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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범여(梵如)의 世上사는 이야기
황룡(병풍)지맥(終)

황룡(병풍)지맥 제2구간 - 바심재에서 대치까지

by 범여(梵如) 2026. 4. 7.

☞ 산행일시: 2026년 03월 29일

☞ 산행날씨: 흐린날씨에 미세먼지 심함

☞ 산행거리: 도상거리 8.2km  / 5시간 40분 소요

☞ 참석인원: 나홀로 산행

☞ 산행코스: 바심재 - 무명봉- 안부- 351.7m봉- 임도- 안부- 무명봉

                    무명봉- 암봉- 무명봉- 523m봉- 안부- 무명봉- 안부

                    무명봉- 폐헬기장- 무명봉- 용구산(왕벽산?)- 쪽재- 무명봉

                    조망바위- 천자봉(옥녀봉?)- 무명봉- 무명봉- 안부- 무명봉

                    안부- 무명봉- 안부- 암봉(옥녀봉?)- 이정표- 너럭바위-안부

                    병풍산(용구산?)- 암봉- 안부- 무명봉- 돌탑봉- 만남재 갈림길

                    2번째 만남재 갈림길- 투구봉- 안부- 신선대?- 암봉- 갈림길

                    쉼터1- 쉼터2- 갈림길- 520.5m봉- 안부-대치

☞ 소  재 지: 전남 담양군 월산면, 수북면, 대전면 / 장성군 북하면

 

 

지난주에 산행을 하며 넘어지면서 바위에 부딪힌 무릎통증이 심해서

정형외과에 가서 CT를 찍어보니 다행히 뼈에는 이상이 없고 인대가 조금

늘어난 듯 하니 당분간 산행을 쉬면서 치료에 전념하라고 한다...병원에

가서 물리 치료를 받고, 한의원에서 집중적으로 침을 맞으니 조금은 통증이

가시는 듯 하다.

 

산이 험하고 잡목이 대부분 심한 지맥길에서는 요즘이 가장 산행하기가

좋고 지맥길을 줄이기 위한 최선의 방법이라 조금을 무리하더라도

산을 가야겠다는 생각에 오늘도 광주를 가기위해 새벽에 집을 나선다.

오늘산행 구간의 지도

서울발 → 광주행 버스표

자정이 다 되어가는 시간에 집을 나와서 막차가 끊어지기 전에

터미널 가는 버스를 타고 호남터미널에 도착하니 0시 02분이다.

 

터미널에 도착하여 주중에 예매한  버스표를 출력한 다음에 대합실에서

1시간 30여분동안 멍때리기를 하다가 버스를 타고 잠을 청하는데

집을 나오면서 요즘에 먹은 신경정신과 약 때문인지 정신없이 자다가

非夢似夢간 광주터미널에 도착하여 버스에서 내리는데도 정신을

못 차린다

광주 유스케어 터미널(04:35)

광주에 도착하여 담양가는 버스시간표를 검색하여 보니 첫 차가 06시 50분이란다

하루종일을 걸으려면 일단 밥맛이 없더라도 밥을 먹어야 할 것 같아서

설렁집에 가서 국밥한그릇을 시켜놓고 밥을 천천히 먹으며 시간을 끌다가 너무

미안하여 나와서 담양가는 시내버스 정류장으로 가본다...왜냐하면 담양은 광주와

지근거리에 있어니까...함평처럼 일찍 가는차가 있는지 모른다는 생각으로...

터미널 앞 시내버스 정류장(05:40)

이곳에는 담양가는 버스가 있다는 표시도 있고, 지난주 1구간에도

담양을 오면서 이곳에서 내린 기억도 있어서 분명히 담양가는 버스가

이곳으로 오는 건 맞는데 몇시에 온다는 표시가 없으니 답답하다.

어느 누구한테 물어볼 사람도 없고, 무작정 서서 30분을 기다리다

지치서 그냥 터미널로 되돌아 간다

광주발 → 담양행 버스표

06시 50분에 담양으로 향하는 첫 차는 담양만 가는게 아니라 전라도와

경상도의 큰 고을을 여러군데 거쳐서 대구까지 가는 버스로

그만큼 여러군데를 거친다는 것은 사람이 없다는 이야기인 모양이다.

 

광주에서 출발한 버스는 지난주에 탔던 311번 버스와는 달리 광주시내

한군데를 들린 다음에 곧바로 고속도로에 들어섰다가 담양으로 향한다

담양터미널(07:40)

담양터미널 버스 시간표

담양 터미널 앞 도로에서 바심재를 가려면 도동마을로 가는 버스를

타야하는데 외지인이라 그런지 버스 시간표를 도저히 이해할 길이 없다

하는 수 없이 터미널을 빠져 나와서 택시를  타고 바심재로

향하는데  지난주와는 비교가 안될정도로 미세먼지가 심해서

지근거리에 있는 지형지물도 식별하기 어려울 정도이다.

담양읍을 출발한 지 15여분만에 오늘의 산행 들머리인 바심재에 도착한다.

바심재(155m:07:52)

전남 담양군 월산면 중월리 깍끼골에서 용흥리로 넘어가는 15번

국도(도로명 주소:담장로)가 지나는 고개로 예전에는 15번 국도가

이곳으로 지나갔으나 지금은 바로옆에 4차선의 15번 신국도가 생기는

바람에 사람들이 잘 찾지 않은 잊혀진 고개가 된 듯 하다

 

지명의 유래는 '마을 가까이 있는 고개 라는 뜻으로 '바순(밧운)재'가 변한 듯하고,

소심치(所心峙)라고도 부르기도 하는데 "쉴만한 고개", "마음을 내려놓는 장소"라는

뜻인지 정확한 유래는 알 수가 없길이 없다. 

 

15번 국도를 따라서 북쪽으로는 백양사와 장성호로 이어지며 1949년

무장공비 출현 때 전사한 전투경찰들의 넋을 기리는 충혼탑이 있다.

바심재 충혼탑(忠魂塔) 안내판

1949. 2. 28. 새벽 월산면 용흥리 죽림마을에 무장공비가 출현했다는

신고를 받고 담양경찰서 경찰관 38명이 긴급출동 하던중 바심재 정상에

이르렀을 때 은신중인 무장공비들의 습격을 받아 필사적인 응사에도

불구하고 경찰관 33명과 일반인 운전사 2명이 전사하였다.

이에 바심재 전투 현장에서 순직한 호국전몰영령들의 얼을 추모하고

그 넋을 위로하고자 1988. 4. 16. 추모탑을 건립하였다.

 

저 분들의 흘린 피로 지켜진 이 나라가 요즘은 배가 불러서 그런지

대놓고 북한을 추종하는 간첩들이 지천으로 널려있는 안타까운

나라가 되어 버렸다...저 분들이 목숨으로 지킨 이 나라의 현실에 안타깝다.

대한민국 그렇게 쉽게 무너지지 않습니다...편하게 永眠하소서...

산행을 시작하다(08:03)

산행 들머리부터 시작되는 빡센 오르막길...범여의 몸뚱아리한테

쥐약(?)인 급경사의 오르막길이다...그래 서두르지 말고 몸이

예열될 때까지 최소한 천천히 가자...등로가 보이지 않는 편백숲을

따라 걸어올라 가는데 편백나무에서 뿜어져 나오는 피톤치드향

냄새가 상큼하다

힘든 발걸음을 옮기는 나뭇잎 사이로 얼굴을 내미는 春蘭...

참으로 곱다...이 맛에 힘들다 힘들다 하면서 매주 산에 오르는

범여의 마음...이제 아시겠는가...

등로는 거의 보이지 않지만 후답자를 배려해 주시는 

선답자의 노고가 눈물나게 고맙다...늘 감사합니다

고도를 높힐수록 肉身은 힘들어지지만, 그에 비례하여

산에 대한 열정은 더 강렬해지는데, 단 하나 아쉽다면

자꾸만 숲속으로 밀려오는 미세먼지가 산꾼을 괴롭힌다

무명봉(08:22)

무명봉에 올라 선 채로 잠깐의 휴식을 취한다.

등로에 앏게 깔린 낙엽이 미끄러워 용을 쓰며 다리에 

힘을 줬더니만 지난주에 다쳤던 무릎 부위에 통증이

시작되는듯 하는데 괜찮겠지 하면서 남쪽으로 맥길을 이어간다

자연의 섭리에 따라서 地.水.火.風으로 돌아가는 중...

흐릿한 등로를 따라서 맥길은 좌측으로 이어지고...

안부(08:28)

좌측으로는 편백나무 숲이 조성되어 있고 월산면 중월리

방향으로 내려가는 뚜렸한 등로가 보이는데 맥길은

직진으로 이어진다.

안부로 오르면서 갑자기 등로는 고속도로 수준으로 바뀐다.

이런 길을 만나니 편안한 마음보다 두려움이 앞선다,

오늘 내가 걸어야 할 구간이 선답자의 기록으로 보면

아주 험하기로 유명한 구간이라는 소문 때문에...

그건 나중에 생각하기로 하고 편하게 걷는데 이곳은 고도가

조금 낮은 구간이라 그런지 진달래가 피기 시작한다

진달래  / 조병욱

 

해맑은 웃음 머금고

연분홍 여린 꽃잎

 

따스한 햇살에 수줍은 듯

실바람에 파르르

꽃술 보듬는다.

 

양지바른 산기슭

반겨줄 사람 없고

찾아올 임 없어도

 

봄이 오면

피어나는 진달래

이 봄엔

그리운 임 만나려나

351.7m봉(08:35)

오늘 산행길에서 처음으로 족보있는 봉우리를 만난다

계속되는 룰루랄라 길...

임도(08:36)

담양군 월산면 중월리에서 용흥리로 이어지는 임도로 차량이

다닐만큼 넓은 임도인데 우측의 용흥리 방향으로 가면 유서깊은

용흥사로 향하는 길인듯 하다  

임도를 건너 똑바로 능선으로 치고 올라가야 하는데

산행 시작 얼마되지도 않았는데 무릎의 통증이 계소된다.

용흥사 방향으로 이어지는 임도를 따라서 가다가 임도에서

야트막한 능선으로 올라선다

잡목이 아닌 소나무와 진달래가 태클을 걸어대고 희미한

길을 따라서 맥길을 걷는다...몸뚱아리는 힘들고 갈수록

저질 체력으로 만신창이가 되어 가지만 왠지 모르게

산 속으로만 들어서면 이렇게 맘이 편하니 나도 이해가 안된다

우리는 모두 씨앗으로 태어난다.

그러나 그저 하나의 씨앗으로 머물다

죽는 것은 불운한 일일 것이다.

 

우리는 꽃으로 피어나 향기를 뿜어내야만 한다.

그때 비로소 진정한 만족을 느끼게 된다.

 

- 오쇼의 차라투스트라 中에서

안부(08:47)

넘어진 고사목 사이로 이어지는 지맥길을 迷路처럼 이어지는

오르막을 트랙을 확인하면서 본격적인 苦行이 시작될 모양이다.

그래!...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고 했잖은가

산죽길을 따라서 빡세게 오르는데 땅바닥의 낙엽이

너무나도 미끄럽다...한발자국, 한발자국의 천천히 발걸음을 옮긴다

무명봉(09:08)

몰래 입맞춤을 하다가 들킨 연인처럼 쑥쓰러워 하는 소나무.

그래...하던걸 계속혀...참 부럽다...난 저짓거리 한 지가 기억도 안나는데...

무명봉에 올라 잠시 편하게 걷다가 다시

고도를 높히면서 또다른 무명봉에 도착한다

무명봉(09:12)

잠시 편안한 길을 걷다가...

또다시 오르막길로 향는 길이 반복된다

암봉(19:14)

17년째 헤매는 이 산길...처음에는 산악회를 따라 다니면서

어둠속에 죽기 살기로 걸었던 그 산길은 지금와서 回想 해보니

다 부질없는 짓거리이더라...나도 몸뚱아리에 칼만 대지 않았으

계속해서 그렇게 다니면서 162개 지맥을 진작 끝냈을텐데...

 

부처님께서 그렇게 다니면 안된다고 하면서 암이란 선물(?)을

주시면서 나를 한번 가던길을 뒤돌아보게 해 주신 듯 하다.

그래서 지금은 어둠속에 안 걷고, 남들이 한방에 걸을 지맥길을

난 2~3번에 걸으면서 주위의 풍경과 산, 그리고, 절집, 그 지역의

지리와 역사를 공부하면서 홀로걷는 이 길이 너무도 좋다

예전에 죽기 살기로 걸을때의  '몇km' '몇시간'주파했는냐고

주 목적이었지만 지금은 천천히 걸으면서 주변을 구경하는게

주 목적이고, 지맥길 완주는 그 다음인 셈이다.

 

혜민 스님께서는  '멈추면 비로소 보인다' 고 했다...그러나 이 길도

미치지 않으면 할 수 없는 일이다 내가 백두대간을 3번째 종주했을

때인가 후배산꾼이 白頭大幹을  축하한다면서 나에게 써 준 獻詩중에

맨 마지막 문구가  '不狂不及(미치지 않으면 이루지 못한다)' 이었다.

그 이후 그 후배를 내가 가장 아끼는 후배중에 한사람인데 어디선가

잘 살겠지...안 본지가 참으로 오래 되었다

무명봉(09:20)

등로는 그림에서 보기와는 달리 까칠하다.

계속 고도를 높히면서 오르는데 지난주에

다친 무릎 부위의 통증이 계속 심해지는데 겨울에는

구급약을 안 다니는 버릇이 있어 오늘도 안 가지고

왔으니 대처할 방법이 없다...천천히 걸어가는 수 밖에...

천천히 걷다보니 준.희 쌤의 산패가 걸려있는 523m봉에 도착한다

523m봉(09:23)

준.희쌤의 산패가 걸려있는 523m봉은 내가 앱에 깔고 다니는

오룩스맵에는 아무런 표시도 없는 무명봉으로 되어있다

523m봉에서 내려서니...

나뭇가지 사이로 용구산이 보이는데 갑자기 숨이 막히는 느낌이다

안부(09:24)

안부옆 나무가지에 급경사의 오르막길에만 걸려있는

준.희쌤의 격려문구가 걸려있고 빡센 오르막이 시작된다

곧추선 급경사의 오르막길을 느리늣릿한 걸음으로 올라가지만

범여의 마음까지 느리게 가지는 않는다...주변의 구석구석을

다 확인하며 오르는데 우측에 용흥사라는 절집은 절 안보이지만

지금은 사시예불 시간이 아닌데도 우렁찬 목탁소리가 청아하게

들린다...아마 祭를 지내는 모양이다

빡세게 오르니 무릎의 통증이 너무 심한 것 같아

마음같아서는 주저않고 싶지만, 여기서 포기하면

모든 걸 포기해야 할 것 같아서 선 채로 휴식을 취하면서

뒤돌아보니 나뭇가지 사이로 곰탕물을 뿌려놓은 것처럼

미세먼지가 심하게 밀려온다

산죽 사이로 이어지는 오르막은 계속되고...

세월(歲月)따라 가는 인생(人生) 

좋은 시절 다 보내고

이제 노을진 언덕에 서서 생각하니

잘못 살아온 인생,

회한만 남았더라.

50세엔 지천명(知天命)이라

하늘의 명을 알 때가 되니

어느 덧 미(美)의 평준화 (平準化)라

미녀나 추녀가 따로 없게 되더라.

60세엔 이순(耳順)이라

남의 말을 들어 그 뜻을

이해(理解)할 만하게 되니

학력(學力)의 평준화 (平準化)라

배운 놈이나 못 배운 놈이나

쓸모없는 놈이 되어

직장(職場)에서 쫓겨나기는 매 한가지라.

70세엔 종심(從心)이라

마음 내키는 대로 마음 놓고

행동(行動)을 해도

탈이 없다고 하지만

건강(健康)의 평준화 (平準化)라

건강(健康)한 사람과 약한 사람의

구별이 없이

약봉지를 싸들고 다니긴 매한가지라.

80세엔 산수(傘壽)로

가릴 것이 없는 나이라지만

부(富)의 평준화 (平準化)라.

있는 놈이나 없는 놈의 구별없이

돈 못 쓰고 집에 틀어박혀 있기는

매한가지라.

90세엔 졸수(卒壽)라

살 만큼 살아서 여한은 없겠지만

그래도 미련이 남았을텐데

생사(生死)의 평준화 (平準化)라.

산 사람이나 죽은 사람이나

누워있기는 매 한가지다.

세월따라 가는 인생,

오늘 지금 이 순간이 남은 내 인생에서

가장 젊은 날이다.

환경 탓 여건 탓 하지말고

그 상황(狀況)에서 할 수 있는대로

마음껏 즐기고 누리고 감사(感謝)하며 살면

그것이 최고(最高)로 잘 사는 인생(人生)이다.

남과 비교(比較)하여 배 아파하지말고

내 인생(人生)은 내가 만들어가는

딱 한번 밖에 없는 소중한 인생(人生)이다.

 

좋은글 中에서

무명봉(09:33)

우측 아래의 용흥사에서 들려오는 목탁소리가 오늘은

왜 이리도 애잔하게 들리는지?...선 채로 低頭三拜의 禮를 올린다

안부(09:36)

다시 오르막은 시작되고, 힘이들고 체력이 예전만

못하니 걸음걸이가 느릴망정, 산에대한 열정마저 식지는

않았다...걷고 또 걷다보면 정상에 도달하겠지. 

급한 오름길에 오르니 칼날능선이 기다린다.

쉬엄쉬엄 걸으라는 산이 범여에게 베푸는 배려인가가 보다

무명봉(09:51)

잠시후에 오를 용구산이 보이고...

우측으로는 오늘 산행의 白眉인 병풍산이 시야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진달래 군락지 사이로 이어지는 빡센 오르막길

폐헬기장(717.7m:10:05)

이곳을 옛날 황룡(병풍) 산행지도에는 마태산이라고 표기를 해놨다.

들머리인 바심재의 고도가 155m.  이곳(폐헬기장)이 720여m 정도이고

계속되는 오르막에다 무릎까지 아프고, 초반부터 다리에 쥐가 나는 악조건

속에 걷다보니 시간당 1km조금 넘게 걸었다... 너무나도 산행 속도가 안난다

이러다가  한재(大峙)까지나 갈 수 있겠나...가봐야지 우짜겠노...

폐헬기장에 걸려있는 선답자들의 흔적들...

용도가 끝난 헬기장 정상은 키작은 잡목이 무성하고 나뭇가지가

시야를 조금씩 방해하긴 하나 주위의 조망은 좋은데 문제는

짙은 미세먼지가 태클을 걸어댄다...조금전에 비해서는 많이

옅어진 편이지만 아직도 遠景의 산들은 확인이 안 된다.

잠시후에 오를 용구산을 바라보면서 내리막으로 향한다

용구산에서 갈라져 좌측의 월산면쪽으로 내려가는

능선이 보이는데 우측부터 용구산, 투구봉, 537.4m봉,

채알봉이 보이는데 미세먼지만 아니면 아주 끝내주는

뷰일 듯 한데 참으로 아쉽구나...

무명봉(10:10)

용구산 오르는 길에 또다른 용구산이라 부르는

병풍산이 미세먼지를 뒤집어 쓴 채 안쓰럽게 보이고....

우측 아래에 있는 용흥사도 직선거리로는

그리 멀지 않은데도 미세먼지로 인해 흐릿하기만 하다 

안부에서 아직 꽃을 피울 생각조차 없는 진달래들이

태클을 걸어오며, 홀로걷는 산꾼을 괴롭힌다

그렇다 포기할 수는 없잖은가...

힘들게 용구산 정상에 올라선다

용구산 정상에서 쥔장 행세를 하는 흉물스런(?)

무인감시카메라가 있고, 그 옆에는 지도상에 표기되지

않은 생뚱맞은 왕벽산이란 정상석이 길가로 밀려 나앉았다

용구산(龍龜山:726.1m:10:18)

담양군 월산면 중월리와 용흥리, 수북면 궁산리의 경계에 있는 산으로

연두색 펜스안에 갇혀있는 녹색컨테이너 박스와 무인산불감시카메라가

홀로걷는 산꾼을 매의 눈으로 째려보고 있고 등로 가운데는 몽성산악회에서

설치한 왕벽산(王壁山:734m)이란 정상석이 무인산불감시카메라한테

정상을 뺏긴채, 등로 가운데에 자리를 잡고있는 정상석에 기록된 높이도 지도와는 다르다

 

왕벽산은 임금의 옥과 같은 산 또는 벽(璧)처럼 둥글고 빼어난 산이라는 의미를

지니는데, 대개 산에 지명에  임금 왕(王)자가 붙으면 귀함을 강조하기 위해서다.

 

그러나  1961년 4월 22일(국무원 고시 제16호)의 행정명령으로 왕벽산에서

용구산(龍山)으로 바뀌었다고 하는데 지명의 유래는 옛적부터 이 산에서

기우재를 지내는 곳에 '용의 코처럼 생긴 바위' 가 있었는데 그 용(龍)자에

동물중에 수명이 가장 긴  '거북 구(龜)' 자 를 붙혀 용구산(龍龜山)이라 불려졌다고 한다

용구산은 거북이가 고개를 내밀고 있는 형상을 하고 있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송순의 면앙정가(俛仰亭歌:조선 중기에 송순(宋純)이 지은

가사(歌詞)와 고봉 기대승(高峯 奇大升:1527~1572)의 고봉전서(高峯全書),

신증동국여지승람, 대동여지도, 면앙정삼십영 등에 기록표기 되어 오늘날까지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고 한다.

 

* 기대승(奇大升:1527~1572)조선 유학의 전개에 커다란 영향을 미친

  주자학자이며, 지치주의적 이념으로 왕도정치를 펼치려 했다... 그의 주자학

  가운데 중요한 위치를 점하는 사단칠정론은 이황·정지운 등과의 논쟁을

  통하여 체계가 이루어졌으며 그는 조광조의 지치주의 사상을 이어받아, 전제주의

  정치를 배격하고 민의에 따르고 민리를 쫓는 유교주의적 민본정치·왕도정치를

 이상으로 삼았다.

 1558년 이황과의 만남은 사상 형성의 커다란 계기가 되었으며, 그뒤 이황과 13년

 동안 학문과 처세에 관한 편지를 주고받았으며 그 가운데 1559년에서 1566년까지

 8년 동안에 이루어진 사칠논변(四七論辯: 퇴계 이황과 기대승 간에 전개되었던

 사단칠정에 관한 논변을 가리키는 유교용어)은 조선유학사상 깊은 영향을 끼친 논쟁이다.

용구산 정상에서 휀스를 끼고 동남쪽으로 이어지는 투구봉과

채알봉으로 이어지는 뚜렸한 능선을 보면서 병풍산으로 향하는

서쪽으로 향하는데 좌측은 1구간부터 같이 걸었던 담양군 월산면과

아쉬운 작별을 하고, 담양군 수북면으로 행정구역이 바뀌지만

우측은 병풍산 정상까지 월산면 용흥리로 이어진다

용구산을 지나면서부터 맥길은 암릉구간으로 바뀌지만

일반등산객들이 많이 다니는 길이라서 그런지 길은 좋다 

암릉을 지나면서부터 맥길은 극락에서 무간지옥으로

떨어지는 느낌으로 급경사의 내리막길이다.

급경사의 편한 길이 그리 반갑지만은 않다.

내려간만큼 다시 빡세게 올라가야 한다는

사실을 알기에...잠시후에 빡세게 오를 천자봉과

그너머의 병풍산이 유난히도 높게 보인다

좌측의 등로 아래로 담양군 수북면 궁상리 들녘이 보이지만

아직 걷히지 않은 미세먼지 탓인지 모든게 흐릿하기만 하다

내리막길 주변에는 이곳이 음지에다 고도가 높아서 그런지

군락을 이루고 있는 산자고(山慈姑:꽃말:봄처녀, 가녀린 미소)

이제서야 서서히 기지개를 켜면서 몸을 풀기 시작하는구나

쪽재(602m:10:34)

담양군 수북면 궁상리 쪽재골에서 월산면 용흥리 용흥사 계곡을

이어주는 고개로 동서로는 왕벽산(용구산)과 천자봉(옥녀봉)을 이어준다

옴팍한 고개에 이정표가 서 있고 좌측의 궁상리쪽으로 내려가는 길

중간쯤에 1894년 10월 하순 농민군과 일본군 및 관군 사이의 격전지였던

곳에 담양 수북 동학혁명군 전투전적비가 있고 쪽재골 아래에는 용구마을이 있다

용구산에서 짧은 거리를 고도 120여m 정도 내려오니 쪽재이고

다시 내려온 만큼의 거리를 짧은구간(0.4km)에 천자봉까지

저질체력으로 올라가야 할 생각을 하니 氣가 막힌다.

이곳에서 초콜렛 하나와 물 한모금을 마시면서 10분정도 휴식을

취한 다음에 다시 길을 나선다

쪽재에서 휴식을 취한 후 초반부터 빡센 오르막길이다.

어차피 가야할 길...세월아!...네월아 하면서 맥산꾼이 아닌

일반 등산객보다 더 느린 걸음으로 천자봉으로 향한다

무명봉(10:39)

부지런한 사초(莎草)는 연지꼰지 찍고 봄을 맞이하기

위한 옷매무새에 여념이 없구나...나도 너처럼 몸뚱아리에

고통없이 살아보는게 願이건만 그게 내 맘대로 안되니...

 

사초(莎草:꽃말 자중)

사초과에 속한 식물을 통틀어 이르는 말로 여러해살이풀이고 줄기는 세모지며 

잎은 주로 뿌리에서 돋으며 꽃은 단성화(單性花)이고렌즈 모양이나 세모꼴의 

열매가 열린다... 열대 지방에서 한대 지방까지 널리 분포되어 있지만 특히 

온대 지방 이상의 습지에서  잘 자라며 대부분 사료 식물로 쓰인다.

그래 걱정하며 살기에는 인생이 너무 짧다.

이제는 모든걸 내려놓고 자연에 순응하며 살련다

쪽재에서 빡세게 오른 다음에 이름없는 봉우리에 올랐다가...

잠깐 숨을 돌린 다음에  다시 천자봉을

향한 오르막이 시작되려는 모양이다

준.희 쌤이 아닌 산주라는 분의 격려 문구가 보인다

급경사에다 등로에 낙엽까지 많아서 한걸음 올라서면

한걸음 뒤로 물러서는 걸 반복하며 천자봉으로 향하는데

저 앞에 보이는 천자봉이 왜 이리도 멀게만 느껴지는지...

힘든 능선으로 올라서니 진달래 능선이 나오는데

이곳은 고도가 높아서 그런지 아직도 진달래는

깊은 겨울잠에 빠져 있다

조망바위(10:58)

오름길 좌측에 선답자들의 산행기에 어김없이 등장하는 스타소나무를 만난다

 

懷故人(회고인:옛님을 생각하며) / 이매창(李梅窓)

 

春來人在遠(춘래인재원)

봄은 왔건만 님은 멋곳에

 

對景意難平(대경의난평)

경치 보아도 마음 편치 않네

 

鸞鏡朝粧歇(난경조장헐)

거울 보며 아침 단장 마치고

 

瑤琴月下鳴(요금월하명)

달빛에 거문고 타며 우네

 

看花新恨起(간화신한기)

꽃 볼수록 설움이 일고

 

聽燕舊愁生(청연구수생)

제비 울음 들으니 수심만 생기네

 

夜夜相思夢(야야상사몽)

밤새 님 그리는 꿈 꾸다가

 

還驚五漏聲(환경오루성)

오경 치는 소리에 놀라 깬 다오

 

 

 

* 이매창(李梅窓:1573~1610)은 조선 선조 때의 부안출신 기생으로 본명은 향금(香今),

  호는 매창(梅窓) 또는 계생(桂生·癸生), 계랑(桂娘·癸娘) 등으로도 불리며, 개성의

  황진이(黃眞伊), 경성의 홍랑(洪娘)과 함께 조선시대 3대 기생으로 꼽히며 시조와 한시,

 가무와 거문고·가야금에 이르기까지 다재다능한 명기(名技)로서 개성의 황진이와 더불어

 조선 명기의 쌍벽을 이루었다고 한다.
 
매창은 시조와 漢詩 58수를 남겼고 작품으로는 『매창집』이 전해지고 있으며,
부안 매창공원에는 매창의 주옥같은 詩와 매창을 기리는 詩들이 돌에 새겨져 있다.

천자봉 오름길에서 뒤돌아 보니 용구산에서 투구봉(623.5m),537.4m봉,

채알봉(306.1m)으로 이어져 수북면 궁산리로 이어지는 능선이

흐릿하나 이른 아침에 비해서 미세먼지는 옅어졌고, 숨쉬기도

조금은 나은 느낌이다... 투구봉은 산의 지세가 옛날에 장군들이 쓰는

투구처럼 생겼다고 해서 유래된 지명이라는데 내가 오후에 걸어야 할

맥길에서도 또 다른 투구봉을 만날 예정이다

천자봉 오르는 길에서 바라본 담양군 수북면(水北面)의 들판

전라남도 담양군의 서부에 위치한 면으 동쪽은 담양읍, 서쪽은 대전면, 남쪽은

영산강 건너 봉산면, 북쪽은 월산면과 접해 있으며 병풍산 자락이 감돌아

삼인산으로 이어지며, 그 사이에서 수북천이 동류(東流)하며, 면 소재지인

수북리를 비롯하여 14개 법정리를 관할하고 있으며, 수북천을 비롯한 소하천이

면의 남동부 경계를 흐르는 영산강에 흘러들며, 이 일대에 평야가 발달해 있다.

주로 쌀·보리가 재배되며, 죽제품 생산이 활발하다. 광주광역시에 가까운 면의

남서부지역은 개발제한구역에 속하며 장성-순창을 연결하는 국도가 나 있다.


고려 때 장평부곡(長平部曲)이 있었으며『신증동국여지승람』에 "장평부곡은

현 북쪽 30리에 있다."고 기록되어 있고 『호구총수』에 의하면 조선 시대

창평현 동서(東西) · 장남(長南) · 장북(長北)과 담양부 목산(木山)면과 광주목

갈전(乫田)면에 속했다.

 

1912년의 창평군 동서면 · 장남면 · 장북면, 담양군 고면(古面) · 목면(木面) ·

우면(牛面), 광주군 갈전면 일부지역이 1914년 담양군 수북(水北)면으로 통폐합되었다.

 

수북은 수북학구당(水北學求堂)에서 유래되었으며 수북학구당은 1473년 지역 출신인

박(朴) · 남(南) · 진(陣) 3성씨가 창건했다가 철폐된 뒤, 1709년 김 · 이 · 우 · 정(丁)

4성씨가 원래 터에서 약 300m 떨어진 오정리에 다시 세웠다... 영산강을 사이에 두고

수남학구당과 함께 학업 정진 공간으로 면에 있는 성암(聖岩)은 이성계 꿈에 삼인산을

찾아 성몽, 등극했다는 전설이 담긴 몽성산과 병풍산의 기암괴석의 의미를 딴 것이다.

천자봉(天子峰)은 일명 옥녀봉이라고 부르며 작은 표지석이 있고 돌탑이 쌓여있다. 

천자봉 능선부터는 동쪽으로는 호남정맥, 서쪽으로는 영산기맥이 조망되나 날씨만

좋으면 정말 멋진 산길인 듯 한데, 흐릿한 미세먼지가 원망스럽기만 하다.

천자봉(天子峰:749m:11:05)

담양군 월산면 용흥리와 수북면 궁상리, 대방리의 경계에 있는

봉우리로 정상에는 고도차이가 실제와 많이나는 정상석이 있고

돌탑과 이정표,  좌측의 대방리 방향으로는 일반 등산객들이

올라오는 코스인지, 맥산꾼의 시그널이 아닌 일반 등산객들의

시그널들이 많이 보인다.

 

아직까지 완전체는 아니지만 아침과는 달리 주위의 산줄기가

제법 보이기 시작하는데, 내가 트랙에서 다운 받아서 다니는

오룩스맵 지도에는 山名은 고사하고 높이조차 기록되어 있지

않아서 혼란스럽다.

 

오늘 산길을 걸으면서 유명한 봉우리마다 지명이 2개씩이나

있어서 상당히 헷갈리는데, 그 원인은 지자체의 利己心의 

發露가 아닌지 의심스럽다.

조금전에 지나온 왕벽산도 장성쪽에서 부르는 이름이지만

담양쪽에서는 용구산으로 부르는 듯 하고, 이곳도 담양쪽에서는

천자봉이라 부르지만, 장성쪽에서는 옥녀봉이라 부르며, 잠시후에

걸을 병풍산도 또다른 용구산, 그 이후에 만날 투구봉(담양)도 신선대(장성)라

부르는데 똑같은 산을 두고 지자체끼리 왜그리 으르렁대는지 산꾼으로는

도무지 이해가 안 간다...여기 말고도 남도지방에서 가장 심했던 곳이

전남 보성군과 장흥군 사이에 있는 철쭉으로 유명한 일림산(日林山)으로

장흥에서는 삼비산(參妃山)으로 주장하면서 법정소송까지 갔지만

주봉(主峰)이 보성쪽이라 일림산이라 법적판결이 났는데도 아직까지

장흥쪽에서는 삼비산으로 부르고 있다고 한다

천자봉에서 병풍산 정상을 바라보면 다시 길을 나서는데 오늘 내가걷는

산길중에 가장 높은 병풍산이 멋진 근육질을 자랑하고, 그 뒷쪽의

불태산도 병풍산 못지않게 멋진 근육질을 자랑한다

 

가야할 병풍산의 능선은 좌, 우 풍경이 확연히 다르게 다가오는데, 좌측은

깍아지른 암벽지대 마치 병풍을 두른 듯 이름값을 하지만 우측의 능선들은

어머니의 인자하신 모습같은 느낌으로 산그리메를 연출한다.

‘병풍(屛風’이라는 산 이름에서 암시하듯 보이는 병풍산은 멀리서 보면

8폭 병풍을 세워 놓은 것 같으며 곡창지대 나주평야를 지키는 수문장처럼

북쪽의 찬바람을 온몸으로 막아 주는듯 하다.

 

병풍산의 가장 큰 장점은 지나치게 번잡하지 않고 조용한 산행을 즐길 수 있으며,

탁 트인 조망으로 인해 새해 해맞이 장소로 인기있는 산으로 인근의 광주, 장성, 담양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산으로 육산인 듯하나 전체적으로 암산에 가깝다.

용구산, 천자봉, 투구봉 등 봉우리마다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멋진 풍경과 힘들지도

그렇다고 쉽지도 않은 적당한 난이도가 조화를 이루고 있는 산이다.

영산기맥 능선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북서쪽은

능선조차 感을 잡지 못할정도로 미세먼지가 심하다

저 안보이는 능선으로는 고창 방장산, 문수산, 태청산,

불갑산 등 멋진산이 정말 많은 곳인데...

양지바른 곳에 하얀제비꽃 네자매가 다소곳이 피었구나

歌皇 나훈아의 노래중에 제목은 잘 모르겠으나 이런 가사가 있었지...

"울아버지 산소에 제비꽃이 피었네 "라는 가사가 문득 생각나는구나

 

다음주가 청명, 한식이라 나도 고향의 부모님 산소에 갔다오려고 했는데

시골에서 집을 관리하는 조카가 바쁘다고 하는 바람에 성묘가는 걸

포기하고 나니 맘이 영 불편하다...여름에나 가야겠다

암릉으로 올라서니 꽃잎이 떨어진 듯 하얀제비꽃이 군락을 이루고 있다

花有重開日(화유중개일)

꽃은 다시 필 수 있지만

 

人無更少年(인무갱소년)

사람은 다시 소년이 될 수 없다

 

白日莫虛送(백일막허송)

대낮을 헛되이 보내지 말라

 

靑春不再來(청춘부재래)

청춘은 다시 오지 않으니

안중근 의사 語錄 中에서

무명봉(11:10)

오늘 처음으로 어디선가 등산객의 웃음 소리가 들리는데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올망졸망한  무명봉을

오르내리는 것도 재미있다

무명봉(11:15)

안부(11:17)

연분홍 벚꽃이 떨어지지 않고

항상 나무에 붙어 있다면

사람들은 벚꽃 구경을

가지 않을 것이다

활짝 핀 벚꽃들도

한 열흘쯤 지나면 아쉬움 속에서

하나 둘 흩어져 떨어지고 만다

 

사람도 결국 나이가 들면

늙고 쇠잔해져 간다

사람이 늙지 않고 영원히 산다면

무슨 재미로 살겠는가?

이 세상 가는 곳곳마다

사람들이 넘쳐 나

발 디딜 틈도 없이

말 그대로 이 세상은

살아있는 생지옥이 될 것이다

사라져 가는 것들에 대해

아쉬워하지 마라

꽃도

시간도

사랑도

사람도

결국 사라지고 마는 것을

사라져 가는 것은

또 다른 것들을 잉태하기에

정말 아름다운 것이다.

-<운명처럼 다가온 그대> 중에서-

휴식(11:20~30)

어젯밤에 광주오는 버스에서 잠을 한 숨도 못한 탓인지

날씨도 따스하고 길이 좋아서 그런지 졸음이 쏟아지기

시작하는데, 도저히 방법이 없다.

 

그래 나홀로 산행을 하는 독립군이 거리와 시간이 뭔 의미가 있나.

힘들면 쉬어가고, 배고프면 먹고, 졸리면 자는 되는데, 그리고

오늘 목적했던 구간까지 못가면 다음에 한번 더오면 되지...뭔 꺽정이람

이곳에서 베낭을 내려놓고 베낭을 베개삼아 잠깐이지만 눈을 붙이고 나니

몸이 개운하다

안부를 지나...

785m봉으로 오르는 빡센 오르막이 시작된다

785m봉(11:36)

가야할 능선이 보인다...여기서 보이는 뒷쪽 봉우리가

병풍산인줄 알았는데 실제 병풍산은 저 봉우리 뒷쪽에 있다

좌측으로는 삼인산이 보이고 그너머 담양군

대전면 들녘은 미세먼지로 인해 오리무중이다

안부(11:41)

또다시 이어지는 빡센 오르막길

다행히 로프옆으로 완만한 우회길을 만들어놔서 편하게 오른다

무명봉(11:55)

천자봉에서 볼 때에는 까칠한 봉우리였지만 실제 

정상에 도착하니 완만하고 한없이 유순한 무명봉이다

무명봉을 지나면서 본격적인 병풍산으로 향한다

안부(11:57)

안부에서 올라서니 낡은 철계단이 나오고 병풍산으로 향하는 

본격적인 오르막이 시작되고 동.서.남.북이 다 보이는 그야말로

一望無際이건만 오늘은 예외인 듯 하다

철계단에서 왔던 길을 뒤돌아 본다.

용흥사 계곡 아래에 있는 용흥사는 숨어 버렸고, 용흥사

아래에 있는 월산제2저수지와 송대봉(526.6m)만 아련히

보이고 지난주에 걸었던 도마산과 그 뒷쪽의 호남정맥 능선에

있는 추월산과 강천산은 肉眼이 아닌 慧眼으로만 바라본다

철계단의 끄트머리가 보이기 시작하고 좌측으로 멋진 암릉이 보인다

철계단 끄트머리에 올라 암봉으로 오르는 좌측에 삼형제바위,

연인바위라고 부르는 암릉이 보이는데 공식적인 지명은

아니고 보는 각도에 따라서 다르고, 보는 산꾼에 따라서

다르니 정답은 없는 듯 하다

등로에서 바라본 삼인산(三人山:575.1m)의 모습

담양군 수북면 오정리와 대방리, 대전면 행성리의 경계에 있는

산으로 수북면에서 바라보면 삼각뿔처럼 보이기도 하고, '사람 인(人)'

처럼 보이기도 하는 산으로 조선을 개국한 태조 이성계와 관련된 전설이

전해지는데 담양10景에 포함된다고 한다

 

삼인산을 몽성산이라고도 하는데 후백제 견훤과 고려 몽고 침략 때의 이야기와 함께

조선 태조 이성계와 관련된 설화가 전하고 있는 산이다...고려말 이성계 장군이 왕위에

오르기 전, 國泰民安과 자신의 등국(登國:왕의 자리에 오름)을 위해 전국의 명산을

찾아 기도하는 과정에서, 담양의 추월산과 병풍산을 거쳐 다음날 광주 무등산으로

가기 위해 잠을 청하는데, 꿈에 산신령이 나타나서 삼인산(三人山)을 찾으라는

성몽(聖夢, 임금의 꿈)에, 담양의 삼인산을 찾아 祭를 올리고 기도하여, 결국 태조가

왕의 자리에 오르게 되었다.

 

이에 이성계가 성몽하였다 하여 산이름을 몽성산(夢聖山)이라 하였다고 하며, 풍수설화에

호남 3대지지로 구례 금환낙지(金環落地), 태인 평사낙안(平沙落雁)과 더불어

삼인산 수북을 만물시생지(萬物始生地)로 지적하는데 만물시생지는 병풍산(용구산)의

건(乾)과 삼인산의 곤(坤), 즉 음양이 상합하는 곳이기 때문이라고 하며 수북면 두정리가

인터넷 다음, 카카오의 창업자 김범수의장의 고향이다.

 

삼인산을 몽선암(夢仙庵)으로 부르기도 했는데 후삼국 시대에 견훤의 亂때 피난온 

여인들이 몽골(蒙古) 군대에 붙잡히게 되자 절벽 아래로 투신하였다는 기록도 전해지는

산이다

 

담양 10경

 제1경 가마골 용소, 제2경 추월산, 제3경 금성산성, 제4경 병풍산, 제5경 삼인산,

 제6경 메타쉐콰이어 가로수 길, 제7경 죽녹원 제8경 용흥사계곡, 제9경 관방제림,

 제10경 일동삼승지(환벽당, 식영정, 소쇄원)

그러다가 삼인산(三人山)으로 지명이 바뀌었는데 산의 지세가

사람 인(人)자 3개를 겹쳐놓은 듯 보여서 지명 유래가 되었다고 한다

 

산 북쪽에 있는 삼인동 마을은 1750년경 무안에서 함양출신 유학자

박해언(朴海彦)이 풍수지리설에 따라 명당을 찾았던 곳이 이곳 삼인산이며

이곳은 산세가 좋아 정착하였다고 하는데 풍수지리상으로 吉地라고 한다.

암봉(810m:12:08)

철계단을 올라서니 암봉이 나오는데 일부 산행지도에는

이곳을 옥녀봉이라고 표기가 되어 있다...조금전에 지나온

천자봉도 옥녀봉이라 부르는데 이 지역 사람들은 玉女를

좋아하는 모양이다.

지나온 용구산과 천자봉을 바라보면서 병풍산으로 향한다

이정표(12:10)

낡은 이정표에 빛바랜 글씨가 흐릿하게 보이는데 홍길동 우드랜드와 송대봉으로 내려가는 길이다

너럭바위(817m:12:12)

너럭바위에 내려서니 예전에 묘지가 있었던 모양이나 지금은

移葬을 했는지 봉분은 사라지고, 낡은 상석에도 亡者에 대한

기록도 시멘트로 메꾸어 버려서 아무것도 알 수가 없고, 바로

아래에 또다른 묘지가 보인다

床石에 기록된 亡者의 이력이 시멘트로 가려진 아래로 내려서니

탐진최씨(耽津崔氏) 묘지가 있고 묘지를 보면서 안부로 내려선다.

 

* 탐진(耽津)은 현재 전남 강진군의 옛 지명으로 본래 백제의 동음현(冬音縣)인데,

   757년에 탐진현(耽津縣)으로 개칭하고 양무군의 영현이 되었으며 통일신라시대인

  940년에 영암군의 속현(屬縣)이 되었다가, 고려 인종(제17대왕:재위기간:1122~1146년

  정안현을 장흥부로 승격시키면서 탐진은 장흥부의 속현이 되었다가 1417년 도강현과

  탐진현을 강진현(康津縣)으로 통합하였다고 한다. 

안부(12:14)

사면으로 이어지는 등로위에 무명봉이 있지만 그냥 패스한다

병풍산 가는 길

병풍산 오르기 전에 바라본 용흥사(龍興寺)와 월산제2저수지의 모습

 담양군 월산면 용흥리에 위치한 용흥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18교구 본사인

백양사(白羊寺)의 말사로 창건연대는 미상이나 삼국시대부터 있었으며, 원래의

이름은 용구사(龍龜寺)였다고 한다.

 

1693년(숙종 19)에 궁녀 최복순(崔福順)이 이 절에서 기도하여 영조를 낳은 뒤

절 이름을 용흥사라 하고 산 이름을 몽성산이라 하였으며 당시 이 절에는 일곱 개의

암자가 있었으며, 고승들이 머무르면서 50여년 동안 불교를 크게 전파하였다.

 

그 뒤 구한말에 의병과 왜병의 전투로 소실되자 박항래(朴恒來)가 작은 규모의

절을 중건하였으나 그러나 이 또한 불타버렸으며, 1930년대에 백양사 승려인

정신(定信)스님이 대웅전과 요사채를 중건하였다... 6·25로 다시 소실되자 1957년에

요사를, 1970년대에 대웅전을 중건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용흥사는 대가람으로 많은 성보(聖寶)를 간직했었다... 석가모니불 좌상, 자씨미륵보살 입상,

제화갈라보살 입상, 아미타불 좌상 등 50여 점에 달했는데 일제가 약탈하고 전쟁으로 소실됐다.

특히 임진왜란 당시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책사였던 일본인 혜경스님이 용흥사 성보를 다수

수탈해 갔다고 하며, 현존하는 당우로는 대웅전과 요사채가 있으며, 문화유산으로는 2008년

보물로 지정된 1644년(인조 22)에 조성한 범종 및 18세기의 것으로 추정되는 부도(浮屠) 7기가 있다.

병풍산 정상에 올라서니 병풍산 안내판이 아닌 

용구산 이야기 안내판이 산꾼을 반긴다

병풍산(屛風山:826.4m:12:22~27)

 담양군의 월산면 용흥리와 수북면 궁산리, 장성군 북하면 월성리의 경계에 있는

산으로 정상에는 멋진 정상석과, 이정표, 용구산이야기 안내판과 귀한 1등삼각점이

정상을 지키고 있으며 호남정맥 추월산 서편에서 남서쪽으로 향한 병풍산 능선이

도마산과 용구산에 이어지면서 수북면과 대전면 일대를 감싸는 줄기에 있으며 남동쪽으로

삼인산(三人山:575.1m)에 연결되며, 오룩스맵 지도에는 지나온 용구산(龍龜山:726.1m)과

함께 이곳도 용구산(龍龜山)이라 기록되어 있고, 정상에 안내 팻말까지도 있다

 

병풍(屛風)은 북하늬 바람을 차단하여 배산(背山)이 된다는 의미로 황룡(신산경표상:병풍)

지맥에서 가장 높은 산이며, 신산경표상 병풍지맥의 가장 높은 산으로 主山으로 삼고있다

 

대동여지도에 장성과 담양 경계에 용구산(龍龜山)이, [1872년 지방 지도]

(장성)에도 용구산, 조선지지자료, (장성)에는 북이면 조산리에 병풍산(屛風山)으로

기재되어 있으며,지명 유래는 산의 봉우리와 능선이 우뚝 솟은 투구봉, 옥녀봉, 중봉,

천자봉 등을 거쳐 정상인 깃대봉까지 길게 이어져 있어, 그 모습이 마치 병풍을 둘러놓은

듯하다 하여 병풍산으로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병풍산 정상에 올라서니 그야말로 一望無際인데 북사면 아래로는 황룡강의

발원지로 용흥사가 위치하며, 남사면 한수동(寒水洞)골 국제청소년수련원에서

흐르는 수북천은 영산강에 합류하며 병풍암 바로 남서쪽 기슭에 '용구샘'이 있고,

동쪽으로는 추월산으로 이어지는 호남정맥 능선이 시원스레 보이고, 바로 아래는

삼인산, 그 뒷쪽으로는 땅끝기맥 능선, 남쪽으로는 다음 구간에 가야할 불태산은

보이나 광주의 진산이라는 무등산은 구름속에 숨어 버렸다...북서쪽으로는 장성군이

보물처럼 여기는 춘백암추내장(春白巖秋內藏)이라 부르는 백암산, 내장산, 영산기맥상에

걸려있는 입암산(笠巖山:654m)도 구름탓인지 직접  볼수가 없으니 답답하다

 

1756년 담양부사 이석희(李錫禧)가 펴낸 『추성지(秋成誌)』에 "풍수지리상 병풍산에서

좌우로 뻗어 내린 능선들이 마치 지네발을 닮아서 담양객사에 지네와 상극인 닭과 개를

돌로 만들어 세우고 재난을 막았다고 하며 임진왜란 때 왜군이 없애 버렸다고 한다."고

기록되어 있다. 

 

예전에 비가 안 오면 용구산 정상에 누군가 묘를 써서 그런다며 인근 서너 개 면의 사람들이

온통 삽과 괭이를 들고 묘 파러 달려갔는데, 사실 용구산은 오른쪽부터 왼쪽으로 병풍처럼

빙 둘러친 산자락들이 모두 아기 거북이처럼 그만그만하게 용구산 품을 향해 기어가는 형국이다.

 

고려 때는 몽고군이 침입해오자 부녀자들이 이곳으로 숨어들어 목숨을 끊기도 했던 산이며

또 영광 앞바다로 침투한 무장간첩들이 병풍산과 추월산을 거쳐 지리산으로 들어가는 루트로

이용하였으며, 1967년에는 병풍산에서 공비 두명이 사살되기도 했다.

 

병풍산 상봉 바로 아래에는 바위 밑에 굴이 있고, 그 안에 신기하게도 두 평 남짓한 깊은 샘이 있어

이 샘을 "용구샘"이라 하는데, 지금도 이곳에서 솟아오르는 깨끗한 생수가 등산객들의 귀중한 식수가

되고 있다고 한다.

인증샷

늘 나홀로 산행을 하면서 못생긴 얼굴로 인증샷을 남기기에는 쉽지

않았는데 이곳 병풍산은 장성과 담양, 광주시와 거리가 가까워서 그런지

정상에는 등산객들이 대여섯명 정도 보이는데, 혼자서 광주에서 오셨다는

분이 부탁도 하지 않았는데 사진을 찍어주겠단다

 

그러면서 이렇게 큰 베낭을 무겁게 왜 메고 다니느냐, 어디서 오셨느냐는

등등...마치 경찰관이 범죄자 취조하듯 시시콜콜하게 묻는데  이 분에게

대답을 해줘봐야 입만 아플 것 같아서 웃어 넘긴다...어디로 가시냐고 하면서

만남재에 자기 차를 세워놨으니 코스만 맞으면 광주까지 태워주겠다는데,

그러면 다음 구간이 접속이 어려워서 저는 대치로 가는데 마음만 고맙게

받겠다고 예를 표한다

병풍산 정상 1등삼각점(담양11 / 복구 1980)

오늘 내가 걸었던 지나온 길을 되돌아 본다

쬐끄만 내 두발이 힘들다 힘들다 하면서 많이도 걸었구나

조금전에 지나온 천자봉과 용구산 너머로 추월산과 강천산

능선이 흐릿하게 보이는데 올 가을쯤에 저쪽을 걸어봐야지...

서쪽의 장성군 북하면의 산그리메

 장성군의 북동단에 위치하고 있는 북하면(北下面)은 남북으로 길게

발달한 면으로 장성호의 상류지역에 속하며, 주로 산지가 남북방향으로

발달해 있으며, 동편 산줄기는 입암산(笠巖山, 654m)에서 남동쪽으로

뻗어 내장산과 새재로 연결되며, 상왕봉(741m), 백학봉(白鶴峰, 651m)으로

연속되어 정읍과 순창과의 경계를 이룬다.

 

상왕봉에서 사자봉(獅子峰, 723m)으로 이어지는 중부 산줄기가 자리하고, 골짜기에

백양사가 자리하고 있고, 다시 도장봉에서 담양과 경계를 이루면서 장군봉(將軍峰, 558m)

산줄기가 남서쪽으로 뻗으면서 담양과 경계를 이루는데 산지 사이에 약수천, 북하천,

대악천이 장성호로 유입되고 있고 이런 하곡의 주변에 평야가 나타난다.

 

병풍산의 한재를 거쳐, 남창에서 새재를 지난 정읍으로 넘어가는 길은 방어에 중요하여

입암산성이 자리하고 있으며 남창과 백양산 북부 일대는 내장산국립공원 지역이다.

면 소재지인 약수리를 비롯해 월성·대악·용두 등 11개 법정리를 관할한다.

 

지명은 조선 시대부터 사용되어 유래가 매우 오래되었는데『여지도서』와

『호구총수』에 북하면과 그 소속 동리가 수록되어 있고『지승』에 북하면은

북상면이 아래쪽에 자리하며, 백양사, 영천사, 약사암이 북쪽에 나타난다.

 

별장소(別將所)가 있는 입암산성이 북서부에 묘사되어 있고, 담양과의 경계에

한재(寒峙)가 있으며, 1906년에 월성리 연동 마을이 북하면에 편입되었다.

1975년 장성호의 건설로 북상면이 폐지되면서 신성리·쌍웅리·덕재리·동현리가

북하면에 편입되었는데 동현리는 완전히 수몰되고 덕재리 한 마을만 남았다.

한편, 면 내의 중평리에서 회촌이 먼저 성촌되었으나 차츰 중평 마을이 커졌다고

하며 중평은 들 가운데 있다고 하여 붙여졌다고 하며, 회촌은 회나무가 있었기

때문에 '회촌(檜村)'이었으나 '회촌(會村)'으로 표기되고 있고 중평리의 명치(鳴雉)

마을은 뒷산이 꿩 형국인데 앞에 매(매봉)가 있어 먹이(콩바위)를 먹지 못하고 울고

있다 하여 지명이 유래되었다고 한다.

병풍산 정상에서 바라본 한수동(寒水洞)골의 모습

국제청소년수련원을 비롯한 성암국제수련원, 전남자연환경연수원,

담양군청소년수련관, 천문대, 인공암벽장, 야외공연장, 캠핑장, 수영장

시설이 있으며, 국창(國唱) 이날치의 기념비 너머로 대방제란 커다란 저수지가 보인다

 

조선후기 8명창 중 한 명인 이날치(李捺致:1820~1892)는  담양군 수북면에서

태어나 광주에서 활동했으며, 남사당패에서 '날치처럼 날쌔게 줄을 탄다' 해서 ‘날치’라는

이름을 얻었다고 하며, 무등산 증심사에서 득음하여 서편제의 대가(大家)로 알려졌다.

 

*서편제 (西便制)는 광주, 나주, 보성, 강진, 해남 등지에서 성행하였으며 특히 섬진강 서부에

  위치한 지역들을 중심으로 행하였다고 하여 불러지게 되었으며, 영화 서편제에서 '동편제(東便制)'는

 무겁고 매김새가 분명하다면 서편제는 애절하고 정한(情恨)이 많다는 대사가 나오기도 했는데

 동편제는 무겁고도 강한 가락을 뜻하지만 서편제는 가볍고도 부드러운 가락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참고로 동편제는 주로 섬진강 동부에 위치하여 영남지방과 인접해 있는 전남 동부(구례군, 곡성군),

 전북 남부(남원시, 순창군 고창군) 등지에서 성행한 판소리를 말한다.

병풍산에서의 아쉬움을 뒤로하고 다시 길을 나선다

정상에서 사진을 찍어주신 분인데 한참 앞서간 줄 알았는데

바로앞에 가고 있구나...코스만 맞았으면 광주까지 편하게

갈 수 있었는데...인연이 안되는 걸 우짜겠노...

암봉(12:30)

힘든 삶의 여정이지만 주말마다 산으로 올 수 있다는 건 

난 이미 복받은 사람인지 모르겠다... 이 여정이 언제

끝날지는 모르겠으나 걸을 수 있는 날까지 걸어보련다

안부(12:33)

안부에서 올라서니 조그전 먼저가던 그 분이 스틱으로

뭘 툭툭 치는데 자세히 보니 살모사 새끼가 도망도

안가고 금방이라도 물려고 하는 자세를 취한다

무명봉(12:35)

등로는 참으로 좋다...그러나 산행 초반에 무리를

했는지 아니면 지난주에 다쳤던 무릎에 통증이 또다시 시작된다

언제쯤 아픔이란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을런지...

돌탑봉(800.5m:12:37)

삼인산 너머로 펼쳐지는 담양군 수북면과 대전면의 들녘

그 뒷쪽으로 멋지게 펼쳐져야 할 무등산의 스카이라인은

짙은 미세먼지에 꼬라지가 났는지 눈꼽만큼도 안 보이는구나

바람재 갈림길을 향하는 내리막길로 내려간다

바로앞에 보이는 봉우리가 투구봉이고 그 뒷쪽 산이 보두산이라

불리웠던, 병봉산이고, 좌측으로 스카이라인을 이루고 있는 곳에

우뚝 솟은 산이 불태산인데, 다음구간에 걸어야 할 능선도 그리

만만하지는 않을 듯 싶다

바로 아래에는 너덜길이 있는데 용구샘이 있는 곳으로 병풍산을 

용구산으로 부르게 만든 원인 제공을 한 용구샘은 가뭄에도 마르지

않는다는 전설이 전해져 내려와 신성시되던 샘이라고 한다.

만남재 갈림길(12:46)

만남재는 삼인산과 대방저수지로 갈라지는 한재골로 내려가는

삼거리로 마루금은 이정표에 표기된 투구봉 방향으로 향한다

투구봉 방향으로도 등산객들이 많이 다니는 모양이다

2번째 만남재 갈림길(12:48)

이곳 이정표에서 직진의 암릉으로는 투구봉으로 향하는 맥길이고

우측으로는 투구봉을 패스하고 대치(한재)로 내려가는 일반

등산로가 보인다

투구봉 가는길

로프에 몸뚱아리를 의지한 채 암릉구간을 통과한다

암릉길 사이로 맥길은 이어지고...

암릉구간을 올라서니...

 담양군 대전면 들녘과 대야제 저수지가 흐릿하게 보이는데 이곳부터는

우측은 장성군 북하면이고 좌측은 담양군 수북면에서 대전면으로 행정구역이 바뀐다

투구봉 가는길에 뒤돌아 본 병풍산의 모습

암릉사이로 바라본 담양군 대전면 들녘은 미세먼지에 갇혀 버렸다

 

 담양군 서부에 위치한 대전면(大田面)은 1914년 4월 1일 조선총독부령에 의하여

전남 광주군 대치면, 갈전면, 장성군 갑향면을 전남 담양군 대전면으로 합면하였다.

동쪽은 수북면, 남쪽은 광주, 북·서쪽은 장성군 장성읍·진원면과 접하며 광주광역시

북구 건국동과 대전면 사이를 영산강이 흐른다.

 

용전·생용마을 등 건국동 일대 사람들은 대전면 소재지에서 열리는 한재장을 보러

영산강을 건넜고 그 때 이용하던 나룻배가 지금도 용산교 근처에 남아 있다고 하며

이 배는 또한 대전면 사람들이 광주 큰장(양동시장)을 보러 광주 쪽으로 들어올 때도

이용하곤 했으며 이 나룻배는 강둑 양쪽에 밧줄을 걸어 이것을 당겨 이쪽저쪽을 오가던

일종의 ‘줄나루’였다고 한다.

 

면 북부에는 호남정맥의 지맥이 뻗어내려 병풍산(屛風山, 822m)·병봉산(屛鳳山, 685m)

등의 험준한 산이 솟아 있으나 중·남부에는 영산강의 지류인 회암강이 동서로 흐르고

유역을 따라 넓은 평야가 전개되며 주요 농산물은 쌀·보리·콩·참깨 등이며, 특산물로

동충하초·방울토마토 등을 생산한다... 장성군, 담양군, 광주광역시 간 국도가 면의 중앙을

지나가며 문화재로는 담양대전면의 느티나무(천연기념물 284), 담양오충정각(전남기념물 16),

취사당(聚斯堂), 행성리(杏城里) 고분, 대성사(大成祠), 안심사지, 극락사지, 행성리 지석묘군

등이 있다.

투구봉(兜鍪峰:751m:12:57)

담양군 수북면 궁산리와 대전면 평장리, 장성군 북하면 월성리의

경계에 있는 봉우리로 고도도 표지하지 않은 앙증맞은 정상석이

있고, 주위 전망은 그야말로 一望無際이나 내가 다운을 받아서

다니는 오룩스맵 지도에는 고도 표시조차도 안되어 있는 무명봉이다.

점점 오룩스맵에 대한 신뢰감이 들지 않는 느낌이다

 

 사방이 막힘없이 트이며 담양군 대전면 들넠과 영산강이 흐릿하긴

시원하게 펼쳐지고 북쪽으로는 내가 지나온 황룡지맥의 웅장한 산세가

병풍처럼 펼쳐지며, 지명의 유래는 마치 성(城)의 투구를 쓰고 서있는

듯한  느낌이라 투구봉이라 부르는데, 담양에서는 투구봉이라 부르지만

장성에서는 신선대라 부르니 처음 이곳을 지나가는 산꾼으로서는 상당히 헷갈린다

투구봉에 잠깐 서 있으니 아침내내 조용하던 바람이 조금씩

불어대니 땀에 젖었던 옷 탓인지 살짝 추운 느낌이라 서둘러

길을 나선다

안부(13:00)

투구봉을 지나면서 대치까지는 고도를 확 낮출 기세인지

산죽사이로 이어지는 올만졸망 길이 정겹기만 하다

우측으로 내려가는 편한길을 버리고 좌측 암릉으로 올라선다

신선대?(13:01)

장성사람들은 이곳이 신선대인데 조금전에 지나온

투구봉을 신선대(神仙臺)로 착각한 것 아닌지?...

신선대에서 바라보니 大峙(한재)가 보이고 그 뒤로 우뚝 솟은 산이

지맥길에서 한창 벗어난 보두산이라 불리웠던 봉병산이고 좌측의

 옴팍한 골짜기가 내가 오늘 산행 들머리로 잡은 잿막재이다

동남쪽 아래쪽으로는 만남재가 보이는데 조금전에

나를 광주까지 태워주겠다는 분이 세웠두었던 곳이다

그 분에 대치에 차를 세워 두었더라면 오늘 광주로

가는 길은 땡 잡았는데...에공 아까운거

신선대(?)에서 우측으로 내려서면서 바라본 홍길동 우드랜드와

더 멀리 장성읍내 아파트가 보이는데 육안으로는 뚜렸하게

보이나, 똑닥이 카메라로는 워낙 遠景이라 판별이 안되는구나

조금전 투구봉을 오르지 않고 편하게 우회했던 길을 만난다

암봉(13:10)

암봉에서 바라본 병봉산의 모습

암봉에서 바라본 담양군 대전면 평장리(平章里)의 계곡

 담양군 대전면 평장리는 원래 광산(광주)에 속했는데 1914년 당시 광주군 대치면에서

담양군 대전면에 편입됐으며, 평장동 광산김씨 유허비(전남지방기념물 제200호)는

좌대와 비신, 지붕돌로 구성돼 있다.

 

이 유허비는 한국씨족의 발생을 연구할 수 있는 좋은 사례로 특히 향토사 입장에서

한 동네의 지명이 결정되는 과정을 살필 수 있는 사례이기도 하다... 뿐만 아니라

전남지방 성·본관 발생에 대한 연구자료로써 학술적 가치도 있다고 한다.

 

평장마을 입석은 남북으로 길게 뚫린 계곡을 따라 한양으로 가는 길가에 있으며,

마을주민은 장승 또는 미륵이라 부르고 있으며 평장마을 입석을 비롯한 한재골로

통하는 길목에 세워진 한재초교 미륵불, 광주 입암마을 입석 등 모두 3기가 남북

방향으로 세워져 있는데 경계 또는 이정표로 세워진 것으로 보인다.

마을 주민은 분쟁조정선이라고도 하며, 불태산 선녀가 무등산으로 날아갈 때

치마폭에서 빠트린 것이라는 등 여러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직진으로 향하는 뚜렸한 등로가 가운데에 묘지가 있는데

장성군 북하면 월하리로 향하는 길이고 지맥길인

대치로 향하는 길은 좌측으로 확 꺽어져 내려간다 

갈림길(13:14)

쉼터1(13:17)

길은 좋은데 갈수록 무릎 통증이 심하니 걱정이구나

쉼터2(13:24)

갈림길(13:27)

한재골 정상(대치)방향은 편한 길이지만...

지맥길은 쉼터의자가 있는 뒷쪽으로 오른다

520.5m봉(13:29)

이곳이 지맥길 능선에 있는 족보있는 520.5m봉이만

산패는 커녕... 그 흔한 선답자의 시그널 하나도 없다.

선답자의 산행기에는 시그널이 2개나 달려 있었는데

아마도 지자체에서 철거해 버린 것은 아닐까? 

520.5m봉을 내려서니 조금전에 우회했던 길을

만나서 아주 편하게 대치재로 내려간다

바르게 살자...당연히 그래야제

그런데 요즘은 그렇지 않은 인간들이 울매나 많은데...

특히 여의도 근처에서 기생하면서 온갖 권모술수로

민초들의 등쳐먹는 인간부터 바르게 살기 교육을 시켜야

하는데, 그 넘들이 지들 입맛대로 법을 만드는 바람에 대응할

방법이 없으니 우짜면 좋노...자꾸만 희망이 사라지는

세상이 되어가는구나 

안부(13:38)

내리막길로 내려가니 등로 우측으로 묘지가 보이고

차량소리가 시끄럽게 들리는 걸로봐서는 대치재가

가까워진 모양이다

898번 지방도(도로명 주소:병풍로)가 지나가는 대치라 불리는 고개로 내려선다

등로 옆에는 병풍산 등산로 안내판이 서 있다

대치재(大峙:395m:13:43)

 담양군 대전면 평장리와 백양사로 향하는 장성군 북하면 월성리를 잇는

고개로 담양에서 장성군 내장산국립공원 백양사지구로 가는 길목이라

그런지 차량 통행량도 많고 도롯가에 주차한 차량이 엄청나게 많은데 장성군

뿐만아니라 수도권, 충청도로 가는 길목이기도 한 고개이다

 

대치(大峙)는 큰 고개로 한재라고도 부르며 한재 토끼탕이 유명한 곳이기도 하다.

이곳에 담긴 국경 표지석 설화와 관련하여 한재골 잿막을 기점으로 광주군 삼각산까지

일직선으로 큰 돌이 중간 중간 서 있는 것을 지금도 볼 수 있다고 하는데 난 보지 못했다

 

전설에 의하면 대전 들판을 중심으로 먼 옛날 평야의 쟁탈전이 벌어졌는데 일진일퇴,

승부의 勢가 백중세라 긴 세월 전투에 지쳐 협상 끝에 양측이 불가침의 표지석을 세웠다는 것이다.

증거로 대치 서쪽 진등 땅을 파보면 청룡도, 장창, 투구와 같은 무기가 발굴되었다고 한다. 

도로옆 나뭇가지에 걸려있는 반바지님의 흔적

이곳에서 베낭을 내려놓고 물 한모금 마신

다음에 오르막을 향하는 여정을 시작한다

오르막을 향하는 길에 선답자들의 흔적들이 모조리

떨어져 있는데 조금전에 지나온 520.5m봉의 산패가

흔적도 없이 사라졌는지 이유를 알 것만 같다...지저분하다는

이유로 지자체들이 제거해 버린 모양이다

대치에서 빡세게 20분정도 올라서 통나무 계단이 나오는데

또다시 도지는 무릎통증...시간적 여유는 충분하지만 도저히

올라갈 자신이 없어서 포기하고 대치재로 되돌아 내려간다

다시 돌아온 대치(大峙:14:15~45)

괜히 30분이란 시간을 헛짓거리한 셈이다

일단 민생고를 해결하기 위해서 잔치국수 한그릇을 주문하고

쥔장 여인에게 양해를 구한 후에 수돗가에서  간단하게 씼고

옷을 갈아입은 다음에 잔치국수로 늦은 점심 식사를 한다

식사를 끝내고 교통편을 고민하는데 이곳에서 장성군 월성리로 가서

버스를 타고 장성역에서 서울가는 무궁화열차를 탈까 고민을 했지만

군내 버스 시간을 알 길이 없어서 쥔장여인에게 물어보니 자기는

버스를 타본적이 없어서 모르겠단다...내 옆에서 혼자서 막걸리를

마시분 분에게 내가 지금 서울가는 버스를 타야하는데 교통편을

좀 알려주라고 하니, 이곳에서는 어차피 택시를 타야하는데

담양, 장성, 광주터미널까지가 거의 비슷한데 아마 광주가 가장

가까울거라고 한다...왠 광주?...난 장성으로 가서 열차를 타거나

담양까지 택시를 타고가서 다시 버스로 담양까지 서울갈 생각을 했는데...

 

그 분이 잘아는 대전면 택시를 불러줘서 광주터미널로 향하는데 시가지를

통과하면서 차량이 좀 막히기는 했지만 농장쥔장의 도움으로 좀 편하게 왔다

광주 유스케어 터미널(15:30)

광주발 → 서울행 버스표

20분정도의 여유가 있어서 자판기에서 믹스커피를 한잔

뽑아서 마시는 여유를 가지고  서울가는 버스에 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