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산행일자 : 2011, 02, 02
○ 산행날씨 : 아침에 울대고개 영하8도이나 바람이 전혀없고
낮에는 날씨가 너무 더워 산행하기는 좋았고 운무로 인해
전망은 별로이나 암릉산행에다 잔설로 인해 단독산행으로는
상당히 무리였음
○ 참석인원 : 나 홀로
○ 산행거리 : G.P.S거리: 14,6km) / 7시간 20분 소요
○ 산행코스 : 울대고개-328봉-사패산 갈림길(범골능선)-사패산-민초샘-사패능선-649봉
산불감시초소-포대능선-Y계곡-신선대-여성봉 갈림길-도봉주능선
오봉 갈림길-헬기장-우이암 전망데크-우이암-폐쇄능선-우이령-상장능선
4봉-3봉-2봉-전망바위-솔고개
○ 소 재 지 : 경기도 양주시 장흥면,의정부시 호원동,고양시 교현동 / 서울 도봉구 도봉동
강북구 우이동
올 정초(1월2일)에 울대고개에서 솔고개까지 마감을 하려 했는데 국공파한테 딱 걸려서
다음구간을 먼저 한 것이 두고두고 맘에 걸려서 국공파들이 출근하기 전에 단속지점을
통과하려고 새벽 4시에 차를 가지고 출발을 하였다. 경부고속도로-강변북로-내부순환도로를
거쳐 불광동을 지나 은평 경찰서 앞 해장국집에서 아침을 해결하고 진관사를 지나는데
갑자기 헷갈린다. 걸어다니는 네비게이션이 말이다. 이곳은 북한산과 이곳에 지인 스님들이
많이 계셔서 스님들이 계시는 사찰이 많아서 말이다. 근데 최근에 이 길을 자주 다니지 못했다.
은평 뉴타운이란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는 바람에 한마디로 상정벽해(桑田碧海)된 느낌이다.
북한산 입구를 지나고 교현리를 지나니 송추 검문소가 나온다. 다시 우회전하니 원각사를
지나 울대고개에 도착하여 민가옆 공터에 차를 세워놓고 산행을 시작한다.
오늘 산행구간의 지도
해장국집(05:00~05:30)
은평 경찰서 가기전에 해장국집이 있어 아침식사를 하려고 들어간다.
아침시간은 아니지만 베낭 무게를 줄이기도 하지만 추운날씨에 산에서 아침을
먹는게 싫어서다. 거기다가 단독산행이다보니 더더욱 그렇다. 신체리듬상 아침 먹을
시간은 아니지만 그래도 억지로 한그릇을 다 먹는다. 겨울산은 유난히 기본장비가 많다보니
먹는걸 최대로 줄이는게 상책이다. 식당에는 나말고 서너 테이블에 술에 취한 사람들이
식사를 하고 있다. 하나같이 담배를 피우고 있다. 평생 담배를 피워보지 못한 범여로서는
고역이다. 그리고 나온 해장국도 성의가 없고 맛이 영 엉망이다.
울대리 버스 정류소(06:00)
의정부시 가능동과 양주시 장흥면을 잇는 39번 국도가 지나는 울대고개는 아직도
새벽이다. 건너편의 소망 주유소의 불빛만이 환하다. 근처 공처에 愛馬를 세워두고
국공파들이 출근하기 전에 서둘러 산행을 준비한다.
입구부터 로프를 쳐놓고 산꾼들을 통제한다. 그렇다고 안가는 것도 아닌데
이렇게 정맥길을 막아놓으면 어케 합니까. 대안을 함 모색해 보시죠.
축구 경기에 골키퍼 있다고 골이 안 들어 갑디까?. 정맥꾼들은 다 통과합니다
입장료를 받고 인원수를 제한하는 방법은 어때요. 몇년전에 복지 포플리즘에
빠져 정치인들 표 계산 때문에 국립공원 입장료 폐지하는 바람에 도봉산, 북한산이
얼마나 망가졌습니까?. 입장료를 폐지할게 아니라 입장료를 받고 인원수를 제한하는게
맞다고 생각하는데 국립공원 관리공단 이사장님의 생각은 어때요.
산에서 만나는 곰 2마리는 정말 싫다. 뭣이든지 하지마라 하면 벌금 매긴다.
처벌한다... 매사에 부정적이니 말이다.
36번 송전탑(06:10)
331봉(06:20)
첫봉에 오르니 '화생방경보신호' 안내판과 군부대 인근에서
보던 낯설지 않은 탄피종이 걸려있는데 이 종은 훈련용으로
화생방 경보시에는 3분동안 마구 친다고 한다.
군사보호시설 표시석
선답자의 산행기에 보면 이 표시석이 나오면 곧 범골능선이 나타나고
긴장의 끈을 내려 놓어도 된다고 하였는데 아직도 국공파의 대한 긴장의
끈을 놓을수가 없다
범골능선 갈림길(06:45)
울대고개를 출발한 지 45분만에 단속지점을 통과했다. 오늘구간에 앞으로 2번이나
더 단속구간을 통과해야만 한다. 맘을 졸이면 가야하니 말이다. 사패산 0.3km라는
이정표가 나타난다. 오르막길에는 로프를 설치해 놓았는데 바위에는 눈이 얼음으로
변하여 상당히 미끄럽다. 아직은 주위가 상당히 어둡기만 하다. 헤드렌턴에 의지하여
사패산 정상으로 오른다(사패산은 정맥길에서 살짝 벗어나 있다)
사패산 가는 길
사패산 정상 무인 카메라(07:00)
남북으로 길게 뻗은 북한산국립공원 북쪽 끝
경기 양주시 장흥면 울대리 송추와 의정부시에 맞닿아 있는
사패산은 백두대간 강원도와 함경남도의 도계를 이루는
추가령에서 갈래를 쳐 장명산으로 향하는 한북정맥이 지난다.
북한산국립공원 구역 안에서도 많은 등산객으로 몸살을
앓고 있는 도봉산, 북한산과는 달리 울창한 숲과 맑은
계곡 등 가장 깨끗한 속살을 간직하고 있다.
동쪽으로는 수락산, 서남쪽으로 도봉산을 끼고 안골계곡과 회룡골 계곡을 품은 수려한 자연 경관이
숲과 어우러진 사패산은 조선시대 선조의 여섯째 딸인 정휘옹주가 유정량에게 시집올 때 선조가 하사한
산이라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그러나 양주 시지에 의하면 울대 고개 쪽에서 바라보면 암봉의 모양이 조개 같다고 하여
사패산이라 부른것을 군부대에서 그대로 사용했다고 한다.
사패산은 552m의 산으로 북한산 국립공원 북쪽끝에 있으며
동으로 수락산 서남쪽으로 도봉산 사이에 있다
사패산 정상 안내판
아직도 어둠은 가시지 않아 저 아래 송추와 의정부에는 불빛만이 시가지임을 알려준다.
주위 조망도 잘 보이지 않지만 서서히 여명이 밝아오기 시작한다. 정상에 오르니 40대
초반으로 보이는 여성 2명이 앉아있다. 송추쪽으로 올라왔다고 하면서 이것저것 기록하는
범여를 보고 따뜻한 인삼차 한잔을 권하면서 추위를 녹이라고 한다.
오늘은 별로 춥지 않다고 하니 그래도 마셔 보라고 한다. 산을 많이 타냐고 하기에
산은 그리 많이 타지 않는다고 하니 에~~이 베낭을 보니
전문가 수준이네 하면서 자꾸만 말을 걸어온다. 죄송함다 갈길이 멀어서 먼저 갑니다 하고
서둘러 사패산을 내려온다
다락능선 저 너머로 서서히 해가 뜨려는지 붉은 빛이 보이기 시작한다
범골 안부에서는 그래도 해가 뜨기 직전이라서 그런지 몰라도 차가운 바람이 산꾼을 괴롭힌다.
날이 밝아지면서 서서히 속살을 내보이고 있는 회룡능선의 모습
능선길에 있어 온갖 괴로움을 당하면서도 살려고 애를 쓰는 소나무가
참으로 안타깝기만 하다. 산다는게 참으로 苦인 모양이다.
어쩌면 인간사와 똑같을까?
범골능선에는 햇살이 비치기 시작하니 밝은 모습으로 보인다.
사패산의 안내도
410계단 오름길에서 바라본 사패산(賜牌山:552m) 과 갓바위
서울 도심에서 가장 가까운 북한산 국립공원은 전국 국립공원 중 탐방객 수 1∼2위를 다투는 명산.
구석구석 사람들의 발길이 미치지 않은 곳이 거의 없다.
그러나 `북한산에 관한한 귀신'을 자처하는 산꾼들조차 잘 모르는, `숨겨진 1인치'가 있었다.
이름도 생소한 사패산(552m). 남북으로 길게 뻗은 북한산 국립공원 북쪽 끝, 경기도 양주군 장흥면 울대리
송추와 의정부시에 맞닿아 있는 사패산은 북한산 국립공원 구역 안에서 가장 깨끗한 속살을 갖고 있다.
울창한 숲은 원시림에 가깝고 설악산 천불동계곡을 연상시키는 너럭바위 골짜기마다 맑은 물이 흐른다.
게다가 이 물속에는 북한산 다른 지역에서는 10여년전 자취를 감췄던 가재는 물론 날도래, 강도래 등
1급수에서만 보이는 수서곤충들이 풍부하게 살고 있다.
특히 물가의 큰 바위를 뒤덮은 두터운 이끼는 이곳이 얼마나 깨끗한가를 증명해주고 있다.
도심 방향의 북한산 바위들은 공해 때문에 이끼가 사라진지 오래이기 때문이다.
도봉산 포대능선과 연결돼있는 사패산이 지금까지 자연미를 지킬 수 있었던 것은 얼마전까지
군사보호구역으로 묶여 일반인 출입이 자유롭지 못했던 덕분이다.
더구나 부근 북한산과 도봉산의 명성이 워낙 대단해 등산객들은 사패산에 눈을 돌릴 이유가
없었던 것도 한 요인이 아닌가 싶다
사패능선 오르기 전에 반드시 통과의례(?)를 치러야 하는 마의 410계단
나무위의 까치집
북한산에는 유난히 까치와 까미귀가 많아 보인다.
운무(雲霧)에 가려져 있는 다락능선
포대능선이 시작되는 649봉 정상에서(07:40)
사패산에서 혼자 여유로운 걸음으로 도착한 649봉. 오늘은 명절 전날이라 그런지 늘상
남대문 시장처럼 번잡함은 찾아 볼 수가 없어서 너무나 좋다. 등산객들이 힘들어 하는
410계단도 여유롭게 오른다. 사패산에서 이곳까지 오면서 만난 등산객들은 모두 3명이다.
정상에 오르니 40대 초반으로 보이는 등산객 한명이 반갑게 인사를 하면서 보온병에서
커피를 한잔 따라준다. 고맙다고 인사를 하니 이것저것 물어본다. 한북정맥을 타는 중이라고
하니 그게 뭐냐고 묻는다. 자세히 설명하니 자기도 타고 싶은데 와이프하고 같이 산행을
한다고 한다. 정맥길 맛들이면 일반산행은 재미없을 터인데...그래 家和萬事成이 우선이지.
다락능선 위에 있는 산불감시초소
참으로 많이 와 본 곳이다. 이곳에 서면 전망이 참으로 좋은데 오늘은 운무 때문에
손에 잡힐듯 보이는 수락산도 잘 안보인다. 저 아래 의정부 시내와 서울외곽고속도로의
차량 소리만 시끄럽게만 들린다.
망월사 내려가는 안부 갈림길 이정표
망월사 갈림길에 닿고 갈림길에는 포대능선 해설판[도봉산의 주봉인 자운봉(해발 739.5m)에서
북쪽으로 뻗은 이 능선은 능선 중간에 대공포진지인 포대(砲隊)가 있었다고 해서 불려진 이름이다.
이 능선의 길이는 약 1.4km이며 북쪽 사패산 방향으로 원도봉계곡, 회룡계곡, 안골계곡,
송추계곡, 원각사계곡으로의 산행이 가능하며 남쪽 도봉산 방향으로 도봉계곡 오봉능선으로
산행이 가능하며 우이암을 경유하여 우이동계곡 등으로 산행할 수 있는 북한산 국림공원
도봉지구의 주요 탐방로중 하나이다. 이정표<사패산 2.2km / 망월사 0.5km / 자운봉 1.4km>가 있다.
포대능선(07:40)
649봉부터 자운봉에 이르는1.4km의 능선을 포대능선이라 부르는 이름의 유래인즉 이전에 이 능선 중간에 대공포진지인
포대(砲隊)가 있었다하여 붙혀진 이름이라니.. 전방으로 펼쳐지는 빼어난 자태의 암봉들과는 정말 어울리지 않는 이름같다.
북쪽으로 사패산 발향으로 원도봉계곡,회룡계곡,안골계곡,송추계곡, 원각사계곡으로 산행이 가능하며 우이암을
경유하여 우이동계곡으로 산행가능하다.
서서히 도봉산 정상이 시야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도봉산(道峰山, 740m)은 예로부터 북한산에 속한 산이다. '대동여지도'에서는 도봉산의
주봉은 도봉이라고만 표기되어 있다. 도봉산에는 도봉주능선, 오봉능선, 송추남능선, 보문능선,
다락능선, 포대능선, 회룡능선 등 여러 능선이 있다. 이 중에서 649봉에서 우이암까지 이어진
포대능선-도봉주능선이 한북정맥이다.
포대능선은 도봉산 649봉에서 도봉산 자운봉(740m), 만장봉(716m), 선인봉(693m) 등의
봉우리가 솟구치기 직전의 신선대 안부까지 이어진 능선이다.
산불감시초소에서 포대능선 내리막길 암릉에는 눈이 녹았다 다시 얼어 얼음이
되어서 상당히 미끄럽다. 조심조심 기다시피하여 능선 안부로 내려선다
이곳은 하도 많이 온 코스라 눈감고도 갈 수 있는 코스이다. 저 건너 수락산과 저 아래
도봉동과 의정부 시내는 짙은 운무로 아무것도 볼 수가 없고 서울외곽 고속도로로
지나가는 차량소리만 시끄럽게 들린다.
포대능선에서 바라본 호젓한 산사 - 망월사(望月寺)
망월사는 신라 선덕여왕 때 해호선사가 왕실을 위해 창건했다고 전해지고 있다.
망월사라는 이름은 절 동쪽에 토끼 모양의 바위가 있고, 남쪽에는 달 모양의 봉우리인
월봉이 있어 토끼가 달을 바라보는 것처럼 보인다는데서 유래하였다는 일화가 있다.
또 전해지는 이야기는 왕이 있는 경주를 바라본다는 뜻이라고 하기도 한다.
신라의 마지막 왕인 경순왕의 태자가 나라가 망한 뒤 이곳에 머물렀다는 이야기가 있을
만큼 신라 왕실과 깊은 관련이 있는 절집이다.
일제시대 용성 스님은 당시 몰락한 우리나라 선불교 전통을 이곳에서 일으켜 세웠고,
만공·한암·전강·성월·춘성 등 당대의 내로라하는 거물급 선승들이 모두 천중선원(天中禪院)
을 거쳐 갔다. 그래서 선원에는 지금까지 엄격한 선 전통이 내려오고 많은 스님이 그 가르침을
따라 용맹정진하고 있다.
민초샘 안부 능선
원도봉산에서 올라오는 길이다. 3년전인 2008년 10월에 불,수,사,도,북 5산 종주를
할 때 식수가 떨어져서 이곳 민초샘으로 내려가서 식수를 보충한 기억이 뚜렸하다.
포대능선에서 바라본 도봉산의 정상
선인봉(708m)만장봉(718m)자운봉(740m)
도봉산(道峰山)은 서울특별시 도봉구와 경기도 의정부시 호원동, 양주시 장흥면에 걸쳐있는 산으로
북한산 국립공원의 한 부분이다.
백두대간의 분수령에서 서남쪽으로 뻗은 한북정맥의 연봉을 따라 운악산·불곡산을 거쳐 남서쪽으로
내려오다가 서울 동북쪽에서 우뚝 솟아 우이령을 경계로 북한산으로 이어진다.
최고봉인 자운봉(紫雲峰, 739.5m), 남쪽으로 만장봉(萬丈峰)· 선인봉(仙人峰), 서쪽으로 오봉(五峰)·여성봉 이 있다특히 동쪽으로 서울과 의정부 간의 국도, 서쪽으로 구파발과 송추의 간선국도가 통하여 교통이 편리하다.
도봉산의 3대 계곡은 문사동계곡, 원도봉계곡, 무수골로서 이 계곡들이 산행기점과 연결되는데, 도봉동계곡 송추계곡
망월사계곡 오봉계곡 용어천계곡 등도 수락산 불암산 등과 함께 좋은 등산코스를 이루고 있다.
포대능선 정상에 있는 대공포 진지
포대능선 삼각점
Y 계곡(08:50)
721봉에서 신선대 방향은 Y계곡은 상당히 위험한 암릉 구간이다.
721봉에서 100m 아래의 바윗골까지 내려간 후 다시 100m 수직으로 올라와야 했는데,
그 생김새가 Y자형을 이루고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철제빔과 와이어 로프에 몸을 의지해서 Y계곡을 건널때 순간적으로 아찔했다.
북한산국립공원에서는 Y계곡 안전을 위해 주말과 휴일에는 포대에서 신선대 방향으로만
산행을 허용하고, 반대방향으로 진행하는 이들을 위해 우회로를 닦아 놓았다.
편안길을 원한다면 우회로를 택하겠지만 정맥길이라 위험을 무릅쓰고 험한 길을 택한다.
스틱을 접어 베낭에 넣고 아이젠도 벗는다. 긴장의 끈을 늦추지 않고 내려가는데 두 사람은
역으로 오고 있다. 반갑게 인사를 나눈다. 한명은 전주에서 온 산꾼이다.
20분에 걸쳐 Y게곡을 빠져 나오니 손목에 통증이 오기 시작한다. 안부에서 불어오는
차가운 바람이 얼굴을 세차게 때린다.
Y계곡 최상단에 위치한 구간
20여분에 걸친 Y계곡을 탈출하여 신선대 앞에 내려오니 팔에 통증이 심해진다.
이젠 여유로운 걸음으로 신선대를 향하는데 눈이 빙판으로 되어 올라갈 엄두가 나질 않는다.
신선대 정상(09:15)
道峰山(자운봉. 해발 740m)
화강암으로 이루어진 산으로 북한산 국립공원에 속하는 서울의 상징적인 산의 하나다.
도봉산의 유래는 도봉,도를 닦는 봉이라는 설과 불가(佛家)에서는 상서로운 기운이 돌아 조선왕조를 여는
길을 닦았다 해서 도--봉. 또 이곳에서 우국지사들이 학문을 연마하고 민생을 구제하였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란 설 등이 있는 신선이 노니는 선경을 가진 도봉산!
매월당 김시습의 '무사제일'편에 나오는 도봉산 예찬론을 음미해 본다.
道勢嵯牙如劒鋩(도세차아요검망) 이빨같이 솟은 산봉우리 창끝같고
瘦藤老栢凌風箱(수등로백릉풍상) 노상과 등나무는 풍상에 꿋꿋하다
幡幢杳靄列梵刹(번당묘애열범찰) 깃발들 가득꽃혀 절 앞에서 세워져 있고
雷電閃爍摩靑蒼(뇌전섬삭마청창) 천둥치며 번개는 하늘을 가리네
湛湛霜楓惱客眼(담담상풍뇌객안) 이슬엉긴 붉은단풍 나그네 눈 어지럽히고
霏霏巖溜漱人腸(비비암류수인장) 바위에 흐르는 물은 오장육부를 씻어내리라
望中不盡眉字寒(망중부진미자한) 하염없이 바라보는 눈시울 적시고
木落天高回雁行(목락천고회안행) 낙엽지니 높은 하늘에 기러기가 날아간다
가까이서 본 신선대 정상의 모습
신선대 안부에서 오봉 갈림목까지는 칼바위라 불리는 구간으로 바위구간이 험해서
도저히 올라갈 수가 우회로를 따라 걸었다. 이곳은 통제구역이기도 하지만 길 자체가 없다.
여성봉, 오봉과 우이암가는 갈림길(09:25)
칼바위 아래쪽에는 그 예전에 없던 계단이 많이 설치되어 있어서 걷기는 참으로 편하다.
도봉 주능선에서 우측으로 보니 오봉이 한눈에 들어오고 저 멀리 내가 가야할 상장능선이 시야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도봉 주능선에서 바라본 상장능선
상장능선은 북한산 국립공원의 만경대에서 뻗어나간 산줄기가 북으로 영봉을
일으키고 북동진하다가 육모정 고개를 지나 북서로 방향을 바꾸어 긴 능선을
이루면서 끝지점에 상장봉으로 솟아오른 능선이다. 상장능선을 기점으로 서로는
경기도 고양시, 동으로는 우이령을 경계로 양주군 장흥면과 서울 특별시
우이동을 가름한다. 상장능선과 골짜기를 격하여 마주하고 있는 오봉능선,
도봉주능선, 우이 남능선이 송추에서 우이동을 넘어오는 우이령(牛耳嶺)을
이루고 있는 것이다. 이 긴 능선의 북쪽 끝, 송추쪽에 자리잡은 봉우리가
상장봉(上長峯534m)이고 남쪽 끝 만경대에 접한 봉우리가 영봉(靈峯604m)이다.
한북정맥이 도봉산을 일으키고 우이령에서 잠시 숨을 돌리다가 북한산으로 치달아,
인수봉, 백운대, 만경봉에서 절정을 이루면서 북으로 지능선을 벋어 내린 것이
상장능선이다. 상장능선은 솔고개를 이어서 지금은 예비군 훈령장으로 유명한
노고산과 일산의 고봉산, 교하의 장명산까지 뻗어나가서 그 맥(脈)을 다한다.
도봉 주능선에서 바라본 도봉산의 위용
옛날에 도봉산앞을 지나는 길을 평구도(平丘道)라 했다.
양주에 공무로 다니는 벼슬아치에게 마필을 이바지했던 역인 평구역이 있었다.
그때 그 길은 걷거나 가마를 타거나 아니면 마부가 끄는 말을 타고 나녔다.
그런데 역과 역사이에 길을 가다가 공무를 보는 벼슬아치나 길손이 쉬거나
묵어가는 원(院)이라는 것이 있었다. 보통은 30리간격으로 있어다는데
이상하게도 이 길에는 원이 유난히 촘촘히 많았다.
지금 남아있는 원만해도 그 이름도 운치있는 서낭당의 무수원(無愁院)을 위시해서
다락원(多樂院), 장수원(長水院),호원(虎院) 등이 그것이다.
지금 같이 길가에 집이 없이 허허벌판이던 길에 동쪽의 불암산, 수락산도 그렇지만
그보다 더 가까이 있는 서쪽의 깍아지르는 듯이 수직으로 서있는 백색의 도봉산의
우이암,주봉,만장봉, 자운봉을 위시하여 사패산으로 이어지는 능선의 수많은 봉들은
지자요수(知者樂水)요, 인자요산(仁者樂山)의 경지를 숭상하는 선비들에게는 그냥
지나칠수 없었던 길이기 때문일것이다. 그래서 길에서 봉우리를 우러러 보는 산이라
해서 길 도(道),봉우리 봉(峰),도봉산(道峰山) 이라 하지 않았을까?
라고 설명하니 무심한 나로서는 어쩌면 맞는 말일듯도 싶다.
한북정맥이 지나는 주능선에서 우측으로 갈래를 친 오봉능선에 오봉이 있고, 오봉에서
송추쪽으로 뻗어내린 송추능선 남쪽에 여성봉이 솟아 있다. 오봉이 우람한 남성을
상징한다면 오봉에서 뻗어내린 여성봉은 수줍은 듯 오봉을 오려다 보는 형세이다.
여성봉을 오르는 암반은 여성의 엉덩이를 상징하는 모양이라고 한다.
오봉은 해발 490m 정도, 산행거리도 송추에서 2.5km, 평탄한 코스로 1시간 반이면 올라갈 수 있다.
여성봉 가는 길 초입에 있는 봉우리가 우람하다
여기서 실제로 여성봉은 보이지 않는다. 여성봉은 오봉 너머에 있어서 보이진 않는다.
몇년전에 친구 淸眼과 함께 여성봉 정상에 오르면서 여성의 궁둥이가 아닌 여성의 생식기처럼
생긴 여성봉 거시기에 막걸리 한사발을 부은적이 있었는데 그걸 생각하니 쓴 웃음이 나온다.
여성봉에 얽힌 전설은 이렇단다.
475년경 한 소녀가 한강변에 앉아 맑고 구슬픈 피리를 불고 있다.
긴 머리에 피리 소리마냥 바람에 휘날리며 춤추는 모습이 무척 아름다운 소녀이다.
얼마후 소리를 찾아 달려오는 한 청년의 모습이 씩씩하며 결연한 의지가 엿보인다.
잠시 이야기를 나눈 후 청년은 떠나간다.
고구려의 침범에 맞서 백제를 지키고자 싸움터로 나서는 청년의 얼굴엔 돌아오지 못할 슬픔이 어려있다.
청년은 개로왕이 전사하던 한성 싸움에서 함께 목숨을 잃고 만다.
그 후 백제는 왕을 잃은 치욕을 씻고자 재건을 꿈꾸면서 477년경 웅진으로 도읍을 옮기는데,
오랜 삶의 터전인 한강유역을 떠나기 아쉬운 처자는 부모와 함께 고구려의 손길을 피해 도봉산 깊숙이 스며든다.
그리고 알아줄 사람없는 젊음과 아름다움을 애태우다 첫사랑을 그리워하며 서른 중반의 나이로 숨을 거둔다.
이를 불쌍히 여긴 천상의 옥황상제가 무수한 세월동안 남정네의 사랑을 받으라며 바위로 환생을 시키니 이것이 바로 여성봉이다.
처자가 죽은 시기를 기념하여 그 높이를 496m(이정표에는 504m)로 하였으니 천오백년이 지난 오늘까지도 산사나이들의
사랑을 받고 있단다.
오봉가는 갈림길(09:25)
우이암 가기전에 만난 헬기장
도봉 주능선에서 바라본 오봉(五峰)
오봉은 1억5천만년전에 화산이 폭파하여 생긴 토어(tor:험한산,뽀쪽한 산)로
이곳에서 날씨가 좋은 날에는 인수봉과 백운대이 시원스럽게 보이는 곳이다.
오봉에는 전설이 전해지는데
옛날 이 고을 원님이 아주 절세의 미인 딸을 하나 데리고 부임하였다고 한다.
원님이 다섯 개의 봉우리에 가장 높고 아름다운 바위를 올려놓는 사람에게 딸을 주겠다고 선언하였다.
그 소식을 들은 이 고을에 부잣집 아들 오형제를 둔 가문에서 오형제가 다투어 바위를 옮겨서 만들어 놓은 것이
오봉이라고 하는 전설이 전해오고 있다고 하며, 이곳에서 4봉이 없는것같이 보이는 것은 욕심이 많은 넷째가 가장
큰 바위를 옮기다가 힘에 부쳐 높게 올려놓지 못하고 중간쯤에 걸쳐놓아 4봉은 3봉의
옆구리에 붙여있게 되었다는 전설이 전해지고 있으며 이곳에서 4봉이 봉우리같지않게 보이지만 다른곳에서 보면
완전한 오봉의 자태를 볼수있다고 한다.
(실제로 우이동쪽으로 길을 잡아 산행하면서 오봉을 보면 5개의 봉이다)
산행을 하면서 가장 희열을 느낄때는 내가 걸었던 산길을 뒤돌아 볼 때가
아닌가 싶다. 이 조금한 발(足)이 참으로 대단하고 미안스럽게 느껴진다.
뒤돌아 본 도봉산의 위용에 그저 감탄스럽기만 하다. 서울 근교에 이런 산이
있다는 것은 서울에 사는 사람으로서 축복이 아닐까 싶다.
우이암(牛耳岩:10.35)
소의 귀처럼 생겼다고 해서 우이암으로 부른다고 한다.
우이암에 곧 바로 떨어지면 유명한 원통사라는 절이 있고 무수골로 내려가는 길이다.
무수(無愁)골은 근심이 없는 골짜기란 뜻이지만 유래를 살펴보면 수철동(水鐵洞) 혹은
무쇠골로 불리던 대장간이 많은 동네였다고 한다.
무쇠골이 변음이 되어 지금의 무수골이 되었다는 설이 있다.
도봉 주능선에 바라본 북한산(837m)
멀리 눈 속에 파묻힌 북한산이 신비스럽게 시야에 다가온다.
마치 티벳 사람들에게 신적인 존재와도 같은 신령스러운
메리 설산처럼 느껴진다.
예전에는 삼각산이라 불리워진 북한산은
한반도의 서부지방 곳곳에는 주요산맥들과 맥이 뚜렷이 이어지지 않고
우뚝 솟아 있어 명산으로 추앙받던 산이 많은데, 북한산도 이에 속한다.
서울시 주변지역에서 가장 높으며, 주위에 도봉산·노고산 등이 있다.
예로부터 부아악(負兒嶽)·화산(華山)·한산(漢山)이라고도 했으며, 주봉인 백운대를
중심으로 북쪽에 인수봉(811m), 남쪽에 만경대(800m)의 3봉이 삼각형으로 놓여 있어
삼각산이라고도 한다. 기반암은 화강암이며, 급경사를 이루어 산세가 험하다.
만경대는 무학대사가 조선의 도읍지를 정할 때 올랐다하여 국망봉이라고도 한다.
비봉에는 신라 진흥왕순수비가 세워져 있다. 인수봉은 암벽등반의 최적지이며,
그밖에 노적봉·보현봉·문수봉·원효봉 등이 있다. 북서쪽의 원효봉과
나한봉에 이어지는 능선에는 1711년(숙종 37)에 쌓은 북한산성이 있으며,
대동문·대서문·대남문·대성문·보국문 등이 남아 있다.
상장(上長)이란 이름이 붙여진 이유는 능선이 길고 규모가 클 뿐 아니라 서울쪽으로 향하는 산이니
산중에서 으뜸이 된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란다. 북한산의 능선중에 유일하게 한북정맥에 포함된 능선이다
헬기장을 지나니 이른 아침에 아침식사를 한 탓인지 허기가 지기 시작한다.
우이암 가는 전망테크로 오르니 우측에는 오봉이 한 눈에 들어오고 저 넘어로
상장능선과 북한산 정상 백운대가 희미하게 보인다. 전망테크를 지나 암릉에 오르니
소의 귀처럼 생겼다는 우이암이 코 앞에 나타난다. 이곳에는 서너명의 등산객들이
있다. 이곳 바위에서 도넛 2개와 오렌지 쥬스 하나로 허기를 면하고 주위의 눈치를
살핀다. 주위를 살피니 다행히 국공파 직원은 보이지 않는다. 우이암 가는 길로 내려서
100m 직전에 출입금지라고 써있는 로프를 넘어서 쨉싸게 월담을 감행한다.
우이암 가기 직전 100m 지점에서 우측에 출입금지라고 써있는 로프를 월담하면
희미한 등로가 보이기 시작한다. 우이령 가는 길인데 이 길이 한북정맥 마루금이다.
한북정맥을 완주하기 위해선 부득히 범법자가 되야하는 현실이 서글프다.
로프를 월담하여 100m쯤 지나니 또다시 철조망이 나타난다.
그 철조망을 직진하여 가니 눈이 쌓여있는데 나말고도 지나간
산꾼이 있는가 보다 발자국이 뚜렸이 나있다.
내가 가야할 상장능선
상장능선은 조선시대에 홀대받은 산이라고한다.
전략적으로도 가치가 없고 산세도 그렇고 오히려 도봉산과 북한산으로 이어지는 대간의
맥을 끊으려는 듯한 형상때문에 그럴까?
북쪽에서 쳐들어오는 적을 보려해도 상장능선이 앞을 어느정도 가리고있어서 그런 대접을 받는지도 모르겠다.
`상장`이란 이름도 6.25이후 북한산에 군부대가 많이 주둔하면서 장수`將`字를 갖다붙였다는 설이 있는데 명확치가 않다.
어쨌든 최근 상장능선은 도봉산과 북한산을 바라보는 서울 최고의 조망처로 알려지기 시작했다.
아쉬운건 그런지 얼마 지나기도전에 관리공단에서 출입금지구역으로 지정했다는 점이다
우이암 직전에서 월담하여 30분이 지난 지점에 사람소리가 시끄럽게 들린다.
저 아래 우이령 둘레길을 걷는 탐방객들의 웃음소리이다. 산에 내리기 전에
주위를 살핀다. 극도의 긴장속에서 말이다. 산 위에 숨어서 저 아래를 살펴보니
안보 전시관 앞에 국공파 직원 2명이 초소를 지키고 있다. 10여분을 기다려도
움직일 줄을 모른다. 하는 수 없어 우측으로 200m쯤 지나니 군부대 폐초소가
나타나고 그 아래로 내려서서 오봉 전망테크를 통하여 우이령길에 올라선다
이곳으로 내려와야 하는데 이곳 앞에는 안보전시관이 있고 그 앞에 국립공원관리공단
초소가 있다. 그곳에는 국공파 직원들이 염라대왕처럼 떡버티고 있어서 부득히 우회를
해야만 했다. 내 나라 내땅 내 산을 가야 하는데 언제까지 이렇게 가슴 졸이며 산을 타야하나
우이령(牛耳嶺:11:05)
우이령은 서울특별시 강북구 우이동과 경기도 양주시 장흥면 교현리 사이에
위치한 고개이다. 이 곳으로 우이령길이 지나고 있어 양주에서 서울 까지
빠르게 갈 수 있었다.
하지만 1968년 1월 21일 무장공비 김 신조 일당의 청와대 침투사건으로 인하여 통행이 금지되었다가
2009년 7월 개방된 자연생태계가 잘 보존된 지역이다.
북한산둘레길 우이령길구간으로 교현 우이령길 입구에서 우이 우이령길 입구까지 6.8km이다
6.25 한국전 당시에 사람이 겨우 다닐 수 있던 小路였는데 미군공병들이
작전로로 건설핬다고 한다.
우이령 사방사업 기념비
우이령길 오봉 전망대 앞에서
북녘땅의 거리표
우이령길 오봉 전망테크에서 인증샷을 남기고 선답자들의 기억과 지도를 가지고
사방사업 기념비에서 송추쪽 도로를 100m쯤 내려가니 계곡이 나타나고 벤치가 2개 있다.
이곳에도 출입금지 로프가 있다. 이곳에서 계곡을 넘기전에 재빨리 좌측 능선으로 치고 오른다.
어느 탐방객이 저 분 왜 저리로 오르지 한다. 남의 속도 모르고 말이다
계곡에는 올겨울에 너무 추웠던 날씨 탓에 얼음이 꽁꽁 얼어 있다
산 능선에 오르니 최근에는 이 코스를 아무도 타지 안았던 모양인지 눈에 아무 자국도 없다.
약 10분 정도 오르니 헬기장이 나타나고 군초소가 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가슴 졸이며
재빨리 능선으로 도망가다시피 한다. 이곳에는 다시 산꾼들의 발자국이 보인다
마루금 능선에 오르니 또다시 단속 플랑카드가 있다. 근데 여기는 벌금이 50만원이란다
에고 무서버라. 이거 돈 없으면 산에도 못다니겠네. 오늘 벌써 산행 전과3범이 추가 되는구나
상장능선의 9봉인 왕관봉
상장능선 아홉개 봉우리중 서울쪽으로 붙은 9봉(510m) 모양으로 보나 위세로 보나 상장능선의 주봉格이다.
그러니 상장봉으로 불려야 옳겠다.
굳이 높이로 하자면 가운데 솟아있는 4봉(545m)이 주봉이 되어야 맞다.
지도상에는 별 특징없는 1봉(534m)이 상장봉으로 표기되어있다.
또 누구는 9봉이 왕관봉이라하고 누구는 4봉이 왕관봉이라 하는데 어디가 어딘지 머리나쁜 범여는 헷갈리기만 한다.
이곳 능선길은 참으로 호젓하다. 그런데 갑자기 사람소리가 난다.
혹시 국공파 직원이 아닌가 싶어서 재빨리 몸을 숨긴다. 자라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보고 놀란다고...
바위 뒤에 숨어 있어서 보니 솔고개에서 올라오는 정맥꾼 3명이다. 가슴을 쓸어 내리고 솔고개 상황을 물어보니
솔고개는 국공파 직원이 없다고 알려준다. 서로 인사를 나누고 헤어진다.
오봉과 여성봉이 아련히 보인다. 저 아래 우이령 둘레길도 아련히 보인다.
코끼리 바위 주위에 있는 고사목
“4형제봉”이라 명명한 바위는 "코끼리바위"라 한다고 한다.
영봉 주위엔 왜 고사목이 이리 많다. 지리산이나 덕유산 고사목을 보는 느낌이다
山에서 죽은 靈魂들이 떠돌아서일까? 그 영혼들이 이 산 주위를 맴돌다 나무에 앉아서 일까?
파란 하늘을 향하여 울부짖는 듯한 고사목의 가지가지마다에 슬픈 靈歌가 떠도는 것 같다
첫번째 암봉을 왼쪽으로 우회하고 두번째 상장봉 암릉을 만났는데
암봉쪽으로 향하는 흔적이 있는데다 위에서 사람소리가 나길래 암릉을 타고
오르는데 엄청나게 위험하다. 중간쯤 오르니 상당히 미끄러워 올라 갈수도 없고
내려 갈수도 없다. 위에 있는 사람에게 소릴 질렀더니 혼자서 이 험한 곳에
오르는 것 같은데 약간 맛이 간 사람 취급을 한다. 바위위에 있는 로프를 던져준다.
팔에 힘이 빠져서 베낭을 먼저 로프로 매어 올리고 다시 빈 몸으로 로프에 의지한 채
겨우 암릉 정상에 올랐다. 온 몸에 힘이 쭉 빠진다. 이 사람들은 반대 방향쪽으로
올라온 사람들이다. 상장봉 정상 전망좋은 너럭바위에 세 사람이 자리깔고 앉았는데
막걸리, 오가피주 컵라면을 먹고 있다. 그러면서 막걸리와 컵라면을 건넨다.
이 사람들은 정맥꾼들이 아니고 탄현에서 온 사람들이라 이곳이 전망이 너무 좋아서
자주 온다고 한다. 이곳에서의 전망은 정말로 끝내준다.
북한산(北漢山) 836.5m (상장능선)
서울 도봉, 은평, 종로, 경기 고양 신도읍에 걸쳐있는
상장능선이란 북한산의 북쪽 솔고개에서 육모정까지의 능선을 말한다.
북한산 능선중 유일하게 한북정맥상에 포함되는 능선으로 솔고개에서는 노고산으로
연결되며, 상장능선의 중간에 있는 우이령 갈림길에서 북동쪽으로 도봉산과 연결된다.
북한산과 도봉산의 전반적으로 크게 구분하는 능선인 관계로 능선에서는 북한산
정상일대와 사기막능선, 도봉산 방향으로는 오봉과 우이남능선, 송추남능선 등을
모두 골고루 조망할 수 있는 전망대능선이다.
상장능선이란 명칭은 옛 이름은 아니고 상장능선을 중심으로 좌우 모두 군부대가
주둔하고 있어 상장군이라는 의미에서 명명된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군부대가 있는
만큼 오래전 부터 군사지역통제구간으로 묶여왔으나 실제 산행은 가능하며,
군부대로 하산도 예전만큼의 통제는 없다.
전반적으로 500미터대의 제법 산세가 굵은 능선으로 능선상에는 봉우리 9개가 있으며
이 중 첫 번째 봉우리를 상장봉이라 하지만 상장능선상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는 아니다.
상장봉을 1봉이라 할 경우 1봉에서 4봉까지의 구간이 상장능선의 백미라 할 수 있다.
바위와 소나무가 어우러져 멋진 산수화를 그리며 바위암반이 많아 곳곳에 쉴 수 있는
공간이 많이 산재해 있다.
5봉에서 7봉까지는 일반 봉우리. 우이령 갈림길이 있는 8봉과 9봉은 바위봉우리이다.
전체적으로 무난히 오를 수 있으나 4봉은 혼자서는 오르기가 상당히 어렵다.
마지막 9봉은 산세가 하늘을 찌를 듯 상당히 가파르지만 조금만 주위하면 쉽게 오를 수 있다.
3봉에 오르니 바위의 모습이 흡사 비둘기를 세워논 느낌이다
저 너머 북한산(삼각산)의 모습
고려말 목은 이색(李穡)의 '三角山'이란 시를 읊어본다.
三峰削出太初時(삼봉삭출태초시) 세 봉을 깎아 세운 건 태고적 일일러니
仙掌指天天下稀(선상지천천하희) 희한하이 손가락으로 하늘 기리키는 모습이
自少已知眞面目(자소이지진면목) 등 뒤가 양귀비같다고 세인이 말하더군
상장능선 전망대에서 바라본 양주시 교현리의 모습
토사 방지를 위하여 마대같은 것으로 해 놓았다.
상장능선 전망대에서 바라본 노고산(496m)
고양시 효자동과 양주군의 경계에있는 산으로 한미산,혹은 매네미산이라 하기도한다.
산의 정상은 군사시설이들어 있고,산의 동남쪽에 천년고찰 흘국사가있다.
참나무계통의 나무가 많아 가을단풍이 아름답고 산아래 곡릉천이 흐르고 있어
일영유원지등 관광지도 있다. 물은 곡릉천과 창릉천으로 흐른다.
솔고개 하산길에서 바라본 영봉
거대한 상장능선이 삼각파도처럼 나에게 덮쳐 내릴 듯 버티고 서 있다.
능선 길은 많은 사람들이 오래 전부터 오르내린 듯 깊은 골을 형성하고 있다.
단단한 마사토가 파여진 것을 보면 사람의 발길이 무섭다.
가끔 나타나는 조망처에서 오른 쪽을 바라보니
멀리 영봉으로부터 인수봉, 백운봉, 염초능선에 이르는 실루엣이 가늠된다.
마지막구간
이제 저곳만 넘어면 완전히 해방이 된다. 상장능선에서 만난 산꾼들이 국공파가
없다고 하였지만 그래도 그래도 몰라 주위를 살피고 나서 재빨리 금지선을 넘는다.
국공파님들 죄송합니다. 악법도 법은 법인데 지키지 못함을 널리 용서해 주시길...
그러지 않으면 한북정맥을 완주할 없기에...
솔고개(13:20)
7시간 20분간 가슴 졸이며 산행을 마치고 아이젠을 벗고 스틱을 접는다.
달현, 다리고개라고도 하는 솔고개는 고갯마루에 부대가 있는 양주시 교현리와 고양시 효자동의 경계로 6차선 도로가 지난다.
10여분을 기다리니 의정부가는 34번 버스가 온다. 버스를 타고 애마를 세워놓은 울대고개까지
오는 짧은 길에 잠이 쏟아진다. 여기서 잠을 자면 안되기에 혼신을 다해 잠을 자지 않을려고 애를 쓴다.
울대고개에 하차하여 주택가 공터에 세워놓은 愛馬를 회수하여 집으로 귀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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