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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범여(梵如)의 世上사는 이야기
♣ 佛 敎 ♣/전국의 사찰

양평 용문사

by 범여(梵如) 2012. 8. 17.

 

 

 

은행나무와 천 년을 함께 한 용문사

 

용문사는 통일신라시대인 913년(신덕왕 2) 대경 대사가 창건했다고 전하며,

혹은 통일신라 말 경순왕(재위 927~935)이 행차하고 창건했다고도 한다.
고려 말 1378년(우왕 4) 정지국사 지천 스님이 대장경을 봉안한 데서 알 수 있듯이

 당시의 대표적인 사찰이었다.

 

조선시대에 들어와서는 세조가 되기 전 수양대군이 어머니 소헌왕후의 명복을 빌기 위하여

보전을 지었고, 왕위에 오른 뒤 정희왕후와 더불어 대규모로 중창하였다.

 

조선시대 후기에 조대비의 후원으로 크게 중수하였으나

구한말에 일본에 항거하는 의병의 근거지가 되자 일본군이 불태웠다.

그 뒤 근대에 들어서 여러 차례의 중수와 중건을 거쳐 오늘에 이른다.

 

용문사 은행나무(龍門寺 銀杏나무)

용문사 경내 앞에 자리한 이 은행나무는 일명 정삼품송(正三品松)이라고도 부르는데, 용문사의 창건설화와 관련 있는 유서 깊은 거목이다. 수령이 1,100년 정도 되며 그 크기도 높이 60여m에 줄기의 가슴높이 둘레가 14m가 넘는다.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동양에서 가장 큰 은행나무로서 1962년 천연기념물 제30호로 지정되어 있다.

 

이 은행나무는 신라의 마지막 왕인 경순왕의 세자 마의태자(麻衣太子)가 신라가 망하자 금강산에 은거하기 위해 가던 길에 심은 것이라고 전한다. 혹은 신라의 의상 대사가 짚고 다니던 지팡이를 꽂아놓은 것이 뿌리를 내려 자란 것이라고도 한다.


거듭되는 국난 속에도 불타지 않고 살아남아 천왕목(天王木)이라고도 했는데,

이를 기념하듯 나무 앞에는 ‘四方護世四大天王 南無統領八部四大天王 南無四天王上一切賢聖’이라는 비석이 서 있다. 

이로 인해 세조 때 정3품 이상의 벼슬에게 주는 당상직첩(堂上職牒)을 하사받기도 하였다.

  
고종이 승하 했을 때는 큰 가지가 부러지는 등 나라에 변고가 있을 때마다 미리 알려주는 영험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일제강점기에는 일본군이 이 나무를 자르려고 했다가 천둥과 번개가 일어 그만 둔 적이 있다.

그 때의 도끼 자국이 아직도 남아 있다.

 

 

 

 

용문사 삼층석탑(龍門寺 三層石塔)

삼층석탑 1989년 선걸 스님이 조성한 것이다.

 

 

 

 

 

 

대웅전(大雄殿)

팔작지붕에 앞면과 옆면 각 3칸의 건물로 최근에 지었다.

안에는 중앙의 불단에 석가삼존불을 모시고 삼면의 벽에 작은 천불(千佛)을 가득 봉안했다.

또한 신중탱과 천수관음 불화, 그리고 동종이 있다.

'대웅전(大雄殿)' 편액은 서울 봉은사에 걸려 있는 추사 김정희의 글씨를 근래에 번각(飜刻)한 것이다.

용문사의 대웅전은 1983년 이 종걸 스님이 조성한 것으로 단청은 박정원이 했다고 한다.

 

 

 

 

 

(대웅전 문살)

 

 

지장전(地藏殿)

'지장전(地藏殿)' 편액은 서예가 일중(一中) 김충현(金忠顯)의 글씨로, 1973년에 쓴 것이다.

 

지장전 지장보살상(地藏殿 地藏菩薩像)

 안에는 근래에 봉안한 금동 지장보살삼존상이 모셔져 있고, 불화로는 후불탱과 시왕탱 10폭이 있다. 

외부에는 '부모은중경(父母恩重經)'에 있는 내용을 벽화로 그렸다.

 

 

 

관음전(觀音殿)

관음전은 관세음보살을 모신 전각이다.

용문사 관음전은 1912년에 건립되었으며

관음보살상과 천수천안 관세음보살탱화 등을 봉안하고 있다.

 

 

 

 

관음전 목조관음보살좌상(觀音殿 木彫觀音菩薩坐像)

관음전 안에는 관음보살좌상과 후불탱이 있다. 관음상은 조선시대 초기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머리에는 나무로 된 화려한 보관(寶冠)을 쓰고 있으며, 리본처럼 묶은 머리가 어깨까지 내려오고 있다.

원만한 얼굴에는 눈·코·입이 작게 표현되어 있으며, 상체는 뒤로 약간 젖혀져 있다.

온몸에는 화려한 구슬장식이 드리워져 있어, 당당하면서도 화려한 귀족적 분위기가 느껴지는 보살상이다.

 

양 어깨에 걸쳐 입은 옷은 목 부분에서 한번 접혀 양 팔로 자연스럽게 내려오고 있으며,

오른쪽의 소매자락은 배 부분의 옷자락 사이에 끼워져 곡선을 형성하고 있다.

발목 부분에서는 부드럽게 접힌 八자형의 옷주름을 이루며 두 무릎을 덮고 있다.


가슴과 양 무릎 사이의 구슬장식, 왼쪽 가슴에 있는 금으로 된 삼각형의 장식 등에서

전형적인 14세기의 보살상 양식을 볼 수 있다. 포항 장륙사 건칠보살좌상(보물 제993호)이나

 대구 파계사 목조관음보살좌상(보물 제992호)보다는 신체의 표현이 덜 경직된 느낌을 주고 있어서

이들 작품보다는 시대가 약간 뒤지는 것으로 보인다.

 

전형적인 고려 후기 보살상 양식을 계승하고 있는 조선 초기의 작품으로,

전체적인 표현이 화려하지는 않지만 단정하고 깔끔한 것이 조선시대 초기의 사회적 분위기를

나타내주고 있는 듯 하여 조형성(造形性)에서도 성공한 작품이라고 할 만하다.

 개금은 근래에 한 것이다. 크기는 무릎 너비 41㎝, 앉은 높이 76㎝이다.

 

 

 

범종루(梵鐘褸)

 

 

 

 

 

 

 

범종각(梵鐘閣

용문사의 범종각은 다른 시찰과 달리 범종만을 봉안하고 있다.

1986년 주지스님이셨던 종걸 스님이 범종각을 조성하셨으며 단청은 박정원씨가 하였다.

 

 

 

 

용문사 부도군(龍門寺 浮屠群

 

 

 

일주문(一柱門

 

 

 

용문사 나무들의 오만가지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