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산행일자 : 2011,11.06
○ 산행날씨 : 짙은 안개, 오전 11시부터 오후 2시까지 꽤나 많은양의 비내림
○ 참석인원 : 나 홀로 산행
○ 도상거리 : 22km / G.P.S 거리 25.8km(어프로치포함) / 8시간 50분 소요
○ 산행코스 : 곡두터널-곡두고개-바위지대-646봉-태화산(630봉-무성지맥 분기점
갈재고개-480봉(H)-430봉-402봉-395봉(H)-철탑-311봉-각흘고개-351봉
393봉-구만봉-봉수산 갈림길-봉수산-460봉-340봉-천방산 갈림길-천방산
403봉-부엉산-오지재-극정봉-400봉-명우산-절대봉-불운리고개-340봉
서재-불모골 고개-벌목지대-260봉-292봉- 차동고개
○ 소재지 : 충남 천안시 광덕면/아산시 송악면/ 예산군 대술면, 신양면/공주시 정안면 유구읍
오늘 산행구간의 지도와 고도표
2011년11월 5일 토요일 서울의 기온이 25.9도 이었다고 한다.
기상관측사상 104년만에 11월의 기온중에 가장 높았다고 하니
모든게 정상이 아니다. 국회란 곳은 한.미간의 FTA다 뭐다 하면서 맨날 월급받고
쌈박질만 하면서 民草들은 眼中에도 없고 여.야 할것없이 자기이익만을 위해
주판알을 굴리고 있고 지난번에 보궐선거에 당선된 서울시장은 무상급식. 등록금 반값.
등등 복지만을 외치는데 ‘세상에 공짜 점심이 어디있소’ 함 생각해 보시요
내 지갑에 돈 꺼내 주는것도 아니고 결국 서울시민 세금으로 충당해야 하는데
이렇게 힘든 삶 또 얼마나 더내야 한단 말이요. 물론 어려운 분은 도와줘여겠지요
허나 옛말에 가난구제는 나랏님도 못한다고 하지 않았소... 무조건 지원할게
아니라 가난을 벗어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더 중요하지 않을까요?
지금 세계적인 경제적 위기를 몰고온 그리스 사태, 이탈리아, 스페인, 아일랜드가
경제적인 문제보다는 정치적인 문제 때문에 위기를 겪고 있다는 걸 나으리들이
더 알지 않소... 제발 뽑아준 민초들을 위해서 밥값 좀 하소... 요즘 이것저것 땜에
모리아퍼 미치겠소... 모든걸 잊어버리기 위해 산을 가기위해 밤 11시에 베낭을
메고 고속터미널로 향해 집을 나선다. 모든걸 잊어버리기엔 山情無限만큼
더 좋은게 있으랴... 원래에는 형제간끼리 영남알프스 능선을 타기로 하였는데
일기예보만 믿고 비가오니 가지 않겠다고 하니... 졸지에 낙동강 오리알이 된
기분이다. 할 수없이 동서울 터미널가서 표를 10% 손해보고 환불을 한 다음에
지난 7월말에 가고 가지못한 금북정맥을 이어가기로 하고 계획을 짠다.
금북구간 곡두고개에서 차동고개 구간이 도상거리가 22km라 아침에 가서는
도저히 힘들것 같아 밤 11시 30분에 천안가는 고속버스에 몸을 싣고 깊은 잠에 빠진다.
천안에 도착하여 찜질방에서 잠을 자고 새벽 5시에 광덕산가는 버스를 타려고
찜질방에서 새벽 4시반에 나와 24시 김밥집에 아침식사를 하고 김밥 2줄을 사서
베낭에 넣고 나오니 비가 쏟아진다. 천안 신세계 앞에서 서울의 버스시간 계산하고
버스 시간표를 보니 광덕사 주차장가는 버스의 첫차가 6시 50분이란다 참으로
난감하다. 기다릴 수 없어 택시기사에게 택시비를 물어니 만 오륙천원 정도라고 한다.
갑시다하고 택시를 타고 가는데 곡두터널까지 택시비가 21,000원이 나온다.
그런데 자기가 말실수를 했다면서 15.000원만 달란다... 이게 웬 횡재야, 양넘 지갑줏은
기분이다. 아뭏던 고맙다고 인사를 하니 어차피 자기도 새벽엔 손님이 없다고 한다.
지난번 내려온 길입구에서 산행준비를 하는데 6시20분인데도 아직도 컴컴하다.
서울 고속터미널(23:30)
집에서 나와 버스를 타려는데 마침 아들이 아파트 입구로 들어온다.
아들이 도곡역까지 차를 태워주는 바람에 11시 30분발 천안행 차를 타고
깊은 잠에 빠진다.
1시간만에 천안 고속버스 터미널에 도착하여 선답자들의 산행기에 자주 나오는
찜질방을 찾아간다. 천안역에서 약 10분거리에 있는데 뒷골목이라 잘 보이지 않는다.
허브시티 찜질방
찜질방에 도착하니 나이 지긋하신 분이 산꾼들이 자주 오는지 능숙하게
안내를 한다. 베낭이 들어가는 장락카를 소개하고 수면실은 어디가 조용하고
이런저런 설명을 한다. 사우나 욕탕에는 나혼자만 있다. 전세낸 느낌으로
샤워를 하고 수면실로 가니 토굴모양의 독실이 있다. 거기에서 잠에 빠진다.
찜질방에서 이렇게 깊은잠에 빠져보기는 처음이다 새벽 4시에 일어나 샤워를
하고 찜질방을 나와 인근 김밥집에서 식사를 한 다음 김밥 2줄을 사서 베낭에
넣고 나오니 갑자기 비가 쏟아진다.
천안 터미널 앞 버스 정류장(05:20)
서울에는 4시만 되면 버스가 다니는데 그걸 계산하고 버스를 타러 나와서 시간표를
보니 곡두고개 아래에 있는 광덕사 주차장가는 첫차가 06:50분이라... 난감하다
어쩔 수 없이 택시를 타야한다. 택시기사에게 요금을 물어보니 만 오륙천원이면
간다고 한다. 택시를 타고 곡두고개에 도착하니 6시가 조금 지났다. 택시 요금이
21,000원이 나왔다. 그런데 자기가 말실수를 한 탓인지 15,000원만 달란다.
그리 받아도 되겠냐고 물으니 어차피 그 시간에는 2시간을 기다려도 손님이 없다고
하면서 오히려 나에게 미안해 한다. 꼭 양넘 지갑줏은 기분이다.
어둠속의 곡두터널
곡두터널 입구(06:25)
지난 7월 31일에 이 고개를 내려온 이후 3개월이 지난후에야 다시 금북정맥 길을
이어간다. 다행히 비는 그쳤지만 어둠속에 내린비로 인해 어프로치 구간을 올라
가는데 벌써 빗물에 바지는 다 젖어 버린다. 해드렌턴에 몸을 의지하고 곡두고개에
도착하니 아직도 산속은 깊은 밤이다.
곡두재 (310m : 06:35)
호계터널 위에 공주시 정안면 주막거리에서 천안시 광덕면 광덕리 안심터로
잇는 비포장 1차선 도로. 곡두티라고도 하는데 고개가 높은 곳에 있다 해서
꼭두재라 부른다고 한다. 지도상에는 호계터널인데 현지에 와보니 곡두터널이라
해놨다. 이곳은 4차선 도로로 넓게 해놨지만 대중교통이 없어 접근에 어려움이 많다.
곡두고개를 넘어서면서 좌측은 공주시 정안면과 이별을 하고 새로운
유구읍을 만나고 우측은 천안시 광덕면과 이별을 하고 아산시
송악면을 만난다. 아산시는 이 순신 장군의 영정이 모셔진 현충사와
온양온천으로 유명한 곳이다. 우측에 있는 농장에서 개짖는 소리가 들린다.
광덕산 갈림길
광덕산은 천안시와 아산시의 경계에 있는 산임에도 불구하고 천안 광덕산으로만
알려져 있다. 그와 비슷한 일례로 흔히들 태백산하면 강원도 태백산으로 생각하지만
실은 태백산의 전체면적 70%가 경북 문경시 관할이라는 걸 아는 사람은 별로
많치 않음과 같은 맥락이 아닐까. 이런 산들은 산행 기점을 기준으로 잡은 탓일까.
광덕산도 산행기점이 거의가 천안시에서 시작된다. 광덕산은 조선시대에 세조(7대)
가 왕세자가 광덕산에서 사냥을 즐기곤 했으며 동쪽 기슭에 있는 광덕사는 신라
진덕여왕 시절 자장율사가 창건한 고찰이자 우리나라에 처음으로 전래된 호도나무가
있는 곳이 있는 광덕사가 있다.
광덕사(光德寺)
충남 천안시 광덕면 광덕산 남쪽 기슭에 있는 사찰로서 대한불교 조계종 제6교구 본사인
마곡사의 말사이다. 마곡사는 그 산너머 남쪽에 자리한다. 652년 자장이 당나라에서 가져온
불치 1과와 사리 10과, 금은자,화엄경,법화경,은중경 각 2부 등을 승려 진산에게 주어 새
도량을 연 것이 그 시작이라고 한다. 1464년(세조 10) 세조가 이 곳에 거동하였을 때 한계희에게
명하여 전지를 써 내렸는데, 위전를 바치고 각종 요역을 면제한다는 내용이었다. 그 뒤 28방(房)에
부속암자가 약 89개, 9개의금당, 80칸의 만장각, 3층으로 된 천불전은 불교도의 구경거리가 될
정도로 번창하여, 경기 ·충청 일대는 물론 전국에서도 손꼽는 대찰이 되었다.
그러나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 때 모두 불타 버려, 가까스로 대웅전 ·천불전만 중건되어 큰 절의
명맥만을 유지하였고, 1981년 대웅전 ·천불전 등을 신 ·증축하였다. 광덕사 고려사경인 보물 제390호
《금은자 법화경》(6책)과, 천불전의 대형 후불탱화 3점, 《금자사적기(金字事蹟記)》
《세조어첩(世祖御帖)》 등 문화재가 있다.
멋진 바위
오늘 산행하는 이 구간은 흔히들 빨래판 구간이라고 하는데 산행하기가
엄청나게 힘이드는 구간이다. 빨래판 구간이란 봉우리가 너무 많아 오르내리는
것이 마치 빨래판 같다고 하여 붙인 이름이다. 금북정맥 구간중에 차령고개에서
갈재고개까지 구간을 말하는데 오늘 내가 가는 곡두고개에서 갈재고개까지이다.
초반에 646봉까지 미끄러운 낙엽이 산꾼의 진을뺀다. 능선에 오르자마자 5분에
한번씩 봉우리를 오르내려야 한다. 오늘 산행을 하면서 크고 작은 봉우리를 적어도
6~70개는 오르내린듯 하다. 거기다가 바닥에 비에 젖은 낙엽이 더 괴롭히는 느낌이다
646봉(07:00)
30m 앞이 보이지 않을정도로 짙은 안개가 몰려온다.
태화산(630봉:07:25)
이 구간을 산꾼들은 빨래판 구간 혹은 롤러코스터 구간이라고 부른다.
3분에서 5분마다 봉우리 하나를 오르내리니... 몸이 인지도 하기전에
거기다가 비에 젖은 낙엽은 왜이리도 미끄러운지... 나홀로 산행이라
더욱 더 힘이든다. 또 비가 올려나 갑자기 주위에 컴컴해지니 겁이난다.
무성지맥(武盛枝脈)분기점
금북정맥이 차령고개를 넘어 곡두고개와 갈재고개 사이의 646m봉에서 남쪽으로 가지를 쳐
내려가며 570m봉에서 서남방향으로 법화산,철승산 줄기를 떨구고 629번도로인 문안달고개를
지나 국사봉(590.6m) 어깨에서 동쪽으로 방향을 틀어 604번도로인 기름재를 지나 갈미봉(515.2m)에서
다시 방향을 남쪽으로 틀어 홍길동성이 있는 무성산(613.6m)으로 이어간다.
무성산에서 영천고개를 지나 또다른 갈미봉(309.2m)에 이르기 바로전에 서남으로 약산(277.9m)
줄기를 떨구고 갈미봉(309.2m)에서 계속 남동진하여 대전 -당진 고속도로와 공주-서천 고속도로를
지나 채죽산(170m),부엉산을 일구고 금강에 맥을 다하는 도상거리 30.3km되는 산줄기를
무성지맥이라 부른다.
초반 약 2시간 가량의 빨래판 구간을 진행하다보니 진이 다 빠진 느낌이다.
이제 그 구간이 벗어나는 갈재고개가 나타난다. 좌측에는 전원주택이 보이고
차량이 전혀 다니지 않는 1차선도로를 지나니 편안한 임도길이 나타난다.
갈재고개(葛峙:460:07:55)
천안시 광덕면 광덕리에서 공주군 유구읍 불당골로 넘어가는 큰 고개로
천안쪽으로 진행하면 유명한 광덕사가 나타나고 공주방향으로 진행하면
유구읍을관통하는 39번 국도가 나타난다.
엽돈재에서 만난 천안시는 이곳 갈재에서 천안시와 이별을 고한다.
능선 분기봉을 넘어서면서 마의 빨래판 구간은 끝났다.
오른쪽으로 잣나무 단지를 끼고 돌아가는데 능선은
완만해지고 오른쪽 아래로 임도가 따라온다.
안개속에서 살짝 보이는 광덕산(廣德山·699m)
충남 아산시 송악면과 천안시 광덕면의 경계를 이룬 광덕산은 높이에 비해 산세와
조망이 뛰어난 산으로 정평이 나 있다. 온양온천을 지척에 두고 있어 온천산행지로도
널리 알려진 광덕산은 천안, 아산, 공주의 분기점이자 금북정맥상의 각흘고개와
갈재고개 사이의 무명봉에서 북쪽으로 갈래 쳐 천안시와 아산시를 가르며 뻗은
산줄기의 최고봉이다. 흔히 내포지방이라 일컫는 아산, 당진, 서산뿐 아니라 평택,
천안, 대전 등 충남북 일원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산이다. 크고 풍후(豊厚)하여
옛날부터 덕이 있다고 하는 광덕산은 난리가 나거나 불길한 큰 일이 있으면 산이
운다는 전설이 있다. 계곡은 곡교천의 상류가 되며 남록인 공주시 사곡면 운암리에는
유서 깊은 마곡사가 자리하고 있다. 호두나무가 풍성한 광덕사 주변은 갑신정변을
일으켰던 풍운아 김옥균, 임시정부주석 김구 선생 등 역사적인 인물들이
은신했던 곳으로도 알려져 있다.
갈재고개를 지나면서 아산시 구간을 접어드니 미안할만큼 이정표가 잘 정리되어 있다.
산꾼들에겐 정말 고맙기그지 없다 이제 안개도 조금씩 걷혀가는 기분이다.
480봉 헬기장(08:05)
갈재고개에서 편안한 임도길로 올라오니 커다란 헬기장이 나타난다.
우측으로 가면 광덕산 가는 길이고 금북정맥 길은 좌측으로 90도
꺽어진다. 그 아래에는 호화로는 가족묘지가 나타나고 지금까지
힘들게 온 빨래판 구간을 보상이라도 하듯 편안한 그것도 아주 편안한
걸음으로 갈 길을 재촉한다.
이정표도 모자라 표시목까지 설치한 아산시 너무나 고맙다.
안개속에 아무것도 볼 수 없었던 그야말로 五里霧中 속에 지나온 646봉과 광덕산도 살짝 보이고...
시몬
너는 아느냐 나의 외로움을
새벽은 점점 아침이 되어가고.
긴긴 밤이 지날수록
더해가는 내 외로움을
너는 아느냐.
시몬
너는 느끼느냐 나의 슬픈 영혼의 목소리를
어젯밤 내린 눈이 녹아
창문사이로 떨어지는 그 아련한 소리를
정영 그 소리의 의미를 알겠느냐.
시몬
우리의 모든 추억
아련한 기억속에 남아둔채
자유를 찾아 떠나는 저 새들처럼
그렇게 마지막 가는 길을 가고 싶구나
시몬
사랑 받는 일 보다
사랑 하는 일이 더 쉽다고 하듯이
사랑 받기를 원하지 말고
먼저 나 자신을 사랑하고
그 다음 나 아닌 타인을
사랑하라
그러면 너는 행복해 질 수 있다
행복은 멀리 있는게 아니다
바로 가까이에 있다는걸 잊지 말아라
시몬
시몬
이제..
서서히 태양이 떠 오르면
그땐
난 내가 그토록 원하던
제3국의 나라 그 곳에서
나 보다 못한 내 이웃을
사랑하며 있을 테지
시몬
시몬
사랑하리라
이 세상 모든 추한것들을..
못생긴(?) 소나무들이 군락을 이루며 살아가는 모습도...
395봉 헬기장(08:30)
편안한 길만 만나면 서서히 찾아오는 졸음... 졸면서 걷는다.
송전탑도 2개나 만나고...
생강나무 봉오리
다들 제 정신이 아니다. 계절을 잊어버린듯 생강나무가 봉오리를 터트릴려고
준비를 하고 있다. 3~4월에 만개하는 생강나무가 11월에... 하긴 인간들이
제 정신이 아니니 식물인들 제 정신이랴... 다들 初心으로 돌아가자.
가을산은 秋色으로 뒤덮이고...
311봉 삼각점(08:50)
각흘고개(角屹峙:213m:09:57)
금계령이라고도 하는 각흘고개는 충남 아산시와 공주시를 잇는 39번 국도가 지나는 곳으로
고개아래에 있는 아산시 송악면 성골마을의 지형이 와우형으로 소가 누워있는 형상인데
이 고개가 소가 누운 형상중에 뿔이 있는 부분이라 하여 각흘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각흘고개에 도착하니 비가 한방울씩 떨어지기 시작한다. 그러다고 레인코트를 입을
정도는 아니라서 그냥 진행을 한다. 여기도 사람이 전혀 다니지 않은 탓인지 등로에는
발목이 빠질정도의 낙엽이 수북하다. 거기다가 새벽녘에 내린비로 미끄럽기 그지없다.
자꾸만 시간을 지체시키는 주범 역할을 한다.
각흘고개 삼각점
각흘고개의 전설
충청남도 공주시 유구읍 문금리 일대에 전해오는 사랑 이야기이자 지명 이야기.
각흘고개는 유구땅 금계산과 봉수산 사이 온양으로 가는 길에 있다.
고개가 구불구불하고 험준하여 예로부터 외적에 대항하는 장소이기도 하였다.
각흘고개 전설 은 충청남도 공주시 사곡면 대중리에 전해지는 돌고개 전설과 같이
남녀간의 애절한 사랑의 원한이 깃든 이야기이다.
고려 말엽, 눈이 펑펑 내리는 겨울이었다. 이 산중에서 숯을 구우며 살아가던 삼덕이가
잠자리에 들려던 차에 어디선가 들리는 여자의 비명 소리에 놀라 밖으로 뛰쳐나왔다.
몽둥이를 들고 이리저리 살펴보는데 여자의 신음소리가 들렸다. 가까이 가보니 한 여자가
두 남자에게 포박당하고 있었다. 삼덕은 몽둥이를 휘둘러 포박하고 있는 두 남자를 죽였다.
방으로 데리고 들어온 여인은 자신이 이성계에 대항한 역적의 딸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방금 삼덕이가 죽인 두 남자는 포졸이라고 하였다. 그 소리를 듣고 놀란 삼덕은
포졸을 산에 묻고 여인은 산 속의 굴에 숨겨 놓았다.
며칠 후 또 다른 포졸들이 들이닥쳤다. 포졸은 삼덕에게 “도망가는 색시를 보지 못했느냐?”고
하였다. 그는 태연하게 “색시를 보았는데 남쪽으로 내려갔다.”고 하였다. 그리고 다시 며칠 뒤에
남쪽으로 내려갔던 포졸들이 다리를 절며 뒤돌아가는 것을 보았다.
어느덧 겨울이 가고 봄이 왔다. 삼덕은 여인을 굴에서 데리고 나와 집에 머물게 하였다.
세월이 가면서 두 사람은 친한 사이가 되었다. 여인은 삼덕을 따라 숯가마에 가고 그 곳에서
잠을 자기도 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여인의 거처가 알려졌는지 포졸들이
삼덕의 집 주변에 매복하고 있었다.
그리고 숯을 구워 내려오는 여인을 발견하고는 포박하려 하였다.
삼덕은 짊어진 숯을 팽개치고 포졸들에게 달려들었다. 작대기로 저항하려 하였지만
결국 포졸의 창에 찔리고 말았다. 이를 본 여인이 쓰러진 삼덕에게로 다가가며,
“여보, 여보!” 라고 외쳤다. 그리고는 포졸들에게 달려들었다. 포졸은 여인도 칼로 베어 죽였다.
이처럼 두 사람은 이 고개에서 숨지고 말았다.
사람들은 이렇게 죽은 두 사람이 이 고개를 지키는 혼령이 되었다고 생각했다.
이 고개를 지키는 문지기로 둔갑하였다는 것이다. 그래서 북쪽에서 쳐들어오는 오랑캐를
죽음의 길로 몰아가는 역할을 한다고 하였다.
아산시 송악면 성골마을
성골마을의 지형이 풍수지리학적으로 보면 와우형으로 소가 누워있는 형상이다
그래서 이 마을 때문에 그 위에 있는 고개가 각흘고개라고 부른다.
광덕산이 서서히 시야에서 멀어지는 느낌이다.
351봉(09:15)
산토끼의 옹달샘?
봉수산이 드디어 시야에 들어오고...
구만봉(392봉:09:40)
지도상에는 나타나지도 않은 구만봉이라고 이름붙은 봉우리가 나타난다.
무명봉에 이름을 붙이는 건 좋은 현상이다. 구만봉이란 이 산아래 마을이
아산시 송악면 구만리라 하여 붙인 모양이다.
구만봉을 지나니 성황당인듯 곳도 보이고...
세월을 이기지 못하는 건 사람이나 나무나 똑같은 모양이다.
봉수산은 그리높지 않은 산이기니 하지만 그리 호락호락하게 정상을 내주지 않을듯 싶다.
편안한 길을 가다가 다시 고도를 높이고 마지막 오름길의 급경사엔 허기가 지면서
체력이 급속도로 떨어지기 시작한다. 안간 힘을 다해서 올라가려니 자꾸만 스틱에
체중을 의지해야만 한다. 잠시 물한모금 마시고 다시 있는 힘을 다하니 길상사
갈림길이 나온다.
봉수산 오름길에서 본 길상사
봉수산 남봉(10:20)
봉수산 갈림길에서 0.1㎞가 떨어저 있는 봉수산은 마루금에서 벗어나 있지만 이번구간
주봉으로 예산과 아산 그리고 공주의 3개 군에 걸처있는 봉수산은 봉황새의 머리를 닯아다
하여 봉수산이라고 부르고 있으며 산기슭에는 887년(진성여왕)에 도선국사가 창건한
봉곡사가 있으나 임진왜란때 소실된 것을 1647년(인조)에 중창 하였다. 북쪽에 있는 봉곡사
방향이 왼쪽날개에 해당되며 남쪽의 천방산 능선이 우측 날개에 해당되며 대술면 상황리
갈막고개가 봉황의 꼬리에 해당된다고 하며 봉수산이 봉황의 머리가 된다.
100m 정도 걸으니 봉수산이 나타난다. 그런데 갑자기 사람소리가 난다.
혼자 다니는 산행길엔 하루종일 가도 사람구경 못하고 하산하는 경우가
부지기수인데 그것도 오늘같이 날씨가 좋지 않을때는 더더욱이...
갑자기 겁이난다. 산에서는 짐승을 만나면 피하는 요령을 알지만
가장 무서운게 갑자기 사람이 나타나는 경우이다. 덜컥 겁이 나는데
이 근방에서 온듯한 부부인듯한 50ㅐ 초반의 남.녀 4명이 막걸리를
마시면서 인사를 건넨다. 봉수산 정상에서 김밥 한줄과 쥬스하나로
허기를 면하고 사람들에게 부탁하여 인증샷을 남기고 내려오려니
안쓰러워 보였던지 계란 고구마 단감 등을 싸주면서 가져 가라고 한다.
고맙다는 인사를 건내고 다시 봉수산 남봉을 되돌아 오는데 빗줄기는 굵어진다.
봉수산(鳳首山·536m:10:25)
충남 예산, 아산, 공주 등 3개 지역에 걸쳐있는 산으로 봉황새 머리를 닮았다하여
봉수산으로 이름이 붙여졌다 한다. 산의 규모도 작고 나지막한 산이다.
봉수산 산기슭에는 887년(진성여왕1)에 도선 국사가 창건한 봉곡사(鳳谷寺)가 있다.
임진왜란 때 소실된 것을 1647년(인조 24)에 중창하였다. 북쪽에 있는 봉곡사
방향이 봉황의 왼쪽 날개에 그리고 남쪽의 천방산(478.9m)능선이 우측 날개에
해당되며, 대술면 상항리 갈막고개가 봉황의 꼬리에 해당하고 봉수산 정상은
봉황의 머리가 된다. 이 산은 남북으로 날개를 펼친 채 동쪽에 있는 광덕산을
향해 날아가는 형상을 취하고 있다. 산은 육산으로 등산로는 뚜렷이 잘 나있고
비교적 어렵지 않게 오를 수 있는 산이다. 옛날 남편을 기다리다 일생을 마감한
아낙네의 애환이 서린 베틀바위 등이 이 산의 진가를 높여주고 있다.
봉곡사 가는 길
봉곡사(鳳谷寺)
충남 아산시 송악면 유곡리에 위치한 봉곡사(鳳谷寺)는 한국 근대불교의선지식이며
경봉스님의 제자인 만공스님이 처음 깨달은 성지(聖地)이기도 하다.
봉곡사(鳳谷寺)는 신라말인 887년(진성왕 1)에 도선국사(道詵國師)가 창건했다고 전해진다.
구전에 의하면 도선국사가 산 너머에서 절터를 닦고 목수들을 불러 재목을 다듬고 있었는데,
어디선가 날아온 까마귀들이 계속 밥을 물고 가기에 이상히 여겨 뒤를 따라가 보았다고 한다.
그랬더니 까마귀들은 갑자기 사라져 버리고 주변을 둘러보니 그 터가 현재 닦고 있는 터보다 좋은지라,
이곳으로 절을 옮겨짓고 ‘석암(石庵)’이라 이름 지었다고 전해온다. 고려시대에는 1150년(의종 4)에
보조국사(普照國師) 지눌(知訥)이 중창했으며, 명칭을 석암 또는 석가암(釋迦庵)이라 하였다.
조선시대에 와서는 1419년(세종 1)에 함허기화(涵虛己和) 스님이 중창했는데,
이 당시에 상암(上庵)ㆍ벽련암(碧蓮庵)ㆍ보조암(普照庵)ㆍ태화암(太和庵) 등의 산내암자가
있었을 정도로 규모가 컸다고 한다. 그 뒤 1584년(선조 17)에 거사 화암(華巖)이 중수하고,
산이름인 봉수산과 걸맞게 사찰명도 ‘봉황이 깃드는 곳’이라 하여 봉서암(鳳棲庵)이라 고쳤다.
임진왜란 때 모두 소실되어 1646년(인조 24)에 중창하였고, 1794년(정조 18)에 경헌(敬軒)ㆍ
각준(覺俊) 두 스님이 중수하여 현재의 이름인 봉곡사로 개칭하였다. 그 뒤 1825년(순조 25)에
요사를 중수하고 2층 누각을 신축하였으며, 1872년(고종 9)에 서봉(瑞峰) 스님이 법당 및 요사를
중수하고 1931년의 중수를 거쳐 오늘에 이르고 있다.
봉수산 남봉에서 송전탑을 지나서 460봉으로 내려오는 길은 급경사이라
엄청나게 미끄럽다. 거기다가 좌측은 벌목으로 인하여 민둥산이 되버렸다.
자꾸만 어두워지면서 빗방울은 굵어진다. 이젠 옷이 다 젖은 상태이라 그냥
비를 맞으면서 걷는다. 다행히 자켓 덕분에 추위를 면하는 느낌이다.
안개는 이제 먹구름으로 변해가고 주위는 50m 앞도 보이지 않는다.
저 아래 탑신리 마을도 자꾸만 안개속으로 파묻히는 느낌이다
이곳부터는 우측에 같이해온 아산시 송악면과 이별을 하고 예산군 대술면으로
접어든다. 보여야할 방산 저수지는 그냥 맘속에 그리면서 간다.
저물어가는 가을을 아쉬워 하며...
지나온 봉수산과 460봉도 서서히 안개속으로...
가야할 능선도 안개속으로 숨어들고...
탑곡리 가는 길(11:30)
내리는 비는 빗줄기가 조금은 가늘어지기 시작한다.
여유로운 걸음으로 길을 걷는데 발길은 바빠진다. 어차피
오후 4시안에 하산을 해야하기에 등로가 좋고 편안한 길에는 시간을
줄여야 하기에 거의 산악 마라톤 수준으로 내달린다. 탑곡리가는
길 이정표가 나오는 조그만 고개에 도착한다. 우측에는 임도가 보인다.
고개에서 다시 오르막을 치고 오르니 산불이 난지가 그리 오래되지
않았는지 주위에는 시커멓게 타버린 나무들이 딩굴고 있다.
다시 빗줄기가 굵어진다. 이제 더이상 피할곳도 없이 기왕에
버린 몸... 그냥 계속해서 비를 맞고 걷는다. 호젓한 나홀로 산행
오늘같은 날엔 새 한마리도 구경하지 못하고 낙엽만 밟는다.
서서히 천방산 오름길에 고도를 높이기 시작한다.
천방산 오르는 구간도 장난이 아니다. 미끄러운 낙엽 때문에...
천방산 갈림길(11:50)
오늘은 명산들이 똑같이 정맥길에서 100m씩 벗어나 있다.
아까 지나온 봉수산도 마찬가지로... 이젠 가을비치고는 너무
많이 온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비는 이제 막 쏟아지기 시작한다.
베낭을 갈림길에 벗어놓고 청승맞게 비를 맞으며 천방산으로 향한다.
천방산(千方山: 479m:11:55)
충청남도 공주시 유구읍 탑곡리와 예산군 대술면 방고리 경계에 있는 산으로 산이
하늘을 찌를 듯이 높이 있다고 해서 유래된 이름이다.
천방산은 높이가 479m이며, 화강편마암, 주입편마암, 안구상편마암들로 이루어져 있다.
공주시 최북단에 위치한 산으로서 북쪽의 봉수산과 능선을 함께 하고 있으며,
남쪽으로는 극정봉과 명우산이 자리잡고 있다.
동쪽으로는 유구천이 흐르고 있으며, 서쪽으로는 예산군에 속해 있는 방산저수지가 위치해 있다.
부엉산(12:15)
천방산에서 20분 정도 지나서 만나는 부엉산. 무슨 의미인지 알 수가 없어서
공주시 홈페이지에 들어가봤지만 아무런 기록이 없다. 이곳에 부엉이가
많아 살았다해서 그런가? (범여의 생각 中에서)
곡두고개에서 차동고개가는 길은 등로 찾는데는 참으로 편하다.
곡두고개에서 갈재고개까지 힘이들긴 해도 선답자들이 이정표가
완벽하고 갈재고개에서 극정봉까지는 아산시와 공주시가 이정표를
미안할 정도로 완벽하게 해놓아서 좋았고 극정봉이후 예산군 등로는
이정표는 전혀 없으나 선답자들의 꼬리표로 무리없어 갈 수 있으나
몇군데는 정신을 놓으면 알바할 수 있는 구간이 있다.
오지재(소거리 안부:12:45)
부엉산에서 뚝 떨어져 아래로 내려오니 조그만 고개가 나오는데
우측으로는 소거리 가는 길이고 좌측은 머그네미 가는 길인데
지도상에는 없는 오지재라고 누군가 아크릴로 붙여놨다.
머그네미는 오동나무가 많은 골짜기라 하여 유래된 지명이며,
과거에는 오동나무를 머그나무라고도 했다 한다.
오지재에서 극정봉까지는 1.0km라고 이정표에 표시되었건만 가도가도
나타나질 않는다. 주위는 아무것도 분간할 수 없을 정도로 짙은 안개에
휩싸여 있고 그야말로 오리무중이다. 능선 안부 우측으로 무분별한 벌목으로
허허벌판인데 잡목이 우거져 걷기가 상당히 불편하다.
극정봉까지 가서 간식을 먹으려 했는데 허기가져서 도저히 올라갈 수가 없다.
하는 수 없이 중간에 비를 맞으면서 봉수산에서 얻은 고구마와 단감, 그리고
계란과 커피 한잔을 마시고나니 조금은 살것만 같다. 잠시후에 극정봉에 도착한다.
극적봉 2등 삼각점(△ 예산 24 1991 복구)
극정봉(極頂峰 424.0m : 13:20)
충청남도 공주시 유구읍과 예산군 대술면의 경계에 위치한 산으로 북으로
천방산과 봉수산과 연결되며 남으로는 설대봉과 차동고개와 연결되어 있다.
이곳은 예산 남부지역과 공주일부 지역에서 나타나는 호상편마암 계열의
암질이 주로 이루고 있으며 동쪽계곡으로 흐르는 물은 유구천으로 흘러들며
서쪽 계곡의 물은 화산천으로 흘러든다.
옛날에 홍길동이 이 부근에서 무술을 익힐 때 금계산에서 활을 쏘고 그 화살보다 빨리
말을 달려 서쪽에 있는 두루봉에서 화살이 날아오는 것을 찾다가 앞산 봉우리에
올라와서도 화살이 안보여 걱정을 하였다하여 걱정봉이라 불렸다고 하는데 세월이
흘러 변음이 되어 지금은 극정봉이라 부른다.
또 다른 설은 홍길동과 홍길동 누이에 관한 이야기로 홍길동과 홍길동 누이가 목숨을
건 내기를 하였는데 홍길동은 쇠신을 신고 소를 몰고 한양으로 다녀오는 것이었고,
누이는 홍길동이 돌아오기 전에 금계산에 산성을 쌓는 내기였다. 홍길동의 어머니는
딸이 성을 다 쌓도록 아들이 돌아오지 않자 극정봉에 올라 걱정을 하였다고 하여
걱정보이라고 하였다고 한다
400봉 정상(13:35)
명우산(鳴牛山:368m : 13:50)
공주 유구읍과 예산군 대술면의 경계를 타던 마루금이 예산군 신양면으로 바톤을 넘기는 3면 경계봉이다.
공주시 유구읍 명곡리에 있는 산으로 소가 우는 모습을 한 형상처럼 보이는 산이라고 하여 鳴牛山으로 부른다.
명우산의 남쪽으로는 절대봉과 국사봉이 있으며, 북쪽은 극정봉과 이어지고 있다.
동쪽으로는 유구천이 흐르고 있으며, 산지로 둘러싸여 있어 좁은 충적지가 형성되어 있다.
동쪽의 유구천을 따라 39번 국도가 지나가고 있다.
빗줄기는 가늘어지는데 안개는 걷힐 기미조차 보이지 않는다.
이곳은 하얀색의 돌인 편마암 계열의 돌들이 많이 보인다.
절대봉(353m:14:15)
절대봉 아래에는 엄청나게 큰 자연동굴이 있다.
서재(14:40)
임도에 내려서자 마자 우측 숲길로 진행해야 하고 임도 좌측에 간이 화장실이 있고
멀리 성모마리아상이 있다고 하는데 안개로 보이지 않아 그냥 진행한다
불모골 고개(14:50)
평산 신씨 묘지도 보이고 이어서 편안한 임도길이 나타난다.
서낭당 고개(15:00)
서낭당 고개를 지나면서 좌측으로는 벌목을 한 다음에 이름모를
낙엽수를 조림하였는데 벌목한 자리 옆의 등로길은 가시밭 투성이다.
걷기가 너무 불편하고 옷이 걸리니 찢어질 것 같은 느낌이다.
이젠 비는 완전히 그쳤지만 젖은 옷으로 인해 무척이나 추위가 느껴진다.
294봉(15:10)
반가운 준,희님의 294봉 이정표가 보이고 안개속에 아무것도 보이진 않지만
차량소리가 들리기 시작한 걸 보니 차동고개가 가까워진 느낌이다.
자꾸만 추워져서 내리막길을 뛰면서 보온에 신경을 쓴다.
호화로운 묘지가 나타나고 저 아래 도로가 보이기 시작한다.
차동고개 날머리
우중에 힘들었던 9여시간의 산행을 마무리 하다. 평소 같으면 지나가는
차량을 상대로 히치를 시도하겠지만 오늘은 완전히 물에 빠진 새앙쥐
꼴이라 상대방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 과감하게 포기하고 공주 유구읍의
콜택시에 전화를 하니 20여분에 택시가 왔다. 미터기를 꺽지도 않고
읍내에 도착하여 7000원을 요구한다. 차에서 내려 버스표를 구매한 다음에
얼른 터미널 앞 식당에서 밥을 시켜놓고 화장실에 가서 샤워를 하고 옷을
갈아입고나니 이제사 사람 모습이다. 식사겸 막걸리 한병을 먹고 차를 탄다.
차동고개(15:25)
충남 예산군 신양면과 공주시 유구읍 경계에 있는 고개로
예산 남동쪽 11km, 공주 북서쪽 22km 지점으로 동국여지승람에는
차유령(車瑜岺)으로 기록되어 있고 현지에서는 차동고개라 부른다.
남금강(南錦江)의 지류인 유구천과 북서류하는 무한천이
이곳에서 발원하는 두 하천의 분수령이다.
차동고개의 휴계소도 한 때는 번창했을 것 같은데.. 이 고개 아래도 30번 대전-당진간
고속국도가 뚫리는 바람에 차량통행도 줄어들어 한적하기만 하다.
차동고개에는 옛날부터 전해오는 이야기가 있다.
옛날 아주 먼 옛날에 이 곳 불왕골에 차서방이란 사람이 살고 있었는데 가난하여 늙으신
홀어머니를 편안하게 모시지는 못했지만 효성이 지극하여 어머님이 원하는 일이라면
무엇이든지 해드리는 효자였다.
하루는 건강한 어머님이 갑자기 몸져눕게 되어 차서방은 마치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그도 그럴 것이 차서방은 돈이 없어서 남들처럼 약을 쓸 수도 없는 처지였기 때문이다.
이 일을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하던 끝에 별다른 도리가 없어 이튿날부터 지금 차동고개에 가서
나무를 하여 장에서 팔아 어머님 약을 살 돈을 마련하기 시작했다.
차서방은 매일 자기 몸이 지치는 줄도 모르고 밤낮을 가리지 않고 나무를 해 팔았다.
그러나 사람의 역량에는 한도가 있는지라, 어느 날 어머님을 낫게 해 드려야겠다는
집념에 지친 몸을 끌고 산에 올라가 나무를 하다가 그만 쓰러지고 말았다.
쓰러져 꿈을 꾸니 하얀 할아버지가 나타나 `지금 네가 있는 곳에서 동쪽으로 열 발자국을 가면
산삼이 있을 것이니, 그것을 캐다 어머님께 달여 드리면 나을 것이다` 라고 노인이 말하는 것이었다.
그는 깜짝 놀라 꿈에서 깨어나 꿈속에서 본 할아버지가 말한 대로 발자국을 세어 동쪽으로 가 보니
정말 커다란 산삼이 있는 것이었다. 산삼을 캐 가지고 집에 돌아와 정성껏 달여 어머님께 드리니
언제 아팠느냐는 듯이 병환이 나았다 한다. 이 일이 있은 뒤 이 고개를 차서방이 산삼을 얻은
고개라 하여 차동 고개라 부른다 한다
공주시 유구읍(維鳩邑)
유구읍(維鳩邑)은 임진왜란때 명나라 구원병의 장수 이여송이 이 땅에 진군했다가
유구의 지세가 큰나라도 위협할 장군출생형임을 알고 이를 막기위해 유구리 뒷산을 끊었는데
이때 땅속에서 세 마리의 금빛 비둘기가 피를 흘리며 날아갔다.
이후 전염병이 퍼져 수많은 군졸들이 죽어가 인근 고승을 찾아가 치유방법을 묻자
이곳 지명을 유구라 고쳐부르라 해서 바 유(維) 비둘기 구(鳩)라고지명을 고쳤더니
모두 말끔히 나았다는 유래를 가지고 있다.
유구읍은.. 동쪽은 정안면,사곡면, 북쪽은 아산시, 서쪽은 예산군,
남쪽은 신풍면에 접한다. 1995년 3월 면에서 읍으로 승격되었다.
금북정맥의 영향으로 대부분의 지역이 해발고도 100∼500m의 산지를 이루며,
읍의 중앙을 유구천이 흐른다. 이러한 지형조건 때문에 유구천 유역에
협소한 평야지대가 발달하였으며, 읍의 대부분이 임야지대로 남아 있다.
면적은 101㎢, 인구 10,078명에 택시가 13대나 된다고 한다.
주요 농산물은 쌀·보리 외에 고랭지 수박·마늘·고추 등이며,
예산군과 인접하여 사과재배 농가가 많다. 공주∼예산 간 국도가 지나며,
유구∼온양으로 연결되는 39번국도가 교차한다. 문화재로는 고간원지
(叩諫院址:충남기념물 51), 신영리 사지, 입석리 선돌 등이 있다.
유구 시외버스 터미널 시간표
이곳은 버스표를 자동발매하는게 아니라 미리 파는 모양이다.
일욜인데 목요일 표라니... 버스는 아산, 천안을 거쳐서 오는 바람에
천안까지 일반국도를 오다보니 1시간 반이 걸린다. 막걸리 먹은 죄로
천안에서 얼른 차에서 내려 화장실에 들렸다 와서 잠에 떨어진다.
서울 남부터미널에 도착하니 19시 20분 오늘도 한구간을 마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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