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산행일자 : 2011. 08. 13 ~14(무박산행)
○ 산행날씨 : (비 온뒤에 엄청난 습도와 짙은 안개로 인해 산행이 힘들었음)
○ 참석인원 : 좋은 사람들 산악회와 함께
○ 산행거리 : 도상거리 : 14.5km / G.P.S 17,4km+어프로치 1.2km / 8시간 45분 소요
○ 산행코스 : 모래재-세봉임도-조약봉-입봉-보룡고개-675.4봉-삼면봉(705봉)-황조치봉-황새목재
연석산-만항재-서봉(운장산)-운장산-서봉-활목재-피암목재
○ 소 재 지 : 전북 진안군 부귀면, 주천면 / 완주군 소양면, 동상면
참으로 비가와도 너무 온다. 우리나라가 이젠 동남아 지역처럼 아열대 지역으로 바뀌지
않았나 할 정도이다. 雨期와 乾期로 나눠지는 느낌이 들 정도로... 날씨의 영향을 많이
받는 우리의 직업 특성상 불편함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요즘 날씨를 체크해보니 4雨1淸이다.
4일이 비가 오면 하루만 맑은 날씨이니 작업의 차질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허나 세월이 약이겠지. 토욜(13일)이 末伏이니 이제 여름은 서서히 물러가겠지.
이제 호남정맥도 4구간 밖에 남질 않았고 금북정맥은 나홀로 짬짬히 하지만
금남구간은 나홀로 산행하기에는 교통과 거리가 조금 불편할 것 같기에 새로운
산악회를 따라 가기로 결정을 했다. 지난해 낙남구간을 했던 산악회이기에
신청자 명단을 보니 아는 산꾼도 서너명 보인다. 내일이 백중(우란분절)이라
꼭 절엘 갔다와야 하는데 한편으로 맘이 불편하다. 토요일 오후에 부모님 위패가
모셔져 있는 청계산 아래 정토사에 들려서 위패에 禮를 올리고 은사스님을 뵙으면
했는데 출타중이라 뵙지 못하고 종무소에 들려 후배 보살에게 부탁을 하고 집에와서
휴식을 취한 다음에 밤 11시 40분에 탑승장소인 양재역으로 향한다.
오늘산행구간의 지도와 고도표
범여의 부모님 위패가 모셔져 있는 청계산 정토사
불교에서는 음력 7월 15일을 백중(百衆)이라고 하는데
그 이유는 결제(結制)중의 참선공부를 이날 해제(解制)하여 자기 허물을
대중스님께 고백하고 죄과를 뉘우치고 또 자기가 의심하던 것을 대중에게
말하여 해결한다는 행사로 대중에게 사뢴다하여 백중(百衆)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행사는 부처님 당시부터 있던 행사로 인도에서는 4월부터 7월까지
비가 많이 오고 날도 무더워 스님들이 탁발하거나 가르침을 펴기에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부처님은 그 기간 동안에는 고요히 홀로 암자와 같은 곳에서
수행을 하도록 제자들에게 이르셨습니다. 이것을 안거(安居)라고 합니다.
그리고 이 안거가 끝나는 날에는 절에서 재를 올려 그동안의
잘못을 참회하는데 그날이 바로 백중일입니다.
또한 안거를 끝내는 부처님의 제자들에게 음식과 옷을 공양하여 부모님의
극락왕생을 기원하고, 이미 이 세상을 떠난 부모님이 지옥과 같은 나쁜 곳에
떨어지지 않고 하늘이나 인간 세계와 같은 좋은 곳에 태어나기를 기도하는
'우란분회'가 행해졌다고 합니다.
여기서 우란분(盂蘭盆)이란 것은 인도말 범어(梵語)인데, '우란'은
'사람이 거꾸로 매달려 있는 것과 같은 심한 고통'이란 뜻으로 인도에서는
조상의 고통을 우란이라 했습니다.
그리고 '분(盆)'이란 '그릇'의 의미로 범어로는 '발우(鉢盂)'라고 하며
부처님께 공양을 올리는 그릇을 말합니다. 다시 말해서 지옥에 들어가서 매달려
있는 조상들의 혼백을 구해 보낸다 는 뜻입니다.
우란분절은 목련(目蓮)이 그 어머니를 아귀도에서 구하기 위해 부처님의
가르침을 받아 고통을 구했던 사실을 적은 불설우란분경에 연유합니다.
이 경전의 내용은 부처님의 제자인 신통제일(神通第一)의 목련존자가 지옥에
떨어진 어머니를 구하고자 방법을 묻자 부처님께서 안거 해제일인 음력 7월 15일에
백미의 음식과 다섯 가지 과일을 준비하여 시방의 스님들께 공양하면 어머니의
고통이 제거된다고 가르치는 것입니다.
어느 날 목련존자가 신통으로 천상천하를 살펴보니, 어머니가 생전에 지은
죄가 많은 탓으로 아귀지옥에 태어나서 음식을 먹지 못하고 있음을 보게 되었습니다.
이를 본 목련존자가 가슴 아파하며 음식을 가지고 가서 어머니께 올렸으나
그 음식은 어머니의 입에 들어가기도 전에 뜨거운 불길로 변해 버렸습니다.
이 모습을 본 목련존자는 대성통곡하며 부처님께 달려가 어머니를 구제해 달라고
권청하였습니다.
부처님은 목련존자를 측은하게 생각하시고 다음과 같이 설하셨습니다.
"어머니의 죄는 너무도 무거워 너의 혼자 힘으로는 어찌할 도리가 없다.
다만 시방에 계시는 대덕스님들의 법력을 빌면 가능 할진대, 이들이 9순 안거를 끝내고
참회의식을 가지는 자자일(自恣日). 즉 7월 15일에 좋은 음식과 온갖 과실을 공양하면
이 스님들의 힘으로 살아 있는 부모는 물론 7대 선망부모와 친척들이 모두 고통에서 벗어나
백년장수하고 천상에서 쾌락을 누릴 것이다."
이렇듯 우란분절이라는 것은 선망부모 들의 모든 중생이 왕생극락 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돌아가신 부모님과 선망 7대 조상들을 위해 위패를 모시고 극락왕생을 축원하는 날인 것입니다.
즉 조상을 극락왕생으로 이끈다는 천도재를 베풀어 고통 받는 선망부모를 구제한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는 것입니다.
1대간 9정맥 지도
금남정맥은 주화산에서 북쪽으로 126km를 뻗어가면서 전북지역과 충남의 경계지역에 산꾼들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있는 연석산과 운장산 서봉과 기암괴석으로 이루어진 장군봉을 지나면 호남의
소금강으로 불리는 대둔산의 연봉들을 한바퀴 휘돌아서 나간다
금남정맥을 이루는 주요 산은 주화산을 시작으로 연석산(925m), 운장산(1,125.9m), 인대산(666m),
대둔산(877.7m), 월성봉(650m), 바랑산(555m), 천마산(287m), 계룡산(845m), 부소산(106m) 등이고,
정맥이 거의 흔적만 남아 있는 부여의 부소산성과 낙화암옆 조룡대에서 여맥을 다하게 되며 백제의 문화와
역사를 한눈에 느낄 수 있다.
모래재 휴게소 위에 떠있는 7월 백중의 보름달
밤 12시 10분에 양재역에서 출발한 버스는 뭣이 그리도 급한지 새벽 3시에 모래재에 도착한다.
휴게소에 쉬었다가 느긋하게 4시경에 산행을 시작해도 되련만 뭣이 그리도 급한지
내리자 마자 산으로 내달린다. 지난해 낙남정맥을 같이 한 산악회이건만 이곳 산꾼들은
철저하게 개인주의 성향에다. 남을 배려하는 거라곤 눈꼽만큼도 없는거 같다.
대장이란 자도 리더쉽이 별로 보이지 않고 그리고 어두운 길에 아무리 산행 전문가라곤 하지만
대장에 대한 예의란 게 있어 아침 일출시간까지... 그리고 아침 식사전까지는 선두 대장을
추월하지 않는게 예의이거늘... 근데 이곳 산꾼들은 그런 예의는 眼中에도 없는듯 하다.
나 역시 이곳 산악회에 끝까지 같것도 아니고 코스가 나의 스케줄에 맞아서 왔을 뿐이고.
거기다가 지난번 예치금이 남아서 그게 아까워서 왔을 뿐...2구간만 타면 다른 산악회로 갈것이다.
그래도 정맥길을 계속타다 보니 지난해 낙남정맥을 같이 산행한 안레아, 풀초롱, 대간님이
같이 동행하여 덜 불편한 것 같다. 워밍업도 없이 산행을 시작한다.
모래재 휴게소(03:15)
모래는 몰이라는 우리의 옛말로 산을 뜻하고 재는 고개를 뜻하니
즉 다시 말해서 산고개라는 뜻이다.
옛적에 전주에서 진안까지 유일한 통행로는 곰티재였지만 길이 험하고 교통사고가 잦아
모래재에 터널을 뚫어서 새로이 도로를 개설했으나 길이 험하고 교통두절이 많아 1996년에
전주-무주 동계유니버시아드대회 개최를 계기로 전주에서 부귀방향으로 우회하는
보룡고개를 새로 개설되는 바람에 이곳 모래재는 한적한 고개가 되고 말았다.
전북 진안군 부귀면과 완주군 소양면을 잇는 모래재는 그 아래로 새로 모래재 터널이 4차선의
길이 뚫리는 바람에 옛 영화를 잊어버린 모래재 휴게소는 을씨년스럽다.
깊은잠에 푹빠져 적막하리만큼 조용한 휴게소는 주인의 지키려는 개쉬끼만이 난리 부르스를 떨고있다.
이번까지 이곳을 3번째 방문을 한다.호남, 금남호남정맥에 이어 이번에 금남정맥까지...
정확하게 6개월만 다시왔다.이젠 언제 올지 기약도 없다.
전주 공원묘지
모래재 휴게소에서 길을 건너 전주공원묘지를 지나 임도를 향한다. 높은 습도로 인해
초반부터 오늘 산행이 쉽지 않음을 예고하는 것 같다. 오늘이 七月 百中이라 구름속에
보름달이 수줍언 듯 고개를 내밀고 있다. 佛家에서는 우란분절이라 하여 조상천도를
하는 날인데 어제 부모님 모셔논 절에가서 예의를 표하고 스님에게 부탁은 하였지만
그래도 공원묘지를 지나니 부모님에게 미안한 감정은 어쩔수가 없는 모양이다.
어머님, 아버님 죄송합니다. 내년부터는 잘 모시겠습니다.
전주공원묘지의 봉분들
새벽 산행에 망자들에게 미안하기만 하다.
세봉임도(03:35)
드디어 정맥 마루금에 접어든다. 세봉임도 개통 표시판과 함께 써미트란 회사가
이곳이 자기들의 사유지이며 골프장 개발 에정지라고 표시를 붙여놓고
이곳을 지나갈 때 자기들의 허락을 받으라고 겁박을 한다.
에~~~이 그런말 마슈. 정맥 산꾼들이 정맥길 가는데 허가받고 가는거 봤소
길이 있으면 그냥 가는게 정맥꾼인데 ㅋㅋㅋ 참으로 꿈도 야무지셔
3정맥 분기봉(03:40)
주줄산(주화산)일까? 아님 조약봉일까
전북 완주군 소양면과 진안군 부귀면의 접경인 모래재 북쪽에 위치한 조약봉은
호남, 금남, 금남호남정맥 3정맥의 분기점으로 입봉(笠峰)(637.4m),연석산(925m),
운장산(1,125.9m), 장군봉(724.5m), 왕사봉분기점, 육백고지, 인대산(666m),
대둔산(877.7m), 월성봉(650m), 바랑산(555m), 천마산(287m), 계룡산(845m),
부소산(106m), 백마강 조룡대까지 연결되는 도상거리 133km의 산줄기의 시발점인 산이다.
그럼 주줄산의 현 위치가 어디냐에 대해서 살펴보면,
즉, 현재의 3정맥 분기점인 565봉이 주줄산이냐는 것이다.
"龍潭西三十里, 高山東四十五里, 錦山南四十里"의 산경표 표기로는
정확한 좌표를 확인하기가 용이하지 않다.
대동여지도에 표기된 주줄산은 고산과 용담을 잇는 직선상의 중간쯤으로, 반일암 서쪽, 주자천의 북쪽에
위치한 산으로 현재의 운장산쯤 되어 보인다.
3정맥이 나뉘는 565봉은 옛 문헌에서(택리지, 대동여지도) 말하는 주즐산으로 보기에는
그 위치로 보나 글짜가가진 뜻으로 보나 괴리가 많은 것 같다.(주줄산의 한자 표기는
‘구슬 주(珠’와 ‘높을 줄(
)이다
그러므로 조약봉(鳥躍峰)으로 보는 견해가 합당한 것 같다.
현재 지형도의 565봉 아랫쪽에 지명이 조약치‘조약치(鳥躍峙)’또는 조약골이 나온다.
‘새가 뛰어 넘는다’는 조약봉으로 통일이 되었으면 좋으련만 분기점 표시판에는주화산과
주줄산등으로 표시가 되어있어 관심있는 산꾼들을 혼란스럽게 한다.
인증샷을 하나 남기고 먼저 달아나는 산꾼들의 군중심리에 휩쓸려 나도 서둘러 길을 떠난다.
크고 작은 산길을 오르내는데 초반부터 꽤나 힘이든다. 거기다가 워밍업을 하지 않은게더욱 더...
좌측의 완주군 소양면의 어느 마을 불빛인지는 몰라도 흐미하게 보인다.
어둠속 갑자기 내리막길에 크게 한번 미끄러진다.
다행히 스틱으로 조절하는 바람에다치지는 않았지만 휴~~우...
계속해서 비가 많이온 탓인지 맥길의 지반은 상당히 약하다.
갑자기 어둠속에 거센 오르막이 나타난다.
초반부터 입에 단내가 날 정도로...한참을 치고 오르니어둠속에 헬기장이 나타난다
입봉(笠峰:637.4m :04:30)
봉우리의 형상이 삼각형으로 보여서 삿갓봉이라고도 하고 삿갓 입(笠)字를 써서 입봉이 부르고 있다.
일부 지도에서 갓봉으로 표시한 곳도 있다. 입봉은 호남-금남-금남호남정맥분기점인 조약봉에서
이어진 산으로 옛적에는 금남정맥의 줄기가 완주군과 진안군을 남북으로 가르는 조약치, 황조치,
보룡고개, 모래재가 사람들이 통행하던 유일한 고개 역할을 하였으나, 오늘날에는 보룡고개나
모래재에는 도로가 개설되어 있어 통행이 활발하다. 입봉의 서남쪽에 위치한 용문사 뒤의
계곡은 바위와 수림, 그리고 폭포가 어우러져 피서객들이 줄을 잇는다.
입봉 정상에 오르니 아직도 어둠속이다. 매주 산행을 하다보니 해가 많이 짧아진 느낌이다.
지금 시간이 새벽 4시 40분인데도 아직도 컴컴하다.
선답자들의 후기에 입봉 간판을 보고 주위를 아무리 찾아봐도 보이지 않고 헬기장 정상에는 잡풀만 무성하다.
하는 수 없이 다시 길을 나선다. 비에젖은 정맥길은 미끄럽기 그지없고 거기다가 태풍의영향으로 여기저기
뿌러진 나무들이 산행을 상당히 어렵게 하고 있다.
내리막길을 내려오니 차량소리가 들리기 시작하고 죄측 철조망안에 S.K 텔레콤 송신소가나타나면서 보룡고개가 보이기 시작한다.
보룡고개(04:50)
전북 진안군 부귀면과 완주군 소양면을 잇는소태정고개로도 불리는 보룡고개는 26번 국도가 지나가며 꽤나
교통량이 많다.26번 국도는 전북 군산시 옥구읍에서 대구광역시 서구에 이르는 254.5㎞의 일반국도이다.
보룡고개에 내려서니 진안군에서 설치한 ‘홍삼, 한방의 고장 진안’이라는 아치가 세워져
있다. 이곳에는 금남 정맥이 통과하는 4차선의 넓은 도로임에도 불구하고 지하통로나
건널목도 없고 정맥길을 짤라먹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산꾼에 대한 배려는 피래미 뭣만큼도
배려하지 않고 있어 할 수없이 이른 새벽임에도 교통량이 꽤나 많은 4차선의 주차 분리대
위에 높은 철조망까지를 단숨에 뛰어 넘어 무단횡단을 감행한다.
하긴 대간, 정맥하면서 목숨을 담보로 길을 무단 횡단한 지가 어디 한두번 이었던가
4차선 도로를 무단횡단하여 우측으로 콘크리트 도로로 올라서다 다시 마루금으로 진입하니
우측 철조망이 처쳐있는 표고버섯 재배단지가 나오고 다시 된오름길을 오른다
笠峰에서 내려온 만큼 다시 치고오르니 힘이 꽤나든다. 서서히 날은 밝아온다.
주위에는 짙은 안개로 인해 사물이 식별되지 않을정도이다. 여러차례 오름내림을
시작한 끝에 도착한 675.4봉... 여기에서 아침상을 펼친다. 오늘은 간단하게 유부초밥과
막걸리 한사발로 아침을 대신하고 디저트로 매실차 한잔을 한다음 다시 길을 떠난다.
조릿대 (식물) [Sasa borealis]
키는 1~2m, 지름은 3~6㎜로서 가지를 많이 친다. 평안남도·함경남도 이남지역의
숲속에서 자란다. 잎은 긴 피침형이고 가장자리는 전체적으로 밋밋하지만 잔톱니가
있으며 뒷면 기부에 털이 있고 잎자루는 줄기를 감싼다. 꽃은 겹총상[複總狀]꽃차례로
4월에 피고 자색의 잎집[葉鞘]이 기부를 감싼다. 수술은 6개로 짧은 털이 있으며
열매는 5~6월에 익는다. 식물체는 관상용으로 쓰거나 조리나 대바구니 등을 만드는 데 쓰인다.
잎은 죽엽(竹葉)이라 하며 잎과 뿌리를 진정제·치열제·이뇨제·청심제로
사용하며 번열·구토·갈증 등의 치료에 쓰인다. 우리나라에는 그밖에도 이와 비슷하나
이삭[潁] 끝이 까락처럼 되는 갓대(var. chiisanensis), 이보다 작은 섬대(var. gracilis)가 있고,
이외에 울릉도에 나는 섬조릿대(S. kurilensis), 한라산에 나는 제주조릿대(S. quelpaertensis),
함경북도 명천에 나는 신이대(S. coreana) 등이 있는데 모두 비슷한 용도로 쓰인다.
(인터넷 다음 백과사전 인용)
675.4봉 삼각점(진안 433 / 1984 재설:07:00)
보룡고개를 지나면서부터 자주 만나는 것이 山竹 군락지이다.
그런데 보통 산죽이 아니라 3m가 훨씬 넘는 조릿대라 마치 산죽터널을 걷는 기분이다.
이곳 식물 분포도가 마치 백두대간 구간인 전북 장수의 영취산의 식물 분포도가
거의 같은 느낌이다. 670에서 700고개의 안부를 편안한 걸음으로 걷는다.
아침 식사를 끝낸 다음인지 아님 매실차의 기분인지는 몰라도 머리가 맑은 느낌이다.
황새봉(黃鳥峙:705m)
흔히 정맥길에서 만나는 한 현우 산꾼이 붙혀놓은 705봉을 황조치봉이라는
시그널이 보인다. 근데 이름을 지어 주는 건 좋은데 ‘치(峙)’와 ‘봉(峰)’은 똑 같은
뜻인데 선뜻 이해가 되질 않는다. 흔히들 우리가 일상에서 쓰는 ‘미안 쏘리’와
같은 뜻이거늘 지명을 쓸데는 조금 신경 쓰셨으면 한다. 그렇다고 한 현우님에게
시비 걸 생각은 전혀 아니니 이해를 바라면서...
3면봉(705m: 07:10)
진안군 부귀면과 완주군 소양면과 동상면의 3개면이 만나는 지점으로
오른쪽은 계속 진안군 부귀면을 이어가지만 왼쪽은 완주군 소양면에서
동상면으로 바뀌는 지점이다. 우측으로 이어지는 금남정맥길은 키 높이 산죽길인데
마치 지리산의 낙남정맥길의 마지막 구간이었던 고운동재에서 삼신봉 능선같은 분위기가 난다.
705봉을 찍고는 급한 내리막길을 걷는다. 이곳은 벌목구간이긴 하지만 짙은 안개로
인하여 앞의 산은 전혀 보이질 않는다. 안개만 아니면 이곳의 멋진모습을 두루
구경하련만...자꾸만 내려가는 길이 불안하기만 하다. 내려가면 내려간 것 만큼 다시
힘들게 올라가야 가는 것을 알기에...
세월의 無常함을 이기지 못하고 저물어 가는 나리꽃
황새목재(505m)
진안군 부귀면 궁항리와 완주군 동상면 사봉리를 넘나드는 고개로 옛 영화를 잊어버리고 거의 길의 형태가 없어져버린 느낌이다.
우측에는 철조망이 처져있는 꽤나 큰 사과나무에는 말복이 지난 시점임에도 불구하고 열려있는 사과는 아주 조그맣다.
고개이름이 '황새'의 목같이 길게 오르내려서일까?
'황조치'라고도 한다는데 '황조(黃鳥)'라면 꾀꼬리 아닌가?
하여간 이름에 얽힌 사연이 있을 법도 한데 그 연유는 알길이 없다.
황새목재에서 연석산까지는 400m 이상의 고도를 높인다. 이곳은 높이에 비해
그리 어려운 곳은 아니지만 키보다도 훨씬 큰 산죽이 자꾸만 괴롭히고 거기다가
짙은 안개에다 높은 습도로 인하여 바람 한점이 없어 산행길에 자꾸만 지쳐간다.
군데군데 멋진 岩陵을 만나지면 안개가 자꾸만 방해를 한다.
또 다른 훼방꾼은 이곳에 이른 아침에 비가 왔는지 바위가 많이 젖어있고
거기다가 나무들도 젖어있어 이로 인해 자꾸만 산행속도가 늦어진다.
반팔 옷을 입고 산행을 하니 자꾸만 팔과 얼굴에 상처가 난다.
가도가도 끝이없는 山竹길
연석산 가기전의 600에서 800m가 넘는 봉우리를 연달아 대엿섯개를 연달아 만난다.
하나같이 멋진 모습이지만 이렇게 짙은 안개로 인하여 아무것도 볼 수 없다는
점이 너무나 아쉽기만 하다. 한가지 위안이라면 바람이 불어 시원하다는 느낌이다.
一望雲際
안개속에서도 잠깐 안개가 비껴난 사이에 궁항리 저수지도 보이고...
암릉사이에는 비가 온뒤라서 그런지 부처손이 파랗게 멋진 모습으로...
오랫만에 유격훈련하는 기분으로 비에젖어 미끄러운 암릉길을 조심스럽게 오르고...
멋진 자태로 서 있는 落落長松
산부추도 자기를 함 봐달라고 하면서 울님처럼 수줍게 고개를 내밀고...
암릉을 지나고 멋진 야생화를 감상하면서 연석산을 향한다.
주위에 전망을 끝내주는데 안개라는 장애물이 멋진 조망을
끝내 방해를 한다. 그래 이것도 운명이라면 받아들여야지
또다시 산죽터널을 계속해서 걸어 나가니 또한번 오름을 시작하고.
연석산도 이젠 얼마 남지 않았고...
연석산(硯石山:925m:09:00)
진안군 부귀면 궁항리와 완주군 동상면 사봉리 경계에 있는 산으로서
마치 벼루를 쌓아올린 듯한 형상에서 유래된 이름이라 하며 바위산이면서도
바위가 서있는 것이 아니고 모두가 앉아 있어 산세가 수려하면서도 어머니의
가슴처럼 순한 岩山이다. 호남의 오지에 속하는 숨겨진 산으로 맑은 물과
울창한 숲이 자연 그대로 잘 보존되어 있는 편이며 맑은 물이 항상 흐르고
있는 아름다운 계곡을 갖고 있다.
연석산 입구에 연석사가 있고 각시소를 지나 숲과 숲으로 덮여있는
낭떠러지에서 일대 장관을 이루고 있는 폭포가 있어며 폭포 바로 위에는 여인이
베를 짜고 있는 모습과 흡사하는 베틀바위가 있다. 전설에 의하면 각시가
베틀바위에서 베를 짜면서 피로와 외로움을 잊기 위하여 폭포아래에 있는
소(沼)에서 목욕을 하였다하여 각시소라 부르는 沼도 있다.
연석산 정상에서 아쉬움을 뒤로하고 운장산으로 향한다.
산죽을 지나니 멋진 소나무들이 참으로 즐비하고 멋진 암릉들이
저마다의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고 있다. 정말 멋진 곳이다.
이곳은 천연원시림을 방불케 할 정도로숲이 울창하다. 인간의
손길이 닿지 않은 탓일까. 그리 알려지지 연석산은 보존해야할 가치가
충분히 있는 산이다. 이런 곳은 제발 매스컴에 보도되지 않았으면 한다.
1박2일 같은 프로그램에 나가면 그곳의 자연이 망가지는 것은 시간 문제이니...
멋진! 정말 멋진 소나무들이 암릉과 아름다운 조화를 이루고 있다.
만항치 / 늦은목재(765m: 09:35)
미끄러운 암릉길을 걷느라 예정보다 많은 시간이 걸렸다.
우측의 궁항지와 마을들이 아련히 안개속으로 얼굴을 내민다.
만항치에 도착하여 다시 고도를 높이기 시작한다.
운장산 서봉까지400m이상의 고도를 높여야 하기에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한다.
모든게 마음에 있지 않았던가 그걸 佛家에서는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라고 하지 않았던가.
그런 탓인지 생각보다 그리 험하지는 않다.
群鷄一鶴이라 했던가 아니 群竹一花인가 산죽터널에 외롭게 핀 야생화
금남정맥 1구간은 유난히도 표지기가 많이 보인다. 금북정맥과는
정말 대조적이다. 정맥꾼들... 특히 나홀로 산행시는 생명줄과 같이 것인데
올라가야할 운장산 서봉이안개에 휩싸여 보일락 말락 산꾼 범여의 애간장을 다 태운다.
사람(人)이 계곡(谷)에서 놀면 속인(俗)이 되는 것이고 사람(人)이 산(山)으로 올라가면
신선(仙)이 된다 하였다. 또한 산의 정상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면 모든것이 평등과 조화로
이루어져 있다는 걸 알 수가 있다.
다시 서서히 고도를 높인다. 이 높은곳에 잣나무 군락지가 있는데 이번 태풍으로
잣나무 열매들이 꽤나 많이 떨어져있다. 뿌러진 나무도 꽤나 많이 보이고...
벌써부터 청솔무라는 넘이 잣을 이렇게 작살을 내고 있다.
저 넘이 얼마나 설쳐될까?
태풍으로 떨어져 있는 잣
운장산 서봉 오름길이 점점 가팔라지더니 정상이 가까워지자
등로는 왼쪽 사면으로 방향을 바꾸더니 코가 땅에 닿을듯이 입에 단내가
날 정도로 벌떡 일어서는데 길이 비에 젖은 바위가 미끄럽기까지 하다.
숨이 턱밑까지 차 오른다. 그렇게 사투를 벌이기를 30여분...
금남정맥 최고봉인 서봉에 올라서니 이곳은 이름값을 하듯 등산객들이
꽤나 많이 보인다. 과연 명산답다. 이곳이 왜 운장산인가를 보여 주는듯 하다.
이곳에 서 있던 칠성봉이란 표지석은 무 짜르듯이 싹뚝 잘라 흉물스럽기만 하다.
언 넘이 한 짓거리인지... 표시석이 밥을 달라든 죽을 달라든...
그게 우상숭배라고 보이던가? 참 쏘갈머리란곤 밴댕이 속보다도 좁은 넘...ㅉㅉㅉ
정상에서는 전주에서 왔다는 젊은 등산객 3명이 라면을 끓일려고 준비를 한다.
거기다가 쐬주까지 침이 콜딱 넘어간다. 그러나 시간이 없는 걸
정맥길에서 700여m 떨어진 운장대가 날 부르고 있는 걸... 일부러 오긴
힘이들 것 같아 후미가 오려면 아직 멀었기에 동료산꾼 안레아님과
서둘러 운장대로 향한다
운장산 서봉(칠성대:10:30)
북두칠성의 전설이 담겨 있는 칠성대를 지나 한참 더 올라 가면 오성대가 있는데 조선조
중종 때의 성리학자 송익필(1534 - 1599) 이 은거하였던 곳으로 전해지고 있다.
원래의 산이름은 주출산이었는데 송익필의 자를 따서 운장산으로 불리게 되었다.
옛날 운장산 깊숙한 골짜기에 절이 있었고 그 절에는 다만 주지 스님만이 절앞의 산을 개간하여
농사를 지어가며 부처님을 모시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날 이 깊은 산중에 손님이 찾아왔다.
그들은 불공을 드리러 온 사람도 아니고 불도를 배우러 온 사람도 아니었다.
모두가 미목이 수려하고 잘 생겼는데 망태를 둘러매고 있었으며 눈이 유난히 반짝이는 청년들이었다.
일곱명이 일행인 이들은 주지에게 요기를 시켜달라고 하였다.
주지는 "나 먹을 밥도 없다"고 냉정히 거절하자 이들은 산위로 올라가 암자에 이르러 과거준비하는
선비에게 이르러 밥을 주기를 간청하였다.
마침 저녁밥을 준비하던 선비는 "불공을 드린다음 식사를 드릴테니 조금만 기다려 주십시오" 하며
불상앞으로 불공을 드리려고 하였다.
그러자 일곱명의 청년들은 화를 내며 "배고픈 사람의 사정도 모르면서 벼슬은 무슨 벼슬을 한다고!"
하면서 밥상을 지팡으로 내려쳤다. 선비가 놀라 뒤돌아보니 그들은 온데간데 없고 자기가 공부하던 책도 없어져 버렸다 한다.
이들은 칠원성군으로 탐랑성군, 거문성군, 녹존성군, 문곡성군, 염정성군, 무곡성군,파군성군 등으로 북두칠성의
일곱성군이었다 한다.
이들이 운장산 암자에서 공부하는 선비가 큰 동량이 되어 벼슬에 나갈만한 재질이 엿보여 그를
한번 시험하기 위해 내려갔다가 실망하여 선비를 혼을 내주고 하늘에 올라갔다고 한다.
선비는 그후 자기의 모자람을 깨닫고 벼슬의 꿈을 버린채 수도승이 되었다 하며
그곳을 칠성대라고 부르게되었다 한다.
운장산 서봉 정상에서 물한모금을 마시고 운장대로 향한다.
동료산꾼 안레아님은 뭣이 그리도 급한지 앞으로 내달린다.
아직도 후미그룹이 오려면 시간이 참으로 많은데 급하게 가지 않아도
될 것 같은데 말이다. 운장대는 말 그대로 구름에 가려 보일락말락...
철계단에서 바라본 운장대
마치 4년전에 백두산 천지에 갔던 기분이다. 저 넘어 운장대가 구름에 가렸다 말았다
하며 산꾼 범여의 애간장을 다 녹인다. 보일듯 하다가 다시 구름속으로 숨어 버리고
마치 명월관 기생 추월이가 뭇사내를 애간장을 다 녹이는 치맛자락을 보일락말락 하듯이...
운장대 가는 길에 옛 성터인듯한 흔적도 커다란 바위와 함께 절묘한 조화를 이룬다.
자연은 자연 그대로 있을 때가 가장 멋있는 법인데 자꾸만 인간의 탐욕으로 인해
망가지는 것이 참으로 안타깝다. 여긴 그 어느곳보다는 자연 보존상태가 좋다.
이런곳은 더 이상 훼손하지 말았으면 하는 바램이다.
운장산(雲長山 1,126:10:50m)
전북 진안군 주천면, 정천면, 부귀면, 완주군 동상면에 걸쳐 있는 호남지방의
금남정맥 중 제일 높은 산이다. 운장산의 서쪽 완주, 익산, 김제, 정읍일대는 넓디넓은
평야지대이고 평균 고도가 해발 290여m인 진안고원에는 높은 산이 없으므로
사방으로 펼쳐지는 조망은 그야말로 훌륭하여 금남정맥에 자리 잡은 제일의 전망대이다.
남쪽과 북쪽으로 흐르는 물은 금강으로 유입되고 서쪽 계곡으로 흐르는 물은 완주군 동상면을
지나 만경강으로 흘러 금강과 만경강의 발원지 구실도 하고 있다.
북두칠성의 전설이 담겨 있는 서봉인 칠성대를 지나면 오성대가 있는데 조선조 중종 때의
성리학자 송익필이 은거하였던 곳으로 전해지고 있고 정상에서의 조망이 뛰어나 북쪽으로
대둔산과 계룡산이, 동으로는 덕유산국립공원, 남쪽으로는 마이산과 그 뒤로 지리산 전경이
웅장하게 펼쳐진다
남북에서 볼 때 거대한 기와지붕처럼 우람하게 보이는 운장산 주릉에는 동, 서와 가운데 세 봉우리가
있는데 모두가 비슷비슷해서 어느 것을 주봉으로 내세우기 어려우나 그중 암봉으로 우뚝하게
남쪽 가까이에 깎아지른 낭떠러지의 벼랑을 이룬 칠성대가 있는 서봉이 운장산 제일의 전망대이다.
운장산에는 골짜기도 많다. 이름난 운일암 반일암 외에도 쇠막골(정천 봉락리 가리전에서
각우목재로 오르는 길), 늑막골(학선동에서 복두봉에 이르는 길)이 양쪽 기암괴석 사이에
자리잡고 있는 비경이다. 산첩첩 물겹겹의 산악지대는 각종 동식물의 번식지이고 계곡에
길게 형성된 작은 평야에 비록 삿갓배미 일망정 논밭이 일구어지고 있으며,
산수조화의 극치라 일컫는 명승 운일암 반일암을 품고 있는 산이다
운장산 대삼각점
운장산(雲長山)의 옛 이름은 주줄산인데, 조선 중기 성리학자 구봉(龜峰) 송익필이 서봉 아래
오성대에서 은거한 뒤로 그의 자(字)인 '운장'을 따서 운장산이라 불리게 됐다 전해온다
운장산 정상인 중봉이다.
운장대로 불리는 이곳은 이름 그래도 거대한 암봉이 구름속에 묻혀있다 하여 운장대라 불린다.
원래 운장산의 정상은 동봉인 삼장봉이다.
삼장봉이 1133m로 더 높으나 7m낮은 운장대를 운장산의 정상이라 칭하고 있다.
운장산은 상봉, 동봉, 서봉의 3개 봉우리가
거의 비슷한 높이로 서로 키재기를 하고 있는 형상이다.
동쪽 10km 부근에는 같은 능선에 속하는 구봉산이 있다.
운일암(雲日岩), 반일암(半日岩)으로 유명한 대불천 계곡이
운장산에서 발원하는 주자천의 상류지역에 있다.
주변이 높은 산이 없는 평야지대이기 때문에
정상에 오르면 전망이 좋고, 물이 맑으며 암벽과 숲으로
둘러싸여 있어 여름철 피서지로 인기있다고 한다.
운장대 정상에서 돌아오는 길에서 만난 멋진 암릉들
운장산 세 봉우리중 제일 아름답고 조망이 좋다는 서봉이다.
서봉은 중봉에서 20분 바로 아래 평평한 터에 역시 벤취가 둘 있다.
봉우리의 위용이 주변의 봉우리를 굽어 살피는 듯 하여 일명 독제봉(獨帝峰)이라 불린다.
바로 옆에는 전망 좋은 너른 바위가 있다멀리서 봤을 때 고래 머리처럼 보이는 암릉이다.
운장산 서봉 이정표(11:20)
운장대 정상에서 커피와 빵 한개로 원기를 보충하고 다시 서봉으로 향한다.
서봉 이정표에서 다시 서봉을 올라가지 않고 동상 휴게소라고 써있는 곳으로
내려간다. 이곳 어디에도 오늘 날머리인 피암목재라는 文句는 보이지 않는다.
내리막길엔 비로 인해 길이 많이 파여 엉망진창이 되어 있고 전부다 잔자갈과
잔바위로 구성이 되어 무릎에 엄청난 충격으로 다가온다.
스틱으로 조심 조심하면서 길을 내려오는데 도가니가 불이 나는 느낌이다.
아직도 가야할 산이 아니 나를 기다리는 산이 너무도 많은데 무릎을 아껴야지...
잠시 후 아까 서봉 정상에서 라면을 먹던 친구들이 내려온다.
이 친구들은 전주에서 서봉 정상까지 왔다가 가는 중이라고 한다.
활목재 (862m:11:30)
활목재에 도착을 하니 다리가 너무도 아파온다.
아직도 30분은 더 내려가야만 하는데...가끔씩 산을 올라오는 등산객을 만난다.
이곳도 날씨가 좋으면 꽤나 사람이 많을듯 싶다.조금 휴식을 취한다. 무릎도 보호할 겸...
비타민 음료로 원기를 보강하고 5분간의휴식을 취하니 그래도 훨씬 나은 느낌이다.
산의 특성상 일정부분 내려서면 편안한 등로가 나오는게 특징이건만 이곳은
그 방식이 통용되지 않은 것 같다. 게속해서 자갈밭이다. 거기다가 요즘 계속
내린 비의 상태로 등로는 최악의 상태이다. 활목재를 지나 삼거리에서 직진을 하니
山竹밭에 봉분도 없는 ‘咸平 魯氏와 金寧 金氏’ 합장 묘비를 지나 직진을 한다.
저 건너에는 내가 지나온 연석산을 비롯한 호남의 연봉들이 나를 반긴다.
연석산을 휘감고 돌아가는 금남정맥의 능선이다.
가느다란 협곡이 무려 9개가 보인다.
오늘 내가 지나온 능선들
이젠 雲霧가 걷히고 산의 형태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저 아래에 산을 깍아
길을 만든 진안군 주천면과 완주군 동상면을 잇는 55번 지방도가 지나가는
도로가 눈에 들어오고 저 넘어 다음 구간인 장군봉도 시야에 들어온다.
피암목재(12:00)
평소 타던 산행길보다 거리는 짧았는데도 불구하고 오늘 산행은 생각보다
힘이 들었다. 날머리인 피암목재에 도착하니 피로가 엄습해온다.
다리도 평소 훨씬 더 아프고... 날씨 탓이기도 하려니 하지만 높은 습도로
인해 훨씬 많이 지친 모양이다. 거기다가 휴게소 터는 넓으나 설치된 수도꼭지에
물도 나오질 않고 화장실도 간이 이동식 화장실이라 씻을 곳이 없다.
하는 수 없이 휴게소 옆 개울에 모기 눈물만큼 흐르는 물에 땀냄새가 가실만큼
알탕을 하고 옷을 갈아 입은 다음 오랫만에 해후(邂逅)를 안레아님과 막걸리
한사발을 나누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후미를 기다린다.
피암목재는 그야말로 폐허로 방치된 느낌이다.
후미가 도착하여 주천면쪽으로 내려와 후미들이 시내에서 알탕을 하는
사이에 정자나무 그늘에서 토막잠을 자면서 피로를 풀고 다시 차에 올라
대전~통영간 고속도로 추부I.C를 향하는데 내려오는 길가에 반일암.운구암
계곡에는 피서객들로 발디딜 틈이 없어 보인다. 피로가 계속 쏟아지는데
뒤에 앉은 산꾼이 계속해서 私談을 나누면서 시끄럽게 군다.
산꾼의 첫째 德目은 남에게 민폐를 끼치지 않는 것인데 이건 아니다 싶다.
남에게 배려하는 맘을 가졌으면 한다. 우리가 산에 오는 목적이 뭔가.
남을 배려하는 마음, 下心, 비움이 아닐까 하는 생각에 씁쓰럼한 느낌이다.
피암목재 휴게소 모퉁이에 세워져 있는 국가 기준 수준점
수준점(BM; Bench March)이란 수준원점으로부터 표고를 정밀측정하여 영구적인 말뚝을 설치하고,
차후 부근의 수준측량에 이용할 수 있도록 그 표고를 국토지리정보원의 수준측량 성과표에 등록해
놓은 기준점을 말한다.
현재 우리나라의 수준점은 인천만의 평균해수면을 기준으로 하고 있으며, 이를 바탕으로
인천시 남구 용현동에 수준원점을 측설하고 그 표고를 정밀하게 결정해 놓았는데,
이 수준원점의 표고값은 26.6871m이다.
아울러 주로 국도 주변에 수준점을 설치하여 놓았는데 1등 수준점은 약 4㎞,
2등 수준점은 약 2㎞간격 설치되어 있다.
'♣ 백두 대간및 9정맥 후기♣ > 금남정맥(終)' 카테고리의 다른 글
금남정맥 제6구간 - 엄사초교에서 윗장고개까지 (0) | 2011.11.13 |
---|---|
금남정맥 제5구간 - 덕목재에서 엄사리(엄사초등학교)까지 (0) | 2011.10.23 |
금남정맥 제3구간 - 백령고개에서 배티재까지 (0) | 2011.10.16 |
금남정맥 제4구간 - 덕목재에서 배티재까지(역산행) (0) | 2011.10.09 |
금남정맥 제2구간 - 피암목재에서 백령고개까지 (0) | 2011.08.2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