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산행일시: 2026년 04월 05일
☞ 산행날씨: 흐린날씨에 약간의 안개...오후에 맑음
☞ 산행거리: 도상거리 14.2km / 9시간 30소요(놀멍 쉬멍)
☞ 참석인원: 나홀로 산행
☞ 산행코스: 대치(한재)- 암봉- 안부- 병봉산 갈림길- 암봉- 무명봉- 암봉- 병봉산
다시 병봉산 갈림길- 잿막재- 쉼터의자- 폐헬기장- 697.6m봉(천봉)
돌탑봉- 안부- 612m봉- 묵묘- 불태재- 한재골 갈림길- 무명봉
마당바위- 조망봉- 암봉- 안부- 서동마을 갈림길- 무명봉- 암봉
안부- 불태봉- 안부- 무명봉- 갓봉- 안부- 무명봉- 안부- 무명봉
무명봉- 안부- 무명봉- 안부- 660.9m봉- 조망바위- 무명봉- 안부
659m봉- 학동갈림길- 성틀재- 무명봉- 폐헬기장- 깃대봉(604.2m)
쉼터- 안부- 무명봉- 불태산- 안부- 581m봉- 큰재- 갈림길- 장성3터널 위
무명봉- 안부- 암봉- 안부- 귀바위- 안부- 무명봉- 암봉- 535.4m봉
제봉산갈림길- 안부- 이재산성?- 2층 팔각정- 영일정씨묘- 안부- 갈림길
고개- 201.8m봉- 첫번째 군사도로- 211.8m봉- 두번째 군사도로
안부- 199.4m봉- 안부- 무명봉- 안부- 벙커봉- 묵은 도로- 무명봉
탐진최씨 문중제단-사라치(밤실재)
☞ 소 재 지: 전남 담양군 대전면 / 장성군 북하면, 진원면, 장성읍
잡목이 올라오기 전에 남도지방에 있는 지맥길을 끝내려니 맘이 급하다.
지난 겨울에 주말마다 눈, 비가 자주 내리는 바람에 자꾸 지체되다 보니
어느듯 봄이 시작되고, 이번달까지만 남도지맥을 하고 잠시 중지한 다음에
5월부터는 경북 북부지방의 산행을 하고 잡목의 氣가 꺽일 즈음인 11월에
다시 내려오려고 한다... 지금 시작하는 황룡(신산경표상:병풍)지맥과
지난 여름에 잡목의 저항이 심해서 마지막 구간을 남겨둔 지석(신산경표상:분적)
지맥을 끝내고 5월부터는 울진에 있는 지맥길을 시작할 계획이다.

오늘 산행구간의 지도

서울발 → 광주행 버스표

황룡(병풍)지맥 3번째 구간을 하기 위해서 새벽 01시에 광주로 출발하는
버스를 타고 집을 나서 터미널에 도착하니 0시 10분정도...

광주 유스케어 터미널(04:05)
생각보다 버스가 조금 빠르게 도착한 듯하다.
지금 아침밥을 먹지 않으면 하루종일 밥을 굶어야 하기에 대합실 내에
있는 자주가는 설렁탕집에서 밥맛이 없지만 억지로 설렁탕 한그릇을
비우고 지난주 대치(한제)에서 타고온 택시를 미리 예약한 탓에 05시
30분에 광주터미널을 출발하여 오늘 산행 들머리인 대치로 향한다.

대치재(大峙:395m:05:58)
담양군 대전면 평장리와 백양사로 향하는 장성군 북하면 월성리를 잇는
고개로 담양에서 장성군 내장산국립공원 백양사지구로 가는 길목이라
그런지 차량 통행량도 많고 수도권, 충청도로 가는 길목이기도 한 고개이다
지난주에는 대낮이라 길가에는 차량들이 엄청나게 많았었는데 지금은
새벽이라 그런지 寂寞江山이다
대치(大峙)는 큰 고개로 한재라고도 부르며 한재 토끼탕이 유명한 곳이기도 하며,
이곳에 담긴 국경 표지석 설화와 관련하여 한재골 잿막을 기점으로 광주군 삼각산까지
일직선으로 큰 돌이 중간 중간 서 있는 것을 지금도 볼 수 있다고 하는데 난 보지 못했다
전설에 의하면 대전 들판을 중심으로 먼 옛날 평야의 쟁탈전이 벌어졌는데 일진일퇴,
승부의 勢가 백중세라 긴 세월 전투에 지쳐 협상 끝에 양측이 불가침의 표지석을 세웠다는 것이다.
증거로 대치 서쪽 진등 땅을 파보면 청룡도, 장창, 투구와 같은 무기가 발굴되었다고 한다.

택시에서 내리니 黎明은 시작되나 지난주에 도롯가를 꽉매웠던
자동차는 한 대도 안보이고, 지난주에 국수를 먹었던 비닐하우스도
아직까지 잠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있다...그나마 다행인 건 전번주에
이곳 어느 농장주가 제공한 꿀팁으로 담양을 안 거치고, 이곳으로
왔으니 2시간정도 시간적 여유를 번 셈이다

도로가 지나가는 고개이긴 하지만 고도가 꽤 높은 곳이라
생각보다 추운편이다... 산행준비를 끝내고 길을 나선다(06:10)

오르막길에 백두사랑 이대장의 시그널이 땅바닥에 나뒹군다
살려서 나무에다 걸어보려고 했는데, 어느 넘의 소행인지
걸이까지 찢어버린 바람에 살릴 방법이 없어서 포기한다

지난 구간에 이곳까지 왔으니 엄격히 말하면 오늘의 산행들머리는 이곳이다
세월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많이 망가진 통나무 계단으로 오르는데
어제 이 지역에 내린 비의 영향인지 낙엽이 젖어있지만, 공기는 상큼하다

날은 밝았지만 이른 아침이라 그런지 미세먼지는 여전하고
동북쪽으로 보이는 삼인산은 잠에서 깨어나 기지개를
켜고 있다

낙엽속에서 얼굴을 내밀고 있는 제비꽃과 이른 아침 인사를 나눈다.
어르신...어디로 가시나요? 하는 질문에 '산에가죠' 하고 답변을 한다

빡센 오르막길...비에젖은 낙엽탓에 애를 먹는 범여에게 여영님께서
격려를 보낸다...한번도 직접 뵌적은 없지만 감사합니다

부지런함과 게으름의 차이...부지런한 진달래는 벌써 滿開를
시작했지만, 게으른 넘은 아직도 깊은 잠에 빠져 있구나

암봉(06:45)

북동쪽을 바라보니 홍길동우드랜드는 미세먼지에
갇혀 버렸고, 월산저수지만 희미하게 보인다

안부(06:50)

우리나라 지맥은 물론 분맥, 단맥산행에 관한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신경수선생님의 반가운 흔적을 만난다...잘 계시죠?

병봉산 갈림길(06:54)
이곳에서 보두산 정상 0.4km라는 이정표가 서 있다.
잠시 망설여진다...왕복으로 계산하면 시간이 꽤 걸릴것 같아
포기하려 했지만 광주에서 대치까지 다이렉트로 왔기에
2시간정도 시간을 번 것 같아서 갔다오기로 하고 이곳에다
베낭을 벗어놓고, 스틱만 가지고 보두산 방향으로 향한다

오르자마자 올망졸망한 봉우리가 나오고...

암봉(06:57)

또다시 내리막길의 안부...비가온 뒤끝이라 상당히 미끄럽다

무명봉(06:59)

암릉을 지나면서 다람쥐 챗바퀴 돌듯 등로는 이어지고...

여인의 乳頭처럼 생긴 봉우리에 올라서니 이제
피기 시작하는 진달래가 산꾼을 격하게 환영하지만
안개가 시샘을 하는지 짙게 밀려오면서 훼방꾼 노릇을 한다

짙은 안개가 훼방을 놓는다고 해서 우리 사이가
쉽게 끊어진다면 진달래에 대한 예의가 아니지...

비에젖은 암봉으로 오르는 길은 상당히 미끄럽다
오르막길에 미끄러지는 바람에 바지에 흙이 잔뚝 묻었다

암봉(07:06)

또 미끄러질까봐서 아무런 생각도 않고 산행에만 집중한다

암봉에 올라서니 비 온뒤의 안개가 너무 짙어 아무것도
안 보이지만 지난주와는 달리 공기만은 상큼하다
정상에 올라서니 커다란 나뭇가지에 준.희쌤의 산패가
걸려있는 병봉산 정상에 도착한다

병봉산(屛峰山:687.4m:07:11)
담양군 대전면 평장리와 장성군 북하면 월산리,장성읍 유탕리의 경계에
있는 산으로 북서쪽 아래로는 홍길동우드랜드와 월성저수지가 있고,
북쪽으로는 지난주에 걸었던 병풍산 능선들은 모든게 흐릿하여 아쉽기만 하다
오룩스맵 지도에는 병봉산으로 기록되어 있지만 카카오 지도와 이정표에는
보두산(寶頭山)으로 기록되어 있으며, 병장산(兵藏山), 불다산(佛陀山) 등 여러
이름으로 불리는 산이라 상당히 헷갈린다.
지명의 유래는 여러 봉우리가 겹겹이 이어지며 병풍처럼 둘러선 모습을 하고 있어
병봉산이라 하고, 장성 일대가 군사적 요충지라 군사를 숨겼다는 의미의 병장산으로도
불린다고 하며, 보두산은 '보배로운 산의 머리' 라는 의미로 풍수적으로 중요한 산이라는 뜻이다.

어느 넘의 쉬키가 이 못된 짓을...
준.희쌤의 산패만 제외하고는 선답자들의 시그널을
복원도 못 시키게 다 잘라 버렸다.. 그리고는 치우지도
않고 방치되어 있어 흉물스럽게 보인다

병봉산에 잠깐 머물다가 왔던 길을 되돌아 간다

오늘 내가 걸어야 할 불태봉으로 이어지는 능선은 환상 그 자체다

되돌아 가는 길에서 바라본 병풍산 능선의 모습

다시 병봉산 갈림길(07:28)
이곳부터는 우측은 지난구간 병풍산을 지나면서부터 같이해온
장성군 북하면 월산리와 작별을 하고 장성읍 유탕리로 들어서지만
우측은 계속해서 담양군 대전면 평장리와 같이한다

병봉산을 갔다온 후 베낭을 메고 다시 지맥이란
길을 찾아서 내려가는데 화사하게 핀 진달래가
격하게 환영파티를 열어준다

세속에 사는 衆生들의 세계에서는 뭔가를 채우기 위해서는
계속 움직이면서 일을해야 하지만 산은 가만두어도 저절로
채워지니 참으로 이이러니하고 오묘한 세계인 듯 하다

지난 겨울의 차디찬 北風寒雪을 이겨낸 산에는 새싹이 돋아나고 있다

폐헬기장인지 묵묘인지 가늠이 안되는 넓은 공터를 지나니...

좌측에는 호화묘지가 조성되어 있고, 후손들이
성묘와서 쉴수있는 정자를 바라보면서 임도로
내려서니 임도끝이라는 팻말이 서 있는 잿막재로
내려선다

잿막재(445m:07:47)
담양군 대전면 평장리와 장성군 장성읍 유탕리 경계에 있는 고개로
←보두산 1.5km, 천봉 1.7km →, 임도 종점이라 표기된 이정표가 서있는
있는 이곳을 잿막재라고 하는데 지명의 유래는 알 길이 없고, 이곳까지
자동차가 올라오는지 승용차가 한대 보이고, 쉼터의자가 산꾼을 반긴다.

대치(한재)에서 병봉산을 갔다가 내려온 것이 워밍업이라면
이곳부터가 본격적인 오늘 산행이라 보면 될듯 하다...지난주에
무릎통증만 없었서 이곳까지 왔더라면 오늘 산행이 조금은
수월했을텐데...인연이 안되니 우짜겠노...

이곳의 산들은 서서히 물이 오르는지 푸른색을 띠기 시작하고
生氣가 돌기 시작한다...그래 걱정한다고 해결될 건 아닌데
뭘 고민해...힘이야 들겠지만 오늘도 기분좋게 걸어보자꾸나

완만한 통나무 계단을 지나...

본격적인 오르막이 시작된다

나무계단을 오르다가 뒤돌아보니 대치재가 보이는데
마치 진하게 우려낸 곰탕국물을 뿌려논 듯 미세먼지가 심하다

병봉산 오르면서 몸뚱아리가 예열된 탓인지 생각보다
숨소리가 덜 가쁘다...천천히 내 페이스대로 걷는다

쉼터의자(08:15)

잿막재에서 천천히 오르다보니 능선에 오르는데 이곳부터는
당분간 편안한 능선으로 이어질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나뭇가지로 보이는 병봉산과 병풍산으로 이어지는
능선은 정말 멋져보이는데 오늘은 아니올씨다
고도가 많이 높아졌다...잠시 쉬어가라고 배려하는 길같다

마음안에 지혜로운 길 / 이외수
길을 가는 데 가장 불편한 장애물은
자기 자신이라는 장애물이다
험난한 길을 선택한 인간은
길을 가면서 자신의 욕망을
버리는 일에 즐거움을 느끼고
평탄한 길을 선택한 인간은
길을 가면서 자신의 욕망을
채우는 일에 즐거움을 느낀다
전자는 갈수록 마음이 너그러워지고
후자는 갈수록 마음이 옹졸해진다
지혜로운 자의 길은 마음안에 있고
어리석은 자의 길은 마음 밖에 있다
아무리 길이 많아도 종착지는 하나다.

폐헬기장(08:33)

완만한 길을 편하게 올라간다
지난겨울 영암, 나주, 함평지역의 지맥길에서
잡목들에게 지독히(?) 괴롭힘을 당했던 기억을
지우기에는 더없이 좋은 길이다

빗물을 머금은 하얀제비꽃의 격한 환영을
받으면서 봉우리에 올라서니...

정성스런 돌탑 3개가 또 환영을 한다

697.6m봉(天峰?:08:35)
장성군 북하면 유탕리와 담양군 대전면 평장리의 경계에 있는 봉우리로
정상에는 담양군에서 설치한 이정표에 "천봉"이라 표식이 되어있고
커다란 나무에서 오래전에 설치했는지 고도도 맞지않은 여영님의 산패도
보이고 정성스레 쌓은 돌탑과 쉼터 의자 2개가 있다.
오룩스맵 지도에는 697.6m봉이라 기록되어 있지만, 카카오 지도에는
아무런 표식조차도 없는 무명봉이다...천봉이란 지명은 담양군 사람들만
부르는 모양인지...이곳 천봉에 대한 자료는 없는데, 높은 봉우리란 뜻인
모양이다(범여의 생각 中에서)

이곳을 지나면서부터 본격적인 암릉이 시작될 모양이다
잠시후에 걸어야 할 능선들이 근육질을 자랑하며
나뭇 가지 사이로 보이기 시작한다

조금씩 고도를 낮추면서 맥길을 이어간다

돌탑봉(08:38)

가던 길을 멈추고 뒤돌아보니 삼각뿔처럼 생긴 멋진 봉우리가
얼굴을 내미는데 지난주에 걸었던 투구봉(장성에서는 신선대라 부름)이다.
장성 사람들이 왜 신선대라 부르는지 알 것만 같은 신비로운 봉우리다.
우측의 삼인산은 수줍은 듯 구름속에 숨어버렸고, 그 뒷쪽의 병풍산은
뭔 꼬라지가 났는지 아예 흔적조차 안 보인다

내리막길 좌측에 있는 대전면 평장리 한재골에
있는 대야저수지도 흐릿하기는 마찬가지다

일반 등산객들이 다니는 제도권 등로와 겹치는
곳인지 지맥길 등로치고는 고속도로같은 느낌이다

안부(08:45)

자기야말로 자신의 주인이고
자기야말로 자신의 의지할 곳
그러니 말장수가 좋은 말을 다루듯이
자기 자신을 잘 다루라.
"법구경"의 좋은 말씀 중에서

잠시후에 시작될 거친 암봉을 걷기위해 체력을
비축하라는 배려인지 잠시지만 편안한 오르막으로 향한다

612m봉(08:49)
예전에 제작된 지맥길 지도에는 612m봉으로되어
있으나 국립지리원에 표기된 등록된 공식적인 봉우리는 아니다.

세월이 왜 이리도 빠른지 새해를 맞이한 지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4월하고도 5일이나 지났다...오늘이 청명이고 내일이
한식이라 원래 계획은 오늘 시골의 부모님 산소에 갔다올 예정인데
시골의 집을 관리하는 조카가 바쁘다고 해서 민폐가 될까봐서
여름으로 미루고 산을 왔지만 마음은 그리 편치가 않구나

묵묘(08:50)

내리막으로 내려서는데 앙증맞은 바위들이
보이고 본격적인 암릉 산행이 시작될 모양이다

불태재(08:55)
장성읍 유탕리 절안골 용초폭포와 대전면 평장리 한재골을 넘나드는 고개로
산죽만 무성하고, 고개마다 표시를 하는 반바지님의 코팅지도 안보이고
선답자들의 시그널도 한장 안보이며, 장성이나 담양으로 이어지는 양쪽 모
두 등로가 전혀 보이지 않으나 오룩스맵상의 지도에는 이곳을 불태재로
표기되어 있는데, 불태산으로 오르는 곳에 있는 고개라는 모양이다

불태재를 지나니 누굴 애타게 기다리는지
쉼터의자 2개가 보이는데 나라도 앉아 쉬었으면
좋으련만 느림보라 부지런히 걸어도 남의 절반밖에
못가는 산꾼이라 미안하구나...나도 한때는 남들한테
뒤처지지 않았는데 아!...세월이 무심하구나.

쉼터의자를 지나 오르막길을 오르는데 썩어
문드러진 통나무 계단이 엄청 불편하다

한재골 갈림길(08:58)
담양군 대전면 평장리 한재골로 내려가는 산사면에
담양군에서 설치한 이정표에 이곳을 불태재라 표기를
해놔서 맥산꾼으로서는 상당히 헷갈린다...담양군은
지도에 게재된 자료를 확인도 하지 않는지?...
쌩뚱맞은 이정표에다가 또하나 어이없는 건 불태산 방향으로
등산로가 아니고 사격장 위험이란 표기를 해놨는데 가라는 건지
말라는 건지...참으로 어이가 없다...예전에 불태산쪽에 군부대
사격장이 있었던 모양이다.

좌측의 한재골로 내려가는 길은 안전로프를 쳐놨어
편하게 내려갈 수 있겠다

무명봉(09:00)

무명봉에 올라서니 잠시후에 가야할 불태봉이 시야에 포착된다
저 봉우리가 오늘 걷고있는 구간중에 가장 높은 산이다

세월이 흐르면서 삶이 내가 의도한데로 되지는 않았지만
17년간 이어져 온 산에 대한 열정은 변하지 않았다

조금전에 지나오면서 본 담양군의 불태재 이정표를 본 걸
생각하니 헛웃음이 나온다...이렇게 좋은길을 등산로 없음이라니...
민초들이 낸 세금으로 먹고사는 자들이 자료와 현장확인도
안하고 卓上空論으로 하는 짓거리는 이제 그만하시죠.

봄이 시작되었는지 성질 급한(?)
넘들은 초록옷으로 갈아입고 있다

불태봉 가는 길
아직까지 과하지도 모자라지도 않은 길을
따라서 편하게 걸어가고 있는데 지난주에
참으로 고생했던 무릎은 주중에 한의원을
다니면서 치료한 탓인지 아프지는 않다

마당바위(09:03)

본격적인 암릉구간이 시작될 모양이다...마음의 준비를 한다

등로가 조금씩 거칠어지기 시작하나
지맥길이 이 정도면 고속도로인 셈이제...

조망봉(09:11)

조망봉에서 오늘 내가 걸어왔던 길을 뒤돌아 본다
이른 아침에서 지나온 병봉산에서 잿막재로 내려오는 뒷쪽으로
898번 지방도가 보이는데 지난주와는 달리 도로 주변에는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어있고, 그 뒷쪽으로 보이는 병풍산은
이 지역의 뎃빵으로서 충분한 가치가 있는 산이다

등로에서 바라본 장성군 장성읍 유탕리 계곡의 모습

완만하게 고도를 높히면서 오르는 길의 등로 주변에
진달래 군락지가 보이나 지난 겨울의 변덕스런 날씨
탓이었는지 아직까지 겨울잠에서 깨어날 생각이 없는 듯 하다

안부(09:21)

뭣에 홀린듯 또 다시 가던길을 멈추고 또한번 뒤돌아 보니, 아침에
앞이 안보일 정도로 짙은 안개인지, 미세먼지인지 존재조차
확인이 안된 물체가 많이 옅어졌으나 아직까지 맘에 들지는 않는다.
우측으로는 삼인산 능선이 가지를 치며, 담양군 수북면 들판으로
향하고, 저 앞에 옴팍하게 보이는 대치(한재)에서 올라서 투구봉,
병풍산, 천자봉을 넘어 좌측의 이어가는데 흔적조차 안 보이는
저 곳이 이 지맥길의 분기점인 듯 하다

서동마을 갈림길(09:26)
우측으로는 장성읍 유탕리 서동(西洞)마을로 가는 이정표가 있다.
병봉산과 불태산 서쪽 자락이 포근히 감싸고 있는 장성읍 유탕리에 속해있는
서동마을은 김해김씨가 500년 전에 형성한 마을로 원래 운동(雲洞) 이었으나
서골과 상동으로 분리됐다가 해방 후 서동으로 개명되었으며, 한국전쟁 때는
70세대가 모두 전소되는 수난을 당했다고 한다.

걷고 또 걷는다...바람을 피할 수 있는 양지바른 곳에서
제비꽃을 보면서 나 자신이 자연의 일부임을 同化되는 느낌이다

무명봉(09:27)

난 사진을 스마트폰으로 잘 안 찍는다...베터리 소모도 많기고 하고
그러나 오랫만에 스마트폰으로 사진을 찍어보니 훨씬 깨끗하구나
3년정도 사용한 똑닥이 카메라를 바꿔야 할 듯 싶다.
등로에서 바라보니 꽤나 큰 저수지인 대야저수지와 풍요로운
대전면 들녘이 보이고, 좌측의 뾰족한 봉우리가 용구산
능선에서 수북면으로 내려가는 능선에 있는 투구봉이고
대치(한재)로 이어지는 도로는 벚꽃길로 변해 버렸고, 대야저수지
주변으로 보이는 카페와 음식들도 많이 보인다
그 뒷쪽으로 이어지는 호남정맥 능선은 구름속에 숨어 버렸지만
夢幻的인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다

암봉(09:29)

가야할 불태봉 정상이 코 앞이다...오늘 지맥길을 걷다보니
남쪽과 북쪽이 확연히 다른 느낌이다...남쪽인 담양쪽은
까칠한 암릉구간의 연속이고, 북쪽인 장성쪽은 한없이
부드럽고 유순한 陸山처럼 보인다

안부(09:32)

불태봉으로 올라서는 길에 서북쪽으로 바라보니 장성호의
끄트머리가 살짝 얼굴을 내밀기 시작하며, 그 뒷쪽으로
홍길동의 고향으로 알려진 장성읍내가 보이는구나.
그 뒷쪽으로는 10여년전에 영산기맥 분기점인 순창새재부터 걸어서
입암산, 장성갈재, 방장산, 축령산으로 이어지는 능선은 흔적조차
안보이니 많이 아쉽다.

불태봉(佛台峰:729.4m:09:40~45)
담양군 대전면 평장리와 서옥리, 장성군 장성읍 유탕리의 경계에 있는
봉우리로 정상을 암릉으로 되어 있으며, 불태봉 정상석과 추락주의 안내판,
앙증맞은 돌탑이 하나 서 있으며, 남측으로는 담양군 대전면 들녘 너머로
광주의 진산이라는 무등산 꼭대기가 구름사이로 얼굴을 내민다
오늘 산길중에 고도가 가장 높은 산으로 카카오 지도에는 불태산으로
기록이 되어 있지만 오룩스맵 지도에는 729.4m 라고만 표기되어 있다.
담양이나 장성이나 불태봉에 관한 지명은 찾을수가 없으며 口傳에
의하면 이곳에 있었던 군부대 사격장에서 하도 불이 많이나서 불태봉이라
불렀다는 우스개소리도 전해지는 봉우리다

온 사방이 다보이는 그야말로 일망무제의 산으로 대전면 들녘 너머로
무등산 정상이 구름사이로 얼굴을 빼꼼이 내미는 모습이 마치 숨바꼭질하는
꼬마처럼 천진난만한 모습이다...좌측으로는 담양군 가사문학면이 보이고
그 뒷쪽으로 이어지는 호남정맥 능선도 숨어 버렸다

불태봉에서 바라본 지난 구간의 병풍산 스카이라인

앙증맞은 불태봉의 돌탑을 바라보며...

다시 길을 나선다

가야할 암봉 뒷쪽으로 광주시내가 시야를 드러낸다

안부(09:48)

다시 빡센 오르막길은 시작되고...

길은 걸어 가봐야 길을 알게 되고 산은
올라 가봐야 그 산이 험한 줄 알게 된다
길이 멀어지면 말의 힘을 깨닫게 되고
산이 높아지면 공기의 소중함도 깨닫게 된다

무명봉(09:51)

계속되는 암릉길

암릉을 우회한 후 로프를 부여잡고 또다른 암릉으로 올라선다

갓봉(721m:09:58)
담양군 대전면 평장리와 장성군 장성읍 유탕리 경계에
있는 암봉중에 하나인데, 지도상에는 아무런 표식조차
없는 무명봉인데 선답자의 산행기에는 갓봉으로 등장하지만
오룩스맵 지도와 맥산꾼들의 지도에도 표식이 없는 봉우리다.

갓봉에서 바라본 가야할 지맥길 능선의 모습
설악산이나 땅끝기맥의 주작, 덕룡의 명성에 비할바는
아니지만 병풍산에서 불태산으로 이어지는 암릉구간은 그에
못지않은 멋진 암릉구간이다

등로에서 바라본 장성군 장성읍(長城邑)과 장성호(長城湖)의 모습
전남 장성군 동부에 있는 장성읍은 장성군의 군청 소재지로 호남정맥이
황룡(신산경표상:병풍)지맥으로 읍내까지 이어져 동부에는 병봉산(이칭:불다산:687.4m)·
불태산(635.9m) 등이 솟아 있으며 황룡강이 읍의 중앙을 남북으로 흐르며, 시가지
서쪽을 남류하는 황룡강은 비만 오면 홍수가 일어나 큰 피해를 입은 적이 있어
50km의 대제방을 축조하고 그 상류에 장성호를 조성하여 수해를 극복하게 되었다.
옛날에는 황룡강의 지류 노령천 협곡을 따라 노령을 넘어 전북 정읍과 연락되는
길목이었고 현재는 호남선의 역이 약 3km 남쪽에 위치하고 있으나, 자동차 도로가
주변 각 군에 통하여 교통이 편리하며, 특히, 호남고속도로가 개통되어 보다 편리해졌다.
황룡강과 그 지류연안에는 소규모의 평야가 분포하며 군청과 읍사무소 일대에
시가지가 형성되어 있으며 군의 행정 기능을 담당하고 있으며, 문화재로는 기옹영정과
악기장이 있으며, 이밖에 수산리 오층석탑과 영천리 고분 등이 보존되어 있다.
농산물로는 쌀·보리 외에 딸기·수박·상추 등의 시설작물과 단감·사과·복숭아 등의
과수재배가 성하며, 화훼재배도 활발하며, 호남고속도로와 고창담양고속도로,
정읍-광주, 담양-함평을 연결하는 국도가 사방으로 뻗어 있다.
* 기옹영정(碁翁影幀)은 장성군 장성읍 안평리에 있는 조선 후기의 학자
변종락(邊宗洛:1792~1863) 영정으로 1977년 10월 20일 전남 유형문화재
제67호로 지정되었다.
선생의 회갑 때 어느 승려가 그린것이라고 전하는데, 조선시대 사대부를 그린
일반적인 초상화 양식과는 거리가 있어 풍속화적인 인물화인 듯 하다.
즉, 사대부의 엄숙함과 유학자의 분위기가 감도는 분위기를 그려내고자 하기보다는
오히려 선생에 대해 전해오는 일화들을 형상화하고 있으며, 화면 안에 배치된 바둑판·
바둑알·술병·담뱃대 등은 선생이 장성읍 장안리에 거주하면서 동구 앞에 연못을 파고,
그 가운데 섬을 만들어 정자를 짓고 바둑과 글을 잘 하는 명인들과 함께 바둑 및 술과
글로써 여생을 보냈다고 하는 그에 대한 일화를 전달하기 위한 요소들이라 할 수 있다.
건과 의복을 정비하고 두 손을 앞으로 모아 공수자세를 취한 자세는 그다지 자연스럽지
못하여 그의 인격과 개성을 전달하기엔 부족하나, 다만 화면 구성상 특이한 초상화의
한 예로서 주목할 만하다.

내가 오늘 걸어야 할 능선을 살짝 당겨보니 그야말로 환상 그 자체이다

갓봉에서 내려서니 걷기가 불편한 너덜구간이 나오지만
조심스레 걸으니 시간이 조금 걸리긴 해도
가시가 괴롭히는(?) 잡목구간보다는 훨씬 좋은 느낌이다

너덜길을 지나니...

앙증맞은 암릉사이로 걷는 재미도 쏠쏠하다

안부(10:10)

안부에서 급경사를 오르면서 뒤돌아 본 갓봉의 모습

세상살이에 공짜가 없다는 걸 느끼면서 힘들게 올라서니
조금 펑퍼짐한 정상이 나오는데 조망은 끝내준다

무명봉(10:13)

무명봉 정상에 올라서니 학동지, 진원지가 보이는 장성군 진원면과
그 뒷쪽으로 광주광역시 북구, 광산구가 흐릿하게 보이고 무등산은
꼭대기만 조금 내놓고 흰구름과 遊戱를 즐기며 신선놀음을 하고 있다

힘들게 무명봉을 올라왔지만 내려가는 길도 쉽지는 않다

무명봉을 내려서니 누군가가 로프를 설치해놨는데
기왕이면 조금 넉넉하게 할 것이지 짧게 설치한
바람에 기럭지가 짧은 범여로는 참으로 힘이든다
스틱을 아래로 던져놓고 대롱대롱 매달려 내려오는데
범여는 기럭지가 짧은 悲哀를 뼈저리게 느낀다

안부(10:17)

무명봉(10:21)

봄길 / 정호승
길이 끝나는 곳에서도
길이 있다
길이 끝나는 곳에서도
길이 되는 사람이 있다
스스로 봄길이 되어
끝없이 걸어가는 사람이 있다
강물은 흐르다가 멈추고
새들은 날아가 돌아오지 않고
하늘과 땅 사이의 모든 꽃잎은 흩어져도
보라
사랑이 끝난 곳에서도
사랑으로 남아 있는 사람이 있다
스스로 사랑이 되어
한없이 봄길을 걸어가는 사람이 있다

내려온만큼 다시 올라가야 하는 곳인데
꽤나 굵은 로프가 산꾼을 반긴다

오르는 암릉구간...이곳에서도 숏다리의 悲哀를 느낀다

아무리 봐도 밟고 올라갈 바위가 보이지 않는다.
하는 수 없이 스틱을 접고, 베낭을 밀어 올린 다음에
로프에 몸뚱아리를 의지한 채 힘겹게 올라간다

암릉구간을 오른 다음에 정상을 오르지 않고 우측으로 내려간다

또다시 만나는 로프구간...조심스레 내려서니 무명봉이다

무명봉(10:30)

또다시 오를 암봉을 바라보면서, 안부로 내려간다

안부(10:35)

조금전에 바라봤던 무명봉으로 올라선다

무명봉(10:38)

길은 걸어가 봐야 길을 알게 되고,
산은 올라가 봐야 험한 줄 알게 된다.
길이 멀어지면 말의 힘을 깨닫게 되고,
산이 높아지면 공기의 소중함도 깨닫게 된다.
사람은 겪어 보아야 사람을 알게 되고,
긴 세월이 지나 봐야 그 사람의 마음도 엿보게 된다.
賢者 가로되 동녘은 밝기 직전이 가장 춥고,
물은 끓기 직전이 가장 요란하듯이,
행복은 막연히 오는 것이 아니라
늘 인고의 시간을 거쳐서 다가온다.
작가 김홍신의 '인생사용설명서' 中에서

안부(10:40)

660.9m봉(10:43)
담양군 대전면과 장성군 장성읍, 진원면의 경계에 있는 봉우리로
비스듬히 누운 소나무에 준.희쌤의 산패가 걸려 있는데 무심코
지나치면 놓치는 憂를 범헐 수 있겠다...주변에는 선답자들의
시그널이 많이 보이는데 이곳부터는 분기점부터 같이 걸어온
담양군과 완전히 작별하는데, 남측은 담양군 대전면에서 장성군
진원면으로 바뀌고 북측은 장성읍 유탕리인데 담수호인 장성호 탓인지
유탕리란 마을이 엄청 큰가보다...장성호는 황룡강의 발원지이다

660.9m봉을 지나자마자 멋진 조망바위를 만난다

조망바위(10:45)

조망바위에서 바라본 전남 장성군 진원면(珍原面)의 들녘
장성군 진원면은 전남 장성의 동남쪽에 위치한 면으로 북동쪽으로 담양군 및
광주광역시 북구의 첨단산업단지와 연접하고, 북서쪽으로는 장성읍, 남쪽으로는
남면과 접하면, 면의 북부에는 불대산(佛坮山, 635.9m)이 가로 놓여 있고, 면의
대부분은 낮은 산지와 넓은 평야로 이루어져 있다.
백제 때에는 구사진혜현에 속하였고, 663년(신라 문무왕 3) 귀단으로 바뀌어
분차주(순천시)의 영현이 되었으며 이어 무주도독부 관내 갑성군(장성군)의
영현이 되었다가 고려시대에는 나주목에 속하였다... 조선 초기에 군현제를 개편할 때
진원현이 되었고, 1600년(선조 33) 장성현에 병합되면서 지금의 장성군에 속하게 되었다.
주요 농산물은 쌀·보리 등이며, 단감·방울토마토·딸기 등의 특산물이 재배되며, 특히
진원쌀은 널리 알려져 있으며, 구릉지에서는 과수 재배와 낙농업도 활발하다.
나주와 담양을 잇는 국도가 면의 가운데를 가로지르고, 광주광역시와 인접해 있어
개발제한구역이 많으며 주요 문화재로는 고산서원 노사선생전집 및 답문류편목판
(전남유형문화재 214), 고산서원(전남 기념물 63), 청계정(전남문화재자료 97),
진원리오층석탑(전남문화재자료 101), 진원성(전남문화재자료 112) 등이 있고,
복지시설로는 노인복지 전문시설인 프란치스꼬의 집이 있다.

광주(光州)는 한자로 뜻풀이를 하면 ‘빛고을’인데 이 말을 사용한 지는
그리 오래되지 않은 것 같으며 일설에는 1980년대부터라고 한다.
그러면 호남이라는 지명은 언제 처음 불렀을까.
고려 초기 지금의 전북 지역은 강남도(江南道), 전남 지역은 해양도(海洋道)라고
했는데 1018년(현종 9)에 두 곳의 중심지인 전주와 나주의 첫 자를 따 전라도(全羅道)라
칭했다... 사람에게 별명이 있듯 고을에도 별호가 있다. 전라도를 대신하여 가장 많이
사용한 별칭은 호남이다.
이강래 전남대 사학과 교수는 2016년 한 언론매체에 “호남이라는 명칭이 근대 이후
전라도 지역을 통칭하는 지명이 됐다는 것 외에 어디서 유래됐는지는 학계에서도
여러 가지 설만 있을 뿐 정확하게 알려진 것이 없다”라고 하며 호남은 '호수의 남쪽' 이란 뜻이다.
이때 호수가 구체적으로 어디를 지칭하는가에 대해선 크게 두 가지 견해가 있다.
삼국시대부터 내려오는 국내 최대 규모의 저수지인 전북 김제의 벽골제라는
견해가 있고, 호강(湖江)이라고도 불렸던 금강(錦江)이라는 설도 있다.
역사적인 자료를 찾아보면 우선 국가가 편찬한 사서 중에서 호남이란 용어가
처음 등장하는 것은 1447년(세종 29) 《세종실록》 11월 17일 기사로
집현전 교리 하위지(河緯地)의 상서에서 형인 하강지(河綱地)의 유배에 자신도
징발되어 속하기를 간하는 부분에 동생이 호남으로 따라가겠다는 내용이 나온다.
또 조준(1346~1405)의 《송당집》을 비롯해 춘정 변계량, 국당 박흥생, 경재 하연,
퇴재 유방선, 불우헌 정극인, 대허정 최항, 눌재 양성지, 취금헌 박팽년의 문집에도
호남이 보인다. 노송 송희경의 1420년 《일본행록》 부록에 “호남 사람이 뜻을 모아
담양에 구산서원을 봉안한 것에 대한 축하의 글”에도 나온다.
이밖에도 이석형(1415~1477) 《저헌집》과 신숙주(1417~1475)의 《보한재집》에는
10여 차례 이상 언급되고 있으며, 조선 후기 실학자 이긍익(1736~1806)이 남긴 야사집인
《연려실기술》 제16권 ‘지리전고’에서는 “벽골제호를 경계로 전라도를 호남으로 부르고,
충청도를 호서로 부른다”라 하였는데, 이처럼 기록된 역사로 판단할 때 고려 말이나 조선
초부터 호남이란 지명이 사용됐다고 짐작할 수 있다.

호남의 심장이라는 광주를 바라보면서 또 길을 나선다
오늘 산행은 곡예사가 줄을 타듯이 범여 역시 곡예사처럼
줄을타듯 암릉길을 조심스레 걸어간다

무명봉(10:48)

계속되는 암릉구간...오르지 못할 암릉에는...

선답자들의 흔적을 따라서 우회하면서 걸어간다

조금후에 내가 올라야 할 산이 나를 물끄러미 내려다 보면서
겁박을 하지만 17년간 산행을 하면서 내가 오르지 못한
산은 없지 않았던가...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한다

안부(10:57)

조금전에 바라본 봉우리를 直峰으로 오르지 못하고
우측으로 올라서니 철사다리가 나오고 로프가 있는데
로프를 부여잡고 조심스레 암봉 정상에 오른다

659m봉(11:02)
오룩스맵상의 봉우리에는 숫자조차 안된 봉우리지만
예전 선답자들이 사용하던 지도에는 659m봉으로 표기가
되어 있다

이곳은 아직까지 봄을 맞이할 준비가 안된 모양이다

학동갈림길(10:59)
지난구간은 담양군에서 설치한 이정표를 만났지만
지금부터는 장성군에서 설치한 이정표를 만난다.
좌측으로 1.8km 지점에 장성군 진원면 상림리에
속해있는 학동마을로 내려가는 길이지만 지맥길은
귀바위 방향으로 향한다.

넘어진 소나무를 받치고 있는 바위.
相扶相助하는 모습이 보기 좋구나
자연들은 저렇게 지혜로운데 인간들은
서로를 왜 못살게구는지 아둔한 내 머리로는
도저히 이해가 안되는구나

성틀재(585m:11:08)
오랫만에 암릉길을 벗어나 산죽길 사이로 이어지는 등로
편하게 안부로 내려서는데 반바지님께서 성틀재라는
코팅지를 걸어놨지만 지도상에는 없는 고개이고
지명의 유래도 알 길이 없다

성틀재의 흔적

성틀재에서 완만한 오름길로 향한다

무명봉(11:13)

폐헬기장(11:14)

지난구간 용구산에서 시작된
암릉구간의 끝이 보이기 시작한다

잠시후에 가야할 불태산이 나뭇가지 사이로 우뚝 솟아있다.
이 지맥길에는 유난히도 同名異山이 많은데 조금전에 지나온
불태봉은 오룩스맵상에는 지명이 아닌 그냥 숫자로만 729.4m봉으로
되어 있고 보이는 저곳을 불태산이라 표기가 되어있고, 카카오 지도에는
2곳 모두 불태산이라 표기가 되어 있다

깃대봉(604.2m:11:20~40)
장성군 장성읍 유탕리와, 진원면 상림리, 진원리와 맞닿은 봉우리로
장성군에서 설치한 이정표에는 이곳을 깃대봉이라 표기되어 있지만
국립지리정보원의 지도에는 604.2m봉, 고산자 선생이 저술한
대동여지도에는 불태산(佛坮山)으로 표기되어 있었는데 세월이 흘러
불태산(佛台山)으로 變音된 듯 하고 예전에 맥산꾼 선배들의
산행지도에도 불태산이라 표기가 되어있어 참으로 혼란스럽다
또 하나 의아한 점은 장성군에서 설치한 모든 이정표에는 이곳을
깃대봉이라 해놓고는 정작 정상에는 깃대봉이란 표식은 아무데도 없다
붕어빵에 붕어가 없다는 것과 뭣이 다른지...
정상에는 3등삼각점과 넓은 헬기장에 쉼터의자와 이정목이 설치되어 있고,
모퉁이에는 준희쌤의 산패도 보이고 남쪽으로는 진원면 상림리에서
올라오는 데크목 계단도 있고, 장군굴도 있다는데 거기까지 갈 여유가
없어서 포기하고 이곳에서 베낭을 내려놓고 간식으로 원기를 보충하면서
오랫만에 긴 휴식을 취한다

깃대봉 모퉁이에 외롭게 매달려 있는 준.희 쌤의 산패

힘들게 지나온 능선을 쳐다보며, 의자에 앉아
여유롭게 휴식을 즐긴다...갓봉, 불태봉, 천봉...그리고
그 뒷쪽으로는 지난주에 걸었던 병풍산도 뚜렸하게
보이는구나.

지맥길은 불태산 정상과 큰재를 가리키는 서쪽 방향으로
이어지고, 사방댐 표시가 되어있는 곳으로 내려가면
장군굴이 있다고 한다
장군굴에 전해 내려오는 전설
진원면 진원리 고산마을에 신라 말기 무렵 한 부잣집 가정에 처녀가 시집을
보내려고 하였으나 한사코 가지 않겠다고 하므로 그 연유를 따져 물은 즉
처녀 말이 "밤이면 이목구비가 준수한 청년이 나타나서 그만 동침을 하고 말았다"고
하는지라 이에 놀란 부모들은 그럴듯한 집안이면 정혼을 하고자 지켜보기로 하고는
청년이 나타나기를 기다리는데 과연 밤이 깊어지자 청년이 나타나 딸과 사랑의
운우(雲雨:남녀 사이에 육체적으로 관계를 맺는 일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를
나누고 새벽이 되자 문을 열고 나오므로 붙잡아 물어 보려하였으나 순식간에 사라져
버리므로 이는 청년이 분명 사람이 아닌 어떤 화신이라고 단정하고 딸에게 다음날
또 나타나면 도포자락에 명주실 한 꾸리를 꿰어 바늘을 매라고 일렀다.
그날 밤 처녀는 아버지가 시키는 대로 바늘을 겉옷 자락에 꿰어놓고 이튿날 아침에
명주실을 따라가 보니 장군굴 속에 커다란 거미의 발에 명주실이 달린 바늘이 박혀있었다.
그 후로 청년은 나타나지 않았고 처녀는 태기가 있어 옥동자를 출산하게 되는데
점점 자라면서 하는 짓이 거무와 같아 거무(일명 불태산) 정기를 받은 거무의 화신이라고
모두 말하였다...이 아이가 성장하여 신라의 비장(裨將)이 되었고 드디어는 후백제를
세워 왕이 되었는데 원래 '진훤' 이라는 이름이 '견훤'으로 바뀌었다고 하는 전설이 전해오고
있다고 한다

깃대봉에서 바라본 장성군 진원면 상림리의 모습

깃대봉 정상 삼각점(▲담양313 / 1999재설)

오랫만에 편하게 휴식을 취한 다음에 베낭을 메고 다시 길을 나선다

깃대봉에서의 긴 휴식 탓인지 발걸음은 조금 가볍다

쉼터(11:43)

안부(11:45)

바람이 말합니다.
바람 같은 존재이니 가볍게 살라고...
구름이 말합니다.
구름 같은 인생이니 비우고 살라고...
물이 말합니다.
물 같은 삶이니 물 흐르듯 살라고...
꽃이 말합니다.
한번피었다 지는꽃이니 웃으며 살라고...
나무가 말합니다.
덧없는 인생이니 욕심 부리지 말라고...
땅이 말합니다.
한줌의 흙으로 돌아가니 내려 놓고 살라고...
좋은글 중에서...그런데 정작 실천이 안되니
70년을 넘게 살면서 내가 잘못 살지는 않았나
하고 뒤돌아 보는 계기가 된다

무명봉(11:54)

완만한 능선을 걷다보니 진짜가 나타난다

불태산(佛台山:635.9m:12:00)
장성군 장성읍 유탕리와 진원면 상림리와 선적리의 경계에 있는
산으로 또다른 이름으로는 불대산(佛臺山)으로도 불리우는 산으로
명성(?)에 비해 실제와보니 산의 지세는 조금은 실망스럽다,
소나무에 걸려있는 산주님과 반바지님 산패와 코팅지, 선답자들의
시그널이 잔뜩 걸려있다.
조선시대 사료에는 불대산으로 기재되어 있으며,『신증동국여지승람』(진원)에
"불대산은 현에서 북쪽으로 5리 떨어져 있는 진산이다."라고 수록되어 있다.
『대동지지』(장성)에 불대산(佛臺山)은 "동남 25리로 광주와의 경계에 있고,
암자가 5개이다."고 하였으며, "진원고읍성(珍原古邑城)이 남쪽으로 15리 불대산
동쪽 기슭에 있다." 라는 기록이 있다.
『해동지도』(장성)에 보면 불대산(佛臺山)으로 표기되어 있고 병풍산과 사이에
한치(漢峙)가 묘사되어 있으며,『대동여지도』와 『1872년지방지도』에도 모두 불대산
(佛臺山)으로 기재되어 있는데, 한자로 잘못 옮기면서 불태산(佛台山)으로 바뀐
것으로 보고 있다.

『장성군읍지』에 "술자가 전하길 산세가 용이 달리는 형국이니 절을 세우고 상하연
(上下淵)이라 일컫고, 진압하도록 하였다... 산 동북에 대소골이 있는데 신라 때 그곳에
안룡(安龍), 정룡(定龍), 청룡(靑龍)의 3개의 절을 세웠는데 지금은 성터만 있다."라는
기록이 있으며 장성에 합쳐지기 이전인 옛 진원현의 진산(鎭山)으로 서쪽은 장성호와
황룡강, 동쪽은 담양호를 통하여 영산강에 합수되어 목포 앞바다로 향하며, 불태산 주변에는
송강 정철과 석탄 이기남이 강학했던 정이암터를 비롯한 상청사, 하청사, 인월사 등 80여 개
절터와 유서 깊은 문화유적들이 많다고 한다.
조선시대에 금오신화(金鰲新話)를 지은 매월당(梅月堂) 김시습(金時習:1435~1493)도
이 불태산에 와서는 "저 산 남쪽 기슭에 올라가니, 산 깊어 고요해 맑은 시내에 집을 지었다"고
탄복하였다... 그러고는 마치 세간(世間)의 얽매임을 벗어 던진 듯"만상(萬象)의 맑음이
고요히 내 마음에 박혀있다"고 너무나 자신 있게 읊었다.
특히 나옹대사가 창건한 나옹암터에는 마애불상이 남아 있어 불심이 가득했던 옛 영화를
말해 주며, 신라 때 창건된 것으로 알려진 하청사는 매월당 김시습과 하서 김인후의 시에
등장하고, 인월사엔 매월당이 남긴 시 한 편이 현재까지 전해온다고 한다.

불태산을 지나면서 등로에서 바라본 장성군 진원면소재지가 있는
선적리와 진원저수지가 보이고, 그 뒷쪽으로 흐릿하게 보이는
곳이 진원산성이다.
진원성(珍原城)은 진원현의 현성으로 고려초기 이전에 축성된 것으로 추정되며,
『대동지지』의 성지조에 “진원 고읍 성 남십리 불태산 동록주 1,400척,정3, 계2 ” 라
기록되어 병진성과 동일성으로 기록하고 있으며, 고려 명종(재위1170∼1197)때의 문인인
김극기가 지은 시에 진원성에 대한 언급이 있는 것으로 보아, 12세기 이전에 현성으로 쌓아서
정유재란으로 폐허되기 이전까지 고을을 다스린 성으로 보인다.
이 성은 표고 40m쯤의 대체로 낮고 평평한 분지형의 두 개의 작은 봉우리를 연결하여
축성한 퇴뫼식 산성으로 남아있는 유구를 통해 볼 때 성벽은 내탁법에 의해 수축하였고
성벽 안쪽은 내벽을 축성할 당시 삭토하여 내벽 이 형성 되었는데 배수의 편의를 위한 것으로
여겨지며, 성벽의 길이는 800m로 추정되며 가장 양호한 동벽의 높이는 3m내외로 6·25때에
진원지서의 방호벽을 구축 할 때 거의 훼손되었고, 그후에도 새마을 사업등에도 성곽돌을
사용한 것으로 전해져 오고 있다

능선 건너편으로는 잠시후에 걸어야 할 귀바위가 보이고
그 뒷쪽으로 펼쳐지는 영산기맥 능선은 가늠조차 안되는구나

제도권 등로인지 깃대봉부터는 구조이정판이 자주 보인다

안부(12:10)

이 좋은 맥길이 언제까지 이어질런지 항상 설레임을
가지고 길을 걷지만 언제 나타날지 모르는 잡목의
태클에 긴장의 연속인게 지맥길이랄까...

581m봉(12:21)
성곽처럼 보이는 돌담이 있는 펑퍼짐한 곳이 581m봉 정상이다
여영님의 581m봉 산패가 보이고 직진으로는 약사암이란 절집으로
향하고 지맥길은 좌측으로 90도 꺽어져서 내려간다...지나온 방향으로
깃대봉이라 이정표가 표기되어 있어나 정상 깃대봉 정상에는 깃대봉이란
표식이 없었다.

이정표의 귀바위 방향으로 내려가니...

등로는 아주 좋다

데크목 계단으로 내려가며 잠시나마 범여의 다리가 호강을 한다

잠시후에 오를 귀바위봉을 바라보며 계속되는 내리막길...

우리는
많은 사물과 자연에
기대어 살아갑니다.
우울한 날에는
하늘에 기대고 슬픈 날에는
가로등에 기댑니다.
기쁜 날에는 나무에 기대고
부푼 날에는 별에 기댑니다.
사랑하면 꽃에 기대고
이별하면 달에 기댑니다.

우리가 기대고 사는 것이
어디 사물과 자연뿐이리요.
일상 생활에서 우리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기대어 살아갑니다.
내가 건네는 인사는
타인을 향한 것이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도
나 아닌 타인입니다.

나를 울게하는 사람도 타인
나를 웃게하는 사람도 타인입니다.
사람이 사람에게 비스듬히
기댄다는 것은
그의 마음에
내 맘이 스며드는 일입니다.

그가 슬프면 내 마음에도
슬픔이 번지고 그가 웃으면
내 마음에도 기쁨이 퍼집니다.
서로 기대고 산다는 것
그것이 바로 인연이겠지요.
그 인연의 언덕은
어느 날은 흐리고
어느 날은 맑게 갤 겁니다.
흐리면 흐린 대로
개면 갠 대로
그에게 위로가 되고
기쁨이 되어 주는 것
그것이 서로 기대고 살아가는
인연의 덕목이겠지요
송정림님의 '참 좋은 당신을 만났습니다' 中에서

데크목 계단을 따라서 편하게 내려서니 넓은 공터가 나오는데
이곳이 지도상의 큰재이고 우측으로는 장성읍 유탕리 서동(西洞)마을로
가는 이정표가 있다

펑퍼짐한 큰재로 내려서니 산자고, 현호색, 제비꽃, 개별꽃, 양지꽃을
비롯한 꽃들이 군락을 이루고 있는데 조금이 일러서 그렇지...
그야말로 야생화의 천국처럼 느껴진다

산자고(꽃말:봄처녀, 가녀린 미소)

현호색(꽃말:보물주머니, 비밀)
야생화에 정신이 팔려 자꾸만 범여의 발걸음이 느려진다

비박 맥산꾼들에겐 텐트치기 더없이 좋은 자리이다

큰재(505m:12:33)
장성군 장성읍 유탕리 서동마을과 진원면 상림리 상림마을로
이어지는 고개로 고개라기 보다는 펑퍼짐한 공터처럼 보인다.
사각정자와 큰재라고 쓰여진 반바지님 코팅지가 걸려있고
주변에는 여러종류의 야생화가 지천으로 자생하고 있다
좌측의 사방댐 방향으로 조금만 내려가면 불태산야영장이 있고
시기를 잘 맞추면 야생화 출사를 한번와도 손해볼 일은 없을 듯 하다

큰재를 지나 다시 오르막으로 오르는 주변에는 이제 꽃이
피기 시작하는데 1주일만 늦게 왔더라면 하는 진한 아쉬움이
남는다

오름길에서 만난 개별꽃(꽃말:은하수)...참으로 앙증맞고 예쁜데
이름이 왜 하필이면 개별꽃이라 불리는지 이해가 안되는구나
흔히들 꽃이나 식물의 이름앞에 ‘개’ 자가 붙으면 진짜가 아니라는 뜻인데
대표적인 꽃이 철쭉이다...진달래를 참꽃이라 부르고, 철쭉을 개꽃이라
부르며, 두릅도 참두릅과 개두릅(음나무순)으로 부르듯이...

고도를 조금씩 높히니 때늦은 하얀 제비꽃이 군락을 이루며
피어나기 시작하는데 어찌 그냥 지나칠수가 있단 말인가...

고도를 높힐수록 약간의 숨소리가 가프지만 워낙 천친히
걸어서 올라가니 큰 고통을 느끼지는 않는다

바위 틈새에서 수줍은 듯 다소곳이 핀 하얀제비꽃과도
눈맞춤을 하느라 또 시간은 지체된다

까칠한 능선으로 향하는 오르막길이지만
산꾼을 배려한다고 데크목 계단을 설치해놨다.
편하게는 오른다마는 행여...野性을 잃을까봐서 걱정이다

갈림길(13:02)
야생화에 홀려서 걷다보니 큰재에서 이곳까지 오는데
시간이 너무 걸렸지만 한가지를 얻으면 한가지를 잃는게
자연의 이치가 아니던가...꽃들과 遊戱를 즐겼으니 시간이
걸리는건 당연하제...
우측으로는 장성천의 발원지인 유탕제로 향하는 길이고
맥길은 좌측의 귀바위 방향으로 향한다

장성3터널 위(13:03)
이 능선 아래로 장성~담양간 고속도로 장성3터널이 지나간다

갈림길 능선에서부터는 고도차가 없는 편한 길이다.
큰재에서 힘들게 올라왔으니 산이 주는 배려에
감사하며 길을 걸어간다

무명봉(13:05)

풋풋한 봄향기에 코를 흠흠거리면서 걸어간다

안부(13:07)

암봉(13:09)

안부(13:11)

안부에서 올라서니 팔각정 쉼터가 나오는데
지도상 이곳이 귀바위로 부르는 곳이다

귀바위(耳岩亭:626.9m:13:13)
장성군 장성읍 유탕리와 진원면 진원리와 선적리 경계에 있는 봉우리로
카카오 지도에는 상봉이라 표기가 되어있고, 삼성산(三聖山)이라 기록된
지도도 있으나 오룩스맵 지도에는 626.9m봉 기록되어 있고, 팔각정옆
나무에 동밖에님의 626.9m봉의 산패가 걸려있으나 정상에서는 귀바봉은
볼 수도 없고, 그저 펑퍼짐한 陸山처럼 보인다...자료를 확인하니 귀바위봉은
동쪽을 제외하고 모든 방향이 경사가 엄청 심하거나 낭떠러지가 있어 쉽게
접근하기가 어렵다고 하는데 확인도 못하고 그냥 길을 떠난다.

귀바위봉에서 잠시 머물렀다가 이재산성
방향으로 다시 맥길을 이어간다

이곳도 등산객들이 많이 다니는 제도권 등로인지 내리막길에
안전로프가 처져있고, 산악오토바위가 다니는지 등로가
많이 패여있어 걷기가 조금은 불편하다

내가 합수점까지 걸어가야 할 지맥길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계속되는 내리막길

등로의 좌측 계곡 아랫쪽에는 고산서원(高山書院)이 장성군 진원면
진원리 고산마을이 흐릿하게 보인다
고산마에는 조선 성리학의 대가 노사(蘆沙) 기정진(1798∼1879) 선생을 모신
고산서원(高山書院:전남 기념물 63호)가 있는 마을이 있는 곳인데, 기정진 선생이
1878년 78세 때 이곳으로 이사한 후 정사를 지어 ‘담대헌(澹對軒)’이라 이름 짓고
학문에 전념하며 후학을 양성하고 82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한 곳이다.
조선 성리학의 6대가로 추앙을 받았던 노사 기정진은 1798년(정조 22) 전남 순창군
복흥면 조동에서 태어나 장성에서 자랐으며, 본관은 경기도 행주, 자는 대중(大中),
호는 노사(蘆沙), 시호는 문간(文簡)이다.
그의 가문은 주기론의 대표적 인물인 고봉 기대승을 배출한 호남의 명문인 행주 기씨
가문으로 노사가 가장 오래 거주한 곳은 하사리(현, 장성군 황룡면 장사리)다.
노사(蘆沙)라는 아호(雅號)는 78세에 ‘노령산 아래 하사에서 살아가는 사람’이라는
뜻으로 이 무렵 지은 것이다.
문불여장성(文不如長城)이란 “학문으로는 장성만 한 곳이 없다”라는 뜻으로 흥선대원군이
조선 팔도 중 장성의 학문을 최고로 높이 평가했으며, 이러한 평가는 장성 출신 노사 기정진의
높은 학문에서 연유하는데, 청나라 사신과 관련한 그 일화가 있다.
철종 임금도 노사 기정진의 지식에 탄복하여 “장안의 많은 눈이 장성의 외눈만 못하다”라는
“장안만목 불여장성일목(長安萬目 不女長城一目)”이란 칭송의 말을 남겼으며,
‘장성일목(長城一目)’은 당시 한쪽 눈을 잃은 노사 기정진 선생을 가리키는 것으로
‘문불여장성(文不如長城)의 출처가 되었다는 일화가 전하는데 그는 조선 후기 외세의
침략에 굴하지 않는 위정척사운동을 태동시킨 조선 성리학의 마지막 거장으로 평가받는다.

스텐레스 계단과 데크목 계단을 지나 안부로 내려선다

안부(13:23)

무명봉(13:25)

고도를 조금씩 낮추어 내려가니 회색빛 등로가 초록으로
바뀌는 중이다...봄이 온다는 증거일까...초록빛으로
바뀌기 전에 맥길을 끝내야 하는데...

암봉(13:32)

지도상에는 이곳부터 이재산성이라고 표기가 되어
있는데 성터의 흔적이라곤 찾아볼 수가 없으니 답답하다

535.4m봉(13:40)

이곳도 산자고들이 유희를 즐기고 있다.
꽃을 보고도 그냥가면 안되제...
꽃이 예뻐보인다는 것은 늦어간다는
증거라는데 그래도 꽃이 예쁘게 보이는데 어찌할꼬...

제봉산(啼鳳山:325.5m:13:42) 갈림길
장성군 장성읍 단광리와 영천리의 경계에 있는 산으로 아곳에서 4.2km
떨어진 거리에 있는 산으로, '울 제(啼) ' , ' 봉황새 봉(鳳)' 자를 써서 봉황이 울어
장성(長城)이 안녕하다는 유래가 전해져 내려오는 산으로 금당산 능선이
남서쪽으로 화방산, 송학산으로 뻗어내리다 남동쪽으로 북당골과 울밑골 사이에서
솟아있다.
남동쪽사면 끝자락에는 포충사라는 절집이 위치하고 있는 산으로 임진왜란 당시 의병장
고경명(高敬命:1533~1592)의 아호인 제봉(霽峰)에서 유래된 산이기도 하다.
고경명은 광주광역시 남구 압촌동에서 태어났고, 장성 영천리에도 제봉산과 함께 오동촌에
그의 묘와 신도비가 세워져 있으며, 포충사(褒忠祠)는 1603년 고경명을 기리기 위해
사액사당으로 건립되었으며, 대원군 서원철폐 때 필암서원과 함께 훼철되지 않았던 광주 ·
전남의 서원 중 하나로 동쪽의 만산동에는 필문(畢門) 이선제(李先齊:1389~1454)의
신위를 모신 부조묘가 있고, 어귀에는 그가 심은 왕버들이 있으며, 자손이 과거에 합격하면
북을 걸어 풍악을 울렸다고 '괘고류(掛鼓柳)'라고 한다.
* 부조묘(不祧廟)란?
불천위(不遷位:나라에 큰 공훈이 있는 사람의 신주(神主)를 4대봉사가 지난 뒤에도
옮기지 않고 사당에 영구히 모셔 두고 제사를 지내는 것이 허락된 신위(神位)의
제사의 대상이 되는 신주를 둔 사당)으로 부조묘는 중국의 한나라 때부터 시작되었으며,
우리나라에서 부조묘가 등장한 것은 고려 중엽 이후 사당을 짓게 되면서부터이다.
불천위가 된 신주는 처음에 묘 밑에 설치할 것을 원칙으로 하였으나 종가 근처에
사당을 지어둘 수 있게 됨으로써 부조묘가 등장하게 된 것이다... 부조묘는 본래
국가의 공인절차를 받아야 하나 후대로 오면서 지방 유림의 공의에 의해서도 정해졌다

안부(13:43)

등로 좌측으로 범여의 눈에는 성곽처럼 보이는 석축들이
살짝 보이기도 하는데 이게 이재(이축)산성이라는 확신은
들지 않는다

편안한 등로를 걷는다...길가에는 낡은 식물의 안내판이
보이지만 흐릿하여 판독이 그리 쉽지 않구나

이재산성?(13:48)
장성군 장성읍과 진원면 경계에 있었던 산성으로 이척산성(利尺山城) 또는
이재산성이라고 불리우며 삼국시대에 축성되어 조선 초에 폐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척산성은 불대산(불태산) 서쪽의 해발 500여m의 봉우리로 동·서·남쪽이 높고,
북쪽이 낮은 남고북저형의 지형을 갖추고 있으며, 성의 형태는 포곡형이며 석성과
토성이 혼합된 것으로 『신증동국여지승람』 등의 문헌에 의하며 석축길이 520척(尺),
높이 3척(尺)이고 성 안에는 네개의 우물과 여섯개의 시내(溪)가 있으며 동, 서, 북문지 등
3문이 남아 있으며 상당수의 기와편과 토기편이 흩어져 있다고 하는데 현재에는 성의
흔적조차 찾을 수 없으며, 지도상의 이재(이척)산성의 자리에는 장성군에서 설치한
듯한 불태산 등산로 종합안내판이 쓰러진 채 드러누워 편하게 쉬고 있다

가장 편한 자세를 취하고 있는 불태산 등산로 종합안내판

지도상의 이재산성에서 자리에는 이정표가 서 있는데 이정표
(전망대(0.2km), 제봉산(3.9km), 불태산(2.7km))가 있으며 우측 능선은
의병장 제봉 고경명이 모셔져 있는 장성읍 영오리 제봉산으로 이어지는
능선이고 황룡(신산경표상:병풍)지맥 길은 전망대 방향으로 향한다

2층 팔각정(13:52)
이정표에서 말하는 전망대를 가리키는 곳인 모양이다

사람들이 잘 오지 않는지 솔갈비를 비롯한 나뭇잎만 무성하고
인적의 흔적조차 보이지 않는구나...가성비가 참 낮은 정자이다

2층 팔각정을 지나면서 고도를 급격하게 낮추 맥길을 이어간다

부인영일정씨묘(13:55)
이곳 담양과 장성지역은 지난 겨울에 걸었던 영암과 나주, 함평지역에서
만났던 호화묘지는 별로 보이지 않고, 그냥 수수한 묘지나, 후손들이
방치한 묘지들이 많이 보인다...이곳에 있는 묘지도 지난해 벌초를
안했는지 고사리와 산딸기 나무들이 봉분을 점령(?)하고 있는데
특이한 점은 묘비에 ‘부인영일정씨지묘’ 라고 한글로 써 있다.
통상적으로 여자 혼자있는 묘지는 ‘配孺人’ 이라 표기하는데 부인이라니...
관례상 어긋나다보니 많이 헷갈린다

제도권 등로를 벗어났는지 등로는 희미해지고 솔갈비사이로
이어지는 흐릿한 능선이 믿음이 안가서 트랙을 확인하면서
조심스레 맥길을 이어간다

고도를 확 낮추면서 내려서니 여기는 벌써 여름이 온 듯
온 천지사방이 푸른색으로 옷을 갈아입고 있고, 맥산꾼들에게
저승사자(?)같은 존재인 산딸기, 찔레꽃들이 산꾼들에게 이지매를
가할 준비할 태세를 갖추고 있다

안부(14:15)

내리막길을 많이 내려왔는지 펑퍼짐한한 등로를 지나는데
서서히 체력이 방전되어 가는지 다리에 힘이 빠지고 졸음이
쏟아지기 시작한다

갑자기 등로가 희미해지고 군부대가 있는지 훈련장이
있는지 훈련장 말뚝이 보이는데 긴장이 되는구나

또다시 등로는 좋아지고 마삭줄이 군락을 이루고
있는 곳을 지나니...

송전탑이 나오는데 NO가 있는 곳이 돌아앉아 있어
귀찮아서 확인도 안하고 그냥 맥길을 이어간다

갈림길(14:22)

흐미~~~이쁜넘들...군부대 지역이라 맘놓고
두릅을 채취하는 손맛도 제법 쏠쏠하다

고개(14:25)
장성군 장성읍 영천리에서 진원면 선적리로 이어지는 고개로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고개인지 등로가 반질반질하다

고개를 가로질러 201.8m봉 정상으로 향한다

201.8m봉 정상에 올라서는데 오후라 그런지 날씨가 무척 덥다

201.8m봉(14:34)
장성군 장성읍 단광리와 진원면 선적리, 율곡리에 걸쳐있고
판독을 할 수 없는 삼각점이 있는 족보있는 봉우리이지만
庶者 취급을 받는 봉우리로 마치 홍길동이가 서자라는 이유로
아버지를 아버지로 부르지 못했던 것과 흡사하다.
201.8m봉 정상에는 관리가 안된 무명봉과 삼각점봉,
그리고 나무에 선답자들의 시그널이 몇개 걸려있지만,
산패는 보이지 않는다

판독이 불가능한 201.8m봉 삼각점

201.8m봉 정상의 묘지에서 동쪽으로는 비교적 뚜렸한
등로가 보이지만 맥길을 묘지 우측 아래로 급하게
내려서야 하는데 독도에 주의해야 할 구간이다

삼각점을 지나 급하게 내리막길로 맥길을 이어간다

산딸기나무 가시의 저항을 받으면서 내려서니
부뜰이 부부님의 시그널이 범여를 안내한다
늘 고맙심더...

조심해서 내려온다고 했는데 칡넝쿨에 걸려 오늘도
보기좋게 한번 꼬꾸라지고 딩굴다시피 내려서니
넓은 군사도로가 나온다

첫번째 군사도로(14:42)
예전에 이곳에 아주 큰 군부대가 있었는데 지금은 다른 곳으로
이전했는지 도로는 폐허가 되다시피 했다...도로를 가로질러
산속으로 들어간다

211.8m봉(14:45)

술잔은 비워야
채워지기 마련이고
마음은 비워야
행복해 지기 마련이듯
1주일 내내 世俗에서 찌든 때를
털어내기에는 산만큼 좋은 곳이 있을까?

아무런 생각없이 홀로 걷고 또 걷는다

등로 좌측으로 또다시 도로가 보이고...

2번째 군사도로로 내려선다

두번째 군사도로(14:50)

도로를 가로질러 잡목의 저항을 받으면 능선으로 오른다.

자꾸만 몸뚱아리가 노화현상을 나타내지만 그래도 가야할
길이기에 걷고는 있지만, 이제는 내 의지와는 달리 컨디션이
따라주질 않는구나

안부(14:57)

안부에서 살짝 올라서는데 좌측 사면의 나뭇가지
사이로 진원면 선적리 선동마을이 살짝 보이고
선동제라는 저수지를 바라보면서 199.4m봉에 오른다

190.6m봉(15:02)

190.6m봉 정상에서 살짝 우측으로 내려서면서 맥길을 이어간다

안부(15:05)

중생들의 삶이란 生死의 岐路에 서 있을때 다가오는 죽음보다는
더디게 다가오는 죽음에 대한 그림자가 더 무섭다고 한다

무명봉(15:08)

등로 주변에 간간히 보이는 두릅따는 재미도 쏠쏠하다

안부(15:13)
우측에서 올라오는 넓은 묵은 임도가 나오고 안부를 만나
북쪽으로 꺽어져 올라가는데 예전에 군사용 도로인 듯 하다

좌로 휘어지는 묵은 임도를 버리고 직진으로 올라간다

벙커봉(15:17)
이 능선 아래에는 폐벙커가 있고, 주위는 지독한 잡목지대라
위장술로 은폐하기에는 최적의 장소인 듯 하다

벙커봉에서 남쪽으로 내려서야 하는데 길이 안보인다
올라온 북쪽을 제외한 동.남.서쪽 어느 한 곳도 틈이 안보인다

결국 지맥길이 이어지는 남쪽을 향해 무대포로 내려서는데
잡목들의 저항이 엄청나게 심하다...어차피 가야할 길이라
정공법을 택했지만 몸뚱아리의 상처는 생각보다 심했다

대구의 legend님께서도 정공법을 택하신 모양이다
잡목의 저항을 이겨내며 내려서니 묵은 도로가 보이는
절개지가 나오고 마끄럼을 타듯 도로로 내려선다

묵은 도로(15:26)
선답자들의 산행기를 보니 예전에 이곳이 군사도로로 육군기계화학교
교육대가 있었던 곳이라고 하는데 지금은 다른 지역으로 이전한 모양이다

묵은 임도를 지나 능선으로 올라서니 교육대가 사용했던
시멘트 교통로 2곳을 지나 무명봉에 올라선다

무명봉(15:28)

무명봉에서 우측의 사면으로 이어지는
희미한 등로를 따라서 완만하게 내려서니...

호화로운 묘지가 얼굴을 내밀고 그 뒷쪽으로는
지맥길 능선에 있는 211.1m봉이 보이기 시작한다

탐진최씨 문중제단(15:35~39)
오늘 산행은 맥산행이라기 보다는 山川景槪를 즐기는 산행이 되었다,
멋진 암릉구간과, 야생화를 즐기면서 볼 것 다보고 두릅도 수확하면서
여유롭게 걷다보니 시간이 예상보다 엄청나게 많이 걸렸다...볼 것 다보고
즐길것 다 즐겼으니 그 정도는 감수해야지...오늘이 淸明이라 귀경하는
버스시간이 어찌될 지 몰라 원래 계획인 못재육교까지 갈 계획을 포기하고
이곳에서 산행을 종료하기로 하고 베낭을 정리하면서 장성택시를
호출하고는 묘지로 이어지는 도로를 따라서 사라치로 향한다

사라치(紗羅峙:136.3m:15:40)
장성군 장성읍 단광리와 장성군 진원면 율곡리를 잇는 고개로 24번 국도가
지나는 곳이지만 이 주변으로 워낙 교통이 발달되어 이곳 교통량이 생각보다
많지 않고 도로 양 옆으로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어있어 별도의 봄놀이를 안가더라도
올해 봄놀이를 제대로 한 느낌이다.
지도상에는 사라치라 되어 있지만 교통표지판에는 밤실재 정상이라 표기되어
있는데 이곳 남도지방 중에서도 특히, 담양과 장성지역은 지도와는 다르게
사용하는 지명이 많아서 헷갈려도 너무 헷갈린다
사라치(紗羅峙)라는 지명은 불교적 어원(語源)으로는 ‘종지부를 찍는다’ 는 뜻이거나
‘죽은 자의 위패를 모시던 장소’를 말하는데, 여로나 길의 종착지와 연관이
있다면 오랜동안 한쪽 길의 마지막 종착점이었던 사라치가 이후 고개로
연결되었을 수도 있다.

벚꽃이 흐드러지게 핀 사라치에서 택시를 기다리는데 10분정도
지나니 장성택시가 도착하고 광주 시내구간을 통과하면서
시간이 좀 지체되긴 했으니 내가 생각했던 비용보다 훨씬 많은
33,000원이나 나왔다...오랫동안 택시를 타면서 거리에 대한
感이 있는데 조금은 사기당한 기분이지만 남의 동네와서 우짜겠노
터미널에 도착하여 유쾌하지 않은 기분으로 매표소로 향한다

광주 유스케어 터미널(16:35)
매표소에 도착하여 표를 예매하려는데 우려했던 현실이 나타난다.
청명이라 그런가...서울가는 버스표가 저녁 9시 40분표까지 매진이란다
9시 50분 표도 3장밖에 없으니 참으로 당황스럽다...일단 9시 50분
표를 끊은 후, 화장실에 가서 씻고 옷을 갈아입은 다음에 식당에 가서
모듬만두 한접시로 점심 겸 저녁을 해결하고 행여 취소표가 있을까
하는 생각에 다시 매표소로 향한다.
窮하면 通한다고 했던가중간에 임시차를 배차했는 모양이다...40인승 일반버스인데표가 6장이 있다...얼른 예매하고는 기존의 저녁 9시 50분 표를 취소하고 1시간이 매표소 바깥 광장에서 忙中閑을 즐긴다

광주발 → 서울행 버스표

17시 55분발 버스...운좋게 4시간이나 빠른 버스를 탄다.
그리고는 휴게소를 지나온지 모르고 정신없이 자다가
버스가 서울터미널에 도착하는 바람에 잠에서 깨어나 집으로 향한다

오늘 산행의 전리품인 두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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