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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범여(梵如)의 世上사는 이야기
♣ 백두 대간및 9정맥 후기♣/백두대간 1차 북진(終)

백두대간 4코스 -통안재에서 복성이재까지

by 범여(梵如) 2010. 1. 14.

산행일자: 2009년 11월 1일

산행코스: 권포리-통안재-유치재-매요리-사치재-아막산성-복성이재 도상거리 18km - 5시간 소요 

 

어제 산행구간이 좀 짧았고 하산 후 곡차를 하지 않은 탓에 컨디션은 굿이었다. 오늘은 지리산 구간이다 보니

서울에서 아침 6시에 출발. 경부고속도로를 한참이나 달린후에 밝아오는 아침을 맞이 할 수가 있었다.

또한 날씨는 어젠완 전혀 딴판이다. 추워서 겨울 옷으로 입고 바람막이까지 입었는데도 춥다.

 

 물론 버스안에도 히터가 들어오고... 차가 대진고속도로를 거쳐 다시 88고속도로를 접어드는데 지리산

구간이라 그런지 비가 오기 시작하니 걱정이 앞선다. 오늘 구간은 고도 편차도 별로없고 산행하면서

산이 제대로 된게 하나도 없는 구간이 이 코스다. 그러다보니 딱 알바하기 좋은 코스다. 제대로된

이정표하나 없고 마을으르 거쳐야 하고 차도를 한참 가야하고 하고 88고속도로를 지나야하고 하니

 지루하기만 하고... 차가운 날씨에 자꾸만 몸만 움추려들고 그래도 거리가 있다보니 걷는게 장난이

아니다. 거기다가 어제 내린 비로 인해 낙엽이 젖어 상당히 미끄럽고 하여

 산도 산같지 않은 곳에서 힘든 산행을 했다

그래도 하산후 복성이재에서 따끈한 찌게에 마신 이스리 맛에 피로는 눈 녹듯이 없어지고

 

 

오늘구간의 산행지도

전북 남원시 운봉읍 권포리의 오지마을에서 산행을 시작

단체로 산행대장의 구호에 맞쳐 스트레칭으로 몸을 풀고 산행을 시작한다.

이곳의 명물인 오랫된 방앗간(정미소)이 산골 출신인 범여에겐

더욱 더 정겹게만 느껴진다. 꼭 고향에라도 온 것처럼 말이다.

비구름으로 뒤덮인 고남산 정상

지난구간의 거쳐왔던 고남산 정상은 비구름으로 휩싸여 금방이라도

한줄기 쏟아질 것만 같은데... 요즘에 오는 비는 아무 쓸데도 없는데 말이다.

감을 딸 인력이 없어 그냥 방치되어 있고(어쩜 내 고향(경남 의령)과 너무나 흡사하구나)

이곳도 여느 시골과 마찬가지로 젊은 사람들이 도시로 진출한 탓인지

수확철이 지났는데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들판엔 무우, 배추와 감이 주렁주렁

달려있는게 정겹긴 하지만 우리네 농촌의 현실을 감안하면 농부의 아들인

범여의 맘이 착잡하기만 하다. 

이곳이 통안재란다. 그 흔한 이정표하나 없고( 지체 높으신 남원시장 나으리 관광 남원을 외치지 말고

이정표하나 제대로 좀 세워 주시요. 산꾼들의 구매력을 모르시나 봐) 아무런 의미도 없는 콘크리트

임도에 어느 산악회에서 코팅으로 통한재라 해놔서 재인줄 알지 그렇지 않으면 그냥 지나치기

딱 좋을만한 곳이다.  우측으로 선답자의 꼬리표를 따라 마루금으로 들어선다.

이 곳이 유치재(626m)란다. 이정표가 없다보니 어느 산악회가 코팅으로...( 남원시 당국 정말 유치하다)

건강한 소나무 숲길이 참으로 편안한 걸음으로 유치재에 도착한다. 지리산 자락으로 내려와 덕유산군의

오르기 전에 숨고르기를 하는 느낌으로 편안한 산행을 한다.

유치재에서의 범여

유치재에서 매요마을로 진입하는 동쪽으로의 긴 능선에서 ,남북을 가르는 작은 마루금을 신기해 하며 오른쪽 남쪽 

황산벌을 감싸면서 매요마을로 접어든다. 콘크리트로 포장한 마을도로에 접어드니 길 옆에 키우는 토종 흙돼지가

꿀꿀거리면서거리면서 산꾼을 반긴다. 그래도 조그만 마을에 새로 지은듯한 번듯한 마을회관과 보건소도 있고

있을 건 다 있다. 하늘은 금방이라도 뭐가 올듯이 잔뜩 찌푸리고 있다.

산꾼들에게 유명한 매요리 막걸리집 집에서 담근 밀주(密酒)인데 맛이 일품인데

아쉽게도 쥔장인 신 순남할머니가 예식장가고 없는 바람에 입맛만 다시고 다시 산행을 시작하다

 

풍수설에 의하면 매요마을은 말의 허리 형국이라 합니다.

그래서 옛날에는 이 마을 이름을  말마(馬), 허리요(腰)를 써서 '마요리'라 불렀다고 한다.

매요리 매점에서 막걸리 한잔과 간단하게 간식으로 원기를 보충하고

다시 베낭을 메고 길을 떠난다. 담벼락에 열린 꽃사과가 탐스럽기만 하다.

폐교된 운성초교 뒷담을 돌아 가산리 뒷산으로 오르는 버들재(유치 삼거리)까지

시멘트 포장 마을길을 걷다가  공사판을 지나 다시금 마루금으로 진입한다.

88고속도로 가기전의 너덜길은 빗물을 머금어 상당히 미끄럽고...

도로에서 다시금 마루금에 진입하니 잘 관리된 묘지들이 산꾼을 반긴다.

산자와 죽은자의 대화랄까... 조금씩 고도를 높이니 산성터인 듯한 너덜길이

나타난다. 이곳이 그 옛날 백제와 신라가 국경을 맞대고 영토분쟁을 한곳이라

그런가 보다 

이 곳은 지리산 자락이라 그런지 다른곳에 비해 소나무가 많고 힘이 있어 보인다.

소나무 숲을 지나니 머리가 상당히 맑은 느낌이다. 간간히 단풍도 보이긴 하지만

전형적인 소나무 군락지인 모양이다.

사치재(이슬재)

매요마을을 출발한 지 50 여만에 88올림픽 도로에 끊어진 모래재(사치재)에

도달한다. 2차선인 88고속도로를 무단횡단을 감행하여 마루금을 이어 가려했으나

아무래도 앞으로 가야할 길이 너무 많아 88도로 지하통로를 통과하여 697봉의 된비알을 치고 오른다.

618봉에서 사치재로 내려서기전 산성터였을 흔적을 만난다. 사치(모래재 부락)는 과거 백제의 영토였으며,

신라 영토인 가산리와는 국경 분쟁지였다고 한다.

 

88 올림픽을 기념하여 만든 고속도로는 2차선이라 중앙 분리대가 없는 탓인지

고속도로 사고율이 가장 높은 곳이도 하다. 그리고 맥길로 짤라버려 불편하기 그지없다.

인간과 동물과 자연이 함께 어울려 살 수 있는 동물이동통로라도 만들어 줘야하는

배려라도 좀 했으면 좋으련마는...

사치재 가는 길에서 바라본 88고속도로와 지리산 휴게소

사치재를 지나 88도로가 훤히 내려다 보이는 697m 조망 안부까지는 수년전 산불로 검게 그을린 채로,

서고 기대고 누운 비목들을 그대로 방치하여 오늘 날씨 만큼이나 을씨년스럽다.

예전 같으면 상흔을 지우기 위해서라도 깨끗이 잘라내고 새로운 수종으로 갈아치우는 식목사업이라도 벌려야 했겠지만,  

요즘은 자연그대로 방치하여 자생력으로 원상회복을 기다리는 모양이다. 정상 헬기장에서 점심상을 펼친다.

처음 온 산악회라 그런지 서먹서먹하여 혼자서 라면을 끓여

이스리 한잔을 하고나니 속이 알싸하다. 서둘러 다시 베낭을 메고 나선다.

수줍움을 타는 처녀처럼 보일락 말락하는 지리산

헬기장을 출발하여 암릉과 잡목지대를 거치니 이곳도 만추(滿秋)가 밀려온다.

저 멀리 지리산군이 아련히 밀려오면서 지난날 걸어왔던 첫사랑을 잊지 말라는

것처럼 말이다. 그래 내 어이 그대를 잊을 수 있겠냐. 또다시 너를 찾으마...

어~~라 여기도 정신 나간 철쭉이 있네

계절을 잊어 버린 채 철쭉이 피어있다. 봄에 피어야 할 철쭉이 핀 것은 첫사랑의 미련인 지

아님 환경의 재앙인지는 범여의 상식으론 이해가 되질 않는다. 무슨 사연이 있겠지?...

새맥이재에서 다시 가뿐 숨을 몰아쉬고...

암릉 내리막 길을 10 여분 밟아 내려 새맥이재를 통과하니 마주 보이는

시리봉 길이 구간 마지막 오름을 재촉하며 제법 가파름을 보이지만, 

그래도 편한 마음으로 걸을 수 있어 좋다. 

복성이재가 가까워 오는가보다 그리고 저 멀리 철쭉으로 유명한 담 구간의

봉화산이 보이기 시작한다. 작은 봉우리를 넘어 시리봉 정상으로 느껴지는 헬기장에 도착한다.

 마루금에서 500m 벗어난 시리봉(776.8m)을  찌고 다시 돌아와 길을 나선다.

기대했던 시리봉 정상의 멋진 모습은 볼 수 없었으나 대간길 후반 정상 정복을 마치고 가볍게

내려서는 발걸음이 제법 뒤를 돌아 볼 만큼 여유롭고 모처럼 햇살이 간간이 비친다.

평탄한 철쭉길을 얼굴 상할세라 조심스레 헤치며 30 여분 나아가니, 781m봉에 다다라 남근처럼 생긴 입석이 산꾼들을 반긴다..

정상의 푸른 소나무와 어울리는 멋진 풍광이 가까이 가서 보니, 넓적한 바위가 담쟁이 덩쿨로 뒤덮힌 채 대간길

시야에서만 날씬한 남근처럼 우뚝 솟아 홀림을 행하고 있었다.

 억새밭에서 저 아래 보이는 마을이 흥부전에 나오는 흥부 마을이란다

저 아래 성리(흥부마을) 가 보인다. 우리나라 판소리중 '동편제'의 발생지라 합니다.

또한 판소리 다섯마당 가운데 하나인 흥부가의 배경이된 마을이기도 합니다.

아막성터(阿幕城:630m) - 돌로 쌓은 이 산성은 아영고원 줄기에 자리잡고 있으며 둘레가 633m로 삼국시대에

백제와 신라가 격렬하게 영토전쟁을 벌인 곳으로 신라에서는 이곳을 모산이라고 했다고 한다.

억새와 철쭉이 가득한 내림길을 돌아드니 마주하는 아막성터가 동네 뒷산 마냥 정겹다.

오른쪽으로 제비를 연상 짓는 연비봉이 소담스레 솟아 아영면 흥부마을을 이루고,

연실 (제비마을) 입구에는 흥부 부부가 석상으로 길목에서 관광 안내원으로 활약(?)하고 있다.

 

이렇게 함양 땅과 남원 땅이 만나는 지리산 북쪽 자락은 작은 고개를 사이에 두고 이웃처럼

전설을 쌓아가며 혼들 마저 함께 어울리는 시공을 초월한 우리 민족의 화합터로 자리하고 있다.

 

신라-백제 장수가 경계를 밀고 당기며 싸우던 이 마당에서,이성계는 함께 뭉쳐 왜구를 물리치고,

동학의 힘찬 민중이 마지막 항거로 쓰러져 누운 산자락 아막골 산성터에서 ,인간이 만든 이념을

종교삼아 쓰러지던 농민 출신 지역 빨치산의 여한이 담긴 성터 너덜 돌을 조심스레 밟아 내린다.

복성이재에서

토성터 흔적이 뚜렷이 남아 있다. 옛날에는 전쟁도 점을 쳐서 했다는데~

이곳에서 점을 봤다는 의미로 복성동이라 일컫었다고 한다.

복성이재는 남원과 장수의 경계를 이루는 고개이다.

오늘의 하산 종착지 복성이재(전북 장수군 아영면 소재)

남원과 장수의 경계인 복성이재에 도착하니 다리가 뻐근하다.

다음구간을 초입을 확인하고 산악회에서 주는 김치찌개에다 이스리로

한구간을 마무리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