로
향하는 길은 왜이리도 힘이 드는가...
등로는 보이지 않고 간간히 만나는 선답자의 흔적이 맥길임을 알려준다
계속되는 고난의 행군
에공!~~~아까운 거...묵은 영지버섯을 만난다
잡목에 갇혀서 한참을 버벅거리다가 올라서니 182.7m봉 정상이다
182.7m봉(11:50)
굴포재로 내려가는 길은 조금전에 올라온 길과는
정반대로 등로도 뚜렸하고 잡목이 없어서 편하게
굴포재로 향한다
나뭇가지 좌측 아래로는 굴포항이 흐릿하게 보인다
편하게 내려서다 보니...
진도대로라고 불리는 18번 국도가 지나가는 굴포재가 보이기 시작한다
칡넝쿨을 밟으면서 밭으로 내려선다
오전에 귀성삼거리에서 헤어진 서해랑길을 다시 만난다
도로에서 바라본 임회면 상만리 중만리너머골 마을의 모습
귀성삼거리 위에서 이어지는 임도가 여기까지 이어진다
굴포재(屈浦峙:12:05)
진도군 임회면 상만리에서 굴포리를 잇는 고개로 18번 도로가 지나가며,
좌측으로 내려가면 굴포리와 짝별리 사이 만입부에 있는 굴포진(屈浦津)
이라고도 부르는 굴포나루 남동쪽에는 보물섬 소동으로 잘 알려진
죽도(竹島)가 있으며 우측으로 가면 천연기념물 제111호로 지정된
상만리 비자나무가 근처에 있다
굴포리(屈浦里)는 동쪽과 남쪽으로 바다를 끼고 있는 해안지역으로, 수산업과
함께 논농사가 이루어지는 곳으로, 자연마을로는 굴포, 웃굴포, 아랫굴포, 염전,
도적골, 대섬, 서당골마을 등이 있다... 굴포마을은 본 리가 시작된 마을이고,
웃굴포마을과 아랫굴포마을은 굴포의 위쪽, 아래쪽에 자리한 마을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며, 염전마을은 아랫굴포 앞에 염밭이 있는 마을이라 하여 칭해진
이름이고, 도적골마을은 도적이 있었다 하여 불리게 된 이름이다.
대섬마을은 대나무가 많은 섬에 자리한 마을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며,
서당골마을은 서당이 있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 한다.
굴포재에서 골포나루쪽으로 향하다가...
굴포나루로 내려가는 서해랑 둘레길과 헤어져 우측의
농로로 올라서면서 진도지맥길을 이어간다
농로에서 바라본 상만리 중마마을의 모습
갈림길(12:07)
Y자 갈림길에서 좌측의 흙탕길로 올라가는데
초입에는 선답자들의 노란색 몇개가 보인다
고맙습니다
넓은 공터에 많은 벌통과 비닐하우스 2동이 보이는 곳을
조심스레 지나가려고하니 쥔장인듯한 남자분이 나오더니
이쪽으로는 산에가는 길이 없다고 한다...제가 알아서 갈테니
조금 봐달라고 하니 일단 비닐하우스로 들어오라고 한다
바짝 면서 쥔장의 뒤를 따라서 비닐하우스 안으로 들어간다
벌통농장의 忙中閑(12:10~13:40)
비닐하우스 안으로 들어가니 일단 의자에 앉으라고 하더니 믹스커피 밖에
없다고 미안해하면서 따끈한 커피한잔을 타주면서, 길이 없는데 왜 다니냐고
하기에 내가 스마트폰의 트랙을 보여주면서 여차저차하고 설명을 해주니까
이해가 되는 모양이다...그러면서 간간히 산꾼들이 불쑥 불쑥 들어와서
불쾌한 적이 많았다고 하소연을 하는데 내가 대신 사과하마 하니까...
그런것이 아니고 이제는 이해가 되었다고 한다
이런저런 세상사는 얘기를 나누는데 나하고 비슷한 연배인줄 알았는데
나보다는 2년 연상이라 참으로 말이 잘 통한다...이 분도 2년전에 심장
판막증 수술을 받았다고 하니 나와 비슷한 同病相憐을 겪고 있는 것
같아 말이 잘 통한다...그러면서 김밥도 먹으라고 주고, 과일도 주면서
세상살이, 자녀문제, 건강 문제 등 시시콜콜한 얘기를 나누면서
시간가는 줄 모르고 있다가 보니 이곳에서 1시간 30분이 지나버렸다.
속된말로 ‘신선놀음 하다가 도끼자루 썩는다’는 말이 이럴때 딱맞는
말인듯 하다
양봉쥔장이 가면서 먹으라고 싸준 밀감
산행을 하면서 이렇게 시간을 허비해보기는 처음이다.
이 분은 그래도 아쉬운 듯 10개 가까이 되는 밀감을
봉지에 싸주시면서 가시다가 목마를때 먹으라고 주는데
한동안 사양을 하다가 고맙게 잘먹겠다고 하고 다시 길을 떠난다
지난주에도 융숭한 대접을 받았는데 이번주도 진도에서 좋은
추억을 남긴다...부디 건강하시길 기원합니다
연대산 가는길에 양봉쥔장 봄동밭에서 바라본 지나온 여귀산의 모습
양봉쥔장과 아쉬운 작별을 하고 연대산을 향한 숲으로 들어선다
조금전과는 달리 생각보다 등로는 뚜렸하다
똑바로 가고 있다는 얘기다.
연대산도 정상을 쉽게 허락하지 않을 모양이다
연대산(煙臺山:150.9m: 13:58)
진도군 임회면 상만리와 굴포리, 백동리 경계에 있는 산으로 정상은
잡목에 갇혀버려서 아무것도 볼 수없고, 잡목만 무성한 산으로 정상에
준.희 쌤의 산패만 없었다면 그냥 지나치기 딱 좋은 산으로 4등 삼각점
하나가 외롭게 정상을 지키고 있는데 조선시대에 이곳 정상에 연대(煙臺)가
있었다고 해서 지명이 된 산으로, 연대산에 대한 유래는 알 길이 없으나
진도군 임회면 백동리연대지(白洞里烟台址)를 보면 이곳이 연대산임 알 수 있다
연대지(烟台址)는 전라남도 진도군 임회면 백동리 연대산에 있는 조선시대의 연대(煙臺)터로서
조선시대의 연대(煙臺)는 횃불과 연기를 이용하여 정치와 군사적으로 급한 소식을 전하던 통신수단이고
주로 구릉이나 해변지역에 설치하고 봉수대는 산 정상에 설치하였는데 그런 연대가 있었던 터이다.
전라남도 진도군 임회면 백동리 신동마을 북동쪽 100m 지점의 연대산 정상부에 있고 연대산 동쪽은
상굴포와 짝벌 사이에 형성된 해안 지역이며 북동쪽으로는 여귀산 봉수대가 있는데, 자연석을 이용하여
연대를 축조하였는데 현재는 붕괴되어 석재만 산재해 있는 상태이고 현존하는 석축의 흔적으로 보아
원형 연대였을 것으로 추정되며 지름은 6.8∼7m 정도이다.
연대산 나무가지 사이로 바라본 여귀산의 모습
여귀산 아래에는 상만리가 자리잡고 있고 상만마을 앞쪽으로
조금전에 내가 삥둘러서 돌아온 능선들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풀섶에 숨어있는 연대산 정상 삼각점
연대산 정상 삼각점(△조도415 / 1986재설)
여태껏 지나온 봉우리의 삼각점은 ‘진도’로 표기되어 있었는데 이곳은
‘조도’로 표기되어 있는게 이채롭다...우리나라에 있는 섬이 총 3,237개라고 한다.
그 중에서도 제일 많은 곳이 전남으로 1,964개나 되는데 그 중에서 그유인도가
276개, 무인도가 1,688개라고 한다... 군 단위로는 신안군이 유인도 72개, 무인도
932개 등 총 1004개의 섬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하는데, 신안군에 속한 섬 숫자는
우리나라 전체 섬 숫자의 26%에 달하며, 면 단위로는 진도군 조도면이 178개에
달하는데 이 중 142개가 무인도이고, 사람이 사는 유인도가 36개라고 한다
‘새들이 바다 위에 점점이 내려 앉아있는 듯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인 조도는
‘새 조(鳥)’에 ‘섬 도(島)’를 쓰며, 상조도(上鳥島)와 하조도(上鳥島)가 있지만
지금은 두 섬 사이에 연도교(連島橋)가 이어져 하나의 섬처럼 되어있다
10여년전에 2박 3일간 조도와 관매도로 여행을 가서 참으로 좋은 추억을
많이 쌓았는데, 지금은 아련한 추억이 되어 버렸구나
* 연륙교와 연도교의 차이는?
연륙교(連陸橋)는 육지와 섬을 연결하는 다리를 가리키는 말이고,
연도교(連島橋)는 섬과 섬을 연결하는 다리로, 육지와 섬을 연결하는 연륙교와
개념상 구분하여 부르는 말이지만, 연륙교나 방조제에 의해 연륙(連陸)한 섬과
다른 섬을 잇는 다리는 결국 육지와 섬을 이어주는 기능을 하므로 넓은 의미에서
연륙교에 포함된다
연대산에서 내려서는 등로도 그리만만하지 않는구나...체념한 체로 내려간다
그나마 위안이라면 여름 산행이 아니라 천만다행이라 생각하면서...
지독한 잡목지대를 벗어나니 생각보다 등로는 뚜렸하다.
진도의 산길에서 수없이 만나는 동백나무 군락지...
아쉽다면 제 철이 아니라 그런지 여인의 붉은 입술처럼
느껴지는 동백꽃이 보이지 않는다는게 참으로 아쉽다
전주이공 & 정부인 신안주씨 묘(14:10)
옛날에 꽤나 높은 직위인 가선대부호조판서를 지낸 전주이공과
정부인의 묘소가 후손들이 자주 안오는지 망가진 봉분이 보기가 않좋다.
양반이나 천민이나 사후세계는 같은 모양이다.
* 가선대부(嘉善大夫)는 조선 시대에 종이품(從二品) 문무관의 품계이고,
호조판서(戶曹判書)는 조선시대 6판서(六判書) 중에 하나이며, 대사도(大司徒)
라고도 하며, 정2품 당상관으로 호조(戶曹)의 수장(首長)현재의 직제로는
기획제정부장관에 해당되는 직책이며, 정부인(貞夫人)은 문무관 정2품 정헌대부
(正憲大夫)·자헌대부(資憲大夫)와 종2품 가정대부(嘉靖大夫)·가선대부(嘉善大夫)의
적처(嫡妻)에게 내린 작호를 말한다
묘지 아래로 내려가니 또 다른 묘지가 나오고 農路로 내려선다
농로를 내려서면서 우측을 바라보니 아침에 지나온 여귀산이 계속해서
산꾼의 시야에서 벗어나지 않고 있으며, 산 아래에 옴팍한 곳이 오전에
지나온 귀성삼거리, 앞에 보이는 마을이 천연기념물 제111호로 지정된
비자나무가 있는 상만리 마을이다.
1962년 12월 7일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상만리 비자나무는 면적은 26㎡,
수량은 1그루이고, 추정수령은 600년, 지정사유는 노거수이며, 진도군에서
관리하며, 나무높이 9.2m, 가슴높이 줄기둘레 5.6m, 가지밑 줄기높이 2m이고,
가지퍼짐은 동쪽 5.1m, 서쪽 6.4m, 남쪽 6.5m, 북쪽 5.8m이다.
비자(榧子)'는 잎이 '아닐 비(非)'자를 닮아서 붙여진 이름으로, 남해안 섬 지방과
제주도에서 시작하여 육지는 전라남북도의 경계에 있는 백양산과 내장산이
비자나무가 살 수 있는 북쪽 한계선이다.
비자나무는 늘푸른 바늘잎을 가진 큰 나무로 어릴 때 생장은 매우 느리나 크게 자라면
두세 아름에 이르며, 나무껍질은 흑갈색으로 세로로 길게 갈라지고 잎은 납작하며
약간 두껍고 끝은 침처럼 날카롭다... 암수가 다른 나무이고 봄에 꽃이 피어 열매는
다음해 가을에 익으며, 크기는 손가락 마디만 하며 새알모양으로 생겼다. 껍질을 벗겨내면
연한 갈색에 딱딱하고 얕은 주름이 있는 씨가 들어 있으며, 아몬드와 닮았는데, 맛은 떫으면서
고소하다... 그러나 함부로 먹을 수는 없고 예부터 회충, 촌충 등 기생충을 없애는 약으로 쓰였다.
《동의보감》에는 “비자 열매를 하루에 일곱 개씩 7일 동안 먹으면 촌충은 녹아서 물이 된다”라고 했다.
농로로 내려선 다음에 수확을 앞둔 봄동밭 가운데로 맥길을 이어간다
농로 끝(14:13)
농로 끄트머리에는 폐타이어같은 쓰레기가 버려져 있는데, 우측으로
올라가는 시멘트 농로를 버리고 억새가 무성한 숲속으로 들어선다
입구에 있는 잡목의 저항을 물리치고 숲속으로 들어서니 동백나무 군락지가 나오고...
동백나무 군락지에서 요리조리 등로를 찾아보지만 보이지가 않는구나
좌측으로 꺽어져서 내려가니...
아이쿠 무서봐라...스틱으로 잡풀을 헤치면서...
배추밭 고랑으로 내려선다
수확을 앞둔 배추밭 고랑이 마루금이다...맞은편에는 가야할 월출산이 보인다
밭고랑에는 남도지방이라 그런지 벌써부터 광대나물들이 꽃을 피우기 시작한다.
봄이 오면 늘 범여의 가슴을 설레게하는 들꽃들...야생화 촬영을 위하여 카메라
장비를 점검해봐야겠다
광대나물꽃(꽃말:봄맞이)
식용이 가능한 꿀풀과에 속하는 이년생초로 밭이나 길가에서 흔히 자라며,
줄기 밑에서 많은 가지가 나오고 때로는 가지가 누워 자라기도 하며 키는
10~30cm 정도이다... 줄기는 네모꼴이고 보랏빛이 돈다. 잎은 마주 나며 줄기
아래쪽의 잎은 둥글고 잎자루가 있으나, 위쪽은 반원형이며 잎자루없이 줄기를 감싼다.
꽃은 4~5월에 붉은 자주색으로 피는데 잎자루가 없는 잎들이 줄기를 감싸는 잎
겨드랑이에서 여러 송이의 꽃이 모여 피며, 꽃은 통꽃이지만 꽃부리는 크게
두 갈래로 나뉘었으며 갈라진 꽃부리 아래쪽은 다시 세 갈래로 조금 갈라졌다.
식재료로 활용할 때에는 어린 순으로 나물을 해 먹는다.
혈관과 혈압 등에 좋은 성분이 들어있어 혈액순환을 원활하게 하고 고혈압을 방지하는
효능이 탁월하며, 붓기를 가라앉히기 때문에 근육통에도 도움이 되고, 뼈 건강에도
좋아 관절염 등에도 효과가 있으며, 식물 전체를 여름에 캐서 피를 토하거나 코피가
날 때 쓰기도 한다
배추밭에서 올라와서 황토길 농로를 따라서 신동 삼거리로 향하는데
갑자기 비가 쏟아지기 시작한다...이게 뭔 조화인지 모르겠다.
기상청의 예보로는 오늘 진도지방에는 18시이후부터 비가 온다고
했는데, 뭔 넘의 몇시간후 일기예보도 못맞추고 월급을 받는
기상청의 예보관들...미안하지도 않은가보지...
가랑비를 맞으면서 배추밭 가운데를 질러서 18번 국도가 지나는
신동삼거리로 향한다
신동삼거리(14:30)
진도군 임회면 백동리에 속해있는 신동삼거리는 우측으로는 진도읍과
해남으로 가는 길이고, 좌측으로는 진도지맥의 끝지점인 서망항과
많은 사람들 가슴속에 아픈 추억이 있는 팽목항으로 가는 길이다
뒷쪽으로는 조금전에 지나온 굴포재와 굴포포구, 윤고산 사당으로
가는 길이다.
백야동, 만세동, 신동리를 병합하면서 백야와 신동의 이름을 따 백동리라
하였으며, 신동리(新洞里)는 새로 생긴 마을이라 붙혀진 지명이다.
울고 싶은데 빰맞은 꼴이랄까...원래 계획은 앞에 보이는 월출산을 넘어서
백동삼거리까지 걸어간 다음에 마지막 구간은 당일날 와서 끝내려고
했는데 갑자기 비가 내리니 백동삼거리까지 가고싶은 마음이 싹 사라진다
굴포항쪽으로는 국립진도휴양림과 윤고산 사당과 윤고산둑으로 가는 길이다
고산둑 윤고산사당이란 팻말이 보이는데 고산 윤선도가 기근에 시달리는 백성들을 위해
1650년 굴포리 지역에 높이 3m, 길이 380m의 방조제를 쌓아 100ha의 농지를 조성한
다음 마을 주민들에게 나눠주고 농사를 짓게 했는데 이후 진도 굴포, 남선, 백동, 신동 등
4개 마을 주민들은 이 곳에 사당을 세우고 조상 대대로 매년 정월 대보름에 은공을 기리고
풍년과 풍어를 기원하는 감사제와 당제를 지내왔다.
고산 윤선도는 60세(1646, 인조 24)때 진도에 유배되어 있던 백강 이경여와 시를 주고받은
것으로 보아 아마 이 시기에 진도에 잠시 머물면서 간척을 한 것이 아니었나 추정하고 있는데
고산은 이곳 굴포리에 머물면서 경주설씨를 만난 것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고산이 이곳에 원둑(제방)을 쌓으면서 생긴 일화(전설)가 전해져 내려오고 있는데 고산은
이곳에 제방을 쌓기 위해 온갖 노력을 기울였으나 그때마다 무너지고 쌓으면 또다시
무너지는 일이 반복되었는데, 이로 인해 깊은 시름에 빠져 있었는데 어느 날 제방을 쌓고
있는 곳으로 큰 구렁이가 기어가고 있는 꿈을 꾸게 되었다.
고산은 이를 기이하게 여기고 새벽녘 사립문을 열고 나가 제방을 쌓는 곳을 보니 꿈에
보았던 구렁이가 기어가던 자리에 하얗게 서리가 내려있었다...이를 이상히 생각한
고산은 구렁이가 지나간 자리에 제방을 쌓으라는 것이구나 하고 생각하여 그곳에 뱀의
지나간 형상대로 석축을 쌓도록 하였는데 그 이후부터는 둑이 무너지지 않게 되었다는 것이다.
조금전에 벌통 쥔장과 노닥거리면서 너무 시간을 많이 보내는 바람에
조금 맘이 급했는데 비까지 내리니 마음이 심란하여 이곳에서 과감하게
산행을 포기하고 우산을 쓰고, 베낭을 정리한 다음에 지나가는 자동차를
상대로 앵벌이를 시도했지만 좀처럼 자동차가 잡히지 않는다.
얼마나 지났을까...백동리 방향에서 빈 택시 한대가 오고있는게 아닌가...
바지가 너무 더러워서 배추밭에 빈 박스를 하나 빌려서 택시 의자에
깔고 택시를 탄 다음에 진도터미널로 향한다
진도터미널(15:02)
진도터미널에 도착하니 비는 그쳤고, 15:00 정각에 진도에서 강남터미널까지
다이렉트로 출발하는 버스는 간발의 차이로 놓친다...하는 수 없이 15시 20분에
목포로 출발하는 버스표를 예매하고 터미널 내에 있는 옷가게에서 15,000원하는
누비 바지를 현금으로 13,000원을 주고 사입고, 간단하게 씻은 다음에 목포가는
버스에 오른다
범여의 바지 좀 보소...우측은 새로 사 입은 누비바지
진도발 → 목포행 버스표
목포터미널(16:30)
진도에서 출발한 지 1시간 10분만에 목포터미널에 도착한다
진도에서 버스를 타자마자 깊은 잠에 빠졌다가 非夢似夢간에
버스에서 내리니 정신이 하나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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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도터미널을 출발할 때는 멈췄던 비가 또 다시 쏟아지기 시작한다.
버스가 출발할 때까지 잠깐이지만 대합실 의자에서 멍때리기를
하다가 17시에 출발하는 버스에 올라서 깊은 잠에 빠진다.
비는 계속 내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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