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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범여(梵如)의 世上사는 이야기
황룡(병풍)지맥(終)

황룡(병풍)지맥 제5구간 -백양농원에서 황룡강/영산강 합수점까지

by 범여(梵如) 2026. 5. 19.

☞ 산행일시: 2026년 04월 26일

☞ 산행날씨: 맑은 날씨에 한여름을 방불케하는 무더위

☞ 산행거리: 도상거리 21.2km  / 8시간 소요

☞ 참석인원: 나홀로 산행

☞ 산행코스: 갈림길- 경주최씨 희암공파 문중묘- 광주CBS송신소- 새말고개- 도로

                    무명봉- 무명봉- 백양농원- 팔랑산- 신룡1교 암거- 기어텍 공장

                    새농민 농장앞- 진곡공원 버스 정류장- 동아오츠카 광주지점- 롯데택배

                    순천박씨 세장산비- 정광산- 도로 삼거리- 83m봉- 점등고개

                   안동권씨 추밀공파 제단- 무명봉- 장수교차로- 장수제- 김해김씨 가족묘

                    NO37 송전탑- 134.6m봉 갈림길- 134.6m봉-다시 134.6m봉 갈림길

                   안부- 무명묘지- 삼거리 갈림길- 쉼터봉- 다시 갈림길 삼거리-어등산

                   189.3m봉- 김해김공&유인 경주이씨 묘- 물넘어고개- 절골마을 갈림길

                   산정약수터 갈림길- 밀성박공 묘- 122.4m봉- 쉼터- 자살골 갈림길

                  안부- 쉼터- 무명봉- 동자봉대- 동자봉- 부대앞- 무진대로 암거

                  광주소방학교 훈련장- 광주소방학교- 소촌고가교- 광주지방경찰청 입구

                 버스 정류장- 수량공원- 98.4m봉- 금호훼미리 아파트- 2차선 도로

                우정테니스클럽- 황새고개- 방개산?(94.7m)- 안부- 금봉산- 송정공원

                금선사 대웅전- 광주송정다가치 문화도서관- 송정공원역...택시로...

              황룡강/영산강 합수점

       ☞ 소  재 지: 전남 장성군 남면 / 광주광역시 광산구

 

요즘 들어서 하루가 다르게 계속되는 체력저하로 인해 얼마남지 않은 지맥길을

해야하나 그만둬야 하나를 고민 중이다...거기다가 21일에 골프 모임이 있어서

셋째주(19일) 지맥길은 쉬고, 2주만에 지맥길에 나선다...산악회가 아닌

나홀로 산행을 하면 心的으로는 굉장히 편안하나 대중교통을 이용하다보니

남은 구간이 전부 먼거리 지맥길만 남아서 산행을 하려면 하루전날 현지에 가기

위해서 심야버스를 이용하다보니 산행 시간보다 왕복으로 10여시간씩

차를 타는 시간에 지치는 느낌이다...일단 가보자고 생각하고 오늘도 새벽

01시에 광주로 가는 버스를 타기위해 집을 나선다

오늘 산행 구간의 지도

서울발 → 광주행 버스표  

집앞에서 센터럴시티 터미널가는 버스를 타고 터미널에 도착하니

0시 20분경 30분정도 대합실에 머물다가 광주가는 버스에 오른다

2주전에 광주가는 버스에서 잠을 한숨도 못잔 惡夢이 있어서

오늘은 버스를 타기 직전에 신경정신과에서 처방받은 약을 버스에

오르면서 먹었는데, 잠은 깊이 푹 잤으나 광주터미널에 도착하여 차에서

내려서도 한동안 정신이 몽롱한 상태이다

광주 유스케어 터미널(04:15)

배도 고프지 않아 아침 생각이 없다...터미널 밖 광장에 1시간 가량

멍하니 앉아 있다가 어느 정도 정신을 차린 다음에 택시를 타고

들머리를 백양농원이 아닌 신촌마을을 지나 새말고개로 향한다.

 

왜냐고요?...지난 구간에 알바한 길을 그냥 통과하려니 가슴 한구석에

응어리가 풀리질 않는다...지난구간 알바한 분기점에서 다시 해야

직성이 풀릴 것 같다.

 

새말고개에 도착하니 05시 40분경...고개옆 풀섶에 베낭을 숨겨두고

스틱만 가진채 알바했던 갈림길 분기점으로 향한다

갈림길(06:00)

지난구간 이곳에서부터 알바했던 기억은 지워버리고

새로운 마음으로 황룡(신산경표상:병풍)지맥을 이어간다

숲길로 내려서니 일출은 시작되고 호화로운 묘역으로 내려서지만

아직까지 주변의 山河는 이제서야 눈을 비비면 기지개를 켠다.

경주최씨 희암공파 문중묘(06:05)

지난 겨울에 걸었던 영암,나주, 함평지역과는 달리 담양, 장성쪽은

호화묘지가 별로 없었는데 장성쪽을 벗어나 광산구로 들어서

처음으로 호화묘지를 만난다.

묘지 아래로 내려서는데 겹벚꽃 2그루가 만개한 후

꽃비를 뿌리는데 그야말로 무릉도원을 지나는 느낌이다

 

* 무릉도원(武陵桃源)이란?

  정치적 혼란기였던 중국 육조시대의 가장 위대한 시인으로 평가받고 있었던

 도연명(陶淵明:365~427) 《도화원기(桃花源記)》 나오는 가상의 선경(仙境)으로

 중국 후난성의  어부가 발견하였다는복숭아꽃이 만발한 낙원으로 별천지(別天地)’

 ‘이상향(理想鄕)’ 비유하는 말로 흔히 쓰인다

 

知足樂(지족락:만족을 아는 즐거움) / 慧諶禪師(혜심선사)

 

浮雲富貴奈吾何 (부운부귀내오하)

뜬구름 같은 부귀가 나를 어찌하리오.

 

隨分生涯亦自佳 (수분생애역자가)

자신의 분수에 따른 삶 또한 그 자체가 좋으니.

 

但不愁來何必酒 (단불수래하필주)

단지 근심이 오지 않는데 어찌 술이 필요하겠는가?

 

得安心處便爲家 (득안심처편위가)

마음이 편안함을 얻는 곳, 그곳이 바로 나의 집이로다.

 

진각국사 혜심(慧諶:1178~1234)

속성이 최씨이고, 자는 영을(永乙)이며 전남 화순 출신으로 어머니가 하늘의

문이 열리는 꿈을 꾼 뒤에 혜심을 낳았다고 전해지며, 어려서 아버지가 일찍

세상을 떠나자 불가에 출가하기를 청했으나 어머니가 허락하지 않아 학문에

힘썼다... 하지만 혜심은 늘 불교 경전을 독송하며 출가의 뜻을 접지 않고 있었다.

 

23세에 사마시에 합격하여 태학에 입학했지만, 어머니의 병환으로 고향에 돌아와

병간호를 하던 중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자 조계산 수선사(현재의 송광사)에서

보조국사 지눌에게 귀의하여 출가하게 되었고, 지눌의 제자가 되어 수선사에서

수행의 길을 걷게 되었고, 이후 수선사의 2세 사주가 되어 선풍을 크게 일으켰다.

광주CBS송신소(06:09)

광주CBS송신소 철조망을 지난 다음에

감나무밭 사이로 맥길을 이어간다

竹湖 幸州 奇公鶴鉉 묘지 아래 숨겨두었던

베낭을 다시메고 새말고개로 내려선다

새말고개(06:14)

광주광역시 광산구 두정동 신촌마을과 신룡동 검정마을을 있는 삼거리 고개로

우측에 우사(牛舍)에서 뿜어져 나오는 畜糞 냄새가 코 끝을 자극한다.

 

지명의 유래는 두정동 신촌(新村)마을에서 유래된 듯 하다.

신촌이란 지명은  새로운 마을 이란 뜻이고, 새말 역시  새로운 마을 이란

뜻이라 새말고개라 부르지 않았을까?...범여의 생각 中에서

새말고개에서 좌측의 맥길이 아닌 시멘트 도로를

따라서 가는데 2주전과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나무들이 초록으로 옷을 갈아 입거 있었다.

도로(06:17)

지난 구간에 이곳을 지나가다가 욕을 바가지로

얻어먹고 타향에서의 설움(?)을 엄청 받았었는데...

오늘은 이른 아침이라 고런지 그 쉬키는 안 보인다

무영객님의 시그널을 보고 황칠나무 조림지로 들어갔는데

좌측으로 뚜렸한 과수원길이 있어서 조림지를 빠져나와

황토밭으로 올라선다

황토밭에서 바라본 용진산과 우제봉의 모습

황토밭을 따라서 걸어가는데 우측으로 광산구 두정동 신촌마을과

호남고속철길이 보이고 그 아래로 흐르는 황룡강이 얼굴을,

살짝 내밀며 수줍어 하고, 그너머로 보이는 산줄기에 있는 용진산

(351m:광산구 성동 소재))과 우제봉(338.3m)이 힘들어하는 범여를

격려한다

 

광주광역시 광산동과 선동의 경계에 있는 용진산(聳珍山:351m)은 산 정상에

있는 뾰족한 암석이 하늘을 향해 높이 솟아 있는 모습에서 유래된 지명으로

영산기맥 상의 구황산 부근에서 남쪽으로 갈려나온 산줄기가 수련산, 동구산을

거쳐 용진산으로 이어지면 송곳산이라 불릴 만큼 먼 곳에서 바라보면 산의 정상이

빗물에 흙이 흘러내려 뽀쪽한 형태를 띠고 있다.

 

암석으로 형성된 부분을 정면으로 볼 때 왼쪽은 석봉이며 오른쪽은 부드러운 흙으로

덮여있어 토봉(土峰)이라고 하며 석봉(石峰)보다 토봉이 좀 더 높게 이어져 있는

형태라서 낙타 등을 연상하기도 하는데 삼도 방면에서는 이 봉우리가 마치 붓처럼

생기기도 하여 필봉(筆峰)이라고 불리기도 하며 문인이 득세할 산이라고 평하기도 한다.

 

용진산의 두 봉우리 중 철계단을 타고 하늘을 오르듯 용을 쓰고 올라야하는 서쪽의

석봉(石峰)은 큰 바위가 겹겹이 쌓인 마치 붓끝처럼 뾰족하게 솟은 모습이 문필봉,

또는 기운차게 솟아오른 용출봉(湧出峰) 같으며 동쪽 봉우리는 석봉과 음양의 조화를

맞추기 위해서 토봉(土峰)으로 불리고 있으나, 암릉과 낙락장송이 숨 돌릴 틈도 없이

절경이 연이어 지는 산으로 고도가 낮고 접근성이 좋은 광주 주변에 위치하며 특히

주부 등산객들에게 사랑을 받는 산이라고 한다.

 

용진산에는 지금은 소실되어 없어진 상원사라는 절이 있었는데 그 ‘상원사지’에 따르면

한 대 이곳 (옛날에는 이곳은 나주 회진현 지역이었음) 나주로 귀양 왔던 삼봉 정도전이

세차례에 걸쳐 이곳을 찾았고 노론의 영수였던 우암 송시열도 1638년 숙종의 왕세자

책봉 문제로 제주도로 귀양 갈 때 용진산에서 잠시 1박을 하고 갔다는 설이 전해지고 있다.

 

그 밖에 용진산은 역사적으로 중요한 사건이 일어난 장소이기도 했었으며1895년

동학농민운동 당시 이곳은 전쟁터였고 을사늑약 체결 이후 종래 상원사 터에 자리

잡은 용진정사의 주인공인 후석 오준선을 중심으로 의병장들의 전략회의 장소로

또는 은닉장소로 이용되었고 1950년 한국전쟁 당시는 공비 토벌의 장이 되기도 하였다.

 

이 산은 광산구 일대에서 가장 높은 산이어서 주변을 관망하기 쉽고 전라도 특히

장성과 나주를 잇는 전략적 교통의 요충지의 중심에 위치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용진산이 일반에게 널리 알려진 것은 일제시대 동안 금을 채광했던 용진광산 때문이기도

했는데, 1920년대 광주의 재벌인 최용주가 이 산의 북쪽 기슭에서 금광개발에 나서면서

용진광산의 역사가 시작되었다... 이곳에서 금맥이 터지면서 한때 1천여 명의 광부들이

이 일대에 몰려들었으며, 때맞춰 임곡의 열차역 앞에는 오일장이 서는 등 조용한 농촌

지역이 황금의 물결에 영향을 받아 크게 술렁거렸다고 한다.

황토밭을 지나 능선으로 올라서니 시누대 사이로

선답자의 시그널 하나가 보이고 지난구간처럼

치욕을 안 당하려고(?) 바짝 긴장하며 걷는다 

무명봉(06:21)

무명봉에서 살짝 좌측으로 내려가니 무명묘지가 나오고

감나무밭으로 내려서면서 앞에 보이는 능선으로 향한다

등산의 쾌감을 흔히들 "마운틴 올가즘"이라고 한다.
등산이든 무슨 취미든 최고의 낙(樂)이 오르가즘 아닌가?

살아있을 동안에 올가즘을 최대한으로

누리다 가는 인생이 성공한 인생이라 한다.

낙(樂)이 없는 인생은 권태의 연속뿐이다.

똑같은 소금도 대상에 따라서 효과가 달라진다.
미역에 뿌리면 팔팔하게 살아나지만
배추에 뿌리면 시들시들 죽어버린다.

똑같은 물도 소가 먹으면 우유를 생산하고
뱀이 먹으면 독을 생산한다.

인생도 마찬가지다.
즐겁게 사는 사람은 즐거울 낙(樂)이요.
불평하고 사는 사람은 괴로울 고(苦)로 바뀌어 진다.
자신의 배낭 속에는 무엇을 담았습니까?


- 인생의 지혜 숲에서 -

감나무밭을 지나니 또 감나무밭이 나오고...

감나무밭에서 다시 절개지로 오르면서 북동쪽으로 내가 

걸었던 병풍산 능선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지고 바로 앞에

보이는 마을이 광산구 신용동 검정 마을은 신용동에서 가장

동쪽에 있으며 전라남도 장성군과 접하고 있다.

감나무밭 절개지로 오르면서 마땅히 붙잡을게 없어서

2번이나 미끄러진 다음에  능선으로 올라선다

무명봉(06:28)

무명봉에서 내려서니 데크목 조망대가 나오고 그 아래에

있는 진곡저수지는 물안개가 피어 오르고 그 뒷쪽으로

광주외곽순환고속도로 고가도 보이며, 이른 아침이라 그런지 

조망대에서는 사람 구경을 할 수가 없다

조망대에서 내려서니 넓은 농로가 나오고

금새 2주전에 산행을 끝냈던 백양농원에 

도착한다

백양농원(06:32)

2주전에 알바했던 구간을 갔다가 다시오는데 3.7km정도

걸렸고,시간은 1시간 정도 소요된 듯 하다...이제서야

가슴속에 응어리진 滯氣가 내려가는 듯한 후련함을 느낌이다

지금부터 본격적인 오늘 산행을 시작하면서 백양농원 안으로

들어서는데 농장이 망해버렸는지 관리가 안된 상태이고 매도한다는

부동산 간판을 보면서 팔랑산으로 향하는데 맘이 편치 않구나. 

부드럽고 먹음직한 머위도 보이고...

손맛을 느끼기에 아주좋은 두릅들도 많이 보이지만

이곳은 농장이라 괜한 오해를 받기싫어 눈길도 안주고

팔랑산으로 향한다

오름길에서 만난 빛바랜 백두사랑 이대장의 흔적

오름길에 화사하게 피고있는 조팝나무가 범여를 반긴다

능선에 올라서니 광주외곽순환고속도로가 좌측의 나뭇가지

사이로 살짝 보이고 잡목의 거센 저항을 받으면서 서쪽으로

향하는데 고속도로 공사를 하면서 좌측 능선은 사라져 버렸다

팔랑산으로 향하는 좌측은 고속도로를 건설하면서

능선의 절반은 날아가 버리고 건설현장에서 씨앗으로

뿌려놓은 곳에 보라색 수레국화가 피고 있구나.

 

수레국화(꽃말: 행복감)

귀화종인 국화로 한국어 이름은 작은 통꽃들이수레의 바퀴처럼 방사형으로 모여

핀 것에서 유래되었으며, 학명에서 따온 센토레아, 센트레아라고도 불리는데 그리스

로마신화의 켄타우로스(센타우로스)의 賢者 케이론과 관련된 전설에서 유래된 지명이다.

케이론이 히드라의 독 때문에 쓰러져 있을 때 제우스가 '네가 사랑하는 꽃으로 치유가

될 것이다'라고 말해서 상처를 치료하기 위해 수레국화를 따서 뿌렸더니 히드라의 독이

사라졌다는 전승이 있고, 나머지 하나는 케이론이 죽은 자리에서 꽃이 피었는데 그 꽃이

바로 수레국화라는 것이다.

 

특유의 쨍한 푸른색 덕분에 꽃잎을 말려서 염료로 쓰기도 하며 푸른색은 안토시아닌

성분으로 인한 것으로 안토시아닌은 지시약으로도 쓰이는데 산성이 강할수록 붉은색,

알카리성이 강할수록 푸른색을 띠는데 때문에 수레국화차에 레몬즙을 뿌리면 차 색깔이

푸른색에서 분홍색으로 변한다. 이렇게 색이 파랗기 때문에 서양 매체에서는 푸른 눈(碧眼)을  

수레국화에 비유하기도 한다. 꽃 색깔은 주로 파란색이지만 종자에 따라 흰색부터 분홍색,

보라색, 자주색까지 다양하다.

팔랑산(八郞山:121.9m:06:50)

광주광역시 광산구 임곡동과 신용동, 고룡동, 진곡동의 경계에 있는 산으로

광주외곽순환고속도로 공사를 하면서 봉우리 절반은 날아간 상태이고

잡목만 무성한 정상에 맥산꾼들의 흔적만 정상을 지키고 있다

 

지명의 유래는 고룡동 창암(蒼岩)을 산에 있는 푸른 바위라 하여 '파라뫼>팔랑산'이

된 듯하며, 조선조 영조 때 하사 받은 산으로 '왕산봉' 또는 '왕신봉'으로 칭했다가 '푸른>

파랑'과 '왕자'가 합해져 '팔왕(八王)>팔랑(八郞)'이 되었다는 설도 있다.

 

주변 형세가 여덟 사내가 가마 타고 간 옥녀를 구경하는 모습이므로, 팔랑산이 되었다는

전설도 있으며, 신촌은 행주 기씨 집성촌으로 본래 소고룡(召古龍)터였다... 남쪽 기슭

고룡동 창암 마을에 삼국시대 유물산포지와 요지(窯址)가 분포하며, 북서쪽에 두정

저수지가 위치하며 현대지형도(1:10,000)에 동쪽 진곡 마을 위쪽 피난촌 북쪽에도

파란산(66m)이 표기되어 있다.

 

자료에 의하면 광산구 진곡동에 소재하고 있는 팔랑산은 진곡마을의 주봉으로, 아름다울

휘(徽), 진(鎭)자로 충주부사를 지낸 분인데 문장이 뛰어나 영조대왕이 특별히 여겨 여린

손을 잡고 다른 사람은 그 손도 못 만지게 했을 정도였다고 했으며 그분이 팔랑산에 정자를

지어놓고 노년을 보내셨다는데 현판을 보면 ' 푸를 창(蒼)자 ' , ' 뫼 산(山)자 ' , ' 집재(齋)자 '

창산재(蒼山齋)라고 명명하였다.

 

팔랑산은 여덟팔자 임금왕자 팔왕산(八王山)이 아니라 푸르다 해서 파랑산이 되었고

팔왕산 옆으로 왕삼봉이라는 산이 있는데 이 산은 바위가 푸르다 해서 창암이라 불렀고,

왕삼봉 아래의 마을을 창암이라고 했고 실제로 지금도 행정구역상 고룡동 왕삼봉 아래

벽파정의 서북편에 있는 마을을 창암이라고 부르는 마을이 있으며, 근방에서는 왕삼봉에

있는 청암을 파라매라 부르는데 따라서 파랑산이 팔왕산이 된 것은 왕삼봉의 바위를 부르는

파라매와 왕삼봉에서 한자씩 따서 부른 것 같다. 

팔랑산을 내려서면서 바라본 광산구 진곡산업단지가 보이고

그 뒷쪽으로 보이는 산줄기가 내가 오늘 걸어야 어등산 능선이다

시멘트 도로를 가로질러 광주외곽순환고속도로로 내려가는데

잡목의 저항도 너무 심하고, 고속도로 차량도 너무 많이 다니는 곳을

목숨을 담보로 산행할 필요는 없잖은가...다시 시멘트 도로로

되돌아 나온다

고속도로를 바라보면서 시멘트 도로로 내려간다

신룡1교 암거(07:00)

광주외곽순환고속도로 신룡1교 암거를 통과하니 포장도로가

나오고  저 앞에 보이는 창고건물 뒷쪽이 지맥길로 고속도로가

개통되기 이전에 선답자들은 저 능선을 걸으면서 시간을 훨씬

단축한 듯 하다.

혼자놀기

휘어지는 도로에서 창고쪽으로 향하려는데 쇠줄로 길을 막아놨고,

입구에는 개쉬키가 어찌나 짖어대는지...초반부터 주민들과 마찰이

있을지도 몰라 한참을 망설이다가 그냥 도로를 따라서 맥길을 이어간다

지맥길은 눈팅이로 이어가고...

멋진 기와집 뒷쪽으로 맥길은 이어지지만...

맥길에 들어선 주택들 때문에 정상적인 맥길을 걸을수가

없어서 계속해서 편안한 도로를 가다가 앞에 보이는

전봇대가 있는 곳에서 마루금에 복귀를 한다

기어텍 공장(07:05)

계속되는 도로...도심지역으로 들어서니

공기가 많이 탁해졌는지 숨쉬기가 힘이든다

새농민 농장앞(07:07)

 

과수원 너머로 보이는 봉우리가 팔랑산으로도 불리는 파란산이고

그 뒷쪽으로 흐릿하게 병풍산이 보이는데 이제는 아쉬운 작별을

해야할 듯 싶다

우측으로는 2주전에 버스를 탔던 임곡동 버스 종점이 보인다

비체라는 카페를 내려서면서... 

카페에서 내려서 광주진곡산업단지로 들어서면서

공단조성으로 인해 맥길을 사라지고 정광산까지

정상적으로 맥길을 걸을수가 없으니 이곳부터는

맥산행 대신에 factories tour 모드로 들어간다

 

정상적인 맥길은 도로를 가로질러 화물차 후미

뒷쪽으로 맥길이 이어지나 공장지대라 좌측으로 향한다 

도로를 건너면서 뒤돌아 본 내가 걸어온 신촌마을 입구의 모습

GS편의점을 끼고 우회전을 하니...

진곡공원 버스 정류장(07:16)

태진철강 공장을 바라보면서 우측으로 향한다

금호공구철물이라는 철물점에서 나는 트랙을 보면서

맥길에 가장 가깝다고 생각되는 좌측으로 향하는데

또 공장들이 들어서 있으니 오룩스맵을 안내하는 여인이

등로를 벗어났다고 난리인데 이곳에서는 어디로 가던

정광산 아래까지는 별의미거 없는듯 하다

도로를 건너 LG전자 광주물류센터 후문을 통과한다

동아오츠카 광주지점(07:30)

동아오츠카 광주지점을 지나 다시 우측으로

향하다가 사거리에서 좌측으로 향하는데

앞에 산이 보이는데 정광산으로 이어지는

능선이기는 하지만 지맥길은 아니다

신호등을 보면서 진곡산단2번로 방향 우측으로 향한다

롯데택배(07:45)

서서히 정광산으로 향하는 능선이 보이기 시작한다

진곡산업단지의 공장투어를 끝내고 도로를 벗어나니

정광산 아래 호화롭게 조성된 순천박씨 진곡문중 재각과

세장산비가 산꾼의 눈길을 붙잡는다

순천박씨 세장산비(07:52)

순천박씨 세장산 비각을 지나 정광산으로 향하는 도로를 따르는데 좌측으로는

아주 호화로운 제각(祭閣: 무덤 근처에 제사를 지내려고 지은 집)이 보이고...

우측으로는 호화롭게 꾸민 순천박씨 문중 묘지들이 보인다

묘지 우측의 능선으로 올라가야 맥길인데 그냥 편안한 도로를 따른다

그중에서도 유난히 눈에 띠는 묘비.

이 어르신은 생전에 얼마나 女福이 많았으면

부인이 둘도 아닌 셋이나 거느렸을까?...부럽소이다.

 

지맥길은 순천박씨 문중묘를 지나 좌측으로 이어지지만

묘비 뒷쪽으로 올라서 시누대숲에 갇혀버린 정광산 정상에 도착한다

정광산(鼎光山:88.5m:08:04)

광주광역시 광산구 고룡동과 진곡동의 경계에 있는 족보있는

산이지만, 시누대숲에 파묻혀 주위 전망은 전혀없고 산 아래는

호화로운 순천박씨 문중묘와 진곡산업단지가 있고, 봉우리

아래로는  KTX호남선 고룡터널이 지난다

 

지명의 유래는 산의 지세가 솥(鼎)처럼 생겼다 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마을에 빛(光)과 평안을 가져다준다는 전설과 함께 지역의 명당으로

여겨져 온 산이라 순천박씨 진곡문중의 세장산으로 삼고있는 산이다.

정광산을 찍고 마루금으로 복귀하기 위해 내려가는

등로에서 바라본 순천박씨 문중묘와 진곡산업단지의 모습

마루금에 복귀하여 초라한 묘지(?)를 지나니 철길 철조망이

보이고 그 뒷쪽으로 오늘 걸어야 할 어등산과 동자봉이

시야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철길옆 시멘트 도로를 따라서 내려가다가 뒤돌아 보니...

 KTX호남선 고룡터널이 입을 벌리고 있다

도로 삼거리(08:12)

도로삼거리를 지나자마자 철길 철조망으로

이어지는 뚜렸한 등로를 버리고 좌측으로 향한다

아침이 지나면서 햇살이 조금 따갑다는 걸 느낀다

83m봉(08:21)

선답자들이 만든 산행지도에는 83m봉으로

되어 있으나 국토지리정보원에는 없는 봉우리다

내리막길로 향하는 길에 무명묘지를 지나니...

호남선 철길 철조망이 길을 막는다...철조망을 따라서 간다

점등고개(岾燈峴:08:32)

광주광역시 광산구 고룡동과 하남동을 잇는 고개로 KTX호남선

고룡과선교가 있고 지명의 유래는 하남동에 있는 점등마을

지명에서 유래된 듯 하며, 다리 표시판에는 고룡과선교로 표기되어 있다.

 

점등이란 지명은 광산구 장수동 점등마을에서 따온 듯 하며, 점등과 구방마을은

거리상으로 한 마을이나 다름없이 가깝고, 구방마을의 일부가 하남일반산업단지로

편입되어, 현재는 점등과 구방을 합쳐 구방이라 부르고 있으며, 고려시대부터

조선시대에 걸쳐 청자와 분청사기를 구웠던 도요지가 있다. 수습되는 유물은

대접과 접시가 대부분이며, 분청사기와 청자편도 출토되고 있다.

* 과선교(跨線橋)

  철로 따위를 건너갈 수 있도록 그 위에 놓은 다리를 말한다

KTX 호남선 철길이  과선고 아래로 지나가고 있다

점등고개를 지나서 좌측 숲속으로 들어선다

반갑습니다

호남선 철길 철조망과 맥길이 나란히 남쪽으로 향하는데 길은 좋다

안동권씨 추밀공파 제단(08:38)

안동권씨 묘지 좌측 아래로 맥길을 이어가는데

등로 자체는 없으나 반가운 선답자의 시그널이

버벅거리는 범여를 안내한다...복받을깁니다

호남선 철로가 보이고 그 위로 하남산업단지 외곽도로

(도로명 주소:하남진곡산단로) 아래로 내려선다

휴식(08:45~09:20)

이른 새벽부터 지난번 알바구간을 보충하면서 걸었던

탓인지 초반부터 피로도가 몰려오는데, 철로옆 다리

아래에는 휴식을 취하기에는 그야말로 안성맞춤이다.

 

피곤할 땐 휴식이 최고여!...산행이고 나발이고 그건

차후로 생각하고 이곳에서 베낭을 내려놓고, 베낭을

베개삼아 누워서 잠을 청하는데, 열차가 지나가던 말던

꿀맛같은 쪽잠을 자고나니 몸이 훨씬 가벼워진 느낌이다.

다시 길을 떠난다

좌측으로는 철길의 철조망이 길을 막고 있지만

선답자의 시그널 하나가 보이는데 이리 지나간 모양이다.

얇은 휀스 너머로 산꾼들이 지나간 흔적이 보인다.

나 역시 선답자와 똑같은 방법으로 통과하여 도로 옆

오르막으로 올라간다

4월말의 날씨한번 뮤자게 덥다...숨이 막힐 지경이다

저멀리 보이는 병풍산이 아직도 나에 대한 미련이

남아 있는지 아쉬운 마음으로 나를 내려다 본다

하남산업단지 외곽도로를 바라보면서 무명봉으로 오른다

무명봉(09:27)

맥길은 서쪽인 직진으로 향하는데 농장이 길을 막는다.

거기다가 개쉬키 한마리가 지랄발광을 하지만 참아야 하느니라.

이곳을 온 내가 잘못이지...자기 本分에 충실한 니가 뭔 잘못인가?

우측으로 내려서니 水路가 나오고 휀스를 통과하여 도로로 내려서서

맥길을 이어가면 錦上添花이련만  , 나말고도 많은 맥산꾼들이 수로

아래로 통과했는지, 샌드위치 판넬로 꽁꽁 막아놓아 통과할 방법이 없다

조금을 더 아래로 내려가는데, 도로 너머 북쪽으로 보이는

저 산이 용진산(351m) 줄기인 듯하다.

도로 아랫쪽으로도 빈틈없이 막혀있어 조금은 난감했지만

窮하면 通한다고 했던가...도로와 고가가 붙어있는 끄트머리쪽의

휀스가 조금은 낮아서 그곳을 월담하는데 기럭지가 짧은

범여가 휀스를 넘기엔 조금은 버겁다...베낭을 먼저 앞으로

던져놓고 발버둥을 친 다음에 월담한다

힘들게 휀스를 넘어서 장수교차로로 올라오는 도로를 역주행하면서

내려서니 잠시후에 오를 어등산이 물끄러미 내려다 보면서 하는 말...

지맥길이 뭐길래, 참으로 애쓰는구나 하고 묻는듯 하다...근데 나도 몰러...

날씨는 무덥고 정말 미치겠다...장수교차로로 내려선다

장수교차로(長水交叉路:09:45)

광주광역시 광산구에 속해있는 장수동(長水洞)은 장성리(長城里)와 수남리(水南里)에서

각각 한 글자씩을 따온 지명으로 ‘보리매’, ‘서당맷’, ‘당너매’, ‘용고머릿재’, ‘꽃바웃등’, 

‘꾀꾀등’, ‘정짓등’ 등 산과 관련된 명칭이 많다

장수동은 '구방(九方)', '점등(岾燈)', '장성등(長成燈)', '수남촌(水南村)' 등 4개 마을로

이루어져 있었는데, 구방과 점등은 거리상으로 한 마을이나 다름없이 가깝고,

구방마을의 일부가 하남일반산업단지로 편입되어, 현재는 점등과 구방을 합쳐

구방이라 부르고 있다.

 

구방과 점등은 흑석에서 임곡 간 53번 고봉로 우측에 자리잡고 있는 마을로, 마을

뒤편으로는 하남일반산업단지와 접하고 있으며 장성등마을은 장상등이라고

불리기도 하며 북동쪽으로 하남일반산업단지와 인접해 있다.

 

마을 안에는 순천박씨 문중 소유인 율수재(聿修齋)가 있으며 수남촌(水南村)의

마을 입구에는 버드나무 노거수 2기가 있으며, 고려시대부터 조선시대에 걸쳐

청자와 분청사기를 구웠던 도요지가 있는데 수습되는 유물은 대접과 접시가

대부분이며, 분청사기와 청자편도 출토되고 있다.

장수교차로에서 신호를 기다린 후 도로를 건너니 아침을 먹지 안해서

그런지 배가 고프다...도로가에서 베낭을 내려놓고 앙꼬빵과 두유로

허기를 면하고 약간의 휴식을 취한 다음에 장수교차로를 통과하는

도로명 주소가 하남진곡산단로로 올라서는 램프로 가다가 우측의

비포장도로로 빠져 나간다

비포장 도로에 들어서니 나뭇가지에 걸려있는

낡은 선답자의 시그널 하나가 산꾼을 반겨준다

도로에 내려서 좌측으로 이어지는 편한 길이 있으나

맥길은 장수교차로 방향의 직진으로 향한다

도로 끝에서 좌측으로 꺽어져 밭으로 올라가니 성질이 

지랄같은 농부가 길이 없으니 돌아가라고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되는데 밭 옆으로 갈테니 좀 봐달라고 하니

갑자기 욕설을 하면서 금방이라도 때릴듯한 자세를

취하기에 이런 넘하고 시비해봐야 시간만 낭비할 것 같아

다시 되돌아 나와서 장수저수지로 향하는 비포장 도로로

향한다

어등산으로 향하는 비포장 도로를 향하다가 과수원을 지나

그 넘의 쉬키 밭을 지날 즈음에 트랙상 맥길인 우측으로

올라간다

우측으로 올라가니 묘지가 나오고...

원주김씨 가족묘가 나오고 그 윗쪽의 밭으로 올라서려니

가건물 형태의 민가가 있고, 밭에서 일하는 사람이

보이기에 또다시 봉변을 당하기 싫어서 그냥 도로로

내려선다

장수제(長水堤:09:55)

서너명의 姜太公들이 저수지에 낚싯대를 던져놓고

세월을 낚고있는 저 여유로움이 부럽기만 하다

장수제를 지나니 감나무밭이 나오고 그 뒷쪽으로 어등산으로

향하는 산줄기가 잠시후에 내가 걸어야 할 능선이다

김해김씨 가족묘(09:58)

山自分水嶺에 위배되는 게울을 지나...

지랄같은 넘을 만나 한참을 우회한 후 마루금에 복귀 한 다음에...

어등산을 향하는 본격적인 산행이 시작되지만

조금전 농부에게 당한 일을 생각하니 은근히

화가 치밀어 오르지만 참아야 하느니라 하면서

내 자신을 달래본다

NO37 송전탑(10:07)

등로는 의외로 완만하다

134.6m봉 갈림길(10:12)

마루금에서 살짝 비켜나 있는 134.6m봉을 가기위해

이곳에서 베낭을 벗어놓고 134.6m봉으로 향한다

134.6m봉(10:13)

134.6m봉 정상 삼각점(▲광주404 / 1985재설)

다시 134.6m봉 갈림길(10:15)

산속이라 그런지 제법 선선하고 바람까지

불어주니 산행하기에는 더 없이 좋은 날씨이다

어등산으로 향하는 본격적인 오르막이 시작된다

오름막길만 만나면 갑자기 발걸음이 느려지는 범여...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한다...고도가 낮은 산이라고

만만히 보면 안된다는 걸 알기에...

준.희 쌤...늘 감사합니다

제도권 등로에 들어선 모양이다...구조 이정목이 보인다

소설 레 미제라블(Les Misérables)로 유명한 

빅토르 위고는 꽃을 이렇게 정의했다

 

 " 사랑은 삶의 꽃이다. 그 향기를

맡는 것은 삶의 즐거움이다 " 라고... 

안부(10:28)

무명묘지(10:38)

다시한번 고도를 높힌다

삼거리 갈림길(10:45)

어등산은 이곳에서 우측으로 살짝 벗어나 있는데 그것도 모르고

석봉 방향으로 올라간다... 이곳부터는 산정약수터 방향에서

올라오는 일반 등산객이 많이 보이는데 항상 나홀로 산행을

하다가 갑자기 등산객을 만나니 왠지 모르게 어색하다

석봉 가는길

쉼터봉(10:51)

트랙을 안보고 무조건 올라서니 벤취가 있는 봉우리가 나오고

범여는 이곳이 어등산인줄 알고 준.희쌤의 산패를 찾는데 아무리

찾아봐도 보이지 않아, 벤취에 앉아 잠깐 쉬면서 트랙을 확인하니

헐!~~~조금전에 지나온 갈림길 삼거리에서 살짝 벗어난 곳에

어등산이 있다고 한다... 집안에 도둑을 맞으려면 개도 안 짖는다고

한다던데...오룩스맵을 안내하는 여인은 마루금을 조금만 벗어나도

앙탈을 부리더니 이곳은 한참을 벗어났는데도 경고 멘트를 안 날린다.

 

지말을 안 듣는다고 꼬라지가 났나?...도심의 지맥길을 통과하려면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갈 수없는 길이 천지삐까린데 우짜란 말인가...

다시 갈림길 삼거리(10:55)

정자 좌측으로 가니 준.희쌤의 산패가 걸려있는 어등산에 도착한다

어등산(漁登山, 290.4m:10:57)

광주광역시 광산구 장수동과 운수동, 박호동 일대에 걸쳐있는 산으로

커다란 소나무에 준.희쌤의 산패와 선답자의 시그널만 없었다면

모르고 지나치기 딱  좋은 그저 밋밋한 봉우리에 불과하다.

 

광산구의 진산으로 무등산과 대응하고 있는 호남대학교 뒷산으로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어등산(魚登山)은 광산현 서쪽 30리에 있다."라고

기록되어 있고『대동여지도』에는 서창 남동쪽, 현 송학산  부근에, 현대지형도에는

북동쪽 임곡동 관할 등임동 · 운수동 ·하남동 관할 장수동 경계에 표기하고 있다.

지명의 유래는 산의 형상이 물고기의 등을 닮아 '어등(魚嶝)'이라 했으며

『어등의 맥』(2003)에서는 황룡강 합강(合江) 지점이니 '얼뫼>얼등>어울산'이

뒷날 한자 새김을 중심으로 풀이하면서 물고기가 용이 되어 올라가 '어등'이 되었다고

전하는데 장성 쪽에서 흘러내리는 황룡강과 영광 쪽에서 흘러내리는 평림천이 송산교

앞에서 합류하는 지리적 특징이 반영된 지명으로 어등산은 물줄기가 합류하는 곳에

자리한 산등성이였기에 순수 고유어로 ‘얼등’이라 불리다가 ‘얼등’에 ‘山’을 붙은 ‘얼등산’이

ㄷ앞에서 ㄹ이 탈락하는 우리말의 음운법칙에 따라 ‘얼등산>어등산’으로 변한 지명이라고 한다.

 

송천(松川) 양응정(梁應鼎:1519~1581)이 쓴 화전놀이[煮花] 첫 구절에 "어등산 자락에다

돌을 놓아 솥을 걸고[鼎冠撑石魚岳麓]"가 나오며 구한말 의병운동 전적지이다.

어등산은 골짜기가 깊어 구한말 1907~1908년 전쟁터로 알려져 있으며, 호남의병의

치열한 전장으로 수많은 사람이 일본군에 맞서 싸웠던 곳으로 지금도 산 곳곳에서

의병전적지를 볼 수 있으며, 구한말 의병들의 은신처, 병참 공급처이면서 전투를 벌였던

격전지였고, 1951년부터 1994년까지 상무대 포사격 훈련의 탄착지로 이용되다가

상무대 이전 후 2006년부터 광주광역시의 어등산 관광단지 개발사업에 따라 관광지로

탈바꿈하고 있는 곳이다.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때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제주 양씨 일가의 충절을 기리기 위해

세워진 삼강문과 위장병과 성인병에 효험이 있다고 알려진 연화약수, 선암탑 등 여러

이야기들과 선조들의 생활상이 담겨있다...어등산이 정치 군사적으로 활용된 시기는

조선후기 역참제도의 정비에 따른 교통과 운송체제에 큰 역할을 했다는 점이다.

 

광주에는 북구 우산동에 경양역이 있었지만 전라좌도와 우도의 역이 서로 노선이

달랐기 때문에 나주에서 한양으로 가려면 남평의 광리역에서 서창나루를 건너

선암역으로 연결되었으며 또한 선암역은 장성의 청암역으로 연결되어 전라우도

찰방의 통제를 받았는데 1913년 호남선 철도가 개통되자 선암역은 송정역으로

옮기게 되었다고 하며 어등산 자락에는 옛날 불교의 영지로 절터가 많으며 산속

곳곳 명소들이 흩어져 있고, 예전에 천등산(天燈山)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인증샷

어등산이라고 불리게 된 전설

광주광역시 광산구 박호동(博湖洞)은 박산리(博山里)의 ‘박(博)’자와

호송리(湖松里)의 ‘호(湖)’자를 따서 박호리라고 부르는 것으로 박호리에는

박중윤(朴仲允)이라는 사람이 살고 있었는데, 그는 마당에 연못을 파고 잉어를 길렀다.

 

박중윤은 연못 옆에 ‘양향정’이라는 정자를 짖고 연못에는 새끼 잉어를 구해다가

넣었는데, 날이 갈수록 자라 제법 크게 되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하루는 박중윤이 양향정에서 낮잠을 자고 있는데, 꿈에 그가 기르던 잉어가 나타나서,

“판관님, 이제 제가 용이 되어 승천할 때가 되었습니다만, 그런데 양향정 때문에

제가 살고 있는 연못이 좁아서 하늘로 오르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라는 것이었다.

 

잠에서 깬 박중윤은 “참 꿈도 이상하다.”라고 생각하면서 양향정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그때 양향정 아래에 있는 연못에 자기가 평소에 아끼던 잉어가 눈을 깜박거리고 있었고

마치 무엇인가 애원하는 것처럼 꼬리를 치면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것이었다.

 

박중윤은 예사롭지 않다고 생각하고, 자신이 꾸었던 꿈에서 잉어가 말한 것처럼 사람들을

불러 양향정을 헐어내고, 연못을 더 넓혀주었다...정자를 헐어내고 며칠이 지난 후, 갑자기

천둥번개를 치면서 비가 내리는데 그리고 주위에는 안개로 가득해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박중윤은 “하늘로 뭔가 올라갈 징조인 것 같다.”라며 자신이 키우던 잉어가 용이 되어

하늘로 오르는 것일 거라고 기뻐하였다. 그래서 박중윤은 자신이 기르던 잉어를

마지막으로 볼 생각으로 연못을 찾았는데 잉어가 보이지 않았다... 박중윤은 “잉어야

마지막으로 너의 모습 한번 보고 싶구나!”라며 연못을 향해 소리를 쳤다.

 

그러나 잉어는 평상시처럼 몸을 보이지 않고, 그 대신 물 위로 꼬리만 몇 번 보일 뿐,

그리고는 갑자기 사방이 어두워져 앞이 전혀 보이지 않고, 천둥번개를 치면서 비가

쏟아지기 시작하는데 시간이 흐른 후 비가 멈추었는데, 연못에서 꼬리만 보이던 잉어도

아예 자취를 감추었다.

 

그 후로부터 마을 주민들이 천등산이라 부르던 산을 ‘잉어가 하늘에 오른 산’이라고 해서

어등산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하며, 한편, 박중윤의 사위가 어등산 언저리에 살았었는데,

그는 해박한 식견을 가지고 있었으며 주위 사람들이 겪는 문제들을 해결해 주었다.

 

그래서 지명에 넓은 ‘박(博)’자가 들어가게 되어, 박산리, 박호리 등의 지명도 생기게

되었다고 하며, 잉어가 용이 된 광주광역시 서봉동의 어등산은 천등산을 어등산으로

부르게 된 지명 유래를 설명해 주고 있으며, 어등산 주위에는 용기치(龍起峙), 황룡강

(黃龍江), 용기제(龍起堤), 천등보(天登洑) 등 용과 관련한 지명들이 산재해 있다.

이러한 지명들도 모두 용이 된 잉어 유래담과 관련이 있으며, 어등산 인근 지역이

상서로운 땅임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한다.

어등산에서 갈림길 삼거리로 되돌아와서 산정약수터 방향으로

이어가는데 내리막으로 내려가자마자 데크목 쉼터가 나온다

데크목 쉼터에서 바라본 어등산C.C의 모습

아파트 단지 뒷쪽으로 보이는 지석(신산경표상:분적)지맥이

가까운 거리에 있음에도 미세먼지 탓인지 산줄기가 흐릿하다.

우측에 있는 봉우리가 송학산이고, 좌측에 있는 봉우리가

백마산인데 저 구간은 아직 끝내지 못했다.

어등산으로 올라오는 등로는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지

등로가 반질반질하고, 등산객들이 많이 올라온다

시누대와 바위 사이로 내려가니 쉼터가 나온다.

189.3m봉(11:08)

이곳이 오룩스맵 지도상에 표기된 족보있는 189.3m봉이건만

산패는 커녕 선답자들이 시그널 하나도 안 보인다...아마도

지자체의 관련된 기관이 미관상의 이유로 철거한 듯 하다

김해김공&유인 경주이씨 묘(11:11)

계속되는 내리막길...양지 바른곳에

문패없는 묘지를 지나 내려선다

쉼터가 나오고...

이정표가 있는 물넘어 고개로 내려서니...

어등터널이 있는 13번 국도는 차량들이 무척이나 많다

물넘어 고개의 쉼터에는 등산객 한 분이 忙中閑을 즐기며,

스마트폰 三昧境에 빠져있는 모습이 부럽기만 하다.

내가 죽기 살기로 지맥길에 매달리는 이유를 나 자신도 모르겠다

물넘어고개(水南峴:75m:11:17)

광주광역시 광산구 운수동과 산정동 경계에 있는 고개로, 이 고개 아래로는

13번 국도가 통과하는 어등터널이 있으며, 어등산 자락에서 남동쪽 동자봉으로

내려선 능선 중간에 있는 고개로 옛 나주에서 한성 가는 길목에 있다.

 

절골 북편 연안차씨세장터비가 서 있는 산마루는 무네밋재(水南峴)라 부르며

주막이 있었고, 동편은 산정 마을, 서편은 어등산으로 오르고 북쪽은 장수동

수남 마을이 있다.

 

지명의 유래는 스님과 처녀의 못 이룬 사랑 전설에서 물이 넘어갔다고 하는

이야기가 전해오나 물넘이는 분수계를 의미하는 것이고, 과거 한양을 갈 때

하남공단에 있었던 마을인 말목(馬項) 시암에서 목을 축였던 큰 우물이 있는

동네란 뜻인 하나몰-한우물(大井)-하남(河南)'이 된 것이라고 한다. 

물넘어 고개에서 바라본 절골마을과 13번 국도의 모습

절골마을 갈림길(11:18)

오랫만에 범여의 두 다리가 호강을 하는 느낌...

쥔 잘못만나 죽도록 고생시키는 내 肉身에게는

늘 미안함이 앞선다...조금만 참아다오...끝이  보인다

산정약수터 갈림길(11:21~11:35)

직진의 내리막길의 산정동쪽엔 산정약수터가 있고, 지맥길인 동자봉으로

향하는 길은 우측인데, 음료수와 아이스케키를 파는 노점상이 있다.

아침에 지나오는 길에 뒤집어 쓴 송화가루 탓인지

몸뚱아리가 엄청 가렵고, 날씨도 무척이나 덥다.

 

이곳에서 휴식을 취하면서 쮸쮸바 하나를 사먹고,

가지고 온 식혜로 허기를 면하면서 한참 동안 휴식을 취한다. 

휴식을 취한 다음에 동자봉으로 향하는 발걸음을 내딛는다

프랑스의 철학자였던 장 자크 루소의 명언

 

나는 걸을 때 명상을 할 수 있다.

걸음이 멈추면 생각도 멈춘다.

 나의 정신은 오직 나의 다리와 함께 움직인다.

밀성박공 묘(11:40)

동자봉을 항해서 조금씩 고도를 높힌다

122.4m봉(11:43)

어등산부터 계속되는 맥길은 광주시민들이 즐겨찾는 곳인듯

계속 등산들과 조우를 하니 왠지 불편하고 낯설기만 하다.

허나...우짜겠노,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라야지...

등로 우측 아래에 있는 호화묘지를 보면서 쉼터로 내려선다

쉼터(11:46)

지실골 갈림길(11:47)

지실마을이 속해있는 광산구 산정동(山亭洞)은 기와를 구웠다 하여 '지실' 또는

'와곡', '와동'이라 하였으나, 마을 뒤에 큰 정자나무가 있어 산정(山亭)이라

고쳐부르게 되었다고 하며 또 와곡면소(瓦谷面所)터, 가라지[가야], 지실면소터와

같은 이름으로 불렀으며, 마을이 어등산에 둘러싸여 있어서 '니거리골’, ‘도루실골’, 

‘독정굴’, ‘산숫굴’, ‘서당골’, ‘시묵골’, ‘큰덕굴’과 같이 부르기도 하였다.

계속되는 내리막길

안부(11:52)

등산의 기쁨은 정상에 올랐을 때 가장 크다.

그러나 나의 최상의 기쁨은 험악한

산을 기어올라가는 순간에 있다.

 

길이 험하면 험할수록 가슴이 뛴다.

인생에 있어서 모든 고난이

자취를 감췄을 때를 생각해 보라!

그 이상 삭막한 것이 없으리라. - 니 체 -

쉼터(11:57)

행복은 산 정상에서 나오는 잠깐의 만족이

아니라 산을 오르는 길에서 느끼는 희망이다.

 

조던 피터슨의 12가지 인생의 법칙 中에서

무명봉(12:02)

조금 내려섰다가 다시 올라서니....

색깔이 아주 빨간 철쭉이 흐드러지게 피어있고

그 가운데로 지나가는 꽃길을 따라서 맥길을

이어간다

동자봉대(童子峰臺:12:07)

멋진 팔각정과 쉼터의자, 체육시설이 있고, 어등산 유래비와

박용철 시인의 무제라는 글도 있고, 많은 등산객이 휴식을

취하고 있다..우측으로는 운수동, 좌측으로는 광주여대 방향이다

팔각정 내에 있는 童子峰臺 현판

어등대봉 정자 옆에는 어등산의 유래와 '떠나가는 배'라는

詩로 유명한 이 지역 출신인 박용철 시인의 '무제'라는 시도 보인다

박용철(朴龍喆:1904~1938)시인은 광산구 송정동에서 출생하여 34세의 젊은 나이에

요절하였다...문학평론가, 번역가로도 활동했으며 본관은 충주, 아호는 용아이다.

 

시문학파의 작품들을 받쳐준 큰 힘 가운데 하나는 『시문학』을 직접 발간, 편집한

박용철의 시론인데, 「떠나가는 배」 등 70여 편의 시를 발표하지만, 창작보다는

외국 문학의 번역과 시론, 비평 분야에 치중했으며 그는 시론을 통해 1930년대 초반

『시문학』이 기틀을 잡는 데 많은 공헌을 하고, 1930년대 중반부터 일기 시작한

모더니즘과 기교주의 논쟁에서도 순수파의 입장을 적극 옹호한 시인이다.

생뚱맞은 어등산 유래비

어등산에 있어야 유래비가 왜 여기 있는지?...

아마도 이 지역 사람들은 이곳을 어등산으로 생각하는 모양이다

동자봉을 만나기 위해 좌측의 광주여대 내려가는 등로를

버리고 119간이 구조구급함 뒷쪽의 시누대 숲길로 들어선다.

동자봉(童子峰:153.7m:12:12)

광주광역시 광산구 운수동과 산정동의 경계에 있는 산으로 시누대

숲 안에 꼭꼭 숨어있어 지맥 산꾼이외는 이곳을 올 사람은 없는듯 하다

준희쌤의 산패와 선답자들의 시그널이 이곳이 동자봉 정상임을 말해준다.

 

지명의 유래는 어등산(魚登山) 자락에서 내려오는 능선 중간에 있는 작은 봉우리로

어등산의 줄기가 내려오다가 작은 아이(동자, 童子)가 앉아 있는 듯한 아기자기한

모습의 봉우리를 형성하여 동자봉이라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인증샷

대부분의 맥산꾼들이 동자봉 정상을 찍고 되돌아가서 광주여대로

내려가는 제도권 등로를 택하는데 나야 혼자라서 정통 맥길을

걸어보려고 인증샷을 남기고 트랙을 따라서 간다

동자봉 정상에서 시누대숲을 빠져 나오니

군부대 철조망이 길을 막는다.

철조망안에 초소가 보이나 초병은 보이지 않고

철조망을 따라서 조심스레 맥길을 이어간다

최대한 낮은 자세로 가다가 발을 헛디뎌 발이 빠지면서

스틱 한토막이 뿌러지면서 쳐박히는데 다행히 다친데는 없다.

부대 안쪽으로는 눈길도 안주고 도둑고양이처럼 살금살금

걸어가는데 부대 안쪽에서 민간인 복장으로 스틱을 짚고

걸어면서 여기는 들어오면 안되는데 하면서 조심하라고 한다

 

나는 다시 되돌아 가라는 소리인줄 알고 금방 나가겠다고 하니

강하게 제지는 않고 둘이서 평행선으로 철조망 안과 밖에서

같이 걸어간다...군부대 정문에 도착하니 그 분이 먼저 도착해

있다가 내가 부대밖으로 빠져 나가는걸 보고 부대안으로 들어간다

한쪽이 뿌러진 스틱...종로5가 등산매장에서 한조에

3만원 주고 산 지 6개월밖에 안되었는데...에공 아까운 거...

군부대를 통과하는데 대한 trauma가 있어서 그런지

늘 조심스럽다...군부대 정문을 지나 무작정 내려서니

무안~광주간 고속도로(도로명 주소:무진대로)가 길을 막고

도로 너머로는 광주의 진산이라는 무등산 흐릿하게 보이는데

저 무등산은 나의 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아니면 관심조차

없는지 흰구름과의 遊戱에 빠져있다...맥길은 도로를 건너야 하나

불가능하기에 다시 군부대쪽으로 올라오니 광주소방학교

쪽으로 가는 길이 보인다 

부대앞(12:40)

무진대로 암거(12:41)

무진대로 지하를 통과하니...

광주소방학교 철조망에 반가운 선답자의 흔적이 범여를 반긴다

광주소방학교 훈련장(12:45)

도로를 따라서 가는데 따가운 햇볕이 장난이 아니다.

우리나라 날씨도 점점 봄은 사라지고 아열대 기후로

바뀌는 느낌이다

광주소방학교(12:49)

소촌고가교(12:51)

소촌고가교를 지난 삼거리에서 좌측으로 향하는데

잠시후에 오를 98.4m봉이 아파트 사이로 얼굴을 내민다

호남선 KTX 철길위를 통과한 다음에...

98.4m봉을 바라보면서 도로를 건너니, 

광주지방경찰청 입구 버스정류장이 나온다

광주지방경찰청 입구 버스 정류장(13:02)

광주지방경찰청 입구 버스 정류장을 지나자마자

우측으로 틈이 보이고 98.4m봉으로 향한다

수량공원(13:10)

이곳이 지도상으로 수량공원으로 되어 있으나

지금은 온통 잡초밭으로 변해 버렸고, 어느 건설회사가

아파트 부지로 매입했는지 도로 주변으로는 가림막이

처져 있다.

마루금 우측으로는 광주 경찰청 건물이 보이고...

능선으로 오르는데 그늘이 없어서 그런지 햇살이 따갑다.

조리대의 저항을 받으면서...

능선으로 올라서니....

이곳이 동네 주민들의 산책코스인지 등로는 뚜렸하다

운동기구와 쉼터의자 가건물 형태의

가림막이 있는 98.4m봉 정상에 올라선다 

98.4m봉(13:25)

98.4m봉 정상에는 판독이 불가능한 말뚝 삼각점도 보이고...

지도상에는 없는 삼각점...삼각점이 아니라 지적도근점인 듯 하다

98.4m봉에 잠깐 머물다가 금호 훼미리 아파트

방향으로 내려가는데 98.4m봉 사면에 사통팔달로

등산로가 있어서 바짝 긴장하면서 내려선다.

텃밭을 지나 금호훼미리 아파트 뒷쪽 주차장으로 내려선다

금호훼미리 아파트(13:40)

아파트 앞의 공터에는 텃밭들이 가꾸어져 있고

텃밭 사이의 오솔길 따라서 맥길을 이어간다

2차선 도로(13:50)

2차선 도로(도로명 주소:사암로)를 가로질러

대덕아파트 단지내로 들어가면서 지나온 곳을 뒤돌아 본다

대덕 무지개 아파트 맨 끄트머리에 있는 602동에서 우측으로 꺽어지니...

601동이 나오고...

후문으로 빠져 나가는 계단이 있고 계단으로 올라서니

우측으로 텃밭들이 많이 보이는데 농사짓는 아줌씨들이

이곳에서 베낭을 지고가는 맥꾼들을 첨 봤는지, 아따...

거기에는 산이 없는데 어디로 간당가 한다.

아줌씨!...그런 꺽정은 꼭 붙들어 매고 농사일이라 하셔

하니까...아무 대답을 안한다

우정테니스클럽(13:58)

황새고개(13:59)

광산구 소촌동에서 송정공원으로 넘어가는 고개로

맥길은 고개를 가로질러 숲으로 들어서니 공동묘지가

나온

황새고개를 가로질러 휀스 안으로 이어지는 

등로를 따라서 맥길을 이어간다

입구와는 달리 등로는 희미하나 걸을만하다.

이곳이 예전에 공동묘지인지 풀섶에 숨어있는

묘지들이 많이 보이고 봉분을 뒤덮고 있는

미나리아제비꽃이 흐드러지게 피어있다

입구 지나자 등로는 은근히 뚜렸하다

공동묘지 사이로 이어지는 迷路를 따라서 오르막으로 향한다

나무에서 떨어진 꽃가루를 보니 갑자기 몸이 가려워지는 느낌...

아침에는 松花가루가 괴롭히더니만 이제는 다른넘이 태클을 

걸어온다

동의보감을 저술한 조선시대의 名醫 허준은 

 

좋은 약을 먹는 것보다는 좋은 음식이 낫고, 

음식을 먹는 것 보다는 걷기가 더 낫다고 했다.

 

* 허준(許浚:1539~1615)은 <동의보감>으로 유명한 조선 중기의 명의로 본관은 양천,

  자는 청원, 호는 귀암이며 서자로 태어나 중인이나 서얼의 업으로 되어 있던 의학의 길을

  택하여, 이미 20대에 뛰어난 의술로 전국적으로 유명해졌다.

 

  30세에 어의(御醫)로 선임되었고, 동양 최대의 의서(醫書)라는 〈동의보감〉의 찬집에

  노력하여 1610년(광해군 2)에 이를 펴냈으며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왕이 의주까지

  피신하는 사태가 벌어졌을 때, 허준은 선조의 건강을 돌보았다... 이때의 공로로 허준은

  뒷날 공신의 반열에 올랐다. 이후 정1품까지 승급했다.

 방가산?(94.7m:14:16)

광주광역시 광산구 우산동과 소촌동에 있는 봉우리로 정상에는 쉼터의자와

운동기구, 지도상에 표기조차 안되어 있는 판독이 불가능한

삼각점이 있고 우측으로 이어지는 지맥길에 군부대가 자리를 잡고 있다

선답자의 시그널이나 산패는 아무리 찾아봐도 보이질 않는다

 

광산구에 속해있는 소촌동(素村洞)은 마을 지형이 마치 가마솥과 같다 하여

'정두(鼎頭)'라 부르다가 조선시대 말 '소촌', '솥머리'라 불렀다... 또 소촌동의

지명으로 ‘갓골’, ‘새태’, ‘성적굴’, ‘동자봉골’, ‘물통골’, ‘유양골’, ‘안안태’, ‘참산골’,

 ‘초분골’ 등의 골짜기 지명이 많이 보이고, ‘광대봉’, ‘동산’, ‘동자봉’, ‘말미산’,

 ‘방가산’, ‘제봉산’, ‘쇠봉산’ 등의 야산 지명도 있다.

판독이 불가능한 삼각점?...

벤취가 있는 직진의 내리막길로 내려선다 

안전로프 뒷쪽으로가 정통 마루금이나

군부대인지 뭔지 모를 시설물의 철조망이

길을 막고 있어서 좌측으로 우회하며 내려간다

계속되는 내리막길...한참을 내려가다 우측으로 향한다

이름모를 시설물의 옹벽을 바라보면 안부로 내려선다

안부(14:27)

조금전에 지나온 94.7m봉이 방개(가)산이란 걸

이 이정표를 보고 알았다...지도에도 전혀 안나오는

지명...이 지역사람들만 부르는 산인가 보다

 

안부에서 올라서니 멋진 2층 팔각정이 나오는데

지도에는 표기조차 안되어 있는 산이다. 

금봉산(金鳳山:96m:14:32~40)

광주광역시 광산구 소촌동과 신촌동의 경계에 있는 산으로

오룩스맵 지도와 카카오 지도에는 표기조차 안 되어 있는

무명봉으로 금봉산은 쇠봉산이라는 다른 이름도 갖고 있는 산이다

2층의 팔각정 형태의 멋진 금봉정(金鳳亭)와 각종 운동기구들이

많이 보이며, 1908년에는 의병부대가 출현하여 순절했던 곳이라고 한다

남쪽으로 시야가 트이면서 광산구 송정시내가 한눈에 보이고 합수점도

살짝 보이고, 그 뒷쪽으로는 개고생하면서 걸었던 삼포(옥룡)지맥과

함평(신산경표상:철성)지맥도 어렴풋이 보인다

 

광산구 송정동(松汀洞)의 지명 유래는 글자 그대로 '소나무(松)가 울창한

물가(汀)'라는 뜻으로 서쪽으로 흐르는 황룡강과 극락강이 만나는 지형적이

특성이 반영된 이름이라고 하며, 또다른 설은 과거 황룡강변 소나무 숲사이에

송정(松亭)이라는 정자가 있었다고 유래된 지명이라고 한다.

예전에는 황룡강변의 한적한 마을이었으나 일제강점기 호남선 철도가

개통되고 송정리역이 들어서면서 물류와 인사가 모여들며 1937년

송정면이 송정읍으로 승격되었고, 1986년 송정읍이 송정시로 승격되면서

광산군과 분리되어 독자적인 시의 지위를 갖기도 했으나, 1988년 송정시와

광산군이 광주직할시에 편입되면서 현재의 광산구가 형성되었다고 한다

황룡(신산경표상:병풍)지맥의 마지막 산인 금봉산에서

휴식을 취한 다음에 내려가는 길...등로옆 영산홍이

도열하여 범여의 지맥길 종주를 축하해 준다.

그래...나도 남은 인생을 꽃길만 걷고 싶다.

반갑습니다

 

휀스 안쪽을 들여다 보니 송정근린공원에

속해있는 체육시설이다

송정공원(14:45)

광주광역시 광산구 신촌동과 소촌동에 속해있는 꽤나 큰 규모의 공원으로

일제강점기에 송정신사(松汀神社)가 있던 곳으로 그 잔재를 없애기 위한

사업이 추진되었으며, 현충탑과 기념비, 다수의 충혼비 등이 세워져 있는

공원이다

 

일제강점기의 1930년대에 순수 시문학 운동을 주도하며,「떠나가는 배」로

유명한 용아 박용철 시인의 시비(詩碑)와, 암울했던 시기에 조선 백성들의 한과 울분을

소리로 해소해 주었던 국창 임방울선생(1904~1961)의 기념비, 그리고 의병대장

금재(錦齋) 이기손(李起巽) 장군의 의적비 등 역사적으로 귀감이 되는 많은 인물들의

충혼비가 세워져 있는 공원으로 시간이 되면 두루 돌아보고 쉽지만 가야할 합수점까지의

가야할 거리가 많이 남아있어 아쉬지만 그냥 통과한다 

뒤돌아 본 송정공원의 모습

송정공원을 빠져나오니 금선사 대웅전 지붕이 보인다

금선사 대웅전(14:50)

초파일이 다가오는 싯점이라 연등이 매달려 있으나 마치 일본의

신사(神社)의 모습이다...아니나 다를까 내 예감이 적중했다.

 

금선사는 일제 강점기에 송정권에 세워진 신흥사찰로서 순수 일본식 건축양식을 그

대로 유지하고 있는 근대적 문화유산으로 평가되며 민족사적 교훈을 시사하는

특별한 의미를 갖고 있는 절집으로, 2020년 광주광역시에서 안내문을 설치하였는데,

 

안내문에 의하면 ‘송정신사는 1941년에 세워졌으며, 신사에는 신전, 배전, 신찬소 등

4개 건물이 있었으며 현재 신전(신사의 신를 모시는 전각)과 신찬소(신령에게 올릴 음식을

준비하는 장소)는 없어지고, 배전(기도하고 참배하는 장소)과 사무소만 남아있다.

 

한국 내에 남아있는 신사 가운데 유일하게 목조로 만들어진 건물이다.’라고 하며

‘대웅전으로 올라가는 계단 앞 석등롱 역시 신사의 부속물이고, 금선사 입구의

나무아미타불탑도 원래는 일제의 황국신민서사탑이었는데 정광학원이라는 곳이

금선사 일대를 일제강점기와 관련한 역사교육의 장으로 활용하고 있다.’는 설명도

추가되어 있다.

 

금선사 대웅전의 건축 형식은 정면 7칸, 측면 2칸 규모에 7량의 일자형 솟을지붕집이며,

내부는 중앙렬에 기둥을 세워 통간으로 처리하였고, 전면 중앙부 3칸은 2층 높이로

지붕을 높게 하여 통층으로 처리하였다... 후벽부에 불단을 두었으며, 주전불로

석가모니불을 모시고 있으며 천장은 우물반자로 꾸몄고, 중앙 출입구에는 커다란

일본식 미세기 격자문을 두었다... 반면 좌우단부 각각의 2칸은 중앙부보다 지붕을

낮게 두고 종이반자로 꾸몄고 그리고 정면과 측면에는 격자살창을 두었다. 

 

콘크리트 기단 위에 사각초석을 놓고 원형기둥을 세웠으며, 기둥 사이에 수평 인방재를

끼워 창호와 서까래를 받고 있으며 기둥 위에는 장식 없이 단순히 처리하였고,

서까래는 홑처마에 각재를 병렬하여 배치하고 있다. 측면의 전열 칸에는 쌍기둥

형식으로 기둥을 넣어 보강하고 했고 지붕은 막새를 둔 개량 한식골기와를 얹은

맞배지붕이다.

 

1941년 일제강점기에 세워진 송정신사(松汀神社)라는 신사로 조선인들에게

일왕(日王)의 내선일체(內鮮一體: 1937년 일제가 전쟁 협력 강요를 위해 취한

조선 통치 정책) 등 주입하기 위해 조선인들을 강제로 참배하게 하는 등,

군국주의적 침략정책과  식민지 지배에 이용하였으며, 현재는 대한불교조계종

금선사의 대웅전으로 바뀌었다

금선사대웅전을 내려서니 금선사 종무소가

나오고 광주송정다가치 문화도서관이 나온다

광주송정다가치 문화도서관(14:53)

광주송정다가치 문화도서관이라 세종대왕께서 지하에서

통탄하실 일이다...다른곳도 아닌 공공기관에서 ‘다같이 가 아닌

다가치’라니 멀쩡한 한글을 두고 왜곡을 하다니...참으로 한심하다

광주송정다가치 문화도서관을 휘돌아  나온 다음에...

호남선 철길로 막혀버린 지맥길을

철길 지하도를 따라서 맥길을 이어간다

송정공원역(15:00)

광주 지하철 송정공원역이 나오고 내가 다운 받아서 다니는

오룩스맵 지도에는 이곳이 지맥길 끝으로 나오지만 이곳에서

합수점까지 멀어도 한참이나 멀다...이곳부터 합수점까지는

도심구간이기도 하고 대중교통을 이용하여 홀로걷는 독립군의

애로사항은 귀경길의 교통편이 어찌될 줄도 모르겠고, 도심의 도로따라서

걷는 길이긴 하지만 아직도 남은거리가 한참이나 남아 있기에 이곳에서

스틱을 접고 택시를 타고 합수점으로 가기로 한다.

 

그런데 이곳 송정공원역은 택시잡기가 하늘에 별따기다.

택시는 많이 다니지만 세워주는 택시가 없다...난 아날로그 스타일이라

카카오앱같은 걸 안하니까 더 힘든것 같다...더운 날씨에 20분이상

택시잡기를 한 다음에 택시를 타고 합수점으로 향한다

.

,

.

황룡강/영산강 합수점(15:40)

택시로 합수점에 도착하여 물가까지는 가보지도 못하고 

택시에서 내려 황룡강과 영산강이 만나는 합수점을 바라보는

걸로 인증샷을 대신하니 지맥길에 대한 예의가 아니지만

현재로선 방법이 없다.

 

황룡강(黃龍江)은 장성에서 임곡을 거쳐 광산구 용진산과 어등산 사이를 지나 어등산

남쪽을 흐르다가 송정을 지나 나주로 흐르는 강으로 황룡마을은 요새지로서 천혜의

조건을 갖추고 있는 곳이라 한다... 황룡강 石崔아래 깊은 물에서 목욕하는 군장을

일컬어 봉황연(鳳凰淵)에 용이 살았다는 전설로 굳어졌을 것으로 추정된다.

 

따라서 황룡강의 유래는 황룡마을로부터 나왔을 것이며, 황룡마을의 이름은 이 지역을

지배하는 군장(君長)을 일컫는 황룡에서 유래하였을 것이다... 그리고 '鳳凰淵(池)'라는

이름도 역시 이 지역을 지배하는 軍長과의 관련하에 명명되었을 것으로 결국 황룡강의

지명은 봉황연과 관계속에서 해명되며 총면적 547.3㎢, 유역평균 폭 8.8㎞, 유역형상은

직사각형의 평형상을 이루고 있다.

영산강 물줄기는 잘 보이나 우측의 황룡강 물줄기는 흐릿하니

두고두고 아쉬운데 저 멀리서 나를 바라보고 있는 월출산이

안쓰러운 모습으로 나를 바라본다...세상살이가 어디 내 맘대로 되던가요.

 

아쉬운 마음을 뒤로하고 광주터미널로 향한다

광주 유스케어 터미널(15:58)

터미널에 도착하여 버스표를 예매하려는데 표가 없다

광주사람들은 서울로만 가나?...5분마다 출발하는 버스인데도

표가 없다니... 계속 매표기 앞에서 눈을 떼지 않는데 갑자기

취소표가 하나 튀어 나온다...재빨리 예매를 하고나니 긴장이

풀리는구나...그래도 2시간이나 기다려야 한다.

 

버스표를 예매하고나니 긴장이 풀리고 허기가 진다.화장실에 가서 간단하게 씻고 옷을 갈아입은 다음에국밥 한그릇으로 허기를 면하고 터미널 밖 광장에서1시간 반 이상을 멍때리기를 한 다음에 플렛홈으로 향한다

광주발 → 서울행 버스표

18시 10분 버스에 오른다...갈수록 남은 지맥길이 힘들어진다

어떤곳은 산행 시간보다 버스를 타는 시간이 더 많으니 말이다.

그래!...가는데까지 최선을 대해서 걸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