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산행일자 : 2011,09,03~04(무박산행)
○ 산행날씨 : 흐린 날씨, 꽤나 더운 날씨. 산행하긴 힘들었음
○ 참석인원 : 봄,여름,가을,겨울 산악회 33명과 함께
○ 산행거리 : 도상거리 : 약 22.3km + 어프로치 2㎞ / G.P.S 약 26 km. 11 시간 50 분 소요
○ 산행코스 : 송치(솔재)-(병풍산 갈림길-564봉-농암산-장사굴재-376봉-477봉-죽청재 -갈매봉-502봉-마당재
636봉(H)-갓거리봉-쉰질바위(신선바위)-황전터널 위-미사치-미사치 갈림길-깃대봉-833봉-월출재-월출봉(768)
형제봉-861봉-새재-등주리봉-도솔봉-참새미재-논실마을
○ 소 재 지 : 전남 순천시 월등면, 서면, 황전면 / 광양시 봉강면,옥룡면 / 구례군 간전면
“秋來不似秋”라 ‘더위가 가시고 선선한 가을을 맞는다’는 處暑가 지난지도 벌써 열흘이 지났는데도 낮 기온이 30도가 넘는 초여름 날씨이니 뭐가 잘못되도 한참은 잘못된 느낌이다. 人間世界가 제 정신이 아니니 날씨인들 제 정신이랴... 얼마전 서울 시장이 무상급식 문제로 사퇴한 지 며칠되지 않은데 자천타천으로 서울시장을 하겠다고 나선 자들이 10명이 넘으니... 저 자들은 과연 서울 시민들을 위해 가려운 곳을 긁어주면서 봉사할 마인드나 갖고나 있는지 궁금하다. 요즘 한참 매스컴을 어지럽게 장식하고 있는 郭 某라는 서울시 교육감이 하는 형태는정말 구역질이 날 정도이다. 과연 저 자가 교육자이고 스승이었던가? 우리가 어렸을 때는 스승의 그림자도 밟지 말라고 하지 않았던가... 그 만큼 존경의 대상인 스승상은 어디로 가고 돈으로 상대방을 매수하여 교육감 되고... 거기다가 검찰의 조사가 되니 상대방에게 건네준 돈을 상대방이 어려워 선의로 줬다고... 그것도 2억이나... 지금 서민들은 단돈 200만원이 없어 고통받는 民草가 얼마나 많은데..지나가는 소도 웃을 괘변을 널어 놓으면서 시퇴를 거부하다니... 서울시민들을 장기판에 ‘卒’정도로 보다니 ㅉㅉㅉ저런자가 교육 수장이니 우리 자녀들이 과연 뭘 배울까 걱정이다. 참으로 한심한 세상이다. 자꾸만 팍팍해지는 삶에 무게가 버거워지는 느낌이다. 한주동안 폭염에 시달린 지친 心身을 추스리기 위해 토욜 저녁에 남도길 산행 준비를 하고 탑승지인 양재역으로 향한다. |
오늘 산행구간의 지도와 고도표
송치재(03:20)
산꾼들을 태운 愛馬는 고속도로 휴게소 3번을 정차한 후에 구례~광양간 고속도로
황전I.C를 벗어나 송치재로 향한다. 긴 황전터널을 지나 죽청리를 지난후에 버스가
턴을 하지못할 정도로 좁은 옛날의 송치재 가는 길로 접어든다.
恨많고 사연많은 17번 국도이건만 이젠 모든걸 새로생긴 신 17번 국도에 빼앗기고
이젠 고즈늑한 잊어버린 길이 되어 버렸다.
꼭 우리 인간사와 같은 느낌이다. 하긴 모든게 諸行無常이요 諸法無我인걸...
버스에서 내리니 하늘에 별이 촘촘하다. 이른 아침인 탓인지 춥지도 덥지도 않은
산행하기 참 좋은 날씨이다. 동료 산꾼들은 몸을 풀기도 전에 산으로 오른다.
야망 연수원 주차장을 통해 들머리로 접어들어 아스팔트 임도를 통해 들머리로 들어선다.
정면 좌측방향은 순천시 월등면 가월리이고 우측방향은 순천시 서면 학구리로 면 경계능선을
병풍산까지 쭉 이어간다. 이 연수원은 선답자들의 산행기에 보면 축복교회 0000 등
여러차례의 주인이 바뀐듯 다른 이름이 자주 등장하는 비운의 건물인듯 하다.
매화동산(03:30)
오늘 산행거리가 상당히 길기도 하고 대장이 버스에서 멘트로 초반에 상당히 빠르게
진행하겠다고 한 탓인지 콘크리트 임도로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진행을 한다.
10분정도 오르니 매화동산이 나타나고 베낭에 물이 많이 넣은 탓인지 베낭의
무게가 느껴진다. 오늘 오랫만에 바꿔신은 등산화가 발에 맞지 않는지 시작부터
엄지 발가락에 통증이 오기 시작한다. 콘크리트 임도를 지나 좌측에 황토로 지은
농가를 지나 풀속 임도를 접어들면서 고도를 높이기 시작한다
병풍산(499.8m) 삼거리(03:50)
송치에서 출발한 지 30분만에 병풍산 삼거리 갈림길에 도착한다.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산행을 진행한다. 예전엔 무조건 일출까지는
전체 같이가는 방향으로 진행하던 선두대장이 자꾸만 初心을 잃어간다.
병풍산은 좌측 0,9km 거리에 있고 脈길은 우측 1시 방향으로 진행을 한다.
범여의 성격상 당연히 병풍산을 들려야 하나 야심한 밤중에 달밤에
체조할 일도 없고, 하여 그냥 패스한다. 초반부터 후미로 쳐지면
오늘처럼 긴 구간을 정말 힘들게 산행을 해야하는 부담도 있고...
이정표에는 송치재까지 4.6km라고 적혀있다. 4.6km를 30분에 산에서
무장공비라면 몰라도... 우리가 무장공비 공작 안내조도 아니고...
장사굴재도 1.3km라고 적혀 있는데 여기서 실제로 약 3km나 되는 거리인데
순천시는 誤記투성이의 이정표를 무슨 배짱으로 고치지 않고 그대로 두어 산꾼들을
골탕을 먹이는지... 하긴 지난구간에 하는 작태를 보니 폴세(진작부터라는 전라도 방언)
알아보긴 했지만... 산조아님이 아무래도 순천시에 건의를 하셔야겠습니다.
병풍산 삼거리에서 물한모금을 마시고 다시 베낭을 메고 내리막길을 향한다.
삼거리에는 이정표 앞에 ‘道’라는 경계석이 박혀 있는데 무슨 연유인지 모르겠다.
이곳부터는 여태껏 정맥길 좌측 능선을 함께 해오던 ‘순천시 월등면’을 벗어나
‘순천시 황전면 죽청리’를 새로 맞이하고 우측 능선은 여전히 ‘순천시 서면’
으로 ‘여수지맥 분기점’ 까지 면계를 이어간다.
농암산(476m:04:25)
병풍산 삼거리에서 빠른 속도로 산행을 진행한다. 오늘은 산꾼들이 마치 산악 마라톤이라도
하듯이 아님 마치 귀신에 홀린듯... 자꾸만 후미의 헤드렌턴 불빛이 멀어진다.
몇차례의 오르내림을 시작한 끝에 멋지게 생긴 바위群이 나타나고 잠시후 농암산이 나타난다.
순천시 황전면 죽청리와 서면 학구리의 경계 능선에 있는 산으로서 마사토로 형성되어
있는듯 하다.
농암산 삼각점
장사굴재(04:50)
농암산에서 빠른 속도로 꽤나 많이 내려온다. 그리고 등로가 잔자갈과
마사토로 흙질이 되어있어 상당히 미끄럽다. 이런데서는 조심해야지
산행하면서 가장 다치기 쉬운 곳이 이런데니까. 잠시후에는 어둠속에
펑퍼짐한 장사굴재가 나타나고 편백나무와 밤나무가 꽤나 많이 보인다.
이곳은 서면 학구리 장척마을과 황전면 죽청리 송시골을 연결하는 재로서
예전에는 民草들의 통행이 꽤나 많은듯 길이 무지 넓게 보인다.
다시 등로를 치고 오르는데 물과 이온음료 등이 많은탓에 베낭의 무게가
자꾸만 느껴지면서 산행속도가 늦어진다. 어떤 지도에는 장자굴재라고도
표기되어 있다.
죽청치( 竹淸峙:385m:05:35)
376봉을 치고 오른후에 다시 내림길을 시작하는데 암릉과 마사토로
형성된 등로가 상당히 미끄럽다. 갑자기 나타난 임도에 죽청치라고
표시된 이정목이 나오고... 아마 지명이 왼쪽 아래에 있는 마을 이름이
죽청리라서 그렇게 된 모양이다 반대편의 서면에도 죽청제(저수지)와
죽청마을이 지도상에 표시되어 있다
죽청마을의 유래
竹淸마을은 1580년경에 咸平 魯氏에 의해 마을이 성립되었으며 마을 뒷쪽을
병풍같은 대(竹)나무가 두르고 호두산(虎頭山)과 송실봉(松實峰) 사이에 흐르는
흐르는 맑은 물(淸)을 상징하여 죽청(竹淸)이라 불렀다 하며 설촌 당시에 심은
정자나무 세그루가 아직도 마을을 수호하고 있다고 한다.
이 마을은 일제시대부터 해방후까지 순천광업소가 있었던 광산촌이기도 하며
1993년 호두산 청소년 수련원이 개소되었다고 한다.
갈미봉(508.2m : 05:50)
죽청치 임도를 건너서 다시 마루금에 접어들어 편안한 오름을 시작한다.
조금전의 길과는 전혀 다른 편안한 육산으로 되어있고 서서히 날이 밝아오면서
헤드렌턴을 끄고 진행한다. 잠시후에 갈미봉에 도착한다.
갈미봉이라고도 하는 갈매봉 정상에 삼각점(△구례468/1985 재설) 이 설치되어 있다.
마당재(427m :06:15)
순천시 서면 청소리와 황전면 죽청리를 연결하는 재로서
희미하게 길이 형성되어 있어서 인적이 드뭄을 알 수 있다.
갈매봉에서 502봉을 거치면서 고도편차가 별로없는 편안한 길을 걷는다.
주위의 남도 연봉들이 눈부시게 아름답다.잠시후에 마당재라는 이름에 걸맞게 넓은 안부에 도착한다.
이정표에 갓거리봉까지 0,7km, 수리봉까지 0.5km라고적혀 있는데 순천시 관계자들은
모두들 축지법으로 이정표를표시하는 지 나 원 참 두군데 1.5km 이상 되는 거리인데...
편백나무 숲이 어우러진 넓은 안부로 펑퍼짐하여
마당재라는 이름이 된듯하다. 우측으로 서면 청소리 하산길이
있는데 한자로 청소리(淸所里)는 '맑은 곳'이라는 뜻이다
청소리(淸所里)의 아침
전라남도 순천시 서면에 있는 리(里)이다. 계족산의 서쪽 자락에 있으며,
전형적인 중산간 지역이다. 동천이 남류하고 있고, 북쪽으로 갓꼬리봉이 있다.
자연마을로는 관풍정, 송내(솔안이), 원골, 청소리(청소)가 있다. 관풍정은 정나나무가 있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고, 송내는 솔밭의 안쪽이 된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원골은 원집이 있었다 하여
붙여졌으며, 청소리는 청소가 있었으므로 붙여진 이름이다. 청소(淸所)는 물이 맑고 신선한 곳이라하여
이름지어진 곳이다. 문화재로는 보물 제804호인 정혜사 대웅전(定慧寺 大雄殿)이 있다.
아직도 조계산은 범여를 잊지 못하는지 아쉬운
안타까움을 나타내며 멀어짐을 서러워 하는듯...
판소리 “춘향가”에서 ‘경상도 산세는 산이 웅장하여 사람이 나면 정직하고
전라도 산세는 산이 촉(矗)하여서 사람이 나면 재주가 있고, 충청도 산세는
순수하여 사람이 나면 인정이 있다’라는 대목으로 이 나라의 산천을 노래를 한다.
아침일출(06:10)
아침 일출이 시작된다. 매주 느끼지만 그래도 아침 일출은 참으로 신비스럽고
엄숙하다. 해가 산꼭대기에 얼굴을 내미는가 싶더니만 금방 솟아 오른다.
눈 깜짝 할 사이에...옛부터 우리 선조들은 아침 일찍 활동을 한 부지런한
민족이었다. 우리가 어렸을 때 보면 우리가 일어날 쯤이면 아버지는 들에
나가 논밭일을 하시고, 풀을 한 지게 베서 가져오시곤 했었다.
그런 연유로 우리 선조들은 정사(政事)를 보는 곳을 조정(朝廷)이라 하였고
지방 행정을 보는 곳을 동헌(東軒)이라 불렀다. 동헌이란 동쪽의 집이란 뜻으로
이른 아침에 맑은 정신으로 정사를 보았다고 한다. 이른바 아침 문화의 잔영이랄까.
이렇게 이른 새벽에 무박산행도 우리 선조들의 피를 받은 탓일까... ㅋㅋㅋ
636봉에서 바라본 갓걸이봉
갓꼬리봉에서 갓머리봉까지 3개의 봉우리가 ‘뫼 山’자 형상을 하고오르내림을 계속하고 있다.
636봉(06:45)
636봉에 오르니 선두들은 다들 도망가 버리는데 자꾸만 오른쪽
엄지 발가락이 아파오기 시작하고, 허기가져서 도저히 더 갈수가 없다.
이곳은 정상에 잘 관리된 헬기장에 식사장소는 더 없이 좋은 장소이다.
그리고 전망은 그야말로 일망무제이다. 조계산 장군봉과 그 너머 모후산까지...
그리고 남으로는 순천만이 손에 잡힐듯 하고 북쪽으로는 지리산 주 능선이
한눈에 들어온다. 서너명의 산꾼들이 아침 밥상을 펼치고 식사를 하면서
막걸리 2통과 오디술 한병을 게눈 감추듯이 해치우고 단체 사진을 찍고
갓걸이봉으로 향한다. 아침 햇빛은 따갑기만 하다
저 넘어 아련히 언제봐도 가슴 벅찬 지리산의 주 능선과
북쪽의 덕유산도 가물가물 보이고...
저 멀리 순천만과 순천시내가 한 눈에 들어오고
구례~광양간 고속도로가 지나가는 심원터널도 보이고...
갓걸이봉(688m : 07:40)
이 봉우리는 갓걸이봉. 갓거리봉. 갓고리봉. 갓꼬리봉 등으로 다양하게 표기 되는데..
갓걸이봉이 그래도 가장 설득력 있어 보인다.
옛날 어떤 사람이 이 산을 지나가는데 바람에 갓이 날려 산꼭대기에 걸렸다 하여 갓걸이봉이라
부르게 되었다는 이 산의 정상에는 산불감시초소가 있고 멋진 소나무 한그루가 있다.
갓꼬리봉으로 표기한 지도도 있고 되어 있으나 정상석은 갓거리봉으로 되어 있다.
어느게 맞는지? 산불감시초소 벽에도 백계남씨가 의견을 적어 놓았는데 계관산에서 보듯 갓걸이봉이 맞다는 의견이다.
백두대간길의 건의령(巾衣嶺)과 비슷한 뜻은 아닌지?...선비들이 절개의 표시로 갓을 걸어 놓았다는 뜻에서
갓걸이봉이라고부른 연유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범여의 생각 中에서)
정상석에는 갓거리봉이라 표시되어 있다. 조금만 생각해 보면 "거리"라는
말의 원래 뜻이 이런게 아니라는 것을 곰방 짐작할 텐데..ㅉㅉ
멀쩡한 우리 한글을 두고 요즘 젊은 애들이 인터넷으로 쓰는 용어로 표기한
멍청한 순천시의 작태는 한심하기만 하다. 세종대왕이 살아 계시면 곤장 100대 깜이다.
저러고도 어떻게 공무원 시험에 합격했을까... 정말 이해가 안된다.
순천만을 바라보며 고고한 자태를 뽐내는 갓걸이봉의 멋진 소나무
638봉에서 갓걸이봉 가는 길은 암릉구간으로 정말 주위 조망은 일망무제이다.
아마 산행을 하면서 이런 전망을 멋지게 보는것도 싶지 않은데 오늘 정말 실컷본다.
암릉구간에서 멋지게 폼도 함 잡아보고...
708봉 정상(07:50)
곳곳에 멋진 암릉들이 산꾼의 발길을 붙잡는다
순천시 황전면의 아침
북쪽의 지리산 능선의 황홀경에 넋이 빼앗긴 채 길을 걷는다.
동료 산꾼들은 이런 멋진 구경은 하지 않은채 죽기 살기 시간만 줄일려고
가버렸는지 꽁무니도 보이지 않는다. 다시 우측으로 꺽어져 급경사를 내리니
멋진 전망대가 나오는데 쉰질바위라고 이정목이 서있다.
쉰질바위(08:15)
그 이름이 특이한데 아마도 높이가 사람 키높이로 쉰질이 된다고 얻은 이름인듯
하지만 정작 지도에는 신선바위로 적혀 있다.
쉰질바위란 말을 또 다른 해석을 해보면 "쉬는 행위를 하는 바위"란 말인듯 한데...
이곳에서 바라보는 지리산의 조망은 가히 최고이다.
바위도 넓직해서 쉬어가기 좋은 곳인듯 하지만 선두와의 격차를 줄이기 위해
급경사의 미끄러운 내리막을 조심조심 내려간다....
청결한 몸가짐으로 수줍음 가득한 미소로 어느 님을 기다리시나?
미사치(美莎峙: 445m 09:15)
순천시 서면 청소리 심원마을과 황전면 덕림리 미초마을을 잇는 고개로 조선시대에
한양으로 과거를 보러 갈적에 이고개를 넘었다고 한다.
미사(美莎)의 아름다울 '美'자는 '향부자 莎'로 향부자는 관절염의 통증 치료재로 쓰이는 사초과의 식물(풀)로
해변이나 물이 많은 곳에 자라는 식물인데 우리 선조들은 산꾼들이 정맥길을 걸을 줄 알고 붙인 이름일까?
그렇다면 우리 선조들의 높은 혜안(慧眼)에 탄복하지 않을 수 없는 일이다.
미사치의 남쪽 방향은 울창한 숲과 맑은 계곡을 끼고 있는아름다움을 자랑하는 심원마을이 있고
마을 아래쪽에는 신라시대 혜조국사가 창건했다고 전해지는 정혜사가 자리잡고 있다.
한때는 大刹로 명성을 날리기도 했지만 고려, 조선시대의 여러 亂을거치면서 화재와 여러가지
악재로 인해 사세가 위축되어 요즘은조그만 사찰로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정겨운 갈참나무
뭣이 저리도 좋을까?
미사치에서 깃대봉 오름길은 길은 정말 산길로 말하면 고속도로 수준이다.
길은 넓직하고 평소에 이곳에 계족산이 있은 탓인지는 몰라도 관리가
잘 되어 있어 보인다. 우측에는 미끈하게 잘생긴 누런 소나무(黃腸松)가 많이
보인다. 이런 곳에는 싸리버섯이 있을 법한 곳이다. 그러나 오늘은 너무 처진
탓에 그런걸 할 겨를이 없다. 자꾸만 다리가 무겁기만 하다.
조금 지나니 앞에 동료 산꾼들의 소리가 들린다. 부지런히 따라가도 쫓아
갈 수가 없다. 오늘따라 도리깨님도 자꾸만 처지는 걸 보니 컨디션이 엉망인
모양이다.
전망대 삼거리(09:35)
이곳 아래는 넓직한 공간이 있고 커다란 철쭉나무가 군락지를 이루고 있다.
이곳에서 좌측으로 기수를 돌려 깃대봉으로 향한다.
여수지맥(麗水枝脈) 갈림길
여수지맥은 주화산에서 백운산으로 이어지던 호남정맥이 미사치를 지난 깃대봉 직전에서
가지를 쳐 동쪽 백운산쪽으로 2.2km 떨어진 3면경계봉 (약 820m.순천시 서면과 황전면,
광양시 봉강면)에서 호남정맥은 북으로 올라가고, 남으로 한줄기 가지를 쳐 서로는
순천동천, 동으로는 광양서천으로 물길을 가르면서 남쪽으로 이어져 여수반도의 끝단인
여수시 화양면 안포리 힛도마을까지 이어지는 도상거리 약 81km(약 75.5km)의 산줄기를 말한다.
땅끝기맥, 호미지맥, 고흥지맥, 변산지맥등과 같이 산이름이 아닌 지형의 특수성을 고려하여
지맥의 명칭을 붙였다. 지맥의 길이로는 인근의 고흥지맥이 더 길으나 한반도에서
가장 길게 이어지는 산줄기라는데 큰 의미가 있겠다.
3개면 경계봉(09:40)
순천시의 서면과 황전면 그리고 광양시의 봉강면이 만나는 삼면봉이
있다. 이곳은 여수지맥이 시작되는 곳으로 여수지맥은 계족산(720m)를
거쳐 순천시내를 지나 여수반도의 남단까지 가는 지맥이다.
삼면봉 갈림길에서 깃대봉 가는길에 순천시 서면 의용소방대에서 설치한
구급함이 신선함을 준다. 정말 고맙기만 하다. 이곳에서 처음으로 우리 일행이
아닌 등산객을 만난다. 이 아래 마을에 사는 사람이란다.
깃대봉 (858.2m :09:50)
여수지맥 갈림길에서 좌측으로 10분정도 오르니 깃대봉이 나타난다.
저 너머 이젠 호남정맥도 막바지에 다다른 느낌이다.
동쪽 백운산에서 뻗어나온 능선들이 뚜렸하게 한 눈에 들어오고
혹처럼 유독 볼록하게 솟아오른 억불봉도 손에 잡힐듯 가깝게 보인다.
사람들이 많이 찿는 산인지 산 정상은 반질반질하고 공터 중간에
삼각점(△하동24/1991재설)이 있다.
깃대봉은 산에서 만나는 흔한 이름중 하나이다. 그건 일제시대에 침략의
일환으로 측량을 하면서 깃대를 꽂아놓고 편의상 깃대봉이라 그렇게 불린단다.
가을이 오는 소리
깃대봉에서 조금 내려오니 폐헬기장에 가을이 오는 억새밭이 군락을
이루고 있다. 이곳부터는 찾는 사람이 거의없는 전형적인 정맥길이다.
지도상 865번 지방도로로 표기되어 있는 임도는 구례와 광양을 잇기 위해 1970년 군 공병부대에서
개설한 도로라는데 이용하는 사람이 없어 묵혀지고 있는 것 같다.
지난해 개통된 광양-구례간 고속화도로가 이 산밑을 지나고 있다.이곳은 지난온 구간과는 달리
관리가 되지 않은 탓에 걷기가 꽤나 불편하다.
이러저리 피해서 몇번의 오르내림을 한 끝에 숲이 무성한 월출재에 도착한다.
월출재(10:20)
순천시, 광양시, 구례군이 만나는 꼭지점이다. 정맥길에서 300m 정도 벗어나 있다.
1970년도에 구례와 광양을 잇기 위하여 군 공병대가 개설한 도로이며
정상에 있는 봉우리가 월출봉(760m)이다. 월출봉에서 서서히 그동안
순천시와 이별을 고할 준비를 한다. 다음에 맞이할 구례군에 대한 설레임으로...
이곳 사람들은 달뜨기재라고 부른다고 하는데 우리말의 아름다움일까
좀 촌스럽다고 느껴질까... 꼭 북한식의 지명같은 어색한 느낌이다.
월출재에서 월출봉가는 길은 산을 휘감아 올라가는 임도가 있지만 관리가
되지 않은 탓인지 여기저기 무너져 있는 그대로 방치되어 잇고 정맥길은
산 능선을 가로질러 오른다. 그리 크지 않은 소나무들이 많이 보인다.
힘들게 월출봉 삼거리에 도착하니 고문님과 공작산님 등이 쉬고 있다
이곳에서 100m 정도 떨어져 있는 월출봉은 정맥이 아니라는 이유로
아무도 가질 않는다. 하는 수 없이 베낭을 벗어놓고 나혼자 월출봉을 향한다.
월출봉(768.1m :10:40)
달을 맞이한다는 월출봉이란 이름이 어울리지 않게 그저그런
지극히 평범한 봉우리가 실망을 준다. 어떻게 이런 뭣진 이름을
얻었는지 이해가 되질 않는다. 아마 저 아래 월출재의 후광이 아닐까?
봉우리 정상에 삼각점(하동 429/1985재설)이 있다. 주위에 조망은
전혀없다
월출봉은 순천시와 광양시, 구례군의 꼭지점으로 여기서 순천시와는 작별을 고하고
한재까지 구례군과 광양시의 경계를 타고 이어간다.
허물어진 축대 월출봉을 갔다오니 동료 산꾼들이 휴식을 취하고 있다.
여기서 간식으로 원기를 보충하고 다시 길을 나선다.
월출봉 갈림길에서 참나무숲 호젓한 길을 내려오니
허물어진 돌무더기가 있어 무슨 성터인가 했더니 월출재 도로를 개설한 공병부대의 도로개통 기념비 축대였다.
1970년대에 '박정희 대통령의 하명으로 육군 공병부대에 개설한도로인데 이젠 완전히 옛 영화를 잊어버린 듯 하다
구례‘거지에게도 예를 베푼다’는 구례(求禮)는 지리산을 뒤를 배경으로
섬진강을 앞 개울 삼아 자리한 고장’으로 흔히들 구례를 일컬어‘세가지가 크고
세가지가 아름다운 고장’이라고 한다.
지리산과 섬진강 그리고 넓은 들이 큰것이요.
아름다운 풍광에다 너르고 기름진 땅에서 거두는 풍요로움,
그리고 거기서 자란사람들의 순박하고 인정미 넘치는 마음씨가 아름다운 세가지이다.
조선중기에 이중환이 쓴 “택리지”에 구레에 관한 내용을 보면 ‘남해에 가깝고
기후가 따뜻하여 산속에 대(竹)가 많고 감과 밤이 많아 가꾸는 사람이 없어도 저절로 열리거~~
’라며 記述하여 사람살기가 적당한 고장이라고 적고 있다.하지만 지리산과 섬진강을 끼고 있는 구례는 삼국시대에 신라와 백제의 국경지대로
분쟁이 그칠날이 없었고, 고려와 조선시대에는 하동포구로부터 섬진강을 통해 들어오는
왜구들의 침략에 늘 괴로움을 당한 곳이 이곳 구례이다.
해방이후와 6.25동란 당시 좌,우 이념대립과 민족의 아픔, 국군토벌대에 쫒겨 지리산으로
숨어던 빨치산과 공산당에게도 많은 수난을 당해야 했던 곳이기도 하다.
그래서 그런지는 몰라도 삼국시대부터 지리산 곳곳에는 國太民安을 기원하기 위해
화엄사, 천은사, 연곡사 등의 대찰들이 곳곳에 세워졌다.
1읍 7면으로 3만여명 살고있는 구례는 군 전체 넓이가 440평방km로 면적의 78%가 산지로
이루어져 있으며 구례군은 서쪽에서 동쪽으로 가로지르는 섬진강을 중심으로 북쪽은
지리산 계통으로 되어있고, 남쪽은 백운산 계통이다.
산지로 구성되어 있는 구례는 지역 특산물로 대표될만한 것에 산동골의 산수유가 있다.
에로부터 남자들의 정력보강과 오줌싸개의 병을 고치는데 탁월한 효과가 있는 한약재로
쓰여왔던 산수유가 이 지역 특산물로 이름을 드날리기 시작한 것은 200년 전쯤이라고 한다.
이곳 주민들 사이에 내려오는 전설에 의하면 먼 옛날 산수유가 많이나는 중국 산둥성에서
한 처녀가 이곳으로 시집을 오면서 산수유 한그루를 가져와 심은것이 시초라고 한다.
지금도 구례군 산동면에는 우리나라에 최고 오래된 산수유 나무가 있다고 한다.
산행을 시작한 지 8시간이 지나니 서서히 피로감이 몰려온다.
거기다가 잠을 못잔 탓인지 자꾸만 잠이 몰려와 자꾸만 산행이
힘들어진다. 임도를 지나 다시 능선으로 올라선다. 오늘 산행은
완전히 U字 형태로 지나온 구간이 바로 건너편에 보이는데 걸어온
시간은 6시간이 넘으니 마치 지나온 구간 추월산에서 강천산 구간과
비슷한 느낌이다.오늘도 무척이나 덥고 한 여름 산행과 다를바가 없다.
앞서가던 동료 산꾼 투투님이 지나가고 난뒤 독사 한마리가 황급히
지나간다. 카메라를 들이대니 꼬리만 잡힌다. 지난 6월에 한남.금북구간에
독사를 밟아서 놀랜 기억 때문에 오늘도 놀란다.
형제봉 중에서 아우봉(弟峰:844m:11:30)
전남 구례군 간전면 금산리와 광양시 봉강면의 경계에
있는 형제봉은 두 개의 봉우리가 나란히 병립한다고 하여
형제봉이라고 부른단다.
형님봉 가는 길은 참으로 호젓하기만 하다.
잠시 후 철계단이 나오고 암릉구간을 지난다.
아우봉에서 바라본 형님봉의 모습
이곳은 오늘 구간중에 전망이 가장 좋은 곳이다.
저 아래 광양시 봉강면의 한가로운 전경과 저 멀리 순천만이
한 눈에 들어온다.
길 한가운데 있는 삼각점
갈참나무 숲길을 가다가 키 큰 산죽숲도 지나면서
형제봉 전위봉에서 왼쪽으로 틀어 내렸다가 다시 오르면
있을곳 같지 않은 곳에 삼각점(하동 △426)이 나온다.
형제봉 (兄弟峰 861.3m :11:50)
아우봉에서 20분간 편안한 길을 걷다가 다시 철계단을
지나 암릉으로 오르니 우측은 순천, 여수만이 한 눈에 들어오고
좌측은 구례의 간전면 지역과 저 멀리 지리산이 한눈에 들어온다.
정말 일망무제(一望無際)이다. 이렇게 멋지게 조망한다는 것
1년에 50번을 넘게 산행을 하면서 이런날은 다섯 손가락 안에
들지 않을까. 연신 카메라 셧터 눌러대기가 바쁘다.
지리산 주 능선을 배경으로...
도솔봉이 시야에 들어오고...
도솔봉이 왜 ‘산’ 이 아니고 ‘봉’인지 선뜻 이해가 되질 않는다.
높이가 1000m가 넘으면 대체적으로 산의 명칭을 붙이는데 말이다.
그것도 신성한 미륵부처님이 계시는 색계 33天중의 하나인 도솔천의
명칭을 따왔으면서 말이다... 물론 그 이외도 있긴 하지만... 포천에 있는
한북정맥 능선의 국망봉은 경기도에서 3번째 높은 산이면서도 봉이다.
그건 궁예가 왕건에게 패하여 패망한 군주라서 그렇다치더라도 여긴
그와는 전혀 다른데 이해가 할 수가 없다.
아직도 슬픈 아픔이...
이곳은 해방이후 빨치산 활동이 활발했던 곳이기에 60년이 넘은 지금도
산의 곳곳에 비트로 활용했던 웅덩이가 지천으로 널려있다.
벌교 제석산에서 조계산으로 그리고 이 능선을 지나 백운산을 거쳐 지리산으로
통하는 그 길... 恨많은 아픔의 길을 오늘 범여는 걷고있다.
등주리봉(12:00)
성불사 가는 길(12:20)
성불사
성불계곡 상류에는 고려시대 40여 개의 암자가 딸린 사찰로 불교문화에 중요한 역할을
한 것으로 전해져 오는 성불사의 옛 터 위에 1975년 중건한 성불사가 자리하고
있어 불자들의 왕래가 잦은 곳이기도 하다. 창건연대가 확실하지 않으나 신라말기에
도선국사가 창건했다는 설이 유력하며 임진왜란 당시 소실되었다고 한다.
지금은 대한불교 용화종 종단에 소속된 사찰이다.
또한 성불계곡은 임진왜란 때 의병을 모아 진주성 전투에 참전해 장렬히 산화한 강희열,
강희보 장군 묘와 사우가 자리하고 있으며 서석마을에 위치한 조선조 마지막 선비
매천 황현 선생의 생가와 영묘재, 묘를 접할 수 있어 선조들의 발자취를 찾을 수
있는 좋은 기회를 동시에 가질 수 있다.
크고 자비롭고 보배로운 부처님을 모신 전각이라는 대자보전(大慈寶殿)
너무 지쳐서 드러 누워버린 동료 산꾼
산행을 시작한 지가 9시간이 지나자, 자꾸만 체력의 한계에
다다른 느낌이다. 같이가던 동료 산꾼이 지친 나머지 등로에
체면 불구하고 드러누어 버린다. 나 역시 똑같은 생각이지만
억지로 버틴다. 체력의 한계에다가 더운 날씨에 너무 노출된
탓일까. 도솔봉 1km 지점 오르는데 도저히 발길이 떨어지지
않고 허기가 져서 갈 수가 없다. 베낭을 내리고 복숭아 한개와
박카스 한병을 마신 다음에 기력을 차린다.
도솔봉 가는 길이 이리도 苦行인가?
아~ 그래도 가야지. 어느 누가 대신 가 주는것도 아닌데
한발짝 한발짝 오르다 보면 도솔봉이 나오겠지 뭐
들꽃도 힘내라고 응원을 하는 듯...
도솔봉 오르기 100m전...
드디어 도솔봉 정상이 보인다. 최근 산행에서 오늘처럼 힘들게 해본적은 없었다.
그러기에 환희심은 더 한것 같았다. 하긴 미륵부처님 미리 친견하기가
그렇게 싶다면 아무나 도솔천을 가겠지... 미륵보살님 만나는 심정으로 정상을 밟는다.
도솔봉(兜率峰:1123m)
우리나라 산봉우리중에 자주 만나는 지명중에 하나가 도솔봉이다.
도솔이란 산스크리트 tuṣita의 음역이며 의역하여 지족천(知足天)이라고도 한다.
도솔천은 수미산(須彌山) 정상에서 12만 유순(由旬, 고대 인도의 거리 단위)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다고 한다.
도솔천은 내원(內院)과 외원(外院)으로 나뉜다. 내원은 내원궁(內院宮)이라고도 하며, 석가모니가
남섬부주(南贍部洲, 인간세계)에 내려오기 전에 머물던 곳으로, 현재는 미륵보살이 지상에 내려갈 때를
기다리며 머무르고 있는 곳이라고 한다.
외원은 여러 천인(天人)들이 모여 행복과 쾌락을 누리는 곳이다.
덕업을 쌓고 불심이 깊은 사람만이 죽어서 도솔천에 다시 태어날 수 있다고 한다.
국립지리원 지형도에는 참샘이재를 지난 다음봉(1127.1m)을
도솔봉으로 표기하고 있으나, 다른 지도들은 이곳을 도솔봉으로
표기해 놨고, 정상석도 있으니 여기를 도솔봉이라 부른다.
여기서 남쪽으로 뻗는 능선이 성불계곡과 백운계곡을 가르고,
동시에 봉강면과 옥룡면의 경계가 되고 북쪽은 계속해서 구례군 간전면이 계속 동행을 한다.
이제 마감을 해야할 백운산과 매봉이 한눈에 들어온다.
도솔봉에서 광양쪽의 벽계산으로 뻗어나가는 거대한 산줄기가 나타난다.
백운산이 名地라고 하여 유명한 풍수지리가들이 숱하게 다녀갔음에도
불구하고 명당터에는 항상 사찰이 들어서 있다는 속설에도 불구하고
이곳은 名刹이 없는것은 이 지방이 숱하게 많았던 전쟁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다.
그렇다고 이곳에 사찰이 없었던 건 아니다. 광양시 옥룡면에 자리 잡았던
중흥사와 옥룡사는 풍수지리의 대가인 도선선사와 깊은 인연을 맺고 있는 곳이다.
도선선사는 전남 영암출신으로 872년에 출생하여 15세에 구례 화엄사로 출가하여
법랍 23년에 벽계산 옥룡산에서 열반때까지 이곳에서 주석하였다고 한다.
통일신라시대 경문왕때 도선대사가 창건하였다는 중흥사는 수많은 전란을 겪어면서
사찰은 폐허가 되고 유일하게 남아잇는 3층석탑만이 보물 제112호로 지정되어 있을 뿐...
사찰 언저리에 심었다고 하는 동백나무만이 군락지를 이루어 옛영화를 기다리고 있다.
도솔봉 정상에서 이젠 하산길만 남았기에 베낭무게를 줄이기 위해
베낭털기(?)를 시도한다. 산꾼들의 베낭에는 별것이 다 나온다.
그래도 마지막을 위해 물의 양을 조절하고 비상식량을 조절하는 산꾼들의
역량에 경의로움을 느껴진다. 과연 전문 산꾼들답다. 범여의 베낭에는
지난 10월 낙동정맥길 부산 금정산성에서 마신 산성 막걸리를 잊지못해
가져간 산성 막걸리와 파전이 나왔다. 즉석에서 산상주막이 펼쳐지고
걸쩍지근한 파티가 이루어진다.
정상에서 마시는 이 맛! 이맛에 산에 오는것 아닌가?
도솔봉에서 따리봉, 백운산 상봉으로 이어지는 능선은 가히 호남 최고의 조망대라 할 수 있다.
백운산과 손에 잡힐듯이 눈 앞에 펼쳐지던 장쾌한 지리산 100리 주능선 조망을 가히 환상적이다.
아마 오늘 산행을 못한 사람들은 정말 후회스러울 것이다.
여수 앞바다와 약간 우측으로 순천만과 그 너머에는 벌교 앞바다인
여자만(汝子灣)도 아련히 보인다.
아련히 보이는 지리산!
저 너머 지리산이 한눈에 들어온다. 언제봐도 가슴 벅차게 어머니의
품안 같은 지리산! 능선 너머 손에 잡힐듯 지리산이 눈앞에 와있다.
조선시대에 임진왜란때 승병을 이끌고 왜놈들과 맞섰던 서산대사께서는
이 나라의 명산들을 평하면서 “금강산은 빼어나되 장하지 못하고 구월산은
빼어나지도 장하지도 못하며, 지리산은 장하고 빼어났다고 했다.” 정말
명산이다. 구례를 지나 섬진강이 어렴풋이 보이고 하동땅이 보일락 말락하다.
도솔봉 파티를 마치고 하산을 시도한다. 아래에서 기다리는 동료 산꾼들을
생각하며 빠른 걸음으로 내려오는데 급한 경사를 지나니 정말 멋진 소나무
한그루가 산꾼을 붙잡는다. 그 아래는 멋진 암릉이 있고, 서둘러 내려오니
‘논실위’란 이정표가 있고 다시 봉우리 하나를 오르니 헬기장이 나타난다.
거기서 계단을 지나 우거진 숲을 헤쳐 나오니 오늘의 마루금 종점인
참새미재가 나타면서 긴 여정을 끝낸다. 여기까지 거리가 G.P.S로 23.8km다.
다음 구간 첫 봉우리인 따리봉
다음구간에 3시간정도 어둠길을 가기에 따리봉을 미리봐 둔다.
마가목 열매
마가목 나무는 주로 해발 800m이상 고산지대에 자란다.높이는 8m 정도이며 꽃은 5~6월에 피며
열매는 둥글며 9~10월에 익는다.마가목 열매의 맛은 달고 쓰며 성질은 평하다.
마가목 열매는 붓기를 다스리고 기침과 가래를 삭여주며 관절염, 폐결핵, 진해, 거담, 이수 , 지갈, 강장에 효능이 있다.
또한 기관지염, 호흡기질환, 기침, 혈액순환, 피로회복, 위염에 탁월한 효능을 지니고있다.
마가목 열매는 특히 신장, 관절염, 요통 치료에 좋으며 동의보감에는 늙은 이와 몸이쇠약한 것을 보하고
성기능을 높이며 허리힘과 다리맥을 세게 하며 흰머리를 검게한다 하였다.
마가목 열매에는 비타민a.비타민c가 풍부하여 기침을 멎게 하고 가래를 삭이며 비장을
튼튼히 하고 소변을 잘나오게 하며 폐결핵, 수종에 좋으며 폐를 튼튼하게 한다
하였고 신체허약 등을 치료한다고 하였다.
조선의 명의 이 경화는 마가목 열매를 술에 담아 먹으면 서른여섯 가지 중풍을 고칠 수있다고 전한다.
마가목 열매를 10g~20g을 물 4리터에 넣어 다린후 수시로 마시며 소주 30도~35도 열매에 부어 3개월 가량
지난 후 마셔도 효과가 크다.
옛말에 먼 길에 지쳐 쓰러진 말이 마가목 잎을 뜯어먹고 기력을 회복하여 일어섰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헬기장에서 바라본 도솔봉
참샘이재 (941m:14:20)
전남 구례군 간전면 금산리와 광양시 옥룡면 답곡리 논실마을 이어주는 고개로
이 지역 사람들은 ‘친감재’라고 부른다고 한다. 여기서 오늘 산행을 종료하고
마루금과는 상관없는 접속구간 2.3km 를 걸어서 논실마을까지 내려가야 한다.
논실마을 가는길
산이 높으면 골이 깊다고 했던가? 내려오는 계곡은 상당히 깊고 가파르다.
거기다가 커다란 너럴을 이루고 있어서 걷기가 아주 불편하고 힘이든다.
1.2km 정도를 지나니 너덜은 끝났지만 콘크리트 임도를 걸으니 무릎과
발바닥이 불이 나는 느낌이다. 관절에 신경을 곤두세우면서 스틱으로
갖은 애를 쓴다. 주위에는 커다란 소나무와 편백나무 그리고 고로쇠 나무들이
보인다. 서울대 남부 학습림이 자리잡고 관리하는 답곡분소가 있는 곳이다.
논실마을 버스 정류소(15:10)
드디어 11시간 50분의 대장정을 끝낸다. 정말 힘들게 한구간을
마무리 한다. 서둘러 옷을 갖고 계곡으로 들어가 청정계곡에서 알탕을
끝내고 버스에 오르니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차에 오르자마자
잠에 떨어진다. 식사장소 가는동안에 깊은 잠에 빠진 것이다.
이곳 백운산 아래에는 고로쇠나무가 유명하다.
고로쇠나무에 얽인 이야기는 신라와 백제의 병사들이 백운산 일대에서 자주 싸움을 벌였던 삼국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그때에 신라의 병사들이 싸움을 하다 보니 몹시 목이 타서 샘을 찾았으나 눈에 띄지 않았는데... 화살이 꽂힌 한 나무에서
맑은 물이 흘러나오는 것을 발견하고는 그 물을 마셨다. 그런데 그 물은 갈증만 풀어준것이 아니라 몸에 힘이 용솟음쳐
백제군을 무찌를 수 있었는데 그 나무가 바로 고로쇠나무라 한다.
그래서 인지는 모르지만 광양에서는 해마다 경칩을 전후해서 고로쇠
약수축제를 연다고 한다.
오늘 식사장소인 매화랑 매실이랑
이곳은 음식을 연구하는 곳으로 참으로 음식이 깔끔하다.
이 곳은 자기들이 직접 재배한 유기농 농산물로만 음식재료를
쓰고 하여 딱 내입에 맞는 스타일이다. 그리고 오늘은 산악회에서
최 연장자의 한분이신 노바님께서 식대를 스폰서 하신다고 한다.
매번 얻어 먹기만 해서 어쩐다요... 잘 먹었습니다, 늘 건안하시고요
광양시 옥룡면 추산리 백운산 자연 휴양림 앞에 있는 이 음식점은
정말 지인들에게 추천하고 싶다. 깔끔한 음식에 주인의 후덕한 맘씨까징
TEL:061-762-1330, HP 017-635-1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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