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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범여(梵如)의 世上사는 이야기
화원지맥(진행중)

화원지맥 제3구간 - 뚜드럭재에서 일신리 임도까지

by 범여(梵如) 2025. 1. 23.

☞산행일자:  2025년 01월 12일

☞산행날씨: 흐린 날씨에 약간의 추움

☞산행거리: 도상거리 15.5km  + 날머리 2.7km / 7시간 50분소요

☞참석인원: 나홀로 산행

☞산행코스: 뚜드럭재-안부-189.5m봉-안부-안부능선-205.9m봉-소리재

                역마산-272.6m봉-222.3m봉 갈림길-무안박공&유인 순천김씨 묘

                임도-임도 갈림길-안부-무명봉-농로-신기제-홍이농장-신덕고개

                해마농장 입구-남도농산-전주이씨 효령대군 후손 가족묘

                평화2호 태양광발전소-김해김 가족묘-83.2m봉-안부-농로 삼거리

                명랑로-흰재육교-여흥민공& 유인 무안박씨 묘-성산분기봉-성산

                다시 성산분기봉-안부-145.7m봉-안부 임도-고개-안부

                김해김공&숙인 밀양박씨 묘-임도 삼거리-임도-안부-형제봉

                NO18 송전탑-일신리 임도-일신마을 

☞소  재 지: 전라남도 해남군 마산면, 황산면 

 

화원지맥을 이번 겨울이 가기전에 마치려고 하는데, 계획만 잡으면

비가 오는 바람에 실행을 못하다가 몇번의 시도끝에  드디어

올해들어 처음으로 남도의 끝자락 해남으로 향한다...해남땅과 내가

왜 이리도 인연이 안되는지... 토요일에 일찍 업무를 마감하고 집에와서

베낭을 메고, 센트럴고속버스 터미널로 향한다

 

오늘 산행구간의 지도

서울발 → 해남행 버스표

17시에 목포를 거쳐 해남으로 향하는 버스에 오른다.

서울에서 출발한 버스는 안성까지는 약간 밀리다가 천안을 벗어나면서

차량이 속도를 내기 시작하는데 그때부터 창밖은 어두워져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그때부터 늘 습관처럼 잠에 빠졌다가 버스가 정안휴게소에서

들어서면서 잠에서 깨어나 있다가 다시 버스가 출발하면서 꿈속에 빠진다.

 

얼마나 잤을까...어둠속의 창밖을 보니 버스는 부안을 지나 고창으로 향하는 서해안

고속도로를  달리고 있고, 가로등 불빛 사이로 보이는 남도의 들녘은 온통 눈으로

뒤덮혀 은빛 세상이다... 저녁 9시경에 목포터미널에 도착하여 대부분의 승객들은

이곳에서 내리고 나를 포함한 서너명만 종착지인 해남으로 향한다

해남종합버스터미널(21:50)

밤 10시가 다된 시점에 버스는 터미널에 도착하고,

버스에서 내리니 눈발이 날리는데, 내일 산행에 대한

불안감이 엄습해온다

 

곧바로 작년에 2번 이용했던 모텔로 가니 滿室이란 팻말을 붙혀놓고는

방이 없다고 한다...하는 수 없이 근처에 있는 모텔로 가서 베낭을

내리고 샤워를 한 다음에 캔맥주 하나를 마시고는 잠자리에 든다.

.

.

.

.

새벽 6시반에 일어나 간단하게 씻고, 가지고 온 빵과 두유로 아침을 해결한 다음에

터미널로 가서 저녁에 서울로 가서 버스표를 미리 예매해 놓고는 택시를 타고

오늘 산행의 들머리인 뚜드럭재로 향한다

뚜드럭재(88m:07:10)

전라남도 해남군 마산면 용전리와 화내리의 경계를 이루는 고개로서 2차선 도로가

지나가는데 도로명 주소가 마산로인데, 뚜드럭재 소공원이 조성되어 있다

 

지명유래는 보이지 않지만 용전리에 관한 기록에 고개이름으로 뚜드럭재가

보이지만 유래는 알 길이 없고, 마산면 용전리에  버드나뭇골마을(유목동)이

보이는데 버드나무가 많은 곳이라 하여 불리게 된 이름으로 이 유목동에서

이름을 차용해 유목재(柳木峙)라 불리기도 한다고 전한다.

산행을 시작하다(07:20)

해남읍내에서 그리 멀지않은 뚜드럭재라 택시에서 내려 산행을 준비하는데

남도땅이긴 하지만, 아직 해가 뜨지 않아서 그런지 생각보다 날씨는 춥다.

서서히 어둠이 걷히기 시작하면서 범여의 발걸음은 산으로 향한다

소공원 옆 농막같은 비닐하우스 옆으로 올라가는데 산길에 올라서자마자

잡목과 가시나무들이 베낭을 잡아 땅기면서 태클을 걸어대니 오늘 산행이

쉽지 않음을 예감한다

날이 밝아오면서 내가 오늘 올라야 할 첫 봉우리인 189.5m봉이

시야에 들어오기 시작하는데, 화원지맥을 올까 아니면 지난번에

하다만 회천(신산경표상:칠봉)지맥을 마무리하다가 이곳으로

오는 바람에 선답자의 산행기를 보지 못하고, 오직 트랙 하나만

믿고 마루금에 들어섰는데 조금은 걱정이 되는구나

안부(07:28)

189.5m봉으로 오르는 길

늘 초반에는 버벅거리는 범여지만, 그래도 오늘은 베낭을 

아주 가볍게 한 탓인지 조금은 편하게 오르막으로 오르는데

수북하게 쌓인 낙엽이 산꾼의 발길을 더디게 만든다

이제 날은 완전히 밝아졌고, 선답자들의 시그널이

보이니 지금 내가 정상적으로 잘 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곧추선 189.5m봉으로 오르는데 어제 내린 눈 때문인가?

한발 올라서면 두발 미끄러지고 또 다시 오르고를

반복하면서 능선으로 올라선다

첫 관문(?)을 무사히 통과하여 능선으로 올라서니 189.5m봉

산패가 걸려있는 나무가 보이고 그 뒷쪽으로는 오늘 산행중에

가장높은 역마산이 시야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189.5m봉(07:47)

어랴!...지맥길에 왠 사람 발자국?

대한민국의 162개 지맥길중에 잡목의 저항이 가장 심한

악명높은 화원지맥에 해남 사람들이 이런 산에 올라 올리는

만무하고 아마도 맥꾼의 발길같은데 지나간지가 얼마 안되었는지

足跡이 너무나 뚜렸하니 틀림없는 맥꾼인듯 하다

이제 겨우 첫번째 봉우리를 통과했는데 엄청난 잡목이 태클을

걸어오는데 갑자기 겁이 덜컹난다...허나 어찌하겠는가.

162개 지맥을 완주하기 위해서 이런 고통쯤은 감수해야 되는것 아닌가

내리막으로 내려오는 흐릿한 등로가 보이고... 

살짝 좌측으로 꺽어진 다음에 205.9m봉으로 향한다

안부(07:55)

왜 화원지맥이 지맥꾼들에게 공포의 대상으로

악명이 높은지를 보여주는 듯 하다...

그러나 어쩌랴...아직은 초반이고 걷다보면 좋은 길도

나오겠지 생각하면서... 

동백나무 가지 아래로 낮은 포복을 하면서 조금씩 고도를 높힌다

그래 못 오를 산은 없다.

동백나무와 망개나무하고 처절한 사투를 벌이면서

올라서니 등로는 보이지 않으나 뚜렸한 능선이 나온다

안부능선(08:12)

또다시 만나는 뚜렸한 발자국...이건 분명히 맥꾼의 발자국인듯 하다

지맥길은 좌측으로 휘어져 내려가고 우측에 있는 205.9m봉으로 향한다

나뭇가지 사이로 해는 어느듯 저만치 올라오고 있구나

205.9m봉(08:20)

보이지 않는 등로를 트랙으로 확인하며 나뭇가지를

헤집고 역마산으로 오르기 위해서 소리재로 내려간다

아침 햇살의 따뜻함을 만끽하고 있는 역마산의 모습

럭비 경기하듯 잡목의 강력한 태클을 요리조리

피하면서 내려서니 시멘트 임도가 나타난다

소리재(155m:08:29)

해남군 마산면 용전리 용반마을 동북쪽에서 화내리로 넘어가는 고개로

시멘트로 포장된 임도가 있고, 반바지님께서 소리재란 코팅지를 붙혀놨다

소리재 또는 솔재, 소낫재하고 불린다는 지명의 유래가 전해지는 고개로

소뇌를 놓아 짐승을 잡았다고 해서 붙혀진 지명이다.

 

* 소뇌란 '쇠뇌' 비표준어로 예전에화살을 여러  잇달아   있도록 

   만들어진 활의 하나를 이르던 말이다 

소리재를 가로질러 역마산으로 오르는 길

화내리 들녘 너머에서 비춰지는 따스한 햇빛이

움추렸던 몸뚱아리를 조금이나마 풀리게 만드는구나 

지맥길 산꾼들에게는 저승사자같은 공포감을 주는 망개(청미래)나무.

오늘 쟤내들에게 얼마나 시달릴지?...걱정부터 앞서는구나

소리재에서 올라온 임도는 우측으로 휘어져 화내리로 향하고,

임도를 건너 좌측의 등로로 올라서면서 맥길을 이어간다

힘들다 힘들다 하면서도 주말에 한번이라도 빠지면

왠지 허전하고, 일주일내내 몸뚱아리가 찌부등하니

이렇게 산을 나선다...이 정도면 범여가 산을 향한

짝사랑은 거의 stalke 수준이라 봐야하지 않을까...

옆에 누워있는 앙증맞은 바위가 맞장구를 친다.

stalke 수준을 능가하는 중증환자라고...

나무가지 사이의 좌측 아랫쪽은 소리재 아래에 있는

신기저수지가 얼굴을 내미는데 잠시후에 저 앞을 지나갈 것이다

낙엽과 殘雪로 인해 등로가 미끄럽기는 하지만 그리 우려할 정도는 아니다

아직 몸이 풀리지 않은 탓인가, 안그래도 느린 발걸음이

더 느려지는데, 황소걸음으로 천천히 오르다보니 우측의

화내리에 올라오는 뚜렸한 등로를 만나 좌측의 역마산으로 향한다.

 

해남군 마산면에 있는 화내리(禾內里)는 ‘곶 안쪽에 있는 마을’이었기 때문에

‘곶안’이라고 불렀는데, 뒤에 ‘고안’으로 음이 변하였다고 하며, 마을이 ‘곶 안쪽’에

있으므로 ‘물안’이라고도 하였고 화내(禾內)는 한자식 표기이다.

 

화내마을은 조선시대 계유정란을 피하여 진도로 왔던 민중건의 아들 여흥민씨 민오(閔鰲)가

처음 이주하여 정착하였다고 전하며, 안정마을에는 절터로 추정되는 탑골과 원등 등 2개의

자연마을이 있는데, 1460년경 원주이씨 이맹건(李孟建)이 단종 손위 때 벼슬을 버리고 내려 온

아버지를 따라와 정착하였다고 전해지며, 후동마을은 1630년경 원주이씨 이원해(李元海)가

정착하여 마을을 형성하였다고 전한다.

마을에는 마산면사무소, 마산보건지소, 마산농민상담소, 해남농협마산지점,

마산초등학교, 전남해남경찰서 마산파출소, 마산우체국, 해남소방서 마산119지역대,

해남수산영어조합법인 등이 자리하고 있으며, 1731년(영조 7)에 건립한 영산사(英山祠)가 있다.

 

영산사에는 이계정 등 9충신들과 연관된 9종 18점의 영산사 소장문서 일괄[전라남도

문화재자료 제159호, 1988년 3월 16일 지정]이 있다. 그리고 영산사 아래에

이문길(李文吉)[1551~?]과 이문길의 아들 이광일(李光一), 손자의 효행을 기리는

원주이씨 삼효문(原州李氏三孝門)이 있고, 안정마을에는 11기의 고인돌 유적이 남아 있다.

역마산( 驛馬山:308.3m:08:55)

해남군 마산면 화내리와 용전리의 경계에 있으며, 일명 영매산(英梅山)이라 하며

해남과 마산면 경계인 두드럭재에서 마산면 고암마을 앞까지 약 5 Km에 걸쳐 있는

산으로 정상에는 준.희쌤의 산패와 선답자들의 시그널, 눈속에 묻힌 3등 삼각점이 있고,

산세가 큰 동물이 누워있는 형상을 갖추고 마산면을 남과 북으로 가로 지르며 마산면의

중심부에 위치하고 있는 산이다.

 

이 산 남쪽과 북쪽에는 크고 작은 마을이 형성돼 오랜 세월 사람들이 살아오고 있고

큰 봉 아래 묘동(卯洞)에는 원주이씨 이계정 장군을 주벽(主壁:사당에서 여러 위패 

가운데 주장이 되는 위패)으로 모신 영산사(英山祠)와 삼효문(三孝門)이 있으며

그 앞산 허리를 돌아가면 여흥민씨 제각이 있는 양지등(陽池登)이

나온다 

역마산은 이 고장에 터를 잡고 누대를 살아온 조상들의 흔적을 담고 있는

유서 깊은 산으로 이 산을 역마산이라 부르게 된 것은 안정마을 뒷산

능선 모양이 말같이 생겨 붙여진 이름이라고 마을 주민이 증언한다.

 

마산면은 흔히 남쪽을 신마산이라 하고 북쪽을 구마산이라 부르며 지역을

구분하는데 구마산 지역은 해남읍 뒷산인 만대산과 역마산이 가로막아

교통이 불편한 독립된 지역이 됐다.

 

장촌과 연구마을에는 무안박씨가, 화내마을에는 여흥민씨가, 산막, 외호마을에는

원주이씨 등이 집성촌을 이루고 수백 년 동안 서로 경쟁하듯 교육에 많은 힘을

기울였고 교육열 때문에 예부터 서당과 학교가 다른 지역에 비해 일찍 들어섰으며

문장가와 관계로 진출한 인사들도 많이 배출했다.

 

이곳에 또한 경향 각 처에서 기라성처럼 많은 수가 성장하고 있어 이 양지등(陽池登)은

마산뿐 아니라 해남지방에서도 몇 손가락에 꼽히는 명당(明堂)이라 할 수 있다.

해남 땅은 호남정맥이 흐르는 지선으로 흑석산, 두륜산, 달마산 등의 크고 작은

명산이 있고 그 산 골짜기 따라 계곡천, 옥천천, 삼산천, 해남천, 현산천, 등이 흐른다.

 

반도형 땅 남도 끝자락에 위치한 해남은 진도와 완도 섬을 가까이 두고 있어

조선시대 전쟁에서 밀려난 고관대작들이 섬으로 유배 가던 중 남기고 간 문(文)과

예(藝)뿐만 아니라 각종 생활문화가 일찍이 발달되었던 예부터 선진적인 전통을

갖춘 고장이다.

역마산 정상의 3등 삼각점(해남 310 / 1986 재설)

역마산에 잠시 머물다가 좌측의 내리막길로 향하는데 나뭇가지 사이로 마산면

노하리가 보이고 그 뒤로 옥천천 건너 흑석지맥의 주봉인 흑석산과 가학산 및

호미동산이 어렴풋이 보이는데 미세면지 탓인지 흐릿하다.

 

노하리(鷺河里)는 갈대밭이 있던 곳이라 갈앗 또는 노하(蘆河)라 불렀고,

노하(鷺河)로도 썼으며, 『호구총수(戶口總數)』[1789]에 노하리(路下里)라는

지명이 나오는 것으로 보아 이전부터 불렀던 명칭으로, 2008년 2월 18일에

노하(路下)에서 노하(鷺河)로 한자 표기를 바꿔 부르고 있다.

자연마을로는 노하, 덕인, 원항마을이 있으며, 노하마을 최초 입향조는 고려시대

이천서씨 서거태라고 전해지며, 덕인마을은 1789년에 편찬된 『호구총수(戶口總數)』에

마포면의 한 마을로 나오며, 지석묘 군집이 있어 오래전부터 사람이 살았을 것으로 보인다.

 

1630년경 입향조 여흥민씨 민이길(閔以吉)이 해남읍에서 이주하였다고 전하며,

원항마을은 1600년경 원주이씨 이유(李劉)가 마산면 용반에서 이주하여 시작되었다고

하는데, 문화유적으로 노하마을에 8기, 덕인마을에 14기, 그리고 원항마을에 15기의

고인돌군이 있고, 노하마을에는 1946년에 지은 여흥민씨 재실인 추원당이 있다. 

흐릿한 등로를 따라서 내리막길로 향하는데, 잔설에 보이는

분명한 사람들의 발자국...맥꾼의 발자국임을 직감적으로 느낀다

마루금을 가로막고 있는 조릿대...그렇다고 가지 않을 내 이던가...

살짝 돌아서 마루금을 이어가는데, 아직까지는 갈만하다

272.6m봉(09:06)

지도상에는 표기되지 않은 무명봉이다

마루금은 좌측으로 살짝 꺽어지고...

올해 처음으로 밟아보는 눈이다

7년전 대수술 이후에 몸뚱아리가 추위에 엄청나게 

약한 체질로 변해버리는 바람에 추운 겨울에는 산행을

아예 따뜻한 남쪽으로만 다니기 때문에 산에서 눈을

만날 일이 거의없다.

눈 위에 남긴 발자국 / 용혜원


밤새 하얀 눈이 내려
온 세상이 하얗다

눈 덮인 새벽길에
첫 발자국을 남기려니
마음이 상쾌하고 즐겁다

온통 하얀 세상을 보니
내 마음에까지 눈이 내린 듯 하다

눈을 밟으며 걷노라니
노래가 절로 나온다

행복은 늘 주변에 있다
하얀 눈이 내리는 날이면
하늘에서 복을
내려 주는 것만 같다

오늘은 하얀 눈 위에
첫 발자국을 만들며
행복한 마음으로
하루를 시작하련다

능선에 길은 하나밖에 없다...그리고 최근에 지나간 발자국도

직진으로 이어지기에 아무런 생각없이 무심코 직진으로

향하는데, 스마트폰 트랙에 깔린 오룩스 맵을 안내하는 여인이

다급한 목소리로 경로를 이탈했다고 다급한 목소리로 난리다.

행여나 하고 트랙을 확인하니 지맥길은 직진이 아닌 좌측의

내리막길로 향한다 

222.3m봉 갈림길(09:11)

직진의 뚜렸한 등로는 지맥길에서 많이 벗어나 있는 222.3m봉으로

가는 길이고 지맥의 마루금은 좌측으로 꺽어져 내리막길로 향한다

좌측 아래로 내려서자마자 길은 사라지고 앞이 캄캄하구나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했던가...

키작은 소나무, 망개나무와 고사리, 칡넝쿨의 4종 종합세트가

위에는 베낭과 모자를 물어 뜯고, 아랫쪽은 고사리에 억새,

칡넝쿨이 범여의 등산화에다 태클을 걸어대는데

정말이지 미칠것만 같다

온 몸뚱아리에 생채기를 일으키며 무대포로 치고

내려오는데, 뭔 벼슬을 하겠다고, 이 짓거리를

해야하는 懷疑感이 든다

희미한 등로를 따라서 내려가니...

묘지가 보이고 살았다는 안도감이 드는구나

선답자들은 어디로 내려왔을까...그것이 궁금하다.

아주 짧은 내리막길의 거리지만, 잡목의 저항으로

생각보다 시간이 굉장히 많이 지체된 느낌이다

무안박공&유인 순천김씨 묘(09:30)

휴...하는 한숨을 쉬며 묘지 아래로 내려서니 넓은 임도가 나온다

임도(09:32)

이정목에는 마산면 화내리에서 노하리 고암마을로 이어지는

임도라고 하는데, 화원지맥 첫 구간을 걸을때 부터 만났던

해남군의 임도는 전부 이런 식이라 둘레길을 조성한 모양이다

노하리 고암마을로 이어지는 임도를 따라서 가다가

좌측으로 이어지는 샛길로 마루금을 이어간다

임도 갈림길(09:35)

임도 갈림길에서 좌측으로 휘어지는 임도를 버리고 우측의 숲속으로 향한다

안부(09:38)

안부에서 뒤돌아보니 마루금에서 꽤나 벗어나 있는 

222.3m봉이 얼굴을 내밀면서 하는 말...힘들면 집에서 쉬지

왜 그리 몸뚱아리를 혹사시키냐면서 힐난을 한다.

 

역마산을 지나면서부터 이곳까지 오면서 선답자들의

시그널 한장도 구경하지 못했다...행여 내가 알바를

하지 않았나 싶어서 오룩스맵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걷는데

트랙상으로는 지극히 정상적인 마루금이다.

거의 땅바닥에 붙은듯한 나즈막한 안부에서... 

오르막을 오르는데 등로는 보이지 않고, 선답자의 흔적이 

없어서 또 다시 트랙을 확인해 보지만, 맵상의 마루금은

지극히 정상적이다

무명봉(09:43)

무명봉에서 키작은 海松 숲을 헤치면서

내려서니 인삼포가 나온다

인삼포로 내려선 다음에...

인삼포밭 둑을 따라서 맥길을 이어간다

인삼포를 지나서 내려서 묘지가 나오고 저수지가 보인다

농로(09:48)

마산면 용전리 용반마을에서 아침에 지나왔던 소리재로 향하는 길이다

조금전에 역마산에서 힘들게 내려왔던 길을 보상받는 느낌으로

편하게 마을길을 따라서 걸어간다

신기제(新基堤:09:49)

신기저수지에 놀던 철새들이 베낭을 메고 나타난

산꾼을 보고는 혼비백산하고는 날아가 버리는구나.

내가 너희들의 휴식을 뺐은거 같아서 미안하다 

산길이 아닌 들길을 걸으면서 목포 구등대를 향하는데

이곳도 예전에는 엄연한 산길이었다...그래서 지맥이란

개념으로 내가 걸어가는 이유가 아닐까.

산이라 해서 다 크고 높은 것은 아니다.

다 험하고 가파른 것은 아니다

 

어떤 산은 크고 높은 산 아래

시시덕거리고 웃으며 나지막이 엎드려 있고

 

또 어떤 산은 험하고 가파른 산자락에서

슬그머니 빠져 동네까지 내려와

부러운 듯 사람 사는 꼴을 구경하고 섰다

배추밭 너머로 좌측부터 흐릿하게 보이는 성산과 형제봉

그리고 국사봉 등...내가 오늘 걸어가야 할 산들이 보인다

용전리 들녘에는 수확을 끝낸 배추밭이 많이 보이고 그 뒷쪽으로는

해남읍의 진산이라는 금강산과 만대산, 깃대봉이 보이고, 해남읍내의

아파트 뒷쪽으로의 대둔산은 워낙 遠景이라 가늠조차 안되는구나 

길에서 길을 발견하다

 

탈무드에는 이런 대목이 있다.

인간의 몸에는

여섯 개의 소용되는 부분이 있는데,

 

​그중에서 셋은

자신이 지배할 수 없지만,

또 다른 셋은 자신의 힘으로

마음대로 할 수 있는 부분이다.

 

​전자는 눈과 귀와 코이고,

후자는 입과 손과 발이다.

 

​우리는 보고 싶은 것만 볼 수 없고,

듣고 싶은 말만 골라 들을 수도 없다.

맡고 싶은 냄새만 선택해

맡을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의지에 따라

좋은 말만 할 수 있고

손과 발을 이용해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다.

 

​'과거'는 해석에 따라 바뀌고

'미래'는 결정에 따라 바뀌며

'현재'는 지금 행동하기에 따라 바뀐다.

 

​바꾸지 않기로 고집하면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다.

용반마을로 이어지는 마을 도로를 버리고 배추밭두둑을 따라간다

배추밭 우측으로는 해남군 마산면 용전리 용반마을이다.

용반마을은 전라남도 해남군 마산면 용전리의 자연마을 중 한 곳으로 신기마을과

한 마을이었다가 행정개편 때 분리된 마을로 용전리와 화내리 사이에 조선시대에

마장(馬場)이 있었다고 하는 역마산(驛馬山, 308.3m)이 있으며 용전과 고암마을은

역마산의 산줄기에 의지하여 마을이 형성되어 있다.

배추밭을 빠져나와서 농로를 따라서 신기마을로 이어지는 좌측으로 향한다

농로에서 바라본 해남군 마산면 신기마을의 모습

신기마을은 길가에 새로 된 마을이라 하여 칭해진 이름이다

뒤돌아 보니 조금전에 지나온 역마산이 나를 내려다 본다

겉으로 보기에는 한없이 유순한데 왜 그리 산꾼에게

모질게 굴었을까...산이나 사람이나 겉으로 봐서는

모를 일이다

신기마을로 이어지는 농로를 버리고 비닐하우스 방향으로 맥길을 이어간다

비닐하우스를 따라서 가다가...

마을길로 올라선 다음에 우측 방향으로 맥길을 이어간다

농장 저 뒷쪽이 트랙상 마루금이지만 지금 농장에는 사람이 있고.

올라가봐야 1분도 안되어 내려올 길이라 그냥 우측 마을도로로 간다

다시 마루금에 접속한 다음에...

농로를 따라서 마루금을 이어간다...도로가 마루금이다

홍이농장(10:05)

마산면 용전리 용반마을을 지나가는 도로명 주소가 용반길인 2차선 도로와

농로가 만나는 삼거리가 나오고 도로 우측 옆으로는 홍이농장이라는 커다란

표지석이 서 있다.

조금전에 지나온 저 곳이 홍이농장인 모양이다

도로 우측인 북쪽으로는 용전리 용반마을이 좌측인 남쪽으로는

신기마을이 보이는 중간 지점으로 방금 전 지나 온 북쪽과 북동

방향으로는 저 멀리 역마산으로 이어지는 비산비야의 마루금이 한 눈에 보인다.

도로를 가로질러 마루금을 이어가는데, 전봇대에 똥벼락이라는

닉을 가지신 분의 시그널이 걸려있다...역마산을 지난 이후에

처음으로 만난는 맥산꾼의 흔적이라 무척이나 반갑다

도로를 건너니 좌측에 커다란 주차장이 있고...

통나무 주택의 옆길을 따라서 맥길을 이어간다

통나무 주택을 지나 좌측의 배추밭으로 올라가서 산으로 들어서려는데

아이쿠야...엄청난 가시나무들의 저항에 엄두가 나지 않는다

무조건 白旗를 들고 후퇴를 하여 넓은 공터 아래에 있는 배추밭으로 향한다

배추밭 가장자리로 간 다음에...

지저분한 능선으로 올라간다

배추밭에서 바라본 해남농협 미곡저장소

과수원의 철조망이 길을 막는 바람에 좌측으로 올라간다

가건물의 농가가 나오고 뚜렸한 길을 따라서 내려간 다음에...

신덕고개로 내려간다

신덕고개(10:17)

해남군 마산면 용전리 신덕마을에 있는 고개로 도로명

주소가  "산이로"라는 806번 도로가 지나가는 곳이다.

 

용전리(龍田里)는 해남군 마산면에 있는 리로서 구릉성 평지에 자리한 마을이고

작은 하천이 흘러 논농사가 주로 행해지는 곳이며 지형이 용처럼 생기고 밭이

많으므로 용전리라 하였으며 신덕마을은 1660년에 무안박씨 박도감(朴都監)이

정착하였다고 전한다

도로를 가로질러 좌측으로 올라 간 다음에...

용전리에 있는 신덕마을의 모습

비닐하우스를 끼고 밭으로 올라선 다음에 마루금을 이어간다

양파를 심어논 밭 가운데 마루금은 이어지고...

범여의 몰골 좀 보소...상거지가 따로 없구먼...

저 앞에 보이는 농산물 창고를 포스트 삼아 맥길을 이어간다

양파밭을 지나 농로에 올라서는데 승용차 한대가 가다가

되돌아와서 창문을 열고는 위, 아래로 한번 째려보더니

베낭을 메고 밭가운데를 가로질러 오는게 이상하게

생각했다가 그냥 가던길로 가버린다

해마농장 입구(10:25)

농장은 좌측이고 맥길은 직진으로 이어진다...농로가 맥길이다

들판 가운데 난 길이 지맥길 마루금이다.

이곳 해남땅의 화원지맥길은 이렇게 편하다가 언제 어느새

돌변할 지 모르니, 바짝 긴장을 하면서 걷는다...마치 어디로

틸 지 모르는 럭비공처럼...

마을 도로 우측으로는 겨울 배추밭이 수확을 기다리고 있고,

그 너머로는 신덕저수지가 아련하게 보이는 그야말로

牧歌的인 풍경이랄까...넉넉하고 풍요로운 남도 인심을 보는듯 하다

FRP 물탱크 2개가 서 있는 길가에서 농장 건물을 끼고 좌측으로 향한다

남도농산(10:29)

남도농산 정문을 통과하니 잠시후에 오를 성산이

저 멀리서 빨리 오라고 손짓을 하는듯 한데

나도 빨리 가고 싶지만 초반부터 잡목의 저항에 너무

시달리면서 몸뚱아리에 난 생채기 탓일까.

너무 쓰리고 아프니 힘이 드는구나...

맥길은 우측으로 이어지고...

추억은 우리가 걸어온 길의 색깔이다 

우리가 삶의 여정에서 겪은 모든

순간들은 우리가 걸어온 

길을 그려내는 하나의 조각이며,

추억은 그 길의 색깔을풍부하게 

만든다고 말한 아인 렌드는 추억이

인생의 다양성을 표현한다는 점을 강조한다는 것이다

농로를 따라서 가다가 좌측으로 향한다

동쪽으로 바라보니 해남읍을 외호하고 있는

금강산과 만대산은 미세먼지 탓인가, 아니면

요즘 風前燈火같은 이 나라의 현실을 대변하는걸까

농로에서 우측으로 올라서니...

트랙상 지맥길은 밭 가운데로 이어지고...

민가를 바라보면서 우측으로 내려서니 도로가 나온다

뚜드럭재에서 출발하여 여기까지 오면서 물 한모금도

안 먹었더니 조금은 배가 고파오기 시작한다.

민가 담벼락 아래에 쪼그려 앉아 초코파이와 두유 하나로

허기를 면하고 약간의 휴식을 취한다

다시 길을 나선다

전주이씨 효령대군 후손 가족묘(10:47)

지맥 마루금 한가운데에 지맥 마루금이 점령하고 있다

평화2호 태양광발전소(10:48)

농로에서 바라본 해남군 마산면 학의리의 모습

학의리(鶴儀里)는 마을 뒷산인 제봉산이 학이 두 다리를 뻗고 날아가는 형국이라

학의(鶴儀)라 하였으며, 본래 해남군 산일면 지역에 속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마포면의 학의리, 망미리, 오호리, 금자리, 산일면의 용소리 일부를

병합하여 해남군 마산면 학의리로 개설되었다.

 

현재 학의(鶴儀)마을, 용소(龍沼)마을, 육일시(六日市)마을, 오호(五湖)마을, 금자(今子)마을

등의 자연마을로 이루어져 있으며, 학의마을은 1620년경 연구리에 살던 무안박씨

박상효(朴祥孝)가 정착하였다고 전하며, 망리동, 학의동, 양성리 세 개의 동네가 있다.

 

오호마을은 도로를 사이에 두고 오가시와 오촌동으로 나뉘는데 오호마을은 1800년경

도강김씨 김도(金道)가 이주하여 정착하였다고 전하며, 용소마을은 600년 전에 제주부씨가

살았다고 하며, 그 후 1620년경 현풍곽씨 곽천실(郭天室)이 정착하였다고 전한다.

금자마을은 1600년대에 들어온 선산임씨가 마을 입향조라고 전한다.

육일시마을은 10여 년 전 용소마을에서 간척지 보상문제로 분리되어 나온 마을이다.

 

학의리 중앙을 북서-남동 방향으로 지방도 제806호선이 지는데, 특히 육일시는

목포, 진도, 광주로 가는 길목이라 교통의 요충지로 알려져 있다.

평화2호 태양광발전소의 휀스를 끼고 간다

김해김씨 가족묘(10:50)

김해김씨 가족묘를 끼고 내려서니 삼거리가 나오고 우측으로 향한다

배추밭 뒷쪽 숲이 마루금이나 그냥 도로를 따른다

갈림길에서 맥길은 우측으로...

잠시후에 가야할 성산이 얼굴을 내밀기 시작한다

맥길이 아니라 마치 남도 들녘 둘레길이라 걷는걸까...

앞에 보이는 내리막으로 이어지는 밭이 아닌 좌측으로

꺽어져서 맥길을 이어간다

수확이 끝난 밭 두둑을 따라서 좌측으로 향한다

밭 끄트머리에 서니 바로 아래에 호화로운 묘지가 보이고,

효교저수지 너머로 마산면 상등리 그리고 그 뒷쪽으로는

만대산과 금강산 능선으로 이어지는 화원지맥 능선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상등리(上嶝里)는 만대산 끝자락에 자리한 마을로, 작은 하천이 흘러

논농사가 주로 이루어지는 마을로 등성이 위가 되므로 상등리라 하였다.

 

자연마을로는 상등, 덤풀골, 도리솔밭, 모릿, 버드나뭇골, 신촌마을 등이 있는데,

상등마을은 본 리가 시작된 마을로, 지명유래 또한 상등리의 그것과 같으며,

덤풀골마을은 덤불이 많았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고, 도리솔밭마을은 도리솔

(키가 작고 가지가 옆으로 동그랗게 퍼진 솔)이 많았다 하여

불리게 된 이름이며, 모릿마을은 모래가 많은 곳이라 하여 칭해진 이름이며,

버드나뭇골마을은 버드나무가 많았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고, 신촌마을은

새로 된 마을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 한다.

수확이 끝난 밭을 통과하여, 능선으로 올라서니 무영객이란 분의

시그널이 툭 한마디 내뱉는다...범여님께선 지금 고생길로 접어

들어섰다고...그 정도 각오는 하고 산속으로 들어선다

아이쿠!...장난이 아니네...

夫婦之間에 대단하셔... 夫唱婦隨이시네요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했던가...무대포로 치고

올라서니 족보있는 83.2m봉에 도착한다

83.2m봉(11:05)

마모가 심해 판독이 불가능한 83.2m봉 정상 삼각점

83.2m봉 정상에서 만난 선답자들의 흔적들...

남도지방의 산에서 유독 많이 만나는 동백과 키작은 소나무에다

망개나무(청미래)가 연합하여(?) 산꾼을 괴롭히는 바람에 한동안

나무들에 포위가 되어 옴싹 달짝도 못할 지경이다...해도해도 너무하다

선답자들의 시그널이 안 보이니 영 불안하다.

행여 내가 알바를 하지나 않나 싶어서 스마트폰의

트랙을 확인하니 지극히 정상적으로 마루금을 따라서

충실히 걷고 있다...그렇다면 선답자들은 어디로 간 걸까?

안부(11:09)

늑대를 피하려다 호랑이를 만난 꼴일까

조금전 83.2m봉에서 내려오는 비교가 안 될만큼

지독한 잡목의 저항이 시작되니 그 자리에서 주저앉고

싶을정도로 다리에 힘이 쭉 빠진다

사바세계에 살아가는 중생들의 삶이란 수많은 괴로움에

직면하면서 살아가고 있다...그 고통은 단순한 고통이

아니라 삶의 일부분이라고 생각하면 오히려 맘이 편해지듯...

오늘 걷는 이 길도 그리 그리 생각하며 걸으련다.

苦를 樂으로 생각하면서...

惡戰苦鬪 끝에 잡목지대를 탈출하여 나오니...

수확이 끝난 배추밭이 나오고 배추밭 가운데로

이어지는 마루금을 따라서 생채기를 일으킨

몸뚱아리를 추스리며 마루금을 이어간다

수확이 끝난 배추밭 너머로 해남군 황산면 일신리에 있는

철마산(135m)가 얼굴을 내미는데, 저 곳은 맥길이 아니라

내가 갈 일이 없을듯 하구나...

농로 삼거리(11:26)

시멘트 농로를 따라서 우측으로 내려가면 이목저수지로

내려가는 길이고, 맥길은 직진으로 이어지는 밭 가장자리로

향한다

밭 가장자리에서 바라본 이목저수지와 그 너머로 보이는

해남군 황산면 일신리 이목 마을이 보인다.

 

해남군 황산면 일신리 이목마을은 본래 일신마을과 한 동네였다가 이목저수지를

막으면서 전답을 따라 이주해 온 사람들이 모여 촌락을 이루게 되었다고 하며,

주 생업은 농사이며, 특산물로는 겨울배추이고, 마을 가운데에서 위쪽으로 국도

제18호선이 통과하는 마을이다

잠깐동안 배추밭으로 이어지는 편안한 마루금을 걷다가

다시 숲속으로 들어서면서 苦行의 길로 들어선다

그래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고 하지 않았던가...

잡목의 강력한 저항을 뚫고 내려서니

또다시 수확이 끝난 배추밭으로 내려선다

명랑로(11:37)

해남군 마산면 상등리 호교마을과  황산면 일신리 이목마을로

연결하는 도로명 주소가 명랑로인 2차선 도로가 지나가며,

마산면과 황산면의 경계 표지판이 있고, 황산면 쪽으로는

해남팔경중에 하나인 우항리공룡화석지 11km란 팻말이 있다.

해남 우항리 공룡·익룡·새발자국 화석산지는 많은 공룡 발자국 화석과

익룡 발자국 화석, 새 발자국 화석이 세계에서 한 장소에서 발견되는

하나뿐인 화석지로 국내외 학계에 학술적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1998년 10월 17일 천연기념물 제394호로 지정되었다가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천연기념물로 재지정되었다.

2021년 1월 29일 국가중요과학기술자료 자연사-2(2020)으로 지정되었다.

마산면 상등리 호교마을쪽을 바라보면서

마산면 팻말 뒷쪽으로 이어지는 임도로 향한다

좌측으로 살짝 돌아서니 18번 국도(공룡대로)가

통과하는 흰재육교가 나오는구나

흰재육교(白峙:41m:11:43)

해남군 황산면 일신리와 마산면 상등리 사이에 있는 고개로 해남읍에서

황산면으로 이어지는 공룡대로라 불리는 4차선의 18번 국도가 지나가는데

 된재 또는 백치라고도 불리며 된재마을 밑에 있는 고개라서 붙여진 이름이다.

흰재육교에서 바라본 해남읍쪽의 모습

흰재육교에서 바라본 황산면쪽의 모습

흰재육교를 지나며 시멘트 도로로 이어지는 우측으로 향한다

시멘트 도로를 따라서 가다가 밭가운데로 들어서서 성산으로 향한다

밭 가운데서 바라본 황산면 일신리 비석골의 모습

밭 가운데를 가로질러 숲속으로 들어서니 여흥민공과

유인 무안박씨 묘가 나타난다

여흥민공& 유인 무안박씨 묘(11:48)

여흥민공의 묘지에 있는 문인석 뒷쪽으로 올라선다

성산으로 향하는 길에 들어서니 또다시 고행은 시작되는데,

어차피 오늘 산행은 스틱을 접어야만 고행이 끝날 것 같은

예감이 들기에 모든 걸 체념한 채 묵묵히 걸어간다

참으로 대단하고 존경스럽다

그래도 알바를 않고 잘가고 있다는 표시겠지...

길이없는 동백나무 숲을 헤치고 올라서니...

음지라 그런지 잔설이 있는 돌길...생각보다 상당히

미끄럽고, 살짝 불어오는 바람에 손이 시릴정도로 춥다

성산분기봉(141.4m:12:10)

성산분기봉에 베낭을 벗어놓고 지맥길에서 동쪽으로

약200여m 정도  떨어져 있는 성산으로 향한다

성산(星山:137.0m:12:15)

해남군 황산면 일신리와 마산면 상등리에 경계에 있는

산으로사람들의 왕래가 별로 없는지 주변은 잡목으로 인해

그저 볼품없는 밋밋한 무명봉처럼 보이지만 엄연한 족보있는 산이다

해남군 옥천군 성산리에 있는 성산에 대한 기록은 보이지만 이곳의

성산에 대한 기록은 보이지 않아 아쉽구나

이곳에서 예전에 같이 기.지맥길을 걸었던 빛바랜 사르리(신경호)

아우님의 흔적을 만나니 참으로 반갑구나...예전에 수원시의 한 동네에

동장직을 수행하고 명예롭게 정년 퇴직을 했다는 소식을 접했으나

지금은 어떻게 사는지 궁금하구다

다시 성산분기봉(12:20)

살짝 좌측으로 꺽어져 급경사의 내리막길로 향하는데

오후가 되면서 바닷가 근처라서 그런지 세차게

불어오는 겨울바람이 차갑다

안부(12:27)

안부에서 좌측으로 이어지는 편안한 등로가 보이지만

직진의 오르막으로 이어지는 등로로 향하는데...

갑자기 등로는 사라졌지만 그래도 조금전에 지나온

등로에 비하면 훨씬 나은것에 위안을 삼으면서

정상으로 향한다

145.7m봉(12:38)

오룩스맵상의 지도에는 아무런 표식조차 없는 무명봉인데

누군가가 코팅지로 145.7m봉이라고 걸어놨다

코팅지 뒷면에 달그림자. 똥벼락. 대전홀산아라는

글씨가 적혀있는 걸로 봐서는 대전의 맥꾼들인 모양이다

좌측으로 내려서는데...

이곳에서도 잡목의 강력한 저항에 직면하여 한참을

버벅거리면서 내려가는데, 갑자기 팅겨져 나온

나무가지에 맞아서 얼굴에 피가 나는 상처를 입는다

지금 나는 혼수상태 직전이다...뭔 지랄인지 모르겠다

천신만고 끝에 길이 없는 곳을 탈출하니...

조금전 안부에서 좌측으로 이어지는 희미한

임도가 보인다

임도로 내려선 다음에...

배추밭 좌측의 농로로 이어지는 마루금을 따라서 맥길을 이어간다

배추밭 너머로 맨 좌측의 형제봉과 국사봉(우측 2번째)이 보이는데

초반에 너무 체력을 소진한 바람에 저기까지 갈란지 모르겠다

조금전에 지나온 145.7m봉을 뒤돌아 본다

사람이나 산은 그 속을 참으 모를 일이다

겉으로는 한없이 유순하고 인자한 모습인데,

왜 그리도 홀로걷는 산꾼에게 못살게 굴었는지...

조금은 미안했던 모양이다...물끄러미 내려다 보는 모습이...

배추밭으로 올라오는 농로를 따라서 맥길을 이어간다

농로 뒷쪽으로 잠시후에 오를 형제봉이 얼굴을 내밀기 시작한다

농로를 버리고 수확이 끝난 논 가운데로 맥길은 이어지고...

다시 산속으로 들어서는데 또다시 잡목과의 일전을 벌인다

그리고 금새 안부를 통과하는 넓은 임도를 만난다

안부 임도(13:24)

산속에 쳐박혀 있는 낡은 냉장고 뒷쪽으로 맥길은 이어지고...

legend님...어디로 가야 하나요?

고개(13:27)

봄을 기다리는 그대에게 /  홍수희

그대 마음에
봄이 온다면
그것은
사랑 때문입니다

자주
벗어버리고 싶었던
사랑의 무게,
어깨를 짓누르던
네 삶의 무게

인내하는 마음에
봄이여, 오시리니

네 영혼에
눈부신 봄이 온다면
그것은
사랑 때문입니다 

홀로걷는 산꾼이 길을 잃을까봐 준.희쌤이

길을 알려주는구나...늘 고맙습니다

안부(13:31)

지맥꾼들 사이에는 저승사자같은 공포의 대상인

망개나무에게 오늘은 하도 괴롭힘을 당한 탓일까

이제는 그렇게 두렵지도 않는 그저 그런 대상이다

잡목들에 포위를 당한 갈참나무의 위엄과 도도함...정말 멋지다

이곳에서 잡목의 저항이 너무 강한탓에 생각보다 시간이 많이 지체된다

한참을 버벅거리면서 내려서니 통훈대부를 지냈다는

김해김공의 묘지가 나오는데 가족묘지인 모양이다

김해김공&숙인 밀양박씨 묘(13:38)

통훈대부를 지냈다는 김해김공의 부인의 호칭을 숙인(淑人)이라 기록됐다

 

* 숙인(淑人)은 조선시대 정3품에 해당하는 관직인 통훈대부(通訓大夫), 어모장군(禦侮將軍),

  창선대부(彰善大夫), 정순대부(正順大夫) 이하의 품계를 역임한 당하관(堂下官)의 아내,

  종3품에 해당하는 관직을 역임한 종친 및 문무관의 아내에게 주던 작위(爵位)로

  이 봉작 작위는 내명부 관등 등급상 숙부인(淑夫人)의 아래, 영인(令人)의 위에 해당한다.

김해김공 묘지를 내려오니 시멘트로 포장된 도로가 나오고

좌측으로는 양철지붕으로 된 집 한채가 보이는데 폐가인듯 하다

임도 삼거리(13:41)

이곳에서 직진의 숲속으로 들어가야 하는데

입구로 쑤시고 들어가니 잡목의 저항이 너무 심해서

아무래도 자신이 없다...편한한 우측으로 향한다

편안한 도로를 따라서 가다가...

조금전에 정말 개고생하면서 내려왔던 길을 뒤돌아 본다

가야할 국사봉(가운데 봉우리)이 보이는데 오늘 저기까지

가야만이 다음 구간이 좀 편할터인데 걱정이 앞선다

출하를 앞둔 배추밭 너머로 잠시후에 오를 형제봉이 보인다

마루금을 한참을 돌아서 시멘트 도로 삼거리에서

좌측의 임도를 따라서 형제봉으로 향한다

일신리 임도를 따라서 동쪽으로 향한다

수확이 끝난 논 너머의 숲으로 이어지는 저 곳이 마루금이다

임도(13:50)

잡목의 저항을 피해 한참을 돌아서 마루금에 복귀를 한다 

임도에서 우측으로 올라서니...

무명묘지가 나오고...

묘지 뒷쪽으로 무대포로 치고 올라선다

안부(13:54)

형제봉 오르는 길에서 만난 준.희쌤의 흔적

판석처럼 깨진 돌무기가 있는 곳으로 올라서니

해남천 너머로 해남읍을 외호하고 있는 산들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데 미세먼지로 인해 한결같이

흐릿하니 많은 아쉬움이 남는구나... 

해남천 넘어 우측으로 남각산(316.8m)이 좌측으로는 달바위산(167m)과 음달산이 보이고

그 달바위산 바로 두시쪽으로는 해남읍 남쪽으로 위치한 호산과 서당산 그리고 그 뒤

저 멀리 희미하게 지난해 4월에 걸었던 화원지맥의 덕음산도 보이고 덕음산 너머로는

흐릿한 모습으로 대둔산도 얼굴을 내밀고 있다

해남읍을 외호하고 있는 만대산과 금강산 능선도 보이지만

예전과는 달리 겨울철이면 불청객처럼 나타나는 미세먼지로

인하여 조망이 엉망이라 참으로 아쉽구나...

느릿느릿한 황소걸음으로 등로가 보이지 않는 형제봉으로 향한다

그나마 다행인건 망개나무를 비롯한 가시가 달린 나무가 없어서

그저 고맙기만 하다... 천천히 오르다보니 동생봉에 도착한다

형제봉 중 제봉(弟峰:135m:14:08)

2개가 있는 형제봉의 봉우리중에 아우에 속하는 제봉(弟峰)

정상에는 준.희쌤의 격려문구가 걸려있고, 선답자들의 시그널들이

바람에 심하게 흔들린다

이곳에서 남동쪽으로 300여m 정도에 떨어져 있는 형제봉중에

형님(兄)봉(143.0m)이 나뭇가지 사이로 보인다

동생봉 정상에다 베낭을 벗어놓고 물한모금 마시면서 형님봉으로

가려다가 시계를 보니 저기까지 갔다오면 아무래도 귀경 시간이

애매해질 것 같아서 포기를 하고 이곳에서 잠깐 휴식을 취한다

동생봉에서 좌측으로 내려가는데...

등로는 사라지고 어디로 가야할 지 가늠조차 안된다

미치겠구먼...

망개나무와 처절한 사투를 벌이면서 내려서니...

이제는 노간주 나무가 산꾼에게 무지막지하게 행패를 부린다

천신만고 끝에 잡목지대를 탈출하여 내려서니

송전탑을 바라보면서 임도로 내려선다

NO18 송전탑(14:45)

잡풀이 무성한 임도를 따라서 가는데...

선답자가 길을 안내한다

뒤돌아 본 형제봉의 모습

우측이 못가본 형님봉인데 참으로 많은 아쉬움이 남는구나

일신리 임도(14:50)

원래 계획은 황산면 원호리까지 가기로 했는데, 잡목의 저항으로

인해 시간이 너무 지체되어 무리일 것 같아서 이곳에서 산행을 종료한다

y자 형태의 일신리 임도에서 우측으로 내려가는데

유난히 빨간천의 리본이 많이 보이는데 자세히 보니

한전에서 걸어둔 흔적이다

잠시후에 배추밭이 나오고 배추밭을 통과하면서 

아침에 이용했던 택시기사에 전화를 해놓고는

일산마을로 향하면서 배추밭 너머로 보이는

국사봉(가운데)이 나를 물끄러미 쳐다보면서 하는 말...

산은 늘 거기에 있으니 너무 무리하지 마셔요

배추밭을 빠져 나오니 넓은 공터가 나오고 이곳에서 베낭을

정리한 다음에 시멘트 도로를 따라서 일신마을로 향한다

일신마을(15:10)

해남군 황산면 일신리(日新里)에 있는 일신마을은 면소재지로부터 동쪽에

있으며 마을 뒤로 국사봉, 남으로 성산이 솟아 있으며, 본래 산일면 지역에

속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성산리, 금곡리를 병합하여

해남군 황산면 일신리로 개설되었고, 일신마을의 입향조는 1987년의

『마을유래지』에는 김동현이라 하였으나, 단종애사 때 낙향한 의성김씨 

김호와, 임진왜란 때의 김해김씨 김세용으로도 전해지고 있다.

일신마을 앞쪽으로는 고천암 간척으로 만들어진 넓은 들이 있고, 마을 중앙을

따라 내(川)가 흐르고 있다... 본래 산으로 둘러싸여 일조량이 부족하고 지형인

암반인 관계로 땅이 척박하였고, 옛부터 일신, 연당, 남리 마을의 추수가

끝나면 황산면의 추수가 끝난다고 하였다고 한다.

일신마을 통과하면서 뒤돌아 본 형제봉의 모습

택시를 호출하고 20분정도를 마을길로 걷는데

택시는 도착하고 곧장 터미널로 향한다

해남종합버스터미널(15:45)

아침에 표를 미리 예매해 놓아서 큰 걱정이 없으니

민생고부터 해결을 해야겠다 싶어 터미널 건너편에

있는 분식집에 들려 잔치국수 한 그릇으로 민생고를

해결하고 터미널 화장실에서 간단하게 씻고 환복을

한 후에 대합실에서 한참을 멍때리기 한다

해남발 → 서울행 버스표

17시에 해남을 출발한 버스는 18시에 목포에 도착하여 승객을 

실고 서울로 향하는데, 동지가 지난지 한 달이 다되어 가는지

18시가 넘어서도 아직 어둡지는 않다...목포를 지나면서 

긴장이 풀리는지 정신없이 잠에 빠졌다가 일어나니 버스는

어느새 경기도로 접어들고 밤 10시가 다된 시간에 서울에

도착하여 집으로 향한다

 

epilogue

지난 10 수년간 동안 기.지맥길을 걸었지만 이렇게 힘든 지맥길은

처음 걸어본다...집에와서 선답자들의 산행기를 보니 트랙을

따라서 완벽하게 마루금을 걸은 사람은 별로 많지 않다.

적당히 응용하여 걸어간 산행기...어쩌면 그것이 정답이 아닐까.

바보처럼 마루금을 고집한 내가 바보같은 느낌아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