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일자: 2024년 11월 27일
☞산행날씨: 맑고 산행하기 좋은 날씨
☞산행거리: 도상거리 23.2km / 7시간 55분소요
☞참석인원: 나홀로 산행
☞산행코스: 어성전 고개-무명묘지-임도- 279.7m봉- 갈림길- 원일전 임도- 301.4m봉
삿갓봉- 안부- 무명봉- 갈림길- 남평문공 묘- 원일전리 임도 삼거리
257.2m봉- 즐마재- 262.5m봉- 명지리 임도- 38선 전망대?- 갈림길
안부- 한천산- 325.7m봉- 안부- 무명봉- 안부- 임도- 임도- 제주고씨
문충공파비- 254.9m봉- 부소치재- SK 이동통신탑- 묘지- 석계리 임도
195.8m봉- 오상영성원- 묘지- 우암리 임도 삼거리- 안부 고개
무명봉- 221.6m봉- 205.7m봉 갈림길- 205.7m봉 -다시 205.7m봉 갈림길
무명봉- 무명봉- 갈림길- 임도- 연안김공&배부인 경주김씨 묘- 151.9m봉
임도삼거리- 상왕도리 임도- 방우재길- 카페 꽃마리- 동해고속도로 암거
갈림길- 갈림길- 안부- 군부대- 안부- 공터- 59번 국도- 양양의용소방대
삼거리- JCI- 고성고개
☞소 재 지: 강원도 양양군 현북면, 손양면
지난주에 추위에 대한 대처를 제대로 하지못해 죽을 고비(?)를 넘긴(?)
무주(신산경표상:덕유)지맥을 하고나서 악몽을 꿀 정도로 트라우마에
시달리다가 또 주말이 되니 산에 대한 그리움 가슴앓이를 한다
그러면서 남은 지맥길을 이리저리 검색을 하는데 백두대간에서 가치를 지맥중에
강원도에 유일하게 남은 양양 남(신산경표상: 만월)지맥 마지막 구간이 눈에 들어온다
마지막 구간은 거리는 길지만 마루금의 대부분이 차량이 다닐만큼 넓은 임도로
변해버렸고, 고도차도 별로 없는 지역인데다가 이번주는 날씨 그리 춥지 않다고
하여, 간단하게 선답자들의 산행기를 검색한 다음에 베낭을 챙겨놓고 잠자리에 든다
오늘 산행구간의 지도
서울발 → 양양행 버스표
집에서 조금 일찍 나왔더니만 경부고속터미널에 도착하니 05시 35분이다
버스표를 예매하고, 아침으로 먹을 김밥 한줄을 사서 베낭에 넣고
터미널 대합실에서 40분이상을 멍때리기를 하다가 버스에 오르는데
정규 고속버스가 아니고, 관광버스이다...조금은 헷갈려서 다시한번
확인을 한 다음에 버스에 올라 늘 일상처럼 깊은잠에 빠졌다가
깨어보니 버스는 내린천 휴게소를 지나 양양으로 향하고 있다
정신을 차린 다음에 버스에서 아침에 산 김밥으로 아침을 해결하고나니
버스는 양양터미널에 도착한다
양양종합여객터미널(08:45)
터미널에서 택시를 타고 어성전 고개로 향하는데 연세가 드신
택시 기사분에게 어성전 고개로 가자고 하니까 귀가 잘 안들리는지
몇번이나 나에게 되묻는다...안되겠다 싶어서 주소를 주었더니
네비에게 '어성전' 이라 말을하니 네비에서 주소를 가리켜 주는 모양이다.
양양에서 남대천을 따라서 한참을 달린후에 어성전삼거리가 나오는데
2년반전에 수헌아우와 함께왔던 곳이라 안면이 있는 곳인 반갑다.
어성전 삼거리에서 좌회전하여 명지리로 향하는데, 기사분이 다 왔다고
내리라고하여, 택시 요금을 지불하고 내렸는데, 내리고보니 어성전 고개
1km 전방이 아닌가...택시는 가버리고 도로를 따라서 한참을 걸어오니
어성전리 버스정류장이 보이고 고개에 도착한다
어성전 고개(漁城田峙:200m:09:30)
양양군 현북면 어성전리와 명지리의 경계에 있는 고개로 418번 지방도가
지나가는데, 지명의 유래는 고개 아래에 있는 어성전리에서 따온듯 하다.
어성전리는 마을 주위에 산성을 이루고 마을은 분지형(盆地形)으로 기름진 전답이
수십만평이 있고 오대산, 응복산(鷹伏山)으로부터 발원하여 흘러오면서 여러 곳의
대.소계곡(大.小溪谷)의 물이 합수(合水)하여 평탄한 하상이 넓게 펼쳐지면서 물고기가
많이 서식(棲息)함으로써 장작불을 때고 이밥(쌀밥) 먹고 고기 잡아 배불리 먹으니 살기 좋은
이상향(理想鄕)을 이룬 곳이라 하여 어성전(漁城田)이라 했다.
현북면의 출장소가 있었으며 광복 후 행정구획상 어성전1리와 어성전2리로
분할되었고, 어성십경(漁城十景)의 아름다운 경치를 품고 있으며 예전 사람들은
어성밭이란 말로 잘 통하는 곳인데, 『여지도서』양양부편에 의하면 영조 35년
(1759년)에는 어성리로 불렀다.
* ≪여지도서(輿地圖書) ≫의 편찬은 1757년 홍양한(洪良漢)이 임금에게 아뢴 것이 계기가 되었으며,
왕명에 따라 홍문관에서 팔도 감사에게 명을 내려 1757년∼1765년에 각 읍에서 편찬한 읍지를
모아 성책한 전국 지방지. 읍지로 그 뒤 김응순(金應淳)과 이은(李溵)이 홍문관에 있을 때 이를
개수하였다고 하나, 현존하는 ≪여지도서≫는 누락된 군현이 많고 결책 순서 등으로 보아 홍문관에
비치되었던 본이 아니라고 추측하고 있다.
또한 대부분 읍지의 호구조의 기준 연도가 1759년(己卯帳籍)인 점으로 볼 때, 1760년 이후에
수집된 읍지들로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는데, ≪여지도서≫의 편찬 목적은 편성된 지 270여 년이
지난 ≪신증동국여지승람≫의 개수(改修)·속성(續成)에 있었다.
≪여지도서≫는 ≪동국여지승람≫을 기초로 하면서 방리·제언·도로·전결(田結 : 旱田·水田)·
부세(賦稅 : 進貢·糶糴·田稅·大同·均稅)·군병(軍兵) 등의 항목이 첨가되어 사회·경제적인
내용이 강화되었으며, 이러한 체제는 16세기 후반이래 대두된 새로운 읍지 편찬의 경향을
정리하고 종합한 것으로 18세기 읍지의 종합적 성격을 대표하고 있다.
어성전 고개에서 바라본 양양군 현북면 명지리(明池里)쪽의 모습
옛날 마을 한가운데 적은 못이 있었는데 수심이 깊은데도 물밑이 징청(澄淸)하여
노는 고기를 헤아릴 수 있으리 만큼 수명(水明)하였으므로 명지리(明池里)라고
칭하였다고 하며, 1916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곤죽골 소맷골 옹기점마을을
병합하여 명지리라 했는데 송이로 유명한 양양지역이지만 특히 명지리 송이도
유명하다고 하는데 그래서 그런지 마을 표시석에도 천년향 송이라 적혀있다
어성전 고개 정상에는 어성전리와 명지리 마을 표시석이 있고, 자동기상관측소와
제설장비 보관소가 보이는데, 강원도 지역임에도 불구하고 오늘 날씨는 포근하다
산행을 시작하다(09:40)
잘못 판단하여 1km 전방에서 택시에 내려 이곳까지 걸어왔더니만
옷이 젖을 정도로 날씨는 포근하고, 바람한 점이 없다
이곳에서 간단하게 장비를 점검하고 산행을 시작하는데, 묘지로
향하는 좁은 小路를 따라서 4분정도 올라서니 양지바른 곳에
무명묘지 2기가 나온다
무명묘지(09:44)
전생에 사이가 좋지 않았나?...
부부의 묘지인듯 한데 서로 등지고 돌아 누워있는데,
묘지에 명패가 없으니 부부인지 알 길이 없다.
묘지에서 치고 올라서니 남쪽에서 올라오는 임도가 나온다
임도(09:46)
이곳부터 오늘은 한참을 임도를 따라서 걸어야 할 듯 싶다
저질 체력인 나로서는 더할나위 없는 고마운 길인지도 모르겠다.
임도를 출발한 지 8분정도 지나서...
임도를 버리고 능선으로 올라서는데, 우측 능선에 있는 봉우리가
족보있는 279.7m봉인데 초반부터 띵가묵고 갈 수는 없잖은가...
급경사의 능선을 치고 오르니 저 너머로 백두대간 능선의
멋진 스카이 라인이 범여의 가슴을 설레게 하는데 구룡령에서
시작한 봉우리가 갈전곡봉, 점봉산으로 이어지는 능선인 듯 하며,
바로 앞에 보이는 능선은 미천골 휴양림 뒷쪽의 산인듯 하다
279.7m봉(09:55)
족보있는 봉우리 자체가 무색할 정도이다...무한도전클럽
띠지 한장이 없다면 그냥 지나치기 딱 좋은 곳이다
우측으로 살짝 꺽어져 내려서니 등로는 아주 좋다
이곳이 송이가 많이 나는지 영역 표시로 빨간 노끈들이 많이 보인다
뚜렸한 등로로 내려서니 선답자의 흔적들이
보이고, 잠시후에 갈림길이 나온다
갈림길(09:57)
뚜렸한 직진길을 버리고 좌측으로 내려 선 다음에...
다시 임도로 내려와서 양양 남(만월)지맥 마지막 구간을 이어간다
달이 차면 기운다고 했던가...나뭇가지 너머로 보이는
만월산(滿月山:628.1m) 은 이름과 영 다르게 보여서
별 감흥이 오지 않는구나.
한없이 이어지는 임도
이곳은 해마다 산불로 인한 피해가 막심한 곳이라 그런지
산판 임도가 마치 고속도로처럼 사통팔달로 잘되어 있는 느낌이다
임도 삼거리가 나오고 좌측의 원일전리에서 올라오는 임도와
명지리로 향하는 임도가 합류하는 지점인데, 국가지점번호
마사0252 9976 팻말은 힘이 들었는지 땅바닥에 드러 누워있다
원일전 임도(10:05)
맨 처음 길을 간 사람은 길이 아닌 길을 간 것이다
나그네가 외로운 것은 길 때문이다
길은 근원적인 고독
같은 길을 둘이 갈 수는 없다
꿈이란 몸부림치며 한밤에 혼자 꾸는 것이다
그는 그 길로 되돌아왔을까
윤석호 시인의 길에 대한 단상 中에서
길을 가다가 또 다시 족보있는 봉우리를 만나기 위해 절개지로
오르는데, 오늘은 덥지도 춥지도 않고, 바닷가임에도 불구하고
바람한 점 없는 날씨 산행을 하기에는 최적의 날씨인듯 하다.
지난주에 개고생했던 몸뚱아리를 추스리면서 능선으로 올라간다
아이쿠야!...오데로 가면 좋겠노...
오늘 처음으로 지맥길의 진수(?)를 보여주는 듯 한데 그래도
지맥길이 이 정도면 양반축에 끼어드는 능선이 아닌가
길이 막혔다는 말은 있어도 끝났다는 말은 없다
길이 막히면 길은 그 자리에 잠복한다
비 오는 날 유리창에 떨어진 빗물
머뭇거리지만 스스로
길을 만들며 흘러내린다
길 안에는 또 다른 길들이 내장되어 있다
윤석호 시인의 길에 대한 단상 中에서
절개지에서 능선으로 올라서니 그래도 등로는 뚜렸하다
완만하게 이어지는 능선을 따라서 올라서니 3등삼각점과
준.희 쌤의 산패가 걸려있는 301.4m봉에 도착한다
301.4m봉(10:18)
301.4m봉 정상 3 삼각점(△연곡305 / 1986재설)
301.4m봉 정상을 찍고 삿갓봉으로 향하는 우측 내리막길
오랫만에 부딪히는 잡목들의 강력한 태클을 이겨내면서 내려가니
안부가 나오고, 힘은 들지만, 오늘은 편안한 날씨가 산꾼의 발걸음을
가볍게 해주는구나
안부로 올라서니 이곳이 송이밭인지 송이철이 끝났는데도
빨간 노끈들이 어지럽게 등로 주위에 많이 보인다
삿갓봉(282.5m:10:24)
양양군 현북면 명지리와 원일전리 경계에 있는 봉우리로 전국의 산 지명중에
흔한 이름중에 하나인 삿갓봉... 전국에 산재해 있는 대부분의 삿갓봉이
삿갓처럼 생겼다고해서 붙혀진 지명인데 이곳도 그렇지 않을까?
선답자들의 산행기를 보면 이 커다란 나무 중간에 준.희 쌤의 산패가
분명히 걸려 있었는데 아무리 찾아봐도 산패는 보이지 않고, 선답자들의
시그널 몇개만 덩그러니 정상을 지키고 있다...누가 없앴을까...
주위에 송이가 나는 지역에서 자주 볼 수 있는 붉은 노끈만 어지럽다.
송이 채치꾼들이 없앴을까 하는 심정은 가지만 물증이 없으니 말을
할 수 없고, 능선 우측 아래가 송이로 유명한 명지리가 아니던가...
삿갓봉 산패 수색(?)에 실패하고 안부로 내려선다
안부(10:25)
무명봉(10:27)
내려서는 길 좌측 아랫쪽으로 이어지는 임도가 자꾸만 산꾼을 유혹한다
힘들게 능선을 타지말고, 편안한 임도로 내려 오라고...
갈림길(10:29)
좌측으로 내려서니 풀섶에 묻혀버린 남평문공 묘지가 보인다
남평문공 묘(10:31)
후손이 돌보지 않은 亡者의 천년주택은 잡목에 묻혀 버렸다
뿌리없는 나무가 없듯이 조상없는 후손들이 있을수가 없잖은가...
이 분의 후손들은 묘지를 잘돌봐 주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임도로 내려서 길을 떠나는데, 임도 아랫쪽으로는 아침에 지나온
원일전리가 보인다
임도에서 바라본 남대천을 끼고 있는 원일전리의 모습
양양군 현북면에 속해있는 원일전리(元日田里)의 지명유래는 그다지
특별하지는 않은데 마을에 고을원이 살았다 하여 원일전리가 되었다고 한다.
일설에는 오대산에서 발원하여 남대천으로 흐르는 대천(大川)은 평탄한
이 마을 중심부에 이르러 비로소 노기를 푸는 듯 소리없이 흐르는 모습이
마치 잠을 자는 것과 같다하여 와천동(臥川洞)이라 하였다고 전하고,
원일(元日)이라는 화전민이 이곳에 들어와 전토(田土)를 개척하여 점차 인구가
많이 입주를 하게 되었으므로 “원일전리”라고 칭하게 되었다고 전해진다.
전국에는 남대천이 불리우는 하천 지명은 많은데 이곳 양양의 남대천은
3개의 하천이 합류해서 흐르는데, 오대산에서 발원한 물은 어성천으로 흐르고,
구룡령에서 발원한 물은 후천으로, 점봉산에서 발원한 물은 오색천으로 흘러
합수하는 하천이 바로 남대천(南大川)이다.
이곳은 2022년 4월 산불로 인해 많은 피해를 본 곳이라고 하는데,
지금은 벌목을 하고 새로운 樹種으로 나무를 심어놨다
남쪽으로 눈을 돌리니 옴팍파인 구룡산 좌측으로 오대산 능선에
속해있는 약수산과 응복산, 두로봉... 오대산의 주봉이 비로봉도
어렴풋이 보이는데...이렇게 산에만 오면 왠지 기분이 좋아지는 느낌...
범여만의 생각일까...
불이난 임도 우측 아래에는 418번 지방도가 지나가는 명지리가 보이고
그 산너머로 보이는 동해바다에 있는 해수욕장으로 유명한 하조대 해변이다.
반복되는 길은 길이 아니다
벽에 묶여 평생을 맴도는 시계도
한번 지난 시간은 결코 반복하지 않는다
몸통을 타 태우고서야 지구를 벗어난
우주선처럼 문을 나선 나에게는 길 뿐이었다
꿈이 길을 만들어내겠지만 때로, 길에 맡기고
가다 보면 어느 날 꿈꾸는 별을 만나게 되리라
나는 지금 내 길의 어디쯤 서 있는가
윤석호 시인의 길에대한 단상 中에서
저 멀리 설악산의 주봉인 대청봉이 산꾼을 물끄러미 내려다 본다
좌측으로는 점봉산이 요염한 자태를 뽐내고 있고, 그 아래로는
천상의 화원이라 불리는 곰배령도 살짝 보인다
임도에서 바라본 하조대(河趙臺)
조선의 개국공신인 하륜(河崙)과 조준(趙浚)이 이곳에서 만년(晩年)을 보내며
청유(淸遊:속되지 않고 고상하게 놂)하였던 데서 유래된 지명인데, 옛 선비들이
청유하던 곳이 지금은 유명한 해수욕장으로 더 알려진 곳이란다
비록 임도를 걷는다마는 주변의 멋진 仙境을 보면서 걷는 재미도 쏠쏠하구나.
앞으로 다가올 등로는 어찌될 지 몰라도, 지금까지 걸어온 길은 범여의 망가진
몸뚱아리를 추스리기에는 안성맞춤이다...오늘 이곳으로 산행지를 선택한 것은
어쩌면 신의 한수인 듯 하다
내가 의도적으로 멀리하지 않아도
스치고 떠날 사람은
자연스럽게 멀어지게 되고...
내가 아등바등 매달리지 않더라도
내 옆에 남을 사람은
무슨 일이 있더라도
알아서 내 옆에 남아준다
나를 존중하고 사랑해주고
아껴주지 않는 사람에게
내 시간 내 마음 다 쏟고
상처 받으면서 다시 오지 않을 꽃 같은
시간을 힘들게 보낼 필요는 없다
鏡虛禪師의 禪詩 中에서
원일전리 임도 삼거리(10:37)
좌측의 원일전리에서 올라오는 임도와 만나는 곳에
국가지점번호 마사 0243 9899 표지판이 서 있고
아직도 산불로 인한 피해가 고스한히 남아 있는 듯 하다
원일전리 임도 삼거리에서...
시멘트 포장 임도를 버리고 옴팍한 샛길로 올라선다
춥겠구나...늦둥이 구절초를 9월이 아닌 초겨울에 만난다
국가지점 번호(마사0243 9899)로 올라서서 257.2m봉으로 향한다
257.2m봉(10:39)
산불로 인해 흔적도 없이 사라진 257.2m봉 정상
국가지리정보원의 지도에 표기된 족보있는 봉우리다
257.2m봉에서 내려와 다시 길을 나선다
저 멀리 미시령 너머로 보이는 금강산 자락은 흐릿하기만 하는구나.
전 세계에서 유일무이하게 쪼개진 이 나라는 언제쯤 합쳐져
휴전선 너머 북녁땅의 백두대간을 내 생전에 걸어 볼 수 있으려나...
즐마재(叱麻峙:10:41)
양양군 현북면 원일전리와 명지리 경계에 있는 고개로 차가 다닐만큼
넓은 임도가 지도상에 즐마재 또는 질마치라고도 하는 고개로 ' 말의 안장 ' 처럼
생겼다고 해서 붙혀진 지명이라고 하는데, 지금은 그런 느낌이라고는 전혀
없어 보이는 곳으로, 우측의 명지리로 이어지는 조그만 임도를 버리고 직진으로
이어지는 넓은 길을 따라서 맥길을 이어간다
국가지점번호 마 사 0238 9967 표지판이 서 있는 임도를 따라서 가다가...
즐마재를 지난지 8분쯤에 다시 임도를 버리고 능선으로 올라간다
262.5m봉(10:52)
262.5m봉 정상 4등삼각점(△연곡415 / 1985복구)
262.5m봉 정상을 찍고 곧바로 임도로 복귀한다
범여의 망가진 몸뚱아리를 추스리기에는 오늘 임도길이 좋아도 너무 좋다
'말타면 종을 부리고 싶은게 인간의 本性' 인가?...편안한 임도로 가는 習性에
젖어서 지맥길에 대한 野性을 잃을까봐 조금은 두렵다
왠 변소?...아!...이곳 임도가 라이딩을 즐기는 잔차족들의
성지라고 하지 않았던가...나야 냄새나는 저 곳으로 갈 일이 없다.
산 전체가 내 뒷간인데...ㅋㅋㅋ
잠시후에 명지리 임도 삼거리에 도착한다
명지리 임도(11:00)
Y자형으로 된 명지리 임도가 나오고 이곳부터 천주교 성지 순례길인지
나무로 만든 십자가가 보이고 CCTV녹화중이라는 팻말도 보이지만
CCTV는 보이지 않는다...지맥 마루금은 좌측의 임도로 향한다
명지리 임도에서 좌측으로 5분정도 걸어가다 보니 멋진 소나무 한 그루가
있는 넓은 공터같은 곳이 나오는데 오래된 선답자의 산행기를 보면 ' 38선 전망대 ' 라는
곳이다
38선 전망대?(11:05)
선답자의 산행기를 보면 38선이라는 나무로 된 표지목이 있었는데
세월의 무게를 이기지 못했는지, 지금은 그 흔적마저도 찾을 수가 없구나
양양군 현북면은 8.15 해방과 더불어 3.8선의 분단으로 인하여 기사문, 말곡,
상광정, 중광정, 하광정, 도리 등 6개리는 3.8 이북지역에 들어갔고, 나머지 8개리는
현남면에 병합되어 강릉군에 편입되었다가 1950년 수복되고 1954년 현북면으로
복구되었다고 하는데 이곳이 그 경계인 곳이다.
* 삼팔선(三八線)이란 북위 38도선을 경계로 한반도를 남과 북으로 분할했던 이 분단선은
제2차 세계대전의 전후처리 과정에서 생겼지만, 역사적으로 1894년과 1903년 각각
중·일, 러·일간에 한반도 분할문제를 두고 열린 비밀회담에서 이미 거론된 적이 있었다.
1945년 8월 11일 미국의 국무부·해군부·육군부 3부 조정위원회는 그동안의 미 육군부
제안들을 바탕으로 38선 이북은 소련군이, 이남은 미군이 일본군의 항복을 접수하도록
하는 38선 분할초안을 기안했는데, 이미 웅기·나진 등에 진주한 소련도 미국이 제안한
이 조항을 반대없이 받아들였다...이어 태평양 방면 연합군 최고사령관 더글러스 맥아더가
1945년 8월 15일 발표한 '일반명령 제1호'을 통해 38선이 공식적으로 기정사실화되었다.
38선은 전후 한반도에 단일세력 진입을 막기 위한 신탁통치안, 제2차 세계대전중 군사점령과
항복접수를 일국에 맡길 수 없다는 구획선안 등 전후처리 과정에 줄곧 내재된 미·소의
국제정치적 흥정과 이익이 작용한 결과이다
잠시후에 오를 한천산이 빼꼼히 얼굴을 내밀고 있다.
오늘 산행중에서 가장 높은 산봉우리이다
하나의 인간은 하나의 길이다.
하나의 사물도 하나의 길이다.
禪師들은 묻는다.
어디로 가십니까, 어디서 오십니까.
그러나 대답할 수 있는 자들은 흔치 않다.
때로 인간은 자신이 실종되어 있다는
사실조차도 모르고 길은 간다.
이곳에서 우측 능선으로 올라가야 하지만
오늘 산길에서 임도를 걷는 편안한 習이
벌써 베였나?...조금 더 임도를 따라서 걷는다
갈림길(11:11)
38선 전망대에서 6분 정도 걷어서 계곡물이 흐르는 우측 비탈로 올라선다
고수들도 편안한 이 길을 택했구나
사면 비탈길의 낙엽 아래는 땅이 얼어있어 상당히 미끄럽다
낮은 산이라 우습게 봤다가는 큰 코 다칠것 같아서 조심 또 조심한다
계곡물의 발원지같은 습지를 만나서 계속해서 오르막길로 향한다
안부(11:16)
백두사랑산악회 이 대장의 흔적도 보이는구나.
10년도 훨씬 지난 시간인데도 예전에 날고 뛴다는
동료 산꾼들의 얼굴은 이제는 길을 가다가도
모를것 같은 기분이지만, 그래도 보고 싶구나
반갑습니다...한천산 오름길에 빛바랜 비실이부부님의
시그널이 산꾼 범여를 반긴다
한천산으로 오르는 등로는 조금씩 거칠어지지만
지맥길이 이 정도면 아주 양반축에 드는거 아닌감...
한천산 오르는 길은 등로가 어지럽고, 이곳도 송이가 나는 지역인지
빨간 노끈이 정신을 혼미하게 만든다...송이철에 오면 오해받기
딱 좋을듯 싶다
한천산(寒泉山:329.5m:11:40)
양양군 현북면 명지리와 장리의 경계에 있는 산으로 차가운 물이 솟아 오르는
샘이 있어서 붙어진 지명이라고 하며, 등로 좌측으로는 원일전리를 벗어나
장리(獐里)로 접어들었는데, 옛날에는 노루가 많이 서식하였다하여 장리(獐里)라고
칭하였는데 속칭 "노루골"이라고도 한다.
또한 옛날 뱃터말 근방에 겨울에 눈이 내려도 항상 눈이 녹아 없어지는 자리가
있었는데 이곳에 노루가 자주 머물다가는 吉地로 獐興寺(장흥사)라는 절을
지었다는 연유로 명명하였다고 전하고 있다.
언 넘의 짓거리인가?
선답자의 산행기를 보면, 분명히 이 큰 소나무에 준.희 쌤이 걸어둔
산패가 보였는데, 눈을 씻고봐도, 산패는 보이지 않고, 바닥의 쬐끄만
나뭇가지에 한천산이라 걸어둔 띠지 하나가 산 정상을 지키고 있다
한천산 산패 수색(?)에 실패하고, 우측으로 내려서면서 맥길을 이어간다
가느다란 소나무들이 길을 막아서긴 해도 맥길을 이어가는데는 큰 문제가 없다
안부에 내려섰다가 325.7m봉으로 오르는 우측
사면에는 무인항공안테나가 하늘을 찌르듯 서 있다.
325.7m봉(11:45)
325.7m봉 정상에 있는 삼각점은 마모가 되어 판독이
불가능한데 자료를 찾아보니 삼각점( △ 속초442)이라고 한다
325.7m봉 정상에서 맥길은 좌측으로 이어지고...
건강한 소나무가 많이 보이는데 송이가 많이 나올법한 곳 인듯 하다
안부(11:48~12:00)
산행 시작부터 이곳까지 오면서 물 한모금도 안 먹었더니만 허기가 진다
이곳에서 베낭을 내려놓고 따뜻한 커피에다가 카스테라 하나로 점심을
해결하고, 약간의 휴식을 취한후에 다시 맥길을 이어간다
무명봉으로 오르는 길에서 바라본 하조대 해변의 모습
무명봉(12:04)
무명봉에 올라선 다음에 맥길은 좌측으로 이어지고, 맑은 날씨에
바람한 점 없고, 소나무 숲사이로 내리쬐는 햇빛을 쬐면서 오랫만에
힐링 산행을 하는 기분이다...아!...너무 좋다.
마루금은 우측 능선으로 이어지나 그냥 편안한 묵은 임도를 따라서 간다
안부(12:10)
안부를 지나니 선답자들의 흔적이 보이고...
뚜렸한 직진 임도를 버리고 우측 능선으로 내려간다
임도(12:22)
임도를 가로질러 내리막길로 내려서니 안면있는 선답자들의
시그널들이 뭉태기로 보이는데 이곳부터 마루금은 아침부터 같이해 온
현북면과 좌측은 계속 같이가나 우측은 현북면에서 손양면으로 바뀐다
묵은 임도를 따라서 가는데 간간히 보이는 선답자들의
흔적이 그저 고맙기만 하다
잠시후에 임도로 내려선다
임도((12:35)
한천산 오르기 직전에 헤어진 임도를 다시 만나서
맥길을 이어가는데, 이 임도는 라이딩을 즐기는
잔차족들이 많이 다니는지 등로는 반질반질하다
마루금은 좌측의 능선으로 올라가야 하나 그냥 임도로 간다
자꾸만 오르지 않은 마루금이 눈에 밟힌다
오룩스맵상의 지도에는 이곳을 부소치라고 표기가 되어 있으나
실제 부소치재는 이곳에서 조금을 더 가야 하는데, 지도를 보니
이 임도 아래에 부소치 마을이 있는 곳이다.
길을 가는 데
가장 불편한 장애물은
자기 자신이라는 장애물이다.
험난한 길을 선택한 인간은 길을 가면서
자신의 욕망을 버리는 일에 즐거움을 느끼고
평탄한 길을 선택한 인간은 길을 가면서
자신의 욕망을 채우는 일에 즐거움을 느낀다.
소설가 이 외수님의 글 중에서
아프리카 돼지 열병을 차단하기 위해서 임도 옆으로는 긴 철조망이 처져있다
임도 위를 지나던 마루금이 다시 임도와 합류하여 길을 떠난다
마루금은 현북면 석계리에 올라오는 임도와 합류하는 이곳이
천주교의 순례길인가...나무로 만든 낡은 십자가가 보이고
이곳부터는 양양군 현북면을 벗어나 좌,우가 온전히 양양군
손양면으로 들어선다
제주고씨 문충공파비(12:45)
아프리카 돼지 열병을 막기위해 설치한 철조망 안쪽에는
제주고씨 문충공파비 세장비가 보인다
저 앞에 보이는 봉우리가 253.2m봉이다
이 능선으로 올라가야 253.2m봉으로 향하는 길인데
철조망에다 문은 굳게 닫힌채 열쇠로 채워져 있어 포기한다
253.2m봉으로 오르는 등로 옆을 따라서 임도로 걸어간다
눈팅이짓만 하고 통과하는 253.2m봉(12:50)
참으로 편안한 길은 계속된다...오늘 산행은 날로 먹는 기분이다
말이 씨가 된다고 했던가...그러면 그렇지
편안한 임도를 버리고 좌측 능선으로 올라간다
고도차가 별로없는 등로를 따라서 올라서니...
삼각점이 있는 254.9m봉에 도착한다
254.9m봉(13:05)
254.9m봉 정상 2등삼각점(△속초26 / 1992재설)
254.9m봉 정상에 있는 무인산불 감시탑
254.9m봉 정상에서 내려서니 넓은 임도가 나오는데 부소치재이다
부소치재(13:15)
양양군 손양면 석계리와 삽존리를 넘나드는 2번 군도인 부소치길이 지나가는 고개로
지명은 조금전에 지나온 지도 트랙상의 부소치재 아래에 있는 마을에서 따온 듯 하며
예전에는 부소치리가 있었으나 지금은 석계리와 함께 남양리에 합병 되었다.
또 다른 지명으로는 석계리 고개라고도 부르는데 고개 정상에는 양양군 사유임도(남양리)
표지판과 썩어 문드러진 이정표, 디모테오 순례길 안내판이 있는 Y자형 삼거리로
부소치라는 지명의 유례는 알 길이 없다.
부소치재가 지나가는 양양군 손양면 남양리(南陽里)는 고려조에는 판교리(板橋里)였으나
그 후『여지도서』양양부편에 의하면 영조 35년(1759년)에는 삽존리(揷存里)로 개칭하였고,
1955년 행정구역을 개편하여 석계리, 부소치리를 병합하여 남양리라 하였다.
본래 양양군 남면의 지역으로 주위 산림에 섶이 무성하여 섶 좋은 마을이라 하던
이름이 변음 되어 삽존리가 되었다고 전하고 있으며 1916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손양면에 편입되었다
디모테오 순례길(38선 도보 순례 안내판)
티모테오 순레길이란 안내판의 내용
양양성당은 38선에서 북으로 약 12km에 위치합니다...1946년 소련군이 진주하여
양양성당을 무전실로 쓰다가 1948년엔 인민군이 진주하여 성당을 완전히 장악합니다.
이때부터 북쪽지역의 성직자.수도자.평신도들이 양양성당에 찿아와 당시 주임사제
이광재(티모테오) 신부님께 38선을 무시히 넘을 수 있게 부탁해오면
당시 38선 인근 마을 신자를 불러 그네들을 무사히 38선 남쪽까지 넘어갈 수 있도록
안내을 다시 부탁하셨습니다.
이때 남하한 경로는 여러곳이지만 주로 많이 이용한 코스는 고노골(월리). 한구렁(용천).
부소치고개(남양리).한천산 부근 명지리 안골이 이용되었습니다.
당시 명지리에는 경찰지서 전투경찰이 주둔했다
당시 양양성당 주임사제인 이광재(티모테오)신부님께서는 남하하는 신자들이 무사히
38선을 넘도록 강복을주고 기도해 주셨습니다.
이 무렵 신부님께서는 북쪽의 사제 부족으로 평강성당 신자들을 돌보기 위해 그곳에
계시다가 1950년 6월24일 인민군에게 잡혀 원산교도소에 입감이됩니다.
1950년 10월 9일 후퇴길에 몰린 인민군들은 교도소에 수감중인 230여명의 포로들을
밧줄로 각자 묵어 다시4명씩 엮어 원산 와우동 방공호속에서 인민군들의 따발총에 사살되셨습니다.
그 참혹한 현장속에서 살아돌아온 이는 당시 명사십리 담임목사인 한준명 목사. 평강고고
1학년 학생 권혁기(라파엘) 성명미상 2명이었습니다.
그들의 증언을 들어보면 방공호속에서 마지막 숨을 거두면서 물을 달라 목마르다
살려달라 는 외침에 제가 도와드리겠어요.
제가 물을 떠다 드리겠어요. 라고 중얼거리며 숨져 간 이광재(티모테오) 사제의
넋을 기리며 그 당시 38선을 넘던 긴박한 상황들을 상상하며 현재의 우리가 있기까지
감사하는 마음과 마지막 숨을 거두면서도 사랑을 실천한 순교의 정신을 후손들이
이어갈 수 있도록 이 길을 걸으며 마음속에 새길 수 있기를.....라고 쓰여있다
부소치재에서 맥길은 좌측으로 이어진다
지도를 보니 우측으로 가더라도 만날수는 있다마는
조금 더 먼 것 같아서 좌측으로 향한다
조금을 더 진행하니 산불을 감시하는 트럭이 내려오면서
어디를 가느냐고 하면서 제지를 하려기에 오상영성원에
간다고 거짓으로 고하니 제지를 하지 않고, 조금만 더가면
오상영성원이 나온다고 하면서 그낭 지나간다
조금을 더 진행하니 임도 우측 능선에 이동통신탑이 보인다
SK 이동통신탑(13:19)
넓은 공터를 지나고...
국가지점번호 라아9918 0266 팻말을 지나면서 내리막길로 향한다
당신에게는 당신만의 길이 있다.
나에게는 나만의 길이 있다.
그리고 옳은 길, 정확한 길, 유일한 길이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묘지(13:24)
묘지를 지나서 넓은 임도를 따라서 무심코 걷다보니 우측 능선에
있는 삼각점(△속초 437) 이 있는 족보있는 208.3m봉를 지나치는
愚를 범하는데, 다시 되돌아 가기에는 너무 멀리 와버려서 포기한다.
국가지점번호 ‘라 아 9880 0330 표지판이 있는 곳에서
물을 마시면서 육포와 초콜렛으로 원기를 보충하고
15분 정도의 휴식을 취한다
계속되는 임도... 마루금은 좌측으로 이어지나 그냥 임도로 향한다
석계리 임도(13:52)
좌측 오르막으로는 석계리로 넘어가는 임도이고 우측 아랫쪽으로는
오상영성원으로 향하는 길이다
도로를 가로질러 묘지가 있는 곳으로 올라간다
봉분이 거의 보이지 않는 묘지 위로 올라서니 195.8m봉이 나온다
195.8m봉(14:00)
지도상에는 엄연히 족보있는 맥길의 봉우리나 아무도 오르지
않았는지 그 흔한 맥꾼의 시그널 하나 보이지 않고, 잡풀만 무성하다
우측으로 내려서는데 잡목의 저항이 엄청나게 심하다
한참을 버벅거리다가 내려서니 오상영성원 둘레길이 나온다
195.8m봉에서 잡목들의 거친 저항을 뚫고 내려서니 오상영성원에서
조성한 듯한 둘레길 형태에다, 조형물들이 많이 보인다
내 전공이 아니라 알 길이 없고, 관심도 없다
오상영성원을 바라보면서 조금전에 헤어진 임도를 다시 만난다.
오상영성원(14:05)
오상 영성원은 피정(避靜)의 집이라고 하는데 피정을 인터넷에 검색해보니
피세정념(避世靜念)의 준말로 일상생활에서 벗어나 성당이나 수도원같은
곳에 가서 조용히 자신을 살피고 기도하며 지내는 일을 피정이라고 하는데,
佛家에서 말하는 좌선(坐禪)같은 참선의 한 방법과 같은 모양인 듯 하다
오상영성원 좌측의 도로를 따라서 올라가는 길에 산불을 감시하는
차량이 있는데, 혼자서 걸어가니 특별히 제지하지는 않는다
묘지(14:13)
좌측으로 묘지가 나오고 묘지 뒷쪽으로 설악산의 주봉인
대청봉이 빼꼼히 얼굴을 내밀면서 홀로걷는 범여를 바라본다
묘지옆에는 아직도 뭔 미련이 남아 있는지 쑥부쟁이가 보이고 조금을 더 내려가니...
오상영성원 안내판이 서 있는...
임도 삼거리에 도착한다
우암리 임도 삼거리(14:15)
국가지점번호 라 아 9853 0427지점 표지판과 오상영성원 안내판이 있는
Y자형 임도 삼거리로 양양군사유임도 현위치(우암리)라 적혀있다.
양양군 손양면에 속해있는 우암리(牛岩里)는 마을 앞에 돌이 있는데
마치 소처럼 생겼다고 해서 마을 이름을 우암(牛岩)이라 불렀는데
마을 이름이 상징하는 바와 같이 한우사육이 우수하다
오랫동안 편하게 걸었던 임도를 버리고 숲 속으로 들어선다
등로는 보이지 않고 길은 내가 만들어서 걸어간다
안부 고개(14:25)
우측 아래로는 조금전에 헤어진 우측 임도가 보이는데
선답자들은 저 아래에서 올라 왔는지 시그널은 한장도 안 보인다
안부 고개를 지나면서 뚜렸한 등로가 나타난다
무명봉(14:28)
뫳돼지가 등로를 만신창이로 만들어 놨다....이노무 쉬키들...
완만한 등로를 따라서 올라오니 준.희쌤의 산패가 걸려있는
221.6m봉 정상에 도착한다
221.6m봉(14:30)
내리막길로 내려섰다가 능선으로 올라서니...
205.7m봉 갈림길(14:35)
맥길은 좌측 아래로 내려서고, 직진으로 1분 거리에 있는
205.7m봉이 있기에 뭐가 있나 궁금하여 205.7m봉으로 향한다
205.7m봉(14:36)
선답자의 시그널 한장만 정상을 지키고 있다
다시 왔던 길로 되돌아 간다
다시 205.7m봉 갈림길(14:38)
좌측으로 내려서면서 길찾기를 나서는데 지맥 산꾼들의 희미한
흔적들이 조금씩 남아있는 길을 따라서 서사면으로 내려선다
빛바랜 선답자의 흔적으로 인해, 뒤따르는 후답자 범여는
편하게 가는데, 속된말로 '털도 안뽑고, 날로 먹는 느낌' 이랄까...
무명봉(14:45)
고도차가 거의없는 고만고만한 봉우리를 홀로걷는 이 맛도 쏠쏠하다
등로가 거의 보이지 않은 길을 따라서 걷는데 등로 우측으로
7번 국도를 따라서 펼쳐지는 동해바다는 흐릿하게 보이는데
바닷가 근처라서 바람이 불면 추울까 싶어서 옷을 잔뜩 껴입고
왔는데, 다행히 바람이 불지않아 추위 걱정은 안하고 걷는다
무명봉(14:52)
갈림길(14:54)
무명봉에서 2분정도 내려선 후에 직진으로 이어지는 뚜렸한 등로를
버리고 길이 전혀없는 좌측으로 급하게 꺽어져 마루금은 이어지는데
무심코 걷다보면 헛짓거리(알바)하기 딱 좋은 곳이라 독도에 아주
주의해야 할 구간이다
등로가 없는 곳으로 내려서니 선답자의 시그널 하나가 산꾼을 안내한다
뉘신지는 모르나 아뭏든 복받을깁니다
길이 없는 곳으로 내려서니 넓은 임도가 나온다
임도(15:00)
양양MTB 경기장 팻말을 따라서 임도로 향하는데
이곳이 왜 잔차족들의 성지인가를 알 것만 같다
도로가 휘돌아서 내려가는데 잡풀에 묻혀버린 망자의 천년주택이 보인다.
산 자들이 살던집도 1년만 돌보지 않아도 수풀이 무성한데, 망자의 주택도
똑같은 모양이다
연안김공&배부인 경주김씨 묘(15:10)
연안김공 부부묘를 지나서 내려서니 임도 삼거리가 나오고 트랙을 확인하기
위해서 스마트폰을 확인하는데, 이게 뭐여?...스마트폰의 베터리가 방전되어
죽어 버렸구나...그래서 베낭을 뒤져보는데 보조베터리가 보이지 않고... 나 원참...
이곳부터의 기록은 똑닥이카메라로만 할 뿐이고, 시간도 똑닥이 커메라의
기록으로만 되고, 트랙은 산행을 오기전에, 走馬看山 격으로 읽은 선답자의
산행기를 머릿속을 기억을 되살리면서 걷는다
151.9m봉(15:13)
묘지 윗쪽이 지도상에 있는 151.9m봉인데 트랙이 없으나 당연히
모르고 지나는것은 當然之事가 아닐까...집에와서 트랙을 확인하여
산행기에 기록한다
국가지점번호 라아9907 0620 팻말과 빛바랜 산불조심 안내판이 보이고...
임도삼거리(15:14)
좌측으로는 양양군 손양면 상왕도리 산발이재로 이어지는
샛길이 보이고, 직진으로 이어지는 마루금 임도는 지금
콘크리트 타설작업을 해놓고, 가지 말라는 출입금지 팻말을
세워놨다.
상왕도리 임도(15:19)
도로공사를 하는 장비들이 보이고 그 옆에는 NO 54번이 서 있다
NO 54번 철탑(154kV신양양/양양T/L)을 만나는 이곳에서 임도
좌측으로 내려가는 샛길이 보이는데 느낌상 마루금처럼 보이지만
지금은 트랙도 없이 '장님 문꼬리 잡는식' 으로 길을 걸으니 확인할
방법이 없어서 그냥 편안한 임도를 따라서 걸어간다
오늘의 마루금은 양넘 지갑줏듯 편하게 걷다보니 몇개월간 만신창이가
되어버린 범여의 몸뚱아리를 추스리기에는 더 없이 안성맞춤인 듯 하다
2차선 도로가 보이는 곳으로 내려서는데
도로명 주소가 방우재길이라는 팻말이 보인다
앞에는 삼척과 동해를 잇는 동해고속도로가 보이고 , 그 너머로는
동해바다가 보이건만, 똑닥이 렌지에 먼지가 끼였는지 바닷물이
흐릿하게만 보이고, 우측으로는 설해원이라는 골프장의
클럽하우스 건물은 산 속에 파묻힌 듯한 느낌이다
동북쪽으로 눈을 돌리니 양양공항의 관제탑이 보이는데
遠景이라 그런지 뚜렸하게는 보이가 않는구나
방우재길(15:22)
셀카놀이
방우재길 도로를 따라서 언덕위로 올라가니 배추밭이 보이고...
카페 꽃마리(15:25)
카페 꽃마리에서 내려오니 좌측으로 조금전에 지나온 NO 54번 송전탑의
샛길에서 내려오는 길이 보이는데. 저 길이 확실한 마루금인 듯 하다
도로에서 바라본 양양군 손양면 상왕도리(上旺道里) 의 모습
왕도리(旺道里)는 고려 때 판교리(板橋里)의 부속동으로 있었는데 조선 세조대왕이
낙산사로부터 월정사에 행행(行幸)도중 이곳에 있는 청풍정(淸風亭)에 소요(逍遙)하셨다고
왕도리(王道里)라 칭하였다가 그 후 일제 강점기에 왕(王)자가 쓰여지는 지명은 거의
다 왕(旺)자로 고쳐 기록하였다.
이는 일본인들이 문화정책 말살이란 의도 하에 왕(王)자를 일왕을 의미하는[日+王=旺]자로
고쳐 기록하였다고 하는데 이 마을은 웃왕도와 아랫왕도로 불리어 오다 웃왕도를 상왕도리
아랫왕도를 하왕도리로 분할되었으며, 상왕도리에는『서당마을』이 있는데 약 100년 전
해운(海雲)선생이 서당을 창설하여 한문을 가르친데서 연유한다.『여지도서』양양부편에
의하면 영조 35년(1759년)에는 판교리로 불렀다.
* 행행(行幸)은 동북아시아의 왕조 국가 군주들이 궁궐 외부로 거둥하는
일종의 의례로 행행(行幸), 행행(幸行)이라고도 하는데, 유교적 이상사회를
실현하기 위해 유교 국가의 군주가 통치기간 중에 늘 거행하던 정치 행위였다.
국가의 의례적 전범(典範)으로 사직과 종묘의 제사, 능행(陵幸), 원행(園幸), 열무(閱武),
강무(講武), 사냥 등을 거행할 때 시행되었으며, 격쟁(擊錚)이라는 행위를 통해 직접
국왕에게 상언(上言)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했다... 국왕과 민인 간의 만남이 이루어지는
장이었기 때문에 국왕이 대외적으로 왕실의 적통성과 권력자로서의 통치권을 확인할
수 있는 의례였다고 한다.
상왕도리 마을로 내려가다가 우측으로 꺽어진다
동해고속도로 암거(15:30)
동해고속도로 암거를 통과한 다음에...
시멘트 포장이 된 우측의 임도로 올라간다
시멘트 임도로 올라가는 길에서 뒤돌아 보니 속초로 향하는
자동차들이 거침없이 달리고, 설악산은 짙은 박무에 휩싸여
잘 보이지가 않으니 참으로 아쉽기만 하다
갈림길(15:33)
시멘트 포장이 끝날 즈음의 임도에서 맥길은 좌측으로 꺽어지고...
스마트폰이 죽어버려 오롯이 산에만 집중하라는 배려인지?
옴팍한 길을 따라서 걷고, 또 걸으면서 바짝 긴장을 한다
'봉사 문꼬리잡는 심정'으로 반짝 긴장을 하면서 걷는데
반가운 선답자의 흔적을 만난다...시그널이 잘 보이지 않는
오늘의 산길에서 이 분의 흔적이 유난히도 많이 보인다
갈림길(15:38)
편하게 걸어왔던 넓은 임도는 직진으로 내려가고, 이곳에서
맥길은 우측의 능선으로 올라가지만, 험한 길이 아니라
힘이 드는 줄 모르고 걷는다
능선에 올라오니 지맥길에서 자주 만나는 안면이 있는
시그널 서너개가 범여에게 길을 안내한다
편안한 등로는 계속되고, 오직 마루금에만 집중하면서 걷는다
안부(15:46)
안부를 지나니 군부대 시설물이 보이는데
선답자들의 산행기에 등장하는 부대인 듯 하다
좌측으로 맥길은 이어지고...
또 다른 군부대 시설물을 만난 다음에 조금을 더 가니 군부대 철조망을 만난다
군부대(15:50)
군부대가 보이고 직진의 철조망이 아닌 좌측으로 맥길을 이어가는데
몇년전 제천의 어느 부대를 지나면서 군부대 철조망을 찍은 사진을
블로그에 올려 산행기를 썼다가 군부대의 고발로 경찰서에 끌려가서
곤혹을 치른 아픈 기억이 있어서 최대한 조심스레 가야할 듯 싶다
철조망을 지나는데 초병들은 보이지 않으나 CCTV가 많이
보이기에 최대한 몸을 낮추면서 조심스레 맥길을 이어간다
철조망을 따라가는데 서서히 해는 서산으로 기울기 시작한다
안부(16:02)
군부대 철조망을 따라서 12분정도 빠른 걸음으로 걷다보니
안부가 나오고, 이곳에서 우측 능선으로 이어지는 곳으로
올라가서 철조망을 따라서 고성고개라 향해야 되는데
선답자 산행기를 보면, 군부대에 경고방송이 나오고, 군인들의
제지를 받는 곳이라는데, 어둑해지기 시작하여 괜히 오해를
받아 일어날 불상사도 염려되어 과감히 맥길을 포기한다
저쪽 능선으로 맥길은 이어지지만...
계곡의 안부로 내려가는데 등로가 상당히 미끄럽다
계속되는 계곡길
거의 다 내려온 듯 하다
공터(16:15)
추수가 끝난 논이 보이고 남대천 너머로 양양읍내가 시야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하얀집 뒷쪽의 능선이 군부대가 점령하고 있는 마루금이다
산에서 내려와 월리마을로 들어서려는데 저 멀리
설악산이 애처로운듯 범여를 내려다 보고 있구나
양양군 손양면 월리마을 가운데로 통과한다
59번 국도(16:25)
월리 마을을 빠져 나오니 59번 국도가 나오고, 한국씽크 공장이
보이는 횡단보도를 끼고 우측으로 향한다
군부대를 따라서 가고있는 마루금...
저 길로 가지 못한게 아쉽기만 하다
도로 건너편에는 양양 평생학습관이 보인다
양양의용소방대(16:32)
삼거리(16:33)
길건너 좌측으로 SK가스 충전소가 보이고 저기를 지나면
양양읍내로 들어가는 양양교로 이어지는 삼거리이다
JCI(16:34)
고성고개가 보이기 시작하고, 오늘 산행은 아무래도 이곳에서 접어야 할 듯 싶다.
이곳에서 합수점까지는 얼마 남지않은 거리이지만, 스마트폰도 먹통이고
부실하게 해결한 점심 탓인지 배도 고프니 방법이 없구나.
송현리(松峴里)는 옛날에 수십주의 대송(大松)이 뒷고개에 울창하였기에
송현리(松峴里)라고 칭하였는데, 본래 양양군 남면지역으로서 1916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새이말(間村), 정자동 조구터를 병합하여 송현리라하여 손양면에
편입되었고 『여지도서』양양부편에 의하면 영조 35년(1759년)에는 고송개리로
불렀다고 한다
고성고개(16:35)
양양군 손양면 월리와 송현리의 경계에 있는 고개로 7번국도와 59번
국도가 교차하는 사거리인데 산꾼들이 사용하는 지도에는 고성고개라
표기가 되어 있지만, 도로표지판에는 송현사거리로 되어있고, 국도 59호선
종점 표지판이 서 있는데, 『여지도서』양양부편의 자료에 의하면 고송개리로
기록이 되어 있는데 와전되어 고성고개로 된 듯 하다
59번 국도 종점표지석
전라남도 광양시 태인동을 기점으로 경상남북도의 서부 내륙 지역과 강원특별자치도
중심부를 관통하여 양양군 양양읍까지 남북 방향으로 길게 뻗어 있는 국도로
총 연장은 415.8㎞이며, 대부분 구간이 내륙 산간지역을 관통하기 때문에 도로 폭이 좁고
기울기가 심한 편이이서 장거리 간선 운송보다는 지역간 단거리, 중거리 이동이나 주변
명승지에 접근하기 위한 수단으로 주로 활용된다.
주변에는 지리산국립공원(중산리), 가야산국립공원(해인사), 고수동굴 및 도담삼봉,
오대산국립공원 등의 관광지가 많아 구간에 따라 행락객의 이용이 빈번하게 이루어진다.
이곳에서 조금 더 올라가니 양양 만남의 광장이라는 식당이 나오고 이곳에서
김치찌게로 든든하게 저녁을 해결하고 식당에서 불러주는 카카오 택시로
양양터미널로 향한다(택시비 5,000원)
양양종합 여객터미널(05:20)
터미널에 도착하여 서울가는 버스를 알아보니 저녁 10시이후의 버스밖에
없다고 하는데 참으로 난감하다...어케 해야할까, 한참 고민을 하는데
매표소 아줌마가 오색, 한계령, 원통, 인제를 거치는 버스가 있는데 이 버스는
국도를 따라서 가는 동서울행 버스표로 시간이 무쟈게 걸린다고 한다
표를 살까말까 하고 망설이는 내가 안쓰러워 보이는지 이리저리 검색을 하더니
19시에 서울 경부로 출발하는 취소된 표가 있다고 하면서 맨 뒷좌석의 가운데
의자인데 괜찮겠냐고 하기에 지금 찬밥, 더운밥 가릴땐가...얼른 예매를 한다
양양발 → 서울행 버스표
일단 버스에 오르니 긴장이 풀리는지 그냥 잠에 빠진다
얼마나 잤을까...잠에서 깨어나니 버스는 경기도 남양주시
화도를 지나고 있고, 잠시후에 터미널에 도착하여 집으로 향한다
'양양 남(만월)지맥(終)' 카테고리의 다른 글
양양 남(만월)지맥 제3-2구간 - 고성고개에서 남대천/동해합수점까지 (4) | 2025.01.02 |
---|---|
양양 남(만월)지맥 제1구간 - 분기점(1.270.3m봉)에서 전후치까지 (1) | 2023.09.02 |
양양 남(만월)지맥 제2구간 - 전후치에서 어성전 고개까지 (0) | 2022.05.16 |
양양 남(만월)지맥 개념도와 지도 (0) | 2021.08.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