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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범여(梵如)의 世上사는 이야기
양양 남(만월)지맥(終)

양양 남(만월)지맥 제3-2구간 - 고성고개에서 남대천/동해합수점까지

by 범여(梵如) 2025. 1. 2.

☞산행일자: 2024년 12월 29일

☞산행날씨: 맑고 산행하기 좋은 날씨

☞산행거리: 도상거리 6.8km / 2시간 10분소요(산행시간 의미없음)

☞참석인원: 불알친구 2명과 함께 

☞산행코스: 고성고개- 송현리 버스 정류장- 무명봉- 안부- 무명봉- 안부- 체육시설

                    안부- 무명봉- 양양공항 안전운행 철탑- 임도삼거리- 마을도로- 쉼터1

                    쉼터2- 무명봉- 마을도로- 무명봉- 전주이씨 가족묘- 무명봉

                    하수여리 버스 정류장- 무명봉- 안부- 54.9m봉- 안부- 벙커봉- 갈림길

                    안부- 무명묘지- 무명봉- 안부- 무명봉- 임도삼거리- 안부- 무명봉

                    조망처- 가평리 복지회관- 가평리 토종닭- 낙산대교- 남대천 / 동해 합수점

☞소 재 지: 강원도 양양군 손양면

 

多事多難했던 甲辰年의 한 해가 서산으로 기울기 시작한다.

올초부터 나의 삶이 조금씩 변해가는 걸 요즘에 많이 느끼는 듯 하다.

예전에는 사회적 issue에 관심이 참으로 많았었는데 뒤돌아보니 다 부질없는

짓거리인 듯 하여 50여년간 4개씩이나 보던 신문을 다 끊어 버리고, TV를

안보려고 리모컨까지 없애 버리고 나니 이렇게 편한걸...왜 진작에 그러지 못했을까...

 

이 새대의 큰 스승이셨던 法頂스님이 生前에 왜 전기도 들어오지 않은 강원도 골짜기에서

홀로 계셨던 이유를 알것만 같다...요즘에는 가급적이면 사람을 덜 만나고, 머리속을

비우고 나니 정말 살맛나는 세상인듯 하다.

 

금욜까지 이번주에 어디로 산행을 할까 산행계획서를 짜고 있는데, 사무실로 불알친구

세 넘이 쳐들어 왔다...야!...아무리 산에 미쳐도 그렇지 1년에 한번은 주말에 같이

놀아 주어야 되는거 아냐고 하면서 사무실 근처 순대국집으로 끌고(?)가서 겁박을

하는데, 참으로 난감하고 빠져나갈 구명이 없더라...

 

지맥길은 가야겠고, 이 넘들의 겁박을 이길 방법은 없다...그런데 갑자기 생각나는데가

지난달 주말에 양양남(신산경표싱:만월)지맥길을 걷다가 핸드폰이 방전되는 바람에

걷지못한 고성고개에서 합수점까지 구간이 생각난다.

이 구간의 거리는 6km 남짓밖에 되지않고, 최고높은 봉우리가 54.9m밖에 되질 않아

두어시간 정도 걷고, 양양 한바퀴 돌면서 구경을 시켜주면 될 것 같아서 갑자기

산행 코스가 변경을 하게 되었다 

 

오늘 산행구간의 지도

서울에서 불알친구 두 넘을 실고 8시반에 출발하여 서울~양양간 고속도로를 

달리다가 가평휴게소에서 우동 한그릇으로 아침을 해결하고 오늘 산행 

들머리인 국도59호 표시석이 있는 고성고개에 도착하니 11시 20분이다

 

59번 국도는 전라남도 광양시 태인동을 기점으로 경상남북도의 서부 내륙 지역과

강원특별자치도 중심부를 관통하여 양양군 양양읍까지 남북 방향으로 길게 뻗어

있는 국도로 총 연장은 415.8㎞이며, 대부분 구간이 내륙 산간지역을 관통하기

때문에 도로 폭이 좁고 기울기가 심한 편이이서 장거리 간선 운송보다는 지역간

단거리, 중거리 이동이나 주변 명승지에 접근하기 위한 수단으로 주로 활용된다.

 

주변에는 지리산국립공원(중산리), 가야산국립공원(해인사), 고수동굴 및 도담삼봉,

오대산국립공원 등의 관광지가 많아 구간에 따라 행락객의 이용이 빈번하게 이루어진다.

고성고개(11:20)

양양군 손양면 월리와 송현리의 경계에 있는 고개로 7번국도와 59번

국도가 교차하는 사거리인데 산꾼들이 사용하는 지도에는 고성고개라

표기가 되어 있지만, 도로표지판에는 송현사거리로 되어있고, 국도 59호선

종점 표지판이 서 있는데, 『여지도서』양양부편의 자료에 의하면 조선조 

영조 35년(1759년)에는 고송개리로 기록이 되어 있는데 와전되어

고성고개로 된 듯 하다

산행을 시작하다(11:30)

내가 타고간 아들 차는 양양 만남의 광장이라는 식당 뒷쪽의

군 부대 후문의 으슥한 곳에 세워두고 사거리로 내려와서 산행을 시작한다

정상적인 마루금의 트랙은 송이골이라는 식당 뒷쪽의 소나무숲으로

이어지지만,  송이골 식당 좌측으로 이어지는 도로명 주소가 동명로인

2차선 도로를 따라서 맥길이 아닌 우회길로 향한다

앞서가는 친구넘

산보를 왔는지 친구의 지맥길 졸업을 축하해주러 왔는지...

근데 산행 복장은 동네 뒷동산 가는 스타일이다.

하기사 오늘 산행길에 가장 높은 봉우리가 54.9m이니

산보가는 복장이래도 가능할 듯 싶다

오늘 산행은 낮은산과 도로를 넘나드는 산길이긴 하지만 엄연한

지맥길이라 안 갈수도 없는 길이다...코뚜레 식당의 우측 산 속이

지맥길이긴 하지만 초반부터 친구넘들이 원성을 사지않기 위해서

그냥 도로로 따라간다...나혼자 왔으면 당연히 저 능선으로 올라

갔을 것이다

우측으로 보이는 지맥 마루금은 눈팅이로 기록하고

동명로란 도로를 따라서 맥길을 이어간다

좌측으로 지중해란 카페가 보이고 우측에는 맥길을

점령하고 있는 펜션을 바라보면서 오르막으로 향한다

앞에 보이는 저 능선으로 올라가봐야 하나 1분도 안되어

내려와야 하기에 그냥 도로를 따라서 계속 걸어간다

송현리 버스 정류장(11:37)

송현리 버스 정류장을 지나자마자 송마루 식당 간판과 송현리

마을 표시석, 우측으로는 송현히 웃말로 내려가는 길이 있다

 

양양군 손양면에 있는 송현리(松峴里)는 옛날에 수십주의 대송(大松)이 뒷고개에

울창하였기에 송현리(松峴里)라고 불렀으며, 본래 양양군 남면지역으로서 1916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새이말(間村) 정자동 조구터를 병합하여 송현리라하여 손양면에

편입되었고, 『여지도서』양양부편에 의하면 영조 35년(1759년)에는 고송개리로 불렀다.

웃말로 내려가는 길 좌측의 밭 언덕에는 송현리의 옛날 마을

표시석이 있고 이곳에서 오늘 산행중에 처음으로 산 속으로 들어선다

등로에 올라서면서 오늘 처음으로 선답자들의 흔적을 본다

산으로 오르자마자 잡목의 저항이 시작되니 뒤따라 오는

친구넘들의 불만이 쏟아진다...멀쩡한 좋은길 두고 이런곳으로

왜 다니냐면서 나보고 정신적으로 문제있는 넘으로 치부한다

 

이 넘들아!...나 정신적으로 아무 문제없고, 17년동안 이 짓거리 하고 있어...

니들이 게맛을 알어...

무명봉(11:39)

콘크리트 기둥이 있는 무명봉에서 우측으로 꺽어서

내려가니 반가운 선답자의 시그널 하나가 산꾼을 반긴다

가늘고 키큰 소나무가 脚線美를 자랑한다

대밭을 통과하니...

웃말로 이어지는 안부가 나온다

안부(11:41)

안부에서 바라본 양양군 손양면 송현리 웃말의 모습

안부를 지나 개구멍처럼 보이는 시누대숲을 통과한다

시누대숲을 통과하니...

선답자의 시그널이 보이면서 갑자기 나타나는 편안한 임도.

임도를 버리고 우측 능선으로 올라가니 친구넘들이 자꾸만

이상한 넘으로 바라보면서 왜 좋은길을 두고 사서 개고생을

하냐고 혀를 차는데, 이 넘들아 온실속의 화초와 들꽃이

같을수는 없잖은가...

무명봉(11:43)

무명봉을 내려서자마자 웃말로 이어지는 안부가 나온다

안부(11:45)

안부 좌측으로는 조구터마을로 내려가는 뚜렸한 길이

보이고 직진으로 이어지는 통나무 계단으로 올라간다

마을사람들이 이용하는 산책로가 보이고 능선으로

올라서니 체육시설이 있는 무명봉에 도착한다

체육시설이 있는 무명봉 가는 길에서 바라본 조구터 마을

 

손양면 송현리에 속해있는 새이말(間村) 정자동 조구터

마을에 관한 지명유래는 알 길이 없어서 조금 답답할 뿐이다.

체육시설(11:46)

오랫만에 편안한 길을 걸으니 오늘 산행은 마치 양넘 지갑줍는 기분이다

만약에 힘들고 산행이 긴 코스였다면 친구넘들이 따라 나서지 않았겠지...

안부(11:47)

무명봉(11:48)

안부에서 밋밋한 무명봉에 올라서니 "산새들의

합창 "이라는 시그널이 보이긴 해도 등로는 희미하다

무명봉에서 내려서 1분만에 커다란 철탑을 만난다

양양공항 안전운행 철탑(11:49)

이곳에서 그리 멀지않은 곳에 양양공항이 있다

갑자기 나타난 멋진 소나무 숲길.

한 넘은 앞세우고...

한 넘은 뒤따라 오고, 이 나이에 자주 만나는 친구들이

많다는 건 그래도 범여는 세상을 잘 살았나보다...

오우가(五友歌) / 윤선도

 

네 버디 몃치나 ᄒᆞ니 슈셕(水石)과 숑듁(松竹)이라

동산(東山)에 ᄃᆞᆯ 오르니 긔 더욱 반갑고야

두어라 이 다ᄉᆞᆺ 밧긔 ᄯᅩ 더ᄒᆞ야 머엇ᄒᆞ리

 

오우가 원문

 

내 벗이 몇인가 하니, 물과 돌과 소나무와 대나무라.

동산에 달 오르니 그것 더욱 반갑구나.

두어라, 이 다섯밖에 또 더하여 무엇 하리?

 

오우가의 현대적 해석

 윤 선도는 오우가(五友歌)에서 수(水)·석(石)·송(松)·죽(竹)·월(月)의 

다섯 벗을 말하고, 각각의 벗에 대하여 다시 한 수씩 노래하기를 


(중략)

 

솔(松“은 더우면 곳 퓌고 치우면 닙 디거/

솔아 너 얻디 눈서리 모다/

구쳔(九泉)의 블희 고 줄을 글로 야 

아노라.”라 하여 눈 서리를 모르는 솔의 불굴(不屈)을 노래했다

 

* 고산(孤山) 윤선도(尹善道:1587~1971)는 정철, 박인로와 더불어 조선 3대

  시가인(詩歌人)의 한 사람으로 일찍부터 우리말의 아름다움을 깨닫고

  어부사시사(漁父四詩詞)를 비롯한 주옥같은 시조를 남겼다... 그러나 정치 생활은

  순탄치 않아 당파싸움에 휩쓸려 17년을 유배지에서 보냈고, 19년 동안 세상을

  떠나 자연 속에서 살았으며, 자신이 뜻한 바를 이루기 위해 물러서지 않는 고집과

  칼날 같은 성품을 지녔지만 백성을 아끼는 따뜻한 인정을 가진 사람이기도 했다.

등로에서 바라본 손양면 송현리의 모습

임도삼거리(11:53)

펜션 가족이야기 입구(11:54)

양양읍내가 가까워서 그런지 펜션과 민박집들이 많이 보인다

양양남(신산경표상:만월)지맥의 맥길은 산을 내려와서 뭣이

그리도 궁금한 지 고통받는 세속 중생들의 집들을 기울거리면서

같이 합수점으로 향하는구나.

궁금할 거 하나도 없소이다.

末法시대처럼, 착한 사람들은 늘 핍박받고 餓鬼 다툼만 벌어지는

世俗이 뭘 그리 궁금하오...참 세상 불공평하네요,

사기꾼과,도둑넘, 선동질 잘하는 인간들이 판치는 세상은 

언제쯤 끝나련가...

마을 갈림길이 나오고...

친구 두 넘을 앞세우고 마을길을 걸어간다

수여길이라...송현리를 벗어나 수여리로 들어선 모양이다

마을도로(11:57)

마을길로 올라서는데 양양읍내 너머의 좌측으로는 점봉산과

망대암산, 한계령이 보이고, 똑바로 보이는 가장 높은 봉우리가

설악산의 주봉인 대청봉인데 遠景이라 그런지 흐릿하다 

아직까지 투정을 부리지 않고, 잘 걷고있는 친구넘들...

쉼터1(11:58)

쉼터를 지나자마자 민가로 이어지는 시멘트 도로가 나오고...

민가로 이어지는 길을 따라서 맥길을 이어간다

맥길 가운데에 민가가 자리를 잡고 있는데, 쥔장은 출타중인지

인기척이 없고, 개쉬키 한마리가 자기 임무에 충실하려는지

지랄발광을 하면서 짖어댄다...인기척이 없는 집 마당으로

들어가는 건 예의가 아닐것 같아서 좌측의 절개지 윗쪽으로

올라간다...민가 우측의 수확이 끝난 농경지 너머로 쏠비치호텔앤

리조트양양이 뚜렸하게 보인다

절개지로 오른 다음에...

 밭 가운데로 가로질러 솔밭사이로 향하는데 쉼터가 보인다

쉼터2(12:04)

소나무숲 사이로 이어지는 반질반질한 임도로 가면 편하겠지만

오늘은 시간도 많고 마음의 여유가 많아서 충실히 맥길을

걸어보려고 임도를 버리고 우측으로 올라선다

좋은길을 가다가 갑자기 길이없는 능선으로 올라가니

친구 한넘이 나를보고 전혀 이해가 안가는 넘이라고

투덜된다...이 넘아!...왜 들꽃이 온실속 화초보다 이쁜 걸

니가 알 턱이 있나?

무명봉(12:06)

무명봉을 찍고 좌측으로 내려서니...

조금전에 헤어졌던 임도를 다시 만나

마을로 이어지는 시멘트 도로로 내려선다

마을도로(12:06)

수확이 끝난 밭 가운데를 가로질러서 능선으로 올라간다

등로에서 바라본 수여리(水餘里) 무내미마을의 모습

 마을 뒤는 남대천의 물굽이가 휘어 닿는 곳으로 물이 풍부하고 경치가 아름답고

물이 모자라는 때가 없다하여 ‘무내미’라고 불렀으며 조선시대 관덕정이 있었다고 한다

여름철에 이 길을 걸었다면 밭 쥔장과 트러블이 생길것 같은 곳이다

직진으로 올라서니 철제로 된 철조망이라 갈 수가 없다

우측으로 나무문이 있는데 거기로 통과하면서 친구 넘이 하는말...

나를 보고는 참으로 이해불가라고 한다...이 넘아!..니도 지맥길에

미쳐봐라...

조금전에 지나온 능선과 조구터 마을의 모습

이런길만 오면 자꾸만 불만을 터트리는 친구넘들...

무명봉(12:14)

무명봉에서 내려서니 망자의 천년주택이 나오고,

어지러운 세상의 이꼴 저꼴 안보고 고이 잠든

저 분이 부럽구나.

등로에서 바라본 양양읍(襄陽邑)의 모습

『삼국사기』에 "고구려 익현현(翼峴縣) 혹은 이문현(伊文縣)을 신라 경덕왕(757년)

때에 익령현(翼嶺縣)으로 고쳤다."는 관련 기록이 처음 수록되어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1221년(고종 8)에 거란 군사를 격퇴시킨 공으로 양주(襄州)로

승격되고 방어사가 임명되었다. (중략) 조선에 이르러 태조의 외향(外鄕)이므로 1397년

(태조 6)에 부(府)로 승격되었다."는 기록이 있다. 『태종실록』에 "1416년(태종 16)에

이조(吏曹)에서 음이 서로 비슷한 고을의 명칭을 고치면서 양주(襄州)를 양양(襄陽)이라

하였다."고 되어 있어 이때 양양 지명이 처음 나타나는데, 양양은 중국 후베이성(湖北省)에도

있으며 이곳을 흐르는 '한수(漢水, 일명 남대천:南大川)'라는 지명도 중국 양양에서

연유되었다고 전해진다.

등로 가운데에 시누대가 촘촘하게 군락을 이루고 있어서

빠져나갈 틈이 보이질 않는다.

이보전진을 위한 일보후퇴라고 했던가...

좌측의 밭 아래로 내려간다

밭에서 올라서서 강력하게 저항하는 시누대밭을 통과한다

시누대밭을 통과하니 능선에서 아카시아가 강력하게 저항한다

우측의 밭으로 내려서서 맥길을 이어간다

등로에서 바라본 손양면 수여리 넘말의 모습

전주이씨 가족묘(12:19)

전주이씨 가족묘를 올라서자마자 무명봉이 나오고...

무명봉(12:21)

무명봉에서 수로로 내려서자마자 아침에 고성고개에서

헤어진 도로명 주소가 동명로인 2차선 도로가 나오면서

하수여리  버스 정류장이 보인다

하수여리 버스 정류장(12:23)

수여리는 상.하수여리가 있다

 

양양군 손양면에 있는 수여리(水餘里) 는 고려 명종(明宗)때부터 조선초기(1450년) 단양우씨

(丹陽禹氏)의 우거지(寓居地)였다... 전염병으로 우씨일가(禹氏一家)가 몰락하고 두 가구만

남았을 무렵 이세문(李世門)이 단종폐위 계유정란(癸酉靖亂)시 삼척에 정배되었다가

1456년 함흥 본궁으로 양이(量移) 중 양양에 잠시 머물었을 때 무혐의 특별 몽유

[蒙宥 : 죄인이 놓임을 입음]로 윤허[允許 : 임금이 허가함]의 은혜를 입고, 이곳을

매입 정착한 곳이다.

 

당시 마을 안은 온통 굴참나무숲이던 것을 개간 정지하여 양양 제일의 명당 터라 불리는

흥덕말을 조성하고 보니 곳곳에 넓은 바위가 있어 그들 바위에서 글공부를 하였다하여

‘문바우마을’[文巖鄕]이라고 하였다. 한편 마을 뒤는 남대천의 물굽이가 휘어 닿는 곳으로

물이 풍부하고 경치가 아름답고 물이 모자라는 때가 없다하여 ‘무내미’라고 불렀으며

조선시대 관덕정이 있었다.

 

행정구역상 조선시대는 통칭 동면(東面)이라 하였으며, 1916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당뒷말,

바구매[博古馬], 버덩말, 솔말, 동녘말, 흥덕말, 서녘말, 넘말을 병합하여 수여리라 명하고 손양면에

편입되었으며, 수여리에는 얄궂은 일화가 전해진다... 조선시대 1580년 송강 정철이 강원관찰사가

되어 동해안을 순행 중 이 마을 서낭재에 올라 서서  “이크! 여기 대리[大螭 : 큰 교룡, 큰 뿔 없는 용]

한 마리 있군”하면서 소금항아리로 살(煞)을 지르고 갔다한다.

하수여리 정류장 버스 시간표

버스정류장을 지나는데 땅바닥에 누워서 타는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이 보이는데, 우리를 보면서

거수 경례를 한다..그래 !..쉬어 하면서 인사를 받는다

도로를 따라서 고개를 넘어서니...

펜션처럼 보이는 민가가 나오는데...

민박집인 동해수양관이라는  간판이 보이는 곳에서...

도로를 버리고 다시 숲속으로 올라서는데

지도를 보니 우측 도로 아랫쪽에 천지암이라는

절집이 표기가 되어 있다

세상사 살아가면서 수많은 喜怒哀樂의 부침속에 살아가지만

늘 즐거운 락(樂)보다는 슬플 애(哀)가 더 많은게 인간사의

삶이 아니던가...   

 

묘협(妙叶스님은 보왕삼매론(寶王三昧論)이란 10가지의

수행법을 제시했는데 그 중에서 6번째는 이런 내용이 있다

 

交情不求益吾(교정불구익오) 

交益吾則虧損道義(교익오즉휴손도의)

 

친구를 사귀되 내가 이롭기를 바라지 말라.

내가 이롭고자 하면 의리를 상하게 되나니

그래서 성인이 말씀하시되

순결로써 사귐을 길게 하라하셨느니라.

대밭을 헤치고 올라서니...

비교적 뚜렸한 등로가 나오고 잠시후에 무명봉에 도착한다

무명봉(12:30)

무명봉을 내려서니 대밭이 나오고 곧이어

송전리로 연결되는 안부가 나온다

안부(12:32)

 

안부에서 오늘 산행중에 가장 높은 봉우리에다

유일하게 족보있는 봉우리인 54.9m봉으로 향한다

甲辰年의 마지막 산행은 이렇게 보내는구나.

누가 세월이 流水같다고 했던가...

70줄에 접어든 나이에서는 유수같은게 아니라

총알처럼 빠르다고 하는 표현이 더 정확할 듯 싶다.

정초를 맞이한 지가 엊그제 같은데 또 한해가 

서산으로 기울고 있으니 말이다

내가 너를 / 나태주

 

내가 너를 얼마나

좋아하는지 너는 몰라도 된다

 

너를 좋아하는 마음은

오로지 나의 것이요

 

나의 그리움은

나 혼자만으로도

차고 넘치니까

 

나는 이제 너 없이도

너를 좋아할 수 있다

오늘 산행중에 최고봉인 54.9m봉으로 가는 길

사면길로 이어지는 우측으로 향하는 뚜렸한

등로를 버리고 길이없는 직진의 능선으로 올라선다

길이 전혀없는 곳에 범여가 길을 잃을까봐 누군가가

시그널을 걸어놓고 길을 안내하는구나.

늘 후답자는 선답자의 수고로움에 조금이라도 편한 길을 걷는다 

54.9m봉(12:40)

봉우리라는 느낌이 전혀없고, 소나무가 숲을 이루는 이곳이

국토지리정보원에 등록된 엄연한 족보있는 봉우리인 동시에

오늘 범여가 길을 걷는 등로에 유일한 봉우리이자, 양양 남

(신산경표상:만월)지맥의 마지막 봉우리라서 인증샷을 남긴다

초등학교를 졸업한 지 60여년이 지났건만 우리끼리

만나면 초딩이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불알친구들...아직도 나를 따라다니는 딸랑이들이

있다니, 범여가 세상을 헛되이 살지는 않았구나...

인증샷

54.9m봉 정상에서 우측에서 직진으로 이어지는 뚜렸한

등로를 버리고 좌측으로 방향을 틀어서 내려가니

금새 뚜렸한 등로가 나타난다...독도에 아주 유의해야 할 곳이다

안부(12:43)

합수점이 가까워 오는지 남대천변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차갑다.

그러나 생각보다 그리 추운 날씨가 아니라서 다행이구나

벙커봉(12:46)

벙커봉에서 또다시 좌측으로 꺽어져 내려서니, 지금은 용도가

폐기된듯한 군교통호가 능선의 사면으로 휘돌아가고 있다

우정이라 하기에는 너무 오래고

사랑이라 하기에는 너무 이릅니다.

당신을 사랑하지 않습니다.

다만 좋아한다고 생각해 보았습니다.

 

-이해인수녀님의   " 사랑 " 중에서-

군교통호가 휘감고 있는 등로를 따라서 내려간다

갈림길(12:54)

직진으로 이어지는 뚜렸한 등로를 버리고 맥길은 급하게

우측으로 꺽어지는데 독도에 아주 주의해야 할 구간이다

우측으로 꺽어지니 말라 비틀어진 선답자의 시그널 2개가

길을 잃을까봐 노심초사하면서 등로를 안내해 준다

안부(12:56)

안부에서 완만한 오르막길의 양지바른 곳에 이름없는

망자가 따스한 햇빛을 쬐면서 산꾼을 반기는구나 

무명묘지(12:57)

맥길을 따라 걷는데 좌측 아랫쪽에 잘 관리된

묘지들이 보이나 어느 가문의 묘지인지 내려가서

확인을 하고 싶지만, 귀찮아서 그냥 통과한다

무명봉(12:59)

맥길은 보이지 않고 선답자의 흔적들도 전혀 보이지 않는구나.

홀로걷는 맥꾼에겐 이런 곳을 가장 긴장하는 편인데, 오룩스맵상의

트랙을 확인하니 지극히 정상적은 맥길을 걷고 있다

길이 너무 험해서 우측의 밭으로 내려서니

녹슨 컨테이너 하나가 수확이 끝난 밭을 지키고 있다

안부(13:01)

밭을 내려서니 움푹파인 안부가 나오는데 따라온

친구넘들의 불평 불만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이 쉬키들아...난 15년 넘게 이런길을 헤매고 있다

안부에서 올라서니 엄나무밭이 나오고, 곧이어 무명봉에 도착한다

무명봉(13:04)

등로 우측의 대밭 너머로는 송전리이고

갑자기 넓은 임도가 나오고 임도를 따라서 편안하게 걸어간다

임도삼거리(13:07)

임도 삼거리에서 좌측으로 시멘트 도로로 향한다

등로에서 바라본 손양면 송전리 마을

송전리(松田里)는 예전에 금강리와 한 동네였다가 규모가 커져 약 200년 전에

분리되었으며, 옛 지명은 솔밭으로 제주도 솔을 옮겨심어 그 소나무가 번성하여

솔밭을 이루었다고 한다.

 

제주 고씨의 집성촌이었으나 광복이후부터 다른 성씨들이 차차 들어왔다.

그러나 여전히 제주 고씨가 마을주민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고 마을주민의 상당부분은

농업에 종사하고 있으며, 동쪽은 대해(大海)에 연접하고 동서북에는 송수무성(松樹茂盛)하여

사시장청(四時長靑) 수려한 풍광으로 둘러있는 한 가운데 자리한 집단마을로 주위에는

크고 작은 개와 웅덩이가 많아 구명(舊名)은 송호리[松湖里 : 350여 년 전]로 칭하다가

그 후[연대미상] 송전리로 개칭하여 지금에 이르고 있는 속칭「솔밭」이라고도 한다.

우리나라 곳곳에는 송전(松田)이란 지명이 있는데 이는 나라에서 귀한 목재를 생산하던

곳이므로 이 마을은 깊은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

안부(13:08)

송전리로 이어지는 안부를 버리고 오늘 산행의 마지막 능선으로 올라간다

안면이 많 흔적들을 만나고...

불평불만없이 잘가는 착한넘들

내 안에 있는 이여

내 안에서 나를 흔드는 이여

 

물처럼 하늘처럼

내 깊은 곳 흘러서 은밀한

 

내 꿈과 만나는 이여

그대가 곁에 있어도 나는 그대가 그립다

 

-류시화님의

 " 그대가 곁에 있어도 나는 그대가 그립다 " 중에서-

무명봉(13:12)

남대천의 물길이 보이니 합수점이 다와가는가 보다...

조망처(13:14)

지맥의 마지막 길을 막고 누군가가 뭔 짓거리를 하고 있고,

그 너머로 오대산 두로봉에서 내려온 남대천이 동해바다로

入水 준비를 하는구나...나 역시 남대천과 함께 산행을 종료하는

스틱을 내려놓을 것이다

마지막 합수점을 향하는 발길...

늘 힘들게 맥길을 걷다가도 합수점이 가까워지면 

아쉬움이 남는건 산꾼의 마음이련가...

동해바다로 도도히 흘러가는 남대천의 모습

양양 8경 중 1경으로 꼽히는 남대천(南大川)은 강릉시 오대산 두로봉(頭老峰)에서

발원하여 북쪽으로 흘러 강원도 양양군의 현북면 어성전리를 지나 서면 북평리에서

서림천(西林川, 일명 후천)과 합류된 후, 양양읍 남쪽을 지나 동해로 유입되는 하천이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남대천(南大川)은 부 남쪽 2리에 있다.

강릉부 오대산(五臺山)에서 나오며 소동라령(所冬羅嶺) 물과 합치고 부 남쪽을 지나

바다에 들어간다."고 기록되어 있어 양양부의 남쪽을 흐르는 하천에서 지명이

유래하였음을 알 수 있다.

 

『여지도서』 등의 조선 후기 사료에서도 내용이 유사한데, 다른 이름으로 한천(漢川)

혹은 한수(漢水)로 칭한다고 되어 있다. 『조선지도』에는 한천, 『해동지도』, 『광여도』에서는

남대천교(南大川橋)에서 관련 지명을 볼 수 있다. 『청구도』에는 남천(南川), 『대동여지도』에는

남강(南江) 등으로 기록되어 있어 지도마다 조금씩 다른 이름으로 표현되어 있다. 

한강 권역의 양양남대천 수계에 속하며, 지방1급하천과 지방2급하천으로 이루어지며,

지방1급하천은 유로연장(流路延長) 55.61㎞·하천연장 16.6㎞·유역면적 474.16㎢,

지방2급하천은 유로연장 39.01㎞·하천연장 20.5㎞·유역면적 127.56㎢이다.

 

구간별로 최상류부터 부연계곡, 법수치리 계곡, 어성전천, 남대천으로 나눌 수 있다.

양양 남대천은 한국에서 제일가는 연어 회귀 하천우로, 한국으로 돌아오는 연어의

70% 이상이 이곳으로 회귀하여 ‘연어의 모천(母川)’이라 불린다. 양양 남대천에서

태어난 어린 연어는 북태평양 베링해나 오호츠크해에서 3~5년가량 성장한 후

동해를 거슬러 되돌아와 알을 낳고 생을 마감한다고 하는데, 영동지역의 하천 가운데

가장 맑고 긴 강으로 알려져 있으며, 상류에는 강원도에서 가장 물이 맑다는

법수치리계곡이 있고 근처에 하조대해수욕장 등의 관광지가 있다.

남대천과 설악산을 배경으로 인증샷

남대천과 동해가 만나는 곳을 지나는 낙산대교가 보이기 시작한다

양양 남대천변의 도로로 내려와서 우측으로 향한다.

오룩스 트랙상에는 이곳이 지맥길의 끝임을 알려준다

실제 지맥길의 합수점은 낙산대교를 지나야 한다.

남대천의 뚝방길을 따라가도 되지만, 아침에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유부우동 한그릇으로 아침을 해결하고는 이곳까지 오면서 물도

한모금 안먹었더니만 허기가 몰려와서 행여 마을에 식당이 있나하고

가평리 마을 골목으로 향한다

마을길로 들어서니 리어카를 끌고가는 아낙네가 있어서

혹시 식당이나 편이점이 있냐고 물어보니 한참을 가야

있다고 하는구나

가평리 복지회관(13:25)

가평리(柯坪里)는 약 200여 년 전까지 마을주위에 갈풀이 많이 자생하므로 가평리라

칭하였는데 속칭 “갈벌”이라고도 한다. 본래 양양군 동면의 지역인데 1916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손양면에 편입되었다. 가평리 송림 속에 철기시대 때의 움집유적이

발굴된 역사의 고장이다.

가평리 복지회관에서 장수마을 간판을 보면서 낙산대교로 향한다

저 앞에서 토종닭이라는 낡은 간판이 보이고, 일요일인데도

영업을 하는지 가게안에 불이 켜져있는 것이 보인다

가평리 토종닭(13:29)

금강산도 식후경이라 했거늘...배가 고파서 식당안으로

들어가서 식사를 주문하니 토종닭으로 요리한다는

닭도리탕은 30분정도 걸린다고 하여 식사를 시켜놓고

합수점으로 향한다

도로옆에 있는 커피숖을 바라보며 도로를 건너니 가평리

갈벌이라는 마을 표시석이 보이고 낙산대교 옆 합수점으로 향한다

예전에 이곳에 갈풀이 많아서 갈벌이라고 불렀다고 하는데 이곳의

고도가 해발 마이너스 10m라고 나오는데, 바다보다도도 낮은 곳이였던

모양이다.

사진 - 어느 블로그에서 모셔옴

* 갈풀은 습기 있는 풀숲에 자라는 여러해살이풀로서 줄기는 보통 1개가 나와

  곧게 자라며 높이 50-120cm이고 잎집에는 털이 없으며, 잎혀는 막질이고

  길이는 2-3mm이다... 잎몸은 길이 10-30cm, 폭 5-15cm이다.

 

   꽃은 6-8월에 피며, 꽃차례는 원추꽃차례로 곧추서고 길이 8-15cm이다.

  작은이삭은 난형으로 길이 4-5mm이며, 낱꽃 3개로 이루어지는데 이 중 1개만

  양성화이며, 외영은 넓은 피침형으로 까락이 없고, 우리나라 전역에 자생한다.

  북반구 온대지역에 분포한다.

낙산대교(13:34)

낙산대교에서 바라본 설악산의 모습

낙산대교가 개통된 얼마 안되었는지 아직 도로명 주소도 부여받지 못했구나

합수점 가는 길

낙산대교에서 남대천이 동해바다로 입수하는 합수점의 끝지점으로 향한다

합수점 가는 길에서 뒤돌아 본 낙산대교와 설악산의 모습

합수점가는 길에서 바라본 남대천 너머의 양양비치콘도의 모습

설악산의 북쪽 능선들이 아련하게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맨 앞에 우뚝 선 봉우리가 마등령 동남쪽에 있는 석가세존이라

불리는 세존봉이고 북쪽으로는 황철봉과 울산바위, 그 뒷쪽으로

미시령이 지난날의 옛 추억을 소환하는 느낌이다

남대천 / 동해바다 합수점(13:40)

오대산 두로봉 동남쪽에 있는 1,270.3m봉에서 여기까지 걸어왔고

더 이상 갈곳이 없다...남대천도 동해바다로 뛰어 들었고 나 역시

이곳에서 산행을 종료하고 인증샷을 남긴다

범여의 지맥 하나를 마무리하는데 같이 동행해 준 친구넘들...

허기진 배를 부여안고 토종닭집으로 돌아와서 얼큰한 닭도리탕에다

쏘맥으로 2여시간동안 느긋하게 식사를 한 다음에 백두대간 양양

구간을 걸을 때 이용했던 택시를 호출하여  아들의 愛馬가 기다리는

고성고개로 향한다

고성고개(15:50)

아들의 애마를 몰고 서울로 향하는데 년말이라 그런지 교통은 그리 밀지지 않는다.

오며가면 내가 운전을 하는데 친구 넘은 스마트폰으로 뉴스를 보다가

무안공항에서 비행기가 추락하여 많은 인명 피해가 났다고 한다.

우째~~~이라 일이...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