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산행일자 : 2011. 07. 24
○ 산행날씨 : 아침부터 쏟아지는 비 때문에 고생이 많았음
오후는 개였다 비가 오락가락
○ 참석인원 : 나홀로 산행
○ 산행거리 : 도상거리 :23.4 km / G.P.S거리 : 26.7km / 9시간 10분 소요
○ 산행코스 : 각원사-유왕골고개-359.6봉-성불사 갈림길-382봉-382봉
도라지 고개-태조산-365봉-아홉싸리고개-유랑리고개
장고개-전망바위-배넘어 고개-취암산-182봉-동우아파트
경부고속도로-216봉-155봉-돌고개-한치고개-굴머리고개
애미기 고개-고려산-황골도로-고등고개-경부고속전철-
전의산 연수원-IMG골프장-덕고개
○ 소 재 지 : 충북 천안시 동남구, 목천읍,성남면,연기군 소정면,전의면
또 한달이 지나간다.어제는 大暑이고 오늘은 여름의 중앙에 들어선다는 中伏이다.
어른들이 나이 40에는 세월이 시속 40km로 가고 50에는 80km, 60에는 120km로 간다는
말의 의미를 이제사 알 것만 같다. 세월의 빠른 의미를... 하루종일 무더운 날씨땜에
토욜에 일하는 사람들한테 작업이 끝난 후에 삼계탕에다 소주 한잔을 사주고나서 낼
산에 간다고 권하는 술을 안 먹을 수도 없고 소주+맥주를 섞어서 3잔을 마시고 나니
더워서 도저히 잠을 이룰 수가 없다. 새벽에 나가기에 9시 반에 잠자리에 들었는데 잠은
오질않고... 새벽 1시에 들어오는 아들땜에 잠은 완전히 달아나고...
요즘 푹빠진 소설 태백산맥의 삼매경에 몰입한다. 애 방에서 자꾸만 마른 기침 소리가 들린다.
다음 달이면 대학 졸업인데 아들도 진로 때문에 고민이 많은 모양이다.
아들 생각은 도장을 하나 차려서 운영할 생각이지만 아빠는 그 분야에서 3년정도
경험을 쌓은 후에 하는 했으면 좋겠다고 의견을 제시하니 고민에 고민을 거듭한다.
그래도 우리 아들 딸한테 늘 고맙다. 다른 건 몰라도 예의 바르고 말썽없이 반듯하게
성장해준게 늘 고맙고, 아빠가 능력이 부족해 완벽하게 뒷바라지를 못해 준게 미안하고...
딸방에도 아직 불이 켜져있다. 딸도 2달째 지도교수의 프로젝트 보조에 바쁜 모양이다.
그것 끝나면 졸업작품 전시회 준비땜에 바쁜 모양이다. 아뭏든 고맙기만 하고...
새벽 4시에 베낭 준비를 마치고 버스를 타고 고속터미널로 향한다.
오늘 산행구간의 지도
서울 고속버스 터미널(06:00)
나 홀로 산행은 아무리 완벽하게 준비를 하여도 항상 뭔가 2%로가 부족한 느낌이다.
그리고 베낭 무게를 가급적 줄이려고 애를 쓰는데도 산행 종료후에 갈아 입을 옷등을
베낭에 넣고 가야하기에 거의 무게가 같은 느낌이다. 집에서 새벽 4시반에 버스를
타고 고속터미널에 가서 아침 식사를 하고 점심 식사 준비로 김밥 한줄을 싸달라고 하니
가격이 2,500원이라고 한다. 에이 이~보슈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김밥에 금가루 들어
간것도 아닌데 2500원이 뭐요 그만두소, 기분이 별로다. 한달전 동서울 터미널 식당에선
1,500원짜리가 기가 막히게 맛있던데 천안가서 사지하고 그냥 차에 오른다
서울발 천안행 06시발 버스를 타자마자 깊은 잠에 빠진다. 일어나니 천안인데
서울에서 오지 않던 비가 억수같이 쏟아진다.
천안 고속버스 터미널(07:00)
빗줄기는 굵어지는데 김밥집은 보이질 않는다. 아무리 찾아봐도...
할 수 없이 햄버거집에 들러 햄버거 2개를 사서 베낭에 넣고 길을 건너
버스 정류장으로 간다.( 사실은 햄버거를 먹어본 기억이 별로없다. 햄버거,
피자는 입에 대지도 않는 토종 식단에 길이 들여져 있어서...)
천안이라는 지명은 천하대안(天下大安)이라는 준말로 하늘아래
가장 살기좋은 고을이라는 뜻이다. 천안 삼거리는 조선시대부터
한양에서 경상도와 전라도로 내려가기 위해서 반드시 거쳐야하는
대로로 삼남대로의 분기점 역할을 하는 곳이다. 지금은 그 흔적조차
없으나 그 옛날에는 큰 장터와 주막이 즐비한 번성했던 곳이라고 한다.
때문에 삼남의 관문인 천안을 보면 삼남의 형편을 알 수 있었다고 한다.
천안이 편안해야 나라가 편안하다고 해서 지명을 天安이라고 했단다.
● 애틋한 사랑 전하는 천안삼거리
천안삼거리는 충청과 호남, 영남이 만나는 삼남의 요로다. 어사 박현수와 기생 능소의 애틋한
사랑이 전해지는 곳이다. 이 전설은 옛날 홀아비 한 사람이 '능소'라는 어린 딸과 어렵게 살다
변방의 수자리로 가는 것으로 시작된다. 변방으로 떠나던 그는 천안삼거리에서 버드나무
지팡이를 땅에 꽂고 "이 지팡이에 잎이 필 때 이곳에서 다시 만나자."며 딸을 주막에 맡겼다.
능소는 이곳에서 기생이 돼 아비를 기다리다 과거 보러 가던 전라도 선비 박현수와 인연을 맺는다.
박현수는 장원급제 후 어사가 돼 내려오다 능소와 재회한다.
이때 '천안삼거리 흥∼ 능소야 버들은 흥∼'하는 흥타령을 불렀다고 한다.
이 지팡이가 자라고 퍼져 이곳에 버드나무가 많다고 전해진다. 천안삼거리에서 가지를 휘휘
늘어뜨리고 있는 수양버드나무는 이래서 능소버들이나 능수버들이라고 따로 부르고 있다.
'다툼이 없으니 온갖 비방 면하겠소/재주스럽지 못하니 헛명예 있을소냐' 홍대용은 자명종을 만들고
'지구는 돈다.'고 생각한 북학파의 선구자였다. 이 시비는 1983년 4월 건립됐다.
각원사 가는 버스(07:10~25)
잠시 후에 각원사 좌불상가는 24번 버스가 도착하여 버스에 오르는데 차에 아무도 타지않아
나홀로다. 그러다보니 버스기사가 중간에 들려야하는 아파트 단지를 들리지 않고
그냥 종점으로 내뺀다. 지난구간 내려온 그곳에서 베낭 점검을 한다. 일기예보에 국지성
소나기가 오는데 천안지역은 예외라는 일기예보만 믿고 레인코트를 베낭에서 빼놓고
온게 남감하다. 다행히 비상용인 1회용 우의 하나와 우의 바지가 있어서 천만 다행이다.
각원사 참배를 하고 입을 요량으로 우산을 쓰고 각원사로 향한다.
청동대불 광장에서 내려다 본 각원사(覺圓寺)
태조산은 천안의 진산으로 유량천, 산방천의 분수령을 이루고 있고
정상에 오르면 천안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다. 고려 태조 왕건이 이 산을 중심으로해서
군사 양병을 했다는 설에 인연하여 '태조산'이라는 이름이 지어졌다고 전해온다.
대한불교 조계종 각원사는 남북통일을 기원하기 위해 재일교포 각열거사 김 영조님의 시주를
중심으로 불교신도들과 많은 사람들의 정성어린 성금들에 의해
1977년 5월 9일 이곳 태조산 중봉에 봉안하였다.
청동대불 높이15m, 둘레30m, 귀길이175cm, 손톱길이 30cm, 무게 청동 60ton의 청동좌불은
태조산 주봉을 뒤로하여 서향을 바라보며 자비의 미소로 많은 중생들을 맞이하고 있다.
대좌불 좌측에 국내에서 규모가 가장 큰 대웅보전과 요사체를 비롯한 사찰건물이
짜임새있게 배치되어 많은 사람들의 기도처로 유명하다.
각원사 청동대불
1977년에 남북통일을 염원하면서 조성한 부처님이다. 비가 오는데도 불구하고 몇명의 불자들이
향을 들고 대불을 돌며너 간절히 염원을 한다. 나도 오늘 산행을 무사히 마치게 해달라고
염원을 하면서 高頭三拜의 예를 올리고 大雄寶殿으로 향한다.
칠성전
전각의 이름이 ‘殿’ 으로 한것이 좀 특이하다 명부, 나한, 관음은 ‘殿’으로 하지만 칠성,
독성, 산신을 모신 전각들은 ‘閣’으로 하는데 이곳은 ‘殿’으로 해놨다.
각원사 대웅보전
오늘이 음력으로 24일이니 관음재일이다. 그래서 그런지 대웅전엔 관일재일 법회준비로
이른 아침부터 부산한 느낌이다. 마루바닥에는 좌복과 법요집이 깔려있다.
베낭을 벗고 들어가 부처님에게 禮를 올린다. 산행을 하면서 오랜만에 여유를 부린다.
이게 나홀로 산행의 여유로움 아닐까. 12년만에 들린 각원사의 감회는 남다르다.
각원사 대웅보전 삼존불
40분간의 도량참배를 마치고 해후소에 들려 느긋하게 버리는 즐거움을 만끽하고
산행에 나선다. 여기는 어프로치 구간이 800m이기에 지난번 내려온 곳에서 우측으로
올라 관음석상을 친견하고 다시 오늘의 날머리인 유황골로 향한다.
오름길에는 여기저기 돌탑들이 조성되어 있고 조그만 불상과 탑들도 보인다.
암벽에 각인되어 있는 불상
유왕골(08:30)
빗줄기는 자꾸만 굵어지고 1회용 우의속으로 벌써부터 빗물이 들어오기 시작한다.
그러나 길은 참으로 편하다. 그러나 산악용 바이크가 다닌 자국으로 인해 생긴
웅덩이에 고인물로 인해 걷기는 상당히 불편하다.
유왕골 사랑의 쉼터 정자
성불사 갈림길(08:40)
성불사(成 佛 寺)
문화재 자료 제10호...사찰의 규모에 비해 역사적 가치가 있는 문화재가 많이 있다.
고려 태조 왕건의 명에 의하여 도선국사가 창건한 사찰로 태조산 가운데 가장 깊은 골짝에 있다
성불사는 백학의 전설이 전해 내려오는 곳으로 고려 태조 4년(921년)
학 3마리가 내려와 태조산 산중턱의 바위를 쪼으기 시작하여 신비로운
마애불상이 모습이 드러낼 즈음 어디선가 나뭇꾼이 나타나는 바람에
학들이 놀라 조금 남은 마애불상을 완성하지 못하고 하늘로 날아가
버렸다고 한다. 이 사실을 알게된 풍수지리의 대가인 도선국사가 학들이
꿈을 이루지 못했음을 상징하여 성불사(成不寺)라고 절 이름을 지었다고 한다.
그 후 세월이 흘러 이곳을 찾는 불자들에 의해 ‘이루지 못한 꿈’ 의 절의 이름은
‘성불하는 도량’이라는 뜻의 성불사(成佛寺)로 바꾸어 오늘에 이르렀다고 한다.
성불사 마애석가삼존 16나한상및 불입상(유형 문화재 제169호)
대웅전위 산자락 바위 양측면에 마애불이 새겨져 있는데
전면에는 겨우 형체를 알아 볼 수 있는 불입상
우측면에는 석가삼존과 16나한상이 각각 부조로 새겨져 있다.
나한상[羅漢像]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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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라지고개(조라지고개:09:00)
유량동에서 천안군 목천면 덕전리 유왕골로 넘어가는 고개로
꼬불꼬불 굽어진 고개길이 길고 험하여 넘어가는 도중에 졸음이
온다고 하여 조라지 고개다.지금은 도라지고개로 불리우고 있다.
신작로가 개설되기 이전에는 목천지방 사람들이 이 고개를 넘어 천안에
이르렀던 대로였으나 지금은 한적한 오솔길이 되었다.
태조산 오름길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왕자산의 주산으로 천안의 진산으로 표기 여기서 왕자산이란
성거산,태조산으로 이어지는 산줄기가 왕(王)자와 같다는데서 왕자산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태조산(太祖山:422m:09:15)
멀리에서 바라보면 둔삼각형 모양을 이루고 있으며 천안의 진산(鎭山)이다.
936년 태조 왕건이 후백제를 공략하려고 천안에 군사를 주둔할 때 태조곁에
있었던 術師 예방(倪方)이 태조와 함께 이 산에 올라 천안의 지형지세를
살펴보고 오룡쟁주의 형상이라고 태조에게 간했다는 산이다.고려태조가
오른산이라고 하여 태조산 또는 태조봉이라고 한다.
태조산 정상에서 우측으로 내려가는데 게속해서 내리는 비로인해
불편하기가 그지없다.
좌측에는 지식경제부가 우측에는 교보생명이 자기구역 영역표시로
철조망을 쳐놓는 바람에 불편하기 그지없는 답답하기만 하다.
그래 자기 땅에 철조망 쳐놓는건 이해는 하지만 그래도 그렇지...
365봉 삼각점(09:30)
전망 좋은곳(09:40)
전망 좋은곳에 바라본 천안시가지는 이렇게 안개만 자욱하다
아홉사리고개(九曲峙:09:55)
유량동에서 목천면 삼방리(三方里)로 넘어가는 고개. 크게 아홉번
구비져 온다고 아홉사리고개다. 신작로가 개설되기 이전에는 매우
큰길로 목천지방 사람들이 천안에 오려면 이 고개를 넘나들었다.
국수나 새끼를 사리듯 꼬부라진 고개라고 해서 아홉사리 고개라고 부렀단다.
유량동고개(10:00)
고려태조 왕건이 936년에 후백제의 신검(神劍) 양검(良劍)을 정벌하기
위하여 천안에 군사를 주둔시키면서 8만여명분의 군량을 쌓아두었던
곳이라 하여 글자 그대로 유량동이다.이곳에서 머물렀던 왕건은 후백제의
군사가 북상하여 올 줄 알았으나 북상하지 않고 경상도 선산(善山) 지방에
포진하므로 그곳에 내려가 격전을 벌린 끝에 후백제를 멸망시켰다.
고려가 후삼국을 통일하고 국토의 재통일을 기하는 전진기지의 중심지
역할을 하던 곳이 유량동이다.
이곳 아래로는 천안시 동남구 유량동과 목천읍 지산리를 잇는 2차선 도로가
지나가는 곳으로 위쪽으로 동물통로를 만들어 정맥길을 잇고 있는데 내가
다닌 곳중에 동물통로를 가장 완벽한 것으로 보인다.
비는 그칠줄을 모른다. 계속 도로에는 흙탕물이 내려오고... 등로를 봐서는 꽤나
많이 다닐법도 한 등산로이건만 오늘 산행중에 유일하게 사람 한명을 구경한다.
아마 이 동네 사람인가보다. 우산 하나만 달랑쓰고 길을 걸으면서 인사를 건넨다.
장고개(10:20)
목천 지산리에서 천안 구성동으로 넘어가는 옛고개인데
천안 장 보러 다니던 고개라 장고개란 이름을 얻었다고 한다.
가스 안전교육원 삼거리(10:25)
전망바위(10:33)
배넘어고개(10:42)
샛골(鳥洞)에서 목천면 지산리로 넘어가는 고개. 전설에 의하면
천지창조때 큰 배 한척이 이 고개를 넘어 이 빠진산(驚岩山)을 지나다
산 정상부에 부딪쳤다는 이야기가 있다. 배(舟)가 넘어갔다고
배넘어고개라 하나 사실을 고개 마루턱에 오래 묵은 배나무가 있어
배나무고개가 변해서 배넘어고개가 되었다는 설이 유력하다.
돌탑봉(310봉:10:55)
배넘어 고개를 지나면서 꽤나 고도를 높인다. 310봉이 높냐고 웃을런지 몰라도
밑에 치고 오르려면 상당히 힘이든다. 후덥지근한 날씨에 우의까지 입엇던니
팬티가 젖어 버렸는지 사타구니가 쓰려온다. 이제 배도 고파오기 시작하고 하여
정상에서 휴식을 겸한 햄버거 하나를 꺼내서 먹고나니 조금은 살것같다.
이곳 정상은 전망대 역할을 하는 곳이라 천안시내가 훤히 보이는 곳이지만 자욱한
안개로 인하여 20m 앞도 보이질 않는다. 10분간의 휴식을 취하고 다시 길을 떠난다.
취암산(鷲 巖 山:321m:11:15)
천안시 목천읍에 있는 취암산은 금강의 지류인 병천천이 시작되면, 곡교천과 분수령을 이룬다.
두개의 바위봉우리가 마치 수리처럼 생겼다 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경암 또는 취엄산이라고도 하며,
두 봉우리가 이 빠진 것처럼 생겼다하여 이빠진산이라고도 부른다.
산 이름과 관련된 전설에 따르면,
옛날에는 이곳이 바다여서 사기를 가득실은 배가 넘어 가다가 산꼭대기 바위에 부딪쳐 배에
실었던 사기그릇이 깨지는 바람에 지금도 사기조각이 뒹굴고 있다하여 배너머산이라고도 부른다.
바위 중턱에 용이 승천하였다는 용샘이 있어서 옛날에는 가물이 들면 이 샘에서 기우제를 지냈으며,
산기슭에 있는 천연동굴 용혈 앞에는 조선시대까지 가물이 들면 기우제를 지냈던 제단 터가 남아 있다
319.8봉 삼각점(평택 464/1991재설)
취암산을 지나니 아랫마을에서 올라오는 등산객이 꽤나 많은지 중간중간에
운동기구 시설들이 많이 설치되어 있고 등산객들의 안전을 위해 로프 시설을
설치해놨다. 가끔 멋진 암릉도 나타나지만 주위의 안개로 인하여 아무것도
볼 수 없는 것이 안타깝기만 하다. 조금 내려오니 마치 우리동네 뒷산인 대모산처럼
이리저리 여러군데로 길이 나있는 걸로 보아 아침산책하는 사람이 많은가 보다.
편안한 내림길로 들어서니 여태껏 잘 보이지 않던 꼬리표도 보이더니 동우 아파트가
앞길을 가로 막는다. 동우 아파트 113동을 끼고 우측으로 접어들면 묘지 몇기와
커다란 아카시아 나무들이 꽤나 많다. 조금후 벌목을 한 채 철조망을 막아놓은 철조망을
지나니 철계단이 나타난다.
혼자 다니는 산꾼에겐 등대같은 존재인 시그널
이 철조망을 따라 내려오고...
눈에 거슬리는 아파트
경부고속도로를 타고 올라오다 목천I.C 지나면서 만나는 아파트가 이 아파트였나?
산보다 높이 솟아오른 아파트 지붕이 눈에 상당히 거슬렸는데 오늘 정맥길을
타면서 또다시 본다. 건물이란 자연과 어울려져야 멋지게 보이는데 자연에 역행하는
모습이 흉물스럽다. 설계자가 누구인지... 저런걸 감안않고 설계한다는 건 자질이
좀 의심스럽다. 3개층만 줄여도 뭣진 조화일텐데...
철계단(11:50)
마루금에서 철계단으로 뚝 떨어지니 경부고속도로와 나란히 지나는 21번 국도가
나타난다. 목천에서 천안을 잇는 도로로 교통량이 꽤나 많다. 고속도로가 정맥길을
잘라 버리는 바람에 부득히 우측으로 기수를 돌린다.
세광아파트 버스 정류소(12:00)
도로를 따라 오르니 조그만 공원이 지나고 좌측에는 G.S 주유소가 나오고
조금후에 세광아파트 버스 정류소가 나타나고 다시 천안쪽으로 걸어간다.
천안가구단지(12:10)
이곳에서 길을 건너 고속도로 지하통로를 지난다.
고속도로 지하통로 지나서 좌회전 하면 고속도로를 끼고 다시 남쪽으로 향한다.
우측에 자동차 정비공장이 있고 경동택배 물류창고가 나오고 조금 지나면
동원시스템즈라는 공장이 나타난다.
좌측에 경부고속도로가 지나가고...
산꾼의 이정표가 되고있는 동원시스템즈 공장(12:40)
우측에 동원시스템즈 공장을 끼고 좌측에 ‘ 좌측에 숲속에 미래가 있다’라는 표식을
따라 숲길을 헤치고 가면 꼬리표가 보이고 잠시후 능선이 나타난다. 다시 조금 지나니
편안한 등로가 나타나는데 길이 편안하고 비가 그친 탓인지 잠이 쏟아지기 시작한다.
216봉 삼각점(12:50)
이곳을 지나가는데 좌측에 농장이 있는지 가축분뇨 냄새로 인해 악취가
상당히 심하다. 그러는대도 잠이 계속 쏟아진다. 눈을 감고 걸으면서
10분정도는 족히 잔것 같다. 그런데 갑자기 이마에 별이 번쩍거린다.
도로에 넘어진 나무에 졸다가 머리를 갖다 막아버린걸 ㅋㅋㅋ
어찌나 아프기도 하고 갑자기 이마에 혹이 하나 생겼다. 내가 생각해도 우습다.
돌고개(石峴:13:30)
石峴이라고도 부르던 것을 순수 우리말로 돌고개라 하며 목천면 도장리와 용원리를 이어주는
오래된 고개이다.돌고개 밑의 마을고개도 돌고개라 하는데 고개 부근에 돌이 많아 얻은
이름이란다. 이곳에는 예성이라는 회사에서 전원주택 공사를 하는지 산 허리를 까뭉게서
흉물스럽다. 절개지를 따라 오르는데 마사토라 상당히 미끄럽다. 다시 비줄기는 굵어지고...
능선에서 바라본 천안시 성남면 용원리의 모습
좌측에 도장리의 모습이 보이고 빗줄기는 조금씩 가늘어진다.
그러나 숲이 꽉 차서 빗물로 젖은 옷때문에 추위를 느낄 정도이다.
한티고개(14:10)
대티고개,한티고개라고도 하는데 한티말 사람들이 목천면 도장리로 넘나들던 고개이다.
조그만 화물차가 드나들 정도로 길은 넓다. 등로의 고도차가 없어서 그냥 편안하게
길을 걷는다. 잘 꾸며진 묘지들이 여러기가 나타나고 길가의 묘지 상석위에서 하나 남은
햄버거와 음료수를 마신다. 아까 먹은 햄버거가 소화가 잘 되지 않은 탓인지 배는
더부룩하지만 그것 이외는 먹을것이 없으니 달리 방법이 없다. 10분간의 휴식을 취하고
다시 길을 떠난다.
한 눈에 봐도 명당자리임이 느껴지는 멋진 묘소
저 나무는 뭣이 저리도 좋을까. 저렇게 끌어않고 죽고 못사니 말이다.
굴머리 고개(14:40)
천안시 상남면 대정리와 목천면 소사리를 이어주던 옛고개이다
고개를 지나 길게 가다가 한차례 제법 가파르게 밀어 올려 '245.1봉'에 올라 우측으로 꺾인다.
다시 봉우리 하나를 넘고, 잠시후 직진길을 버리고 우측으로 90도 꺾여 나가야 한다.
에미기고개(14:55)
갑자기 뚝 떨어지는 도로가 나타나는데 이곳이 에미기고개란다.
천안시 소사리와 연기군 고등리를 연결하는 콘크리트 포장도로이며
산불안내방송시설이 있고 좌측의 농장에서 요란한 음악소리가 들린다
여기서부터 천안시를 벗어나 연기군으로 접어든다.
고려산/高麗山(307.2m:13:15)
셀카로 인증샷을 하나 남기는데 베낭이 넘어가면서 카메라 앵글이 틀어져 폼이 영 아니다.
이곳은 연기군 전의면과 소정면의 경계의 산으로 이곳에서 가장 높은 산이 고려산이다.
산 정상에는 산성이 축조되어 있는데 이 산성을 高麗山城이라 부른다.
이 산성에 대하여 『여지도서(與地圖書)』의 전의현 산천조에 기록이 있고,
또 『대동지지(大東地志)』전의 산수조에 「高麗山 : 西十里」라 하여
고려산이 전의현에서 서쪽으로 10리 지점에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 『전의현읍지(全義縣邑誌)』 산수조에는 「古麗山 : 縣北十三里 上有祈雨祭壇」
이라 하여 고려산이 전의현에서 북쪽 13리에 있으며 기우제를 지내던
제단이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 산을 고려산이라 부르는 것에 대하여 어느 학자는 고구려의 준말로
고구려가 남쪽까지 내려 왔을 때 이곳에까지 내려와 성을 쌓았으므로
'고구려 산성'이라 부르다가 줄여서 '고려산성'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주장하기도 하였다.이 산성은 길이가 250m의 퇴뫼형 산성으로
성내에서는 삼국시대 토기편과 기와편이 출토되고 있다.
고려산성 안내판
애미기고개에서 고려산으로 올라오니 습한 날씨에 비를 맞은 탓에
몸에 땀냄새사 많이 난 탓인지 계속해서 벌레들이 몸에 붙여 귀찮게 군다.
이제 비는 완전히 그치고 주변에 산들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한다.
조금 지나니 고려산 정상 돌무더기가 나타나고 고려산이라고 스텐 이정표를
걸어놨다. 그 옆에는 멋진 정자도 있도 산성 이정표도 있다.
그런데 산 정상에는 모기떼가 새카맣게 많이 있다. 팔뚝에 붙은 모기를
손바닥 한번 내리치는데 대여섯마리가 나가 떨어진다. 얼른 도망치듯
산길로 내뺀다. 아야목으로 내려가는 길은 콘크리트로 된 계단으로
만들었는데 아주 급경사이다. 5분 정도 내려오니 아야목 가는 이정표가 나타난다.
아야목고개 갈림길(15:20)
고려산성 아래 마을을 아야목이라 부르는데 그 이유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이 산성에서 전투를 하던 병사들이 성안의 우물이 모두 말라 갈증으로 괴로워하다가
더 이상 참을 수 없게 되어 하늘에 기우제를 지냈다.
정성을 다하여 제를 지내자 하늘에서 비가 내려 모두들 춤을 추고 기뻐하면서
그 빗물을 받아 마셨는데, 갑자기 마신 물로 목구멍이 따가워서 "야야 목" "아야 목" 하고 외쳤다
하여 마을 이름을 아야목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아야목 마을의 전경
황골도로(15:30)
절개지가 높고 가팔라서 낙동정맥길에 경북 영양군 수비면에 있는
에미랑재 연상케 할 정도로 깊게 절개지로 되어 있다.
좌측에 과수원을 지나 밤나무를 지나니 편안한 등로가 나타난다.
이어 다시 고도를 높이는데 이곳은 등로가 완전히 걸레조각차람 보인다.
산악용 바이크가 지나간 자리가 엄청나게 파여있다. 취미 생활도 좋지만
이렇게 심각한 환경파괴는 한번쯤 생각해야 할 문제다.
이곳 연기군에서는 관심을 좀 가졌으면 한다.
비온뒤 달팽이님은 소풍을 가시나... 당신에게 느림의 美學을 배우고 싶다.
고등고개(15:50)
예전에는 三南大路가 있어서 많은 행인이 넘어 다닌 고개다.
선비들이 흥얼거리는 시조가락에 들새가 잔잔하였다는 옛 시조의 일절에
등장할 만큼 유명한 고개다.'고등이재''고등현(高登峴)'이라고도
부르며 고등리에서 대곡리로 넘어가는 고개이다. 우측에는 벌목을 한 상태이고
저 아래 고등리가 보인다.
고등리는 백제때부터 큰 골짜기여서 북방을 막는 山城이 있었던 지역이다.
높고 곧은 큰 골짜기가 있는 산성아래 부락이 생기면서부터 "곧은골"
"고등(高登)이"라 부르게 되었다. 예전에는 漢陽과 통하는 三南大路가
여기에 있어서 많은 사람이 오가는 고장이기도 하다.
산악용 바이크로 인해 만신창이가 되버린 고등리 고개
고등터널 위(16:00)
이 산 아래로 KTX 열차가 지나가는 고등터널이 있다.
왠 넘의 열차가 자주 지나가는 지 엄청나게 시끄럽다.
이제 서서히 산행을 마무리해가야 하는 시간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가야할 길이 꽤나 남았는데도 자꾸만 체력이 달리는 것 같다.
휴식도 산행의 일부이기에 10분간의 휴식을 취한다. 자꾸만 사타구니가
쓰려서 바지와 웃도리를 벗어 평상에 널고 팬티만 입고 옷을 말린다.
시원한 바람이 고맙기만 하고... 시간만 있으면 30분만 잠을 자면 좋으련만.
전의산 연수원(16:30)
고등터널 위에서 꿀맛같은 10분간의 휴식을 즐기고 여유로운 걸음으로 가니
잠시 후 등산로와 비로봉이라는 표지판이 나온다. 우측 등산로로 가지 않고
직진하여 비로봉 쪽으로 가니 갑자기 길이 없어지고뚝 떨어져 아래로 가는 길로
우회를 하겠끔 해놨다. 이런 정맥길을 가로 막다니... 미끄러운 길을 내려와
다시 올라서니 넓다란 주차장이 나타나고 개쉬끼 2마리가 잡아 먹을듯이 짖어댄다.
전의산 정문을 나와 이곳이 뭐하는 곳이냐고 입구 살림집 같은데 있는 여자분에게 물어
보니 연수시키는 곳이라고 얼머부린다.뒤가 구린것처럼...
인터넷에 “전의산 연수원”을 검색을 해보니...
성령시대 구원자로 이 땅에 임하신 재림그리스도 안상홍 하나님과 새 예루살렘 하늘어머니을
믿고 있으며 국내 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 있는 모든 하나님의 교회가 다 같은 동일한 하나님의 교회 입니다.
성경의 모든 가르침대로 행하고 있으며 성령과신부 되신 하늘아버지 안상홍하나님과.새 예루실렘 하늘
어머니을 믿고 있는 하나님의 교회 입니다.천국 복음이 동방 땅 끝 땅 모퉁이인 대한민국에서 시작해서
전세계에 전파되고 있는 곳이 하나님의 교회라고 되어 있다. 난 기독교쪽은 잘 모른다.
하늘 할아버지 안상홍하나님도 처음 들어보고... 부디 사회의 소금이 되야지 이상한
교리를 내세워 民草들을 혹세무민 하지 말았으면 한다.
하도 개쉬끼가 짖어대서 연수원 안으로 들어 볼 생각도 못하고 정문 앞으로 나오니 우측
조금만 텃밭 옆으로 꼬리표가 붙어있고 희미하게 등로가 보인다. 이곳은 관리가
별로 되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걷기에 부편할 정도는 아니다.
골프장 클럽 하우스 가기전의 멋진 느티나무
20분간 내리막길을 지나고 나니 뭣진 느티나무 한그루가 보이고 이윽고
마루금은 IMG C.C 주차장으로 내려선다.
비가 온 뒤임에도 불구하고주차장에는 운동하러 온 차량들이 꽤나 많이 서 있다
IMG C.C 클럽하우스(16:50)
클럽 하우스를 끼고 잘 정리된 도로를 따라가면 관리동과 인도어 연습장이
나온다. 좌측에 연습장입구를 지나고 길게뻗은 도로를 한차례 지나고...
정문쪽 도로를 따라 우측으로 휘어지는 지점에서 좌측 숲길로 들어서 수로따라
오르막 진행하면 원형삼각점이 있는 무명봉을 지나고...간간히 나타나는
간간히 보이는 시그널이 왜 그리 반가운지...안성이공/파주윤씨 합장묘를 지나니
좌측에 과수원, 우측에 축사건물, 앞쪽에 1번국도가 조망되며 덕고개로 내려선다
IMG C.C 필드의 모습
덕고개(17:30)
덕고개의 유래
목포에서 출발하여 서울, 문산을 거쳐 신의주까지 가는 1번 국도와
경부선 철도와 고속철도가 지나는 연기군 전의면 유천리는 교통의 요충지다.
인근을 지나는 경부고속도로까지 보태면 예전의 삼남대로가
전혀 새삼스럽지 않다. 오른쪽 유천리 방향으로 조금 내려가면
길 건너편에 키보다 큰 '덕고개' 표지석이 서 있다.
9시간 10분간의 긴 여정을 끝내고 베낭을 내린다.
주위에 흐르는 조그만 개울물에 신발만 닦고 수건으로 몸을 닦은 다음
옷을 갈아 입으려니 베낭속에 옷이 다 젖어 버렸다 참으로 낭패다
하는 수 없이 젖은 옷을 입고 지나가는 차를 태워 달라고 히치를 시도해
보려다가 이것도 남의 민폐일 것 같아 포기하고 700번 버스를 기다리는데
30분이 지나도 오질않아 마침 빈 택시가 지나가기에 택시를 타고 천안
시외버스 터미널로 향한다. 남천안I.C를 지나니 또 비가 오기 시작하고
버스 터미널 올 즈음에는 폭우로 변한다. 버스를 타기 위해 백화점 건물에
들어서는데 젖은 옷으로 인해 갑자기 오한이 오면서 온몸에 추위가 엄습해온다.
차표를 끊고 따끈한 짬봉 한그릇 먹으려니 줄이 길게 서있어 포기하고
자판기에 커피한잔으로 몸을 녹이고 서울가는 차량에 오르는데 박 태환이
상하이에서 열린는 세계 수영 선수권 400m에서 우승하는 장면이 나온다.
19시 20분발 서울행 버스
천안발 서울행 버스를 타고 서울로 향하는데 자꾸만 추위는 더 엄습해온다.
하는 수 없이 에어컨을 잠그고 잠을 청하는데 잠은 오질 않고 차가 밀리지
않는 바람에 1시간만 남부 터미널에 도착하여 집에와서 샤워를 끝내고
맥주 한잔을 하고나니 조금은 살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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