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도 Reset처럼...
☞ 산행일자: 2024년 07월 14일
☞ 산행날씨: 산행내내 가랑비가 내림
☞ 산행거리: 도상거리 6.9km / 2시간 30분 소요
☞ 참석인원: 나홀로 산행
☞ 산행코스: 귀내미골 -1,061.1m봉- 안부- 갈림길- 무명봉- 안부- 큰재- 무명봉
이정표- 1,031.4m봉- 안부- 무명봉- 1,062m봉- 안부- 쉼터- 준경묘 갈림길
쉼터- 1061.9m봉- 안부- 무명봉- 안부- 이정표- 무명봉- 쉼터- 1011.4m봉
무명봉- 안부- 무명봉- 무명봉- 이정표- 안부- 삼각점봉?- 황장산- 댓재
☞ 소 재 지: 삼척시 신기면, 미로면, 하장면 / 태백시 하사미동(조탄동)
이번주는 전국적으로 비가 내린다고 하는데 어디로 가야하나 아니면, 산행을
쉬어야 하나 고민을 하다가 비가 많이오면 아무래도 길이 험한 지맥길을
많이 부담이 될 듯하여, 비가 오더라도 등로가 뚜렸하고 탈출로가 확실한
백두대간 능선이 나을 듯 하여, 지난주에 아쉬움으로 남아있는 짜투리
구간인 귀내미골에서 댓재 구간을 땜방하기로 하고 이른 아침에 집을
나서서 동서울터미널로 향한다.
오늘은 산행 거리가 아주 짧아서 동서울터미널에 도착하여 아침으로 포장마차에서
김밥 한줄로 아침을 해결하고, 음료 한병과 앙꼬빵 하나로 베낭을 꾸리니
베낭이 훨씬 가벼운 느낌이다.
오늘 산행 구간의 지도
동서울발 → 태백행 버스표
태백으로 가는 버스는 첫 차라서 그런지 아니면, 비가와서 그런지 버스가
평소와는 달리 텅 빈 느낌이다...대충 어림잡아 10명도 안되는 사람이
버스를 탔으나, 모두 다 고한터미널에서 다 내리고, 나혼자 태백으로 향한다
태백터미널(08:50)
나홀로 태백터미널에서 내려 터미널에 있는 해후소에 들려
시원하게 버리는 즐거움을 만끽하고 택시로 귀네미골로 향한다
귀네미골(09:40)
터미널에서는 오지않던 비가 피재를 지나면서 비가 내리기 시작하는데
귀네미골 맨 윗쪽에 도착하니 비는 계속 내리지만 굵은 비가 아니라,
이런 비를 맞으면서 산행하기에는 그리 나쁘지 않을 것 같다
귀네미골에서 바라본 고랭지 채소밭은 짙은 안개로 한치앞도 보이지
않는구나...어차피 비를 맞은 각오로 시작한 산행이라, 똑닥이 카메라와
스마트폰 등...전자 장비는 비닐로 묶은 다음에 산행을 준비한다
택시기사가 찍어준 인증샷
산행을 시작하다(09:50)
산행에 들자마자 옷은 다 젖어 버리고, 작은 나뭇가지에 걸려있는
안면있는 대간꾼들의 시그널이 범여의 열정에 격하게 환영한다
키작은 잣나무들의 도열을 받으면서 미끄러운 오르막길을 올라간다
잣나무숲을 지나 올라서니 마치 지맥길을 연상하는 풀섶이 시작되
비에젖은 들꽃들이 얼굴을 내미는데 가장 처음 만난꽃이 가치수염이다
가랑비에 젖어있는 일월비비추,
언뜻 들리는 語源으로는 외래어인 줄 착각할 정도지만 순우리말로,
어린잎을 나물로 먹는데 잎에서 거품이 나올 때까지 손으로 비벼서
먹는다고 해서 ‘비비추’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하는데 꽃이 참으로
예쁘구나
하늘말나리(꽃말:순진, 순결)
보통 나리는 크게 그냥 나리와 말나리로 나뉘는데, 나리는 처음부터 끝까지
잎이 어긋나는 반면 말나리는 아래 잎은 돌려나고 위의 잎은 어긋나는 점이 다르다.
‘하늘’이라는 이름이 붙는 나리들은 꽃이 하늘을 보고 있는 나리를 말하며,
꽃이 땅바닥을 보고 있으면 땅나리, 중간을 비스듬히 쳐다보면 중나리라고 부른다.
대간길 답지않게 잡풀이 무성하여 우의 바지를 입었는데도
벌써 옷은 다 젖어버렸고, 등산화에도 물이 들어갔는지
철벅거리기 시작하는구나
비가오면 오는대로, 바람이 불면, 바람이 부는데로 자연에 순응하면서
산길을 걸어가니 아무런 불평, 불만이 없다...그래!...순리대로 사는게
세상의 이치이거늘, 더 뭘 바라는건 貪慾이야...
마타리(꽃말:변하기 쉬운 사랑)
여름에서 가을로 넘어가는 시기에는 사실 꽃이 드문데 그때 들녘에 노란색으로
만발한 꽃이 바로 마타리인데, 마타리나 뚝갈은 꽃이 피기 전에는 구분하기
어려우나 한여름에 꽃이 피기 시작하면 쉽게 구분되는데, 뚝갈은 흰색 꽃이 피는
반면 마타리는 노란 꽃이 피는데, 뚝갈과 마타리는 사촌지간(四寸之間)으로,
둘 다 꼭 외래어 같지만 순 우리말이다.
마타리는 산과 들에서 나는 여러해살이풀로, 물 빠짐이 좋은 양지 혹은 반그늘에서
자라며, 키는 60~150㎝이고, 잎은 새의 깃 모양으로 깊이 갈라지고 마주난다.
꽃은 7~8월에 노란색으로 가지 끝과 원줄기 끝에 달리는데, 지름이 약 0.5㎝가량
되는 꽃들이 많이 달린다. 그래서인지 곤충들이 유난히 많이 모여든다.
열매는 9~10월경에 익는데, 타원형으로 길이가 약 0.5㎝ 정도 되는 종자를 맺는다.
여름이면 산과 들에 키가 큰 야생화가 꽤 많이 있지만 이 품종은 그중에서도 관상
가치가 높으며, 흔히 야생화라고 하면 연약하다는 생각이 들지만 마타리는 강하면서도
잘 자라는 특징을 가지고 있어 앞으로 관상용으로 더욱 개발될 것으로 보인다.
어린순은 식용으로도 쓰이며, 나물로 무쳐 먹고, 나물밥으로 지어 먹고, 기름에 볶아서
먹기도 하는데, 약간 쓴맛이 있으므로 물에 우려낸 뒤에 이용해야 한다.
또한 뿌리에서는 된장 썩는 냄새가 나는데, 한방에서 패장이라고 하여 약재로 사용한다.
마타리과에 속하며 가양취, 미역취, 가얌취라고도 한다. 또 들판에 피는 노란 꽃이라는 뜻으로
야황화, 황화용아, 야근, 여랑화 등으로도 부른다.
까치수염(꽃말:달성)
꽃을 보면 하얀색의 작은 꽃들이 총총히 박혀 있는 것이 꼭 수염 같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인데, 그러나 강아지 꼬리처럼 보이기도 해서 개꼬리풀이라고도 한다.
또 수영이라는 식물을 닮아 까치수영이라고도 한다.
까치수염은 산과 들에 자라는 여러해살이풀이다. 모래와 돌이 많은 양지에서 잘 자라며,
키는 50~100㎝ 정도이고, 땅속줄기가 퍼지고 풀 전체에 잔털이나며, 줄기는 붉은빛이
도는 원기둥 모양이고 가지를 치며, 잎은 양끝이 좁고 긴 타원형이며 가장자리는 밋밋하다.
6~8월에 흰색의 꽃이 피며, 길이는 10~20㎝이며, 줄기를 따라 작은 꽃들이 뭉쳐서
큰 봉오리가 되고 끝에 가서 꼬리처럼 약간 말려서 올라간다.
열매는 9~10월경에 둥글게 달리고 적갈색으로 익은 씨방에는 종자가 많이 들어 있으며,
종자를 맺으면 꽃대는 종자가 충분히 익을 수 있도록 간격이 더 넓어지고 길어진다.
앵초과에 속하며 까치수영, 꽃꼬리풀이라고도 한다. 관상용으로 쓰이며, 어린잎은
식용으로 쓰이며, 우리나라와 일본, 중국, 러시아 등지에 분포한다.
1.061.1m봉 갈림길(09:58)
옷이 젖는줄도 모르고 대간길에 피어있는 들꽃들과 遭遇하다보니
1.061.1m봉이 나오는데 예전에는 고랭지 채소밭에 사용되는
파란 물탱크가 있어서 물탱크봉이라 부르면서 그곳을 꼭 지났는데
지금은 정상으로 오르지 않고 등로는 정상 직전에서 우측으로 내려가는
바람에 대간길에는 약간 홀대받는 봉우리이다.
잡목의 저항을 뚫고 1.061.1m봉 정상으로 향한다
1.061.1m봉(10:00)
국토지리정보원에 표기된 족보있는 봉우리이건만 약간 홀대받는 봉우리다.
지도상에는 분면히 삼각점이 있다고해서 풀섶을 헤치면서 다녔지만 삼각점 수색에 실패한다
삼각점을 찾기위해 성곽처럼 쌓아놓은 돌담을 한바퀴를 돌면서
스틱으로 풀섶을 뒤졌지만 삼각점은 찾지 못하고 다시 왔던 길을
되돌아 간다
다시 1.061.1m봉 갈림길(10:02)
지맥길을 연상케 할만큼 잡목에 묻혀버린 대간길.
감각적으로 잡목을 헤치면서 내리막길로 내려간다
보이지 않는 등로를 스틱으로 풀섶을 헤치면서 내려가니
비에젖은 뱀무가 툭 한마디 내볕는다...범여님의 역마살...
정말 대단하십니다
보이지 않는 등로로 내려가는 길에 대간꾼들의 흔적이 보인다.
예전에는 좌측의 능선쪽으로 걸었는데 우측의 편안길로 마루금을
돌려 놓은듯 하다
큰뱀무(꽃말:만족한 사랑)
뱀이 자주 다니는 길에 무 같은 잎을 가진 풀이라고 하는 설이 있지만 뱀과 직접 관련이
있다기보다는 표준 식물에 비해 모양이 떨어지거나 다르다는 뜻을 의미한다고 보면 될 듯 하다
예를 들어 개망초의 ‘개’ 나 ‘아재비’처럼... 큰뱀무는 뱀무중에 꽃잎과키가 좀 크다고 하여 붙혀진
이름으로 뱀무와의 차이점은 줄기에 털이 있으면 줄기에 털이 있으면 큰뱀무이고 없으면 뱀무이다
예전에는 멋진 나무가 있는 저 곳으로 다녔는데...
나무 뒷쪽에 있는 풍력발전기의 윙윙하는 바랑개비 돌아가는
소리가 크게 들리지만, 짙은 안개로 인해 코 앞에 있는 바랑개비는
코빼기도 안 보인다
하기사 비가오는 줄 알면서 산행을 했기에 멋진 조망은 진작
포기를 했지만, 똑닥이 카메라의 렌즈와, 안경에 끼이는 성에가
엄청나게 산꾼을 불편하게 만드는구나...
안부(10:10)
그리움 / 김준태
꽃은 죽어서
하늘로 날아가고
나비들은 죽어서
땅으로 내려온다
사람은 죽어서
하늘에 자신의
그림자를 적시고
새들은 죽어서
땅 위에
자신의 날개를
퍼덕퍼덕 남긴다
그리움 때문일까
살아서
못다 한 그리움!
땅 위의 목숨은
하늘로 날아가 목숨을 이루고
하늘 위의 목숨은
땅 위에 내려와
목숨을 이룬다
마치 blind test하듯 코 앞에 있는 거대한 풍력발전기는 짙은 안개에
갇혀 버린 채 윙윙하는 바람소리를 내면서 자기일에만 열중한다
넓은 임도를 따라서 우측으로 간 다음에...
큰재로 향하는 번천리 임도를 따라서 대간길의 마루금을 이어간다
갈림길(10:17)
직진을 하면 바리게이트가 길을 막고있는 큰재로 향하는 길이고...
대간길의 트랙은 좌측으로 향하는데, 거의 대다수 대간꾼들은
임도를 따라서 큰재로 향하지만, 난 오늘도 좌측으로 향한다
비는 그칠줄 모르고 계속 내리고, 풀섶에서 얼굴을 내밀고 있는
산꿩의 다리꽃이 한마디 거든다...지난해 겨울에 개고생을 했으면
됐지...또 뭔 고생을 하려고, 힘든 길을 택했냐고 힐난(?)을 한다
잡풀의 저항이 엄청나게 심하지만 정공법으로 마루금을 이어간다
무명봉(10:22)
무명봉에서 내려가는 길에 스틱에 너무 힘을 가했는지
삐꺽거리면서 된통한번 호되게 꼬꾸라지는데, 나도
모르게 헛웃음이 나온다...청승맞게 비를 맞으면서
뭔 지랄인지...
역쉬!...맥산꾼의 legend이십니다
안부(10:25)
좌측 윗쪽이 대간길의 마루금에 속해있는 1,076.5m봉이나
거의 대부분의 산꾼들이 1,076.5m봉을 패싱하고 이곳에서
우측으로 내려서서 큰재로 향한다.
난 지난해 12월에 이 길을 걸으면서 최악의 컨디션으로 저 곳을
올랐다가 임도를 따라서 큰재로 가버린 후배산꾼들의 밉상이
된 채...큰재에서 번천리로 중탈하면서 개고생한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1,076.5m봉...2023년 12월 10일에 올랐던 사진
우측 아래로 내려서는 길...풀섶에 갇혀서 한참을 버벅거리다가....
천신만고 끝에 큰재로 내려가는 임도로 내려선다(10:27)
1,076.5m봉에서 내려오는 등로를 만나
마루금 복귀한 다음에 큰재로 향한다
좌측의 삼척시 하장면 번천리로 향하는 임도가 보이는 큰재에 도착한다.
지난 겨울의 아픈 추억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곳으로 자암재부터 이곳까지는
산행을 Reset하는 셈이다
큰재(大峙:1,002m:10:30)
삼척시 하장면 속암리와 신기면 고무릉리 감나뭇골사이에 있는 고개로,
태백시 조탄동(하사미동) 귀네미골에서 하장면 번천리로 이어지는 번천
임도가 통과하는데 큰령(大嶺)이라 하여 대치(大峙) 또는 큰재라고 한다
큰재 이정표( ↑댓재 5.0km, 황장산 4.4km, ↓ 덕항산 정상 6.8km)
큰재에서 약간의 오르막으로 올라서니 펑퍼짐한 넓은 공터같은 곳이 나오고
대간길은 살짝 좌측으로 휘어져 북동쪽으로 향하는데 계속 내리는 비 때문에
등산화속의 철벅거리는게 거추장스럽다
무명봉(10:35)
이정표(10:37)
이정표(댓재 4.6km, 덕항산7.2km, 큰재 0.4km)를 지나는데
산 아래에서 밀려오는 안개는 자꾸만 짙어지며 어두워지지만
오늘 산행 길이도 짧고, 난이도도 그리 높지 않아서 큰 걱정은 않는다
지도상에 표기된 대간길에서 살짝 벗어난 곳에 1,031.4m봉이 있다
1,031.4m봉(10:39)
1,031.4m봉 우측에 살짝 꺽어져 풀섶에 숨어있는 나무 계단은
비에젖어 상당히 미끄럽다...주위에는 비에젖은 동자꽃과 하늘나리가
산상화원을 이루고 있으나 청승맞게 내리는 비 때문인지 별 감흥이 없다
동자스님의 아련한 슬픔을 안고있는 동자꽃
넓은 평지를 지나니...
환선봉 5.6km라는 이정표가 나오는데 북진하는
나에게는 별 도움이 안되는 이정표다
하늘나리(꽃말:변치않은 귀여움)
청순함의 상징인듯 보이는 꿩의다리
내가 좋아하는 들꽃중에 하나이다
안부(10:42)
간간히 만나는 이정표의 정확하지 않아서 상당히 헷갈린다
맞은편에는내가 최근에 걸은 육백산 능선이나 지금은 하얀 도화지로
뒤덮은듯한 짙은 안개로 인해 그야말로 餘白으로 변해 버렸다
꽃향기가 되어 /김덕성
당신으로 인해
상처 많은 나약한 내게
삶의 원동력이 생겨
뜻을 이루면서
힘찬 삶은 산 것은
진정 감동의 삶이었습니다
당신 때문에
방황하지 않았으며
헛된 꿈을 꾸지 않았으며
손가락질 받지 않았으며
세월을 낭비하지 않고
최선을 다했습니다
당신으로 인해
싱그러운 가슴으로
당신의 꽃향기가 되어
높낮이 없이
구석구석 향을 풍기며
보다 겸손하게 살겠습니다
무명봉(10:44)
잠깐 사이에 비는 소강상태이지만 계속맞은 비 때문인지
아니면 고도가 높은 곳이라 그런지 약간의 寒氣를 느끼면서
댓재로 향하는 발걸음은 무겁기만 하다...걷다보니 백두대간 안내판과
넓어진 이정표가 있는 1,062m봉에 도착한다
1,062m봉(10:55)
지도상의 1,062m봉에 도착하니 백두대간 등산로 안내판과
땅바닥에 누워있는 이정표가 있고, 우측으로는 삼척시 신기면
고무릉리 찰한곡으로 향하는 희미한 등로가 보인다
삼척시 신기면에 신기면의 서북쪽에 속해있는 고무릉리(古武陵里)는
동쪽은 신기리, 북쪽은 서하리, 서쪽은 하장면, 남쪽은 대기리와 접하며
동서 4㎞, 남북 2㎞이며, 상촌, 하촌, 시목곡 등의 자연마을이 합쳐진 법정리로
동쪽에 대방산, 남쪽에 문무산이 솟아 있고, 대이리로부터 흐르는 환선천은
고무릉리를 휘돌아 서하리로 흐른다.
허목이 쓴 『척주지』에 따르면 고무릉리는 고물암(古勿庵)이라 하였다.
본래 이곳에 고물암이라는 암자가 있었기 때문에 동명(洞名)이 된 것이고,
이것이 와전되어 심의승의 『삼척군지』에 고무릉으로 기록되었고 현재까지
고무릉리(古武陵里)로 부르고 있다.
땅바닥에 누워버린 1,062m봉 이정표
안면있는 대간꾼의 흔적을 보면서...
다시 내리막길로 향한다
비에젖은 모싯대
대간길 좌측은 완만한 평지이나 우측은 까칠한 낭떠리지인데
예전에 없었던 목책들이 설치되어 있다...야간 산행시에 조심할 구간이다
안부(11:00)
비에젖은 일월비비추를 보면서...넓은 안부에 도착하고...
큰재 1.4km라 적혀있는 이정표를 지난다
3차 대간길 때보다는 등로가 많이 바뀌어 상당히 길이
낯설어 보인다
쉼터(11:05)
쉼터에서 내려서니 미로 활기 대규모 힐링숲 등산로 안내판이
나오고 잠시후에 태조 이성계의 5조인 준경묘 갈림길이 나온다
미로 활기 대규모 힐링숲 등산로 안내판
준경묘 갈림길(11:06)
강원 삼척시 미로면 준경길 333-360에 있는 준경묘는 조선을 개국한 태조 이 성계의
5대조이며 목조의 아버지인 양무장군의 묘로 조선개국을 합리화한 용비어천가 첫장에
등장 하는(목조.익조 도조 환조 태조 태종)중에서 목조 이안사는 전주에 살았다가
전주 산성별감과 기생을 사이에 두고 다투어 사이가 나빠 처가인 강원도 삼척으로 피해 왔다
목조 이안사는 부친이 죽자 이곳에서 장사 지냈고 모친이 죽자 동산리에 장사 지냈다
그후 별감이 다시 삼척 으로 부임 한다기에 함경도로 이주 해 여진에서 벼슬을 했다 한다
고종 광무 3년(1899)에 묘소를 수축하고 제각과 비각을 건축하였다.
이 일대는 울창한 송림으로 되어 있어 원시림의 경관을 구경할 수 있는
산자수려한 곳으로 이 곳의 낙락장송인 황장목들은 경복궁 중수 때 자재로 쓰였다고 한다.
목조가 한 도승의 예언대로 백우금관으로 양친을 안장한 뒤, 5대에 이르러 조선을 개국하게
되었다는 전설이 있으며, 이곳에서 4㎞ 떨어진 곳에 목조의 어머니 이씨의 묘인 영경묘
(강원도 기념물 제43호)가 있다.
준경묘(濬慶墓:강원도 기념물 제43호)
준경묘에 얽힌 조선의 개국 설화
조선을 세운 태조 이성계의 고조부인 목조 이안사가 전주를 떠나 삼척으로
왔는데, 삼척에 온지 얼마 되지 않아 아버지 양무장군이 세상을 떠났다고
하는데, 묘 자리를 찾고 있던 중 산 속에서 한 도승이 동자승에게 하는
이야기를 우연히 엿듣게 되었다
"이 곳에서 장사를 지내면 5대 안에 한 나라를 개국하는 그런 인물이 태어날 것이다.
그럴려면 반드시 개토제(開土祭)때 100마리 소를 제물로 바쳐야 하고,
금으로 만든 관을 사용해야 한다"
이에 목조는 궁리 끝에 100마리의 소(百牛)는 흰 소(白牛)로 대신하고,
금으로 만든 관(金棺)은 황금빛이나는 귀릿짚으로 대체했다.
그렇게 해서 예언대로 이성계가 태어나게 됐다는 이야기다.
백우(百牛)를 흰소(白牛)로 대신하여 천년 갈 조선이 5백년만 유지 됐다고도 하고,
준경묘 사방 5봉이 산 수명이 각각 1백년이라 조선왕조의 수명이 500년이였다고도 한다.
준경묘의 풍수지리 - 백우금관형(百牛金棺形)
100마리의 소를 잡아 피를 뿌리고, 금으로 관을 만들라는 도승의 말에 따라, 근처에서 흰색 소
즉, 白牛로 百마리 소를 대신하고,귀리의 짚이 황금빛이라 귀리짚을 금으로 만든 관으로 대신해서
안장했다는 전설로 우리나라 최고의 묘자리라는 풍수지리 이론가들의 평이라고 한다.
좌청룡 우백호에 좌우로 수로가 있고 습지며 좌우 물길이 시야 끝에서 합쳐지고, 앞에는 낮은 산이
펼쳐 있고 최고의 우리나라 소나무(황장목) 숲이 넓게 펼쳐진, 명당 중의 명당 이라는 데는
이견이 없다고 한다. (사진.글 - 펌)
준경묘 갈림길에서 좌측의 오르막으로 향한다
쉼터(11:11)
또다시 1061.9m봉으로 향하는 오르막길
1061.9m봉(11:13)
1,161.9m봉 삼각점(△ 삼척310 / 2005 재설)
1,161.9m봉 정상의 모습
고도차가 별로없는 완만한 내리막길로 향한다
안부(11:15)
허전한 마음에 그리움이 밀려오듯 찰한곡에서 밀려오는 짙은
안개는 한치앞도 안보이는 夢幻的 분위기를 자아낸다
무명봉(11:20)
또다시 시작되는 내리막길
안부(11:22)
이정표(11:25)
댓재 2.4km, 큰재 2.6km, 황장산 1.8km라 표기된 이정표를 지나는데
소강상태로 접어든 비는 다시 내리기 시작하지만 몸뚱아리는 빗물에
흠뻑 젖은 상태라 아무런 것도 인지하지 못한채 걷고 또 걷는다
무명봉(11:27)
쉼터(11:28)
오랫만에 편안한 대간길을 걸어본다.
다시 완만한 오르막으로 올라서니 이정표와 백두대간
안내판과 쉼터의자가 있는 1011.4m봉에 도착한다
1011.4m봉(11:34)
1011.4m봉 정상의 모습
댓재가 점점 가까워지는 느낌이다
베낭속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나훈아의 노래
남자의 인생이라는 노랫가사는 민초들의 힘듦을 대변하는
느낌이다...음악에 맞춰 노랠 흥얼거리면서 길을 걷는다
우측의 절개지에 설치되어 있는 안전로프를 따라서 완만한 내리막길로 향한다
무명봉(11:43)
안부(11:46)
황장산으로 향하는 완만한 오르막길이 시작된다
무명봉(11:49)
잠시후에 이름없는 무명봉에 도착하고...
무명봉(11:52)
이정표(11:58)
오르막 내리막을 왔다리 갔다리 하면서 서너개의 이름없는 봉우리를 지난다
다시 내리막길
안부(12:04)
짙은 안개는 또다시 밀려오고...
삼각점봉?(979.1m:12:07)
잠시후에 황장산에 도착하는데, 헐!...이게 뭐여!
국토지리 정보원의 지도에는 삼각점이 있는 이곳이 황장산이라고
하는데 이정표에는앞으로 100m를 더가야 황장산이라고 하니
상당히 헷갈린다
인증샷
삼각점(△삼척 440 / 2005복구)
짝뚱(?) 황장산에게 정싱을 빼앗긴 채 삼각봉으로만 불리는
悲哀를 느끼는 오리지널 황장산에서 스틱으로 인증샷을
남기고 대간꾼들이 황장산이라 부르는 봉우리로 향한다
황장산(黃腸山:1,059m:12:07)
강원도 삼척시 하장면과 미로면의 경계에 있는 산으로 황장목을 쓰기위해
왕실에서 일체의 벌목과 개간을 금하는봉산(封山)으로 정하면서 부터
황장산으로 바뀌게 되었는데, 다시 말해서 왕실의 관곽(棺槨)재와
궁궐 건축에 쓰일 황장목(黃腸木)을 확보하기 위해 지정한
황장봉산(黃腸封山)이라는 보통명사가 ‘황장산’(黃腸山)으로
고유명사화한 것이다.
이곳 강원도 삼척의 황장산은 산림청 선정 100명산인 문경의 황장산과
同名異山인데, 이름의 유래가 옛날에 황장목이라는 질 좋은 소나무가 많았기
때문이라는 점과 함께 현재에는 황장목은 눈 씻고 찾아보려 해도 찾아보기가
힘들다는 점까지도 공통점이 있지만, 문경의 황장산이 100대 명산에 이름을
올릴 만큼 빼어난 산세를 자랑하는 반면에 이곳 삼척의 황장산은 북쪽의
두타산과 남쪽의 덕항산이라는 두 곳의 100대 명산 사이에 낀 그저 평범하고
순하기 이를 데 없는 산봉우리라는 점이 다르다.
인증샷
일반적으로 질좋은 소나무를 적송 또는 금강송이라 하는데 이들은 주로 강원도나
경북 북부지방에서 자라며 잔가지가 적고 곧게 자라서 중요한 목재로 활용하였다.
그런데 한때 이런 적송(赤松)이 외지로 반출되는 집산지가 경북 봉화군 춘양면
춘양역이었기에 춘양목이라는 별칭이 있다.
그런 적송이 오래되어 300년 이상 고목이 되면 속에 송진이 배어들어 누렇게 되므로
황장목(黃腸木)이라 하며 잘 썩지않아 적송중에서도 적송중에서도 최고로 질이좋은
소나무로 분류되었고 황장목이 생산되는 산을 황장산(黃腸山)이라 불렀다.
범여의 생각은 아무래도 지나온 삼각점봉이 황장산인듯 하다
국토지리정보원의 지도에는 이곳은 고도 표식조차도 없는
무명봉이다
황장산에 대한 아쉬움을 뒤로하고...
댓재로 향하는 발걸음을 재촉한다
댓재가 까까워졌는지 차량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우측으로 꺽어져서 내려가니...
공원처럼 꾸며진 댓재가 나온다
댓재(803.6m:12:20)
강원도 삼척시 미로면 상사전리와 활기리, 하장면 번천리의 경계에 있는
고개로 정상에는 넓은 광장에서 각종 시설물들이 있고, 삼척과 태백으로
이어지는 두타로라 불리는 28번 2차선 일반 국도가 지나가고 있다.
댓재라는 지명은 ‘큰 줄기라는 고개’라는 의미로 일컫는 '대고개(大峙)'라는
뜻의 말이라 생각되며, 대동여지도에는 이를 죽치(竹峙)로 표기하고 있는데,
이는 대고개-댓재를 뜻 옮긴 한 표기로, 여기서의 ‘대’는 곧 대들보-대보름 등과
같은 크다는 의미로서 “竹”의 훈을 빌려 표기한 것이다.
대동여지도에 의하면, 댓재 서쪽 기슭 죽현천(竹峴川) 부근에 고대 죽령현(竹嶺縣)
터가 있었던 곳으로 표기하고 있고, 삼국사기 지리권(권 35) 삼척 군조에 의하면,
죽령현은 고구려 시대에는 죽현현(竹峴縣)으로 불리다가 통일신라 경덕왕 이후
죽령현으로 개칭되었다.
이에 의하면 댓재는 고대 시절에는 竹峴 →竹嶺으로 불리다가 조선시대에 竹峙로도
불렀고, 우리말 땅이름으로 댓재로도 속칭되어 온 것으로 보인다.
댓재 표지석 뒤에 있는 詩
정일남 시인은 삼척시 미로면 출신이라서 미로에서 하장으로 넘는 댓재의 시가 의미 있다.
댓재는 ‘삼척시 미로면 상사전리에 위치한 고개로 두타산으로부터 10km쯤
남쪽의 산줄기에 있다’고 있으며, 조선지도, 해동여지도, 대동여지도는
죽령(竹嶺)이라 표기되어 있다.
진주지(眞珠誌)에 "죽치(竹峙)는 삼척군 서쪽 60리에 있다. 아흔아홉 구비를
돌아 서쪽의 하장면으로 통한다."라고 기록되어 있으며, 이 고개를 넘으면 대동여지도서
말하는 죽현천(竹峴川), 즉 하장면 번천으로 갈 수 있어 예로부터 영동과 영서를 넘나드는
보행로로 이용해 왔다.
댓재 안내판
댓재 산신각 현판
댓재 산신각(山神閣)
산신각의 편액에는 두타영산지신(頭陀靈山之神)이라 적혀 있다
원래 이 산신각은 조선시대에는 쉬음산 정상 부근에 있었는데, 이곳으로
옮겨왔다고 전해지며, 쉰음산 산신각이 있었던 자리에는 지금도 그 석축
제단의 모습이 일부 남아 있다고 한다
댓재 수준점(강원도 삼척시 하장면 번천리 산 57-6)
수준점의 번호: 07-00-44-04
높이(표고, 해발고도) 804M
지리적 위치: 경도 129도 00분 44초
위도 37도 23분 06초
산행은 끝났는데 다시 비는 억수같이 쏟아진다
이곳 댓재는 하장에서 삼척시내로 가는 버스가 있긴 하지만 하루에
2번밖에 다니지 않는다고 하며 14시 30분에 하장을 출발하여
댓재를 거쳐 삼척으로 간다는데 너무 많이 기다려야 하기에 일단
댓재휴게소로 가서 화장실에 가서 옷을 좀 갈아 입으면 안되냐고
하니까...휴게소옆 농막의 비닐하우스에 갈아 입으라고 한다.
농막앞 수도가에서 깔끔하게 씻고 옷을 갈아입은 다음에 고마움의
표시로 따끈한 커피한잔을 팔아주고 휴게소를 나와서 지나가는
차량들을 상대로 앵벌이(히치)를 시도한다...근데 30분을 앵벌이를
해보지만 도데체 차를 세워주지 않아서 삼척 택시를 호출하려다가
마지막으로 하장쪽에서 트럭이 오기에 손을드니 세워준다
이 분은 삼척시내까지는 가지않고 고개 아래에 있는 미로면 면소재까지
가는데 그곳까지 태워주겠다고 하여 일단 고맙다는 인사를 건네고 트럭에
올라타서 가는데, 멀미가 날 정도의 구절양장의 꼬불꼬불한 도로를 내려와
미로면소재지에 도착하여 고마운 분과 작별을 하고 트럭에서 내리는데 트럭
뒷쪽에 빈 택시가 따라 오기에 그 택시를 타고 삼척 터미널에 도착한다
삼척터미널(13:45)
삼척터미널에 도착하여 서울가는 버스표를 예매한 다음에 근처에 있는
식당에 들려 따끈한 김치찌게로 허기진 배를 채우고, 식당의 자판기에서
공짜 커피를 한잔 마신 다음에 다시 터미널로 돌아와서 서울가는 버스에
탑승하여 늘 습관처럼 깊은 잠에 푹 빠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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