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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범여(梵如)의 世上사는 이야기
♣ 佛 敎 ♣/전국의 사찰

[스크랩] 경북 김천 수도산 수도사

by 범여(梵如) 2013. 1. 20.

 

 수도암
수도암은 수도산(해발 1,317m)의 상부에 위치한 도량으로, 옛날 도선국사가 이 도량을 보
고 앞으로 무수한 수행인이 나올 것이라 하여,산과 도량 이름을 각각 수도산, 수도암이라
칭하였다는 데에서 유래되었다.  그러나 백여년 전부터 부처님의 영험과 이적이 많다하여
사람들이 불영산이라고도 부르게 되었다.
수도암은 통일신라 헌안왕 3년(859)에 도선국사가 창건했다.  도선은 청암사를 창건한 뒤
수도처로서 이 터를 발견하고 기쁨을 감추지 못하여 7일 동안 춤을 추었다고 한다. 그 뒤
여러 번의 중수를 거쳐 오늘에 이르고 있다. 한편 경내에 있는 석불상과 석탑, 그리고 지
형을 상징한 석물 등도 모두 천여년의 역사를 지니고 있다. 매우 조용하고 한적한 곳으로
서, 암자까지 걸어 오르는 숲이 우거진 오솔길은 아늑한 정취를 느끼게 해 준다.

수도암 대적광전으로 오르는 돌계단

석등과 사자상이 있는 계단을 오르면 그야말로 요지의 자리에 자리한 극락보전이 나온다.
 수도암 삼층석탑보물  제297호
서탑은 2단의 기단 위에 3층의 탑신을 올렸다. 1층 몸돌에 비해 2층 몸돌이 크게 줄었으나 3층 몸돌은 2층과 비슷하다.
1층 몸돌의 각 모서리에는 기둥만 새겨져 있고, 그 사이에 여래좌상이 조각되어 있다. 지붕돌은 동탑보다 얇고
넓으며 밑받침은 5단이다.

두 탑은 통일신라 중기 이후에 만들어진 것으로 짐작되며, 곳곳에서 특이한 수법을 보여주고 있는데, 동탑은 1층 몸돌의 위가 좁고 감실을 두고 있다는 점이 특징이고 서탑은 지붕돌 밑의 간격과 지붕돌이 넓다는 것이 특징이다.
수도암 삼층석탑   보물  제297호
대적광전을 중심으로 하여 동·서쪽에 서 있는 쌍탑으로, 신라 헌안왕 3년(859)에 도선국사가 세웠다는 설이 전해온다. 앞 뜰이 좁아서 탑과 법당과의 거리가 가깝다.
동탑은 단층의 기단(基壇) 위에 3층의 탑신(塔身)을 올린 모습으로 기단의 각 면에는 모서리기둥을 얕게 새겼다. 탑신부에서는 1층 몸돌이 위가 좁고 밑이 넓은 독특한 형태를 보이고 있는데, 각 면에는 4각형의 감실(龕室:불상을 모시는 방)을 두고 그 안에 여래좌상을 도드라지게 새겼다. 2·3층의 몸돌에는 각 모서리 마다 기둥 모양을 새겨 놓았다. 지붕돌은 얇고 넓으며, 받침은 4단으로 구성되어 있다.
 수도암 대적광전대적광전(大寂光殿)은 맞배지붕에 지금의 건물은 1969년에 지었다. 안에는 보물 제307호로 봉안된 석조 비로자나불좌상을 봉안하였고, 그 밖에 1928년에 조성한 동종이 있다.

수도암 대적광전 문살
 


수도암 대적광전 현판
 


사진 출처 문화재청
  수도암 석조비로자나불좌상
보물  제307호
수도암에 모셔진 높이 2.51m의 통일신라시대 석조불상으로 진리의 세계를 두루 통솔한다는
의미를 지닌 비로자나불을 형상화한 것이다.

민머리에는 상투 모양의 머리(육계)가 작지만 분명하게 표현되었다. 얼굴은 네모나며 풍만하고,
긴 눈·작은 입·평평한 콧잔등에서 위엄있는 모습을 살펴볼 수가 있다. 옷은 양 어깨에 걸쳐 입고 있으며
옷주름은 느슨하고 형식적으로 표현되었다. 손은 왼손 검지를 오른손으로 감싸고 있는데 매우 사실적으로
묘사하였으며 단정하고 강인한 느낌을 준다. 거구의 불상이면서도 불안정한 모습을 보여주는 것은 특이한
손모양과 함께 당시 시대양식의 반영인 것 같다.

불상이 앉아 있는 대좌(臺座)는 크게 3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아래쪽은 연꽃을 엎어 놓은 모양으로 8각형을 이루고 있다.
맨 위에는 반원형에 가까운 연꽃이 2줄로 교차되어 있고, 앞면에 3마리의 사자상과 용머리 같은 것이 새겨져 있어 독특하다.

전체적으로 정제되고 균형잡힌 모습을 나타내는데, 위축되고 긴장감이 감소하며 탄력이 줄어든 점으로 볼 때
신라말에 만든 작품으로 추정된다.

 수도암 약광전약광전(藥光殿)은 맞배지붕에 앞면 3칸, 옆면 2칸의 규모로 대적광전과 마찬가지로 1969년에 지었다.
안에는 보물 제296호로 지정된 석불 좌상이 봉안되었다. 

 수도암 약광전 석불좌상보물  제296호
청암산 수도암 약광전에 모셔져 있는 높이 1.54m의 고려시대 석불좌상이다.
머리에 원통형의 관(冠)을 쓰고 있어서 보살상처럼 보이지만, 광배와 대좌가 있고 신체 각 부분의 표현으로 보아
여래상을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얼굴은 단아한 모습인데 마모가 심해 세부수법을 자세하게 확인하기 어렵다.
양 어깨에 걸쳐져 있는 옷의 주름은 도식적이고, 손모양은 두 손을 무릎 위에 나란히 모아 보주(寶珠)를 들고 있는 모습이다.

부처의 몸에서 나오는 빛을 형상화한 광배(光背)에는 연꽃무늬·덩쿨무늬·불꽃무늬가 새겨져 있다. 불상이 앉아있는
대좌(臺座)는 4각형으로 윗부분에는 연꽃이 활짝 핀 모양을, 아랫부분에는 연꽃을 엎어 놓은 모양을 조각하였다.

도식적으로 처리된 옷주름, 형식적인 광배와 대좌의 표현으로 보아 고려 초기에 만들어진 작품으로 생각된다
 
 

수도암 석등
 수도암과 해인사
김천 수도암(修道庵)은 직지사 말사인 청암사(靑巖寺) 부속암자이지만 가야산 능선과 연결돼 있어 해인사와 인연이 깊다.
지권인(智拳印)을 한 대적광전 비로자나불의 시선이 향하는 곳을 따라 가다보면 가야산 꼭대기와 마주한다. 수도암에서는
그곳을 연화봉이라고 부른다. 해인사 강원 학인들은 해마다 이른 봄 고려대장경 정대불사(경전 목판을 머리에 이고 경내를
도는 법회)를 마치고 나면 가야산에서 수도암이 있는 불령산(佛靈山)까지 등산을 한다. 비구니 스님들의 수도처인 청암사에서 점심을 먹고 수도암을 참배한 뒤 다시 해인사로 돌아가는 하루 여정은 법회 준비에 지친 스님들을 위로하는 ‘소풍’인 셈이다

가야산과 불령산을 잇는 길을 따라 많은 스님들이 오갔다.
수도암에 선원을 처음 개설한 경허스님이 그러했고 한국전쟁으로 폐허가 되다시피 한 암자를 본사 못지않은
대찰로 일으켜 세운 법전종정예하 역시 그 길을 따라 오갔다. 주지 원만(圓滿)스님을 비롯한 여러 대중들
또한 해인사 스님들이 많다. 큰 절 격인 청암사와 본사인 직지사 역시 관할 소유 따지지 않고 좋은 공부
분위기를 만드는데 돕고 있어 좌우로 포근히 감싼 생김새에 덧붙여 저절로 마음이 포근해지는 수도처다.
 


 창주 도선국사신라말의 승려이며 풍수설의 대사. 성은 김씨. 영암출신. 왕가의 후예라는 설도 있다.
15세에 출가하여 월유산 화엄사(華嚴寺)에서 중이 되었다. 그뒤 유명한 사찰을 다니면서 수행하다가,
846년(문성왕 8)에 곡성 동리산(桐裏山)의 혜철(惠徹)을 찾아가서 무설설(無說說) 무법법(無法法)의 법문을 듣고
오묘한 이치를 깨달았다. 850년에는 천도사(穿道寺)에서 구족계(具足戒)를 받은 뒤, 운봉산(雲峯山)에 굴을 파고
수도하기도 하였으며, 태백산에 움막을 치고 여름 한철을 보내기도 하였다. 그러다가 전라남도 광양 백계산
옥룡사(玉龍寺)에 자리를 잡고 후학들을 지도하였는데, 언제나 수백명의 제자들이 모여들었다고 한다.

수도암 전경


수도암 수조
 
수도암 관음전

수도암 나한전

수도암 나한전내
 

수도암 전경


수도암 해우소
 
 
 
 
 
 
 수도암 찾아가는 길
김천 - 거창방향 3번 국도 - 지례면 속수교 - 903번 지방도 - 증산초등학교 앞 3거리에서 우회전 - 30번 국도 - 청암사 방면 - 수도계곡 - 수도암



 
출처 : 불국정토를 가꾸는 사람들
글쓴이 : 정만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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