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산행일자: 2011년 3월 13일
* 산행날씨: 아침에 약간 흐렸지만 오후에는 쾌청한 날씨
야간 덥기는 했지만 산행하는 최적의 날씨.
* 참석인원: 뫼솔산악회 회원들과 함께
* 산행거리: 도상거리 11.5km + 어프로치 4.8km / 5시간 50분 소요
* 산행구간: 갈목재-651봉-불목재-574봉-아랫 대목재-638봉-687봉-윗대목재
666봉-807봉-923봉-천왕봉-헬기장-장각동-장각폭포(상오리)
지난 금욜 오후에 진도 8.8의 강진으로 일본 열도가 발칵 뒤집어져 쑥대밭이 되었다.
지진에 관한한 세계 그 어느나라보다도 대비를 잘하는 일본도 엄청난 자연 재앙앞엔
속수무책이다. 더군더나 7년전에 가 본 센다이, 아오모리의 멋진 도시가 그렇게
되었다니 안타깝기 그지없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홋카이도에 있는 일본인 친구에게
안부를 묻는 전화를 걸어 보건만 통화량이 폭주한 탓인지 전화 자체가 연결되지
않는다. 부디 안전하기를 기원하는 수 밖에...
인간이 자연앞에 얼마나 나약한 존재인가를 깨닫게 해준 사건이다.
중생들이여 제발 자연에 도전하지 말고 순응하면서 사는 지혜를 터득하시길...
약간의 꽃샘 추위가 있기는 하지만 봄이오는 걸 그 누구도 막지는 못하는가보다
1대간 9정맥중 1대간과 4정맥을 완주하고 호남정맥은 이제 절반정도 지났다.
이젠 작년에 영남의 산길을 마무리 한 탓에 한결 가벼운 마음으로 충청도의 산길을
시작하련다. 서울과 가까운 관계로 무박 등산을 하지 않아 체력적인 부담을
덜 수 있다는게 좋을 것 같고 가족들에게 덜 미안한 감정이 든다.
근데 2년을 넘게 매주 토욜 밤마다 베낭을 매고 집을 나간 탓인지 저녁 10시경에잠자리에 들었는데 새벽2시가 되서 잠에서 깨어 도저히 잠을 이룰 수가 없다.
오늘 시작하는 한남.금북정맥 구간에 대한 흥분과 설레임으로 잠을 설친다.
이후 백두대간은 지리산을 향해 줄기차게 남진하는 한편, 큰 가지 하나를 서쪽으로 뻗어 내니 그것이 바로 '한남금북정맥'이다.
한남금북정맥은 그 이름이 말하듯 한강의 남쪽 울타리이며 금강의 북쪽 울타리이기도 하다.
속리산 천황봉에서 시작하여 충북의 북부내륙을 가로 질러 보은, 청원, 청주, 괴산, 음성을 거쳐 경기도 안성땅
이 산줄기의 산들을 보면 백두대간 천황봉에서 갈라져 나와 말티재,시루산,구봉산,국사봉,선두산,선도산,상당산성,
한편, 칠장산에 이른 한남금북정맥은 북서쪽으로 한강의 남쪽을 따라 한남정맥을 갈래쳐 김포 보구곶리까지
그 때문에 한남금북정맥은 온전한 정맥이라기보다는 금북과 한남을 백두대간에 이어주는 역할로 여겨져
그렇지만 한남금북정맥은 도상거리도 만만치 않고 끊임없이 오르내리는 산세와, 그 산자락 곳곳에 어린
오늘 산행구간의 지도와 고도표
갈목재(葛目峙 :09:50)
삼가 저수지에서 갈목으로 넘어가는 고개로 이곳에 갈목 마을이 있는데 마을
주위에 칡넝쿨이 많아 갈목이라 하였다고 전해져 내려오기도 하고 또 하나의 설은
길이 갈라지는 목에 위치한 마을이라 하여 갈목리라고 불렸다고 한다.
보은 8항의 하나라고도 한다. 갈목재에서 속리산 방향인 삼가 저수지를 내려가는
길목이 흡사 강원도 구룡령을 내려가는 길과 흡사할 정도로 꼬불꼬불 하기만 하다.
* 보은 4증 8항
증은 시루라는 뜻이며 항은 목덜미라는 뜻으로 급소를 말한다고 하는데 도선국사의
도참설에 나오는 것으로 재해재난으로 부터 안전한 지대를 뜻하기도 한다.
쉽게 말해 피난처가 되는 곳이다.
보은에는 4증 8항이 있는데 4증 중 동증은 마로면 적암리 시루봉, 남증은 마로면 변둔리 시루봉,
서증은 수한면 질신리와 광촌리 사이의 시루봉, 북증은 내북면 이원리 시루산을 말한다.
8항은 가항(구병리 멍에목이), 갈항(갈목리), 오항(성주리, 삼년산성 주변), 불항(불목),
구항(장갑 비들목), 사자항(속리산 중사자암 부근), 치항(마로면 임곡리 솔개미봉),
상자항( 확인 안됨)이라고 한다.
원래는 천왕봉에서 갈목재를 와야 정상이나 이곳이 상시 단속구간라 부득히 역산행이라
한다.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 산은 항상 거기 있긴 하지만 원칙을 중시하는
산꾼들에겐 좀 거시기 하다. 내리자마자 초소를 피해 도망자 신분으로 재빨리 마루금으로
접어든다.
갈목재가 해발 380m , 천왕봉이 해발 1058m이니 고도를 서서히 높혀간다. 거기다가 건조한
날씨라서 낙엽으로 인한 먼지로 인해 목이 꽤나 아프다. 이곳은 단속구간이라 이정표라곤
코빼기도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천왕봉까지 이름은 없고 숫자로만 된 봉우리만 무려 16개이다
산행시작 시작 10여분만에 만난 마루금 옆에 있는 관리가 안 된 은율송씨의 묘
불목이재(佛目里峙 : 10:15)
웃갈목이에서 삼거리 불목이로 넘어가는 고개로 서북쪽에 있는 마을로 산의
지형이 부처님의 눈처럼 생겼다고 해서 불목리라 했으나 예전에 마을이
있었으나 화전민(火田民) 정리 때 다른 곳으로 이주 하였다고 한다.
574봉 산불감시 카메라(10:35)
갈목재에서 크고 작은 봉우리가 수도 없이 넘는다. 날씨가 너무 더워 자켓을 벗어
베낭에 넣고 물한모금 마신후에 다시 가속도를 붙인다. 그 사이 선두는 뭐가 그리
급한 지 시야에서 사라져 버렸다. 그 와중에 지난해 낙남정맥 길에서 같이 동행했던 산꾼과
같이 서로의 안부를 물으며 같이 길을 걷는다.
멋진 충북 알프스의 연봉들이 가슴 벅차게 밀려온다
자연에 순응하는 낙락장송
겨울에 불어오는 강한 북풍한설에 맞서기보다는 순응하면서 나뭇가지가 모두 남쪽으로 되어있다.
그래서 자연은 인간들의 영원한 스승이다. 요즘 부쩍 잦아드는 환경재앙이 인간 오만함에서
오는 것일까 아는 생각이다.
635봉(11:20)
산행 시작 2시간 반만에 도착한 635봉 바로 앞에가는 산꾼들이 산상주막을 열고 야단법석을
벌이고 있다. 처음 참석한 산악회인데도 불구하고 막걸리와 오미자를 권한다.
목이 마른터라 연이어 막걸리 2잔과 오미자 1잔을 먹고 나니 허기진 배가 든든하다.
667봉 삼각점(11:45)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는 속리산
속리산은 1970년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으며 산의 이름은 원래 9개 봉우리로
이어져있어 구봉산(九峰山)이라 하였고. 광명산(光明山)형제산(兄弟山).
미지산(彌智山). 소금강산(小金剛山)등 여러 별칭을가지고 있었으며 우리나라
8경중 하나로 경관이 뛰어날뿐 아니라 천연 기념물이 풍부하다.
속세와 이별한다는 뜻을지닌 지금의 속리산이라는 지명을 갖게된것은
784년(신라선덕여왕5년)에 진표(眞表)대사가 이곳에 이르자 밭 갈던
소들이 모두 무릎을 끓었다. 이를본 농부들이 짐승도 저러한데 하물며
사람들이 오죽 하겠느냐며 속세를 버리고 진표대사를 따라 입산수도 하였는데
여기에서 ‘속리’라는 이름이 유래되었다고한다.
천황봉을 주봉으로 비로봉. 입석대. 신선이 놀았다는신선대. 문수봉. 문장대.
관음봉. 묘봉. 상학봉. 등 화강암으로 이루어진봉우리들로 산세가 웅장하면서도
활짝핀 연꽃 봉우리를 연상케한다.
또한 속리산 암자들 중에서 가장높은곳에 위치한 상고암(上庫庵)은 비로봉밑에
930m 지점에 자리잡고 있는데 신라때 720년 창건 되었으며 암자 이름중에
‘고(庫)’ 자를 쓴것은 법주사 법당을 지을때천황봉 소나무를 벌목하여 저장해
두었던곳이어서 상고암이라 하였고특히 이곳의 홍송(紅松)은 그 향기가 대단하여
목침으로도 애용 되었으며 이곳은 만리풍이 부는곳으로 여름에는 모기가없고
겨울에 눈은대관령에 내리는날 이곳에도 온단다. 만리풍이란 한반도 전역 멀리에서
불어오는 바람이라하여 스님들이 붙인 이름이다.
687봉(11:55)
호서제일가람(湖西第一伽藍)법주사
이 절의 개조(開祖)로 알려진 의신(義信)이 일찍이 불법을 구하러 천축(天竺:인도)으로 건너가
그 곳에서 경전(經典)을 얻어 귀국하여 나귀에 싣고 속리산으로 들어가 553년(신라 진흥왕 14)
이 절을 창건하였는데, 법(法)이 안주할 수 있는 탈속(脫俗)의 절이라 하여 법주사라는 명칭이
붙여졌다고 한다. 그러나 법주사의 정신적 지주가 된 미륵신앙(彌勒信仰)이나 법상종(法相宗)의
유식사상(唯識思想)은, 혜공왕 때 이 절의 중흥(重興)에 크게 기여한 진표(眞表)와 그의 제자
영심(永深)에 의하여 발현(發顯)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성덕왕 때 중수(重修)하였는데,
지금 남아 있는 석물(石物)은 모두 이 때 만들어진 것이라 한다. 그 후 여러 차례 중수를 하여
현존하는 목조건물은 모두 조선 후기의 것이다.
湖西(호서)는 충북 제천시에 있는 의림지(義林池) 서쪽이라는 말에서 유래되었으며 충청도를 일컸는 별칭dl다.
※ 의림지는 제천시 모산동에 있으며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저수지 중의 하나로 저수지 주위에는
몇 백 년 된 소나무숲과 수양버들이 많이 있고, 영호정(映湖亭)·경호루(鏡湖樓) 등의 정자가 있어
제천시에서 유일한 경승지이자 시민의 휴식처가 되고 있다.
법주사는 속리산 8개의 봉우리와 8개의 대(臺), 8개의 돌문이 있는데, 이들이 연꽃잎처럼
감싸고 있는 터에 법주사는자리 잡고 있다. 이처럼 법주사를 둘러싼 속리산은 산
그 자체로 불국토의 형상을 취하고 있는 것이다.
진표율사(眞表律師)의 법맥을 이어받은 영심대덕(泳深大德)이 길상사(吉祥寺)로 본격적인
사찰의 문을 연 이후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법상종(法相宗) 사찰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이때부터 절에는 미륵장육상을 모셔 미륵하생(彌勒下生)의 도량으로서의 구실을 하기 시작하였다.
고려시대에 들러서는 왕실과 밀접한 관계를 맺으면서 대각국사 의천(義天)의 동생인 도생(道生)
승통이 주지를 맡는 등 법상종 사찰로 위치를 굳혀 갔다.
법상종(法相宗)이란 ?
통일신라시대에 성립한 불교의 한 종파이다.
유식사상(唯識思想)과 미륵신앙을 기반으로 하여 성립되었다.
법상종의 교의(敎義)가 되는 유식사상은 인식의 대상이 되는 일체법의 사상(事相)에
대한고찰과 분류 해명을 연구의 중심으로 삼는다고 하여 법상종이라고 하였는데,
자은종(慈恩宗)이라고도 한다.
고려시대에 들어와서도 법상종은 화엄종과 함께 교종(敎宗)의 2대 종파가 되었는데,
"대각국사묘지(大覺國師墓誌)"에는 불교 6학파의 하나로 기록되어 있다. 고려시대의 법상종은
보수적인 귀족세력과 연결되어 교리면에서 관념화되었고, 불교의식 등의 형식적인 면을 강조하였다.
특히 고려 중기에는 인주이씨(仁州李氏)의 후원을 받아 왕실 및 기타 귀족들의 후원을 받은 화엄종과
대립되었는데, 이자겸(李資謙)이 반란을 일으켜 처형되자 타격을 받기도 하였다.
경내에는 유명한 법주사팔상전(法住寺捌相殿:국보 55)을 비롯하여 쌍사자석등(雙獅子石燈:국보 5),
석련지(石蓮池:국보 64), 사천왕석등(四天王石燈:보물 15), 마애여래의상(磨崖如來倚像:보물 216)
등의 국보 ·보물을 비롯하여 원통보전(圓通寶殿), 세존사리탑(世尊舍利塔), 사천왕문,
희견보살상(喜見菩薩像), 복천암 수암화상탑(福泉庵秀庵和尙塔), 복천암
학조등곡화상탑(學祖燈谷和尙塔) 등의 지방문화재가 있다.
687봉 안부에서 사내 저수지도 보이고 소나무 가지 사이로 아련히
33m 높이의 청동미륵대불도 보이고...
속리산 속에 푹 파묻혀 있는 탈골암의 모습
687봉 안부에서 만난 소나무의 모습
(팔상전의 모습:국보 제55호)
법주사 팔상전은 5층 탑으로서 지금까지 남아 있는 우리나라의 탑 중에서 가장 높고,
유일한 목조탑이라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데, 목탑(木塔)은 나무로 만든 탑으로서,
초기 삼국시대의 탑은 목탑으로 부터 시작하였으나, 현재는 석탑이 주종을 이루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최초의 목탑은 경주 "황룡사" 9층 목탑이다.
기록에 따르면 신라 선덕여왕 때 "자장율사" 의 건의에 따라 황룡사에 높이 80m 목탑
(약 30층 높이의 건물)을 건축하였으나, 고려말 몽고의 침입으로 불타 없어져 버리고,
조선시대 후기인 17세기 초반에 세워진 법주사 팔상전이 우리나라에 현존하는 최초 목탑으로서
높이가 22.7m에 달하며,1626년(인조4년) 벽암선사(碧岩禪師)에 의해 중건되었다.
탑의 외형에는
1층과 2층은 앞과 옆면이 5칸, 3층과 4층의 앞과 옆면은 3칸, 5층은 앞과 옆면 2칸씩으로 되어있고,
기초의 4면에는 돌계단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낮은 기단 위에 서 있어 크기에 비해 매우 안정감 준다.
지붕은 꼭대기 꼭지점을 중심으로 4개의 지붕면 가진 사모지붕으로 만들었으며, 지붕 위쪽으로
탑 형식의 머리장식이 달려있다.건축물의 외관 양식구조가 각 층에 따라 약간 다른데, 1층부터 4층까지는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하여 쌓은 구조가 기둥 위에 만 있는 "주심포 양식" 이고, 5층은 기둥과 기둥 사이에도
공포를 설치한 "다포식 양식" 으로 꾸몄다.
2층 처마 밑 4모서리에 이 세상에서 죄지어 벌을 받고 있는 인간이 무거운 건축물을 이고
고행하고 있는 모습이, 강화도 "전등사" 를 건립하던 대목수님을 사랑했던 술집 정부 나상과
유사한 형상하고 있어, 불교 교리를 무언으로 표현하는 형상 보고 있으니 정겹다.
< 무거운 건축물을 받치고 있는 죄인? 의 고행 >
또한, 법주사 팔상전 내부에는
우리나라에 남아 있는 유일한 목조탑으로서 1968년 해체·수리 할 때 "사리 장엄구" 를 발견하였다고 하는데,
대부분 사리는 탑 속에 보관되어 짐으로, 더욱더 탑으로 분류가 되어짐이 자명하여 진다.
건물 안쪽은 사리를 모시고 있는 공간과 불상 및 팔상도를 모시고 있는 공간, 그리고 예배를 하기 위한
공간으로 이루어져 있고 벽 면에는 부처 일생을 8장 면으로 구분하여 그린 팔상도(八相圖)가 그려져 있어,
그 건물 외부에 팔상전(捌相殿)이라 현판이 붙여져 있다.
그런데, 현판에는 왜 여덟 팔(八)자를 안쓰고, 깨뜨릴 팔(捌)자를 쓰고 있다.석가모니의 여덟가지로 표현한 일생은 도솔래의상(인간세상으로 내려와 잉태되는 과정).
비람강생상(세상에 출생하는 과정). 사문유관상(출가를 결심하는 과정). 유성출가상
(왕자의 신분과 처자를 버리고 궁중을 떠나는 모습). 설산수도상(보리수 아래서 고행하는 과정).
수하향마상(악마를 물리치고 성도하는 과정). 녹야전법상(수행자를 설법하여 귀의 시키는 모습).
쌍림열반상(80세로 생을 마감하여 열반에 드는 과정) 등 여덟가지 과정으로 요약하여 묘사한 그림이다.
665봉에서 807봉, 923봉으로 오르는 길은 오늘의 가장 힘든 구간이다.
턱밑까지 차오르는 숨은 엄청나게 힘이 든다. 짧은 구간의 된비알에
음지에는 눈이 얼음으로 변하여 상당히 미끄럽다. 807봉을 지나니 갑자기
허기와 졸음이 몰려온다. 베낭에서 초콜렛과 떡 하나, 그리고 밀감하나에다
홍삼차 한잔을 마시고 나서 나무에 기대어 약 10분정도 토막잠을 자고나니
피로가 확 가신다. 꿀맛같은 휴식은 정말 필요한 것 같다.
이곳은 북쪽 지역이라 그런지 산에는 아직도 겨우사리가 꽤나 많이 보인다.
낮은 곳에 있는 겨우사리를 수확하여 베낭에 좀 챙겨 넣는다.
2년전 내가 걸었던 속리산 구간의 백두대간 능선이 아련히 보인다.
참으로 벅찬 감동으로 몰려온다 2년후에 기어이 너를 다시 찾으마
923봉 오르는 길에서 만난 묘지
멧돼지가 산소를 완전히 쑥대밭으로 만들어 놨다.
이너므 쉬끼 만나기만 해봐라 너 가만히 안둘끼다
아직도 천왕봉 아래의 음지에는 아직도 잔설이 보인다.
천왕봉 올라가는 산죽길은 참으로 호젓하다.
날씨는 참으로 따뜻하다. 산행하기는 참으로 좋은 날씨이다.
덥지도 춥지도 않은 날씨에 천왕봉을 오른다.
마지막 관문을 통과한다. 사람하나 겨우 지나갈 정도의 석문을...
국립공원 입산금지 표시판
정맥길 타니까 저런꼴 보지않아 좋더니만 국립공원에 오니 또 저 문구를 본다.
정말 보기싫다. 고마해라... 국민들의 혈세로 녹을 받아먹고 사는 자들이
항상 국민들 위에 군림할려고 하는 자세... 이젠 역겹다.
정말 큰 일이다. 우리나라 공무원들과 국회의원들이 나사가 풀려도
단단히 풀렸다. 최근에 불거진 상하이 영사관 사건만 해도 그렇다.
대한민국의 최고의 엘리트란 자들이 젊은 중국년 하나의 치마폭에
놀아나 국가 기밀을 넘겨주질 않나. 거기다가 꼴값인 것은 계집년 하나를
두고 치정 놀음까지... 미쳐도 단단히 미쳤지. 대통령 나리님
인사(人士)는 만사(萬事)라고 했거늘 대통령 선거때 도움을 줬다고 해서
측근을 외교 경력도 없는 자를 상하이 총영사를 시켜 대한민국과 대통령께
누를 끼친 자를 어찌 하오리까?. 주리를 틀어도 시원치 않을...
배는 강을 건널때 필요한 것이지 강을 건너 산에 오를때는 필요없지 않은가요.
거기다가 여의도 나리님은 어떠신가요. 청목횐가 뭔가하는 정치 자금법을
위반한 동료의원들을 구하기 위해 법까지 개정하려는 작태... 당장 걷어치우시요.
국회의 입법권은 국회의원을 위해 있는게 아니라 국민을 위해 존재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들만을 위해 사는거 같아 씁쓸음 하다. 민초들을 위해 처리해야 법안들이
산더미처럼 쌓였는데도 불구하고 맨난 쌈박질만 하다가 당신네들 세비(5.1%) 올리는
것과 5급 보좌관 1명 늘리는것 등 당신네들 이익에 관련된 법안은 여.야 구분없이
왜 그리 인사천리로 통과되는 거요. 제발이지 적자인생에 신음하는 민초들도
좀 생각해주소. 가장이란 이유로 어깨가 축쳐진 남성들의 기를 좀 살려 주시길.
지난주 일본의 차기 총리감으로 촉망받는 마에하라 세이지 일본외상이 중학교 때
부터 자신을 돌봐준 72세의 재일교포 할머니한테 4년간 20만엔(약 260만원)의
정치헌금을 받은 혐의로 사임을 했다는 보도를 봤다. 귀화하지 않은 자로부터
정치자금을 받은 것이 외국인 기부라는 이유다... 참으로 신선한 느낌이다.
우리네 나리들 같으면 떡값아니 껌값도 안 되는 금액인데 말이다.
우리네 나리들은 몇천만원 아니 몇 억을 꿀꺽하고도 버젓이 금뱃지를 달고 거리를
활보하고 다니는데 말이다. 대한민국은 情이 많은 나라인가 아님 부패한 나라인가?
속리산(俗離山), 흔히 최치원의 시에서 따왔다고 알고 있는 이 말은 실은 백호 임제(白湖 林悌)의 시라고 한다.
‘道不遠人人遠道
山非離俗俗離山
도는 사람을 멀리 않건만 사람은 도를 멀리하고
산은 세속을 떠나지 않건만 사람은 산을 떠나네’
‘도를 행할 경우에는 반드시 사람이 중심이 되어야 하고 산은 도를 이루는 근본이다’라고
나름대로 뜻풀이를 해보는 것이 산을 좋아하고 산을 오르는 산꾼이면 반드시 해봄직하다.
공자도 ‘왕도(王道)는 곧 사람이 중심’이라 역설했지만 지금 그것을 제대로 행하고 있는지는
의문스럽다. 산은 도의 도장(道場)임을 현자들은 노래한다.
속리산 천왕봉(1058m:13:40)
속리산은 행정규역이 충북 보은군 내속리면, 외속리면. 경북 문경시, 화북, 화남면에 접하는 산맥으로
한국 팔경 중의 하나이다. 태백산에서 남서방향 으로 뻗어 나오는 소백산맥 줄기
가운데 위치하고 있으며, 남쪽으로 백두 대간이 지나고 천왕봉에서 한남금북 정맥이
분기하고 있다. 속리산은 화강암을 기반으로 변성퇴적암이 섞여 있어 화강암 부분은 날카롭게
솟아오르고 변성퇴적암 부분은 깊게 패여 높고 깊은 봉우리와 계곡은 가히 절경을 이루고 있어
광명산(光明山),미지산(彌智山), 소금강산(小金剛山)으로 불리기도 합니다.
속리산의 최고봉인 천황봉이 천왕봉으로 개명되었다. 산림청의 ‘우리 산이름 바로찾기’ 캠페인에
따라 경북 상주시지명위원회를 열어 속리산 천황봉(해발 1057m)의 이름을 천왕봉으로
바꾸기로 의결했다. 천황봉은 왕(王)이던 지명이 일본 천황을 가리키는 황(皇)으로 바뀌었다는
주장이 제기되면서 지금까지 논란이 있었다.
백두대간 능선의 속리산 북쪽 구간인 천황산과 조항산이 아련하게 보이고...
천왕봉에서 임증샷을 남기고 신선대 쪽으로 300m가량 좌회전하여 장각동 가는
헬기장은 눈이 얼어 얼음이 되고 다시 녹아 물이 되는 과정이 꼭 장엄염불에
나오는 구절과 같은 형상을 한다. 어쩜 우리네 인생사를 가르치는 것 같이...
아이젠이 없이 조심 조심 내려오다 잠시 방심하는 사이에 된통 넘어진다.
졸지에 바지가 흙으로 범벅이 되어 버린다. 그리고 오른쪽 팔목이 또 아파온다.
헬기장에서 바라본 속리산의 암봉들
입석대, 신선대, 비로봉 저 멀리의 문장대까지 말그대로 일망무제이다.
소위 말해서 속리산에서 가장 멋있는 구간이다. 2년전 7월 여름에
백두대간 코스인 이곳을 지나면서 운해에 쌓여있는 속리산 암봉의
황홀암에 도취되어 넔이 나간적이 있었는데 말이다. 겨울 속리도 이렇게 멋있다니...
남쪽으로 형제봉과 그 건너에 있는 도장봉도 보이고...
헬기장에서 후미를 기다리며 느긋하게 또한번 산상주막이 벌어진다.
막걸리, 소주, 맥주 어떤 산꾼은 무지막지한 1.6L짜리 팻트병으로 된 맥주병
까지 가져와서 마셔된다.참으로 대단하다. 난 당일 산행이라 조그만 베낭하나
지고온 게 미안할 따름이다. 30분이상 느긋하게 휴식을 취한다.
2년 가까이 매주 무박 산행을 강행한 범여에겐 상상도 못할 일이다.
일반산행 하듯이 하는 당일 정맥산행길은 여유로워 보인다. 아직까지 적응이
되지 않은 탓인지 낯설기만 하다. 여기에서 2년전 황철봉을 같이 산행한 산꾼을 만난다.
참으로 반갑기 그지없다. 내가 먼저 알아보지 못해 미안합니다.
장각동 내려가는 길
헬기장에서 여유로운 휴식을 취하고 오늘의 하산지점인 상오리를 가기위해
내려가는 하산길은 국립공원 구간이라 길은 참으로 좋다. 이 코스는 어프로치 구간이
상당히 길다. 장각동(경북 상주시 화북면 상오리 소재)은 속리산 자락 속에 자리잡고
있는 조그만 마을이다. 고도를 갑자기 낮추는 곳이라 꼭 천당에서 지옥으로 떨어지는
느낌같은 곳이다. 좀 여유로운 산행을 즐기고 나의 생각을 정리하기 위해 홀로 산행을 한다.
장각동 하산길의 이정표
국공파들은 산꾼들을 초등학생 수준 아니 유치원생쯤으로 여기는지...
매사에 한다는 짓이 하지마라, 들어가지마라, 벌금 매긴다라는 말밖에
못하는지. 일반 행락객이면 몰라도 국립공원 안에서 지정된 취사장과
야영장 이외에서 그런 행위를 하는 산꾼들이 어디 있나요.
제발이지 훈계할 생각은 그만 하시고 마인드를 부정이 아닌 긍정으로 바꿔 보시길...
장각동 마을회관(15:00)
봄을 알리는 버들 강아지
봄이 오는 소리가 들리나요?
이곳 속리산에도 서서히 봄이 오는 소리가 들린다.
유난히도 추웠던 지난 겨울이 계절의 변화엔 어쩔수가 없는가 보다.
멋지게 꾸며진 다리 아래로 흐르는 물소리가 정겹기만 하다.
유리보다도 더 맑은 물속에는 이름모를 고기들도 보인다.
장각동에서 만난 골동품 방아
고려 중엽 시대의 것으로 추정되는 상오리 7층 석탑
상오리 7층 석탑의 안내판
날씨가 따뜻한 탓인지 토종벌꿀도 활동을 시작하고
이곳에도 오미자 재배지가 꽤나 많이 보인다.
우리나라 최대의 오미자 재배지인 문경 동로면 황장산 아래의
기후와 비슷한 모양이다. 지형 형태도 비슷해 보인다
장각동에 내려와서도 2km를 넘게 도로를 걸어 내려서와야 오늘의 하산 지점을 맞는다.
사진 몇장 건질려고 하다보니 좀 뒤떨어진다.
동료 산꾼들은 먼저 내려와 하산주를 마시면서 즐건 시간을 가지고 있다.
차에 베낭을 내리고 인근 게울에서 간단하게 땀을 딲아내고 나 역시 그 자리에 동참한다.
金蘭停과 안내석(15:40)
이곳에는 멋진 정자와 장각(長覺)폭포가 멋있게 자리잡고 있다.
폭포는 그리 크지 않지만 정말 멋있다. 그런데 이곳에도 아마 펜션단지가
들어서려는지 온 천지가 불도저로 정지 작업을 하고 있다.
아마 저 속리산에서 내려오는 맑은 물도 조만간 보지 못할까 걱정이다.
개발과 소득원 창출이라는 미명아래 깨끗한 환경이 사라질까 걱정이다.
자연은 한번 홰손되면 복구하는 시간이 엄청나게 길고 비용도 만만찮은데...
인간의 오만과 탐욕은 어디까지인가?
아름다운 자태로 뭇 사람들을 유혹하는 장각폭포의 모습
한남.금북정맥 구간 완주를 기원하는 기원제를 지내고...
152km의 거리를 무사하게 할 수 있도록 山神님에게 잔 한잔을 올리고
한 구간을 마무리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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