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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범여(梵如)의 世上사는 이야기
♣ 백두 대간및 9정맥 후기♣/호남정맥 (終)

호남정맥 제21구간 - 접치에서 송치재까지

by 범여(梵如) 2011. 8. 21.

○ 산행일자 : 2011. 20~21(무박산행)
○ 산행날씨 : 약간 흐린 날씨에 습도는 높으나 산행하긴 괜찮음

○ 참석인원 : 봄,여름,가을,겨울 산악회 28명과 함께

○ 산행거리 : 도상거리 : 21.6㎞/ G.P.S거리 25.2km(어프로치 포함) / 9시간 40분소요

○ 산행코스 : 접재-돌탑-오성산-두모재-유치산-유치고개-뱃바위-닭봉 갈림길-744봉(닭봉)-희야산

                  닭봉 갈림길-버틀재-훈련봉- 413.2-노고치-점토봉-문유산 갈림길-문유산-문유산 임도

                  만우재-도목목장 임도-560봉(폐헬기장)-바랑산-솔재(송치재)
○ 소 재 지 : 전남 순천시 주암면, 승주읍, 월등면, 서면 / 곡성군 목사동면

 

올해는 6월부터 시작된 비가 8월중순까지 78일동안 53일이 

비가 왔다는 예보이고 보면 어쩌면 이 나라 땅어리도 환경재앙으로

인해 서서히 4계절이 없어지는 않나하는 두려움이 앞선다.

환경재앙이란 뭔가 인간의 오만한 탐욕으로 인한 무분별한 개발이

재앙을 불러오니 이건 분명히 人災임에 틀림없는거 아닌가 싶다.

 

자연이란 동물은 동물대로, 식물은 식물대로 그대로 두면 자연의

생존법칙에 따라 저절로 잘 살터인데, 먹이사슬의 최상위인 인간의

 貪慾으로 인해 자꾸만 망가지는 이 땅의 위계질서 땜에 자꾸만 가슴이 아프다.

해마다 봄부터 가을까지는 손수 농사지어 자급자족이 가능한 범여의

손바닥만한 텃밭에 무차별적으로 내리는 비 때문에 완전히 풀밭으로

변해버려 각종 야채들을 사먹으려니 가계지출이 꽤나 많은 모양이다.

 

요즘 날씨 때문에 참으로 모든게 높은 불쾌지수로 인하여 짜증스런 날이 많다.

지난번 그만둔 직원이 그만두고서도 자꾸만 신경을 거슬리는 바람에 속이

상할때도 있다. 모든게 잊으려지만 그게 참으로 싶지는 않다.

 

금욜에 횡성에 있는 1박2일간의 라이온스 연수회를 갔다가 오랫만에 만난

회원들과 잠못자고 밤새마신 이스리의 영향으로 토욜 저녁에 무박산행을 

감행하는게 아무래도 동료 산꾼들에게 민폐를 끼칠것 같아 토욜 아침 일찍 

숙소를 이탈해 탈출을 감행(?)하여 서울로 상경하여 집에서 오전에 긴 휴식을

취하고 오후에 사무실로 나와 다음 주 작업 스케줄을 점검하고 남도길을

가기위해 양재역으로 향한다.  차에 올라 동료 산꾼들과 인사를 하자마자

어제 저녁에 잠을 못잔 탓인지 그냥 잠에 떨어진다. 여산 휴게소에서 잠깐

깨었다가 다시 잠에 빠져 서순천I.C를 삐져 나가면서 잠에서 깬다.

 

버스는 호남고속도로로 접어들어 승주I.C를 벗어나 들머리인 접치로 향하는데

차창밖에는 비가 내린다. 갑자기 힘이 빠진다.(우중 산행의 힘듬을 알기에...)

잠시후 버스는 두월육교 위에 도착하여 차에서 내리는데 비는 그치고 2주 사이에

날씨가 꽤나 차갑다. 차가운 날씨에 바람막이 자켓을 입고나니 조금은 낫다.

하긴 이틀후면(23일)여름이 지나 더위가 한풀 꺾이고 선선한 가을을 맞이하게

된다고 하는 처서(處暑)이니 그럴만도 하다. 참으로 계절은 민감하게 변하는데

나만 둔감할까. 이런 저런 생각에 젖어면서 산행을 시작한다.

 

 

오늘 산행구간의 지도와 고도표

잡초밭이 되버린 범여의 텃밭

봄부터 상추, 고추,가지,오이,고구마, 쑥갓, 당귀, 호박 등등 여러가지 채소를

조금씩 심어서 가을까지 따서 먹으면서 이웃들에게도 나눠주면서 우애를

돈독히 한 범여의 텃밭은 자주 내리는 비로인해 초토화가 되어 잡초밭이 되어 버렸다.

새로 심어도 자꾸만 내리는 비로 인해 뿌리가 썩는 바람에 소용이 없고...

어찌 방법이 없어 그냥 방치 버리고... 25일 이후에는 천상 김장 배추와 무우나 심어야지.

그나마 다행인게 비에 강한 호박과 고구마 순이 수확이 되고 풋고추는 먹을수 있어서...

금욜부터 1박2일동안 임원회의에도 참가하고...

청태산 아래에 자리 잡은 강원도 횡성군 둔내에 위치한 성우리조트에서

있은 지구임원회의 연수에 참가하여 밤새마신 이스리로 인해 너무 피곤하여

회장에게 핑계되고 아침 일찍 서울로 왔다. 남도길 가기 위해...

이곳은 벌써 가을을 재촉하는 구절초와 쑥부쟁이가 꽤나 많이 피어있다.

접치(03:20)

버스에서 내린 접치는 다행히 비가 그치는 바람에 산행하기는 안성맞춤인 날씨다.

새벽이라 그런지 오한(懊恨)이 올만큼 새벽 공기는 차갑기만 하다. 베낭에서 바람막이

자켓을 입고 마루금 들머리로 접어드니 바로 위에있는 ‘金海 金公’ 후손들이 벌초를

했는지 잡초로 우거진 등로는 깨끗하여 걷기가 훨씬 수월하다. 접치에서 오성산까지

고도를 250에서 600을 넘게 올리려니 초반부터 몸이 예열이 되기전이라 그런지

초반부터 입에 단내가 날 정도이다. 추어서 입은 자켓을 벗어 다시 베낭에 넣고 미끄러운

암릉을 조심스레 지나니 돌탑하나가 나타난다. 아래마을 두월리의 개들은 합창이라

하듯이 짖어대는 바람에 고요한 새벽의 적막을 깨트리고 잠시 후 오성산에 오른다.

오성산 깃대봉(五聖山:606.2m:04:10)

 순천시 승주읍, 주암면 두모마을에 있는 산으로서 다섯명의 聖人이무예를 연마하였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오성산에는 형제바위, 다섯 성인이 공부하였다는 공부굴, 상제가 빠져 죽었다는 사제굴이 있으며 중턱에는 절터가 있다.

훈련장으로 사용하던 터 안에 금동말이 있었는데 말머리를 중국쪽으로 돌려 놓으면 중국에 가뭄이 든다는

전설이 있으며 말구시란 곳에 말발자국이 박혀있다.

대장봉, 솔봉, 안장봉, 구석박골의 지명이 있으며 기원을 하면 아들을 낳는다는 약수가 흐른다.

두모재(04:40)

오성산 정상에서 후미를 기다리며 10분간의 휴식을 취한후에암흑같은 어둠을 뚫고

내리막길을 걷는다. 거의 직벽에 가까울 정도의 급경사의 미끄러운 육산의 등로는

정말 힘이든다. 30여분간을 내려오니 두모재가 나타난다.

순천시 승주읍 두월리 두모마을과 주암면 행정리 운곡마을을 잇는 비포장도로로

수종갱신을 한다는 팻말과 함께 길을 막고 있다. 다시 우측으로 된오름을 시작한다.

이곳은 화순군구간 이후 장흥, 보성, 벌교, 조계산 구간의 관리가 잘되어 있어 편안한

남도길과는 달리 잔나무와 키가 큰 잡초들이 무성하여 걷기도 불편하고 등로도

어둠속에 잘 보이지 않아 애를 먹는데, 천천히 가자고 한 도강재 대장은 불알에 요령소리가

나도록 가버리는 바람에 선두의 렌턴 불빛은 보이지도 않는다. 선두에서 바로 뒤처진

나는 죽어라 따라가려 했지만 대장은 보이지도 않고 잛은 반팔을 입은탓에

억새에 팔뚝이 긁키어 쓰리기 시작한다.

죽은 나무 뿌리에 하트모양의 멋진 버섯의  모양

10여분을 죽기살기 걸으니 선두가 잠깐 휴식을 취하고 후미는 보이지도 않고...

잠시후에 도착한 일행들 중에 김 준길님을 비롯한 몇분이 어둠속에 벌집을 건드리는

바람에 몇명이 벌에 쏘인 모양이다.  그중에서도 김준길님은 알르레기 증상이

일어나는 바람에 웃통을 벗고 산행을 한다. 괜찮아야 할텐데 걱정스럽다.

일출(06:00)

일출이 시작되면서 주위가 제대로 보이기 시작한다. 2시간 40분을 어둠속에서

남도길을 걸어왔다. 해가 보이니 오늘은 비가 오지 않겠지 순천만에서 솟아

오르는 태양은 구름속에 살며시 수줍은 듯 고개를 내민다.

뱃바위 중턱에 걸린 아침햇살

유치산(酉峙山: 530.2m:06:00)

순천시 승주읍 유치마을과 주암면 그리고 곡성군 목사동면의 죽정리의 경계에

있으며 암닭이 알을 품고있는 형국의 산이라고 하여 유치산이라고 한다.

폐헬기장에다 순천시의 어설프고 무개념의 행정편의주의에 의해

뱃바위에 정상석까지 빼앗기고 만 유치산 산 높이가 낮다고 받는 설움인가?

순천시는 하루빨리 뱃바위에 있는 유치산 정상석을 이곳으로 돌려주시길...

그 설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삼각점(구례 453/198 재설)만 이곳을 지키고 있다.

닭재(유치고개:06:15)승주읍 유흥리 유치마을과 주암면 죽정리를 이어주는 고갯길인데,

지금은 인적이 끊어졌지만 예전에는 왕래가 잦았을 법한 제법 넓은 고개와 이정표가 서 있다.

 

닭재라고 하는 곳이 한문으로 풀어쓰면닭 ‘유(酉’ 고개‘치(峙)’ 라 하여

유치고개를 이르는 말인데 유치고개의 오른쪽에는 순천시 승주읍의

유치마을이 있고 왼쪽에는 곡성군 목사동면의 유치 마을이 있으니

아무래도 이곳은 닭과의 무슨 인연이 있을 듯 싶다.

두모재에서 유치산을 지나 뱃바위 오름길은  산의 지형은 유순하고 편안한 산이나

관리가 되질않아 잡목과 잡초로 뒤엉켜서 걷기가 영 불편한게 아니다.

순천시장이 산을 좋아하지 않으시나 이런곳에도 민정시찰을 나오시지 않은 모양이다.

순천시보다 훨씬 적은 보성, 장흥을 좀 본받으시죠? 등로관리가 얼마나  잘되어 있는지?

그리고 시청 홈페이지도 그래요. 순천에 명산이 얼마나 많은데 유독 조계산만 설명하고

다른 산과  재의 유래를 알아 보려해도 어디 설명한 곳이 하나도 없더군요.

시장의 업적이나 치적만 올려놓지 마시고 사소한 것에도 신경 좀 써주소. 선거때 산꾼들의

표도 좀 생각하시고요. 民心은 天心이라는 것도 아시길...

두월리(斗月里) 아침
전라남도 순천시 승주읍에 있는 리(里)이며 오성산 동쪽자락에 위치하며,

 대부분 산지이다. 남쪽으로는 두월천이 흐르고 동쪽으로는 동흥천이 흐른다.

 자연마을로는 두모(드므실, 듬실), 따슨개미(온동), 신작롯가상(노변구굴, 음지끝)

등이 있다. 두모는 두메 산골에 있다하여 붙여졌으며, 따슨개미는 양지쪽에 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신작롯가상은 신작로 가쪽 응달진 산 끝에 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뱃바위 정상에서 바라본 조계산

佛國土이면서도 참으로 恨이 많은 산이 아닐까?  벌교등지에서  토벌대에 밀려 조계산 선암사

부도(浮屠) 아래 숯막의 염상진 부대... 악질지주들의 수탈을 피해 민중의 해방을 부르짖어며

민중 해방을 꿈꾼 안창민,하대치,강동식, 이해룡, 오판돌... 그 아래 배고픔을 이기기 위해 아무것도

모르고 참여하여 이 나라의 이념의 희생양이 된 民草들. 그들의 영령들의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아

조계산을 바라보는 산꾼 범여의 마음은 편치가 않구나. 60녀전 그때나 지금이 民草들의 삶의 고달픔은

매한가지인 모양이다.  恨많은 영령들이여! 이젠 모든걸 잊어버리고 편히 쉬소서

물봉선은 이른 아침에 수줍은 모습으로 어느 님을 기다리시나?

유치고개에서 뱃바위 오름길은  최근 내린 비에 젖은 등로가 상당히 미끄럽다.

거기다가 급경사의 오르막길에 로프조차 미끄럽기만 하다. 조심조심해서 뱃바위

정상에 오르니 확트인 시야가 확보된 멋진 뱃바위가 나타난다.

보성군의 이드리재. 배거리재, 주월산, 무넘이재, 그리고 조계산 구간의 배바위 등등

그리고 이곳의 뱃바위 , 좌측의 주암면 등 산에서 자주 만나는 배(舟)와 물의 지명은

필경 그 아주 옛날에  바다가  변하여 산이되지 않았나 하는 추측이 든다.

뱃바위봉에 잘못 설치되어있는 유치산 표지석

이곳은 높이가 706m인데 530m의 유치산 정상표지석이 왜 이곳에 설치되어있을까...  

순천의 행정능력 정말 유치하고 한심하다. 이렇게 무개념으로 일처리 하고도 국민의 녹을

받아먹고 살 자격이 있는가 ... 함 생각이나 해봤소. 정말 닭대가리같은 생각이다.

저 아래 멀쩡하게 잘 있는 유치산을 유치하게 하지말고  당장 정상석을 제자리로

옮기시길 바라오...

뱃바위(709m:06:50)

힘든 오름끝에 꿀맛같은 휴식과 원기를 보충하기 위해 간식을 먹고

10분간의 휴식을 취한후에 다시 닭봉으로 향한다.

뱃바위 아래에 있는 녹차밭

뱃바위 바로 아래에는 그리 크지않은 녹차밭이 보이고 그 아래에는 순천시의

녹차관련 연구동이 있다. 뱃바위에서 인증샷을 남기고 닭봉으로 향한다.

길은 참으로 유순하고 편하다. 여기서 부터는 등로관리를 제대로 하는 모양인지

주변관리를 잘 해놨다.  조그만 급경사를 치고 오르니 닭봉 갈림길이 나온다.

닭봉 가는 길에서 바라본 독수리 머리모양의 뱃바위

닭봉가는 오름길에서

내가 오늘 지나온 능선과 저넘어 조계산을 배경으로

닭봉(744.4m:07:10)

닭봉 갈림길에서 100여m 정맥길에서 떨어진 곳에 있는 닭봉.

이곳은 유치산, 유치고개와 그아래 곡성군 목사동면의 유치마을

그리고 그 반대편에 똑같은 이름의 승주읍의 유치마을. 또 오늘 구간

정맥길에서 가장높은 닭봉... 필시 이 지역은 닭과 관련된 유래나 전설

그 밖에 닭과 관련된 이야기가 있을 법한데 순천시 홈페이지 그 어느곳에서도

해답을 들을 수가 없어 궁금증만 남기고 정맥길에서 10분 떨어진 곳에 전망이

멋진 희야산으로 희야를 만나러 가는데 그 어느 누구도 정맥길이 아니라면서

다들 도망을 가버리는 바람에 낙동정맥길의 동지였던 젠틀맨과 의기투합하여

2명만 희야를 만나러 간다. 이곳은 갈참나무와 떡갈나무 군락지로 이루어져

있어 영지가 꽤나 있을법한 곳이라 그런지 산꾼들의 흔적이 많이 보이고

맷돼지가 많은 모양인지 맷돼지의 횡포로 인해 산이 쑥대밭이 되어 있고

등로 여러군데 맷돼지 똥이 가득하다.

희야산(764m:07:20)

곡성과 순천시와 경계를 이루고 있는 희아산은 서남에 고여있는 주암호물이

보성강이 되어 서북을 가르고 흘러가는 남단에 형제산과 아미산 - 유치산 - 삼산

 바래산과 어깨동무를 하고 반원형을 이룬 모양에 목사동면이 자리잡고 있다.

 

정상에 오르면 멀리 여수와 남해, 순천만의 아름다운 경치와 인근 순천시 월등면,

쌍암면, 보성강, 섬진강등 지리산 일부가 아련히 보인다.
봄이면 산철쭉, 고로쇠나무, 두릅, 고사리, 취나물 등을 비롯하여 각종 야생화

등이 널리 분포되어 있다. 이 곳은 봄, 가을철 등산코스로 아주 좋으며 가을이면

 각종 야생화, 산열매, 다래, 머루, 장구, 더덕 등 약초도 많이 자생하고 있다.

서쪽에 자리잡은 형제산 고랑에서 흐르는 옥녀천은 예부터 피부병이 있는 사람이

 이 곳에 와서 목욕을 하면 효능이 있다고 전해지고 있다

희야산 능선에서 채취한 영지버섯

희야산 정상에서 바라본 순천의 연봉들

60년이 넘은 세월속에 여.순 반란사건의 슬픈 추억을 안고 묵묵히 忍苦의 세월을

보듬고 있는 순천의 산들...미운자나 고운자나 차별없이 보듬어 주는 산이 고맙기만 하다.  

1948년 10월 20일 전라남도 여수에서 주둔하던 국군 제14연대 소속

 좌익계열 군인들이 일으킨 반란사건. 그해 4월 3일 제주도에서 남한단독정부 수립에

 반대하는 무장봉기가 발생하여 유격전화하자, 군·경이 합동으로 진압작전을 펴던

 중 증원이 필요하여 여수 14연대의 약 3000명을 제주도로 급파하기로 하였다.

 이에 공산당 지하조직원인 김지회(金智會)·홍순석(洪淳錫) 중위, 지창수(池昌洙)

상사 등을 중심으로 한 반란군이 제주도 출동 거부, 경찰타도·남북통일·인민해방을

내걸고 출항 직전인 20일 새벽에 봉기하였다. 이들은 곧 여수시내를 장악하고

<제주도출동거부병사위원회>를 설치, 순천까지 진출했으며, 여기에

 공산주의자·시민·학생들이 합세하여 여수·순천 일대는 반란군과 인민위원회

세력하에 들어갔다. 정부는 22일에 계엄령을 선포하고, 미군사고문단장의

협조하에 진압작전에 나서, 22일 순천, 27일에 여수를 각각 점령하였다.

진압과정에서 무고한 많은 민간인의 희생이 뒤따랐으며, 잔류 반란군은

지리산 쪽으로 숨어들어 본격적인 유격전을 전개하였다.

 1950년 2월 그 추종자들이 대부분 소탕되어 호남지구에 내려졌던 계엄령이 해제되었다.

 이 사건을 계기로 국군은 3차에 걸쳐 군의 기강을 바로 잡았다고 한다.

 

6.25 사변이라는 국난을 앞두고 군내에서 좌익계를 소탕해서
다행이었다는 평가도 있으나 좌익 분자들에게 학살당한 우익인사 가족들의 통한이나

국군 소탕전에서 억울하게 죽은 유가족들의 슬픔 역시 지금까지 풀지 못한

민족 갈등으로 남아 있다.

희야산에서 젠틀맨님과 정상주 한잔 하려는데 막걸리가 녹질 않아서 포기하고

주위의 멋진 전망을 뒤로하고 다시 닭봉으로 향한다.  닭봉 갈림길에 벗어둔

베낭을 메고 오니 거의 30여분이 소요되고 마지막 후미까지 다 가버리고 없다.

졸지에 꼴찌가 되버렸다. 그러나 오랫만에 젠틀맨님과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면서 암릉구간을 지나고 편안한 내림길 우측에는 자꾸만 멀어져가는

조계산이 우리를 애타게 부르는 느낌이다. 

산위에서 바라본 雲海가 뒤덮인 남도길의 연봉(連峰)은 마치 천상세계에 온 느낌을

연상케 한다. 주말 아침 아직도 침대에서 잠에 빠져있을 친구넘들이 불쌍한

생각이 든다. 이런 장면을 보면서...그 넘들이 만나면 주말마다 산에가는 나를

이해하지 못할 연구대상이라면서 불쌍한 重生 취급을 하는데 꺼꾸로 된 건 아닌지...

버틀재(07:50)

배틀재라고 부르기도 하는 이 고개는 순천시 승주읍과 월등면의 경계로

예전에는 꽤나 인적이 많앗다고 하나 지금은 이적이 거의 없고 등로도 희미하다.

634봉(08:00)

634봉에 오르니 언제부터인지 코팅지로 훈련봉이란 지명으로

표시되어 있고 이곳에서 동료산꾼들이 식사를 마치고 떠날 준비를

하고 있다. 선두 산꾼들은 도망가 버리고 그것도 후미가...

산에서 30분 차이이면 종료까지 따라갈 수없다는 걸 알기에 젠틀맨님과

느긋하게 식사를 하는데 정문교, 송영우, 솔향님 부부가 동참하는

바람에 졸지에 대식구가 후미그룹을 형성하여 룰~루랄라하면서 여유로운 산행을 한다.

노고치의 농장 모습

순천시 승주읍 도정리에 위치한 해발 350m의 노고치에는  1989년에

임야 10,000평을 개간하여 친환경 농법으로 연간 20여톤의 매실을 생산하고

있다고 한다. 주위에는 밤나무와 커다란 고사리밭이 있다.

이곳은 한 여름에도 모기가 없을정도로 시원하여 매실재배의 최적지로

서리피해가 전혀 없으며 맛과 향, 빛깔이 뛰어나다고 한다.

413.2봉 삼각점(08:50)

능선 정맥길에 삼각점이(구례 456 / 1985 재설) 하나 덩그러니 있다.

노고치(09:00)

순천시 승주읍과 월등면의 경계로 857번지방도가 지나가는 2차선 도로가 있다.

오지라 그런지 차량통행은 뜸한 곳이며 농장과 벌목을 하는 산판이 있다.

미 군정시대에나 있을듯한 트럭

천연기념물 같은 트럭한대가 이색적이다. 이곳은 여수에 소재한

(주) 일상이란 회사가 이곳 지역의 산을 많이 소유하고 있는 모양이다.

곳곳마다 번지수를 써놓고 사유림이니 출입하지 말라는 경고문과 함께

쇠사슬로 출입을 막고있고 산에서 벌목한 소나무를 실어나르는 임도를

개설하여 산이 벌거벗은 느낌이다.

노고치의 월등면 방향

정맥산꾼들에게 악명높은 출입금지구역

노고치에서 승주읍 방향쪽 좌측 능선을 타고 오르면 목장과 매실과 밤나무 농장과이

나오는데 이곳 주인이 산꾼들에게 악명(?) 높기로 유명하다는 소문을 듣고 바짝

긴장하고 진입하는데 아무런 인기척도 없다. 자세히 보니 축사 안에는 짐승이 한마리도

보이지 않고 농가주택도 오랫동안 사람이 살지않은 흔적이 보인다.

매실과 고사리밭 우측 능선을 다시 빡세게 치고 오르는데  참으로 힘이든다

막걸리 한사발 생각이 간절한데 막걸리를 가지고 있는 잰틀맨님은 폴세 날라버리고 없다.

땅에 코가 닿을정도로 힘들게 정상에 오르니 점토봉이란 봉우리가 나타나고

그 옆엔 점박이 형태의 바위가 있다. 이곳에서 꿩대신 닭이라고 막걸리 대신 맥주 한잔을

마시고 다시 길을 나서는데 힘든 산행을 보상이라도 하듯 편안한 능선길을 걷는다.

점토봉(09:35)

맥주를 마셔도 갈증은 가시질 않고 탁배기 생각이 너무도 간절한데 해결할

방법이 없다. 막걸리 걸머지고 먼저 날라버린 젠틀맨님이 원망(?)스럽기만 하다.

정문교님과 갑장인 송영우님과 세상사를 논하면서 안부의 편안한 길을 걷는데

오늘 처음오신 산꾼이 컨디션 난조인지 자꾸만 뒤로 처진다. 10여분을 걸었나

급경사를 치고 올라가야 하는 구간에 도리깨님이 산상주막을 펼치고 혼자서

느긋하게 막걸리를 마시고 있다. 에이 이런 나쁜... 이런것을 혼자서 먹다니

강제로 빼앗다시피 하여 2잔을 마시고 급경사를 오르니 좌측에 지리산의

광대한 연봉들이 雲海에 덮여 파노라마처럼 정말 장관이다.

엉터리 이정표(09:55)

정신 나갔나? 문유산 정상까지 0.1km 라고 표시를 하다니...

저러고나 봉급을 받을 생각을 하다니... 공사를 발주했으면 정확한

지점에 설치했나...  그리고 문구는 맞나하고 현장 확인을 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1km나 남은 곳을 0.1km 라니... 민간 기업이라면 손해배상감이다.

문유산 갈림길(10:10)

문유산 갈림길에 도착하니 동료 산꾼들이 휴식을 취한다.

정맥 산길외는 한발자국도 움직이지 않는 도강재 대장님과

동료 산꾼들... 우린 지체없이 정맥길에서 10여분 벗어나 있는

문유산을 향한다. 오늘 구간 산 이름을 가진 곳은 예외없이 살짝씩

벗어나 있다.

文遊山(688m:10:20)

순천시 승주읍과 월등면의 경계를 이루는 산이다.

 정상에 오르니 탁트인 전망에 지리산, 조계산, 모후산, 백운산이 한눈에

들어오고 바랑산은 코앞에 있는듯하며 저멀리 순천만이 아련히 보이고

아침에 지나온 호남고속도로에 광주가는 차들이 쉼없이 달리고 있다.

문유산 정상에서 카메라 렌즈로 당겨본 바랑산

흔히 순천하면 떠오르는 것이 송광사와 선암사, 그리고 낙안읍성과 순천만의 갈대숲

순천시에서 캐치프레이지로 내거는 “생태수도 순천”을 내건다.

 

‘동국여지승람 순천 도호편’에는 순천땅은 ‘산과 물이 고와서 세상에서 작은 강남이라

일겉는다’ 라고 기록되어 있다.  순천사람들이 자기 고향을 자랑할 때 흔히 쓰는

‘소강남’이라고 자주 들먹였다고 한다.  그만큼 기후와 풍토가 좋아서 살기가

좋았다고 한다. 순천은 예전의 승주군과 통합이 되어 순천은 도농 복합도시로서

전원도시의 틀을 갖추고 있어 정말 살기가 좋은 곳이다.

동천의 맑은 물과 해양성 기후의 영향을 받아 중부지방보다 한 보름쯤 봄이 앞서기에

농사가 잘되어 일제시대에는 천석꾼이 넘는 부자가 20여명이나 되어 황해도 안악군과

함께 조선에서 지주가 가장많은곳이라고 한다.  ‘동국여지승람’에 이 지방 사람들이

화려하고 풍성한 것을 숭상한다고 했다고 한다.

 

조계산 자락의 순천이 인심도 좋고 경치도 좋고 물이 맑은 까닭이 그 원인이기도 하단다.

순천의 한 향토사학자의 말에 의하면 일제 강점기에 순천에는 지주들이 많아 그 자녀들이

화려한 비단옷을 치장하고 다녀 순천에서 옷자랑하지 말라는 말이 나왔고 1960년대

세일러복을 입은 순천의 여고생들의 인물이 남달랐고 이후 미스코리아가 나오면서 옷자랑이

인물자랑으로 변했다고 한다.  이외도 풍수지리에 의하면 낙안읍성의 평촌재가 옥녀산발형

풍수의 옥녀의 거울에 해당하므로 옛부터 낙안에 미인이 많았다는 속설이 전해져 내려온다.

호남고속도로와 남해고속도로 그리고 전라선과 경전선이 지나는 교통의 요지이기도 한

 순천의 또하나 ‘순천가서 돈자랑 인물 자랑하지 말라는 마라’는 얘기는 그런 배경에서

나온것아 아닐까하는 생각이 든다.

문유산 정상에서 바라본 오늘 내가 가야할 길 -  저 너머 구름에 휩싸인 바랑산이 보인다.

구름 너머로 지리산의 연봉들이 산꾼 범여의 가슴을 설레게 하고...

문유산 임도(11:10)

문유산에서 갈림길로 되돌아오니 동료 산꾼들은 다들 도망가버리고

송영우, 도리깨, 정문교님 오늘 새로오신 수평선님과 나 범여만 있다.

베낭에서 꺼낸 간식으로 원기를 보충하고 부지런히 길을 걸으니

차량이 다닐만한 문유산 임도가 나타난다. 임도로 가도 되고 능선을 타도

되지만 원칙을 중시하는 송영우, 정문교, 범여는 능선을 타고 솔향님 부부,

도리깨님은 임도로 진행한다. 능선을 지나 딱 뚝떨어지니 엄청나게 큰

도림목장이 나타나고 개간한 지 얼마되지 않은듯한 농장에는 베롱나무를

비롯한 각종 나무들이 심어져 있고 저 건너에는 바랑산의 산불감시초소가 보인다.

다시 절개지를 타고 오르내림을 한 다음 임도에 도착하니 솔향님 부부를 만나다.

 

저 멀리 아스라이 순천시내와 순천만이 한 눈에 들어고...

 

예전에 전라도라 하면 “전라”가 고려시대에 가장 남도 지역에서 가장 번창했던 도시

‘전주’와 ‘나주’의 첫 글자를 딴것이라고 한다. 그렀다면 또다른 지명인 “호남”이란

지명이 왜 생긴걸까 궁금해진다. 호남지역은 호수의 남쪽이란 뜻이라고 한다.

여기서 호(湖)수란 금강을 말하는데 지금의 금강은 우리나라 4대강에 들어가는

큰 강이었지만 예전에는 커다란 호수정도로 여겼던 모양이다.

동국여지승람에서는 금강이란 호수가 많은 강이라 하여 湖江이라 불렸다고도 한다.

 

여순사건으로 인해서 피해를 본 것은 정부, 군, 좌익 등... 한마디로 전부 피해자였다.

그러나 가장 큰 피해자는 현지 주민이었다. 좌익 반란군은 반란군대로 우익인사와

 경찰들을 닥치는 대로 학살했고, 진압군은 현지를 수복하고 나서 살벌한 보복전을

 펼치기 시작했다. 약 1년 반뒤에 벌어질 6.25의 예고편이었다.

이래저래 고생하고 피해만 보는 것은 죄 없는 민중이었다.

 

그 당시 순천사람치고 이 사건을 겪는동안에 집안이 온전했던 사람이 드물었고

많은 세월이 흘러 상처가 외형적으론 아문듯하나 그 깊은 상처가 아물리가 있겠는가.

 그리하여 광주 목포쪽 사람들은 정치쪽에 민감하며 관심이 많은 편이나
이곳 순천 사람들은 정치에 별 관심이 없는 듯하며 생활에 열심인 편이라고 한다.

도림목장 절개지에서 저 아래 월등면의 외동, 내동, 중촌마을이  한가롭게 보이고

그 넘어에 울님의 乳頭만큼이나  볼록 솟은 둥지리봉(320.7m)가 보인다.

도림목장의 전경

송암사를 내려가는 도로를 지나 임도를 타고가다가 다시 좌측에 도림목장을

끼고 치고 오르니 520봉이 나타난다. 이곳에는 늘 산악회에서 말없이 고생하시는

후미대장 참이슬님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고 2분의 고문님이 떡을 사라면서

인절미를 나눠 주신다. 참으로 고맙기만 하다. 낼 모래 7학년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불구하고 늘 열린 생각으로 젊은 사람들에게 대해 주시는 정말 고마운 분이다.

떡 한개 얻어먹고 물한모금 마시고 바랑산으로 향한다. 이곳은 옛날에 사람들이

거주한 듯한 집터의 흔적들이 보인다. 편안한 걸음으로 바랑산 입구에 도착한다.

바랑산(624m:12:20)

전남 순천시 승주읍, 서면, 월등면의 3개 읍,면에 걸쳐있는 산으로서 

정맥길에서 50m 정도 떨어져 있는 바랑산에 도착하니 산불 감시초소가

2개나 설치되어 있고. 삼각점(구례 27 / 1991 재설)이 설치되어 있다.

바랑산의 뜻은 전혀 알 길이 없고 혹 범여의 생각에 스님들이 메고 다시니는

걸망을 닮았다고 해서 바랑산이 부르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다(범여의 생각中에서) 

다음구간에 가야할 마루금을 확인하고...

바랑산에서 송치로 내려오는 길은 편안하지만 급경사이다.

글고 올 여름 계속해서 내린 비로 인하여 땅이 젖어있어 바짝

긴장을 하고 내려온다. 우측에 있는 너덜은 내 고향 부락에 있는

것과 비슷하여 정감이 간다.   하산길에 처음으로 산악회의 원로

고문님과 길을 걷는다. 참으로 부러운 생각이 든다.

 

나도 고문님 나이쯤에 저렇게 할 수 있을까는...

조금 내려오니 부대장인 아리송 아우가 등로에 벌집이 있으니

우회하라고 소리친다. 앞에간 동료들이 벌에 많이 쏘였다고 한다.

헤에  오늘 돈번 사람들이 많구먼 요즘 봉침(蜂針) 한방에 3만원 정도

하는데 4방 쏘인 山友는 얼마나 번거야, 땡벌이야 많이 쏘여도 괜찮을것 같은데.

날머리가 가까워 오는가보다.

저 아래 차량소리가 들리기 시작하고 주변에는 폐벙커와 폐 군시설물이

보이고 뒤돌아보니 바랑산이 잘 가라고 작별인사를 건넨다.

급경사에 너무 미끄러워 로프를 쥐고 조심조심 내려오니 그 옛날 한자리

했음직한 엄청나게 큰 봉분의  全州 李公 무덤이 서너기가 관리가 되지 않은채

방치되어 있는게 안타깝다. 후손들은 뭘하는지...  이윽고 날머리에 도착하니

우리의 愛馬를 몰고온 김 승현 기사님이 우리를 반긴다.

송치(松峙 :250m:13:00) 

순천시 서면 학구리와 황전면 송치를 이어가는 고개로 

1910년 이전까지 이용된 광양시의 교통로로, 전라남도 광양시 광양읍

죽림리의 호암마을과 직동마을을 이어주던 고개이다. 1950년에 일어난

 6.25 전쟁의 격전지 중 하나이기도 했던 이 고갯길은 고속도로가

들어서면서 사라졌다. 송치재라는 이름은 이곳에 소나무가 많아 불리게

 된 것으로, 원래이름은  솔재라고 한다.

 솔연치(率燕峙)라고도 부르기도 했는데그것이 변음이 되어 소련재라고도 한동안 불리웠다는 기록이 있다.

 

예전에 이 고개 아래에 송원(松院)이라는 여관이 있어서 붙어졌다는

이름인데 1597년 이 순신이 삼도수군 통제사로 복귀할 당시 병력과

무기를 보충하러 왔다가 이곳 송원에 머물렀다는  기록이 난중일기

에도 나온다고 한다.

송치재에서 있는 어느 교회 수련원

송치재 이정석이 있는 모 교회의 야망수련원이란 곳을 들어서 있고

일요일이라 그런지 사람들이 꽤나 많다.  사진을 한장 찍어니 남자 한사람이

자꾸만 건물을 찍느냐고 하면서 시비 비슷하게 건다. 그러나 똑같이 되기 싫어

피해 버리고 만다.  30분 정도 지나 후미가 도착한 다음에 버스로 3분정도 내려와

송치계곡의 특급수에서 션한 알탕을 즐기고 맛있는 강진불고기로 체력을 보충한다.

이곳  송치재 아래로는 전라선의 철도터널이 있고 순천과 구례를 잇는 17번 국도가

지나는 곳으로 계곡이 맑고 오염이 안된 탓인지 골짜기마다 교회수련원이 즐비한데

우째된 일인지 산속에 있어야할 절은 하나도 안보인다.

청정계곡 송치계곡에서 산행후의 알탕을 즐기고...

오늘 산행후에 맛있는 강진불고기를 스폰서하신 하양고문님

정말 오랫만에 몸보신 했구요. 세세생생 복많이 받으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