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범여(梵如)의 世上사는 이야기
♣ 백두 대간및 9정맥 후기♣/한남정맥 (終)

한남정맥 제 6구간 - 목감초교에서 마리고개(전진 아파트)까지

by 범여(梵如) 2012. 5. 28.

산행일자 : 2012. 5.27

☞ 산행날씨 : 흐린 날씨에 가끔 국지성 비가 옴

☞ 참석인원 : 나홀로 산행

 산행거리 : 도상거리 : 21km G.P.S 22.6km / 10시간 소요
☞ 산행코스 : 목감초교-110봉-서울외곽고속도로 절개지-팔각정-산불감시초소-운흥산-제3경인고속도로-도리재-115봉

                 서울외곽고속도로 지하통로-방죽재-부대 사격장-부대정문-외곽고속도로 방음벽-139봉-양지정-양지산-111봉

                 중림고개-제2경인고속도로-11번 송전탑-33번 송전탑-비룡사-삼십고개-피정의 집-88번 송전탑-민들레농원

                시흥I.C주유소-할미고개-소사고교-소사 배수지-120봉-122봉-여우고개-하우고개-와우고개-성주산-208.4봉

                마리고개(전진 아파트 앞) 

☞소 재 지:   경기도 시흥시 /광명시 / 부천시 소사구 / 인천시 남동구

 

 한남정맥 6구간을 나선다.  우리집에서 서부 경기지방을 연결하는 교통편이 마땅찮아

대충교통이 꽤나 불편한 편이다. 새벽 4시에 일어나 샤워를 끝낸 다음에 베낭을 챙겨서

4시 30분에 집을 나선다. 아파트 입구에 나서니 경비 아저씨가 반갑게 인사를 하면서

잘 다녀오라고 인사를 건낸다.  어제 한의원에 침을 맞으러 갔더니 평소 친분이 있는

원장님이 약침을 주사하면서 약간 가려울 수 있고 절대 술을 드시면 안된다고 신신당부를 한다.

근데 토욜 저녁에 평소 동네에서 자주 어울리는 4인방이 번개 모임을 가진 것이다.

나만 모른체... 모른게 아니고 토욜 저녁마다 베낭을 메고 도망을 가니까?

그런데 내가 사무실에 있으니 왔다가 내일 아침에 산에 간다고 하니까. 이게 왠일이냐 하면서

졸지에 납치(?)를 당한다. 평소 자주가는 세꼬시집에 오늘 자연산 고기가 많이 들어왔다나

어쨌다나 중얼중얼 하면서 횟집에가서 4명이서  소주 10병을 간단히 비우고... 집에와서

자는데 침 맞은 부위가 엄청나게 가렵고 약간의 부기가 있어서 잠을 못잔 편이다.

그래도 설마 괜찮겠지 한게 문제가 생기는 것 같은 느낌이다.

 

선릉역에 도착하여 김밥집에서 비빔밥 한그릇을 먹고 김밥 한줄을 산 다음에

선릉역 지하철에 도착하니 첫차가 올려면 20분이나 더 있어야 한다

05시 31분에 지하철 첫차를 타고 구로디지탈역에 도착하여 목감가는 버스를 타러

환승역에 내려가니  표시판에 5602번 버스가 도착하려면 65분이나 있어야 한다고

표시가 나온다... 처음부터 일이 꼬인다.경기도 버스는 서울과 달리 첫차가 늦은 모양이다.

다리는 약간 부어 오르고... 부처님이 노하셨나? 내일이 초파일이라 오늘 절에가서 일을

좀 거들어야 하는데 산에 간다는 핑계로 안간게... 07시 25분에 목감행 버스에 오른다.

오늘 산행구간의 지도

선릉역에 도착하여 인근 김밥집에서 비빔밥 한그릇 먹고 김밥을 한 줄사서 베낭에

넣고 지하철 역에 도착하니 첫차 05시 31분이라 20분 가량을 기다린 끝에

첫차를 타고 구로디지탈 단지역에 도착하니 06시가 되었다.

역에서 내려 1번 출구를 나와 버스 환승역에  나와 버스를 기다리는데 표시판에

목감가는 5602버스가 도착하려면 65분이나 남았단다. 괜히 일찍 나왔네그려

무릎의 침맞은 부분에 자꾸만 부어오른다. 이러다가 산행을 못하는거 아닌지?

구로디지탈 단지역 환승센타(06:05)

다리는 아파오고 커피 한잔이 생각나 근처에 있는 자판기에 300원을 놓고 버튼을 누르니

커피는 안나오고 맹물만 나오는게 아닌가... 아이! 참 아침부터... 에공 참아야지

다시 버스 정류장으로 오는데 누가 아는척을 하는게 아닌가... 한네산 산악회 한강이

할배는 여기서 만난다. 오늘 충북 가은산으로 정기산행 가는 날이란다. 무지 반갑다.

목감가는 버스에 오르다(07:25)

버스에 오르자 25분만에 목감초교 입구에 도착한다.

목감초교 입구 정류장(07:50)

25분 버스를 타려고 1시간 20분을 기다렸다. 확실히 비효율적으로...

정류장에서 장비를 점검하고 산행준비를 마친 다음에 08시에 산행 시작~~~

지난번 날머리 구간이라 더욱 눈에 익은 가보부동산을 끼고 우측을 돈 다음에

직진을 하니 목감초교 후문이 나오고 학교 울타리를 끼고  올라간다.

목감초교 후문(08:03)

초교 담장옆의 임도를 따라 올라가니 양 옆으로 텃밭이 있고 이른 아침에

텃밭을 가꾸는 사람들이 손놀림이 분주하다... 이른 아침이지만

구름속에 가린 아침 햇살은 꽤나 따갑다.

110봉(08:10)

목감초교를 뒤로하고 텃밭을 지나서 10분만에 110봉 정상에 오른다.

정상에는 이 동네 주민들이 자주 오르내리는지 길은 반질반질하고

정상에는 돌탑이 하나있다. 이곳에서 우측으로 정맥길은 이어진다.

우측으로 들어서니 선답자들의 시그널이 나풀거리고...

넘어진 아카시아나무들을 바라보며 조금 내려오니 서울외곽고속도로가

정맥길을 두동강 내는 바람에 고속도로 갓길을 따라 우측으로 계속 걸어간다 

고속도로 갓길을 따라 10분 이상을 걸어가다가 텃밭이 있는 곳으로 내려서니

버려진 쓰레기가 가득하다. 이곳에서 조금 더 걸어가니 굴다리가 나온다.

고속도로 굴다리를 지나니 약수터가 있고 음식점이 있다

이곳에서 좌측으로 꺽어져 오르니 꽤나 넓은 황토색깔의 길이

나오고 주위에는 아기똥풀이 노란 꽃을 피우고 산꾼을 반긴다.

능선으로 오르니 지난 구간의 수리산이  운무에 가려져서 희미하게 보인다.

조금 올가다가 좌측의 콘크리트 도로롤 접어든다.

없어지는 한남정맥길을 최소한이나마 원칙적으로 걷고 싶기에...

우측에 편한길을 두고 철계단을 치고 오르니 편편한 안부가 나온다.

팔각정(08:45)

초반인데도 무릎이 자꾸만 부어오르는지 걷기가 상당히 불편하다.

이런 곳에서 속력을 줄여야 하는데 속력이 나질 않는다.

팔각정에서 우측으로 나오면 내리막길이 나온다.

까투리 2마리가 나를보고 놀라서 재빨리 날아간다.

조그만 봉우리인 180봉을 지나니 망개나무(청미래)에도 열매가 열리기 시작하고...

이곳에서 처음으로 사람을 만난다. 이 아래지역의 주민인지 산보를 나온 모양이다.

반갑습니다 하고 인사를 건낸다. 나도 인사를 하고 다시 오름길을 오른다.

산불감시카메라(09:00)

산 정상에는 시흥시에서 설치한 감시카메라가 홀로가는 산꾼을 매섭게 노려본다.

이곳서 곧바로 편안길을 이어간다.

삼거리 안부(09:05)

좌측길은 정맥길을 잠깐 벗어나 운흥산 가는길이고 우측은 가야 원래 정맥길이 이어지고 있다.

내가 언제 이 길을 걸어야 싶어서 정맥길에서 조금 떨어진 운흥산으로 향한다.

2분 정도를 걸으니 운흥산이 나타난다.

운흥산(雲興山:204.1m:09:07)

경기도 시흥시 금이동 물왕골 위에 있는 산으로서 지도상에는 뚜렷이

표기되어 있는 산으로 삼각점도 있지만 이곳은 운흥산으로 알만한

표시가 없으며 벤치 하나만 정상을 지키고 있다. 맞은편에 보이는

물왕저수지도 녹음에 가려 잘 보이지도 않고 가뭄탓인지 물이 별로없다.

운흥산 삼각점(△ 안양 443 1990 복구)

운흥산에서 바라본 물왕저수지

경기도 시흥시 물왕(物旺)은 물자가 풍부하다는 동네라고 한다. 물왕저수지는 왕년에

이승만 대통령 전용 낚시터도 만들었을 만큼 유명하다. 카페촌도 형성됐다니

희미한 옛 사랑 그림자라도 찾으러 갈 만한 곳이다. 그 너머에 보이는 물은 바다다.

오이도 시화호 대부도이다. 한때 수도권에서 가장 유명한 낚시터 중 하나였다고 한다.

 

공식 명칭은 시흥군의 '흥()' 자와 부천군의 '부()'를 합한 흥부저수지인데,

 이는 1946년 준공 당시에 몽리의 면적이 시흥군과 부천군에 속해 있었기 때문이다.

시흥시 최대의 담수호이자 대표적인 휴식처이며, 한국농어촌공사 화성, 수원지사에서 관리하고 있다

서울·안양·안산 등 수도권 가까이에 자리잡고 주위를 관무산(일명:성인봉)·마하산·운흥산이 있다. 

서울외곽고속도로가 지나는 수리산은 오리무중이다.

운흥산에서 다시 삼거리 안부로 되돌아와서 좌측의 급경사로 내려선다.

이곳은 아직까지 낙엽이 쌓여있어 그래도 걸을만한데

자꾸만 무릎 주위가 부어 오르고 진물집이 생기기 시작한다.

조금 더 진행하니 조금전까지 오던 그 좋은 길이 없어져 버린다.

이곳은 산딸기 소복히 꽤나 많이도 열려있다.

참새가 방앗간 그냥 지나가랴... 10분동안 정신없이 딸기를 따서

입에다 집어 넣는다. 아직 완전히 익지 않은 탓인지 단맛은 별로다.

정맥길은 산딸기가 군락지를 이루어 완전히 점령군 행세를 한다.

얼굴과 팔뚝이 할키고 하니 온몸이 쓰리고 아프다.

조금은 진행하니 서울외곽고속도로와 제3경인고속도로가 정맥길을

완전히 짤라먹고 있어 부득히 우회를 한다.

서울외곽고속도로와 제3경인고속도로 교차점(09:30)

절개지를 내려오니 콘크리트로 도로가 나오고 이곳에서 좌측으로 이어진다.

100m 정도를 내려오니 동물이동통로가 나오고 제3 경인고속도로를 통과한다

고속도로 아래를 통과하여 능선에 오르니 우측에 도리분기점이 보인다. 

능선에 올라서니 고산자의 후예를 꿈꾸는 돌쇠대장의 시그널이 보인다.

묘지 몇기를 지나고 길이 없는 희미한 등로로 내려서니 마을도로가 나타난다.

도리재(09:45)

경기도 시흥시 금이동과 방죽말을 연결하는 조그만 마을길이다.

 도리재라는 마을명의 유래는 정확하게 알 수는 없다. 마을 어르신들 중에는

 <돌>과 관계가 있다고 보는 분도 계셨다. 개인적으로도 동감하지만 정확하게 말하기는 어렵다.

 만약 <돌>과 관계 있다면 원래 <돌재>가 후대로 내려오면서 <도리재>로 바뀌었을 것으로 보인다.

이런 가정 하에서 본다면, <돌재>는 <돌이 많은 산>, <돌이 많은 고개>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고 추측할 수 있다.

 도리재는 한자로는 [桃李峴(도리현)]이라고 하여 [복숭아 도(桃), 오얏 리(李), 고개 현(峴)]으로

표기하지만 복숭아나 오얏나무와는 직접적인 관계가 없이 음을 빌려 표기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기독교 공원묘지(09:50)

도리재에서 좌측 능선으로 올라서니 기독교 공동묘지가 나온다.

공동묘지가 정맥길을 완벽히 점령하고 있어서 미안감은 있지만

그래도 정맥길은 이어가야 하기에 어쩔수 없이 묘지 가운데를 통과한다.

묘지를 치고 오르니 조그만 정상 능선이 나타나고 다시 내리막길을

내려오는데 이젠 다리가 땡겨서 걷기가 더 힘들어지고 포기해야 하나

말아야하나 자꾸만 갈등이 생긴다. 이곳도 길이 없기는 마찬가지...

몇년전에 태풍때 넘어진 아름들이 아카시아 나무가 넘어져 그걸 넘어려니 더 아프다.

희미한 등로에 간간히 나타나는 시그널은 홀로가는 산꾼에겐 등대와 같은 존재다.

이곳에는 관리가 안된 묘지 3기가 있고 이곳에서 희미한 등로가 있는

115봉으로 가면 정맥길에서 벗어난다(알바조심) 이곳 묘지에서 길이

아예없는 우측으로 꺽어져 능선 안부로 올라선다.

개발이란 미명아래 철저하게 망가져버린 한남정맥길을 꼭 걸어야 하나...

심각한 갈등이 야기된다.  그러나 가야지... 9정맥 완주를 위하여.

능선에 올라 우측으로 꺽어진다. 바로 아래에는 서울외곽고속도로가 나타나고...

고속도로를 끼고 사진에 보이는 수로를 따라 계속 걸어간다.

수로를 지나니  외곽고속도로 아래로 조그만 도로가 나있고 철재 펜스아래 내려서서

좌측으로 걸어간다. 우측에는 밭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보인다.

고속도로 아래로 통과하니 커다란 화물차들이 많이 주차해 있고

이곳에서 20여m를 가니까 좌측의 희미한 등로가 나타난다.

등로로 올라서니 주위에는 두릅나무가 지천으로 깔려있고 이곳은 주인이 있는지

철조망이 처져있다. 그런데 갑지기 길이없어져 버린다. 이젠 범여가 가는 길이 정맥이다.

이곳은 찔레꽃 아카시아 등등 가시식물이 지천이다. 갑자기 독사 한마리가 지나간다.

신경이 바짝 쓰인다. 겨우겨우 없는 길을 만들어 간다.

겨우겨우 헤치고 나오니 갑자기 지치기 시작한다. 길은 보이기 시작하고...

이 도로를 따라 계속 걸어나오니 방죽재가 나타난다.

방죽재(10:50)

경기도 시흥시 논곡동과 도창동을 잇는 6차선의 42번 국도인 수인산업도로가

지나가고 있고 그 위로는 서울외곽고속도로가 지나고 있는 곳이다. 

차량 흐름을 읽고 6차선 도로를 무단횡단하려다 보니 우측 100여m 위로

횡단보도가 있어서 위로가서 기다리는데 신호가 너무 길어서 차량 흐름을

파악하고 건넌다. 결국 무단횡단을 한 꼴이 되었다.

방죽재에 있는 G.S주유소는 정맥꾼들의 이정표가 되었는데

지금은 알뜰주유소로 이름이 바뀌었다. 기름이 우리동네보다 150원정도 싸다.

횡단보도를 건너니 버스 정류소가 나오는데 이곳은 방죽머리라고 표기되어 있다.

물이 넘치거나 치고 들어오는 것을 막기 위하여 세운 둑이란 뜻인데 여긴

무슨 유래가 있는지 알 길이 없다... 괜시리 궁금하다. 

버스 정류장 뒤의 산으로 올라 정맥길을 이어간다.

여기도 길이 없기는 마찬가지다. 왠넘의 찔레꽃과 아카시아가 많은지

다리가 너무 아픈 산꾼을 자꾸만 괴롭힌다.

5분정도를 올라가니 군부대 철조망이 나타나고 불이난 흔적이 있다. 최근에 불이난 모양이다.

육군 7578부대의 철조망이 정맥을 가로 막는다.

하는 수 없이 철조망을 끼고 좌측으로 계속 걸어간다. 

10분정도를 철조망따라 계속 걸어가다가 좌측으로 약간 비켜나는데

이곳은 새로 심은듯한 포도나무밭이 있고 약간의 텃밭도 보인다.

자꾸만 무릎의 통증이 심해진다. 하는 수 없이 베낭에서 아스피린 2알을

꺼내서 먹고 배가 고파서 아침에 산 김밥 한줄과 집에 냉장고에서 따라온

델몬트 쥬스로 허기를 면하고 10분간의 휴식을 취한다.

오늘의 중식 김밥 한줄과 델몬트 쥬스

대부분의 산꾼들은 이곳에서 좌측으로 내려서서 도로를 따라 정맥길을 진행하는데

정통을 자처하는 범여는 군부대 철조망을 넘어 맥길을 이어간다.

오늘은 휴일이라 사격 연습을 할리는 없을터이고...

깃발이 내려져 있는걸 확인하고 사격장을 통과하여 나가는데 철조망에

바지가 걸려 찢어진다. 에공 아까운거 3년전에 15만원 주고 산 바지인데.

길도 없어 이리저리 헤매는데 산 안에는 부대장의 경고문이 곳곳에 걸려있다.

겨우 숲을 헤치고 내려오니  397번 지방도가 보인다.

바지만 찢어진게 아니라 다리도 할켜서 피가난다... 그리고 쓰리다.

도로로 내려서서 우측의 고려금속을 끼고 직진을 한다.

2291부대앞(11:30)

경기도 시흥시 금이동과 무지내동을 연결하는 397번 지방도가 지나는 곳이다.

이곳은 육군 제2291부대 701부대가 주둔하고 있고 우측에는 아카시아 벌꿀을

채취하는 양봉업자가 벌통 수십여개를 쌓아두고 있다.

부대 정문 옆에 있는 버스 정류장 뒤로 올라서며 능선을 따라 정맥길을 이어간다.

철조망을 끼고 계속 올라간다... 조금뒤 무덤이 나오고...

군부대 철조망 바로아래에 가선대부(嘉善大夫)를 지낸 옛 무덤이 나오고

바로 뒤에는 초소가 있는데 무덤을 촬영하는데 초병이 제지를 한다.

그래서 촬영하는 이유를 설명하니 알았다고 한다.

 

가선대부(嘉善大夫)

조선 시대에 종이품(從二品) 문무관의 품계로

1865(고종 2)년부터 문무관과 종친, 의빈(儀賓)의 품계와 같이 썼다고 한다.

한참을 철조망을 따라가다가 좌측으로 꺽어지는데  갑자기 하늘이

컴컴해지더니  비가 쏟아지기 시작한다. 일기예보에 비가 온다는

소릴 안했는데 난감하다... 그리 많이오지 않을 것 같아서 그냥 비를 맞고간다.

약간의 오름길을 오르니 진지가 나타나고 이곳에서 우측으로 내려간다.

이곳에서 반가운 봄,여름,가을,겨울 산악회 시그널을 처음으로 만난다.

이것은 마음씨 착한 참이슬 대장이 걸어논 모양이다.

우측으로 내려서니 다시 편한 길이 나타나고...

길가에는 넘어진 아카시아 나무들을 넘어려니 다리가 너무 아프다.

철학박사의 묘(12:00)

철학박사묘를 지나니 또다른 부대를 만나고...

부대 철조망을 내려서니 철조망과 고속도로 방음벽이 붙어버려

갈길이 없다. 부득히 산꾼은 고속도로로 내몰린다.

엄창난 속도로 달리는 차가 겁이난다.

방음벽 시멘트 턱위로 곡예를 하듯이 지나간다.

금방이라도 떨어질듯한 기분이다. 나말고도 지나간 선답자들의

시그널이 반갑기만 하다. 선답자들의 후기에는 고속도로 순찰차에

적발되어 강제로 추방되었다는 후기도 나온다.

제발 산꾼들의 안전을 위해서라도 정맥길 제대로 좀 이어주소.

방음벽이 끝나는 지점에서 다시 또다른 600 수송부대의 철조망을

따라서 올라간다. 아스피린 효과가 떨어졌는지 또다시 통증이 시작된다.

저 멀리 소래포구로 유명한 소래산이 보인다.

군부대 철조망을 계속을 계속 따라가다가...

반가운 돌쇠대장의 시그널을 따라 좌측으로 꺽어져....

다시 꽤나먼 철조망을 치고 오르는데 이곳은 재배가 아닌

야생 두릅이 지천으로 널려있다. 군부대라 인적이 더문 탓인지

그냥 피어 버렸다. 에고 아까운 거... 그래도 먹을만게 조금 있어서

비닐을 꺼내서 베낭에다가 담는다.

망루초소(12:25)

두릅을 조금 채취하고 오르막을 오르니 망루초소가 나타나고 이곳에서

좌측으로 꺽어져 정맥길을 이어간다.

이정표를 따라 전망대 방향으로 향한다.

시흥시 보건소에서 설치한 팻말을 보면서...

호젓한 길을 걸어가고...  이곳이 봉제산이란다

엄청나게 큰 송전탑도 지나고...

능선에서 바라본 광명시의 모습

경기도의 중부 지역에 있는 시이다.

부천시 · 시흥시 · 안양시와 서울특별시의 금천구 · 구로구 등과 접해 있다.

 『여지도서』 금천현 방리조에 서면과 남면으로 기록되어 있는 지역이다. 1795년에 금천현이 시흥현으로

 바뀌었고, 1914년의 행정구역 개편 때 서면과 남면은 통합되어 시흥군 서면이 되었다.

 1963년 박달리는 안양시로 분리되어 나갔다. 1970년 광명리와 철산리 지역에 서면 광명출장소가 설치되었다.

1974년에 서면 광명출장소가 시흥군 광명출장소로 되었고, 1979년 나머지 서면 지역은 소하읍으로 승격되었다.

1981년 광명출장소와 소하읍을 합쳐 광명시가 설치되었다.

 

광명(光明)이란 지명은 불교에서 나온 용어로 부처와 보살등의 몸에서 나는 빛으로

불교에서는 번뇌나 죄악의 암흑에 신앙상의 지혜와 견해를 갖도록 밝게 비추는 일을 뜻한다.

광명이나 안양 등의 지명으로 봐서 불교가 흥하던 고려시대의 명칭이 아닌가 싶다.

양지산(151m:12:37)

경기도 시흥시 과림동과 안현동의 경계 능선에 있는 산으로 

정상에는 2층으로 된 팔각정이 설치되어 있어 위에 오르면 소래산이 한눈에

들어온다. 좌측에 지나가는 외곽고속도로 땜에 상당히 시끄럽다.

시간이 너무 지체된다. 서둘러 보지만 속도가 나질 않는다

111봉(11:55)

아픈 다리에 통증 때문에 아스피린 한알을 더 먹는다.

꼭 이 짓을 해야하는 회의감이 엄습해온다.

또다른 부대를 만난다. 오늘 산행은 완전히 군부대와 고속도로를

순찰하는 산행같다. 이 부대 철책선을 끼고 좌측으로 내려선다.

부대를 내려서는 길에는 완전히 꽃비가 내린 느낌이다.

길에 떨어진 아카시아 꽃잎으로 길은 하얗다.

이 부대 끝에서 좌측으로 편안한 임도로 내려온다.

부대 끝에서 조금 내려오다가 다시 좌측으로 꺽어진다.

조금 더내려와 도로로 떨어지니 창성포장이란 회사가 나타난다.

중림고개(12:20)

경기도 시흥시 안현동과 과림동을 잇는 고개로 마을도로로 절개지에

내려서니 창성포장이란 회사가 보인다. 이곳에서 우측으로 내려간다.

창성포장을 지나니 철재로 막은 엉성한 건물에 오리, 닭, 개를 사육하고 있다.

아마 개를 잡는지 매캐한 냄새가 코를 괴롭힌다. 얼른 지나가고 싶다.

중림고개 옆을 지나고 있는 제2경인고소도로의 모습

개 사육장을 지나 중장비를 세워놓은 곳으로 내려와서 다시

좌측으로 지나 제2경인고속도로 굴다리를 지나 좌측 길을 따라 올라간다.

좌측에 제2경인고속도로를 끼고 포장도로를 계속 걸어간다.

고속도로를 계속해서 가면 안현분기점이 나오는 곳이다.

굴다리를 걸어서 5분정도를 걸으면 검은 대리석에 전주이씨 하동군파

묘지 가는 방향으로 우측으로 꺽어져 공동묘지로 올라간다.

새로 설치된 묘지로 올라서니 공동묘지가 나타난다.

좌측 사유지 울타리를 따라서 공동묘지 가운데의 등로가 보이지 않아

지도와 선답자의 산행기를 번갈아 보면서 공동묘지를 지나니 등로가 뚜렸하다.

11번 송전탑을 지난다. 조금을 더 지나가니 길가에 중년 남녀가 매트를 깔아놓고

진한 애무를 하면서 밤에나 하는 짓거리를 대낮에 하다가 산꾼 지나가는 소리에

재빨리 떨어진다. 아이구 내가 민망해서리... 사랑사업에 방해를 해서 미안하구먼. 

철탑을 지나서 좌측으로 내려가니 묘지2기가 나타난다.  우측 아래에 있는 과림동

 안골 마을에는 서울 외곽지역이라 그런지 마을이라기보다는 공장지대에 가깝다.

비룡사 앞 도로(14:30)

경기도 시흥시 계수동 안골마을에서 고경이 마을을 넘어가는 고개로

이 고개 우측에 창건한 지가 얼마되지 않은듯한 비룡사가 자리를 잡고있다.

요즘 불교계의 불미스러운일 때문에  스님들의 마음이 편치 않으실것 같다.

내일이 부처님오신 날인데 연등이 그리 많이 달린것 같지는 않다.

스님 힘내셔요... 몇몇 스님들의 일 때문에 대다수 많은 스님이 힘든다는 것을...

부처님을 믿고 바른길로 수행 정진을 합시다

비룡사 옆 위를 올라서 능선으로 올라선다.

비룡사 뒷 능선에서 바라본  지나온 33번 송전탑과 계수터널

능선에 올라서니 길은 잘 나있다. 조금 올라가니 삼거리가 나타나는데 이곳에서

우측으로 꺽어져 내려오니 시흥에서 광명으로 넘어가는 4차선 도로가 나타난다. 

삼십고개(14:35)

경기도 시흥시 계수동을 지나가는 283지방도인 4차선이 지나간다.

시흥에서 부천으로 넘어가는 고개로 도로를 따라 좌측으로 200여m를

올라오니 이곳은 꽃을 키우는 농원들이 즐비하고 신호등을 건넌다.

삼십고개 부천쪽의 모습

성바오로 피정의 집(14:50)

도로를 건너서 우측으로 가니 피정의 집이 나타나고 계속해서 구도로를 걸어서 간다.

샷시공장을 지나서 이정표를 따라서 가다가 저기 서있는 화물차가 있는 곳에서 좌측의

등로로 접어드니 희미한 등로가 나타나고 피정의 집에서 철조망을 쳐놓고 등로를 막고있다.

희미한 등로를 따라 계속해서 올라간다.

피정의 집 철조망이 한남정맥길을 완전히 막아버렸다.

선답자들의 산행기에는 뚫어진  철조망으로 갔다는데 아무리봐도

구멍난 철조망을 찿을수가 없다. 아픈 다리를 이끌고 30분을 걸은

다음에 뚝 떨어지는 황토길 임도를 만난다.

이곳에서 좌측으로 가니 녹색 팬스로 된 철대문이 나타나고 잠겨진 철문을

간단하게 넘어서 등로를 이어간다.  농가주택 울타리를 따라 등로를 이어간다.

이곳은  뱀딸기가 지천이다.  이곳 우측에도 마을 전체가 공장지대 같다.

 피정의 집 철조망을 따라서 내려가는 곳에 희미한 삼거리가 나타나는데

이곳에서 정맥길은 우측으로 향한다. 종교단체가 등로를 완전히 점령해

민폐를 끼치니 조금 뒷맛이 개운찮다.

88번 송전탑(15:30)

88번 송전탑에 오르니 저 멀리 소래산이  한 눈에 들어오고 바로 아래에는

공사를 하다가 만 도로가 그대로 방치되어 있다 이곳에서 정맥길은 우측으로 향한다.

88번 송전탑에서 내려와 우측에 황톳길 임도로 향한다.

송전탑 아래에 임도에서 본 소래산의 모습

구석계일 마을로 내려가는 도로 옆에는 쓰레기가 무단으로

방치되어 있어서 보기가 상당히 민망스럽다. 등로입구에

선답자들의 시그널이 산꾼을 반긴다. 등로를 걸어서 내려가니

대야동 사거리가 나타나고 민들레농장 뒷길에서 절개지의

다리가 너무아파 철계단을 올라갈 엄두가 나질 않아 민들레 농장

 옆길을 타고 내려와서 도로를 건너 오일뱅크 주유소로 향한다.

민들레 농장((15:50)

오리고기가 전문인 민들레 농장을 내려와서 도로를 건너 도로를 따라 올라간다.

조금 지나니 오일뱅크 주유소가 나타나고 커다란 온누리장작구이집이 나타나고

 이윽고 수박을 파는 과일 노점상이 나타난다.

수박 노점상에 들려서 양해를 구하고 물보충을 하고 참외를 2개 사서 베낭에 넣는다. 

길 건너에는 S.K 시흥I.C 주유소도 보이고...

할미고개(16:20)

경기도 시흥시 계수동과 부천시 소사구 소사본동을 잇는 고개로 소사고교와

유한대학이 있다. 이 고개위의 산의 모양이 노파와 같아 붙여진 이름으로

 전해져 내려오고 있으나 할미는 ‘한뫼’ 즉 ‘큰산’을 뜻하는 것으로 보이므로

 이 고개의 산봉우리가 이 주위에서는 가장 큰 산을 뜻한다고 한다.

이곳은 1950년대 말에 이곳에 박태선 장로교의 신앙촌 마을이 들어오면서

유명세를 탄 곳이라고 한다.

소사고등학교를 바라보면서 신호등을 기다리며 횡단보도를 건넌다.

천황사와 소사잔디구장을 따라서 올라간다.

소사배수장 철조망엔 선답자들의 시그널이 보이고...

 

소사배수장(16:25)

소사배수장 정문에서 좌측 철조망을 끼고 된오름을 오른다.

좌측 아래에는 부천을  상징하는 복숭아 밭이있다.

 

부천(富川)

부천은 복숭아가 많이 난다고 하여 예로부터 '복사골'이라는 별칭으로 불려 왔으며, 이 때문에 부천시는

복숭아를 상징물로 지정하였다.

 

부천을 상징하는 꽃은 복숭아나무의 꽃, 즉 복사꽃이다. 부천은 복사꽃이 많이 피는 고을이라 하여 복사골이라고도 불린다.

1902년 부천 지역에서 우리나라 최초로 복숭아 재배가 시작된 이래 부천의 복숭아는 소사 복숭아라 불렸다.

일제강점기인 1925년부터 재배 면적이 크게 늘면서 소사 복숭아는 전국적인 명성을 날리기 시작하였다.

이에 따라 소사 복숭아는 수원의 딸기, 안양의 포도와 함께 경기도 3대 과일로 꼽혔고, 또한 구포의 배, 대구의 사과와

함께 전국 3대 과일로 유명해져 교과서에까지 실렸다.

 

그러나 1970년을 절정으로 이제는 일부를 제외하고는 부천에서 복숭아나무를 쉽게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1980년대 초부터 부천이 도시화되면서 복숭아밭에다 소사공단·송내공단을 만들면서 복숭아나무를 모두 뽑아버렸기 때문이다.

현재는 충청북도에서 복숭아를 가장 많이 생산하고 있고 그 중에서도 영동 지방이 복숭아 산지로 유명하다.

부천은 이름만 복사골로 남아 있는 실정이다.

 

복숭아는 귀신을 쫓는다는 속신이 있는 과일로 이런 의미에서 복숭아는 다른 과일과 달리 제사상에 올리지 않는다.

사과나 배, 대추, 밤 등은 제사상에 즐겨 올리는 반면 복숭아는 올리지 않는 것이다.

복숭아를 올려 제사상을 받아먹기 위해 온 귀신을 쫓으면 집안의 복이 모두 달아나기 때문이다.

무당들이 복숭아나무 가지로 귀신을 쫓는 행위를 하는 것도 같은 연유에서이다

철조망을 끼고 된오름을 올라가는데 김해 백두산악회 홍길동 아우님의

시그널이 보인다. 잘 사는지 모르겠다.

배수장 뒤를 오르면서 너무 신경을 썬 탓인지 무릎이 상당히 아프다.

너럭바위 위에서 휴식하면서 조금전에 산 참외를 깍아먹고 베낭에 있는 아이스팩을 보니

아직도 얼음이 조금 남아있다. 그것을 꺼내서 무릎에 대고 휴식을 취한 후에 다시 길을 떠난다.

여기서부터는 길이 아주 잘나있고 알바 걱정을 할 필요가 없다.

등산객들도 보이기 시작한다. 아무래도 오늘 계획했던 백운공원

까지는 무리일 것 같다. 대신에 이곳은 늦게까지 대중교통이 있으니

갈 수 있는데까지 가볼 생각이다. 이렇게 생각을 하니 갑자기 맘이 편해진다.

편안하게 휴식을 취할 수  있는 팔각정도 좌측에 있고...

여우고개를 표시해 논 이정표쪽으로 향하고...

122봉(16:40)

봉우리 정상은 암릉은 되어있는데 어떤 몹쓸작자가 바위에 스프레이를

뿌려놔서 보기가 민망하다. 이곳에서 좌측으로 내려선다.

조금 내려가니 아카시아 나무에 ‘늠내길’이란 팻말이

달려있고 이곳에서 좌측으로 내려서야 한다.

조금 더 내려가니 소나무를 울타리로 심어논 커다란 밭이 나오고

빨간 스프레이 표시판을 따라 좌측으로 우회해서 걸어간다.

조금 더 진행을 하니 좌측에 있는 커다란 갈비집에서 고기굽는 냄새로

온 산이 진동을 한다. 산 전체가 고개 냄새로 찌든 느낌이 든다.

여우고개(16:55)

경기도 시흥시 대야동과 부천시 소사구 소사본동을 잇는 2차선 39번 국도가 지나는 곳이다.

여우고개는 한자로 여우고개라 한 것으로 보아 산의 형세가 소가 누어 있는 모양이므로

 소와 같다하여 如牛고개라 했다는 설과 여우는 여위다 하여 변화된 것으로 보아 여윈고개

 즉 좁고 작은 고개라는 뜻도 있는 것 같다. 이 고개는 狐峴(호현)이라 한다.

이는 이곳에 나무가 많고 후미진곳이어서 여우가 많이 출현 하였다 하여 붙여진 것으로 본다.

소사 지역의 촌로들 중에서도 여우를 보았다는 사람이 있고, 도로가 형성되기 전 이곳의

 지형으로 보아 신빙성 있는 설이라고 할 수 있다. 

여우고개 안내판

여우고개는 동물이동통로를 만들어 났지만 동물을 위하기 보다는

사람을 위한다는게 정확한 표현일 것 같다. 지나온 구간이 아쉬움이 많다

이곳처럼 지나온 구간 고속도로에도 이렇게 만들어놔 정맥길을 이었졌으면...

동물이동통로를 지나니 오르막 계단을 만들어 놨는데 갑자기

이상한 소리가 쳐다보니 MTB 타는 친구가 자전거를 타고 급경사를 내려온다.

능선에서 바라본 시흥시 대야동의 모습

여우고개에서 10분 정도를 치고 오르니 멋진 정자가 하나 나온다.

조금 지나니 국수집 광고가 나무에 걸려있고 좌측에 음식점이 즐비하고

여기서 흘러나오는 음악소리가 너무 시끄러워 공해로 들린다.

이곳 좌측에는 무슨 공사를 하려는지 산을 완전히 밀어버려 보기에도 흉칙하다.

정맥길이 위협을 받고있는 이곳에 어느 누가 허가를 해줬단 말인가?

소래산(蘇萊山:299.4m)

인천시와 시흥시 경계에 우뚝 솟은 소래산은 전해내려 오는 이야기로는 신라 무열왕 7년(660)에 당나라 소정방이

나당연합군의 일원으로 군사를 친히 이끌고 백제를 공략하기 위하여 중국 산동성의 래주를 출발하여 덕적도를 거쳐

이 산에 머물렀다고 한다.

 

그 뒤부터 소정방의 소자와 래주의 래 자를 합쳐 소래산으로 불리게 되었다.

소래산은 경기도 시흥시와 인천광역시의 경계를 이루는 산으로 인근에서 가장 눈에 띄는 바위산이다.

 

'소래'란 지명은 첫째 지형이 소라처럼 생겼다는 설과 둘째 냇가에 숲이 많다.

즉 솔내(松川)에서 유래되었다는 설, 셋째 지형이 좁다 즉 솔다 → 좁다 등의 이유로 비롯되었다고 하며,

전해내려 오는 이야기로는 신라 무열왕 7년(660)에 당나라 소정방이 나당연합군의 일원으로 군사를 친히

이끌고 백제를 공략하기 위하여 중국 산동성의 래주(萊州)를 출발하여 덕적도를 거쳐 이 산에 머물렀던

뒤부터 소정방의 '소(蘇)' 자와 래주의 '래(萊)' 자를 합쳐 '소래산'으로 불리우기 시작했다고 한다.

 

120봉(17:15)

120봉에서 올라 좌측으로 내려가니 출렁다리가 나타난다.

하우고개(17:20)

경기도 시흥시 대야동과 부천시 소사구를 잇는 고개로 구름다리를 놓아

정맥길을 이어가고 있다. 부천시내가 한 눈에 들어온다

 

하우고개라 부르게 된데에는 산의 형태인 와우에서 유래된 것이란 설과 의성어에서 유래되었다는 설,

그리고 산에서 자라고 있는 식물에서 유래되었다는 세 가지 설이 있다. 처음의 경우는 이산이 臥牛山이기 때문에 이 산을 넘는 고개도 한자로 표기하였다. 이를 우리말로 풀이해 와우고개라 하였다가 와우가 하우로 변해 하우고개로 불리게 된 것이 아닌가 하는 추측을 할 수 있다.

 

두번째 경우는 옛날에는 시흥시 뱀내장에서 계양 황어장으로 닷새장을 오가는 장사꾼들이 주로 이 고개를 이용했다고 한다. 이 무렵에는 행인들을 터는 도둑떼가 득실거렸다고 하는데 장사꾼들은 그들이 무섭지만 이 고개 외에는 이용할 수 있는 다른 길이 없어 하는 수 없이 이 고개를 이용하지 않을 수 없었다. 장돌뱅이들은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기 위해 산 밑 주막에 모여 떼 지어 고개를 넘었으며, 언제 어디서 도둑떼들의 기습이 있을지 몰라 사람과 소는 가파른 길을 바쁘게 걷다 보니 모두가 숨이 턱에 닿을 정도로 찼다. 강행군을 하여 고개마루에 올라서면 안도와 함께 거친 숨소리가 절로 나오게 된다. 이 때 나오는 '하우 하우'하는 숨소리의 음을 따 하우고개로 불리게 되었다는 설이 있다.

 

세번째 경우는 조선지지 자료에 이 고개를 화오고개으로 표기하고 있는데에서 이 산에 오동나무가 자라고 있기 때문에 붙여진 명칭이 아닌가 하나 자세히는 알 수 없다

구름다리에서 바라본 시흥시 은행동과 소래산

구름다리에서 바라본 부천시내의 모습

저 멀리 높이 보이는 쌍둥이 빌딩은 부천시의 랜드마크라고

자랑하는 ‘리첸시아 66층’이다.

하우고개 구름다리를 지나 아이스케키를 하나 사먹으면서 휴식을 취하는데

갑자기 비가 쏟아진다. 이곳에 막걸리 장사도 영업을 접을 모양이다.

어디까지 갈지를 몰라서 막걸리 장사에게 생수를 좀 얻어 보충하고 성주산으로

올라가는데 비는 계속 쏟아진다. 일기예보만 믿고 우의를 빼놓고 와서 그냥 비를 맞는다.

성주산 (聖柱山:일명 와우산:217m:17:35)
부천시 남단에 동서로 길게 뻗어 있는 부천의 주산이다.

성주산(聖柱山)이라고 표 기하기 시작한 것은 일제시대부터 이며 그 이전에는

 와우산 또는 댓골산이라고 불렸 다. 특히 하우고개가 있는 부분은 1918년 발행된

 <<조선지지자료>>에는 화오현산이 라 고 표기되어 있다.

 

성주산은 부천시의 최남단에 위치하여 시흥시 대야등과 경계를 이루고 있는

 산으로 1917년에 측량한 지도에는 聖主山으로 표기되어 있으며 해발 200미터이다.

성주 산 이라고 한 이유는 자세히 알 수 없으나 일제 때 도서관 심곡분관 자리에

1938년 일왕 에게 참배를 강요하던 소사면 신사가 세워졌던 것으로 미루어 보아

일본인들에 의해 붙여진 산 이름이 아닌 가 한다.

 

 성수산은 일명 와우산(臥牛山)이라 한다. 이 산의 형세는, 현재는 시 청사나

멀리 고증건물에서 관찰해야 볼 수 있지만 도 시 화가 되기 이전인 1960년대

까지만 하여도 벌막 쪽에서 자세히 살펴보면 소가 앉 아 있는 형세를 한 눈에

보아 알 수가 있었다. 즉 지금의 상수도 탱크가 있는 고 언저리의 돌출부인 성무정(활터) 쪽

언덕, 즉 서 울신학대학이 있는 뒷편의 돌출부는 마치 소가 앞다리를 굽히고 있는

형상임을 엿볼 수 있고 주봉인 산정상이 소의 엉덩이 부분이 된 형태이며, 여기서

약간 동 쪽에하우 고개가 있는데 이 고개가 잘라 곳은 소의 허리부분에 해당된다

 이곳에는 성주산약수 터가 있다. 한편 부천풀장을 찌르듯 돌출된 능선이 바로

소가 엎드려 있을 때 다리를 굽힌 현 상이다. 서쪽으로 길게 뻗쳐 있는 능선 줄기는

 소의 꼬리로 보아 소가 누워있는 형 태 이다. 한편 깊은구지 쪽의 성주산은 댓골산으로 불렀다.

이곳의 서쪽에 1960년대까지 암 자가 있었는데 산동네로 불리고 있다.  

성주산 정상에는 군부대가 차지를 하고있어 들어갈 수가 없다.

이곳에서 우측 철조망을 따라 계속 내려간다. 국지성 비는 계속 내린다.

비를 흠뻑맞은 새앙쥐 꼴의 내모습이  우습기만 하다.

거기다가 다리는 절룩거리지 바지는 찢어졌지... 영락없는 거지꼴이다.

 

이곳 성주산을 중심으로 야생 복숭아나무가 심어져 있다고 한다. 복숭아나무는 배수가 잘되는

남향·남동향·남서향의 완경사지가 재배지로 좋으며, 연 평균 기온이 섭씨 11~15℃가

 되는 지방에서 잘 자라고, 최적의 생육 조건은 섭씨 20~30℃의 온난 기후이다.

 이런 복숭아나무의 꽃이 부천을 상징하는 꽃이 되었고, 복사꽃이 많이 피는

 고을이라 하여 복사골이라 부른다.

성주산 정상에 자리잡은 군부대 주위는 등로관리는 잘되어 있다.

멋진 부대내의 헬기장이 보인다. 비는 계속 내리고...

군부대 끝의 철조망을 따라 정맥길이 이어지건만 군부대가

가로막고 있어 부득히 우회를 하여 내리막길을 내려온다.

좌측에는 군부대 관사인 전진 아파트가 나타난다.

조금 더 내려오니 삼거리가 나오고 정맥길은 송학 약수터를 향한다.

마리고개(18:00)

이곳부터 여태껏 같이해온 좌측은 시흥시와 이별을 하고 인천시로 접어든다.

우측은 계속 부천시와 연결된다. 이 고개가 마리고개인데 고개 정상은 군부대

위병소가 점령하는 바람에 부득히 우회를 해야만 한다.

이곳 사람들은 마리고개는 잘 모르고 전진아파트로 주로 알고있다 

아무래도 오늘은 이곳에서 산행을 접어야 할듯 싶다.

아쉬움이 참으로 많다. 처음 계획했던 백운공원까지의 2/3밖에 오질 못했고

시간도 이곳까지 정확하게 10시간이나 소요를 했다. 무엇보다 건강관리를 해야겠다.

이곳에 설치되어 있는 에어건으로 옷에 먼지를 털려고 하니 에어가 나오질 않는다.

하는 수 없이 부대 정문쪽으로 올라가 버스 정류소로 간다.

이곳에서 버스를 탄다. 부천역에 내려달라고 하고 버스를 탔는데 부천시내에

와서 전철역이니 내리라고 한다. 내려준 곳은 전철역 앞이 아닌 자유시장이란 곳이다.

이곳에서 부천 남부역까지 아픈 다리를 질질끌며 한참을 걸어서 역에 도착한다.

버스기사가 야속하기만 하다.

부천 남부역(18:30)

역에 도착하니 역명은 부천역으로 되어있다. 오늘은 모든게 헷갈리고 머피의 법칙이다.

하루를 쉬고 절에서 봉사활동이나 할껄...괜스레 후회스럽다.

핸드폰을 확인하니 핸드폰이 꺼져있다. 핸드폰을 켠다.

구로역을 지나는데 동료산꾼 젠틀맨님의 전화가 온다.

축하 산행을 하려고 소사고교까지 왔는데 어찌되었냐고 하면서

막걸리를 잔뜩 가지고 왔는데 하는 내용이다. 미안하기 그지없다

이번주 팔공기맥에서 웬수는 꼭 갚겠습니다... 복받을기요

부천에서 급행열차를 타고 신도림에서 2호선을 갈아탄 다음에 선릉역에 도착하여

도저히 더 걸을수가 없어서 아들에게 전활했더니 놀래서 얼른 차를 가지고 왔다.

아들의 부축을 받아 집에왔다. 아들왈 ‘아버지 가족도 좀 생각하셔야죠’ 하는 말에 대견스럽고

미안하다. 그래 알았다 아들아!

다리는 너무 붓고 물집까지 많이 생겼다. 체육학을 전공한 아들이 얼음찜질을 해준다.

덕분에 편안하게 잠을 잔다... 어렵게 한구간을 끝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