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산행일자 : 2011.12,25
☞ 산행날씨 : 아주 맑은 날씨, 올겨울 가장 추웠덤 날씨
☞참석인원 : 나홀로 산행
☞ 산행거리 : 도상거리: 21.2km +3.4km /G.P.S거리: 25.3 km / 8시간 45분 소요
☞ 산행코스 : 스무재-장계재-은고개-254봉-287봉-물편고개(610번도로)-우수고개
시멘트 임도-283봉-293봉-보령고개-258봉-우수고개-38번 철탑
385봉-가루고개-오서산 갈림길-오서산-오서산 갈림길-금자봉-376봉
공덕고개-신풍고개-꽃밭골고개-생미고개(96번도로)-삼일운동 기념비
도재고개-홍광농장-수원목장
☞소 재 지 : 충남 청양군 화성면 / 보령시 청라면 / 홍성군 장곡면, 광천읍, 홍동면,
지난 한주는 충격적인 뉴스가 있었다. 북한의 김 정일이가 사망한 사건이다.
그러면서 왕조체제를 빼고는 전 세계에서 전후무후한 3대 권력을 이어온 것이다.
아버지 김 일성에서부터 우리 민족에게 70여년을 고통을 준 독재정권이다.
무자비한 공포정치로 주민들을 억누르고 굶주려 죽게 하면서도 자기들은 호의호식했다.
영원불멸할 것만 같은 절대권력도 건강 앞에서는 어쩔 수 없는 모양이다.
이번 기회로 제발 민주화로 이우어져 민초들을 굶지 않게 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오늘 산행구간의 지도
서울 영등포에서 대천가는 기차표
올 겨울들어 가장 추운 날씨이다. 그런데 고민이 많다. 개포동에서 새벽 일찍 영등포역까지
가는 교통이 마땅찮다. 고민을 하고 새벽 3시 30분에 일어나 베낭을 챙기는데 아들이 그때까지
자질 않고 컴퓨터를 하고 있다. ‘아버지 이 추운 날에 산에 가시게요? ’ 하는 질문이다.
아들은 항상 아버지가 걱정인 모양이다. 응 하고 대답을 하니 오늘은 집에서 쉬시죠 하고 말은
하지만 아버지 고집을 꺽을 수 없다는 걸 누구보다도 더 잘 아는 아들이기에 제가 영등포까지
모셔 드릴께요 하면서 미리나가 차에 시동을 건다. 덕분에 편안하게 영등포 역까지 왔다.
차를 타고 오면서 이런저런 속깊은 얘기까지 하는 아들이 늘 든든하고 대견스럽다.
영등포역 앞에 내리니 매서운 칼바람이 살을 에이는 듯하다. 조금 일찍 온탓에 아직
역은 문도 안 열었고 통로에 노숙자들이 잠을 자고 있어 밖에 나와 역앞 골목으로 들어가
아침을 해결할 요량으로 포장마차 비슷한 곳에 들어가 뼈해장국 한그릇을 시키니 칠십
넘은 노인이 내가 불쌍해 보였는지 밥을 많이 먹어야 한다면서 머슴밥에다가 뼈다귀를
잔뜩 주신다. 밥을 먹으면서 국그릇에 숟가락을 넣으니 바퀴벌레 한마리가 나온다.
갑자기 밥맛이 떨어진다. 나이드신 분에게 항의도 못하고 김치 깍두기로 맨밥을 먹고 나온다.
할머니는 젊은 사람이 국을 다 남기고 간다고 뭐라고 한다(남의 속도 모르고...)
밖을 나오니 매서운 찬바람이 뼈속까지 스며든다.
영등포 역 대합실(05:15)
서울에 40여년을 살았지만 영등포역에서 열차를 타본 건 처음이다.
내가 사는곳과 생활권이 다른탓도 있지만 개포동쪽은 버스의 대중교통이
편리한 탓에 고속버스와 시외버스를 많이 이용하는 탓도 있다.
대천가는 열차 시간표
열차에 오르자마자 평소 습관대로 잠에 빠진다.
이것이 피로를 푸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기에...
1시간이 이상 잠을 잠을 잔 모양이다. 열차는 도고온천역을 지나고 있다.
이제 밖에도 날이 밝아오고 있고, 이곳 시골은 온 세상은 눈으로 뒤덮혀 있다.
약 5분간의 연착을 한 뒤에 08시 23분에 대천역에 열차는 도착한다.
이곳 보령에 오면 상당히 헷갈린다. 보령이 맞는지 아님 대천이 맞는지
정답은 둘 다 맞다. 외지인들은 그래도 상당히 헷갈린다.
버스 터미널은 보령으로 표기해놨고 기차역은 대천역으로 표기해놨기 때문이다.
보령시는 1914년에 보령, 남포, 오천군이 보령군으로 통합이 되었고 1986년에
보령군이 보령군과 대천시로 분리되었다가 1995년에 다시 보령시로 통합이 되어
1읍 10면 5개동으로 11여만명이 거주하는 중소도시의 규모이다.
모래가 고운 대천 해수욕장이 있고 한철 벌어 세철을 먹고 산다는 보령 머드축제가
유명한 곳이기도 하다
다리위에서 본 멀리 대천항의 모습
대천역에서 내려 舊 대천역으로 걸어간다. 걸어서 15분정도 걸리는
길이다. 이곳에서 청라와 화성을 거쳐서 가는 스무재행 버스가 있기에...
구 대천역(08:40)
대천시 구시가지를 지나 걸어서 구 대천역 버스 정류장에 도착한다.
도착 3분만에 스무재가는 버스가 온다. 이곳도 이른 아침이라
그런지 꽤나 추운 날씨이다. 손끝이 빠질 정도로 시려온다.
잠시후에 버스가 온다. 버스 요금이 1,200원이다. 서울보다 훨씬 비싼 요금이다.
서울은 버스회사들이 준공영제이고 이곳은 개인이 운영하기에 비싸다고 한다.
화성, 청라가는 버스 시간표
스무재 아래 소양리 버스 정류소(09:05)
버스는 골목골목 마을을 거치면서 간다. 이곳은 조그만 도로라 그런지
눈이 꽤나 많이 쌓였고 도로는 얼어서 빙판이 졌는데도 아랑곳없이
잘 간다. 버스에는 달랑 6명이다. 오늘이 섣달 초하루라 그런지 절에가는
보살님 4명과 남자 한분 그리고 나까지... 청라면 소재지를 거쳐서 소양리
버스 정류소에 내려준다. 버스 정류소 앞에는 등거리집이란 간판이 있다.
나를 내려준 버스는 지나가고 5분정도를 걸으니 스무재가 나타난다.
스무재 가기 직전에 우측에는 “고려의마암기”라는 비석이 서있다.
"萬世保寧" 표석이 있는 스무재에서 은고개 가루고개를
지나 오서산(790.7m)을 지나면 마루금은 급격히 자세를 낮춰
홍성 꽃조개까지 15km 가까이 구릉지같은 능선으로 끊일듯 말듯
간신히 명맥을 이어가며 물길을 가른다. 오서산 능선에서부터
홍성군에 발을 들인 마루금은 봉수지맥 분기봉을 내려서면서 부터
완전히 홍성땅으로 들어서는데 여기부터는 말 그대로 산도 들도 아닌
비산비야(非山非野)의 밭둑과 농로, 심지어 축사가 즐비한
마을안길까지 걸으며 홍성 장곡면 들판을 가로지르며 북진한다.
스무재(106m : 09:20)
스무재에 도착하여 아이젠과 스패치를 착용하고 스틱과 G.P.S 작동여부를
확인한 다음에 산행을 시작한다. 산에는 눈이 꽤나 쌓여있다. 발목이 들어갈 정도로...
칠장산에서 충청도 내륙을 휘저으며 금강의 북쪽을 따라 남하하던 금북정맥은, 청양의 백월산에 와서
느닷없이 금강과는 관계없이 북쪽으로 몸을 틀어 서산을 거쳐 안흥 앞바다로 향해 버린다.
그러나 이 금북정맥의 흐름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들이 상당수 있다.
백월산에서 남쪽으로 분기하여 성태산, 조공산, 월하산, 월명산, 옥녀봉, 봉림산, 오석산,
남산, 테뫼산, 전망산에서 금강과 만나 서해바다와 합류하는 도상거리 약 69km정도의
산줄기를 정확한 금북정맥이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박성태님은 신산경표에서, 속리산 천황봉에서 산줄기를 출발해 한남금북, 금북의 구분 없이
청양 백월산까지 이은 후, 북서쪽 안흥진으로 가는 대신 남쪽으로 방향을 바꾸어 금강 하구로
산줄기를 이어 이를 "호서정맥"이라 이름 붙혔다.
그리고 산경표상의 금북정맥인 백월산에서 안흥진으로 가는 산줄기는“ 금북기맥"으로 명명했다고 한다.
다른 몇몇 정맥에서도 이런 논란과 주장이 있고 상당한 논리적 근거도 갖고 있는 듯 하다.
한북정맥 챌봉에서 교하 장명산으로 가야 하느냐, 아님 오두산으로 가야 하느냐 하는 논쟁도
이와 맥락을 같이 한다고 하겠다.
스무재에서 마루금으로 접어드니 백설이 소복히 쌓여있다.
아무도 밟지않은 깨끗한 백설위를 내가 발자국을 남겨야 하다니
백범 김구 선생이 일생의 기준으로 삼은 문구라 할 수 있는 서산대사의
禪詩가 생각이 난다
踏雪野中去(답설야중거) : 눈덮인 들판을 갈때는
不須胡亂行(불수호란행) : 모름지기 그 행적을 어지럽게 하지 말지어다
今日我行跡(금일아행적) : 지금 나의 발자취는
遂作後人程(수작후인정) : 반드시 뒷사람의 이정표가 되느니라.
청허(淸虛) 휴정 (休靜, 1520~1604)
서산대사라는 호로 잘 알려져 있다. 임진왜란 때 승병을 이끌고 한양 수복에 공을 세웠다.
유(儒)·불(佛)·도(道)는 궁극적으로 일치한다고 주장, 삼교통합론(三敎統合論)의 기원을 이루어 놓았다 .
임진왜란 때 일본에 가서 일본과 담판을 지어며 일본으로 끌려간 포로를 귀환시킨
사명당 대사가 서산대사의 제자이다.
아무도 밟지않은 이 깨끗한 길을 걷기가 미안하다. 조금 올라와서 우측으로
꺽어지는데 간벌을 한 자리에 눈이 많이 쌓여 길이 보이지 않는다.
겨우 희미한 등로가 보이나 이곳은 등로관리가 전혀 안되어 있어 걷기가
심히 불편하기 그지없다. 꽤나 많은 눈 때문에 오늘 산행이 싶지 않음을 예감한다.
오늘은 시야가 너무 좋다. 지난구간에 고생했던 일원산의 햇살은 따사롭게만
느껴진다. 오늘은 이곳 청양과 보령사람들이 넘나들던 고개만 해도 자그만치
20여개를 넘어야 할 정도로 오지였던 모양이다. 좌측의 청양 화성지역은 조선시대
서얼출신인 이 몽학 난의 근거지이기도 한곳이다.
몇년전에 이 몽학의 난을 영화화한 이준익 감독이 연출한 영화 <구르믈 버서난 달처럼>이
이몽학의 난을 소재로 한 영화이다. 이몽학의 난(李夢鶴-亂)은 1596년 임진왜란 뒤 정유재란 전
이몽학이 불만에 찬 농민들을 선동하여 충청도 일대에서 일으킨 반란이다.
임진왜란(1592년)이 발발하기 전 1589년 대동계를 이끌던 정여립의 역모사건을 일으켜
실패하자 그가 돌연 자살하면서 소문이 흉흉해지고, 급기야 그의 모가지는 다시 부관참시를
당한다. 이렇게 임팩트있게 당시 조선 사회를 뒤집으려던 그의 꿈은 사라졌는데,
그런 대동계의 바톤을 이으며 급부상한 인물이 '이몽학'이다.
이몽학은 왕족의 서얼 출신으로 홍산현 구룡 사람이다. 아버지에게 쫓겨나 충청·전라도 지방을
돌아다녔다. 임진왜란 때 한현의 부하로 들어가서 그와 함께 반란 계획을 꾸민 다음, 의병을
모은다는 명목으로 동갑회라는 비밀결사를 조직하여 장정들을 모집하였다.
1596년 충청도 홍산에서 '이몽학의 난'으로 불리는 반난을 일으켜 한때는 홍산·청양·대흥 등을
차례로 함락시켜 홍주(지금의 홍성)까지 돌입했으나, 반란군 중에서 관군에 붙은 자가 많아져서
전세가 불리해졌다. 그러자 그의 부하 김경창·임억명 등이 이몽학의 목을 베어 항복하였다.
아픈 역사를 지닌 이 길을 오늘 범여는 혼자 걷고있다.
장계재(09:35)
보령시 청라면과 청양군 화성면을 넘는 고개이건만 사람이
다닌 흔적조차 없을 정도로 잊혀버린 고개이다.
215봉(09:50)
장계재에서 완만한 등로를 타고 오르니 조그만 봉우리가 나타나니
215봉이다. 정상에는 선답자들의 시그널만 있고, 바람은 꽤나 차갑다.
좌측으로 75도 가까이되는 급경사에 눈으로 인해 길은 보이질 않고
바람으로 인해 눈이 몰린 탓인지 발목이 빠질 정도로 눈이 쌓여 상당히 위험하다.
내리막길 옆 간벌한 나무사이에 뭔가 푸더덕하는 소리에 쳐다보니
노루 한마리가 황급히 사라진다. 먹이를 찾으러 나온 모양이다.
급경사 아래로 내려오니 눈덮힌 평산 신씨 묘지가 나타난다.
이 할아버지는 福도 많이셔... 부인을 둘씩이나 거느리고 사셨네요.
은고개(09:50)
은고개 우측은 화성논공공단이 있는 장계리 '금계동' 이다
'금계동'은 金鷄胞卵형의 명당이 있다 해서 얻은
이름인데 금닭이 알을 품고 있어서 아이를 얻은 아낙네가 천신께
정성을 드리면 그 아들이 크게 된다는 전설이 전해져 오고 있다 한다.
은고개에 올라서서 묘지 몇기를 지나 내리막길이다.
스무재에서 오서산 오르기 직전의 우수고까지는 고도편차가 그리 많치
않은 편안한 길을 걷는다. 이럴때 시간을 단축해야 할터인데 길엔
잡목들이 많고 아이젠을 찬 탓인지 도저히 속력을 낼 수가 없다.
이곳은 꽤나 잘 생긴 금강송이 많이 보인다. 우측에 소나무, 좌측엔
리기다 소나무가 절묘한 대비를 이룬다.
이름모를 짐승이 홀로가는 산꾼 길잃을까봐서 열심히 길을 닦아놨다.
56번 송전탑(09:57)
물편고개가 보이기 시작한다. 축사인지 양계장인지 하는 건물도...
서서히 오서산이 보이기 시작하고...
물편고개(126m : 10:05)
물편고개는 보령시 청라면과 청양군 화성면 화강리 물편부락을 610번 지방도가
지나가는 고개이다. 멀미 마을 남서쪽에 자리한 마을을 ‘물퍼니’라고 부르는데
화강리에서 가장 큰 마을로 물이 좋아서 농사짓기 좋은 마을이라고 한다.
항상 물이 땅속에 용솟게 해서 물이 흔한 마을이라고 하여 ‘물퍼니’라고 했는데
후에 변음이 되어 물편이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유래에 의하면 물편마을은 예로부터 물이 나와서 편편한 곳이라고 하여 이 고개를
물편고개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지나온 금북정맥 청양지역의 산그리메들... 멀리 천자봉도 보인다.
보령고개(10:50)
어지러운 잡목에다 눈이 꽤나 쌓여있어 고개라는 개념조차 없는 곳이다.
미끄러운 길에다가 잡목이 너무많고 나무들이 넘어져 있어 아이젠에
나무가 걸려 보기좋게 내동댕이치듯 눈밭에 넘어진다. 무릎이 얼얼하다.
떡본 김에 제사 지낸다고 무릎이 얼얼할 정도로 아프다. 아마 나뭇가지에
부딪힌 모양이다. 베낭을 벗어놓고 상처부위를 보는데 외상은 보이지 않는다.
배도 고파오고 아침을 부실하게 먹은탓에 간식으로 원기를 보충하고 10분간의
휴식을 취한 다음에 다시 길을 나선다.
보령고개에서 능선에 올라서서 U자 형태로 빙 한바튀를 돈 다음에 우측의
급경사로 내려선다. 이곳은 음지라 그런지 눈이 꽤나 많이 쌓였고 사람이
다닌 흔적에 약간 얼어있어 스틱에 몸을 의지한 채 조심스레 내려온다.
사유지 인듯한 철조망에 걸려있는 선답자들의 시그널
산 능선을 내려오는데 저 건너 오서산 아래 봉곡사에서 사시예불이
시작되었는지 귀에 익은 천수경의 독경소리가 들려온다.
그러고 보니 오늘이 음력으로 섣달 초하루이구나. 초하루 법회를
하는 모양이다. 거리나 시간이 맞으면 법회에 참석하고 가는것도
좋으련만... 어느 여건 하나도 맞지 않으니 그냥 가는수밖에...
산에 미친 범여는 자꾸만 부처님과 멀어지는 것일까?
우수고개(192m : 11:25)
보령시 청라면 장현리와 청양군 화성면 화암리를 연결해주는 609번 지방도로
그 가족들이 울면서 살았다하여「울틔」라 부르고,마을사람들이 걱정할 것
없다고 웃으며 지냈다 해서「우수고개」라고 부른다 한다."고 한다.
보령시 청라면 지역은 왕복 2차선의 도로가 잘 나있으나 청양군 화성면 지역은
갑자기 1차선으로 차선이 줄어든다. 지자체의 경제력 차이인가?
스무재에서 우수고개까지 편안하게 왔다. 그러나 우수고개에서 부터는
행복끝 고생시작인가. 도로를 건너서 산 능선으로 오른다. 임도길을 따라
자꾸 고도를 높인다. 좌측 봉곡사에서는 법회가 끝났는지 스피커에서 귀에 익은
영인 스님의 신묘장구대다라니의 염불소리가 계속해서 들려온다.
계속해서 고도를 높인다. 우측에 화성면 화암리에 있는 화암제가 보이고
이곳은 보령 화령 발전소가 있는 탓이지 오서산 능선은 송전탑 천국이다.
가루고개(380m :12:00)
호젓한 임도로 이어오던 마루금은 385봉을 급히 올랐다가
다시 조금 내려서니 오서산 휴양림쪽으로 임도가 난 가루고개가 나온다.
이곳에서 오늘 처음으로 사람소리를 들어본다. 그러나 사람은 보이지 않고...
385봉 아래에는 오서산 봉곡사가 자리집고 있고 좌측은 보령시 청소면이며
우측은 청양군 화성면 화암리 내려가는 길이 있다.
가루고개 임도를 건너 다시 묘지를 지나니 경운기가 다닐만큼 길이 나타나고
묘지를 우회하여 오르니 오늘 처음으로 이정표를 만난다.
오늘 처음 만난 이정표.
가루고개를 올라서 묘지를 지나 400m를 20분동안 숨이 턱에 닿을정도
힘들게 오르니 오서산 갈림길이 나타난다.
오서산 갈림길(12:20)
안부 능선에 올라서니 능선 안부에서 불어오는 칼바람은 매섭기만 하다.
이곳에서 1.7km 정맥 마루금에서 떨어진 오서산으로 향한다.
지나가는 길에 오지 않으면 성격상 일반산행을 하지 않은 스타일에
언제 또 명산인 오서산에 올 수 있으랴.
오서산 휴양림 갈림길(12:40)
오서산 휴양림 갈림길에서 지금 본격적인 눈과의 싸움이 시작된다.
꽤나 많이 쌓인 눈에다가 사람들이 많이 다닌 탓인지 눈이 많이
다져져 있어 아이젠을 착용했는데도 미끄럽다. 자연히 시간이 지체된다.
오서산 능선에서 바라본 청양군 화성면의 모습
오르면 오를수록 기온이 떨어지고 손이 시렵다.
갈수록 바람도 거세지기만 하다. 주위에 전부 평야지대 비슷한 곳에
유일하게 우뚝솟은 산이 우람하기만 하다. 이곳 광천이 고향인 내 친구는
오서산을 밥먹듯이 자랑을 하였는데... 정말 멋지다. 아침에 잘 다녀오라고
문자까지 보내 왔더니만... 올라가는 길에 커다란 까마귀 서너마리가 빙빙돈다.
오서산 정상 능선 갈림길(12:57)
오서산 정상 능선에 올라서니 매서운 칼바람이 산꾼을 괴롭힌다.
이 추위에도 산악회에서 일반산행을 오신 분들이 보인다.
오늘 처음 산에서 사람을 만난다. 이곳에서 좌측으로 200m 떨어진
오서산 정상으로 향한다.
오서산 능선에서 바라본 대천 앞바다
오서산 가는 길
능선에서 바라본 홍성군 장곡면과 광천읍의 모습
저 능선이 내가 다시 가야할 길이다.
오서산(烏棲山:790m :13:05)
충청남도 보령시 청소면과 청라면, 청양군 화성면, 홍성군 광천읍 경계에 있는 산으로,
금북정맥의 최고봉이다. 예로부터 까마귀와 까치가 많이 살아 까마귀 보금자리[烏棲]라고
불렀고, 정상에 서면 서해안 풍경이 시원하게 보여 서해의 등대라고도 불렀다.장항선
광천역에서 가까워 철도산행지로도 알려져 있다. 등산코스에는 보령시 청소면 성연리에서
시작해 능선 안부를 지나 주능선을 거쳐 정상에 오른 뒤 억새군락지를 지나 던목고개,
정암사로 내려와 상담마을로 하산하는 코스와,홍성군 광천읍 상담마을에서 시작해
정암사를 지나 능선고개에 오른 뒤 주능선으로 정상에 올라 남릉으로 내려가
성연리로 하산하는 코스가 있다.
또한 크고 작은 사찰이 많았으나 모두 폐사되고 지금은 전통 사찰로 지정된 정암사와
내원사 등의 고찰이 있고 백제부흥운동의 주역이었던 복신장군의 원혼이 깃든
복신굴도 이곳 오서산에 있다. 능선이 용의 머리 같다고 해서 이름이 붙여진 용허리나
대문바위, 신랑 신부바위 농바위 등과 같은 암석단애, 암봉 암주 등이 눈길을 끈다.
보령시 청소면 성연리 가는 능선
오서산에서 추워서 도저히 있을수가 없어서 지나가는 등산객에게
사진 한장을 남기고 서둘러 다시 능선 갈림길로 돌아온다.
오서산이라 그런지 정상 능선에는 대여섯마리의 까마귀가 하늘을
빙빙도는데 어찌나 큰지 일본 동경 황실앞에 있는 까마귀 만큼이나 크다.
체온을 유지하기 위해 옷을 한겹 더 껴입고 서둘러 하산을 하는데
미끄러운 눈길이 자꾸만 시간을 지체 시킨다. 자꾸 맘만 급해지고...
다시 오서산 갈림길(13:40)
금자봉(525 m : 13:43)
충청도 사람들은 금자씨를 무척이나 좋아하시나.
지난 6구간에 청양군 운곡면 위라리에도 있드니만...
금자봉에서 우측 3시방향 내리막길을 급하게 내려온다.
이곳부터는 오서산 줄기이기는 하지만 벗어난 탓인지 등로관리는
전혀 되어있질 않고 온갖 잡목들이 태클을 건다. 아이젠에 걸려
2번이나 된통 나딩군다. 무릎이 시큼시큼 아파온다. 그래도 가야한다.
ㅓ갈림길 안부(13:50)
이정표(←광성주차장 1.3km / ↓오서산정상 2.3km)를 지난다.길은 참으로 좋질않다.
눈길에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이라 등로가잘 보이지도 않는다.
공덕고개 (13:55)
청양군 화성면과 홍성군 장곡면의 경계 능선에 있는 고개로 장곡면 광재마을로
이어지는 비포장도로가 개설되어 있다. 이 고개의 유래는 고개가 하도 가파르고
힘이들어 공을들여 넘어야 한다고 해서 공덕재라고 부른단다.
그런데 이곳은 그 어디에도 금북정맥에 대한 내용은 없다. 겨우 알 수 있는 곳이라곤
어느 산꾼이 이정표 기둥에다가 공덕고개라는 메직으로 써놨기에 알 수 있다.
기어코 사고가 나다.
공덕재에서 390봉 가는길에 위의 그림처럼 된 이곳에 아이젠이 나무에
그냥 꼬쿠라진다. 그런데 조금전에 받힌 무릎이 바위에 찍힌다.
도저히 걸을수가 없다. 너무나 아파 울고 싶을뿐인데. 일어설 수가 없다.
이리 주무르고 하여도 도저히 통증을 참을수가 없다. 30분이상을 지체한
끝에 겨우 일어설 수가 없었다. 겨우겨우 움직이니 조금을 걸을 수가 있어서
일단 390봉으로 향한다.
봉수지맥 갈림길(390m:14:40)
아픈 다리를 질질끌며 390봉 정상에 오르니 평상이 하나 있고 우측으로 가면 봉수지맥이고
금북정맥은 좌측 9시 방향으로 급경사로 향한다. 자꾸만 통증이 심하다.
평상에서 휴식을 겸한 점심을 먹는다. 다행히 베낭에 사리돈이 있다. 통증을 잊기위해
사리돈 2알을 입에 틀어넣고 물을 마신다.이곳은 조심해야 할 구간이다.
봉수지맥 쪽은 길이 잘되어 있고 시그널도 보이지만
좌측 정맥길은 길이 잘 보이지 않고 시그널도 신경을 써야만 보인다.
(특히 독도에 주의해야 할 구간이다)
봉수지맥 개념도
봉수지맥(鳳首枝脈)은
이 분기점인 백월산(560m)에서 북쪽으로 10.9km 떨어진 오서산(烏棲山.791m)에서 동북으로
약 3.2km 떨어진 공덕고개 남쪽의 370m봉에서 금북정맥은 서북으로 가고 봉수지맥은 동북으로 갈라진다.
동북으로 올라가며 초롱산(339m ),봉수산(483m),팔봉산(207.4m)등르 지나서 예산군 신암면 하평리에서
삽교천에 몸을 담그며 맥을 다한다.
길이는 도상거리로 약 47.5kkm되고 지맥 서쪽으로 떨어진물은 삽교천 본류에,동쪽으로 떨어진
물은 무한천에 몸을 담갔다가 삽교천에 합류하여 아산만으로 들어간다.지나는 산들중 제일 높은산인
봉수산(鳳首山.483m)의 이름을 따서 봉수지맥(鳳首枝脈)이라부르며 무한천의 오른쪽 물막이가 된다.
이곳 390봉이 금북정맥에서 상당히 중요한 역할을 하는것 맡지만 제 대접을 못받는 느낌이다.
이곳부터 우측에 청양군 화성면과 좌측의 보령군 청소면과 작별을 하고 홍성군 장곡면으로 접어든다.
洪城은 넓을 洪자를 쓰는 이름 그대로 들이 넓은 고장입니다. 그래서 금북정맥도
이 고장에서는 몸을 한껏 낮추어 非山非野의 나즈막한 구릉지대를 형성하여 길게
그 흐름을 이어가고 있다.
단촐한 범여의 도시락
유부초밥에 사과 한알과 봉지 커피 하나... 추운날은 먹는것도 고역이다.
390봉에서 내려오는 급경사는 너무 힘이든다. 거기다가 아무도 가지 않았고
눈이 많이 쌓여 길인지 아닌지 感이 오질 않는다. 급경사를 내려오니 임도가 나온다.
임도(15:30)
390봉에서 급한 내림길 때문인지 다시 통증이 도진다.
시그널이 잔뜩 붙은 임도를 지나 내려오니 다시 너덜길이 나타난다.
너덜길 바위에 쌓인 눈때문에 상당히 미끄럽다. 자꾸만 시간이 지체된다.
너덜길은 지나니 아예 잡풀로 등로가 사라져 버렸다.
간간히 하나씩 보이는 시그널을 이정표로 하여 길을 이어간다.
갑자기 오서산 정상에는 먹구름이 몰려온다.
지금 상황으로는 아홉골고개까진 무리일것 같다. 가는때까지 가보자.
홍성군 장곡면 광제마을로 이어지는 도로를 지나...
좌측에 오서산이 계속 따라오고 편안한 억새밭을 지난다.
억새밭을 지나니 고역이 이만저만 아니고 옷은 가시나무에 걸리고
겨우 묘지를 벗어나니 우측에 신풍저수지가 보인다.
신풍고개(16:00)
홍성군 장곡면 광성리와 신풍리를 연결해주는 2차선 포장도로인데
차량이 자주 다니지 않은 탓인지 눈이 녹지 않아 빙판길인데 버스
한대가 서 있다. 자세히 보니 뫼솔산악회에서 오늘 금북구간에 온 모양이다.
기사분이 나를 알아보고 알바했냐고 한다. 자기 식구들은 전혀 안보이니...
그 길은 정통구간인데. 물 한컵을 얻어먹고 다시 길을 나선다.
조금 올라 가니 ‘大丘 徐氏’라는 묘지비가 있다. 흔히들 본관은 지역명으로 하는데
대구하면 ‘큰 大 땅이름 邱 ’를 사용하는 이곳 묘비는 ‘언덕 丘’를 사용했다.
이런 지역도 있는 모양이구나
널널한 길을 산보하듯 밭과 과수원 그리고 묘지 순례길 같은 능선을 걷는다.
조금가니 성황당 같은 곳도 나오고...
뽕나무들이 전부 북쪽으로 누워있는 모습이 이채롭다.
이렇게 편안길이 계속된다.
소나무를 식재한 밭을 계속 지나는데 오서산에는 일몰이 시작된다.
꽃밭굴고개(16:25)
꽃밭굴고개는 이 아래 마을이 홍성군 광천읍 화계리 꽃밭골이라 해서 이곳을
꽃밭골 고개라고 부르는데 우측에는 엄청나게 큰 한우목장이 있다.
도로를 건너다시 능선으로 오르는데 일몰이 시작되니 불안해진다.
다리는 아파오고....
마늘밭도 지나고...
조금 지나니 과수원이 나타나고 다시 돌아서니 몇가구 되지 않는 중방리가
나타나고 다시 대밭이 있는 임도가 나타나고 인삼밭이 나온다.
인삼밭을 지나니 도로가 나온다. 이럴때 시간을 줄여야 하는데 도저히
아픈 다리땜에 속력을 낼 수가 없다. 애국지사 박 성순님 묘지뒤로 계속간다.
이런 밀밭도 나오고...
이런 편안한 길은 생미고개까지 계속된다. 길은 엄청 미끄럽다.
생미고개 (17:00)
홍성군 광천읍과 장곡면을 이어주는 2차선 96번 지방도로가 지나간다
도로를 건너 신동마을 표석 우측 포장도로따라 진행하니 조금 지나
KT 송신탑이 과수원 가운데에 있고 조금 지나니 장곡 3.1운동 기념비가 있다.
여기서부터 도재고개까지 약16분간 콘크리트포장도로를 따라 진행 한다.
오미(梧尾) 서남쪽의 마을을 성산(城山)또는 산양(山陽)이라고 부르는데
이 마을 논에는 쌀이 잘되고 땅이 기름져서 좋은 쌀을 생산하는 마을이라
생미라고 부르며 이 고개를 생미(生米) 고개라고 부른다
송신기지에 서서히 어둠이 몰려온다.
장곡 3.1운동 기념비(17:10)
이곳은 무슨 공사를 하는지 15톤 덤프트럭과 포그레인 부지런히 오간다.
맘 급한 산꾼의 맘을 아는지 모르는지... 도재고개까지 임도로 걷는다.
도재고개(17:35)
홍성군 광천읍 가송리를 잇는 고개로 온통 공사현장이다.
다시 임도로 올라선다. 이곳은 쓰레기를 마구 갖다 버려놨고
다시 조금 오르자 계속해서 과수원과 밭 그리고 묘지뿐이다
숲속 도로를 계속해서 걸으니 밭과 묘지만 만난다.
무서운 경고문
우측에 아주 잘 관리된 묘지가 보이는데 기독교 대한 감리교회 광천교회 안식의 동산이란다.
파란색 안내문에 술과 음식을 놓고 제사를 지내면 강제 파묘 시킨다고 표시되어
있는데 지나가는 사람들이 시트지로 붙혀논 간판 글자를 뜯어버려 잘 보이지 읺는다.
아무리 종교 교리를 따른다고 하나 정말 배타적이고 이기적인 느낌이다.
홍광농장 삼거리(17:55)
이제는 좌측에 있는 오서산은 이젠 보이지도 않는다.
아무래도 산행을 오늘은 접어야 할듯 싶다.
이제 동네의 가로등에도 불빛이 켜지기 시작하고...
수원목장(18:10)
무리해서 아홉골까지 가려했지만 이곳은 농로에 차가 다닌탓에 길이
완전히 스케이트장이다. 하는 수 없이 여기서 산행을 종료하고
광천 택시를 콜한다. 15분정도를 덜덜 개떨듯 떨고 있으니 반가운 택시가 온다.
이곳 홍성군 광천읍과 홍원면 일대는 전부가 축사로 보이는 것 같다.
우리나라에서도 알아주는 홍성한우 생산지로도 유명한 곳이란다.
광천역(18:40)
택시를 내리니 역 플렛폼에 기차가 정차해 있다.
죽기살기로 뛰어 표를 사니 입석밖에 없다고 하면서 천안서부터는
앉아서 갈 수 있다고 한다. 일단 올라타고 매점이 있는 열차칸으로 가서
허기진 배를 채워야 한다. 근데 먹거리가 별로없다. 오뎅하나에
캔맥주 2개를 먹고나니 조금은 살것 같다. 신문지를 펴고 조금 졸다가
천안에서 내 좌석으로 간다. 근데 열차가 아산, 평택에서 합쳐 15분정도
연착되더니만 수원역에서는 신호고장으로 25분이 정체되어 영등포역에
예상보다 40분이상 늦게 도착하여 집에오니 밤 11시가 다되었다.
광천역 플렛홈
광천에서 영등포오는 열차표.
'♣ 백두 대간및 9정맥 후기♣ > 금북정맥 (終)' 카테고리의 다른 글
금북정맥 제10구간 - 육괴정(수덕고개)에서 무르티고개까지 (0) | 2012.02.12 |
---|---|
금북장멕 제9구간 - 수원목장에서 육괴정까지 (0) | 2012.01.29 |
금북정맥 제7구간 - 학당고개에서 스무재까지 (0) | 2011.12.11 |
금북정맥 제6구간 - 차동고개에서 학당고개까지 (0) | 2011.12.04 |
금북정맥 제5구간 - 곡두고개에서 차동고개까지 (0) | 2011.11.0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