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산행일자 : 2011. 12,04
☞ 산행날씨 : 아침에 꽤나 추운 날씨, 흐린 날씨. 바람이 엄청불고 기온이 떨어짐 오후에 맑음
☞ 참석인원 : 나홀로 산행
☞산행거리 : 도상거리 :23.5 km / G.P.S거리 : 25.8km / 7시간 50분 소요
☞ 산행코스 : 차동고개-330봉-353봉-361.2봉-고재사거리-342봉-350봉-374봉-장학산-성황당고개
천종산-400봉-야광고개-349봉-서반봉-388봉-415봉-사정미재-440봉(십자가)-365봉
436봉-415봉(H)-400봉-424.4봉-운곡고개-334봉-금자봉-340봉-바구니봉-분골고개
645번 도로-15번 철탑-문박산-250봉-여우실 갈림길-225봉-학당고개(29번 도로)
○ 소 재 지 : 충남 공주시 유구읍 신풍면 / 예산군 신양면, 청양군 운곡면,대치면,비봉면,청양읍,
요즘 이 나라는 아무래도 제 정신이 아닌 모양이다.
명색이 지도층이라는 인사들이 공록으로 먹고 살면서도 자기들을 먹여 살리는
국민들은 眼中에도 없는듯 싶다. 참으로 한심한 세상 치고는...
검찰과 경찰이라는 곳은 수사권 조정문제로 힘겨루기를 한다.
자세한 건 잘 모르겠으나 우매한 중생의 입장에서 보면 국민을 위하기 보다는
자기들 밥그릇 싸움처럼 보이는 건 이 범여만의 생각일까?
판사 나으리들도 FTA 문제로 시끄럽다. 법관은 오직 법으로만 판단한다는데
가장 중립을 지켜야할 법관들 조차 보수니 진보니 하면서 시끄럽다.
거기다가 모 여당 국회의원의 수행비서라는 자가 선관위에 디도스 공격으로
國紀을 문란하지 않나... 원칙도 없이 자기 목소리만 내세우는 지도층의 인사들이여
제발 자중 좀 합시다. 요즘 민초들이 얼마나 힘들게 사는지 함 생각이나 해보셨소.
그래도 민초들은 당신네들이 독재라고 그렇게 욕해대던 박대통령 시절과
군사정권이라고 손가락질하던 全統시절이 가장 살기 좋았던 때라는 걸 알기나 하요.
제발 민초들 두다리 뻗고 의.식.주 걱정없이 살게 해주면 안되나요.
國祿으로 살아가면서 下心으로 봉사할 그날을 기다리면서 범여는 오늘도 산으로 갑니다.
오늘 산행구간의 지도와 고도표
용산에서 예산가는 무궁화호 열차표
토요일에 마감작업을 하는 일 때문에 전혀 휴식을 취하지 못한 탓인지 상당히 피곤하다.
고객과의 상담시간이 길어지는 바람에 오늘 낮에 은사스님의 생신에 참석하지 못하고
축하 蘭만 하나 보내고 만것이 참으로 미안하다. 사무실의 마무리를 끝내고 집에와서
대충 저녁을 먹고 베낭을 챙겨갖고 소화도 시킬겸 도곡역까지 15분 정도 걸어서 지하철
3호선을 타고 옥수역에서 용산역가는 열차를 갈아타고 용산역에 도착하니 20시 10분경이다.
아직까지 25분정도 시간이 남아있어 커피 한잔을 마시는 여유를 가지고...
무궁화호 20:35분 장항선 열차 시간표
장항을 거쳐서 익산을 가는 열차이다. 잠시후 열차는 출발하고...
용산역 풀렛폼
예산역(22:37)
용산역을 출발한 장항선 열차는 2시간여를 지난 시간에 천안과 온양온천, 도고온천을
지나 예산역에 도착하였다. 난생 처음와 본 예산역이다. 그런데 명성과는 달리 읍내는
참으로 초라하다. 인터넷 여기저기를 뒤져서 찜질방을 찾아서 거기를 갔는데
웬 이런 낭패란가? 그 찜질방이 6개월 전에 경영난으로 문을 달아버렸다네
참으로 난감하다. 어디가서 잠을자야 한단 말인가. 택시기사에게 근처 찜질방을
물으니 인근 덕산온천까지 가야하는데 택시비를 17,000원을 요구한다.
하는 수 없이 시외버스 터미널까지 무턱대고 20분정도를 걸어가서 보니 버스터미널은
아파트 단지쪽에 있어서 모텔같은 숙박시설은 아예없다.
이것을 어쩐다 숙박시설이 있는 역전 앞까지 다시 가야하나...
예산 시외터미널앞 지하차도의 모습(23:00)
P.C방에서 밤을 보내다.
다시 역전앞의 모텔까지 가기에는 자신이 없다. 버스터미널 주변에는 암흑천지다.
마침 터미널 맞은편 편의점 2층에 P.C방에 간다. 요금이 시간당 1.200원이다
실내에는 손님이 거의없다. 30분정도 검색을 하고 1층에 있는 편의점에서
소주 한병을 사서 마시고 편안한 의자에서 새우잠을 자고 아침 6시에 나오니
아직 버스터미널은 문도 안 열었다. 6시 20분정도 터미널에 불은 켜진다.
표를 사려고 하니 표를 파는 충청도 아줌씨! 저쪽 무인 코너에서 표를 사라고
불친절하게 툴툴거린다. 기분은 썩 안좋다. 차동고개가는 차는 어디서 타느냐고
물으보니 저쭉으로 가서 타셔.... 이런 제기럴 집 나오니 개고생이네.
예산 버스터미널 시내버스 시간표
차동고개가는 시내버스표(07:00)
터미널내에 있는 식당은 폐업을 해버렸고 아침을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난감하다. 하는 수 없이 터미널 안에있는 차부상회에서 별로 따뜻하지 않은
호빵 2개와 두유하나로 아침을 해결하고 07시발 차동고개를 거쳐 공주 유구까지
가는 버스를 탔는데 달랑 나혼자다. 기사양반한테 차동고개에 내려 달라고
부탁을 하고 깊은 잠에 빠진다. 꽤나 잤나 싶었는데 하도 차가 덜컹거려
잠에서 깬다. 이 차는 농로를 따라 이 동네 저 동네를 다 다니면서 가다가
시왕리라는 목장이 있는 마을까지 들렸다가 예산군 신양면 면소지를 지나간다.
그래도 손님은 달랑 나혼자... 커다란 시내버스를 전세낸 느낌이다.
면소재지를 지나서 꾸불꾸불한 길을 지나 차동리를 지나서 버스가
헉헉거리면서 휴게소가 망해버린 을씨년스런 차동고개에 도착하여
버스기사에게 고맙다고 인사를 건내니 조심하라고 하면서 혼자서 뭔
재미로 산행을 하냐고 하면서 이상한 눈초리로 쳐다본다.
차동고개(215m:07:50)
예산에서 출발한 지 50분만에 차동고개에 도착하니 하늘에서는 금방 눈이라도
쏟아질 것만 같이 잔뜩 찌푸린 날씨에다가 바람이 세차서 상당히 춥기만 하다.
이 고개의 유래처럼 요즘에 효성이 지극하고착한 차서방을 다 어디로 갔단 말인가.
충남 예산군 신양면과 공주시 유구읍의 경계에 있는 높이 215m의 고개로 동국여지승람에는 차유령으로
기록되어 있으며 금강의 지류인 유구천과 무한천이 이곳에서 발원하여 두 하천의 분수령이 된다.
차동 휴게소라고 써있는 노란 입간판을 뒤로하여 산행 들머리에 접어든다.
산행시작(08:00)
바람이 세차게 불어되는 들머리에는 선답자들이 지나간 시그널이 주렁주렁하다.
오늘 꽤나 높은 봉우리만 30개 이상을 넘어야만 날머리인 학당고개에 도착한다.
어느 정맥길이나 마찬가지로 쉬운 산은 하나도 없는 것 같다.
대전~당진간 고속도로(08:05)
산행시작 5분만에 대전~당진을 지나는 차동터널을 위를 지난다.
조그만 묘지가 하나있고 철계단이 있는데 고속도로와 조금전에 지나온
예산군 신양면소재지가 아련히 보인다.
잠시후에 편안한 안부가 나타나고...
저 능선 넘어 태화산은 안개로 인해 보이지도 않는다. 마곡사의 기억도 공주를 벗어나면
잊어지겠지...
마곡사(麻谷寺)
천년고찰 마곡사는 태화산 기슭 맑은 계곡을 끼고 위치하였고 백제 의자왕3년(643년)에
자장율사(慈裝律師)가 창건하고 고려 명종 2년(1172년)에 보조국사가 중건한 사찰이다.
주변의 산과 물의 형태가 태극형이라 하여‘산태극 수태극(山太極 水太極)’이라 불리는데 ‘정감록’과 ‘택리지’에서도
기근이나 전란의 염려가 없는 십승지로도 꼽은 곳이다.
대한 불교 조계종 제6교구 본사로 일제 강점기에는 김구선생이 은거하였던 장소였으며,
춘마곡(春麻谷)으로 봄철 경치가 뛰어난 곳이다.
사찰명에 대해서는 두 가지 설이 있다. 하나는 자장율사가 절을 완공한 후 설법을 했을 때
사람들이 '삼'[麻]과 같이 빽빽하게 모여들었다고 해서 마곡사라 했다는 설이고,
또다른 하나는 신라 무선(無禪)대사가 당나라 마곡보철(麻谷普澈)선사에게 배웠기
때문에 스승을 사모하는 마음에서 마곡이라 했다는 설이 있다.
이 절은 고려 문종 이후 100여 년 간 폐사되어 도둑떼의 소굴로 이용되기도 했는데,
1172년(명종 2)에 왕명을 받아 보조국사가 그의 제자인 수우(守愚)와 함께 왕으로부터
받은 전답 200결(160만 평)에 중창했다. 당시 사찰의 규모는 지금의 두 배가 넘는
대가람이었으나 임진왜란 당시 대부분 소실되었으며, 1650년(효종 1) 주지인
각순(覺淳)에 의해 어느 정도 옛 모습을 찾았으나 1782년(정조 6) 다시 큰 화재로
영산전과 대웅보전을 제외한 1051여 칸의 건물이 소실되었다. 대광보전은 1788년(정조 12)에
재건되었고, 영산전과 대웅보전은 1842년(헌종 8)에 개수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고재가는 꼬부랑길
고재고개(08:40)
공주시 유구읍 녹천리(鹿川里) 2구 고재마을과 예산군 신양면 여래미리(如來味里) 고재동마을
사람들이 왕래하던 뚜렷한 고갯길이 금북정맥 주능선을 가로지르고 있는 곳으로 고갯마루에는
옛 서낭당 돌무더기 흔적이 있다.
이곳 능선분기점은 공주시, 예산군, 청양군 등 충청남도의 3개 시군이 접하고 있는 곳으로
이곳에서 북쪽(북북동쪽) 방향으로 뻗어있는 금북정맥 주능선(지금까지 지나온 능선)을 경계로 하여
공주시와 예산군이 접하고 있고, 서쪽방향으로 318m봉을 이으며 뻗어나간 지능선을 경계로 하여서는
예산군과 청양군이 접하고 있으며 남쪽방향으로 뻗어있는 금북정맥 주능선(앞으로 가야할 능선)을
경계로 하여서는 청양군과 공주시가 접하고 있다.
따라서 이곳에서부터는 금북정맥 주능선의 오른쪽(서쪽)은 청양군 운곡면(雲谷面)이고 왼쪽(동쪽)은
공주시 유구읍(維鳩邑)이다. 고재 안부 우측에는 흔히들 공주지역에서 자주 만나는 민둥산이다.
올 8월부터, 금남, 금북정맥 공주구간을 4개월을 산행을 하지만 우리나라
어느곳도 하지 않은 산마다 이렇게 민둥산을 만든데는 공주밖에 없는것 같다.
무슨 이득을 얻으려는지는 몰라도 해도해도 너무 하는것 같다. 자연은 자연 그대로
두는게 가장 자연적인데 말이다. 자꾸만 여름에 비가 많이오는데 산사태가 염려스럽다.
이곳은 스티로폼을 쌓은공기정화력이 우수한 튜울립나무(북아메리카 원산지)를 식재
했놨는데 외래종 식물을 심는것도 확실한 검증을 한 후에 심는게 옳을듯 싶다
고재 안부 사거리에서 민둥산을 끼고 어지럽게 요리조리 산길을 오르니 산판일을
하기위해 임도길을 만들어놨다. 10여분을 걷다가 다시 갈림길을 만나서 우측
정맥 마루금으로 접어든다.
다시 편안한 안부 능선길을 나홀로 걷는다. 들리는 소라라곤 낙엽소리와 세찬 바람소리뿐...
바람이 세차게 불어 자꾸만 기온이 떨어지는 느낌이다. 하늘엔 금방 눈이라도 올듯이...
십승지의 마을
공주시에서 북서쪽으로 바라보면 남북으로 10km에 걸쳐 산줄기가 뻗어있는 무성산은 마치 한 마리의
누에가 기어가는 듯이 보인다. 예로부터 병란, 질병, 기근등 삼재가 들지 않는 지역 열 군데를 십승지라 했는데
그중 한곳이 바로 공주시 유구 마곡 일대다.
십승지를 감싸고 있는 무성산 일대는 태화산, 국사봉등 산줄기가 겹겹이 둘러싸여 태극 모양을 이루는 특이한 지형이다.
십승지란 천지 대개벽이 일어날 때 재앙을 피하기 좋은 10군데의 지역을 말한다.‘정감록’이나‘격암유록’에 따르면
가까운 미래에 엄청난 천재지변이 일어나 인간은 끔찍한 질병과 굼줄미, 추위와 더위, 공포에 시달리게 되고 대다수
사람들은 죽음을 맞이함으로서 인류는 절멸의 위기에 처하게 될 것이라고 예언하고 있다.
그러나 십승지에 들어가는 사람은 이러한 끔찍한 재앙으로 부터 목숨을 보전하고 안락한 생활을
누릴 수 있으며 자손이 끊기지 않고 후세에 까지 보존될 것이라고 하여 재난을 피하는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
십승지의 정확한 위치는 책에 따라 조금씩 다르다.
십승지를 언급한 책은 (정감록), (남서고 비결), (남격암 산수 십승보길지지) , (감결), (징비록)
(운기구책), (유산록) 등 60여종이 있으며 이 예언서 등은 파자(破字) 등으로 기록하여 이해하기
어렵고 표현 또한 직설법이 아니 우회적으로 하여 해설하는데 어려움이 많다.
또한 이 책을 쓴 저자들의 시기가 불분명한데 당시에는 이러한 책들이 금서(禁書)였기 때문이다.
또 이러한 인쇄술이 발달하지 못한 시기에 일일이 손으로 배껴 필사본이기 때문에 쓰는 사람에
따라 실수든 의도적이든 내용을 누락 삭제하거나 첨가하여 보충하였기 때문에
똑같은 책이라도 내용이 다른 것이 많다고 한다.
그러나 십승지에는 공통적인 특성이 있다. 십승지를 삼재불입지지(三災不入之地)라 하여
흉년, 전염병, 전쟁이 들어 올 수 없는 곳이라고 한다.
십승지가 위치하고 있는 지역은 태백산, 소백산, 덕유산, 가야산, 지리산 등 명산에 자리잡고 있으며,
산이 높고 험하여 외부와의 교류가 차단되어 있는 곳이다. 십승지는 외부 세계와 연결하는 통로가
대개 한 곳 밖에 없는데 물이 빠져나가는 곳으로 험한 계곡과 협곡으로 되어 있다.
또 산이 사방을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는 가운데 공간에 수량이 풍부한 평야가 있어서 식량의
자급자족이 가능하여 1년 농사지어 3년을 먹고산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대개 십승지는 정치, 경제, 사회, 군사적으로 가치가 별로 없는 곳으로 발전이 없으며 전쟁이 일어나도
적들의 접근이 전혀 없다.
결론적으로 십승지는 발전보다는 미래에 다가올 재앙을 피할 수 있는 최적의 장소로 피난과 자손 보존의 땅이다.
따라서 한때 난리를 피하기는 좋은 곳일지는 모르지만 여러 대를 살면서 번창하기에는 적합하지 못한 곳이다.
이러한 십승지가 있다고 하는 곳은 다음 열 곳이다.
1. 영월 정동 상류 (강원도 영월군 상동읍 연하리 일대)
2. 봉화 춘양 일대 (경북 봉화군 춘양면 석현리 일대)
3. 보은 속리 난증항 일대 (충북 보은군 내속리면과 경북 상주군 화북면 화남리 일대)
4. 공주 유구 마곡 두 강 사이 (충남 공주시 유구읍 사곡면 일대)
5. 풍기 차암 금계촌 (경북 영주시 풍기읍 금계리 일대)
6. 예천 금당동 북쪽 (경북 예천군 용궁면 일대)
7. 합천 가야산 남쪽 만수동 일대 (경북 합천군 가야면 일대)
8. 무주 무풍 북쪽 덕유산 아래 방음 (전북 무주군 무풍면 일대)
9. 부안 변산 동쪽 호암 아래 (전북 부안군 변산면 일대)
10. 남원 운봉 두류산 아래 동점촌 (전북 남원시 운봉읍 일대)
끊질긴 생명력 자연에게 인간은 참으로 많은 것을 배운다.
공주시는 민둥산 만드는데는 뛰어난 재주를 가졌으나 등로관리는 빵점이다.
도저히 길을 걸을수가 없을정도로 잡목이 뒤덮혀 있다.
장학산(長鶴山:381m:09:10)
잡목을 헤치고 급경사를 오르니 ‘준,희님’이 표시한 ‘장학산’이란 이크릴판만
있을 뿐 밋밋한 산이다. 장학산이란 자료를 이 지역 홈페이지를 찾아봐도
아무런 자료를 구하지 못했다. 무슨 의미인지...
성황당 가는 길에서 바라본 장학산의 모습
저 아래 노동리 마을이 보인다.
노씨가 살았던 마을이라 하여 노동(盧洞)이라고 부른다고 하는데 호랑이가턱을 괴고 있는
형상이라 하여 유래된 버미터골이라 하며 마을에 불당이있다고 하여 불당골, 씀바귀가 많이나는
골짜기라 하여 유래된 씀배나무골, 안개가 많이 낀다하여 유래된 작은 앵개골과 큰 앵개골이 있으며,
발아래보이는 마을이 옛날 노씨중에서 천석꾼이 이 마을에 살았다하여 부른다는 천석동 같다
서낭당고개(09:25)
공주시 유구읍 노동리(蘆洞里)와 청양군 운곡면 추광리(秋光里)의 들광이 마을을 연결하는 뚜렷한
고갯길이 금북정맥 주능선을 가로지르고 있는 곳으로 옛날 추광리 사람들이 유구장(유구시장)을 보기
위해 넘어 다니던 고개라고 한다.
유구읍 노동리의 산길...장학산을 지나 다시 편안한 길을 걷는다.
고약한 나무
신성한 성황당님 앞에 이 넘의 나무들은 뭔 짓거리여 ㅋㅋㅋ
거시기는 밤에 해야지.
350봉(09:30)
천종산(09:40)
공주시 유구읍과 신풍면 그리고 청양군 운곡면의 경계상의 천봉으로 갈라지는 봉이다.
정맥길은 왼쪽으로 방향을 틀면서 북쪽 방향으로 향한다. 천봉산(千鳳山)이라고 부르는
천봉은 봉우리가 수없이 많은 산이라 하여 천봉이라고 부른다고 한다.
전해오는 설에 의하면 옛날에 홍길동이 무예를 익혔던 산이라고 하는데, 조선시대 때의
도적 안수(安壽)가 여기에서 은거하였던 것이 그리 전해오는 것이라는 설이 있다.
마루금 안부에서 바라본 추광리의 모습
경주김씨와 나주임씨가 주류를 이루고 살고 있는 평온한 마을로 양지말, 야광, 중뜸,
갈개울 등으로 자연마을을 이루고 있으며 담배재배를 많이하고 있으며 농한기에는
삼베가공을 하여 농외소득을 올리고 있다고 한다.
야광고개(09:55)
공주시 신풍면 조평리 구분실 마을과 청양군 운곡면 추광리 들광이 마을을
잇는 고갯길로 공주시 신풍면 조평리에서 예산으로 이어지는 옛날에는 중요한 통행로였다.
야광고개에서 미끄러운 절개지 사면을 올라서며 완만하게 이어지는 정맥은 아름드리 소나무와 바위지대를 통과한다.
『한국지명총람』에 따르면 노동고개 또는 들괭잇고개로도 불린다.
야광리는 들괭이라고 불리었다. 괭이로 개간한 들판이 있어서 붙여진 이름이다.
현대에 들어서는 들광이라 불리고 있다.
서반봉(392m:10:05)
서반봉은 공주시 서쪽 끝에 있는 산으로 충청남도 청양군 운곡면 추광리와 경계를 이루고 있다.
서반봉의 남쪽은 골짜기와 바로 이어지는데, 이곳에는 조선동이 자리 잡고 있다.
옥백산·억복산이라고도 불리며, 전국에서도 유명한 활석광산이 있던 산이다.
서반봉 꼭대기에는 돌로 만든 간결한 제단이 있는데, 주민들의 말에 의하면 외지 사람들이 와서 가끔 산제를 지낸다고 한다.
서반봉의 남쪽 산릉에 변질수성암으로 이루어진 사점미재가 있는데, 차별침식에 의해 형성된 고개로 추측된다.
공주시 북부의 대부분은 산지로 둘러싸인 패쇄적인 지형으로 금강의 작은 지류에 의해 좁은 곡저 충적지가
형성되어 있으며, 서반봉 또한 금강이북 대부분의 산지와 같은 형태를 띠고 있다.
서반봉을 지나니 이곳은 완전히 산을 작살을 내놨다. 공주시, 청양군은 좌, 우 가릴것 없이
민둥산 만들기 경쟁을 하는듯 싶다. 나무를 한번 심어면 최소한 30년 이상이나
걸리는데 이곳은 꽤나 수령이 된듯한 나무들도 여지없이 짤려 나갔다.
거기다가 또 벌목을 할 모양인지 나무에다 벌목대상 나무들에 스프레이를 뿌려놨다.
아예 등로가 없다. 겨우 겨우 선답자들의 꼬리표를 보고 찾아간다.
조금 지나니 암릉구간이 있고 여기서 우측으로 90도를 꺽어서 내려간다.
잠시후에 편안한 넓은 등로가 나타난다. 이런 곳엔 또 제버릇이 나온다.
더군더나 어젯밤에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한탓에 졸면서 걷다가 된통 넘어진다.
길 가운데 위에 보이는 나무에 걸려서 그냥 한바퀴 굴러면서 넘어진다.
정신이 번쩍든다. 다행히 다친데는 없지만 오른쪽 정강이에 피가난다.
이젠 졸지말아야지... 안부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세차기만 하고...
다시 오르니 오늘 처음으로 만나는 제대로 된 암릉구간이다.
좌측 암릉 아래에는 호화로운 묘지가 보이고 꽤나 긴 정상은
아무런 표식도 없다 . 그러나 지도상의 위치로 봐서는 292봉으로 추정된다.
등로에 이런 나무문도 통과해야 하고...
사점미 고개(10:45)
청양군 운곡면 광암리와 공주시 신풍면 조평리를 잇는 임도로 좌측에는
커다란 비닐 하우스 10동이 자리잡고 있고 그 아래는 활석 채취장이 있고
우측으로는 삼광 광업소 가는 길이다. 사람이 잘 다니지 않는지 길에는
잡초만 무성하다. 다시 10분간을 빡세게 오른다.
사점미재에서 힘들게 오르니 지도상에는 나타나지 않은 관리가 잘 된
헬기장이 나오고 헬기장을 둘러싼 차돌바위가 마치 백두대간 동대산 두로봉 구간에서
만난 차돌바위만큼이나 크다. 1분을 지나니 오늘 구간중에 가장 높은 봉우리인
국사봉이 나타난다.
국사봉 삼각점(△예산 319 198 재설)
국사봉(國師峰:489m:10:55)
충청남도 신풍면 조평리에 전해 내려오는 국사봉에 깃든 지명 이야기.이다
.「국사봉 전설」은 국사(國師)가 왕에게 하사받은 금잎을 국사봉 자락에 묻고 칩거하여 30여년을 살다가,
“금이 지금도 자란다”는 말을 하고서 운명을 했기에 그가 쓰러진 곳의 산봉우리를 국사봉이라고
불렀다는 지명유래담이다.
아주 옛날 왕궁 안에서 왕자를 가르치던 국사가 있었다.
그는 세 살 난 어린 왕자를 15세가 되도록 가르쳤다.
그런데 그 해 여름에 왕자에게 병이 나 해를 넘기지 못하고 숨졌다.
왕자가 죽자 국사는 왕궁을 떠나기로 결심하고 왕에게 하직을 고했다.
왕이 만류하였으나 듣지 않자 왕은 국사에게 금 한 잎을 주었다.
국사는 전국 방방곡곡을 떠돌다 지금의 신풍면 조평리 국사봉 자리에 걸음을 멈추었다.
그리고는 봉오리 주변에 금 한 잎을 묻었다.
국사는 봉우리 옆에 움막을 치고 살았다.
오랜 세월이 흐른 뒤 어느 날 나무꾼이 나무를 하러 와서 국사와 마주쳤다.
국사는 나무꾼에게, “내가 여기에서 산짐승과 벗을 하며 살아온 지가 30년이 넘었다.
임금에게 받은 금을 이 산에 묻었는데 지금도 크고 있을 것이다.” 이 말을 마치고 국사는 이내 쓰러져 숨졌다.
이후로 사람들은 국사가 쓰러진 곳의 산봉우리를 국사봉이라고 불렀다.
나무꾼에 의해 국사봉에 금이 자란다는 말이 풍문으로 돌자 사람들이 금을 찾기 위해 국사봉 주위를 파헤쳤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금을 찾지 못하였다.
그러다가 일제강점기에 일본인들이 이곳에 금광을 개설하고 많은 금을 캐갔다고 한다.
이곳 국사봉에서 셀카로 인증샷을 남기고 초콜렛과 오렌지 쥬스로 허기를 면하고
우측으로 꺽어져서 급경사를 내려간다. 오늘 처음 만난 이정표엔 양쪽 다 수리치골
성지를 해놔서 잠깐 헷갈린다. 거기다가 꼬리표도 양쪽 다 붙혀놨다.
이곳은 알바하기 쉬운 곳으로 분명히 지도를 확인하고 진행해야 할 것 같다.
바람은 자꾸만 더욱 세어지고 기온이 올라가야 할 낮인데도 자꾸만 더 추워진다.
440봉(십자가 철탑 : 11:05)
봉우리 정상에는 커다란 십자가가 서 있는 걸로 봐서 이 아래마을이 수리치골
성지라서 아마 이곳에 십자가를 세운 모양이다. 정상에 있는 삼각점은 심하게
마모되어 내용을 알아 볼 수가 없을 정도이다.
수리치골 천주교 성지는 공주시 신풍면 봉갑리의 수리치골에는 천주교 성지가 자리잡고 있다.
조선말 천주교 박해시대때 천주교 신자들이 숨어 살았던 곳으로 성 김대건 신부에게 서품을 주고
김대건 신부를 지팡이 삼아 한국에 입국한 페레올 주교와 성 다블뤼 안 신부가 김대건 신부가 순교하고
안장될 무렵인 1846년 11월 2일, 박해받는 한국 교회와 민족을 위해 한국과 한국 교회를 봉헌하고
신심단체를 조직하였던 발상지로써 한국 천주교회의 의미 깊은 사적지이다.
이 봉우리에서 좌측 11시 방향으로 내려서야 정맥길이다.
활석 채취광산도 보이고...
활석은 광물중에서 강도가 가장 약한 것으로 아트지나 화장품, 보온용,
내화재 등에 쓰이는 양질의 고급 광물이다.
내가 오늘 넘어야 할 금북정맥의 능선들
십자가봉을 지나니 수리치골 내려가는 길은 엄청난 급경사에다가
낙엽으로 인해 상당히 미끄럽다. 사실 이런데서 관절에 무리가 가장 많이온다.
조심스럽게 스틱을 이용하여 내려오니 좌측으로 수리치골 내려가는 갈림길이
나오고 정맥길은 줄곧 직진으로 향한다.
이무기나 용이 살았을 법한 커다란 동굴도 나타나고...
이렇게 고마운 법이... 역시 산꾼들은 남을 배려하는 마음도 아름답고...
거 참 희한하게 생겼네요. 상상은 자유 ㅋㅋㅋ
이곳 공주와 청양의 경계지점인 이곳은 충남에서도 오지에 속하는 곳이라
그런지는 몰라도 소나무들이 참 많이 서식한다. 그리고 대체적으로
건강한 모습이다. 그리고 그 소나무 중에 희안하게 생긴것이 유난히 많이 보인다.
415봉(칠갑지맥 분기점:11:45)
청양군 대치면, 운곡면과 공주시 신풍면 경계. 능선분기점에서 오른쪽으로 들어선다.
이곳 정상은 폐헬기장이 있고 칠갑지맥의 분기점이기도 하다. 정맥길은 칠갑지맥이라고 붙여 놓은 코팅지 쪽으로
향해야 하며 좌측길은 공주 십승지 길이다. 정맥꾼들은 왼쪽 발은 공주, 오른쪽 발은 청양 땅을 밟고 걷는다.
고도는 높지 않지만 좌우로 경사가 매우 가파른 깊은 산골이다.
칠갑지맥 (七甲枝脈)금북 칠갑지맥 (七甲枝脈):
금북정맥이 장학산 국사봉을 지나 청양군 운곡면과 대치면, 공주시 신풍면의 삼면점인 등고선상 416봉에서
정맥은 서남방향인 금자봉으로 가고 한줄기를 동남방향으로 분기하여 줄바위 고개, 짐디울고개, 大德峰(△471.5),
七甲山(560.6), 마재, 낙지재, 백토고개, 문드래미고개, 明德峰(168.7)을 넘어 청양군 청남면 인량리 금강천이 금강을
만나는 곳에서 끝이 나는 산줄기다.
출처: 박성태 신산경표
배실이마을 전설에 따르면 마을이 배(船)를 닮았다 해서 배실이라 부르는데 배가 바다를 항해하여
7년이 걸리는데 배에 물건을 싣고 육지에 닿아서 짐을 푸는 데에도 7년이 걸리는 그런 배(船) 형이라 한다.
배가 그만치 크다는 설인데 여기 사는 사람들은 이 마을에서 7년을 살면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가야만 한다고 한다.
원인인즉 7년을 더 눌러 살면 배가 바다에서 항해할 때 폭풍우를 만나듯이 그렇게 어려움이 닥치는데 7년을
더 살다가 큰 재앙을 만나서 집안이 망했다고 하는 전설이 있는 마을이다
칠갑산 중턱에 있는 정산면은 산신제는 산신령... 곧 호랑이가 대상인데 예로부터 칠갑산에 사는 호랑이의
피해가 컷던 곳이라 그랬으며 대티고개가 있는 대치면의 장승제는 오늘날까지 전승되고 있다고 한다.
장승제는 祭를 산신령에게 올리지 않고 마을입구에 세워진 나무로 만든한 쌍의 장승에게 올리는 것인데
주로 도둑을 맞지않고 병에 걸리지 않기를기원한다.
정산면과 장평면에 남아있는 동화제는 정월 보름이 되면 마을입구강가에 불피울 나무와 짚을 한 짐씩 지고와
‘동화대’를 만들고 노악을 울리고 제물이 차려지면 한 사람이 동화 꼭대기에 올라가 불을 붙이는데 동네 사람들은
여기서 밤을 세우며 논다고 한다.
지금 이 등로 좌우에는 각 마을마다 유난히 저수지가 많이 보인다.
충남지역에서 산으로 빙둘러 쌓인 청양땅은 예로부터 마을마다
수호신을 추앙하는 경우가 많다고들 한다.
어촌의 경우 용왕제를 지내듯이....청양지역 마을들은 부락제를 지냈다고 한다.
부락제는 마을의 공통적인 소원인 재해를 입지않고 풍년을 하늘에 비는집단의식인데
이 부락제와 하늘은 자연환경과 갚은 관계가 있다.
꽤 오래전에 산불이 난 지역인 모양이다. 여기저기 커다란 나무들이 불에 탄
모습으로 쓰러져 있고 거기에 새로난 잡목들이 자리를 잡는 바람에 길이없다.
얼굴이 할키고 베낭이 걸리며 옷이 여기저기 잡목에 상처가 난다.
겨우 빠져 나오니 무명 묘지가 나타나면서 길은 좋아진다.
잠시후에 멋진 쌍둥이 노거수 두 그루가 산꾼을 반기고...
또다시 길 아닌 길 같은 길같은 길은 개척자의 기분으로 걸어간다.
424.4봉(12:20)
아무것도 알아볼 수 없는 424.4봉 삼각점
424.4봉에서 다시 편안한 길을 내려오니 커다란 비석이 서 있는
묘지를 만난다. 김해 김씨와 경주 최씨의 합장묘지인데 멧돼지의 소행 같은데
묘지를 난도질을 해놨다. 참으로 보기가 민망스럽다. 나쁜 넘의 쉬끼...
운곡고개(12:35)
청양군 운곡면 신대리 냉정골 마을과 대치면 농소리 놋점이 마을을
이어주는 고개로 성황당 나무를 연상케 하는 커다란 나무 한 그루가 있다.
금자봉 (370m:12:45)
청양군 운곡면 상갑리와 대치면 농소리의 경계에 있는 봉우리로
청양군 홈페이지에 들어가봐도 이 지역에 대한 설명이 전혀없어
무슨 연유로 이 지명을 붙였는지는 알 수가 없다. 친절한 금자씨가
이곳을 왔다갔나?
경주 김씨의 묘지
이곳은 유난히 본관이 ‘慶州’인 김씨 묘지들이 많이 보인다.
이곳 충남 지역에 보령, 서산, 예산, 부여,청양지역이 경주 김씨들이
많이 산다고 한다. 범여도 원래는 충청도였는데 300여년전에 충청도에
관찰사로 계셨던 선조가 경상도로 귀양을 가는 바람에 의령땅에
정착하게 되었다는 애기를 어렸을 때 조부님에게 들은 얘기가 있다.
위라리 마을의 모습
행정구역상 청양군 대치면 위라1리와 위라2리로 나뉘어 있으며 회티, 방죽골, 사라골, 외실,내실 등
자연부락을 이루고 특히 위라2리에는 인조5년 정묘호란때 의주에서 전사한 박신용 장군의관복을
보관하고 있는 유의각이 자리잡고 있다.
바구니봉 안부(13:10)
스텐레스 저장 탱크를 끼고 우측 마을 뒷산 능선을 타고 계속가면 밤나무 단지를
만나고 묘지와 억새밭을 성지순례하듯이 걷는다. 우측으로 내려가면 운곡농공단지가 나온다.
금북정맥 산꾼들에게 스타가 되어버린 할아버지 염소
철탑아래에 정맥길 좌우 양측에 늙은 염소 두마리가 있다.
하도 산꾼들을 많이 본 탓인지 놀라지도 않고 멋진 포즈까지
취해준다. 오늘 산행하면서 처음으로 생명을 가진 존재를 만난 것이다.
NO: 18번 송전탑(13:20)
다시 밤나무 단지를 지나고...
문박산 능선 아래에 위치한 청양 운곡농공단지의 모습
표고버섯 재배 단지도 지나고...
분골고개(13:30)
우측에 청양군 운곡면 효제리와 좌측에 대치면 위라리를 연결해 주는 96번
지방도로가 지나가고 거기서 갈라져 나와 농공공단 가는 임도를 지난다.
맞은편 임도로 올라서 금북정맥길을 이어간다.
청양군 운곡면 효제리의 모습
오늘 처음으로 사람구경을 한다. 그것도 100m 멀리 먼 발치에서...
등로 아래의 밭에서 가족들이 배추뽑기 가을걷이를 하고 있다.
작년에는 배추파동이 나서 배추값이 금값이었는데 올해는 너무
많아 똥값이란다. 농협이이란 곳에서 재배 면적을 조절해서 생산자와
소비자에게 서로 도움이 되는 시스템을 만들수는 없을까?
밭과 야산을 지나서 25분정도 걸으니 70지방도가 나타난다.
와고개(70번 지방도:13:55)
청양군 대치면과 운곡면의 경계에 있는 도로로서 지도상에는
645 지방도로 표시되어 있다. 흔히들 산악회나 개인이 금북정맥을
산행할 때 이곳을 날머리나 들머리로 잡는 경우가 많다.
와고개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지방도 치고는 차량들이 꽤나 많이 다닌다.
정신나간 개나리(?)
도로를 건너서 밭고랑 사이를 지나 전봇대를 끼고 올라가면 청주 한씨 묘지가
나타나고 조금 더 가면 선답자들의 꼬리표들이 보인다.
조금 더 진행하면 밤나무 단지가 나타나고...
구기자 밭
흔히들 청양하면 청양고추와 구기자들을 연상케 한다.
청양이란 이름은 1914년 행정구역 개편때 靑武郡과 定陽郡이 합병하면서 그 이름을 얻었다고 한다.
그러나 靑陽이란 이름은 그 역사가 오래 되어 신라 경덕왕때 月明師의 散花歌란 향가와 관련이 있는
아주 오랜 역사를 가진 이름이라고 한다. 푸르고 따스한 동네라 청양은 농작물이 盛한 고장인데 구기자와
그 이름도 유명한 청양고추가 많이 난다. 그러나 정작 청양고추는 그 기원이 경북 청송, 영양지방과 관련이
있다는 설이 대세인 듯 한데, 아직 여러 논란거리가 되고 있는 모양이다.
청주 한씨 묘지를 지나고 밤나무 단지를 지나다가 다시 우측 산길로 접어든다.
길은 참으로 편안하나 국사봉에서 쥬스하나 마신 이후로 아무것도 먹지 못했더니
배가 엄청나게 고파온다. 더 이상 발걸음이 떨어지질 않는다.
조금 올라가니 밤나무가 심어져 있는 폐농장에서 버너를 켜고 라면을 끓여서
소주 한잔을 하려고 베낭을 내려 버너에다 불을 지피려는데 바람이 너무
심하게 불어서 포기하고 앙꼬빵 하나와 쥬스 한잔으로 허기를 면한다.
바람탓인지 자꾸만 한기가 느껴진다. 베낭을 뒤지니 발렌타인 17년산 미니어쳐가
하나 베낭속에 있다. 지난번 레스토랑을 하는 친구부인이 준것을 베낭에 넣어둔
모양이다. 단숨에 한잔을 마시고 나니 느낌에 추위는 좀 가시는 느낌이건만
어제 저녁에 잠을 못잔 탓인지 발길은 천근만근이다.
문박산 아래에 있는 안어실 마을의 모습
15번 철탑(14:35)
감나무밭에서 문박산 오르는 길은 그리 험하지는 않으나 체력이 급격하게
저하되는 느낌이다. 오늘 하루종일 밥 한끼를 먹지못하고 빵조각으로만
해결하려니 참으로 힘이든다.
오늘 내가 지나온 능선
문박산 산불감시초소
관리가 전혀 안된탓에 망가져서 엉망이다.
혼자 다니는 산꾼들의 비박장소로는 안성맞춤일것 같다.
문박산(文博山:337.8m:14:55)
충남 청양군 운곡면과 비봉면 경계능선에 자리잡은 이 산은
문박산 정기를 이어받은 이곳 주변 학당마을에선 옛부터 인물들이 많이 났었고,
효제마을엔 열녀비가 세워질정도로 충효의 예절이 드높았었다.
또한 위락마을은 최초의 구기자 재배단지가 들어서서 전국으로 공급되기도 했었다.
신라의 고승 원효대사가 백제의 사비성을 방문한후 돌아오는 길에 부여 무량사에 들러 茶를마시고,
마지막 종착지인 文博山에 들러 碩含을 돌에 새기어 어딘가에 묻어놓고 금강산으로 행장을 차려 떠나셨던것이다.
문박산은 산세가 그리높지는 않으나 文殊菩薩이 머무는 靈驗地로 여겨 祈禱 도량지로 원효대사는 점지한것이다.
특히불교의 金剛經 의 효험이 가장 절실히 나타나는 庵慈가 있다.
문수보살은 지헤의 보살로 여겨서 학문을 성취게 하는 보살이다.
어딘가에 감추어진 원효의 석함을 찾으려고,조선시대 말 경허대선사가
온산을 다헤매며 찾았으나 찾지못하고 수덕사로 발길을 돌리셨던것이다.
문박산 줄기는동방으로 비봉산과 남방으로는 칠갑산이 보인다.
비봉산은 鳳凰이 날으는 모양으로 앞으로는 관산리 라는 동네가 있다.
문박산에서 남쪽으로 작은 산능선이 있는데 金征掘이 있다.
금정굴은 일본사람들이 金을 채굴하기위해 파놓은 굴이다.
일제시대에 상당히 金을 채굴하였던 것이다.
깊이가 알 수 없을만큼 굴을 파서 金을 채굴하여 군산항을 통해 일본으로 가져간것이다.
당시 일본사람들은 나무겁질을 벗기어 송진을 채취하고,
아주까리를 재배케하여 피마자 기름을 착취하여 간것이다.
문박산 삼각점 표식판
문박산을 지나니 길은 참으로 좋으니 시간이 지나니 마음이 조급해진다.
내리막길에다가 길이 스폰지처럼 푹신하다. 시간을 줄이기 위해 산악 마라톤
하듯이 뛰다시피하여 시간을 줄인다. 산에는 평지보다 해가 훨씬 빨리지기에...
다시 밤나무 단지가 나타나고 밤나무 단지 안에는 무안 유씨 묘비를 있는 산소를
지나면 우측에는 자작나무 조림지가 있고 조금 내려가서 90도 좌측으로 꺽어
내려가면 밤나무 단지 끝에 포장도로가 나온다.
밤나무 단지를 지나고...
이곳에서 90도 좌측을 꺽어서 밤나무밭을 계속 진행한다.
좌, 우 양쪽의 밤나무 단지를 끼고 비포장도로로 계속 진행한다.
문박산 아래에 커다란 사찰하나가 자리잡고 있고 지도에는
표식이 되어 있지 않다.
9번 송전탑(15:13)
9번 송전탑을 끼고 계속해서 비포장 도로를 산보하듯 걸어간다.
청양군 대치면 백천면 사기점 마을의 모습
사기점 고개(15:20)
이정표의 고추모양이 이채롭다.
사기점 고개에서 10분정도 비포장도로를 따라 가다가 우측 밤나무밭으로 접어든다.
(알바주의) 넔놓고 가면 알바하기 딱 좋은 곳이다. 밤나무을 조금 올라가다 길이 없는
숲속으로 들어간다.
이곳에서 우측 숲속으로 들어가면 또다시 잡목과의 싸움이 시작된다.
얼굴이 할퀴고 베낭이 긁키는 수난은 계속되고...
여우실 고개(15:30)
지나온 능선들
너덜길을 지나고...
225봉(15:35)
드디어 학당고개가 보이기 시작한다.
을씨년스런 밭을 지나니 목장이 나타나고...
목장에서 우측으로 내려가니 배추밭이 나타난다.
배추밭 통로를 따라 내려오니 우측에 에덴모텔이 보이고 좌측에는
청양장례식장이 나타나면서 오늘 산행을 마친다.
학당고개(15:55)
청양읍을 지나는 29번 국도인 학당고개는 아리고개라고도 불린다.
고개라기 보다는 평지에 가깝다. 건너편에 청양장례식장이 자리잡고있고 조금 내려가면 에덴모텔이 있는 곳이다.
청양에서 예산으로 이어지는이 고개를 지대가 낮다고 하여 ‘아리고개’라고 부르는데 산꾼들에게는 학당고개로
더 알려져 있는 곳으로 비가오면 이 아리고개에서 물길이나뉘어져 북쪽은 예당 저수지로 흘러들어 가고 남쪽은
백마강으로흘러 들어 간다고 한다.
카메라로 몇 커트 찍고 버스 정류소인 에덴모텔 앞으로 내려가려는데
저만치 버스가 오고있다. 이 버스를 놓치면 택시를 타야 하기에 난감하다.
그것도 내가 서있는 곳은 반대편이라 난감하기 그지없다. 손을 흔들어 세워보려 하지만
버스는 지나간다. 근데 이게 웬 떡이야! 버스가 기름을 넣으려고 주유소로
들어가네... 죽을 힘을 다해서 쫒아가서 버스를 탄다. 기사왈 어디가슈...
범여 대답이 걸작... 버스타러 가죠
주유소에서 버스를 타고 10분도 안돼서 청양 시외버스 터미널에 도착한다.
청양시외버스 터미널(16:05)
서울가는 고속버스를 물으니 표가 없단다. 동서울 터미널로 가는 버스가
17:20분인데 대기석이고 다음차는 19시 40분발 서울 고속버스 터미널행이란다.
무조건 17:20분발 표를 끊어서 출발하려는 버스에서 기다리는데 지금 출발하는
버스표 41번 있다고 한다. 이 좌석은 맨 뒷좌석 가운데라 버스가 급브레이크를
잡으면 앞으로 튀어 나가는 자리라 기피 좌석이란다. 이런 판국에 찬밥, 더운밥이
어디있어... 일단 타고보자. 덕분에 하루종일 굶고간다. 버스는 청양을 출발하여
칠갑 저수지를 지나 꼬불꼬불한 길을 따라 정산에서 승객을 태우고 달린다.
잠을 청하려는데 옆에 탄 젊은 친구가 전화질이다. 조금후엔 옆에 탄 30대 여성이
또 전화질이다. 이런 매너가 개똥이구먼... 버스에서 통화나 하고 하면서
큰소리로 뭐라고 했더니만 이내 조용해진다. 졸지에 군기를 잡은 것이다.
덕분에 서울까지 편안하게 잘자고 왔다. 그래도 그렇지 버스에서 전화질이야.
버스표
대기표로 바꾸는 바람에 16:20분 버스로 서울까지 왔다.
서울버스 터미널(1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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