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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범여(梵如)의 世上사는 이야기
♣ 일반산행 ♣/梵如의 山行記

제왕산과 능경봉

by 범여(梵如) 2012. 7. 16.

 

☞  산행일자: 2012년 7월 15일

☞  산행날씨:  장마성 호우와 짙은 안개

☞  참석인원:  백두대간 쉼터 기획팀과

☞  산행구간:  대관령-바우길-용천수-감시초소-전망대-돌탑봉- 제왕솟대바위

                    대관령 옛고개-제왕산- (역산행)-임도-산불감시초소-헬기장-능경봉-대관령

☞  산행거리: 약 8.2km / 3시간 20분 소요

☞  소 재 지:  강원도 강릉시 왕산면, 성산면 / 평창군 도암면, 대관령면 

 

오늘은 3년 6개월에 걸친 1대간 9정맥을 완주하기 위해 마지막 한구간 남은

한남정맥 김포시 대곶 삼거리에서 보구곶리를 나홀로 산행을 마치기 위한

계획을 세웠는데 평소 잘 아는 지인이 백두대간 길에 쉼터를 개발하는데

같이 동참하여 일을 함 해보자고 간곡히 부탁을 한다. 내야 아는거라곤

전공이 인테리어라 별로 도움이 안된다고 하면서 극구 사양했으나 간곡한

부탁을 거절할 수가 없어서 시간을 내겠노라 승락을 하고 약속 장소인

양재역에서 만나서 5명이 내 차량으로 강원도 대관령으로 향한다.

 

어젯밤에 서울에는 엄청난 폭우가 쏟아졌음에도 불구하고 일요일에도 계속 내린다.

서울을 빠져나와 중부고속도로를 지나 영동고속도로를 접어 들었는데도

빗줄기는 그칠줄을 모른다. 덕분에 고속도로는 텅비어 있어 차는 거침없이

빠르게 강원도로 달려가고 있다. 원주를 지나니 빗줄기는 조금 가늘어 진다.

원주시를 감싸고 있는 치악산을 휘감은 운무는 신비로움을 자아낸다.

평창을 지나면서 다시 폭우성 비가 쏟아지기 시작한다. 하진부I.C를 빠져나와

진부면소지에 들려 강원도길 지나갈 때 가끔 들려서 먹는 산채 비빔밥집에서

늦은 아침을 먹고  456번 지방도를 타고 대관령으로 향한다.

 

횡계를 지나서 쉼터를 지을 수 있는 몇군데 선정한 땅을 본 다음에 마지막으로

옛날의 대관령 휴게소에 도착한다. 이곳은 터널이 뚫리는 바람에 옛 영화를

잊어버린채 고속도로의 휴게소 역할을 상실한 지가 오래되었다.

참으로 오랫만에 이곳을 와본다. 백두대간 진고개~대관령 구간을 할때 왔으니

3년이란 세월이 지나 버렸다. 비는 부슬부슬 내리고... 업무를 마치고 간단하게

산행을 준비한다. 짙은 안개로 인해 앞을 분간할 수가 없다. 

 

오늘은 제왕산을 왕복하고 다시 삼거리로 되돌아와서 능경봉을 왕복하는

단조로운 산행이다. 거리는 8.2km이지만 이곳은 등산객이 많이 다니는 코스에다가

백두대간 구간이라 범여처럼 기맥, 지맥을 타는 독립군은 싱겁기 그지없는 코스이다.

 

오늘  산행구간의 지도

횡계리에서  대관령 가는길에 비를 흠뻑 맞으며 산꾼을 유혹하는 무늬비비추의 요염한 자태

박 정희 대통령때 세운 대관령 영동 동해고속도로 준공비

 

大關嶺의 유래는 아흔 아홉 험준한 고개를 오르 내리며 대굴 대굴 굴러

대굴령이라 하였으나 음절이 되어 대관령이라 부른단다.

碑石 뒤에 기록된 신사임당 思親 詩가 가슴에 와 닿구나

늙으신 어머님 고향에 두고/외로이 서울 길을 가는 이 마음/돌아오니

북촌은 아득도 한데/흰 구름만 저문 산을 날아 내리네

능경봉 등산 안내도 뒤를 따라서 등로를 접어든다.

3년만에 와 보는 길이다. 이곳은 겨울산행이 제맛인 곳이데.

도로 건너편의 선자령과 능경봉, 고루포기산은 겨울산행이 一味이다.

 고속도로같은 편안한 등로를 10여분 걸어가니 바우길 삼거리가 나온다.

능경봉 안내판

등로 시작구간에서 인증샷을 남기고...

제왕산 가는 길에서 만난 꼬리조팝나무

삼거리에 도착하니 제왕산 가는 임도가 나타난다. 이곳에서 좌측으로

올라가니 우측에 龍天水라는 약수를 받을 수 있는 약수터가 나온다.

산불감시초소가 있는 임도에서 직진을 하면 임도가 계속 나오고

바리게이트 옆을 돌아서 임도를 따라서 5분 정도를 올라간다.

임도에서 좌측 능선으로 접어든다.

제왕산가는 임도길에서 만난 원추천인국(루드베키아)

좁쌀풀도 만나고...

고도편차가 별로없는 길을 산보하듯이 걷는다.

조금을 가니 데크목으로 만든 전망대가 나오고 전망대에서

보이는 건 짙은 안개밖에 보이질 않는다.

전망대에서 급격하게 고도를 낮추니 조금전에 헤어졌던

대관령 박물관으로 내려가는 임도를 만난다.

임도에서 5분 정도를 걸어가다가 다시 데크목 계단으로

올라가서 제왕산으로 향한다.

흔히들 대관령하면 고속도로 휴게소가 있는 그곳을 말하는데 원 대관령은

제왕산 가기 직전에 있는 높은 고개를 말하고 있다. 이 고개에는 옛날

民草들이 수많은 애환이 서려있는 곳이기도 하다.

이 능선 아래로 대관령 터널이 지나가는 곳이다.

대관령 옛길

강원 강릉 제왕산 기슭에는 험준한 대관령을 오르내리던 영동과 영서를 잇는 옛길이 나 있다.

옛길은 숱한 애환과 얘기를 간직하고 지금도 강릉시민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주요 관광자원으로 계속 개발되고 있다.

옛길은 흙길이다. 수백년 동안 영동과 영서를 잇는 유일한 통로였기에 사람들의 발길에 파여 우묵한 골짜기를 이룬다.

길옆으로는 우렁찬 물소리가 어우러진 계곡이 흐른다. 아름드리 소나무와 울창한 원시림도 장관이다.

길섶 곳곳에는 옛 주막과 물레방아를 복원했고, 길의 절반을 알리는 반정(半程)에는 전망대를 만들었다.

곳곳에 의자를 놓아 쉼터를 만들었고 신사임당이 대관령을 넘으며 지었다는 사친시(思親詩)와

지방하급관리의 은혜를 기리는 비도 있다.

대관령 너머 평창의 횡계역과 강릉의 구산역을 잇는 옛길은 많은 얘기를 담고 있다.

동해안 해산물을 한양으로 올리던 짐꾼들 얘기부터 양반이 눈길을 걸을 때 앞서 눈을

다져주던 답설꾼들 얘기까지 길을 따라 걸었던 70~80대 노인들의 얘기 보따리는 끝이 없다.

 우선 하제민원에서 대관령박물관으로 이어지는 ‘원울이고개’에 얽힌 얘기는 흥미롭다.

한양에서 700리길을 걸어 강릉부사로 부임하던 원님들이 강릉의 막바지 고개에 이르러

힘들어서 울었고 임기를 마친 원님들이 강릉사람들의 훈훈한 인심을 뒤로하고 돌아가기가

섭섭해 두번 운다고 붙여진 이름이다. 
제왕산은 이렇게 한양과 강릉을 이어주는 관문으로 많은 얘깃거리를 간직하고 있다.

길은 좋고 아기자기한 암릉도 있어서 심심하지는 않은 곳으로

완전한 아마추어 산행지로는 최적의 코스같은 느낌이다.

모든 소나무가 한결같이 가지가 남쪽으로 뻗어있다.

그만큼 이곳은 겨울에 북풍한설이 강한 곳이기에 자연에

순응하면서 살고있는 소나무들의 지혜를 엿볼 수 있다. 

바위에서 척박한 삶을 살고있는 바위 채송화

어찌 힘든 삶이 어찌 이 범여와 같소.

멋진 돌탑봉도 보이고...

살아천년, 죽어천년의 고사목도 산꾼을 반겨주고...

제왕산가기 전에 있는 솟대바위

솟대바위를 지나니 우왕이 움막을 짓고 살았다는 성터같은 고이 나온다.

고사목이 소나무에 성황당같은 곳에서나 볼 수 있는 장면들이 보인다.

정월보름같은 때에 당산제 지낼때의 형태의 천이 고사목을 감싸고 있다.

고려 제32대 왕인 우왕이 이성계에 의해 유배 길에 올라 두달 동안 강릉에 머물렀는데

이때 제왕산 정상에 산성(제왕산성)을 쌓아 근거지로 삼았다고 전해온다. 전설처럼 구전돼 오는

설화의 한 토막이지만 현지에는 실제 허물어진 산성이 흔적으로 남아 있다.

산성 주변에는 깨진 기왓장까지 발견되면서 역사가들은 우왕에 얽힌 얘기가 근거 없는 얘기가 아니라고 보고 있다.

유배길에 오른 우왕은 원주와 고성, 강릉에 머물다 지금의 삼척 살해재에서 살해됐다는 얘기가 전해져 온다. 

우왕이 머물던 곳은 지금 지명으로 남아 있다. 강릉 구정면 학산의 왕고개는 왕이 머물렀던 곳이고,

인근의 왕산리 큰골은 큰 어른(왕)이 살았던 곳이고, 살해재는 왕이 살해된 곳이라 해서 지금까지 이렇게 불려지고 있다.

산 정상에는 족히 300~400년은 됐을 노송(松)과 금강송 군락지가 펼쳐져 또 다른 볼거리를 제공한다.

광화문 복원을 위한 대들보도 인근에서 베어냈을 만큼 우리나라 최고의 소나무 군락지를 이루고 있다.

우왕의 슬픔을 아는지 모르는지 고사목의 뿌리는...

그 시대의 슬픔을 대변하고 있는듯 하다.

제왕산 정상 삼각점

골짜기마다 우왕의 슬픈 눈물이 흐르는듯한 제왕산

공민왕은 본래 여색을 즐기지 않았다.
정략 결혼한 노국공주의 침소에도 가뭄에 콩나듯 들릴 정도였다.
그래도 어찌어찌하여 임신을 했으나 난산 끝에 노국공주가 숨을 거뒀다.
이때부터 공민왕은 정신적 공황 상태에 시달리게 되면서
엽기적 행각을 일삼게 된다.
용모단정한 귀족 자제들을 모아 변태적인 시중을 들게 하고
심지어는 귀족 자제들에게 자신이 보는 앞에서 후궁을 범하게 하기도 했다.
 
그러다가 자신의 오른팔, 신돈의 첩, 반야에게 필이 꽂혔고
체통도 없이 신돈의 집을 들락날락 거리며 작업에 들어갔다.
왕이 들이대는데 '아니 되옵니다' 할 수는 없는 노릇,
그렇게 세상에 나온 아이가 '모니노(牟尼奴)'다.
모니노는 우왕(禑王)의 아명이다.
 
공민왕과 찍자꿍이 잘 맞는 신돈을 주위에서 곱게 볼리 만무했다.
신돈이 간통을 했다, 신돈이 반역을 꾀한다,
신돈의 골상이 흉인을 닮아 후환을 끼칠 것이다 등등...
가랑비에 옷 젖듯, 공민왕의 귀도 앏아져 결국 신돈의 목을 쳤다.
 
반야의 아들 모니노는 태후의 반대에 부딪혀 세자로 삼지는 못했으나
공민왕은 '禑'라는 이름을 지어주며 강녕부원대군에 봉했다.
 
 태후가 우를 세자로 허락하지 않자, 공민왕은 다시 후사를 걱정하였다.
급기야 귀족 자제와 자신의 비빈들을 억지로 간음케 하여 왕자를 얻으려 했고
비빈이 거부하자, 칼로 위협해가며 강제로 간음을 시켜 임신하게 했다.
천인공노할 작태를 벌였으니 후환이 없으면 섭섭할 터.
술에 취해 침전에 든 공민왕의 온 몸을 마구 찔러댄 이가 있었으니
바로 억지 간음에 동원됐던 귀족 자제였다.  
뇌수가 벽에 튀어 붙을 정도로 처참한 죽음을 맞은 공민왕의 나이는 45세.
고려의 등불 같은 존재였던 공민왕의 죽음은 이처럼 허무했다.
 
공민왕의 뒤를 이어 10살의 어린 나이로 우왕이 즉위했다.
처음에는 학문 닦기에 힘썼고,
할머니 명덕태후의 가르침을 받아 몸가짐을 바로하여

기대를 모았으나,태후가 죽은 후 음주가무에 엽색 등 방탕하게 노닐면서
백성들의 신망을 잃어갔다. 여기에다 왕을 믿고 까불던 측근들이
이성계 일파로 부터 왕따 당해 유배되자, 우왕의 정치적 기반은 흔들렸다.
 
이때부터 우왕의 생모, 반야가 신돈의 첩이라는 사실 때문에
우왕이 신돈의 아들이라는

'우왕신씨설'이 모락모락 피어올라사방으로 퍼져 나가기 시작했다.
'왕족의 혈통이 아니고 신돈의 자식이 맞다'고 이성계도 거들었다.
이성계는 위화도 회군 이후, 꿍짝이 맞는 몇몇의 도움을 받아 어의를 벗겼다.   
강화도로, 여주로, 다시 강릉으로 유배지를 옮겨가며 서러운 눈물을 흘렸다.
유배만으로는 성이 안찼던지 이성계 일파는 강릉 인근으로 찾아가 무참하게 살해했다.
 
그렇게 24세 꽃다운 나이에 비운의 삶을 허무하게 마감한 우왕.
그의 서러운 눈물이 마르지 않는 곳이 강릉 제왕산이다.

이곳에서 좌측으로 내려서면  상제민원계곡을 가로지른 제왕교를 건너면 옛 대굴령길과 만나는 상제민원 길로 접어든다.

우린 차가 있는 곳으로가기위해다시 왔던 길을 되돌아 가야만 한다.

제왕산 정상에서 인증샷을 남기고...

다시 되돌아 와서 왔던 길을 다시 가고 있다.

우왕은 이곳에 올라 무슨 생각에 젖었을까?
아마도 생모 반야를 그리며 눈물 지었을 것이고,
어쩌면 이성계를 떠올리며 칼을 갈았을지도...

달맞이꽃도 비에 흠뻑 젖어있고...

임도를 걸어 편안하게 산불감시초소까지 와서 좌측 능경봉으로 오른다.

백두대간의 이정표

능경봉으로 오르는 백두대간길은 자연이 참으로 잘 보존되어 있다.

이곳을 3번정도를 걸었지만 낮에 와보기는 처음이다. 맨날 밤에만 다녔으니...

질척거리는 등로를 지나니 돌로 깨끗하게 핸논곳도 만나고...

우스쾅스런 나무도 지나고...

이끼낀 바위를 지나니...

능경봉 헬기장이 나타나고...

멋진 까치수염도 오랫만에 찾아오는 산꾼을 반기고...

상당히 큰 산당귀가 범여를 탐욕의 시험대로 들게한다... 켤카말까 에공 참자.

능경봉(1,123.2m)

강원도 강릉시 왕산면 왕산리와  평창군 대관령면 횡계리 사이에 있는 제왕산의 母山이다.

대관령 남쪽에서는 가장 높은 봉우리이다. 이 봉우리에서 능선을 따라 북쪽으로 가면 대관령이 나오고,

남쪽으로 가면 횡계치가 나온다. 또 동쪽 능선을 따라 가면 제왕산(841m)이 나온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강릉부 서쪽 80리에 있다. 산속에 샘이 있고 날씨가 가물어서 비를 빌면

영험이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산 이름의 유래에 대해서 세 가지 속설이 있다.

 

첫째, 대관령 능선 아래 있다고 해서 능정봉(凌頂峰)이라 한다.

둘째, 산의 모양이 둥그스름하여 마치 큰 왕릉처럼 생겨서 능정봉이라 한다. 

셋째, 활시위처럼 생겨서 소궁음산(所弓音山)이라 한다. 그런데 이 속설은 능정봉 이름의 해석으로는 

신빙성이 약해 보인다. 능선(稜線)과 왕릉(王陵)의 한자가 각기 다르고, 소궁음산은 소우음산(所亏音山)의 

잘못된 표기로 여겨진다. 『관동읍지』와 『증수임영지』에서는 "소우음산은 위에 영험한 샘이 나는 곳이 

있으며 가뭄이 들어 비가 오기를 빌면 신통하게도 비가 온다고 하여 능정산(凌頂山)이라고도 한다."고 

기록되어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 『여지도서』, 『관동읍지』, 『증수임영지』에는 산 이름이 

소우음산(所토音山)으로 표기되어 있다. 현대지도나 산꼭대기의 표석에는 능경봉(凌京峰)으로 표기되어 있다.

 능경봉 구간은 대관령 줄기의 다른 산에 비해 산행거리가 비교적 짧고 대관령 주변 의

아름다운 풍경을 수시로 볼 수 있어 각광받는 등산로이다.
이 봉으로 가는 길은 대관령에서 출발하는 짧은 등산로와 닭목재에서 가는 긴 등산로가 있다.

특히 대관령에서 출발하는 등산로는 산행거리가 짧아서 가족 단위 등산로로 안성맞춤이다.
강릉시내에서 삽당령 쪽으로 가다 보면 오봉저수지를 만난다.

 

저수지를 돌아 교량을 건너면 갈림길이 나오는데 이곳에서 오른쪽 길을 잡아야 한다.

 이 길이 왕산면 왕산리로 들어가는 9번 군도이다. 군도를 따라 고개를 넘어가면 왕산면

대기2리. 이 마을은 풍수지리에서 말하는 금계포란형의 '닭의 목'에 해당하는 곳이라 하여

'닭목'이라 하고 마을로 넘어가는 고개를 '닭목재'라 부른다.


대관령에서 시작하는 산행은 대관령 남쪽 휴게소(횡계에서 내려오면서 오른쪽)에서 시작된다.

산길은 비교적 순탄한데 정상이 가까워지면 능선이 급경사를 이루어 오르막 길에는 로프가 설치되어 있다.

 정상까지는 약 1.8km,1시간이 걸린다.
산 정상에 서면 대관령의 광활한 초원과 강릉의 맑은 동해바다, 백두대간의 웅장한 산세와 마주할 수 있다.

 코스를 어디로 잡느냐에 따라 3시간 30분~5시간이 걸린다.

하산은 시작한 곳으로 되돌아가는 산행이 편리하다.
대관령까지는 강릉시에서 평창군 도암면 횡계리까지 수시로 운행하는 시외버스를 이용하면 된다.

서울 청량리에서 왔다는 대간 산꾼

어젯밤 이곳 능경봉 정상에서 억수같이 내리는 비를 맞으며

비박을 하였다고 한다. 젊음이 좋긴 좋구나... 10년만 젊었어도...

나도 60되기전에  침낭하나 메고 나홀로 백두대간 종주를 함 해야되는데...

능경봉에서 인증샷을 남기고 대관령을 되돌아 내려오는데

등로에 조그만 뚜꺼비 한마리를 만난다. 굉장히 토실토실하다.

산불감시초소를 대관령 주차장으로 향하는데 산수국이 흐드르지게 피어있다.

가는 세울을 이기지 못하고 쪼그랑 밤탱이가 되어가는 붓꽃

예전에 나(我)를  놓아버리고 세상사 순리대로 살아갑시다.

대관령 신재생 에너지 전시관

대관령(大關嶺)은 강원도 강릉시 성산면과 평창군 대관령면 횡계리 사이에 있는 고개로 

영서와 영동을 연결하는 영동고속도로의 동쪽 마지막 고개로 높이는 832m이다.

대관령을 분수령으로 동쪽에 흐르는 하천은 오십천(五十川)으로서 강릉을 지나 동해로 빠지고,

서쪽에 흐르는 하천은 송천(松川)이 되어 남한강(南漢江)으로 흘러들어간다.

 

대관령의 연혁을 보면 대령(大嶺)이라 부르기도 하였으며, 동쪽 경사면의 도로는 아흔아홉구비라고 한다.

 예로부터 고개가 험해서 오르내릴 때 ‘대굴대굴 크게 구르는 고개’라는 뜻의 대굴령에서 음을 빌려

 대관령이 되었다. 또 다른 유래로는 영동지방으로 오는 ‘큰 관문에 있는 고개’라는 명칭에서

 대관령이 유래했다고도 한다.

 

내륙 고원지대에 위치하기 때문에 기온의 교차가 심한 대륙성 기후를 나타내며, 같은 위도의

 다른 지역보다 기온이 낮고 여름이 짧다. 높은 산지여서 기후는 춥고 비가 많은 편이며,

 봄과 가을이 짧고 겨울에 눈이 많이 내린다. 연평균기온은 10.3℃이고 1월 평균기온 ·6.3℃,

8월 평균기온 24.5℃, 연평균 강수량은 1,082㎜이다.

일반적으로 대관령 지역은 태백산맥 동쪽 해안산맥의 중부로서, 황병산(黃柄山, 1,407m)·

노인봉(老人峯)·선자령(仙子嶺, 1,157m)·능경봉(1,123m)·고루포기산(1,238m)·발왕산(發旺山, 1,458m) 등

 높은 산지로 둘러싸인 해발고도 700m 이상의 평탄면(平坦面)과 구릉성 산지로 이루어져 있다.

동쪽은 대관령이 경계이고, 서쪽은 싸리재[杻峙]가 경계를 이룬 고위평탄면지형(高位平坦面地形)을

 이루는 지역이다.

 

대관령면은 횡계리를 중심으로 씨감자의 원종지(原種地)로 지정되었고, 고랭지채소를 대규모로

재배하여 평창군 내 제1의 고소득 지역이다. 대관령 부근에는 우리나라 유일의 고랭지시험장이 있어,

산지가 높고 기온이 서늘한 지역에 적합한 작물의 시험재배와 씨앗감자를 재배하여 전국에 보급하고 있다.

1972년부터 개발하기 시작한 대단위 초지조성(草地造成)으로 목축 중심지로 등장하여 젖소·고기소·닭

등의 사육으로 축산업이 발달하였다. 특히 삼양축산·한일목장·병지목장 등 대단위 목장이 있다.

평창군 도암면 횡계리의 삼양축산과 한일목장 초지 내에는 대관령 풍력발전단지가 조성되어 있다.

 

대관령 주차장 옆에 있는 평화통일기원비탑

대관령에는 고갯길을 낸 죄로 두 번씩이나 죽임을 당한 고형산이란 사람의 일화가 전해져 온다.

본래 대관령 고갯길은 오솔길이었는 조선 중종 때 고형산이란 사람이 사재를 들여 수개월에

걸쳐 우마차가 다닐 수 있도록 넓혀 놓아 한양과 강릉 간의 교통이 편리해지자 병자호란 때

청나라의 군대가 주문진으로 상륙, 그가 넓힌 대관령 길을 통해 쉽게 한양을침범하였고 이에 노한

인조가 고형산의 묘를 파헤쳤다는 것이다.

3시간 20분에 걸쳐 산행을 하고나니 허전하기 그지없다.

편한 길을 걷다보니  몸이 예열도 되기전에 산행이 끝나버리니몸이 영찌부등하니 미치겠다.

다신 이런 산행을 안하리라...내려와서 차를타고 월정사 입구에 있는 캔싱턴 호텔 사우나로 간다.

월정사 입구에 있는 켄싱턴 호텔

캔싱턴 호텔에 들려 사우나에 가서 깔끔하게 샤워를 하고나서

진고개 너머에 있는 범여와 같은 라이온스클럽 회원이 운영하는

펜션으로 닭백숙을 먹으러 간다.진고개 너머가는 길은 짙은 안개로

인해 앞이 잘보이질 않는다. 급경사 내리막길을 내려가다 송천약수

조금 지나서 송천마을 버스 정류소앞에 있는 하늘숲 펜션에 도착한다.

범여의 라이온스 회원이 운영하는 하늘숲 펜션

직접 키우는 토종닭에다가 자연산,개두릅, 엄나물 등 제대로 대접을 받았다.

고기맛도 좋았고, 특히 자연산 나물이 입에 촥 감긴다. 거기다가 혼자만의

공간인 카페에서 와인에다가 커피까지 대접받고  18시 30분에 서울로  출발한다.

비가 많이온 탓인지 진고개 계곡에서 내려오는 물이 엄청많다.

 

오늘이 우란분절(7월 백중) 입재일이라 사실은 절에 가서 우리 부모님 위패를

모셔야 하셔야 하는데 아침에 절에 전화를 해서 신도회 회장님께 부탁을 하고

위패 봉안비는 온라인으로 송금을 하고나니 사실은 맘이 별로 편치가 않다.

은사스님을 뵌지도 한달이 다되어 가기에  인사를 올려야 하는데...

 

서울에 올라가기 위해서  준비를 하는데 하늘숲 사장님이 ‘김 회장 내 개인카페에서

커피 한잔하고 가자고 부탁을 한다’ 그래서 커피를 한 잔 마시고 있는데 강원도

태백에 사는 친구한테 전화가 온다. 아니 이 넘이 내가 강원도에 있는 걸 어찌 알았지

하고 전화를 받는데 목소리의 感이 영 좋질않다.  친구야! 우리 와이프가 저 세상을 갔다.

오늘 아침에... 이게 왠 날벼락이란 말인가?

 

이 친구는 서울에 처음와서 만난 친구로 서울세상 한 10년을 하고나서 고향인 강원도

태백으로 낙향하여 태백축협에 근무하다가 IMF때 구조조정으로 퇴직하여 조그만

가계를 운영하고 있었다. 우리애들 초등학교 다닐때 5~6년간을 매년 강원도로 여름

휴가를 가서 참으로 신세를 많이 진 친구이다. 그러다가 애들 커고나서는 자주 안만나는

바람에 자꾸 멀어지고 서로 안부 인사만 묻고 살았는데... 친구에게 뭐라고 위로해야 할 지.

우선 내가 거래하는 꽃집에 전화하여 조화하나 부탁하고 ...내일 저녁에 같다 와야겠다. 

하늘숲 펜션의 전용 폭포가 정말 멋있다.

하늘숲 펜션 쥔장인 김 배권L님과 인증샷을 남기고...

진고개 정상에는 짙은 안개개 끼여있고...

18시 40분에 손님이 없는지 휴게소문은 닫아버렸다.

진부에서 차량에 기름을 가득채우고 서울출발하여

21시 30분에 서울에 도착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