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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범여(梵如)의 世上사는 이야기
♣ 9기맥 자료및 산행후기 ♣/남강(진양)기맥(終)

진양기맥 제2구간(거창,함양) - 바래기재에서 춘전치까지

by 범여(梵如) 2012. 1. 9.

 산행일자 : 2012.01,07~ 8(무박산행) 

산행날씨 : 새벽엔 꽤나 추움, 맑은 날씨에 봄날씨만큼 포근, 산행에 최적의 날씨

 참석인원 : 백두사랑 산악회 22명의 회원과 함께
 산행거리 : 도상거리: 23.6km        G.P.S거리: 25.2 km / 10시간 40분 소요

 산행코스 : 바래기재-3번국도-솔고개-586봉-개목고개-549봉-구슬재-559봉

                   -망실봉(망덕산)-630봉(H)-새재-웅골(곰실) 갈림길-관술봉-관술령-망설봉(덕운산)

                   -숙지령-644봉-683봉-고인돌-660봉-작은 병풍바위-기선봉-남재

                   -사별산(골무산 갈림봉)-춘전치(88고속도로)

 소 재 지 : 경상남도 거창군 거창읍, 마리면, 남상면 / 함양군 안의면, 수동면 

 

 

 

길이 끝나는 데서 등산은 시작된다.

평지의 길은 물론 산길마저 희미해지는 지점-고개 너머로 가는 등짐장수,

두메산골 화전민들이 터놓은 고갯마루길, 다시 그 산속으로 초동(樵童)이

닦아 놓고, 약초꾼이 다지고 산사(山寺)의 대중들이 밟아 놓은 눈에 보이는 산길,

그런 흔적이 전혀 없는, 말하자면 사람의 발자취가 끊기는

 지점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이 등산이다.

--- 김장호,「산길에서」에서

 

任辰年 들어 또다시 베낭을 메고 야심한 밤에 집을 나선다.

아직 정리되지 않은 여러가지 일 때문에 머리속이 복잡하다.

그러다보니 사람을 피하게 되는 대인기피증세가 나타나는 느낌이다.

그걸 잊기 위해서인지는 몰라도 자꾸만 산에 집착하는게 아닌가 싶다.

거기가면 모든 걸 잊어버리기에... 世俗에 있으면 자꾸만 사람이 싫어진다.

며칠전에 비해 날씨가 꽤나 많이 풀렸고 날씨도 좋아 산행하기가 너무도

좋을듯 싶어 토요일 하루종일 산에 대한 기대 때문에 가슴이 설렌다.

밤 10시반에 집을 나선다. 양재역에 도착하여 오늘 동행하는 온누리님과

반갑게 조우를 하고 버스에 오른다. 버스에 올라도 복잡한 머릿속에 쉽게

잠을 이루지 못하고 경부고속도로 죽암 휴게소에 들렸다가 잠깐 잠이 들었는데

버스는 대진고속도로 서상I.C를 빠져 나와 국도로 접어드는 바람에 잠에서 깬다.

들머리인 바래기재(거창군 마리면 방향) 건너편에 버스가 서고 산행준비를 위한

장비점검을 한다. 섣달 보름날의 보름달은 산꾼을 반기는듯 환하게 비추고...

세밑에 지인에게서 받은 편지

오랜 세월에 알고 지낸 知人에게서 한 통의 편지를 받았다.

이 분의 연세가 70이 넘었는데 보내온 편지 내용이 구구절절이

가슴에 와닿는다.  스마트폰이란 문명의 이기(利器)때문에 자꾸만

인간들의 심성이 삭막해지는 느낌이란 그런 내용이다.

 

나는 오래전부터 음악을 감상할 때 MP3나 CD가 아닌 옛날의 레코드

LP로 즐겨듣는 편이다. 턴테이블에 올려놓고 깨끗한 음질은 아니지만

인간적인 냄새로 음악을 듣는 편이다.  요즘 사회문제로 심각하게 대두되고

있는 학교 폭력문제도 사실상 이런것에서 시작된 것이 아닐까?

국,영,수 보다는 인문, 철학, 역사같은 심성(心性)을 바로할 수 있는 인성교육이

중요하건만 요즘은 가르치는 선생이나 배우는 학생이나 그런것엔 관심이 없는듯 하다

 

 

 

 

오늘 산행구간의 지도와 고도표

전체구간 트랙

바래기재(03:20)

경남 거창군 마리면과 함양군 안의면을 잇는 고개로 진주에서 김천, 충주를

 거쳐 성남 갈마터널로 연결되는 3번 국도와 또 하나의 24번 국도가 지나가는 곳이다.

안의면 삼산(三山) 마을에서 거창으로 넘어가는 재를 바래기재라고 하는데 옛날 남편이 

서울 과거보러 갈 때 그 아내가 이 고개까지 남편을 바래다 주고 또 이 고개에서

 돌아오기를 바라고 있었다 하여 바래기재라고 이름 지었다고 하며. 

 또 하나의 설은 유래는 옛날에 한양에서 고위 관료들이 진주 관아를 왔다가 갈때에

진주목사(晋州牧使)가 이곳까지 바래다 주었다고 하여 바래기재‘라고 불렀다고 한다 

산행을 시작하다(03:50)

이른 새벽에 바래기재에 도착 차에서 내리니 날씨는 예상보다도 차갑다.

고속도로보다도 더 시원하게 뚫려있는 3번국도와 나란히 달리는

24번 도로는 개미새끼 한마리도 다니지 않고 주위의 사과농장에

키우는 개쉬끼들이 일제히 합창이라도 하듯이 새벽 산꾼을 경계하듯

동네가 떠나갈 듯 짖어대는 통에 고이 깊은 잠에 빠져있는 이곳 사람들이

잠에서 깰까봐 미안한 생각이 든다. 안 그래도 한우값 폭락에다 뭐다

心氣가 편치 않을터인데 말이다. 눈치없는 섣덜 보름날의 보름달만

계속해서 산꾼을 따라 능선을 같이 걷는다. 카메라 밧데리가

얼었는지 사진이 영 엉망이다. 카메라를 품속에 넣는다.

첫번째 이정표(04:15)

오늘 능선은  좌측에 거창군 마리면, 거창읍.남상면과 우측에 함양군

안의면과 수동면을 두고 경계 능선을 곡예하듯이 걷는다.

옷을 여러겹 껴입은 탓인지 산행시작 25분이 지나자 덥기 시작한다.

옷을 한겹 벗고 사진 한장 찍는 사이에 동료 산꾼들은 벌써 저만치

달아나버려 헤드렌턴 불빛이 자꾸만 멀어진다. 키작은 숏다리의 悲哀를 느낀다.

546봉 이정표(04:28)

바래기재에서 546봉까지 고도를 꾸준히 높여 200이상 치고 올라왔다.

오늘 산행도 도상거리가 약 24km로 그리 만만치는 않은 산행이다.

거기다가 업다운이 꽤나 심한 곳이다. 다행히 거창군에서 새로

 설치한 듯한 이정표가 지난구간인 금원산에서 부터 너무나 잘되어

있어 알바할 염려는 없는듯 하다.  546봉에서 솔고개까지는 급격히

고도를 낮춘다. 거기다가 엄청나게 미끄럽다. 다행인 것은 이곳은

남쪽에다가 양지라 그런지 몰라도 약간의 잔설만 있을 뿐 눈이없어

걷기는 너무나도 좋다. 

솔고개(04:35)

함양군 안의면 귀곡리에서 거창군 마리면으로 넘어가는 고갯길로

옛날에 보부상들이나 약초꾼들이 넘었을 법한 고갯길이지만 지금은

그 역할을 다한 탓인지 길에는 나무와 잡초만 무성하고 기맥 산꾼들은 위한

 데크목 계단이 잘 설치되어 있다. 계단을 지나니 어둠속에 좌측에 농장인듯한

 거대한 밭이 보이고 우측 귀곡리 마을 불빛이 보인다.

거창군에서는 이정표 하나는 기가 막히게 잘 설치해놨건만 등로관리는 전혀 안되있다.

여기저기 넘어져 있는 나무와칡넝쿨, 억새, 가시나무 등의 잡초가 자꾸만 

갈길바쁜 산꾼에게 태클을 건다. 나무가지에 베낭이 걸리는 바람에 초장부터 넘어진다.  

586봉(05:15)

솔고개를 지나 다시 고도를 높인다. 어둠속에 아무것도 볼 수 없어 앞에간

동료산꾼들의 렌턴불빛만 기준으로 부지런히 따라갈 수 밖에...

꽤나높은 봉우리인지 숨이 턱밑까지 차오른다. 안부에서 불어오는 차가운

바람이 차갑기만 하다. 586봉을 지나 안부 능선을 편안히 걷다가 우측으로

꺽어져 급경사로 내려선다. 내려오니 어둠속에 농장인듯한 곳이 나타나고

조금만 임도가 보이다가 2차선 포장도로가 나타나니 개목고개이다.

개목고개(05:35)

경남 함양군 안의면과 거창군 마리면의 경계를 이루는 곳으로 10번 군도가 지난다.

황마로 표지판이 있다. 이른 새벽에 일터를 나가는 농부의 포터 트럭 한대가 지나간다.

 

개목고개의 유래는 감나무의 사촌 개암나무가 많이 자생 하는곳으로 개암나무 즉 개목이

많이자라 있는고개라고 해서 개목고개라고 불리워지고있다.

요즘도 감나무는 뿌리가 약하기 때문에 개암나무 뿌리에 감나무을 접붙이기도 한다고 한다.

 

마리면(馬利面)

거창군의 서쪽 끝에 위치하여 함양군의 안의면과 서남경계, 동으로는 거창읍, 북으로 위천면과

 접하고 있으며, 북으로는 덕유대간, 동으로는 취우령, 서남쪽으로는 기백산으로 둘러 쌓인 표고

230m의 산간 소 분지이다. 산간 내륙에 위치한 입지여건으로 인하여 대륙성 기후를 특징으로

하여 여름에는 덥고, 겨울에는 추우며, 기온의 일교차가 크게 나타난다. 동서로 국도 3호선과

 남북으로 국도 37호선이 지나는 중심부로 관광동맥이 합류 하는 교통 요충지이며, 논농사 중심인

 중산간 평야로서 한우사육, 시설하우스 (딸기, 복수박) 작물 재배로 소득을 증대하고 있다.

 

통일신라시대에 마리현을 이안현으로 바꾸어 천령군(함양)에 편입, 고려 공양왕 2년(1390년)

 가음현(안의)에 편입되었으며, 조선 고종 32년(1895년) 제현을 군으로 바꾸면서 본면의 북부를

 동리면 남부를 남리면으로 나눔. 서기 1914년(개국 533년) 안의군 동리면과 남리면을 합하여

마리면으로 칭하고 거창군에 편입되었다.

개목고개 우측인 등로에 올라서고 잠시 후 잡목이 있는 곳에서 좌측 밤나무 밭으로 올라간다.

어둠속에 길이 잘 보이질 않는다. 밤나무 밭 같길을 따라가는데 가시잡목이 태클을 건다.

조금 지나니 두릅밭이 나타난다. 해가 뜨기 직전인지 한기를 느낄 정도로 추워진다.

체온을 뺏기지 않으려고 벗었던 자켓을 다시 입고나니 한결 나아진 느낌이다.

바래기재-개목고개까지 트랙 

K.T 송신소(05:45)

초반부터 오르막 내리막을 계속해서 반복을 한다.

힘이 깨나 빠지는 느낌이다. 정말 이런길은  힘이든다.

아직도 해가 뜨려면 1시간 반이상이나 남았다.

그 사이 기온이 더 떨어졌는지 손끝이 시려오기 시작한다.

다시 고도를 낮추기 시작하더니 데크목 계단이 나타난다.

구슬재(06:10)

경남 거창군 마리면 동편마을과 함양군 안의면 공전마을을 잇는 경계

 능선의 고개로 공전고개라고도 부르며 경운기나 트랙터가 다닐 정도로

넓은 콘크리트 포장도로가 어둠속에 나타난다. 산꾼을 배려한 듯한

데크목 계단이 설치되어 있다. 재를지나 숨돌릴 틈도없이 다시 빡세게

고도를 높이며 능선으로 치고 오른다.

망실봉 정상 이정표

구슬재에서 치고올라 559봉에서 숨을 몰아 쉰 뒤에 다시 급경사를

치고 오르며 죽을 힘을 다해 힘들게 오르니 거창읍내의 멋진 야경이

한 눈에 펼쳐진다. 거창읍내는 아직 깊은 잠에 빠져있다.

거창한 사람들이 사는 동네라서 거창인가?

 

덕유산 자락 아래 드넓게 펼쳐진 축복의 땅, 거창(居昌). 살거(居)자는 클거(巨)자와

음이 같고 창성할 창(昌)자는 밝음과 함께 기운차게 뻗어 나가는 의미로 풀어 낼 수 있으니

거창은 일찍부터 크게 일어날 밝은 곳으로 예견된 축복의 땅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거창은, 역사 속에서 거열, 거타, 아림으로 불리워 오다, 신라 경덕왕때 지금의

거창이라는 이름을 얻게 된다. 선조들의 올곧은 기개를 면면히 이어오면서 한반도 남부내륙의

 중심에 당당히 자리잡아, 서부경남 북부의 거점도시 역할을 확실히 해 내고 있다.

수려한 자연경관, 풍부한 역사ㆍ문화 유산을 보유한 품격높은 도시이자, 명품 교육과,

특색있는 문화도시로서 미래를 향해 거침없는 발걸음을 내딛고 있는 곳, 오늘의 거창의 모습이다.

(거창군 홈 페이지에서)

망실봉(681.2m : 06:50)

경남 거창군 거창읍과 함양군 안의면의 경계 능선에 있는 봉우리로서

거창읍내를 비롯한 온 사방이 한 눈에 볼 수 있는 조망이 뛰어난 곳이지만

너무 일찍 도착한 관계로 어두워 거창읍내의 화려한 야경 이외는 아무것도

볼 수 없는 곳이다.  참으로 아쉽기만 하다. 정상에는 터를 잘 잡은 묘지 한기가

자리잡고 있고 삼각점(△거창 301 1981 재설)이 자리잡고 있으며 망덕산이라고도

하는 모양이다.

 

망실봉으로 망덕산은 덕유산을 바라본다는 뜻의 어원을 가지고 있으며

망실봉은 이곳이 원래 가야의 땅으로 신라가 차지했다가 다시 백재가 차지 하는등 

전투가 잦은곳으로 땅을 잃어버린곳이라는 뜻으로 망실봉으로 불리워졌다고 한다.

거창읍의 화려한 새벽야경

거창(居昌)은 경남 서북부 지방의 중심지로서 꽤나 큰 읍이다.

그러나 이곳은 함양과 더불어 대전 진주간 고속도로가 나기 전에는

오지중의 오지이다. 예전엔 서울에서 올려면 김천을 거쳐서 꾸불꾸불한

산길을 거쳐 오랜시간이 걸려서 도착한 곳이 거창이었다. 역으로 말하면

그만큼 청정지역이란 이야기도 된다. 거창은 사과의 고장이라고 말하지만

범여가 보기에는 교육의 도시로 불린다. 소규모 지방읍내에 유명한 고교가

많아 해마다 서울의 명문대학 진학률이 가장 높은 곳이 이 지역이다.

 

조선시대에는 사화(士禍)에 곤혹은 겪은 곳이 이곳 거창이기도 하다.

1494년에 연산군이 조선조 제10대 왕으로 즉위하니 그 왕비는 장성공 신승선의

 따님으로 거창현은 거창 신씨의 관향(한 성씨의 시조가 태어난 고향)이라 하여

 거창군으로 높였다고 한다. 연산군 12년간에 세 차례의 사화가 있었는데

 첫 번째가 1498(연산 4)년의 무오사화이고, 두 번째가 1504(연산 10)년의

 갑자사화이며, 세 번째는 1506(연산 12)년에 있었던 병인삼화(丙寅三禍)이다.

무오사화 때 이미 세상을 버린 김종직을 부관참시(죄인의 관을 쪼개어 시신의 목을 베는 행위)

하였으며, 그의 문인으로서 안음 현감이던 정여창을 함경도 종성으로 유배, 그 곳에서

 세상을 떠나게 하였다. 김종직의 조카인 김연은 성주 교수로 있다가 거창 남상으로

 도피해서 옮겨왔고, 보령현감 김수양은 벼슬을 버리고 가조로 옮겨왔다.

두 번째 갑자사화 때는 김종직의 문인 김굉필 등 10여 명을 죽이고, 이미 죽은 정여창, 표연말

 등을 부관참시하였고, 김굉필의 문인 권시민은 벼슬을 버리고 위천으로 내려왔다.

연산 말년인 1506년 병인사화까지 세 번에 걸쳐 김종직을 종사로 하는

영남 사림이 큰 화를 입었던 것이다.

 

현대사에서도 질곡이 많은 역사와 아픔을 가진 곳이 거창이 아닌가 싶다.

해방 전후의 이념의 틈바구니에서 특무대장 김 창룡이 저지른 신원면 양민 학살사건.

등이 있었다. 참으로 아픈 역사의 현장을 지켜본 거창읍의 새벽야경은 그래도 멋있다.

5분간 머무른 망실봉을 떠난다. 추위를 견딜수가 없어서...

조금 지나니 거창사람들이 자주 찾는 산이라서 그런지 약 700고지에

간이 화장실도 있다. 조금 지나니 또 망실봉이 나온다.

이곳이 진짜란다. 그런데 따지고 보면 같이 붙어있어 그게 거기같다.

진짜 망실봉(?)

가짜 망실봉이라는 정상석이 있는 곳에서 200m쯤 지나 나오는

이곳은 인공적인 냄새가 많이나는 망실봉이다. 제를 이곳에서

지내는지 화강암으로 된 제단도 있고, 산에 손을 많이된 느낌이다.

거기다가 이곳은 활공장인 모양이다. 페러그라이더 타기엔 안성마춤인 곳 같다.

이곳에서 낙동정맥을 같이 탄 온누리님과 제틀맨님과 인증샷을 남기고

추위를 이기지 못하여 서둘러 길을 떠난다.

2007년 5월 3일에 이곳에서 페러그라이딩을 하다가 목숨을 잃은

고유. 종희라고 써있는 추모비를 지난다. 저 건너 감악산 위에

산 위가 벌개진다. 아마 일출이 시작될 모양이다. 그런데 문제는

활공장 지나니 소나무 숲이 막혀 일출을 구경할 수가 없어서

전망 좋은 곳을 찾기위해 베낭을 메고 줄행낭을 친다. 

새재(07:20)

경남 거창군 거창읍의 거창유원지가 있는 장팔리와 함양군 안의면

초동리 새재마을(명종황후묘와 벌명당이있는)로 이어주는 고개이다.
새재로 연결되는 재로서 희미한 등로만이 남아있다.

이제 서서히 주위가 밝아오면서 사물이 또렷히 구분되기 시작한다.

壬辰年 새해 산에서 첫 日出을 맞이하다(07:32)

새해 1월 1일에 남한산성을 갔지만 일출을 보지 못했기에 실질적으로

오늘 첫 일출을 이곳에서 맞이한다. 그것도 너무나 멋지게...

거창 감악산 너머로 너무나 멋진 일출이 솟아 오른다.

지난 한해에 너무 힘들었던 것을 이제 모두 다 내려놓고

힘차게 솟아오르는 해처럼 살고 싶은게 범여의 소망이다.

그리고 내 주위의 모든 분들에게 건강과 행운이 가득하시고

늘 부처님의 가피가  항상하기를 기원하면서... 

힘차게 솟아오르는 일출

일출을 맞이하고 서둘러 길을 나선다.  산행 시작 4시간이 지나오니

엄청나게 허기가 지는데도 자꾸만 선두는 도망을 간다.

조금지나 583봉에 도착하여 아침상을 펼친다. 오랫만에 같이 산행을 한

온누리님과 처음 봤는데도 범상치 않은 놋지맨과 도히님 등과 함께

순대국으로 아침해장으로 이스리 서너잔 하고나니 속이 찌리하다.

거기다가 버너 가스가 속을 썩이는 바람에 식사가 늦었다. 그 사이에

동료 산꾼들은 다들 도망가버린다. 그래도 느긋하게 원두커피까지

 마시고 출발한다. 아주 편한 걸음으로...

웅골(곰실)마을 갈림길(08:55)

느긋하게 아침상을 물리고 걸음을 걷는다마는 식사후라 그런지

조금 힘이들기 시작한다. 웅골마을 갈림길이 나타난다.

거창군 거창읍 장팔리 웅골마을과 함양군 안의면 초동리를

넘나들었던 고개인 모양이다. 아마 예전에  이곳이 곰(熊)과 관련된

뭣이 있었던 모양이다. 그런데 희한것은 초동리쪽의 길에 옷이 널려있다.

이곳과 민가는 상당히 멀리 있건만 옷이 널려있는 이유를 모르겠다.

저렇게 나무위에 옷이 널려있다.

관술봉을 오르는 길은 아침식사 후라 그런지 힘이든다.

송전탑 아래로 지나서 관술봉을 향한다.

관술봉(09:05)

거창군 거창읍과 함양군 안의면 초동리의 경계 능선에 있는 산으로 중간에 7부능선

길이 있어 놓치기 쉬운 봉우리이다. 봉우리 정상에 오르니 잡목과 질경이 넝쿨이 정상을

점령하고 있고 국립지리원이 설치한 삼각점(거창439-1981재설)이 있다.

조망권이 별로 없으나 저 멀리 눈덮인 거망산이 나무 사이로 환상적으로 다가온다.

개목고개-관술봉까지의 트랙

거창읍내의 뒷산들이 환상적인 모습으로...

이곳 거창과 함양의 주위 산들을 산행하기는 처음이다. 덕유 능선과 백두대간을 

빼고는... 그런데 정말 멋진 산들이 너무나 많아서 활홀감에 빠진다.

산꾼 범여가 서 있는 곳에서 좌측으론 감악산과 수도지맥 능선들이 보이고

우측엔 지난구간인 금원산과 기백산 그리고 거망산의 눈덮인 모습이 마치

희말라야의 메리 설산처럼 다가오고... 그 아래로는  괘관산 뒤로 영취, 백운산의

백두대간 능선이 아련하게 보이고 바로 앞에는 지리산 능선이 시야에 들어온다. 

 

언제 가더라도 따뜻한 어머니의 품안같은 지리산!

지리산은 조선새대까지만 해도 두류산(斗流山)이라고 했다고 한다.

조선시대 연산군 때 일어난  갑자사화때 연류됐던 김 종직이 거창군 남상면으로

피신해 있을때 지리산을 오르내리면서 쓴 두류산 산행기에는 백두대간의

시발점인 백두산에서 흘러나와 만들어진 산이라고 하여 두류산이라고

하였다고 한다.

둔동 갈림길(09:10)

관술령에서 안부 능선을 타고 5분만에 도착한 둔동 갈림길

이곳에서 우측으로 꺽어져 관동(함양)쪽으로 꺽어져 내려오니

관술령이 나타난다. 그런데 능선으로 보면 기맥길은 둔동으로 내려서게

맞을것 같은 느낌이다. 이러나 저러나 길은 다시 만난다.

 

둔동리는 원둔동 마을 이름에서 나온 것이다. 남진, 동령, 신기, 원둔동의 4개 마을로 이루어졌다.

 남진()은 마을가에 참나무가 많아서 진목지라고 하다가 1973년 7월 함양군 안의면에서

진목리가 본면으로 들어온 뒤로 진목의 남쪽에 자리한다 하여 남진이라 하였다. 200여년 전

밀양 박씨가 마을을 열었다고 전한다. 동령()은 마을 뒤의 관술령 줄기가 남쪽으로 달리다가

이곳에서 동쪽으로 뻗는 곳에 마을이 자리한다 하여 이름 붙여졌고 동용골이라고도 하며 200여년

전에 마을이 생겼다고 한다. 신기()는 100여년 전 둔동 마을에서 떨어져 나와 밭들에 새로

생긴 마을이라 새터라고 한다. 군위방씨가 처음 살기 시작했다고 전한다. 원둔동()은 마을

뒷산에 옥등전에 불을 켜서 걸어 놓은 설의 명당자리가 있다는 풍수설에 따라 마을이 등불에 해당하여

 동골이라 하며 등자를 둔자로 바꾸었다. 600여년 전 남원 양씨가 처음 살기 시작했다고 전한다.

관술봉에서 15분을 내려오니 콘크리트로 포장된 농로가  나타나고 우측에

관동마을(함양군 안의면 소재)이 보인다. 한적한 농촌의 마을 그 자체이다.

관술령(09:20)

 관술령이라고도 부르는 관동(官洞)마을은 안의 현감이 도임할 때 거창 남상에서 이곳 

관술령재를 넘어 안의로 부임하였기 때문에 이 마을을 관동이라 하였다고 한다. 
또 다른 이름은 왕암이라 하는데 마을 아래 쪽에 큰 바위가 평지에 우뚝 솟아있는데

 이 바위가 왕바위 이기 때문에 왕암마을이라 불려졌다고 한다. 
옛날에는 봉화대와 장승이 있었다 하며 마을 입구에는 큰 주막이 있어 쉬어가는 손님들이

 많았다고 한다. 성씨로는 청송심씨 수원백씨 정선천씨등이며 청송심씨가 주성을 이루고 있다. 

관술령에서 바라본 거망산(1,184m )의 모습

경상남도 함양군 서하면에 위치한 산으로 덕유산에서 남으로 뻗은 백두대간 줄기가 둘로

 나뉘어져 하나는 지리산으로 향하고 또 다른 능선은 월봉산을 거쳐 거망산을 지나 황석산에서

그 흐름을 멈추게 된다. 거망산은 함양군내에 있는 해발 1,000m이상의 11개 고봉중 막내이다.

자꾸만 멀어져가는 거창읍과 거창분지의 모습

거창분지 (地)는  경남 거창군 거창읍 일대에 펼쳐진 분지로 달걀 모양의

침식분지로, 북서쪽에는 취우령(:795 m), 남서쪽에는 관술령(:554 m), 남동쪽에는 

감토산(:520 m), 동쪽에는 일산봉(:627 m) 등의 산봉으로 둘러싸여 있다.

낙동강의 지류인 황강()이 분지를 남북으로 흐르고, 그 밖에 여러 개의 지류가

흘러들어 황강과 합류한다.

망설봉 표시석 (518m : 09:40)

관술령에서 조금 치고 오르니  안부 능선을 오르락 내리락을 반복한다.

그리 깊고 높은 차이의 고도는 아니지만 마치 금북정맥 구간인 곡두고개에서

각흘고개를 지나는 빨래판 구간같은 느낌이다. 요런 곳에서 많이 지친다.

 조금 오르니 정상도 아니고 표시석이 있어야 할 자리도 아닌곳에

“4 망설봉 561.8m 無心” 라고 써있는 표시석이 나타난다. 가야 할 길을 바라보니

 오름 길이 아닌가 정상도 아닌 오름길 중간인 이곳에 정상석이 왠 말인가 이곳에

정상석을 세워야 하는 이유가 있는 것인가 하는 의구심을 가지고 정상을 향하여 오른다.

이곳은 소나무가 참으로 많다. 그리고 소나무에서 나오는 피톤치드의

영향을 받은 탓인지는 몰라도 피로가 훨씬 덜한 느낌이고 움직이다보니

더워서 윗옷 2개를 벗고 걷는다. 올해 일흔이 넘으셨다는  노산꾼님은

소매도 없는 옷만 입고 걸어 가신다. 겨울날씨답지 않은 포근한 날씨가

겨울산행하기엔 더없이 좋은 날씨이다.

망설봉(620m : 10:10)

경남 거창군 남상면 둔동리와 함양군 안의면 도림리의 경계능선에

있는 봉우리로 덕운산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정상에는  삼각점

(△거창308-1981재설)이 설치되어 있고 이곳도 이정표는 잘 설치되어

 있지만 정상에는 잡목과 잡초가 가득하여 주위의 멋진 조망이 아쉽기만 하다.

정상에서 조금 지나니  우측에 거망산과 황석산이 멋지게 조망되고

좌측에는 감악산과 감악평전이 시야에 들어온다.

정말 멋진 모습으로 거망산과 황석산이 시야에 들어오고...

감악산과 감악평전 그리고 그 뒤로 수도지맥의 산그리메가 산꾼을 유혹하고...

망설봉 지나 양 옆의 멋진 조망을 끝내고 다시  숙지령을 향한 내림길에는

거창군에서 설치한 계단이 산꾼을 상당히 편안하게 해준다.

이곳 역시 잡목으로 우거져 있어 여름산행에는 상당히 힘이들것 같다.

숙지령(10:20)

거창군 남상면 둔동리 신기마을과 함양군 안의면 불당골을 잇는  고개로

고개 정상에는 주위에 소나무가 빽빽히 들어차 있고 커다란 소나무가

죽은채로 서 있는 모습이다. 서낭당같은 돌무덤이 파헤쳐 있는채로

방치되어 있고 숙지령에서 다시 오르막을 향한 안부 능선을 걷는다.

관술봉-숙지령까지의 트랙

숙지령을 지나서 오르막을 향하는데 갑자기 사람소리가 난다.

선두에 서서 야생마처럼 앞만 달리는 산행대장님을 비롯해 왠일인지

전부 모여서 있는 것이다. 참으로 오래살고 볼일인가 희한하네 ㅋㅋㅋ

정말 오랫만에 일이다. ‘위하여 산악회’의 한대장님이 막걸리 한잔을 권한다.

정말 꿀맛이다.  숲속에서 단체 사진을 찍고 다시 오름을 계속한다.

오늘 내가 지나온 구간의 산줄기와 바로 앞의 망설봉의 모습

644봉 오름길의 음지에는 잔설이 남아있어 꽤나 미끄럽다.

거창 감악산(紺岳山 : 951m)

건너에는 거창 감악산이 보인다. 그 아래에는 평전이 보이고 그 아래에는

짓다만 골프장 같은 시설물이 보이기도 한다. 저 감악산 아래로 함양에서

울산으로 이어지는 고속도로가 건설될 예정이란다. 그런 관계로 내 고향(의령)

선산이 수용되는 모양이다

남상면 무촌리와 신원면 과정리 경계 능선에 있는 거창의 안산으로 본래의

이름은 대덕산(大德山)이었다.  산 정상의  감악평전에는 KBS와 MBC의

방송 송신탑이 설치되어 있다.

감악산을 배경으로 온누리님과 함께

저 아래에는 일반국도보다도 열악한 88고속도로도 보이고...

고인돌(11:30)

지리산의 주능선이 아련하게 다가오고...

작은 병풍바위(12:20)

오늘 산행은 함양군 안의면을 포근히 감싸면서 산행을 하는 느낌이다.

능선 안부에서 바라본 함양군 안의면의 모습

남자가 꿈꾸는  이상형의 남자가 변강쇠 아닐까싶다.

너도나도 변강쇠를 꿈꾸며 멍멍이탕에다 별별 보신음식으로 보양하지만

그리 쉽지는 않는 모양이다.  남자들이 가장 사랑하는 여인이 옹녀가 아닌가 싶다.

이곳 함양하면 천하의 음남(淫男)과 음녀(淫女)인 변강쇠와 옹녀가 육욕(肉慾)을 탐닉(耽溺)을

하다가 깨달은 바 있어 인간답게 살고자 조용하게 찾아온 곳이 이곳 함양(咸陽)군 마천면

삼봉산 아래 등구마을은 변강쇠와 옹녀가 전국을 떠돌다 마지막에 정착해 살던 곳으로 주변경관도

 절정이며 지리산 칠선계곡으로 가는 길목이다. 

 

판소리 “변강쇠 타령”의 주제를 보면

천하의 음남인 변강쇠와 천하의 음녀인 옹녀가 육욕만을 탐닉하다가  스스로

응징된다는 내용으로 性文化와 도덕성을 중시해야한다는 권선징악이 깔려

있는 교육적인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이곳은 소나무들이 참으로 건강하다.

기선봉 정상 이정표(12:35)

함양군 안의면과 거창군 남상면의 경계능선에 있는 봉우리로  정상에는 폐헬기장이

있고 삼각점이 있다. 여기에도 어김없이 잡목이 정상을 차지하고 있다.

이곳에서 동료 산꾼들과 과일과 마지막 남은 소주 한병을 비우고 내리막길을 향한다. 

기선봉 정상 삼각점 안내판

남재(12:55)

기선봉에서 편안한 등로를 따라 20여분간을 내려오니 푹파진 고개가 나온다.  

거창군 남상면 진목리 남재마을과 함양군 안의면 황곡리를 잇는 고개로

예전의 영화를 잊어 버리고 희미한 등로가 명맥만 유지하고 있다.

좌측의 거창쪽에는 커다란 농장이 있고 꽤나 큰 규모의 가족묘지가 보인다.

기선봉에서 사별산 올라가는 구간은 V자 계곡처럼 급격한 경사를 이루고 있어 오르는데

입에 단내가 푹푹 날 정도이다. 거기다가 음지라 잔설이 꽤나 쌓여있어 아이젠을

차지 않은 탓에 미끄럽기까지 한다. 남재에서 사별산까지 600m를 25분동안

고역끝에 겨우 올라서니 시원한 바람이 보상하는 듯 불어온다. 

천신만고 끝에 올라온 692봉에서 바라본 기선봉

사별산(705m : 13:20)

천신만고 끝에 사별산에 오른다. 사별산 이름이 특이하여 함양군과 거창군의

홈페이지를 검색했지만  알 길이 없다. 어느 사람이 부인(남편)과 사별하여

이 산과 인연이 있어서 그렇게 불렀나? ( 범여의 생각中에서) 여긴 높은  산이라

그런지 꽤나 차가운 날씨이다. 서둘러 하산을 서두른다. 이곳에서 좌측으로

꺽어져야만 춘전치를 향하는데 꼬리표도 애매하게 붙어있고 老고문님과 젠틀맨님

을 무심코 따라가니 길이 아니다. 300m정도 알바를 하고 산 옆을 가로질러 등로에 접어든다.

이곳에서 우측으로 진행하면 함양군 수동면에 있는 골무산이 나온다.

골무산(552.9m)이란 연유는 ‘산의 모습이 바느질 할때 손끝에 끼는 골무처럼 생겼다고

해서 골무산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

다시 등로에 접어들어 날머리인 춘전치를 향한다.

급경사의 내리막길엔 다리가 꽤나 아프다. 10시간이 넘게 걸린 탓인지

긴장도가 떨어지고 피로가 몰려온다. 몇기의 산소를 만나는데 상석에

적힌 내용이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심하게 마모되어 있다.

좌측엔 커다란 과수농가와 축사도 보이고 저수지는 꽁꽁 얼어있다.

드디어 우리를 태우고 갈 愛馬가 보이면서 스틱을 접는다.

春田峙(14:30)

경상남도 함양군 수동면과 거창군 남상면 춘전리를 연결하는 고개로

1084번 지방도가 지나가는 곳이다. 대구에서 광주까지 잇는

88고속도로가 나란히 지나는 곳이다.

이곳은 임진왜란때 엄능(嚴陵)이라 하다가 뒤에 지금의 내춘을 중심으로 엄전(嚴田)이라

 하여 “음지이”라고 부른다. 안의현의 황곡리(黃谷里)에 따랐었고, 안의면에 속하게

 되어서 밭이 많은 곳이라 춘전이라 했다하며, 1973년에 함양군 안의면에서

거창군 남상면에 편입 되었다고 한다.

다음 구간의 들머리를 확인하고...

88고속도로

5공시절에 동서화합을 하겠다는 즉흥적인 발상으로 왕복 2차선의 고속도로를

건설하여  경제적인 타당성 조사도 없이 하는 바람에 요즘에 건설되는

지방도보다도 못한 길이다. 꼬불꼬불하고 위험하여 차량들이 피하는 곳이다.

나도 예전에 대구에서 해인사 가면서 경험했는데 중앙분리대도 없는 바람에 갑자기

추월차량이 중앙선을 넘어오는 바람에 상당히 당황한 경험을 했다.

숙지령-춘전치까지의 트랙

춘전치에서 후미를  기다리며 맥주 한잔을 마시고 잠깐 사이에  버스에서

깊은 잠에 빠진다.  얼마나 잤는지 모른채 버스는 움직여 거창읍내를

지나 마리면을 거쳐 새벽에 내렸던 바래기재를 지나 안의면 소재지에 이른다.

난생 처음 와본 곳이다. 아마 집행부가 이곳 식당에다가 예약을 한 모양이다.

면사무소 뒤에 있는 안의 법인사 맞은편에 있는 허름한 감자탕집이다.

식당은 초라해 보여도 경상도에서 먹어본 음식중에 그래도 먹을만했다.

맛있게 먹고 소주도 맥주 그라스로 3잔을 마시고 나니 기분이 쿨하다.

내 고향길의 지맥 한 구간을 끝내고 서울가는 버스에 올라 깊은잠에 빠진다.

안의면 광풍루(光風樓)

경남 함양군 안의면 금천리 에 있는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 92호로

이 누각은 안의면 소재지 진입로 입구인 금호강변에 우뚝 서 있으며 조선 태종12년(1412)에

당시 이안(현재의 안의면)의 현감인 전우(全遇)가 창건하여 선화루(宣化樓)라 하였다.
그 후 조선 세종7년(1425) 김홍의(金洪毅)가 현재의 위치로 이건 하였고, 조선 성종25년

(1494)에 안의 현감 일두 정여창(鄭汝昌) 선생이 중건하고 광풍루(光風樓)로 개칭 하였다.
정유재란때 소실된 것을 조선 선조34년(1601)에 안의 현감 심종침이 복원하였고, 조선

숙종9년(1683)에 현감 장세남(張世男)이 중건하였다.
정면 5칸, 측면 2칸의 2층 누각으로 5량 구조 팔작지붕 겹처마 목조와가로 되어 있다.

우람한 조선시대의 대표적인 건축양식으로 보존해야 할 가치가 높다.

함양군 안의면(安義面) 소재지의 풍경

 서부경남 최북단에 위치하여 거창군과 접하고 있으며, 함양군청 소재지에서

 19km 정도되는 거리에 위치한 지역으로서, 군립공원 제1호인 기백산을 비롯한

국가사적지 제322 호인 황석산성과 농월정, 용추계곡 자연휴양림 등으로 둘러쌓여

산자수명한 지역으로서 면의 북서부는 금원산(1,353m)·기백산(1,331m)·거망산(1,184m)·

황석산(1,100m) 등의 높고 험준한 산지를 이루며, 면의 남동부는 300~600m의 저산성

 산지를 이룬다. 면의 남동부를 흐르는 지우천 등의 소하천 연안에는 소규모의 평야가

분포하며, 남부의 남강 유역에는 비교적 넓은 평야가 발달했다.

쌀·보리 이외에 느타리버섯을 생산하며 양잠이 활발하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