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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범여(梵如)의 世上사는 이야기
♣ 백두 대간및 9정맥 후기♣/호남정맥 (終)

호남정맥 제3차 - 불재에서 운암삼거리까지

by 범여(梵如) 2010. 11. 15.

 

 산행일시: 2010년 11월 14일 ( 나홀로 산행)

 산행구간; 호남고속터미널-전주-불재-활공장-봉수대-치마산삼거리-작은불재

              전망바위-염암부락재-520봉-소금바위재-362봉-2봉-518봉

               4봉(국사봉 갈림길)-오봉산-대모치-293.5봉-호화가족묘

               운암삼거리-전주중앙성당-전주고속터미널-서울

거리/시간: G.P.S 거리 17.1km / 6시간 35분 소요

 

새벽 4시에 알람소리에 잠을 깨 샤워를 하고 부지런히 베낭을 챙겨서 챙긴다.

아들방 불빛이 켜져있어 문을 여니 과제물 리포트 작성하느라 머리가

아픈 모양이다. 아버지! 산에 가시계요 하면서 걱정스런 눈빛이다.

그러면서 제가 출발지까지 모셔 드릴께요 하면서 먼저 내려가 차에 시동을 건다

그러면서 아버지 항상 건강 조심하셔요 하면서 아버지가 우리집 지주이신데...

 아들의 어른스러움에 내가 아들을 위로해야 하는데 아들이 늘 아버지 걱정이다.

참으로 내 아들이 자랑스럽기만 하다. 그리고 바르게 성장한 아들이 대견스럽기도 하고...

아파트 현관을 나서는데 휘~잉 불어오는 새벽공기는 차갑기만 하다.

벌써 산에 미쳐 이짓한 지가 어언 2년이 흘러간다.

그래도 내가 좋아서 하는 일이라 꿈에도 후회해 본 적이 없다.

아파트 입구에서 아들이 운전하는  차에 올라 호남고속버스 터미널에 도착하여

05시 40분 전주발 첫차에 몸을싣고 깊은 잠에 떨어진다.

 

잠시후에 잠이 깬다. 뒷좌석에 탑승한 친구가 술을 마셨는지 기차화통만큼이나

심하게 코를 고는 바람에 잠을 이룰 수가 없다.

2시간30분만에 전주에 도착하여 택시를 타고 불새에 도착하여 곧바로 산행을 시작...

 

원래 호남정맥 3.4구간을 먼저 타야하는데 국립공원인 내장산구간이

11월15일부터 경방기간(산불조심 방지기간)이라 부득히 입산통제를

하는  바람에 5,6구간 먼저 끝내고 3구간을 시작한다.

셋째주에 가는 호남정맥 가는 날인데 초등학교 동창회를 20,21일

양일간에 포항에서 하는 바람에 꼭 빠질 수 없어 미리 혼자서 출발한다.

전주에 도착하여 곧 바로 택시를 타고 불재로 향하는데 택시기사가

미터기를 꺽지않고 간다. 왜그러냐고 하니 시외라 그런다고 한다.

68세 되는분인데 불재를 잘 모른다. 네비를 찍으니 16.5km 나온다.

아저씨 우리 불재에서 전주 택시타고 16.000원 왔는데 무슨 소리냐고

넘겨 짚으니 그때사 그렇게 하겠다고 한다. 오히려 나한테 당했다.ㅋㅋㅋ 

 

40여일만에 도착한 불재는 을씨년스럽기만 하다. 좌측의 경각산과 저 건너

모악산은 안개가 자욱하여 정상은 보이지도 않아 산꾼의 애간장을 다녹인다.

금방이라도 눈비라도 올것처럼 잔뜩 찌푸린 날씨가 을씨년스럽기만 하다.

더군더나 단독산행이라 기상이변이 생기면 철수해야 하기에 노심초사하면서

산행을 시작한다. 입구에 참숯공장이 맥길을 막고 사유지라 돌아서 가라고 한다.

10분에 도착한 활공장에서 저 건너 태봉과 모악산을 바라보며 치마산으로

향한다. 산에 낙엽이 다 떨어져 미끄러워 속력을 낼 수가 없다.

1시간 10분만에 치마산 삼거리에 도착 셀카로 인증샷을 하고 벌목으로

온 산이 아수라장이 된 치마산을 지나 전망대바위에 도착하니 염암부락

내려가는 길이 강원도의 길처럼 구비구비 돌아간다. 약간의 허기가 오기에

간식으로 원기를 보충하고 염암재에서 520봉 치고 오르는 길은 얼마나

경사가 심하고 낙엽으로 미끄러운지 정말 힘이 들었다.

다시 내림길도 장난이 아니다. 다시 벌목지대를 지나 2봉에 오르니 처음으로

사람구경을 한다. 2봉에서 오봉산까지는 등산객이 꽤나많다. 

오봉산 정상에서 옥정호를 감상하며 대모치고개를 지나 다시 혼자

운암삼거리에서 산행을 마치고 전주에서 서울로 귀경하다. 

 

 

 

며칠전 대전지법 김 진선 판사가  20대 여자 절도 피의자에게

선고를 하면서 인용한 싯귀가 너무 가슴에 닿아 옮겨본다.

이 시대에 이런 법조인도 있구나 싶은 생각에...



풀잎에도 상처가 있다

꽃잎에도 상처가 있다

너와 함께 걸었던 들길을 걸으면

들길에 앉아 저녁놀을 바라보면

상처 많은 풀잎들이 손을 흔든다

상처 많은 꽃잎들이

가장 향기롭다  

 

정호승의 시인의 "풀잎에도 상처가 있다" 에서

 

오늘 산행구간의 지도와 고도표

서울 호남 고속터미널(04:50)

새벽에 아들이 터미널까지 차로 태워주는 바람에 참으로 편안하게 왔다.

서울에서 전주가는 버스티켓

버스에 타자마자 잠에 떨어진다. 그것도 잠시... 뒷좌석에 탄 친구가 기차

화차통만큼이나 코를 골아되는 통에 잠에서 깨어 뒤척이다가 2시간 30분만에

전주에 도착하여 택시를 타고 불재로 향한다. 휘뿌연 하늘이 금방이라도 뭐가

쏟아질 것만 같아 걱정이다. 일기예보 믿고 우의도 빼놓고 왔는데 말이다.

거기다가 택시기사가 서울손님이라 우습게(?)보고 장난치려는지 미터기도

꺽지않고 간다. 그러다가 나한테 호되게 당하고 머쓱하게 내가 주는 돈만 받고

간다. 그러고 나니 미안한 생각이 든다. 그래도 그러면 안되지...

불재에서 유명한 도자기 체험장과 찻집

불재(310m :08:30)

전라북도 완주군 구이면과 임실군 신덕면 경계지점이다.

불재에 도착하여 가볍게 몸을 풀고 주차장 우측 철탑옆을 끼고

마루금으로 진입하려고 하는데 이곳이 사유지라고 하면서 주인이란

자가 나와서 출입을 통제한다. 거기다가 개쉬끼 2마리가 혼자가는 산꾼을 위협한다.

하는 수없어 좌측으로 돌아서 산행 들머리에 진입한다.

 이곳은 이제 완연한 가을을 넘어 겨울을 준비한다.

지난구간의 경각산 -  안개가 잔뜩끼여 신비로움을 더하나 조망은 꽝이다

구이저수지와 마을 뒷편에 조그만 능선이 태봉이다.

페러그라이딩 활공장에 오르자 구이저수지 건너 조그만한 능선인

태봉이 시야에 들어온다. 조선조 8대 임금인 예종의 태실(胎室)이

 있는 곳으로 모악산과 경각산에 자리잡은 천하명당이라고 소문난 곳이다.

이곳 완주군 구이면은  태봉의 정기를 받은 구암마을과 사연이 깊다.

그 옛날 태실앞에서 거북이가 알을 낳다가 떨어졌는데 그것이 바위가

되었고 그 아래 마을이 귀동(龜洞)골, 귀암(龜巖)마을로 불렸다고 한다.

일제시대에 을사조약이 체결된 이후 일제에 의해 부르기 쉽게 구암(龜岩)

으로 변경되었고 귀동골은 구이(九耳)로 변경되어 현재까지 불려진다고

한다. 국민학교를 초등학교로 부르듯이 이곳 지명도 본래대로 변경되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뭐가 그리도 수줍은지 안개가 잔뜩끼여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전주의 진산 모악산

활공장에서 바라본 구암(龜岩)마을

페러그라이드 활공장(08:40)

난 처음에 산꼭대기에 웬(?) 활공장이 있나하고 의구심이 있었는데

쏘는 활이 아닌 페러그라이드 활공장이네

 저위의 치마산이 빨리오라고 손짓을하네

겨울준비를 다 마친 망개열매

봉수대터(09:30)

치마산 삼거리 가기직전에 있는 봉수대터는 관리가 전혀

안되어 있고 벌목된 나무들이 아무렇게나 버려져 있다.

치마산(馳馬山·568m)에서 셀카로 인증샷

 전북 완주군 구이면과 임실군 신덕면 경계를 이루는 호남정맥 상에 자리한 산이다.

정맥 마루금에서 살짝 벗어나 있다.

이 산은 산세가 말이 달려나가는 형상이라 하여 달릴 치(馳) 자와 말 마(馬) 자를 붙여

이름을 지었다고 한다. 전주시에서 임실 방면 27번 국도로 타고가다 보면 구이저수지

끝머리에 망산(望山) 마을에 이르러 동쪽으로 올려다보이는 산이 치마산이다.

망산 마을이름은 마을 뒷산(치마산 북릉)이 옥토망월형(玉兎望月型)이라 하여 생긴

 이름이라는 설과, 모악산을 마주보는 형국이라 지어진 것이라는 설이 전해진다.

이 마을은 실와우(失臥牛)와 돔바우(斗岩) 2개 마을로 이뤄져 있다.

 

치마산은 겉으로 보기에는 펑퍼짐한 육산 정도로 보인다.

 평범하게 보이는 이 산속에 진안 마이산 석탑을 보는 듯한 석탑군이 형성돼 있는

 용광사(龍光寺)를 비롯해서 장군바위, 장군굴, 마애불상 등 볼거리가 적지 않아 앞으로

 근교산행 대상코스로 자리매김할 수 있는 내용이 알찬 산이다.

607봉 정상의 이정표

불재에서 2봉까지 4시간 10분동안 개미새끼 한마리 구경하지 못하고

혼자서 산행을 한다. 오직 들리는 것이라곤 발아래 부스럭거리는 낙엽소리뿐...

정말 호젓하고 외롭게 걷는다. 내가 왜 이렇게 길을 걷는지 그 이유를 알지 못한체?

작은 불재를 지나니 저 아래 임실군 신덕면 겨울걷이를 농촌풍경이

한가롭기만 하다. 인공조림을 한듯한 측백나무가 숲을 지난다.

작은불재(10:20)

작은 능선에서 완만히 오르면  좌내림으로  참나무 간벌이 시원한 길이 열리며

완주군 구이면  항가리(亢佳里) 동성마을과 완주군 신덕면 삼길리 외량마을과

이어지는 희미한 소롯길이 있는 펑퍼짐한 지점에 이르게 되는데 있어도 될 법한

지명이 지형도에 없어 "불새목이"라 부르기로 한다.  

오늘 산행구간은 좌측은 임실군 신덕과 운암면, 그리고 완주군 구이면을

경계로 삼아 능선길을 걷는다. 이곳 남도의 인심만큼이나 길은 후하고

여유로우나 그래도 산은 산인지라 고도편차가 심해 그리 만만하게 볼

산은 아니다. 오늘의 가장 장애물은 능선길에 발이 푹 빠질정도로 쌓인

낙엽과 미끄러운 마사토이다. 얼마나 미끄러운지 도대체 산행 속도를 낼 수가없다

전망대 바위(10:50)

이곳에서 저 건너 520봉이 숨이 막힐정도로 앞을 가로 막는다.

염암재까지 뚝 떨어졌다가 다시 오르려니 버거워보인다.

저 능선을 넘기위해 이곳 전망대바위에서 염염재를 감상하며

원기보충을 위해 빵 한조각에 커피한잔을 하면서 10분간

휴식을 취한다.

전망대 바위에서 바라본 염암부락재

그리 높아 보이지 않는 고개인데도 불구하고 강원도 고갯길처럼

구불구불하게 한 것이 운치는 있어 보이나 경제적인 면에서는

별로 이득이 돼 보이지는 않을듯 싶다. 전주가 가까워서 그런지

교통량은 꽤나 많다.

염암재 꼬부랑길과 520봉의 모습

염암재(11:10)
완주군 구이면과 임실군 신덕면을 연결하는 49번 지방도가 지나가는 고개 마루이다.

이 부근에 소금바위가 있어서 불리는 이 고개는 이 바위의 겉표면이 멀리서 보면

마치 소금을 널어놓은 것처럼 보인다고 해서 염암(鹽岩)재라고 한다.  

전망대바위에서 염암재를 거쳐 520봉 가는 길

 520봉 오르는 길에서 바라본 모악산(母岳山794m.). 

 

어머니가 어린 아이를 안고 있는 모양의바위가  있어서 모악(母岳)이라고 했다.

1971년 12월 이 산과 주변지역 일대를 포함한 총면적 42.22㎢가 도립공원으로 지정 되었다.

서쪽 기슭에 금산사가 있으며, 모악산(793m) 자락은 미륵부처의 미소만큼이나 온유하다.

 

동쪽 전주와 서쪽의 김제사이에 가부좌를 틀고 있는 모악산은 김제 넘어 서해바다를 바라보는

눈길이 그윽하다.  모악산 발밑에 있는 김제평야와 만경평야 만경강(80.86km)

동진강(44.7km)이 바로 그 젓줄이다. 두 강물은 갈지(之)자로 느릿느릿 호남평야를

 골고루 적시며 서해바다로 빠진다. 호남평야는 동서 50km, 남북 80km의 타원형이다.

붉게 물든 저녁녘, 들판은 강물과 두런거리며 어둠을 맞는다.

김제, 만경들판은 그렇게 수천만년동안 모악산의 품에서 자랐다.

평평한 호남평야 들머리에 갑자기 우뚝 솟은 산이다

 

520봉에서 소금바위재 가는 길에 만난 묘지의 비석은 후손들이

조상 공경하는 이유는 충분히 알겠다마는 격식은 아닌것 같다.

원래 벼슬을 하지않는 조상들은 상석을 할 수 있으나 비석도

치마(지붕)를 하지 않는게 원칙인데...

520봉에서 소금바위재 내려오는 길은 급경사에다 낙엽으로 얼마나

미끄러운지... 이 지역 자치단체의 배려로 로프를 매어놓긴 했지만

별로 효과는 없다. 아예 스틱을 접고 베낭을 땅에 붙이고 엉덩이를

의지해서 산을 내려온다. 약간의 겁도 난다. 이런곳에 아무도 없는

곳에서 사고가 나면 구원의 손길도 없이 황천길 갈것만 같은 느낌에...

364.7봉 삼각점

2봉 올라가는 길

소금바위재에서 2봉 올라가는 우측으로는 시원하게 벌목을 해놓아

시야가 확보된다. 저 위의 봉우리에서 사람소리가 왁자지껄하게 들린다.

4시간을 넘게 낙엽소린 이외는 아무것도 듣지 못했으니 그 심정 이해가 되리라.

서둘러 2봉을 오르는데 이 오름길도 꽤 만만찮다.

호남정맥 마루금이 아닌 구이면 대덕면에서 올라오는 산꾼들은 꽤나 많다. 

오봉산 2봉(12:40)

큰 형님은 1봉은 일욜이라 외출을 했는지 아무리 찾아봐도 보이지 않고

불쑥 나타난 2봉 이곳은 등산객이 상당히 많다. 그러나 정맥길은 오늘

유일하게 나 혼자이다. 이 고독함. 그러나 운명인 걸.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고 했거늘.

2봉에서 만난 전주에서 온 산꾼들

힘들게 2봉에 오르니 전주에 온 산꾼들이 코펠에다 라면을

끓여 맛있게 먹는다. 그 친구들 하는 말... 아무도 다니지 않는 곳을

심심하게 왜 다닌당가... 그러면서 시장할텐데 식사를 하고 가란다.

이게 왠 떡이여. 체면은 전당포에 맡기고 퍼질러 않는다.

라면에다 햇반을 말아서 코펠에 가득 담아서 김치까지 내준다.

거기다가 복분자 술까지... 단독산행이라 무게 줄일려고 점심을

빵과 커피, 과일밖에 없었는데 이런 횡재를 하다니...

미안해서 서울 막걸리를 한병 주었더니 귀한걸 준다고 오히려 고마워 한다.

전주분들 어젠 고마웠고요. 아마 복받으실겁니다.

줌으로 당겨서 본 소금바위

오봉산 3봉

4봉(국사봉 갈림길:13:00)

공터를 지나 오르면 우측으로 갈림길이 나있다. 이 갈림길에서 우회하면 4봉인

국사봉갈림길을 지나지 않고 오봉산으로 가는 길이다.

직진하여 약간 경사진 오르막을 오르면 참나무가 우거지고 조망이 없는 4봉에 이르게 된다.

국사봉은 좌측으로 꺾어지고 오봉산은 우측으로 내려서야 한다.   

오봉산 4봉(13:00)

4봉에서 내려다보는 옥정호는 정말 환상 그 자체이다.

가슴이 탁 트이는 기분이다. 좌측으로 1km정도 가면 국사봉인데

갈길이 먼 산꾼은 아쉬움만 남긴 체 길을 떠난다.

옥정호 유래

 옥정호가 여러 이름을 가지고 있는데, 근래에는 옥정 이라는 이름으로 통일이 되었는지

운암호 붕어섬이라는 말은 없고 한결같이 옥정호 붕어섬 이라고들 한다. 옥정 이라는 이름의 유래는

섬진강댐 근처 강진면에 옥정리(玉井里)가 있는데 조선 중기에 한 스님이 이곳을 지나다가

 '머지않아 맑은 호수, 즉 옥정이 될 것' 이라고 예언하여 옥정리가 되었고, 이에

따라 옥정호가 생겨났다고 한다. 어찌 되었건 옥정호가 가지고 있는 다른 이름들 중에서

옥정 만큼 정감이 드는 예쁜 이름은 없는듯 하다.

오봉산 정상에서 바라본 우측의 국사봉과 좌측의 오봉산 4봉의 모습

오봉산(513.2m :13:30)

 전라북도 완주군의 구이면과 임실군의 신덕면, 운암면의 경계능선 따라 남진하는

이번 산행의 최고봉은 오봉산(513.2m)이다.

동남쪽으로 임실군의 옥정호가 눈아래 펼쳐지는 오봉산은 실제 봉우리는 다섯개가 넘고

임실쪽으로 내려 앉은 국사봉(475m)은 별개로 친다.  
서쪽의 완주군 백여리를 타원형으로 둘러싼 산세는 비교적 포근하지만 주능선에

오르면 천애절벽과 기암괴석이 많아 아찔한 느낌을 주기도 한다.  

 

정상에 올라서면 전주시가지를 에워 싼 모악산이 조망되고 경각산이 지척인데,

 멀리로는 고덕산, 운장산, 마이산까지도 바라볼 수 있는가 하면,

남쪽의 묵방산으로 향한 줄기찬 호남정맥이 아스라하다.

산행길 후반부 내내 조망되는 옥정호는 1926년 1차로 준공된 댐을 3공화국 시절에

 1차 경제개발 5개년사업으로 운암면 일대를 흐르는 섬진강 상류를 막아

 1965년에 완공시킨, 저수량 4억 3천만톤의 다목적 댐이다.

 오봉산 이름을 가진 산은 전국 곳곳에 많이 있다. 대표적인 것이 춘천 소양호에 있는

산이고 강릉, 영남 알프스, 경기도 양주에도 있으며 진주에도 있으니 우리 조상들이

봉우리 몇 개만 보이면 오봉산이라 부르지 않았나 생각된다.  

죽어서도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는 소나무

옥정호(운암저수지, 갈담저수지)는 전북 임실군 강진면과 정읍시 산내면에 걸쳐 있는

전북에서 가장 큰 저수지이다.노령산맥 줄기 사이 임실군 운암면 일대를 흘러가는

섬진강 상류를 옥정리에서 댐을 막아 반대쪽인 서쪽 정읍시 칠보로 넘겨

계화도와 호남평야를 적셔주는 한편 물을 배수하면서 그 낙차를 이용하여 발전하는

다목적댐이다. 운암발전소와 칠보발전소를 이루는 다목적댐이면서 낚시터이기도 하다. 

유역면적 763평방미터로 총 저수량 4억3천톤으로 운암면 옥정리에 땜을막아

서쪽 정읍시 칠보로 넘겨 계화도와 호남평야의 젓줄이다  

오늘따라 찔레꽃 열매마져도 아름답게만 보인다.

대모치(749번 지방도: 14:00)

 대모치고개는 완주군 구이면 백여리  대모마을과 이어진 임도와 연결되어있다.

749번 지방도는 정읍시 산외면 종산리 515지방도에서 분기하여 초당골을 지나

임실군 운암면의 옥정호 변을 달려 신덕면 삼길리에서 55번49번 국지도를 이어주고

북으로 신덕면을 질러가다가 불재에서 구이면을 이어주는 도로이며, 초당골에서

국사봉전망대까지 5.8km에 이르는 이른바 "옥정호반드라이브코스"로 유명하다.

 

벧엗이 무슨 뜻인지 궁금해서 대학원 시절 비교종교학 강의 때 메모한 노트를

뒤척이다가 발견한 노트에(인터넷에서 발췌)한 것을 옮겨봤다.

성서에서는 벧엘이라고 함.

예루살렘 바로 북쪽에 있는 팔레스타인의 고대 도시.
처음에는 루즈라고 했고 오늘날에는 바이틴이라고 부른다.

베텔은 구약시대의 중요한 마을로서 성서에서 아브라함·야곱과 연관되어 자주 언급된다.

미국 동양학연구소와 피츠버그제니아 신학교의 연구 팀이 발굴작업을 한 결과,

이스라엘 사람들이 가나안을 정복했을 때 아이(Ai)에서 일어났다고 기록된

〈구약성서〉의 사건들이 실제로 일어난 곳이 베텔일 가능성이 있음이 밝혀졌다.

이스라엘이 남북으로 나누어진 이후(BC 10세기) 여로보암 1세가 북왕국(이스라엘)

제1의 성지로 삼았으며 후에는 선지자 아모스가 이곳을 중심으로 예언자로서

사명을 수행했다. 사마리아가 몰락했을 당시(BC 721) 아시리아 사람들에 의한

파괴는 면했지만 유다 왕국의 요시아 왕(BC 640경~609경 재위)에게

점령당하고 말았다. 

 

요즘 우리나라에도 종교전쟁이 일어날까 걱정이다. 개신교들의 공격적인

선교방법 때문에 다른종교 특히 불교와의 갈등이 심각하다.

Y.S시절에도 갈등이 심각했는데 M.B 정권이 들어선 이후에는 더욱 더 

심각하다. 분명히 정.교 분리가 되어있고 다원화된 종교사회에서 평화가

깨질까 두렵다. 하긴 기독교의 역사가 전쟁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듯... 제발이지 남을 인정하는 자세를 가졌으면 한다.

 

내 종교가 소중하면 남의 종교가 소중하듯 남을 배려하는게 종교의 기본이 아닐까.

그리고 대통령, 국무총리 등이 개신교 신자라 할지라도 대한민국 대통령, 국무총리지

개신교의 대통령, 국무총리는 아닐진대 제발 편향적인 생각을 갖고 정책을 

하지 말았으면 한다. 대한민국 인구의 15%도 안되는 개신교도들이 국가를

좌지우지 하지 말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건 분명 예수님의 가르침이 아닐진대... 

대모치를 지나 운암삼거리 가는 산길은 호젓하다못해 적막하기만

하다. 잘 나타나 있지 산행길에 건설부가 설치한 삼각점만이 이 곳이

맥길임을 알려주는 것 같다. 아마 이곳도 둘레길을 만들 모양인데

지리산이나 북한산 둘레길처럼 민초들에게 민폐를 끼치거나 환경

훼손이 안되는 쪽에서 지차제장의 홍보사업이 아닌 방향으로 진행되었으면... 

293.5봉 삼각점

 水原白氏의 墓
통덕랑이 무슨 계급인가 해서 인터넷에 검색을 해보았다.

조선 시대에 , 정오품 상() 문관의 품계. 고종 2년(1865)부터 종친의 품계로도 썼다

한다 그 당신 꽤 높은 벼슬인가보다

묘지에서 내려오니 서서히 오늘의 하산점인 운암 삼거리가 보이기

시작한다. 사실 오늘 운암 삼거리를 14:00 이내에 들어오면 가는정이

까지 갈려고 했는데 아무래도 무리일것 같아 여기서 산행을 마쳐야 할 것 같다.

완주에서 임실로 연결하는 운암대교 건설현장

참으로 곱게 겨울준비를 하는 낙엽

 

운암 삼거리 내리기 직전에 효화묘소가 참으로 많다.

이곳은 대세에 역행하는 느낌이다. 전주이씨와...

수원백씨의 묘소들이 있는데 특히 전주이씨들의 묘소는 너무나 화려해 눈에 상당히 많이 거슬린다.

운암삼거리(초당골 :15:05)

완주군 구이면과 임실군 운암면으로 가는 27번 국도와 옥정호로 연결되는

749번 지방도가 만나는 운암삼거리에서 오늘의 산행을 마무리 한다. 

도로를 건너「어부집」옆으로 올라가는 다음구간의 들머리를 확인한다..

호남정맥길에 산꾼들의 영원한 이정표가 되는 운암삼거리에 있는 어부집

이곳에서 전주시내가는 버스는 참으로 많다. 그런데 이상한 건

버스 정류장이 있는곳은 임실군 운암면이고 20m만 지나면 완주군

구이면이다. 근데 버스요금 체계가 임실지역에서 타면 2500원이고

300m 걸어서 완주지역에서 타면 1000원이란다. 참으로 웃긴다.

왜 그런고하니 버스가 전주, 완주지역 버스라서 그런다고 한다.

졸지에 1500원 사기당한 기분이라 좀 그렇다.

전주시외버스 터미널에 도착하니 16:20분이다. 버스표가 없어서 17:20분

버스로 예매하고 대합실에서 산에서 남은 과일과 빵, 커피로 식사를 대신하고

버스를 탔다. 한참을 자고 나서 일어나보니 논산근방이다. 차가 얼마나 밀리는지...

천안-논산간 고속도로는 주차장이다. 거기다가 천안근방에 오니 전용차선도

해제되어 버리고 5시간 반이 지난 밤 10시 50분에야 서울에 도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