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산행일자 : 2011,08, 27~28(무박산행)
○ 산행날씨 : 아침엔 박무, 날씨는 맑았으나, 늦여름 더위로 상당히 더웠음
○ 참석인원 : 좋은 사람들 산악회 회원들과 함께
○ 산행거리 : 도상거리 : 19.5km / G.P.S 거리 23.8km / 10시간 10분 소요
○ 산행코스 : 피암목재-787봉(성봉)-742(장군봉 1)-암봉(725)-장군봉
640봉-큰싸리재-755봉(금만봉)-작은 싸리재-성재봉(태평봉수대)
786.6봉-719.9봉-735(암봉)-신선봉(790봉)-게목재-760봉-713.5봉
560봉-헬기장-백암산(육백고지)-독수리봉-610봉-405봉-백령재
○ 소 재 지 : 전북 진안군 주천면 / 전북 완주군 동상면, 운주면 / 충남 금산군 남이면
강하게 때론 약하게
함부로 부는 바람인 줄 알아도
아니다! 그런 것이 아니다!
보이지 않는 길을
바람은 용케 찾아간다
바람 길은 사통팔달(四通八達)이다
나는 비로소 나의 길을 가는데
바람은 바람 길을 간다
길은 언제나 어디에나 있다
“천상병” 님의 ‘바람에게도 길은 있다’ 에서
지난 한주는 정말 오랫만에 따사로운 햇볕을 한 주내내 구경하였다.
그것도 오랫만에 아주 오랫만에...
여름이 지나 더위도 한풀 꺽이고 선선한 가을을 맞이하게 된다하여
처서(處暑)...처서가 지나면 매미들도 떠나야 하는 안타까운 울부짖음이
시작되고 모기들이 입이 삐뚤어져 물지 못한다는 처서가 지난지도
벌써 닷새가 지난다. 이젠 조석으로꽤나 쌀쌀함을 느껴야만 하는 날씨이다.
매주 산을 다니는 범여가 느끼는건 해가 무척이나 짧아졌다는 것과
계절의 절기가 너무나 기가 막히게 맞아 떨어진다는 것에 음력이란 약력이
참으로 과학적인데 놀라움과 우리 선조들의 지혜에 다시 한번 고개가
숙여진다. 우리 이제껏 서양 문화에 맹목적으로 동경하고 선진국이란
허울에 쫒아 다니다 우리것은 무조것 후진적, 낙후, 열등의식...
참으로 안타깝다. 양력이란 서양의 것에 따르지 말고 음력으로 함 개선해 봄이
어떨런지... 지난 8.24 서울시 무상급식 투표를 보면서 과연 이 나라의
정치 지도자들의 작태에 의구심이 참으로 많다. 과연 저분들이 국민을
생각하는 분인지... 지금 전세계적인 경제 공황사태도 어쩌면 경제적인 문제가
아닌 정치적인 문제인 것 같다. 유럽의 그리스, 이탈리아, 스페인 등을 보면
정치 지도자들이 표를 얻기위기 포플리즘으로 선심공약 땜에 그런 위기를
보면서 정신을 단단히 차려도 모자랄 판에 한술 더떠서 무상복지를 설쳐대니
말이다... 이 세상에 공짜 점심은 없다는 걸 왜 판단을 하지 못할까?
그런데 산행 후 서울 돌아오는 길에 무상급식을 주장하여 그것을 관철시킨 서울시 교육감
곽노현이 통합후보로 나선 모 교수에게 2억을 준 혐의가 들어나 충격을 준다.
그것도 아무런 대가성없이 선의로 그 교수가 어려워 줬다고 하다니
지나가는 소가 웃을 희대의 코미디를 하고 있다. 저런자가 교육자라니
말이나 되는 소리인가. 그러면 탄압이라고... 제발 좀 웃기는 소리하지마소.
2억을 주면서 대가성이 없다니... 얼마나 재산이 많기에... 민초들 복장 터지는
소리하지말고 당장 사퇴를 하심이 어떠실런지. 참으로 한심하다.
물론 저소득층 사회도 돌봐줘야 하는건 당연하지만 지금의 방식은 아닌것 같다.
지금 방식은 결국 자기 닭 잡아먹는 꼴이 아닐까 하는 생각에 걱정이 앞선다.
국민의 표를 얻기위한 선동정치가 아닌 정말 민초들이 뭘 원하는 함 헤아려 보시길...
오늘 산행구간의 지도
피암목재(03:30)
여산 휴게소에서 약 40분간의 휴식을 취하고 호남고속도로 삼례I.C를 빠져나와
완주 산업공단을 지나 동상면으로 버스는 접어든다. 차창밖에는 음력 7월 그믐날의
하현달이 커다란 동상 저수지를 비추고 있다. 시봉천을 끼고 오르막을 오르는
버스는 상당히 힘들어 하는 모습이 역력하다. 동상저수지를 구비구비 돌아 피암목재에
도착하니 하늘의 별이 금방이라도 쏟질 듯 총총히 별천지이다.
산행시작(03:50)
버스에서 내려 스트레칭으로 몸을 풀고 장비점검을 한 다음에
산행을 시작한다. 풀잎에 이슬이 비처럼 내려있어 금방 바지가 다 젖어버린다.
도로를 따라 완주군 동산면 방향으로 20여m를 내려가면 오른쪽으로
오색 표지기가 찬란하게 나부끼는 절개지를 따라 올라 능선길로
이어지고 조금 오르니 솔밭사이의 마루금으로 진입하며 오늘 산행을 진행한다.
높은 울타리(04:00)
초반부터 산죽 군락지가 산꾼을 괴롭힌다. 초반에 오름을 시작하다가
안부에 내려서다 다시 치고 오르니 높은 울타리라는 표지판이 서있고
무슨 용도인지는 알수가 없으나 참나무로 엮어 만든 울타리가 있고 좌측으로
돌아서 오르니 뭔진 암릉구간이 나타난다. 또다시 가파르게 치고 오르니
어둠속에 675봉이 나타나고 잡초가 가득한 헬기장에 삼각점이
(진안410/194재설)나타난다.
어둠속에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는 소나무
675.5봉에서 다시 고도를 낮추며 내려서니 갈림길에서 능선을 따르지 않고
좌측으로 꺾어 급경사 내리막길을 따라 내려서는데「급경사지」란 표지판이 나타난다.
또다시 능선길로 이어져 「암벽」표지판이 있는 커다란 바위를 지나면 안부
사거리에 내려서는데 진안군 주천면 외처사동에서 완주군 동상면 밤목리로
넘어가는 570m 고개가 나타난다
787봉(성봉:城峰:04:45)
570봉 고개에서 새벽에 암릉으로 구성되어 있는 능선을 빡세게치고 오른다.
좌측으로 방목리가 가는 샛길도 보이고 잠시후 어둠속에성터인듯한 돌무더기들이 나타난다.
지도상에는 787봉이라고 숫자 표시로만 되어있는 봉우리가
‘새마포 산악회’ 라는 곳에서 성봉이란 팻말을 달아 놓았다.
성봉도 펑퍼짐하여 왜 성봉인가 했더니 봉우리전체가 석성으로 둘러쌓여 있다
이곳에는 사람 키보다 더 큰 잡초가 가득한 헬리포트장이 있고 어둠속에 아무것도
90도 좌측으로 꺽어져 약간의 내리막길을 향한다.
장군봉 가기전에 만난 부산 금정산의 금샘과 거의 흡사한 모양의 石井
성봉에서 혼자서 편안한 안부능선을 걷는다. 일부러 혼자 가고파 일행들과
일정한 간격을 두고 걷는다. 산을 벌써 가을을 준비하는지 새벽에 구뚜라미
소리가 꽤나 정겹게 들리고 가는 여름을 아쉬워 하듯 매미도 지지 않으려고
시끄러럽게 울어댄다. 가끔씩 안부에서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이 머리를 맑게
해준다. 단 이곳은 암릉으로 된 안부라 발한번 헛디디면 그대로 황천길이라
어둠속에 상당히 조심스럽다. 새벽 5시 20분이 지나니 약간의 사물을 구분할
정도로 날이 밝아오기 시작한다.
아침을 맞이하는 운장산과 연석산
이곳은 장군봉이 2개나 있다. 그것도 지척에 두고... 첫번째 장군봉 오르는 암릉에서
주위는 밝아지고 연석산, 운장산, 구봉산으로 이어지는 호남 알프스의 연봉들이
안개에 휩싸여 신비로움을 더해준다. 마치 천상세계에 온 것처럼... 이 기분 정말 굿이다.
20분을 기다렸다 멋진 일출을 보려 햇지만 갈길이 멀기에 그냥 길을 나선다.
낮에 찍은 이곳의 모습(이 곳의 이해를 돕기위해 펌 사진)
암릉에서 아쉬움을 뒤로하고 장군봉을 향하는데 커다란 바위에다 여기저기
이름을 새겨 놓은게 여간 눈에 거슬린다. 이 쉬끼들. 이 아름다운 곳에 자연을
훼손하다니... 조금 더 가니 장군봉 이정석이 있고 그 옆에는 막걸리 장수가
텐트를 쳐놓고 비박을 하고 있다. 표시석을 확인하고 다시 되돌아 나온다.
‘전기없는 마을 밤목리’라는 표시가 나온다. 이곳도 참으로 멋있는 곳이 있다니
범여가 나중에 살고 싶은 곳도 아마 저런곳이 아닐까...ㅋㅋㅋ
장군봉(將軍峰 :738m: 05:35)
전북 완주군 동상면과 진안군 주천면 경계에 자리한 산이다.
주위 전망이 너무나 멋진 곳이지만 길은 상당히 험하다
장군봉에 들렸다가 다시 50m 정도 되돌아와서 급경사의 내리막길을
내려온다. 이곳에는 완주군에서 로프와 쇠사슬 그리고 철제로 발 받침을
해놓긴 했지만 조심조심해서 아슬아슬하게 내려온다.
장군봉과 뚜꺼비 바위
아침 안개에 휩싸여 신비로움을 더해 주는 운장산과 좌측의 복두봉(구봉산)
앞에 보이는 봉우리는 조금 지나온 성봉이다. 구봉 송익필 선생이
왜 이곳을 그리 집착하였는지 이해를 알 수 있을 것 같다.
아침 일출(06:02)
일행과 떨어져서 혼자서 걷는 호젓한 이 길은 너무좋다.
적어도 산행할 때만큼은 남의 간섭을 받고 싶지않다. 그래서 일행들과
어울려 다니고 싶지 않다. 그러다 보면 산행후기를 쓸때 남의 등산화 뒵굽 본것
밖에 생각이 나지 않기에...아침 햇살은 따갑기만 하다.
수많은 시그널들이 마치 만국기를 연상케한다. 705봉 오르기 직전에 이렇게 많은 산꾼들이
표지기를 걸어놨다. 표지기는 말그대로 내가 지나간 흔적을 나타내는 정표일 때도 있고
희말라야처럼 안녕을 기원하는 표시일 수도 있다. 또 한가지는 나처럼 혼자 다니는 산꾼은
등대와 같은 생명줄일 수도 있다.
725봉(06:10)
지도상에 이곳이 두번째 장군봉으로 표기를 해놨는데 여기는 아무런 기록이 없다.
지도를 보면 지도마다 다르게 표시가 되어 있는게 많고 거기다가 각각등보체이다.
보다 정밀한 지도를 보고 싶다.
705봉(06:15)
705봉을 지나면서 다시 오르막을 치고 오른다. 하긴 정맥길이 오르막 내리막
능선을 타는 건 이외는 별로 기억에 남는것이 없으니 말이다. 조금 지나니
부부가 같이 다니는 휴식을 취한다. 그러면서 오이를 먹으라고 건넨다.
오이 2조각을 얻어먹고 먼저 가는데 산죽터널 내리막길에 오랫동안 비가
내린 탓인지 맥길은 마치 진흙탕같이 걷디가 불편하기 그지없다.
날씨가 밝아오면서 햇빛의 강도는 더해온다. 오늘 산행이 쉽지 않음을 예고한다.
갑자기 안개가 몰려오고 몇번의 오르막 내리막을 하고 나니 허기가 진다.
힘들게 640봉을 치고 오르면서 마땅한 아침 식사 장소를 물색하려는데 앞에 간 산꾼이
아침상을 펼치고 식사준비를 한다.버스에 인사를 나눈 ‘장기리’라는 닉을 가진 분이다.
사실 나는 잘 모르는데 내가 산행을 좀 다녔던 한네산 산악회에 前 대장을 하신 분이다.
초반에 힘을 좀 뺀 탓인지 밥 생각은 별로없고막걸리 생각이 간절하다.
그 분이 직접 담갔다는 막걸리와 내가 가져간 막걸리 한병을 마시고
나니 조금은 살것 같다. 그리고 억지로 아침 밥을 먹는다. 오늘같은 장거리 산행은 밥이나
떡같이 쌀로 만든 음식 즉
, 탄수화물을 섭취하지 않으면 후반에 맥을 추지 못한다.
큰싸리재(07:38)
640봉에서 장기리님과 오랫만에 느긋하게 30분간의 여유로운 아침식사를 마치고 급한 내리막길을
내려오니 움푹 파인 고개가 나타난다. 이곳이 큰싸리재이다. 진안군 주천면 윗진등마을과
완주군 고산면 은천리로 연결하는 안부인데 이젠 거의 재의 역할을 잊어버린듯 길이 거의
보이지가 않는다.
금만봉(750봉 : 07:55)
대동여지도에 충실한 실질적인 금남정맥 분기봉이다
스텐봉으로 이정표를 세워진 이곳이 대동여지도에 의거한 금남정맥이 확실한 것 같다.
금만봉이란 금강과 만경강의 분기점으로 해석할 수 있으며 750봉에서 좌측으로 뻗어가는 산줄기가
산자분수령에 따르는 금강의 물줄기를 모으는 남쪽의 울타리가 되다보니 산경표상의 금남지맥은
금남기맥이라 불러야 할것 같고 여기서 금강하구의 군산 장계산으로 향하는 마루금을 금강정맥,
금남정맥을 부르기도 하지만 산경표상의금남 정맥을 그대로 두고 대동(여지도)의 금남정맥으로도
많이 부르기도 한다.
정맥이란 봉우리에서 시작하여 바다로 떨어지는게 맞는데 유독 금남정맥만이 봉우리에서
시작하여 강(백마강) 으로 떨어지니 아이러니이다. 정확하게 표현하면 금남기맥이 맞지 않을까하는 생각이다.
그래서 요즘 식견있는 산꾼들은 이곳 금만봉에서 시작하여 군산앞바다까지 가는“대동금남정맥”을 고집하는 산꾼들도 있다.
작은 싸리재(08:12)
금만봉 정상에서 우측으로 90도를 꺾어져 내리막을 15분간을 내려온다.
저 멀리 대둔산이 손에 잡힐듯 다가오고 좌측 산에는 뭣하려는지 벌목을 해논 탓에산이 민둥산처럼 되어 있다.
갑자기 뚝어진 커다란 화물차가 다닐정도의 비포장 임도가나타나고 이통통신 중계탑이 서 있는 고도 580봉의
작은 싸리재가 나타난다.
대동금남정맥 분기점
완주군 동상면과 운주면 그리고 진안군 주천면의 경계에 있는 고개로 대동.금남 정맥이진안 주천면에서
완주 동상면을 가르는 바람에 진안 주천면에서 완주 동상면으로 갈때는 큰싸리재를 넘고 운주면을 갈때에는
작은 싸리재를 넘었던 것 같다.
금강정맥이 지나는 산은 조약봉분기봉.연석산.운장산.장군봉.싸리재분기봉.왕사봉.칠백이고지.시루봉.
남당산.까치봉.옥녀봉.천호산.미륵산.망해산.대명산.청암산.장계산등이다
포식자인 거미가 그물을 쳐놓고 느긋하게 먹잇감을 기다리고 있다.
자연이란 생존법칙이 모두를 살게하는 방법임을 이들은 더 잘알고 있다.
먹이사슬의 체상위인 인간의 오만함과 탐욕만 버리면 모두 다 편안할텐데...
물봉선화
들봉선화 또는 물봉선화는 깨끗한 룰가에서 자라나 꽃잎색깔이 불사조의 것과
같다하여 '불사조의 영혼'이라 불리기도 한다.
꽃말로는 ‘나를 건드리지 마세요’ 이며 우리나라 전역에 산이나 들에서 흔히 분포되어 있다.
종류로는 제주물봉선, 산물봉선, 처진물봉선, 노랑물봉선, 물봉선등이 있으며
8~9월에 열매가 익고 터지면서 씨앗을 퍼트리는데 괭이밥이나
쥐손이풀도 같은 방법으로 터진다.
주요성분으로는 케르세틴과 캠퍼롤이라는 강력한 황산화 물질이 있어 식물첨가시
산화나 곰팡이 발생 변질을 방지하여 신선도를 오래유지시키는데 사용하기도 하고,
암세포 증식 억제에도 효과가 있다고 한다. 씨앗속에 불포화 지방산인 파리나르산은 종양효과를
나타내고 나프타퀴논은 갖가지 균을 죽이거나 억제작용을 하기때문에 살균제 및 무좀치료제
성분으로 활용된다고 한다. 친환경 농업으로 봉선화 전체를 생즙을 내어 물 또는 주정에 우려내어
항균, 살균제로 활용하면 탁월한 효과를 본다고 한다.
전해오는 전설로는
백제때 한여자가 선녀로 부터 봉황새 한마리를 받는 꿈을 꾸고 딸을 낳아 봉선이라
이름지었는데 곱게 커 천부적인 거문고 연주 솜씨로 명성을 날려 임금님 앞아 나아가
연주하는 영광을 얻었는데 갑자기 병석에 눕게 되었답니다.
어느날 임금님 행차가 집앞을 지나간다하여 봉선이는 자리에 일어나
온힘을 다해 거문고를 연주하였습니다.
이소리를 알아보고 찾아간 임금님은 봉손이가 손으로 부터 붉은 피가 맺혀 떨어지는
것을 보고 애처롭게 여겨 무명천에
백반을 싸서 동여매 치료를 하여주고 떠났습니다.
그 후 봉선이는 죽고 무덤에 빨간 꽃이 피어났고 사람들은 그 꽃으로 손톱에 물을
들이고 봉선넔이 화한 꽃이라 하여 봉선화라 불렀다합니다
태평 봉수대 삼거리(08:40)
고도를 580에서 820으로 급하게 치고 올라간다. 오늘 산행중에 가장 높은 곳이다.
거기다가 등로가 관리되지 않은 탓에 온갖 나무들이 태클을 걸며 시간은 자꾸만
지체된다. 조금후엔 아침 먹은지가 얼마되지 않은탓에 걷기가 힘이들고 입에 단내가
날 정도로 힘이든다. 빡세게 죽을 힘을 다해 올라오니 온몸을 땀으로 뒤범벅이 되고
이마에 비오듯이 땀이 흘러내린다. 잠시후 봉수대 삼거리에 도착한다.
베낭을 벗어두고 정맥길에서 약 200m 정도 벗어나 있는 성제봉이라 부르는 태평
봉수대를 향한다.
성제봉(824m:08:50)
태평봉수대 정상이 성제봉이다. 이곳에 정말 시야가 확 트이고 사방 주변이 모두 다 보인다.
왜 이곳 우리 선조들이 봉수대를 설치한 이유를 알것만 같다. 성제봉이란 城으로 쌓은 峰이라고
해서 성제봉이라 부르지 않나 싶다
오늘 내가 지나온 곳
성봉과 장군봉 금만봉과 우측으로 성치지맥의 마루금인 700고지가 보인다.
다,다음구간인 대둔산도 보이고...
2주전에 지나온 구간의 연석산과 운장산의 산그리메가 파노라마처럼
밀려온다. 그 우측으로 완주군 송광사에서 시작되는 호남 알프스의 마루금이
조망되고 운장산 좌측 복두봉(구봉산)으로 이어지는 호남 알프스의 북쪽으로
운일암,반일암을 사이에 두고 명덕봉과 명도봉이 시원하게 조망된다.
태평 봉수대(08:50)
전라북도 도 기념물 제36호로 지정되어 있는 태평 봉수대는 진안군 주천면 대불리와 무능리,
완주군 운주면 고당리의 접경인 824봉에 있다.삼국시대에 축성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천연 암석위에
잡석으로 높이 4~5m의석축으로 쌓아 올렸으며 조선시대 선조 28년(1595)에 보수한 것으로 알려졌으며
네모난 축대가 거의 완전한 상태로 보전되어 있으며 태평산성과 전주 감영(監營)으로 신호를 보내기 위한
봉수대로 추정이 된다.
성제봉을 갔다온 사이에 성제봉은 정맥길이 아니라고 그냥 가버린 산꾼들이
벌써 저만치 앞서 가버렸다. 그래도 느긋하게 길을 걷는다. 저 건너 성치지맥
마루금이 아쉬움을 나타내고 내가 가야할 대둔산이 자꾸만 나를 부르는것 같다.
암릉으로 된 안부길이 정말 멋있다. 가까이 보면 천길 낭떠러지라 어지럼증이
나지만 전망 하나는 정말 끝내준다. 거기다가 멋진 소나무들이 너무나 많고...
왜 금남정맥이 “정맥의 꽃”이라는 이유를 알것만 같다.
벤치까지 설치해 놓고 멋진 조망까지 하라는 배려까지...
산에는 벌써 가을을 준비한다. 구절초가 피기 시작한다.
성제봉에서 약 1km 정도 내려오니 꽤나 큰 임도가 나타난다.
진안군 주천면 무룡리와 완주구 동상면 대야리를 연결하는 재이다.
다시 급하게 내려온만큼 올라가야 하는 힘든 코스를 오른다. 이곳에는
지난 여름 태풍의 피해인지는 몰라도 쓰러진 편백나무가 여기저기
어리럽게 널려져 있어 걷기가 상당히 불편하다. 마치 허들경기 하듯이
넘고 또 넘는데 사이즈가 적은 범여는 이곳에서 솟다리의 비애를 느낀다.
쉬지 않고 치고 오르니 성제봉을 들리지 않고 출발한 장기리님을 만난다.
바람한점 없는 날씨땜에 땀이 비오듯 하지만 그냥 쉬지 않고 걷는다.
어차피 가야할 길인데...
786.6봉에서 만난 산꾼(10:10)
힘들게 치고 올라 786.6봉에 오르니 약간의 바람이 불어 조금은 살것만 같다.
이 코스의 즐거움은 오르락 내리락이 게속해서 산꾼을 지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오르내림을 한 다음에 다시 일정부분 편안한 안부를 걷게하는 즐거움을 누리게
한다는 것이다. 어느정도 걸으니 약초를 캐러오신 연로하신 두분을 만난다.
수확이 좀 어떠시냐고 물으니 올핸 비가와서 별무소득이라고 하신다.
참으로 오래 계속된 비가 여러 사람을 고통스럽게 하는구나
711.9봉에서 신선봉가는 길은 사람 키보다도 더 큰 3m나 족히 될듯한 산죽터널이
산꾼을 너무나 괴롭힌다. 시원했던 바람은 이내 그쳐 버리고 햇살은 따갑기만 하고...
땀은 비오듯이 하고... 자꾸만 죄없는 물만 들이키니...
물이 달랑달랑 하고 식수조절에 들어간다.
오늘 산행의 전리품 - 싸리버섯
오늘 산악회 사람들은 싸리버섯을 모르시나?
이게 왠 횡재야... 산죽 터널을 지나가는데 싸리버섯이 보인다 그것도 등로길에...
얼른 가방에서 비닐을 꺼내서 봉지에 담는다. 이렇게 오늘구간 3군데에서 싸리버섯을
반찬할 정도로 수확하고 물 끓일때 넣어서 다려 마시는 참나무 버섯도 깨나 땄다.
호남 알프스에 둘려싸여 축복의 땅이 되버린 무룡리 마을(전북 진안군 주천면 소재)
날이 새면서 내가 지나온 능선이 확연하게 보이고
신선봉 (790m:11:10)
790m봉에 올라서니 봉우리도 아닌 듯한 밋밋한 3거리 갈림길이다.
바닥에 떨어져 있는 신선봉이라는 표지판을 보고 이곳이 신선봉임을 알 수 있다.
신선봉에서 이어지는 능선은 전북과 충남의 경계를 이루며 713.5m봉까지 이어진다.
오늘 유일하게 신선봉 정상에서 신선처럼 인증샷을 남기고...
게목재(639m:11:20)
신선봉에서 약간의 휴식과 간식으로 영양을 보충한 다음에 급경사의
내려오니 안부가 나타나고 쓰러진 나무 안내판에 《게목재》라고 표시가
되어있다. 우측에 진안군 주천면 무룡리 민박마을 내려가는 길은 뚜렷히
나있으나 좌측의 완주군 완주군 운주면 고당리로 가는 길의 흔적이 별로
없음 인적이 드뭄을 알 수 있다. 산악회에서 이곳 게목재를 끊는 경우가 있다.
게목재에서 다시 고도를 높인다. 이제 5분의 3정도 왔으니 아직 10여km 정도를 더 가야하는데
서서히 체력이 떨어지기 시작하는 몸의 신호가 전달된다. 며칠간 서늘한 날씨는 오늘은 30도가
넘는 한 여름의 날씨를 방불케 한다. 10분정도 치고 오르니 760봉이 나타나고 다시 내리막
오르막을 진행하다 만난 곳이 선야봉 분기점인 714봉이 나타난다.
714봉(11:50)
자꾸만 힘들어하는 육신을 이끌고 다시한번 오르막을 치고 오르니 산 정상에
벌목이 된 봉우리가 나타나고 삼각점이 있다. 이곳이 지도상에는 713.5봉이라고
표시가 되어 있는데 최근에 설치한 듯한 국토지리원의 삼각점이 있고 정맥길은
우측으로 가야 하고 좌측으로는 선야봉(仙冶峰:759m) 가는 길이다.
전북 완주군 운주면과 충남 금산면 남이면의 경계에 있는 선야봉(仙冶峰)은 이곳
마을에서는 촛대봉이라고 하는데 고당실기에 의하면 300여년 전 이 산에서 선녀가
내려와 터를 집을 지어 살았다는 연유로 이 마을이름을 고당이라고 하였고 이
고당(할미마당) 앞에는 말을 타거나 가마를 타고 지나가지 못하도록 하였다고 한다.
성치지맥(城峙枝脈) 분기봉
성치지맥은 714봉에서 분기하여 전북과 충남의 도 경계를 가르며 선봉(697m),성치산(670.4m), 덕기봉,
소사봉까지 44,6km 를 지나 금강의 지류인 금산군제원면 봉황천에서 마무리를 하는 기맥이다.
714봉에서 안부 능선을 걷는다. 양쪽은 모두다 깊은 계곡을 형성하고 있고 안부의 암릉에
멋진 소나무들이 우아한 자태를 뽐내고 있다. 760봉까지 좌측은 완주군 운주면 우측은
진안군 주천면의 경계 능선을 걷다고 714봉부터는 전북의 경계 능선과 아쉬운 이별을
고하고 충남 금산군 남이면으로 접어든다.
흔히들 錦山하면 금산 인삼을 연상케 할 정도로 인삼이 유명한 지역이지만 이 지역에
배출된 유명인사들은 수도없이 많을 정도이다.
대표적으로 임진왜란 때 6000여명의 의병을 모집하여 금산으로 침입한
왜적과 싸우다 그의 아들 인후와 금성면 눈벌에서 장렬히 전사한 고경명 장군.
휴정(서산)대사의 제자로서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200명의 승군을 이끌고
의병장 조헌과 함께청주를 수복하고 이어 금산에서 왜군과 전투를 벌려 조헌 등
700여명과 장렬히 전사한 영규선사도 이곳 금산 출신이며
고려말과 조선초기에 성리학자로 이름을 드날린 야은 길재와 한국 현대 정치사에
거목인 옥계(玉溪) 유 진산도 이곳 금산출신이다.
505봉(12:10)
충남 금산군 남이면 대양리 입석마을에서 남이면 건천리 상괘목동을 넘어가는 안부이다.
714봉부터는 등로가 완전히 자갈밭 수준일 정도로 굵은 돌과 암릉이 많아서인지 관절에 상당한
무리가 따른다. 도가니에 불이 붙은 것 같은 느낌이 들 정도로 관절이 아파온다.
거기다가 암릉길이다 보니 따가운 태양도 산꾼을 더 지치게 한다.
그래도 가야할 길 즐겁게 가자구나. 지난해인가 빵을 주제로 한 모 방송국의 드라마에서
주인공인 김 탁구란 자의 대사가 생각난다.‘머리 좋은 자가 노력하는 자를 이기지 못하고
노력하는 자가 즐기는 자’를 이기지 못한다는 대목에 수긍이 간다. 그래 즐기면서 산행을 하자.
뒤돌아서 본 760봉과 714봉
사이가 좋은 소나무인가 아님 죽고 못사는 사이인가
안부 사거리(12:50)
이제 물도 두모금 정도 남지 않았고 이온음료 반병정도이다. 그 이외는
먹을것과 마실것 아무것도 없다. 그래도 큰 걱정은 되질 않는다.
이젠 조절할 수 있는 요령을 알기에... 안부 사거리를 지나니 헬기장이
나타나고 백암산 오르는 암릉은 상당히 미끄럽다.
오늘 내가 지나온 금남정맥 능선- 조그만 발(足)이 참으로 무섭구나
백암산(600고지:655m:13:10)
헬기장을 지나고 가파른 암릉의 바위지대를 따라 올라서면 655m봉인 백암산으로 돌무더기가 보이고 참호의 흔적이 있다.
충남 금산군 남이면에 소재한 산으로서아침햇살에 백암산 바위 낭떠러지가 하얗게 보인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의
백암산은 6.25 전쟁직후 북으로 퇴각하지 못한 빨치산들이 백암산을 중심으로숨어있어 국군은 군.경 합동으로
빨치산 소탕작전으로 쌍방간 치열한 전투로 인해 엄청난 인명피해가 났으며 이때부터 이곳을 육백고지라고 불렀다고 한다.
이곳은 6.25전쟁시 처절한 싸움을 벌였던 육백고지라지만 아무런 표시도 없다.
「남이 의용소방대」에서 세운 3번 안내판이 있고 조그맣게 백암산 표지판이 매달려 있다.
독수리봉(13:20)
백암산에서 사진 한장만 찍고는 서둘러 길을 떠나 10분정도 걸으니 정상에 돌탑이 있고
독수리봉이라는 스텐 강판이 하나 달랑있는 독수리봉을 만난다.
이곳에 먼저 도착한 산꾼 2명은 지쳐서 그로기 상태이고 금산에서 약초와 버섯을 채취하러
온 부부 2명이 쉬고 있다. 그 부부가 힘들어 하는 모습을 보고 사과를 한쪽씩 나눠준다.
그 사과 맛이 와 이리 꿀맛인지? 다시 안부 능선길길 걷다가 이제 백령고개 내려가는
길로 내려간다. 자갈길 비슷하여 상당히 미끄럽다.
635번 지방도
능선에서 보니 오늘의 산행 종착지인 백령고개와 금산군 진산면과 남이면을 연결하는
635번 지방도로가 보이기 시작한다. 그러나 아직도 2km정도나 거리가 남아있다.
20분정도 급경사를 내려오니 무슨 공사를 하는지는 몰라도 허연 속살이
드러날 정도 파헤처져 도로를 내고아름드리 소나무를 잘라서 보기가
흉물스럽다. 개발 좋아하다 이번 여름에 우면산 짝날까 걱정스럽기만 하다.
충청남도 지정 보물 83호라고 하는 백령성은 무너진 채 방치되어 흉물
스럽기만 하다. 우리나라는 보물을 이렇게 관리하는가 보다. 정말로
한심스럽기만 하다. 언제까지 선조들의 유산을 이렇게 관리할 것인가?
금산 백령성(錦山 栢嶺城:13:50)
지정별 : 기념물 제83호 / 위 치 : 금산군 남이면 건천리 산 1외 1필
충남 금산군 남이면 건천리와 역평리 선야봉의 동쪽에 있으며,둘레가
약 207m에 이르는 백제의 테뫼식 산성(山城)이다.
이 곳은 금산면 제원면과 추부면을 통하여 영동ㆍ옥천에 이르는 전략상 요충지이다.
김정호(金正浩)의 『청구도(靑邱圖)』에는 백자령(柏子嶺) 『대동여지도(大東輿地圖)』
에는 탄현(炭峴)으로 알려져 있다. 성곽시설로는 남ㆍ북 2개의 문지를 비롯해 구들시설이
있는 건물지, 저수용 목곽고, 수혈유구 등이 확인되었으며, 유물로는 백제시대
토기편과 글씨가 새겨진 명문와(銘文瓦) 다수, 그리고 목제 그릇 등이 출토되었다.
성벽은 돌로 축조하였는데, 잘 남아있는 성벽의 규모는 외벽은 7m, 내벽은 3m 정도이고,
성벽의 상부 너비는 4m 정도이다.
남문은 백제시대 산성에서 처음으로 확인된 다락문식(현문식) 구조를 하고 있다.
조사결과 이 산성은 백제시대 말기에 축조되어 사용되다가 백제의 멸망과 함께 그 용도가 폐기된 성으로
밝혀졌는데, 백제 말기 신라 방어 및 진출에 전초기지의 역할을 하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금산 백령성' 안내판 全文)
육백고지전승탑
충남 금산군 남이면 건천리에 위치한 육백고지 전승탑은 서암산은 해발 600미터의 험준한 고지로서
6.25사변으로 인한 동족상잔의 현장으로서 9.28수복과 동신 약 5년반동안 공비 토벌작전을 감행 수백회에
치열한 공방전을 거듭하였던 곳으로 격전과 국난 극복의 역사적 사실이 점점 잊혀져감을 안타까이 생각하면서
조국수호의 제단에 몸과 마음을 바친 민.경.군 영령들의 위훈을 길이 헌양하기 위하여 백제의 옛성터인
백령성 기슭에 전승탑을 건립 후손들에게 애국충절 정신의 산교육 현장이 되고 있다.
백령고개(14:00)
충남 금산군 남이면에서 진산면으로 넘어가는 635번 지방도를 지나는 곳이다.
이 고개 인근에 백령성(柏嶺城)이 있다고 하여 백령고개라고 하는데 여암 선생의
산경표에는 탄현(炭峴)이라고 표시되어 있는 곳이다.
10시간이 넘는 시간이 걸려 산행을 마치고 내려오니 어디 몸을 씻을 물이 없어찝찝하기 그지없다.
하는 수 없이 생수 한병을 사서 수건에 적셔 몸을 닦고나서가져온 등심 200g을 구워 4홉들이 소
주 한병을 먹고나니 조금은 살것만 같다.
그런데 후미그룹이 3시간이나 넘게 늦게 도착하는 바람에 6시가 다되서 금산을 출발한다.
그나마 다행인게 기사 양반이 오다가 커다란 시내에 도착하여 알탕을 할 수 있는 은전을 베푸는
바람에 시원하게 씻고나니 훨씬 낫다.
귀경길에 벌초시즌이라 고속도로가 주차장이 되어서 집에 밤 11시가 넘어서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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