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충신 상촌 김자수 선생은 충효를 실천한 성리학자로서 고려말 형조판서로
재직시 태조 이성계에 의해서 나라가 망하자
두문동에 들어가 고려의 망함을 한탄하다가 광주 추령에서 자결한 충신으로 알고 있습니다.
상촌은 목은 이색, 포은 정몽주 등과 함께 고려말의 뛰어난 학문으로서 예의 진호집설이라는
역서를 냄으로써 불교국가인 고려에서 조선조의 성리학을 도입한 학자로 알고 있습니다.
이분은 장원급제를 하였고, 경상도 안동에서 태어나 그 어머니가 죽었을때 벼슬을 버리고 3년이라는
긴 시간을 산에서 움막을 치고 지냄으로써 왕은 문익점을 시켜 시묘살이의 광경을 그림으로 그리게 하였고,
삼강행실록에 상촌 김자수의 효행을 오르게 함으로써 안동지역의 성리학의 대학자로 이름나게 됩니다.
상촌은 정언 벼슬에 있을 때, 왕의 부당한 지시를 거역한 죄로 전라도 여수 돌산수에 유배를 당하게 됩니다.
젊은 나이에 충직한 충언을 아끼지 않았던 상촌의 유물은 현재 지천서원(충북 음성군 생극면 지천서원)에
그 유장이 보관되어 있으며, 그의 충효에 관한 흔적은 경상도 안동시에 가면 안기동에 추원재 재실이 있으며
효자비가 서 있습니다.
상촌선생의 묘역은 김자수가 자결한 곳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그 묘역이 있는데,
묘역은 경기도 광주시 오포읍 신현리 산에 있고, 묘하에는 고려충신 상촌 김자수선생의 순절비각이 서 있으며,
와비를 비롯하여 경기도 문화재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이분의 문집은 현재 2000년도에 상촌공파종회 종회장 김경재에 의하여 발간되었는데 문집의 저자는
명지대학교 신천식교수에 의하여 완간되었습니다.
이분의 생애와 사상에 관한 연구는 전국사편찬위원회 위원장인 이성무박사(한국정신문화연구원장)를 비롯하여
국사편찬위원회 이영춘박사, 한국한학연구원 권오영박사, 그리고 수많은 역사학자들이 상촌사상연구회에 논문을
제시하고 있어 앞으로 김자수의 생애와 사상 연구는 지속될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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