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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범여(梵如)의 世上사는 이야기
♣ 9기맥 자료및 산행후기 ♣/팔공기맥(終)

팔공기맥 제5구간 - 한티재에서 오로고개까지

by 범여(梵如) 2012. 5. 21.

 

☞ 산행일자: 2012. 5. 20(무박산행)

☞ 산행날씨: 날씨 맑음, 28도의 무더운 날씨.

☞ 참석인원: 백두사랑 산악회 24명과 함께

☞ 산행거리: 도상거리 31.5km +알바2km   G.P.S 거리 34.8km / 13시간 25분 소요

☞ 산행코스:  한티재-783.6봉-795봉-삼면봉-할배,할매바위-808봉-772봉-치키봉

                  가산산성-전망대-가산(架山)-가산산성 중문-가산바위-서문

                  황학지맥 분기점-모래재-661봉-734봉-725.3봉-돌탑봉-무인산불감시탑

                  556봉-508봉-438.7봉-374.1봉-5번국도-효령재-291봉-375봉-응봉산

                  군위터널-326봉-중앙고속도로-267.3봉-적라산-중앙고속도로-178봉-오로고개

☞ 소 재 지: 경북 칠곡군 가산면, 동명면 / 군위군 부계면, 효령면 / 구미시 장천면

 

오늘은 몸이 열개라도 안될것 같다... 하루에 행사가 많이 몰리니.

재경초등학교 총동창회,  둘째 형님 막내딸 41세에 시집을 간다.

삼촌으로서 당연히 축하 해줘야지... 12시 30분에 강남역이라.

서둘러 간다. 시골에서 큰 형님 내외분도 오시고... 많이도 늙으셨다.

늘 미안한 마음만 가지고 있다. 셋째, 넷째, 다섯째 형님과 막내 여동생

일흔 여덟의 큰 누님은 다리가 아파 참석을 못하시고 대신 조카들이 왔다.

8남매가 아직도 건재하고 있다. 올만에 가족들이 다 모였는데 같이

오붓하게 대화한번 못나누고 사무실로 돌아온다. 오늘이 이삿날이라

현장이 좀 바쁘다. 일을 시켜놓고 갔는데... 일용직들 노임도 줘야하고

해서 현장을 처리하고 바쁘게 연등축제 행사땜에 모교로 간다.

연등축제가 열리는 동국대 운동장은 축제분위기다.

 

요즘 스님들이 이상한 사건에 중심에 서있는 같아  불자로서 심기가 불편하다

처음 발심해서 출가할 때 우리는 부처님께 계율을 지키며 수행하겠다고 다짐했다.

수행자의 근본은 계율이다. 어느 때보다 힘든 시기에 사회적 모범을 보여야 할 수행자들로

 인해 더 큰 아픔을 남기게 되어 참으로 유감스럽다.

치문에 보면, 백수(百獸)의 왕인 사자는 외부로부터의 적에게는 파괴되지 않고 사자의 몸속에

살고 있는 벌레에 의해서 파괴되고 마침내 생명까지 위태롭게 된다는 사자충(獅子蟲) 이야기가 나온다.

불법(佛法)도 마찬가지로 외적에게 파괴되는 것이 아니라 자신에 대한 경계심을 소홀히 할 때

내부로부터 파괴될 수 있다는 것을 비유를 통해서 보여주고 있다.

스님들께서는 처음 삭발할때의 초발심을 잃지 않았으면... 중생들을 이제 실망시키지 마시길...

 

요즘 불교계가 어수선하지만 우리가 언제 스님보고 절에 다녔나?

부처님 보고 다녔지 여러 도반들과 포교사들과 제등행렬 준비를

하고나서 행진이 시작되는 걸 보고서 몰래 탈출(?)하여 얼른 집으로

와서 바쁘게 베낭을 꾸린 다음에 서둘러 양재역으로 향한다. 아~ 바쁘다.

거기다가 오늘구간은 도상거리만 약 32km 원래는 7월초에 가는 구간인데

거리가 길어 혹서기를 피해 먼저 당겨서 한다니 따라갈란지 걱정이 앞선다. 

결혼식에 들렸다가 현장에 들려서 일을 처리한 다음에 서둘러 연등축제

행사장으로 향한다. 늘 가족들에게 미안하다. 시골에 계시는 장형(長兄)이

올해 일흔다섯인데 오랫만에 서울 오셨는데 참으로 미안하다. 

도반과 함께 연등행렬 준비를 하면서...

동국대 대운동장의 연등축제 행사장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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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산행구간의 지도와 고도표

오늘 산행구간의 전체 트랙

한티재(718m:03:35)

고도가 700m 넘는 높은 고개로 우리를 태운 버스는 경부고속도로 왜관I.C를

빠져나와 대구시 북구를 지나면서 팔공산을 휘돌아 올라오면서 가쁜 숨을 쉬며 올라간다.

주위에는 크고작은 음식점들이 즐비하여 이곳이 팔공산 유원지임을 보여주며

1주일밖에 남지않은 석가탄신일이라 그런지 팔공산 자락에 있는 사찰에서

건 연등들이 아주 이쁘게 보인다. 이곳 팔공산은 약사신앙의 중심지라 그런지

사찰들이 아주 많이 보인다. 잠시후에 버스는 한티재에 도착한다.

 

한티재는 대한민국 산행지에서 가장 많이 만나는 재(고개) 이름이다.

 산이름은 백운산, 봉이름은 국사봉과 깃대봉만큼이나 흔해빠진 이름이다.

차에서 내리니 날씨는 제법 차갑게 느껴진다.

한티재 우측으로는 군위 제2 석굴암 올라가는 도로가 나타난다.

군위삼존석굴(국보 제109호)은 경상북도 군위군 부계면에 위치한 삼존석굴로서 

팔공산 석굴암은 신라 19대 눌지왕 때 아도화상께서 수도전법하시던 곳으로
화상께서 처음으로 절을 짓고 그후 원효대사께서 절벽동굴에 미타삼존
(아미타불 관세음보살, 대세지보살)을 조성 봉안하였다.
이곳 석굴암은 7세기경 조성되었으므로 경주 석굴암보다 약 1세기 정도
앞선 선행 양식으로 토함산 석굴암조성의 모태가 되었다.
옛날에는 석굴암을 비롯한 이고을에 8만9암자가 있엇다고 전해오고 있으나
임진왜란 당시 거의 소실되고 망각의 세월속에 묻혀오던 중
1927년경 한밤마을 최두환씨에 의해 삼존석굴이 다시 발견되고
1962년 정부로부터 국보 109호로 지정되었다.
현존하는 사찰건물은 1985년12월 조계종 법등스님이 제3대 주지로 부임하여
10년간 중창 대작불사를 발원하여 도량을 일신하였다.

이곳 한티재 남쪽에는 천주교 한티성지가 있다. 

이곳은 대구, 칠곡, 군위의 경계의 오지로, 카톨릭 신자들의 최종 피난처였다.

카톨릭 신자들은 신해사옥(1791), 신유사옥(1801)을 비롯하여 을해박해(1815),

정해박해(1827), 기해사옥(1838) 등으로 끊임없이 박해를 받아왔다.

신도들은 대구 인근의 산간벽지로 피해, 화전을 일구고 옹기와 숯을 구우며

한곳에 모여 살았는데 이때 정착한 곳이 바로 한티재 남쪽, 지금의 한티성지이다.

그러나 이곳에 정착한 후에도 관군의 습격을 받고 많은 신도들이 순교하게 되어

이곳이 오늘날 한티성지로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천진암(경기도 광주)과  최초의 신부 김 대건이 묻힌 미리내 성지(경기도 안성),

김 대건 신부가 태어난 솔뫼성지(충남 당진)와 함께 이곳 한티는 대표적인

천주교 성지로 꼽힌다고 한다.

 

우리나라 최초의 추기경인 김 수환 신부도 원래는 대구 출신이지만  박해를

견디지 못해 가족들이 군위로 옮기는 바람에 유,소년 시절을 군위에서 보냈다고 한다.

한티재(漢峙:718m)

경북 칠곡군 동명면 득명리와 군위군 부계면 남산리를 있는 고개로 높고 큰고개를 뜻하는

한티(漢峙)라고 붙였다. 팔공산에서 가산으로 이어지는 해발고도 700m의 산줄기에

있으며 팔공산의 아름다운 경치와 굽이굽이 휘감아 도는 도로의 굴곡이 아름다워

건설교통부에서 선정한 ‘한국의 아름다운 길 100選’ 에 등록된 길이다.

들머리는 한티재 휴게소 좌측의 화장실과 자판기 사이의 통로를 따라 등로로 접어든다.

이곳의 등로 가산으로 가는 길은  팔공산 도립공원에 편입되어 있는

탓인지 길은 상당히 잘되어 있고 이정표도 상당히 잘되어 있다.

783.6봉 삼각점(△ 군위 465 2004 재설 :03:46)

가산으로 오르는 길은 너무나 잘되어 있고 아기자기한

암릉구간이 마치 서울의 북한산 길을 걷는듯한 착각을 일으킨다.

개인적으로 난 북한산을 가장 좋아하는데 이곳 가산가는 길도 그에 못지않다.

물개처럼 생긴 멋진 바위도 지나고...

어둠속에 헤드렌턴에 의지한 채 오르락 내리락을 계속한다.

길이 좋으니 엄청난 속도로 산행을 시작한다.

오늘 산행구간의 거리가 만만찮은 탓이지 상당히 빠르다.

길도 좋고... 어림잡아 시간당 4km 정도로 날씨가 선선할 때

거리를 줄일 전망인 모양이다. 다들 아무말없이 걷기만 한다.

마치 지라산의 통천문같은 멋진 바위도 지나고...

이곳까지 오는데 30분이 채 안걸렸으니 엄청난 속도로 어둠속에 산행을 한다.

치키봉(756.8m:04:30)

경상북도 칠곡군 가산면과 동명면에 접하고 있는 가산의 동쪽 봉우리로서

산의 형세가 곡식을 까부를때 쓰는 키와 비슷해서 치키봉이라 불린다고 한다.

 

*키 : 곡식 따위를 담고 까불러서 쭉정이, 검부러기 등을 제거하는 기구

치키봉 삼각점

치키봉을 지나니 서서히 여명은 밝아오기 시작하고 아직 새벽 5시가

안되었는데도 주위의 사물이 식별이 가능할 정도이다.

조금 지나 좌측으로 빼꼼히 보이는 바위에 올라서니 주위가 시원스럽게

보이지만 아직 어둠이 완전히 걷히지 않은 탓인지 카메라 후레쉬가 약하여

주위 사물을 렌즈에 담을 수가 없는게 아쉽기만 하다.

저 앞에 뾰족하게 보이는 산이 팔공산이고 그 너머로 대구시내가 아련히 보인다.

 

지금부터 가산산성으로 접어들기 시작한다.

할배, 할매바위(04:55)

어둠속에서도 멋있는 바위들이 너무나도 많다... 낮에 왔으면 너무도 좋을듯 싶다.

전망이 좋은 바위에서 조금 지나니 할아버자, 할머니 바위가 나온다.

할배바위는 꼿꼿하고 늠름하게 서있고 그 앞에 네모난 할매바위는

늘 낭군에게 순종하듯 다소곳이 앉아있는 모습이다.

예전에 우리 할머니를 보는 모습이다. 요즘은 여인들이 기가세서

남자들이 꼼짝 못하는 세대가 되어있는데 할배바위는 우릴보고 뭐랄까 궁금하다.

이 세상의 남자들이여!  너무 기죽지 말고 삽시다.

어렵게 할배, 할매바위 정상에 올라선다.

그 아래에는 언 넘이 장난을 쳤는지  이렇게 낙서(徐正逸 豚王)를 해놨다.

 이너무 시끼를 그냥 확... 이곳에는 멋지게 생긴 바위들이 너무나 많다.

할배바위 옆  할매바위 위해서 동료산꾼 산동네님,젠틀맨과 함께 멋진포즈를..

5.1km를 지나오니 이제 동쪽 구름사이로 일출이 시작될 모양이다.

가산산성(架山山城)

경상북도 칠곡군 가산면 가산리에 있는 조선 후기의 산성(山城)으로

가산산성 인조 17년(1639)에 내성의 축성공사가 시작되어 약 100여 년간의 긴 세월을 거쳐 축성되었다.

따라서 가산산성은 17~18세기에 걸쳐 정상에 내성, 중턱에 중성, 하단에 외성을 쌓은 3중의

 포곡식 석성(石城)으로써 금오산성, 천생산성 더불어 영남 지방을 방비한 그야말로 ‘영남 제1관방’이 되었다.

 

가산산성은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겪은 후 잇따른 외침에 대비하기 위해 가산(架山) 요새에 삼중(三重)으로 축성되었다.

1639년(인조17)에 경상도 관찰사로 제수된 이명웅(李命雄, 1590~1642)이 “경상도 60주(州) 산성 중에

믿을 만한 곳은 진주(晋州)·금오(金烏)·천생(天生)의 3성 뿐이므로 적지(適地)에 축성할 것”을 상주(上奏)하였다.

도임 후 천생산성(天生山城)은 형세가 험하기는 하나 좁고 천정(泉井)이 없으므로, 금오산성(金烏山城)

가축(加築)하는 한편, 최적지인 팔거현가산(架山)에 축성할 것을 계청(啓請)하고, 그해 9월부터 이듬해(1640년)

4월까지 내성을 쌓았다. 가산산성이 축성되면서 5월에는, 경산부(京山府: 현재 성주)에 속했던 팔거현

 ‘칠곡도호부(漆谷都護府)’로 승격되고, 이후 약 180년 동안 부의 치소(治所)인 읍치를 산성 내에 두었으며,

진관(鎭管)은 4개 현(군위, 의흥, 신령, 하양)을 관장하였다.

 

칠곡도호부 관아(官衙)가 험준한 산정에 있게 된 후, 읍민들은 불편한 점이 많아 관아를 옮기기를 갈망하여 왔다.

1819년(순조 19)에 왕명(王命)에 의하여, 평지인 팔거구지(八?舊地)로 읍치를 옮기고, 이후로 가산산성

 수성은 가산진의 별장이 담당하였다. 1648년(인조 26)에는 제6대 칠곡도호부사 이지형(李枝馨, 1608~?)

 경상감사 이만(李曼, 1605~1652)과 합심하여, 군병과 승려를 동원하여 불과 수개월 만에 건물(建物)·포루(砲樓)·

남쪽 곡성(曲城)·북쪽 구책(舊柵) 등을 중수(重修)하였다. 외성(外城)은 1700년(숙종 26) 경상도 관찰사

이세재(李世載, 1648~1706)의 장문(狀聞:임금에게 글을 올림)으로 왕명을 받아 1701년에 완성하였다.

중성(中城)은 1741년(영조 17) 경상도 관찰사 정익하(鄭益河)가 장문하여, 왕명으로 그 해에 완성되었다.

가산산성에는 식량과 병기를 충분히 비축할 양창(糧倉, 남창·북창)·군기고(軍器庫) 등의 시설을 갖추었다.

특히 중성의 성벽은 내·외성에 비해 작고 동문은 홍예문(虹霓門, 무지개문)이었다. 1812년(순조 12)에는

가산산성에 별장(종9품)을 두고 가산진(架山鎭)을 설치하였다. 

구름속에 일출이 시작되고 있는 칠곡군 가산면의 한가로운 모습 

이곳은 300~500m 단위로 구조목이 설치되어 있고 산길도 고속도로 수준이다.

가산(架山:901.6m:05:35)

경북 칠곡군 가산면 가산리에 위치한 가산은 신라시대 오악신앙의 중심인

팔공산에서 서쪽으로 약 10km정도 떨어져 있으며 경상도 지리지 팔거현조에는

가사산 재현북이라고 기록되어 있는데 가사(갓의 음차, 변,말 - 팔공산 연봉 서북쪽 끝)

산~갓산~가산으로 이름된 명산으로 일명 칠봉산으로 불리면 칠곡군내의 최고봉이다.

7개의 봉이 7개의 골짜기를 이루어 칠곡(七谷)이라 한것이 오늘의 칠곡군이 되었다.

1640년(인조18년)에 가산성을 쌓고 칠곡도호부의 처소가 약 180년간 산성내에 있었다.

6.25때에는 이곳에서 낙동강 전투의 최고의 격전지가 된 곳이기도 하다.

가산 정상의 삼각점

가산에서 조금가다가 좌측으로 꺽어져 가산바위로 향한다.

길은 서울로 치면 마치 남한산성 성곽길 걷는 느낌이다.

 

팔공산 도립공원은

한반도의 척추인 태백산맥이 남으로 힘차게 뻗어 낙동강과 금호강이 만나는 곳에 우뚝 솟구치어 병풍처럼 둘러쳐진 팔공산 은 예로부터 우리 나라의 명산영악(名山靈岳)으로 손꼽혀 왔다. 옛 사람들은 산세가 삼존 불, 즉 세 부처님의 형상이라 하여 신령스러운 영산(靈山)으로 믿어 왔다

 

팔공산의 상층부는 화강암이 기묘한 모습으로 노출되어 높고, 웅장한 산세를 이루고 있으며 골짜기마다 절묘한 암벽과 어우러진 울창한 숲은 명산의 위세를 더해 주고 있다.

1980년 5월에 도립공원으로 지정되었고 대구광역시 동구, 군위군, 영천시, 칠곡군, 구미시에 걸쳐 있다.

삼존불을 모신 삼존석굴과 보각국사 일연(一然)선사께서 삼국유사를 저술하신 인각사가 팔공산 자락에 속해 있는 역사적 유물이며, 수많은 약사여래불을 봉안하여 약사신앙의 원적(原籍)을 이루었을 뿐만 아니라, 산이 어우러진 능선마다 부처님 아니 계신 곳 없으시고, 깊고 그윽한 골짜기마다 부처님 도량 아닌 곳 없으니, 팔공산은 우리 나라 민족불교 문화의 꽃을 피워 온 영산으로, 예나 지금이나 높이 솟아 수천 년을 두고 마음의 고요와 높은 덕을 가르쳐 온 산이라 할 수 있다
   

가산산성은 유지관리는 영 엉망이다.

곳곳에 무너진 성곽이 그대로 방치되어 있다.

이제서야 문화재 전수조사를 하는 모양이다.

조금 지나가니 헬기장이 나타나고 노란꽃의 야생화가 흐드르지게 피어있다.

가산산성 중문(05:45)

중문을 지나서 내리막길로 편하게 그것도 아주 편하게 간다.

둘레길같은 가산바위 가는길을 올라가니 이정표가 나타난다.

가산바위 안내판

가산바위 올라가는 계단옆에는 큰나무에 작은나무가 휘감고 있다.

뭣이 저렇게도 좋은지...

가산바위 정상에서 바라본 대구시내의 모습

운무에 가려 대구시내 아파트 단지가 아련히 보인다.

가산바위(架岩:05:55)

경북 칠곡군 가산면 가산산성 서북쪽  성벽사이에 위치한 바위로서

가암(架岩)이라고도 부른다. 80평 규모의 넓은 평면으로 되어 있으며

국립지리원 자연지명 찾기에서 찾아보면 "깍아지른 듯이 우뚝 서 있는데,

위에는 천여명이 앉을 수 있으며, 바위에 구명이 뚫려 있는데, 신라시대에

풍수지리의 대가이신 도선국사가 지기(地氣)를 집압하려고

이 구멍안에 쇠말과 쇠소를 묻었다고 하는데 관찰사 이 명웅(李命雄)이

 가산산성을 쌓을 때 없애 버렸다 함"으로 적고 있다.

도선국사가 지기(地氣)를 눌러려고 구멍에다가 쇠말(鐵馬)과 쇠소(鐵牛)를

넣었다고 하는 구멍을  가산산성을 쌓을때 관찰사 이 명우가 없애버렸다고 하는

그 구멍에는 지금 스텐레스 말뚝을 꽂아 표시를 하고 있는데 보기는 별로 좋지않다. 

가산바위 정상에서 동료산꾼들과 함께

가산바위에서 10분정도의 휴식을 취하면서 김 고문님이 주신

소주 한잔이 빈속에 마셔서 그런지 속이 짜리하다.

다시 가산바위 계단으로 내려와서 좌측으로 등로를 이어간다.

멋진 소나무도 만나고...

산괘불주머니

현호색과에 속하는 2년생초이며, 키는 50㎝ 정도로, 줄기 속은 비어 있고 뿌리는 밑으로 곧게 뻗는다.

잎은 어긋나며 깃털처럼 갈라져 있다.
꽃은 이른 봄부터 이른 여름에 걸쳐 노랗게 줄기 끝에 무리져 핀다.
열매는 크기가 2~3㎝쯤 되는 삭과(蒴果)로 콩꼬투리처럼 움푹 패어 있으며 씨는 검정색이다.

서문(西門 : 06:15)

서문에 도착하니 친절하게도 모래재 2.7km라고 팔공산 도립공원에서

이정표를 설치해놨다. 지도와 G.P.S를 확인도 하지않고 아무런 망설임도

없이 이정표 방향으로 모래재를 향한다.

서문으로 빠져 나가는데 성곽 주위에는 괘불주머니를 비롯한 야생화가 많이 보인다.

큰꽃 으아리

미나리아재비과의 낙엽덩쿨식물로 숲가장자리의 볕이 잘드는 곳에서 자생한다.

줄기는 가늘고 갈색이며 길이가 2~4m 정도이고 잔털이 있으며 잎은 마주나고

긴 잎자루가 있으며 3~5개의 작은 겹잎으로  한방에서는 뿌리를 위령선(威靈仙)

이라는 약재로 쓰는데 사지마비, 요통, 근육마비,타박상 등에 사용한다고 한다.

 

모래재 가는 길에는 청순한 내님같은 큰꽃 으아리가 산꾼을 반긴다.

보무도 당당하게  편안한 내리막길로 모래재로 향한다.

모래재로 통하는 임도(06:27)

이정표를  편안하게 내려오니 지도상에도 없는 임도가 나타난다.

마침 그때에 선두대장한테 무전이 날아온다. 아차하는 순간에

멋지게 알바(맥길을 벗어남)를 한다. 꼭 1km를 엉뚱하게 온 것이다.

거의 대다수 산꾼들은 임도를 따라 모래재를 향하고 원칙을 고집하는

산동네, 젠틀맨님과 다시 서문으로 올라가기 시작한다.

다시 서문으로 올라가는 길에  가팔환초라는 시그널을 만난다.

 '가팔환초'란 가산(架山·901.8m)과 팔공산(八空山·1,192.8m),

환성산(環城山·804.1m)과 초례봉(醮禮峰·636.7m) 등

대구와 칠곡·영천·경산시 경계를 이루다 대구시 동구 신서동에서

능선자락을 떨어뜨리는 4개 산을 잇는 종주 코스를 일컫는다.

 

대구 북동부 지역을 병풍처럼 아우르는

종주코스로써 도상거리 35km 실제거리 45km로

타 지역의 종주코스인 서울지역의 '불수사도북'

대전지역의 '보만식계'보다

난이도면에서는 산꾼들 사이에 '가팔환초'를 한 수 위에 두는

 극기의 산행코스이기도 하다고 한다.

서문으로 다시 올라오는 길에 떼죽나무의 꽃도 만나고...

다시 서문에서(06:45)

서문을 빠져 나와서 우측으로 북문을 표시한 이정표를 따라 올라간다.

졸지에 세사람이 후미가 되어 버렸다. 그것도 아주 많이 떨어진  꼴찌가...

서문에서 3분정도를 올라오니 무명 묘지 한기가 쑥대밭이 아닌 둥굴레밭이 되어 버렸다.

852봉(06:55)

서문에서 10분만에 852봉에 도착한다. 이곳 정상에는 대산꾼 준.희님이

황학지맥 분기점이라는 아크릴 표시판을 걸어놨다.

정맥, 기맥 산행을 하면서 늘 고맙다는 생각을 한다. 정말 대단하신 분이다.

범여의 롤모델을 삼고 싶을 정도로 고맙고 존경스럽다.

 

황학지맥(黃鶴枝脈)

 팔공지맥 가산(901.6m) 북서쪽 1.5km지점 851봉에서 서쪽으로 분기하여,

 칠곡군 가산면과 동명면 경계를 따라 오계산(466m), 황학산(758m)을 지나

남진하다가 금호강이 낙동강에 합수하는 달성군 다사면 죽곡리 강정마을에서

맥을 다하는 41.1km의 산줄기다.

팔공지맥과 더불어 대구시민의 젖줄이라 할 수 있는 금호강의 북쪽 울타리가 되며,

 합수점에서 강 건너편 청룡지맥의 끝점과 마주본다.

동료산꾼 젠틀맨님과 산동네님이 지도와 G.P.S를 확인 또 확인한다.

동료산꾼 산동네님이 가르쳐 줬는데 이 식물의 이름이 생각나질 않는다.

뿌리를 캐서 냄새를 맡아보니 박하향 냄새가 난다.

852봉에서 우측으로 가면 황학지맥으로 향하는 길이고

팔공기맥은 직진으로 내려간다. 조금 내려가니 우측으로

북문가는 길이 나타나고 기맥길은 직진이고 급하게

 고도를 낮추면서 내려오니 커다란 임도가 나타나면서

모래재가 나타난다.

모래재 (578m : 07:10)

경북 칠곡군 가산면 가산리에서 채석장과 금화광산 넘어가는 길이다.

잔자갈이 평탄하게 깔려있어 승용차도 넘는데 무리가 없겠다.

우측 가산리 사람들은 면에 볼일이 있으면 이 길을 넘어야겠다만,

실제 거리는 군위쪽이 더 가깝고, 물길은 효령면 수계에 속한다. 

2km를 알바한 덕분에 졸지에 꼴찌가 되어 버렸고 평소에 꼴찌를 다녔던

동료산꾼들은 서문으로 올라가지 않고 임도를 타고온 덕분에 우리가

도착할 즈음에 벌써 식사를 끝내고 출발을 한다. 선두는 진작 도망을 가고...

젠틀맨님과 산동네님 나 셋이서 이곳에 도착하여 아침식사를 하면서

막걸리 2병과 오디주를 나눠 마시고 후식으로 커피과 과일 디저트까지

느긋하게 먹고는 40분간의 여유로운 만찬을 끝나고 산행을 시작하는데

젠틀맨님은 잽싸게 먼저 치고 나간다. 산동네님과 둘이서 세상사를

논하면서 둘이서 후미에서 여유로운 산행을 한다.

멋진 바위들도 보이고 지나온 황학지맥 분기점도 보인다.

661봉 오르는 길에 마치 천수천안(千手千眼) 관음보살처럼 생긴 소나무도 보인다.

동료산꾼 산동네님이 멋진 사진도 찍어주시고... 고맙심더.

내가 오늘 지나온 팔공기맥 능선들

661봉(08:10)

아침을 먹은 탓인지 모래재에서 치고 오르는데 참으로 힘이든다.

661봉에 올라 다시 오르락 내리락을 계속하면서 고도를 높혀간다.

이곳은 멋진 암봉들을 끼고 안부능선을 계속 오르는데 스릴이 있다.

우측으로 칠곡군 가산면의 마을들이 아련히 보인다.

계속해서 암릉을 타고 오르면서 암릉 안부를 걷는다.

가야할 능선들

돌탑봉(745m:08:35)

톨탑봉 정상에서 산꾼들이 지나가면서 올려놓은 돌들이 탑을

 이루고 있고 준.희님께서 745m라는 표식판을 붙혀놨다.

무명봉(710.5m:08:55)

무명봉 정상에는 칠곡군에서 설치한 산불감시초소가 있고 무인감시

카메라가 지나가는 산꾼을 감시한다. 이곳에서부터 계속해서 고도를

낮추어 가며 가산면의 등로를 이어간다.

봉분은 알아보기도 힘드나 비석만 멀쩡한 악림홍공(岳林洪公) 묘를 만난다.

처음 보는 성씨다. 큰산(岳)에 수풀(林)이라. 우리나라 성의 본관은 지명을 따는게

일반적인데, 악림이란 지명은 들어보지 못했다.

떡갈나무 숲길을 편안히 산동네님과 호젓하게 걷는다.

566봉(09:05)

이곳을 지나면서부터 본격적인 고생길에 접어든다.

지금부터는 등로도 잘 보이질 않고 잡목과 잡풀이 길을 가로막고

그리고 날씨는 한여름 못지않게 더운 날씨이건만 바람 한점이 없다.

자꾸만 물통에 손이 가길 시작한다. 이제 1/3 정도밖에 오질 않았는데

오늘같은 날은 식수와의 전쟁이다. 준비한 식수는 3L, 막걸리 2통, 캔맥주 2캔

오렌지 쥬스 한캔, 냉커피 등 베낭에 물로만 채워진 느낌이다.

556봉에서 고도를 낮춰간다. 좌측으로 저 멀리 구미시의 아파트촌이 아련히 보인다.

이곳에서 급하게 우측으로 등로가 꺽어지는데 아마 이곳은 사유림에  약초를 심었는지

출입금지를 알리는 줄이 처져있고 경상북도라고 써놓은 하얀 경계석도 보인다

박무에 가린채 흐릿하게 보이는 구미시내의 모습

이곳부터 어제낮에 좀 휴식을 취해야하는데 바쁜 일정때문에

쉬지 못하고 온 것이 설설 대미지가 오기 시작하면서 절반도

오지 못했는데 체력이 저하되기 시작을 한다.

374봉을 넘어서서 다시 오르막을 치고 오르는데 이같은 격려문구가 기를 살린다.

이곳은 아예 길이없다. 길찾기도 힘이들지만 찿은 길도 각종 나무들이 태클을 건다.

겨우 길을 찾아서 내리막길을 내려서니 주위에는 아카시아가 만발한다.

조금 더 내려오니 호화로운 경주최공 묘지가 나타나고 차량소리가 들린다.

5번 국도(10:20)

경북 군위군 효령면과 칠곡군 가산면을 지나는 5번국도가 나타난다.

도로 건너편에는 알프스모텔과 철구조물 공장(세광산업) 그리고 s-oi LPG 주유소가 있다.

선답자들의 산행기에는 이곳에서 식수를 보충할 수 있다고 하는데 식수 보충할 곳이 없다.

도로의 차량 흐름을 파악하고 4차선 도로를 간단하게 무단횡단한다.

모래재에서 꼴찌로 출발하는 바람에 겨우 여기서 먼저온 동료 산꾼들을 만난다.

이곳에서 5분정도의 휴식을 취하면서 막걸리 2잔을 마시고 다시 출발한다.

알프스모텔 주차장 앞의 텃밭을 통과하여  등로로 접어든다.

등로로 접어들어 조금 올라가다가 좌측으로 90도를 꺽어서 간다.

다시 조금 지나면  다시 능선상에 T자의 길이 나타나는데 우측으로

내려서면 묘지가 나타나고 조금 더 내려가면 군도가 나타난다.

효령재(10:50)

경북 군위군 효령면과 구미시 장천면의 경계로 ‘천하대장군’과 ‘지하여장군

그리고 ‘구미시 장천면’이라고 써있는 장승이 3개 서있다.

이곳에서 장천면 넘어가는 길 우측의 등로로 접어들기 시작한다.

한티재에서 효령재까지의 트랙

등로를 올라서니 일본 소나무 숲사이로 간벌된 소나무가 어지럽게 널려있고

길의 형태가 잘 보이지 않은데다가 산행을 시작한 지   9시간이 다 되어가니

급격하게 체력저하가 오기 시작한다. 많이 흘린 땀때문인가?

베낭에서 식염수 한알을 꺼내서 먹고 염분을 보충하고 사탕으로 당분을 보충한다.

등로에서 바라본 구미시 장천면의 모습

구미시 장천면은 1895년(고종 32) 지방 관제를 개편하면서 마을 앞을 흐르는 내[川]의 길이가

 길다하여 장천(長川)이라 하였다. 1995년 구미시선산군 통합으로 구미시 장천면이 되었다 .

구미시 최동단에 있는 지역으로 중앙고속도국도가 장천면 동부에서 남북 방향으로 지나며, 대구

상주 방면을 잇는 국도가 지나는 남서부 지역은 교통이 편리 북동부 지역은 교통이 불편하다.
주로 벼농사가 이루어지고, 이 밖에 고추·마늘·참외·수박 등 특용작물 재배가 성하며 한우 사육도 활발하다.
특히 30년 전부터 재배해 온 청양 풋고추는 친환경 농법으로 재배하여 소비자에게 인기가 높고, 점질

토양에서 재배한 수박은 다른 지역 수박보다 당도가 월등히 높다. 한우는 270여 농가에서 1,700두 가량

사육하고 있는데, 맑은 물과 신선한 초지 공급으로 육질이 뛰어나다.

신라 초기에 상주와 더불어 국경 지대에 있어 백제와 분쟁이 잦았던 곳이었으며, 조선시대에는

 선산에서 장천을 거쳐 인동·군위·안동에 이르는 도로가 발달하였고 임상역(林上驛)이 있었다.

 임진왜란 때에는 이곳 출신인 황사충, 김윤부 등이 마을 사람들을 데리고 매복하였다가

왜적 10여 명을 죽인 곳이기도 하다.

체력이 갑자기 급격하게 떨어지면서 다리가 무거워진다.

그 다음엔 산행속도가 나질 않는다... 이젠 시간당 2km정도밖에 걷지 못하는

느낌이다. 그런데도 날씨는 왜이리 더운거야? 거기다가 길은 없고...

기맥길이 이렇게 힘든건 진정 몰랐네. 이제부터는 자기 자신과의 싸움이다.

좌측의 구미시와 우측의 군위군 능선을 걷지만 행정구역상으로는

군위군이다. 이 지역은 전형적인 농촌지역이라 그런지 산은

아예 올라와보지도  않는 모양인지 아예 길이없는 곳이 많다.

이 지역에 있는 묘지들도 올라오기가 힘들어서 그런지 관리가 안된 묘지가 많다.

더운 날씨에 계속해서 오르내림을 계속한다.

정오가 가까워질수록 나무사이로 햋볕은 더욱 더 강렬해 지는 느낌이다.

길이 없어서 한참 헤매다가 다시 희미한 등로가 나타나기를 반복한다.

다시 급격하게 내려가는데 그 앞에 엄청나게 높게 보이는 봉우리가 막아선다

이 지역은 경북 내륙지방에서 보이는 소나무와는 조금다른 해송 비슷하게 생긴

소나무들이 군락을 이루고 있다. 아마 일제강점시기에 조림한 나무인 모양이다.

서낭당(12:05)

급경사로 떨어진 서낭당 흔적인듯한 돌무덤이 나타나고 다시

375봉을 향한 무거운 발걸음을 옮긴다.

서낭당 오름길엔 커다란 떡갈나무 2그루가 산꾼을 반긴다.

저 멀리 천생산이 아련히 보이고...

천생산(407m)은 경북 구미시 신동, 인의동, 금전동과 장천면의 경계능선에 있는 산으로

동쪽인 장천면에서 볼 때에 생김새가 ‘하늘 천(天) ’자 를 닮아 천생산이라 부르기도 하고

함지박을 엎어놓은 것 같아 함지박의 경상도 사투리인 ‘방티를 붙인 방티산이라 부르기도

하고  능선이 ‘한일(一)’자 로 보인다고 해서 일자봉으로도 불린다고 한다.

장천면 일대에서정상에 있는 산성을 신라를 개국한 박혁거세가 처음 성을 쌓았다는

전설때문에 혁거산으로 부른다고 하는데 한 산을 두고 이렇게 이름이 많은 산도 드물다.

이처럼 다양한 이름을 가진 천생산은 썩 높니 않으며 산마루가 길고 평탄해 산행하기 수월하다.

숲이 울창하여 구미시에서 삼림욕장을 개설해 놓았다.

정상 서쪽에 튀어나온 큰 바위가 있는데 미득암(未得岩)이란다. 사자가 하늘을 우러러 포효하는

형상이라 천생산을 앙천산(仰天山)이라고도 부른다고 한다.

임진왜란 당시에 난공불락이었던 천생산성을 공략하기 위하여 왜군이 산기슭에 큰 연못을 파서

우물을 마르게 했는데 이 때에 이 성을 지키고 있던 의병장 곽재우는 미득암에다가 말을 세워두고

쌀을 주르르 부어 쌀을 씻는 시늉을 했다. 이를 본 왜군들이 산성에 물이 많은 것으로 생각하고

물러갔다고 한다.

그래서 쌀의 덕을 보았다고 해서 미덕암(米德岩)으로 부른다고 한다. 

땀이 비오듯이 쏟아진다. 숲속에서 벗어나 퇴악볕 길을 걷는다.

이곳은 아마 예전에 복숭아 농장을 했는지 조그만 돌복숭아 나무들이

상당히 많이 보인다. 자갈밭같은 길을 걸어서 다시 숲속으로 접어든다.

하염없이 걷고 또 걷고... 더운 날씨에 30km가 넘는 길을 걸어야 한다.

이런 자갈밭같은 곳도 자주 나온다.

힘들고 지쳐버린 산꾼에게 힘내라는 응원을 보내는 찔레꽃.

375봉(12:30)

패잔병처럼 다리를 질질 끌면서 도착한 375봉이 오늘은

왜 이리 높아 보이는지? 동행한 산동네님이 먼저 주저 앉는다.

앞에 가던 동료 산꾼도 한명이 쉬고있다. 아~ 힘이드는구나

그러나 내가 미쳐서 다니는 산을....

산 정상에는 약간의 바람이 분다. 아무도 오질않아 윗도리를 벗고 바지를

내린 다음에 거풍을 즐긴다. 피로가 싹 가시는 느낌이다.

그리고는 동료 산꾼과 함께 베낭을 베고 10분간  꿀맛같은 단잠을 즐긴다.

아직도 10km이상의 산행거리가 남았다. 누가 대신 가주는 것도 아니고

부지런히 걸어야만 시간내에 도착할 수 있을터인데 걱정이다.

벌써 선두팀은 군위터널을 통과하고 있다는 무전이 온다.

그래 부지런히 가시요... 그래도 후미가 도착하지 않으면 차는 안가니까 ㅋㅋㅋ

375봉에서 등로의 안부를 걷다가 우측으로 살짝 꺾어져 가는데

길이 잘 보이지 않는데 그나마도 간벌한 나무들과 잡풀이 어울어져

갈길 바쁜 산꾼에게 태클을 걸어대니 정말 미칠지경이다.

간벌을 한 나무사이로 미로를 헤매면서 정말 어렵게 팔공기맥을 이어간다.

어렵게 미로를 헤쳐나오니  다시 뚜렸한 등로가 보인다.

응봉산 오르는 길은 숲이 거의 없는 탓에 퇴악볕은 강렬하다.

이젠 발톱도 아파오기 시작하고 허기가 너무진다.

하는 수 없이  베낭을 내려 오렌지 쥬스에다가 빵한조각으로 허기를 면하고

아픈 발을 보호하기 위하여 스타킹을 뒤집어서 신고 응봉산으로 향한다.

좌측으로 구미시 장천면을 바라보면서 계속해서 고도를 높혀간다. 

응봉산(13:30)

경북 군위군 효령면과 구미시 장천면의 경계능선에 있는 산으로

이곳은 인적이 닿지않은 그야말로 오지중에 오지에 있는 산으로

팔공기맥팀이 아니면 이곳에 올 일이 없을정도로 길도없고 그냥

밋밋한 산이다. 준.희님이 걸어논 표식만이 응봉산임을 알려준다.

좌측 아래에 시원스럽게 달리는 중앙고속도로의 차량소리만 요란하다.

응봉산에서 좌측의 아주 가파른 급경사로 기맥길을 이어가는데

이곳도 길이 없기는 마찬가지이다. 거기다가 희미한 등로는 간벌한

나무들이 뒤덮혀 있어 도저히 걸을 수가 없을 정도이다.

그야말로 왕짜증이 나는 곳이다... 그래도 가야지.

군위터널 위(13:40)

잡목과 간벌목과의 전쟁(?)을 치르면서 도착한 군위터널 위

이 아래로 중앙고속도로가 지나가고 있다.

먼저가던 동료 산꾼들이 휴식을 취하고 있다.

누가 대신 걸어주는 것도 아니고 난 그냥 지나쳐 오르막을 오른다.

 

경북 구미시 장천면 금산리와 군위군 효령면 내래리를 연결하는

터널이지만 군위군 소재지와 더 가까워 한국도로공사 군위지사에서

관리하는 바람에 군위터널이라고 부른다.

터널위의 소나무 숲을 치고 오르니 이곳도 간벌된 나무들이 어지럽게

널려있어 길이 보이질 않는다. 우측으로는 길이 뚜렸하지만 이곳으로

가면 안되고 좌측으로 꺽어져 안부를 걸어가니 326봉이 나타난다.

326봉(14:00)

326봉에서 좌측으로 들어서면 임도가 나타나면서 내리막길로 내려간다.

이곳 임도 주변에는 나물로 먹기에는 너무 크버린 취나물이 많이 보인다.

백선도 보이고...

잎에 털이 있는 털백선과 백선이 있는데 뿌리가 흰색이고,뿌리 잎 줄기를

꺾으면 양의 누린내를 풍겨 백선이라고 부른다.

백선은 우리나라 각처의 산록에서 자라는 다년생 초본이다. 

생육환경은 반그늘 혹은 햇볕이 잘 드는 습기가 많은 곳에서 잘 자란다.

키는 60~80㎝가량이고, 잎은 깃꼴겹잎으로 타원형이며 가장자리에는

 톱니가 있고 표면에 투명한 선점이 있다.

꽃은 흰색바탕에 엷은 홍색의 줄무늬가 들어가 있으며, 줄기 끝에서 달리고

 꽃자루와 포에서 강한 냄새를 내는 선점이 있다.

열매는 8월경에 갈색으로 된 껍질 안에 검고 광택이 나는 종자가 들어 있다.

한방에서는 뿌리를 통경()·황달·구충에 약으로 쓴다.

너무나 늙어버린 할미꽃

인생사 모두다 제행무상(諸行無常)이요 제법무아(諸法無我)인데

뭘 그리 아등바등 살것인가? 순리대로 살자꾸나.

43번 송전탑(14:15)

송전탑 바로 아래서 5분간 휴식을 취하고 다시 출발하니

군위에서 산동간을 잇는 144000V짜리  고압 송전탑이

지나고 있고 그 앞에 울님의 유두만한 봉우리가 나타나는데

별의미도 없는 봉우리는 그냥 생략해 버리고 우측 임도로 향한다.

임도 가운데 멧돼지 샤워장인듯한 웅덩이가 나오고

그 안에는 비단개구리가 꽤나 많이있다.

임도를 계속가니 조그만 봉우리에서 내려오는 길과 합류를 하고

조금 더가니 우측에는 철조망이 처져있다. 그런데 철조망을

소나무에다 묶어놔서 나무들이 다 말라죽어 있다.

46번 송전탑(14:40)

철조망을 따라 우측으로 내려선다. 이곳은 송전탑을 시공하면서

만든 도로인듯한 임도를 계속 내려가니 중앙고속도로를 만난다.

46번 송전탑 바로 아래에는 최근에 조성한 듯한 김해김공 묘지가 나오는데

상석위에는 소주 2병과 화투 한모가 노여있다.망자께선 평소에 고스톱을 좋아하신 모양이다.

중앙고속도로(14:50)

대구와 춘천을 잇는 중앙고속도로를 오늘 2번째로 통과한다.

고속도로를 끼고 우측으로 내려가면  굴다리가 나온다.

중앙고속도로 굴다리(15:00)

이곳에서 고문님이 주신 소주 한잔을 얻어 마시고 동료 산꾼이

주는 과일과 빵을 얻어 먹는다. 보라님이 주는 맛있는 빵을 먹으면서

난 빵을 먹을 땐 우유가 없으면 못 먹는다고 하니까. 센스쟁이

보라님이 컵이 있어야 받아주지 하길래 난 처음에 그 뜻이 뭔지를 몰랐다.

한참 후에야 박장대소를 한다. 보라님! 우유는 소에서 나오는 젖이고요

보라님이 컵으로 받아주신다는 건 人乳죠... 이러면 완전히 성희롱으로 걸리는데

역시 산꾼들은 여유가 있어 보인다.(지송함다... 불경죄면 삭제합겠습니다)

10분간의 휴식을 취하고 다시 숲속으로 향한다.

숲으로 들어가니 이어 편안한 임도가 나오는데 이곳은

숲이 없어서 퇴악볕에 그래로 노출이 된다. 상당히 덥다.

267.3봉(15:15)

267.3봉에서 조금 올라가다가 좌측으로 꺽어지니 이곳도 마구 흐트러진

간벌된 나무로 인하여 길이 잘 보이질 않고 걷기가 심히 불편하기 그지없다.

등로에 마구 흐트르진 간벌된 나무

무연고 묘지를 조사를 하는지 군위군에서 세워둔 아크릴 표시판도 보이고...

길이 잘 보이지 않는 희미한 등로의 안부 능선을 걷는다.

관리가 안된 묘지를 지나니 커다란 나무 2그루가 서있고...

조금 더 가니 임도가 나타나고 계속해서 직진으로 걸어간다.

임도에서 바라보니 적라산이 보인다.

임도를 걸어서 조금가니 앞에 잘 가꾸어진 묘지가 나타나고 이곳에서 우측으로

올라서면 적라산 가는길이고 적라산을  가지 않는 임도파들은 이 길을 계속간다. 

적라산 올라가는 길은 등로가 아예없다. 그만큼 사람들이 다니지 않은 모양이다.

마지막 안간힘을 다해서 올라가는데 정말 죽을 맛이다. 입에서 단내가 난다.

적라산 갈림길(15:50)

이곳에서 약 7분정도를 올라가니 적라산이 나타난다.

적라산(赤羅山:352.1m:15:57)

경북 군위군 효령면 불로리에 위치한 산으로서 정상에 오르니 그저 밋밋한 산이다

옛날, 이 적라산 아래 조(曺)모(某)씨가 살고 있었는데 부친상을 당하여 이름있는

 풍수에게 묘터를 부탁하였더니 그 풍수가 적라산의 한 곳을 정해 주면서

 “이 산 아래 흐르는 물에 나무 오리를 만들어 띄워 놓아 그 오리가 하늘로 날아가면

 장차 높은 벼슬에 오를 것입니다”고 하였다. 조씨는 풍수가 말한 대로 부친의 장사를

 정성껏 지내고 나무로 오리 모양을 만들어 하늘에 기도하면서 물 위에 띄워 놓았다.

조시는 매일 매일 그 나무 오리를 바라보며 글 공부를 하고 있었는데 과연 가을이

깊어질 무렵, 나무 오리가 털이 나는 듯 하더니 날이 갈수록 깃이 자라 조금씩 퍼덕거리지 않는가?

이상하기도 하며 기쁘기도하여 그는 곧 서울로 올라갔다. 마침 그 때 서울에서 과거 시험이

 있어 조씨는 그 과거에 무난히 합격하였고 벼슬길에 오르더니 벼슬이 점점 높아져갔다.

그런데 이 조씨는 자기 분수도 모르고 벼슬이 높아지는 데만 욕심이 많아 다른 사람을 도울 줄을 몰랐다. .

풍수가 생각 해 보니 그냥 두었다가는 나라에 해를 끼칠 것 같은지라 임금님께 상소하기를

“조 아무개는 장차 나라에 역모(逆謨)를 할 것입니다”고 하였다.

이 상소를 본 임금님은 사람을 보내 전후 사실을 조사하여 그를 멀리 귀양 보낼 뿐 아니라

조씨 부모의 묘를 파내고 적라산의 지맥(地脈)을 끊어버렸다. 그 후로는 적라산의 정기가

 없어져서 이 고을에서 큰 인물이 나지 않는다고 한다.

적라산 삼각점

적라산 정상갔다가 내려오는 길에서 우측을 보니 오로 저수지가 보이고

구미시의 산그리메가 한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적라산 갈림길로 돌아와서 우측의 내리막길을 급하게 내려오는데

아예 길이없고 여기저기 온몸이 할키면서 천신만고 끝에 임도에 도착한다.

임도옆에는 최근에 조성한듯한 묘지가 있고 묘지 아래로 송전탑이 지나가는

임도가 있고 기맥길은 우측 임도를 따라서 100여m를 걷다가 다시 숲속으로

햔한다.

선두대장이 붙여둔 시그널을 따라 숲속길을 접어 들었지만 아예 길이없다.

이리저리 길을 잃고 헤매다가 억지로 절개지로 내려오니 중앙고속도로가

나오고 우측 수로를 따라 내려오니 철구조물 공장이 나타나고

마당을 통해서 콘크리트 도로에 접어든다.

좌측에 중앙고속도로를 끼고 수로를 따라 내려오는데

이곳이 정통 기맥길이 맞긴 하지만 정말 무위미한 길이다.

후답자들에겐 이 길을 권하고 싶지않다. 이 길은 선답자들도 확신이

서지 않는 모양인지 꼬리표는 보이지도 않는다.

적라산 내려와서 그냥 임도를 따라 그대로 내려오면 이 도로를 만난다.

의미도 없는 숲속에 들어가서 여기저기 할키지말고 이 길로 내려오시길...

중앙고속도로 지하 굴다리(16:25)

오늘 들어서 군위터널을 포함하여 3번째로 중앙고속도로를 넘나든다.

이 굴다리는 군위군 효령면 불로리에서 구미시 장천면 오로리를

 연결하는 2차선 도로를 지나가는 곳으로 굴다리를 지나니 우측에

오로고개에는 우리를 태우고 온 애마가 보인다.

동료 산꾼들은 마지막 봉우리인 178봉을 포기하고 도로를 따라 가버린다.

동료 산꾼 2명과 함께 악착같이 좌측으로 올라가 고속도로

옆으로 올라가 우측 능선으로 올라선다.

관리가 되지 않는 임도를 지나니 우측 능선에는

PAR 3 골프장이 들어서 있고 저 건너에는 무량사가 보인다.

PAR3 골프장의 그린은 완전히 자갈밭같은 느낌이다.

저런 곳에서 연습하면 감이올까... 퍼터로 공을 조패야만 나갈것 같다.

골프장 물탱크를 지나서 좌측으로 가질 않고 골프장으로 들어선다.

내려와서 에어건으로 옷에 먼지를 털고 있는데 골프장 직원이

나와서 에어건을 왜 쓰냐고 하면서 어디서 왔냐고 묻는다.

“범여 왈 어디서 오긴 산에서 왔죠” 하니까 기가 딱 차는 모양이다.

다음부터 오지 말라고 한다... 오라고 사정해도 안온다.

오로고개에 있는 PAR3 해피아일랜드 골프장

패잔병의 모습으로 마지막에 오늘의 날머리 오로고개에 도착한다.

13시간 25분의 긴 여정을 마치고 산행을 마감하는 스틱을 접는다.

오로고개(17:00)

경북 구미시 장천면 오로리에 있는 고개로 PAR 3 골프장이 있고 길 건너에는

무량사가 있고 우측으로는 군위읍으로 통하는 도로와 중앙고속도로가 지나간다.

고개에 도착하니 한회장님께서 시원한 맥주를 권한다.

연거푸 2잔을 마시고나니 조금은 살것만 같다.

이곳에서 10분 거리인 군위읍내의 예약된 음식점으로 향한다.

효령재에서 오로고개까지의 트랙

식당에 도착하여 화장실로 가서 문을 잠그고 깔끔하게 샤워를 하고

옷을 갈아입고 나니 하늘로 날아가는 기분이다.

샤워를 끝내고 메기 매운탕으로 늦은 점심식사를 한다.

시장이 반찬이라 뭣이든지 맛있다. 오늘도 소주에 맥주를 말아서

연거푸 4잔을 마시니  기분 정말 죽인다. 그리고 경상도 음식점

답지 않게 음식도 상당히 깔끔하고 맛있으며 남자 쥔장이 꽤나 친절하다.

산행대장이 오늘 내보고 건배제의를 요청한다... 뭐랄꺼 있나 건강을 위하여지 

맛있는 식사를 마치고 18시 30분 늦은 시간에 서울로 향하는 차에서 깊은 잠에 빠지다.

 

군위군(軍威郡)

군사의 위세가 매우 당당하다고 해서 고려 태조왕건이 후삼국을 통일할 무렵에 지어준 지명 군위..

일반사람들에게는 사과 재배지로 알려져있지만 곳곳에 숨겨진 관광지와 역사적으로도 유서깊은곳이

많다고 하는데 일연스님이 삼국유사를 집필한 인각사도 군위에 있고 지금 소개할 경주 토함산

석굴암 조성의 모태가 된 석굴사원 삼존석굴도 이곳 군위 팔공산 북쪽에 위치해 있었다..

인각사(麟角寺)

군위군 고로면 화북리 화산(828m)에 위치하고 있으며 대한불교 조계종 제10교구

 본사인 은혜사의 말사로서 642년(신라 선덕여왕 11)에 의상대사가 창건하였으며

 절 입구에 깍아지른듯한 바위가 있는데 기린의 뿔을 바위 위에 얹었다고 하여

인각사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그 이후 1284년(고려 충렬왕 10)에 일연성사가

중창하고 이곳에서 삼국유사를 비롯하여 불교서적 100권을 저술하였다.

 

삼국유사는 우리민족의 개국신화인 단군신화를 최초로 기록해 놓았을 뿐만 아니라

한국 고대의 역사, 지리, 문학, 종교,언어, 민속, 사상, 미술, 고고학 등 삼국사기에서

 서술하지 않은 민족의 귀중한 유산을 종합적으로 집대성한 역사서 이상의 가치가

 있는 민족의 성서이다.  이곳 군위가 삼국유사의 고장이라고 부른 이유를 알셌다.

 

또한 절 이름과 마을 이름에 「인각(麟角)」이란 말이 공통적으로 들어가는게 특색있다.

조선시대에 저술된「문헌통고」에 의하면 이 지역에 기린이 놀다가 뿔이 암벽에 걸려

떨어진 곳이라고 한다. 화산의 화려하고 당당한 모습이 기린을 닮았으며  인각마을의

위치가 그 뿔에 해당되기 때문에 인각마을이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그 옛날 삼국유사를 이 곳에서 쓰시고 인각사를 수장의 위기에서 다시 살려내신 보각국사 일연선사의 존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