있는 곳 : 경북 안동시 안기동 산101-1
이 비는 고려말 충신인 상촌 김자수의 효행비로 정려각 안에 있다.
원래 이 효자비는 고려 공양왕 때에 이미 건립된 것으로 안동부 성 남문 밖에 세워져 있었다.
비 전면은 '효자고려도관찰사김자수지리(孝子高麗都觀察使金自粹之里)' 라고 썼으며,
뒷면에는 그의 행적과 효행 사적이 기록되어 있다. 비각 안에는 순조 18년 김노경(金魯敬)이
글을 짓고 추사(秋史) 김정희(金正喜)가 쓴 편액이 있으며 추녀 아래는 비각 이건기가 게판되어 있다.
그의 어머니 손씨 부인이 돌아가자 그는 삼년상을 지성으로 모셔서 세상에서는
그가 여묘살이 하던 곳을 '시묘(侍墓)골'이라 불러 효행을 칭송했다 한다.
이 비와 비각은 안동댐 수몰로 안동군 월곡면 노산리에서 1973년 12월 현위치로 이건되었다
추원재는 고려말 충신이며 효자인 상촌(桑村) 김자수(金自粹)의 어머니 일직 손씨의
묘소 아래에 있었던 재사(齋舍)이다.
원래 월곡면 노산동에 있었으나 안동댐 건설로 인해 1973년 이곳으로 옮겨졌다.
경주 김씨 세력이 커서 김씨골로 알려져 있는 안동시 금곡동에서 태어난 상촌은
고려말 나라의 정세가 어지러워지자 벼슬을 버리고 고향인 안동에 내려와 살았다.
조선이 개국된 뒤 태종(재위 1400∼1418)이 불렀으나 나가지 않고,
결코 무덤을 만들지 말라는 유언을 남기고 자결하였다.
이숭인·정몽주와 친분이 두터웠으며, 문장이 뛰어나 그의 글이 『동문선』에 실려있다.
안동의 재실 건물중에서 규묘는 크지 않지만 아름다움에서는 두번째 가라면
서럽다 할 건물인 추원재는 앞면 3칸·옆면 3칸 규모이며, 지붕 옆면이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집이다.
현판과 상촌의 15대손이 쓴 기문이 걸려있다.
우리 선조들은 비대칭 속에서 아름다움을 만들었다
옆면에 있는 팔각창문
건물 뒷면에 있는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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