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산행일자 : 2011. 10. 30 (당일산행)
○ 산행날씨 :맑은 날씨에 산행하긴 좋은 날씨, 늦가을 더위
○ 참석인원 :6명과 중간 지원조 4명
○ 산행거리 : 도상거리:24.5km / G.P.S 거리 27.2km / 약 9시간 소요
○ 산행코스 : 양고개-경부고속도로 지하-한진교통-내곡,용인간 고속도로-150봉
청주한씨 종중묘-소현초교-수자원공사 철조망-소현 초등, 중학교-소실봉
상현초교-방주교회-수지영락교회-심곡초교-벽산 블루밍 아파트-힐스테이트
응골-응봉-군부대-매봉 약수터-버들치고개-269봉-이의동 입구- 백년수 정상
형제봉-양지재-비로봉-토끼재-광교산(시루봉)-노루목- 통신대-경기방송 송신탑
미군 통신대-백운산-미군 통신대부대- 통신대 헬기장-359봉-광교 헬기장-356봉
수의 사거리-범봉-영동고속도로 북수원 I.C지하-지지대 고개
○ 소재지 : 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수지구 / 수원시 영통구, 팔달구,장안구 / 의왕시 왕곡동
한남정맥은 서울과 가까운 관계로 인하여 지난해 나홀로 끝낸 한북정맥처럼 휴가철, 한달에 5주에
든 일요일, 명절 전후의 짜투리 일정으로 아무래도 마무리 해야할 듯 싶다. 이번달로 5주인 관계로
한남정맥 한 구간을 하기 위해 새벽 4시 40분에 베낭을 메고 집을 나선다.
이곳은 난개발의 극치를 이룬 용인 신갈에서 수지로 하여 수원으로 접어드는 곳으로 아에 脈이
없어지다시피 한 곳이다. 별의미를 두고 싶진 않지만 그래도 9정맥을 마쳐야 하기에...
더군더나 호남정맥을 같이 동료 산꾼들이 한남정맥 졸업구간이기도 하여 축하도 할겸 나 역시
이곳을 혼자가기엔 조금은 벅찰것 같은 느낌 때문에 한 구간을 마치기 위해 동행을 한다.
오늘 산행구간의 지도와 고도표
양재역 버스 정류장(05:00)
개포동에서 청계산가는 4432번 버스를 타고 양재역에 하차하여 EL tower 앞 중앙차로의
버스 정류장의 건널목에 서 있는데 양재동에서 신갈가는 8251 광역 급행버스 첫차가
떠나 버린다. 휴일에는 배차시간이 40분이라 하는 수 없이 베낭을 내려놓고
40분을 기다린다. 지루하여 길 건너에 있는 S-oil 주유소 자판기에서 커피 한잔을 빼서
마시고 지루한 40분이 지나 버스를 타니 용인 면허 시험장까지 정류장을 4번만 서고
30분도 안된 시간에 도착하는 바람에 이곳에서도 지루하게 동료 산꾼을 기다린다.
이런줄 알았으면 좀 늦게 나올껄...
사라져가는 정맥을 이어려고 신호등 조작기계에 붙인 표시판
이 지역 일대는 한남정맥이 가장 망가진 용인의 구성, 수지지구이다.
대한민국 정맥길중 가장많이 망가진 곳이다. 이로 인하여 산의 모습도 바뀌어 마루금 확인에
어려움이 많고 본격적으로 '한남정맥'이라는 산줄기가 실종되기 시작한 곳이기도 하다.
한남정맥 처음부터 계속되는 숱한 골프장을 비롯하여 철탑, 크고 작은 도로 절개지, 별장지대,
군부대 철조망, 학교, 정수 처리장 등 광대한 규모의 공사 현장, 신축 아파트단지 등등의
현장을 지나가고 있으니 몸도 마음도 무겁다. 경기도의 정체성은 이미 오래 전부터 개발과
지역경제 발전이라는 미명하에 훼손 당하고 있으며, 이러한 상황은 우리 땅과 생명의 근원에
관한 무지(無知)와 탐욕의 결과인 것이다. 이는 해당 지역에 국한된 문제만은 아니며,
바로 우리 사회의 총체적인 실상을 여지없이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우리들에게 주어진 환경을 제대로 지키지도 못하고 전혀 인식하지도 못하는
입장에서, 개발 논리를 앞세운 자연파괴 행위는 끝없이 계속될 것이 불 보듯 뻔한 일이다.
양고개(06:05)
23번 국도가 지나가는 양고개는 경기도 용인시 구성읍과 기흥읍을 잇는 도로로
차량통행이 아주 많은 곳이다. 영동고속도로쪽으로 건설교통부 수원국토유지건설사무소문앞
건널목 앞으로 횡단보도가 있고 이곳을 양고개라고 한다 주위엔 GS주유소와 생명샘 교회 근처가
구성삼거리 고속도로 넘어론 운전면허시험장 새천년아트빌이 양고개를 끼고 있다
양고개는 수지나 분당에서 신갈로가는 차량을 면허시험장이나 여성인력개발원에서 승하차 하면 된다
양고개 위를 지나가고 있는 영동고속도로
이곳은 흔히들 신갈이라고 더 잘 알려져 있는 곳이다. 경부고속도로와
영동고속도로가 만나는 신갈리는 본래 보잘것 없는 시골 마을이었으나
신갈J.C가 지나가는 덕분에 조그만 마을이 상전벽해가 된 곳이다.
수원시와의 거리가 10리도 되지않아 행정구역상 용인시에 속하지만
생활권은 수원시에 의존하는 편이다. 수원시의 인구가 100만이 넘기에
광역시로 승격하기 위해 신갈을 편입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은 용인시는 하고 있다.
경기도 여성 인력개발원 앞에서 동료산꾼들과 1주일만에 반가운 해후를
한 다음에 렌 총무님이 가지고 온 커피와 고구마 한개를 얻어먹고 산행을 시작한다.
산행시작(06:30)
여성 개발원에서 양고개쪽의 오대오칼국수집 뒤쪽의 마루금을 향해서 간다.
지난번의 날머리구간인 오대오칼국수집 뒤쪽의 마루금으로 들어선다.
그런데 문제가 생긴 것이다. 아예 길이없고 거기다가 넘어진 아름드리 아카시아
나무와 찔레꽃나무의 가시가 엉켜있어 도저히 전진을 할 수가 없었다.
하는 수 없이 정맥길을 포기하고 다시 여성 인력개발원쪽의 도로로 우회한다.
길이 없어져버린 원 정맥 마루금
여성개발원을 지나서 올리비아 스퀘어 아울렛점을 돌아 경부고속도로 쪽을 향한다.
경부고속도로쪽을 향해서 걸어간다. 산이 아닌 도로로...
원 정맥길은 경부고속도로 신갈J.C 옆에 있는 공군부대가 길을 막고있다.
고속도로쪽 군부대철조망을 따라오르면 둥근참호가 능선마루금이다
전쟁시 고속도로활주로를 보호하려고 주둔했던 군부대 막사로능선에는 참호 그리고 폐타이어로 만든
진지가 부서진 채로 남아있다 그곳에서 북쪽으로 경부고속도로를 보면 전에 큰마을이 있었던
선바라니고개(망객현: 望客峴)이다. 지금은 개발로 인해 도로가 새로 생기고 하여 천지개벽을
한 느낌이다. 에전에 이 선바라니고개는 손님맞이 고개로 이곳엔 맹씨가 일백호가 살고 있었다고 한다.
삼남지방에서 장사를 하거나 과거를 보러 이곳에서 숙박을 하여야 마포나루 아침배를 탈수 있었으므로
노숙촌이 되었다 일찍출발 하여야 하므로 첫닭이 울면 일어나 출발을 하므로 몇몇 맹씨들이 짜고 새벽이
되기 전에 닭소리를 냈다 그러면 손님들이 서둘러 선바라니고개로 오르면 맹씨들이 망을보다 그들을 덥쳐
노자나 귀중품을 빼앗는 도적의 소굴이 되었다 그러던중 맹씨촌에 마음이 곳고 현명한 며느리가 이일을
알고 밤늦게 쌀을 씻으며 이런 노래를 불렀다
길주명주 가는 베장사님네 닭울었다 떠나지마오 그닭 울음소리는
장닭울음소리가 아니라 맹서방네 인닭소리랍니다
이 광경을 본 한선비가 내용을 알아 차리고 관에 신고하여 도둑을 소탕하였다하는 이야기가 전해져 온다.
경부고속도로 지하통로를 지나 이젠 구성읍을 벗어나 수지구로 접어든다(.07:48)
고속도로 지하통로를 지나서 만난 경부고속도로 신갈인터체인지
한진교통(07:55)
수지에서 역말고개 넘어가는 길에 한남정맥 산꾼들에게 이정표가
되어주고 있는 택시회사 한진교통이 있다. 옆에는 고물상이 있고
이곳엔 또다른 도로개설 작업을 하느라 온 천지가 개발현장이다.
한진교통 뒷쪽은 공군부대가 있고 앞으로는 용인~내곡동간 고속도로가 지나간다.
한진교통을 100m쯤 지나 용인~내곡동간 고속도로 밑에서 다시 산으로 접어든다.
길이 없어서 서로 협력하여 올라가니 반가운 시그널이 보이고 한남정맥 표식이 보인다.
인증샷을 남기고...
당집같은 건물도 우측에 하나 보이고...
사람들이 자주 다니지 않은탓에 길이 거의없다시피 하다.
이곳은 별의미가 없어서 정맥꾼도 잘 다니지 않는곳이 한남정맥이다.
아름드리 아카시아 나무가 쓰러진 곳을 유격훈련하듯 지나간다.
아무런 의미도 없는 곳에 정맥길 하나라는 이유만으로...
겨우찾은 정맥길에 올라서니 좌측에는 이곳도 어김없이 인간의 오만함과
탐욕이 개발이란 미명아래 찢겨져 나가고 있는 서글픈 현장이 나타난다.
아마 이 길도 내년에 후답자들이 이 길을 찾을때는 아마 흔적도 없이 정맥길이
사라질지 모르는 지역이다. 천하 명당이라고 알려진 용인땅의 穴이 끊기는 느낌이다.
이 곳에서 5분간의 휴식을 취한 후에 다시 길을 이어간다.
그 와중에도 김해 백두 산악회 시그널이 반갑기만 하다.
아무런 의미도 없는 한남정맥길을 김해라는 먼곳에서 이곳을
지나간 걸 보면 경상도 사람들의 산사랑은 대단해요.
삼막곡고개 (08:20)
이곳에도 용인과 수원을 잇는 신설도로 공사가 한창이고 좌측에는성냥곽처럼 획일적으로 지어지는
아파트가 볼품없이 건설되고 있다.우측에 있는 주택 한채에서 키우는 개새끼들이 합창을 하듯 짖어댄다.
다시 정맥길로 접어든다. 잘 관리된 묘지들이 즐비하다.이 산은 ‘청주 한씨 평해공파 수원 종중산’이라고
표시되어 있다.다시 150봉 고개로 오르니 이중으로 된 수자원 공사 취수장 철조망이 나타난다.
예로부터 "생거진천 사거용인(生居鎭川 死居龍仁)"이라 하여
용인에는 명당이 많다고 전해진다. 실제로 용인에는 유명한 분의 묘소가 많은데,
정몽주, 채제공 선생 등 역사적 인물을 비롯해 故 김대중 대통령의 부모 묘,
삼성의 이병철 회장 등의 묘소들이 자리한다.
요즘은 생거용인 사거용인이 맞을정도로 인구와 아파트, 건물들이 늘어난다.
그 바람에 무분별하게 개발되는 난개발이 용인의 대표적인 모델이 된 씁쓸한 모습까지도...
수자원공사 철조망(08:40)
여러기의 묘지를 지나 능선에 오르니 갑자기 이중으로 된 철조망이 나타난다.
수자원 공사 용인 취수장이 정맥길을 가로 막고 있다. 이곳에서 우측으로 내려가니
다시 청주 한씨 종중묘들이 즐비하고 철조망을 따라 내려가다가 밭으로 접어든다.
복도 많으시지?
이곳에 묻힌 청주 한씨 묘지의 碑중에는 부인이 한명도 아닌 3명이나
되는 분들도 있다. 묘지가 나란히 말이다. 참으로 복도 많으시다.
철조망을 내려와 가을걷이가 끝난 밭을 지나니 개사육장에는 30여마리의 개들이
산꾼을 잡아 먹을듯이 달라든다. 그렇다고 겁먹을 정맥꾼은 아니지만 잠시후에
봉우리에 올라서니 소현초등학교 철조망이 나타나고 정맥의 혈을 끊어 소현초등학교와
소현중학교가 들어서서 소실봉으로 이어지는 정맥길이 완전히 끊어져 있다.
개 사육장
휴식(08:50)
갑자기 나타난 철조망에 난감해 하면서 오늘 리딩을 맡으신 참이슬 대장이
가져온 약술과 소주를 생굴을 안주로 해장술 3잔을 연거푸 마시니 쏙이 짜리한다.
역시 힘든 산길에는 휘발유(?)가 꼭 필요한 것 같다. 다시 몸을 추스리고 길을 간다.
소현초등학교 개구멍(?) (09:00)
대체적으로 이곳은 소현중학교 옆을 우회하여 소실봉으로 가는 편이나
범여의 원칙론에 밀려 힘든 길을 택해 젊잖은 체면을 구겨가며 개구멍으로
정맥길을 간다. 이곳은 좌측은 수자원 공사와 우측 초등학교 철조망까지...
요렇게 통과했습니다. 사람하나 겨우 빠져나오기도 힘든 곳을 대한민국 육군
중령인 바람대장님의 시범을 보여 주는 바람에 간단하게 철조망을 통과하여
내려오니또 하나의 철조망이 나타난다. 미치겠구먼
개구멍을 통과하여 철조망을 끼고 초등학교 운동장으로 내려간다.
어랴! 내려오니 또 철조망이 나타나 학교 들어가는 길을 막는다.
그렇다고 안가는 정맥꾼이 아니지. 오늘 6명중에 홍일점인 렌 총무님이
철조망을 간단하게 넘는다. 철조망을 통과하여 학교로 들어선다.
이 철조망을 통과하여 학교로 접어들고...
소현중학교와 소현 초등학교는는 소실봉허리를 짤라 만든 학교다.
학교앞은 엄청나게 높은 절개지로 학생들의 안전에 걱정이 된다.
소현초등학교 후문의 담도 월담하여 도로로 나와 우측으로 돌아서
소현 중학교 지나 좌측길로 올라서 다시 정맥길로 접어든다.
소실봉 가는 길에서 바라본 수자원공사 용인 취수장의 모습
소실봉삼각점(△수원 24, 2008 복구)
나무받침계단이 나타나며 오르면 소실봉정상이다 널따란 평지에 측량삼각점 그리고
운동기구들이 있는 정상에서 이어진 마루금은 계속 아파트담장을 끼고 내려서야 하는데
이상하게 정맥 꼬리표들이 중간길에 집중적으로 달려있다. 정맥 산꾼들은 애매할 댄
100% 꼬리표를 신뢰하는데 이것이 문제가 된 것이다. 좌측으로 붙어서 아파트 담장을
끼고 내려가야 하는데 내려가다 보니까.상현초교가 나와야 되는데 이현초교가 나오고
만현마을이 나와야 하는데 솔뫼마을이 나타난다. 다시 소실봉으로 올라가기도 뭣해서
그냥 우회길로 계속해서 걸어가 상현초교 앞까지 가서 길을 건넌다.
소실봉(紹室峰 :188.7m : 09:20)
용인시 수지구 상현동과 구성읍 보정동의 경계 능선에 있는 봉우리로서
소소봉(蕭韶峰) 또는 소실봉(巢室峰)이라고도 불렀다고도 한다.
아주 오래전에 이곳에서 노아의 방주같은 홍수가 있었던 모양이다.
그때 이 세상은 온통 물바다로 변하여 웬만한 산은 모두다 물에 잠겼는데
이 소실봉은 주변 산보다 높아 봉우리가 조금 남았는데 그 봉우리가 멀리서
보니 꼭 새집같이 보였다고 해서 소실봉이라 불렀다고 한다.
소실봉은 중국의 유명한 소림사 절이 위치한 숭산에 존재하는 산으로도
유명한데, 용인의 소실봉은 지역의 난개발로 인하여 주변 산들이 절반이상
잘려나간 상태로 이 곳만 달랑 남아있는 형국이다
그러나 원래 산 이름은 문소산(文小山)이었다고 한다.
문소산의 유래는 이곳에 있었던 문수사에서 따온듯 하다.
문수는 문수보살(文殊菩薩)의 준말로서 문수사가 있었던
좌측 계곡을 중느골이라 하여 절에서 경작하였던 전답이
있었던 흔적을 알 수 있다.
아파트 담장을 끼고 상현초교로 내려가야 하는데 그 넘의 꼬리표 땜시...
늦은고개(만현마을 아파트 단지)
지금은 늦은 고개란 말은 없어지고 만현이란 말이 아파트 이름으로 붙어있다.
이곳에서 소실봉으로 이어지는 늦은재 길은 어디가 정확한 마루금이라도 말할
순 없지만 우회하여 빙돌아 오니 만형마을 동보2차 아파트가 나온다.
104동에 내 아파트가 하나 있는데 동호수는 헷갈린다. 90년대 중반에 분양받아
한번도 살아보지 않했기에... 요즘 세입자가 조금 힘드는지 월세가 제때 안들어 온다.
롯데 캐슬 아파트를 지나 상현초교 정류장을 지나 길을 건너지 방주교회가 나타난다.
수지 방주교회(09:50)
이곳은 새로 생긴 주택단지라서 그런지 몰라도 교회들이 여러개가 보인다.
하긴 우리나라 교회가 편의점 숫자보다도 많다고 하니... 요즘은 종교들이
제 역할은 못하는 것 같다. 사회의 빛과 소금이 되기보다는 물질만능주의에
많이 빠져 있는 느낌이다. 물론 좋은 곳도 많긴 하지만... 종교란 힘든 사람들을
어루만져줘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렇지 못한 느낌이다.
그리고 저렇게 큰 성전은 상당히 거부감을 느낀다. 성경에는 부자가 천국가기엔
낙타가 바늘구멍 통과하기 보다 더 힘들다고 했는데 말이다.
43번 국도를 지나서 버스 정류소를 끼고 육교로 오르니 이곳도 우측에 수지영락교회와
좌측에도 교회가 있어 일요일이라 그런지 차량으로 복잡하다. 오늘은 산행을 하는게
아니라 교회, 학교, 아파트 둘레길 걷는 기분이다. 정맥을 이들이 차지하고 있으니...
삼성세르빌, 풍산, 아이파크, 금호베스트빌, 블루밍, 벽산, 성원상떼빌 각양각색의
아파트 단지를 순례하듯 한다. 교회를 지나니 심곡초교가 나오고 다시 아파트로 들어선다.
심곡초등학교(10:05)
벽산 블루밍 아파트 후문
벽산 블루밍 아파트 후문으로 들어서서 단지를 거쳐서 다시 아파트 정문으로
빠져 나가 상가를 지나니 43번 국도에서 갈라져 나온 신설 도로가 나타난다.
성동마을 APT202동 입구이고 수지교회, 버스정류장이 있고 25시 편의점이 보이고
길을 무단횡단하니 좌측에 새로 지은듯한 힐스테이트 아파트가 나타난다.
응골(103m:10:30)
43번 국도에서 떨어져 나온 새로운 도로에서 좌측으로 보면 힐스테이트 아파트가
보이고 우측에 공원으로 꾸며 놓은 곳이 응골이라고 하며 이 지역 사람들은 망가리골
이라고도 한다. 아파트가 들어서기전에 있은 서원말이라는 자연부락이 망가리란 예전에
LG아파트 근처의 길이 막혔다하여 막힌 거리가 망가리라 불려지게 됐다한다.
대원물류 두산인력개발원 골프인도어가 있는 곳이 마루금인데 그곳으로 갈 수가 없다고 한다.
오늘은 동료 산꾼들이 졸업구간이라 그런지 아님 서울이 가까워 마음의
여유가 있어서 그런지 도대체 서두르지를 않는다. 교회와 아파트 순례가 끝나고
다시 산길을 들어섬을 축하하는 의미에 응골 휴게시설에서 간식을 겸한 이스리로
또 한잔을 한다. 운동하러 왔다가 술에 찌드는 느낌이다.
다시 길을 접어드는데 다시 고려산업개발과 대림산업이란 건설업체가 또다시
아파트를 짓기위해 정맥길을 다시 파헤쳐 놓아 길을 이을수가 없다
하는 수 없이 다시 우회를 하여 마루금으로 올라선다.
다시 한남정맥길은 이어지고...
응봉 오르기 직전에 왼쪽으로 조광조선생 묘지를 간다고 씌어 있다.
조광조(趙光祖, 1482~1519). 500여년 전 조선시대 유학자요
정치가로서 개혁을 주창하다 죽은 인물이다. 좋은 집안에서 태어나
훌륭한 교육을 받았고 출사하여 당시 임금 중종의 큰 신임을 얻었다.
영남 유림의 수장이라는 김종직(1431~1492)을 이은 김굉필(1454~1504)의 제자였다.
정암(靜庵) 조광조는 유교적인 이상향을 급진적으로 추구한 것으로 보인다.
자신에게 엄격하고 타인들에게도 엄격한 잣대를 적용했다고 한다.
급기야는 정적들의 반대에 몰렸고 임금까지 등을 돌렸다. 귀양에 보내지고
사약을 받아 서른여덟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정암의 개혁정책은 실패했으나
그의 학문이나 정신은 후에 존중되었다.
지도에 보면 상현동에 서원말이란 이름이 보인다. ‘서원’을 붙인 초중고 학교도 있다.
조광조 묘지에 있는 심곡서원(深谷書院)이 있다.
학자이며 정치가였던 정암 조광조(1482∼1519) 선생의 뜻을 기리고 제사지내기
위해 세운 서원이다. 선생은 조선 중종(재위 1506∼1544) 때 사림파의 대표로 급진적인
사회개혁정치를 추진하다가 기묘사화(1519) 때 죽음을 당하였다. 효종 원년(1649)에
세워 ‘심곡’이라는 현판과 이름과 토지·노비 등을 임금으로부터 하사받았다.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 때에도 무사했던 전국 47개 서원 중의 하나로서, 선현에 대한
제사와 지방교육을 담당하였다. 마을 뒤쪽 야산에 서쪽으로 자리잡고 있으며, 입구의
홍살문과 내삼문·외삼문·강당인 일소당·사당이 거의 일직선으로 배치되어 있다.
응봉(應峰:230m : 10:50)
응봉 정상에는 커다란 부대가 정맥길에 자리잡고 있어 부득히 철조망을
끼고 우회를 하여 편안 걸음으로길을 걷는다. 이곳은 용인 수지와
수원의 경계능선이라 등산객이 많아 번잡함을 느껴야만 한다.
군부대를 끼고 우회하여 약수터쪽으로 향한다.
매봉(응봉) 약수터(10:55)
2001년 7월8일 개정이란 기록이 있는 약수터는 검은 돌로 그리고 주위의 운동기구를
잘 조성해 놓았다. 약수터에 들러 물한바가지를 마시고 다시 오르길을 시작한다.
편안한 안부 능선을 따라 걸어가는데 자꾸만 등산객의 숫자가 늘어나는 느낌이다.
버들치고개(175m : 11:05 )
경기도 수지구 성복동과 수원시 하광교동을 잇는 고개로 콘크리트 도로로 등산객들이
이곳까지 차를 가지고 오는 모양이다. 차들이 몇대 보이고 이곳부터는 이정표들이
용인에서 수원으로 바뀌기 시작한다. 옛날 이 고개의 양쪽이 늪지대였는데 버들이
무성하여 키나 고리를 만드는 사람들이 이곳에서 버들을 많이 채취하였는데 이러한
연유로 버들치 고개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버들치 고개로 올라서서 다시 편안한 안부를 걷는다.
좌측 철탑사이로 수원의 광교 신도시 공사현장이 보이고 용인과 서울의
내곡동을 잇는 민자고속도로 성복터널이 내가 서있는 발아래로 지나간다.
경기도 용인시 성복동과 수원시 하광교동의 시계(市界)를 걸어간다.
이의동 갈림길(11:45)
이의동은 원래 용인시 수지관할이었는데 1983년부터 수원시로 변경되었다고 한다.
좌측에 수원의 경기대 반딧불 화장실쪽에서 꾸역꾸역 올라오는 등산객들로 인해
이제 형제봉 올라가는 길은 남대문 시장처럼 번잡하기 이를때가 없고 여기저기
않아서 먹고 마시면서 즐기며 떠드는 등산객들로 인해 산이 몸살을 앓고있다.
우측 30m 정도 내려가면 천년의 약수터가 있지만 번잡함이 싫어 그냥 통과한다.
백년수 정상(11:55)
오전에 산행을 할 때 없었던 계단이 설치되어 있어 오르기는 편해졌으나 정맥 산꾼들은
이런 번잡곳에 오면 마치 이방인처럼 어색해진다. 약220m의 거리에 380개의 계단이
설치되었다고 자세한 이정표까지 설치해놨다. 친절한 금자씨처럼...
형제봉이 140m 남았다는 표시와 함께 시인 박재삼님의 詩도 한수 있다.
형제봉 가는 길
형제봉 정상에서 바라본 경기도 용인시의 모습
광교산 형제봉(448m : 12:00)
경기도 수원시 장안구 상광교동과 용인시 수지구 신봉동의 경계능선에 있는 산으로
광교산 줄기에서 가장 멋있는 능선이며 봉우리의 양면이 벼랑이고 동쪽 봉우리
건너편에 조금 낮은 아우봉(弟峰)이 있기 때문에 형과 아우가 나란히 있어
형제봉(兄弟峰)이라고 부른다. 정상에서는 광교저수지와 수원시내 뿐 아니라 용인,
성남, 저 멀리 청계산 자락까지 한 눈에 볼 수 있어서 조망이 좋고 또한 이곳부터는
주봉인 시루봉이 잘 보이면서 군포의 수리산, 의왕의 모락산도 보인다.
이곳에 오르면 주위 전망이 그야말로 일망무제이다.
양지재에서 바라본 형제봉의 모습
양지재(12:10)
용인시 수지구 신봉동과 수원시 상광교동을 잇는 고개로 예전에는 신봉동
양지말에서 수원으로 쉽게 갈 수 있는 길이라 많은 사람들이 이용
하였던 곳이라고 한다.
즐거운 산상파티(12:20~13:20)
오늘 동료 산꾼들이 한남정맥 종주 졸업을 한다고 하여 경기대에서 형제봉으로 올라온
지원부대들이 형제봉 아래에 있는 묘지옆의 숲속에서 음식을 잔뜩 차려놓고 기다린다.
범여는 짜장면 끓여 먹을려고 코펠에 버너, 짜장면은 펴보지도 못하고 그냥 젓가락만
들고 다녔는데도 배가 터질것만 같은 기분으로 포식을 하였다.
쉬크석님, 정문교님, 푸르님님. 그리고 오늘 처음 오신분(제주도 분)들 때문에 정말
맛있는 음식으로 만찬 은 넘 즐거웠습니다. 다들 복 받을겁니다.
1시간의 만찬을 끝내고나니 너무 먹었는지 걸음이 무겁기만 하다. 그래도 넘 즐거웠고...
광교산 비로봉 오르기 직전에 좌측으로 70m정도 떨어진 곳에 김준용 장군
전승지가 있어 베낭을 벗어놓고 거기를 갔다온다.
김주용 장군 전승지와 비(金俊龍將軍戰勝地─碑)는
1977년 10월 13일 경기도기념물 제38호로 지정되었다.
경기도 수원시 장안구의 광교산에 있는 병자호란 때의 전승지 터와 그 기념비로
충양공(忠襄公) 김준용(?∼1641)은 1608년(선조 41) 무과에 급제한 후 선전관
(宣傳官) 등 여러 관직을 거쳐, 병자호란이 일어난 1636년(인조 14)에는 전라도
병마절도사(兵馬節度使)로 있었다.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군사를 거느리고 북상하여
13일만에 수원 광교산에 이르러 청군(淸軍)과 싸워 청 태종의 부마 양고리를 비롯한
청의 장군 2명을 죽이고 수많은 적병들을 사살하는 큰 승리를 거두었다.
1794년(정조 18), 수원성(水原城) 축성을 관리하던 영의정 채제공(蔡濟恭)이
이러한 사실을 그곳 사람들로부터 전해 듣고 김준용이 대승을 거둔 이 광교산의
천연 벽에 전승을 기념하는 글을 새기도록 하였다. 김준용은 1640년(인조 18)에
김해도후부사가 되고 1년 만에 영남절도사가 되었으나
다음 해에 병이 심하여 사임한 후 바로 사망하였다.
김주용 장군 전승지와 비를 구경하고 급한 오르막길을 200m 정도 올라오니 광교산
시루봉가는 우회길이 나타나고 정상으로 직진을 하니 커다란 정자가 나타난다.
흔히들 종루봉이라고 부르는 비로봉이 나타나고 정자 안에는 2편의 詩가 적힌 편액이 있다.
비로봉 490m : 13:50)
형제봉에서 급비탈길로 고도를 100m쯤 낮춘 토끼재에서 다시 150m를
치고 오른다. 김준용장군 전승비가 있는 지점을 들렸다가 다시 돌아와오르니
비로봉 갈림길이 나오고 우회길도 있다.
정상에 올라서니팔각정이 있는 비로봉. 팔각정에는 두 개의 시액(詩額)이 걸려 있다.
종루봉이라고 부르는 비로봉에 오르니 수원시내가 한눈에 들어온다.
이곳에 잠시 머물다가니 동료산꾼들은 우회길로 가버렸는지
아무도 보이질 않고 오늘 지원나온 쉬크석 대장만 보인다.
하광교 소류지도 보이고...
창공은 나를 보고 티없이 살라하네
탐욕도 벗어 놓고 성냄도 벗어놓고
물같이 바람 같이 살다 가라하네
세월은 나를 보고 덧없다 하지말고
우주는 나를 보고 곳없다 하지않네
번뇌도 벗어 놓고 욕심도 벗어놓고
강같이 구름 같이 말없이 가라하네
懶翁禪師(나옹선사 1320~1376)의 詩도 있고...
山中好友林間鳥(산속의 좋은 친구는 숲속의 생요)
世外淸音石上泉(세상에서 가장 맑은 소리는 돌위에 흐르는 물소리다)
토끼재(13:50)
옛날에 토끼를 잡으러 다니던 골짜기 위에 있었다고 하여 토끼재라 불렀다고 한다.
광교산(582m : 14:00)
수원시와 용인시 경계를 이루는 산이다.
정상에 광교산 시루봉이란 표시를 해놨다. 시루봉은 원래 이곳에서 동쪽으로
300m정도 떨어진 커다란 바위봉이 시루봉이라고 한다. 용인시 수지쪽에서
보면 이 바위가 떡시루처럼 보인다고 해서 시루봉이라고 불리었고 지금의
광교산 정상인 시루봉은 측량 삼각점이 있다고하여 폿대봉이라고 불리었는데
언제부터인지는 몰라도 두 봉우리를 다 시루봉이라고 불린다.
광교산은 용인팔경에는 광교설경, 수원팔경에는 광교적설로 양쪽이 다
설경이 아름다운걸로 치고 있다.
신 경준님의 산경표에 의하면 한남정맥에서 높이가 가장 높은 산이다.
택리지에「광교산으로 부터 북쪽으로 관악산이 되고 똑바로 서쪽으로 수리산이 되어서
서해로 들어간다」고 하였다. 본래 광악산(光岳山)이였는데 928년 고려 태조 왕건이
후백제의 견훤을 평정하고 광악산 행궁에 머물면서 군사들을 위로하고 있을 때 정상으로
광채가 솟아오르는 것을 보고 이 산은 부처가 가르침을 내리는 산이라 하여 산 이름을
광교라 사하였다는 일설이 있다. 행정구역상으론 수원시이나 산자락은 의왕.용인까지
뻗어 있어 서로 '의왕 광교산' '용인 광교산'으로 부르고 있다.
광교산은 한때 암자가 89개나 있었다고 전해져 내려왔으나 임진왜란 당시
전라순찰사 이광이 이끄는 삼남 근왕병이 왜장 우키다와데이에게 패하면서
모두 소실되었다고 한다
내가 가야할 능선과 백운산의 모습
저 멀리 범여의 나와바리 구역인 청계산도 보이고...
一望無際
노루목(14:05)
이곳에는 대피소가 있다.
동료 산꾼들과 함께 멋진 단풍앞에서
수원시는 삼국시대에 들어와서 수원지역을 최초로 차지하였던 국가는 백제였다.
백제는 3세기 중엽 고이왕 때에 이르러 급격히 발전하여 4세기 중반 근초고왕 때에
고대 국가체제를 완성하였는데, 지금의 경기도지역 대부분이 당시 백제의 영토에 포함되었다.
하지만 고구려의 남하정책으로 인해 한강유역과 수원을 포함한 그 주변지역은
고구려의 영토로 편입되었으며, 이때 수원의 고유지명은 ‘매홀(買忽)’이었다고 한다.
매홀은 물고을이라는 발음의 표기로 추정되며, 여기에서 한자식
지명인 수원(水原)이 유래한다고 할 수 있다.
해양교통로의 중심지였던 관계로 당항성(현재 화성시 소재)은 삼국간의 항쟁
이 매우 치열하였다. 이렇듯 해양활동의 주무대였던 수원지역은 삼국의
각축장으로 삼국이 번갈아 점령하였는데, 마침내 신라는 한강 하류지역을 차지하고
553년에 신주를, 557년에는 북한산주를, 561년에는 남천주를 설치하였다.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이후에는 9주 5소경의 설치에 따라 수원은 한산주(漢山州)에
속하였는데, 757년(경덕왕 16)에 전국의 지명을 한자(漢字)로 바꿀 때 한주(漢州)
소속의 수성군(水城郡)이 되었다. 이후 고려시대에는 수주(水州)라 하였고,
1271년(원종 12)에 수원도호부(水原都護府)가 되어‘水原’이라는 명칭이 처음 등장하였다.
이후 수주목으로 승격되었다가 수원부, 수원군, 수원부로의 변화를 거듭하였다.
광교산 억새밭 가는 길에서 버스를 기다리는 것처럼...
광교산 시루봉에서 인증삿을 남기고 노루목 대피소를 지나 백운산으로
가는 능선은 우리군 통신대와 경기방송국 송신탑과 조금 더 지나가니
미군통신부대가 완전 점령을 하는 바람에 산꾼들은 이리저리 피해서 간다.
한국군 통신부대
미군 통신부대
미군 통신부대가 점령하고 있는 곳은 백운산이다. 백운산은 한남정맥길에서
약 300m 정도 벗어난 지점이긴 하지만 그래도 안 들리고 갈 수는 없지 않은가
철조망길을 따라 10여분을 걸으니 넓은 공터가 나타나고 경기도 의왕과 수원
그리고 용인의 경계지점이 백운산 정상석이 나타난다.
백운산(白雲山 562.5m:15:00)
의왕시와 용인시, 수원의 3개시의 경계 능선에 있는 산으로서 산세가 깊고 험하여
서울근교에서는 관악산에 버금가는 등산코스로 알려져 있다.
우리나라 산 중에서 가장 많은 이름을 가진 백운산(白雲山). 산봉우리에 늘 구름이
쌓여 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 일명 백운호수로 불리는 백운 저수지를 끼고 있고
백운 저수지 근처는 라이브 카페촌이 밀집되어 있는 곳이다. 백운산은 흔히들
등산 마니아들에게는 광,백,바, 우, 청 5산이라고 하여 광교산에서 청계산을 잇는
5산 종주 코스로도 유명한 곳이다. 정상에서 북서쪽으로 모락산과 수리산이 보이고
멀리 관악산도 시야에 들어온다.
백운산 삼각점(△수원 451 1983 재설)
백운산 정상에서 약간의 휴식을 취한후에 통신부대 철조망을 끼고 우회하여
지지대 고개로 향한다. 이젠 서서히 짙어가는 가을 산행을 만끽하며 하산을 준비한다.
이곳 하산길은 등로를 콘크리트 계단을 내려가는게 장난이 아니다.
마치 그 옛날 강화 마니산에 갔다가 내려오면서 고생한 기억땜에
조심 또 조심을 하건만 자꾸만 무릎에 무리가 오는 느낌이다.
산꾼들은 이런 길을 가장 싫어한다. 30여분을 내려서 도착한 곳이
미군 통신부대이고 곧이어 통신대 헬기장이 나타난 이후 산길이 나타난다.
미군통신부대
통신대 헬기장(15:35)
광교산 헬기장(15:45)
산행시간 8시간 30분이 지나고 나니 서서히 피로도가 몰려 오면서 다리가
무거워진다. 자꾸만 일행들한테 뒤처지는 느낌이다. 서서히 날머리는
가까워지는지 차량소리가 요란하게 들리기 시작한다.
수의 사거리(16:05)
범봉(16:10)
파장(芭長)골(16:25)
경기도 수원시 장안구 파장동에 북수원 톨게이트가 있는 지하차도를
지나니 수인산업도로가 나타나고 프랑군 참전비가 나타나며 오늘
산행의 날머리인 지지대 고개에 도착한다.
원래 파장골은 광주군 일용면 파동(琶洞)이었으며 흔히 파장골, 또는 파장굴
로 불렸다. 파장골은 파장동의 원래 터전인 일림동, 소토굴, 계명산 일대를 가리
킨다. 원래는 비파‘파(琶)’자를 사용했으나 나중에 파초‘파(芭)’자에 장(長)
이 붙어서 파장동이 됐다.
비파‘파(琶)’자에서 파초‘파(芭)’자로 바뀐 연유는 조선 시대 정조께서 살
기 좋은 화성을 만들고자 수원 들어오는 길 입구에 만석거(萬石渠)를 만들고 이
곳에 연꽃과 파초를 심었으므로 파초‘파(芭)’자를 사용했다 하며‘장(長)’자
는 어른이 있다는 뜻에서 더하게 됐다고 한다. 한편 예전에는 파장골을 샛터말이
라고 부르기도 했다고 하는데 산업 도로 쪽에 있는 소토굴과 어떤 관계가 있는
지 알 수가 없다. 혹시 샛터>쉬터>소터>소토의 변화 과정을 거쳐 소토골>소토굴
이 되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프랑스군 참전 기념비(參戰記念碑)
수원시 장안구 파장동 산 44-6번지 지지대 고개에 있는 기념비이다.
1974년 10월 3일 국방부에서 건립한 것으로, 1950년 11월 29일 지상군 1개 대대와 함정 1척으로
한국 전쟁에 참여하여 싸우다가 전사한 프랑스군을 추모하기 위한 것이다.
기념비의 높이는 6.45m이며 둘레는 16m이다.
매년 11월 11일 주한 프랑스 대사관에서 참배행사를 대신한다.
지지대(遲遲臺)고개(16:30)
경기도 수원시 파장동과 의왕시 왕곡동의 경계가 되는 작은 고개로서,
이 고개는 예전엔 사근현(沙斤峴)이라 불렀으며 정조대왕이 아버지의 묘소
인현륭원에 행차할 때마다 지나가는 길목이었다. 이곳의 노송지대는 지지대비가
위치한 지지대 고개 정상으로부터 구 경수간 국도를 따라 도로변에 노송이
생장하는 5km구간이다.
조선 정조임금이 부친인 사도세자 능을 참배하고 한양으로 돌아가는
길에 이 고개를 넘어서면 멀리서나마 더이상 부친의 능을 볼 수 없게 되어 이곳에 멈춰서서 뒤돌아보면서 느릿느릿 행차했다고 해서 느릴 지(遲)자 두자를 붙여 지지대고개라고 불렀다고 한다. 그런가 하면 지지라는 뜻은 보통 느리다는 뜻이 아니고 옛부터 부모를 생각해서
‘지지’ 하다는 뜻으로 말하는 고사에서 유래되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미륵당은 지지대고개에서 약 800m 떨어져있는 화강암 으로된
석불입상으로 속칭 미륵부처라 불리우고 주민들의 신앙의 대상이 되고 있다.
정조(正祖,1752년 음력 9월 22일~ 1800년 음력 6월 28일)는 조선의 제22대 임금이다.
아버지 사도세자의 죽음 이후 할아버지 영조에 의해 요절한 백부 효장세자의 양자로
입적되어 왕통을 계승했다.
재위기간 중 중앙집권화를 위한 노력에 치중하였으며, 친위부대인 장용영의 창설과 자신의 저서
홍재전서를 비롯한 문집과 법전의 재간행, 수원 화성 축성 등을 추진하였다.
무예와 함께 유학의 각 경전에도 두루 통달하여 경연장에서 신하들을 강의하기도했다고 한다.
조선 후기의 중흥군주로 평가된다.
쫑파티 가는 길
무거운 다리를 이끌고 지지대 고개에서 2km 넘게 떨어진 노송나무 숲을 지나
버스를 타고 수원 정자동에 있는 태평프라자 사우나에서 깔끔하게 샤워를
마치고 건너편 10층에 있는 마라도 횟집에서 쫑파티 장소에 참석하여
한남정맥 완주자들의 축하 파티에 참석한 후 서울에 도착하니 10시가
거의 다되어 간다. 아~~ 피곤하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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