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산행일시: 2026년 03월 22일
☞ 산행날씨: 맑은 날씨에 산행하기 좋은 날
☞ 산행거리: 도상거리 9.1km +들머리 2.3km / 6시간 35분 소요
☞ 참석인원: 나홀로 산행
☞ 산행코스: 금방동 마을회관- 안부- 암봉- 안부- 파묘- 가묘- 안부- 무명봉
황룡(병풍)지맥 분기점- 무명봉- 암봉- 안부- 안부- 367.5m봉
임도- 임도삼거리- 무명봉- 무명봉- 무명봉- 364.4m봉- 무명봉
무명봉- 무명봉- 백골재- 묵묘- 안부- 무명봉- 무명봉- 안부
381.1m봉 갈림길- 안부- 무명봉- 능재- 안부- 304.8m봉- 고개
무명봉- 안부- 326.3m봉- 무명봉- 암봉-도마산- 파묘- 안부- 무명봉
안부- 안부- 통정대부묘- 343.0m봉-안부- 무명봉- 안부- 무명봉
306.6m봉-갈림길- 생태통로- 바심재
☞ 소 재 지: 전북 순창군 복흥면 / 전남 담양군 월산면
162개 지맥이 사정권 안에 들어오기 시작하건만 지난 겨울 한달 가까이 계속된
심한 감기에도 불구하고 한 주도 쉬지 않았다... 다른 산꾼에 비해서 훨씬 짧은
거리로 갇는데도 이번달부터는 이상하게 체력이 급격하게 떨어지는듯 하다.
거기다가 베낭의 무게를 줄이기 위해 먹거리를 줄이다보니 더 심한 느낌이다.
그러나 남들처럼 어둠속에서는 절대 걷지않고, 천천히 걸으면 山川景槪를
감상하며 유유자적 걸으니 그리 밑지는 장사는 아닌 듯 싶다
올해 날씨는 하도 변덕스러워 春來不似春이라 했건만...사진동호회 회원들의
블로그에 봄꽃 사진이 계속 올라오는 것을 보니 내가 과연 이 짓거리를 해야만
하는가 하는 懷疑가 들기도 한다...하지만 여기서 멈추기에는 너무 억울할 것
같은데, 몸의 회복 속도가 늦어서 오랫만에 한 주 쉬기로 하고, 사진동호회
회원들과 부안과 변산으로 出寫를 갔다오느라 산행을 쉰 다음에 2주만에
산행을 나서는 셈이다.

황룡(병풍)지맥 개념도
황룡지맥(신산경표상:병풍지맥(屛風枝脈)은 호남정맥상의 도장봉(459m)
남동쪽 3.8km, 밀재 서쪽 1.6km지점의 분기봉(444.5m)에서 남서진하며
도마산(陶馬山 446m), 용구산(龍龜山,726m), 병풍산(屛風山,826m),
병봉산(屛鳳山,685.2m), 불태산(佛台山, 636m), 이재산성(535m),
철마봉(283m), 판사등산(342.9m), 팔랑산(八郞山,122m), 어등산(魚登山,293m),
동자봉(154.1m)등을 세우고 광주광역시 광산구 송정리시내를 지나 황룡동의
황룡강과 영산강의 합수점까지 이어지는 도상거리 약 53.6km의 산줄기를 말하며
황룡강의 우측 물막이가 되어 황룡강과 영산강 본류를 가르는 분수령으로 수계를
기준으로 하는 대한산경표에서는 황룡강의 우측 산줄기라하여 황룡지맥이라 부른다.


오늘 산행구간의 지도

용산역(04:50)
지난 겨울에 남도지방에서 잡목으로 악명높은(?), 삼포(옥룡), 함평(철성)지맥을 끝내고
어디로 갈까 고민이 많았다...처음에는 난이도가 낮은(?) 고막원천(신산경표상:태청)지맥을
가려고 했으나 그러려면 토요일날 영광에 가서 하룻밤을 자고 산행을 해야 할 것
같아서 포기하고 지맥길의 거리가 짧으나 독립군(나홀로 산행)으로서는 난이도가 높고
접근성이 아주 불편한 황룡(신산경표상:병풍)지맥을 짧게 여러번 걷기로 결정하고 이른
새벽 집앞에서 출발하는 첫 버스를 타고 가다가 삼각지역에서 버스를 갈아타고 용산역으로 향한다

용산발 → 정읍행 열차표

호남선 열차를 오랫만에 타본다...남도지방의 지맥길을 갈 때는
워낙 광주에서 사통팔달로 이어지는 교통망이 좋은데다, 광주로
가는 심야고속버스가 새벽 2시까지 있고, 거기다가 우리집에서
가깝다는 점에서 왠만하면 열차가 아닌 고속버스를 이용하는
편이였는데 들머리인 순창군 복흥면으로 접근하기에는 광주보다
정읍으로 가는게 나을 듯 하여 정읍으로 향하는 열차를 탔다

정읍역(井邑驛:07:02)
정읍 지명 관련 기록 중 가장 오래된 것은 『삼국사기』에 남아 있으며 현재 정읍에
해당하는 지역에 백제의 정촌현(井村縣 : 정읍현), 대시산군(大尸山郡 : 태인현),
고사부리군(古沙夫里郡 : 고부군)이 있었다고 기록되어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 정읍현에는 【建置沿革】本百濟井村縣新羅景德王改今名
爲太山郡領縣高麗屬古阜郡後置監務本朝改爲縣監 (백제 때 정촌현이었으며,
신라 경덕왕 16년(757년)에 정읍현으로 고쳐 태산군의 영현이 되었으며, 고려에 들어서는
고부에 이속되었고, 뒤에 감무를 두었으며, 조선조에 현감을 두었다.)의 기록이 있다.
또한 【古跡】望夫石 在縣北十里縣人爲行商久不至其妻登山石以望之恐其夫夜行
犯害托泥水之汚以作歌名其曲曰井邑世傳登岾望夫石足跡猶在 (망부석(望夫石)은
정읍현의 북쪽 10리에 있다.
현의 사람이 장사하러 떠나서 오랫동안 돌아오지 않으니, 그 아내가 산 바위 위에 올라가서
바라보며 그 남편이 밤길을 걷다가 어떤 해를 입을까 염려하여 진흙탕물의 더러움에 비유하여
노래를 지었으니 그 곡(曲)을 "정읍"(井邑)이라 한다. 후세에 전해오는 고개의 "망부석"(望夫石)의
자취가 지금도 있다.”라고 하여 백제 가요 정읍사(井邑詞)와 관련된 내용에서 정읍이란 용어가
등장하고 있다.
풍수지리설에 의하면 정해마을은 배의 밑바닥에 해당되어 구멍이 뚫리면 배가
침몰된다는 속설을 믿고 집집마다 우물이 없고 마을 전체가 큰 새암이라는 우물
하나에 의존했다하며, 1973년 새마을사업으로 마을길 포장공사를 하면서
옮겨지기도 했지만 1994년 7월 정(井)자형 우물을 복원하고 주변도 기와
흙담장으로 깨끗이 정비했다고 하는데 샘바다 마을이라고 불리는 정해(井海) 마을은
백제시대 정촌현(井村縣)으로 추정하여 '정읍(井邑)'이라는 지명의 유래로 삼고 있다.

정읍공용버스 터미널(07:10)
정읍역에서 정읍버스터미널은 걸어서 10분 정도의 지근거리에
있으며, 2019년 2월 25일 변산지맥 2구간을 홀로 걸을 때 와봤으니
7년만에 온 셈인데, 그 당시에 비해서 너무나 낙후되어 있는 느낌이라
자꾸만 인구가 소멸되어 가는 이 나라의 미래의 모습을 보는것 같아서
씁쓰름하다

터미널에 도착하니 대합실은 개미새끼 한마리도 안보이고
교통편을 누구한테 물어보려고 해도 물어볼 길이 없다.
시간표를 보니 정읍에서 순창군 복흥면으로 가는 첫 차가
08시 40분에 있고 시간은 40분 정도 걸린단다...이론적으로는
답이 나오지 않아서 터미널을 빠져나와 시내버스 정류장으로 가니
버스들이 보이지만, 신태인이나, 내장산, 고창, 흥덕쪽으로 가는 버스는
빠른 시간대가 있으나 복흥쪽은 빠른 시간대가 없어서 참으로 난감하다.
그래!..우선 민생고부터 해결하고 보자하고 주변의 영업하는
식당을 찾으니 아무데도 없구나...하는 수 없이 버스정류장 앞
편의점에 들어가서 허기를 면하려는데, 장사를 그만 하려는지
편의점의 매대에 있어야 할 물건들은 텅텅 비어있고 입이
까다롭고 짧은(?) 나로서는 먹을만한게 없다...따뜻한 두유 하나를
사서 마시고는 편의점을 빠져나와 시내버스 정류장에 서 있는
버스기사에게 가장 빠르게 복흥까지 가는 방법을 물으니 먼젓번
기사와 마찬가지로 08시 40분 버스밖에 없다고 한다...결론부터
말하면 처음부터 들머리로 가는 좌표를 잘못 찍은 셈이다
하는 수 없이 택시 정류장에 가서 기사에게 복흥면 금방동마을회관
주소를 적은 쪽지를 주고 요금이 얼마나 나오냐고 물으니 30,000원쯤
나온다고 하기에 가자고 하고 마을회관에 도착하니 헐!...이게 뭐여...
37,000원이나 나왔길래, 내가 조금 난감해 하니까...자기도 말을
잘못했으니 32,000원만 달라고 한다...조금은 미안하지만 요금을 주고
유쾌하게 작별을 한다

금방동(錦榜洞)마을회관(08:35)
전북 순창군 복흥면 대방리(大榜里)는 1914년 행정 구역 개편 때
갈현리, 용지리, 일운리, 금방동을 합한 후 금방동의 ‘방(榜)’ 자는
따와서 대방리(大榜里)로 개칭된 자연 마을로 비단같이 수려한 지형에서
유래했다는 견해가 있으나 일대에 금광이 있는 것과 무관치는 않아 보인다.
그러나 현재는 갈현이 갈원이 되고, 용지와 금방동은 그대로이며, 일운리는
사라지고 없으며 주변의 갈원마을 등과 함께 행정구역 명에서 사라졌으나
자연부락 명으로 그 흔적이 남아 있는 복흥면의 역사적인 마을 중 하나이다.
전주 최씨가 이주하며 마을이 형성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대방리 마을 앞
시내에 용소(龍沼)가 있는데, 이곳에 사는 용이 등천하면서 꼬리로 바위를
쳐서 바위가 두 조각이 되었다는 전설과 함께 용이 살던 못이라 하여 용지(龍池)
마을이라 하였다고 한하며, 용바위와 연못이 있던 곳으로 전해진다.

산행을 시작하다(08:45)
아침부터 교통편으로 인해 산행 시간이 많이 늦어 버렸다.
산행을 시작하려는데 잔뜩 흐린날씨가 금방이라도 빗방울이
떨어질 것만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들지만, 이 지방의 오늘 날씨가
흐림이라고 예보한 구라청이 아닌 기상청의 예보를 믿어봐야지...
그런데 골짜기라서 그런지 스마트폰의 작동이 한참동안 되진 않으니
당체 感을 잡을수가 없다.
초반부터 산행계획이 어긋났는데다 작동해야할 스마트폰의 G.P.S까지
작동하지 않으니 또한번 난감한 상황에 직면한다...이곳부터 분기점까지는
어디로 가던지 상관없다는 논리로 걷는 바람에 초반부터 개고생을 한다.
앞에 보이는 시멘트 도로에서 우측의 오르막으로 오르면 호남정맥상의
향목탕재에 금방 오를 수 있었는데 비닐하우스 옆으로 이어지는 편안한
길을 따라서 분기점으로 향한다

남쪽으로 향하는데 G.P.S는 이제서야 작동을 하기 시작한다
앞에 바라보이는 봉우리는 호남정맥상에 있는 494.9m봉이고
향목탕재로 오르는 등로는 너무 많이 지나쳤다...조금전 마을회관 옆
도로를 따라서 직진으로 올라가면 금방 호남정맥상에 있는 향목탕재에 도착하여
편하게 산행을 할 수 있었는데 오늘 산행은 초반부터 계속 꼬이기 시작하는구나.
16년전에 걸었던 향목탕재를 아쉬운 마음에 옛 추억을 다시 소환 해본다

향목탕재...2010년 12월 19일(봄.여름.가을.겨울 산악회 멤버들과)
전남 담양군 월산면과 전북 순창군 복흥면 사이에 있는 고개로 커다란 느티나무
한 그루가 서 있으며, 향목탕재에서 순창군 복흥면 방면으로 용지마을이 나오는데,
이 마을은 서경덕, 이이, 이황, 이진상, 임성주와 함께 조선시대 성리학의 육대가(六大家)로
불리는 노사 기정진(盧沙 奇正鎭:1798~1879) 선생의 생가가 있는 곳으로 이곳이 그의 조부가
평생을 거쳐서 찾은 황앵탕목혈(黃鶯蕩木穴:노란 꾀꼬리가 나무를 찍는 형국의 명당)
이라는데 후세 사람들은 그 명당의 발복으로 기정진이라는 성리학자가 나왔다고 여긴다.
* 기정진(奇正鎭:1798~1879) 은 조선 후기에「정자설」, ?이통설?, 『노사집』,
『답문유편』 등을 저술한 학자로 자는 대중(大中), 호는 노사(蘆沙)이다.
퇴계이황· 율곡이이 이후에, 독자적 궁리와 사색을 통해 이일분수의 이론에 의한
이(理)의 철학 체계를 수립하였으며 우주 현상과 인간 심성 내지 도덕의 문제를
가치상 우위에 있는 이의 작용으로 해명하고자 했다... 또한 인물성동이의 문제도
이의 완전·불완전으로 설명하여 주리 또는 주기의 심성론과 인물성동이론을
종합하였고 1927년 고산서원에 조성가 등 문인 6인과 함께 봉안되었다.

시멘트 도로 끝쪽에서 도로를 버리고 우측으로 올라서니
묘지가 나오고 그 윗쪽으로 올라서니 길이 완전히 막혀 버렸다

묘지 뒷쪽 오르막에 펼쳐지는 복수초군락지.
지난주에 출사를 갔던 부안 내소사 관음봉 아래 만큼 크기 만큼의
복수초 군락지는 아니지만 이제서야 복수초가 피는데 참 예쁘다...

길을 잘못들어서 고생을 했지만 그래도 복수초를
봤으니 그리 밑지는 장사는 아닌듯 하고, 아직
분기점까지는 안 갔으니 알바는 아니지 않은가?...

복수초(福壽草)는 미나리아재비과 복수초속에 속하는 식물로
한자로는 '복 복(福)' , '목숨 수(壽) ' 자를 쓰는데, 많은 사람들이
원수를 갚을 대상에게 복수(復讐)한다고 할 때의 그 '복수'로 알고 있다고 한다.
꽃이 황금색 잔처럼 생겼다고 측금잔화(側金盞花)라고도 부르고, 설날에
핀다고 원일초(元日草), 눈 속에 피는 연꽃 같다고 설연화(雪蓮花), 쌓인
눈을 뚫고 나와 꽃이 피면 그 주위가 동그랗게 녹아 구멍이 난다고 눈색이꽃,
얼음새꽃이라도 부르며, 강원도 횡성에서는 눈꽃송이라고 부른다고 하며,
특이하게 꽃말이 동서양이 다른데 동양에서는 '영원한 행복', 서양에서는
'슬픈 추억'이라고 한다.

추운 산간지방에서 주로 자라며 이른 봄에 노란 꽃을 피우는데 꽃이 필 때는
눈이 채 녹지 않은 상태에서 피어 하얀 눈과 대비를 이룬다... 다 자라면 크기가
30 cm 안팎이 되는데 잎은 고사리와 비슷하며 봄에만 성장하는 다년생 식물로
꽃은 작은 접시나 술잔처럼 생겼다고 해서 황금술잔이라고 부른다
전초에 맹독이 있어 겨울이나 이른 봄 산행을 갔다가 중독되는 사고도 가끔
일어나는데, 눈이 쌓여 있는 산에 복수초가 자라는 곳만 눈이 녹아 신기하다고
꽃을 만지거나 꺾다가 중독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병원도 멀고 해독제를
구하기도 힘든 산이 대부분이므로 경구 투입시 대부분 사망하며 이러한 독성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복수초(復讐草)라 잘못 알고 있을 정도이며, 뿌리는
강심제로 쓰이고, 전초는 이뇨제, 정신 안정제로 쓰인다고 한다.

이곳이 음지이고 추운 날씨 탓인지 바람꽃은 이제서야 얼굴을 내민다

복수초 군락지를 지나면서 개고생을 한다

초반부터 험한길을 헤치고 나가는데 순간의 잘못한
선택으로 힘든 산길을 걷는다...내가 선택한 自業自得인데
누굴 원망하겠는가...씨앗은 뿌린대로 거둔다고 하지 않았던가...

미끄러운 낙엽 사이를 조심스레 올라서 호남정맥 능선에 오른다

안부(09:10)

꾸무리한 흐린 날씨에 바람이 차갑다...직진의 윗쪽
봉우리가 호남정맥상의 439.4m봉이지만 정맥길이 아닌
지맥길을 걷는 범여에겐 올라갈 일이 없다...정상옆 사면으로
이어지는 편안한 낙엽길을 따라서 걸어간다

안부를 지나서 암봉으로 오르는데 음지라 그런지 아니면
조금 일찍 피는지는 몰라도 길마가지나무가 꽃을 피우기
시작하는데 무척이나 반갑구나...추운 겨울에 힘들게 지냈제?...
길마가지나무(꽃말:소박함)
산기슭의 숲 가장자리에 자라는 낙엽 떨기나무로 줄기는 가지가 많이
갈라지고, 높이 1-3m이며 잎은 마주나며, 타원형 또는 난상 타원형으로
가장자리에 거친 털이 나며 잎자루는 짧고, 거친 털이 난다.
꽃은 3-4월에 잎보다 먼저 어린 가지의 아래쪽 잎겨드랑이에서 2개씩 피며,
노란빛이 도는 흰색으로 포엽은 피침형이고 털이 나며 화관은 입술 모양이다.
화관 통부의 아래쪽은 불룩하고 열매는 장과이며 5-7월에 붉게 익는데
우리나라 전역에 자생히며 일본, 중국에도 분포한다.

암봉(09:13)

암봉에서 내려서니 지맥길과는 무관하게 우뚝솟은
호남정맥 능선의 무명봉이 나뭇가지 사이로 보인다.
사람팔자 참으로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다시 내가
이 길을 걸을줄이야...

우측에 있는 봉우리는 무시하고 편안한 사면길로 향한다

안부(09:20)
성리학자 기정진의 생가지가 있는 순창군 복흥면 대방리 용지마을에서
올라오는 완만한 임도가 보이고 산을 깍아내린 저곳 아래로는 897번
지방도(도로명 주소:추령로)가 밀재로 향하는 길이다...이곳 복흥면에는
대한민국 초대 대법원장을 역임한 가인(佳人) 김병로(金炳魯:1887~1964)의
생가가 있는 곳이기도 하다.
조선시대 고종때 사간원 간관으로 있었던 가인 김병로는 1919년 경성지방법원
소속 변호사로 개업하여 법정투쟁을 통한 독립운동을 전개한 인물로 일제의 탄압과
6.25의 어려움을 겪어면서 가인의 가문이 이처럼 지조를 갖춘 인물을 배출하게
된 것은 복흥면 하리 앞에 있는 명당의 힘이라고 전해오는데 일명 가마봉이라고
불리우는 이 산의 명당은 산 중턱 가인의 증조부 묘소가 자리잡고 있고 그 아래엔
뱀머리 즉 사두혈(蛇頭穴)에 해당하는 형국이 있는데 이 가마봉의 기운으로 인하여
초대 대법원장이라는 역사적인 인물로 남게 되었다고 하는 설이 전해진다.

벌목을 하고 다른 樹種으로 교체한 간벌목으로 담장을 쳐놓은
호남정맥길을 따라서 발길은 분기점을 향해 우측으로 이어진다

파묘(09:22)

오늘도 봄 기운이 돌기전인 잿빛길을 홀로 걷는다.
17년전 백두대간에 발을 들여 놓으면서 시작한 긴 여정...
끝나지 않은 이 길을 걷고 또 걷는다.
산경표(山經表)를 저술한 이곳 순창 출신인 여암 신경준(旅菴 申景濬:1717~1781)
선생의 역마살 일까, 아니면『대동여지도(大東輿地圖) 』를 펴낸 고산자 김정호
(古山子 金正浩:1804?~1866?)를 흉내는 것도 아닌데 어떨때는 내 자신도
나를 모르겠으니...
* 산경표(山經表)1책, 필사본으로 조선 후기의 실학자 여암 신경준이 저자로 알려져 있으며
1개의 대간과 1개의 정간, 13개의 정맥 등으로 조선의 산줄기를 분류했는데, 지금의
분류 체계와는 다르며, 15개의 산줄기는 백두대간·장백정간·낙남정맥·청북정맥·청남정맥·
해서정맥·임진북예성남정맥·한북정맥·낙동정맥·한남금북정맥·한남정맥·금북정맥·
금남호남정맥·금남정맥·호남정맥 등이다.
산지 분류가 강의 수계를 기준으로 되어 있고 국토 전체가 산맥으로 연결되어 있으며,
백두산을 출발점으로 하고 있는 점 등 선조들의 자연에 대한 인식 체계를 보여준다.
도리표 등을 함께 수록한 본도 있으며, 제목이 <산리고>·<여지편람>·<기봉방역지> 등
다르게 된 것도 있으며, 1913년 조선광문회에서 간행하여 널리 알려졌다. 규장각에 소장되어 있다
* 대동여지도(大東輿地圖) 는 1861년 김정호가 목판본으로 제작한 절첩분첩식의 전국
지도첩으로 22첩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현재 국내외에 30여 점의 『대동여지도』가 전해진다.
그중 성신여자대학교 박물관 소장본과 서울역사박물관 소장본,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도서가 보물로 지정되어 있으며 산지를 연결하여 그린 독특한 산악 투영법을 사용하였고,
기호를 이용하여 다양한 항목을 수록하였으며 특히 군사적 항목을 강조하였다.
조선 지도학의 최고봉으로 평가되는 중요한 지도이다.

저 앞에 보이는 묘지로 향하는 넓은 임도를 한동안 편하게 걷다가
넓은 임도를 버리고 우측으로 오르는데, 假墓인듯한 묘지로 오른다

가묘(09:25)
아무런 기록이 없으니 가묘(假墓:시신을 묻기 전에 임시로 만들어 놓은 무덤)인 듯
보이나 그건 어디까지나 범여의 개인적인 생각일 뿐이다

가묘에서 능선으로 올라서자마자 곧바로 내리막이다
호남정맥길을 걷는게 아닌데 가묘쪽으로 오르지말고
직진으로 갔으면 시간을 조금이나마 줄일수 있었겠다

안부(09:28)
안부에서 직진으로 오르는 길은 급경사로 빡세게 보이나
지맥길 분기점으로 향하는 길은 우측의 사면길로 향하는데
오늘은 아침도 먹지 못하고 두유 하나로 버티야 하는 저질 체력으로
초반부터 체력을 소진할 필요야 있겠나...당연히 사면길로 향한다

오름길에서 만난 현호색...방가방가...

사면길로 올라서니 길마가지나무꽃이 피기 시작하고
이곳은 양지인지 잡목들이 푸른빛을 띠며 산꾼들에게
시비를 걸 준비를 한다...선답자들의 시그널이 보이는데
많은 선답자들도 이곳으로 간 듯하고 호남정맥길을 걸으면서
축지법(?)을 잘 쓰시는 분들은 저 윗쪽의 봉우리를 띵가묵고
가기에는 더 없이 좋은 길이다

무명봉(09:37)
호남정맥 능선에서 내려오는 길과 합류하여 우측으로 향한다

능선 좌측으로는 추월산이 어렴풋이 보이니 분기점 다 온 느낌이다

조금은 지저분한 봉우리로 올라서니 분기점이다

황룡(병풍)지맥 분기점(09:40)
순창군 복흥면 대방리, 담양군 월산면 광암리와 용암리 경계에 있으며
분기점에서 담양군 월산면으로 들어서서 광암리와 용암리의 경계를
따라 우측으로 꺽어져 내려간다
처음부터 길을 잘못 들어서 개고생을 한데다가 복수초라는
꽃놀이패에 흘려서 헛짓거리 하는 바람에 예상했던 시간보다도
훨씬 많이 걸렸지만, 16년만에 찾아온 이곳에 대한 감회가 새롭다.
호남정맥을 걸을 때 이곳을 봄.여름.가을.겨울산악회라는 곳에서 왔는데,
그 당시에 레인저 회장님, 도강제 대장, 돌쇠대장, 똑소리났던 총무 레인보우라는
여인도 어찌 사시는지 궁금하구나...거기다가 기라성같은 배슈막, 경암, 덕산, 노바,
산조아, 하양님 등의 대선배님들, 나하고는 갑장인데 나보다 띠동갑정도 늙어
보였던 원일, 송영우님도 잘있는지 모르겠고, 후배였던 마카루, MK(정문교)도 보고 싶구나,
그 당시에는 애송이 냄새를 풀풀 풍기면서 선배들 따까리하느라
개고생했던 막내 아리송과 우진권 아우도 보고싶고, 특히 보고싶은
산꾼은 산에서 소주, 맥주 막걸리등 酒種를 가리지 않고 물 마시듯
술을 마시며 길을 걸으면서 죽이 잘맞았던 젠틀맨님이 많이 생각난다.
나도 내년 이맘때쯤이면 162지맥길이 마무리 될 듯 하다
지맥길 끝나면 뭘하지?...이제는 골프도 비거리가 적게나니
재미없고, 노인네라 우대해주는 파크골프나 치볼까
지금 그 산악회는 늙은이(?)들은 다 물갈이되고 새로운 산꾼들이라
90%이상 모르는 후배들이고, 내가 갈 일이 없을 것 같다...다들 어디에
살고 계시던 아프지 말고 부디 건강하게 사이소...아파보니 내만 서럽더이다.

인증샷

분기점에서 큰 형님인 호남정맥 가는 좌측
내리막길은 선답자들의 시그널이 잔뜩 걸려있으나...

직진으로 이어지는 황룡(신산경표상:병풍)지맥길은
그 흔한 선답자의 시그널 하나없이 낙엽만 쌓여있는
내리막길을 향해 지맥길의 첫 발걸음을 내딛는다

내리막길로 내려서자 좌측의 너뭇가지 사이로
담양군 월산면 광암리 계곡이 보이건만 오늘도
아침부터 흐릿한 미세먼지가 계속되니 멋진 산줄기를
보기는 틀린듯 하다

살다가 보면 문득 안부가
궁금해지는 사람이 있다.
어쩔 수 없이 비켜 간 사람
다 읽지도 못하고 접어버린 신문처럼
그 마음을 다 읽지도 못하고
접어버린 인연
살다가 보면 문득 그 사람을
다시한번 만나보고 싶은 순간이 있다

산다는 것이 그런거야
혼자만의 넋두리처럼 흥얼거리다가
다시 펼쳐보는 앨범 속 사진처럼
다시 걸어가 보고싶은
그때 그 길 그 사람
붉은 노을에 기대에
조용히 물들어가는 저녁무렵
그 어 그 가슴에 다시 기대어
한번 울어보고 싶은
살다가 보면
문득 그런 기막힌 순간이 있다
김경훈님의 ‘ 살다가 문득 ’ 中에서

산이 높아서 그런지 남도지방의 산임에도 불구하고
치가(?) 떨리는 잡목지대는 없고 낙엽만 무성하다
남도지방에서 이렇게 얼마만에 걸어보는 산길이냐?...

건너편을 바라보니 밀재 너머로 우람한 근육질을 자랑하는
추월이가(산) 나를 유혹하듯 내려다보고 있고, 그 옆으로
호남정맥 능선으로 이어지는 깃대봉과 상봉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데 상봉에서 담양호로 내려가는 산중턱에 있는 보리암이란
절집에 있었던 보리(菩提)라는 강아지 만난지가 16년이란 세월에
흘렀으니 아마도 生을 마감했는지도 모르겠다.
그 당시 기억으로는 스님이 법당에서 사시예불을 올리면 강아지도
추춧돌에 앉아 예불하던 모습이 아주 기억에 남았는데...生死를 모르니...

지난 겨울에 남도자방에서 걸었던 산과는 달리 북쪽이라 그런지
이곳은 아직까지 추운 느낌이지만 그런대로 걸을만하다

무명봉(09:52)
산행시작부터 전북 순창군 복흥면과 전남 담양군 월산면의
경계 능선을 따라서 걸었던 지맥길은 이곳부터 전북지역을
벗어나 지금부터는 온전히 전남 담양군 월산면으로 접어든다

칙칙한 회색빛 등로에 생강나무가 꽃을 튀우기 시작하구나
봄이 온다는 이야기인가?...그래도 올해는 그리 반갑지만은 않구나
지구촌 곳곳에서 나라마다 쌈박질 하느라 경기가 않좋으니 말이다.
경기가 좋지 않으면 나같은 자영업자들이 가장 먼저 힘들텐데
걱정이구나

좌측으로는 담양군 월산면 광암리 계곡이 보이고
광암제란 조그만 저수지 뒷쪽으로 광덕마을이 흐릿하게 보인다
광덕마을은 1590여년경에 형성된 마을로 처음에는 매입곡이라 부르다가
머더실로 불리웠으며, 고종 32년(1895)까지는 담양부 십팔곡면 덕림리라
하였고 동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담양군 광면에 편입되면서 광덕리로 개칭되었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담양군 월산면 광암리 광덕(廣德)마을이 되었다

암봉(09:57)

암봉에서 우측으로 내려가는데 등로에 쌓인 낙엽이 상당히 미끄럽다

등로가 조금씩 지저분해지기 시작한다

안부(09:59)

초반이긴 하지만 등로는 계속해서 완만하게 이어진다

올해도 어김없이 봄이란 계절이 돌아오고 진달래중에
성질급한 넘은 꽃봉오리를 터트리기 시작하는구나.
오늘따라 저 꽃을 보니 왠지 서글퍼지는 느낌이다.
장담이야 못하겠지만 해마다 돌아오는 봄날을 몇번이나
더 만날지도 모르겠다 생각하니 그저 눈물이 핑도는 느낌이랄까...
몸뚱아리 한번 망가지고 나니 자꾸만 나 자신이 나약해지고
서러운 생각에 눈물이 많아지고, 사람 만나는 걸 피하는 편이다
그래!...서러워 하지말자...석가도 갔고, 공자와 예수같은 聖人도
다 갔던 길인데 나 같은 微物衆生이야 말할 필요도 없지 않은가
어차피 한번왔다 한번 가는 길인데 삶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남은 삶은 순리대로 살아가 보련다

안부(10:03)

???

367.5m봉(10:26)

367.5m봉에서 바라본 추월산(秋月山:731.2m)의 모습
전남 담양군 용면과 전북 순창군 복흥면의 경계를 가르는
호남정맥상에 있는 산으로 담양읍 북쪽 14km 지점에
위치한 추월산은 지리산, 무등산, 월출산, 팔영산과 함께 호남의 5대
명산으로 꼽히는 산으로 옆에는 방장산, 금성산이 있다.
아름다운 경치와 울창한 수림에 약초가 많이나 예로부터 명산으로
불렸으며 진귀종인 추월난이 자생하는 곳으로도 유명한데
'하늘이 높아지는 가을이면 산봉우리가 보름달에
맞닿을 정도로 높게 보인다'하여 유래된 지명이라고 한다
추월산은 완만한 경사를 이루며 노송이 빽빽이 들어차 있는
울창한 숲을 거쳐 정상에 오르면 기암절벽이 산 아래로 펼쳐지는 담양호와
어우러져 절경을 이루는 곳으로 가까이 있는 금성산성과 함께 임진왜란 때 치열한
격전지였으며 동학농민운동 때에도 동학군이 마지막으로 항거했던 곳으로
추월산과 담양호가 만나는 지점에 국민관광단지가 조성되어 있다.

급한 내리막길이 나오고 이곳은 아침에 이불속에서
나오기 싫어하는 어린 아이처럼 잠에서 깨어날 생각이
없는 모양이다

우측에는 그리 크지않은 소나무들이 보이고 트랙을 확인하니
좌측으로 가라고 일러준다...트랙이 일러준대로 내려간다

근데 뭐여...지도상에도 없는 임도가 나오는데 도저히 정상적으로
내려갈 수 없는 임도라 이리저리 왔다리 갔다리 하면서 시간을
허비하고 내려갈 곳을 찾지 못하고 우측으로 향한다

한참을 버벅거리다가 겨우 길을 찾아서
지도에도 없는 임도로 내려간다

임도(10:36)
지도에도 없는 임도 아래에는 월산면 용암리에 속해있는 홍암마을이
보인다...홍암마을의 유래는 뒤에 있는 바위이름을 따 적암(赤岩)이라
하였는데 조선시대 후기에 홍암(紅岩)으로 바뀌었으며 고종 32년(1895)에는
담양군 광면에 속해 있었으며 1914년 행정구역 개편시 광면 능동, 남계마을을
합쳐 월산면 용암리 홍암마을이 되었다고 한다.

트랙에서 벗어났는지 트랙을 안내하는 여인의
앙칼진 목소리가 경로를 이탈했다고 난리부르스다

트랙상으로는 이곳으로 내려왔어야 했는데...

마루금에 복귀하여 흙으로 뒤집어 쓴 바지를 털면서 맥길을
이어가는데 동쪽으로 추월산이 계속 범여를 주시한다

임도 삼거리(10:45)
이 임도는 월산면 광암리 광덕마을(左)에서 용암리
홍암마을(右)로 이어지는 九折羊腸의 임도로 지도상에
표기가 되어있다.

조금전에 내가 지나온 임도는 2025년도에 신설된
임도인데 지도에는 아직 업데이터가 안된 모양이다

임도삼거리에서 능선으로 올라간다

무명봉(10:50)

아무런 방해나 간섭도 받지않고 默言修行하듯 산길에만 집중한다
* 묵언수행(默言修行)이란
佛家에서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하는 참선으로 말을 함으로써
짓는 온갖 죄업을 짓지 않고 스스로의 마음을 정화시키기 위한 목적이 있다.

무명봉(10:55)

등로는 서서히 꼬라지를 부리면서 지맥길의
本色능 드러내지만 산전수전 더 겪은 17년차
맥산꾼이 이런것에 쫄면 애초부터 걷지도 않았다

무명봉(10:54)

오전내내 날씨는 잔뜩 찌푸린 시어머니 얼굴처럼
흐린 날씨가 계속되고 간간히 바람마저 불어오니
살짝 추운 느낌이지만 그래도 이 먼곳까지 왔으니
걸어야지 우짜겠노...

직진으로 까칠한 봉우리가 보이고 낙엽 사이로 사면으로
이어지는 등로가 있는데 선답자들의 시그널도 사면길 쪽으로
보이기에 트랙을 확인하니 트랙도 사면길로 가라고 하는구나
갑자기 양넘 지갑줏은 느낌이랄까...기분좋게 사면길로 향한다

물개바위?...보는 산꾼마다 생각이 다르겠지

완만한 능선을 걷다보니 족보있는 364.4m봉에 도착한다

364.4m봉(11:20)

초반부터 등로는 크게 높지도 않고 오르내림도 생각보다
덜하지만, 아침 식사를 해결하지 못하고 산길을 걸으니
초반부터 체력에 부담이 오기 시작한다...베낭에서 초코렛과
알사탕 2개를 입에 넣고 오물거리면서 천천히 길을 걷는다

암봉을 지나 내려서니...

산수유의 사촌쯤(?) 되는 생강나무꽃도 꽃망울을 터트리기 시작한다

무명봉(11:23)

맥길은 우측의 내리막으로 향하고...

15년전쯤 저 산악회에서 몇개의 기맥길을 같이 했었는데
산에 관한한 무지막지한 기라성같은 산꾼들이 득실거렸던
그 산꾼들 사이에서 살아남은 범여가 이제는 이빨빠진 호랑이가
되었으니 가는 세월을 막을수는 없고...아!...무상한 세월이여.

그래 가는 세월을 한탄하지 말고, 운명에 순응하면서 살자...

무명봉(11:25)

계속해서 오르내림이 반복되는 지맥길
우리의 삶을 알기 위해서는 산만큼 좋은데가 더 있을까.
힘듬이 있으면 편안함이 있다는 걸 똑똑히 가르쳐 주는듯 하다

편안한 안부에 내려서자마자 또 다시 오르막길이 시작되고...

무명봉(11:29)

좌측의 추월산으로 이어지는 호남정맥길을
바라보면서 미끄러운 낙엽길을 따라서 내려서니
안부가 나오는데 지도상의 백골재라는 곳이다

백골재(295m:11:31)
전남 담양군 월산면 광암리 광덕마을에서 용암리 홍암마을로
넘어가는 고개인데 우측의 홍암마을쪽은 편백나무 군락지가
보이지만 좌측의 광덕마을쪽은 잡목만 무성하다.
조선시대에는 광암리가 담양군 남면에 속해 있었으나 그 이후에
월산면으로 행정구역이 바뀌었으며 ‘백골’ 은 ‘뱃골’ 을 말하며
‘산고을’ 이란 뜻이란다
예전에 민초들이 넘었던 고개인 듯 하나 인적이 끊긴지 오래된 듯
등로는 전혀 보이지 않고, 편백나무 숲 사이로 떨어진 나뭇잎만 수북하다

백골재를 지나서 오르막길로 향한다

점점 오름길이 힘이든다...아침을 먹지 못했고 베낭에는
마땅한 먹거리도 없다...잠시 베낭을 내려놓고 비상 식량으로
가져온 바나나 하나에다 물 한모금 마시면서 휴식을 취한 후에
다시 길을 떠난다

힘들게 능선에 오른 다음에 천천히 걷다보니
후손들이 찾지 않는지 관리가 안된 묵묘가 나온다

묵묘(11:42)

맥길은 계속해서 남쪽으로 이어지고 雨水, 驚蟄과 입춘 까지도
지났건만, 산길은 여전히 게으름을 피우면서 미동도 하지 않는다.

안부(11:44)

산행을 하면서 미세먼지는 좀 안봤으면 좋겠는데...

저 너머 보이는 추월산도 미세먼지가 괴로운가 보다.
미세먼지로 인해 갈수록 산행하기가 참으로 힘이 드는구나.
지난 12월에 2박 3일간으로 일본 후쿠시마 골프투어를
갔었는데 거기에 있는 동안에는 미세먼지 대신에 파란 하늘만
보며, 맑은 공기 마시며 라운딩을 했었는데, 이곳은 짱개들과
가까운 거리에 있어서 그런가?...이웃 잘못 만난 탓에 개고생이다

무명봉(11:48)

쬐끄만한 봉우리를 만나기 위한 오르내림은 계속된다

무명봉(11:49)

다시 내리막은 시작되고 낙엽길은 미끄럽다.
무심코 내려서다가 발을 잘못 디딘 탓인지
된통 꼬꾸라지는데 넘어졌다가 일어서는데
내 몰골을 내가봐도 웃음이 나온다

즐겁고 아름다운 추억만 간직하기에도
짧은 인생인데, 힘이들 때는 난 왜이리 어려운 길을
자초했을까 하고 나 자신에게 無言의 질문을 던져보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없다... 結者解之하라는 뜻인가 보다

남쪽으로 시야가 열리면서 신산경표상의 주봉 역할을
하는 병풍산이 우람한 근육질을 자랑하며 범여를 겁박한다

안부(11:55)

381.1m봉 갈림길(12:00)
이곳에서 우측으로 200여m 남짓 가면 삼각점이 있는
족보있는 381.1m봉이 있지만, 초반부터 체력이
떨어지고 담양에서 서울가는 버스 시간이 어찌될 지
몰라서 지맥길이 아니란 핑계를 이유로 과감히 포기한다
오늘 산길은 이름없는 조그만 봉우리가 의외로 많은 느낌이다
맥길은 좌측의 남쪽으로 이어진다

안부(12:03)

첫 단추가 중요하듯이 초반부터 산행 일정이 꼬이는 바람에
왠지 산행을 하고픈 의욕이 안 생긴다...느릿느릿한 걸음으로
걷는다...안내산악회를 따라왔으면 상상도 못할 일이나, 이것이
독립군(나홀로 산행)의 특권이 아닌가...

무명봉(12:07)

무명봉에서 동남쪽으로 내려서니 좌측의 나무가지 사이로
월산면 광암리 광덕마을이 어렴풋이 보이고 조그만 저수지도
얼굴을 내민다...희미한 등로를 따라서 내려오니 지도상에는
표기조차도 안되어 있는 능재라는 곳이 나온다

능재(315m:12:14)
전남 담양군 월산면 용암리와 광암리를 잇는 고개로 희미한 등로의
흔적만 보일뿐, 사람들이 다닌 흔적이라고는 찾아볼 수가 없구나
좌측은 광암리 광덕마을로 이어지고 왼쪽은 용암리 용금동 마을인데
반바지님의 코팅지가 없었다면 그냥 지나치기 딱 좋은 곳이며 지명의
유래는 알 길이 없다

능재에서 용암리로 내려가는 등로는 뚜렸하다

조금 힘들게 능선으로 올라서니 선답자의 시그널이
걸려있는 무명봉에 도착하는데 조용하던 바람이 또다시
불기 시작하나 날씨는 잔뜩 흐림에서 맑음으로 바뀌는
바람에 그리 추운줄은 모르겠다

봄을 기다리는 마음 / 신석정
우수도
경칩도
머언 날씨에
그렇게
차가운 계절인데도
봄은
우리 고운
핏줄을 타고 오고
호흡은 가빠도
이토록 뜨거운가
손에 손을 쥐고
볼에 볼을
문지르고
봄한 채
체온을 길이
간직하고픈 것은
꽃피는 봄을
기다리는 탓이리라.
산은
산대로 첩첩 쌓이고
물은
물대로 모여 가듯이
나무는 나무끼리
짐승은 짐승끼리
우리도 우리끼리
봄을 기다리며
살아가는 것이다.

걷다보니 묵은 임도를 만나고 텅빈 머리로 아무 생각없이
걷는다...1주일동안 世俗에서 찌든 때를 벗기기에는
산만큼 좋은데가 어디 있으라...걷고 또 걷는다

안부(12:23)

안부에서 쉬엄쉬엄 걷다보니 304.8m봉 산패가 보인다

304.8m봉(12:26)

등로는 끝마친 진도, 해남, 장흥, 강진, 함평, 영암, 나주지역의
지맥길에 비해서는 참으로 착하고 순수한 느낌인듯 하다...그렇지
않으면 지독하게도 개고생한 잡목길을 이겨낸 학습효과랄까?
그냥 편하게 걷는다

편안한 길을 따라서 옴팍한 고개로 내려선다

고개(12:34)
담양군 월산면 월평리에서 용금마을로 이어지는 고개인데
좌.우로 이어지는 등로는 뚜렸하며 아무런 표기가 없는
고개이나, 카카오 지도에는 능재골이라 표기가 되어있다

고개를 지나면서 고도를 높이기 시작하는 빡센 오르막이 시작된다

무명봉(12:39)

무명봉을 지나면서 고도차가 거의없는 등로를 따라서 맥길을
이어가는데 후손들이 돌보지 않은지가 오래되었는지 묘지의
봉분에 나무들이 많이 서 있는 걸 보니, 남의 일처럼 보이지 않아
안타깝다...그래!...서러워 하지마소...어차피 이 세상에
왔다가 자연으로 돌아가는 地.水.火.風의 이치라 생각하소.

안부(12:42~55)
오전에 길을 걸으면서 꼬꾸라질 때 바위 부딪힌 무릎 부위가 아파온다
엎어진 김에 쉬어 간다고 했던가 바나나와 두유로 원기를
보충하고 휴식을 취한 다음에 다시 길을 나선다

편백나무가 군락을 이루는 묵은 임도를 따라 가다가
임도를 버리고 좌측으로 향해서 오르막으로 올라서니
족보있는 326.3m봉이 나온다

326.3m봉(13:15)

326.3m봉을 지나면서 빡센 오르막이 시작되고 지맥길은
꼬라지를 부릴 모양이다...지맥길치고 양넘 지갑줏듯 편하게
걸어본 게 몇번이나 되었던가...운명이라 생각하고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한다.

빡센 오름길...숨이 끊어질듯한 밀려오는 통증에 미치겠구나
가던길을 멈추고 뒤돌아보니 조금전에 지나온
능선 뒷쪽으로 펼쳐지는 호남정맥길의 추월산과
깃대봉...보리암으로 내려가는 상봉이 파노라마를
펼치면서 힘내라고 격려를 하는 듯 하다

힘든곳은 얼추 지나온 느낌이다...능선으로 올라서니
생강나무꽃이 겨울잠을 끝내고 기지개를 펴고있고...

낙엽을 뚫고나온 현호색도 요염한 자태를 뽐내기 시작하는데
내 어이 요염한(?) 너의 유혹에 그냥 지나칠수는 없잖은가...눈맞춤을 한다

무명봉(13:40)

도마산으로 향하는 오르막길은 계속된다

등로 좌측으로는 담양군 월산면 월평리
들녘의 비닐하우스들이 많이 보인다
월평마을은 1666경 이웃 월선마을로 이주한 경주이씨 이석손의 후손 이경준이
마을 뒤편 서당골에 소나기가 자주 내리는 것을 보고 가뭄이 적을 것으로 생각해
이곳에 정착하게 되었다고 하며, 옛날에는 담양군이 산막곡면 또는 산면에 속하여
신평리로 부르다가 조선 말엽 월평리로 명했다.
월평마을 뒷산을 도마산이라 하는데 그 도마산 위에 국사봉이 높이 솟아 마을을
감싸주고 있고 도마산 밑에 ‘도리시암’이라는 옹달샘이 있는데 약효가 있어 병든
사람이 공을 들이고 씻는 사람마다 병이 나았다 한다... 이 샘물은 석간수로 아무리
가물거나 비가 많이 와도 물의 양이 일정하게 나오는 신비로운 약수이다.
샘이 훼손되었으나 마을에서 뜻을 모아 복원하였다고 한다

도마산의 전위봉인듯 암릉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암릉 사이를 곡예하듯 걸어간다

암봉(13:44)

도마산 가는 길

도마산(跳馬山:445.9m:13:46)
담양군 월산면 월평리와 용암리, 용흥리 마을의 꼭지점에 있는 산으로
정상에는 준.희 쌤의 산패와 선답자들의 시그널들이 주렁주렁 달려
있으나 주위의 조망은 별로이다...너무 힘들게 올라온 탓에 잠시 휴식을
취하는데 산이 높아서 그런지 바람이 차갑다
지명의 유래는 ‘산의 지형이 달리는 말과 같다’ 고 해서 붙혀진
지명이라고 하는데 오룩스맵 지도에는 ‘도’자를 ‘뛸 도(跳)가
아닌 ‘질그릇 도(陶)’ 로 표기가 되어 있는데 오류인 듯 하다.

인증샷

도마산 정상에서 좌측으로 내려서면서 지맥길을 이어가는데
좌측으로는 월평리의 마을들이 보이지만 우측은 그동안 같이
걸어온 월산면 용암리와 아쉬운 작별을 하고 용흥리로 들어선다

급경사로 내려오는 길은 겨울이라 낙엽이
등로에 수북하게 쌓여있어 미끄러워 애를 먹는다

도마산 내려오는 길에서 당겨본 신평마을의 모습
신평(新坪)마을은 처음에는 산막곡면 산막실로 불리다가 조선 현종 7년(1666)
월평마을이 생기면서 산면 신평리라 하였고, 그 후 옥천조씨가 들어왔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월산면 월평리 신평마을이라 하였으며, 1944년
일제 때 농지개량 사업으로 마을 뒤편에 저수지를 막아 월평제라 하였는데
통수관이 세워져 1952년 좋은 몽리답을 얻고 있다.
동편마을은 월평마을이고 남방으로 왕산마을이며 서편에 능재를 넘으면
홍암마을이고 큰재와 작은재를 넘으면 용금마을이요, 독굴재를 넘으면
도동마을이 나온다.
* 몽리답(蒙利畓)이란 인위적 수리 시설을 이용하여 벼를
지을 수 있는 논을 말하며 인위적 수리시설이 없어 자연적인
강수에만 의존하여 벼농사를 짓는 논을 천수답(天水畓: 물의
근원이 전혀 없어 빗물에 의지하여경작하는 논) 또는 천둥지기라 말한다.

파묘(13:57)

지저분한 등로를 걷느라 시간이 자꾸만 지체된다

안부(14:05)

지맥길은 자꾸만 꼬라지를 부린다

맥길은 반원형으로 빙 돌아가는 형태이다
우측 계곡 아래에 월산면 용흥리 도동마을이 보이고 그 뒷쪽의
들녘 가운데로는 바심재로 이어지는 15번 국도가 보인다

무명봉(14:11)

도마산에서 내리막길로 향한다

가야할 마루금을 보면서 계속 내려서니 안부가 나온다

안부(14:17)

안부에서 올라서니 枯死木이 시비를 거는 뚜렸한 등로 윗쪽
커다란 나무에 족보있는 303.4m봉 산패가 걸려 있는데
생각없이 무심코 지나가면 놓치기 쉬운 愚를 범할 수 있겠다

303.4m봉(14:22)

303.4m봉을 내려서니 예전에 벼슬을 하셨던 분이신지
가첨석(加檐石:빗돌이나 석등 따위의 위에 덮어 얹은 지붕 모양의 돌)을
쓴 나란히 내려서니 묘지 2기가 있는데 윗쪽은 선조이고, 아래쪽은 후손인듯 하다

통정대부 이경춘&숙부인 상주이씨묘(14:23)
비석에는 조선시대 당상관인 정삼품 통정대부 장악원정(正三品 通政大夫 掌樂院正)과
숙부인(淑夫人)상주이씨라 기록되어 있어 있는데 조선시대 정삼품(현재의 직급으로 따지면
1급정도인 차관급) 동반 문관에게 주던 품계이다...봉분앞 床石에는 贈 통훈대부(通訓大夫:
종삼품(從三品)당하관(堂下官:현재 직급으로는 2급정도이나 정삼품과는 신분차가 크다)
묘지를 조성한 연도는 광무11년(1907년)으로 되어있고 상석앞에 있는 향로석(香爐石)도
한껏 멋을 부려 이런데 관심이 많은 범여로서는 난생 처음보는 향로석이다
정삼품의 상계로서 통훈대부(通訓大夫)보다 상위 자리로 당상관(堂上官)의 말미에 있는
직급으로 정3품 당상관에 해당하는 관직으로는 도정(都正)·부위(副尉)·참의(參議)·
참지(參知)·도승지·좌승지·우승지·좌부승지·우부승지·동부승지·판결사(判決事)·
대사간·참찬관(參贊官)·부제학·규장각직제학·대사성·재주(祭酒)·수찬관(修撰官)·
보덕(輔德) 등이 있다.
경국대전 이후로 문관에게만 주다가, 대전회통에서는 종친(宗親: 임금의 4대손까지의 친족)과
의빈(儀賓: 임금의 사위)에게도 이 품계를 주었으며 장악원정(掌樂院正)은 궁중의 음악과
연회를 담당하던 최고 책임자였다고 하는데 요즘 직급으로는 악단장쯤 되었던 모양이다.
* 숙부인(淑夫人)은 조선시대 문무관 정3품의 당상관(堂上官)인 통정대부(通政大夫) ·
절충장군(折衝將軍)의 적처(嫡妻:본처)에게 내린 작호이다.

밑에 있는 묘지는 아들이나 아니면 후손들의 묘지인 듯 하다

묘지를 내려서자마자 안부가 나오고 도마산에서 내려와
이곳부터는 반원형을 그리면서 지맥길은 오르막으로 이어간다

안부에서 우측으로 올라서니 작은 도마산이라
불리는 족보있는 343.0m봉으로 올라간다

343.0m봉(14:33)
담양군 월산면 용흥리와 월평리, 중월리에 걸쳐있는 봉우리로 커다란
나무에 준희쌤의 산패와 선답자들의 시그널들이 홀로걷는 산꾼을 반긴다
지도에는 도마산 또는 작은도마산이라 기록되어 있다

343.0m봉 정상 4등삼각점(▲담양 427 / 1981 복구)

못생긴(?) 소나무들이 즐비한 능선으로 따라서 편하게 걷는데
오전과는 달리 나무사이로 내리쬐는 햇살이 따스하다

안부(14:40)

무명봉(14:43)

계속해서 반원형을 그리면서 맥길을 이어가는데 월산면 용흥리
도동마을 윗쪽으로는 지나온 도마산이 까칠한 모습으로 내려다 본다

안부(14:45)

등로 좌측 나뭇가지 사이로 담양군 월산면소재지가 보이고...

계속해서 편안한 길을 걸어간다

나의 인생행로 / 김삿갓
寒松孤店裡(한송고점리)
솔바람 차게 부는 쓸쓸한 주막에
高臥別區人(고와별구인)
한가롭게 누워있는 속세를 떠난 사람
近峽雲同樂(근협운동락)
산골이 가까우면 구름을 벗으로 삼고
臨溪鳥與隣(임계조여린)
물에서 가까우면 물새와 함께 사노라
치銖寧荒志(치수영황지)
내 마음 조금인들 거칠게 할까 보냐
詩酒自娛身(시주자오신)
시와 술로써 인생을 혼자 즐기련다
得月卽帶憶(득월즉대억)
달이 밝은 밤이면 시를 읊기도 하며
悠悠甘夢頻(유유감몽빈)
고운 꿈을 유유히 내 멋대로 키워 가리

무명봉(14:51)

아직까지 깊은 잠에 빠져있는 진달래 나무가지들한테
귀싸대기를 맞으면서 등로를 헤쳐 나가니 묵은 임도가 나온다

묵은 임도를 만나자마자 임도는 도동마을로
향하고 맥길은 임도를 버리고 오르막으로 올라간다

306.6m봉(14:58)

고도차가 없는 편안한 길을 걸으면서 바심재로 향한다

갈림길(15:06)
직진의 월산면 용흥마을로 이어지는 뚜렸한 임도를 버리고...

좌측으로 90도 꺽어져 급경의 내리막길로 맥길을 이어간다

낙엽이 푹신하고 급경사지역은 양지바른 곳이라 그런지
진달래꽃이 피는데 올해 처음보는 꽃이라 무척이나 반갑다.
저 너머로 보이는 산은 월평리 뒷산인 와룡산인듯 하다.
월평리(月坪里)의 지명은 월산(月山)마을의 ‘월(月)’ 자와 옥평(玉坪)마을의
‘평(坪)’ 자를 합하여 월평리라 하였으며, 월산마을, 옥평마을, 민재마을 등
3개의 자연마을로 구성되어 있다.
월산(月山)마을은 원래 민등마을이라 부르는데 민등의 뜻은 다른지역에 비해
나무가 없는곳, 즉 민둥산에 위치하니 민둥이라 한것인데 이를 한자로 표기하면서
독등(禿登)이라 하였고, 조선후기에 이르러 풍수지리상 마을형국이 ‘달형국’ 이라하여
월산마을이라 고쳐 부르게 되었다고 전한다.
1789년 호구총수에는 능주목(綾州牧) 남일면(南一面) 독등리(禿登里=민등리)로
기록되어 있으며, 1864년 대동지지에는 능주목 개천면(開天面), 1895년 5월 1일
전국행정구역개편에 의거 나주부(羅州府) 능주군(綾州郡) 단양면(丹陽面),
1896년 8월 4일 지방행정구역개편에 의해 전라남도(全羅南道) 능주군 단양면,
1912년 지방행정구역명칭일람에는 능주군 단양면 월산리(月山里)로 기록되어 있다.
1913년 능주군의 폐지로 화순군 단양면, 1914년 3월 1일 행정구역변경에 의해
화순군 춘양면(春陽面) 월평리(月坪里)(문치리, 옥평리, 월산리)로 편입되었다.

참으로 곱다!

올해 처음으로 만나는 진달래에 취해 생각없이 내려가다가
낙엽속 나무뿌리에 걸려서 급경사의 내리막길로 꼬꾸라지는데
한참동안이나 굴러 내려오니 정신이 없다...山神님이 보호해
주신 탓인지 다행히 다친데는 없지만 구입한 지 2달밖에 안된
스틱 하나가 완전히 뿌러져 버렸다...에공 아까운 거...
오늘은 2번이나 쳐박히는 사고를 경험한다

여기까지 미끄러져 내려오다 누군가가 쳐논 로프를 붙잡는
바람에 더 이상 안내려가고 멈추고나니 정신이 하나도 없다

미끄러져 내려오니 편백나무 숲이다

한참동안 멍하니 앉아 있다가 정신을
차린후에 다시 내리막길로 내려간다

편백나무 숲을 지나서 바심재 생태통로로 내려선다

바심재 생태통로(15:18)
담양군 월산면 용흥리와 월평리를 지나가는 15번
국도(도로명 주소:담장로) 위에 동물들을 이동을 돕기위해
만든 생태통로가 동물의 생태통로가 아닌 인간의 휴식처로
바뀌어 버린 느낌이다...통로에는 인간들의 휴식을 취하기
위해 시멘트로 만든 탁자와 의자가 있고, 거기다가 돌탑을
3개씩이나 조성되어 있는데 아무리 간이 큰 짐승이라도
못 지나갈 것 같다...인간의 利己心으로 망쳐버린 생태통로를
보면서 씁쓸함을 느낀다

생태통로에서 장성쪽을 바라보니 15번 국도옆으로
북하천이 살짝 보이고 그 뒷쪽으로 보이는 산이
월산(207.7m)인 듯 하다

바심재(155m:15:20)
전남 담양군 월산면 중월리 깍끼골에서 용흥리로 넘어가는 15번
국도(도로명 주소:담장로)가 지나는 고개로 예전에는 15번 국도가
이곳으로 지나갔으나 지금은 바로옆에 4차선의 15번 신국도가 생기는
바람에 사람들이 잘 찾지않은 잊어진 고개가 된 듯 하다
지명의 유래는 '마을 가까이 있는 고개’ 라는 뜻으로 '바순(밧운)재'가 변한 듯하고,
소심치(所心峙)라고도 부르기도 하는데 "쉴만한 고개", "마음을 내려놓는 장소"라는
뜻인지 정확한 유래는 알 수가 없길이 없다.
15번 국도를 따라서 북쪽으로는 백양사와 장성호로 이어지며 1949년
무장공비 출현 때 전사한 전투경찰들의 넋을 기리는 충혼탑이 있다.

바심재 충혼탑(忠魂塔) 안내판
1949. 2. 28. 새벽 월산면 용흥리 죽림마을에 무장공비가 출현했다는
신고를 받고 담양경찰서 경찰관 38명이 긴급출동 하던중 바심재 정상에
이르렀을 때 은신중인 무장공비들의 습격을 받아 필사적인 응사에도
불구하고 경찰관 33명과 일반인 운전사 2명이 전사하였다.
이에 바심재 전투 현장에서 순직한 호국전몰영령들의 얼을 추모하고
그 넋을 위로하고자 1988. 4. 16. 추모탑을 건립하였다.

오늘은 비록 짧은 구간으로 마무리한다...들머리로 향하는 접근성이
불편했고 이런 저런 사연으로 인해 산행이 많이 늦어졌다
여기서 산행을 정리한 다음에 담양 택시를 호출하니 10분도
안되어서 택시가 도착하고 담양버스터미널로 향한다

담양공용터미널(15:35)
담양은 광주가 지척에 있어서 그런지 광주로 가는 버스는
2~30분 간격으로 있으니 교통은 상당히 좋은 편이다...그리고
17시에 담양을 출발하여 정읍을 거쳐 서울로 가는 버스가
있어서 매표소에서 예매를 하려니 표를 파는 아지매가 하는 말...
전산에 오류가 생겨서 표를 팔 수가 없다고 하면서 고속버스
기사에게 현금이나 카드로 버스를 타란다...뭔 강아지 풀뜯어 먹는
소리랑가...그러면서 손님이 없으니 충분히 탈 수 있다고 하는
말에 현혹되어 굳게 믿고 근처 식당으로 향한다

10,000원짜리 오리탕을 시켰는데 반찬이 무려 10가지이다
남도지방의 음식 인심은 참으로 넉넉하다...여유롭게 밥에다가
반찬까지 딱 다 비우는 아침겸 늦은 점심을 해결하고 화장실에
가서 씻고 옷을 갈아입은 다음에 다시 터미널로 향한다

터미널에 도착하니 서울가는 버스가 서 있고 사람은 아무도 없다
누구한테 물어볼 수도 없고 멍하니 차 앞에서 기다리다가
젋은 친구에게 표를 샀냐고 물어보니 매진이라고 한다.
참으로 황당하다... 하는 수 없이 16시 50분에 출발하는
311번 버스를 타고 광주로 향한다

광주로 가는 311번 담양버스도 거의 滿車 수준이다.
이 버스는 담양의 몇군데를 지난 다음에 고속도로를 달리다가
고속도로를 빠져나와 광주시내 구석구석을 거친 다음에
광주터미널 밖 버스 정류장에 도착한다...담양에서 광주까지
1시간 가까이 걸린 셈이다

다음 구간에 이곳 버스 정류장에서 버스를 타야할 모양이다

광주 유스케어 터미널(17:48)

광주발 → 서울행버스표

참 어렵게 황룡(병풍)지맥 1구간을 끝내고
서울가는 버스에 올라 깊은 잠에 빠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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