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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범여(梵如)의 世上사는 이야기
♣ 백두 대간및 9정맥 후기♣/호남정맥 (終)

호남정맥 제6차 - 감상굴재에서 추령까지(역산행)

by 범여(梵如) 2010. 11. 8.

 산행 일시: 2010년 11월 6일~7일(무박)

산행구간: 감상굴재-430봉-곡두재-전망바위-630봉-722봉-구암사 갈림길-도집봉-백암상 상왕봉

              순창새재-영산기맥 갈림길-580봉-까치봉 삼거리-신선봉-연자봉-전망바위-장군봉

              유군치-추령 주차장

거리/시간: G.P.S상 거리: 18.3km / 8시간 30분 소요

 

10월에 일욜이 다섯번이나 있는 관계로 3주만에 호남정맥길에 나선다.

이번 구간이 내장산구간이라 조선팔도에서 가장 예쁘다는 내장산 단풍에 맘이

들뜨는게 아니라 이 구간에 사람이 너무 많아 어찌 통과해야하나 그것이 

걱정이다.  거기다가 매스컴에서 이번주가 가장 절정이고 20만 인파가 몰리다고

하니 올때 걱정이 앞선다. 거기다가 20여년간 근무한 직원넘이 사고를 쳐서

머리가 찌근찌근 아프다. 무거운 머리를 식히려고 베낭을 준비하고 차에 오른다.

차에 올라 잠을 청하는데 좀체 잠이 오질않고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버스는 내장산 I.C를 거쳐서 감상굴재로 향하는데 앞이 보이질 않을정도로

안개가 끼어있다. 기사분한테 미안한 감정을 느낄만큼...

새벽 03시 20분에 감상굴에 도착 하차하니 옷이 젖을만큼 서리가 많이 내렸고

오한을 느낄만큼 새벽 공기는 차갑기만 하다.

 

서둘러 산행길에 오른다. 감나무밭과 복분자밭을 지나 임도와 호화분묘를 지나

아무런 표식도 되어있지 않은 곡두재에서 좌측으로 돌아 630봉을 향한 된비알을

치고 오른다. 갑자기 고도를 350을 높이니 코가 땅에 닫을만큼 힘이든다.

거기다가 국공단 직원들의 좁은 소갈머리에 암릉구간 로프까지 제거해 버려

시간이 배로 걸린다. 선답자의 산행기에 전망이 뛰어나고 하는 도집봉을 

어둠속에 지나치고 상왕봉에 도착하니 어둠이 서서히 걷힌다.

 

상왕봉 찍고 좌측으로 빠져 순창새재 가는길은 참으로 호젓하고 걷기가 편하다.

순창새재에서 느긋하게 오랫만에 여유로운 식사를 마치고 580봉까지

오르락 내리락을 여러차례 반복하여 까치산 삼거리에 도착하니

일반 등산객들로 내장산이 내려 앉을것만 같다. 빨리 벗어나고픈 생각에

신선봉, 연자봉, 릉길, 장군봉, 유군치, 추령까지 내려오는데 도대체

산에 온건지 사람구경 온건지 모르고 산행을 마친다.

정읍에 도착 동료 산꾼이 스폰서하는 바람에 오랫만에 포식을 하고

버스에 올라 잠에 떨어진다. 일어나보니 차는 공주쪽의 국도를 달린다.

고속도로가 하도  밀려서 국도를 타고 가는 모양이다. 서울에 도착

6시간 넘게 걸려 서울에 도착하니 피로가 한꺼번에 밀려오기 시작한다.

 

 

 

오늘 산행구간의 지도와 고도표

감상굴재에 도착하다(03:20)

강선 마을 앞 정자를 지나면 백양사 입구 마을인 장성군 약수리에서

순창군 복흥면으로 넘어가는 49번 지방도로가 지난다.

추령으로 산행 들머리를 잡았다가 갑자기 감상굴재에서 시작하는

역산행을 한다고 한다.(무슨 사연이 있겠지) 산꾼을 실은 버스가 내장산 I.C를

벗어나자. 요즘 여의도 정가 만큼이나 안개속이다. 전혀 앞이 보이질 않는다.

괜스레 버스기사에게 미안한 생각이다. 여의도 나리들이야 국민이

뽑아준 선량들이긴 하지만 그분들한테 국민을 위한 봉사를 해달라고 요구하는 건

무리일 것이다. 아마 자기들 이권들이 걸린 문제는 일사분란하게

단합이 잘되긴 하지만... 언제쯤이면 국민들 무서워 하면서 사실라나.

 

 3주만에 찾아온 호남정맥길은 그 사이 기온차 꽤많이 난다.

감상굴재에 내리니 서리가 많이 내렸고 차가운 寒氣가 온 몸을 움추리게 만든다.

전라남도 장성군 북하면과 전라북도 순창군 복흥면의 경계인데

아직도 깊은 한밤중이다. 안개속에 강선마을 표지석을 끼고 우측으로 산행을 시작한다.

강선마을

선녀가 내려 앉았다는 강선마을이다. 마루금의 왼쪽은 전남 장성군이고

오른쪽은 순창군이다. 동국여지승람에 의하면 산이 둘러있고 물이 굽이쳐 있다

고 그렸던 장성군은 입암산, 방장산 같은 큰산들이 마치 긴 城처럼  둘러싸고

있는 형세이다. 고려시대부터 장성(長城)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암행어사 박 문수가 남도지방에 산수가 좋기로는 첫째가 장성(長城)이요.

둘째가 장흥(長興)이라고 했다는 구전(口傳)이 있다.

풍수지리학상 장성에 큰 인물이 많이 나오는 것도 터가 좋아서 그런것이

아닌가싶다.

 

호남지방에서 유림(儒林)의 고장을 꼽을 때 광나장창 이라고 하여

광주, 나주, 장성, 창평을 꼽는다.  경상도의 안동(安東) 문장과

필적할만한 곳이 전라도의 장성문장이라고 한다.

일제시대에 전라도에서 여러차례 의병을 일으킨 의병장 기 삼연의

고향이고 북이면 모현리의 촛대마을은 호남지방에서 3.1운동이 

최초로 일어난 곳이기도 하다. 

장성의 선비정신은 순창출신인 기 정진 선생을 모신 고산서원,

변 이중 선생을 모신 봉암서원, 김 인후 선생을 모신 필암서원 등

안동 못지않은 儒林의 고장이 이곳 장성(長城)이다.

흔히들 장성 사람들의 자존심을 대변하는 말로 장성사람은

고추가루 서말을 먹고도 재채기 한번 안한다 는 말이 있다.

곡두재(04:20)

감상굴재를 출발하여 감나무 농장과 복분자밭을 지나 어둠을 헤치고

산행길을 접어드니 낮은곳은 서리가 비처럼 내려 베낭과 신발을 적시드니만

조금 높은곳에 오르니 먼지가 날만큼 땅은 뽀송뽀송하며 건조하다.

새벽 하늘엔 별들이 금방이라도 쏟아질듯이 총명하다. 

이렇게 맑은 하늘은 아마 서울에선 전혀 볼 수없는  것이다.

 

하늘을 쳐다볼 여유가 없는 것인지 아님 밝은 조명때문인지 몰라도

이 범여도 서울에서 하늘에 별을 본지가 별로 없는 것 같으니까...

가끔씩 나타나는 임도를 지나고 호화묘지를 비롯한 여러기의 묘지를

지나자  별의미도 없어 보이는 곡두재란 곳이 나타난다.

지도상에는 대단한 의미를 두는데 아무런 표식도 없고 무심코 지나면

모르기 쉽상이다.  안부의 아래 마을인 덕흥의 개들이 난리부루스다.

새벽에 해드렌턴 무리들에 경계심을 갖는 모양이다.

곤히 잠든 농꾼들에 미안하다.

곡두재에서 백학봉 단속구간

산악회에서 역산행한 이유가 여기 때문인가 보다.

많은 인원을 인솔하여 다니면서 이런곳 때문에 고충은 충분히

이해가 간다. 이 구간 0.6km를 국공단에서 단속한다고 하는데 이유를 모르겠다.

위험한 암릉구간

곡두재에서 복분자밭을 지나자 코가 땅에 닿을

만큼 급경사에다 암릉구간이다. 고도를 280에서 630까지 끌어

올린다. 거기다가 국공단 직원들이 단속을 한답시고 위험한 암릉구간에

로프도 제거해버리고 꼬리표도 없애 버렸다.(밴댕이속보다 못한 소갈머리 하곤...)

그러는 바람에 통과시간이 상당히 지체가 된다.

630봉 정상에 올라 한숨을 쉬고 물 한모금을 마신다.

좌측의 백양사에는 이제 아침예불이 끝났는지 불빛이 자꾸만 가늘어진다.

어둠속에 백양사를 바라보고 저두삼배(低頭三拜)의  예를 올리고 

헬기장이 있는 720봉 넓은 공터에서 암릉구간을 통과하지 못한 후미를

기다리면서 우유 하나에 초코파이 하나로 허기를 달랜다. 

구암사 갈림길(05:30)

헬기장에서 암릉을 끼고 순창과 장성의 경계인 마루금을 타고

조금 내리막을 걷다보니 구암사 갈림길에 도착한다.

좌측은 백암산 백학봉 가는 길이고 우측은 순창 복흥면에 있는

구암사 가는 길이다. 이곳까지가 국공단 단속구간이다.

이제 맘 조리지 않고 여유로운 마음으로 후미를 기다리며

꿀맛같은 휴식을 즐긴다. 선두의 특권이라도 누리듯이...

이 구간이 요즘 단풍철이라 그런지 대한민국 최고 단풍산인

내장산 구간이라 그런지 42명의 산꾼들이 몰린 탓인지 평소보다

산행시간이 많이 딜레이가 된다. 그러다보니 산행하는 느낌보다는

그냥 산보하는 느낌같고 많이 쉬다보니 땀이 식어 자꾸만 추위를 느낀다. 

백암산(백암산· 741.2m)

흰색을 띠고 있는 거대한 바위가 햇빛에 찬란히 빛나는 모습이 신비스러워서 붙여진 이름이다.

백양사 대웅전 뒤에 우뚝 솟은 봉우리는 백암이라는 이름을 얻기에 손색이 없을 정도로 색이 희다

대웅전 뒤로 솟아있는 백학봉은 봉우리가 마치 학이 앉아있는 듯한 모양이어서 붙여진 이름이라 한다.

 백양사 경내 어느 곳에서 바라보아도 이 백암산과 백학봉은 한눈에

들어와 너무나 친숙해 마치 백양사의 일부인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또 백양사는 이웃의 내장사와 함께 가을철 단풍이 아름답기로 이름이 난 사찰이다.

10월 말에서 11월 초순사이의 늦가을에 토종 단풍나무가 자라고 있는 개울을 따라 거닐다 보면

빨려 들어갈 정도로 강렬한 단풍의 붉은 빛에 넋을 잃을 정도다.

고불총림(古佛叢林)백양사(白羊寺)

 백양사(白羊寺)는 전라남도 장성군 백암산(白巖山)에 자리하는

 대한불교조계종 제18교구 본사다.
호남지역 사람들은 ‘산은 내장산이요, 절은 백양사’라는 말을 곧잘 한다.

호남지역을 대표하는 명찰 가운데 명찰이 바로 백양사라는 생각에서 비롯한 표현일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그저 백양사라고 부르는 것보다 ‘백암산 백양사’, 또는 ‘백학봉(白鶴峰)

 백양사’로 표현해야 더 어울리는 맛이 있다. 백양사를 찾는 이들에게 대웅전 뒤편에

 솟아있는 백암산의 정상인 백학봉의 빼어난 절경은 너무도 인상 깊게 다가오기 때문이다.

 

백양사는 632년 여환(如幻) 선사가 백암사라는 이름으로 창건하였다. 고려시대인 1034년

중연 선사가  중수한 뒤 정토사(淨土寺)로 불렀다. 조선 선조 때 환양 선사가 영천암에서

 금강경을 설법하는데 하얀 양이 내려와 스님의 설법을 들었고, 7일간 계속되는 법회가 끝난

 날 밤 스님의 꿈에 흰 양이  나타나 '나는 천상에서 죄를 짓고 양으로 변했는데 이제 스님의

설법을 듣고 다시 환생하여 천국으로 가게 되었다.'고 절을 하였다 한다.

그 뒤로 절 이름을 백양사라고 고쳐 불렀다.

 

일제강점기에는 조선총독부가 제정한 30본말사법에 의해 전국 30본산 가운데 하나에

속했으며, 현재는 대한불교조계종 본사 가운데 하나로 이 지역의 여러 사암을

 거느리고 있다. 근래에는 백양사 총림(叢林)이 설치되어 고불총림으로 부르는데,

 호남 지역의  선승과 학승들을 배출하는 총본산이기도 하다.
또한 천진암, 운문암, 청류암, 약사암 등 여러 산내암자 모두 유서 깊은 곳이다.

 특히 운문암은 고려시대 때부터 납자들의 정진도량으로 유명하였는데,

 지금도 전국의 수많은 선승들이 반드시 찾아와 참선일매에 빠지고 싶어하는 곳이다.

 

선도량으로 유명했던 곳으로서 불교계를 이끌었던 고승들을 많이 배출했다.

일제강점기 때 종정을 지낸 환응, 조계종 초대 종정 만암, 태고종 초대 종정 묵담 스님,

그리고 근래에 와서는 서옹 스님 등이 우뚝 서있다. 평소 참선이 수행의 으뜸이라고

강조했던 서옹 스님은 2003년 12월 "이제 가야겠다"는 마지막 말을 남기고 앉은

자세로 열반에 든 고승이다. 서옹 스님은 열반 직전까지 다른 스님들에게 30여 분 간

법문을 들려주었고, 좌탈입망 하루 전에도 아침 죽공양을 받고

상좌스님들과 법담을 나눌 정도였다고 한다.

도집봉(06:05)

아주 좋은 위치에 아름다운 소나무가 서 있다.

전망이 아주 좋은곳에서 도도하리만큼 아주 멋진 모습이다

이제 여명이 밝아 오면서 서서히 산봉우리들이 서서히

윤곽을 나타내기 시작한다. 1시간만 늦게 지나가면

이 멋진 모습을 다 구경할 수 있을터인데 범여의 德이

부족함을 탓하면서 상왕봉을 향한 발걸음을 옮긴다.

백암산 상왕봉(741m: 06:20)

옛부터 봄엔 백양산(春 白羊) 가을엔 내장산(秋 內藏)이라고 했듯이

백암산의 봄과 가을은 알아주었던 모양이다.

노산 이 은상 선생께서

백암산 황매야야 보는 이 없어/  저 혼자 피고진들 어떠하리만

학바위 기묘한 절경보지 않고서/ 조화의 솜씰랑 아는 체 마라

라고 노래를 했다고 한다..

상왕봉 정상에서 후미를 기다리며 꿀맛같은 휴식을 즐긴다.

백암산 정상인 상왕봉은 엄격하게 말하면 호남정맥

마루금에서 30m 벗어난 지점에 있다.

이젠 헤드렌턴을 끄고 산행을 해도 된다.

정상에서 산꾼들이 논쟁이 붙었다. 날이 밝으면서 다 지고

하늘에 떠있는 몇개의  별을 보고 어느 산꾼이 금성이다라고

하고 어느 산꾼은 비행기라고도 하고 어느 산꾼은 로켓트

라고도 한다. 어느것이 맞는건지 범여는 모르겠다.

문득 혜능선사의 선어록에서 본 글이 기억에 난다. 

 

바람에 흔들리는 깃발을 두고

두 스님 사이에 논쟁이 붙었다.

한 스님은 바람이 움직인다고 하고

다른 스님은 깃발을 움직이는

것이라고 맞섰다.

 

이에 육조 혜능스님이 말했다.

움직이는 것은 깃발도 아니고

바람도 아니고 스님의 마음이다.

 

이처럼 모든것이 마음에 달렸으니

마음으로 마음을 자세히 읽지 않으면

세상사 모든 일에서 낭패로

피하기 어렵게 된다.

백암산 상왕봉에서 30m 내려와서 좌측으로 기수를 돌려 순창새재로

향하는 발걸음은 가볍다. 저 아래 낙엽진 산능선이 이목구비를 뚜렸하게

보이며 운무에 휩싸여 신비함을 더해준다. 일출이 시작되면 멋진 작품하나

건질 수 있으련만 선두는 뭣이 그리 급한지 달아난다. 어쩔 수 없이

같이 달아난다. 그러자 갑자기 산아래에서 안개가 밀려오기 시작한다.

앞에가는 산꾼들이 보이지 않을정도로 말이다. 이 구간은 탐방로가 아니다

보니 낙엽이 떨어진 호젓한 길이 참으로 걷기가 너무나 편하다.

딱 범여 스타일이다. 이런곳엔 좋은 詩想이 떠오를 법도 한데 말이다. 

순창새재(07:10)

영산기맥이 갈라지는 분기점이다.(정확히 말하면 300m위의 능선임)

오른쪽은 호남정맥 마루금이고 왼쪽은  목포까지 뻗어가는

영산기맥의 마루금이 펼쳐진다.  내장산 우측 탐방로는 소죽근재를

거쳐서 까치봉 가는 길이고 좌측은 신정동 가는 길이다.

호남정맥 가는 길은 좌. 우측으로 길이 잘 나있는 탐방로로

가는 길이 아닌 위쪽으로 길이 잘 나있지 않은 탐방로 아님

이라고 표시되어 있는 길을 택한다. 컬럼부스가 험한 길을 택했듯이

정맥 산꾼들도 개척자의 심정으로 산행을 해야하나 보다.ㅋㅋㅋ

한 세기 내내 지리 교과서에 실린“산맥체계” 대신 “백두대간”으로 한반도

지형을 가늠하자는 민족사관적 인문지리 개념이 등장한지도 10여년이

넘었다. 산맥체계는 일본 학자가 지하 광물질을 토대로 분류한 것으로

한반도 수탈의 시각이 농후했다. 반면 1대간 1정간 13정맥의 산줄기로

분석한 여암 신경준(1712~1781· 조선 후기 실학자)의

지리서 “산경표”는 산과 물에 기대어 살아온 우리민족의 삶과 문화를

오롯이 껴안는 인문적 지리관을 담고 있다.

영산기맥 갈림길

순창새재에서 느긋하게 아침만찬을 즐긴다. 전문산꾼(?)들이

대장에서 부터 시작하여 오늘은 모두다 이상하리만큼 여유가 있다.

평소와는 전혀 딴판이다. 모두 다 모여 단체사진을 찍고 탐방로 아님이라는

 낙엽길을 올라서니  영산기맥 시작점 봉우리가 나타난다.

영산기맥은 내장산에서 갈라져 나와 영산강의 북쪽 벽을 이루면서 입암산,

방장산, 불갑산, 승달산 등을 지나서 목포 유달산에 이르는

도상거리 157.4km의 산줄기이다

영산기맥 갈림길에서 3시방향으로 내림길은 선답자들의

시그널이 없으면 등산로가 없어 딱 알바하기 좋은 코스이다.

그 만큼 등로도 나타나지 않고 낙엽이 수북히 쌓이고 키 큰 산죽에다

싸리나무가 우거져 있어 길이 없다. 저 멀리 내장산 구간이 안개에

가려 아무것도 볼 수도 없다. 대한민국 제일이라는 내장산 단풍은 이곳의 

산 위쪽은 우리동네 아파트 단지의 단풍보다도 못하다는 느낌이 든다. 

고만고만한 능선을 편안하게 오르내린다. 이곳이 그 옛날 군사적 요충지인지

아님 성터인지는 몰라도 산성터의 흔적과 방커 모양의 돌무덤들이 꽤나 많이

보인다.

건조한 날씨 때문에 먼지가 상당히 많이난다.

소죽엄재 내려가는 길은 나무들이 벌써 겨울준비를 다한

느낌이다.스키를 타는 기분으로

낙엽을 밀고 내려가다 보니 먼지로 인해 콧구멍이 새카맣다.

소죽엄재(08:10)

소죽엄재라고 이정표만 세우지 말고 지명에 대한 설명도

기재해 주었으면 좋으련만...(혹시 아시는 분 꼬랑지 좀 달아유?)

 580봉 정상(08:30)

서서히 고도를 높이고 암릉구간이 자주 나타나기 시작한다.

이른 아침보다는 안개가 조금 걷히기는 했지만 만족스럽진

못하고 저 너머 내장산 구간의 단풍은 아예 포기하고 길을 걷는다.

이젠 산행의 난이도가 좀 나타난다. 암릉구간이 많고 좌측 안부는

어지러울 만큼 낭떠러지이다. 까치봉 삼거리 까지는 계속해서

고도를 높인다. 오름길의 산죽이 낭만을 느낄만큼의 여유는 아니지만

그래도 길은 참으로 잘 나있다. 여태껏 5시간 가까이 걸었지만 일행이외는

사람구경을 못했는데 서서히 사람들 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내장산 까치봉 갈림길 (09:00)

내장산은 호남의 금강산이라고 한다. 최고봉인 신선봉을

비롯해 서래봉, 장군봉, 문필봉, 연자봉 등 크고 작은 봉우리가

자태를 뽐내고 있고 백제 무왕 37년(636년)에 영은선사가 창건한

내장사가 있어 가을이면 전국의 산꾼들이 몰려와 인산인해를 

이루는 곳이다. 이젠 내장산 주능선에 도착하니 사람들이 바글바글하다.

부산, 마산, 울산,  광주, 전주 ,대전, 서울등지 에서 온 일반 산꾼들로

발 뒤딜 틈이 없다. 까치봉까진 10분 정도의 거리다. 까치봉은 정맥길이

아니라 가지 않은 산꾼들한테 베낭을 부탁하고 스틱과 카메라만 챙겨서

까치봉으로 향하는데 편한 길만(?) 걸으면서 사람들을 접촉하지 않은

버릇땜에 상당히 스트레스가 받는다.

 까치봉(09:10)

 내장산 서쪽 중심부에 2개의 암봉으로 이루어진 내장산의

 제2봉으로서 백암산을 연결하는 주봉이다

 호남의 금강이라 불리는 내장산은 예로부터 조선 8경의 하나로 이름나

있으며, 동국여지승람에는 남원 지리산, 영암 월출산, 장흥 천관산,

부안 능가산(변산)과 함께 호남 5대 명산으로 손꼽힌다.

까치봉 삼거리 가는 길에서 바라본 까치봉 정상

가야할 연봉들.... 내장산 정상인 신선봉과 연자봉이 안개에 싸여있다.

신선봉 가는 길에서 줌으로 당겨본 까치봉

내장산  주봉인 신선봉(神仙峰.763m:09:40)

신선봉(神仙峰)은 내장산 최고봉으로 내장9봉을 조망 할 수 있다.

경관이 수려하고 금선폭포 기름바위·신선문·용굴 등이

있으며, 산정에는 신선들이 바둑을 즐겼다는 평탄한 넓은 지역인 금선대

 (金仙台)가 있는데, 전설에 의하면 신선이 하늘에서 내려와

금선대에서 바둑을 두고 있었으나 그 모습은 잘 보이지 아니하였다며

신선봉이라 일컫게 되었다고 한다.  

  

안내판에 의하면 임진왜란 때 전주에 있던 조선왕조실록과 이 태조의

영정을 이곳으로 옮겨와서 이 곳(용굴)에 숨겨두고 잘 간수한 이가

손 홍록과 안이이다. 임진란때 다른 3곳의 조선왕조실록은 모두 불타서

없어졌으나 오직 이곳에 보관된 전주사고본(全州史庫本)만이

온전했다고 한다

신성봉 정상에서 본 서래봉(西來峰, 624m)

내장산의 북쪽을 두른 암산이며 내장산의 대표적인 경관으로 암봉(岩峰)의

모양이 마치 농기구인 써래처럼 생겼다 하여 "써래봉"이라고 부르기도 하며

 달마조사가 양나라로부터 서쪽 이웃에 왔다하여 "서래(西來)라고 쓰기도 한다.

서래봉은 약1km의 바위절벽이 그대로 하나의 봉우리를 형성하고 있는데,

그 기묘한 바위절벽 아래로 단풍나무가 아름드리

둘러쳐저 있어 마치 여인이 고운 치마를 입은듯한 자태이다.

내장산의 내장9봉(內藏九峰)

내장산의 내장9봉(內藏九峰)이란, 내장사를 중심으로 사방을 삥 둘러싸고 있는

9개의 봉우리를 말한다. 그 첫째가 월영봉으로 (月迎峰, 427m) 서래봉의

 남맥이며 옛 월조암의 주봉으로 내장 9봉중 가장  낮은 봉오리로서

 추령에서 올라오는 달을 감상할 수 있다.

 

두번째가 서래봉(西來峰, 624m)으로 내장산의 북쪽을 두른 암산이며 내장산의

대표적인 경관으로 암봉(岩峰)의 모양이 마치 농기구인 써래처럼 생겼다 하여

 "써래봉"이라고 부르기도 하며 달마조사가 양나라로부터 이웃에 왔다하여

 "서래(西來)라고 쓰기도 한다. 서래봉은 약1km의 바위절벽이 그대로 하나의

봉우리를 형성하고 있는데, 그 기묘한 바위절벽 아래로 단풍나무가 아름드리

둘러쳐저 있어 마치 여인이 고운 치마를 입은듯한 자태이다.

 

세번째는 불출봉(佛出峰, 619m)으로 서래봉 줄기의 서쪽 끝에 있는 봉우리를

 이르며 원적암의 주봉으로 정상에서의 조망이 장관이라고 하여

불출운하(佛出雲河)라고도 하며 남쪽 암벽에 불출암이 입지하고 있던

 반호반굴형의 커다란 공간이 있다.  여기에서 서쪽으로 약200m 지점의

 암벽에 "내장풍악(內藏風嶽)"이라는 각자가 있는 것으로 보아 옛부터

얼마나 좋은 경관이었는지를 짐작 할 수 있다. 전설에 의하면 불출봉에

 안개나 구름이 끼면 그해 가뭄이 계속된다고 한다. 

 

넷째가 망해봉(望海峰, 679m)으로 불출봉에서 서남간에 뻗어있으며

 연지봉 사이에 솟아있는  봉우리를 말한다. 내장산 안쪽으로 먹방이골이

잘 보이며 바깥쪽으로는 용산저수지와  호남평야는 물론 맑은 날이면

정상에서 서해를 조망 할 수 있다. 

 

다섯째는 연지봉(蓮池峰, 670m)으로 불출봉에서 서남쪽으로 솟아오른

 봉우리로서 이곳에서 발원하는 내장산 계곡의 물이 서래봉을 돌아 내장호를

 이루며 동진강 줄기의 근원이이며,

 

 여섯번째 봉우리가 까치峰(717m)으로 내장산 서쪽 중심부에 2개의 암봉으로

 되어있는 내장산의 제2봉으로서 백암산을 연결하는 주봉이다.

 

일곱번째 신선봉(神仙峰, 763m)은 내장산 최고봉으로 내장9봉을 조망

할 수 있다. 경관이 수려하고 금선폭포 기름바위·신선문·용굴 등이

있으며, 계곡 산벽에 유서깊은 용굴이 있고 남쪽에는 순창군 복흥면에

 소재하고 있는 구암사로 통하여 그 넘어로 백암산에 다달아 백양사에 이른다.

 산정에는 신선들이 바둑을 즐겼다는 평탄한 넓은 지역인 금선대

 (金仙台)가 있는데, 전설에 의하면 신선이 하늘에서 내려와

금선대에서 바둑을 두고 있었으나 그 모습은 잘 보이지 아니하였다며

신선봉이라 일컫게 되었다고 한다.  

 

여덟번째는 연자봉(燕子峰, 675m)으로 산봉우리가 붓끝 같다고 하여

 일명 문필봉이라고도 하며, 이곳에 제비 명당이 있다하여 연자봉이라고

 하였다. 대웅전 앞에서 연자봉을 바라보면서 글을 쓰면 좋은 문장이

 나오며 일류 명사로써 입신출세한다는 전설이 있다. 현재는 8각정의

2층 전망대가 세워져 있고, 이곳에서 200m 위 지점에 케이블카가

 설치되어 우화정(羽化停) 지구 사이를 운행하고 있다. 케이블카를

타고 오르면 북쪽에 있는 서래봉 암봉을 한 눈에 조망할 수가 있다. 

 

아홉번째는 장군봉(將軍峰, 696m)으로 추령에서 연자봉 중간에 솟아있는

봉우리를 말한다.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당시 승병대장 희묵대사(希默大師)가

활약했다고 전해지는 험준한 봉오리로서 수목이 울창하다. 산정에는

지휘대가 있고 이것을 장군대 또는 용바위라 하며, 내장산 산행지도를 보면

 장군봉을 내장산이라 표시하여 놓았다.

연자봉 올라 가는 길의 계단

연자봉(燕子峰 해발 675m:10:05)

 풍수지리상 서래봉 아래에 위치한 벽련암을 제비의

보금자리인 연소라 부르는데, 이 봉우리와 벽련암이 서로 마주보고 있어

연자봉이라고 부르고, 대웅전 앞에서 연자봉을 바라보면서 글을 쓰면 좋

 은 문장이 나오며 일류 명사로써 입신출세 한다는 전설이 있단다.

내장산

 전라북도 정읍시 내장동, 순창군 그리고 전라남도 전남 장성군 북하면 약수리에

걸쳐 있는 산으로 남원의 지리산, 영암의 월출산, 장흥의 천관산, 부안의 변산과

더불어 호남의 5대 명산으로 손꼽힌다.  

내장산은 원래 영은산이라고 불리웠으나 많은 사람들이 몰려와도 계곡속에

 들어가면 잘 보이지 않아 마치 양의 내장속에 숨어 들어간것 같다 하여

 내장(內藏)산이라고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또한 산 안에 무궁무진한 것이

숨겨져 있다 하여 내장산이라 불리게 되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한국 8경의

하나로 500여 년 전부터 우리 나라 단풍명소로 널리 알려져 있어 단풍철이면

 국내 최대의 관광객들로 붐빈다. 백양사, 도덕암 등의 사찰과 금선계곡,

원적계곡, 도덕폭포, 용굴암지 등 수많은 관광 명소가 산 곳곳에 흩어져 있으며,

 가을이면 온통 선홍빛 단풍이 가득하여 호남의 금강"이라고 부르지만 봄에는

철쭉과 벚꽃, 여름에는 무성한 녹음과 겨울청이면 바위절벽에 어우러진 아름다운

 설경과 계절따라  야생화가 흐드러지게 만개하여 사계절 산객들이 즐겨 찾는 곳이다. 

 

내장산 국립공원은 "호남의 5대 명산"인 내장산을 비롯하여 남쪽으로 이어진

 백암산, 그리고 내장사, 백양사 등 유서 깊은 사찰과 함께 전봉준 장군이

 체포되기 전에 마지막으로 거쳐간 입암산성까지를 포괄하는데 "봄 백양,

 가을 내장"이란 말처럼 비경의 연속이다. 내장산 연봉들이 병풍처럼 둘러쳐진

 아래, 아담하게 자리잡은 내장사(內臟寺), 대웅전과 극락전 등 조선중기의

건물들이 다수 남아있는 웅장하고도 고풍스런 면모를 갖추고 있는

 백양사(白羊寺), 동지섣달 엄동설한에도 여전히 그 잎새들을 반짝거리는

천연기념물인 굴거리나무(제91호) 몇백년씩 묵은 비자나무 노목들이

 아름다운 숲을 이루고 있다.

장군봉 오름길에서

내장산 주봉인 신선봉과 연자봉 등 지나온 마루금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져 있다. 조금 내려오니 단풍이 보이기 시작한다.

장군봉(將軍峰 :10:40)

장군봉은 내장산 남쪽 끝에 위치하고 있으며, 급경사의 험준한 봉우리로

“임진왜란 때 승병장 희묵대사가 이곳에서 승병을 이끌고 왜군과 싸웠다”

하여 장군봉이라 부른다. 희묵대사는「호남절의록(湖南節義錄)」에 의하면 임진애란,

 정유재란때 영은사(내장사의 옛이름)에서 왜군을 맞아 싸워 순절한 것으로 전해온다

유군치(留軍峙:11:20)

추령에서 유군치에 이르는 길은 거의 오솔길 수준이다.
이 고개는 임진왜란 때 순창에 진을 치고 공격해 오는 왜군을 승병장 희묵대사(希默大師)가,
이곳에서 머무르며 유인하여 크게 물리친 사실이 있어 유군치라 유래되었다.

[유군재 안내판의 내용]

 

유군치(留軍峙)는 북쪽의 내장사지구로부터 순창군 복흥면을 거쳐

남쪽의 백양사지구 연결되는 길목이다.

까치봉에서 만나기 시작한 등산객들 땜에 도저히 산행 진도를 나갈 수가

없다. 신선봉, 연자봉, 장군봉 그 어디에도 오르내리는 등산객들 땜에

사람이 걸려서 걸을 수가 없다. 거기다가 서로 먼저 갈려고 우측 통행이

원칙임에도 불구하고 좌,우측 가리지 않고 먼저 갈려고 설치는 산꾼들

땜에 시간이 더 지체된다. 산에와서 가장 먼저 배워야 할 예의가

남을 먼저 배려해야 하는데 막무가내인 산꾼들은 산에 오기전에 산행

예절부터 먼저 배우시길... 거기다가 아무데나 자리를 펴놓고 음식과

술판을 벌이는 추한 꼴 때문에 눈쌀이 지푸려 진다. 자연은 우리것이

아니고 우리가 잠깐쓰고 후손에게 물려줄 자원인데 말이다.

장군봉에서 유군치를 거쳐서 추령으로 향하는 길은 마치

개미들이 떼지어 오는 편이 맞을까 아니면 6.25 전쟁 때

중공군들이 인해전술로 압록강을 넘어오는 것 같다는 표현이 맞을까

꼬리를 물고 올라오는 등산객들 땜에 내려오는 걸음이 더디기만 하다.

동료 산꾼의 일갈 이러다가 내장산이 등산객들 땜에 내려 않을까 

걱정을 한다. 빨리 벗어나고픈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겨우 유군치에 도착하니 전남 고흥 우체국에서 오셨다는 분들이

산에 오르는것을 포기하고 맛있는 음식에다 술을 마시고 있다.

이보시오 술 한잔만 얻어 먹읍시다고 하니 커다란 스텐잔에 꼬낙을

가득 채워서 한잔 준다. 처음엔 꼬낙인줄 모르고 마셨다가 어찌나 독한지...

그래도 후한 산꾼 인심덕에 편안한 걸음으로 추령으로 향한다. 

장군봉 하산길에서 바라본 내장사

원래 내장사에는 636년(백제무왕37) 영은조사(靈隱祖師)가 50여 동의

 대가람으로 창건한 영은사(靈隱寺)와 660년(백제 의자왕20년)

유해선사(幼海禪師)가 세운 내장사가 있었다. 1539(중종34) 내장산에서

승도탁란사건(僧徒濁亂事件)이 일어나자 중종은 내장사와 영은사가

 도둑의 소굴이라 하여 소각했다. 그뒤 1557년(명종12) 희묵(希默)이

영은사 자리에 법당과 요사채를 건립하고 절 이름을 내장사로 고쳤는데,

 이곳이 현재의 내장사 전신이다. 정유재란때 전소된 것을 1639년(인조17)

 부용대사(芙蓉大師)가 중수하고 불상을 도금했으며, 1779년(정조3)

영운대사(映雲大師)가 대웅전을 중수하고 요사채를 개축하였다고 한다.

유군치에서 추령 내려가는 길에서 바라본  월영봉(月迎峰, 427m)

 서래봉의 남맥이며 옛 월조암의 주봉으로 내장 9봉중 가장 

 낮은 봉오리로서 추령에서 올라오는 달을 감상할 수 있다.

유군치 하산길에서 바라본 서래봉과 그 아래 고즈늑이 자리잡고 있는 백련암

지난 3주전에 산행한 망대봉과 그 앞의 월영봉도 단풍으로

옷을 갈아입고 내장산 관광 단지도  서서히 물들기 시작한다.

마지막 관문을 통과하여 추령 주차장에 도착한다.

오늘의 산행 포인트: 사람구경 원없이 했습니다.

두번 다시 이런 산행은 절대 안하고 싶습니다.

추령 주차장에 빨알갛게 핀 단풍. - 저 남녀는 무슨 밀담을 나눌까?

추령 주차장의 각설이

장군봉 아래서부터 시작되는 고막이 찢어지고 산이 내려앉을 듯한

앰프소리에 상당히 스트레스를 받는다. 그 소리가 바로 바로 각설이

쉬끼들이 틀어대는 음악소리였다. 이곳 추령 장승촌 행사장에는 

조선팔도 각설이는 다 모인것 같다. 대충 시야에 들어오는데만

대여섯군데나 된다. 아직도 후미그룹은 올 생각도 안하는 모양이다.

노는 입에 염불한다고 이것저것 구경하다 동동주 한잔을 사서 마신다.

한잔에 1000원인데 맛이 꽤 괜찮다. 이 사람 저 사람 어울리다 보니

서너잔을 마셨다.  

시골 노인들이 이런저런 농산물들을 갖다놓고 즉석 야시장이 생겼다.

추령 장승촌 안에 있는 감나무

추령 장승촌에서 만난 익살스런 장승

장승촌에서 추령을 넘어 정읍을 넘어가야 하는데 넘어가다 차가 밀려

꼼짝도 하지 않는다. 버스기사님의 재치와 이곳 출신(정읍)들이 많은 탓에

차를 돌려서 쌍치재로 우회하여 정읍에 도착하여 이곳 출신분이 스폰서하여

사우나에서 번개샤워(목욕시간  12분)를 끝내고 정읍에서 유명하다는 생고기

집에가서 오랫만에 소고기 원없이 먹어봤다. 거기다가 소주+맥주. 30년산

양주를 5년 숙성시켰다는 귀한 술에다 참 잘먹었다. 걱정인게 이렇게 먹으면

오늘 산탄게 꽝이 아닐런지... 사실 난 정읍시내는 내 생전 처음으로 와봤다.

스폰서 하신 분 아마 복받을겁니다. 늘 健安하시길...  

정읍 산외면에서 생산된다는 한우 정말 맛있습니다.

이 지역 가시면 꼭 함 드셔보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