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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범여(梵如)의 世上사는 이야기
♣ 백두 대간및 9정맥 후기♣/한남정맥 (終)

한남정맥 제2구간 - 두창리에서 하고개까지

by 범여(梵如) 2012. 1. 25.

○ 산행일자 : 2012, 1,24  
○ 산행날씨 : 맑음. 올겨울들어 가장 추운날씨, 추위에 엄청 힘듬
○ 참석인원 : 나홀로 산행
○ 산행거리 : 도상거리 : 26.8km / GPS거리 : 29.1km
○ 산행코스 : 두창리고개-극동기상 연구소-패밀리 승마목장-17번 국도(57번 지방도)-내동마을 앞-57번 지방도-법륜사 안부

                 문수봉-쌍령지맥 분기봉-망덕고개-바래기산-재주봉-344.6봉-374봉-292.4봉-염치고개-은화삼 C.C 9번홀-송전탑

                 연화사 -골프장 정문-성진철강-45번 국도(무너미고개)-암로-경남여객차고지-전주유씨 종중묘-그린홀스 승마클럽

                대동군공원묘지-함박산-산불 감시탑-명지대 안부능선-338봉-서울공원묘지-하고개
○ 소 재 지 :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기흥구, 양지면, 이동면, 원삼면

 

중국의 조선족 여인들은 남편을 ‘나그네’라 부른다.

 왜, 그리고 언제부터 그렇게 불렀는지 이유는 분명히 알 수 없다.

중국으로 이주한 사람들의 고달픈 역사가 ‘나그네’라는 말 속에 녹아있는 것 같다.

나그네는 항상 서러운 존재이다. 조국을 떠나 이국땅에서 사는 것 자체가 나그네 생활인데

 그곳에서도 떠돌아 다녀야 하니 그 서러움이 어떠하리라는 것은 능히 짐작할 수 있는 일이다.

요즘 세태에는 자꾸만 남자들의 위치가 줄어드는 느낌이다.

 

평생 가족들을 먹여 살려야 가장(家長)의 위치에서 오직 앞만보고 열심히 일을 하였건만

어느 시점에서 뒤돌아보니 나이는 들어 이젠 머리엔 이슬이 하얗게 내리고

애들은 이제 20대 중반이 훌쩍 넘어 대화의 상대가 되질 않고 예전엔 경상도 사나이의

거친 성정에 숨도 못쉬던 마눌은 이제 꼬박꼬박 말대꾸를 하며 목소리가 커져가고

자꾸만 집안에서 가장의 입지가 줄어들며 외톨이가 되어가는 나그네 신세가 되어간다

과연 이게 내 자리인가 하는 서러운 생각도 들지만 이제 대세는 기울여저 가는걸 어쩌랴.

50대 중.후반쯤의 나이에 이 소리하면 간큰 남자인가?  자꾸만 나 자신이 외소해지고

초라해진 느낌에   내  맘의 문을 닫는 것일까. 어쩜 이건 나만이 아닌 나또래들이 다 겪는 현상일까

 

범여는 오늘도 차가운 새벽바람을 맞으며 나그네 심정으로 앤(?)을 찾아 집을 나선다.

언제 어디서나 싫은 내색 한번없이 포근한 울어머니의 가슴같이 감싸주는 산이란 앤을 찾아서...

 

오늘도 걷는다마는 정처 없는 이 발길
 지나온 자욱 마다 눈물 고였다
 선창가 고동 소리 옛 님이 그리워도

나그네 흐를 길은 한이 없어라 ...

 

오늘 산행지도와 고도표오늘 산행구간의 지도와 고도표

 

오늘 산행구간의 지도와 고도표

용인가는 고속버스표

서울 강남고속버스 터미널(06:30)

새벽에 일어나서 구정전날 산행 갔다온 베낭을 다시 추스린다.

오갈데없는 나그네 신세가 되버린 범여는 이틀만에 또 베낭을 질머지고

집을 나선다. 아들과 딸의 방문을 열어보니 아직도 깊은 잠에 빠져있다.

오랫만에 아들 얼굴을 들여다본다. 직장생활이 피곤한 모양인지 얼굴이

핼쓱하다. 거저 착하게 잘 자라준 그것만으로도 늘 고마운 애들이다.

아파트 현관문을 나서니 얼굴에 부딪히는 새벽공기는 차갑기만 하다.

오늘이 올겨울에 가장 추운날씨라고 한다. 영하 12도라니... 체감온도는 훨씬 더한 느낌이다.

터미널에 도착하여 평소에 자주 이용하는 설렁탕집에서 아침식사를 마치고

따끈한 커피한잔을 마신 다음에 용인가는 버스에 올라 약 40분만에 용인에 도착한다.

두창리 가는 버스(07:10)

고속버스에 내려 시내버스 터미널로 옮기니 백암가는 버스가 출발을 한다.

죽을 힘을 다해 쫒아가서 앞을 가로막고 때를써서 버스에 오른다.

버스는 아직도 예열이 안된 상태라 상당히 춥다. 30분만에 두창리에 내려

극동기상연구소 앞에서 장비를 점검한 다음에 산행을 준비하는데 잠깐사이에

손가락이 떨어져 나가는 느낌이다. 이곳은 시골에다가 음지라 약간의 바람까지

불어대니 휠씬 더 추운 느낌이다.

두창리 극동기상 연구소 (07:40)

버스에 내려 장비를 점검하는 잠깐사이에 손끝이 떨어져 나가는 것 같은

느낌이 들 정도로 춥다. 완전무장을 하고 산행 들머리에 접어든다.

오늘 산행은 326번 지방도가 지나는 두창리 고개를 시작으로 사암 휴게소가 있는 57번

지방도를 건너게 되며 삼성국제 경영 연구소와 중소기업 개발원이 있는 문수봉과 바래기산,

재주봉과 무너미재가 있는 45번 국도를 통과하고 함박산에서 하고개를 내려서는

26km의 결코 짧지 않은 구간이다.

이곳은 기상 연구소가는 정문은 아니다. 이곳이 약간 외진 탓인지 쓰레기

무단투기가 많은 모양이다. 원삼면에서 차량출입을 통제하는 바리게이트를 쳐놨다.

처음부터 편안한 길을 계속 걸어간다.

연구소 담벼락을 우회하여 계속해서 편한길을 간다.

극동기상연구소 정문 (07:50)

애매한 이정표(08:00)

날씨가 엄청추워 사진을 찍기위해 장갑을 벗을때마다 손끝이 빠지는 것 같아

지도를 확인하지 않고 용인시에 세워논 이정표를 보고  진행을 하는데 아뿔싸

홍성산업이라는 축산관련 업체가 나오고 커다란 묘지를 지나니 보리밭이

나오면서 원삼면소재지가는  지방도가 나온다. 이건 아니다 싶은 생각에

다시 원점으로 되돌아와 또 한번 가도 마찬가지다. 꼬리표도 하나도 보이지 않고...

극동기상 연구소의 모습

연구소 뒤로 임진년 새해 정월 초이튿날의 아침해가 떠오르고...

엉뚱한 곳으로 내려와서 또다시 갔다가 2번을 헤매다가 다시 원점으로 가서 복기(復棋)를 한다.

다시 돌아온 삼거리

약 3km이상을 헤매는 사이에 시간은 50분이나 흘러버렸다. 마치 귀신에 홀린것처럼...

‘걸어다니는 지도책’이라는 소리를 듣는 범여도 이런 실수를 하다니... 할 수없이 지도를 펴든다.

아차... 바로 우측의 콘크리트 도로를 따라야 하는데 말이다. 이정표가 한참이나

잘못되어 있다. 이곳에서 직진으로 가면 안되고 비닐하우스를 끼고 우측 90도로 꺽여야

하는데 말이다. 패밀리승마목장 바로옆 지방도로 나오는데 5분도 채 안걸리는데 50분을 허비하다니...

비닐하우스를 지나 우측에 패밀리 승마목장과 이런 길이 나오고...

가재월리 넘어가는 지방도(08:50)

5분만에 올수있는 거리를 50분만에 도착한다. 이 도로는 용인시 원삼면 가재월리와

독성리를 연결하는 도로로 교통량은 그리많은 편은 아니지만 명절후라 그런지

승용차들이 꽤나 다닌다.  원삼제일교회 팻말을 따라 편안한 길을 걸어간다.

우측에 목초지인듯한 파릇파릇한 밭도 지나고...

좌측에 골재 야적장같은 곳에는 골재와 각종 중기들이 서있는 이곳에서 길이없는

좌측 능선으로 올라선다.  이곳은 곧 개발이 되려는지 산을 민둥산으로 만들어 놨다.

이 지역은 한남정맥길이기는 하지만 해발고도가 평균 100m 정도밖에 안되기에

개발하기에는 최적의 조건인것 같다. 얼마후면 이곳 정맥길도 곧 없어질 듯 싶구나.

벌목 현장에서 바라본 원삼면 가재월리의 모습

저 멀리 태봉산인듯한 봉우리도 보이고 좌측엔 독조지맥의 능선도 보인다.

바로 아래에 양계장이 있는지 숨쉬기가 힘들정도로 독한 계분냄새가 풍겨온다.

가재월리 넘어가는 도로(09:10)

또다시 수레길의 농로를 지나고...

농로를 건너 절개지에 오르니 땅주인이 심은 두릅밭이 나타나고 경고문이 붙어있다.

땅쥔이 아마 생각을 바꿔야 할 것 같다. 이곳은 한남정맥길 정중간이라 아무리 경고문과

다니지 말라고 해도 다닐것 같으니 두릅을 옮겨 심는것이 좋을듯 싶다.

쥔장나리께서 학교 다닐때 지리공부를 좀 잘하셔서 정맥길 아닌데 심었으면 이리

고생을 안해도 될것을... 사서 고생을 하고 있구려.

그리고 모르긴 몰라도 정맥꾼들은 절대 남이 심으온 농작물은 손을 안되는거 아시죠

왜냐구요... 그 양반들은 오줌누고 아랫도리 볼 시간도 없이 바쁘기도 하지만

진정한 산꾼이기에 사리분별을 확실히 하시는 분들이니까... 범여가 보장하죠

두릅밭을 지나 좌우로 농장과 목장 전원주택과 공장 그리고 묘지들이 야금야금 정맥길을

갉아 먹으며 없어지고 있다. 참으로 안타까운 현실이 가슴 아프기만 하다.

조금 지나니 느티나무를 심어놓은 밭이 나오면서 콘크리트로 포장된 농로가 나온다.

이곳 도로를 따라 좌측으로 내려오는데 저 멀리 문수봉이 시야에 들어온다.

이 도로를 따라 계속 진행한다. 저 멀리 문수봉도 보이고...

계속 진행하니 주택 두어채와 꽤나 큰 규모의 석재공장과 야적장 나타나고...

연안김씨 합동제단을 지나니 차량소리가 들리며 17번 국도와 57번 지방도

 만나는 도로가 나타난다. 이곳에서 쭈욱가면 영동고속도로 양지I.C가 나타난다.

17 번 국도(09:50)

SK 사암주유소가 있고 17번 국도와 57번 지방도가 교차하는 지점이다.

날씨가 추운탓인지 차량통행은 뜸하고 20여년전에 범여가 고향갈 때

경부고속도로가 밀리면 집에서 출발하여 분당, 용인 양지를 거쳐서 진천, 청주

영동을 거쳐서 추풍령으로 내려가면서 자주 이용하였던 국도였는데 이제는

명절에 고향갈 일도 없다보니 이 길을 다닐일도 없어져 버렸다.

이 17번 국도도 새로생긴 新 17번국도에게 모든 영화를 내주고 말았다.

길건너  장수농원이라는 표지석이 있는 도로를 향해간다. 지금은 농장은 없다.

조금 오르니  Y자의 길이 나오고 이곳에서 좌측으로 들어서면 입구에 쇠사슬로 막아놓은

우측에 단독주택 2채와 좌측에 박스공장이 있는 마당을 지나니 개가 서너마리 합창을 하듯

지나가는 산꾼에게 경계심을 나타낸다. 마당을 가로질러 나가니 다시 묘소가 나타나고...

저기 달마시안처럼 개쉬끼가 얼마나 사납게 달라들던지 스틱으로 저지하면서

서둘러 마당을  빠져 나간다.

묘지를 지나서 조금가니 사이딩 판넬로 이쁘게 지어놓은 주택이 나타나고

농로를 따라 조금 내려가니 57번 지방도가 나오는 내동마을 입구가 나온다.

내동마을 입구(10:05)

내동마을 입구에서 바라본 문수봉

내동마을 앞을 내려오니 57번 지방도가 지나가고 있고 저 멀리 문수봉이 보인다.

 

문수봉 아래에는 삼성국제경영연구소와 중소기업개발원이 커다랗게 자리를 잡고 있다.

'생거진천 사거용인(生居鎭川 死居龍仁)'이라하여 용인은 망자의 명당터라 알려졌지만

지금은 산 자에게도 가장 좋은 땅이 용인이 아닌가 싶다.

용인지역을 다녀보면 정말 많은게 공원묘지와 묘지들이 많아 망자의 천국이긴 하지만

또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은 골프장이있고 있고 대기업 연구소와 인력개발원이 가장 많은곳이 이곳 용인이다.

이래저래 축복받은 땅이 아닌가 싶다.

내동고개를 내려서다 다시 좌측으로 꺾어져 비포장도로가 있는 우측 절개지로

들어서서 야트막한 능선을 타고 곳예를 하듯 정맥길을 이어간다.

묘지 몇기를 지나 능선을 이어가니 갑자기 전원주택가 자리를 잡고 정맥길을

끊어 버렸다. 아직 다 분양이 되지 않은 탓이지 단지는 어수선하기만 하다.

정맥길을 끊어 버리고 정맥길 주인행세를 하는 전원주택

정맥길 정중앙에 전원주택이 턱버티고 앉아 한남정맥 쥔 노릇을 하고있다.

산꾼의 입장에서 보면 기가 막힐노릇이며 참으로 화가 치민다.

이 집을 좌측으로 돌아서 단지내 도로로 나서니 조그만 철조망으로

또 다시 길을 막아버렸다. 적반하장도 유분수지... 그런다고 안 갈 내가 아니지만

단지내 도로를 따라 분양되지 않은 택지에서 절개지로 올라서 능선으로 접어든다.

절개지로 올라서니 등로길에 ‘전주이공’묘지가 자리잡고 있다.

젊은 나이에 세상을 등진 모양이다. 1961~2001년이니 40세의 꽃다운

나이에... 하긴 죽고사는게 뭐 그리 대수인가.죽고사는 건 호흡지간인데 말이다.

이곳은 전원주택 단지인지 등로에서 바라보니 꽤나 호화로운 집들이 보이고

바로옆에 건물이 농업기술연구소와 그 옆의 산들이 농촌체험테마파크로 꾸며져 있다.

다시만난 57번 지방도(10:20)

오늘 3째로 57번 지방도를 다시 만난다

용인시 원삼면 고당리와 사암리를 연결하는 도로로  두창리에서 이곳까지 알바를

포함하여 2시간 40분을 해발 100m 이하를 산이 아닌 일반도로 농로 임도 주택,공장과

묘지를 순례하며 비산비야(非山非野)의 산이 아닌 길을 걸어왔다.

개발론자들 입장에서 보면 더 없이 좋은 먹잇감(?)이지만 산꾼의 입장에서 보면

사라져가는 정맥길에 아쉬움만 남는다. 이곳에서부터 오늘 처음으로 산길같은

등로로 접어든다. 

57번 국도에서 문수봉 올라가는 길

지방도에 올라서니 좌측에는 가람의 역사가 얼마되지 않는지

깨끗하게 들어선 법륜사가 자리잡고 있고 우측에는 잣나무 숲사이에

아기자기한 시설을 꾸며놓고 휴양림 시설을 갖춘 농촌체험파크가 자리잡고 있다.

법륜사(法輪寺)

법륜사는 대한 조계종 제7교구 수덕사의 말사로서 1955년도에 상륜(相侖)스님이 창건하였다고 한다.

비구니 도량인 법륜사는 웅장한 크기와 화려한 단청으로 보는 이들로 하여금 탄성을 자아내게 할 만큼 아름다운 절이다. 

128평의 대웅전을 비롯해 33평의 조사전, 53평의 극락전, 아(亞)자형 종각, 삼성각, 연화지, 어영지 등을 갖췄다.

 

주법당인 대웅전은 백두산 홍송을 들여와 남방불교 양식의 아(亞)자형으로 건립, 십육척 53톤 중량의 석불을 봉안했다.

법륜사는 기도와 수행도량으로서 유명한 곳이다. 지하 1층 지상 5층 연면적 600평 규모의 요사채와 84평 규모의 선원,

194평의 비구니 스님을 위한 휴양당이 법륜사의 규모를 말해준다.

50여명을 한꺼번에 수용할 수 있는 요사채에서는 침실과 공양간,회의장

등을 갖춰 대규모 수련회가 가능해 템플스테이 등 일반인들도 많이 찾는 곳이다.

법륜사 3층석탑(경기도 문화재자료 제145호)

법륜사 3층 석탑은 서울 구로동 이 덕문씨 가정집에 있던 것을 이윤 보시한 것으로 탑의 연혁이나

유래에 대한 내역이 불확실한 상태이다.통일신라시대의 양식을 전승하여 후대에 세워진 석탑으로

보이며 시기는 고려시대로 추정되며 이 석탑의 단층 기단위에 삼층의 탑신을 얹은 구조로 되어 있으며상륜부는 없고

탑신, 옥개석일부에서는 손상된 흔적이 있으나 대체로 원형이 잘 보존되어 있는 상태이다.

 

높이는 392cm이고 재료는 대리석이다.통상적으로 2층 기단을 두지만 동류의 탑과 다른 형식을취하고 있으며

기단을 두지만 우주만 모각되어 있을 뿐 탱주는 모각되지 않았다.

층 단의 받침이 4단으로 통일신라시대 탑신의 형식을 취했으나 5단형의 받침을 둔  통상적

통일신라시대의 석탑과는 거리가 있어 제작시기가 통일신라 하대의 것으로 보인다.

(법륜사 사이트에서 인용)

창건주이신 무아당 상륜선사의 부도탑

능선 우측에 있는 농촌테마체험파크의 모습

편안한 등로로 오르니 좌측으로 아침에 버스로 지나갔던 원삼면소재지가 보인다.

정맥 능선에서 바라본 원삼면 사암리에 있는 용담저수지

이번 구간은 용인시지역만 지난다. 용인시(龍仁市)는 본래 용구현(龍駒縣)과 처인현(處仁縣)을

합치고 용구(龍駒)에서 용(龍)자와 처인(處仁)의 인(仁) 자가 합쳐 용인현(龍仁縣)이라고 칭하다가

후에 양지군(陽智郡)을 합쳐 오늘의 용인시(龍仁市)가 되었다.

안골(내동마을 )안부 능선

안골 안부에서 마애상과 문수봉 올라가는 길은 재법 가파르고 힘이든다.

호젓한 산죽길이 잘 정리되어 있다. 조금 올라가 문수 약수터에서 시원한

감로수(甘露水) 한바가지로 목을 축이고 문수보살님과 보현보살님을

친견하기 위하여 서둘러 문수사지로 향한다. 

문수 약수터(10:40)

문수봉 마애불 아래 약수터가 있는데 바위 구조물 사이 옻나무 밑으로 흐르는 샘물이 불교식으로 말하면 감로수다. 

주위에 고산 식물인 산죽(조릿대)이 많은 곳이 문수사지다.

샘터 주위는 공원으로 꾸며 놓았으며 개복숭아 나무 아래 맷돌 아랫돌 모양의 바위가 있고

이곳에는 나무에다가 좋은 글귀를 써놓은 나뭇조각을 많이 걸어놨다.

여기에서 오늘 처음으로 사람구경을 한다. 이 아래 마을에서 약수물을 떨어온 촌로이다. 

이곳 약수터가 청미천(백암으로 흐르는 한강지류)의 발원지라고 한다.

문수보살 친견을 하러 정맥길에서 20m정도 벗어난 문수사지로 향한다.

용인시 원삼면 문촌리 내동 뒷산 문수봉도 문수사지에서 연류된 산이다.

문수봉 팔부능선에 문수사지 마애불(용인에 유일한 마애불 도지정 유형문화재 제120호)이

있는 산으로 불교 화엄경에 선재동자가 처음으로 만나는 보살이며 신라 자장율사가

중국에서 문수보살을 친견하고 부처님 진신사리와 가사를 받았다는 보살로 조선 세조대왕이

오대산에서 문수동자를 만났다는 이야기 속의 보살 이름이다. 불교에서는 지혜를 상징하며

왼손에 연꽃을 들고 사자를 탄 모습의 보살이 문수보살이다.

자비(慈悲)와 理의 상징인 보현보살(普賢菩薩) 부처님의 행원(行願)을 대변하는 보살.

이 보살은 문수보살(文殊菩薩)과 함께 석가모니불을 협시(脇侍)하는 보살로 유명하다.

문수보살이 여래의 왼편에서 여러 부처님의 지덕(智德)과 체덕(體德)을 맡음에 대하여,

보현보살은 오른쪽에서 이덕(理德)과 정덕(定德)과 행덕(行德)을 맡는다.

 

또 문수보살과 함께 일체보살의 으뜸이 되어서 언제나 여래께서 중생을 제도하는 일을 돕고 널리 선양한다.

 또 중생들의 목숨을 길게 하는 덕을 가졌으므로 보현연명보살 또는 연명보살(延命菩薩)이라고도 한다.

형상은 여러 가지로 묘사되나 크게 나누면 흰 코끼리를 탄 모양과 연화대에 앉은 모양의 2종이 있다.

예로부터 이 보살은 코끼리에 탄 형상으로 많이 표현되었고, 연화대에 앉은 모습은 주로

진언밀교(眞言密敎) 계통에서 많이 만들어졌다.

 

≪화엄경≫에 의하면, 이 보살은 일찍이 비로자나불 밑에서 보살행을 닦았던 보살들의 대표로,

구도자들에게 법계(法界)를 열어 보여주는 사실상의 ≪화엄경≫ 설법사이다.

그는 일찍이 수천 억의 여래에게 봉사하고, 모든 보살도의 구극에 도달하고, 삼매에 의하여 자재력을

 얻고 모든 것을 알며, 여래의 비밀처에 통하여 일체의 불법에 대하여 의문을 끊고, 일체여래의

가지(加持)를 받으며, 일체중생의 근기(根機)를 알며, 일체중생의 신해(信解)와 해탈에의 길을

 잘 보여주며, 모든 여래의 가계(家系)를 흥성하게 하는 지혜를 가지며, 모든 부처님의 법을 해설하는

 데 능통하며, 기타 무량한 덕성을 완비하고 있다.

 

그리고 보현보살은 모든 부처님의 본원력(本願力)에 근거하여 그 가지법(加持法)에 의해서 중생이익의 원을

세워서 수행하는 것을 그 의무로 삼고 있다. 이것을 보현의 행원이라고 하는데, 이를 압축하면 10대원(大願)이 된다.

① 모든 부처님께 예배·공양하고(禮敬諸佛), ② 모든 부처님을 우러러 찬탄하고(稱讚如來),

 ③ 모든 부처님을 널리 공양하며(廣修供養), ④ 스스로의 업장을 참회하고(懺悔業障),

 ⑤ 남의 공덕을 따라서 기뻐하며(隨喜功德), ⑥ 부처님이 설법해 주기를 청하고(請轉法輪),

⑦ 부처님이 이 세상에 오래 머무르기를 청하고(請佛住世), ⑧ 항상 부처님을 따라 배우고(常隨佛學),

 ⑨ 항상 중생들에게 순응하며(恒順衆生), ⑩ 두루 모든 것을 가지고 회향하는 것(普皆廻向)이다.

이 10대원은 보현보살의 본원이자 모든 구도자들이 이룩하기 위하여 실천해야 하는 조항으로서,

우리 나라에서는 널리 신봉되고 있다. 특히 고려 광종 때의 균여(均如)는 <보현십원가 普賢十願歌>를

 지어 불교의 대중화를 꾀하기도 하였다.

 

특히 ≪보현행원품 普賢行願品≫은 우리 나라에서 가장 많이 유포되는 경전 가운데의 하나로서 보현보살을

관하는 중생들에게 보현삼매(普賢三昧)에 몰입할 것을 요청하고 있다.

보현보살을 본존으로 하고 제법실상(諸法實相)의 이치를 관하여 죄장(罪障)을 참회하는 이 삼매는

≪법화경≫의 유행과 함께 우리 나라의 천태종(天台宗) 등 법화신앙계 종파에서 널리 유행하였다.

대승불교에서 최고의 지혜(智慧)를 인격화한 문수보살(文殊菩薩)

산스크리트 Mañjuśrῑ를 음사한 문수사리(文殊師利)의 별칭이다. Mañjuśrῑ라는 산스크리트는 묘길상(妙吉祥)

이라고도 번역되며 묘음보살(妙音菩薩)이라고도 한다. 또 바기슈바라(Vāgῑśvara:언어의 주인)라고도 한다.

문수보살이 나오는 경전은 250년 무렵부터 만들어졌지만 예술작품에는 400년 무렵부터 소재로 등장하기 시작했다.

 

 오른손에 무명(無明)의 구름을 잘라버리는 지혜의 칼을 높이 치켜들고 왼손에는 패엽(貝葉)으로 된

 반야바라밀경(般若波羅蜜經)을 들고서 왕자처럼 치장한 모습으로 표현된다.

중국에서는 8세기 무렵부터 문수보살 숭배가 널리 유행했으며, 산시 성[山西省]에 있는 우타이 산[五臺山]은

 문수보살의 성지로서 그를 모신 사찰로 가득 차 있다.

 

천계에 있는 보살이라고 알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인도에 실재했던 인물이라고 하는 설도 있다.

여러 가지 방식으로 모습을 나타낸다고 하는데, 즉 꿈속에 나타나거나, 그가 사는 성스러운 산의 순례자,

코탄에 불교를 전한 승려 바이로차나, 티베트 불교를 개혁한 아티샤, 중국의 황제로도 화현한다고 한다.

한국에서는 문수보살 신앙이 삼국시대부터 유행했는데 신라의 고승 자장율사가 그 유포에 큰 역할을 했다.

 

 한국의 오대산은 중국의 우타이 산과 마찬가지로 문수보살의 상주처(常住處)로서 중시되어 왔는데,

 643년(선덕여왕 12)에 중국으로부터 귀국한 자장율사는 오대산 중대(中臺)에 적멸보궁(寂滅寶宮)을

 건립함으로써 오대산의 중요성을 널리 부각시켰다. 황룡사의 9층탑도 문수보살 신앙을 굳건히 하고자

 한 자장의 노력에 의해 세워졌다. 그뒤 문수보살 신앙은 계속 유행되어 오늘날에도 많은 사찰의 대웅전에

 석가모니불을 중심으로 좌측에는 문수보살이 봉안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마애보살상 안내문

문수보살님과 보현보살님을 친견하고 올 한해를 삼재팔난(三災八難)을 면하게

해주길 간절히 기원하고 지난 한해 너무나 힘들었던 일을 모두 이 두 보살님께

맡기고 문수봉으로 향한다. 정말 모든걸 잊어버리고 싶다.

문수봉 정상에 오르니 원삼면 농협에서 새해 복 많이 받으셔요’ 라는  프랑카드를 걸어놓고

산꾼을 반긴다. 그래도 꽤나 유명한 산에 추운 탓인지 사람 한명이 없다.

문수봉에서 우측으로 가는길은 곱든고개 방향곱등고개는 처인구 원삼면 삼암리에 있는

고개로 57번 도로가 지나가는 곳으로 곱사의 등처럼 굽은 고개라는 뜻으로 곱든고개라고 한다. 

주로 원삼면 사암리와 고등리 독성리 일대의 주민들이 용인장으로 갈때 이용되던 고개라고 한다.

 임꺽정이 평생 스승으로 모셨던 칠장사의 병해대사를 뵙기 위해 고개를 지나다 가짜 임꺽정을

만났다는 .곱든고개를 지나 앵자지맥이나 독조지맥을 있는 길이다.

 

  정맥은 좌측 이정표의 묵리,학일리 방향이다.

번째 갈림길에서 좌측으로 진행, 표지기가 많이 붙어.

허기가 지는데 너무 추어 베낭을 벗을 엄두가 나질 않는다. 인증샷을 남기기 위해 베낭에서

삼각대를 꺼내는데 그 사이에 손가락이 얼어버리는 느낌이다. 정상이라 바람도 세차고...

곶감 2개를 호주머니에 넣고 걸어가면서 먹는다. 안부의 바람은 자꾸만 거세지고...

문수봉은 불교의 문수보살을 상징하는 산이다. 원삼면에서 북서쪽 끝에 있는 용인팔경

곱든고개와 접해 있는 산으로, 산에서 용인팔경인 사암저수지 주위를 볼 수 있다.

우리 생활이 불교 문화권이던 신라, 고려시대를 거치면서 국내 산 이름도 불교에서 유래된 곳이 많다.

금강산 비로봉 지리산 반야봉 천왕봉 관음봉 등등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다.

이곳은 앵자지맥의 분기점이기도 하다.

 

 

 

 

 

 

 

 

 

 

 

 

 

 

 

 

 

 

 

 

 

 

 

 

 

 

 

 

 

 

 

 

 

 

 

 

 

 

 

 

 

 

 

 

 

 

 

 

한남앵자지맥이란 한남정맥상에 있는 문수봉에서 북쪽으로 분기한 산줄기가 곱든고개, 칠봉산(447m),

갈미봉(447m), 용실산(422m), 배미실고개, 마수고개, 방도리고개, 성황당고개, 해룡산(367m),

국수봉(427m), 정개산(433m), 천덕봉(635m), 앵자봉(667m)을 거쳐 염치고개로 고도를 낮추다가

다시 솟구쳐 해협산(531m)과 정암산(403m)을 빚어놓고 한강에서 그 맥을 다하는 약 63.5km의 산줄기를 말한다.

문수봉(403.2m :11:05)

용인시 원삼면 문촌리 내동 뒷산 문수봉은 예전에 있던 문수사로 인해 붙여진 이름이다.

이 문수봉에는 문촌리 산25번지에 위치했던 문수사지에서 50m 떨어진 곳에 고려 초기에 제작 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도지정 유형 문화재120호 문수산 마애보살상이 있다. 높이 약3.5m 정도의 두 바위를 편평하게

다듬어 보살입상 2구를 양쪽으로 대칭되게 새겼는데, 얕은 부조와 선각을 함께 사용하였다.

 

문수봉을 오르는 코스는 원삼면 내동에서 오르기와 곱든고개 정상에서 오르기가 있다.

곱든고개는 원삼면과 용인시 동부동의 경계 고개로 구길과 만나는 곳에 노란 접도구역 시멘트 표지석 뒤로

좁은 등산로가 있고 15m쯤 산위쪽에 10년생 크기의 소나무에 빛바랜 흰 페인 트 칠의 소나무가 이정표다.

30분쯤 능선으로 정상까지 연결돼 있어 지루하긴 하 지만 긴 등산을 좋아하는 등산인에게는 적격이다.

내동에서 문수봉으로의 등산은 약수터에서 시작된다.

1.5km의 울창한 평지 숲길을 지나 가파른 오르막길로 접어들면, 150cm정도 크기의 조리대가 빽빽한 곳을 만난다.

100여미터 조리대숲을 지나면 문수산 마애보살상을 만나고 정상에 오를 수 있다.

문수봉에서 내리막의  평탄한 길로 계속가니 우측에 거대한 원형의 유류저장고(석유공사 용인

석유비축기지) 시설이 보인다.

이제부터 산행은 유류저장고를 우측에 두고 말발굽 모양으로 돌아가는 . 도중 쉼터봉

 이정표(좌측은 낚시터 방향)나오고 저장고가 멀어지면서 사각정이 있는 분기봉이 나온다.

저 아래에서 올라오는 세찬 바람은 곶감 3개 먹는 사이에도 춥다. 볼펜도 얼어버렸는지

잘나오지도 않고 G.P.S 건전지도 추우니 빨리 방전이 되는 바람에 밧데리를 교체한다

용인 석유비축기지의 모습

쌍령지맥 갈림길(11:25)

문수봉에서 석유비축기지을 U자 형태를 빙돌아 능선의 고개에 오르니 사각정자가 나타나고

쌍령지맥 분기점에  삼덕의 길 은이성지란 팻말이 보인다. 이곳은 김 대건 신부와 관련된

능선인듯 하다.

 

직진길은 삼덕의 은 이성지표시되어 있고 오른쪽으로 진행. 삼각점봉을 지나 급경사

길을 내려와 다시 오름길을 거쳐 무명봉을 지나니 임도. 임도에 내려서 아래 망덕고개 비석이 보인다.

바로 해실이고개. 김대건 신부 생전에 사목활동, 사후 유해운구 길인 삼덕의

(신덕고개, 망덕고개, 애덕교개) 하나로 천주교 신자들의 성지순례길이기도 하다

 . 한남 쌍령지맥(漢南雙嶺枝脈):

칠장산에서 김포 보구곳리로 이어지는 한남정맥은 문수봉에서 부쪽으로 앵자지맥, 독조지맥을 분기하고,

서쪽으로 1.7Km 가다가 또 하나의 산줄기가 남쪽으로 분기하여 쌍령산(502m), 금병산(244m), 봉황산(259m),

천덕산(322m), 백련봉(235m), 덕암산(164m), 불악산(149m)을 거처 평택 진위천과 안성천 합수점에서 맥을 다한다.

쌍령지맥 분기점에서 약 10분정도 올라서니 지도상에도 나타나지 않은 알아볼 수 없는

삼각점이 나타난다. 이곳이 석유비축기지 뒷산으로  어떤 선답자들의 산행기에는

바래기산이라고 하는 산꾼도 있긴 하지만 지도상에는 망덕고개 다음에 나오는 곳이

바래기산으로 나와 조금은 헷갈리고 고민스럽다.

 망덕고개 가는 길은 참으로 편안하다. 그리고 이곳의 식물분포도는 거의

갈참나무로만 되어있다. 소나무는 거의 구경을 할 수가  없는 곳이다.

 

望德고개(11:40)

경기도 용인시 이동면과 양지면의 경계능선에 있는 고개로 해실이고개라고도 부른다

 천주교인들이 우리나라 첫 신부이신 김대건(앙드레이)신부의 운구길에 세개의 고개비

별미고개(신덕고개) 이곳엔 망덕고개 그리고 거문정고개(애덕고개)를 만들었다

김대건신부가 새남터에서 목이 잘린후 한신도가 시신을 수습하여 몰래 양지배매실(골배마실)

로 옮겨왔다 배매실은 신부가 어려서 자라난 곳 이다 지금은 양지골프장안에 한복에 갓을쓴

입상이 있다 천주교의 박해가 심해 양지면 남곡리 숨어 포교하던 곳이다 우리나라 최초

은이공소를 열었던 곳으로 숨은곳을 은리(隱理)로 부른다 공소에서 형제봉 골짜기 해곡동에

 신덕고개 용해곡에는 망덕고개 거문정에 애덕고개를 통하게 하였으며 비석도 똑같은 모양으로

만들어 미리내성지로 통하는 삼덕고개를 잇는 성지순례길이다

김 대건 신부의 碑文에 적혀있는 내용

“이제 죽는 것도 천주를 위하여 하는 것이니 바야흐로 나를 위하여 영원한 생명이 시작하려 합니다.”

“망덕이란 천주 태워주신 초성덕(超性德行)행이다. 천주예수의 공로를 보사 허락하신 천당 영복을

바라고 그 복을 얻기에 모든 성충을 천주의 성실하심과 자비하심을 인하여 굳이 바라는 덕이니라.”

김대건신부

1845년부터 1946년 중반까지 페레올 주교, 안다불뤼 신부, 김대건 신부 등 세 분의 성직자가

조선에서 활동하고 있었다. 1846년(헌종12년) 5월 14일 김대건 신부는 주교로부터 서해 해로를

 통한 선교사영입 방도를 개척하라는 지시를 받고, 만주에서 기다리고 있는 메스트르 신부와 동료인

 최양업 토마의 입국을 위해서 주교님의 편지와 입국할때 사용한 해상지도를 가지고 백령도 해역

순위도로 갔다. 고기잡이 나온 중국 어선에게 편지와 지도를 전달하고 돌아 오다가 6월 5일

 관헌들에게 체포되었다. 체포된지 10일이 되던 날 김대건 신부는 해주 감옥을 거쳐 6월 21일

 서울로 압송되었다.

"사학죄인(邪學罪人) 김대건은 효수(梟首)토록 하라." 헌종실록 제13권은 김대건 신부에 대한

 1846년 7월25일의 최종판결을 이렇게 적고 있다. 그리고 사형집행을 미루다가 그해 9월 15일

헌종은 집행명령을 내려 다음날 9월16일 서울 한강 백사장인 새남터에서 집행되었다.

 김대건 신부의 시신은 순교 직후 새남터 모래톱에 매장되었다. 순교한지 40여일 지난 10월 26일에

 8명의 신자들이 김 신부님의 시신을 운구하여 미리내에 정식으로 매장하였다.

호동(虎洞) 가는 길 - 호동 지명에 대한 유래

옛날 범안굴(호동)에 사는 호랑이가 국사봉(학 모양의 산)의 학을 잡아먹으려다 

 어둔이(운학동)에 용이 되려는 물고기를 잡아 신나서 물고기를 물고 먹거리(운학동)에서

 먹으려는데 별안간 하늘에서 벼락(운학동)을 치는 지래 놀래 혼비백산 하여 장재미(운학동)

에서 안심하고 맛있게 먹었는데 그맛이 별미(해곡동)였다 호랑이는 개울을 건너 용해곡(호동)

에서 용을 만나 용이 되려는 물고기를 잡아 먹은것을 후회하고 문수봉(문수사지마애불이 있음

)을 향해 예직(호동)에서 예의를 갖추고 기도하니 길업(호동) 좋은업을 얻었다는

마을 명으로 꾸며진 민담이 존재한다고 한다

 

망덕고개에서 다시 26번 송전탑을 끼고 치고 오른다. 잠깐 서있는 사이에 추위가 엄습해 와서

서둘러 길을 나선다. 15분정도 지나니 바래기산이 나타난다.

망덕고개 오름길에 있는 26번 송전탑

바래기산(366.2m:11:55)

용인시의 이동면과 호동 경계에 있으며 정상에는 표시 없는 삼각점(안성 402 1983 재설)이 있고

가운데 나무 한그루와 쇠말뚝 하나가 박혀있는 공터가 있다.

이 나무도 忍苦의 세월을 이기지 못했나보구나.

재주봉(12:05)

밋밋한 정상에 알아볼 수 없는 삼각점만이 덩그러니 있다.

저 아래에서 사람소리가 들려온다. 오늘 처음으로 등로에서 산꾼을 만난다.

오늘 처음으로 남.여 산꾼 2명을 만난다. 먼저 인사를 건넸는데도 건성으로

인사를 받고 서둘러 먼저 가버린다. 나 역시 혼자걷고 싶어 일부러 쳐진다

등로 아래에 신원 골프장의 모습

2000년도 초에 한참 골프에 미쳤을 때 참많이 다녔던 곳이다.

이 골프장은 여성 의류를 생산하던 신원그룹의 소유였다가 그룹이

부도가 나면서 개인회원들이 인수하여 관리를 잘한탓에 상당한 명문

골프장이었다. 그린관리와 코스관리도 상당히 잘한 편이었던 기억이 난다.

344.6봉 삼각점의 모습(12:15)

십자가 철탑봉(12:20)

신원 골프장 위의  산꼭대기에 커다란 십자가 철탑이 설치되어 있다.

‘신원에벤에셀’이란 여성복 브랜드로 유명했던 신원그룹 박 성철 회장이란

분이 기독교 장로로서 기독교에 꽤나 열성적이었던 분인 모양이다.

예전에 골프를 칠 때  십자가 철탑이 가장 잘보이곤 했는데 하긴 그땐

이 능선이 한남정맥인줄도 몰랐는데 말이다.

 십자가 철탑봉 옆에있는 무명묘지를 끼고 편안한 내리막길을 내려간다.

용덕 저수지의 모습(경기도 용인시 이동면 천리 소재)

용인시 처인구 해곡동에 위치한 건설용 석재 채굴산업 현장

서두산업이란 업체가 건설용 석재를 채굴하는데 이곳에 꽤나 멀리서

보는데도 흉칙하기 그지없을 정도로 산을 폐허로 만들어놨다.

앞으로 얼마나 더 파먹어야 직성이 풀릴까...

저 뒤의 앵자지맥 능선이 안쓰럽게만 보인다.

참으로 이상한 인연

2년전 낙남정맥을 탈때 한두번 뵈었던 분인데 지난 겨울에 한북정맥 마지막 구간인

장명산 가는 길에서 장단(파주시 소재)에서 만났는데 오늘 한남점맥길에서 또다시

만난다. 참으로 귀한 인연이다. 우리 서로가 서로에 대해서 둘다 전혀 아는것이 없다.

이름도, 닉도, 핸드폰 전번도 모른다. 그런데도 이렇게 산에서 만나니 그리 반가울 수가 없다.

이 분은 땜방 산행을 왔는데 나하고 반대방향으로 가고 있다. 인사를 나누고 헤어진다.

374봉(12:35)

귀한 인연과의 작별을 하고 다시 송전탑이 정상을 차지하고 있는 374봉을

힘겹게 치고 올라 다시 내리막길을 향한다.

이 지역에서는 보기쉽지 않은 규암(하얀바위)도 보이고...

292.4봉(12:50)

아직도 무네미고개가 5km나 남아있다. 계속해서 내리막길을 내려가니

염치고개에 다다른다.

이 능선 곳곳에  ‘경안천 한강수변구역’이라는 노란색 표시말뚝이 자주 보인다.

그래놓고는 그 아래에는 여러개의 골프장과 가축을 사육하는 양돈장, 양계장,

목장과 공장 등 수질을 오염시킬 수 장애물들이 수두룩하다.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염치(鹽峙)고개(170m:13:10)

용인시 이동동면 염치마을과 호동마을을 잇는 콘크리트 임도이다.

옛날 소금장수가 지게에 소금을 지고 고개를 넘다 힘도 빠지고 배도 고파서 지개를 뻣치고 처량한

신세를 한탄하고 있는데 멀리서 바가지 긁는 소리가 나서 쳐다보니 숲속에서 묘지에 하얀여우가

사람의 해골을 긁다 머리에쓰면 사람으로 변하고 벗으면 여우로 다시 변하고 하는 모습을 보고

깜짝놀라 그곳만을 보고 있는데 여우는 사람으로 변장하고 마을로 내려 가는것이 아닌가 소금장수는

 변장한 여우를 따라 가보니 아랫마을에 결혼식을 올리는 집으로 들어 가는게 아닌가 소금장수는

이집에 무슨 변고가 있을것을 예감하고 집근처에서 집안을 주시하는데 밤이 으슥해 지자 신부가

기절하였다고 야단법석을 떨고 집안이 발칵 뒤집혔다 소금장수는 그러면 그렇치 하고 지게작대기를

 들고 신부방으로 들어가 아랫목에 앉아 있는 할머니를 작대기로 때려 잡으니 백여우로 변해죽어 있었다

주인은 소금장사에게 고맙다는 인사와 많은 선물을 주어 즐겁게 고개를 넘었다하여 소금장수가

넘었던 고개라하여 염치(소금고개)라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염치고개를 올라서다 배고고파 도저히 더 걸을수가 없어서 점심을 먹으려고 버너를 켜서

라면을 끊이려고 하는데 손이 너무 시려서 포기를 하고 가져온 앙꼬빵에다가

보온병에 따뜻한 물로 커피 한잔을 마시고 다시 길을 나선다. 그리고 초콜렛 2개를

꺼내서 주머니에 넣고 그것을 먹으면서 걷는다. 조금 올라서니 체육시설이 설치된

봉우리가 나타나고 다시 편안한 길을 걷는다.

상상은 자유(?)

217봉(13:35)

체육시설을 조금 지나니 건설부에서 설치한 찌끄러진 삼각점이 있는

217봉이 나타나고 우측으로 이어지는 정맥길을 향한다.

편안한 등로로 계속 걸어가니 우측에 호화묘지 2기가 나타나고 저멀리 앵자지맥줄기가

한눈에 들어오고 국사봉도 아련히 보인다.

소나무 갈비(나뭇잎)가 카펫처럼 푹신하게 깔려있는 길을 걷는다.

은화삼 9번홀(14:05)

9번홀 T 그라운드 뒤편으로 철조망(선답자의 시그널이 보인다)을 통해 마루금이 연결된다 

이곳부터는 높은산이 없는 능선길이다 한강수계인 운학천을 끼고 함께 같이 가는 능선길로

 들어서며 하천과 운학동이 내려다 보인다 하천 넘어는 운학동이고 하천안쪽은 호동이다

 옛날 호랑이가 다녔 다고 해서 호동인데 산 크기로 봐선 영 아닌듯 싶다

은화삼 골프장의 모습

3공화국 시절에 일인지하 만인지상의 위치에 있었던 국무총리를 지내신

김 종필 전 공화당 총재가 자주와 라운딩을 즐겨던 골프장이기도 하다. 

일말의 양심이라도 있는 골프장이다.

한남정맥 마루금의 정중간이 골프장이 자리잡고 있어서 정맥꾼과 수없이

시비를 벌여야 할 곳인데 그래도 일말의 양심에 가책이 있는 것인지 이렇게

친절(?)하게 우회도로를 만들어 산꾼들을 배려한 느낌이 가상스럽다.

이틀전에 검단지맥을 걸으면서 88골프장과 얼굴을 붉혔던 점과 2년전

낙남정맥길에 김해 가야C.C 는 은화삼 골프장에게 배워 산꾼을 배려했으면 한다.

20여분간의 골프장을 끼고 우회도를 내려오니  커다란 송접탑이 나온다.

송전탑(14:25)

용인시에서 설치한 이정표를 따라 내려와 송전탑 아래로 통과한다.

이곳에서 길이 잘 나있는 곳으로 직진을 하면 무조건 알바이니 조심하시길...

선답자들의 산행기에 보면 이곳에서 길을 잘못찾아 많이 해매는 곳이다.

이곳에서 우측으로 자세히 보면 희미한 등로가 나있고 조금 더 내려가면

반가운 시그널이 나타난다.

조금 더 내려오니 벌목지대가 나타나고 오늘 마지막 산인 함박산이

 송전탑과 함께 시야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이곳도 조만간 정맥능선이 없어질것 같다. 노끈으로 줄을  쳐놓은 걸보니

아마도 이곳도 개발이란 미명아래 뭐가 들어설 것 같다.

이곳은 등로가 거의 보이지 않는다. 겨우 희미한 등로로 내려오니

용인시에서 설치한 이정표가 산꾼을 반긴다.

콘크리트 도로로 내려서니 연화사라는 사찰 간판을 따라 도로로 내려온다.

도로로 내려오니 용인시 이동면 송전에서 용인시내로 들어오는 구 45번 도로가

통과하는 곳이다. 예전에 신원 골프장 다닐때 참으로 많이 다닌 곳이다.

이곳 도로에 내려서서 도로를 따라 용인시내 쪽으로 5분정도 올라가다

은화삼 골프장 정문에서 길을 건너 성진철강쪽으로 간다.

은화삼 골프장 정문(14:50)

은화삼 골프장 정문앞 도로를 건너서 성진철강 옆으로 들어선다.

성진철강 담벼락 철조망으로 접어드니 송아지만큼이나 커다란 개쉬끼가

금방이라도 물어 뜯을듯이  달려드는 바람에  애를 먹었다.

오늘 용인구간은 왜이리 개하고 부딪히는지... 잠시후에 등로에 접어드니

길이 거의없다시피 하다. 바로 아래에 新 45번 국도엔 엄청나게 차들이

빠르게 달리고 있다.

무네미고개(水踰峴 :15:10 )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남동과 이동면 천리 원촌마을의 경계 능선을 잇는 고개로

이 고개를 무네미고개라고 하는데 비가 오면 떨어진 물이 용인쪽에 떨어지면 경안천을

 통해 한강으로 흐르고 송전 쪽에 떨어지면 안성천을 통해 서해로 들어가게 된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즉 무네미고개는 分水嶺이 되어 물을 양쪽으로 나눈다는 뜻인데 무네미 또는 무내미라고 하는 말은

「물넘이」「물이 넘어가는 곳」이란 뜻이 된다. 무네미를 한자로 적을 때 수여(水餘)가 되는데

이는 물이 남는다는 뜻으로 이해해 붙인 표기이고 峴은 야트막한 고개에 주로 붙이는 고개이름이다.

 

함박산 (434.6 m)옛날 노아의 방주 이야기 같이 큰홍수가 천지를 개벽할때 용인의 모든 산과 들이 물에 잠겼는데

부아산에서 호리로 이어지는 산이 묻혀 버렸고 물위로 남은곳은 노루실 뒷산 꼭대기만 함박만큼 남아 있었으므로

그때부터 이산을 함박산이라 부르게 되었으며 그때 산이 무너져 고개가 생겼다하여 무너미고개가 되었다고한다

2006년도에 간행된「龍仁市史」1권에는 수유현(水餘峴)으로 잘못 기록되어 있다

엄청난 절개지에서 길이 거의없다시피한 길을 만들어서 겨우 내려오니

느티나무 아래에 있는 개쉬끼들이 떼를지어 짖어대기 시작한다.

그렇다고 겁먹을 산꾼이 아니지만 상당히 귀찮아진다.

이곳 도로를 건너서 길을 건너야 하는데 이곳 45번 평택~광주간을 잇는 신설국도는 

 차량들이 엄청나게 속도를 많이내고 차들이 많을 뿐 아니라 신호등이 없는 관계로

차량 흐름이 끊기지 않아 부득히 우회로를 택할 수 밖에 없다.

45번 국도 용인방면의 모습

45번 국도 갓길을 따라 2분정도 걸으니 남리 교차로 내려가는 길이

나타나고  국도 아래에 암로가 하나 나타난다. 이 구멍을 통해 걸어 나오니

경남여객 차고지가 나타난다.

경남여객 용인 차고지

이곳에서 다시 45번 국도를 끼고 평택쪽으로 500m 정도 내려가다가 등로로 접어든다.

이곳에 오르니 반가운 시그널들이 산꾼을 반기고 용인시에서 설치한

이정목을 따라 급경사의 절개지를 끼고 올라 등로에 접어든다.

절개지에서 바라본 지나온 은화삼 C,C의 모습

등로에 접어들어 조금 올라가니 전주 유씨의 종중묘가 나타나는데 비석마다 큰 벼슬을

하신 분들로 가득하다. 가선대부 호조참판을 하신분을 비롯하여 최소한 통덕랑을 지내신

분들이 즐비하다. 아마도 명문가의 집안인 모양이다.

전주 유씨 종중묘

종중묘를 지나니 차량들이 다닐만큼 넓은 도로가 나타나고 그 도로를 따라

계속 올라가니 그린 홀스랜드 승마클럽이 나타나고 나시 우측으로 도로를

따라 올라가니 망향의 대성동산이 나타난다.

그린홀스랜드 승마클럽

망향의 대성동산(15:55)

함박산 아래에는 공동묘지 주차장이 하나 있는데, 이곳은 이북 실향민이 조성한 망향의 대성동산인 공동묘지 주차장이다.

평안남도 대동군 시족면민회 망향의 대성동산이란 비석이 있다.

분단의 아픔은 이곳에도 있었다. 가고 싶은 고향에 가지 못해 한을 남기고 간 이들의 안락처이다

평안남도 대동군 시족면의 이선생께서 12,000평을 면민에게 기증하여 실향민들이

 죽어서라도 함께 살자는 아름다운 동산이다 실향민의 아품을 되새기며 통일을 기원해본다

함박산(咸朴山:434.6m:16:00)

함박산은 용인시 남동과 이동면 서리에 접해 있는 산으로 명지대학 뒷산이다.

주위의 표고가 높은 지형 때문에 높아 보이지 않지만 용인의 산 중에서는 높은 편의 산이다.

시내에 가까우면서도 독특함이나 개성이 없는 산이어서 찾는 이가 적어 등산로가 확실치 않아 접하기가 쉽지 않다.

무너미고개까지 물이 넘쳐 이 일대 봉우리가 모두 물에 잠기고 이 산 봉우리만 함지박만큼 남았다 하여 함박산이라 명명했다 한다. 

물매가 사방으로 흐르는 함박산은 용인시에 정수리산 같다.

산 정상에 엄청나게 큰 송전탑이 자니는 바람에 산을 버려놨다.

나무사이로 보이는 3군 사령부

이 아래에 역삼동 구성마을이 있는데 별이 아홉개인지라 3군사령부가 들어왔고..

부아산은 아이를 업고 헤맨다 했으니 용인대학이 자리 잡았다.

또 인근 이동면 어비리는 고기가 살찌는 곳이라 하여 송전 저수지가 생겼으니

이로써 함부로 작명할일이 아니다.

명지대학교 용인 캠퍼스의 전경

시간이 오후 4시가 넘으니 기온이 떨어지는 느낌이라 서둘러 하산을 한다.

내리막길을 내려오니 우측에 명지대학교 용인 캠퍼스가 보이고 좌측에는

3군 사령부가 나무사이로 보인다. 급경사를 내려오니 길은 엄청나게 좋고

보보스 골프장이란데서 세워둔 경고판이 나타나고 운동기구가 설치된 넓은 공터가 나온다.

명지대학교 안부 능선

체육시설에서 다시 오르막을 오르는데 체력저하로 인해 엄청나게 힘이든다.

로프를 부여잡고 있는 힘을 다한다. 계속해서 송전탑이 정맥길을 동행한다.

338봉 지적 삼각점(16:15)

이곳에서 용인시내가 한눈에 들어오고 저 너머 용인의 진산인 석성산이 한눈에 들어온다.

석성산 아래 서있는 용인시청

인구 100만정도 밖에 안되는 용인시청는 인구 1000만이 넘는 서울시청보다

더 크다고 한다. 거기다가 유리로 시공이 되어있어 에너지 먹는 하마로

불린다고 한다. 정말 말도 안되는 소리다. 지자체장의 괴시욕행정 정말로 한심하다.

성남시도 마찬가지... 시민의 녹을 먹고 사는 자들이 시민들이 피땀흘려 낸

세금을 마치 자기 쌈짓돈 쓰듯이 하고 있으니... 기가 막힐 노릇이다.

올 4월에 총선이다. 정말 두눈 부릅뜨고 능력없는 자. 민초들을 장기판 卒쯤으로

아는 싸가지없고 쓰레기같은  정치인들 싹 정리하고 정말 민초들을 위해 下心으로

봉사하는 지정한 일꾼을 뽑아야 할 것이다.

서울 공원묘지(16:20)

지적 삼각점이 있는 338봉을 지나니 엄청나게 큰 서울공원묘지가 나타난다.

산자와 죽은자가 공존하는 곳...  이 세상엔 한번오면 한번 가는게 인간사가 아닌가?

석가도 공자도 예수... 그 누구도 죽음이란 걸 피한자는 없었다.

살아있을 때 최선을 다하고 살아야 하는데 그것이 말처럼 쉽게 되지 않는게 인간인가.

서울공원묘지 뒤의 우회길로 편안하게 하고개로 내려간다.

조금 내려가니 직전으로 잘 나있는 길을 버리고 벤치 2개가

놓여있는 희미한 낙엽길을 따라 내려가니 하고개 에코 브릿지가 나온다.

용인대학교 교정과 골프 연습장 그 뒤의 부아산의 모습

시아버지와 며느리간의 애틋한 情과 슬픈 사연을 간직한 부아산이 오늘 마지막 길에서 만난다.

온조가 백제 도읍지 찾던 부아악. 부아산(403.6m)은 삼국사기 백제본기 제1시조 온조 편에서

 주몽(고구려 시조)의 곁을 떠난 비류와 온조가 오간 등 열 명의 신하를 거느리고 부아악에

올라 도읍이 될 만한 곳을 찾았다는 내용이 있는 산이다. 남쪽 서리 쪽에서 보면 산 모습이

사복사면이 둥글고 돌출되어 그 모습이 어린이를 업고 있는 형상에서 이름 지어진 산으로

 부아산(업을負, 아이兒라)부르게 되었다. 용인시내에 가까이 있고 산도 높지 않아

 접근하기 쉬운 산이므로 등산객이 많이 찾는 곳이다.

하고개 터널 밑으로 차량이 다니는게 보인다. 이제 산행을 마감해야 할 듯 싶다.

서울 공원묘지에서 우회하여 하고개의 에코브릿지 내려가는 길

하고개 터널위 에코브릿지

학고개(하고개: 삼거리 아랫고개라 하여 하고개로 더 알려졌다.

100여 년 전 지명지지엔 학(鶴)고개) 에코브릿지(동물 이동로 길이 190m 폭 19 높이10-12m)가 있다.

산과 산을 파내 터널 형식으로 만든 넓은 에코브릿지지만 경사도가 높아 동물들이 낙상할 만큼

가파른 것이 문제점으로 지적돼 등산로를 다시 만들었다. 경기도에서 만들어 준 터널로 우리에겐

편리한 길이지만 동물 이동로로서는 상당히 문제가 있어 보인다.

이것도 인간들의 오만함이 아닐까하고개 에코브릿지(동물 이동 다리)양쪽에 있는 서울공원묘원이다

서쪽에서 에코브릿지로 내려서는 급경사로 동물 이동로가 아니라 동물낙하 자살고지 같다고

선답자들이 하는 소리다.

하고개(210m : 16:40)

학고개, 학터로도 불리는 하고개는 고약한 양반을 복수하려던 상놈의 꼬임에 넘어간 양반이 조상의

묘를 파내자 묘에서 학이 날아 올라가고, 그 후 양반집은 망했다는 전설을 간직하고 있는 곳으로 

하고개 밑으로는 321번 도로가 지나는 터널이 뚫려있다.

이고개는 에코부릿지 터널공사를 하면서 학고개로 명명했지만 실제는 삼가리 아래 있는 하고개로 알려진 고개다.

하고개 터널앞 용인대학교 정문 방면

춥고 힘들었던 9시간의 대장정을 마치고 스틱을 접는다.

추운탓에 먹거리를 제대로 챙겨먹지 못한탓에 마지막에 허기로 인한

체력저하로 상당히 힘이 들었다. 그래도 한 구간을 마쳤다는 뿌듯함에...

이 맛에 산에 미치는거 아닌지 모르겠다

 

이곳은 버스가 없다. 그리고 버스가 서는 용인시청까지 걸어가기는

조금 길고... 지나가는 차를 향해 무모한 히치를 시도한다.

그런데 지난주와는 달리 이번에 3번만에 지나가는 스타렉스 승합차가

시청앞까지 태워준다. 추운데 고생이 많다고 하는 인사까지 건넨다.

자기도 산행을 많이하는 마니아란다. 역시 산꾼은 산꾼을 알아보는 모양이다.

이곳에서 820번 버스를 타고 불알친구가 기다리는 분당 정자동 감자탕집으로 향한다. 

오늘 산행기록을 한 G.P.S

용인시청앞 버스 정류소

분당 정자동 서울 감자탕집(18:00~20:30)

친구들에 추한 모습을 모습을 보이기 싫어서 만나지 않으려고 했는데

불알친구의 음모(?)에 휘말려 낚시에 걸려 들었다.

그리고는 정초부터 얼마나 술을 먹었는지 기억이 나질 않는다.

처음에 소주에 맥주를 말아서 마시다가 2차로 생맥주 집에 옮겨서

먹다가 필름이 끊어지기 일보직전까지 먹었는데 집에 어떻게 온지 기억도 없다.

 

30km의 산을 타고 내려와서 죽기살기로 술을 먹으면 운동한 건 말짱

 도루묵이 아니냐고 친구가 힐난을 한다. 맞는 얘긴지 모르겠다.

 

여시아문(如是我聞)... 부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부처님의 제자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세상에 알고 죄를지은 자와 모르고 죄를 지은 자 중에 누가 더 나쁩니까?

부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죄를 모르고 지은자가 훨씬 나쁘니라.

왜냐고 하면 죄를 알고 지은 자는 죄를 나쁜줄 알기 때문에 금방 깨우칠 수 있지만

죄를 모르고 지은 자는  그것을 깨우칠 수 없기 때문이니라

 

고로 산행을 하고 술먹는 넘이 산을 안타고 먹는 넘보다 훨씬 낫다는 얘기지 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