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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범여(梵如)의 世上사는 이야기
화원지맥(終)

화원지맥 제8구간 - 사동고개(후포재)에서 목포구등대까지

by 범여(梵如) 2025. 3. 19.

☞산행일자:  2025년 03월 09일

☞산행날씨: 맑은날씨에 미세먼지

☞산행거리: 도상거리 13.4km / 7시간 45분소요

☞참석인원: 나홀로 산행

☞산행코스: 사동고개(후포재)-무명봉-가마고개-무명봉-안부-220m봉-운거산

                NO7송전탑-295m봉-NO8송전탑-안부-NO9송전탑-NO10송전탑

                311.4m봉-325.7m봉-NO11송전탑-무명봉-너럭바위-NO12송전탑

                249.8m봉-안부-244m봉-안부-진등산-안부-216.2m봉-안부

               금굴산-무명봉-201.5m봉-안부-무명봉-106.1m봉-조망바위

               김해김공&장흥고씨 부부묘-당포재-안부-매봉산 갈림길-매봉산

               안부-무명봉-안부-무명봉-안부-조망바위- 203.8m봉-매계잔등

              무명봉-안부-246.3m봉-월내고개-188.6m봉-깃대봉

              조망바위-무명봉-무명봉-해남 구 목포구등대

☞소  재 지: 전라남도 해남군 화원면 

 

여태껏 수많은 지맥길을 걸으면서도 이렇게 개고생한 지맥은 처음일 것이다.

잡목에 하도 시달린 탓인지 생각도 하기 싫지만, 한편으로 끝낸다고하니

왠지 모르게 시원 섭섭함이 가슴에 와닿는다...그 힘든 화원지맥길을

끝내기 위해 자정이 다 되어가는 늦은 시간에 집을 나서서 센트럴시티

터미널(호남) 로 향한다.

 

오늘 산행구간의 지도

서울발 → 목포행 버스표

자정 5분전에 마지막 고속버스를 타고 목포로 향한다.

막차는 프리미엄 버스라 요금은 상당히 비씨지만, 비싼만큼, 참으로

편하다...수면을 취하기에는 최적이다...얼마나 잠을 맛있게 잤는지,

버스가 목포터미널에 도착한 다음에야 잠에서 깨어난다.

목포터미널(03:20)

목포터미널에 도착하니 03시 20분...터미널 대합실 문이 열리려면

아직도 40분이나 남았다...터미널 주변을 서성거리면서 40분을

기다리는데, 2주전과는 달리 날씨가 그리 춥지 않아서 견딜만하다.

근데 40분이 왜이리 길게만 느껴지는지... 정확하게 4시에 경비원이

문을 연다

목포발 → 우수영행 버스표

우수영 버스표를 예매하고 2시간 30분이라는 긴 시간동안

대합실 의자에 앉아 멍때리기를 한 다음에 06시 30분에

진도로 가는 우수영 버스에 오른다

2시간 30분동안 溫氣하곤 전혀없는 터미널 대합실에 앉아 있었던

탓인지 몸이 많이 움추려들면서 춥다...버스에 오르니 고맙게도

기사분이 오랫동안 시동을 걸어놨는지 버스안은 따뜻하다.

버스 맨 앞좌석에 앉아 기사분에게 우수영에게 좀 내려달라고

하고는 잠깐 눈을 깜았는데, 버스안의 따뜻함 탓인지 잠에 푹 빠졌다.

기사분이 깨우는 바람에 일어나 우수영 버스정류장에 도착한다

우수영터미널(07:20)

우수영(右水營)은 해남군 문내면(門內面)에 있는 마을로  ‘전라우도 수군절제사

(全羅右道 水軍節制使)가 주재하는 병영’이 있는 데서 붙여진 이름으로 본래 무안의

대굴포(大掘浦)에 세워졌던 것을 세종 22년에 이곳으로 옮겨왔으며, 세조 10년에

절제사가 주둔하는 승격의 국면을 맞게 되었으며,

'임진왜란 때 명량대첩(鳴梁大捷:1597)을 거둔 곳으로, 충무공의 승전을 기념하는

승첩비(勝捷碑)가 남아 있다.

 

2주전에 이용했던 택시기사에게 전화를 하니 자기는 지금 여행중이니 다른

사람을 보내주겠다고 하는데, 10분이 지난후에 택시는 도착하고, 택시를

타고 오늘 산행 들머리인 사동고개(후포재)로 향한다

사동고개(寺洞峙:후포재:145m:07:40)

해남군 화원면 후산리 송촌마을과 금평리 사동마을을 잇는 고개로 구절양장의

2차선 도로가 지나가는 곳으로 고개 정상에는 흉물스런 생태통로가 지나간다

 

사동고개, 후포재, 절고개라는 여러 지명으로 불리는데, 사동고개, 절고개라는

지명은  금평리에 있는 대흥사의 말사인 서동사가 있어서 사동(寺洞)마을이라 유래된

지명에서 따온 듯 하며, 후포재라는 지명은  좌측에 있는 화원면 후산리에 있는

자연마을 중 한곳인 후포마을에 있는 고개라서 붙여진 이름으로 후포(浦)

후산리에서 으뜸이 되는 마을로 뒤에 포(浦)가 있다하여 이름 붙여진 듯 하다

산행을 시작하다(07:50)

대한민국에서 가장 졸작(拙作)인 듯한 흉물스런 생태통로를

바라보면서 산행을 시작하는데, 지대가 높아서 그런지

후산리쪽에서 불어오는 바람으로 인해 살짝 추운 느낌이다

들머리에서 만난 선답자들의 흔적을 만나고...

초반부터 시작되는 급경사의 오르막, 몸뚱아리가 예열도 전에

이런 가풀막을 만나면, 숨이 끊어질것만 같은 힘든 고통...

그래도 극복해야 할 길이기에 묵묵히 올라간다 

능선에 올라서니 산너머로 일출은 시작되고...

허구한날 주말만 되면 비 아니면 짙은 흐림이라

얼마만에 보는 일출이던가...

무명봉(07:53)

사동고개에서 빡세게 올라오느라고 고생했다면서

무명봉에서 가마고개로 내려가는 길을 편하게 걸으라고

배려를 해주는데, 그저 고맙기만 하다...늘 나는 산에

신세만 지니, 뭘로 은혜를 갚아야 하나...

오늘이 화원지맥 마지막 길.

올때마다 개고생을 했고, 바짝 긴장을 하면서 걸었는데,

오늘도 바짝 긴장을 하고 산길로 들어섰는데,그 동안 개고생을

시켜서 미안했던지, 초반이긴 해도 생각보다 등로는 좋다.

자생적으로 자라고 있는 황칠나무와 다른 동료(나무)들을

괴롭히면서 살고있는 송악이 동료들의 몸뚱아리를 칭칭

감은 체, 푸르름을 유지하고 있는 능선길을 걷는다.

완만한 내리막길로 내려서니 움푹한 안부가

나오는데 지도상에 표기된 가마고개이다.

 

내리막 우측 아래의 나뭇가지 사이로 전통 기와지붕의 전각들이

여러채가 보이는데 대흥사의 말사인 서동사라는 절집인 듯 하다

가마고개(加馬谷:175m:07:53)

해남군 화원면 금평리 사동마을에서 후산리 후산저수지가 있는

가마마을로 이어지는 고개로, 예전에는 사동마을 윗쪽에 있는

古刹 서동사에서 가마골로 다닐때 민초들이 넘었던 고개였으나

지금은 바로옆에 사동고개(후포재)에 생긴 도로 때문에

고개의 역할은 잊은듯 잡목은 무성하나 등로는 희미하게 남아있다.

 

가마골(加馬谷)라는 뜻은 큰골짜기를 뜻하는  '크다'라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고어(古語)로 '감'인데, '감'은 감, 곰, 검,금 등의 여러 이름으로 변화되었으며,

큰골짜기=감+골 감아골 →가마골  →가막골 까막골 등으로 變音이

되었었는데, 아마 이 고개도 큰골짜기라 가마고개라 부른건 아닌지 모르겠다

가마고개를 지나면서 완만하게 이어지는 오르막 능선.

2주전에 北風寒雪에 개고생을 시키면서 범여를 괴롭혔던게

미안했던지 오늘은 맑은 날씨에 바람한 점 없어서 산행하기에는

더 없이 좋다...아쉽다면 미세먼지가 기저환자인 범여를

괴롭히긴 하지만 그런 고통쯤이야 감내하고 걸어야지 우짜겠노...

중국 원나라 말기부터 명나라 초기에 걸쳐 중생을 크게 교화했던 선승인

묘협(妙叶)스님의 저서인 『보왕삼매염불직지』총22편 중 제17편에 실린

십대애행(十大碍行:열 가지 큰 장애가 되는 행)에 나오는 구절을 가려 뽑아

엮은 보왕삼매론(寶王三昧論)중 제1에 이런 구절이 있제.

 

念身不求無病 身無病則貪欲乃生

(염신불구무병 신구병즉탐욕역생)

 

몸에 병이 없기를 바라지마라

몸에 병이 없으면 탐욕이 생기기 쉽나니

그래서 성인이 말씀하시되 

병고로서 양약을 삼으라 하셨느니라.

 

* 삼매(三昧)란 불교의 수행 가운데 하나로, 마음을 한 곳에 집중시켜 내적,

  또는 외적인 어떤 자극에도 동요됨이 없는 바르고 맑은 정신상태를 말하는데

  이 상태에 이르면 인식주관과 인식객관은 하나인 상태에 도달 하게 된다는

  수행법이다.

무명봉(08:02)

안부(08:04)

부러지고 넘어지고 산길은 늘 무질서하게 보이지만

무질서속에서도 각자의 룰을 지키면서 살아가는 걸

보면, 참으로 신기하다...그러기에 힘들다 힘들다 하면서도

산에만 들어오면 범여의 몸과 마음은 평온을 유지한다

220m봉(08:18)

운거산의 전위봉인 220m봉에 도착하여 숨 한번 크게 내쉬고 

운거산으로 향하는 발걸음을 옮긴다...아직 봄이 시작도

안되었는데, 이곳 남도지방은 미세먼지가 극성을 부리기 시작한다

안부를 지나서 능선으로 올라서니... 

운거산 정상에 있는 무인산불 감시카메라가 범여를 째려보며

一擧手一投足을 감시하는 듯 하고, 무인산불 감시카메라를 운영하기

위해 설치한 컨테이너 박스와 태양광 패널이 운거산 정상을 흉물스럽게

만들어 버렸다.

운거산(雲居山:318.0m:08:25)

전남 해남군 화원면 금평리·영호리·후산리의 경계에 있는 산 으로 

지명의 유래는 "항상 산이 구름 속에 잠겨 있다" 하여 붙여졌고

땅끝에서 뻗어 내린 화원지맥에 속하고, 청룡천과 후산천의 발원지이다.

 

산자락에는 수백 년 묵은 울창한 비자나무 숲이 장관을 이루는데

운거산 남사면에 있는 해남 서동사 동백나무 · 비자나무 숲은

2011년 8월 26일  천연기념물 제245호로 지정되었다.

 

산자락에는 통일신라 시기에 창건하였다는 서동사(瑞洞寺)가 있는데

전통사찰로 지정된 서동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22교구 본사 대흥사의

말사로 운거산 기슭에 있으며, 자세한 연혁은 알려져 있지 않으나

1980년대초 현 대웅전의 지붕 보수시 발견된 「서동사중수상량문」[1870]과

「서동사중수서」[1870] 현판 기록을 통해 개략적인 연혁을 파악할 수 있다.

 

해남 서동사 (海南瑞洞寺) 목조석가여래삼불좌상(木造釋迦如來三佛坐像)은

서동사 대웅전에 있는 조선시대의 목조 불상으로  2011년 6월 21일 보물

제1715호로 지정되었다.

앙증맞은 암릉 사이로 내려서니 남도지방 산에서만 만날 수 있는

마삭줄이 바위를 감싸고 있고, 곧이어 송전탑을 만난다

NO7송전탑(08:28)

운거산 아래에 자리잡고 있는 후산리(厚山里)와 그 너머로 보이는

신안앞 바다는 지근거리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미세먼지로 인하여

모든게 흐릿하기만 하다 

 

해남군 화원면에 속해있는  후산리(厚山里)는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장동면의

온득리(溫得里), 후상리(厚上里), 후하리(厚下里), 가마리(加馬里), 질마리(叱馬里)를

통합하여 해남군 화원면 후산리로 개설되었다.

 

이 중 온득리, 후상리, 후하리는 1789년에 편찬된 『호구총수(戶口總數)』에 기록된

장서면의 온득리, 상후포리, 하후포리와 같은 마을이며, 이들 마을은 1912년에 편찬된

『구한국지방행정구역명칭일람』에 장동면에 속한 것으로 보아 어떤 시점에 장서면에서

장동면으로 편입되었는데, 그 과정에서 마을 이름도 후상리와 후하리로 바꾼 것으로 보인다.

온득리는 1925년 이후에 온덕마을로 바뀌었다.

주민 대부분이 농업에 종사하고 있으며, 주 소득원은 쌀이고, 특작물은 배추, 양파를 재배하고 있다.

축산업에 종사하는 농가도 일부 있으며,  특작물은 무화과와 양다래, 배를 생산하고 있다.

농업용수는 가마저수지, 후산저수지, 후산제, 정골저수지, 북중골저수지의 물을 이용하고 있다.

잠시후에 걸어야 할 화원지맥 능선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지지만

이곳 역시 미세먼지를 뒤집어 쓴 채, 범여를 기다리는데

그 능선을 쳐다보는 범여의 맘은 편치가 않구나...기저환자인

범여와 同病相憐이라 할까.

운거산에서 내려서는 길은 잔돌로 이루어진 너덜길이다.

등로는 넓으나 걷기는 불편한데, 등로 우측으로는 커다란

채석장이 있으나 빽빽한 잡목으로 인해 똑닥이 카메라로는

그림을 잡기가 불편하다

295m봉(08:33)

NO8송전탑(08:35)

NO8송전탑이 있는 무명봉에서 좌측으로 살짝 돌아서 내려서니

지독한 잡목지대이기는 하나, 고맙게도 송전탑을 건설하면서

만든듯한 임도를 따라서 마루금이 이어지니, 지나온 화원지맥

산길과는 달리 참으로 편하게 길을 걸어간다

얼마나 내려왔을까, 산죽들이 보이는 등로에서 지나온 운거산을

뒤돌아 보는데, 나뭇가지 사이로 운거산 동쪽의 절반정도 파먹은

채석장의 몰골이 흉물스럽게 보이는데, 언젠가는 운거산 정상이

사라지지 않을까 걱정이다...그때에 후답자들의 산행기에는

운거산의 기록은 어떻게 적을까?

안부(08:43)

안부를 지나서 조금씩 고도를 높이면서 합수점을 향해서 간다.

NO9송전탑(08:52)

여유로운 발걸음으로 천천히 오르막길을 향하는데 갑자기

부스럭거리는 소리에 놀라서 뒤돌아보니 맥꾼 세분이서

올라오시는데 한눈에 봐도 force가 예사롭지 않은 산꾼인듯 보인다

어마무시무시한 분들과의 遭遇

화원지맥을 걸으면서 처음으로 산에서 산꾼을 만나는데

창원에서 오셨다는 J3멤버란다...첫 눈에 봐도 보통분은 아닌듯 싶다.

장거리 산행을 전문적으로 하시는 분들이신데, 왠만한 지맥길은

one shot으로 한방에 끝내시는 분들이신데 나같은 저질 체력에

느림보 산꾼으로서는 이해불가이다...이런 분들을 산에서 만나니

참으로 영광이다

군복 차림에다 한 분은 스틱도 안잡고, 손에는 잡목을 제거하기

위해서 전지가위를 들고 계시면서, 서로의 통성명을 하고 인증샷

까지 남긴다

잠깐의 만남을 끝내고 그 분들을 먼저 보내고 난 천천히

悠悠自適 걸음으로 高手들을 뒤따라서 맥길을 이어간다

잠깐 사이에 J3멤버들은 숲속으로 사라지는 저 분들은

前生에 산신령이 아니면 사자를 타고 다녔다는  文殊菩薩의

화현(化現)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자꾸만 든다

 

* 문수보살(文殊菩薩)은 불교에서 많은 복덕과 반야지혜를 상징하는 보살로

  문수(文殊)는 문수사리(文殊師利)의 준말로 훌륭한 복덕을 지녔다는 의미이다.

 

 석가모니 입멸후에 인도에서 태어나 반야의 도리를 선양한 이로서 항상 반야지혜의

 상징으로 표현되어 왔으며, 보현보살과 더불어 비로자나불의 양 협시보살로 등장하거나

 대웅전 좌측에 봉안하는데, 오른손에는 지혜의 칼을, 왼손에는 푸른 연꽃을 들고 있다.

그러나 때때로 위엄과 용맹을 상징하는 사자를 타고 있기도 하고, 경권(經卷)을 손에 든

모습으로 묘사되는 경우도 많다. 

 

 643년 신라의 고승 자장율사가 황룡사에 9층탑을 세우고 오대산 중대에 적멸보궁을 건립하여

 이곳을 문수신앙의 중심도량으로 만들면서 문수신앙이 우리나라에 정착했다.

남녁지방이긴해도 아직까지 산길에는 봄소식은 없고,

황량한 나뭇가지들도 겨울잠에서 깨어날 기미가 없다

잠시후에 오를 311.4m봉을 바라보면서 안부로

내려가는 길에서 NO10송전탑을 만난다

NO10송전탑(09:03)

송전탑을 지나니 안부가 나오고 안부에서 311.4m봉을 패스하고

우측 사면으로 이어지는 뚜렸한 등로가 있으나 직진으로 올라간다

311.4m봉(09:08)

311.4m봉에서 내려와서 우측 사면에서 올라오는

뚜렸한 등로와 합류하면서 맥길을 이어간다

조금전에 지나가신 J3멤버들이 전지가위로 자른 나무가지의

흔적들을 바라보면서 호화준족의 저 분들과는 달리, 범여는

山川景槪를 두루 살피면서 느릿느릿 황소걸음으로 맥길을

이어간다

호젓하게 어느 누구의 간섭도 없이 걷다가 보니...

어느덧 1등삼각점이 정상을 지키고 있는 325.7m봉에 도착한다.

325.7m봉(09:16)

준.희쌤의 산패와 지도상의 고도차이는 20cm정도 난다

325.7m봉 정상 1등 삼각점(화원 11 / 1990복구)

우리나라 산 전체에 189개밖에 없다는 1등 삼각점이

해남땅을 가로지르는 화원지맥 능선에 1등 삼각점이

2개나 있다... 하나는 해남읍의 진산인 금강산에 인접한

482.8m봉에 1등 삼각점(△해남11 / 1990복구)이 있으니

대단한 맥길인 듯 하다

325.7m봉의 1등 삼각점 표지판(화원11/ 1990복구)

위도34도42분18.76초,  경도126도18분58.00초

 

국립지리원에서 관리하고 있는 삼각점은 1910년부터 1918년에 일본 조선총독부

임시토지조사국에서 토지수탈을 위한 지적도 제작과 기간산업 건설 및 군사적

이용을 위한 1:50,000지형도제작을 목적으로 우리나라 전역에 일정한 간격으로

삼각점을 설치하였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한국전쟁으로 인하여 약 72%이상이

파괴 또는 망실이 되었고, 미 군정하에서 현 국립지리원과 미군이 전후복구시설

등을 위하여 파손 및 망실된 기준점복구 측량사업을 착수하였으나 국가재건이

시대적 상황으로서 일관성이 결여된 임시적인 미봉책에 불과하였다.

 

1960년 이후부터 1970년초까지 현 국립지리원에서 지도제작, 국토건설 등을

위하여 파손 및 망실된 기준점에 대한 복구측량을 완료하였고 그 이후, 사회적 및

경제적 환경변화에 의하여 높은 정확도의 삼각점 성과가 요구됨에 따라

국립지리원에서는 1975년부터 정밀측지망구축 사업을 착수하여 정비를 완료하였다.

 

삼각점은 2.5km~5km의 간격으로 대부분 산 봉우리에 설치되여 있으며.

지명은(?) 1:50.000 지도의 도엽명인데, 지명(?) 옆에 슷자는 삼각점의

등급으로. 11부터 19까지는 1등 삼각점이고. 21부터 29까지는 2등 삼각점이고.
301부터 399번까지는 3등 삼각점이고. 401번부터 499번까지는 4등삼각점이다.


숫자는 1:500.000지형도의 1도엽  단위로. 1등 삼각점은 대삼각본점이라는

명칭으로 우리나라(남한)에 189개, 2등 삼각점은 대삼각보점으로 1.102개.
3등 삼각점은 소삼각1등점으로 3.045개. 4등 삼각점은 소삼각2등점으로

11.753가 설치되여 있다.


1995 재설은 1995년에 재설치 하였다는 뜻이고. +는 방위를 나타내며

시계방향으로 북=>동=>남=>서.를  가리키며, 삼각점은 정방향으로 볼때

윗쪽이 북쪽이다.


삼각점에는  재설.복구.이설. 이란 글이 있는데. 재설은 망가진 삼각점을

재설치 했다는 뜻이고. 복구는 망가진 삼각점을 재복구 했다는 뜻이며.
이설은 잘못 설치된 다른 곳에서 이곳으로 이전해서 설치했다는 뜻이다.

325.7m봉을 내려서니 초반과는 달리 등로가 조금씩

까칠해지는 느낌이나 그리 걱정할 정도는 아니다

325.7m봉을 살짝 우회해서 내려오니 J3클럽 시그널이

반겨주는데 조금전에 지나가신 분들의 흔적인가?

NO11송전탑(09:19)

오늘도 길에서 묻고, 길을 찾아 간다.

무명봉(09:22)

등로는 슬슬 지맥길의 本色을 드러내기 시작하지만

힘든 화원지맥의 지나온 구간의 학습효과 탓이라 그런지

그리 겁은 나지 않는다

찢기고 잘리는 고통속에서 잡목들에 둘려 싸여

꿋꿋하게 삶을 유지하는 저 소나무...그려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좋다고 하지 않았던가...

너럭바위(09:25)

너럭바위에 도착하니 조망이 뛰어난 곳이기는 하지만 미세먼지로

인해 모든 사물들이 흐릿하게 보이니 많이 아쉽기만 하다

나뭇가지 아래로 화원면 영호리의 마을이 보이고, 그 뒷쪽으로는

여인의 유두처럼 봉긋하게 생긴 지령산(294m)과 목포 앞바다가

보이는데 항공기 추락사고의 아픔을 간직하고 있는 산이다

 

1993년 7월에 김포공항을 출발하여 목포공항을 향하던 B737-500 항공기가

해남 화원반도 지령산 인근에 추락하여 66명이 숨지고, 44명의 부상자가 

발생한 사고가 있었는데, 이 사고는 아시아나항공의 최초이자, 최대 인명

피해 사고로 기록된다

 

해남군 화원면 마산리와 영호리에 걸쳐 있는 지령산(294m)에

대한 지명유래는 찾을수 없으나, 마산리를 소개하는 자료에 

지령산이 언급되어 있다.

 

마산리는 1914년 행정구역 개편시 마천(馬川)과 월산(月山)의

첫자와 끝자를 취하여 지었다. 마천마을은 마을 지형이 말의 형국이고

마을 앞으로 하천이 서쪽에서 동쪽으로 흘러 마천(馬川)이라 불렀다고 한다.

월산마을은 마을 앞산 지령산의 맥이 동북쪽을 가리고 있어 등산(登山)이라고

하였는데 앞산에 떠오르는 달이 너무 아름다워 월산(月山)이라 불렀다고 한다.

너럭바위 좌측으로는 화원면 후산리 가마마을이 보이고

그 너머로는 목포항을 출발하여 도서지방으로 향하는

여객선들이 모습들이 보인다

잠시후에 걸어야 할 화원지맥 마루금을

바라보면서 너럭바위 아래로 내려선다

너덜길 흉내(?)를 내고 있는 등로를 따라서 가니

잠시후에 NO12송전탑을 만난다

NO12송전탑(09:28)

간간히 만나는 앞서간 J3 산꾼들의 흔적

산죽길이 시작되고...

이곳에서 지맥길은 반원형을 그리며 좌측으로 향하는데

등로가 잘 안보이는 우측으로는 지령산으로 향하는 능선으로

나뭇가지 사이로 흐릿하게 지령산이 보인다

249.8m봉(09:35)

지령산 갈림봉격인 봉우리에 준.희 쌤의 산패가 걸려있다.

이곳은 어느 지도에도 아무런 표식이 없는데, 조금은

의아스럽지만, 쌤께서 무슨 의도인지 모르겠다

잠시후에 오를 금굴산을 바라보면서 안부로 내려선다

안부(09:37)

244m봉(09:40)

지도상에는 표기조차 안되어 있는 244m의 무명봉에서 내리막으로 향한다

아무 생각없이 무심코 걷다가 알바라도 할까봐서

선답자분께서 친절하게 시그널로 호의를 베풀어

주시니 너무나도 고맙습니다

안부(09:44)

시누대 사이로 이어지는 지맥길.

迷路처럼 이어지는 지맥길을 보물찾기 하듯

시누대를 헤치면서 걸어가다 얼굴이 할키고

손등에 피를 흘리면서 걷는데도 산이란 늘 범여에겐

기쁨과 희망을 주니 참으로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진등산(227.4m:10:02)

해남군 화원면 후산리와 월호리의 경계에 있는 산으로

산이라기보다는 그저 밋밋한 능선처럼 보이는 곳에

시누대가 군락을 이루고 있으며, 반바지님께서 코팅지로

진등산이라 해놨고, 오래된 듯한 신선님의 229m라는 산패도 보인다

 

카카오 지도에는 진등산이라고 표기가 되어 있지만, 산꾼들의 산행기를

쓸때 인용하는 산행지도에는 229m라고만 표기있고, 국립지리원의 지도에는

그냥 227.4m봉이 표기가 되어 있다...진등산에 대한 유래를 찾아보지만

해남군의 그 어느 자료에도 진등산에 대한 기록은 없으나, 해남군의

산에 대한 무지와 무관심에 그리 놀랄 일은 아니다

진등산을 지나면서 등로가 살짝 거칠어지다가

이내 등로가 좋아지면서 안부로 내려선다

안부(10:06)

직진으로 향하는 무명봉을 패스하고 사면으로 이어지는

편안한 등로도 보이는데 트랙을 확인하니 사면길이

마루금인데, 갑자기 양넘 지갑줏은 기분이랄까.

마음속에서 진심을 드러내는 산의 속마음을 

느끼면서 걸어가는 남도의 산길...오늘 이곳을

지나가면 내 생전에 다시 올 일이 없을 것 같아서

가슴속에 새기면서 천천히 걸어간다

산속에서 / 나희덕

 

 

길을 잃어 보지 않은 사람은 모르리라

터덜거리며 걸어간 길 끝에

멀리서 밝혀져 오는 불빛의 따스함을

막무가내의 어둠 속에서

누군가 맞잡을 손이

인간에 대한 얼마나 새로운 발견인지

산속에서 밤을 맞아본 사람은 알리라

그 산에 갇힌 작은 지붕들이

 

거대한 산줄기보다

얼마나 큰 힘으로 어깨를 감싸주는지

먼 곳의 불빛은

나그네를 쉬게 하는 것이 아니라

계속 걸어갈 수 있게 해 준다는 것을

뚜렸한 등로에서 살짝 벗어나서...

앞서간 분들의 전지가위에 목이 달아난

황칠나무 가지를 바라보면서 216.2m봉

정상에 도착한다

216.2m봉(10:12)

흐릿한 등로로 이어지는 맥길에 선답자의 흔적들이 뚜렸하다.

난 아직도 내 타이틀을 걸 정도의 산꾼이 아니기도 하거니와

셩격상 나서기를 좋아하는 스타일도 아니라서 남의 시그널을

바라보면서 대리만족으로 산길을 걷는다

안부(10:15)

안부를 지나 금굴산을 향한 완만한 오르막길이 시작된다

직진 능선이 아닌 우측의 뚜렸한 능선으로 이어지는

등로 주위에는 아침부터 자주 만났던 황칠나무가 아닌

동백나무 숲사이로 이어지는 마루금을 걷는데, 오랫만에

범여의 몸뚱아리가 남도땅의 산길에서 호사를 누린다

우측 능선 아래에는 화원면 월호리 마을들이

나뭇가지 사이로 흐릿하게 보인다

 

해남군 화원면에 속해있는 월호리(月湖里)는 동남으로 금평리와 후산리를

연결하는 운거산이 걸쳐 있으며, 동으로 구림과 마산리 경계에 해발 205m의

천관산이 있으며, 농업이 주를 이루는 지역이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월하리, 화동리, 당호리, 억수리 일부를 병합하였는데

이때 월하와 당호의 이름을 각각 한 글자씩 따서 월호리라 이름 지었다.

 

자연마을은 월하(다라리), 수동, 당포가 있는데, 월하(다라리)는 월호리에서

으뜸가는 마을이고, 수동마을에는 해남윤씨 동족마을이 형성되어 있다.

당포는 불당터가 있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산길을 걸으면서 가장 중요한 德目은 버리고 비우는

無心이 아닐까...욕심 부리지 않고, 차근차근 걷다보니

금굴산 정상에 도착한다

금굴산(金掘山:223.1m:10:28)

해남군 화원면 후산리와 월호리의 경계에 있는 산으로

정상에는 준.희쌤의 산패와 선답자들의 시그널들이

마치 10여년전에 부탄으로 성지순례 갔을때 만났던

탁상곰파라는 절집을 가면서 만났던 다루초(오색깃발)를 연상케 한다.

 

 이 멋진 지명을 가진 금굴산에 대해 내려오는 지명유래도

당연히 있을법한데 해남군의 어느 자료에도 이 산에 대한

유래를 찾을 길이 없으니 참으로 많이 아쉽다

금굴산 정상에서 바위를 좌측에 두고 우측으로 내려간다

무명봉(10:32)

무명봉에서 맥길은 우측의 내리막으로 향하는데...

갑자기 등로는 사라지면서 지맥길의 本色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잠시후에 가야할 매봉산이 보이고 그 아래에 

채석장이 있는지 누런 속살을 드러내 놓고 있다

암릉 아래로 이어지는 급경사의 내리막길

등로가 상당히 難解하다

한참을 버벅거리면서 내려서니...

선답자의 시그널 하나가 범여가 걷는 산길에 길잡이 역할을 하는구나.

감사합니다... 그리고 세세생생 복받을깁니다

201.5m봉(10:42)

지도에는 기록조차 없는 201.5m봉의 무명봉을

지나면서 맥길은 사면길로 이어진다

안부(10:45)

금굴산에서 당포재로 이어지는 맥길은 계속해서 낮은 자세로

이어지는데, 노간주 나무를 비롯한 잡목들이 조금씩 태클을

걸어오지만 이 정도면 언제든지 되치기가 가능하니 그리

큰 장애물은 아닌듯 싶다

내 말을 산은 금방 알아 차렸나보다, 금새 등로는 좋아진다

무명봉(10:47)

오늘이 화원지맥길의 마지막 졸업구간인데, 여태껏 꼬라지를 

부리면서 범여를 괴롭혔던 남도땅 해남지방의 날씨도 일말의

양심은 있었던지, 미세먼지가 심하긴 해도, 날씨도 맑고, 바람도

없이, 춥지 않으니 얼마나 고마운 지 모르겠다.

살짝 오르막길의 양지바른 곳에서 수줍은 소녀처럼 진달래가 

꽃망울을 터트릴 준비를 하고 있는데, 어찌나 반가운지...

 

엊그제만 같아도 한겨울처럼 추웠는데...어둠이 짙으면 새벽이 온다고

했듯이 아무리 추운 겨울이 계속된다 하더라도 봄은 오기 마련이다

이것은 만고의 진리 불변이 아니던가... 

완만한 능선으로 올라선 다음에 맥길은 서쪽 능선으로 이어진다

106.1m봉(10:52)

국립지리정보원의 지도에 기록된 족보있는 봉우리이건만

너무 낮은 곳이라 그랬나?...준.희쌤에게도 간택받지(?)

못했는지 산패가 걸려있지 않았고, 무심한 맥꾼들도 대다수

그냥 지나쳤는지 시그널이 보이지 않는데, 딱하나 무영객이란

분이 시그널에다 106.1m라고 적어놨다...나라도 하나 걸어줄 수

있으면 좋으련만, 난 아시다시피, 내 흔적이 담긴 시그널을 걸어 둘

능력이 되지않는 산꾼이라 미안한 맘만 표시하고 당포재로 향한다

106.1m봉을 지나자마자 주위 조망을 볼수있는 조망바위가 나온다

조망바위(10:52)

조망바위에서 바라보니 화원면 후산리의 후산선착장과 서재골 마을이

보이고, 바다 뒷쪽으로 보여야 할 신안군 안좌도는 가까운 거리임에도

미세먼지 탓인지 코빼기도 안 보인다.

잠시후에 오를 매봉산의 남쪽 능선은 인간의 오만과

탐욕의 산물인 채석장은 흉물스러운 모습으로 맨살을

드러내놓고 있다...인간들은 늘 자연의 혜택속에 살면서도

왜 저리 자연을 괴롭히면서 표독스럽게 사는지 모르겠다

조망바위 동쪽으로는 해남군 화원면 월호리(月湖里) 당포마을이 보인다.

월호리(月湖里)는  1914년 행정구역 개편 시 월하리(月下里)의 첫 글자와

당호리(唐湖里)의 가운데 글자를 취하여 지은 이름으로, 본래 해남군 장동면

지역에 속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장동면의 월하리, 화동리,

당호리, 그리고 억수리 일부를 합하여 해남군 화원면 월호리로 개설되었다.

현재 당포마을, 월하마을, 수동마을 등의 자연마을로 이루어져 있다.

서쪽으로 향하는 마루금은 북쪽으로 꺽어져 매봉산을 바라보며

당포재로 내려가는데, 갑자기 동백나무 울타리 안쪽에 있는

김해김공 묘지로 내려선다

김해김공&장흥고씨 부부묘(10:57)

묘지를 가로질러 내려서니 낮은 옹벽이 있는 당포재로 내려선다

당포재(唐浦峙:55m:10:58)

해남군 화원면 후산리 온덕마을에서 월호리 당포마을로 넘어가는 고개로

도로명 주소가 관광로인 2차선 도로가 지나가는 곳인데 지명의 유래는

우측 아래에 있는 당포마을에서 차용한 듯하다

 

당포마을은 임진왜란 때 인동장씨 장륙(張淕)이 내려와 마을을 이루었다고

전하는데, 당포리(唐浦里)는 1789년에 편찬한 『호구총수(戶口總數)』에는

장목면에 속한 마을로 나오는데, 1912년에 편찬한 『구한국지방행정구역명칭일람』

에는 당호리(唐湖里)로 나온 것으로 보아 당포에서 당호로 마을 이름을 바꾸었다.

당포재에서 후산리쪽으로 내려가는데, 반바지님께서

당포재를 표기한 코팅지를 나무에 걸어놨다

매봉산으로 향하는 넓은 임도 방향으로 맥길을 이어간다

따스한 햇볕을 받으면서 넓은 임도로 올라가는데, 아침부터

아무런 음식물을 섭취하지 않아서 그런지 허기가 몰려오기에

등로 가운데 베낭을 내려놓고, 아침겸 점심만찬을 준비한다

점심만찬(11:05~20)

식사래봐야 보온통에 싸가지고 온 전복죽에다

캔커피 하나이다...홀로걷는 貧寒한 산꾼에게

이정도면 훌륭한 만찬이 아니던가...후다닥 만찬을

끝내고, 베낭을 베개삼아 누워서, 하늘을 보면서

꿀맛같은 휴식을 취한다

잠깐의 휴식이지만 몸이 아주 개운한 느낌이다

베낭을 메고 다시 길을 떠난다

넓은 임도를 따라서 능선에 올라오니 멀리서 봤던

채석장은 이제 더 이상 파먹을 것이 없었는지 

사업을 접고 원상복구를 한답시고 나무도 심어놓고

나름대로 성의를 보였지만, 한번 입은 상처는 언제

아물지 걱정이구나

채석장 터에는 황토로 覆土를 한 다음에 넓은 토지를

조성하고 비닐하우스까지 해놨는데, 이런걸 '꿩먹고

알먹고' 라는 건 아닌지...

안부(11:24)

산에 오를때는  늘 기쁜일과 슬픈일이 교차하는

哀歡이 있기 마련인가보다...오늘도 어김없이

애환을 느끼면서 천천히 매봉산으로 향하는

발걸음을 옮긴다

매봉산으로 향하는 길에 오늘 내가 걸었던 길을 뒤돌아 본다.

조금전에 지나왔던 금굴산이 산꾼과의 이별이 아쉬운 듯

물끄러미 내려다 보면서, 어느산, 어느 능선을 걷드라도

늘 안전이 우선이니 명심하라고 한다

채석장을 지나서 완만히 올라서니 갈림길이 나온다

매봉산 갈림길(11:30)

우측으로는 매봉산 정상 0.56km, 좌측으로는 매봉산 입구

0.4km라는 이정표가 있는데, 어디로 가던간에 매봉산을

만난다는 얘기인가?... 맥꾼들은 당연히 매봉산 정상으로

향한다

매봉산으로 향하는 완만한 오르막길...간간히 만나는

바위들은 남도지방의 넉넉한 인심을 대변하듯 다들

여유로운 모습이다

민초들은 돌탑위에 돌하나를 얹으면서 무슨 소원을 빌었을까?

아침에 만난 산신령님(J3?)들은 지금쯤이면 모르긴 몰라도

아마 합수점인 목포구등대에 도착했겠지...언제 어느 산길을

걷더라도 늘 안전산행하시고, 162지맥의 완주때까지 무탈하시기를

기원합니다

따스한 햇볕을 쬐면서 천천히 오르다보니

정상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한다

등로 좌측의 나뭇가지 사이로는 화원면 후산리

온덕마을에 있는 온덕저수지가 어렴풋이 보인다

 

온덕(溫得)마을은 1670년경 경주최씨 최동식(崔同植)이 이주하여 정착함으로써

마을을 이루었다고 전하며, 무안박씨가 최초로 입향하였다는 이야기도 있다.

"원하는 것이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해서 불행한 일도 아닙니다.

다만 열심히 할 뿐 결과에 연연하지 않으면 그 과정에서 이미 행복합니다."

 

법륜스님 법문중에서

매봉산(鷹峰:247.7m:12:08)

해남군 화원면 후산리와 월호리의 경계에 있는 산으로, 관리가

되지않아 썩어 문드러진 전망대와 빛바랜 이정표가 서 있고,

서쪽으로는 서해바다상에 있는 신안군의 섬들이 보이나 짙은

미세먼지로 인해 어디가 어딘지 구별초차 되지 않는다.

 

이곳 매봉산에 대한 자료를 찾아봤지만, 역시나 해남군은

산꾼 범여의 바램은 안중에도 없는지 지명 유래는 알 길이

없지만, 전국에 산재하고 있는 수많은 매봉산들의 유래의

대부분은 맹금류인 매(鷹)처럼 생겼다고 하여 붙은 이름이

아닐까하는 추측을 해본다

인증샷

매봉산 정상에 있는 썩어 문드러진 데크목전망대.

만들지나 말던지...

해남군 당국자들의 산에대한 무관심은

참으로 한심하기 그지없다...이젠 기대도 안한다

준.희쌤의 산패는 데크목전망대 아래에 있다

매봉산에 대한 실망감만 안고 합수점으로 향한다.

근데 이건 뭐여 매봉산으로 올라오는 길은 아주 잘 관리되어 있다.

정상은 개떡같이 해놓고, 올라오는 길은 번지르하게 잘해놨네...

동물의 이동경로를 추적하는 감시카메라도 보인다

잠깐 사이에 좋았던 맥길과 작별을 고하고 앙증맞은

암릉으로 이어지는 능선으로 이어지는 마루금.

그래도 그리 거칠지 않아서 편하게 내리막길로 향한다

안부(12:16)

이곳 해남출신인 법정스님께서는

'물소리 바람소리' 라는 저서(著書)에서

무심(無心)을 이렇게 표현하셨다

 

빈마음, 그것을 무심이라고 한다.

빈마음이 곧 우리들의

본 마음이다.

 

무엇인가 채워져 있으면 본 마음이 아니다.

텅 비우고 있어야 거기 울림이있다.

울림이 있어야

삶이 신선하고 활기 있는 것이다.

 

* 법정(法頂)스님은 1932년 해남군 문내면 선두리에서 태어나 목포에서 자랐으며,

  본명은 박재철로, 우수영초등학교, 목포상고 졸업 후 전남대 상과대학 3학년을

 수료했으며, 20세 무렵에 한국전쟁을 겪었으며,  22세 때인 1954년 경남 통영

 미래사에서 효봉(曉峰) 스님을 은사로 모시고 출가했다.

1959년 통도시 금강계단에서 자운 스님을 계사 (戒師: 계를 주는 스님) 로

비구계를 받으며, 이후 경남 합천군 해인사, 경남 하동군 쌍계사, 송광사

등에서 수선안거 (修禪安居, 선(禪)을 수련하기 위해 스님들이 일정 기간 동안

한 곳에 들어앉아 수련하는 행위) 를 했다.

 

1997년 고급 요정이던 서울 성북동의 대원각을 시주 받아 길상사를 창건했지만

다시 홀로 강원도(현 강원특별자치도) 산굴로 들어갔으며, 회주 자격으로

2003년까지 봄·가을 정기법회 때만 법문을 했다.

한편, 법정스님은 1976년 처음 발간한 산문집 <무소유>를 비롯해 <산방한담>,

<버리고 떠나기>, < 나그네 길에서>, <산에는 꽃이 피네>, <아름다운 마무리> 등

30여 권의 책을 낸 수필 작가로도 유명세를 탔으며, 특히 법정스님을 명문장가의

반열에 올려놓은 대표작 <무소유>는 370만 부가 판매된 것으로 추정된다

당시 김수환추기경은 <무소유>를 읽고 '이 책이 아무리 무소유를 말해도

이 책만큼은 소유하고 싶다.'고 말하기도 해 종교는 다르지만 법정스님과의

친분을 나타내기도 했다.

법정스님은 '장례식을 하지 마라. 관(棺)도 짜지 마라.

평소 입던 무명옷을 입혀라. 내가 살던 강원도 오두막에 대나무로 만든 평상이 있다.

그 위에 내 몸을 올리고 다비해라. 그리고 재는 평소 가꾸던 오두막 뜰의 꽃밭에다

뿌려라.'라는 유언과 자신의 이름으로 출판되는 모든 책을 출간하지 말라는 유언을

남긴 채 2010년 3월 11일 길상사에서 79세의 나이로 입적했다.

무명봉(12:20)

뚜렸하게 이어지는 맥길에서 무명봉을 만나 

맥길은 살짝 우측으로 꺽어져 내려간다

무영객, 준.희쌤의 흔적을 보면서 내리막길로 향하는데,

동백과 황칠나무들이 어울려 군락을 이루고 있는 안부로 내려선다

안부(12:22)

늘 감사합니다

인간이나 동물이나 자유롭지 못한건 마찬가지인 모양이다.

무명봉(12:26)

안부(12:29)

동백과 송악덩쿨, 마삭줄이 어우려져, 서로간의 견제속에도 살아가며

겨울철 남도지방의 산에 푸르름을 더해준다.

식물들도 이렇게 각기 다른 삶을 살며서도 조화롭게 살아가는데,

작금의 사바세계 인간들은 왜 저리 상대방을 못살게 굴며서,

내 편이 아니면 무조건 못된놈, 나쁜놈으로 치부하며, 갈라치기를 

하는 인간들이 왜 이리도 많은지...그 추한 꼴은 언제쯤 안보려나...

맥길은 직진으로 향해야 하나 선답자들의 시그널은

좌측의 편한길로 후답자를 인도한다...사연이 있겠지.

선답자들의 시그널을 확인하면서 좌측으로 향한다

동백숲길 가운데로 이어지는 맥길.

숲만 우거졌지...동백꽃은 한송이도 보이지가 않는구나.

이런걸 두고  '앙꼬없는 찐빵' 이라는걸까...

조망바위(12:35)

우뚝솟은 바위위에 철난간을 설치해뇠고, 나뭇가지 사이로

어렴풋한 화원반도 아랫쪽의 바다에는 여객선들이 지나는지

뱃고동 소리가 들린다...조망처인지는 모르겠으나 조망은 전혀없다

좌측 아래의 화원반도로 이어지는 맥길을 따라서

홀로 호젓하게 걷는다...아침에 만났던 어마무시한(?)

J3라는 그 분들은 진작에 산행을 끝내고 지금쯤 귀가할까

궁금하다...부럽긴해도 산행하는 방법이 다르니, 별수 있겠나?

산은 늘 거기 있으니 넘 무리하지 마시고요...

오늘 날씨는 바람도 별로없고, 햇빛도 따사로워 산행하기가

너무좋다...이런 맛도 있어야지, 늘 괴로움과 고통만 따른다면

산행하는 재미가 있겠소...

203.8m봉(12:43)

해남군 화원면 매월리 중산골 뒷쪽에 있는 봉우리로 국립지리정보원의

지도에는 203.8m봉으로 기록된 족보있는 봉우리이고, 카카오나 네이버

지도에는 아무런 표식조차 없는 봉우리이고, 지맥산꾼들이 이용하는

영진 5만 지도에는 뒷산으로 표기가 되어 있다...아무래도 중산골의 뒷쪽에 있는

산이라서 그렇게 표기를 했나보다...좌측으로 맥길을 이어간다

203.8m봉에서 고도를 낮추면서 매개잔등고개를 향해서 내려간다

잠시후에 오를 화원지맥의 마지막인 깃대봉의 전위봉인

246.3m봉이 나뭇가지로 얼굴을 내밀면서 빨리 오라 손짓을 한다.

오늘은 급할것도 없으니 천천히 갈테니 지둘러라...

산이란 무질서해 보이는것 같아도, 무질서 속에서도

각자의 룰에 따라서 질서정연하게 살아가는 모습...

만물의 영장이라는 인간들이 배워야 할 듯 싶다

투박한 너덜길을 지나니 매개잔등이 나온다.

매계(梅介)잔등(12:53)

해남군 화원면 매월리 매계마을에서 부동마을로 이어지는 고개로

평퍼지만 넓은 공터에 우측의 부동마을쪽은 자동차가 다닐정도의

넓은 임도가 보이고 좌측 아래에 민가 한채가 보인다.

 

매개(梅介)마을은 마을 뒷산에 있는 매화나무에서 매화가 떨어진다고 하여

매화 매(梅)와 시내 계(溪)를 써서 매계(梅溪)라 하였다가 매개(梅介)로

바꿨다고 하며, '잔등'이란 고개의 방언(方言)으로 풀이하면, 매개마을에

있는 고개라는 뜻이다.

 

* 방언(方言)이란

  표준어와는 다른어떤 지역이나 지방에서만 쓰이는 특유한 언어를 말한다

수류미등대까지 1.4 Km 남았다는 이정표가 서 있는데,

목포구등대를 수류미등대라고 부르는 모양이다

 

매개마을은 마을라기보다 민가 한채가 외롭게 있고, 그 앞에

펼쳐지는 바다 건너로는 요즘 천사의 섬이라고 허벌나게

자랑질하는 신안군들의 섬들은 미세먼지에 갇혀 코빼기도 안 보인다.

내가 佛者라서 말도섞기 싫은 모양이다.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는 법이라고 했던가...

매개잔등고개에서 뚜렸한 등로를 따라서 완만하게

이어지는데, 등로 좌.우로는 황칠나무를 조림해놨다.

이제 화원지맥의 끄트머리가 다되어 가는 모양인데

오전에 잠잠하던 바람이 오후가 되면서 강풍으로

변해가는 느낌이나, 날씨가 포근한 탓인지 그리

춥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구나...

느릿느릿 여유로운 걸음으로 걷다보니 능선에 올라선다

가시와 잡목들이 살짝 성가시게 굴기는 하나,

화원지맥길에서 이런건 쯤은 애교로 봐줘야지...

무명봉(13:14)

살아가면서, 인생을 기록한다
그 기록이 쌓이는 것으로
짐을 만들기 보다는 적절하게
그 기억을 기록에서 지우고
삭제 할 줄 아는 지혜로움을
우리 모두 가졌으면 좋겠다.

무명봉에서 바라본 화원반도(花源半島)의 모습

전남 해남군 북서부에 있는 화원반도는 길이 35 km. 너비 3∼7 km. 해안선 길이 132 km로

해남군 화원면(花源面) ·문내면(門內面) ·황산면(黃山面)을 포함하며, 북쪽으로 0.7 km의

수로를 끼고 목포시 달리도(達里島)와 대하고, 북동쪽으로 산이(山二)반도에 의해 양분된

해남만에 면하며, 남서쪽으로 0.3∼2.5 km의 명량(鳴梁)해협을 끼고 진도와 대하는데,

화원반도의 유래가 된 화원(花源)이란 지명은 옛부터 면화가 많이 재배된 지역이라서

부르게 된 이름이라고 한다.

 

대소의 만(灣)과 곶 (串)이 많아 해안선이 복잡하고, 봄 ·여름에 난류성 어류가 모여들어

근해는 좋은 어장이 되며, 김 ·굴의 양식과 천일제염이 영위된다. 화원면을 제외한 다른 지역은

일반적으로 지세가 완만하여 논과 밭이 반반이었으나, 근래 간척과 수리사업의 진척으로

대규모의 간척지와 저수지가 조성되어 주곡산지가 되었다.

 

성산(星山) ·황산(黃山) ·옥매산(玉埋山) 등에서 납석의 산출이 많고, 이들 광산은

명반석(明礬石)의 매장지로 알려져 있으며, 문내면 동외리(東外里) 명량해협 에

면한 곳에는 조선시대 우수영(右水營)이 설치된 곳으로 이순신(李舜臣) ·

이억기(李億祺) 장군 등의 유서 깊은 전승지이기도 하며, 1984년 10월 화원반도와

진도를 잇는 연륙교 진도대교가 명량해협에 건설되었다.

화원지맥의 마지막길.

범여를 그냥 보내줄 마음이 없는지 246.3m봉을

향하는 길에 잠깐이지만 태클을 걸어온다.

오늘이 화원지맥 졸업산행인데 여태껏 괴롭혔으면 됐지.

얼마나 더 괴롭혀야 직성이 풀리겠니...

좌측으로 이어지는 희미한 임도를

버리고 우측으로 맥길을 이어간다

맥길은 암릉구간으로 이어지고...

 246.3m봉 우측 아랫쪽애는 항공유도표시탑이 

하늘을 찌를듯 높이 솟아있다

오늘 내가 걸었던 화원지맥 능선을 뒤돌아 본다

조금전에 지나온 지근거리에 있는 매봉산조차도

짙은 미세먼지로 인해 보이지가 않구나.

legend의 품격 그대로...늘 감사합니다

안부(13:20)

안부를 지나서 246.3m봉으로 오르는 양지바른 곳에

분홍색 노루귀가 낙엽 사이로 얼굴을 내밀면서

봄인사를 건네는데, 올해 처음보는 노루귀라서 그런지

지독히도 야생화를 좋아하는 범여로서는 설레는 가슴을

멈출수가 없구나

분홍노루귀(꽃말:사랑의 속삭임)

보송보송한 털이난 노루귀의 귀를 닮아서 노루귀라 부르는데,

복수초, 바람꽃과 함께, 봄의 전령사 역할을 하는 대표적인

꽃으로 가장 많이 보이는 꽃이 분홍노루귀이며, 백색과

청색도 있으며, 새끼 노루귀와 울릉도에서 자생하는 섬노루귀도

있다...6~8장의 꽃잎처럼 보이는 것은 꽃잎이 아니라 꽃받침이다

분홍노루귀를 만났으니 오늘 새벽에 목포터미널에서 개떨듯

고생을 하면서 터미널 문이 열리기를 기다린 보람이 있구나.

기분좋은 마음으로 올라서니 246.3m봉 정상이 나온다

246.3m봉(13:24)  

조망이라고는 전혀없는 246.3m봉에서 내려서니

맥길은 산죽길 가운데로 이어지고, 나뭇가지 사이로

화원지맥의 마지막 봉우리인 깃대봉이 살짝 얼굴을

내밀기 시작한다

잠깐 사이에 등로는 사라지고...

희미한 등로를 찾아서 내려서니 우측으로

등로가 열리면서 화원조선산업단지의

배를 만드는 도크와 거대한 크레인 2대가

얼굴을 내민다

오늘은 미세먼지가 지독하게 극성을 부리는구나

바닷가에 매월리 들판 지나 해남화원농공단지와 화원조선산업단지의 거대한

크레인이 보이는 대한조선 해남조선소가 코 앞인데도 모든게 흐릿하게

보이며, 그 너머로의 흑석지맥 능선은 육안으로는 흐릿하게

보이나, 똑닥이 카메라의 렌즈로는 잡히지가 않아 아쉽기만 하다

잠시후에 오를 화원지맥의 마지막 봉우리인 깃대봉이

보이고 우측으로는 지맥길에서 벗어나 있는 176.6m봉도

얼굴을 내밀기 시작한다

내리막길 암릉구간에는 안전로프가 땅바닥에

깔려 있지만 맥꾼외는 다니지 않는지 로프에는

이끼가 많이 끼여 있다.

월내고개(13:37)

좌측으로는 해남군 화원면 매월리 월내고개로 가는 등로가 보이나

우측의 양화마을로 이어지는 곳으로는 시누대가 길을 막고있다.

 

월내(月內)마을은 달처럼 생긴 마을 뒷산이 마을을 품고 있어 월내(月內)라

하였으며, 1770년경 김해김씨 김영식(金永植)이 목포에서 고기잡이를 하러

나왔다가 배가 파손되어 왔다가 정착하였다고 전하는 마을이며, 월내마을에는

해남 구목포구 등대(海南舊木浦口燈臺)[2008년 7월 14일 등록문화재 제379호 지정]가 있다.

트랙상의 맥길은 직진으로 이어지나 시누대가

빽빽하게 군락을 이루고 있어서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구나...

시누대 좌측으로 뚜렸한 등로가 보이고 선답자들의

시그널도 그쪽으로 향하고 있기에, 좌측으로 잠깐

편한길을 따라서 가다가 다시 우측으로 살짝 꺽어진다

시누대숲을 지나고 깃대봉을 향하는 오르막이 시작된다

188.6m봉(13:43)

지도상에는 표기조차 안되어 있는 188.6m의 무명봉에

올라서니 새로 심은듯한 어린 동백나무들이 간간히 보인다

등로는 사라지고 동백나무들이 군락을 이루고 있는데

빨갛게 피는 동백꽃송이는 하나도 보이지 않구나.

대충 感을 잡고 능선으로 올라선 다음 안전로프가 처져있는

뚜렸한 등로를 따라서 깃대봉으로 향하는 완만한 능선길을 

따라서 맥길을 이어간다

깃대봉으로 향하는 양지바른 곳에서 노루귀 4자매가

또 다시 범여의 기슴을 설레게 하는구나...나 혼자

보기에는 너무 아깝구나...

노루귀 / 최두석

 

봄이오는 소리

민감하게 듣는 귀 있어

쌓인 낙엽 비집고

쫑긋쫑긋 노루귀 핀다

 

한 떨기 조촐한 미소가

한 떨기 조촐한 희망이다

 

지도에도 없는

희미한 산길 더듬는 이 있어

노루귀에게 길을 묻는다.

분홍 노루귀의 요염하고 매혹적인 자태에 홀렸다가

정신을 차려보니 칡넝쿨과 잡풀이 숲을 이루는 곳에

도착하는데, 지도상의 트랙을 확인하니 화원지맥의

마지막 봉우리인 깃대봉이다...해남군의 산에 무관심...

더 이상 놀랄일도 아닌듯 하나, 하였던 간에 대단하다

깃대봉에 정상에 있다는 4등 삼각점(목포 443 / 1986 재설)을

찾아서 말라 비틀어진 칡넝쿨 사이를 헤매고 다녔지만

결국 찾지 못한다.

3분 가까이 삼각점을 찾아 헤맸지만 삼각점 수색에 실패한다.

 항하사(恒河沙:갠지스강의 모래)에서 바늘을 찾기보다 더 어려운듯 싶다.

산패나 선답자들의 시그널도 보이지 않는데 정상 아래로 내려서니 거기에

준희쌤의 산패가 후배를 반긴다.

 

* 항아사(恒河沙)와 아승기(阿僧祇) 는 불교 용어로 항하(恒河)는 인도의

  갠지즈강을 말하며,()는 모래인데  갠지즈 강의 모래처럼 많다는 뜻이다

  아승기(阿僧祇)는 ‘숫자를 세는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뜻이다.

깃대봉(231.1m:14:05)

해남군 화원면 매월리 월내마을과 양화마을 경계에 있는 산으로

화원지맥길의 마지막 봉우리로 정상에는 4등 삼각점(목포 443 / 1986 재설)이

있으나 잡풀과 칡넝쿨이 너무 많아서 삼각점 찾기가 불가능하다.

 

해남군의 어느 자료에도 이곳 깃대봉의 유래에 대한 이야기는 찾을수가 없다.

전국의 수많은 깃대봉 중에서 가장 유명한 깃대봉은 산림청의 100대명산에

지정된 이곳에서 그리 멀지않은 홍도의 깃대봉이 아닌가 싶다.

 

전국에 산재해 있는 수많은 깃대봉의 대부분 두 가지 의미를 가지고 있다.

첫 번째는 국가 발전에 공로가 있는 백성에게 나라에서 사패지(賜牌地)를

하사하면 그곳에 깃대를 세워 공적을 기렸다 하여 붙은 이름이고, 두 번째는

일제 강점기에 가장 전망이 좋은 산에 삼각점을 설치하고, 그곳에 빨간 깃대를

꽂아 측량을 하였던 곳이라 하여 붙은 이름인데, 일제 강점기를 거치면서

깃대봉이라는 이름이 전국에 우후죽순처럼 생겨난 산이 깃대봉이다.

 

정확한 자료는 없지만 아마도 이곳 깃대봉도 그 부류에 들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이곳 깃대봉은 해남군 화원면 매월리의 화원반도에 솟아 있는 봉우리로서

깃대봉에서 바라보면 목포시 달리도(達里島)와 외달도를 대하고 북동쪽으로

산이(山二)반도에 의해 양분된 해남만에 면하며 남서쪽으로 명량(鳴梁)해협을

끼고 진도와 대하는 곳에 솟아있는 산이다

깃대봉에서 내려서 합수점인 목포구등대를 향하는

완만한 내리막길로 내려간다...오늘은 컨디션이

좀 좋았던지 내가 예상한 시간보다 조금 빠른듯 싶다

암릉구간을 내려서니 철난간이 세워진 조망처같은 곳이 보인다

조망바위(14:10)

나뭇가지 사이의 내리막 아랫쪽으로 새로생긴

목포구등대가 보이기 시작한다

무명봉(14:15)

조금씩 급경사를 이루면서 내리막길로 향하는데

오후가 되면서 바닷가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드세지기

시작한다

니네들도 인간들 닮아가니?...

세속에서 지지리도 못난 인간들이 자기들의 이익을

위해, 치고받고 싸우는 꼴 보기 싫어서 산에 왔는데

또 너거들 싸우는 꼴을 봐야 되겠나?...지겹지도 않니...

무명봉(14:18)

급경사로 내려서는데 트랙상으로는 우측으로

가라는데 길이 없어서 그냥 직진의 내리막길로

내려간다

새로 조성한 목포구등대가 보이고 바다 너머로  신안군 압해도와 

암태도를 연결하는 천사대교...육안으로는 흐릿하게 보이나,

짙은 미세먼지 탓인지 똑닥이 카메라로는 천사대교를 잡히질 않는구나

 

천사대교란 다리명은 천사들이 사는 마을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고, 신안군의

섬의 개수에서 가져 왔다고 하는데 우리나라의 섬은 모두 3300여개이며 그 중에

거의 1/3인 1004개가 신안군에 있다고 하는데 천사대교란 다리 이름은 신안군내

섬의 개수에서 따온 숫자라고 한다... 그러나 신안군의 섬의 실제 개수는 1004개가

아닌 1025개라는데, 그중 섬 21개는 적당히 빼버리고 멋있게 천사라 이름 했다한다. 

마지막까지 태클을 걸어대는 잡목의 저항을 이겨내고...

목포구등대로 내려선다

2003년도에 건설한 목포구등대의 모습

맨 상단에 빨간 모습이 마치 여인들의 입술에 바르는

립스틱처럼 보인다...이곳에는 목포구등대(木浦口燈臺)가 

2곳이나 있는데 23년전에 건립한 목포구등대와 1908년에

건립한 해남 구 목포구등대(海南舊木浦口燈臺)가 있다.

 

목포구등대라하여 '옛 구(舊)자' 를 써서 옛날의 목포등대인줄

알았는데 여기와서 보니 '옛 구(舊)자' 가 아닌 '입 구(口)자' 를

쓴 목포구등대라는 것을 알았다.

 

이런 지명은 지리산 성삼재로 갈 때, 가장 짧은 거리에서 접근할 수

있는 구례구역(求禮口驛)이 있는데 구례의 옛날역이 아닌

'구례의 입구란 뜻'으로 역명을 '구례구역(求禮口驛 )'이라

했드시 이곳의 목포구등대(木浦口燈臺)도 목포 입구에 있는

등대라는 뜻이란다.  

바로 옆에 있는 해남 구 목포구등대(海南舊木浦口燈臺)가

있는 합수점으로 가는 길에서 바라본 목포시 달리도(達里島)의 모습

 

목포에서 서쪽으로 5.6㎞, 해남군 화원면에서 북쪽으로 6㎞ 지점에 있는

달리도는 주위에는 눌도(訥島)·고하도(高下島)·외달도(外達島)·장좌도(長佐島)

등이 있으며, 면적은 2.64㎢이고, 해안선 길이는 11.5㎞이다.

섬이 ‘반달’ 모양으로 생겨 달동(達洞) 또는 달도라고 하였다는 설이 있으며,

또 유달산의 ‘달’ 자를 따서 ‘달리도’라고 부르게 되었다는 설도 있다.

섬 서쪽에 솟은 사재산(139m)과 금성산(139m)의 줄기가 남북으로 뻗어 있고,

그 밖의 지역은 대부분 낮은 평지를 이루며, 해안은 개펄이 넓게 펼쳐져 있어

간척하여 농경지와 염전으로 이용하며, 구비  전승으로 한탄가,김매기노래,

상여가 등이 있고 농악과 당제 등이 전해왔으나 현재는 소멸되어 가고 있다.

암태도로 이어지는 천사대교가 있는 압해도(押海島)의 모습

신안군청 소재지가 있는 압해도는 섬의 지세가 삼면으로 퍼져 바다를

누르고 있는 형태라서 압해도()라 불렀다 하며, 낙지가 발을 펴고

바다를 누르고 있는 형상이라서 그렇게 불렀다고도 한다.

 

삼국시대에는 백제의 아차산현에 속하였다가 통일신라시대에 무안군에

 속하였으며, 고려시대에는 물량군, 금성군 등으로 개칭되었다가 1172년(명종2)에

무안현이 되었고, 조선시대에 군이 폐지되면서 나주목에 속하였으며, 한때 영광군

속하기도 하였다...1896년 지도군이 신설되면서 이에 속했으며, 그뒤 무안군 편입을

거쳐 1969년 신안군 신설로 신안군 압해읍이 되었다.

신라시대에는 군마장으로 활용되었으며, 조선시대에는 유배지였다.

나라의 대승상인 정덕성이 이곳으로 귀양와서 우리나라 정씨(丁氏)의

시조가 되었다고 전해지는 섬이다

화원지맥의 합수점인 해남 구 목포구등대(海南舊木浦口燈臺:14:35)

130개 정도 지맥길을 마친 범여로서는 가장 힘들게 걸었다고 생각이

드는 화원지맥길...땅끝기맥에서 갈라진 첨봉에서 멀고도 먼 해남땅의

100여km를 걸어서 맥길의 끄트머리인 해남 구 목포구등대 아래의

서해바다로 入水하면서 범여도 산행을 종료하는 스틱을 접는다.

너무나 힘들었던 산이었기에 그만큼 기억도 많이 남는 맥길이었다.

 

성치않은 몸뚱아리로 이곳까지 걸어온 내 자신이 대견스럽다.

그리고 쥔장 잘못만나 개고생을 하는 범여의 두 다리(足)에게도

늘 고맙다는 인사를 전한다... 옆에있는 젊은 친구에게 부탁하여

인증샷 하나를 남긴다

인증샷

해남 구 목포구등대(海南舊木浦口燈臺)

전라남도 해남군 화원면 매월리에 있는 1908년에 건립된 등대로서 1908년

황성신보(皇城新報)에는 해남 구 목포구 등대에 관한 기사가 있다.

 

기사의 내용을 살펴보면 목포의 일본인 마쓰우치 쓰루타로우(升內鶴太郞) 씨가

목포 근해 연안 항로를 경영하더니 금번 목포에서 추자도를 경유하여 제주도

조천에 당도하는 항로와 목포에서 진도, 완도, 장흥군 해창에 도달하는 항로,

목포에서 지도 법성포에 도달하는 항로, 목포에서 지도 법성포를 경유하여 줄포

군산에 당도하는 항로를 경영하여 연한도서의 항로를 개설할 계획인데 매년 3만 원을

보조하라고 농상공부(農商工部)에 청원하였다 라고 적혀 있다.

 

해남 구 목포구 등대는 원형 평면에 등롱부가 등명기를 받칠 수 있도록 2층으로

구성되어 있고 전면 출입구 포치(porch)는 상부 캐노피가 원형 아치형으로 돌출되어

있는 특이한 양식으로 돔형의 지붕 위에는 풍향계가 있고 등대의 지붕과 손잡이 등이

원형 그대로 남아 있으며 운영 당시 등질은 석유등을 사용하는 백색 부동광에

광달거리는 8해리(약 15㎞) 정도였다.

 

전체적인 비례가 조화되고 외형이 아름다워 이후 우리나라 등대 건축의 기본적인

전형이 되었고 2003년 새로 건립한 등탑의 구조는 백색원형 철근콘크리트조로

사다리가 나선형으로 설치되어 있으며 범선 형태로 높이는 36.5m이고 등고는

평균 해수면으로부터 37m에 이른다.

 

해남 구 목포구 등대는 대한제국시기의 대표적인 등대이자 우리나라 등대들의

기본적인 전형이 되었으며, 전체적인 비례와 아름다운 외형을 가진 등대로 근대

건축 기술이 집약되어 있어 우리나라 등대 건축사에 좋은 자료가 된다.

 

또한 목포와 진도권에 있는 6개의 유인등대(당사도, 가사도, 하조도, 홍도, 소흑산도, 목포구)

가운데 배를 타지 않고 차량으로 탐방할 수 있는 유일한 등대로 해남 지역의 뱃사람들과

섬사람들에게는 육지로 통하는 이정표 역할을 하였으며 목포항으로 들어가는 출입구 역할을 하고 있다.

외달도와 달리도와 등대 사이의 바닷길은 좁고 물살은 빨라서 ‘수류미’라고 

부르는데, ‘수류미등대’는 목포구등대의 또 다른 이름으로 이곳 목포(木浦)의

입구(입口)인 화원면 매월리에 조선말기때 세운 등대(燈臺)가 목포구등대(木浦口 燈臺)이다.

 

수류미등대는 목포구등대의 또다른 이름으로, '물이 마지막 머무르는 곳'이란 뜻의

수류미(水流尾), 등대의 모양이 수리미를 닮았다해서 수류미, 화원반도 끝 깃대봉

아래의 수리바위 부근에 세워졌다해서 수류미등대라는 설이 있다.

 

이 바닷길은 일제강점기 때 수탈의 관문이었고, 옛 등대인 수류미등탑은

수로미산자락 언덕 위에 따로 서 있는데, 1908년 1월 조선총독부 체신국에 의해

불을 밝힌 수류미등대는 일본인들이 조선의 수탈을 원활히 하고 대륙 침략의

발판으로 삼기 위해 세워졌고 목포구등대(수류미등대)가 불을 밝히면서

‘제국의 불빛’이라는 오명을 남긴 이유다.

해남 구 목포구 등대에서 산행을 종료하는 의식을 마치고

2008년에 세워진 목포구등대로 향하면서 목포로 가기

위해서 화원면 택시를 호출하는데, 두군데는 목포로 가는

중이라 올 수가 없다고 하고, 한군데는 전화를 받지 않는구나.

하는 수 없이 아침에 이용한 우수영 택시를 호출하고는 주차장으로 향한다

2003년 새로 건립한 등탑의 구조는 백색원형 철근콘크리트조로 사다리가 나선형으로

설치되어 있으며 범선 형태로 높이는 36.5m이고 등고는 평균 해수면으로부터 37m에

이르며, 목포항 입구인 해남군 매월리에 있지만 목포항 관문으로의 기능적인 면을

강조하기 위해 목포구등대로 부르게 되었다... 무인등대로 처음에 운영되다가 1964년

유인등대로 전환하였으며 2003년 범선 모양(높이 36m)의 새로운 등대를 건립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차량 진입이 금지되어 있어 입구 주차장에 주차한 후 입구부터 걸어서 이동해야 하며,

해남 목포구등대 안에는 등대 전시관을 열어 등대와 선박 항해 및 바다를 체험할 수 있는

전시물과 영상물을 설치하여 2015년부터 운영하고 있으며, 등대 견학 및 카누, 카약

승선체험 등 다양한 해양체험 프로그램도 운영하고 있다.

주차장가는 길에 강강수월래 춤을 추는 처자들을 보고 있는데

호출한 우수영 택시가 도착하여 화원면 버스정류장으로 가야

하자고 하면서 우수영에서 목포가는 버스가 몇시에 있냐고

물어보니 우수영에서 15시 35분에 있다고 하여 화원이 아닌

우수영으로 향한다.

 

우수영에서 출발하는 버스는 화원을 거치지 않은 직행버스라

목포까지 40여분밖에 걸리지 않으니 17시에 출발하는 서울행

버스를 탈 수 있을 것 같지만, 화원에서 목포가는 버스는 해남에서

화원까지 와서 마을 구석구석으로 돌아 다니는 완행버스라

우수영보다도 훨씬 가까운 거리임에도 1시간 이상 거리고 지금

가봐야 해남에서 오는 17시 버스라 어차피 18시에 목포에서

서울가는 버스밖에 없기에 불가피하게 우수영으로 향한다

우수영 버스정류장(15:30)

우수영 정류장에 도착하여 목포가는 버스표를 예매하는데

택시기사의 말과는 달리 목포가는 버스 시간 차이가 많이난다

15시 35분에 이곳에서 출발하는 버스는 목포가 아닌 광주가는

버스인데. 목포가는 버스는 16시45분에 이곳에 도착한다는데

갑자기 택시기사에게 사기당한 기분이다.

 

이럴줄 알았으면 화원에 가서 완행 버스를 타면요금으  3,800원이나

줄일 수 있고 17시에 목포에 도착할 수 있는데, 택시기사의 엉터리

정보로 돈과 시간을 다 버린 셈이지만, 방법이 없구나.

우수영발 → 목포행 버스표

정류장 안의 대합실에서 1시간 가량을 멍때리기를 하다가

목포행 버스를 타고 45분만에 목포터미널에 도착한다

목포터미널(17:25)

목포발 → 서울행 버스표

 

서울가는 버스표를 예매하고는 화장실에 가서 간단하게 씻고

옷을 갈아입은 다음에, 터미널 지하에 있는 식당에서 이른

저녁을 해결한 다음에  해남에서 출발하여 목포를 경유하여

서울가는 버스에 올라 깊은 잠에 빠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