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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범여(梵如)의 世上사는 이야기
♣ 백두 대간및 9정맥 후기♣/한남정맥 (終)

한남정맥 제1구간 - 칠장사에서 두창리까지

by 범여(梵如) 2012. 1. 15.

산행일시 :  2012년 01월 15일

산행날씨 :흐린 날씨에 꽤나 쌀쌀함. 오후에는 날씨가 풀림

 참석인원 : 나홀로 산행
 산행거리 : 도상거리: 23.7km +1.3km G.P.S거리: 25.29 km / 7
시간 55 분 소요
 산행코스 : 칠장사-3정맥 분기점-칠장산-관해봉-사거리-도덕산-녹배고개
-38번 국도(죽산 만남의 광장)

                 삼죽면사무소-뜨락 정육점-대성사 노인복지원-국사봉-상봉-가현치-천주교 묘지

                 346.6봉-달기봉-465봉-구봉산-석술암산 갈림길-두창저수지 갈림길-282.7봉-매봉재-두창리 고개 

 소 재 지 : 충북 진천군 금광면 / 경기도 안성시 죽산면, 삼죽면, 보개면 / 용인시 백암면

 

산행 스케줄대로  움직이면 원래는 금북정맥 홍성에서 예산구간을 가야 하지만 이상하리만큼 편치않은 맘이라

그 산행이 내키지를 않아 서울에서 가까운 한남정맥1구간을 택한다. 

요즘 내가 내 자신을 모르겠다. 자꾸만 사람들이 싫어진다.

친구도 싫어지고 가족도 싫어지고... 왠지 모르게 나타나는 대인기피증 같은 우울증 증세인가?

그러다보니 자꾸만 산에 집착을 하는 것일까? 요즘들어 가장(家長)이라는 짐이 이리도

무거운 줄 모르겠다. 집에서도 나혼자만 왕따 당하는 느낌같은 그런...

울 딸이 이번에 모 대학 미대 전체에서 수석으로 졸업을 한다고  하는데도 하나도 즐겁지도 아니하고...

사람과 자꾸만 담을 쌓는 느낌이다.그래도 산에오면 모든게 뻥 뚫리는 그 시원함 때문에 오늘도

나홀로 산길을 걷는다.

“오늘도~오 걷는다 마~아는 정처없는 이 바알길 지나온 자욱마다...”

하는 나그네 설움이란 노래를 혼자 읇조리면서... 이 눈길을 걷는다.

오늘 산행지도와 고도표

(한남정맥(빨간색)과 한남금북정맥(초록색), 클릭하시면 확대됨)

 

1대간 1정간 13정맥 중 평균고도가 가장 낮은 한남정맥은
백두산에서 지리산으로 내달리던 백두대간이 속리산 천왕봉에서
갈래를 쳐 한남금북정맥으로 이어오다 안성 칠장산에 이르러
두 개로 나뉘는 산줄기 중의 하나로 한강의 북서쪽을 따라
김포 문수산까지 178.5km를 이어가는 산줄기이다. 한편 금강의
북쪽 울타리가 되어 안흥진을 향해가는 산줄기는 금북정맥.

한남정맥은 광교산과 백운산이 겨우 500m를 넘길 뿐 대부분이
200~400m의 낮은 봉우리로 서해안의 넓은 평야지대와 더불어 수도권
개발영역에 포함되어, 남한 9정맥 중 산줄기의 훼손이 가장 심하다.
난개발과 군부대의 주둔, 절개지 등으로 정맥이라는 표현이 무색하지만
"산자분수령" 의해 물길은 나뉘어 동북쪽에서 발원되는 물줄기들은
한강으로 합수되고, 남서쪽의 물줄기는 남양만으로 합수되어
서해를 이루어 한반도의 중심부를 가르는 중요한 산줄기이다.

한남정맥은 여섯번의 고속도로를 지나고 두번의 철길을 건너고
군부대를 에둘러 가고 아파트 단지를 지나야 할 정도여서
더 훼손되기 전에 들려야 할 정맥이라 여겨진다. 마지마가 정맥의 산줄기를 시작한다.

 

한남 금북정맥이란 한남 금북정맥(총 도상거리 158.1km)은 백두대간의 속리산 천왕봉(1057.7m)에서 분기하여 

북으로는 한강(총길이 494.5km)과 남으로는 금강(총길이 401km)의 분수계를 이루며, 충청북도를 북서방향으로

연결하고 경기도 안성의 칠장산까지 백두대간에서 남한의 정중앙을 잇는 큰 산줄기이다. 

 

 속리산 천왕봉에서 내려온 한남금북정맥은 충북 보은의 구봉산등 500m급의 많은

 봉우리를 넘으며 이어지다 청주의 선도산과 백제시대의 유명한 상당산성을 지나 괴산의

 좌구산을 넘고, 음성의 보현산과  넘으면서 9구간정도 꾸준히 500m~600m급의 정맥 길로 줄기차게 이어오다

음성의 금왕읍을 통과하면서 표고 150m 이하의 구릉지대(도상거리 20여km)를 지나면서 끈질기게 이어지게 되고,

다시 이천의 마이산을 넘으면서 안성의 칠장산에 올라 한남금북정맥은 분기된다.

 

한남 정맥(총 도상거리 178.5km)은 칠장산에서 북서쪽으로 경기도 용인과 수원의 산줄기를 거쳐 부천과 인천을

지나 김포의 문수봉에서 한강하구로 그 맥을 가라앉히고, 남서방향으로는 금북 정맥(총 도상거리 282.4km)으로

이어지며 안성땅을 지나 충남의 천안과 예산의 산줄기를 거처 홍성과 당진, 서산을 지나 태안의 지령산에서

서해바다로 그 맥을 가라앉히는 3정맥 총 도상거리 619km에 달하는 큰 산줄기이다.

동서울에서 안성시 죽산면까지 가는 버스표

사람의 관습이란 참으로 무서운 모양이다.  무박산행으로 일요일 새벽에 보통

04시부터 산행을 한터라 토욜 저녁에 집에서 잠을 자게되면 꼭 03시면 잠에서 깬다.

오늘도 예외는 아니다.  지하철이 05시 30분이 지나야  운행하기에 2시간정도 잠을

더 자야  산행에 들 피곤할 터인데 무박산행의 관습땜에 잠을 이룰수가 없어 쇼파에서

뒹굴다가 05시 40분경 집을 나선다. 동서울 시외버스 터미널에 도착하여 죽산가는

버스표를 구입하고 간단하게 아침식사를 한 다음에 버스에 오른다.

죽산경유 진천가는 버스(06:30)

버스를 탔는데 06시 30분발 버스가 무슨 연유인지는 몰라도 10분이 지나서야

출발을 한다. 잠을 좀 청하려 하는데 버스 통로의 불도 끄지않고 크락션을 울려대면

달린다. 도저히 잠을 이룰수가 없다. 그러는 사이에 버스는 죽산에 도착한다.

금남, 금북, 한남금북정맥을 혼자 타면서 느낀 감정이지만 이 지역의 버스기사님들은

서비스 마인드가 참으로 부족하다. 거기다가 한결같이 라디오는 왜그리 크게 켜고 다니는지...

1시간만에 경기도 안성시 죽산터미널에 도착한다. 날씨는 일기예보와는 달리 상당히 춥다.

죽산 버스 터미널(07:30)

터미널에 도착하여 칠장사가는 버스시간을 물으니 다음차는 09시 30분차란다.

하는 수 없이 택시를 이용한다. 죽산개인택시 이 창호(경기 66바 4120)란 분이시다.

올해 연세가 72세라는데 참으로 정정해 보이시다. 20여분을 같이 가면서 이런저런

얘기를 하신다. 그러면서 자기는 일하는 자체가 참으로 즐겁다고 한다.

인생 선배같은 느낌에 저런 긍정적인 마인드가 부럽다. 참으로 배워야 할게 많으신

분이다. 산에 대한 얘기, 세상사 등... 칠장사에 도착하여 산을 조심해서 타라는 부탁과

함께 얼마되지 않지만 뒤에 우수리는 받지 않으신다. 감사하고 늘 건강하시기를...

죽산 시외버스 시간표

 칠장사일주문(07:50)

칠장사는 칠현산 기슭에 있는 사찰로 신라 7세기 중엽에 자장율사에 의하여 개기하였다는 사찰로서,

문헌에 보면 사찰이 번창할 때는 건물이 대웅전을 비롯하여 총 56동 건물이 있었다는 기록이 있으며,

칠장사에는 국보, 보물급 등 다량의 문화재를 보유하고 있는 사찰로 11세기경 혜소국사가 7악인을

제도한 고사에 따라 산이름을 7현산(七賢山)이라 부르게 되었으며 칠현인이 오래 머물다 하여 칠장사로 명하였다.


특히 벽초 홍명희의 임꺽정 역사 소설의 일곱 도적과 병해스님 얘기의 배경이 된 곳으로,  유명하다.
 

신라 47대 협안왕 서자인 궁예가 13세까지 칠정사에서 유년기를 보내면서 활연습을 한 활터가 남아있고,

고려시대 혜소국사에 의해 칠악인이 칠현인으로 제도된 일곱현인을 화신인 나한전는 어사 박문수가

기도를 드리고 장원급제를 했다고 전해지며, 당시의  과거 시제인 "몽중등과시" 의 현장이며 옛날에는

과거 시험에 장원을 꿈꾸던 선비들이 많이 찾았고, 현재도 수험생 자녀를 둔 사람들의 공양이 많이 있는 곳이다.

 

택시에서 내리니 날씨가 굉장히 춥다. 잠깐사이 장비를 점검하는데 손끝이 엄청 시리다.

이른 아침이라 그런지 상인들도 문을 열지 않았고 칠장사는 말 그대로 적막강산이다.

옷을 한벌 더 껴입고 칠장사를 참배하기 위해 가람으로 올라간다.

칠장사 당간지주(찰간대)

칠장사 일주문 밖의 밭 가운데 자리잡고 있어  칠장사에 왔어도 놓치기 쉬운 곳이다.

 지방유형문화제39호로 우리나라에선 제일귀한 당간지주로 역사적자료다 사찰은 대대적인

불사로 크게 복원해 많은 시민들의 관광코스로 알려저 찾는이 가 많은 절이다.

어사 박문수길

옛날 충청도에서 한양으로 가던 길로 1723년 박 문수가 과거를 보러갈 때

지나가던 길이며 박 문수가 과거 시험을 보러 가던중 칠장사에 묵으며 기도를 올리고 잠에

들었는데 꿈속에서 부처님이 나타나서 과거시험 구절을 가르쳐 주어 장원급제를 하였던

설화가 전해져 내려오면서 칠장사와 어사 박문수 길이 유명해졌다고 한다.

 

칠장사에는 다음과 같은 설화가 있다,  
1) 신라 47대손 현안왕의 서자인 궁예가 10세까지 칠장사에서 유년기를 보내면서 활 연습을 한 활터가 남아있다.
2) 칠장사에서 열반하신 '여인천하' 드라마의 갓바치스님(병해대사)과 제자인 임꺽정이야기의 발원지이며,

천민으로 등용될수 없는 사회제도를 바꾸려 했던 두 사람의 실화 이야기와 스승에게 조성해 바친 속칭 '꺽정불'이 전한다.
3) 고려시대 혜소국사에 의해 7악인이 7현인으로 제도된 일곱 현인의 화신인 나한전은 어사 박문수가 기도를

 드라고 장원급제를 했다고 전하며 당시의 과거시제인 '몽중등과시 (夢中登科時)'의 현장이다.

시험 합격을 비는 사람들의 발길이 많은 곳이다.

칠장사 사천왕문

칠장사 경내로 들어가기 위해서 반드시 거쳐야 하는 사천왕문에  들어서 4대천왕에게

예를 올리고 경내로 들어선다. 부릅뜬 4대천왕의 눈매가 무섭기만 하다.

칠장사 대웅전(七長寺 大雄殿)

경기도 안성시 죽산면 칠장리에 위치한 칠현산 칠장사의 주불전으로 석가모니불을

 봉안한 정면 3間, 측면 3間의 전각이다. 현재의 대웅전 건물이 매우 오래된 양식이며

그 위에 세운 목조건물은 조선말기에 다시 세워진 것으로 보인다.

 

기단은 4단의 장대석을 가지런히 쌓아 올렸으며 제일 윗부분과 그 아래 장대석의

 사이는 깊은 홈을 파서 단을 구획하였다. 이 부분은 궁궐건축의 기단에서는 약간

 턱을 두는 정도로 처리하는데 이 건물의 경우는 그 수법이 독특하다.

기단 중앙에 있는 계단의 좌우 우석은 위를 약간 둥글게 돌렸으며 우석 측면에는 구름모양의 양각을 하였다. 

주초석은 전면의 4기와 제2열의 양측면의 2기는 잘

 다듬은 것이고 나머지 것은 자연석이다. 전면의 다듬은 초석들은 전체를 네모지게 가공하고

그 위에 원형의 주조를 두었으며 주좌에는 둥글게 홈을 넣었고, 고맥이까지 뚜렷이 만들었다.

이러한 형태의 주춧돌은 대개 통일신라에서 고려중기까지 흔히 나타나는 것으로,

주춧돌의 형상으로 보아서는 이 주춧돌들이 칠장사의 창건 때 만들어진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

대웅전 편액

건물은 약간의 흘림을 둔 둥근 기둥을 세우고 창방·평방을 걸은 위에 다포식의 공포를

짰는데 공포의 형상은 조선말기에 흔히 볼 수 있는 모습이다.

즉, 살미첨자가 수평으로 뻗으면서 그 끝에 연꽃을 조각한 장식이 가미되고

 내부의 끝은 둥글게 다듬어져 있다.지붕은 간단한 맞배지붕인데 지붕 용마루 양끝에 취두를 두었다.

이처럼 사찰의 법당건물에 취두를 올려놓은 것도 대개 조선말기 고종년간의 사찰에서

 자주 볼 수 있는 현상이다.

칠장사 대웅전은 1983년 9월 19일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114호로 지정, 관리하고 있다.

 

     

 

     

 

     

 

 

대웅전 주련

海底泥牛含月走(해저니우함월주) 바다 밑의 진흙소는 달을 물고 달아나고 

巖前石虎抱兒眠(암전석호포아면) 바위 앞의 돌호랑이 새끼 안고 졸고 있다 

 鐵蛇鑽入金剛眼(철사찬입금강안) 쇠 뱀은 금강안을 뚫고 들어갔는데 

崑崙騎象鷺絲牽(곤륜기상노사견) 곤륜산이 코끼리를 타고 해오라비가 끌고 있다

 

이 주련의 게송은 고봉선사(高峰禪師)의 게송입니다.  깨달음의 세계를

상징적으로 표현하였기에 여기서는 자구의 해석만 했을 따름이니 심오한

뜻은 잘 헤아려 보시기 바랍니다.  상직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언어로

깨달음의 세계를 표현하고 있습니다.  다만 이 게송은 우리의 마음자리인

본성(本性), 혹은 진여(眞如)의 세계, 반야심경의 용어를 빌면 공의 세계인 

반야바라밀의 본지(本地)인 진실불허(眞實不虛)의 세계를 표현했다고 합니다.

대웅전 삼존불

오랫만에 대웅전에 들린다. 올때만에 스님들이 기도를 하시거나 염불을 하는

바람에 아니면 시간에 쫓겨서 바깥에서 저두삼배(低頭三拜)의 예만 올렸는데

오늘은 이른 아침이라 대웅전에 나혼자다. 3정맥의 마지막 구간을 무사히 마쳐

달라고 부처님께 간절히 기도를 한다.

 

요즘은 문득문득 출가를 생각한다.

사람 사는게 다 苦이기는 하지만...

이 참에 남은 여생을 부처님께 귀의(歸依)하여  중노릇이나 할까보다.

하긴 뭐 중노릇인들 쉽기야 하겠냐마는...

 

나는 정말 스님이 되고싶다

스님 중에서도 땡중이 아니라 진짜중, 백척간두(百尺竿頭) 
면도날처럼 氣가 살아있는 중,
生死의 허물을 벗기위해서 백척간두(百尺竿頭) 에 홀로서서
한 발자국 더 나아가는 시퍼런 중(衆),
한참을 살다가 언제 가는지도 전혀 모르게
저 숲을 지나는 바람처럼 왔다가 물위에 비친 기러기처럼 사라지는 중,

법문이고 나발이고 누가 물으면 그저 웃기만 하는 천치처럼,
잠시 나와 노는 세상이 너무나 아름다워
혼자서 물에 비친 얼굴 들여다 보면서 빙그레 웃는 그런 중이 되고 싶다.

굳이 중질이랄 것도 없이,
산속에 들어가 내이름 석자 땅에 묻어버리고
산을 보고 하늘을 바라고며 허허 웃으며 묻혀 지내거니와
소리없이 흔적없이 그렇게 살다 가고 싶은..............

 최인호(소설가) "나는 아직도 스님이 되고 싶다" 중에서

칠장사혜소국사비(七長寺慧炤國師碑)

혜소국사의 업적을 기리기 위하여 세운 비이다. 혜소국사는 고려 광종 23년(972)에 안성에서 출생하여,

 10세에 출가하였으며 17세에 융천사(融天寺)에서 가르침을 받았다.

 국사는 말년을 칠장사에서 보내면서 많은 사람들의 존경을 받았다 한다.

현재 비는 비받침인 귀부(龜趺)와 비몸돌·머릿돌이 각각 따로 놓여 있는 상태이다.

흑대리석으로 만든 비몸돌의 양쪽 옆면에는 상하로 길게 두 마리의 용을 새겨 놓았는데

그 솜씨가 뛰어나다. 비문에는 대사의 생애와 업적을 기리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으며,

글씨에서는 고려인다운 뛰어난 풍모가 느껴진다.

문종 14년(1060)에 세워진 이 비에는, 다음과 같은 설화가 전해지고 있다. 임진왜란 당시

왜의 장수인 가토가 이 절에 왔을 때, 어떤 노승이 홀연히 나타나 그의 잘못을 꾸짖자 화가

난 가토가 칼을 빼어 베었다. 노승은 사라지고 비석이 갈라지면서 피를 흘리니 가토는 겁이

나서 도망을 쳤다 한다. 현재 이 비의 몸돌이 가운데가 갈라져 있어 이러한 이야기를 뒷받침해 주고 있다.

산신각에서 바라본 칠장사의 가람(伽藍)

산행을 시작하다(08:20)

오랫만에 여유로운 시간으로 칠장사 경내를 참배하고 산행을 시작한다.

경내에서 빠져나와 산행길을 접어드는데 선답자들의 시그널이 반긴다.

지난 여름 한남.금북정맥 하산길에 내려온 이후 7개월만에 3정맥 마지막을

위해 다시 이 길에 들어서는 감회가 새롭기만 하다.

3정맥 분기점(08:30)

남한에 있는 9정맥을 완주하려면 3번을 거쳐야 하는 분기점이 딱 2군데

있는데 전라북도 진안에 있는 조약봉과 이곳에 있는 칠현산 분기점이다.

이곳의 3정맥 분기점이란 한남.금북정맥, 한남정맥, 금북정맥을 말하며

한남금북정맥은 속리산에서 이곳 칠장산 분기점을 말하며

한남정맥은 이곳 칠현산 분기점에서 김포 문수산을 지나 보구곶리까지를

말하며 금북정맥은 천안, 공주를 거쳐서 서산을 지나 태안반도끝 안흥만

까지를 말함이다.

 

한남정맥은 9정맥중에서도 서울과 인근인 까닭에 군부대와 각 지자체의

탐욕과 무분별한 계획으로 인한 난개발로 정맥의 의미가 별로 없는 곳이다. 

3정맥 분기점을 찍고 칠장산으로 향하다.

칠장산 정상 부근에는 멋진 상고대도 연출되고...

작년 여름에 지나온 한남. 금북정맥 산그리메

칠장산 좌측에 있는 세븐힐스 C,C

오늘은 골프장 둘러보는 산행같은 느낌이다. 온 천지가 골프장이다.

칠장산 우측에 있는 안성C.C의 모습

칠장산(七長山:492.4m : 08:35)

경기도 안성시 삼죽면, 죽산면 그리고 금광면의 경계를 이루는 칠장산(492m)은 북으로는  한남정맥, 남으로는

금북정맥, 동으로는 한남·금북정맥으로 나뉘어 지는 중요한 분수령에 위치한 산으로 고찰 칠장사를 품고 있으며,

칠현산(516m)은 이 산의 남쪽에 위치하고 있다.

 

  백두대간상의 속리산에서 서쪽으로 갈라진 한남·금북정맥이 청주의 상당산, 음성의 보현산을 거쳐

칠장산에 이르러 북쪽으로 갈라진 한남정맥은 양자산·검단산 등을 솟구친 후 문수산(김포)까지 이어지고,

칠장산에서 남쪽으로 갈라진 금북정맥은 칠현산을 지나 오서산·팔봉산(서산) 등을 일으킨 후 서해로 가라앉는다.

 

칠장산 정상에서 3정맥의 마지막을 시작하는 간단한 예를 올리고 서둘러 출발한다.

산 정상에는 날씨가 상당히 춥고 안부에서 불어오는 바람 역시 만만찮다.

체온을 뺏기지 않으려고 상당히 애를 써야 할것 같다.

안부에서 불어오는 칼바람은 자꾸만 드세지는 느낌이다.

관해봉(觀海峰 :457m:08:50)

날씨가 청명할 때는 서해 바다가 보인다고 해서 이름 붙여진 관해봉(觀海峰)을 지나지만

나무들에 막혀 조망은 기대할 수가 없고 정상을 알리는 표지판이 나무에 걸려있을 뿐이다.

저 아래 또다른 골프장인 안성 Q C.C가 자리를 잡고있다.

골프장이 자기 소유임을 알리는 철조망을 따라 한동안 같이간다.

15번 송전탑(09:05)

한 동안 편안한 임도를 따라 계속 진행한다.

안성 Q C.C의 모습

이런 호젓한 오솔길도 지나가고...

임도가 끝나면서 다시 등로로 접어든다.

안성의 山河들

안성땅에 들어섰으니 안성맞춤의 유래를 살펴보면 제짝이 아니었던 것을 갖다 맞출 때

매우 잘 맞음을 비유하면서 안성맞춤이란 말을 쓴다. 그 만큼 어 떤 물건이나 사람이

 아주 잘 어울릴 때 '안성맞춤'이라 하는데 안성은 유기제품을 장인정신과 뛰어난 솜씨로

 정성껏 만들어 품질이나 모양등 기교면에서 사람들의 마음을 만족시켜 '안성맞춤'이란

 말이 쓰이게 되었다. 특히 안성 유기가 다른 지방의 것보다 유명한 것은 서울 양반가의

 그릇을 도맡아 만들었기 때문이다. 안성에서는 두 가지 종류의 유기를 만들어 판매하였는데
하나는 서민들이 사용하는 그릇으로 이것을 '장내기'라고 하였고, 다른 하나는 관청이나

 양반가의 주문을 받아 특별히 품질과 모양을 좋게 만들어는데 이를 모춤(마춤)이라하였는데
여기서 '안성맞춤'이란 말이 생겨났다고 한다.

 

세월이 흘러 유기업도 쇄퇴기로 들며 안성엔 이제 명물이  바우덕이사당패가 안성을 알리는 새로운

 명물이 되었고 영화 ‘왕의남자’를 통해 더욱 유명해진 안성남사당 바우덕이 일명 화랭이는

 여자의 몸으로 남사당꼭두새가 되어 안성의 남사당을 한국에 명물로 만든 대단한 여걸이다.

도덕산 (366.4m)

경기도 안성시 죽산면 진흥리와 삼죽면 진촌리의 경계 능선에 있는 산으로서

도덕산은 새가 움직이는것 같다하여 조동산(鳥動山)이라 부르기도 하고 옛날에는

도증산이라 부르기도 했다. 산 정상에는 알아볼 수 없는 삼각점이 있고  주위의

전망은 조망을 할 수가 없다. 꼭대기에 산꾼들이 버린 막걸리병이 눈쌀을 찌푸리게 한다.

이 아래에도 최근에 생긴듯한 이름을 알 수 없는 골프장이 눈에 덮혀 휴장을 하고 있다. 

이름을 알 수 없는 골프장

나 역시 한동안 골프에 미쳐 1990년 중반부터 2009년까지 참으로 많이 다녀서

웬만한 골프장은 다 아는데 새로생긴 골프장이 너무많아 이젠 알길이 없다.

도덕산에서 급하게 내려오는데 이곳은 음지라 그런지 눈이 꽤나쌓여

상당히 미끄럽다. 기독교인의 묘지를 지나서 다시 편한 길을 내려오니

녹배고개가 나타난다.

저 나무는 전생에 부부였나보다 참으로 많이 닮았다.

녹배고개(09:50)

안성시 죽산면 장릉리와 삼죽면 진촌리를 잇는 고갯길로 녹밭재라고 하며

생긴지가 얼마되지 않은듯한 송전탑이 옆을 통과하며 능선에 올라서니

한 동안 임도와 같이 동행을 한다. 언젠가는:노를저어건너는 재"라 하여

안성사람은 놋배고개 혹은 놋박재라고 한다. 우측에는 전원주택이 한채있다.

녹배고개에서 내려서다 다시 6번 송전탑 아래로 치고 오른다.

그리고는 다시 편안한 길을 걷는다.

뭣이 저리도 좋아서 붙어 지낼까?. 참으로 부럽다. 근데 자꾸만 혼자 있고 싶으니...

편안한 능선길을 아무 생각없이 걷는다. 산길을 걸을때가 범여로서는

어쩌면 가장 행복한 시간이다. 모든걸 잊을수 있는 망각의 시간이기에...

차량소리가 들리면서 커다란 절개지가 나타난다.  휴게소가 들어선 모양이다.

여기에서 정맥길이 끊겨버려 부득히 우회하여 38번 국도로 내려선다.

도로를 무단 횡단하다.

이곳은  4차선 도로로 차들이 상당히 빠르게 달린다.

그렇다고 건널목도 보이지 않고 지하도도 보이지 않는다.

하는 수 없이 차를 흐름을 확인하곤 목숨을 건 무단횡단을 감행한다.

대간 정맥길 타면서 하긴 이런 도로를 한두번 무단횡단 했는가 건널목 위의

철망까지 간단하게 넘어서 죽산 만남의 광장에 도착한다.

죽산 만남의 광장(10:10)

경기도 안성시 죽산면 장능리와 삼죽면 내강리를 연결하는 38번 국도이다.

정맥길을 끊어 엄청난 절개지로 도로를 냈다. 이런곳은 터널로 뚫어서

정맥길을 이었으면 좋으련만...

 

이곳 휴게소 의자에서 빵과 커피 한잔으로 간식을 먹은 다음에 10분간의

휴식을 취한 다음에  다시 베낭을 메고 길을 떠난다.

이곳 휴게소는 주유소도 없고 그 흔한 커피자판기도 없는 곳이다.

만남의 광장 휴게소 화장실 뒤로 올라서니 정맥길의 만가운 시그널이

반기고 묘지 한기가 양지 바른곳에 자리잡고 있다. 조금 더 오르니

아카시아와 밤나무가 어지럽게 자리잡고 있어 걷기가 심히 불편하다.

밤나무와 아카시아 나무가 어지럽게 널려있는 정멕길을 지나고...

이곳은 산의 높이가 낮은 탓인지 좌우로 야금야금 정맥길을 갉아 먹어면서

들어오는 느낌이다. 공장, 묘지, 주택지 인간들의 탐욕으로 인해 정맥길은

없어지는 느낌이 안타깝기만 하다. 후답자들의 산행기에는 어케 표현을 할지?

정맥길에서 바라본 덕산 저수지와 뒷산 아래에 있는 KT&G 연수원의 모습

저 멀리 송신탑 뒤에는 내가 가야할 상봉도 아련한 모습으로 보이고...

 

오늘은 뭘 잘못 먹었는지 자꾸만 배가 아파온다. 벌써 2번이나 큰것(?)을

버렸는데 또 배가 아프다. 양지바른 곳에 또 볼일을 본다. 왜 이러는지...

야트막한 능선길을 곡예하듯 걸어 내려오니 죽산면사무소가 정맥길을 끊어버려

면사무소 뒷담을 넘어 마당으로 들어서서 삼죽 작은 도서관 앞으로 나온다.

이곳에는 면사무소와 의용소방대, 작은 도서관이 자리잡고 있다.

작은 도서관 옆을 나오니 면사무소 앞의 마당이 나온다.

삼죽면 사무소(10:40)

원래 이곳이름은 죽일면 죽이면 죽삼면 이었는 데 부르기가 거북해 일죽 이죽 삼죽으로 부르게 된곳이다.

면사무소 앞을 나와 82번 도로를 타고 장호원 쪽으로 100여m쯤 가다가 70번

도로가 있는 용인쪽 도로를 따라 계속 걸어야 한다. 이곳은 차량은 별로없다.

조금 가니 삼죽면 노인복지회관이 나타나고 가로수에는 반가운 시그널이 걸려있다.

뜨락 가든(10:45)

도로를 따라 5분정도 걸어니 뜨락가든이 나타나고 이곳에서 좌측으로 들어선다.

자꾸만 없어지는 정맥길에 안타까움이 앞선다.

뜨락가든과 빨간 기와집 사이로 걸어가야 한다.

조금가니 2011년 1월 26일에 구제역으로 소를 매몰한 곳이 나타나고

이곳에서 좌측으로 오르니 한우축사가 나타난다. 지난해에는 구제역으로

고생하고 올해는 소값 폭락으로 고민이 많을듯 싶다. 어쩌면 이 범여의 속과 같이...

한우 농장을 지나니 꽤나 잘지은 주택이 나타나고 시멘트 도로를 따라가다

우측의 산으로 올라선다.

도로에서 산으로 오르니 입구에는 반가운 시그널이 나타나고 이곳에는 군 작전에

쓰여던 전선(일명 삐삐선)이 6가닥이 어지럽게 땅바닥에 널려있어 걷기가 불편하다.

짧은 급경사를 치고 오르니 우측에는 꽤나 큰 덕산 저수지가 보이고 그 옆으로

70번 도로가 지나가고 있다. 산 아래 과수원에는 벌써 봄농사를 준비하려는지

바쁜 농부의 손길이 분주하다. 산 정상에 올라 다시 편안한 안부로 내려오니 포장도로가

보이고 좌측에는 굉장히 큰 수원백씨 문경공파 영묘당이 나타나면서 도로로 내려선다. 

대성사 가는 도로(11:00)

도로에 내려서서 다시 절개지의 산으로 오른다. 이곳에서 도로를 타고 계속

올라가도 다시 정맥길을 만난다. 그러기에 임도파들이 좋아하는 길이지만

원칙을 고수하기에 산길을 계속해서 걷는다. 10분정도 걸으니 뒷산가는 갈림길에서

다시 도로에 내려서니 우측에 대성사 노인요양원이 나온다.

도로를 건너 급한 절개지로 올라서서 정맥길을 이어간다.

대성사 노인복지원(11:15)

다시 도로로 내려서니 대성사 노인 복지원이 나타나고 저 멀리 법당에서

사시예불이 시작됐는지 낭랑한 스님의 예불문의 오분향례(五分香禮)가 들려온다.

 戒香 定香 慧香 解脫香 解脫知見香 (계향 정향 혜향 해탈향 해탈지견향)

 光明雲臺 周邊法界 供養十方 無量佛法僧(광명운대 주변법계 공양시방 무량불법승)
 獻香眞言(헌향진언) 옴 바아라 도비야... 같이 동참하진 못해도 걸어가면서 예불문을

하면서 걸어간다. 잠시후에 도로가 끝나고 다시 우측의 산으로 오른다.

우측 산으로 올라서는데도 계속해서 대성사의 염불소리는 들리고...

길가에는 이렇게 멋진 남매바위(범여의 생각中에서)도 나타나고...

안성시의 무관심

서울인근의 도시로서는 안성시의 산에 대한 무관심은 가히 상상을 초월한다.

이곳까지 오면서 안성시에서 이정표하나 설치하지 않았다. 산에 대한 무지인가

무관심인가? 이곳에서 안성구간에 처음으로 이정표를 만난다. 그것도 시에서

설치한게 아니고 허브마을이란 개인업체에서 영리를 목적으로 한 홍보를 위해서...

하긴 지난해 금북정맥 2구간에 이티재에서 각원사 구간의 안성지역에는 미관상

좋지 않다는 이유로 산꾼들의 시그널까지 철거해 버린 걸 봤으니 이해도 할만하다.  

허브마을 이정표에서 우측으로 올라서니 편안한 등로가 나온다.

잠시후에 헬기장이 나타나고... 계속해서 편안한 길을 걸어간다.

서서히 시야에 국사봉이 들어오고...

음지에는 약간의 눈이 쌓여있긴 하지만  미끄럽지는 않다.

이곳에서 지난 11월에 계룡산 천단 아래에서 만난 김해 백두 산악회

홍길동 아우님의 시그널을 만난다. 지나간 지가 얼마되지 않았는지

시그널이 깨끗하다. 이렇게 만나도 참으로 반갑기만 하다. 

저 멀리 국사봉 아래에 미륵사가 시야에 들어온다.

 

안성지역은 미륵신앙이 성했던 곳이다. 그러기에 곳곳에 미륵불이많이 조성되어 있다. 

아양동 미륵, 기솔리 궁예미륵, 쌍미륵,태평당의 미륵 등등... 박지원의 소설 허생전에서 허생이 

장보기를 나선 곳이 안성이요,홍명희의 임꺽정의 무대가 안성이요,남사당과 장길산의 무대가 안성이다.

이곳은 이상세계를 기다리는 소박한 백성의 숨결이 있는 곳이다.

 

미륵불은 미래의 부처다. 지금은 도솔천에서 중생의 구제를 바라며 기도하는 보살이지만,

미래에 부처가 되어 이 땅에 내려와 석가모니가 못다 구제한 중생들을구제하는 부처가 미륵불이다.

 

역사를 돌아 보면 어려운 백성들을  구제하고자 스스로 자처한 미륵도 있었고,

좋은 세상이 오기를 기다리며 백성들이 만든 미륵도 있었다. 

그 만큼 세상살이가 힘들어 미륵을 기다리는 백성이 많았다는 것인데,

언젠가는 소박한 백성의 염원이 꼭 이루어 지리라.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안성시 삼죽면 기솔리 33-1번지 쌍미륵사에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36호로 지정된 기솔리 석불입상이 있다.

남미륵은 5.4미터로 체구는 굵고 여미륵은 5미터에 약간 마른편이다.

석가와 미륵, 현재와 미래를 주관하는 불로써 병립불상은 법화경 사상에서 유래한다.

 

특징은 고려초기 불상양식을 보여주고 있으며 문화재적 가치로는 경기도 일대 최대의

석불입상으로써 지방양식불상과 석불양식 연구에 중요한 불상으로 주목받아야 할 것이다.

 

 안성에는 미륵신앙의 상징 미륵상이 많이 분포되어 있다 후삼국의 궁예가 미륵이라고

 자칭하고 자신의 모습을  미륵으로 만들어 국사봉아래 세운 궁예미륵이 있는 곳이다  

엄청나게 큰 송전탑도 지나고...

국사봉 오름길에 이런 육산에서 보기 힘든 멋진 암릉도 있고 암릉사이에

처절하게 삶을 유지하는 갈참나무가 애처롭기만 하다.

국사봉 갈림길(11:55)

이곳에서 국사봉은 좌측으로 50여m 정도 떨어져 있다. 국사봉을 들리고 다시

이곳으로 되돌아와야 한다. 그렇지 않고 무심코 직진을 해버리면 보개면

남풍리가 나와 버린다.

국사봉에 올라 오늘 처음으로 산에서 사람을 만난다.

반갑기가 그지없다. 2명의 부부와 진천에서 오셨다는 3명의

남자 등산객. 이분들은 정맥꾼은 아니고 이 아래 남평리에서

국사봉까지 온 등산객이다.  혼자 산을 다니면 가장 무서운게

사람이고 가장 반가운게 사람이다. 요즘 겨울철에 수렵지구에

들어가면 사냥꾼이 가장 겁난다. 그 친구들은 소리만 나면 총질을

 해대는 바람에  나홀로 산꾼들에겐 공포의 대상이다.

서로 반갑게 인사를 하고 인증샷을 부탁한 후에 내려오려니 사과와

밀감을 주면서 가면서 먹으라고 한다. 고맙기만 하다.  

국사봉 전망대에서 바라본 안성시 보개면의 전경

국사봉(國師峰:438m:12:05)

안성시 보개면과 삼죽면 경계 능선에 있는 산으로서 예로부터

국사신앙으로 유명한 곳이다. 과거에는 산 전체에 사찰이 많았다고

한다.  도선국사가 미륵사를 세운데서 연유하여 산 이름을

국사봉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국사봉에는 5기의 불상이 있는데

2기는 미륵사지에 있으며 3기는 정상부근의 국사암 법당 오른쪽에

있다고 한다. 

이 산아래 쌍미륵사에는 궁예미륵이있고 궁예에 대한 전설이 남아 있다.

 

국사봉은 인근 보개면이나 삼죽면에서는 가장 높은 영산으로 국사봉 정상에는 거대한 바위 3개가

서 있는데  흡사 기차바위 같기도하고 조각을 하다가 중도에 그만둔 석불의 형상같기도 하다.

국사봉에 자리잡은 흔한 바위산의 전형적 모습을 보게 되는 것이다.

국사신앙은 마을에서 마을공동체의 안녕을 기원하면서 올리는 당굿이나 서낭굿,당산굿 따위와

달리 보다 포괄적이고 넓은 지역을 관장하는 신앙성을 보여준다.

으례 국사당, 혹은 국사봉 같은 식으로 신앙대상이 정해지는데 기솔리 국사봉은 세 바위가 경배대상인 것이다.

 다시 되돌아온 국사봉 갈림길

갈림길로 되돌아와서 좌측 내리막길로 간다. 이곳은 음지라 눈이쌓여 약간

미끄럽기는 하지만 그래도 편안한 육산길을 빠른속도로 걸어간다.

오후로 들어서면서 기온도 올라가는지 이제 귀마개를 하지 않아도 춥지않고

바람도 잦아들어 약간의 땀이 날 정도이다.

내리막길에서 만난 돌탑 2개도 만나고...

헬기장도 만나고...

상봉(351m:12:35)

경기도 안성시 삼죽면 배태리와 보개면 동평리의 경계능선에 있는

봉우리로 우측에는 꽤나 큰 죽산 저수지가 보이고 좌측에는 고삼저수지가 보인다.

여기서 다시 급한 내리막길이 나타나고 우측에는 생긴지 얼마되지 않은듯한

그리크지 않은 규모의 골프장이 보이고 잠시후에 차량소리가 들리며 가현고개가 나타난다. 

가현고개(12:45)

경기도 안성시 삼죽면과 보개면의 경계의 경계능선에 있는 70번 지방도가

 지나는 고개로 예전에 이곳이 하도 오지라서 이곳에서 사람을 죽여도 모를 정도이란다.

이 지역사람들은 가치개미 고개라도 부른다고 하는데 지금은 고개옆에 천주교 수원교구

공원묘지가 엄청나게 큰 규모로 자리를 잡고 있다.

가현치 보개면 방향

저기 서있는 갤로퍼 찦차 뒤의 절개지로 급하게 오른다.

아카시아 나무와 잡목이 자꾸만 얼굴을 할킨다.

잠시후에 올라서니 엄청나게 큰 규모의  천주교 공원 묘지가 나타나고

저 멀리 보개면이 한 눈에 들어온다. 다시  공원묘지 우측의 숲속으로 오른다.

동작동 국립묘지보다도 더 커보이는 천주교 공원묘지

다시 우측 숲을 치고 오르니 산을 완전히 민둥산으로 만든 벌목지가

나타나고 여기서 허기를 느껴 바람이 불지 않는 움팍진 곳에서 점심상을

펼친다. 점심사이라야 컵라면에다 이스리 한병, 커피한잔에 과일디저트다.

20분간의 식사를 마치고나니 땀이 식은탓에 추위가 엄습해와 다시 벌목지대로 오른다.

오늘 점심상의 메뉴

벌목지대에서 바라본 덕산저수지와 내가 지나온 능선

346.6봉(13:30)

경기도 안성시 보개면과 삼죽면 그리고 용인시 백암면의 경계능선에 있는

3면봉으로 천주교 공원묘지 정상으로 더 알려져 있는 봉우리다.

묘지가 있는 정상까지 차량이 올라온다. 지금까지 걸어온 삼죽면과

이별을 고하고 좌측의 보개면, 우측의 용인시 백암면으로 접어든다.

용인지역에는 이정표 하나 정말잘해놨다. 미안할 정도로... 안성시장은 산에 관심좀 가지시길...

정상 능선에서 공원묘지 능선을 곡예하듯 아슬아슬하게 걸어 달기봉으로 향한다.

공원묘지 납골당에는 구정이 며칠 남지않은 탓인지 미리온 성묘객이 꽤나 많다.

파란 철책선을 따라 능선을 타고 아슬아슬하게 달기봉으로 향한다.

저 멀리 송전탑 옆에 달기봉이 보인다.

공원묘지를 지나오는데 40분이상이 소요되었다.

우측에 조비산도 보이고...

조비산(鳥飛山: 260m)은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백암면 용천리 석천리 장평리에 걸쳐있는

산으로서 너른 들판위에 우뚝솟은 산이 마치 지난번 금북정맥길에 오서산같은 느낌이다.

새가 날아가는 형상처럼 보인다고 해서 조비(鳥飛)라고 했단다. 이전에는 ‘역적산

’이라고 했는데 거기에 재미있는 일화가 있다고 한다.

 

〈동국여지리〉의 죽산편에 보면 ‘현 북쪽 15리에 봉우리가 하나 우뚝 솟아 돌을 이고 있는데

산이높아고 가팔라 빼어난 모양이 기이하게 보인다’ 라는 기록과 〈동국여지승람〉에는

‘한 봉우리가 우뚝솟아 돌을 이고 있는데 그 돌구멍에 흰 뱀이 있어  매년 큰 물이질때 청미천에

내려와 사람과 가축에 우환이 되었다’는 전설과 기록이 풍성한 산이다.

 

조선초기에 태조가 도읍을 서울로 옮길때 지금의 삼각산 자리에 산이없자.보기좋은 산을

옮겨놓는 자에게 상을 내린다고 하였다. 이 이야기를 들은 한 장수가 조비산을 서울로

옮겨가는 도중에 이미 누군가가 삼각산을 옮겨 놓았다는 소식을 듣고 화가나 지금의 장소에

내려놓고 서울을 향해 방귀를 뀌었다. 이 소식을 전해들은 조정 대신들은 불경(不敬)한

산이라 하여  조폐산 또는 역적산이라 불렀다고 한다.

 

1970년대에서 규석광산으로 채굴을 하였으나 지금은 폐광이 되어 암벽 등반가들에게

매력적인 산이라고 한다. 

공원묘지를 지나 편안한 송림숲을 지난다.

산 자락에는 체력 단련장도 있고...

MBC 세트장 갈림길(13:50)

황새울 안부(13:55)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백암면 석천리에 있는 마을이 황새울이다.

마을 이름이 황새울이다. 옛날에 황새들이 떼를 지어 날아와 서식하던 곳으로,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지형이 마치 황새우리와 같다고 하여 마을 이름을 황새울이라 부른다.

 

여기에서 다시 급하게 달기봉으로 치고 오르는데 갑자기 사람소리가 들린다.

반갑기도 하지만 경계심도 생긴다. 조금 오르니 2쌍의 부부인듯한 정맥꾼을

만난다. 삼죽면 사무소에서 출발하였다고 하며 쉬쉬엄 오르기에 추월하여

달기봉 정상에 오르니 시원한 바람이 산꾼을 반긴다.

달기봉(415m:14:20)

경기도 안성시 보개면 북가현리와 용인시 백암면 석천리 경계능선에

있는 봉우리로 구봉산의 한 자락이지만 실제 올라보면 많이 떨어져 있다.

 달기봉은 봉우리가 닭의 벼슬모양의 봉우리라 하여 달기봉이라 한다

 정상엔 넓은 터와 아름다운 소나무가 많이 눈에 띤다.

저 앞 정배산 아래 용인CC가 새로 생겨오르는 길은 황새울 농장과 MBC 세트장이 보인다

달기봉 정상에서 우측으로 급한 내림길을 향한다.

잠시후에 다시 힘들게 치고 오른다. 나무계단으로 정맥길은 잘

정리되었지만 오늘 산행중에 가장 힘이드는 곳이다. 길도 좀 미끄럽고...

힘들게 치고 오르니 469봉 갈림길이 나온다.

465봉 정상과 삼각점(14:45)

이곳에서는 암릉구간 능선 안부를 걷는다.

몇번의 오르락 내리락을 반복하고...

피뢰침봉(14:50)

멋진 전망대로 꾸며진 구봉산이 나타난다.

구봉산(九峯山 : 465m:15:00)

 용인시의 원삼면과 외사면 과 원삼면과 외사면 의 분기점이 되는 산으로, 용인에 있는 산으로

 이 지역 산중에서 높은 산에 해당한다. 예부터 산세가 뛰어나 신령스런 산으로 여겨졌다.

구봉산이라는 명칭은 봉우리가 아홉 개라서 붙여진 것으로 보인다.

구봉산은 풍수지리에 의하면 기세가 높아 그 기가 여주 영릉의 세종대왕 능까지

 이어져 영릉이 명당이 된다는 풍수의 이야기도 있다.
구봉산아래 구봉마을 건너 마을엔 무학대사가 기거했다하여 무학이마을이 있고

 홍수때 봉우리가 떠내려가 안성에 작은 산이 만들어졌다 한다.

 

이 구봉산 앞에는 무학이라는 마을이 있다. 마을이 춤을 추는 지형이어서 무학(舞鶴)이라고 부른다는 설과,

조선의 도읍지를 정할 때 무학대사가 묵었다고 하여 무학이라고 부른다는 두 가지 이야기가 전한다.

구봉산아래 구봉마을 건너 마을엔 무학대사가 기거했다하여 무학이마을이

있고 홍수때 봉우리가 떠내려가 안성에 작은 산이 만들어졌다 한다.

산명에서도 알 수 있듯이 많은 봉우리로 이루어진 구봉산에는 재미있는 전설이 전해오고 있다.

예전 구봉산 자락인 용인군 원삼면 일대가 도읍지가 될 자리였는데 당시 백개의 봉우리로 이루어진

구봉산이 어느 날 큰 홍수로 마지막 봉우리가 떨어져 나갔고 이로 인해 이곳이 도읍지가 되지

못했 다고 한다.

 

그 옛날 후삼국시대 궁예가 한 때 거점으로 삼았던 죽주산성이 내려다 보이는  곳이니

그런 얘기가 나올만도 하다

.

전설에 의하면 조선이 안양에 도읍지를 정하기 전의 일이다. 임금은 도읍지를 정할 만한 곳을

 찾기 위해 전국 각지의 명산을 모두 알아오라고 하였다.

 구봉산도 그 가운데 하나였다. 여러 대신들의 논의 끝에 서울의 삼각산, 공주의 계룡산

용인의 구봉산이 일차적으로 선정되었다. 대신들은 이 세 산을 직접 찾아가 산세를 파악하였다.

 구봉산은 신령스러운 구봉산을 찾아온 대신들도 감복하였다.

전망대에서 바라면 용인시 원삼면의 모습

최종적으로 삼각산과 구봉산이 선택되었으나, 감히 인력으로 선택할 만한 일이 아니라

 도사에게 물었다. 그랬더니 어느 도사가, 두 산 가운데 봉우리 백 개를 먼저 만드는 산을

 도읍지로 정하면 될 것이라고 하였다.
산신령은 밤낮으로 쉬지 않고 봉우리를 만들기 시작하여 백 개를 모두 만들었다.

삼각산 산신령은 한 봉우리를 만들지 못했다.

구봉산 산신령은 임금에게 이 사실을 알리고자 서둘렀다.

그런데 갑자기 억수 같은 비가 퍼부어 봉우리 하나를 뭉개 버리고 말았다. 

구봉산 산신령이 낙담하고 있는 사이 삼각산 산신령이 마지막 한 봉우리를 만들어 결국 승지로 선택되었다.

삼각산을 배경으로 한양이 들어 선 것은 이 때문이라고 한다. 

구봉산 전망대에서 바라본 태영C.C

한참 자치기에 미쳤을 당시 참으로 많이와 본 골프장이다. 그땐 이곳이

정맥길 능선인지도 모를 때였으니 말이다.  모임 월례회를 7년동안

이곳에서 했으니 1년에 9번만 계산해도 60번이 넘고하니 거의 100여번을

와본 느낌같다. 이곳은 SBS 방송국이 계열사인 태영그룹의 골프장으로

난이도도 꽤나있고 관리가 잘된 편의 명문에 속하는 골프장이었다.

용인 8경중에 하나인  제6경의 조비산 광경

조비산은 용인에서 가장 아름다운 산으로 꼽힌다고 한다.

구봉산 아래에 있는 MBC 세트장의 모습

구봉산 동쪽에는 영화 ‘미인도’와 드라마 ‘일지매’ ‘신돈’ ‘선덕여왕’ ‘이산’ ‘동이’를

 촬영했다는 MBC 문화동산이 자라잡고 있고 오늘도 드라마를 촬영하는지 시끄럽고

분주하게 움직이는 모습이 보인다.

구봉산에서 셀카로 인증샛을 남기고 날머리를 향해서 간다.

눈이 쌓여서 조심스럽게 내려간다.

석술암산 갈림길(15:15)

석술암산은 이 지역 사람들  파라봉이라고 부르는 산으로 백암쪽에서는 똑 튀어나와 잘 보이는데 산속에서는 찾기가 어렵다.

골안마을 두창리 저수지 갈림길(15:25)

두창 저수지 갈림길을 지나니 짓다만 전원주택의 골조도 보이고

화재로 불타버린 전원주택도 보인다.

저 아래 보이는 두창리 저수지에는 얼음낚시를 하는지 얼음위에

엄청난 사람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정맥 능선에서 바라본 석술암산과 두창저수지 그리고 백암면의 모습

한남정맥의 도상거리가 총 170여km 인데 그 중에서 82km가 용인을 대각선을

그리며 지나가고 있다. 지금 지나가고 있는 백암면은 백암순대로 유명한 곳이다.

282.7봉(15:45)

정상에는 용인시에서 설치한 이정표와 삼각점(△407 재설 768 건설부)이 있다.

매봉재(15:55)

매봉재 정상에는 팔각정이 있고 두창 저수지와 원삼면소재지가 보인다.

좌측으로 내려서니 정리가 안된 등로에서 메마른  잡풀들이 산꾼을 당긴다.

여름 산행때에는 애로가 많을것 같다.

용인시 원삼면소재지의 모습

두창리 고개(16:10)

용인시 원삼면과 백암면을 잇는 318번 지방도가 지나가는 나즈막한 고개로

예전에 양계장이 있었는지 이 지역 사람들은 양계장 고개라고 부른다.

오늘 산행을 종료하고 스틱을 접는다. 편안하게 한 구간을 끝내고...

도로 건너편에는 극동기상관측 연구소가 자리잡고 있다.

예전에 수도없이 다녔던 고개인데 그때에 비해 상당히 깔끔한 모습이다.

전에는 326번 지방도였는데 지금은 318번도로 표기되어 있다.

도로에 내리는데 버스가 한대 지나가 버린다. 참으로 난감하다.

이곳에서 백암쪽으로 500여m 떨어진 버스 정류소가 있는 두창리 고개로 향한다. 

두창리 고개(16:20)

두창리 고개에서 좌측 100m 정도를 지나니 두창7리 버스 정류소가 나온다.

걷지 않으니 땀이 식어 추워오기 시작하는데 옷을 갈아입을 마땅한 장소가 없다.

두창7리 버스 정류소(17:20)

이곳에서 20분정도 있으니 오한(惡寒)이 올 정도로 추위가 몰려온다.

도저히 견딜수가 없을 정도로... 하는 수 없이 지나가는 차량들에 히치를

시도하지만 이곳을 지나가는 차량들은 정말 매몰찰 정도로 어느 누구하나

태워주질 않는다. 오뉴월 개 떨듯이 턱까지 떨릴정도로 추위가 엄습해온다.

이러다가 저체온증으로 죽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모든걸 자포자기 심정으로 히치도 포기하고 서 있는데 정확하게 1시간만에

버스가 저멀리 백암쪽에서 오고있다. 이제 살았구나 하는 심정이다. 

참고로 이곳은 1시간에 한대 아님 2시간에 한대정로 버스가 잘 다니지 않는 곳이다.

94번 버스를 타고 30여분만에 용인버스 공용터미널에 도착한다.

차에 오르자 피곤한 지 잠이 몰려온다. 주위에는 날이 어두워지고...

오늘 산행거리 표시의 G.P.S

용인에서 서울오는 버스표

두창리에서 하도 추위에 떨었던 탓인지 몸이 굳어버리는 느낌이다.

용인 공용 버스터미널은 시외버스와 고속버스 터미널이 같이 있어서

서울가는 버스표를 사고나니 35분정도 여유가 생긴다. 터미널 안에있는

분식집에 들러 떡라면 한그릇 시켜 먹으면서 베낭속에 포켓소주 한병 꺼내서 물컵에

부어서 단번에 마시고나니 추위가 조금은 가시는 느낌이다. 옷을 벗어 난로앞에

말리고 버스를 기다리다 시간이 되어 버스에 오르니 40분만에 서울에 도착한다.

서울가는 고속버스(18: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