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일자: 2025년 01월 19일
☞산행날씨: 맑은 날씨에 미세먼지
☞산행거리: 도상거리 15.5km +들머리+0.5km+날머리 0.6km / 7시간 35분소요
☞참석인원: 나홀로 산행
☞산행코스: 배추밭-일신리 임도- 무명봉- 무명묘지- 안부- 경주정공&정부인 밀양박씨 묘
105.7m봉- 130.3m봉- 자종재- 92.4m봉- 안부- 임도- 160m봉- 안부
NO23송전탑-국사봉- 무명봉- 안부- 144.8m봉- 임도- 무명봉- 까끈골재
무명봉- 안부- 무명봉- 안부- 명량로- 101.9m봉- 무명봉- 명당치-명당봉
NO30송전탑- 안부- 77.8m봉- 안부- 송전탑- 안부- 임도 사거리- 묵밭
삼거리- 73.5m봉- 제주양공 묘- 농로 삼거리- 부전축협 싸이로- 35.7m봉
송호마을 버스 정류장- 송호 삼거리- 송호육교- 갈림길- 43.4m봉- 안부
안부-만년저수지- 갈림길- 농업회사법인 남도의 꿈- 농로 삼거리
임도- 민산- 묘지- 안부- 진등고개- 65.8m봉-벼개고개-황산중앙교회
☞소 재 지: 전라남도 해남군 황산면
지난주에 이어 올해들어 2번째 화원지맥길에 나서는데, 다가오는 3월초까지
해남땅에 있는 화원지맥과 남해남(신산경표상:선은)지맥을 끝내려고 계획을
하고 있는데, 날씨와 숙소가 문제일 것 같은데 어쩔지 모르겠다.
그보다는 우선 지독한 잡목의 저항이 심한 화원지맥부터 먼저 끝낸 후에
다음을 생각하기로 하고, 오늘도 사무실을 조금 일찍 마감하고 터미널로 향한다
오늘 산행구간의 지도
서울발 → 해남행 버스표
집에와서 대충 베낭을 챙겨 터미널에 도착하니 버스 출발시간 7분전이다
오자마자 버스에 오르는데, 버스는 곧 출발하고 고속도로에 들어서자마자
버스전용차로를 달리는데, 명절이 얼마남지 않아서 그런지는 몰라도
평소의 주말과는 달리 고속도로에 차량은 그리 많지 않은지 생각보다
조금 빠르게 중간 기착지인 정안 휴게소에 도착한다
이곳에서 버스는 15분정도 정차를 한 다음에 목포로 버스는 출발하고
저녁 9시에 도착한 목포에서 대부분의 승객들이 하차하고, 몇명 안되는
승객을 태우고 40분 정도를 달려 해남터미널에 도착하니 저녁 9시 40분이다
해남터미널(21:40)
터미널에 도착하여 지난주에 묵었던 모텔에 가서 베낭을 내려놓고
저녁을 해결하려고 밖을 나와 식당을 찾으니 식당은 보이지 않는다.
하는 수 없이 치킨집에 들려서 통닭 반마리에다 생맥주 500CC 한잔으로
저녁을 대신하고 모텔로 들어가 샤워를 마친후에 잠자리에 든다
해남 터미널(06:40)
아침에 일어나서 간단하게 씻고 모텔을 빠져나와 터미널에 있는
편의점에서 컵라면과 커피 한잔으로 아침을 해결한 다음에
저녁에 서울로 가는 버스표를 예매한 다음에 지난주에 이용했던
택시를 호출했더니, 지금 손님을 모시고 운행중이니 10분만
기다리란다...10분 정도 지난후에 택시는 도착하고 오늘의
들머리인 일신리 임도로 향한다
일신리 배추밭(07:25)
택시는 일신 마을을 지나 들머리 초입인 배추밭 입구까지 와서 나를
내려주고는 해남으로 향하고, 나는 택시에서 내려 산행을 준비하는데,
이른 아침이라 그런지 남도땅이긴 해도 날씨는 생각보다 춥다
산행을 시작하다(07:30)
산행을 시작하면서 배추밭 너머로 멋진 산이 보이는데,
지난주에 맥길을 걸으면서 이목마을 너머로 보였던
철마산(鐵馬山:135.0m)이 얼굴을 내밀면서 산꾼 범여에게
오늘도 산길이 만만치 않으니 조심하라고 한다.
배추밭을 지나고 임도로 올라서면서 산행 시작 10분만에
오늘 산행 들머리인 일신리 임도에 도착한다
일신리 임도(07:35)
임도에 들어서니 선답자의 흔적이 보이지만 갑자기
등로는 사라지고 키작은 소나무가 숲을 이루면서
한치앞도 안 보이니 도대체 어디로 가란 말인가
좌측을 바라보니 지난주에 걸었던 형제봉이 물끄러미 나를 내려본다
저 곳을 내려오는데 워낙 잡목의 저항이 심해서 개고생을 했는데
형제봉이 조금은 나에게 미안했던 모양이다
어디로 가란 말인가?...답이 안 보이네.
행여 알바를 했나 싶어서 트랙을 확인하는데
맥길을 지극히 정상적으로 가고 있다
해가 뜬 지가 한참이나 되었건만, 하늘에 섣달 스무날의
달은 아직도 뭔 미련이 남았는지 산을 내려다보고 있구나.
갈때는 가야하는게 자연의 섭리거늘...미련을 버리셔요
무명봉(07:45)
前生에 지은 業報를 지금에서야 대가를 치르느라
이런 고통을 감내해야 하는지 초반부터 몸뚱아리에
생채기를 일으키며 맥길을 치고 나가는데 너무 힘이 드는구나
키작은 소나무와 동백이 합세하여 산꾼을 괴롭히는데
산행을 시작한 지 얼마되지도 안았는데 벌써 지치기 시작한다
무명묘지(07:53)
무명묘지에서 잠시후에 오를 봉우리를 올려다 보는데
낮으막한 봉우리이지만 저 곳도 그리 만만해 보이지는 않겠구나
헐~~~이게 뭐여!
안부를 내려서면서 우측으로 바라보니 아침에 산행을
시작했던 배추밭 앞의 전봇대가 보이는데, 저기에서
이곳까지 오는데는 5분도 안 걸릴 거리인데 30분이나
걸렸다...힘든 곳은 띵가묵고 왔으면 개고생을 안하고
올 수 있었을텐데...공부도 안하고 원칙을 고집하며 트랙만
믿고 왔다가 개고생을 한 꼴이 되었다
안부(07:55)
안부에서 올라서니 선답자들의 흔적이 보이고...
또 다시 苦行은 시작되고, 오르막을 오르다가 너무 힘이들어
살짝 우측으로 벗어나니 가선대부동지충추부사를 지냈다는
경주정공과 정부인 밀양박씨의 묘지를 만난다
경주정공&정부인 밀양박씨 묘(08:02)
* 가선대부( 嘉善大夫)는 조선시대 종이품(從二品)의 문관과 무관에게
주던 품계로 종이품의 하계(下階)로서 가정대부(嘉靖大夫). 가의대부(嘉義大夫)보다
아래 자리로 경국대전(經國大典) 이후로 문무관에게만 주다가, 대전회통(大典會通)에서는
종친(宗親)과 의빈(儀賓: 임금의 사위)에게도 주었고, 동지중부사(同知中樞府事)는
조선시대 중추부에 소속된 종2품의 관직이다
* 오위장(五衛將)의 직책은 조선 시대에 오위도총부(五衛都摠府)에 딸려 오위의 군사를
거느리던 장수 12명으로, 품계는 초기에는 종이품(從二品)이었다가, 임진왜란 이후에
정삼품(正三品)이 되었다.
* 정부인(貞夫人)은 조선시대 외명부 중 문관·무관의 적처에게 내린 정·종2품의
위호(位號)로 남편의 고신(告身)과 함께 이루어지며, 부인의 봉작은 부도(婦道)가
곧고 바른 사람으로 봉하게 하고, 서얼출신이나 재가한 사람은 봉작하지 않고,
남편이 죄를 범하여 직첩(職牒)이 회수되거나 남편이 죽은 뒤 재가하면 이미 준
봉작도 회수하였다고 한다
경주정공 묘지에서 5분동안 개고생을 하면서 올라서니
멋진 소나무가 기다리고 있는 봉우리에 올라선다
105.7m봉(08:07)
선답자의 시그널이 가야할 맥길을 제시하지만 등로는 찾을수도 없다
참으로 대단하십니다
130.3m봉으로 오는 길도 참으로 고역이다.
이런 길을 걸으면서 내가 걸어왔던 인생 역정의 뒤를 돌아본다.
나도 이곳의 잡목처럼 남을 괴롭히면서 내 이익을 위해 살지
않았나 하고 반성을 해본다...나의 이익만큼 남이 고통을 받을 수
있다는 걸 명심하면서 조심스럽게 살아야지...
가던 길을 멈추고 조금전에 지나왔던 길을 뒤돌아 본다
형제봉중에 형님은 안보이고 동생봉 너머로 만대산과
금강산은 아직도 홀로 걷고있는 범여가 못 미더운지 물끄러미
쳐다 보면서 걱정을 하는 모양새다...너무 걱정하지 마소
힘은 들지만 요령 안 피우고 잘가고 있습니다
너럭바위를 지난 다음에...
130.3m봉을 향하는 오르막길
우측으로 올라서니 130.3m봉 정상이다
130.3m봉(08:20)
국사봉으로 향하는 좌측으로 등로가 열리면서 황산면 원호리 들판 지나 남천과 해남천이 합수하여
고천암호와 남해바다로 흘러드는 모습이 보이고 그 뒷쪽으로 나즈막한 금성산과 바랑산 너머로
2월말쯤에 걸어볼 예정인 대둔산 도솔봉에 시작되는 남해남(선은)지맥의 선은산이 흐릿하게 보인다
130.3m봉을 지나니 나뭇가지 사이로 가야할 국사봉이 따스한
아침 햇살을 받고 있고, 내리막길에는 이곳이 족보있는 봉우리라
그랬는지 이곳을 지나간 선답자의 흔적들이 산꾼을 반긴다
동백나무 가지가 꺽여있는 걸 보니 맥꾼이 지나간 모양이다.
부디 무탈하게 합수점까지 잘 가시길를 기원한다
130.3m봉을 지나면서부터 자종재으로 향하는 길은
초반과는 달리 비록 등로가 흐릿하기는 하지만
길이 보이는데 이만큼 등로가 보이는 것도 감사하다
흐릿한 등로를 따라서 내려가는데 비실이부부님이 길을
안내하는구나...지맥길을 걸으면서 홀로걷는 산꾼에게
참으로 도움을 많이 주시는데 난 뭘로 보답을 해야하나.
아뭏든 세세생생 복받을깁니다
나뭇가지 사이로 황산면 원호리에 있는 성산저수지를
바라보면서 내려서니 넓은 공터같은 고개가 나오는데
지도상에 표기된 자종재이다
자종재(55m:08:37)
해남군 황산면 원호리 학동마을에서 일신리 일신마을로 넘어가는 고개로
좌측의 학동마을로 내려가는 등로는 뚜렸하나, 우측의 일신마을로 내려가는
길은 동백이 군락을 이루고 있어서 등로가 보이지 않는다,
자중재, 자중깃재라고도 불리는데, 지명의 유래는 알 길이 없는데,
지도를 보면 일신마을 윗쪽에 자종골이라는 지명이 보이는데 아마
거기의 지명에서 유래된 듯 하다.
원호리 학동마을은 고려 중엽 전북 남원에서 경주정씨 정덕남이 정착하여 농업과
염업을 함으로써 마을이 형성되었다고 한 마을로서 당시의 염업은 원시적인 형태였지만
해남군 일대에 소금을 공급하는 곳으로 알려지면서 차츰 가구가 늘어나 마을을
형성하였다고 전하며, 고천암 간척지가 생기기 전까지는 갯벌에서 게와 꼬막을 잡았고
굴 양식을 하였으며 염전은 간척 이후 모두 농지로 바뀌었다고 한다.
자종재에서 오르는 길은 완만하고 등로는 뚜렸한 편이라서
조금전에 개고생을 한 걸 보상받는 기분으로 올라서니
92.4m봉이 산꾼을 반긴다
92.4m봉(08:43)
92.4m봉에서 고도를 낮추면서 안부로 향하는데 안부에서
다시 치고 오를 160m봉이 범여를 물끄러미 내려다 본다
이곳은 바닷가 근처의 산이라서 고도가 낮다고 해서 그리
만만하게 볼 산은 아닌듯 하다...높이가 겁나는게 아니라
잡목의 태클이 겁이나도 너무 겁이 난다
안부(08:55)
또다시 망개나무, 노간주, 키작은 소나무에다
진달래까지 합세하여 달려드는데 당해낼 재간이 없다
위에는 망개나무, 노간주가 베낭과 팔을 물어뜯고
바닥에는 고사리와 칡넝쿨이 항복을 하라면서
태클을 걸어오지만 거세게 저항하면서 빠져나오니
임도가 나오는구나
임도(09:00)
임도 좌측의 원호리쪽에는 간벌을 하고 새로운 樹種의
나무를 식재한 곳을 바라보면서 다시 오르막으로 향한다
임도에서 오르는 길에는 간벌을 하고 황칠나무들을 식재해놨다
황칠나무는 오리발 모양처럼 생긴 잎사귀를 가졌으며 병을 가져가는
만병통치약이란 의미를 가지고 있고 ‘나무인삼’으로 불리며,
숙취해소, 피로회복, 간세포보호, 변비 치료에 좋으며, 이 밖에도 항당뇨,
항산화작용, 면역력 증진 등의 효과도 있다고 한다.
황칠나무에 대한 첫 기록은 《삼국사기》 〈고구려 본기(本紀)〉 ‘보장왕 4년(645) 조’에
등장하는데 이해 봄, 당 태종은 명장 이세적을 선봉으로 삼아 직접 요동성을 공격하여
12일 만에 함락시킨다... 이 작전에 “백제는 금 옻칠한 갑옷(金髹鎧)을 바치고 군사를 파견했다.
당 태종이 이세적과 만날 때 갑옷의 광채가 햇빛에 번쩍거렸다”라는 내용이 나온다. 금 옻칠은
바로 황칠을 말하며 실증자료도 있다... 2007년 경주 황남동 통일신라시대 유적지에서 나온
항아리 밑바닥의 유기물 덩어리를 분석하였더니 황칠이었다는 것이다.
좌측으로 보이는 원호리의 들녘 너머로 지난해 1월에 걸었던
진도지맥의 능선들이 펼쳐지는데, 금골산과 점철산이 흐릿하게
보인다... 저곳 역시 이곳 못지않게 잡목의 태클로 개고생을 한 곳이다
임도 윗쪽으로 올라서니 등로는 흐릿하게 보이나
또다시 잡목들의 태클은 시작되고 이제는 모든걸
체념한 채 맥길을 이어간다
빛바랜 高手을 흔적을 만나면서 등로는 조금씩
뚜렸하게 보이는 완만한 오르막으로 향한다
등로는 뚜렸하다... 잠깐이지만 오랫만에 편안한 길을 걷는다
암반지대를 지나 오르막에 올라서니 160m의 무명봉이 나온다
이게 누구십니다...산에서 한학문 회장님의 시그널을 만난다.
예전에 10년도 훨씬 넘었던 시절에 같이 여러개의 지맥이
아닌 기맥을 같이 걸으면서 많은 인연을 이어왔던 분인데
우리 딸래미 출가할 때 축하객으로 왔을 때 보고는 그 이후에
산행을 같이하지 못해서 잊고 있었는 여기에서 뵙다니...
이 분과는 나와 같은 고향(경남 의령)이라 더 각별한 사이였는데
언젠가 언뜻 들리는 소문으로는 몸이 않좋아서 산행을
아주 하지 못한다는 소식을 접했지만, 연락처가
없어 안부를 전할수가 없으니 안타깝다,
160m봉(09:16)
국토지리정보원의 지도상에는 아무런 표식조차 없는 무명봉이다.
마루금은 북동쪽의 2시 방향으로 이어지고...
나뭇가지 사이로 잠시후에 오를 국사봉을 바라보면서 내려서는데,
근데...이게 누구십니까...예전에 같이 지맥길을 걸었던 조영애 여사님의
빛바랜 시그널이 범여를 반긴다...70이 훨씬 넘은 나이에 체력이 예전만
못할지언정 열정만은 누구 못지 않았는데, 뵙지 못한지가 10여년이 되어 가는구나.
늘 건안하셔요
국사봉으로 향하는 길은 참으로 좋다
안부(09:20)
안부를 지나자마자 송전탑이 보인다
NO23송전탑(09:21)
NO23송전탑을 지나 약간은 까칠한 오르막으로 올라
여러개의 돌탑들이 있는 국사봉 정상에 도착한다
국사봉(國師峰:174.3m:09:27)
해남군 황산면 원호리와 일신리의 경계에 있는 산으로 정상에는 대엿개의
돌탑이 있고, 정상에서 서쪽으로 살짝 내려서면 주위 조망이 끝내주는
조망바위가 있으며, 원호천의 발원지이기도 한 산으로 해남군 황산면에
있는 산 중에서 최고봉이다.
지명은 풍수지리에서 나라의 국사(國師)가 나올 만한 터가 있는 산이라 한 데서 이름이
유래되었다고 하며, 지층은 중생대 백악기에 형성되었고, 분류산성암층 산성분류암질
응회암이며, 대표암상은 산성분류암질 응회암이며, 산 서쪽 아래로는 국도 제18호선이
동서로 지니고 있어서 국사봉의 모습이 예전과 다르다고 한다.
『해남군지』에 “군의 서쪽 30리에 있다. 원호리 앞산으로, 산 위에 병암(屛巖)이 있고,
북에 미암(眉巖)이 있으며, 남경에 가는 사신이 왕래할 때 제사한 제단과 철마가 있다.”라고
기록되어 있으며, 옛날에는 가뭄이 들면 이곳에서 기우제를 지냈다는 산이다
국사봉 정상에서 서쪽으로 살짝 내려서니...
조망바위 나오는데 오늘 산행중에 전망이 가장 멋진 곳이다
어떤 겨울 풍경화 / 정연덕
女人 하나
급한 몸짓을 내놓고
산길을 돌아 간다.
아무것 없어도
빈들 밖으로 빠지는
저녁 눈보라.
흔들리는 나무가지
그 가지 끝에 맺힌 구름밭
혼자 놀고 있다.
뒤에 남은
산마을 감기든
수캐가 입을 연다.
바로 앞에는 국사봉에서 내려선 다음에 다시 오를 144.8m봉이
손에 잡힐 듯 가까이 보이고 맥길은 좌측 능선으로 내려 선
다음에 해남에서 진도로 이어지는 18번 국도가 시원스레
보인다
서쪽의 바다건너 보이는 진도지맥을 똑닥이 카메라로 살짝 당겨본다
맨 우측이 지난해 1월 21일에 걸었던 칠전산과 용장성, 상봉에서
진도의 최고봉인 점찰산(尖察山:482.0m)이 보이고 점찰산 바로 옆에
있는 진도기상대의 건물이 마치 하얀 배구공처럼 조그맣게 보인다
조망바위에서 다시 국사봉 정상에서 되돌아와서 돌탑
뒷쪽의 급경사로 내려서면서 지맥길을 이어간다
상당히 급경사에다 음지에다가 낙엽 아래에 숨은 등로가
살짝 얼어있어 상당히 미끄럽다...조심. 또 조심하면서
내려선다
뫳돼지 쉬키들이 체력단련장을 만드는 중인가?
무명봉(09:35)
살짝 우측으로 꺽어져서 우측으로 내려가면서 맥길을 이어간다.
오지중에 오지인 이런 산이 이제 범여의 일상이 되어버린
호젓한 산길이 좋아도 너무 좋다
잠시후에 오를 144.8m봉이 앞을 가로막고
떡하니 내려다 본다...마치 덕수궁의 수문장처럼...
너무 겁주지 마소...아침부터 개고생을 했으니
이제는 좀 살살하소... 경상도 넘이 전라도 산을
오른다고 너무 텃세하는 거 아닌가요...
안부(09:45)
좌측으로는 원호리로 내려가는 뚜렸한 등로가 보이는데 앞에 보이는
144.8m봉이 족보있는 봉우리가 아닌 무명봉이었다면 좌측으로
향할까 하는 유혹도 있었지만, 그래도 그건 아니지 싶어서 직진의
오르막길로 향한다
144.8m봉으로 오르는 길은 생각보다 급경사다
태산이 높다하되 하늘아래 뫼이로다
오르고 또 오르면 못오를 이 없건만은
하면서 꾸역꾸역 오르다보니 144.8m봉
정상에 도착한다
144.8m봉(09:57)
급경사의 내리막길로 내려서니...
갑자기 어디로 가야하나...방법은 단하나
무대포로 치고 내려가는 수 밖에 없다
내리막길로 내려서니 산정저수지가 시원스레보인다
고맙습니다...시그널을 뒤로하고 급경사 내려서니...
동백나무 군락지를 지나 내려서니 넓은 임도가 나온다
임도(10:08)
해남군 황산면 원호리 돈판골 마을에서 안골로 넘어가는
임도인데 돈판골쪽은 산정저수지가 있고, 안골쪽은
조금전 144.8m봉 오르기 전에 좌측으로 이어지는
등로를 따라서 내려오면 만나는 곳이다
임도를 가로질러 넓은 공터가 있는 곳으로 맥길을 이어간다
좋은 길이 이어질라나?...생각을 하면서
맥길을 이어가지만 상상은 禁物이다
임도에서 이곳까지 편하게 왔으나 갑자기 등로가 사라지면서 무명봉을 만난다
무명봉(10:15)
무명봉을 치고 내려오는데 오늘 도대체 몇번째인가?
18번 국도옆의 水路가 나오고...
수로를 따라서 내려오는 길도 범여의 인내심을 시험하는 듯 하다
수로옆 잡목의 거센 저항을 뿌리치며 18번 신국도로 내려선다
까끈골재(10:22)
해남군 황산면 원호리에서 일신리 사거리로 넘어가는 고개로 드릿재, 삼티라는
고개로 불리웠으나 지금은 해남에서 진도방향으로 향하는 4차선의 18번 국도
(도로명 주소:공룡대로)가 시원스레 뚫려있어 고개의 기능을 상실한 고개로
까끈골재라는 지명은 이 지역의 방언(方言:표준어와는 다른, 어떤 지역이나
지방에서만 쓰이는 특유한 언어)인듯 한데 지명의 유래는 알 길이 없다
생각보다 차량의 통행은 많지 않고, 차량의 흐름을 파악하고,
중앙분리대를 넘어서 넓은 4차선 도로를 무단횡단한다
18번 국도를 넘어 다시 숲속으로 들어선다
우측으로 올라선 다음에 마루금으로 복귀한다
무명봉(10:29)
동백과 노간주, 칡넝쿨, 두릅, 키작은 소나무 등이 人海戰術이 아닌
人木戰術로 달려드는 바람에 꼼짝도 못하면서 한참을 버벅거리다가
겨우 탈출하여 내려서니 갑자기 넓은 공터가 나와 산꾼을 놀라게 한다
안부(10:33)
안부를 지나 완만한 오르막으로 올라서자마자 다시 등로는 사라진다.
낮은 포복을 하면서 올라서니 앙증맞은 무명봉이다
무명봉(10:35)
갑자기 나타난 뚜렸한 임도를 따라서 내려서니...
양파를 파종한 넓은 황토밭이 보인다
안부(10:37)
양파를 파종한 밭 너머로는 내가 오늘 걸어야 할
명당봉이 시야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양파밭을 따라서 걷다가...
다시 숲속으로 들어간다
넓은 묵은 임도로 걸어가는데 반가운 선답자의 시그널 하나가 보인다
동백이 점령한 묵은 임도이기는 하나 그런대로 걸을만하다
묵은 임도를 벗어나면서 갑자기 나타나는 수확을 앞둔 배추밭...
배추밭 가운데가 지맥길이니 그야말로 非山非野 구간인데
이곳도 예전에 산이었던 모양이다
배추밭이 끝나고 황토밭이 나오는데 좌측으로는
해남군 황산면 원호리(院湖里)의 마을이 보인다
원호리(院湖里)는 예전에 원님이나 사또들이 유숙하였던 곳으로 원터라
불리어 원호(院湖)라는 명칭이 유래하였다고 하며, 본래 산일면에 속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원호리, 학동리, 교동리를 병합하여 해남군 황산면
원호리로 개설하였으며, 현재 원호마을, 교동마을, 학동마을 등의 자연마을로 이루어져 있다.
원호마을은 약 400년 전에 해남 6현 중 한 명인 취죽헌 박백응의 장남 박희길이
국사봉 지세에 반해 머물렀다고 하며, 같은 시기에 김해김씨도 입주하였다고 전한다.
황산의 명산인 국사봉의 정기가 마을을 감싸안고 있으며, 교동마을 뒤로는 옥녀봉이
있으며, 북쪽으로는 호승산이 마을을 싸고 있다... 학동마을의 남쪽으로는 넓은
고천암들이 있고, 고천암 간척 전에 “상만한천(霜滿寒天)에 울던 기러기도 밤이 되면
해월리[구 학동마을]로 찾아가 푸른 파도에 씻긴 모래밭에 몸을 숨긴다”라고 할 만큼
아름다운 풍치를 자랑하였다고 한다.
밭 가운데를 가로 지르면서 지맥길을 이어간다
원호리의 주 생업은 농업이며, 주 소득원은 쌀이고,특작물은 배추를 재배한다.
국도 제18호선이 원호리 가운데에서 위쪽으로 동서 방향으로 지나가 원호리를
나누고 있다.
명량로(10:50)
2차선 포장도로가 지나가는데 도로명 주소가 명량로이다
해남군 마산면에서 황산면으로 이어지는 도로인데
교통량의 거의 없는 편인 한가한 도로인 듯 하다
예전에 공룡대로라는 신18번 국도가 개설되기 전에는
이곳이 18번 국도였으나 지금은 옛 영화를 잊어버린 듯 하다
도로에서 18번 국도(공룡대로)와 명량로가 만나는 원호교 방향으로
향하다가 원호마을을 바라보면서 우측의 농로 방향으로 맥길을 이어간다
원호리에는 조선시대 적량원(赤良院)이라는 원(院)이 있었는데 조선시대 남리역과
녹산역을 연결하는 교통, 통신을 위하여 설치된 숙소로서, 통행하는 관리들의 편의를
제공하였다고 하며, 적량원은 교통의 교차 지점 역할을 하는 곳이라고 볼 수 있다.
해남현에서 출발하여 남리역까지 가기 전의 대략 중간 지점에 해당하는 곳으로 또한
계곡의 별진역에서 출발하여 삼산면과 녹산역을 거치지 않고 마산면 맹진을 거쳐 마산면
방면에서 남리역 방면으로 갈 경우 해남현에서 오는 길과 만나는 곳이 원호마을이다
. 적량원은 조선 초기에 원호리에 설치되어 17세기 무렵까지 존재하다가 18세기 들어
기록에서 사라져 폐지된 것으로 추정된다.
좌측의 원호마을을 바라보면서 들길을 따라서 맥길을 이어간다
비닐하우스를 지난 다음에...
맥길은 좌측으로 꺽어져...
수확이 끝난 밭을 지나 숲으로 향한다
숲으로 들어서기 직전에 조금전에 지나온 길을 뒤돌아 본다.
미세먼지를 잔뜩 뒤집어 쓴 채 우뚝 솟은 황산면의 진산인
국사봉의 늠름한 모습옆에는 144.8m봉...밭과 논을 통과한
후 이곳까지 걸어온 들길들이 이어진다
숲길로 들어서자마자...
범여의 인내심을 테스트 하려는지 잡목의 거친 태클이 시작된다
길이 전혀없고 잡목의 저항은 심하지만 난 지금
마루금에 충실하면서 맥길을 걸어가고 있다
심어놓고 관리가 전혀 안되어 있는 편백나무 숲도 보이고...
간간히 만나는 춘란을 만나면서 봄이오는 소리도 확인한다.
그래... 아무리 힘든 길이라도 시간이 지나면 산행이 끝나겠지.
그나마 다행인건 범여에게 쥐약이나 마찬가지인
급경사의 오르막이 아닌것만 해도 어딘데...
스스로의 위안을 삼으면서 천천히 101.9m봉
정상으로 향한다
101.9m봉 정상 삼각점(△화원24 / 1990 복구)
101.9m봉(11:13)
어느 산꾼의 산행기에는 원호마을 뒷쪽에 있는 산이라고 해서
원호봉이라는 지명을 사용했는데 공식적인 지명이 아니다.
산에 대한 명칭은 함부로 하는 것 아닌데...
101.9m봉에서 트랙을 확인하면서 내려서는 이걸 어쩌면 좋을까.
사성제(四聖諦) 중에 고성제(苦聖蹄)의 깨우치라는 걸까.
또다시 고행이 시작되는 길이 시작된다
佛家에서 사성제(四聖諦)란 십이인연과 연관하여 고(苦)·집(集)·멸(滅)·도(道)의
네 가지 진리로 구성된 불교교리로 석가모니의 성도(成道) 후 자기 자신의
자내증(自內證)을 고찰하여 설한 것이 십이인연(十二因緣)이라면, 사성제는
이 인연설을 알기 쉽게 타인에게 알리기 위해 체계를 세운 법문이다.
사성제(四聖諦)의 첫번째는 부처님께서 이것이 괴로움이다 말씀하신
"고성제(苦聖諦) "이다...부처님은 괴로움의 진리인 고성제에 대해
여덟가지의 고통을 說했는데, 태어나고(生), 늙고(老), 병들고(病), 죽는(死),
괴로움과 싫은 것과 싫은 사람과 만나는 원증회고(怨憎會苦), 좋아하는 사람과
헤어지는 애별리고(愛別離苦),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하는 구부득고(求不得苦),
집착의 대상이 되는 색(色), 수(受), 상(想), 행(行), 식(識)의 오온(五蘊)이 다
괴로움이라는 오온성고(五蘊盛苦)가 다 괴로움이라고 했는데 사람이 세상사를
살아가면서 어찌 편안 일만 있을손가...심해도 너무심한 잡목의 강한 태클도
전생에 지은 업보라 생각하며 맥길을 이어간다
잡목과의 치열한 사투를 벌이면서 내려선
다음에 좌측으로 내려면서 맥길을 이어간다
무명봉(11:19)
등로는 조금씩 유순해지기 시작하며 선답자의 흔적이 반겨준다
우측으로 꺽어져 양탄자처럼 깔린 낙엽을 따라서 명당치로 향하는데...
좌측에 나타난 방화선 임도같은 곳이 잡목에 점령당한채
자기의 본분을 잊어버린지가 오래된 듯 하다
잠시후에 오를 명당봉을 바라보면서 잡풀이 무성한 명당치로 내려간다
어디에 쓰는 물건인고?
예전에 밭이었는 곳에는 쥔장한테 버림받고 방치된 모습이
을씨년스러운데, 작금의 우리나라 농촌의 모습의
자화상인 듯 하다
명당치(明堂峙:45m:11:27)
해남군 황산면 원호리에서 송호리로 넘어가는 고개로 주변에는
예전에 과수원인듯한 넓은 밭들이 보이나 지금은 억새가 밭을
점령하여 밭의 형태조차 잘 보이지 않는구나.
지명의 유래는 알 길이 없고, 바로 윗쪽에 있는 산이 명당봉이라서
명당봉 아래에 있는 고개라서 “명당치” 라 부르는 모양이지만 오룩스
맵상의 지도에는 좌측으로 한참을 내려간 곳에 “명당치”라 표기를
해놔서 조금은 헷갈리는 곳이다
명당봉 가는 길
묵밭을 지나서 전봇대를 끼고 우측의 숲속으로 들어간다
준.희쌤의 흔적을 확인하면서 올라서니...
선답자의 시그널이 바람에 휘날리는 명당봉 정상에 도착한다
명당봉(明堂峰:101.5m:11:37)
해남군 황산면 원호리와 송호리의 경계에 있는 산으로 정상에는 준.희쌤의
산패와 선답자들의 시그널만 잔뜩 걸려있고, 잡목에 둘러싸인채 그저 볼품없는
산이건만 이런곳을 “명당봉” 이라 붙인 이유가 궁금하다...내가 모르는 사연이
있겠지...동남쪽 아래에 명당저수지와 조금전 내가 지나온 명당치 말고 그 아래에
명당치가 있긴 하나, 오룩스맵상의 지도에는 101.5m봉으로만 표기되어 있다.
옛지도에는 명당봉이란 이름이 보이지 않고, 영진지도에는 이곳을 명당치로
표기된 모습이있으나 원호리에 있는 봉우리란 표시 이외에는 설명이 없다
명당봉에서 내려서는 길은 좋다...아마도 송전탑을 건설하면서
만든 산판도로 같은데, 한전에서 설치한 빨간 표지기가 많이 보인다
NO30송전탑(11:41)
NO30 송전탑을 끼고 넓은 임도를 따라서
오랫만에 가벼운 발걸음으로 맥길을 이어간다
앞으로 남은 길도 이런 꽃길이었으면 좋겠다
안부(11:44)
안부에서 살짝 우측으로 맥길을 이어가는데 길이 좋으니
은근히 겁이 나는구나...마치 폭풍이 몰려오기 전의 고요한
바다처럼... 잠시후에 어떤 험한 길을 만날까 하는 호기심도 생긴다
옴팍한 고개같은 곳을 지난 다음에...
송전탑을 건설하면서 만든듯한 임도를 버리고...
숲으로 들어서니 고요속의 폭풍 전야끝에 폭풍이 시작되는 느낌이다
쌤께서는 이 험한 길을 어떻게 지났을까?.
정상적인 선 걸음으로는 도저히 통과할 수가 없다
낮은 포복으로 기어서 능선에 올라서니 족보있는
77.8m봉이 개고생을 한 범여를 반긴다
77.8m봉(11:56)
준.희쌤의 산패는 없고 산꾼들의 시그널만 정상을 지키고 있다
77.8m봉 정상에서 좌측으로 맥길을 이어간다
迷路처럼 이어지는 흐릿한 등로를
따라서 보물찾기 하듯 맥길을 이어간다
안부(11:58)
우측으로 내려서니 NO가 돌아서 있는 송전탑을 만난다
송전탑(12:04)
NO가 돌아서 있어 확인을 포기하고 내려가는데...
등로는 사라지고 이곳에서 한참을 버벅거리면서
내려서니 묵밭같은 안부가 나온다
안부(12:12)
쥔장이 밭을 버렸는지 밭이 쥔장을 버렸는지 모를 묵밭을 지난다
뚜렸한 임도를 따라서 맥길을 이어간다
임도 사거리(12:15)
임도사거리에서 편안한 임도를 버리고 직진으로
올라서니 또 이건 뭐야...그러나 잠깐 사이에
잡목지대를 벗어난다
편안한 임도를 따라서 가니...
새로운 나무를 심어논 묵밭이 나오는데 관리가 안되어 엉망이다
묵밭(12:17)
맥길은 우측으로 이어지고...
관리가 안된 조림지 사이로 맥길을 이어간다
묵밭을 지나 내려서니 시멘트 도로가 나온다
삼거리(12:21)
우측으로는 황산면 송호리 종치제로 가는 길이고 좌측으로는
명당치(저수지)로 향하는 길인데 뭔 공사를 하려는지
땅바닥을 몽땅 뒤집어 놨다
도로에서 바라본 종치저수지 방향쪽의 모습
삼거리를 지나서 송전탑을 바라보면서 맥길을 이어간다
시멘트 도로를 따라서 가다가 맥길은 좌측으로 향하는데
창고로 사용하는듯한 조그만 건물은 망가진 채 방치되어
있고, 씨잘데 없는 쓰레기만 가득하다
배추밭 가운데가 맥길이다
배추밭을 지나 올라서니 검은 P.V.C가 보이고...
동백나무 가지에 얼굴을 맞으면서 올라서니 73.5m봉이다
73.5m봉(12:40)
73.5m봉 정상에서 90도 좌측으로 꺽어져서 내려간다
내리막길은 비교적 등로가 뚜렸하다
이 정도만 되면 산행 속도를 줄일 수 있을 것 같은데...
편백나무 조림지를 내려서니...
잘 관리된 묘지를 바라보면서 내려선다
제주양공 묘(12:46)
마루금은 묘지 좌측으로 이어지나 묘지로 이어지는
시멘트 도로로 내려서면서 가야할 지맥길을 바라본다
앞을 보지않고 가야할 맥길을 가늠하느라 도로를 내려오면서
묘지앞에 처진 쇠사슬을 보지못해 쇠사슬에 걸려 된통 꼬구라진다
아파도 너무 아프다...바지를 내리고 몸뚱아리를 보니 살가죽이
벗겨지고 피가 흥건하다...그리고 너무 아파서 꼼짝을 못할 지경이다
한참을 주저앉아 통증을 가시기를 기다렸다가 다시 길을 나선다
농로 삼거리(12:51)
대한민국 농촌의 자화상을 보는듯 하여 기분이 씁쓰럼하다
시멘트 도로를 버리고 우측의 절개지로 올라간다
절개지로 올라서니 가축들의 분뇨인 축분(畜糞)이 산더미처럼
쌓여있는 곳을 통과해야 하는데 축분의 규모가 어마어마 하다
원 마루금은 뼈대만 남은 비닐하우스 뒷쪽의 봉우리로
올랐다가 축사 건물 가운데로 통과해야 하는데 축사가
자리를 잡고있어 좌측의 도로를 따라서 맥길을 이어간다
싸이로 좌측 아래의 밭너머로는 진도의 최고봉인 점찰산이
흐릿하게 보이는데 미세먼지인지, 아니면 원거리라 그런지는
몰라도 흐릿하게 보이니 조금은 아쉽다
부전축협 싸이로(12:56)
축사를 빠져나오니 직진으로는 송호리로 내려가는 길이고
살짝 좌측으로 꺽어지니 오늘 산행중에 가장 낮은 봉우리인
35.7m봉이가 보인다
아무리 쬐그만 봉우리일지라도 명색이 족보있는
봉우리인데 그냥 지나칠 수가 없어서 억새밭을
헤치면서 정상으로 향한다
좌측으로 바라보니 아침에 개고생을 하면서 지나온
황산면의 최고봉이자 진산인 국사봉이 범여에게
너무 가혹하게 대했다고 생각이 드는지 물끄러미
바라보며 미안하다는 감정을 드러낸다...괜찮소...
사는게 다 그런거지 뭐...
35.7m봉(13:01)
35.7m봉을 내려가면서 조금후에 걸어가야 할 길을 가늠해본다
부전싸이로에서 내려오는 길을 만나서...
원 지맥길은 배추밭 우측의 철탑이 있는 곳에서
그 아래에 있는 황산농협 미곡처리장으로 마루금이
이어지지만 그냥 시멘트 도로를 따라서 편안하게 길을 걷는다
송호마을 버스 정류장(13:07)
송호 삼거리(13:08)
해남군 황산면 송호리 삼거리에서 좌측으로 꺽어져 송호육교 방향으로
맥길을 이어가는데 우측에는 황산농협 미곡처리장이 있고, 송호마을
표시석 옆에는 미래유통이라는 커다란 창고가 보인다
송호삼거리에서 미래유통을 끼고 좌측의 2차선을 따라서
맥길을 이어가는데 이 도로명의 지명은 송한길이다
송호 육교를 지나 송한길이라는 2차선 도로를 따라서 맥길을
이어가는데 도롯가에는 겨울 배추를 출하하기 위해서
배추를 상차 작업을 하고있던 배추밭 쥔장이 베낭을 메고가는
나를 보더니, 어르신!...목이 마를때는 배추속이 좋다고 하면서
노란 배추속만 있는 배추 한포기를 주는데, 처음에는 베낭 무게를
걱정해서 안 받으려다가 성의를 무시할 수가 없어서 배추 한포기를
받는데, 남도지방의 후한 인심을 느낀다
송호육교(13:13)
오늘 2번째 18번 신국도(공룡대로)를 통과한다
송호육교에서 바라본 공룡대로 진도 방향쪽의 모습
송호육교에서 바라본 공룡대로 해남 방향쪽의 모습
배추밭 쥔장에게 받은 배추를 베낭속에 넣고 길을 떠난다
송한길을 걸으면서 바라본 송호마을의 모습
갈림길(13:20)
원 마루금은 저 앞에 보이는 전봇대에서 민가로 올라서야
하는데 주말에 민가로 들어섰다가 봉변을 당할지 몰라서
미리 우측으로 꺽어져 저 앞에 보이는 43.4m봉으로 향한다
밭 가운데로 트랙트가 지나갔나?
마치 아카데미상을 수상하러 가는 주연배우를 위해
red carpet을 깔아논 느낌이 드는 밭길을 기분좋게
걸어간다
겨울 그리움 / 박정재
머언 하늘 쳐다보며
보고픈 친구 얼굴 그려보는
차가움이 짙어간 계절
나무들은
밤새워 흰 이블 둘러 쓰고
무슨 정담을 나누었을까
내 마음 한없이
보고픈 친구 찾아보지만
희미한 기억의 실타래
하얀 눈 속에 몸을 숨기고
추운 계절 동면하는가...
나타날까 기다림이
귀 쫑긋 새우는 사슴이어라
밭에서 바라본 송호마을
해남군 황산면에 속해있는 송호리(松湖里)는 본래 산일면 지역에 속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만년리, 병온리, 교동리 일부를 병합하여
해남군 황산면 송호리로 개설되었으며 송호마을, 병온마을, 만년마을 등의
자연마을로 이루어져 있는데, 지명의 유래는 우수영으로 통하는 첫 관문이
있어 들문이라 부르다가, 소나무와 물이 많아 송호(松湖)라 부르게 되었다.
『여지도서』[1757]에 봉문리(峯門里)라는 지명이 보이는데, 이것을 송호리로
보기도 하며, 또한 과거 문헌에는 산일면 거문리(擧門里)라는 기록이 보이는데,
거문(擧門)은 들문을 한자로 옮긴 것이다
밭에서 올라와서 민가 뒷쪽으로 이어지는 마루금에 복귀한다
43.4m봉을 바라보면서 밭 가장자리로 걸어간다
밭에서 올라오니 아이쿠야...이게 뭐꼬.
그렇다고 안 갈 내가 아니제...옆으로 살짝 돌아서 올라선다
갑자기 나타난 고속도로같은 임도
임도에서 우측으로 살짝 벗어나 있는 43.4m봉을 찾아 나선다
43.4m봉(13:30)
해남군 황산면 송호리에 있는 산으로 정상에는 산패도 없고, 남양주 금곡님과
독도는 우리땅이라는 닉으로 알려진 이경일님 시그널만 외롭게 정상을
지키고 있는 홀대받는 느낌이 드는 산이다.
국토지리정보원의 지도에는
43.4m봉이라고만 표시되어 있지만 카카오 지도에는 수장산이란
지명으로 표기가 되어있고, 맥 산꾼들의 지도에도 수장산이란
지명이 자주 등장하는데 수장산이란 지명의 우측 아래에 있는
수장골이란 지명에서 유래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43.4m봉에서 내려오니 갑자기 사라진 넓은 임도
한참을 버벅거리다가 내려오니 이런 곳이 나오더라.
우측으로 보이는 푸른 능선이 마루금인데
잡목의 저항이 심해도 너무 심하다
여태껏 원칙대로 마루금을 걸어왔는데
체력이 방전되기 시작하니 이제 자신감이
떨어지기에 요령한 한번 피어보기로 한다
안부(13:33)
임도 우측으로 올라가야 마루금인데 자신이 없다.
세상을 살아가는데는 3가지가 없다고 했는데
“공짜가 없고, 비밀이 없고, 정답이 없다 ”고 했는데
지맥길을 트랙따라 걷고 있지만, 어차피 트랙도
사람들이 만든거라서 엄밀히 따지자만 정답이
아닐수도 있지 않은가...
저 윗쪽으로 보이는 능선이 지맥 마루금이다.
“세상을 살아가는데는 어차피 정답이 없다 ”라는
비굴한 자기 합리화를 시키면서 송한길이라는
2차선 도로를 따라서 우회길을 걷고 있긴 하지만
마음은 그리 편치많은 않구나
만년저수지(13:39)
갈림길(13:42)
송한길이라는 2차선 도로를 버리고...
우측으로 올라선다
농업회사법인 남도의 꿈(13:44)
꽤나 큰 규모의 남도의 꿈이라는 축사를 빠져 나와서...
시멘트 농로를 따라서 마루금을 우회하면서 걸어간다
우측의 밭 뒷쪽으로 오리지널 마루금이 내려오고 있다
20분을 넘게 삥 돌아서 다시 마루금에 복귀를 한다
농로 삼거리(13:55)
우측으로는 수장산 아래에 있는 황산면 송호리 산골 마을로
내려가는 길이고 지맥길은 감나무밭을 끼고 직진으로 이어진다
과수원이 끝나면서 숲길로 접어드는데
선답자의 시그널 하나가 산꾼을 반긴다
근데 이게 뭐여!...잔뜩 긴장을 하고 숲으로 들어서는데
갑자기 나타나는 고속도로 같은 넓은 임도...깜놀이다
임도(14:00)
우측으로는 황산면 송호리 송호저수지로 내려가는 길이고
좌측으로는 황산면 호동리로 이어지는 시멘트 임도이다
호동리(虎洞里)는 본래 해남군 산일면 지역에 속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한아리, 우항리, 신흥리의 각 일부를 병합하여 해남군 황산면
호동리로 되었으며, 현재 호동마을, 한아마을, 신흥마을 등의 자연마을로
이루어져 있는데, 호동리란 지명은 범이 살았다 하여 범골 또는 호동이라 부르던
것에서 유래하였으며, 신흥, 한아(탁시)가 있는데, 신흥마을은 새로 된 마을이란 뜻이고 ,
염솟등 마을은 염솟등에 있는 마을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호동(虎洞)마을은 숲이 울창하고 산세가 좋아 호랑이가 많이 살았다.
그러나 인근 마을과는 달리 호랑이로 인한 피해가 없었다. 이에 범의
보호를 받고 있는 마을이라 하여 범골이라 하였으며 호동(虎洞)이라는
이름으로 불렸으며,혹은 마을 모습이 호랑이가 엎드려 있는 형태라 하여
복호곰이라 불렀는데, 여기서 호동이라는 지명으로 전해진다.
임도를 가로질러 올라서는데...
등로는 사라지고 엄청난 잡목의 태클을 이겨내면서 올라서니
백두사랑산악회의 빛바랜 흔적이 산꾼을 반기고 곧이어
민산이라 부르는 63.9m봉 정상에 도착한다
민산(63.9m:14:06)
해남군 황산면 송호리와 호동리의 경계에 있는 산으로 카카오의 지도에는
민산이라 표기가 되어 있지만 국토지리정보원의 지도에는 63.9m봉으로만
표기되어 있고, 워낙 잡목이 심해 정상의 형태조차 잘 안보인다
민산에서 우측 사면으로 비스듬히 내려간 다음에...
동백나무 군락지 사이로 이어지는 마루금을 내려가니 묘지가 나온다
묘지(14:10)
묘지 아래로 송호저수지가 보이고 그 뒷쪽으로 오늘
내가 지나온 명당봉이 아련히 보이는데, 범여의
두 다리가 고생을 많이 했구나
묘지를 지나 숲으로 들어선 다음에...
아!...미치겠다
잡목과의 치열한 사투를 벌이면서 내려서지만...
갈수록 빠져나갈 틈이 보이지 않는다,
천신만고 끝에 내려서니 희미한 안부가 나온다
안부(14:25)
안부에 도착하여 트랙을 확인하려고 스마트폰을 보려는데
호주머니에 있던 스마트폰이 보이지가 않으니 갑자기 머리속이
하해지는 느낌이다.
다시 왔던길을 되돌아 가는데
숲속에서 얌전하게 쥔을 기다리는 스마트폰
이 넘을 산 지가 5년밖에 안되었는데 나와 이별을
준비하려나...2주전에 청도(신산경표상: 열왕)지맥을
걷기위해 창녕에 갔다가 스마트폰을 잃어버려 개고생을
했는데, 그래도 오늘은 짧은 거리에 확인이 되어 천만다행이다
안부를 지나 동백나무 군락지를 빠져 나오니...
비스듬히 누운 밭이 나오고, 그 아랫쪽으로 송호저수지가 얼굴을 내민다
밭 윗쪽으로 가니, 18번 국도가 지나가는데 더 이상 갈수가 없다
좌측으로 내려간 다음에...
18번 국도로 내려선다
오늘 3번째 18번 국도(공룡대로)를 통과하는데 생각보다 교통량이
많지 않아서 차량의 흐름을 확인하고는 18번 국도를 무단횡단한다
진등고개(14:33)
해남군 황산면 송호리와 호동리의 경계에 있는 고개였는데 지금은 해남과
진도를 잇는 4차선의 18번 국도(공룡대로)가 지나가는 바람에 이곳이
고개라는 개념조차 보이지 않는데 카카오 지도에는 이곳을 진등고개라
표기가 되어 있지만 국토지리정보원의 지도에는 아무런 표식조차 없고
지명의 유래도 알 길이 없어서 많은 아쉬움이 남는다
진등고개라 불리는 18번 국도를 지나 산으로 들어선 다음에
수로를 따라서 송호리 방향으로 향하는데 이곳 역시 잡목의
저항이 엄청나게 심하다
잡목의 태클을 이겨내지 못하고 우측으로 향하니...
공룡대로를 바라보면서 시멘트로 된 길을 따라서 간다
배가 너무 고프다.
철계단 아래에서 베낭을 내려놓고 초코파이 하나에다
두유로 허기를 면하고 잠깐의 휴식을 취한 후에
철계단으로 올라간다
해남 사람들의 산에 대한 무관심...알아 줄만하다
잡목숲을 이리저리 헤매다가 지도상에 표기된
65.8m봉에 도착한다
65.8m봉(14:50)
엄연히 지맥길 중심에 있는 족보있는 봉우리이지만
찾는 산꾼이없는지 그 흔해빠진 지맥꾼 시그널 하나도
보이지 않는구나
좌측으로 꺽어져 내려가는데 왜 맥꾼들이 이곳을
오르지 않고 패싱을 하는지 알 것만 같다.
얼마나 등로가 험하던지 아주 짧은 거리를 15분이란
시간이 걸리면서 내려서니 포장도로가 나온다
벼개고개(25m:15:05)
해남군 황산면 호동리와 우항리의 경계에 있는 고개로 좌측의
호동리 방향으로는 18번 국도가 지나가는 관두교가 있고
우측의 우항리 방향으로 내려가면 구 18번 국도(명량로)가
나오고 황산중학교가 있는 곳인데, 카카오의 지도에는 벼개고개라고
표기가 되어 있지만 국토지리정보원의 지도에는 아무런 표기가
없는 무명고개이다
도롯가 옆에는 반바지님께서 벼개고개라는 코팅지를 걸어놨다
오늘도 지난주와 같이 잡목의 엄청난 저항에 직면하여 예상 시간보다
산행 시간이 훨씬 많이 소요됐고, 그에 비례하여 체력소모가 많았다
해남에서 출발하는 5시 버스를 타려면 여기서 산행을 종료해야
할 듯 싶어서 아쉽지만 이곳에서 스틱을 접으면서 황산면의 택시를
호출(010-4353-9966)하고 우항리 방향으로 향한다
황산중앙교회 앞(15:10)
택시를 호출한 지 5분만에 택시는 도착하고 택시를 타고 해남터미널로 향한다
아침에 버스표도 예매해놨고, 시간적으로 여유가 있있어 터미널 맞은편에
있는 분식집에 들려서 잔치국수 한그릇으로 민생고를 해결하고 화장실에
들려서 간단하게 씻고 해남 터미널로 향한다
해남종합버스터미널(16:15)
버스가 출발하려면 45분이란 시간적 여유가 있어서
대합실 의자에 눈을 감았다 떳다를 하면서 멍때리기를 한다
해남터미널 버스 시간표
해남발 → 서울행 버스표
터미널에서 지루한 시간을 보내다가 서울가는 버스에 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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