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군산시내에 자리한 아늑한 산사 ~ 설림산 은적사(雪琳山 隱寂寺)
▲ 슬슬 가을을 준비하는 은적사 외곽의 나무들 |
군산시내 서남쪽에는 설림산(115.8m)이란 조그만 산이 누워있다. 그 산의 남쪽 자락에는 군산에 서 가장 큰 절인 은적사가 조용히 또아리를 틀어 삶에 지쳐 찾아온 중생을 보듬는다. 절의 이름 인 은적(隱寂)은 해탈을 위해 은거하며 수도에 정진한다는 뜻으로 지금은 시가지에 둘러싸여 은 적이란 이름이 조금은 무색해진 것 같다.
은적사는 613년 원광국사(圓光國師)가 창건한 것으로 전해진다. 허나 그 당시 군산은 엄연한 백 제 땅으로 당시 백제를 다스리던 군주는 무왕(武王)이었다. 그 시절 백제와 신라와의 관계는 정 말로 험악하기 그지 없었지. 상황이 그러한데 아무리 원광이 신라에 이름난 승려라 할지라도 적 국에 절을 세우는 건 어림도 없었을 것이며, 백제 또한 적국의 승려가 설치는 것을 그냥 두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원광국사의 창건설은 신빙성이 없다.
그리고 7세기 중반에 창건되었다는 설도 하나 있다. 그 설에 의하면 당나라가 신라와 연합해 백 제를 공격하던 660년 여름, 당나라 장수 소정방(蘇定方)은 13만 대군을 이끌고 금강 하류인 설 림산 부근 천방산(千房山) 아래에 상륙했다. 그런데 안개가 자욱하여 더 이상 전진이 불가능해 지자 산에 올라 안개를 치워주면 이 산에 천사(千寺)를 지어 바치겠다며 산신에게 기도를 올렸 다. 그랬더니만 감쪽같이 안개가 사라졌다는 것이다. 그래서 절을 지을 자리를 물색했으나 워낙 지세가 협소하여 부득이 주춧돌 1,000개를 여러 곳에 놓고 1개의 절만 지어 천방사(千房寺)라 했다고 한다. 그것이 은적사의 전신(前身)이라는 것이 다. 허나 당나라군이 백제를 접수하지도 못한 상태에서 힘겹게 전쟁을 벌이고 있던 때에 무슨 여력으로 절을 짓겠는가? 이 역시 가능성이 없다. 결론은 창건 시기는 모른다는 것.
어쨌든 창건 이후 952년(광종 3년)에 정진(靜眞)국사가 중건했고, 1373년(공민왕 22)에 나옹(奈 翁)대사가 중수했다고 한다. 그 이후 1781년에 보경(寶鏡)선사가 중수했으며, 1937년과 1947년 에 중수를 벌여 지금에 이른다. 절의 내력 가운데 그나마 조선 이후만 신뢰도가 높을 뿐, 그 이 전은 증거물이 전혀 없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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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은적사 일주문(一柱門) 일주문은 속세와 부처의 세계를 구분짓은 문으로 문 밖은 소룡동 주택가이다. |
▲ 은적사 극락전(極樂殿) 대웅전 뜨락 우측에 자리한 큰 건물로 2000년에 세워졌다. |
▲ 은적사 지장전(地藏殿) 명부전을 부시고 만든 2층 건물로 그 모습이 금산사 미륵전(彌勒殿)의 축소판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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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은적사 천왕문(天王門) 사천왕(四天王)의 보금자리로 일주문을 지나면 주차장과 함께 모습을 비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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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까지 태고종(太古宗) 소속으로 있다가 그 이후 조계종(曹溪宗)으로 전환했다. 1989년 삼 성각이 불타서 없어지고, 1991년 은적사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이자 지방문화재인 산신각(山神閣 )이 방화로 사라지는 불행을 겪었다. 1993년에는 명부전(冥府殿)을 부시고 그 자리에 2층의 지 장전을 세우는 한편 조선 중기에 지어졌다고 하는 대웅전을 해체하여 지금처럼 몸집을 늘렸다. 1994년 성우가 주지로 부임하면서 계속 불사를 벌여 200평에 불과하던 경내가 무려 4,000평으로 확장되었다.
법당(法堂)인 대웅전을 비롯하여 지장전, 극락전, 범종각, 화엄회, 교육관 등 8~9동의 건물이 경내를 메우고 있으며, 대부분 1980년대 이후 건물이라 고색의 흔적은 세월의 장대한 흐름에 죄 다 씻겨가 버렸다. 대웅전 뜨락에는 석가탑(釋迦塔)을 빼어닮은 하얀 피부의 3층석탑이 가을 햇살을 즐긴다. 이곳 에는 예전에 선종암(善宗庵)에서 가져온 오래된 3층석탑이 있었다고 하는데, 어디로 마실을 갔 는지 보이질 않는다. 설마 그 낡은 탑이 이 탑으로 둔갑된 것은 아니겠지? 선종암은 설림산 북 쪽에 있던 암자로 왜정 때 상수도 수원지 공사로 절이 파괴되면서 이곳으로 거처를 옮겼다.
지장전 옆에는 교육관과 2층 규모의 어린이집이 있는데, 어린이집은 종무소(宗務所)도 겸하고 있으며, 경내 뜨락에는 잔디가 곱게 깔려 깨끗하고 정갈한 분위기를 풍긴다. 일주문 옆에는 조 그만 찻집이 있어 잠시 발을 멈추고 일다경(一茶頃)의 여유도 누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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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은적사에서 가장 오래된 유물, 팽나무 나이가 약 260년으로 나무의 높이가 20m, 둘레가 2.5m에 이른다. 3m 지점에서 가지가 3개가 갈라져 장관을 이룬다. 군산시 보호수 9-2-21-2호 |
▲ 대웅전 뜨락의 지장보살상(地藏菩薩) 왼손에는 육환장(六環杖)이란 지팡이 대신 약사여래의 약합(藥盒) 같은 무엇인가가 조심스레 들려져 있다. |
은적사에 있는 오래된 흔적으로는 나이 260년을 헤아린 거대한 팽나무가 있는데, 그 나무가 그 나마 경내에서 가장 오래된 존재이다. 조선 중기에 세워졌다는 대웅전은 1980년에 새로 지었으 니 고색의 기운은 애당초 말라버렸고, 그 대웅전에는 이곳의 유일한 지정문화재인 석가여래3존 상이 모셔져 있는데, 이것도 원래 이곳에 있던 것이 아닌 김제 금산사(金山寺) 인근 절에서 20 세기 초반 경에 가져온 것이다. 이 불상은 석가불을 중심으로 좌우로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이 협시(夾侍)한 3존불로 1629년(인조 6년)에 조성된 것이다. 현재는 금동으로 도금을 했으며, 개금(改金)할 때 '다라니경' 등의 복장 물(腹臟物)이 나왔다고 하나 현재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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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은적사 대웅전(大雄殿)과 3층석탑 대웅전은 1980년에 중수한 것으로 원래 건물은 조선 중종 때 중창된 것이라 전한다. 정면 5칸, 측면 5칸의 팔작지붕 건물로 석가3존불를 비롯하여 1991년에 불타버린 산신각에서 옮겨온 칠성탱(七星幀)과 산신탱(山神幀), 독성상(獨聖像) 등이 봉안되어 있다.
▲ 은적사 석가여래3존상 - 전북 지방유형문화재 184호 조선 중기 불상으로 화려한 닫집과 고운 색깔의 후불탱화가 서로 조화를 이루어 찬란함의 극치를 유감없이 드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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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웅전 우측 부분의 불화들 왼쪽부터 산신탱. 칠성탱, 독성상(獨聖像) |
▲ 대웅전 좌측 부분의 불화들 신중도(神衆圖)와 영산회상도 |
▲ 대웅전 좌측 언덕에 지어진 거대한 석불입상 시무외인(施無畏印)과 여원인(與願印)을 취하며 지그시 군산시내를 굽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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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산시내에서 나름 오래된 터줏대감 사찰이지만 동국사에 크게 밀려 외지 관광객은 그리 없다. 관광 수요를 부를 만한 매력도 거의 없고, 보물도 빈약하니 그런 것이다. 게다가 주택가가 절 밑에까지 밀려와 은적이란 이름도 조금 무색하다. 허나 자리가 좋아 학의 품에 안긴 알처럼 포 근하고 아늑함이 밀려오는 도시 속에 조촐한 오아사스 같은 곳이다. ※ 은적사 찾아가기 (2012년 12월 기준) * 군산역과 군산시외/고속터미널에서 소룡4거리 경유 군산대, 비응도 방면 시내버스를 타고 은 적사(1,2,4,5,7,8,85번)나 월명여중(3,7,50,60,80번 계열 시내버스)에서 내려 도보 10분. 소 룡초교 뒤에 절이 있다. * 승용차로 가는 경우 (경내에 주차장 있음) ① 서해안고속도로 → 동군산나들목 → 대야교차로에서 21번 외곽국도로 우회전 → 공항교차로 에서 산북로로 우회전 → 소룡4거리 직진 → 은적사입구에서 설림3길로 우회전 → 은적사 * 소재지 - 전라북도 군산시 소룡동 1332 (☎ 063-466-4526~8) |