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사의 묵향이 살아 숨쉬는 도량**
은해사는 조선 31본산, 경북 5대본산, 현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 10교구본사의 자리를 지키는 경북지방의 대표적 사찰이다.
그리고 교구 본사중 본존불로 아미타불을 모시는 미타도량으로도 유명하다.
신라 41대 헌덕왕 1년(809년) 혜철국사가 해안평에 창건한 사찰이 해안사인데
이 해안사로부터 은해사의 역사가 시작된다. 현존하는 암자만도 여덟 개가 있고
말사 숫자가 50여 개에 이르고 한국 불교의 강백들을 양성, 교육하는
"종립 은해사 승가대학원"이 있는 사찰이기도 하다.
불, 보살, 나한 등이 중중무진으로 계신 것처럼 웅장한 모습이 마치 은빛 바다가
춤추는 극락정토 같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 은해사이다. 또 은해사 주변에 안개가
끼고 구름이 피어 날 때면 그 광경이 은빛 바다가 물결치는 듯 하다고 해서 은해사라고도 한다.
*일주문 현판*
(동곡 일타스님 글씨)
일주문을 들어서면 소나무숲길은 늘푸른모습으로
바람에 맞추어 즐거웁게 하모니를 이루며 오는 이들을 맞이한다.
높고낮음이 없는 곳을 향하는가
바다로향하는 은해사 앞 계곡의 물은
들고 나는이들의 모든 기쁨과 시름들까지 안고 흐른다.
*보화루*
「보화루」 현판은 추사 김정희의 글씨로 크기는 가로 235㎝, 세로 100㎝이다.
은해사의 중건과 중수에 관한 문헌에서 보화루(寶華樓) 명칭이 처음 나오는
건 1862년 혼허 지조 스님이 지은 「은해사중건기」가 처음이다.
이 글에서 1848년(헌종 14)에 「대웅전」·「불광각」과 함께
「보화루」 현판을 추사 김정희가 썼다는 내용이 보인다.
*극락보전*
조선시대 후기인 1847년(헌종 13) 화재로 인해 전 당우가 소실된 후
팔봉(八峰)·해월(海月) 스님 등 은해사의 모든 스님들과 당시
군수 김기철(金箕哲)의 후원으로 이룩한 중창 때 새로 지은 건물이며,
그 뒤 1920년에 지석담 주지 스님 등이 중수한 바 있다. 대웅전의 규모는
앞면과 옆면 각 3칸이며 다포계 팔작지붕에 겹처마를 하고 있다.
아미타삼존불상과 후불탱
내부 중앙의 불단에는 좌우에 관음보살과 대세지보살이 아미타불을 협시(脇侍)하는
아미타삼존불이 봉안되어 있다. 아미타불상은 목조로서 조선시대 후기에
조성되었으며, 그 시대의 특징인 단아한 모습을 잘 보이고 있다. 좌우 협시
보살은 최근에 모셔졌다. 삼존불 뒤에는 아미타삼존도가 후불탱화로 걸려 있다.
아미타후불탱은
구도는 일반적으로 볼 수 있는 군도식(群圖式)이 아니라 아미타여래를 중심으로
관음과 대세지보살이 좌우에 협시하는 삼존만의 간단한 구도인 것이 특이하다.
아미타여래는 원형 두광에 거신광(擧身光)의 신광을 하고 있는데,
원만한 얼굴에 머리 위에는 정상계주가 있다.
왼손은 배 앞에서 엄지와 중지를 맞대었고 오른손은 밑으로 내리고 있다.
불의는 통견으로서 옷 끝이 꽃무늬로 장식되어 있으며,
거신광 안에도 모란·연꽃 등이 도안화 되어 있다.
관음보살은 왼손에 정병을 들고 있고,
대세지보살은 정병이 든 보관을 쓰고 두 손으로 서책이 놓인 연봉(蓮棒)을 잡고 있다.
이 후불탱에는 그림의 봉안년도를 비롯해서 봉안 목적, 그림을 그린 화사(畵師) 등에 대한
내용이 보이는 화기가 불단 뒤쪽으로 깊숙하게 내려져 있어 화기를 살펴보기가 매우 어렵다.
다만 그 일부 내용이 단편적으로 전해지는데, 제작년대는 1750년(영조 26)으로 알려져 있다.
삼장보살탱
그림 중앙의 천장보살(天藏菩薩)을 중심으로 좌우에 지장보살(地藏菩薩)·
지지보살(地持菩薩)의 세 보살이 배치된 그림으로서, 1755년(영조 31)에
조성되었다. 그림의 구도는 화면을 2단으로 나누어 상단에 세 보살좌상
및 좌우 상하에 그 권속을, 하단에는 각 보살의 협시를 그렸다.
신중탱
불법을 수호하는 여러 선신(善神)을 도상화한 그림을 신중탱화라고 합니다.
많은 신들을 배치하여 그리므로 다양하고 복잡한 구도를 보이는
이 신중탱화는 일반적으로 제석(帝釋)과 하늘의 군사인 천룡(天龍)을
중심으로 주위에는 무장을 한 신중들을 배치합니다.
붉은 바탕에 금니로 선묘하여 얼굴만 하얗게 채색하였습니다.
괘불
1750년(건융15)으로 경자년 영조 26년에 화원(火員) 보총(普摠) 처일(處一)에
의하여 제작된 것으로 아미타불 독존형입니다. 재료는 견본(絹本)이며,
크기는 가로 5.59m 세로 10.16m의 보기 드문 초대형의 걸작입니다. 좌우상단에는
봉황을 배치하고, 그 아래로는 목단과 연꽃을 장식하여 장엄한 모습입니다.
특히 하단 좌우는 연꽃이 있는 연못을 표현하여 극락세계를 상징하고 있습니다.
색조는 녹색과 홍색 위주로 상당히 우아한 기품이 있으며, 상호(相號)는
원만한 편으로 조선 후기 영정조시대의 전형적인 특징을 보여줍니다.
선의 흐름이 매우 유연하고 18세기의 불교미술 발전상을 잘 알 수 있고
그림 좌우 테두리는 범자(梵字)가 장식되어 있습니다.
현재 보물 제 1270호로 지정 되어 있다. .
(괘불함)
*지장전*
(일타스님 필)
지장전은 중생구제의 큰 원력을 세운 지장보살(地藏菩薩)을 모신 전각으로
"지장전"보다는 "명부전(冥府殿)"이라고 더 많이 불린다.
지장보살상을 주존으로 하여 지장후불탱이 있고,
그 주위로 지장보살상 1,000위가 봉안되어 있다.
지장보살은 원래 인도의 지신(地神)에서 유래한 보살이다.
이 보살은 지옥, 아귀, 축생, 수라, 사람, 하늘등 육도(六道)의 윤회에서
꿑없는 고통을 받고 있는 중생들을 구제하고자 서원을 세운 분이다.
보통 깍은 머리에 스님 모습이나 두건을 쓰며, 한 손에는 육환장(六環杖)을 들고
한 손에는 여의주를 들고 있는 모습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은해사의 지장보살은 두건을 쓴 모습으로
연화대좌에 결가부좌하고 있다.
뒤에는 아청색(紺色) 바탕에 금니로 선묘한 하고 얼굴부분을 하얗게
채색한 지장보살도가 봉안되어 있다.
단서각(單棲覺)
안에는 뒤편 중앙에 독성탱화가 걸려 있고 그 왼쪽에 금동 여래좌상과 소형의
금동 관음좌상, 오른쪽에 소형의 금동 약사여래좌상이 봉안되어 있다.
독성탱화는 근래에 조성된 것이며 안에는 뒤편 중앙에 독성탱화가 걸려
있고 그 왼쪽에 금동 여래좌상과 소형의 금동 관음좌상, 오른쪽에 소형의
금동 지장보살좌상이 봉안되어 있다. 독성탱화는 근래에 조성된 것이다.
단군
조사전
최근에 조성된 조사전 전각
*산령각*
앞면과 옆면 각 1칸씩이다. 안에는 근래에 조성한 산신상이 있다.
*범종루(梵鐘樓)*
보화루 서쪽에 자리하며, 사각 중층 건물이다. 1층에 범종이 있고,
2층에는 운판·목어·법고가 있다. 범종은 1976년에 조성했으며, 높이 170㎝이다.
목어는 조선시대의 것으로서, 길이 209㎝, 너비 50㎝이다.
1850년(철종 1) 혼허 지조 스님이 지은 「종각단확서문(鍾閣丹綺序文)」에 따르면
1850년에 종각이 중수된 것을 알 수 있는데, 목어 역시 이 때 중수와 함께 조성된 것으로 추정해 볼 수 있다.
그 밖에 운판·법고는 근래에 조성한 것이다.
*소원지*
스님께서 원하신 소원은 무엇일까..
작게 원하셨을 지라도 그소원 이루어짐은 많이 크실거라..
달 마
放 下 着
원함도 이루어짐도
모든 것은 내 마음속 부처님께서 알아서한다 하시며..
내 려 놓 으 라 하십니다.
*두꺼비영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