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못 속에 숨겨진 자기 부처님을 찾는 도량
대한불교조계종 제11교구 본사인 불국사의 말사이다.
〈천축산불영사기 天竺山佛影寺記〉에 의하면 651년(진덕여왕 5)에 의상(義湘)이 창건했다고
하며 다음과 같은 창건설화가 전한다. 즉 의상대사가 동해로 향하고 있는데 계곡에 어린 오색의
서기(瑞氣)를 발견하고 가보니 연못 안에 9마리의 용이 있었다. 이에 도술로 가랑잎에 '火'자를 써서
연못에 던지니 갑자기 물이 끓어올라 용들이 견디지 못하고 도망을 친 자리에 절을 지었다고 한다. 그뒤 의상대사가 다시 불영사를 방문할 때 한 노인이 '부처님이 돌아오시는구나'라고 하여 불귀사(佛歸寺)라고도 불렸다.
창건 이후 여러 차례의 중수를 했는데, 1396년(태조 5)에 나한전만 빼고 모두 소실된 것을 이듬해에 소설(小雪)이 중건했다.
임진왜란 때 다시 영산전만 남고 모두 전소된 것을 1609년에는 성원(性元)이, 1701년에는 진성(眞性)이,
1721년에는 천옥(天玉)이 중건했다. 현존 당우로는 응진전(보물 제730호)·대웅보전(보물 제1201호)·
극락전·명부전·조사전·칠성각·응향각 등이 있다. 이밖에 3층석탑(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135호)·
양성당부도·불영사사적비 등이 있다.
(대웅보전을 등에 지고 있는 축대 밑 돌 거북)
이는 화재에 약한 목조 건축의 단점을 생각하여 화기(火氣)를 막기 위한 것이라고 한다.
*대웅보전(大雄普殿)*
삼존불과 영산회상도
(보물 제1272호인)
18세기에 조성한 석가여래좌상과 문수, 보현보살상, 그리고 1735년에 조성한 후불탱이 불단 위에 봉안되어 있다.
(영산회상도는 석가가 설법하는 장면을 묘사한 그림으로, 대개 불상의 뒷벽에 위치한다.)
이 영산회상도의 석가여래는 오른쪽 어깨가 드러나는 우견편단의 옷을 걸쳤으며,
손가락을 땅으로 향하게 하여 마귀를 물리치는 의미를 지닌 항마촉지인의 손모양을 하고 앉아 있다.
석가여래 주변으로 10대보살, 사천왕상, 상단의 10대제자 등이 배열되어 있다. 주로 영산회상도에서는
8대보살이 그려지는데, 이 그림에서는 10대보살을 표현한 점과 석가불 아래의 그 보살이 유난히 큰 점이 특징이다.
석가의 옷이 붉은색이고 석가 뒤의 광배가 이중으로 붉은 테를 두른 점등은 조선 후기의 불화양식보다
약간 앞선 양식적 특징이다. 채색의 사용법이 유창하고 아름다우며 묘사법이 정밀하여 그림의 가치를 더욱 높인다.
신중탱
대웅보전에 소장된 1860년 제작된 신중도이다.
삼베에 채색되어 있으며, 전체 크기는 가로 214㎝X세로 224㎝이다.
독성탱과 독성상
독성은 부처의 제자로서 홀로 인연의 이치를 깨달아 아라한과(阿羅漢果)를 얻고
석가모니불의 수기를 받아 남인도의 천태산에 머무르다가 말세중생(末世衆生)의 복덕을
위하여 출현하였다고 한다. 그 때문에 특별히 복을 희구하는 신도들의 경배 대상이 되고 있다.
대웅보전(大雄寶殿)은 팔작지붕에 앞면과 옆면 각 3칸씩의 규모로 건축년대는 내부에
봉안된 후불탱의 조성시기인 1735년(영조 11)과 동시대로 추정된다. 조선시대 후기의
전각으로 자료적 가치가 높아 1994년 보물 제1201호로 지정되었다.
이 대웅보전에서 건축
양식상 가장 주목할만한 점은 건물에 색을 칠한 단청 부분이다. 현재 바깥쪽은 다시 칠하여
본래의 모습을 잃었지만 안쪽은 천장의 청판(廳板), 포벽 사이의 여백에 별화(別畵)를 금단청(錦丹靑) 계열로 그려내었다.
이 단청들은 형태가 잘 남아 있고, 그 기법에 있어서도 수준이 매우 높은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따라서
건축 양식뿐만 아니라 격조 높은 불화와 단청 연구에 있어서 귀중한 자료가 되는 것이다.
삼층석탑(三層石塔)
대웅보전 앞에 서 있는 삼층석탑으로, 이중기단 위에 3층의 탑신과 상륜부가 있는 구조를 하고 있다.
1979년 경상북도유형문화재 제135호로 지정되었다.
*명부전(冥府殿)*
(지장보살좌상과 후불탱)
명부전에 있는 지장보살삼존상 중에 지장보살좌상은 석조로 제작되었는데 본존인
지장보살은 개금을 하였으며, 협시인 도명존자와 무독귀왕은 화려하게 색을 입혔다.
석불이지만 뛰어난 조각솜씨와 예술성을 보여주고 있다.
명부전에 소장된 1880년 제작 지장보살도는 면에 채색되어 있으며 전체 크기는 가로 258㎝X273㎝이다.
화면 중앙에 오른손에 보주를 쥔 지장보살이 결가부좌하고, 그 앞쪽에는 투명한 두광을 갖춘 도명존자와
무독귀왕이 시립하고 있다. 양쪽 가장 앞쪽에는 사천왕, 그 위쪽으로 녹색 두광을 갖춘 육광보살과
천부·판관이 좌우 대칭을 이루고 있다.
명부전(冥府殿)은 맞배지붕에 앞면과 옆면 각 3칸씩의 규모로 근래에 지은 전각이다.
'명부전' 편액에는 편수(片手) 화산 재근(華山在根) 편수 석옹 철유(石翁哲侑)라 쓴 묵서가 적혀 있다.
화산 재근 스님은 석옹 철유 스님과 함께 1876년(고종 13) 문경 대승사의 지장보살탱, 신중탱 조성에
참여하였으며, 석옹 철유 스님은 그 밖에 1887년 서울 경국사 감로왕도 및 화장사 신중도, 의정부시
망월사 괘불, 1888년 문경 김룡사 칠성탱, 독성탱, 1901년 순천 선암사 약사여래회탱 및
해남 대둔사 영산회상탱, 나한탱, 독성탱, 1908년 서울 삼성암 산신탱 조성에도 참여하였던 금어 스님이다.
안에는 지장보살좌상과 좌우 협시로 도명존자, 무독귀왕, 그리고 후불탱이 불단 위에 봉안된 것을 비롯하여
, 시왕상 10위, 시왕탱 6폭, 판관, 녹사, 시자, 장군상 각 2위씩이 있다.
(출처 : 전통사찰총서 16)
*의상전(義湘殿)*
의상전(義湘殿)은 맞배지붕에 앞면 3칸, 옆면 1칸의 규모로 조시대 후기의 건물이다.
안에는 의상 대사의 상과 진영을 비롯하여 여러 고승의 진영이 봉안되어 있다.
의상 대사상은 응진전 후불탱 화기를 보면 1906년 ‘조사전(祖師殿)에 의상 조사상을
개분(改粉) 입채(入彩)하여 조성하였다.’는 내용이 있어 조성년대를 알 수 있다.
그 밖에 종봉(鍾峯)·원효·청허(淸虛) 및 당호가 없는 진영 등 모두 다섯 폭이 봉안되어 있다.
*응진전(應眞殿)*
(아미타회상도)
불영사 응진전 정면에 있는 탱화로, 1906년 제작되었다. 전체 크기는 가로 194㎝X세로 291㎝이다.
조선 태조 5년(1396) 나한전만 남긴 채 화재로 모두 불에 타 버렸고
임진왜란 때에도 영산전만 남기고 모두 불 타 버렸던 것을
훗날 다시 짓고 많은 수리를 거쳐 오늘에 이르고 있다
.
안에는 불단 위에 1906년(광무 10)에 조성한 석가본존여래좌상과 후불탱,
그리고 그 좌우에 미륵보살·제화갈라보살상이 봉안되었다.
불단 주위에는 나한상 16위를 배치하여 봉안하였다.
(1981년 보물 제730호로 지정)
*칠성각(七星閣)*
칠성각(七星閣)은 맞배지붕에 앞면 3칸, 옆면 2칸의 규모로 조선시대 후기의 건물이다.
안에는 최근에 조성한 칠성탱이 봉안되어 있다.
*극락전(極樂殿)*
극락전(極樂殿)은 맞배지붕에 앞면 3칸, 옆면 2칸 규모의 19세기 건물이다. 안에는 금동 아미타여래좌상과
관음보살, 세지보살상 및 후불탱이 불단 위에 봉안된 것을 비롯하여 아미타여래 불화 2점, 신중탱 등이
있다. 후불탱과 아미타여래 불화 2점은 1977년, 신중탱은 1967년에 각각 조성한 것이다.
산신각 (山神閣)
대웅전의 뒤쪽 산자락에 위치하며 정면 1칸, 측면 1칸, 맞배지붕으로 규모가 작은
목조와즙(木造瓦葺) 이다. 내부에는 산신탱이 있다. 산신탱은 조선 말기의 탱화이다. 우리나라
사찰에서는 산신각(山神閣)을 두고 그 안에 산신도를 모시고 있는데, 이것은 원래 불교사상과는
전혀 관계가 없는 것이나 고유의 산악신앙, 즉 불교의 토착화 과정에서 생겨난 대표적인
신불(神佛) 수용의 예라고 할 수 있다.
종루(법영루法影樓)
정면 5칸, 측면 3칸의 목조와옥(木造瓦屋) 맞배집으로 양쪽으로 풍판(風板)을 달았다.
현재는 접객실로 사용되며 좌측에 사모지붕의 새로운 범종루를 만들었다.
(불영사 연못에 나투신 부처님)
*사적비*
불영사 입구 우측변에 위치한다.
후면에는 창건설화에 이어 사찰의 재산매입과정, 불상과 법기 구입에 대한 내용이 전해지며,
마지막 재산관리를 철저히 할것을 당부하고 있다고 하니..
이렇게 살뜰하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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